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란주점·PC방·술집…코로나19로 위험에 빠진 자영업자들

[코로나19, 난민이 된 대구시민] 下
쿠팡맨·배달맨 전전하며 버텨보지만
"재확산 어쩌나" 엎친 데 덮친 이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지역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구 중구의 한 여행업체 사무실이 텅비어 있다. 한때 회의용으로 썼던 화이트보드에는 '코로나를 두려워 말라'는 붉은 글씨만 보인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지역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구 중구의 한 여행업체 사무실이 텅비어 있다. 한때 회의용으로 썼던 화이트보드에는 '코로나를 두려워 말라'는 붉은 글씨만 보인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화되면서 일부 업종 자영업자들이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다. 한 발짝만 더 밀리면 아득한 절벽으로 떨어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숨을 몰아쉬고 있다. 누가 이들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매일신문 기획취재팀은 이들의 사연을 '내러티브 저널리즘'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기구한 운명의 50대 단란주점 사장

"언니들,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어. 그럼에도 기구한 운명이 수년째 몇 번이나 나를 괴롭혀. 너무 억울해. 억울해서 못 살겠어…."

지난 25일 오후 6시. 손님이 끊겨 사실상 폐업한 단란주점에서 직장 동료 언니들과 맥주를 마셨다. 팔지도 못할 술, 이렇게라도 마셔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단란주점 업주에서 청소 용역업체 직원으로 전업한 지 반 년째. 이젠 이 주점 곳곳이 지옥만 같다.

지난해 초부터 최근까지 대구 달서구 한 전통시장 일대 지하상가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했다. 생활비와 자녀 학비를 벌려고 빚을 내 고생 끝에 차렸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점포를 하루빨리 팔아치워 빚이나 갚자는 생각뿐이다.

올해 나이 57세. 공무원 출신 남편이 수년 전 정년퇴임하면서 생활비가 급했다. 남편은 부동산에 투자한다며 우리가 사는 빌라를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월 200만원씩 나오는 퇴직연금을 꼬박꼬박 은행에 갖다바치고 있다. 전업주부였던 내가 돈벌이에 뛰어들어야 했다. 2017년 은행 대출을 더 받아 상인동 빈 상가에 미용실을 차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실상 폐업 상태인 대구 달서구의 한 단란주점에서 업주가 술을 마시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실상 폐업 상태인 대구 달서구의 한 단란주점에서 업주가 술을 마시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많이 벌진 못했지만 친한 언니들과 동네 주민들이 단골을 자처하며 매상을 올려줬다. 더 벌려는 마음에 그해 연말 미용실을 닫고 음식점을 열었다. 한 지인이 '노래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는 단란주점을 열면 많이 번다더라'는 말에 사업 전환을 준비했다.

문제가 생겼다. 2018년 어느 날 대출업체 직원이라는 사람이 휴대전화로 "보유한 금융권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솔깃했다. 대출금이 많은 탓에 금리를 낮춰 지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 필요한 만큼 입금하면 저금리 대출로 바꿔준다는 말을 믿고 신용카드 장기대출을 끌어모아 1천200만원을 송금했다. 보이스피싱이었다.

하늘이 무너질만큼 아득했다. 하루아침에 빚과 연체만 늘었다. 여러 대출 원리금을 연체한 탓에 신용도가 바닥을 쳤다. 주점 개업은 꿈도 못 꾸게 생겼다. 그대로 죽으란 법은 없었다. 친한 언니들이 주점 개업에 보태라며 300만원에서 1천200만원까지 총 4천만원을 십시일반 모아 '천천히 갚으라'며 빌려줬다.

빌린 돈으로 지난해 중순 보증금 500만원과 인테리어비 3천만원을 냈다. 월 임차료 50만원에 고정지출비 150만원씩 모두 200만원씩 들었지만 개업 후 매출이 월평균 500만원씩 나오면서 숨통이 트였다. 남편도 구청 공공근로를 시작해 월 100여만원씩 더 벌기 시작했다.

고마운 언니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돈을 돌려주고 싶었다. 밤에는 주점 장사를, 낮에는 청소 용역업체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오전 8시 청소를 시작해 오후 3시 퇴근했다. 폐교 청소 일자리를 찾은 뒤로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더 일했다. 저녁을 먹은 뒤 오후 7시 주점 문을 열었다. 오후 11시 주점 문을 닫지만 단골이 매상을 올려주겠다며 찾아올 땐 종종 자정을 넘기기도 했다.

악마 같은 코로나19가 내 삶을 덮쳤다. 한국단란주점업협회 대구지회 차원에서 2월 23일부터 4월 5일까지 임시 휴업을 결의해 수입이 전혀 없었다. 임차료 지급은 꿈도 꾸지 못했고, 단체 휴업 기간이 끝나고도 주점과 노래방을 기피하는 분위기에 한동안 손님이 없었다.

지난 4월 긴급생계지원금을 받았고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대폭 줄면서 5월부터 손님이 조금씩 늘었다.
하지만 생활이 곧바로 나아지진 않았다. 매출은 평소의 반토막도 안 됐고, 방역 수칙을 지키려다 명부쓰기를 거부하는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8월 코로나19가 재확산하자 손님이 없다시피한 날이 다시 늘었다. 안정적 일자리인 청소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가게는 휴업했고 새 주인을 찾고 있다. 가게만 팔 수 있다면 그 돈으로 빚을 빨리 갚을 심산이다.

휴가가 줄어든 아들이 11월 조기 전역하면 내년 학비는 어떻게 줘야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요즘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언니들에게 내뱉는 한탄이 더 늘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이어질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내게, 우리 가족에게 희망은 있을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지역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구 중구의 한 여행사 문이 굳게 닫겨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지역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구 중구의 한 여행사 문이 굳게 닫겨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 삶이 송두리째 바뀐 50세 여행사 대표

작년까지만 해도 50세가 된 내 삶은 더 행복할 거라 확신했다. 20년을 넘게 해온 여행사 일은 눈감고도 완벽하게 처리해 낼 정도가 됐다. 열심히 한 덕에 대구에 네 곳밖에 없는 중국 단체관광객 유치 전문여행사로도 선정됐고,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나와 내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놨다.

오전 10시, 배달사무실에 도착해 렌트한 스쿠터의 상태를 확인했다. 휴대전화 앱에는 배달 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다행히 가까운 가게 배달이 많이 잡힌다. 재빨리 근처 반찬가게에서 날아온 콜을 잡고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한 번 배달을 다녀오면 사무실 수수료를 떼고서 2천700원을 벌 수 있다.

운영하던 여행사가 문을 닫은 건 지난 2월 말. 대구경북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직후였다. 아직 폐업 신고를 낸 건 아니지만 직원 두 명은 모두 유급휴가를 보낸 뒤 나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정식으로 폐업신고를 하면 대출금 등을 모두 정리해야 하는데, 목돈이 없어 일단 이자를 내며 버티기로 한 것이다.

매달 60만원씩 나오는 사무실 임대료에 대출 이자, 직원들 4대 보험료에 우리 가족 생활비까지 감당하려면 오늘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배달을 뛰어야 한다. 열심히 하면 하루 30~40개의 콜을 받을 수 있다. 하루 1만8천700원씩 나가는 스쿠터 렌탈료와 보험료를 감안하면 지금 내게는 쉬는 날조차 사치다.

이러고도 부족한 돈은 아내가 13년 만에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재취직해 부담하고 있다. 몸이 안 좋아 일을 그만뒀다가 다시 생업에 뛰어든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 식사를 하러 잠시 집에 들렀다가 헬멧을 쓴 채 땀 냄새를 풍기는 내 모습을 친구들과 함께 있던 아이들에게 보였다. 첫째가 중학교 1학년,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으로 한창 예민할 시기 상처를 준 건 아닌지 가슴이 철렁했다. 아내는 "코로나 때문에 아빠가 잠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잘 설명했지만, 아버지로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착한 아내, 잘 크는 아이들. 내가 안정적인 공무원이었거나 다른 사업을 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오직 나 혼자만 문제'라는 생각에 괴롭다.

절망감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건 결국 가족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이다. 끝까지 버텨서 복귀한다면 지금의 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 꼭 버텨낼 거고, 다시 일어설 거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다.

하지만 굳센 다짐과 별도로 한계가 오고 있다는 불안감도 몰려온다. 사무실 보증금으로 맡겨 둔 500만원도 매달 66만원씩 나오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거의 다 소진돼가고 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영세 여행사업자는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내용의 뉴스가 떴다. 한숨을 쉬며 다시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대구의 한 피시방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대구의 한 피시방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 폐업 고민 중인 60대 PC방 사장

수성구에서 90인석 규모 PC방을 운영하고 있다. 평일에도 저녁 손님이 10명에 못 미쳐 적막감마저 감돈다. 올 초까지 직원 한 두 명을 고용했지만 요즘은 혼자서 카운터를 지킨다. 손님이 들어오면 QR코드로 방문객 명부를 입력하고 체온 검사를 하며 이따금 주문받은 음식을 조리해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이 5개월째. 이달 들어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전 하루 평균 가동률(전체 좌석 대비 손님 이용 좌석 비율)이 40%를 넘을 만큼 성업했다. 10~50대까지 두루 방문했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모든 좌석이 가득 차다시피 했다. 유료게임 이용료와 식자재비 지출이 각각 월 500만원, 월 300만원에 달했다. 월평균 매출 3천만원 중 임차료 220만원을 비롯한 2천만원가량 고정지출비를 제하고도 1천만원은 남았다. 저녁과 주말엔 아르바이트 직원을 2명씩 고용했다.

지난 2월 말 이후 가동률이 10%로 급감했다. 초·중·고교와 대학, 학부모들이 코로나19 전염을 우려해 PC방 출입을 자제토록 한 여파였다. 주 고객층이던 10대 손님이 발길을 뚝 끊었다. 아침 손님도 씨가 말랐고 낮에 두세 명, 저녁엔 20~30명가량 다녀가면 많이 받은 셈이다.

"요즘 음식 주문량을 많이 줄이셨네요. 여기뿐만 아니라 대구 전역 PC방이 다 그래요."음식을 납품하는 업체 배달기사가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나마 음식 장사로 수입을 더 올렸는데, 요샌 손님 자체가 없으니 힘이 듭니다." 내 말에 배달기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매출 하락으로 고정지출비에 대한 부담이 크게 늘었다. 업종 특성상 손님이 없을 때도 24시간 문을 여는 탓에 전기요금과 임차료 등 고정지출비 비율이 매출 대비 크게 올랐다.

비용 절감이 시급했다. 손님이 없어도 전등·에어컨을 끌 수 없고, PC마다 연결한 인터넷 전용선을 부분 해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지난 7월,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그만두게 하고 혼자 모든 일을 도맡기로 했다. 온라인 출입 명부 작성, 체온 확인, PC 이용 승인, 빈자리 소독, 음식 조리, 설거지에 이르는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한다. 손님이 적어 몸은 덜 힘들지만, 떠들썩하던 PC방이 한적해진 모습에 내 마음도 허전할 때가 많다.

지난달부터는 영업 지속과 폐업을 두고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있다. 고성능 PC는 중고 컴퓨터 업체에 팔면 돈이 된다. 그러나 점포를 꾸릴 때 들인 인테리어·가구·조리실 비용 4억원은 돌려받을 길이 없다. 인터넷 전용선은 3년 단위로 통신사를 이동해 가며 신규가입자 혜택을 받아 가입한 탓에 해지 위약금도 상당할 거다.

지난 4월 정부가 지급한 1차 재난지원금 100만원과 5월 받은 소상공인 대출금 1천만원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 그러나 임차료 부담은 여전하다. 1차 재난지원금은 현금으로 지급받지 못해 임차료로 낼 수 없었다. '카드 결제 부가세, 종합소득세라도 줄여 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만 자꾸 든다. 그나마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PC방 업주에게도 150만~20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PC방이 고위험 업종으로 자리잡은 현실이 막막할 따름이다. 언젠가 코로나19 유행이 끝나겠지만 나를 비롯해 경영난을 크게 겪은 PC방 업주들의 줄폐업은 불가피할 것이다.

◆ 불안감에 떠는 30대 술집 사장

"올해는 '사장님'과 '쿠팡맨', 그리고 '배달맨'을 오가는 삶을 살고 있구나."

문득 든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오후 7시, 가게 문을 열자 드문드문 손님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혼자서 서빙부터 요리까지 하려니 마음이 바빠졌다. 아예 손님이 없어 부업을 뛰던 몇 달 전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게 인근에 위치한 대구대학교가 이달 들어 일부 대면 수업을 시작하면서 손님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인건비를 감당할 수준은 아니지만,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 바쁜 시간대에만 다시 아르바이트생도 쓰기 시작했다.

2020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6년 전 오픈한 가게는 인근 대학가 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많았다. 직접 요리를 하고, 서빙 아르바이트생도 두 명이나 쓸 정도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거리는 전쟁이라도 난 듯 텅 비었다. 주요 고객이던 대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삼갔다.

당장 생활비와 대출금을 메워야 했다. 가게 문을 닫고 '쿠팡플렉스' 배달 일을 시작했다. 1개를 배달할 때마다 수수료 550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나처럼 장사를 접고 온 이들이 적지 않아 일감이 많지 않았다. 하루 150~200개씩은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현실은 70~80개도 받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그마저도 배정받지 못해 공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갔지만, 사태는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매출은 없지만 임차료와 전기요금 등 고정비는 지출됐다. '어떻게 차린 가게인데. 폐업을 할 수는 없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버텨야 했다. 신용보증기금에서 받은 대출금을 까먹어가며 견뎠다.

조급한 마음에 택배 물류센터나 배달 일을 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근처에서 함께 장사하던 다른 가게 업주들은 퀵서비스나 배달대행 일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내 가게는 지하에 있어 임대료가 50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했다. 월 수백만원의 임차료를 내는 점주들 앞에서 힘들다는 내색을 하기도 미안했다.

사태가 다소 진정된 5월부터 가게 문을 다시 열었지만, 매출은 바닥이었다. 밤늦게까지 혼자 가게에 앉아 하루 손님 한두 팀을 받자니 서글펐다. 제대로 장사조차 못하고 마감한 날에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마시기도 했다.

고생을 버틴 원동력은 '언젠간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온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 8월 2차 재확산 때는 정말 힘들었다. "이번 학기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다행히 9월 들어 조금씩 학생들이 돌아왔고, 부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매출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 켠의 불안감은 지우기 어렵다.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면 다시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걱정 탓이다.

손님들이 찾아와 안도하면서도 "이들 중 누군가 코로나19에 걸려 동선이 공개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도 있다. 언제쯤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을까. 80%나 줄어든 매출 장부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불안감이다.

※ 이 기사는 본지 기자가 단란주점을 사실상 폐업하고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는 김수정(57·가명) 씨, 20년간 여행사를 운영해온 박정수(50·가명) 대표, 폐업을 고민 중인 수성구 모 PC방 우동성(60·가명) 사장, 대구대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이동훈(33·가명) 사장의 사연을 1인칭 시점의 내러티브 저널리즘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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