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21세기 화폐전쟁/ 노르베르트 헤링 지음/ 박병화 옮김/ 율리시즈 펴냄

가상화폐 가상화폐

 

전 세계는 지금 현금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현금결제를 어렵게 만들고 전체주의적 세계통화의 길을 닦아주는 시스템을 향해 가고 있다. 점차 현실이 되어가는 '가상화폐 통제사회'는 우리의 자유를 한정하고 완전한 감시체계를 완성한다. 마스터카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등은 첨단기술 전자결제 사업모델을 내세워 '현금이라는 적'과 싸우고 있다. 핀테크 사업 등에서 노리는 최종목적은 지문이나 안면 생체인식을 통해 '21세기 글로벌 가상화폐'를 완성하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 그것을 향한 전제조건인 '현금 철폐' 작전이 곧 '21세기 화폐전쟁'이다.

◆현금의 무력화는 시작됐다

현금은 많은 장점을 지닌 지불수단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지불을 위한 사전 준비과정이 필요 없으며, 지출의 통제가 용이하다. 은행이 파산해도 위협받지 않고, 마이너스 금리 및 기타 문제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지불에 별다른 추가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이 은행, IT 기업, 국가, 일부 상인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현금폐지론자들은 현금의 익명성이 범죄에 악용된다는 근거로 현금 폐지를 주장한다. 마치 현금을 퇴출시키면 범죄, 탈세,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거액의 불법자금 조성과 자금세탁은 대부분 디지털 화폐로 이뤄진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현금 사용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자동 지불수단이 얼마나 편리하고 현대적인지를 역설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정부 또한 현금과 멀어지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은행은 현금인출기를 줄이고 인출 수수료를 책정하는 등 그 흐름에 가담한다.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말라위, 나이지리아, 필리핀, 멕시코 등은 심지어 현금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선포했다. 이 모든 것은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과 디지털 아이덴티티(digital identity)라고 불리는 글로벌캠페인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금 사용은 점점 불편하도록, 그래서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점점 더 많은 정보를 가져갈 수 있도록 구조가 개편되고 있는 것이다.

각국 지폐 각국 지폐

 

◆전체주의 향한 디지털결제 확대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금융산업은 결제가 완전히 디지털화될 경우, 매년 4천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직접비용을 절감하고, 적극적인 고객층은 연간 4조2천억 달러의 소득증대를 올릴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로 금전거래가 이뤄지면 우리가 얼마나 돈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어디에 지출하는지에 대한 엄청난 가치 있는 데이터가 발생한다. 거대자본이 디지털화폐를 선점하려 혈안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케냐에서는 불과 몇년 사이에 '엠페사'라는 통화체계가 구축됐다. 당시 주민 10만 명당 은행지점은 1.5개, 현금인출기는 단 하나뿐이던 케냐는 통신사 '사파리컴'을 통해 모바일계좌를 개설하는 것으로 시작해 2018년 현재 사파리컴은 케냐 전체 전화 통신과 문자서비스 수입의 약 90%, 그리고 2천800만명에 이르는 모바일 이체서비스 이용자의 80%를 차지했다. 필리핀 정부는 디지털결제의 20배 확장을 위한 이페소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정부와 유관기관은 차후 디지털결제만 가능하고, 시민과 기업 결제를 무현금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대형은행의 합법화된 카르텔에 의해 움직이는 북유럽 국가들도 현금인출기를 대폭 줄이고 있다. 핀란드는 인구 10만명당 2007년 38대의 현금인출기에서 2016년 26대로 줄었고, 2016년 34대 뿐이던 스웨덴은 이제 대다수 은행 지점이 현금을 받지도, 내주지도 않는다.

21세기 화폐전쟁 21세기 화폐전쟁

◆생체인식 데이터베이스 구축

금융포용은 현금폐지의 또 다른 이름인 동시에, 사람들의 생체정보를 중앙 또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게 하는 캠페인 구호이기도 하다. 일단 생체정보가 중앙정보장치에 저장되면 통신기기를 사용한 활동에서 어느 누구도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미국은 이미 2008년 25개국과 생체인식 데이터 교류를 위한 쌍방 합의를 이루었다. 국무부는 외국의 정치 지도자가 워싱턴에 올 때마다 그런 협정에 서명하도록 했다. 2015년, 빌 게이츠는 워싱턴의 '금융포용포럼'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에 광범위한 ID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은 '개발을 위한 ID'라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빈국을 대상으로 생체인식 기반의 ID와 중앙데이터베이스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려는 생각이다. 2018년 2월에는 요르단과 시리아 인접국에서 시리아 난민 230만 명이 생체인식 방식으로 등록됐다. 여기서 선택된 수단은 홍채인식 스캐너였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게이츠 재단과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아 성인 전체 인구 1억2천만 명에게 정부의 생체인식 데이터베이스에 가입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2월, 생체인식 기반의 '국민 ID 번호'만이 모든 은행 거래를 위한 유일한 신원확인 수단임을 선언했다. 304쪽, 1만7천원.

 

※지은이 노르베르트 헤링=경제학 박사로 독일의 유력 경제일간지 '한델스블라트'의 금융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블로그 '화폐와 그 너머'를 운영한다. 베스트셀러 '경제 2.0'으로 2007년 세계 최대 전자도서관 '겟앱스트랙트'에서 수여하는 경제도서상을 수상했고, 2014년 케인스협회 경제저널리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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