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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5대 악 유감

[야고부] 5대 악 유감

우리가 알고 배운 5적(賊)은 들어본 인물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을 지칭할 때, 흔히 소환되는 이완용 등 다섯 사람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70년 김지하 시인이 쓴, 국회의원 등을 비롯한 '도둑'을 사례로 든 '오적'(五賊)이란 시가 있었다. 김 시인의 오적은 특정 사람을 가리키지 않고 다섯 부류의 직업 속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을 말한다.이어 2000년대 선거와 관련된 5적 이야기도 나돌았다. 과거 2012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의 여야 대치 시절, 19대 총선 당시 서로 '손'을 봐야 할 후보로 5적을 내세웠다. 상대 후보 5명을 공격하며 벌인 '5적' 공방전이다. 이와는 다른 성격이지만 전북 임실에서도 역대 군수 선거판에 영향을 미친 인물 5명을 둘러싼 '임실 오적' 논란이 언론에 보도될 만큼 화제였다.최근 대구경북에서는 이런 사연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지만 '5대 악'이란 말로 비판받는 인물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대구경북 출신인 이들은, 여야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4명에 비정치 분야 1명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들만의 지지자들이 뚜렷하다는 사실, 뛰어난 입담 등이다. 이런 5명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고향 사람의 불편함이 있다.고향 대구경북을 떠나 이제 수도권에서 당당히 자리 잡은 이들은 고관(高官)과 대작(大爵)에다 명성(名聲)까지 고루 누렸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만큼 모두 '반듯하게' 한 역할을 하며 고향을 빛낼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믿음이 무너지고 실망이 덮치면서 섬뜩한 '5대 악'으로 낙인마저 찍힌 모양이다. 무려 다섯이나 지역민의 기대를 저버렸으니 그럴 만하리라.그러나 대구경북 사람들이여, 아직 판단은 섣부르다. 이들은 지난 세월 한때 입과 권력, 정부 자리로 세상을 주무르며 화젯거리가 됐듯이 정권에 따라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지금까지 자신을 낳고 길러준 고향에는 '해'(害)를 끼치는 '악'(惡)한 일을 분명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것으로 다행으로 여기며 우리 스스로 '5대 악'이라 하지 않으면 좋겠다. 대신 옛 기대처럼 언젠가 고향을 빛내줄 것을 빌어보자. 나부터라도.

2020-10-28 05:00:00

[야고부] 상속세

[야고부] 상속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남긴 재산에 매겨질 상속세가 세간의 화제다.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이 내야 할 상속세 예상 금액은 10조원으로 국내 사상 최고액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 유족들은 배당금과 주식 담보 대출 등을 통해 5년간 세금을 나눠 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상속 금액에 따라 5~65%의 상속세율을 차등 적용한다. 할증률이 꽤 높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도 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0.1%보다 4배 높다. 대신, 소득세율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낮으니 단순 비교는 어렵다. OECD 35개국 가운데 15개국은 상속세가 없다. 대신, 양도세를 매긴다. 세금 없이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우리나라 상속세 제도의 특징 중 하나는 '주는 사람' 기준으로 세율을 정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아버지 재산 500억원을 유족 다섯 명이 균등히 상속받을 경우 100억원이 아니라, 500억원을 기준으로 세율이 정해진다. 이와 관련해서는 '무상으로 재산을 받는 사람에게 세금을 매긴다'는 우리나라 상속세법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다.국내 경제계는 상속세율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매년 소득세를 내는데 상속세마저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이며, 상속세 납부를 위해 주식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경영권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세수 감소를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재산가들이 상속세 납부액을 낮추려고 평소에 공제 혜택과 편법을 쓰는 경우가 많은 만큼 현행 상속세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다수 국민에게 상속세 문제는 남의 이야기다. 적어도 유산이 10억원 이상은 돼야 상속세 납부 대상이기 때문이다. 상속세율 인하 또는 폐지에 대한 여론도 매우 부정적이다. 그런데 삼성 일가 상속세 10조원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니 뜻밖에도 상속세가 지나치다는 주장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사실, 민감한 주제이긴 해도 상속세 제도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전체 세수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한 만큼, 기업인들의 경제활동 의욕을 꺾지 않는 수준에서 상속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20-10-27 05:00:00

[야고부] 1등을 외친 경영자

[야고부] 1등을 외친 경영자

코로나 사태로 집 앞 중학교 운동장이 폐쇄되면서 매일 저녁 산보 코스를 대구삼성창조캠퍼스로 옮겼다. 이곳은 1955년에 제일모직공업㈜ 공장이 들어서고 1995년 구미로 옮겨가기 전까지 40년간 명맥을 이어온 한국 섬유산업의 허브였다. 23만1천400여㎡(7만 평)에 이르는 이 침산동 부지에는 아직도 제일모직 본관 건물과 기숙사, 굴뚝 등이 남아 있다.침산동과 칠성동, 태평로3가, 노원동, 원대동 등 대구 도심과 인접한 북구 일원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공업단지가 조성됐다. 59만5천여㎡(약 18만 평)의 농지가 공단으로 탈바꿈해 대한방직 등 수많은 섬유공장과 기계·고무·염색공장이 잇따라 들어섰다. 1960년대 한국 경제의 여명기, 대구 최초의 공단인 '제1공단'으로 재출발한 현장이다.인근 주민의 휴식처가 된 이 캠퍼스에서 주목할 것은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흔적이다. 삼성의 모태로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 옛 건물이 실물 그대로 재현돼 있고 옆에는 호암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8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조금씩 옅어져 가는 한 기업의 역사이지만 대구에 남은 몇 안 되는 삼성의 흔적이다.호암의 뒤를 이어 1987년부터 30년 가까이 삼성그룹을 진두지휘해 온 이건희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언더도그'였던 삼성을 오늘날 초일류 기업으로 변모시킨 경영자였다.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소위 선진국 소비자들 눈에 삼성은 고작 싸구려 TV나 전자레인지 따위를 만드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1993년 이 회장이 독일 출장길에서 본 '삼성 세탁기 비디오테이프'는 삼성의 변신을 이끈 계기였다. 세탁조 덮개가 제대로 닫히지 않자 이를 억지로 맞추려는 모습이 담긴 이 비디오테이프 일화와 1995년 3월 구미공장 '무선전화기 화형식' 이야기는 유명한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선언'이 나온 배경이다.고인에 대한 평가는 아직 갈린다. 그러나 재임 기간 10조원에 불과하던 그룹 총매출액을 약 40배, 시가총액은 약 300배로 키웠다. 올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약 70조원)로 애플, 아마존, 구글과 함께 '글로벌 톱5'에 올랐다는 점에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고인의 지론이 제 자리를 찾은 셈이다.

2020-10-26 05:00:00

[야고부] 시계 바늘 셋

[야고부] 시계 바늘 셋

도산 안창호는 약속을 중시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르침을 받던 제자로, 뒷날 독립운동가의 길에 들어선 이관구(李觀求)에게 시계에 빗대 '절도'(節度)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시계의 시(時)·분(分)·초(秒) 세 바늘이 '절도' 있게 돌면 밤낮 24시간이 제대로 맞지만, 멋대로 서로 절도 없이 돌면 시간을 맞추지 못해 차라리 움직이지 않아 하루 두 번 맞는 시계보다 못하다는 비유였다.도산이 말한 시계 속 세 바늘의 절도는 각각 제 역할이 있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아야 시간을 알리는 일이 제대로 작동된다는 그런 뜻을 담은 비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사람에 빗대면 절도 없이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뜻도 된다. 도산의 깨우침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제자 이관구는 망한 나라 대신 힘을 가진 일제 권력에 멋대로 빌붙는 친일(親日)도, 부일(附日)도 아닌 독립(獨立)의 길을 걸었다.시계의 세 바늘은 서로 갈 길이 따로 있다. 또한 도산의 말처럼 각각 절도 있게 규칙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에 사람은 시계 속 세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에 따른 시간의 정확성을 믿고 살며 또 약속을 하곤 한다. 이런 세 바늘이 갖는 절도의 이치는 시계에만 적용될까. 세상일이라고 어찌 다르랴.그런데 이런 시계 세 바늘의 원리를 갖고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을 비춰보면 심상치 않은 듯하다. 세 바늘의 절도에 이상이 생겨도 단단히 생긴 것 같다. 우선 경북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정부, 여당이란 두 바늘의 절도는 아예 없다. 이 두 바늘이 길을 벗어나 멋대로 돌며 감사원이란 다른 바늘 하나가 본연의 감사라는 절도 있는 일을 못 하게 한 게 들통났다.특히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뜻에 맞춰 원전 조기 폐쇄에 맞을 기준을 의도적으로 만들었고, 여당 정치권은 감사원이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없게 압박했다. 이처럼 정부 여당의 두 바늘이 절도 없이 제 갈 길을 잃고 제멋대로 도니 밤낮 시간인들 맞을까. 나라의 다른 분야에서 도는 시계의 세 바늘은 어떤지 궁금한 요즘이다.

2020-10-24 05:00:00

[야고부] 더러운 거래

[야고부] 더러운 거래

국가가 국민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방법 중 가장 파괴적인 것이 초(超)인플레이션이다. 1차 대전 패배 후 들어선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그랬다. 1921년 6월부터 1924년 1월까지 2년 남짓한 기간에 물가는 무려 10억 배가량 올랐다. 그래서 빵 하나를 사려면 손수레로 지폐를 담아 가야 했다. 이런 고충(?)을 덜어주려고 1조 마르크짜리 지폐가 발행됐다.그 결과는 참혹했다. 독일 국민이 저축한 돈이 종이 쪼가리가 된 것이다. 정확히는 독일 중산층의 재산을 빼앗아 기업인 등 자산가들에게 넘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의도한 게 아니었다. 본래 목적은 마르크화의 가치를 폭락시켜 승전국이 강요한 전쟁 배상금을 털어내려는 것이었다. 승전국들이 배상금을 삭감하기로 함으로써 이 기획은 일정 부분 성공했으나 중산층의 몰락을 초래했다. 그 결과는 히틀러의 집권이었다.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의도한 국민 갈취도 있다. 바로 1997년 내전(內戰)까지 불러온 알바니아의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이다. 1991년 체제 전환이 되면서 생겨난 사기 업체가 '연 600%의 고율 배당'을 미끼로 알바니아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200만 명을 끌어들여 길바닥에 나앉게 한 사건이다.정부가 이런 사기에 앞장섰다. 당시 살리 베리샤 대통령과 집권당이 '투자'를 적극 장려했고 국영방송도 '투자'를 유도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정부가 '보증'한다는 소리였다. 그 대가로 사기 업체는 베리샤 대통령과 집권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줬다. 금융사기는 사기 업체와 집권 세력의 '더러운 거래'에 의한 대국민 사기극이었던 것이다.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두 펀드 사기꾼이 투자자를 상대로 사기를 쳤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사기꾼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현 정권 인사들에게 '떡고물'을 안겼다는 것이다. 사실이면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처럼 '더러운 거래'에 의한 국민 갈취라고 할 수 있다.이런 의심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확신'으로 바꿔주고 있다. 추 장관은 더러운 거래를 덮으려 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다. 이 또한 하나의 더러운 거래라고 하겠다. 국가 공권력을 더러운 거래의 은폐 수단으로 타락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2020-10-23 05:00:00

[야고부] 빌 게이츠의 원자로

[야고부] 빌 게이츠의 원자로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창업주인 빌 게이츠는 현직에 있을 당시 '돈벌이에 혈안인 사람' '실리콘밸리의 악마'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심지어 그를 '어둠의 군주'라고 상상하는 음모론 맹신자도 있었다. 하지만 MS 회장에서 물러난 빌 게이츠는 180도 이미지 변신을 했다. 기부의 대명사이자 빈민국 구제와 감염병 백신 개발 지원 전도사로 나섰다.빌 게이츠는 2008년 원자력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원자력에 혁신을 더함으로써 기후 변화 및 에너지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역발상이었다. 그는 '테라파워'라는 원자력 기술 기업을 출범시켰다. 테라파워 연구진들은 원전 사고가 1970년대 이전 기술이 가진 설계 결함과 인간 실수가 겹쳐져 발생한 점에 주목,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신개념 원자로를 설계했다.테라파워 원자로(고속증식로)는 액체금속을 냉각재로 사용하고 열화우라늄을 연료로 쓴다. 빌 게이츠에 따르면 테라파워 원자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폭발하지 않으며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계 각국이 골머리를 앓는 사용후핵연료봉을 가공해 연료를 얻어낸다. 테라파워 원자로의 안전성과 시장성은 검증 과정이 필요하지만, 빌 게이츠의 주장이 맞다면 지금껏 원전에 대해 인류가 가진 두려움도 충분히 극복할 날이 올지 모른다.정부가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을 의도적으로 낮게 평가해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는 감사원 발표가 20일 나왔다. 후폭풍이 거세게 일 수밖에 없는 감사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산업 기반들이 무너지고 있다. 대학 원전 관련 학과에는 지원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근대 이후 인류는 신기술로 난관을 극복해 왔다. 언제나 해답을 찾았듯이 원자력 분야도 그런 혁신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가 탈원전에 매몰된 나머지 원전 인프라와 인력이 싸그리 사라져 버렸는데, 어느 날 완벽한 원전 기술이 세상에 떡 하고 등장하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탈원전은 하나의 선택 가능한 카드일 뿐 신앙이 돼서는 안 된다. 문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 오류가 없다는 환상과 고집에서 속히 벗어나길 바란다.

2020-10-22 05:00:00

[야고부] 추미애와 직권남용죄

[야고부] 추미애와 직권남용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 형법 제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다. 적용된 사례가 극히 드물어 '사문화'된 조문이었다. 하지만 국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등 '적폐청산' 과정에서 단골로 등장했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직권남용죄를 써먹었다.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직권남용죄로 처벌받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47개 혐의 중 41건이 직권남용 혐의일 정도다. 모든 공직자를 잠재적 피의자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것이 직권남용죄다. 직권남용죄를 악용해 정치 보복을 하는 일이 반복될 우려가 크다.갑(甲)과 을(乙)은 바뀔 수 있고, 칼날과 칼자루를 바꿔 잡을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문 정권이 앞선 정권 인사들을 단죄하는 데 동원했던 직권남용죄가 부메랑이 돼 정권 인사들에게 날아오고 있다.직권남용으로 도마에 오르기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연 톱(top)이다.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는 한동훈 검사장을 1년에 3차례 인사 조치를 한 것은 보복성 행위라며 추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또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도 다른 건으로 추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아들의 병가 및 휴가 연장 처리를 보좌관에게 지시한 것은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든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또 추 장관이 검언유착 수사와 관련, 검찰총장 외의 검사를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해 검찰청법을 위반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추 장관이 라임 사건과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사건과 관련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 역시 직권남용 논란을 낳고 있다. 검찰총장을 자리에 둔 상태에서 권한을 행사 못 하게 박탈하는 건 수사지휘권 남용이자 직권남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노자(老子)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놓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잘잘못은 반드시 가려진다는 뜻이다. 권력을 가진 지금은 직권남용죄를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권력을 잃은 뒤엔 단두대에 오르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직권남용죄가 현대판 하늘의 그물 역할을 하는 셈이다.

2020-10-21 05:00:00

[야고부] 문 정권의 명예살인

[야고부] 문 정권의 명예살인

가족, 부족, 공동체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공동체 구성원을 살해하는 '명예살인'(honor killing)은 이슬람 사회의 골칫거리다. 명백한 살인 행위이지만 중동과 서아시아 등 이슬람권은 물론 유럽과 미국 등의 무슬림 이민자 사회에서 공공연히 용인되고 있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살인으로 기소돼도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희생자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지난 2009년 유엔은 인권보고서에서 매년 5천 명가량의 여성이 명예살인으로 희생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년 후 영국 인디펜던트 신문은 10개월에 걸친 자체 취재를 통해 이보다 4배나 많은 2만여 명의 여성이 명예살인으로 죽는다고 보도했다.이런 반인륜적 행위가 계속되는 이유로 흔히 이슬람 경전 코란을 지목하지만, 이슬람 학자들은 단호히 부정한다. 코란 어디에도 명예살인을 허용하는 구절은 없으며, 명예살인은 몇몇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때문이란 것이다. 그 구절들은 이렇다."너희 중에 간음한 여인이 있다면 네 명의 증인을 세우거나 여인이 인정할 경우 죽을 때까지 집에 감금하거나 하느님이 다른 방법으로 그녀를 멸할 것이다." "간통한 남녀가 있다면 백 대의 가죽 태형에 처하라. 너희가 하느님을 믿고 내세를 믿는다면 그를 동정치 말고 신도 앞에서 형벌로 입증토록 하라." "간통하지 말라. 그것은 부끄럽고 죄악으로 가는 길이니라."그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명예살인'을 언급했거나 그것을 뜻하는 문구는 없다. 오히려 코란은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며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살인을 금한다. 그런 점에서 명예살인은 코란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기는커녕 오히려 코란의 생명 존중 정신을 더럽히는 야만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명예살인'이 이 땅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절규가 나온다. 북한군에 사살돼 시신이 불태워진 해수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가 국민의힘이 18일 마련한 '국민 국정감사'에서 "동생은 엄연히 실종자 신분으로 국가가 예우해야 한다"며 "더는 동생의 희생을 명예살인하지 말라"고 했다. 정부는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숨진 공무원을 자진 월북으로 몰았다.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두 번 죽이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20-10-20 05:00:00

[야고부] 돌고 도는 법의 잣대

[야고부] 돌고 도는 법의 잣대

조병갑은 전라도 고부군수로, 탐관오리였다. 그는 1894년 농민 수탈로 동학혁명의 불씨가 됐다. 그 죄로 고금도 섬으로 유배됐다. 하지만 1년 만인 1895년 풀려났다. 나라는 한술 더 떠 1897년 12월 31일 법부의 서열 3위(민사국장)로 임용했고 그는 1898년 1월 7일 고등재판소 예비판사도 겸했다. 1898년 7월, 그에게 시련과 영광(?)을 안긴 동학의 최고지도자 2대 교주 최시형의 사형을 판결한 고등재판소 판사 3명에 끼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어찌 법의 잣대로 사람을 잡은 사례가 조병갑뿐일까. '사법살인'이란 국제적 비판을 받아 사법사에 길이 빛날 오명을 남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사법부 전력도 다르지 않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대구의 여정남 등 소위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의 사형 선고를 확정했다. 정부는 이튿날 사형을 서둘러 집행,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다만 앞 재판부와 달리 대법원은 40년이 흐른 2015년 5월, 이들 사건 연루자의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했다.물론 조병갑 같은 인물이 날뛴 나라와 정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또 권력의 편에 서서 판결을 내린, 그런 판사가 득실거린 정부와 지도자 또한 불행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배경 없고 약한 사람보다, 권력과 힘을 가진 쪽에서 법을 주무르는 무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진범 이춘재가 범행을 자백할 때까지 무려 20년을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한 피해자의 억울한 사연도 그런 결과였다.법의 적용을 둘러싸고 정부가 바뀌고, 지도자가 달라진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니 의아하다. 법을 다루는 자격증을 딸 때까지 공부했던 사람들이 보고 배웠던 법의 의미가 자격증을 얻은 이후에는 아마도 달라지는 게 이 나라의 법 문화인 모양이다. 법을 구실로 밥벌이하는 사람들 우두머리라고 부를 만한 법무부 전현직 장관의 자녀를 감싸는 사례만 봐도 그렇다. 과연 이들뿐일까.행정부와 국회 등 부처 가릴 것 없이 범법의 공유로, 공범자가 되어 진영의 서로를 챙길 수밖에 없는 무리들은 또 어떤가. 그러나 물처럼 흘러 돌고 도는 법(法)을, 그들이라고 마냥 피해갈 수만 있으랴. 다만 시간이 더디게 좀 걸릴 뿐이리라.

2020-10-19 05:00:00

[야고부] 횡단보도의 어르신들

[야고부] 횡단보도의 어르신들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사람이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을까. 사람은 본질적으로 '의미'를 추구한다. 노동도 그렇다. 목적도 의미도 없는 노동은 고문에 가깝다.한때 서양의 감옥에서는 죄수를 골탕 먹일 때 무덤 파기 노동을 시켰다. "네가 죽으면 묻을 묘지를 파라"고 죄수에게 지시했다. 땀 흘려 구덩이를 파고 나면 원래대로 메우라고 시켰다. 이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무의미한 노동의 반복에 죄수는 자아가 붕괴되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노동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명일 수 있다. '월리'라는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는 노동의 가치를 멋들어지게 은유한다. 월리는 황폐화된 지구에 남아 쓰레기를 치우는 로봇이다. 어느 날 이 쇳덩이 로봇에 자아가 생겨나는데 이 기적의 특이점을 만든 것은 수백 년간에 걸친 노동이었다.요즘 횡단보도에서 교통 안내 일을 하는 어르신들이 부쩍 늘었다. 정부가 희망일자리 사업과 노인일자리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다. 그런데 자동차 매연 속에서 깃발을 들었다 놨다 하는 노인들의 표정에 통 활기가 없어 보인다. 어르신들이 이 일에서 과연 보람을 느끼는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정부가 재정을 쏟아부어 만든 공공근로 일자리들이 상당 부분 겹치거나 불필요한 일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사정이 악화되자 일자리를 대거 만들겠다며 재정을 투입했지만 통계치 산정을 위한 보여주기식 일자리가 너무도 많아서 그렇다.정책 입안자들이 예산을 쓰면서 고민은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 기존의 사업에다 제목만 바꿔 단 뒤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자찬하는 것은 보기조차 민망하다. 공공 일자리 참여자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연구해야 한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줄 요량이라면 어르신들이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만한 일을 발굴하는 게 먼저다.

2020-10-17 05:00:00

[야고부] ‘천지삐까리 정권’

[야고부] ‘천지삐까리 정권’

오래전에 대구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에게 퀴즈를 냈다. "다음 중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일까요? 1번 억수로 많다, 2번 쌔빌렀다, 3번 천지삐까리다." 정답은 3번이었다. 천지(天地)와 낟가리·더미를 일컫는 삐까리가 합쳐진 천지삐까리는 온통 무더기로 널려 있다는 말이다. 억수로 많다, 쌔빌렀다보다 더 많은 것을 뜻한다.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불기소한 것과 관련,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는 "정권 교체 외엔 이 정권이 묻어버리고 있는 권력형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밝혀낼 길이 없다"며 "정권이 교체되는 날 진실은 반드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지적했다.정권이 바뀌면 진실이 밝혀질 권력형 사건이 어디 추 장관 아들 건뿐인가. 억수로 많다, 쌔빌렀다를 넘어 천지삐까리 수준에 달했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실체를 규명해야 할 사건들을 이렇게 양산(量産)한 정권이 전무(前無)했다. 정권 충견으로 전락한 검찰이 뭉갠 사건만 해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총살 등 진실을 밝혀야 할 사건이 국정 전반에 널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임·옵티머스 사건이 정·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되는 등 권력형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금융 사기 사건에 불과하다"고 쉴드(방어막)를 쳤지만 정권에 최대 악재로 떠올랐다. 두 사건 공통점은 정·재계 유력 인사를 대표나 이사, 자문단에 이름을 올리거나 수익자로 참여시키고 정·관계 로비를 통해 불법행위를 숨겨왔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들처럼 이 정권도 집권 4년 차에 권력형 게이트로 레임덕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과거엔 기업의 뭉칫돈이 정권으로 흘러들어 갔지만 사모펀드 비리는 노후 자금을 비롯해 서민들의 돈을 착취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커 더 악질적이다.앞선 정권들과 달리 이 정권은 권력을 향한 수사를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혈안이다.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를 인사 학살하고 정권에 굽실거리는 검사를 통해 사건을 덮고 뭉개고 있다. 진실은 연착(延着)하는 열차라는 말이 있다. 늦기는 해도 반드시 도착하는 진실을 이 정권은 무슨 수로 감당할 텐가.

2020-10-16 05:00:00

[야고부] 항미원한(抗美怨韓)

[야고부] 항미원한(抗美怨韓)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시작되자 38선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중공군 전력이 계속 증강되자 '쇼다운' 작전에 착수한다. D데이는 1952년 10월 14일, '저격능선전투'의 출발점이다.목표는 철원 이북의 오성산 동남쪽 삼각고지와 저격능선으로 불리는 두 봉우리였다. 미 7사단과 국군 2사단이 소규모 공격으로 중공군의 기선을 제압하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고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중국 측은 토굴 속에서 43일을 버틴 이 전투를 '상감령(上甘嶺) 전역'이라고 부른다.중국 기록은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5일까지 상감령 전역에 투입된 중공군 병력 4만3천 명 중 사상자가 1만1천여 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양측이 쏟아부은 포탄만도 230만 발이 넘었다. 70년의 세월이 흘러 우리에게는 거의 잊힌 전투이지만 중국은 아직도 '항미원조'의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된 승전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상감령은 중국 인민 애국심의 원천'이라는 말도 있다.최근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하자 중국 정부의 '애국주의' 고취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상감령이 등장하는데 1956년에 만들어진 영화 '상감령'과 당시 국민가수 궈란잉(郭蘭英)이 부른 영화 주제가 '나의 조국'은 지금도 애국주의 표상으로 소환되고 있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도, 2011년 후진타오 주석의 백악관 만찬장에도 이 노래가 등장했다. '친구가 오면 좋은 술을 대접하고 승냥이가 오면 사냥총으로 맞아주겠다'는 가사가 도발적이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놓고 애국주의로 세뇌된 중국 Z세대와 관영 매체들이 "국가 존엄을 무시했다"며 한국 제품에 대한 보복을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중국의 시대착오적 애국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항미원조전쟁 70주년을 기념한다며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가 줄줄이 개봉되거나 제작 중이다. 미국과의 갈등에서 시작된 적개심이 이제는 한국에 대한 원한으로 번진 것이다. 그릇된 역사 인식이 빚어낸 결과다. 아무리 중국이 한국전쟁을 애국주의의 도구로 삼아도 1950년 10월 19일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20-10-15 05:00:00

[야고부] 왜 친일인가

[야고부] 왜 친일인가

'이제 어떻게 하냐.'친일 문제를 파고들던 임종국 작가의 아버지는 임문호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천도교 청우당 대표로 친일 회의를 주재하고 국방헌금을 모집한, 친일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았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친일 행각을 발견한 아들은 오열하며 여동생 앞에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어떻게 하냐"면서. 그러나 아버지는 "내 이름을 빼려거든 너 그 책 쓰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임종국은 그렇게 나라를 망친 친일파와 친일 행각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그의 대학 은사였던 한 총장의 친일 행적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1994년 완간을 목표로 친일파 총서 집필에 나섰으나 1989년 11월 타계하면서 친일파 연구에 매진한 삶을 마쳤다. 그의 고단했던 친일 연구의 행적은 뒷날 민족문제연구소 출범으로 이어졌고, 친일파 청산의 한 길을 열었다. 친일 인명사전 발간 등은 그런 결과였다.34년 11개월이 넘는 일제 식민 통치로 많은 사람이 친일의 비단길을 걸었고, 반일과 항일의 가시밭길을 마다 않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과 달리 부귀를 누렸고 자식에게 재산도 남겼다. 그들 친일 후손은 덕분에 항일의 '3대가 망(亡)하는 삶'과 달리 '3대가 흥(興)하는 길'을 광복 이후에도 거칠 것 없이 달렸다. 친일로 일군 재산과 권력은 세대를 이어 도약의 기회가 되었으니 친일의 생명력은 질기고도 강했다.이런 악몽 같은 어두운 친일의 청산은 오늘날 더욱 힘겹고 어렵다. 전문가 무리로 무장한 후손들이 법의 방패 아래 되레 친일 재산을 되찾겠다며 소송마저 당당하게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런 꼴이니 임 작가의 아버지처럼 그들에게 지난날의 일을 덮지 말고 밝혀 역사의 양심에 맡겨 처분받게 하자는 주문은 더욱 할 수 없다.이런 친일 후손과 뒤섞여 살아가는 시대인 만큼 친일은 민감하다. 물론 친일 문제를 가리고 없었던 일로 넘어가거나 합리화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지난 12일 조정래 소설가처럼 "일본 유학을 갔다 오면 친일파, 반역자가 된다"고 몰며 새로 친일파를 만들 일도 아니다. 경륜 있는 노(老)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이번 친일파 발언은 아무래도 실언(失言)이 아닌가 싶다. 굳이 분란이 될 만한 말을 한 속내가 궁금하다.

2020-10-14 05:00:00

[야고부] 그로테스크한 남과 북

[야고부] 그로테스크한 남과 북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는 말이 있다.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할 때 쓰는 표현이다. 남한과 북한에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펼쳐져 전 세계 시선을 붙잡았다. 서울 광화문 광장을 봉쇄한 '재인산성',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심야에 진행된 북한 노동당 창건 열병식에선 괴기한 것들이 대거 목격됐다. 바퀴가 22개 달린 이동식 발사대에 실린 세계 최대 규모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괴물'(怪物)로 일컬어졌다. 한 발로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어 요격이 훨씬 어려운 괴물로 보인다는 게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년에 걸쳐 남한·미국을 상대로 평화 쇼를 하면서 ICBM 등 '신무기 4종 세트'를 개발한 북한 자체가 괴물이라 할 수 있다.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의 북한식 표현)를 걱정하면서 수만 명 군중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함성을 지르고 횃불 행진한 것도 괴기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를 막는다며 바다에 표류하던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시신까지 소각한 만행과는 배치되기 때문이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내며 눈물을 보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주민들의 모습도 생경(生硬)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했다. 극장(劇場) 국가 북한의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에도 광화문 광장에 차벽이 쳐졌고 인도에 철제 펜스로 만들어진 미로식 통행로까지 등장했다. 외신 기자들은 "평양의 군사 퍼레이드도 두 번 가 봤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 "지금 서울은 완전히 우스꽝스럽다. 미쳤다"고 했다. '재인산성'으로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는 발상이 그로테스크하다.괴기한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김 위원장에 대한 정권의 저자세와 짝사랑이다. 김 위원장의 "북과 남이 다시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는 말에 정권은 반색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우리 국민이 잔인하게 살해됐는데도 김 위원장의 "미안" 한마디에 감읍했던 그대로다.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괴기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그러려니 치부할 수 있지만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로테스크한 일이 잇따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2020-10-13 05:00:00

[야고부] 문맹과 난독

[야고부] 문맹과 난독

충남 논산에는 '내동생고기'라는 식당이 있다. 내 동생 고기? 세상에 이런 엽기적인 이름이 있나. 한데 알고 보니 '내동에 있는 생고기 식당'이라는 뜻이란다. 띄어 쓰지 않은 글자 간판으로 인해 생기는 혼동이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글은 헷갈리기도 하거니와 읽기도 어렵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소풍(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풍)', 피자 헛 먹었다(피자헛 먹었다) 등등.띄어쓰기는 인류의 보편적 문자 습관이 아니었다. 띄어쓰기는 A.D. 7~9세기 라틴어에서 처음 시작돼 유럽과 전 세계로 퍼졌다.한글도 세종 창제 당시엔 한자처럼 붙여 쓰는 문자였다. 띄어쓰기는 훨씬 후대의 일이다. 한글에 띄어쓰기를 도입한 이는 구한말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다. 헐버트는 주시경 선생과 한글 맞춤법 연구 등을 함께 진행하면서 띄어쓰기와 구두점 찍기 등을 제안했다. 헐버트의 한글 사랑은 극진했다. 그는 1889년 트리뷴지를 통해 한글이 최소 문자로 최대 표현력을 갖는 완벽한 문자라고 극찬했다.우리 국민들은 이 벽안의 선교사에게 큰 신세를 졌다. 한글도 띄어 쓰지 않았다면 지금만큼 가독성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익히기 쉬운 자모음 체계와 띄어쓰기 덕분에 우리 국민의 문맹률은 1% 이하다.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지만 문해율로 따지자면 사정이 다르다. 글을 읽으면서 복잡한 내용의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을 문해율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성인 5명 가운데 1명은 문장이 길어지고 은유, 수치, 전문 용어가 들어가 있으면 문맥을 이해 못 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문해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며 실질 문맹률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독서 부족이 그 원인 중 하나다. 최근 들어서는 SNS, 유튜브 등 스마트 기기로 정보를 소비하는 게 일상화되다 보니 책 읽는 사람들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 실질적 문맹은 사고의 깊이를 떨어뜨린다. 복잡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보다는 무분별하게 주입된 뉴스와 루머에 의해 휘둘릴 수 있다.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심각한 사회 및 세대 갈등은 그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지 않으면 뇌세포도 퇴화한다. 독서의 계절이다. 스마트폰을 놓고 책을 들자.

2020-10-12 05:00:00

[야고부] ‘말 잘 듣는 국민’

[야고부] ‘말 잘 듣는 국민’

'문재인 정권에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갖게 된 의문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와 배치(背馳)되는 일들이 이 정권에서 너무나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첫째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총살 및 시신 훼손 사건. 문 대통령과 청와대, 군이 제대로 대처했다면 두 아이 아빠인 이 공무원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 목숨을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정권과 군·해경은 취약한 근거를 들먹이며 일찌감치 '월북자'로 단정했고, 친여 누리꾼들은 "월북자 가족이 뻔뻔하게 얼굴 들고"라는 등 고인·가족에 대한 조롱을 쏟아냈다. 공무원 시신을 찾지 못했는데도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목을 매고 있다. '정권엔 국민보다 남북 평화 쇼가 더 소중하단 말인가'란 질문이 안 나올 수 없다.둘째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의 요트 구매 미국 출국 사건. 강 장관 남편은 "내 삶을 사는 건데 다른 사람 때문에 양보해야 하냐"고 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추석에 고향 방문을 포기하고, 해외 신혼여행을 접은 국민에겐 '내 삶'이 없나. 정의당 심상정 대표 말처럼 '국민 모욕'이다.셋째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 사건. 민주당 의원은 제보를 한 당직사병을 향해 '단독범' 운운하면서 범죄자로 규정했다. 정권에 불리한 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국민을 범죄자 취급했다. 거짓말이 탄로 났는데도 추 장관은 야당·언론을 향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자 국민을 바보로 여긴 것이다.나훈아 씨는 콘서트에서 "(방역 당국) 말 잘 듣는 우리 국민이 1등"이라고 했다. 말 잘 듣는 우리 국민이 표변(豹變)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정권이 국민을 가재·붕어·개구리를 넘어 개·돼지 취급을 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감내할 수 있는 비등점(沸騰點)을 넘어섰다.맹자(孟子)는 권력자를 배, 국민을 배를 띄우는 물로 비유했다. 물이 성나면 배를 뒤집는다. 교수신문이 2016년 선정했던 '올해의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가 2020년 다시 뽑혀도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다.

2020-10-09 05:00:00

[야고부] 추강(秋康) 두 여인의 길

[야고부] 추강(秋康) 두 여인의 길

"내가 그 아이의 꾐에 넘어갔구나!"인조 임금이 소현세자의 짝을 찾을 때, 한 후보 여인의 용모가 넉넉하고 후덕스러웠는데 아무 때나 웃고 음식을 주니 밥이고 국이고 손으로 먹었다. 궁녀들은 여인이 미쳤다고 하고, 인조도 병이 든 것으로 의심하며 살피지 않았다. 그러나 뒷날 여인이 다른 곳에 시집가 매우 부덕(婦德)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혀를 차며 내뱉은 말이다.권씨라는 여인의 선택은 빛났다. 뒷날 세자의 짝인 강빈(姜嬪)은 병자호란 때 볼모로 세자와 청국으로 끌려가 8년 동안 갖은 고생을 했다. 또 귀국 뒤 남편과 자녀의 죽음, 그리고 결국 자신마저 시아버지 인조에게 미움을 사 사약을 받고 죽음으로 삶을 마친다. 인조(仁祖)란 이름에 결코 걸맞지 않은 임금의 잔인함을 피했으니 권 여인은 단연 돋보인다.이와 다른 삶의 장녹수도 살필 만하다. 용모에다 가무로 노비에서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후궁이 된 장녹수는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사건으로 피비린내 나는 참극인 갑자사화를 일으키는 일에 한몫을 한다. 그러나 장 후궁은 결국 잘못된 처신으로 파멸을 자초하고 중종반정의 정권 교체로 목숨마저 잃었다.선택은 두 여인의 삶을 갈랐다. 권 여인은 높은 권력의 자리에 따를 위험과 희생을 따져 '미친 척'한 지혜로 새로운 삶을 산 사연을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반면 장 후궁은 신분 상승과 권력의 맛에 취해 못된 짓을 함으로써 임금과 자신의 삶도 망쳤다.권력의 자리 선택 앞에서 사람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위와 권력에 걸맞은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는 곧 파멸과 불행의 씨앗을 스스로 뿌리는 일이나 다름없음을 역사는 늘 일깨운다. 여인이든, 임금이든, 누구든 가리지 않는다는 교훈은 역사에는 널렸다.문재인 정부도 같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례가 그렇다. 강 장관은 남편이 배도 사고 놀러 미국에 간 문제로, 추 장관은 아들의 군대 휴가 특혜 시비로 시끄럽다. 강 장관은 국민의 해외 발길은 묶어 놓고도 정작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추 장관도 뭇 장병이나 부모는 상상 못할 특혜성 휴가 처리로 힘없는 국민 가슴에 못을 박았다. 하지만 두 장관은 별로 개의치 않는 태도이니, 이제 앞으로 남은 일은 역사가 전하는 기록을 살피면 될 것 같다.

2020-10-08 05:00:00

[야고부] 안관(安菅)리스트

[야고부] 안관(安菅)리스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관운이 좋기로 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1972년 세상에 나온 유신헌법은 그의 출세길의 출발점이었다. 유신헌법 제정자로 알려진 한태연 전 헌법학회장이 훗날 "신직수·김기춘이 초안을 만들었다"고 밝힌 것에서도 그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유신헌법에 이어 1974년 '문세광 수사'로 고속 승진을 시작한 그는 이후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15대 국회 이후 3선 의원을 지냈다.하지만 2013년 8월, 73세의 나이에 마주한 역대 최고령 대통령비서실장 낙점은 그 좋던 관운이 오히려 그를 나락으로 몰아넣는 수렁이 됐다. 청와대에 입성하자 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은 "섬뜩한 공안정국 조성용 인사"라고 평가했다.그는 1년 6개월 남짓 비서실장직에 있으면서 '기춘대원군' '왕실장'으로 불렸지만 정치 상황이 촛불 정국으로 바뀌면서 이내 추락하고 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특검 수사를 받고 구속기소된 것을 시작으로 보수단체 지원 혐의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줄줄이 문제가 되면서 '법마'(法魔)라는 오명과 함께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수의를 입고 재판정에 나서는 그의 초라한 말년의 모습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요즘 일본 정가가 블랙리스트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신임 스가 정권이 일본학술회의 신규 회원 6명의 임명을 거부한 것이 발단이다. 각 분야의 뛰어난 연구자들을 마치 썩은 사과 도려내듯 배제한 것은 "정치적 잣대로 학문의 자유마저 재단하는 도전 행위"라며 각계의 비판 목소리가 거세다.1949년 발족한 일본학술회의(SCJ)는 '과학이 국가의 모토'라는 정신으로 생명과학, 물리·공학 전 분야의 과학자 84만 명을 대표하는 정부 자문기관이다. 현재 210명이 회원으로 있는데 스가 정부가 지난달 105명의 회원을 새로 임명하면서 6명의 과학자를 제외해 논란이 되고 있다. 임명이 거부된 이들은 아베 정권 때 안보보장법이나 공모죄법 제정에 반대한 것으로 드러나 '일본판 블랙리스트' '아베-스가(安菅) 리스트 파동'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번 사건은 아베를 추종하는 스가 정권의 정체성을 보여준 동시에 '극우의 사상 테러'로 일본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다.

2020-10-07 05:00:00

[야고부] 점입추경(漸入醜境)

[야고부] 점입추경(漸入醜境)

하나의 거짓말을 위해서는 30개의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7개라는 주장도 있다.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는 확대재생산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소리다. 지난 2016년 영국 런던대학(UCL) 심리학과 탤리 샤롯 교수팀이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했다.연구팀은 18~65세 자원자 80명을 대상으로 일종의 '거짓말-보상 게임' 실험을 하면서 이들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 장치(fMRI)로 촬영·분석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작고 하찮은 거짓말이나 부정직한 행동에도 뇌 편도체 활동이 급증했다.편도체란 뇌 측두부 안쪽에 있는 조직으로, 정서적 정보의 통합·처리에 밀접하게 관여하며 특히 공포나 불쾌한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전달해 대처하게 한다. 이런 기능을 하는 편도체의 활동이 급증했다는 것은 쉽게 말해 '양심에 찔린다'는 감정이 생김을 의미한다.그러나 그다음에 거짓말을 할 경우에는 편도체 활동량이 줄어들었다. 거짓말을 못하게 하거나 양심에 찔린다는 감정을 갖도록 하는 '제동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거짓말이 거듭될수록 심화됐다. 뇌가 거짓말에 익숙해지며 별 죄책감 없이 더 큰 거짓말을 하는 악순환이 확대된다는 것인데 샤롯 교수는 이를 "거짓말의 급경사를 미끄럼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이런 연구 결과를 두고 샤롯 교수는 "거짓이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이유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실질적 증거를 발견했다"며 "제멋대로인 정치인, 부패한 금융업자, 연구 결과를 조작하는 과학자, 충실하지 못한 배우자 등이 왜 결국은 엄청난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고 풀이했다.샤롯 교수팀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뇌를 들여다봤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 같다. 추 장관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휴가 연장을 청탁하거나 보좌관을 시켜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국회 속기록상 이런 거짓말이 27번이나 된다고 한다. 추 장관에게 면죄부를 준 검찰조차 이런 거짓말은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검찰의 무혐의 결정을 업고 의혹을 제기한 야당과 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기세등등하다. '점입추경'(漸入醜境)이다.

2020-10-06 05:00:00

[야고부] 최 병장의 나훈아

[야고부] 최 병장의 나훈아

'단결. 1975. 12. 5. 군용열차에서.'공군 병장 최홍기. 가수 나훈아의 군부대 시절 불린 본명이다. 공군문화선전대 소속으로 그날 대구에서 K-2 군부대 공연을 마친 그는 동대구역에서 군용열차로 서울로 되돌아가던 참이었다. 이미 입대 전부터 널리 알려진 가수였던 터라 역에 도착하자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그는 마침 휴가로 나들이에 나섰다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가던 비둘기호 군용열차를 함께 탔던 육군 보도사병 성병조 상병을 만났다. 둘은 4시간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대전을 좀 지난 회덕에서 헤어졌다. 그와의 군용열차 취재 사연은 부대 소식지 '건설주보'로 널리 퍼졌고, 대구 문인이 된 성 상병은 뒷날 2010년 언론을 통해 그와 35년 전 얽힌 사연을 적었다.최 병장은 입대 전처럼 군에서도, 군을 떠나서도 명성을 날렸고, 숱한 화제 속 노래의 삶을 이어갔다. 그의 시원하고 거침없는 답변의 4시간으로 성 상병에게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준 만큼이나 뭇 사람 뇌리에 남을 사을 남겼다. 나라 훈장도 싫다 하고, 남북 관련 공식 행사 참여 요청의 완곡한 거절, 재벌가 초청 공연 거부 등 사례도 그렇다.이런 그가 지난달 30일 KBS 공연 방송으로 또다시 화제의 인물이 되고 있다. 74세의 연륜과 풍부한 독서의 내공인 듯, 여러 말은 정치권을 들썩였고 급기야 여야 설전이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그의 소신성 발언이 시대 상황과 맞물려 파장을 일으킬 만하다는 방증이다.그의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는 말과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는 발언, 자신이 공연한 KBS를 겨냥해 "국민을 위한,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면 좋겠다"는 주문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다.지금 그의 말에 오금 저렸을 무리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맞서면서 그들만의 장외 공연을 펼치고 있다. 두 무리 모두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꼴이다. 정치가 이러니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1등 국민"이라며 믿을 곳은 국민뿐임을 내세운 모양이다. 45년 전 후배 성 상병에게 외친 최 병장의 '단결' 구호가 이젠 '국민'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20-10-05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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