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연경동 화암(畵巖)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고문헌에 전해오는 대구를 대표하는 두 개의 바위 중, 삿갓바위로 불렸던 입암(笠巖)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지난번 글에서 다루었다. 이번에는 사라질 뻔했던 대구의 대표 바위 연경동 화암(畵巖·그림바위)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매암 이숙량은 1567년에 작성한 연경서원 '기'(記)에서 화암과 연경서원 일대의 조화로운 풍광을 시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전략) 연경서원 북쪽은 성도산(成道山)이다. 산봉우리가 나지막하고 골짜기가 고요하다. 서쪽으로 흰 돌과 푸른 솔이 언뜻 언뜻 이어지다 천 길이나 깎아지른 듯 큰 바위에 이르니 이것이 화암이다. 우뚝 솟은 붉고 푸른 절벽의 기이함이 그림과도 같아 화암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화암 아래 깊고 맑은 푸른 물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노닐고 있어 연경서원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한편 '대구읍지' '제영'(題詠) 편에 소개된 퇴계 이황의 한시인 '연경화암'(硏經畵巖)에서도 화암과 연경서원이 소개되고 있다.

畵巖形勝畵難成(화암형승화난성) 화암의 좋은 경치 그리기도 어렵네

立院相招誦六經(입원상초송육경) 서원을 세우고 서로 모여 육경을 배우리라

從此聞佇明道術(종차문저명도술) 이제 도술을 밝혀가며 듣게 될 테니

可無呼寐得群醒(가무호매득군성) 능히 몽매한 자 깨우치지 못하겠는가

시에서도 언급했듯이 퇴계 이황은 '화암의 멋진 경치를 그리기조차도 어렵다'고 하였다.

연경서원 근처에 있다고 고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화암은 동화천변에 위치하는 강가 바위 절벽인 하식애(河蝕崖)다. 바위 하부는 약간 붉은 빛을 띠는 사암층과 세일층으로 되어 있고, 상부는 역암층으로 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여 년 전 호수에서 형성된 퇴적암이다. 화암을 이루어 놓은 퇴적암은 대구 분지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과 같은 종류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팔공산이 흰 빛깔의 밝고 수려한 외양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화암은 다소 짙은 빛깔을 나타낸다. 이처럼 짙은 빛깔의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화암은 암석의 구조적 특성과 기묘한 외양으로 인하여 신비감을 더해 준다. 풍화작용으로 역암층에 박혀 있던 둥근 돌이 빠져나간 자리의 모습이 벌집을 닮았다 하여 벌집바위로 불리는 타포니(tafoni)와 상부의 돌출 부위로 인한 기묘한 형상이 화암을 예로부터 특이하고도 신비롭게 인식하게 하는 원인으로 판단된다.

화암은 그 앞을 흐르는 동화천과 더불어 수려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한때는 산악인들의 암벽 훈련 등반지로 이용됐을 뿐만 아니라 왕복 2차로 도로에 접해 있어 차량에서 배출되는 매연으로 많이 변색되었다. 더군다나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곳곳에 사람의 이름이 페인트나 조각 도구로 새겨져 있어 안타깝다. 화암 옆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연경서원은 대구지역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서원으로 의미가 크다.

현재도 연경동 일대에서 진행 중인 대구 4차 순환도로 공사와 대규모 아파트 공사는 화암과 일대 동화천 풍광의 근본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고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대구에 마지막 남은 바위 화암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동화천에 대한 보존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겠다. 아울러 연경서원 터에 대한 정밀 조사와 발굴 및 복원이 이루어져 교육도시로서의 대구 자존심과 품격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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