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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황희석의 입방정

[야고부] 황희석의 입방정

일본 패망 후 천황(天皇)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무시, 조소, 조롱당하기 일쑤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자칭 천황'이 속출했다. 오카야마(岡山)현에서는 '사카모토(坂本) 천황', 가고시마(鹿兒島)현에서는 '나가하마(長浜) 천황', 니가타(新潟)현에서는 '사도(佐渡) 천황', 코지(高知)현에서는 '요코쿠라(橫倉) 천황'이 나왔다. 아이치(愛知)현에서는 '도무라(十村) 천황'과 '미우라(三浦) 천황' 등 둘이나 나왔다. 이런 '자칭 천황'은 한때 17명에 달했다고 한다.이들 중 발군(拔群)은 나고야(名古屋)현에서 잡화상을 하는 구마자와 히로미치(熊澤寬道)였다. 그는 자신이 14세기 무로마치(室町) 막부에게 쫓겨나 남조(南朝)를 연 제96대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의 직계 후손으로, '진짜 천황'은 히로히토(裕仁)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천황가의 정통성은 히로히토가 속한 북조(北朝)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남조에 있다는 것이었다.그는 그 근거로 '족보'를 내세웠다. 그의 주장이 대중들의 관심을 사면서 그는 전국 순회에 나서는 등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미군정 사령관 맥아더에게 히로히토가 퇴위하고 자신이 즉각 천황으로 즉위하는 데 협력해 달라는 요청도 보냈다. 이는 일본 점령 정책의 중추로 천황 권위 약화를 추진하던 미군정 사령부의 관심을 끌어 시사잡지 '라이프'와 미군 신문 '성조지'에 '히로미치 천황이 진짜 천황'이라고 보도되기도 했다.하지만 '진짜 천황'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1951년 히로히토를 상대로 천황 부적격 확인 소송도 제기했으나 각하(却下)됐다. 그가 정말로 고다이고의 직계 후손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선조라고 했다가 된통 창피를 당했다. 창녕 조씨 족보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조 전 장관을 조식 선생의 후손으로 단정한 탓이다. 가히 '입방정'이라고 하겠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식 선생의 13대 후손인 조영기 씨가 족보를 확인해 보니 조 전 장관과 조식 선생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황 최고위원은 왜 조 전 장관을 조식 선생의 자손으로 만들려 했을까? 조식 선생의 자손이면 평등·공정·정의의 배신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20-06-24 06:30:00

[야고부] 혼수모어(混水摸魚)

[야고부] 혼수모어(混水摸魚)

물고기를 잡을 때 흙탕물을 일으켜 놀래면 잡기가 쉽다. 혼탁한 물에서는 고기가 방향을 잘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혼수모어'(混水摸魚)라고 표현하는데 흐린 물에서 고기를 더듬어 찾는다는 뜻이다. 군사를 위장시켜 원소의 군량 창고를 기습한 조조(曹操)의 계략에서 비롯한 한자성어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려 이익을 취할 때 쓰는 말이다.북측의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한반도 주변 국제 정세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흙탕물로 바뀌고 있다. 2018년 4~5월, 9월 등 세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금씩 호전되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이다. 최근 앞뒤 분간하지 못하는 북측의 난폭한 행동의 근본 배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북한의 경제적 압박 등 내부 불만이 커지자 초점을 밖으로 돌려 풀어보려는 우회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최근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온 북측은 연일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응징 보복"을 외치고 있다. 예고한 대로 1천200만 장 규모의 대남 전단 살포 계획을 조만간 실행할 것이라는 게 국내 언론의 보도다. 대북 전단과 달리 대남 전단 살포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공연히 우리에게 쓰레기만 안기는 짓이다.그럼에도 북측이 큰 비용을 들여 전단을 뿌리려는 것은 안으로 내부 결집의 목적에다 어려운 경제 사정의 원인을 한국 정부에 돌리고 분풀이를 하는 정치 공세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전단 인쇄물 내용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사진 위에 담배꽁초를 던져 놓는 등 한마디로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미국과 일본 정부의 최근 움직임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19 부실 대응으로 궁지에 몰린 일본 아베 정권은 한반도 긴장 상황을 빌미 삼아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불순한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독일 주둔 미군 9천500명 감축 발표에 이어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을 계속 고집하는 것도 전형적인 '혼수모어'다. 상대를 흔들어 제 이익을 챙기는 것은 말릴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의도가 뻔히 드러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더 크다. 본디 빈 깡통이 요란하고, 겁먹은 개가 시끄럽게 짖는 법이기 때문이다.

2020-06-22 18:58:37

[야고부] 차면 기운다는데…

[야고부] 차면 기운다는데…

나눠 먹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동물의 세계는 더욱 그래서 먹이사슬의 서열이 생겼으며 세월의 흐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현상이다. 동물보다 좀 낫다는 인간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더할 수도 있음을 역사의 기록은 증언하며 뒷사람을 경계하고 있다.특히 재산을 갖고 다툰 사례는 인간이 먹이를 갖고 으르렁거리는 동물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통감하게 한다. 그런 다툼의 기록에 이름을 올리는 이는 대통령 아들에서부터 재벌 남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내세우는 이유는 달라도 더 많이 갖겠다고 싸우는 꼴은 마찬가지다.그래서 보통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그런 부류의 사람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한 삶을 산 인물에 더 가슴을 열고 그들이 남긴 글과 자취를 더듬게 된다. 나라의 지난 역사에서 가장 힘들고 고달팠던 일제 식민 암흑 시기에 말과 행동이 어울린, 그런 삶을 산 인물이 있다.비록 35세로 삶을 마쳤지만 당시로서는 무척 앞선 생각과 행동을 실천한 젊은이 강택진(1892~1926)은 요즘 한세상 만난 것처럼 시대를 주름잡겠노라며, 진보를 입에 올리는 부류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사회주의 활동가였다. 독립운동은 두고라도 민중과 함께하고자 한 삶이 그렇다.자신이 땅을 가진 지주로서, 땅 한 평(3.3㎡) 없는 핍박받는 민중과 소작인을 위해 지주를 상대로 소작운동을 벌인다는 게 모순이기에 먼저 자신의 땅(논) 9천 평(2만9천700㎡)을 '그저 세상에 버렸'으니 말이다. 고향 경북 영주 풍기에서 1923년 4월에 있었던 일이다.세상 일이 그렇듯 시대와 세대가 바뀌고 뒷사람은 그를 잊었지만 그의 말과 행적의 일치된 모습은, 그렇지 않은 쪽으로 '진보라는 옷'을 입은 활동가가 넘치고, 진보 부류가 득세한 요즘 더욱 돋보인다. 100년 뒤, 지금 진보 가치를 외치는 사람은 되레 더 갖겠다는 아우성이다.요즘의 진보 무리는 그들이 위안부 할머니를, 아니면 국민을, 또는 북한 김씨 일가 등 누구를 앞세웠든 간에 말과 행동이 다른 점이 두드러진다. 겉으로 내세운 말과 기치는 그럴듯하고, 때로는 환상적이지만 그 뒤에 감춰진 진짜 모습은 실망스럽다. 민의와 통합을 외치면서도 힘으로 여의도 자리를 독점하겠다는 여당의 국회 욕심도 그렇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권력은 어떨지.

2020-06-22 06:30:00

[야고부] 文, 불면의 밤

[야고부] 文, 불면의 밤

옛 전남도청 건물 앞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아랫입술이 하얗게 부르튼 것이 화제가 됐다. 친문(親文) 누리꾼들은 "코로나 사태로 대통령 과로가 너무 심한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왜 입술이 부르텄는지는 당신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며 "(대통령이) 불철주야 국난 극복에 매진하는 건 맞지만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건강하게 계신다"고 했다.집권 4년 차인 문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달리 '아직도' 권력 기반이 공고하다. 대통령 지지율은 60% 안팎을 오가며 고공 행진 중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믿기 어려운' 압승을 거뒀다. 청와대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해 대통령과 정권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역대 최초로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이 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문 대통령의 권력 기반이 탄탄한 것과는 별개로 지난 3년 동안 국정에서 거둔 성적표를 보면 문 대통령의 고민·스트레스 지수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웠지만 경제는 추락하고 있고, 청와대에 상황판까지 만들었던 일자리 문제도 악화 일로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검찰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대한 국민 반발은 여전하다. 코로나 방역은 수도권 집단 감염이 확산하면서 더 이상 자랑하기가 부끄러워졌다. 심혈을 쏟았던 대북 문제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불면(不眠)의 밤이 계속됐을 것이고, 입술이 부르텄을 것이다.2018년 4월 판문점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이 집권 3년 동안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나"란 국민 질책에 그나마 버팀목이 됐던 게 남북 평화 쇼였다. 그러나 2년여 만에 실패로 드러났다.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은 도발 우려로 문 대통령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더 늘어날 것이다. 대통령 입술이 얼마나 더 부르틀지 걱정이다.

2020-06-19 18:44:04

[야고부] 종이 쪼가리

[야고부] 종이 쪼가리

조약이든 합의든 국가 간의 약속은 지킬 뜻이 없거나 강제하려는 의지가 뒤따르지 않으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1차 대전 종전 체제를 마련한 1919년 베르사유 조약과 영국 역사가 폴 존슨이 '깡패들의 협약'이라고 한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은 이를 잘 보여준다.베르사유 조약의 목표는 독일이 또다시 침략할 경우를 대비한 안보 제공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치명적인 한계를 품고 있었다. 독일 군비의 철폐든, 전쟁 배상금 지불이든 독일의 실행 의지가 있어야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독일이 거부하면 연합국은 전쟁 재개 위협, 독일 영토 점령이나 봉쇄 등 실력 행사를 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약을 준수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서명뿐이었다. 독일은 지킬 수도 있고 이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더욱이 연합국은 파멸적인 전쟁을 방금 끝낸 마당에 다시 전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독일은 지키는 시늉만 했다.불가침 조약을 맺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꿍꿍이는 서로 달랐다. 독일과의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극동으로 이동 배치해 일본의 공격에 대비하는 한편 자본주의 진영의 피 튀기는 싸움을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피폐해진 자본주의 진영을 손쉽게 삼킨다는 게 스탈린의 구상이었다. 그 싸움의 최종 승자가 독일이든 영국이든 상관하지 않을 터였다. 반면 히틀러의 속셈은 서유럽을 정복할 때까지 독일 동쪽을 안전지대로 만들고, 그 뒤 소련을 쳐서 독일 식민지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애초부터 '조약'을 지킬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그런 점에서 1941년 독일의 소련 침략은 조금 빨랐을 뿐 예정된 것이었다. 히틀러가 스탈린의 생각대로 서유럽을 정복한 만신창이가 됐다면 스탈린이 '선방'을 날렸을 것이다.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판문점 선언'도 박살 났다. 고래(古來)로 지킬 의지가 없는 조약이나 합의는 언제든 종이 쪼가리가 된다는 진실을 외면해서 초래한 처참한 결과다. 문재인 정권은 이 '선언'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거짓 선전을 했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인내하겠다"고 한다. 정말로 '구제 불능'이다.

2020-06-19 06:30:00

[야고부] 매란없는 말본새

[야고부] 매란없는 말본새

요즘에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가끔 연세 지긋한 이들에게서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매란없다'는 표현이다. '볼품없다' '형편없다' '모양새가 엉망이다'라는 의미인데 경북 북부 지방이나 제천·단양 등 충북 지방, 강원도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사투리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오지 않고 방언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대구 등 경북 남부 토박이들은 '매란없다'는 말이 생소하다. 대화 가운데 이 말이 불쑥 나오면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이가 드물다. 그렇지만 화자의 표정이나 듣는 이가 느끼는 어감상 좋은 느낌이나 긍정적인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긴장감이 계속 높아지는 가운데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줄을 이으면서 국민들의 속이 아주 불편하다. 요 며칠 북측이 담화나 매체를 동원해 우리 정부에 보란 듯 험한 말을 쏟아낸 것도 모자라 엊그제 개성지구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쇼'를 벌이자 국민 감정이 매우 격앙돼 있다. 애초 '북한'이라는 집단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고 데면데면한 태도로 지켜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갑자기 멀쩡한 건물을 무너뜨리는 포악성을 드러내고 우리를 향해 적대적 표현을 쏟아내며 표변하자 실망감을 넘어 분노가 치솟는 형국이다.특히 북측의 말본새는 저급하다 못해 욕을 먹어도 쌀 정도로 천박하다. 2018년 5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우리 일행이 찾았던 평양 옥류관의 주방장이 썼다는 기고는 매란없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에 오수봉이라는 이름으로 실린 이 기고에는 '우리의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동원한 단어 하나하나에서 스스로 구제 불능임을 자인하는 말본새다.북측의 거친 입과 망동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국격과 국민에 대한 무시다. 연락사무소에 들어간 178억원의 예산이야 형편없이 비싼 평양냉면 먹은 값이라고 치더라도 5천만 국민과 대한민국을 모욕하는 언사는 용납할 수 없다. 그들이 또다시 도발을 해올 경우 무자비하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국민과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2020-06-18 06:30:00

[야고부] 헌법 무시 전통

[야고부] 헌법 무시 전통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두 번이나 헌법을 무시했다. 먼저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3일 "국민이 압도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가 중앙선관위의 '공직선거법 위반' 결정을 받았고 이어 국회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탄핵됐다.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기각으로 기사회생했으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 "그놈의 헌법" 운운하며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비난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다시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을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불복해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내는 트릭까지 부렸으나 기각됐다.문재인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새정치연합 대표로 있던 2015년 2월 13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을 여론조사로 하자고 했다. 여론의 반응은 '황당하네'였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헌법에 나와 있는데도 천연덕스럽게 여론조사로 뽑자고 했으니 당연했다.그 배경은 여론의 흐름이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한 직후 총리로서의 적합 의견은 39%, 부적합은 20%였으나 이후 여러 문제가 드러나면서 부적합 의견이 41%로 2주 만에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헌법을 대놓고 뭉갠 것이다.이런 헌법 무시 버릇은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올라간다. 2000년 6월 15일 북한 김정일과의 '남북공동선언'은 명백한 위헌이다. 그 2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돼 있다.그러나 헌법 제4조는 통일 정책의 전제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로 규정하고 있다. 즉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선언' 2항은 이와 배치된다.여당이 이런 전통을 이어 가려 한다. 2008년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선언'은 국가 간의 조약이 아니어서 처음부터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북한은 헌법상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헌법은 진보 좌파들에 의해 수시로 뭉개지고 있다.

2020-06-16 20:12:19

[야고부] 구글신(神)과 세금

[야고부] 구글신(神)과 세금

현대인들은 늘 스마트 기기와 대화한다.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은밀한 속내마저도 스마트폰 또는 PC 검색창에 입력한다. 이 '디지털 친구'는 입이 무거울 것 같지만 그건 착각이다. 디지털 기기에 입력된 정보는 서비스 제공 사업체 서버에 남김없이 저장된다. 사람들이 열심히 데이터를 갖다 바치다 보니 포털 서비스는 이제 세상사를 다 아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오죽했으면 '구글은 모든 것을 안다'는 의미로 '구글신(神)'이라는 말마저 생겼을까.검색 서비스사들은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 수도 있다. 믿기지 않는다면 자신의 구글 계정에 들어가 확인해보라. 놀랍게도 구글은 당신의 연령대와 성별, 관심사, 취미, 소득 수준, 기혼 여부 등 민감한 내용까지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구글에 이런 정보를 제공한 기억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정보들은 구글의 인공지능이 당신의 신상을 추정한 결과물이다. 당신이 평소 했던 검색, 광고 클릭, 유튜브 시청, 구매 기록, 매장 방문, 위치 이동 등 행위를 구글이 맞춤 광고 서비스를 하기 위해 분석해 놓은 것이다.구글은 유저들이 쌓은 데이터를 토대로 광고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수익을 챙긴다. 야후,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톡 등 대부분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의 수익 모델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계 굴지의 ICT 기업들이 내는 세금은 쥐 눈곱 수준이다. 세계를 상대로 돈을 벌면서 본사가 위치한 나라에 세금을 내는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한다. 8조3천억원 규모인 국내 앱 시장에서 구글과 애플은 지난해에 각각 5조9천억원, 2조3천억원을 벌었지만 서버가 국내에 없다는 이유로 앱 매출 관련 세금을 내지 않았다.이런 조세 불공평을 해소해야 한다며 세계 각국에서 디지털세(稅) 도입 목소리가 높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이 국경을 초월해 사업하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기업에 합당한 세금을 물리자는 요구다. 코로나19사태 여파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 재원 확보 차원에서도 디지털세는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대세다. ICT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원천 중 거의 대부분은 유저들이 제공한 데이터들이다. 대동강 물 파는 격일진대 소득이 있는 곳이라면 세금을 매기는 것이 옳다.

2020-06-16 06:30:00

[야고부] 옥류관 냉면

[야고부] 옥류관 냉면

"평양에 와서 우리의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쳐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는 주제에 오늘은 또 우리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으니 이를 어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북한 대남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이 내보낸 북한 평양 옥류관 주방장의 발언이다. 주방장은 또 "이제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그 더러운 똥개 무리들(탈북민 단체)과 그것들의 망나니짓을 묵인하며 한 짝이 되어 돌아친 자들을 몽땅 잡아다가 우리 주방의 구이로에 쳐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옥류관은 2018년 9월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했던 곳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평양냉면을 먹은 후 '맛의 극대치'라고 칭찬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북한을 방문한 대한민국 대통령 모두가 옥류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오찬을 했다.문 대통령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수위를 한참이나 넘은 옥류관 주방장 발언에 우리 국민은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을 직격한 듯한 원색적 비난에 국민 자존심은 크게 금이 갔다.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수행해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던 재계 총수들에게 당시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며 면박을 준 것보다 훨씬 모욕감을 안겨준 조롱이다. 옥류관 주방장한테마저 찍소리 못하는 청와대, 정부, 여당, 친문 진영 탓에 국민은 더욱 자존심이 상한다.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핵무기 완성을 위한 북한의 시간 벌기용 위장 평화 공세에 동원된 옥류관 냉면도 공짜가 아니었다. 북한은 옥류관 주방장을 앞세워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에 대놓고 옥류관에서 먹은 냉면값 청구서를 들이민 것이다.오늘로 6·15 남북 정상회담을 한 지 20년이 됐고,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만난 지 2년이 넘었다. 남북 정상은 세 차례나 회담을 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는 물 건너갔고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선임자들보다 더하다'는 혹평까지 받았다. 문 정권이 최대 치적으로 자랑하던 '한반도 평화'가 통째 무너져 내리고 있다.

2020-06-15 06:30:00

[야고부] 격하운동

[야고부] 격하운동

1953년, 스탈린이 죽자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시작됐다. 30년 넘게 이어진 폭압 통치와 정상을 벗어난 스탈린의 행적이 낱낱이 고발된 것이다. 이른바 '스탈린 격하운동' '탈스탈린화'로 불리는 이 움직임은 1956년 소련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연설로 정점에 달했다.이후 소련은 스탈린주의를 기치로한 국가 정책뿐 아니라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묵은 때를 벗기 시작했다. 방부처리돼 레닌묘에 나란히 안치된 스탈린의 시신은 1961년 크렘린궁 뜰로 옮겨졌고 그의 조각상과 기념물도 모두 철거됐는데 소련권 공산국가 전체에 적용된 의무 사항이었다.소련과 동유럽, 중앙아시아 여러 공산국가가 채택한 '스탈린' 관련 지명이 거의 사라진 것도 탈스탈린화의 단면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스탈린그라드는 볼고그라드, 우크라이나의 스탈리노는 도네츠크로 바뀌었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스탈리나바드는 32년 만에 옛 이름인 두샨베로 되돌아갔다.얼마 전 미국 미네소타주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인종주의자에 대한 격하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흑인 차별의 불씨를 지핀 미국과 유럽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격하운동이 함께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노예제를 찬성한 미국 남부연합의 로버트 리 장군을 위시해 아메리카 대륙 발견자이자 약탈자로 평가되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분노한 시위대의 밧줄에 걸려 넘어졌다. 또 '콩고의 학살자'로 불리는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 영국령 남아프리카 제국의 창설자인 정치가 세실 로즈 총독, 처칠 영국 총리의 동상도 표적이다. 인종차별 영화로 지목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격하운동에서 예외가 아니다.이런 격하운동은 과거 인물들이 남긴 역사적 유산을 사실에 기반해 재평가함으로써 그 책임을 되묻는다는 점에서 지체된 정의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강하다. 청산하지 않은 과거사는 늘 대립과 갈등의 불씨가 된다. 재평가를 통한 엄격한 해석과 사회적 합의가 급한 이유다.

2020-06-12 18:39:20

[야고부] 달비골 별서와 붓꽃

[야고부] 달비골 별서와 붓꽃

'뜰에 핀 붓꽃이 향산(香山) 선생 붓이 연상되어 보냅니다.'코로나로 일상의 삶이 사라진 지난달 12일 한 장의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2003년 공직을 퇴직, 시간이 지났지만 대구수목원 조성에 한 역할을 했던 공직 시절처럼 대구 역사를 공부하면서 대구의 산하와 환경, 자연을 벗 삼아 식물과 꽃들을 찾고 아끼는 마음은 변함없는 그였다.그런데 그가 보낸 붓꽃에 담긴 사연이 남다르다. 향산은 대구의 독립운동가로, 1915년 눈이 펑펑 내리던 정월 보름 앞산 안일암에서 시 짓는 모임 즉 시회(詩會)를 가장하여 조선국권회복단이란 비밀결사를 만들고 통령(統領)을 맡았고, 파리장서운동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일제 고문으로 1942년 생을 마칠 때까지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 아니던가.그가 굳이 달비골을 찾아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찾지도 않는 한 채의 오래된 집에 들러 붓꽃을 하염없이 바라본 까닭은 있다. 100년 전, 대구의 월배 달비골 한적한 산자락에 지은 향산의 별서(別墅)는 시도 짓고 몰래 독립의 꿈을 꾸던 곳, 또 구름을 바라보던 첨운재(瞻雲齋), 송석헌(松石軒)으로 알려진 곳이 어느덧 세상에서 잊힌 때문이다.그러다 지난 2018년, 향산의 손녀(윤이조)가 할아버지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과 별서에서 즐겁게 뛰놀던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어 출간한 책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다'로 다시 세상에 소개된 곳이다. 하지만 그런 사연이 깃든 그곳에서 광복의 꿈을 꾸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뜬 사실을 과연 누가 알기나 할까.그것을 답답하게 여겼던 그였기에 그날도 발길을 옮겼다가 마치 향산이 과거 독립의 꿈을 꾸며 심기나 한 듯한 붓꽃이 집 뜰에 곱게 핀 모습이 시를 짓던 향산의 붓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뜰에 핀 붓꽃을 보고 글을 쓰고 광복을 그렸을 향산을 알리고 싶은 그의 마음이 닿았을까. 아니면 안달하던 마음이 통했을까.최근 그곳에 안내판과 글이 걸렸다. '첨운재 독립운동 모의장소'라는 표시와 향산의 독립운동, 옛 활동에 관한 간단하지만 필요한 설명을 담은 안내판이다. 대구시 도시공원관리사무소에서 자료를 찾고 정보를 모아 최근 설치한 결과다. 잘 보이지 않지만 대구의 소중한 자산을 아끼는 퇴직 공무원 이정웅 씨의 마음과 시청의 조치가 반갑다.

2020-06-12 06:30:00

[야고부] 빵 조각과 기본소득

[야고부] 빵 조각과 기본소득

코로나19는 여러모로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다. 현대 문명사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미증유 변화상을 곳곳에서 이끌어내고 있다. 요즘 국내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인 '기본소득'(Basic Income) 논쟁도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폭발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은 진보 정치세력의 전유물 성격의 어젠다(의제)였는데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빵 한 조각'(물질적 자유론)을 하늘로 쏘아 올리며 사회 담론의 한복판에다 올려놨다. 기본소득 의제를 보수 야당에 선점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진보 진영 대권 주자들이 경쟁에 가세해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사실 '복지'는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아닐 수도 있다. 현대의 상당수 복지정책은 서구 보수 정당들에 의해 고안됐다. 싫든 좋든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 열차'는 이미 출발했다고 봐야 하며 차기 대통령 선거를 좌우할 핵심 의제가 되는 것도 거의 확실해 보인다.기본소득제는 핵폭탄급 의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길 국민들을 구원할 수도 있지만, 재정난을 야기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려 나라를 주저앉힐 수도 있다. 우리 국민 1인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준다고 가정하면 연간 187조원이 들고, 60만원이면 374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정부 예산의 37%, 75%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재원인데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가 관건이다.또한 기본소득제는 시혜성 정책 차원을 넘어 복지 체계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경제적 파급 효과가 너무 크기에 경제적 관점의 정책으로 간주하는 학자들도 있다. 기본소득제 추진을 위해서는 세금 및 기존 복지제도의 전면적 개편과 국민적 합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함은 이 때문이다.기본소득제는 핀란드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실험을 했다가 실패했고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부결된 바 있다. 기본소득 전면 실시는 전인미답의 영역인데 북유럽 복지사회 국가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나라가 너무 앞서 나가려는 듯한 인상이다. 지금이 기본소득제를 논의할 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회적 토론과 숙의는 필요하지만 기본소득이 대선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20-06-11 06:30:00

[야고부] 백선엽과 만네르하임

[야고부] 백선엽과 만네르하임

칼 구스타브 만네르하임. 핀란드의 군인으로 '겨울전쟁'(1939.11.30~1940.3.13)에서 소련을 패퇴시킨 전쟁 영웅이자 제6대 대통령이며 2차 대전 후 소련과 협상으로 핀란드의 소련 합병을 막은 인물이다. 이런 공로로 핀란드에서는 '국부'로 추앙되고 있다. 만약 그가 이 땅에서 태어났다면 필경 추앙은커녕 '민족 반역자'로 매도당했을 것이다.그가 태어났을 때 핀란드는 러시아 지배하에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치가 허용됐는지, 러시아의 지휘 통제를 받는 핀란드군 장교의 양성이 목적이었지만 핀란드 군사학교가 있었다. 만네르하임은 여기로 진학했다가 적응을 못 해 퇴교당하고 러시아의 니콜라이 기병학교에 입학해 전교 10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이후 러시아 황제 근위대 기병장교로 임관해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큰 전공을 세우며 중장까지 진급했다. 한국으로 치면 일본 육사를 나와서 일본군 남방총군(南方總軍) 총사령부 병참총감까지 승진한 홍사익(洪思翊) 중장과 같은 행로를 갔다고 할까. 물론 홍 중장은 마닐라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으나 만네르하임은 러시아 2월 혁명 후 퇴역하고 핀란드로 돌아가 핀란드군 최고 지휘관으로 추대되는 영광의 '인생 2모작'을 일궜다는 근본적인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한국의 진보·좌파의 기준에서는 홍 중장도 마찬가지이지만(홍 중장의 생은 단순히 친일이란 잣대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국내외의 의견이 있었지만,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작성한 705명의 친일파 명단에 들어갔다) 만네르하임의 '친러' 경력은 그가 절대로 '국부'가 될 수 없는 조건이다. 핀란드 국민의 '민족정신'은 썩어 문드러진 것인가?만네르하임이 핀란드 국민에게 받는 대접과 대비해 백선엽 장군의 처지는 참으로 가슴 아프다.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6·25 전쟁 영웅임에도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근무했기 때문에(하지만 그가 독립군과 전투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현충원에 묻혀서는 안 된다는 공격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배은망덕한 세력이 판을 치게 됐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2020-06-09 21:03:38

[야고부] 현충일에 읽은 글

[야고부] 현충일에 읽은 글

"…멀리 있는 당신에게 일자(一字) 서신(書信)을 통(通)하오니 희심견득(喜心見得)하여 객지(客地)에 있는 졸부(拙夫)를 상봉(相逢)한 듯이 바다주소서… 아무쪼록 몸 성히 잘 잇긔를 부탁합니다… 객지에 있는 졸부가 귀가(歸家)할 때까지 신체건강(身體健康)하여 주기 바란다…."1953년 어느 날, '객지에 있는 졸부'가 '멀리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영수 엄마 앞'으로 보낸 편지를 아내는 8월 19일에 받았다. 1953년 4월 12일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해, '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남편의 편지를 '영수 엄마'는 고이 간직하다 1998년 남편 곁으로 떠나면서 며느리에게 가보(家寶)로 물려줬고 이는 세상에 알려졌다.낡은 누런 종이에 한글과 한자를 섞어 '새삼스러이 백운(白雲)으로 하여금 동행(同行)하여 멀리 있는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는 남편은 '매일 고지에서 백병전(白兵戰)으로… 오랑캐를 무찌르고 있으니 안심(安心)하소서'라며 아내 걱정을 덜어주려 했다. 하지만 '영수, 민수'라는 두 자녀로 보이는 이름에 동그라미까지 친 '졸부'의 마음은 어땠을까.주인공 김종섭 하사 같은 '객지 졸부'의 가슴 아린 사연의 편지와 이야기가 어디 이뿐일까. 남과 북으로 허리 잘린 채 다시 맞은 6·25전쟁 70주년 현충일, 6일 오전 10시 추념의 소리는 도심 소음 속에서도 1분간 울려 퍼졌다. 조기(弔旗)를 단 집은 비록 띄엄띄엄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날을 잊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증거니 다행이랄까.이런 현충일에 읽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절절히 읊은 경북 성주 출신 김태수 시인의 시집 '외가 가는 길, 홀아비바람꽃'은 우연인가, 인연인가. 전쟁 직전 북쪽 평안북도 희천에서 만난 총각의 고향, 성주로 시집가는 딸의 신행(新行)을 따라왔다가 결국 6·25로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시인 외할머니의 애절한 망향가(望鄕歌)가 애달프다.가보가 된 김종섭 하사의 편지와 남북 이산의 아픔과 함께 망향의 슬픔을 담은 시집 한 권으로 70주년을 맞은 6·25를 다시 생각한다. 현충일 조기를 내리는 늦은 시간, 어둠 속에 사라진 낮이 다시 밝은 새 아침이 되듯 잘린 허리는 다시 하나로 이어지겠지. 김 시인의 절규처럼 '압록강이건 두만강을 건널' 때도 오리라. 언젠가는 꼭.

2020-06-09 06:30:00

[야고부] 전단(傳單)

[야고부] 전단(傳單)

전단(傳單)은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낱장의 종이 인쇄물을 말한다. 주로 상업적 목적의 홍보 수단으로 널리 쓰이는데 속칭 '지라시'라고도 불린다. 지라시는 일본말로 '흩뜨림'이라는 뜻이다.일제강점기 때 유입돼 널리 쓰인 '삐라'도 전단의 일종이다. 삐라의 정확한 유래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19세기 말 일본에서 계산서나 청구서의 뜻을 가진 영어의 '빌'(bill)을 '비라'라 발음하면서 이후 된소리인 '삐라'로 변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공교롭게도 빌의 라틴어 어원이 '빌라'(billa)다. 빌은 전단, 광고, 벽보의 뜻도 있다.한국전쟁 당시 심리전 수단으로 삐라가 널리 쓰였다. 적진을 동요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내용을 담은 삐라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해 비정규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것이다. 이 기간 남북한 곳곳에 뿌려진 삐라만도 자그마치 30억 장에 이른다고 한다.1960, 70년대를 되돌아보면 각 정당들이 공식·비공식으로 정치적 선전 목적의 삐라를 살포한 사례가 흔했다. 대학가 운동권 조직의 선전 수단으로 대자보가 자리 잡기 전까지 삐라가 널리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어 순화 운동과 행정 용어 기준이 바뀌면서 현재 '삐라'라는 말은 거의 사라지고 '전단'이 대세다.최근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가 계속 말썽이다. 대북 전단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근래 들어 북한 수뇌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부각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며칠 전 김여정 명의로 담화를 내고 '똥개들'(탈북민 단체를 지칭)의 망동을 막지 못했다며 대놓고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이에 정부가 무차별적인 전단 살포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과 접경 지역민 안전을 이유로 '대북 전단 금지법' 제정 움직임을 보이자 미래통합당이 즉각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빈정대며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전단과 삐라가 선전과 표현의 수단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무조건 막고 금지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대를 자극하는 대북 전단 살포로 남북관계 단절을 부를 위험성이 크다면 이는 결코 현명한 행위가 아니다. 분별 없는 전단 살포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2020-06-07 18:58:16

[야고부] 착잡한 현충일

[야고부] 착잡한 현충일

'피아(彼我)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多富院)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조지훈의 시 '다부원에서' 중 일부다. 6·25전쟁 때 공군 종군문인단에 소속된 조 시인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고 이 시를 썼다. 다부동으로도 불리는 이곳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국군·미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다부동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은 북한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 백선엽 장군이다. 그는 1950년 8월 낙동강 전선 최대 격전인 다부동전투에서 8천200여 명의 병력으로 북한군 2만1천여 명의 총공세를 한 달 이상 막아냈다.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도망치려 하자 백 장군이 맨 앞에 나서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고 독려해 승리를 이끌어냈다.국가보훈처가 6·25전쟁 영웅인 백 장군 측에 "장군이 돌아가시면 서울 현충원에는 자리가 없어 대전 현충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면서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해 논란을 빚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백 장군이 사후(死後) 현충원에 안장되더라도 친일파로 찍혀 뽑혀나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마저 나왔다.오늘은 현충일. 대한민국을 지켜낸 100세 호국 원로가 조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현실이 참담하다. 백 장군이 나라를 위해 세운 공(功)은 그의 허물보다 훨씬 높고 크다. 호국영령들의 안식처인 현충원에 백 장군이 들어가지 못한다면 누가 들어갈 수 있나. 자신을 '토착 왜구' '민족 반역자'로 매도하는 좌파 인사들을 보며 백 장군은 어떤 생각을 할까. 호국영령들이 하늘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며 뭐라 할지 마음이 착잡해지는 현충일이다.

2020-06-05 19:56:29

[야고부] 기억과 트라우마

[야고부] 기억과 트라우마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육체적 충격은 마음의 상처 즉, 트라우마를 남긴다. 전문 용어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도 한다. PTSD 증상은 개인에 따라 충격을 겪은 즉시 시작될 수도 있고 수일, 수주, 수개월 또는 수년~수십 년이 지나서 나타날 수도 있다.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기억을 다르게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것은 너무 과하게 기억하고, 어떤 것은 너무 적게 기억한다. 기억이 파편화된 나머지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사건을 논리적으로, 순차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예컨대 성폭행 피해 여성이 범인의 냄새 같은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하는 반면, 사건 후 누가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갔는지 등과 같은 사항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식이다.정의기억연대(정의연) 운영 난맥상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인신공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군과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친일파다' '대구스럽다' '치매에 걸렸다'는 등 왜곡과 비하, 혐오도 서슴지 않는다. 혹자는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겪은 과거에 대한 인터뷰 진술이 엇갈리거나 세부 내용에 다른 점이 있다며 '위안부로 끌려간 게 맞느냐'는 식의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성폭력 피해자의 진정성과 신뢰성은 진술과 증언의 '비일관성'에 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문화비평가 슬라보예 지젝(71)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지적했다. "강간당한 여성의 진술에 진정성이 있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그 진술이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고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주체가 자신의 경험을 진술할 때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면이야말로 그 진술에 진정성이 깃들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나머지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몸과 마음이 짓밟히는 질곡을 겪었으면서도 평생을 죄지은 사람처럼 살아온 할머니들이다. 그들의 트라우마 기억이 조각나 있거나 변형돼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할머니들로서는 위안부 피해 실상을 세상에 증언하기 위해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일 수 있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야만적 2차 가해는 중단해야 한다.

2020-06-05 06:30:00

[야고부] 문 정권의 과거 지배

[야고부] 문 정권의 과거 지배

지금의 중국은 2차대전 승전국이 아니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다. 공산당은 국민당과 국공 합작으로 항일전쟁에 나섰으나 전투를 최대한 피하면서 전력을 보전했다. 국민당의 무능·부패와 함께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발판이다. 이게 알려지면 공산당의 정통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중국이 '과거 세탁'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참가한 가운데 대대적으로 개최한 '항일전쟁 승전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승전 70주년 기념식'은 좋은 예다. 공산당이 항일전쟁을 이끌었다는 소리다. 중공이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단 한 번도 '항일전쟁승리기념일'을 경축하지 않았다. 장(蔣)에 대한 찬양이 되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중공은 일변했다. 그해 9월 3일 처음으로 '한일전쟁승리기념일'과 '반파시즘전쟁승리기념일'을 합쳐 치렀다. 1987년 천안문 학살로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이 의심받자 이를 막기 위해 장쩌민(江澤民)이 기획한 '애국주의 교육'의 일환이었다.과거 세탁은 푸틴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푸틴은 처음 집권했을 때는 스탈린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스탈린 시대를 미화하고 오점은 지워 나갔다. 스탈린을 치켜세워 자신의 권위주의 통치를 방어하기 위함이었다.대표적인 사례가 강제노동수용소 중 유일하게 남은 '페름 36 수용소'의 변모다. 이 수용소는 1995년 박물관으로 개조돼 스탈린의 잔혹함을 생생히 알려줬다. 하지만 푸틴이 재집권한 2012년 지방정부에 몰수된 뒤 폭압 통치의 증거는 제거되고 '17세기부터 존재했으며 소련은 단순히 교정 시설로 활용한' 시설이 됐다.문재인 정권도 과거 세탁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로 치켜세웠다. 이어 여당은 전직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말끔히 지우려 하고, 급기야 그 대표는 "잘못된 현대사에서 왜곡된 것을 하나씩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 현대사 전체에 대한 지배의 선포나 진배없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다. 이 정권의 과거 지배 기도를 접하면서 그 탁견(卓見)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2020-06-04 06:30:00

[야고부] 대구니 ‘대구스럽지!’

[야고부] 대구니 ‘대구스럽지!’

"이 사람을 반드시 보고자 한다."조선의 정조 임금이 대구에 사는 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벼슬 자리도 주려 했다. 정조가 만나려 했던 사람은 최흥원이다. 굳이 왜 멀리 팔공산 자락 대구에 사는 그를 보려 했을까. 정조가 밝힌 이유는 간단했다.그의 행실이다. 그는 오늘날의 기금(基金)과 같은 선공고(先公庫)와 휼빈고(恤貧庫)를 만들었다. 이름처럼 '공적인 일에 먼저 쓰는 곳간'인 선공고는 흉년과 풍년에 이자를 달리하여 받은 수익을 떼내 마을 주민 세금으로 썼다. 또 휼빈고를 통해서는 땅을 나눠 주며 생계를 잇게 했다.오랫동안 당파의 부패한 집권 세력이 유난히 차별하고 멀리했던 남쪽의 외진 남인(南人) 고을인 대구의 한 선비가, 나라도 못 하는 일을 몸소 하니 어찌 고맙고 기쁘지 않았겠는가. 물론 최흥원의 마을 공동체 배려는 앞선 세종 시절 나라 안보에 필요하다는 말에 오늘날 달성공원 땅까지 바치고도 대신 대구 백성의 세금 부담을 덜게 해 달라고 했던 서침 같은 사람의 정신과도 통한다.대구에서는 이처럼 나라와 이웃을 헤아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1907년 나랏빚을 갚자고 술 담배를 끊었던 대구 남자들, 비녀와 반지까지 내놓았던 대구 여인들, 일제 압박 속에 마을 공동체의 대동(大同) 사회 건설을 위해 뭉쳤던 대구의 청년 지사들의 행적 등 숱하다. 특히 이런 흐름은 경제난에도 지금껏 이어진 대구 기부 문화와도 이어져 다른 곳보다 돋보인다.이런 대구를 이를 때 어울리는 말이 '대구스럽다'이다. 그런데 요즘 여성인권활동가의 삶을 사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두고 온라인에 떠도는 말이 너무 험악하고 도를 넘고 있다. 게다가 대구를 끌어들여 허접한 말과 글로 할머니와 대구를 함께 겨냥하며 조롱한다. 그러나 대구의 역사적 배경과 할머니의 힘들었던 옛 삶을 떠올린다면 함부로 내뱉을 말은 결코 아니다.대구와 할머니를 폄훼하고 싶은 새가슴의 사람이라도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이 과연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돌아보고 비록 가상 공간이긴 하지만 말과 글을 쓰레기 버리듯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정녕 그러고 싶다면 대구에 한번 들러 '대구스럽다'는 말뜻부터 새기고 나서 그리하길 바란다.

2020-06-03 06:30:00

[야고부] 노벨상금 유감(遺憾)

[야고부] 노벨상금 유감(遺憾)

노벨상 상금 액수는 크다. 현재 900만스웨덴크로네(약 10억9천200만원)이다. 이를 공익적 용도로 쓴 경우는 물론 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쓴 경우도 있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상금을 이혼 위자료로 준 것이다. 그는 여성 편력이 심했다. 1903년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했으나 얼마 뒤부터 훗날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엘자 레벤탈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참다못한 밀레바는 1919년 이혼하면서 "노벨상을 받을 경우 전처에게 상금을 위자료로 준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을 확신했다고 한다.'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활용해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경제 행동을 한다'는 '합리적 기대 가설'의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정은 뒤로하고 연구에만 전념했다. 이에 그의 부인은 '7년 내에 노벨상을 받으면 상금의 절반을 위자료로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이혼했고, 딱 7년 뒤인 1995년 루카스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러자 세간에서는 '합리적 기대 가설'을 전처가 '증명'했다는 농담이 회자됐다. 전처는 노벨상금을 이혼 위자료로 요구하면서 "당신같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연구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꼭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당시 루카스의 학자적 명성과 업적에 비춰 '합리적 기대'였다는 것이다.1953년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처칠 영국 총리도 상금을 개인적 용도, 빚 청산에 썼다. 처칠은 1929년 미국 증시에 투자했다가 대공황으로 '쪽박'을 찼다. 이후 평생을 돈에 쪼들리다 노벨문학상을 받고서야 돈 걱정에서 벗어났다고 한다.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가 남긴 유산을 놓고 배다른 형제끼리 볼썽사나운 다툼을 벌이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DJ의 노벨평화상 상금이다. 11억원 중 현재 8억원가량 남아 있는데 삼남 홍걸 씨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전액 기부한다'는 이희호 여사의 유언에 따른 약속을 어기고 인출해 갔다는 것이다. 상금을 2001년 아태재단에 기탁했다가 2003년 재단이 연세대로 넘겨지면서 슬그머니 찾아온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DJ는 "국민에게, 민족에게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사정을 보면 정말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2020-06-02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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