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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文정권의 역사 뒤집기

[야고부] 文정권의 역사 뒤집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하는 일은 기록·사실을 조작하는 것이다. 지시를 받아 신문·공문서 등에 실린 경제 수치나 날씨 같은 팩트를 고쳐 쓰며 현재에 맞춰 과거를 수정한다. 그가 근무하는 기관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진실부'(Ministry of Truth)다. 독재정권이 현재에 맞춰 과거를 고치는 이유는 정권을 향한 비판이나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1984'에 등장한 일들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파묘(破墓)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했다. 파묘 대상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좌파 진영에선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기준으로 60여 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이 문제라고 했던 터다. 이 논리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도 파묘 대상이다. 조선 사화(士禍) 때의 '부관참시'를 목도할지도 모를 일이다.대법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2년 형을 확정한 한명숙 전 총리의 판결도 여권은 뒤집겠다고 나섰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든 정황이 한 전 총리가 검찰 강압 수사와 사법 농단의 피해자라고 가리킨다"고 불을 지폈다. 여권이 재조사 근거로 내세운 비망록은 그 내용이 허위로 판단돼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유죄 증거로 판단한 한 전 총리 동생 전세금에 쓰인 1억원 수표에 대해선 여권은 무시한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려는 게 사법 농단 아닌가.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1987년 칼(KAL) 858기 폭파 사건을 두고 "진상 조사가 미진한 게 너무 많다. 조사 결과를 재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모두 북한의 폭탄 테러로 결론을 내렸다. 좌파 정권에서 조사한 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가.정부·여당은 총선 압승을 무기로 역사 뒤집기에 광분 중이다. 보수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조사로 '보수=적폐' 프레임을 계속 우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거돈·윤미향 사태로 수세에 몰린 국면 전환 노림수도 깔렸다. 박근혜 정권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논란을 일으켰다. 입맛대로 역사를 재단하려는 것은 어느 정권이나 도긴개긴이다.

2020-05-27 06:30:00

[야고부] 대가야 르네상스

[야고부] 대가야 르네상스

가야산 깊은 산골에서 성스러운 용모와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산신 '정견모주'가 인간이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 주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어느 봄날 이를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가'가 오색 꽃구름 수레를 타고 가야산 중턱 가마바위에 내려앉았다. 산신과 하늘신 사이에 옥동자가 둘 태어났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아우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난생설화와 함께 전하는 대가야 건국의 천손강림신화이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는 1980년대부터 고분군 발굴과 함께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재조명이 본격화되었다. 2010년에는 드라마 '김수로왕'이 방영되고, 학계의 연구와 출판도 잇따랐다. 6C에 이르기까지 낙동강 일대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던 가야 연맹 왕국은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그러나 동아시아 고대사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가야는 '잃어버린 왕국'에서 강력한 '제4의 제국'으로 부상할 태세이다. 가야는 '철의 강국' '해상 교역 대국' '다문화 문명국'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가야가 한반도 토착 세력과 북방 흉노족 그리고 남방 인도인 집단까지 결합한 연맹체였다면, 비록 영토는 넓지 않았지만 세계 문명을 가슴에 품은 '작은 거인'이었던 셈이다.가야는 유라시아 문명의 용광로였다.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등 가야 연맹체 500년의 생명력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벼농사와 토기 제작 그리고 철기 문명과 가야금 등 가야 문명의 유산은 한반도 역사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도 짙게 스며 있는 것이다. 가야사 연구 복원과 활용 사업의 법적 근거인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이는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발굴·복원'과 더불어 '영호남 상생 발전'의 기반 확충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령군에서는 지산동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통합과 애민의 상징인 가야금의 세계화, 대가야 궁성지와 관방 유적 발굴·정비 등이 순풍을 탈 것으로 보인다. 가야 문명의 부활은 지역 정체성 확립과 주민 대통합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영호남 동반 성장과 국민 대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는 그야말로 '대가야 르네상스를 기대한다.

2020-05-26 06:30:00

[야고부] #덕분에 챌린지

[야고부] #덕분에 챌린지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로는 간 때문이야 ♬'2011년 크게 유행했던 CM송이다. 간 기능 개선 약품 광고인데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와 독특한 퍼포먼스로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패러디도 낳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들을 때마다 마뜩잖았다. '간 때문'이라는 카피 때문이었다.'때문'은 '어떤 원인이나 까닭'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비숫한 말로는 '덕분'과 '탓'이 있다. '덕분'은 긍정적 맥락에서, '탓'은 '부정적 맥락'에서 쓰고 '때문'은 두 맥락에서 다 쓸 수 있다. 그러나 ' 간 때문이야'라는 문맥 속에서는 부정적 뉘앙스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간으로서는 이 카피가 못내 서운할 수 있겠다. 무심한 주인이 몸 속에 부어넣는 알코올, 니코틴, 스트레스를 해독하느라 그 고생을 하는데도 자기 탓을 하니 말이다. 피로감은 나쁜 물질 몸속에 그만 넣고 스트레스를 줄이라며 간이 주인에게 보내는 SOS가 아닌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간 때문에 피로한 것이 아니라 간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다.말은 바깥으로 표출된 마음이다. 부정적인 말 많이 하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세상을 좋게 바꾸는 것의 시작은 좋은 생각과 말이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쓰면 '다들 힘내'가 된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고 '역경'도 뒤집으면 '경력'이 된다. '그러면 안 돼'도 '그러면 돼'로 바꿀 수 있다. 생각과 말을 바꿈으로써 훨씬 아름답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코로나19 팬데믹에서 눈길 끄는 캠페인이 있다. '덕분에 챌린지'다. 코로나19 방역에 헌신하는 대한민국 의료진을 격려하는 국민 참여형 캠페인이다. SNS 등에 '존경'과 '자부심'을 뜻하는 수어(手語) 동작 사진이나 영상을 올린 뒤 '#덕분에캠페인' '#덕분에챌린지' '#의료진덕분에'라는 해시태그를 붙인다. 그러고는 챌린지를 이어갈 참여자 3명을 지목하는데 이달 18일 현재 2만4천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코로나19는 인간사회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혐오와 증오를 부추긴다. 이 최악의 바이러스와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현대의학과 연대라는 두 방패를 동원해야 한다. '덕분에 챌린지' 같은 캠페인은 효과가 뛰어난 심리적 백신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2020-05-25 06:30:00

[야고부] 루스벨트와 문재인

[야고부] 루스벨트와 문재인

2012년 8월 MBC '100분 토론'에서 진행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2차 TV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롤 모델을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닌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선택했다. 문 후보는 "루스벨트는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의 대번영 시대를 만들어낸 분"이라며 "그 위기를 극복한 정책이 바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였다"고 밝혔다.문재인 대통령이 심모원려(深謀遠慮)에서 한국판 뉴딜(New Deal)을 들고 나왔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문 대통령은 한 달 전 비상경제회의에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하라"고 부처에 지시했다. 취임 3주년 대국민 연설에서도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미래 선점 투자"라고 강조했다.루스벨트는 소수 정당에 불과했던 민주당의 장기 집권 문(門)을 연 인물이다. 유일무이하게 대통령을 네 번 연임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젠하워를 제외한 트루먼-케네디-존슨으로 이어지는 30년 넘는 민주당 장기 집권 토대를 놓았다. 한국판 뉴딜에 성공해 더불어민주당 장기 집권을 이루려는 문 대통령이 뉴딜, 루스벨트를 소환(?)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문 대통령이 루스벨트의 뉴딜과 함께 그의 리더십도 배웠으면 한다. 루스벨트를 '두려움에 맞선 불굴의 CEO'로 규정한 앨런 액슬로드는 루스벨트의 국가 위기 극복 원동력을 '통합'에서 찾았다. 루스벨트는 언제나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으려 했고 편을 가르려 하지 않았다. 국민 전체를 중시했고 어느 한쪽에 쏠리는 일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패배와 승리, 전쟁의 변화하는 운명도 함께 나눠야 한다"고 '노변정담'을 통해 역설했다.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을 뿐 조국 사태로 상처를 입은 국민을 어루만지지 않았다. 탈원전 등 국익보다 지지층을 염두에 둔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에 더 필요한 것은 뉴딜보다 국민 통합의 루스벨트 리더십이다.

2020-05-22 19:14:31

[야고부] 국회 지붕 꿀벌 뜻은?

[야고부] 국회 지붕 꿀벌 뜻은?

매일신문 |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신종(神鐘)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국보 성덕대왕신종 즉 '에밀레종'에는 1천 자가 넘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종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 어린아이를 넣었다는 전설을 지닌 봉덕사 신종은 세계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종으로도 널리 알려진, 신라 장인들의 혼이 녹아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4명의 장인(주물사)이 참여, 20년 세월에 걸쳐 만든 18.9t 무게의 신종은 771년 완성된 뒤 우여곡절을 겪었다. 처음 봉안된 봉덕사가 수해로 유실되면서 700년 넘게 땅속에 묻혔다 조선 세조 때 영묘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다시 종각 소실로 방치되다 이후 하루 세 차례 시간의 흐름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그런데 이 신종에는 신라 사회의 양봉(養蜂) 역사가 깃들어 있다. 신종에 대한 연구 결과, 당시 종의 주조 방법은 납형법(蠟型法)이었다. 즉 꿀벌 집에서 추출한 밀랍(蜜蠟)을 사용했다. 벌통 1개에 연간 생산 밀랍을 1~2ℓ로 보면 20t 무게 신종 주조에는 약 4천~5천 개의 벌통이 쓰인 것으로 추정됐다.신라는 불교의 나라였다. 헤아릴 수 없는 사찰이 줄을 이었다. 사찰마다 크고 작은 종들이 주조됐을 법하다. 에밀레종만큼은 아니라도 밀랍이 쓰였을 가능성은 분명하다. 신라의 양봉 발달은 짐작할 만하다. 자연의 꿀벌 집만으로는 이런 대량의 밀랍 공급은 힘들 터이니 인공의 양봉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리라.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종을 만드는 데 귀하게 쓰였던 꿀벌의 집이 올 초 나라 한복판, 아수라장 같은 서울 여의도 국회 건물 옥상에 마련된 뒤 21일 처음 꿀을 따는 채밀(採蜜) 행사가 열렸다. 불자인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제안으로 설치된 벌통 12개에 꿀벌 100만 마리가 모은 꿀을 따는 행사였다.거둔 꿀은 청소근로자 등에게 주고 농업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도시 생태 복원에도 도움이 된다니 그 뜻이 가상하다. 이왕이면 부지런하고 서로 도우며 '왕벌'에게 충성하는 꿀벌과 그들의 집조차 진리를 전하는 종을 만드는 데 쓰인 것처럼 여의도 식구들도 왕인 국민을 위하는 꿀벌만큼만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0-05-22 06:30:00

[야고부] 新중년 이혼

[야고부] 新중년 이혼

'누가 지금/ 문밖에서 울고 있는가/ 인적 뜸한 산 언덕 외로운 묘비처럼/ 누가 지금/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 그대 꿈은/ 처음 만난 남자와/ 오누이처럼 늙어 한 세상 동행하는 것/….' 장석주의 시 '애인'에서 남자는 문밖에서 울고 있는 여자에게 연민과 원망이 교차한다. 백년해로하려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엇갈린 인연에 대한 회한이다. 시린 가슴에 남은 추억만으로는 이제 와서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가수 박강성의 노래 '문밖에 있는 그대'는 좀 더 냉정하다. '마지막 눈길마저 외면하던 사람이/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오늘은 거기서 울지만/ 그렇게 버려둔 내 마음속에 어떻게 사랑이 남아요'라며 아픈 사랑을 이제는 잊자고 울먹인다. 시와 노래에서는 그래도 최소한의 낭만이라도 남아 있다. 현실은 훨씬 더 각박한 듯싶다. 오랜 세월의 동행이 차라리 무색하다.영국의 어느 노부부가 100세를 2년 앞두고 이혼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숱한 세월의 부부 생활이 일락서산(日落西山) 직전에 파경을 맞은 것이다. 2000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열정적 키스를 선보였던 앨 고어 전 부통령 부부도 40년의 동행을 황혼이혼으로 마감했다. 올봄에는 가수 혜은이(65)가 30년 부부의 인연에 마침표를 찍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늦은 나이에 동반자의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결혼 60주년이 되는 회혼례(回婚禮)를 귀하게 여겼다. 그런데 100세 장수 시대를 맞은 오늘날 오히려 그게 더 어려워졌다. 역설이다. 이제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말도 사라질 모양이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면서 젊은 시절 3, 4년 함께한 부부보다 30~40년 동행한 부부의 이혼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다.대구여성가족재단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50~64세 신중년 남녀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혼을 고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280여 건에 불과했던 실제 이혼 건수도 1천340건으로 늘어났다. 월간 샘터에 소설 '가족'을 오랜 세월 연재했던 작가 최인호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공동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이 또한 허사(虛辭)이던가.

2020-05-21 06:30:00

[야고부] 소는 누가 키우나?

[야고부] 소는 누가 키우나?

나라에서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돈을 준 적이 있었던가. 집권 세력이 입에 올린 태종·세종도 하지 못한 일이다.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아 든 국민으로서는 감읍(感泣)할 일이다. 대통령 지지율 60~70%가 웬 말인가. 90%를 넘어 100%에 육박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또 한 번 이 땅의 백성에게 선사(?)했다.모든 일에는 양(陽)과 음(陰)이 같이 있는 법.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필요성이 없지 않지만 그늘도 도사리고 있다. 전체 예산 14조3천억원을 마련하느라 여기저기서 등골이 휠 지경이다. 적자 국채 발행으로 3조4천억원을 조달해야 한다. 나라 곳간에 돈이 부족해 불가피하게 적자 국채를 찍을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가 나중에 갚아야 할 국채는 올 들어 65조7천억원이나 늘어 753조5천억원에 달한다. 재난지원금에 지방비 2조1천억원이 포함됐는데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지방으로서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국가가 빚을 지는 것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국민에게 나랏돈을 퍼주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공장을 짓거나 도로를 놓는 등 생산적 활동을 위해 빚을 내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차관(借款)으로 일어선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나 기업, 은행 등이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와 도로를 놓고 공장을 지어 철과 배,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다.재난지원금으로 말미암은 더 큰 그늘은 포퓰리즘(populism)의 지옥문을 열어젖혔다는 것이다. '공돈'이 주는 달콤한 맛을 본 국민은 코로나와 비슷한 재난이 닥칠 때는 물론 온갖 이유를 앞세워 나라에 돈을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현금 살포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한 정권은 빚을 내서라도 나랏돈 퍼주기에 더 열을 올릴 것이다. 국민과 정권 모두 '포퓰리즘의 노예'로 전락하는 첫발을 뗀 셈이다.나랏빚을 내 마련한 재난지원금으로 한우 파티를 하고, 명품 쇼핑을 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비정상의 극치다. 재난지원금이 몰고 온 부작용, 앞으로 닥쳐올 더 큰 폐해를 걱정하며 이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는 누가 키우나?"

2020-05-19 19:08:35

[야고부] 대통령의 ‘대안적 사실’

[야고부] 대통령의 ‘대안적 사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미국의 범죄율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이었다. FBI(연방수사국) 표준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범죄율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낮았다. 그러나 이런 객관적 사실은 그에게 소용없었다. 트럼프의 핵심 측근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7월 27일 CNN방송 대담에서 앵커 앨리슨 캐머로타가 객관적 사실을 들이댔지만, 벽에 대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깅리치: 장담하건대 일반적인 미국인이라면 범죄율이 낮아졌다고,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캐머로타: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요. 더 안전해졌고 범죄율은 낮아졌습니다. 깅리치: 아뇨. 그건 당신의 의견일 뿐입니다. 캐머로타: 의견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국가기관인 FBI에서 내놓은 사실이라고요.""깅리치: 하지만 제 말도 사실입니다. 진보 진영에서 이론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는 온갖 통계 자료를 제시하지만 인간 세상이 통계 자료 같지는 않다는 게 최신 관점이죠. 캐머로타: 아니, 잠깐만요. 지금 진보 진영에서 그럴싸한 통계 자료를 사용한다, 신비로운 숫자 놀음을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지적한 것은 FBI에서 제시한 자료입니다. 거기는 진보주의 기관이 아니에요, 범죄와 싸우는 기관이라고요."결말은 가관이었다. "깅리치: 맞아요. 제가 말한 것도 똑같이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위협을 크게 느끼고 있어요. 캐머로타: 느끼고 있다, 그렇죠. 느낌일 뿐 사실로 뒷받침되지는 않죠. 깅리치: 저는 사람들 감정을 따를 테니 그쪽은 이론가들 말이나 따르시죠."문재인 대통령이 17일 방영된 광주MBC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들이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엔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기념사에서 이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은 지금과 같은 민주화 사회를 이루는 초석이 됐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겠다"고 했다.문 대통령은 이를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내 편'의 '감정'을 따른 것일까, 아니면 자신만의 '대안적 사실'이 있는 걸까.

2020-05-18 20:01:12

[야고부] 언젠가 만날 그날까지

[야고부] 언젠가 만날 그날까지

'언젠가 만날 수 있는 그날까지.'지난 4일 자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 인터넷 기사로 뜬 보도 일부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강제징용 외교 갈등에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친 탓에 사실상 모든 교류가 중단된 한일(韓日) 두 나라의 험악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대학생들 사이에 인터넷을 통해 서로 주고받은 사연을 소개한 기사이다.2018년에는 무려 1천만 명에 이르렀던 양국 교류였다. 그러나 냉각된 교류는 코로나19로 그나마 이뤄지던 대학생 교류마저 끊어버렸다. 이에 지난달 20일부터 9일 동안 일본 공익재단법인인 '일한문화교류기금'은 서로의 나라에 갇힌 학생들에게 단절된 인연의 끈을 잇기 위해 온라인 교류 창구를 마련했다.소위 '집에서 일한(日韓) 교류'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이번 사업에는 한국의 대구를 비롯해 일본의 도쿄, 후쿠오카, 나고야 등지에서 모두 118명이 참가했다. 온라인을 통해 서로의 답답함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여기에는 서로 안부를 걱정하는 진한 배려도 배어났다.이 같은 '집에서…교류'의 사연이 대구의 일본 연구자 등에게 소개된 까닭은 코로나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대구의 일본인 여성들이 망향(望鄕)의 정을 담아 만들어 공유한 '이코이(憩い)합창단'의 영상 소식이 일본에까지 알려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린 영상이 그들의 바람처럼 고국에도 전달된 셈이다.한일을 잇는 하늘, 땅, 바다의 길이 모두 닫힌 데 따른 단절의 힘든 현실은 대구 일본인 여성이나, 한일 두 나라 대학생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런 동병상련이었기에 '집에서…교류'를 통해 이어진 한일 대학생 교류 사례를 대구에도 전파해 합창 영상으로 고향 일본은 물론 대구경북 이웃과 나누며 코로나 극복에 나선 대구의 동포 여성들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코로나19가 일상을 삼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방역 지침으로 생활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만은 코로나도 막을 수 없음은 물론, 갈등 속의 한일 두 나라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없애는 교류만큼은 바람직함을 확인한 두 사례이다. 마음이 가야 몸도 따르니, 한일의 행동 교류에 앞선 마음 교류 소식만으로도 다행스럽다.

2020-05-18 06:30:00

[야고부] ‘스승의 날’을 보내며

[야고부] ‘스승의 날’을 보내며

16세기 조선의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나이와 세대, 직위와 경륜, 그리고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학문적인 선후배 또는 사제 관계로 편지를 통한 학술 논쟁을 이어갔다. 우리 정신사에 길이 남을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이다. 극진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권위에 주눅 들지 않았던 고봉의 패기와 학문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퇴계의 개방적인 자세가 돋보이는 영혼의 교류였다.추사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은 역관 가문이었다. 그러나 추사는 시와 글씨에도 능한 이상적을 예술의 후배로 학문의 제자로 삼아 인간적인 교류를 아끼지 않았다. 스승을 존경했던 이상적은 청나라를 오가며 구한 최신 서적과 예물을 들고 추사의 귀양지인 제주도를 찾았고, 제자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추사는 한 폭의 그림을 전했다.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이다.스승의 날을 맞아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찾아온 제자가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임이자 국회의원(재선)이다. 임 의원은 이 지사가 1978년 수학 교사로 첫 부임했던 상주 화령중 시절의 제자이다. 사제 간에 나란히 금배지를 단 경우도 드물거니와 선배 정치인이었던 이 지사를 늘 '의원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는 임 의원의 덕담도 흐뭇하다.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사제지간의 따뜻한 이야기는 각박한 세상에 온기 가득한 등불 같다.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을 통해 성악가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트바로티 김호중의 인생 역전에도 한 사람의 스승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호중은 부모의 이혼으로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형편이 어려워 좋아하는 음악 공부도 할 수가 없었다.방황하던 비행 청소년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해외 유학으로 인도해 준 사람은 바로 고교 시절 은사였다. 제자의 음악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헌신적으로 이끌어 준 결과가 또 한 사람의 특별한 스타를 탄생시킨 것이다. 누구나 가르칠 수가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넉넉한 시대이다. 그러나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드물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귀한 세태를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0-05-15 18:19:59

[야고부] ‘친일 세력’이란 유령

[야고부] ‘친일 세력’이란 유령

러시아 혁명 10년 뒤인 1928년 캅카스 북부 샤흐티 탄광에서 석탄 채굴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자 소련 당국은 광산 기술자들을 '사보타주'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일명 '샤흐티 재판'으로, 소련은 '제국주의 영국의 사보타주 사주(使嗾) 음모'를 날조해 5명을 총살하고 44명을 감옥으로 보냈다.이후 '외국 세력'은 스탈린이 숙청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불러낸 편리한 '유령'이 됐다. 스탈린의 숙청 희생자치고 이 유령에 당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독일군의 전격전(電擊戰) 교리와 비슷한 종심작전(縱深作戰) 이론을 설계한 천재 군인 미하일 투하체프스키가 대표적인 예다. 나치 독일과 내통했다는 것이다. 이런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스탈린은 나치를 설득해 투하체프스키와 나치 장군들이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었다는 허위 증거를 날조했다.스탈린의 충견(忠犬)으로, 내무인민위원장(NKVD)으로 있으면서 1937∼1938년의 '대숙청'을 집행했던 니콜라이 예조프와 그 수하(手下)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국과 폴란드의 간첩이란 혐의를 뒤집어쓰고 말 그대로 죽도록 두들겨 맞은 뒤 총살됐다.이런 '유령 불러내기'는 김일성도 따라 했다. 6·25전쟁 휴전 직후, '조선의 랭보'로 불렸던 월북 작가로 낙동강 전선에도 종군했던 임화를 '미군 CIC(방첩대)와 결탁한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1955년에는 박헌영을 '미 제국주의의 고용 간첩'이란 혐의를 씌워 저세상으로 보냈고, 1958년에는 김원봉을 '중국 국민당 장개석의 사주를 받은 국제 간첩'이란 죄목으로 숙청했다.'외국 세력'이란 유령과 비슷한 유령이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바로 진보 진영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불러내는 '친일 세력'이다. 윤미향 4·15 총선 당선인은 '정의연'과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를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고 했다. 이에 김두관 의원을 시작으로 여권 인사들이 '옳소'라는 '떼창'으로 추임새를 넣고, '문빠'들은 "정의연을 공격하면 토착 왜구"라고 악을 쓴다.지난해에는 조국이 1961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무시(無時)로 불러 젖히니 '친일 세력 유령'도 참 피곤할 것 같다.

2020-05-15 06:30:00

[야고부] 코로나 신풍속도

[야고부] 코로나 신풍속도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조(山口組) 두목이 '싸움 금지와 외출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은밀한 장소에 모여 세력을 과시하고 다른 조직과의 대결이 일상인 야쿠자에 이 같은 비상조치는 존재의 부정이나 다름없다. 때로는 목숨을 건 유혈전도 불사하는 폭력 조직의 냉혈한들도 코로나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야쿠자 조직의 최우선 목표가 '세력 확장'이 아닌 '건강 사수'로 바뀐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코로나는 동서양 문화에 대한 편견과 선진국에 대한 인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과 대만 등이 코로나 방역과 차단에 비교적 선전한 사례를 남긴 데 반해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일본 등 일류 국가들이 바이러스의 침투에 지리멸렬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그렇다. 코로나19는 지구촌 인류의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 대표적인 양상이 마스크의 화려한 등장이다.그래서 우리는 지금 '민낯 실종'의 세상을 살고 있다. 코로나가 세계인의 얼굴을 가려 버렸다. 두 눈만 보고 누구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마스크 천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통령도 마스크를 쓰고 노숙자도 마스크를 쓴다. 지구촌이 하나의 거대한 가면무도회장이 된 듯하다. 복면강도라는 말도 무색해졌다. 환자와 닌자(忍者)가 따로 없다.남자는 애써 수염을 깎지 않아도 되고 여자는 굳이 성형수술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스크가 일상화된다면 머잖아 값비싼 기능성 패션 마스크가 사람의 귀천을 가름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스크 시대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비접촉 문화 정착은 사회의 전반적인 풍속도와 직장 및 가정생활에도 일대 변화를 초래했다.코로나바이러스는 모든 학교와 종교시설의 기능마저 마비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코로나신(神)이 묵언수행이라도 명한 듯하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그동안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했다. 자숙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코로나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의 교훈을 잊고 또 이기와 탐욕에 집착한다면 더 독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것이다. 그때는 마스크가 아닌 방독면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2020-05-13 18:57:13

[야고부] ‘기억이 왜곡됐다’고?

[야고부] ‘기억이 왜곡됐다’고?

역사는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현재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첨삭, 변형, 왜곡, 미화된다. 그래서 한 시대의 지배적 역사상(歷史像)은 후대에는 전혀 다른 역사상으로 대체된다. 이런 기억의 가소성(可塑性)을 미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텔렌은 이렇게 정리한다."기억의 (따라서 역사의) 형성은 역동적인 과정이며, 그 과정은 대개 현재의 필요성에 봉사한다. 그것은 새로운 정보가 흡수되면서, 새로운 가치와 맥락이 특정한 시대에 부각되면서, 우리의 정체성이 바뀌면서, 우리가 다른 지향성을 가진 새로운 집단과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의 역사 기억을 다시 빚어내겠다고 결심한 다른 권위들이 우리에게 작용하면서 끊임없이 빚어지고 다시 빚어진다. 그것은 선택적 기억의 과정이면서 망각의 과정이다."세계 역사는 이를 보여주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기억'의 변화도 그런 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희생자들을 '비누'라고 부르며 멸시했다. 비누란 유대인 희생자 시신에서 나온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소문에 빗댄 '하찮은 존재'라는 의미다. 그들은 희생자들을 저항도 않고 순순히 끌려가 죽임을 당한 어리석은 존재로 기억했던 것이다.이런 '기억'은 1961년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 재판을 계기로 '변형'된다. 세계 여론이 희생자에 대한 동정으로 쏠리자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을 '비누'와 동일시했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적 희생자 의식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일명 '6일 전쟁')으로 더욱 강화되면서 윗세대의 홀로코스트 경험은 당대의 경험으로 전화(轉化)됐다."일본군 위안부 단체에 이용당했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정의기억연대와 여권 인사들이 '기억의 왜곡'으로 몰고 있다. 심각한 자기부정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 및 운영을 입증하는 자료의 부재를 이유로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정의연의 반박 논리의 핵심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이기 때문이다.'기억의 왜곡'이 맞는다면 지금까지 정의연은 '왜곡된 기억'에 홀려 허깨비를 좇은 것이 된다. '치매 노인' 취급으로 성금 유용 의혹을 부인하려다 자초한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2020-05-13 06:30:00

[야고부] 코로나19와 공동체

[야고부] 코로나19와 공동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속칭 '러브 호텔'의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한다. 코로나19에 걸리면 보건 당국의 역학 추적 조사를 받게 되는데 떳떳하지 못한 밀회를 즐겼다가 러브 호텔을 드나든 사실이 공개되면 그만한 망신살도 없을 것이다.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고 있다.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이지만 공공 안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서 가능해진 일이다. 반면, 사생활 노출을 꺼리며 방역에 협조하지 않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방역 난도는 높아지고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진작부터 클럽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례를 보니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하필이면 성 소수자들이 많이 찾는 클럽이라고 한다. 이곳 방문자들 중 상당수가 성 소수자 낙인 효과를 우려해 음지로 숨어들었다. 공들여 구축한 방역 전선이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는 누란지계 상황이다.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 치사율이 높았다면 인류의 방역 싸움이 지금보다 한결 수월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치사율이 높으면 사람들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서고 방역에도 순순히 응하게 돼 있다. 서구 선진국들도 치사율이 낮다는 이유로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초기 골든 타임을 줄줄이 놓쳤고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인류는 코로나19 사태를 반드시 수습해야 한다. 혹여나 각국의 방역이 실패로 돌아가 인류의 1% 희생자가 나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사망자 수만 7천만 명이다. 이런 규모의 재앙은 윤리적으로, 현실적으로 현대 문명사회가 감당할 수 없다. 경제적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방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야만사회다.코로나19가 노인 및 기저질환자들에게만 위협적일 거라는 생각은 대단한 착오다. 무증상인 채로 자연 치유되는 경우도 많지만 일단 증세가 심각하게 발현되면 폐, 심장 등 주요 장기에 큰 손상을 가해 기저질환자로 평생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는 인종과 나이, 지역을 차별하지 않는다. 안 걸리는 게 상책이다.

2020-05-12 06:30:00

[야고부] 태평성대인가?

[야고부] 태평성대인가?

한국갤럽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71%를 기록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취임 3년을 맞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치다. 노태우(12%) 김대중(27%) 노무현(27%)은 물론 비교적 지지율이 높았던 김영삼(41%) 박근혜(42%) 이명박(43%)보다 훨씬 높다. 지지율만 보면 어진 군주가 다스리는 태평한 시대를 일컫는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도래한 것으로 오인하기 십상이다.태평성대의 전범(典範)으로 동양에서는 요(堯)와 순(舜) 두 임금이 다스린 중국 '요순시대'가 꼽힌다. 요 임금은 어떤 비결로 태평성대를 열었을까. 명(明)의 장거정은 임현도치(任賢圖治)와 간고방목(諫鼓謗木) 두 가지로 요약했다.임현도치는 어진 이를 임용해 다스림을 도모했다는 말이다. 요 임금은 공신들에게 자리를 나눠주지 않고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발탁해 그들의 의견을 따랐다. 하자투성이 인사를 장관에 앉혀 국민을 둘로 갈라지게 하고,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친문 인사들이 줄줄이 재판정에 선 문 정권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나라 곳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제부총리를 윽박질러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는 것과 같은 식의 전문가를 안중에 두지 않은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간고방목은 간언하는 북과 비방하는 나무를 설치했다는 뜻이다. 직언·간언하고 싶은 사람이 문밖에 매단 북을 치면 요 임금은 이들을 만나 의견을 경청·수용했고, 나무를 세워 백성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글을 써서 붙이도록 했다. 독선에 빠져 탈원전 등 잘못된 정책조차 뜯어고치지 않는 문 대통령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북한 김정은의 신변 이상설을 주장한 야당 탈북민 총선 당선인들을 정권이 지나칠 정도로 비난하고, 경제가 거지 같다고 하소연한 상인을 집단 공격한 것 역시 간고방목과는 동떨어진 일이다.요 임금 때 백성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은 채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삶을 살았다. 문 대통령 3년 재임 동안 국민은 근심 없이 배불리 먹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코로나 공포가 다시 커지고, 경제 추락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폭증하는 지금, 문 대통령 지지율 고공 행진과 태평성대는 전혀 함수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20-05-11 06:30:00

[야고부] 비누 경찰

[야고부] 비누 경찰

생명체의 지상 과제는 종족 번식이다. 바이러스도 예외는 아니다.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을 숙주로 삼은 전략은 로또 당첨만큼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축을 사육하는 인류는 바이러스가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으로 변이를 일으키기에 딱 좋은 숙주다. 게다가 도시에서 밀집해서 살고 20세기 이후 들어서는 활동 범위도 전 지구적이다. 바이러스가 후손을 널리 퍼뜨리기에 이만한 조건도 없다.한편으로 인류는 몹시 위협적인 상대다. 인간은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지하는 유일무이한 생명체다. 바이러스 출몰을 인지하는 순간 인류는 갖은 치료제와 백신을 동원해 바이러스에 맞선다. 인간이 벌이는 방역 행위는 바이러스로서는 수억 년 진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돌발 변수다. 인간의 몸에 침투하는 순간 바이러스는 멸절 리스크도 함께 안아야 한다.이것 말고도 인류는 아주 강력한 바이러스 대응 무기를 갖고 있다. 비누다. 비누의 계면활성제 성분은 30초 만에 바이러스 대부분을 죽인다. 비누는 매년 수백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인류의 비누 사용이 보편화된 것은 19세기 이후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모르던 시절에는 의사들조차 손을 씻지 않은 채 메스를 들었다.여기 '비누 경찰'(Soap Police)이라는 멋진 말이 있다. 이스라엘 작가 유발 하라리가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쓴 표현이다. 비누가 바이러스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경찰 같은 존재라는 뜻에서 탁월한 은유다. 100년 전 스페인독감 이후 최악의 바이러스로 기록될 만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도 비누는 유감없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비누가 경찰이라면 마스크는 '경비대'다. 마스크 경비대는 비누처럼 바이러스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를 옮겨 다니지 못하게 단단히 봉쇄한다. 둘은 환상의 콤비다. 이 둘만 제대로 활용해도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능히 물리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기, 식중독, 눈병, 수두 등도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생활 방역이 감염병 지도 자체를 바꿔 놓는 미증유 현상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2020-05-09 07:30:00

[야고부] 권력에 취했나

[야고부] 권력에 취했나

2018년 9월 당시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동산 정책을 설명하던 중 "모든 국민들이 강남 가서 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살아야 될 이유도 없고…"라고 했다. 이어 "나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대중의 공분을 산 '강남 발언'이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모든 사람이 부자일 필요 없다. 내가 부자라 하는 말씀'이라는 뜻"이라고 비꼬았다. 인터넷엔 "내가 꿈을 이루어 보니 모든 국민이 꿈을 이룰 필요는 없다"는 조롱 글이 쏟아졌다.집값 폭등으로 민심이 들끓는 상황에서 기름을 확 끼얹은 장 실장 발언은 공감 능력 부족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은 시가 20억원이 넘는 강남 아파트에 살면서 다른 이들에겐 "강남 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강남에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애·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데서 튀어나온 발언이다.미국 심리학자 애덤 갈린스키는 '알파벳 E 실험'을 통해 사람은 권력을 가질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高)권력자 그룹은 알파벳 E를 자기 편한 대로 쓰고, 저(低)권력자 그룹은 상대방이 보기 편한 방향으로 쓴다는 것이다.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물을 보고 행동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더불어시민당 양이원영 당선자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생사기로에 선 두산중공업을 향해 "원전 노동자들을 훈련시켜 풍력(風力)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구조조정 등으로 고통을 겪는 이 회사 전·현직 직원들의 참담한 처지에 대한 공감 부족에다 대기업을 구멍가게로 여기는 데서 나온 발언이다. 온라인엔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야구선수 보고 축구 시합 나가라고 한다"는 등의 반박 글이 앞다퉈 올라왔다.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뇌가 바뀐다는 게 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활성화되는데 이렇게 되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국회엔 "아무리 좋은 사람도 6개월이면 변한다"는 격언이 있다. 금배지란 권력에 취한 일부 선량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이 얼마나 더 많이 상처를 입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2020-05-08 06:30:00

[야고부] 코로나에 빛날 ‘대구 길’

[야고부] 코로나에 빛날 ‘대구 길’

우리 근대사에서 해외 언론, 특히 일본의 거의 모든 언론에 서울보다 대구가 널리 알려진 적이 있다. 물론 슬픈 일을 계기로 알려지긴 했지만 당시 대구에 살았던 일본인(가와이 아사오) 기록에는 그리 나와 있다. 지금부터 111년 전이다."한황(韓皇)의…두 차례 머무심으로 해서 전후 4일간은 한국의 정치 중심을 대구로 옮긴 감이 없지 않았다. 당시 4일간 대구 우편국에서 취급한 외국 전보가 128통이나 있었다 한다. 그만큼 대구라는 곳이 구미 각국에 소개되었던 것이다. 대구라는 지명이 일본 내 모든 신문에 일제히 소개되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고 생각된다."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은 망국 직전인 1909년 1월 7일 대구에 도착, 하루를 머물고 8일 부산에 들러 마산 방문 뒤 12일 또 대구에서 하루를 보냈다. 마지막 왕조 임금 행차에 이토 히로부미 통감까지 따랐으니 해외 언론, 특히 일본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랬지만 대구로서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나라 밖 보도였다.이후 대구는 두 차례에 걸친 대형 지하철 참사 같은 아픔으로 해외 언론에 알려졌는데 역시 그때처럼 쓰리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대구에 대한 해외 언론의 반갑지 않은 보도와는 다른 느낌으로 대구를 다룬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바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대구 사람이 어떻게 잘 대처하여 극복하는지를 알리고 소개한 글들이다.대구의 코로나 사투 이야기 등을 자국민들에게 전해 참고토록 한 해외 언론으로는 일본 신문인 아사히와 마이니치, 영국 BBC방송, 독일 주간지 슈피겔을 비롯해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언론도 여럿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국내 일부 언론과 대구를 낮춰 보려는 부류가 대구를 마치 기피할 곳으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라 놀랍다.비록 정치적 이유로 대구가 안으로 제 모습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밖으로도 사고로 알려지는 사연을 안고 있지만 코로나19에서 보여준 대구 사람의 행동과 모습은 안팎에서 제대로 평가할 만하다. 100일 넘게 묵묵히 지낸 대구 사람 스스로도 자긍할 만하다. 오랜 아픔의 뭇 상처를 지닌 대구만의 저력일 수 있다. 끝까지 코로나를 뚫고 세계에 빛날 '대구의 길'이 나길 바란다.

2020-05-07 06:30:00

[야고부] 중국의 코로나 발원 부인

[야고부] 중국의 코로나 발원 부인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中共)은 1952년 2월 미국이 세균전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1월 말부터 북한과 만주 일대에 세균에 감염된 파리, 모기, 개미, 빈대, 이, 벼룩, 잠자리, 지네 등을 살포했다는 것이다. 일방적 주장이었으나 곧바로 세계 전역에서 대서특필되면서 사실처럼 굳어졌다.그렇게 된 데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자로 친중국 지식인이었던 영국의 생화학자 조지프 니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니덤은 당시 국제과학위원회 조사단장으로 만주를 현지 조사한 뒤 중국의 주장을 확인하는 이른바 '니덤 보고서'를 발표했다.그러나 보고서는 대부분 중국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증거와 생포된 미군 조종사의 강요받은 것일 수도 있는 증언 등을 토대로 작성됐으며, 무엇보다 중공이 발간했다는 점에서 '신뢰성'에서 많은 의심을 받았다. 현장에서 찾은 증거라는 것도 만주에서 병에 걸려 죽은 들쥐 한 마리가 고작이었다.('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 프랑크 디쾨터) 하지만 니덤의 세계적 명성은 그런 의심을 덮기에 충분했다.그러나 소련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소련 정보기관은 스탈린의 오른팔인 라브렌티 베리야에게 "가짜 전염병이 만들어졌고, 시신을 매장하고 그 명단을 발표한 것 역시 조작됐다"고 보고했다. 이어 소련 내각 최고회의 간부들은 1953년 5월 2일 이런 비밀 결의안을 채택했다. "소련 정부와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잘못 알았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세균전 무기를 사용했다는 언론의 보도는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것이다. 미군을 비난하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미국과 중국이 코로나 책임론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 발원지로 중국 우한연구소를 지목하며 "거대한 증거가 있다"고 하자 중국은 "냉전시대 화석 같은 거짓말"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코로나19의 발원지는 우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주장했었다. 미국이 세균전을 했다는 6·25 때의 거짓 선전을 생각나게 한다.중국은 코로나 발원에 관한 독립적인 국제조사도 단호히 반대한다. 우한이 코로나 발원지가 아님이 확실하다면 국제조사는 중국이 '혐의'를 벗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2020-05-06 06:30:00

[야고부] 일본인 코로나 망향가

[야고부] 일본인 코로나 망향가

매일신문 | 망향의 정 담은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사람들 가슴 먹먹'…고향 생각에 마음이 힘들어도 오늘도 힘을 냅니다. 손을 뻗치면 친구가 있습니다.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타향살이는 힘들고 외롭다. 그럴 때면 유독 더 생각하는 곳이 고향이다. 타향살이 출향인의 망향가(望鄕歌)는 절로 나오게 마련이다. 특히 1천 번 가까운 침략을 당한 터라 이산의 상흔이 나라 산천 곳곳에 절절히 배인 한국 아닌가. 그런 까닭에 망향의 정서를 담은 애조의 노래와 이야기는 차고 넘칠 만큼이다.태어난 곳을 떠난 이방인도 다르지 않다. 특히 이번 코로나19처럼 국경을 잇는 뭍길에다 물길과 하늘길까지 막힌 지구촌 비상 상황을 맞아 타국 땅에 뿌리내린 외국인이 고향 땅은 물론, 부모 형제를 그리고 걱정하는 마음은 오죽할까. 망향가 한 자락에 서로를 달랠 뿐 달려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냥 있을 수만도 없다. 그리 될 일도 아니지만.그래서 각자 머문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는 건반을 쳤다. 이런 각자의 모습을 조각 영상에 담아 엮어 지난달 27일 합성해 나눠 들으며 서로를 위로하며 코로나에 버텼다. 대구경북 낯선 땅에서 '때때로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가사처럼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찬송가에 미리 지은 노랫말을 붙인 이 영상의 제작자는 대구경북 일본 여성들로 꾸린 '이코이(憩い)합창단'이다. 이들은 지난 2017년 모여 합창단을 만들어 현재 11명이 뛰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로 고향을 찾지 못한 스스로와 서로 갇힌 대구경북 이웃에게 몸과 마음의 휴식을 주고자 만들었으니 고마울 뿐이다.대구에 민간 일본인이 첫발을 내디딘 1893년 이래, 숱한 일본인이 대구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번처럼 괴질로 고향 가는 하늘, 땅, 바닷길 모두 막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슬픈 시절도 있었을까. 궁(窮)하면 통(通)하기 마련. 이번 영상물은 바로 그런 결과였다.주변 지인들과 공유한 1분37초짜리 짧은 망향의 영상은 시청자 마음을 녹이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가 손을 뻗치면 친구가 되고, 혼자가 아님을 확인케 한 영상이다. 갈등의 오랜 역사 속 아픔을 넘어 대구경북 삶터에서 서로 기대고 비빌 언덕이 되려는 그들 바람이 현실이 되길 바랄 뿐이다.

2020-05-05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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