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동네책방] <18> 대구 불로동 '여행자의 책’

"10년 모은 돈 책에 걸었다" 교사·제자 의기투합
20-50대 각 1명씩 4명 공동운영…북스테이·밤샘독서 등 공간 갖춰
책으로 한 달 살기 프로그램 운영

대구 동구 불로동의 동네책방 '여행자의 책' 내부. 김태진 기자 대구 동구 불로동의 동네책방 '여행자의 책' 내부. 김태진 기자

대구공항 인근에 '여행자의 책'이란 곳이 최근 문을 열었다는 제보는 그저 그런 신장개업 소식 중 하나로 들렸다. 몇 년 전까지 대표 동네책방이라 알려진 곳도 수소문 결과 폐업했거나 폐업 준비중이라는 소식을 몇 차례 들어서였다. 하지만 체계적인 운영과 아이디어가 특이하단 말을 듣자 더이상 심드렁하게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입소문의 팔할이 과장임을 익히 경험한 터였다. 그랬기에 이곳의 문을 열고 10분이 채 되지 않아 속단했다. '이곳은 입소문이 제대로 안 난 곳이구나.'

4층 건물이다. 동네책방, 북스테이, 밤샘독서 공간을 갖췄다. '책으로 한 달 살기'라는 낯선 곳에 한 달 살기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무엇보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 하루 12시간 영업이 가능한가 의아했다. 동네책방 업계에서는 편의점급 영업시간이었다.

4명이 공동운영하는 곳이다. 20~50대 각 1명씩 참여했다. 장귀순(58), 박주연(40), 전은경(37), 임수진(24) 4명이 공동운영자다. 중심이 된 이는 박주연 씨다. '인문여행가이드'라는 직함을 내민다. 얼마 전까지 중학교 역사 교사였다. 중학교 교사들과 제자가 의기투합한 것이라 했다.

이들은 어딜 가나 책방을 찾았다. 보통 맛집을 찾기 마련인데 취향이 확실했다. 책방투어가 취미였다고 할 정도다. 취미를 일로 삼는 건 점점 소명에 가까워졌다. 비장하고 의연해지면서 이들 스스로도 그렇게 여겼다. '이건 독립운동에 가까운 건지도 모른다고'

박 씨는 10년간 직장에서 모은 돈을 모두 여기에 걸었다고 했다. 영혼까지 책방에 갈아 넣은 듯했다. 먹고 살려고 절박하게 연기한 사람이 명작을 만들 듯 모든 자산을 책방에 건 사람도 비슷했다.

대구 동구 불로동의 동네책방 '여행자의 책' 내부. 김태진 기자 대구 동구 불로동의 동네책방 '여행자의 책' 내부. 김태진 기자

책방 구성이 알차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오랜 기간 준비한 티가 난다. 책방지기 북큐레이션은 지금껏 본 동네책방의 끝판왕이다. 책방에 들어서자 작가 36인의 작품으로 채운 책장부터 보인다. 인문서점을 지향하는 정체성이 물씬 풍긴다.

꼭 읽어야할 문학가들인데 대부분 고인이 된 이들이다. 국내 작가로는 권정생, 기형도, 김수영, 박완서, 신영복, 조정래 작가가 보인다. 영국의 자존심, 셰익스피어는 없다. 책방지기의 취향이다. 살아있는 작가로 김영하, 오정희, 이성복 작가가 보인다.

박 씨는 "동네책방들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동네책방에서 본 2% 아쉬웠던 것을 상기해 이곳에 모조리 반영했다"고 했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로워야 했다. 수많은 동네책방들이 따박따박 월세를 주며 건물주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를 적잖게 봐왔기 때문이었다.

금호강이 가까운 공항교 주변이다. 전투기 소음이 강하지만 책방 존폐의 결정적 요인은 안될 거라 판단했다. 외려 주택가 골목은 동네책방의 입지로 장점이다. 동네주민들과 일상이 연결되며 동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책방 바로 맞은편은 불로동제일경로당이었다. 노인 비율이 높은 곳인 만큼 '어르신 구술 자서전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들은 동네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었다.

대구 동구 불로동의 동네책방 '여행자의 책' 내부. 김태진 기자 대구 동구 불로동의 동네책방 '여행자의 책' 내부.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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