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멜로스릴러 tvN ‘악의 꽃’

‘동백꽃’, ‘사이코’, ‘악의 꽃’, 멜로에 스릴러가 얹어진 까닭
달콤했다 살벌했다…형사 아내·용의자 남편 색다른 스토리

드라마 '악의 꽃' 현장사진. tvN 제공 드라마 '악의 꽃' 현장사진. tvN 제공

최근 멜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스릴러가 얹어지기 시작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까불이가 그랬다면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살인범 설정이 그랬다. '악의 꽃'은 그래서 멜로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예감을 갖게 한다.

◆'악의 꽃', 멜로와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

백희성(이준기)은 과연 연쇄살인마일까.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은 무려 14년 간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 살아온 백희성이 본래 이름은 도현수이고 그의 아버지는 희대의 연쇄살인마인데다 그 살인에는 그 역시 연루되어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되는 아내 차지원(문채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이코패스로서 감정을 알지 못하는 도현수는 표정을 읽는 법을 배움으로써 차지원을 완벽하게 속인 채 살아왔다. 그런데 차지원이 강력계 형사라는 게 이 드라마의 구도를 특별하게 만든다. 두 사람은 아이까지 있는 부부로서 알콩달콩한 가정을 이루고 있고 그래서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달달함을 전해주지만, 도현수의 정체가 수면 위로 조금씩 올라오고 이를 추적하는 차지원 사이에는 스릴러의 추격전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멜로스릴러'라는 지칭으로 이 드라마가 불리는 이유다.

'악의 꽃'을 연출한 김철규 PD는 공간을 은유해내는 연출을 잘 하는 감독이다. 그래서 도현수와 차지원이 사는 공간은 '악의 꽃'의 멜로스릴러라는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은유한다. 1층에 공방이 있고 2층에 이들 가족이 사는 집이 있지만 공방에는 백희성이 도현수로 변신하는 지하로 연결된 계단이 있다. 그 곳을 찾았다가 어릴 적 알고 지냈던 도현수를 알아보는 김무진(서현우) 기자는 바로 그 지하에 묶인 채 감금된다. 지상의 백희성과 지하의 도현수는 그렇게 그 집의 공간 구조를 통해 표현된다. 수면 위로는 한없이 자상한 모습이지만 수면 밑으로 들어가면 한없이 어두운 면모를 숨기고 있는 인물.

드라마 '악의 꽃' 현장사진. tvN 제공 드라마 '악의 꽃' 현장사진. tvN 제공

물론 도현수가 진짜 연쇄살인범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이 그 정체를 숨기기 위해 형사와 용의자로 쫓고 쫓기는 그 과정은 쫄깃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 부분은 멜로가 스릴러와 만나 시너지를 내는 독특한 부분이다. 본래 멜로의 달콤함과 스릴러의 살벌함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 달콤함 때문에 정체가 드러날 지도 모른다는 스릴러가 더 긴박해진다. 그리고 아마도 스릴러의 과정은 차지원으로 하여금 진실의 끝에 마주하게 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계속 나아갈 것인가를 두고 심각한 갈등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멜로와 스릴러의 동거가 시작됐다

그런데 멜로와 스릴러의 동거는 최근 들어 낯설지 않은 조합이다. 작년 최고의 작품으로 호평받았던 KBS '동백꽃 필 무렵' 역시 멜로의 틀에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을 집어넣어 스릴러를 결합함으로써 효과를 거둔 바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중반을 지나면서 까불이의 정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폭증했다. 옹산이라는 지역의 순경으로서 동백이(공효진)를 지키려는 용식(강하늘)의 수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고, 동백과 함께 지내다 대신 죽음을 맞이한 향미(손담비)라는 캐릭터가 '미친 존재감'이 된 것도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엔딩에 이르러 동백이를 구하기 위해 옹산 사람들이 다 나서서 까불이를 잡는 그 에피소드는 사실상 이 드라마의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까불이라는 스릴러에 어울릴 법한 캐릭터를 넣어 드라마는 긴장감을 높이는 건 물론이고, 동백과 용식의 사랑 그리고 옹산 사람들의 정까지 극대화해 보여줄 수 있었다.

멜로와 스릴러의 결합은 최근 호평을 받으며 종영한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도 발견된다. 이 드라마에서도 강태(김수현)와 상태(오정세)의 엄마는 고문영(서예지)의 엄마에게 살해된다. 그걸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된 상태는 그 후로 나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다. 후반부로 가면서 다시 상태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나비가 재등장하고 그걸 그려 넣은 인물이 괜찮은 정신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하던 박행자(장영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라마는 순식간에 멜로에서 스릴러로 색깔을 바꾼다.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는 그래서 드라마의 색깔을 스릴러로 바꿔버린 박행자와 대결하는 강태, 상태, 문영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런데 '동백꽃 필 무렵'의 까불이나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박행자, 그리고 연쇄살인범이 아닐까 의심받는 '악의 꽃'의 도현수 같은 스릴러에나 어울릴 법한 인물들이 멜로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왜일까. 그건 최근 공식화되고 상투화됨으로써 점점 힘을 잃어가는 멜로에 보다 강력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면서 색다른 스토리텔링을 시도해보기 위함이다.

드라마 '악의 꽃' 현장사진. tvN 제공 드라마 '악의 꽃' 현장사진. tvN 제공

◆멜로드라마 공식, 어째서 힘을 잃게 됐을까

멜로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한다. 그래서인지 그 이야기 구조는 어느 정도 정해진 공식의 틀 안에서 전개되곤 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등장하며, 이들은 그 난관을 넘어 결국 사랑에 골인하는 게 그 단순한 이야기 구조다. 멜로드라마가 이 흔한 공식을 반복하면서도 변주가 가능했던 건 방해 요소가 트렌드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신파의 시대에 그 방해 요소는 시어머니 같은 가족이었다. 그러다 신데렐라 시대에 그 방해 요소는 빈부와 지위 격차가 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하고픈 일이 사랑의 방해 요소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멜로드라마 이런 공식이 힘을 잃게 된 건, 너무 이 공식이 반복되어 뻔해졌을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결혼 대신 비혼을 선택하기도 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들이 등장하면서다. 멜로드라마의 끝이 대부분 결혼이었던 그 공식들은 그래서 이제 그다지 공감대를 얻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아예 tvN '오 마이 베이비'나 KBS '그놈이 그놈이다' 같은 비혼을 소재로 하는 멜로드라마들이 등장했지만, 결국은 다시 결혼 같은(동거라 하더라도)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공식으로 회귀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멜로드라마의 위기 상황에서 멜로스릴러라는 색다른 시도가 그나마 성공하고 있는 건 이 장르에도 기존 공식을 뒤엎는 전복적인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나 '사이코지만 괜찮아' 같은 남녀 간의 사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보다 사회적 의미를 담는 휴먼드라마적 요소들로 확장된 이야기는 물론이고, '악의 꽃'처럼 범죄와 사랑을 엮어 진실에 대한 욕망과 그로 인한 파국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다소 철학적으로 질문하는 이야기도 등장했다.

이런 색다른 이야기의 요구에 장르물이 끼어들고 있다는 건 이제 드라마의 중심축이 점점 장르물로 이동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건 최근 OTT 등이 열리며 본격화된 글로벌 콘텐츠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간 가족드라마와 멜로드라마를 중심으로 끌고 가던 K-드라마들은 이들 특성들을 가미한 장르물을 통해 좀 더 글로벌한 공감대까지를 추구하고 있다. 글로벌하게 이해되는 장르물을 보편적 공감대로 가져오면서 우리 식의 가족과 사랑 이야기의 강점을 더해 넣는 방식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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