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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또 '실패한 대통령'인가

아무리 능력 없고 내세울 게 없는 아버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를 무시하거나 욕하면 자식은 참을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지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들으면 국민은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욕설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멸시로 여기기 때문이다.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북한이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미사일 두 발을 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온갖 인신모독을 퍼부었다. "삶은 소 대가리도 웃을 일"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북쪽 총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 등 대한민국 대통령을 마구 난도질했다.1960, 70년대처럼 남북한이 대치 상태 또는 체제 경쟁을 하거나 박근혜·이명박 정부처럼 북한을 압박했다면 우리 대통령을 향한 북한의 조롱·모욕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주선하고 대북 제재 완화 등 유화 노선을 걸으며 북한과 김정은을 향해 지극정성으로 공을 들였다. 오죽하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비아냥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고마워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대고 문 대통령을 향해 저열한 언사를 퍼붓고 있다.애초 목표한 북한 핵 폐기는 물 건너간 반면 남한을 표적으로 한 북한의 도발이 갈수록 가중하는 것을 보면서 문 대통령의 집권 2년 4개월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대북 문제는 문 대통령의 국정 제1과제였다. 그렇게도 목을 맨 대북 문제가 좌초한 것처럼 국정 전 분야에서 '실패의 증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성과는커녕 어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 대다수가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 언급한 '외톨이'는 야당이 아닌 이 나라가 처한 안보·외교 상황에 딱 들어맞는 단어다. 강대국 중 우리 편을 들어줄 나라가 하나도 없다. 미국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고 한미연합훈련에서 '동맹'이 빠지는 등 한·미동맹은 와해 상태다. 일본과는 단교(斷交)까지 거론되고 중국·러시아는 안보 도발을 일삼고 있다. 열강의 각축 속에 나라를 잃은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먹고사는 문제'마저 낙제점이다. 경제성장률과 고용지표는 최악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고 주가지수는 문 대통령 취임 때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등 현실을 도외시한 고집불통 정책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탈원전으로 공공기관들과 기업들은 부실투성이로 전락했고 세계 최고인 원전산업 생태계는 붕괴하고 있다. "경제가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뿐이다.고고학자 콜린 렌프류와 사회학자 사무엘 아이젠스타트는 붕괴하는 국가의 공통점을 이렇게 집약했다. 집권층 내부의 균열과 투쟁, 관료들의 부패와 문제 해결 능력 부족, 근시안적 정책으로 말미암은 악영향, 과중한 세금 부담과 즉흥적인 땜질 정책 난무, 경제 악화 및 군사력 약화 등을 꼽았다. 이들 항목에 오늘의 한국을 대입하면 이 나라가 붕괴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대전환하지 않고 기존 행태를 답습한다면 실패의 증거는 더 많이 쌓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민은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볼 수밖에 없다.

2019-08-2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누가 '친일파'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가

반일운동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상황을 보고 있으니 문득 10년 전 일본에서 경험한 해프닝이 떠오른다. 필자는 20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시리즈 취재 차 도쿄 시나가와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묘소를 찾았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은 불청객이었기에 묘지기 할머니는 몇 차례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취재를 허락했다.사진 촬영을 하려고 하자, 이 할머니가 막아서더니 갑자기 청소를 시작했다. 작은 운동장만한 널따란 묘소에는 낙엽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할머니 혼자 치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일행은 경로사상을 발휘해 할머니를 쉬게 하고 대신 나섰다. 1시간 남짓 땀 흘리며 청소하니 묘소 주변이 쓰레기 한 점 없이 깨끗해졌고, 무사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안 의사 취재를 하던 중에 원수인 이토의 묘소를 청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안 의사의 일대기를 취재한 것은 '애국심의 발로'임이 분명하나, 과열된 반일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문맥 앞뒤 떼고 이토의 묘소를 청소한 사실만 콕 집어 '친일파'로 매도될 지도 모를 일이다. '친일파'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함부로 내뱉는 세상이 되다 보니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일본 제품을 쓴다는 이유로, 반일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친일파'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한 지인은 연비가 좋다는 최하급의 도요타 승용차를 타는데, 곤혹스러운 일을 자주 겪고 있다. 주차한 뒤 볼일 보고 돌아와 보면 차에 껌이 붙어 있거나 커피를 쏟은 자국이 남아 있다고 했다.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는 사람을 촬영해 SNS에 올려 놓고 '친일파'로 조롱하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필자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찬성하고 일본 제품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강요와 압박은 싫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동참하면 될 일을 강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래전에 읽은 '반일' 유머가 생각난다.한국 대통령과 일본 왕이 만났다. 한국과 일본 국민 수만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일본 왕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국민은 제가 손을 한 번 흔들면 박수치고 환호할 것입니다." 일본 왕이 자국민을 향해 손을 흔들자 모두 박수치며 환호했다.이 장면을 본 한국 대통령이 일본 왕에게 말했다. "제가 손을 한 번만 쓰면 여기 있는 국민은 물론이고 집에서 TV 보는 국민들도 모두 환호하고 기뻐해 오늘을 국경일로 지정할 것입니다." 일본 왕은 비웃듯 말했다. "한 번 해 보시지요."그러자 한국 대통령은 일본 왕의 귀싸대기를 갈겼다.한국인에게 반일 감정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천 년 이상 한국인의 DNA에 깊이 새겨져 있는 유전자나 다름없다. 실제 '친일파'라고 불릴 만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 국민이 '반일주의자'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밉다는 이유로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이들조차 내심으로는 '반일주의자'다.모두가 '반일주의자'임에도, 그 앞에서 '반일'을 강요하거나 상대를 함부로 '친일파'로 모욕하는 것이야말로 '매국적' 행위다. 정치에 이용하려거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 날뛰는 것일 뿐, 순수한 '반일'이 아니다.상식에 반하는 강경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이나 단체는 딴마음을 가졌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반일운동'은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진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 최소한 아베보다 도덕적으로 나은 국민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2019-08-1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기억, 망각을 뛰어넘다

한·일 양국의 기질을 비교할 때 예로 꼽는 말이 있다. '한국인은 하고 싶은 말의 120%를 말하지만 일본인은 70% 정도만 말한다'는 표현이다. 이는 정치사회적 환경이나 국민성, 인간관계 구조, 집단의식의 차이가 빚어낸 갈래라는 점에서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대체로 솔직하게 또 직선적으로 말하는 기질이다. 반면 일본인은 상대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늘 내심을 감춘다. 이런 불분명한 태도가 미덕으로 여겨질 만큼 특유의 '찜찜하고 요령부득'의 언어 문화로 굳어진 것이다.일본인이 내뱉는 70%의 말도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것은 나머지 30%의 '남겨둔 말'이다. 대다수 일본인이 좀체 입 밖으로 내지 않는 30%의 말 중에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는 게 함정이다. 개인과 조직, 집단, 국제 관계에서 곧잘 드러나는 일본인의 기질적 특성 즉 '맺고 끊음이 없는 어정쩡한' 화법과 '감춰진 속내(혼네)'라는 변수는 늘 논란이 되고 마찰과 혼선의 화근이다.아베 정부가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에 관한 우리 대법원 판결에 발끈해 내지르는 품위 없는 말과 행동에도 그런 독가시들이 삐져나온다. 한국에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고 경제 보복의 포문을 열었지만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커지자 뻔한 변명을 쏟아내고 거짓말로 분칠하기 시작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응 차원의 '수출규제'라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한국의 불충분한 수출관리에 따른 안보 문제', '안전 보장을 위해 무역관리제도를 재검토한 것' 등 포장지가 계속 바뀌고 혀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써온 일본 신문 방송들이 이번 사태에 계속 갈팡질팡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적당히 명분을 만들기 위해 끌어대고 덧대는 전형적인 일본식 화법이 빚은 소동이다.이런 수법을 뻔히 아는데도 일본 정부와 일부 극우 언론은 여전히 낡은 화법을 되풀이한다. 3일 우리 정부가 일본의 도발에 맞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결정하자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이야말로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참 뻔뻔하고 경우가 없는 췌언이다. 아베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난동' 등 일련의 행위에서 그동안 숨겨온 일본의 '본심'이 충분히 읽힌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꺼리는 '메이와쿠'(迷惑) 의식에 깔린 이중성과 일본 사회의 비틀어진 집단 심리도 확인했다.지난 반세기 일본이 우리에게 보인 갖가지 무례와 무도함은 그들이 앞세우는 메이와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초계기 도발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에 반발한 WTO 패소 사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등에 이성을 잃고 난리를 친 쪽은 일본이다. 일본 반도체 산업 실패 보고서이자 반성문인 '일본 반도체 패전'을 쓴 유노가미 다카시의 진단처럼 심각한 '과잉 기술병(病)'에 걸려 반도체 산업에서 도태된 일본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양국 관계를 파탄내고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도발뿐이다. 억지 논리와 말 돌리기, 진실 가리기 등 얕은 수의 프로파간다는 그들이 늘 써먹는 양념이다.'왜구'는 늘 한반도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다. 1510년 조선의 중종은 삼포(三浦)에 살던 왜인들이 불법을 일삼자 왜관을 폐쇄했다. 이에 불만을 품고 대마도 왜구들과 합세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 군민 272명이 피살되고 수백 채의 민가가 불탔으며 왜적 295명도 죽거나 사로잡혔다. 기억은 망각을 일깨운다. 누가 제 악행을 계속 망각하고 있나?

2019-08-0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트로트 르네상스

우리 대중음악에서 '트로트'만큼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오랜 사랑을 차지해온 장르도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망향가이자 저항가로 등장해 겨레의 곡절 많은 여정과 함께하며 영욕의 세월을 건너온 트로트. 그것은 고단한 서민의 애환을 위무해온 슬프고도 흥겨운 우리네 삶의 동반자였다. 격동의 현대사를 관류하며 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온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일본 엔카의 한국 버전인 트로트가 한반도에 상륙한 것은 1935년 '목포의 눈물'을 통해서였다. 그 후 '애수의 소야곡' '나그네 설움' 등과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명실공히 대중가요의 주류로 등극한 것이다. 광복 후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트로트는 부활을 거듭했다. 6·25전쟁 당시의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굳세어라 금순아'는 전쟁의 고통을 어루만졌다.1960년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트로트 선풍을 다시 일으켰지만, '왜색'으로 몰려 무더기 금지되는 파란도 겪었다. 1970년대 '트로트 고고'와 1980년대 '메들리 붐'으로 변신한 트로트는 '뽕짝'이라는 비속어를 낳기도 했다. 트로트의 '국적 논쟁'이 벌어진 것도 이때였다. '뽕짝은 청산해야 할 일제의 문화적 잔재'라는 일각의 주장에 관련 전문가들의 반박과 재반론이 한동안 전개되었다. 하지만 결말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1970년대 일본에서도 '엔카 논란'이 있었다. '일본 엔카의 천황'이라 불렸던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엔카의 뿌리는 조선이다"라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었다. 그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우선 그는 청소년기를 식민지 조선에서 보냈기 때문에 우리 가락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인들의 음악적 재능에 굴복한 심리적 상황에서 돌출한 발언이 아니었을까?그는 쇼와시대 최고의 히트곡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를 만든 자신보다 식민지 조선의 히트 가요 '애수의 소야곡'을 작곡한 박시춘의 음악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1950, 60년대 일본 열도를 풍미한 불세출의 엔카 여왕 미소라 히바리도 한국 혈통이었다. 사실 일본 엔카계의 스타급 가수와 작곡가의 절반 이상이 한국계였던 것이다.트로트는 한국인의 음악적 감수성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다. 과장된 감성을 표출하기 마련인 트로트 음악이야말로 감정을 자제하는 일본의 미학보다는 농현(弄絃)과 요성(搖聲)의 진폭이 깊고 유장한 한국인의 흥취에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아무튼 트로트는 서구 문화의 일본식 퓨전이고, 일본에서 들어온 음악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세월 따라 한국인의 정서로 자리 잡은 트로트는 그 음악적 완성도 또한 일본을 추월했다. 트로트가 우리 전통음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할 이유도 없고, 왜색 논쟁에 휘둘릴 까닭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본보다 더 잘한다는 것이다. 한일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 정치와 경제도 이렇게 일본을 넘어설 수 없을까 하는 하소연을 해본다. 문화도 그렇다.21세기 '뉴 트로트' 바람에 힘입어 바야흐로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미스 트롯'이라는 방송 프로그램과 신세대 트로트 스타 탄생에서 보듯이 다시금 전 세대가 공감하는 대중가요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음악성 향상을 위한 형식과 내용의 혁신만 이루어진다면, 우리 고유의 정서와 한국의 멋을 담은 '트로트의 한류'도 기대해볼만하다. 이것이 곧 극일(克日)이다.

2019-07-3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일본이 '역(逆)청구권' 주장하면 받아들일 수 있나

이 칼럼은 '문빠' 등 현 정부 지지자들에겐 더 말할 나위 없고 균형 감각을 가진 분들께도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일본 식민지배라는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가 우리에게 씌운, '일본은 나쁜 놈,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는 사고의 틀 때문이다. 이는 명백한 진실이라도 일본에 '유리'(!)하면 거부하도록 부추긴다. 그렇지 않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면 '토착 왜구' '매국노'로 몬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이 이 짓을 하고 있다.문재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될 수 없다'는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일본이 반발하자 "사법절차에 행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며 판결 뒤로 숨었다. '삼권분립'을 내세워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한 협정을 부인한 것이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이는 문 정부의 자기부정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는 청구권 협정과 개인 청구권의 관계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일본에게 받은 청구권 자금 중 무상 3억달러에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 포괄적으로 감안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보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 말고 다른 '해석'이 끼어들기 어려운 결론이다. 이때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위원, 총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원장이었다.이런 결론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강제동원 피해자 7만2천631명에게 위로금지원금으로 6천184억원을 지급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문 대통령과 이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문빠'도 마찬가지다. 왜 알고 봤더니 문 대통령과 이 대표가 '토착 왜구'였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는 일본의 주장을 수용해 일본을 편들었는데도 말이다.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자. 일본 최고재판소가 1945년 당시 한국에 남겨두고 간 일본인의 '재산, 권리 및 이익'(청구권 협정 제2조의 표현)에 대한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하고 아베 정부가 그 뒤로 숨는다면 문 정부는 용납할 수 있나? 물론 일본의 개인 청구권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협정에서 포기됐고 청구권 협정은 이를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대법원의 해석 방식대로라면 일본 법원도 얼마든지 '해석의 요술'을 부릴 수 있다.대법원의 '해석'의 요지는 '청구권 협정이 있었다 해도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니 그 과정에서 있었던 강제동원 등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원용해 일본 법원이 "샌프란시스코 협정과 이어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없어졌다고 하나 그것은 국가의 일방적 결정으로 불법이다. 그러니 한국 내 재산에 대한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억지를 부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많은 국내 기업이 일본인의 적산(敵産)을 불하받아 성장했다. 일본 법원이 역청구권을 인정하면 그것을 다 돌려줘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결국 '개인 청구권'을 둘러싼 한일 갈등의 해결 방법은 대법원 판결과 청구권 협정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바로 2005년 민관공동위의 결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남은 길은 청구권 협정을 폐기하고 재협상하는 것뿐이다. 문재인 정부에 그럴 힘, 아니 그럴 용기나 있을까? 대법원 판결 뒤에 숨어 한다는 소리가 고작 '죽창가' '의병' '이순신 장군' '12척의 배'이니 그럴 것 같지도 않다.

2019-07-2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비일(非日), 이대로 하면

7월 1일부터 시작된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촉발된 나라 안 반응이 나날이 다른 꼴을 보이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 번지는 듯하고, 정부 쪽에서는 조금씩 국민 정서의 자극을 겨냥한 듯한 비일(非日) 발언과 행동이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의 인물에는 대통령부터 청와대 참모,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물꼬는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국회의원의 지난 7일 경제 보복에 대해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란 발언이 튼 것 같다. 1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순신 장군과 12척의 배' 발언이 있었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일본 총리를 편드는 듯한 사람을 겨냥해 '동경(도쿄)으로 이사 가라'는 말로 거들었다. 13일에는 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죽창가' 동영상으로 화답했다.이런 흐름을 훑어보면 대략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을 빼더라도, 모두 지금 정부나 여당 또는 그 외곽 조직에서 나름 안정된 자리에 현실적인 힘까지 갖추고 그런대로 추종 세력도 만만찮게 가진 사람들인 듯하다. 말하자면 끼리끼리 밀고 당겨줄 그런 지지자가 있는 사람들인 셈이다. 앞선 이런 발언과 행동은 바로 그런 쪽 입맛에 맞을 것이므로 앞으로 비슷한 일도 이어질 법하다.그러나 흔히 이런 일은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하기 마련이다. 시대와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다. 무엇보다 지금은 맨손이나 죽창을 든 의병이 일어나 12척의 이순신 장군을 도와 마음에 들지 않은 이 나라 사람들을 몰아내 바다 건너 일본 땅 동경으로 추방할 수 있는 시대도, 분위기도 아닌 탓이다. 그럼에도 만약 굳이 그러길 바란다면 다음 문제부터 풀길 바란다.먼저 국민의 '흥미'를 끌 일을 없애는 문제다. 조정래 작가가 지난 2017년 11월 대구은행에서 강의할 때의 이야기다. 일본 작가가 한국 작가를 부러워한다고 해서 그 까닭을 물으니 "한국엔 '흥미로운 일'이 넘친다"는 대답이었다고 했다. 자고 나고 눈만 뜨면 정치 싸움부터 온갖 '재미'가 매일 넘실대는데, 문재인 정부가 과연 이를 깔끔하게 없게 하고 국민을 비일의 대열에 합류시켜 끝까지 이끌 수 있을까.다음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손꼽히는 국민의 '낙천성'이다. 분명 시간이 흐를수록 잊는 사람이 늘어날 텐데 지금 분위기가 이어질까. 지난해 12월 대구의 한 국제학술 토론회에서 나가노 신이치로라는 일본의 한 대학 명예교수는 갈등 속 한·일 방문객 교류를 이야기하면서, "한국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으나 일본인들은 주시한다"고 지적한 까닭도 이와 같은 맥락이리라.또 먹고사는 문제도 있다. 앞선 발언과 행동의 주인공처럼 걱정없이 풍족한 삶을 누리는 쪽도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으로 쪼들린 삶에 아우성인 사람도 상당하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조선은 왜 망하였나'라는 책에서 '빈곤이 조선과 북한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한 사례도 있었지만 지금은 힘든 삶이 반대의 효과를 내는 그런 시절이다. 마치 촛불 민심처럼.우리는 지금 나라 안팎에 버겁게 맞아야 할 상대가 널렸다. 똑똑한 머리에 입만 앞세우고 몸은 빠지는 그런 사람들로 비좁은 나라에서 몇몇 앞장선 사람이 의병이 되어 죽창을 들거나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에 올라타라고 하는 행동은 삼갈 일이다. 우물 속에서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필부도 이런 느낌인데 해마다 일본을 찾아 구석구석을 살피는 700만 명(2018년 한국 방문 일본인은 294만 명) 넘는 국민(2018년 753만 명)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우리에게 소리없는 비일은 꿈속의 일인가.

2019-07-1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잘못된 이념이 경제를 말아먹는 이상한 나라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힘들여 불린 재산을 탕진한 자손이 집안마다 한 명씩은 있다. 노름이나 술, 여자에 빠져 아니면 보증을 잘못 섰거나 투기로 살림을 통째 말아먹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재산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 재산을 몽땅 털어먹은 난봉꾼을 이르는 '파락호'(破落戶)란 단어가 오죽하면 국어사전에 나오겠나.집안에 부침의 역사가 있듯이 국가 역시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와 집권 세력이라면 물려받은 국부(國富)를 잃어버리거나 탕진하지 말고 잘 지켜 후대에 물려줘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제조에 쓰이는 핵심 소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재고가 남아 있어 피해가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금수(禁輸)조치가 떨어지면 반도체 생산 중단 등 가늠할 수 없는 피해가 닥쳐올 게 분명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급하게 일본으로 달려간 데서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보복 조치에 발목이 잡힌 반도체·디스플레이 두 부문의 지난해 수출액만 따져도 176조원이나 된다. 수십 년에 걸쳐 공들여 쌓은 한국의 주력산업이 뿌리째 흔들릴까 걱정이다.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엔 일본 정부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 '자유무역의 챔피언'을 자처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대상으로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은 매우 잘못됐다. 자유무역 질서를 위반한 것은 물론 수십 년간 다져온 한·일 양국 신뢰를 깬 부당하고도 치졸한 조치인 만큼 하루빨리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우리 정부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총리는 "그들(한국 정부)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대법원이 강제징용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대법원 판결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노골화한 '일본 때리기' 범주 안에 있다. '토착 왜구' '친일파' 등 일본 때리기에 대일 외교는 실종됐고 일본을 더욱 격분시켰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 정부가) 감상적 민족주의, 닫힌 민족주의에만 젖어 감정 외교, 갈등 외교로 한·일 관계를 파탄 냈다"고 한 것은 적확한 지적이다.수십 년에 걸쳐 쌓은 원자력산업도 원전에 대한 막연하고도 근거 없는 불안·비난에서 비롯한 문 정부의 탈원전으로 좌초하고 있다. 500조∼600조원에 이르는 원전 건설 시장이 활짝 열렸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원전 기술력을 갖췄으면서도 탈원전으로 원전 수출 날개가 꺾였다. 100년 넘게 나라를 먹여 살릴 세계 일류의 원전 산업이 5년 임기 정권에 의해 붕괴하고 있다.시행 2년 만에 경제·고용지표를 망가뜨리면서 사망 선고를 받은 소득주도성장 역시 그릇된 이념과 비뚤어진 현실 인식이 결합해서 나온 잘못된 처방이다. 성장과 분배 모두에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탓에 국민 상당수가 고통을 당하는데도 이 정부는 정책 폐기는커녕 듣는 시늉조차 않고 있다.잘못된 이념에 경도돼 나라를 망가뜨린 대표적 인사가 조선 인조다. 명·청 교체기 실리 외교로 위기를 헤쳐나간 광해군을 쫓아내고 집권한 인조는 성리학에 사로잡혀 현실을 도외시한 사대주의 외교로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인조 자신은 삼전도에 나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임금 자리를 지켰지만 호란으로 말미암은 참극은 백성이 모두 짊어졌다. 역사에서 배우고 깨닫지 않으면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2019-07-09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부울경의 그물에 걸린 권 시장

동남권 신공항과 관련한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의 생떼가 점입가경이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 '분탕질'을 놓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부울경의 요구가 관철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부울경은 지난달 20일 국토교통부와 김해신공항 재검증 문제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하기로 합의했으니,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떼쓰기가 결국 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국토부 관료들이 "2016년 결정된 국가사업을 되돌려선 안 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청와대·여당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공무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부울경은 김해신공항 재검증 문제에 대해 애초부터 국토부를 패싱하고 총리실로 이관하는데 사활을 걸었으니 자신들의 계획대로 순항하고 있는 셈이다.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여권 고위 관계자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여권 내부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다만 백지화 이후 동남권 신공항 입지가 가덕도로 될지, 다른 곳으로 될지는 알 수 없다." 청와대·여당은 대강의 시나리오를 짜놓고 김해신공항 백지화에 이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다.필자가 이 얘기를 듣고 '놀랍다'고 하지 않고 '흥미롭다'고 표현한 이유는 신공항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2월 문재인 대통령의 '김해신공항 검증' 발언, 3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적극 지원' 발언도 있지만, 현 정권의 속성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현 정권은 '정권 유지'라는 지상 명제에 부합하는 일 빼고는 관심이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가 되는 일'에 몰두할 뿐, 국가 운영의 원칙이라든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책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달콤한 꿈에 젖어 있는데 반해 대구는 통합신공항 이전 문제에 온통 매달려 있다. 대구시는 몇 달 전만 해도 정부가 이전 후보지 선정에 아예 꿈쩍도 하지 않더니,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이라며 즐거운 표정이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방문 후 정부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권영진 시장이 잘해서도 아니고, 시민의 정성에 감동했기 때문도 아니다. 지역의 반발을 잠재우면서 가덕도 신공항으로 가는 길을 열려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부울경이 'TK는 TK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자 공항을 하면 그만'이라고 논리를 펴는 만큼 대구는 완전히 그물에 걸려들었다.대구시는 엉뚱하게도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며 통합신공항 이전 문제는 순풍에 돛 단 듯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야 무슨 일을 할까. 어디에서 나온 낙관론인지 모르겠으나, 대구의 미래를 망치는 길로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가덕도 신공항이 생기면 군위·의성에 들어서는 통합신공항은 '동네 공항'으로 전락한다.권 시장은 이전 추진 작업을 그만 둘 수도 없고, 계속하기도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지만, 성향에 비춰 '계속 추진'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권 시장이 새로운 투쟁 방향을 세우고 공론을 모으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우환을 남길지 모른다. 공항 이전은 K2 부지를 팔아 짓는 만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한 템포 쉬며 대세를 관망하는 것도 지혜다.

2019-07-02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쓰레기산'에 던진 게 어디 쓰레기뿐일까

몇 해 전 번역 출간된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는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된 책이다. 지방소멸과 자원, 에너지, 환경 등 위기의 현대사회에 재생(再生)의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독서의 울림이 꽤 크다. '산촌자본주의'라는 생소한 주제를 다뤘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 지방 도시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결코 넘치지 않는다. 산촌자본주의는 쓸모없이 버려지는 휴면 자산을 이용해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되살리고 위축된 전통산업을 일으키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다.책이 다룬 사례 중 하나가 일본 건축재 제조사인 메이켄(銘建)공업이다. 목재를 다루는 이 지방기업이 산촌자본주의를 어떻게 실현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메이켄공업이 자리한 오카야마현 마니와(眞庭)시는 인구 4만5천 명의 지방 소도시다. 하지만 지금은 바이오매스 재생에너지 시설과 이로 인해 활기를 띠는 지방 도시를 체험하는 견학 프로그램이 줄을 잇는 등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돗토리현과 경계를 이룬 마니와시는 히루젠(蒜山) 등 고원 산림지역답게 면적의 80%가 산림이다. 이 때문에 '목재의 도시'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때 목재 가공업으로 호황을 이뤘으나 수입 목재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시민들은 어려움에 처했다. 이런 마니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즉 목질바이오매스 산업이다. 나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나무껍질과 토막, 톱밥 등 부산물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메이켄공업은 쓰레기로 버려지던 연 4만t의 목재 부산물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공장을 돌린다. 또 시청·공공기관은 물론 주민 2천 가구가 쓸 전기를 생산하는데 폐기물 처리 비용 절약 등 매년 40억원의 이득을 본다. 이들이 재활용하는 것은 시설 폐기물이나 생활 쓰레기가 아니다. 100% 목재 부산물이다. 이를 태워 에너지를 만들지만 공해는 없다.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그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17만t의 불법 폐기물이 쓰레기산을 이룬 의성군을 찾아 연내 처리를 재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빠른 처리 지시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의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235곳에 흩어진 쓰레기산 규모가 120만t에 이르고 처리 예산만 3천600억원이 필요하단다. 엄청난 혈세로 악덕업자의 뒤를 닦아주게 생겼다.게다가 전국에서 하루에 쏟아지는 폐기물은 약 22만t가량이다. 소각 시설도 부족하고 대기오염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소각은 약 16%에 그친다. 나머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다. 외국에 쓰레기를 내보내는 길도 막혔고, 현재로서는 땅에 묻거나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한쪽에서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가치와 기술을 쌓는데도 우리는 자연과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머니자본주의'가 설쳐댄 결과다. 지난 3월 미국 CNN방송은 의성군의 쓰레기산 사태를 보도하며 '한국의 쓰레기 문제가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쓰레기산보다 더 위험하고 참담한 것은 바로 우리의 몰가치와 삶에 대한 그릇된 태도다. 지역과 사람을 살려나가기는커녕 적폐를 쌓고 강산을 더럽히고 있는 게 현실이어서다. 길은 멀어도 가야 할 길이라는 점에서 지금부터라도 바꿔야 한다. 쓰레기산에 우리의 얼까지 내팽개치는 게 과연 될 일인가.

2019-06-2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경찰의 굴욕

채만식의 단편소설 '맹순사'는 광복 전후에 걸친 순사의 삶을 통해 혼란한 사회상을 그렸다. 8·15 광복과 함께 8년간의 순사 생활을 그만둔 맹순사는 한몫 챙기는 재주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해먹은 게 적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돌팔매질 당하는 곤욕은 피할 수 있었다고 자위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맹순사는 비록 친일 행위를 했지만 경력을 내세워 해방된 조국의 새 경찰이 된다.그런데 근무처에서 만난 동료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바로 일제강점기 때 자신이 감시했던 강력범으로 정치범과 함께 풀려나면서 경찰로 변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맹순사는 '저런 놈들까지 순사가 되니 순사가 욕을 먹지…'라고 중얼거린다. 채만식은 해방 후 혼돈과 모순된 사회를 이렇게 풍자적으로 그렸다. 사실 대한민국 경찰의 출발은 이렇게 친일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순사'(巡査)란 치안을 담당했던 일제강점기 계급이 낮은 경찰관이었지만, 공포와 증오의 상징적 대상이었다. 우는 아이를 뚝 그치게 하는 것도 호랑이나 곶감이 아닌 바로 '순사 온다'는 말 한마디였다. '순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통칭되던 경찰에 대한 인식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경찰의 모습은 영화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처음으로 흥행한 경찰 영화가 바로 '투캅스'이다.YS의 문민정부 출범과 더불어 개봉한 '투캅스'는 5공 시절 만연했던 경찰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풍자했다. 속편 '투캅스'에서 타락한 선배 형사(안성기)에게 비판적이던 젊은 형사(박중훈)가 선배의 모습을 닮아가는 모습에서는 개혁의 좌절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명박 정부 첫해에 개봉한 '추격자'는 '투캅스'와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투캅스'가 '공권력의 부패'를 주제로 다뤘다면, '추격자'는 '공권력의 부재'가 핵심이었다.박근혜 정부 때 등장한 영화 '베테랑'은 재벌 3세의 갑질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는 베테랑 형사(황정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부패한 권력에 대한 분노와 대안 권력에 대한 시민적 열망이 녹아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촛불 시위 이후의 경찰 영화로는 '범죄도시'가 주목을 받았다. '범죄도시'에서는 괴물 형사(마동석)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적나라한 공권력에 대중이 박수를 보내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경찰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연출이야말로 무능한 경찰에 대한 국민적 욕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역설이 아닐까.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경찰의 공권력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집회나 시위 또는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폭행을 당하고 부상을 입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사례가 일상화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민중의 지팡이'가 어쩌다가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동네북'이 되어버렸는가.특히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 되어버린 민주노총의 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공권력의 부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법 위에 군림하려는 가해자 앞에 경찰은 피해자가 되고도 항변조차 못하는 어불성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말이 좋아 '인권친화적 경찰'이지 '무능한 경찰'에 다름 아니다. 누가 민생 치안의 최일선이요 국가권력의 모세혈관인 경찰의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있는가. 울던 아이가 웃을 일이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2019-06-18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김원봉의 최종 목표는 김일성과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좌파들이 활개 칠 공간을 활짝 열었다. 그 공간에서 좌파들이 벌이는 언동은 이해 못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둔갑시키려는 기획도 마찬가지다.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는 그 기획이 이제 실행 단계에 왔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인다. 이 기획은 러시아 혁명의 주역 중 하나로 스탈린과 권력투쟁에서 패한 뒤 암살당한 레온 트로츠키의 복권(復權)운동과 빼닮았다. 진실의 왜곡이자 모욕이라는 것이다.1936년 숙청당하기 전까지 언행을 보면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도플갱어'였다. 1932년 그는 이렇게 썼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과업에 위배되는 범주를 설정하고 이에 위배되는 자유는 가차 없이 제거돼야 한다." 스탈린의 통치가 바로 이랬다.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압살한 것도 스탈린과 똑같다. 1923년 크로시타트 수병들이 볼셰비키 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며 봉기했을 때 진압 계획을 세운 장본인이 트로츠키였다.이런 불결(不潔)한 과거는 1937년 미국 철학자 존 듀이가 이끈 국제 민간조사위원회의 모의재판으로 덮어졌다. 위원회는 1936년 소련이 궐석재판에서 트로츠키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적용한 반혁명죄를 무죄로 판결했다. 이때부터 서구 지식인들은 트로츠키를 민주적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다 스탈린에게 희생당한 불운한 혁명가로 세탁하기 시작했다. 이런 재평가는 1940년 그의 암살로 '확정적'이게 된다. 그러나 이는 멋대로 상상해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그런 점에서 트로츠키가 권력을 잡았어도 스탈린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의미 없는 '역사의 가정'으로 치부할 수 없다. 마르크시즘 역사에 정통한 폴란드 출신 영국 역사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결론이 바로 그렇다. "트로츠키가 책임을 떠맡았어도 그의 권위에 위험이 된다고 생각되는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스탈린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모두 자신만이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이다.김원봉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항일 무장투쟁의 최종 목표에서 김원봉은 자신을 숙청한 김일성과 하나였을 것이란 얘기다. 그 목표란 한반도 적화(赤化)다. 김원봉을 '판에 박힌 공산분자'라는 고(故) 장준하의 결론, 6·25 남침 수행 공로로 1952년 김일성에게 최고 상훈(賞勳)의 하나인 '노력훈장'을 받은 사실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그러나 좌파들은 "숙청당했으니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설(妖說)로 이런 증거들을 '물타기' 한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숙청당하고 살해된 것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것으로 분칠한 서구 지식인 사회의 '몰(沒)지성'의 재판(再版)이다. 트로츠키는 권력을 놓고 스탈린과 다투었지 자유를 위해 다투지 않았다. 김원봉이 숙청된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결과일 뿐 대한민국 건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했다. 김원봉의 항일 무장투쟁을 애국이란 차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음이 문제다. 그는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남침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그것도 애국인가?

2019-06-11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부산의 꿈, 과연 누굴 위해선가

부산 사람이 달라 보인다. 지도자, 특히 정치인이 그렇다. 그들은 새로운 꿈에 젖어 있다.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낡은 외투를 벗고 걸맞은 새로운 수식어를 찾는 꿈이다. 그 꿈은 '내륙 수도 서울 다음의 부산'이 아니다. 정치, 경제 등 모두를 가진 서울 권력에 목을 매는 수동적 도시에서 벗어나 나라 정책조차 뒤집는 힘 있는 독립된 도시, '해양 수도 부산'을 만드는 것이리라. 꿈을 이룰 터는 바다의 가덕도 신공항일 듯하다.부산은 오랜 세월 수모였다. 강산의 끝자락으로 중심이 아닌, 역사의 주변이었다. 왕조 시절 도읍의 외딴 끝에서 왜구 같은 해양 세력과 제국주의 침략에 시달렸다. 땅끝이지만, 거꾸로 드넓은 해양 세계로 가는 출구였음에도 그런 지정학적 이점을 살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조선조 끝 무렵부터는 경부선 철도와 부관(釜關) 연락선 등으로 일제 대륙침략 병참기지 노릇도 했다. 광복 뒤 북한 남침으로 부산은 다시 미군·UN군의 군사기지화 운명에 빠졌다.그래선지 부산 특유의 이적(利的) 감각은 유산이 됐다. 일찍 일본 왜관(倭館)을 통한 교역, 침략기 일본(상)인들의 유입에 따른 상업문화의 영향이리라. 한국과 중국 자원 수탈을 위해 깐 경부선 철도와 한·일을 잇는 부관 여객선으로 쉼 없이 오가는 상업세력과의 잦은 만남으로 생존과 이(利)를 좇고 이에 민감했을 만하다. 여기엔 정부 차별을 장사로 버틴, 개성 송상(松商)과 의주(義州) 만상(灣商)과 함께 이름을 날린 동래상(東萊商) 영향도 끼쳤을 터이다.부산의 이적 감각 유산은, 부산경남 배경인 조식의 가르침인 '마땅함' 즉 의(義)나, 대구경북 연고의 이황의 정신인 '삼가함' 즉 경(敬)과는 다른 성격이다. 같은 경상도 대구경북과 차별되는 부산의 이런 이적 감각은 자본주의, 산업화 시대 흐름과도 잘 어울렸고 부산은 무역 관문으로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경상도를 중심으로 감영이 있고 약령시로 국제도시 역할을 한 옛 대구와는 달랐다.부산은 이런 경제적 토대 위에 정치 자산도 쌓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진 대구경북 배경의 대통령 배출처럼 부산경남 바탕의 정치인 김영삼, 노무현, 문재인을 잇는 대통령의 등장이 그렇다. 개방적 문화로 정치색과 정치 지형도 대구경북보다 다양했다. 특유의 이적 감각 유산과 경제 토대 위에 쌓은 정치 다양성은 부산의 자산이다. 정경(政經)의 조화를 활용한 부산 지도자, 정치인의 응결된 힘이 두드러지는 까닭이다.그 주체할 수 없는 힘이 가덕도 신공항 추진으로 분출될 만도 하다. 실제 그들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정책을 뒤집고 있다. 정부 결정 수용이라는 2016년 영남권 5개 시·도지사 합의도 외면했다. 대신 부산·울산·경남 지도자는 똘똘 뭉쳤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응답하는 꼴이다. 여당 대표도 거들고 가덕도 신공항 반대의 국토부 장관도 입장을 바꾸니 가덕도 신공항을 통한 비상(飛翔)을 바라는 부산의 꿈은 점차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특유의 이적 감각을 앞세워 자신들 꿈을 이루기 위한 부산 지도자, 정치인의 행태는 문제가 많다. 다른 지역의 배려는 아예 없다. 지금의 이들 모습은, 이웃을 희생시켜 잇속을 채운 옛 나라의 악습과 다르지 않다. 뒷날 심각한 후유증은 자명하다. 이웃 사람은 희생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9-06-04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2020년 총선, 과거 집착 세력에 대한 심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에게 정치적 자산(資産)을 물려준 동시에 집단 트라우마(trauma)를 안겨줬다. 정권을 잃고 당했던 참혹한 경험들이 뇌리에 각인돼 공통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다. 트라우마는 정신을 지배하고 행동을 결정짓는 법. 필연적으로 집권 세력은 "정권을 잃으면 다 죽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20년을 넘어 50년·100년 집권론을 들고나온 것도 집단 트라우마의 표출로 봐야 한다.문 대통령을 필두로 한 집권 세력에게 2020년 국회의원 선거는 중차대하다. 국정 수행 동력을 확보하려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다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총선 승패가 다음 대통령 선거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만큼 정권 연장을 위해 집권 세력은 총선 승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이 공천 파동으로 총선에서 패한 것은 물론 정권마저 몰락한 것을 생생하게 지켜봤고 그 덕을 본 것이 지금의 집권 세력이다.총선 승리를 위한 '절대반지'가 필요하지만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겐 국민 마음을 돌릴 마땅한 카드가 없다. 북한 문제는 북한 비핵화 진척은 전혀 없이 김정은에게 끌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한·미 동맹은 균열이 갔고 안보에 대한 국민 우려는 팽배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운 경제 문제 역시 좌초 상태다. 먹고사는 문제 하나만으로도 정권에 등을 돌린 사람이 부지기수다. 집권 세력 텃밭인 부산·경남은 물론 서울·경기 등 수도권 민심마저 사나워졌다. 지금 상태가 지속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필패(必敗)다.궁즉통(窮則通), 궁하면 곧 통한다고 했던가.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내년 총선의 해법을 다른 데서 찾았다. 문 대통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정치권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낡은 이념의 잣대를 그만 버려달라"고 쏘아붙였다. 누가 봐도 자유한국당을 겨냥한 말이다. 대통령 측근인 양정철 민주당 민주연구원장도 "다음 총선은 과거로 가는 정당이냐, 미래로 가는 정당이냐는 대결 구도로 갈 것"이라고 거들었다. 급기야 문 대통령은 광주에서 '독재자의 후예'를 들고나왔다. '민주당은 미래, 한국당은 과거'란 총선 프레임 짜기에 두 사람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한국당을 겨냥한 집권 세력의 과거 프레임 씌우기가 내년 총선에서 효과를 볼 것인가? 오히려 민주당에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국민 대다수가 과거에 집착한 것은 한국당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문 정부는 출범 후 3년째 '적폐(積弊) 청산'을 명목으로 검찰과 경찰, 정부 기관 등을 앞세워 '과거 캐기'에 열 올리고 있다. 내 편은 쏙 빼놓은 채 네 편만 공격하다 보니 '적폐(敵弊) 청산'이란 말까지 생겼다. 과거사 청산은 전·전전 정부를 넘어 5·18과 6·25, 해방 직후 사건, 일제강점기, 구한말까지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까지 건드릴 것이란 비아냥까지 나온다. 집권 세력은 말로는 미래를 외치고 있지만 정책과 정치 행태는 철저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나폴레옹은 "지도자는 꿈을 파는 상인(商人)"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국민에게 꿈을 안겨주고 있는가? 꿈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 현재가 과거와 싸우면 미래는 없다. 과거에 집착한 것을 넘어 과거를 '악용'하는 세력을 국민은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2019-05-2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문재인 박근혜, 왜 그리 빼닮았나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음을 느낀다. '욕하면서 배운다' '혹독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모진 시어머니 된다'. 이런 속담이 생각나는 이유는 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왜 그리 빼닮았는가 하는 의문점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최순실 없는 것 빼고는 박 전 대통령과 똑같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데, 단순한 우스개가 아니라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유사점이 많다. 둘의 사상·가치관은 대척점에 있지만, 행동 양식이나 상황 인식 면에서 거의 흡사한 모습을 보여 놀랄 정도다.둘에게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통과 독선이다. '불통'과 '독선'은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언제부턴가 문 대통령도 같은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둘은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전형적인 '꼰대'의 기질을 보여준다.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 비해 덜 폐쇄적이라고 하지만, 여론 수렴이나 상대 진영을 인정하지 않는 기질은 그에 못지않다. 문 대통령은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고지식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문 대통령은 남의 얘기를 인내심 있게 잘 듣는다. 막상 결정할 때는 자신 맘대로 한다.'온 국민이 경기 침체를 체감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 홀로 '경제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참모들에게 '경제정책이 잘된 점을 적극 홍보하라'고 하니 경제부총리나 일자리수석비서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얼마 후면 구조 개선의 변화를 실감할 것이다' '일자리의 질이 개선됐다'는 망발을 내놓고 있다.역사관마저 닮은꼴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애국' '뉴라이트사관'에 경도돼 역사 교과서를 손대려고 했고, 문 대통령은 '친중 반일' '역사 바로 세우기'로 대표되는 '관제 민족주의'에 열중한다. 방향만 다를 뿐, 개방개혁 시대에 과거사를 껴안고 미래를 소홀히 여기는 것도 판박이다.불통과 독선은 국민뿐만 아니라 같은 편에게도 적용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이 잘못됐다고 비판한 이가 있었던가. 이들에게도 친척·친구가 있고 지역 구민을 만나는데,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2015년 박 전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는 유승민 의원에 대해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하고 원내대표직에서 쫓아낸 것을 기억한다면 누가 감히 신념에 가득 찬 대통령에게 고언을 하겠는가.둘의 닮은꼴은 아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내세우며 '친문'으로 물갈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연구원장에 취임한 최측근 양정철 씨가 '친정체제 강화'를 내세우면 '친문'과 '비문'의 공천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총선 때 당시 새누리당이 180~200석을 예상하다가 '공천 파동'으로 제2당으로 내려앉았던 때를 기억한다. 내년 총선에 '친문'을 넘어 '진문'(眞文)이 등장하지 않을까 궁금해진다.둘이 닮은 이유는 개인 자체의 문제인지, 국민 수준의 문제인지 헷갈리지만, 결국은 문 대통령에 대한 모욕으로 귀결된다. 이웃을 만나도, 택시를 타도, 서울 친구를 만나도 문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는 비판으로 넘쳐난다. 야당이 좋아서 혹은 보수 성향이라서 하는 비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실패는 대한민국의 퇴보와 직결된다. 집권 2년을 돌아보고 새롭게 출발했으면 좋겠다.

2019-05-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민생과의 불화'가 부른 징비록

야당이 뜻밖에도 '징비록'을 소환했다. 집권 여당과의 불화로 장외를 떠도는 자유한국당이 소환 주체다. 며칠 전 청와대 앞에 몰려간 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10대 정책이 '국가 경제 기초를 흔들고 민생 불안을 키웠다'며 실정(失政)을 성토했다. 지난 2년간 경제 난국을 비판하는 백서를 보란 듯 펼쳐 보이며 잘 준비된 '정치 쇼'를 연출한 것이다. 이를테면 징비록의 '왜란'(倭亂)에 빗대 '문란'(文亂)을 부각하려는 게 한국당의 속셈이다.청와대는 백서 접수를 거부했다. 문 정부에 '실정'의 굴레를 덮어씌우는 야당의 뻔한 정치 술수로 봤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며 여항(閭巷)을 부추기고 금융 시장과 집값을 들쑤신 한국당이 '징비록'을 들고나와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늪이라도 내가 가면 바로 길'이라며 고집을 피우는 청와대와 여당 또한 국민 눈에 한국당보다 더 미더워 보이지는 않는다.미·중 무역 전쟁과 내리막길 수출,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 환율 불안 등 어려운 경제지표는 일단 옆으로 밀쳐두자. 뭐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 정부가 철벽처럼 세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 프레임이 민생 안정과 계속 엇박자가 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방향이자 국가 정책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많이 일해야 입에 풀칠하는 국민이 많은 차에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이 '워라밸의 저주'가 되고 있다면 "아차"라도 해야 한다.그러나 문 정부는 단호하다. 조금 더 가면 성과가 나오는데 여기서 접을 수 없다며 여전히 '닥공' 모드다. 세금 물꼬를 완전히 터서라도 돈이 시정(市井)에 돌게하면 정책 목표에 이르고 효과가 나온다는 투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항우는 고집으로 망하고 조조는 꾀로 망한다'는 속담에 더 가깝다. 노동자들이 조금 더 적게 일하고 임금 수준을 지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있겠나. 그러나 실제 민생 현장에서 이런 나긋한 희망은 고문에 가깝다.정부가 또 세금 카드를 꺼냈다. 경기 둔화에 대비한다면서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에 손도장을 찍으라고 한국당을 압박한다. 쓰려고 거두는 게 세금이다. 그러나 '쏟아부은 세금이 도대체 얼마인데'라는 불만이 높다면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소리다. 제1야당도 설득하지 못하는 집권당의 오만함은 국민의 공감대와는 거리가 멀다.정부의 정책과 국회의 입법은 여론과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이다. 아무리 겉보기에 훌륭하고 단단해도 그릇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비록 이가 빠지고 덕지덕지 때가 껴도 그릇에 담긴 것이 알차고 바르면 그릇도 빛이 나는 법이다. 지금은 그릇이 아니라 그릇에 담을 것을 봐야할 때다. 이런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아무리 비싼 명품 그릇도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게 세상 이치다.징비록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다. 400여 년 전, 두 차례의 왜란을 전후해 조선의 집권층과 각 정파 세력은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고 대처했나. 지금 관점에서 봐도 당시 사대부 권력 집단들은 지독했고 또 한심했다. 국론은 물과 기름처럼 조금도 섞이지 못했고, 계층은 양분됐으며 민심은 어지러웠다. 그러니 민생 파탄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때와 지금이 닮은 구석 없이 전혀 다른가.

2019-05-1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한류의 열풍과 굴욕

'유교는 천(千)의 얼굴을 가진 문화 현상'이라고 한다.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일상과는 무관할 듯한 유교 이야기를 이렇게 새삼 끄집어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방탄소년단'이 이끌어낸 한류 열풍의 최고조와 '버닝썬 스캔들'이 촉발한 한류의 굴욕이 바로 유교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서이다.사실 우리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유교는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과 양식을 지배하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류의 원천이 바로 유교에서 비롯되었다면…. 유교는 그리 단순한 사상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혁명적 실천 기능을 과시했다.사화(士禍)로 얼룩진 16세기 조선의 위기와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려 했던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사상과 철학을 보면 그렇다. '백성은 물과 같아서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남명의 논변은 다분히 민중적이다. 실용 학문을 강조했던 남명의 유학은 역동성과 다원성 그리고 개방성을 지녔다. 그리고 세상의 변혁을 지향하면서도 인간의 혁신 문제에 주목했다. 하지만 남명의 유학 정신은 인조반정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고 말았다.퇴계의 방법은 남명과는 조금 달랐다. 기묘사화로 조광조의 개혁이 좌절하는 현실을 보면서 소수 엘리트에 의한 급진적인 변혁에 한계를 느낀 것이다. 퇴계가 택한 노선은 학문과 교육이었다. 철학적인 재무장으로 시대정신을 바로 세우고 신세대 교육을 통한 개혁의 저변 확대를 도모한 것이다. 주자학을 창조적으로 변용하며 기대승과 '사단칠정논변'을 벌인 것도 그 일련의 과정이었다.문제는 인간이었다. 세상을 타락하게 하는 본질도, 시대를 변화시키는 주체도 바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심성의 이기론(理氣論)적 규명이 바로 그 고뇌의 산물이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더불어 유교가 관념적으로 기울고 형식화되었지만, 그 사상과 정신은 면면히 흘러 17, 18세기 실학(實學)으로 거듭났다.서세동점의 충격에는 서학(천주교)과 접목했고, 19세기 민초들의 함성과 함께 동학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동력이 되었고, 해방 후 산업화와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다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한류의 물결로 거듭난 것이다. 한류의 대명사인 '대장금'이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것도 드라마에 면면히 흐르는 유교적인 역사와 정신문화의 가치가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와 맞닿았기 때문이다.학문과 교육의 가치를 존중하며 개인의 인격 수양을 전제로 바람직한 공동체 이상을 구현하려는 실천철학, 그것은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자강을 이루어낸 한국 역사의 원동력이었다. 한류 생성의 동인이었다. 그것은 방탄소년단의 노랫말 속에도 어김없이 스며 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쾌거 이면에 버닝썬 게이트에 휘말린 한류에 적신호가 들어왔다.'섹스 스캔들에 흔들리는 K팝' '도덕시간을 희생해서 탄생한 현란한 노래와 안무' 등의 외신기사 제목은 인성교육 부재의 공장형 K팝 시스템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류 또한 개인의 도덕성과 국가의 품격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거품으로 스러지기 십상이다. 500년 전 남명과 퇴계도 그래서 인간과 인격에 천착한 것이다.

2019-05-0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정치권력에서 독립되지 않은 사법부는 권력의 법률 대리인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런 타락은 권력엔 떨칠 수 없는 유혹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800~1896년 사이 연방 대법관 수는 일곱 차례나 바뀌었다. 그 이유는 매번 '정치적'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대법관 수를 정해 놓지 않은 헌법의 맹점 때문이었다.그러나 대법관 수가 9명으로 정해진 1896년을 기점으로 그 악습은 사라졌다. "그처럼 무도한 행위는 헌법 정신에 대한 침해"(우드로 윌슨 대통령)이고 "파괴적이며 특히 미국이라는 헌법 연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벤저민 해리슨 대통령)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다. 연방 대법관 수는 9명이란 '비공식 규범'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대법관 수는 9명으로 변함이 없다.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악습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장본인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으로, 대법관 수를 15명으로 늘리려 했다. 이른바 '대법원 재구성 계획'(court-packing plan)이다. 연방 대법원이 뉴딜 정책 관련 법률을 번번이 위헌으로 판결하자 자기편을 집어넣어 연방 대법원을 거수기로 만드는 게 그 목적이었다. 야당의 반대와 여당의 '반란'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이는 사법부 장악이 권력자에게 얼마나 유혹적인지를 잘 보여준다.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은 이를 재확인해 준다. 이해 충돌을 회피하지 않고 주식 투자를 한 도덕적 해이로 보나 중요한 사안마다 입장을 유보하거나 생각해 보지 않은 자질의 문제로 보나 그는 부적격이었다. 그럼에도 임명을 강행한 것은 여론의 비판을 감수할 만큼 이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그의 임명으로 친정부 성향 재판관은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으로 늘어났다. '그놈의 헌법 때문에'라고 한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러워해 마지않을 '헌법재판소 재구성'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헌법은 완전무결하거나 영원하지 않고, 헌법 해석 역시 고정불변이거나 무오류일 순 없다"는 지난해 문 대통령의 말은 이를 예고하는 듯하다.이에 화답하듯 이 재판관도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처음 지명 소식을 듣고 지인으로부터 역사적 소명이 있을 터이니 당당하란 말을 들었다. 그 말처럼 저에게 주어진 소임과 소명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갖은 비판을 무릅쓰고 임명해 줬으니 문 정부의 충실한 법률 대리인이 되겠다는 서약으로 들린다.처칠은 히틀러의 정권 장악으로 전운이 감돌던 1935년 옥스퍼드대학의 토론 클럽인 '옥스퍼드 유니언'이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왕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한다"고 결의하자 "참으로 한심하고 치졸한 고백이며… 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라고 개탄했다. 문재인판(版) 헌법재판소 재구성도 같은 개탄을 자아낸다. '합헌적 독재로 나아가려는 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라는.사족-드물지만 사법부 장악 유혹을 뿌리친 경우도 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으로, 2017년 법무장관에게 대법관 임명권을 부여해 대법원을 여당이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한 2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법원에 이어 헌재까지 자기편으로 재구성한 이 나라 대통령에겐 얼빠진 짓으로 보이겠지만.

2019-04-30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다 그래도 우린 안 된다

1919년 3월 1일, 100년 전 2천만은 하나였다. 나이, 신분, 종교,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빼앗긴 땅' 나라 안팎 발 디딘 곳 어디라도 좋았다. 긴 세월 굴레였던 온갖 족쇄도 햇살에 잔설(殘雪)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만세'로 뭉쳤고, 그해 4월 11일 '독립' 염원을 모아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였고, 오늘의 바탕이 됐다.2019년 3, 4월 지금 '되찾은 땅'에서 100주년을 맞았지만 그때 정신은 잊혔다. 민족대표 33인처럼 온 나라가 손잡고 목숨조차 아끼지 않던 그날의 처절함은 간데없다. 100년 기념행사는 넘쳤지만 그 정신을 되새겨 새로운 100년을 맞는 희망의 행동보다 말만 무성했고 갈래로 찢어진 갈등과 분열만 돋보인다.이럴 순 없다. 작금 시대 상황도 바뀌고 있다. 비록 되찾은 땅이 강대국 패권 놀음으로 산하가 갈려 70년 세월을 보냈지만 최근 주변 여건이 달라졌다. 이런 달라진 상황은, 그때처럼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다시 하나 되는 새로운 길을 낼 좋은 기회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은 사람이 꾸미는 법이니.먼저 인구 추세이다. 1911년 1천300만은 1944년 2천500만, 북한 첫 인구조사가 나온 1993년 기준 남북은 6천400만 명이다. 두 번째 북한 인구 자료인 2008년 기준 남북은 7천113만, 2026년은 7천803만 명으로 최고치다. 이후 남한은 인구가 줄지만 북한은 늘어서 2055년 인구는 7천114만 명으로 강국(强國) 수준이다.이는 절망적 인구 절벽과 다른 징조로 여길 만하다. 일본을 보면 이런 남북 인구 자원은 호재이다. 1910년 한국을 삼킬 때 일본은 5천만, 한국을 떠난 1945년 7천119만, 6·25전쟁 덕을 누린 1950년대 8천만 시대, 2010년 1억2천805만 정점 뒤 2015년 1억2천709만, 2045년 1억609만 명의 감소세 유지다.북한 사정도 고무적이다. 2008년 김정은 후계자 등장 뒤 변화는 여럿이다. '장마당'이 그렇다. 전국 500~750개쯤인 장마당 증가로 '장마당 세대'가 나올 만큼 자본시장 물결도 엿보인다. 조선조 차별에 맞서 개성 상인 등은 장사로 나라의 한 축을 이뤘다. 장마당 세대 역시 그 맥을 이어 남북 강산의 변화를 이끌 한 축의 역할을 맡을지도 모를 일이다.바뀐 주변 국제 정세 흐름도 탈 만하다. 옛 소련 붕괴, 냉전체제 해체, 중국의 개혁개방, 남북 정상 및 북미 정상회담에 따른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은 긍정적이다. 비록 북핵 문제로 남·북·미 간 과제가 많으나 풀지 못할 일은 아니다. 자국 이익이 먼저인 몇 강국을 설득, '진정한 독립'인 통일의 완성은 우리 몫이라 남북 지혜만 모으면 될 터이다.이제 우리가 100년 전 정신을 되살려 기려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 실정과 정책 오류 탓을 넘어 머리를 맞대 문 정부 이후 그림도 그려야 하는 책무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특히 대구경북인의 역할은 기대할 만하다. 마침 대구경북 33개 광역·기초 자치단체 대표의 3월 울릉도 만남과 상생의 한마음 결의는 좋은 사례다.대구경북은 민족 첫 통일의 역사를 썼고, 해마다 이를 기려 10월 7일 통일서원제를 갖는 곳이라 남다른 역할에 나설 만하다. 문 정부의 홀대와 소외 정책은 비판할지라도 나라 앞날을 위한 역할은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만큼 옛날처럼 정치 편향 같은 낡은 틀부터 깨야 한다. 100년 전 그때를 모두가 잊더라도 대구경북만이라도 그래선 안 된다.

2019-04-2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대한민국, 지난 100년 다가올 100년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명언의 주어를 대한민국으로 바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써왔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기점으로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은 기적 그 자체다. 식민 지배와 가난, 전쟁 등 질곡의 사슬을 끊고 산업화·민주화를 같이 성취한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오늘의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의 총합(總合·the sum)이다. 제대로 된 나라를 아들, 딸에게 물려주려는 간절한 마음들과 행동들이 100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거대한 용광로에 결집했다. 온갖 것들이 용광로에 들어갔고 서로 섞이고 충돌한 끝에 대한민국이란 결정체를 만들어냈다. 지고지선한 것들만 들어가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역사의 섭리다.문재인 대통령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했다. 또 "지난 100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이룬 국가적 성취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일부에서 우리 역사를 역사 그대로 보지 않고 국민이 이룩한 성취를 깎아내리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란 발언도 했으나 지난 100년을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못한 시대로 규정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문 대통령을 비롯해 진보가 기술하는 지난 100년 역사는 보수와 궤를 달리한다. 3·1운동→독립투쟁→4·19혁명→5·18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혁명'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파악한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6·25전쟁에서의 국가 수호, 산업화 등은 부정과 배척의 대상일 뿐이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홀대와 모욕, 6·25에 책임이 있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 추진 등은 진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받은 협력자금으로 만든 포스코도 들어내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더 큰 우려는 진보 정권이 그들만의 잣대로 지난 100년에 대해 '역사공정'을 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마저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보수 정권에서 이룩한 원전 강국을 계승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고 이것이 탈원전으로 표출됐다. 산업화에 편승해 탄생한 재벌은 척결의 대상이다. 미국과의 동맹은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것이고 일본은 '나쁜 나라'로 치부한다. 참사를 빚고 있는 코드 맞춤 인사, 북한에 대한 지나친 경도, 허물어진 안보, 포퓰리즘 정책들 역시 그 뿌리가 외눈박이 역사관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문 대통령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했지만 정작 대통령의 언행은 미래보다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르크스가 역사는 '나선형 발전'을 한다고 했는데도 대한민국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미세먼지가 없어졌지만 국민이 여전히 답답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소설가 김원우는 소설 '우국(憂國)의 바다'에서 조선이 망하는 과정을 그렸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구한말처럼 대한민국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지난 100년을 헤쳐온 선조가 그랬듯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더 나은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 이를 자각(自覺)하고 방법을 찾아 실천하라는 것이 지난 100년 역사가 가르쳐주는 진짜 교훈이다.

2019-04-15 18:03:54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0원과 13조원: 대구와 부산의 차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대구 방문 때 권영진 시장에게 '통합신공항 추진'을 약속한 것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간 시민들이 그렇게 애원했지만, 애써 모른 척하더니 선뜻 '선물'을 주니 고마운 일인 듯 느껴졌다. 문 대통령의 마음이 넓어진 것일까? 대구시민의 정성에 감동한 것일까?정작, 본질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대통령의 약속은 부산시민이 원하는 '가덕도 신공항'을 위한 사전 조치임이 분명했다. 대구에 '대구 통합신공항'을 줄 테니 부산에 '가덕도 신공항' 짓는 것을 양해하라는 뜻이다. 정부가 '가덕도 신공항'을 그냥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은 2016년 5개 시도지사 합의 때문이다. 당시 5개 시도지사는 '정부의 용역 결과에 따르겠다'고 합의했고, 그 결과가 '김해공항 확장안'이었다. 정권이 아무리 막무가내라고 해도 5개 시도지사 합의를 깨뜨리지 않고는,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할 명분도 당위성도 얻기 어렵다.문 대통령이 지난 2월 부산 방문 때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시사한 이후 '김해공항 확장'을 고수하던 국무총리실, 국토교통부의 입장까지 바뀌고 있다. 누가 봐도 정권 차원의 '가덕도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현 정권은 치밀하게 '가덕도 프로젝트'를 위해 한 발씩 나아가고 있지만, 대구경북은 어떤가. 지난 2일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는 "올해 통합신공항 부지가 결정되고 국방부와 8조원대 이전 사업비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두 분은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정도로 대단한 성과를 거둔 듯 기뻐했다. 이 지사는 통합신공항을 경북으로 가져가게 됐으니 즐거워해도 괜찮지만, 권 시장은 기뻐할 일이 아니다.대구시는 무엇을 위해 대구공항을 이전하려고 했는지 근본 목적을 망각하고 있다.(동구와 북구 일부 지역의 소음 피해는 논외로 한다) '하늘길을 열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희생을 감수하며 옮기자는 것인데, 가덕도 신공항이 생기면 그야말로 파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통합신공항은 남부권 관문공항을 지향하는 가덕도 신공항과 아예 경쟁이 되지 않는다. 기껏 해봐야 현재 대구공항의 국제선을 유지하는 정도일 것이다.예산 조달 방식만 봐도 대구 사람의 '바보짓'에 화가 난다. 대구는 군공항이전특별법에 따라 K2 부지 380만 평을 팔아 그 비용으로 옮기는 것이고, 정부 예산은 한 푼도 없다. 부산은 일부 민간투자를 받는다고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고 13조원(추정치)을 정부 예산으로 조달한다. 대구는 그 땅에 아파트와 상가를 지어 공항 옮기는데 써야 하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0원과 13조원은 대구와 부산의 차이이고, 정치력의 차이다.대구에 아파트·상가가 넘쳐나든, 난개발을 감수하든, 미래가 확실하다면 옮기는 것이 맞다. 통합신공항은 가덕도 신공항이 존재하지 않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제는 전제 조건이 달라졌고,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는 이전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이전 포기 선언을 하는 것도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 그래야 가덕도 신공항을 막고, 정권과의 협상도 가능해진다. 이대로 정권의 '가덕도 프로젝트'에 편승하면 대구는 끔찍한 재앙을 맞을지 모른다. 시장의 공약 준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약속은 '선물'이 아니라 '독배'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9-04-09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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