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섬유업 선구자' 이승주 전 국제염직 회장 영면

세계 최초 염색업체 집적 산단, 폴리에스터 감량가공 첫 개발
금탑산업훈장·서상돈상 수상…비산염색공단 조성 등 섬유·염색업계에 큰 족적
지역 섬유인들 "업계의 큰 별을 잃었다"

2016년 매일신문 인터뷰 당시 이승주 회장. 2016년 매일신문 인터뷰 당시 이승주 회장.

대한민국 섬유·염색산업의 산 증인이자 대부(代父)로 불리는 이승주 전 국제염직(현 국제텍㈜) 회장이 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70년대 대구에 본사를 둔 국제염직을 세계적인 감량가공 전문회사로 키워낸 이승주 회장은 대구경북을 넘어 국내 섬유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2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다소 늦은 37세의 나이에 섬유업계에 뛰어들어 1978년 국제염직 대표에 올랐다.

그는 70년대 초반 폴리에스터 직물 감량가공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섬유·염색업계의 총아로 떠올랐고,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1980~1988년)과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이사 및 부회장(1980~1989)을 역임하며 국내 섬유·염색 산업 발전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 재임 당시 이 회장은 세계 최초로 염색업체가 집적한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바로 대구 비산염색공단이었다. 지역 염색업계는 체계적인 오염원 관리, 공동 구매를 통한 비용 절감 등 전용공단의 이점을 누리며 초고속 성장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과 반월 등에 대규모 염색전문공단이 잇따라 들어섰다.

염색업 발전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이 회장은 석탑(1982년)·은탑(1987년)·금탑산업훈장(1995년)을 받았다. 2016년에는 매일신문사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 제정한 '서상돈상'의 아홉 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역 섬유인들은 이 회장의 비보에 침통해했다. 17, 18대 대구상의 회장을 지낸 노희찬 삼일방직 회장은 24일 조사를 통해 "섬유·염색업계의 큰 별을 잃은 후진들은 청천벽력의 애달픔과 비통함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 염색 산업의 고도화와 선진화를 최일선에서 견인하신 진정한 선구자이자 지도자셨다"고 애통한 심정을 전했다.

이 회장의 후배로 40여 년간 친분을 나눈 김해수 대한염직 회장도 "그분이 없었다면 한국 섬유·염색산업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의 빈소는 대구 성서 계명대 동산병원 장례식장 백합원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6일이다. 유해는 진주시 선영에 안장된다.

지난 2017년 매일신문사와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한 제9회 서상돈상 수상자 선정 당시 이승주 전 국제염직 회장. 그는 매일신문사에 상금(2천만원) 전액과 3천만원을 보태 지역경제 및 문화진흥을 위한 성금으로 매일신문사에 3천만원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에 발전기금으로 2천만원을 각각 기부했다. 매일신문 DB 지난 2017년 매일신문사와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한 제9회 서상돈상 수상자 선정 당시 이승주 전 국제염직 회장. 그는 매일신문사에 상금(2천만원) 전액과 3천만원을 보태 지역경제 및 문화진흥을 위한 성금으로 매일신문사에 3천만원을,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에 발전기금으로 2천만원을 각각 기부했다. 매일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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