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갤러리 대구점 '카틴카 램프의 Anonymity'전

카틴카 램프 작 '1318205'(2020년) 카틴카 램프 작 '1318205'(2020년)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 묶은 소녀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아래를 보고 있다. 레이스 장식이 화려한 흰 모자를 쓴 소녀도 있고, 소녀의 뒷덜미만 오버랩한 화면도 있다. 모두가 인물화인데 이들 소녀들이 동일인물인지는 알 길이 없다.

리안갤러리 대구가 전시하고 있는 네덜란드 여류화가 카틴카 램프의 신작 17점이 담고 있는 소녀 인물화들이다.

카틴카 램프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사실적 인물화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2012년 리안 갤러리에서 처음 국내에 소개된 이후 8년 만에 갖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Anonymity'(익명성)이다.

'Anonymity'은 작가가 인물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작품 제목도 이름이 아닌 일련의 숫자를 붙여 실제 인물의 특성을 없애고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재창조된 이미지를 형상화한 의미로,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이끌고 있다.

특히 작품 '6080181'(2018년)은 램프 인물화의 회화적 특징이 잘 드러난 것으로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은 물감이 마르기 전 붓 자국이 선명한 부분을 문질러 윤곽을 흐릿하게 표현했다. 이는 화면 속에 기법이나 테크닉과 같은 작가의 존재감을 배제하려는 의도로 붓 자국이 제거된 매끄러운 화면을 통해 온전한 이미지가 잘 전체 화면을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옆모습을 담은 작품 '1318206'은 하얀 베일을 덮어 쓴 소녀가 어두운 배경과 대비를 이루면서 시선을 잡아 끄는데 베일은 종교적 의미나 중세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작가는 그림에 대한 평가를 순전히 관객의 주관적 해석에 맡겨버리는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처리다. 정면을 직시하기보다 시선을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낼 뿐 아니라 유심히 보게 한다는 것.

과거 전통적인 인물화가 주로 인물의 정체성과 감정을 나타냈다면 램프의 인물화는 관객이 화면 속 이미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투사해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인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으려고 애쓰는 관객은 어느 새 관찰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바뀌고 있는 상황을 자각하게 되면서 색다른 미적 체험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부언하자면 램프는 현재 로테르담에서 활동 중이며 인물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무시해버림으로써 인물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전시는 31일(토)까지. 문의 053)424-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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