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학교] 계성학교, 대구 중등교육의 시금석이자 3·1운동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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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계성학교, 지역 중등교육기관으로서 국가와 지역에 헌신해오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개척한 지역 중등교육의 시초
지하실에서 독립선언문 등사하고 태극기 제작, 대구3·1운동의 근원
새로운 100년을 위해 변화도 스스럼없이… 지난해 IB DP 후보학교 인증

대구 계성고등학교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 계성고등학교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오래된 학교는 지역에서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중등교육기관은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고급 인재 양성의 산실이자, 지역민들에게 여러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나라와 지역이 위태로울 때는 각종 사회 운동을 주도하며 돌파구를 제시하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100년 넘게 시대의 길잡이가 된 대구 중등교육의 시초 '계성학교(현재 계성중·고등학교)'를 소개한다.

1913년 아담스관 앞에서 찍은 계성학교 학생과 교직원 단체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1913년 아담스관 앞에서 찍은 계성학교 학생과 교직원 단체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아담스 목사
아담스 목사

◆ 교회에서 탄생한 '개화꾼'들의 학교

계성학교의 초대 교장은 대구제일교회의 초대목사인 아담스 목사(Adams, 안의와)였다.

1897년 대구선교지부 책임자로 부임한 아담스 목사는 지역에 기독교를 빠르게 정착시키고자 주일 예배와 복음 전도 활동과 함께 교육 선교 활동에도 힘썼다. 그 일환으로 1900년 야소교 대남소학교(현재의 종로초교), 1902년 신명여자소학교 등 지역에 여러 소학교를 세웠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학교 졸업자들이 배움을 더 이어갈 수 있도록 1906년 5월 제일교회 내에 상급학교인 계성학교를 설립했다. 계성학교는 학구열이 남달랐던 대남소학교 졸업생 등 27명을 시작으로 지역 중등교육의 기틀을 다졌다. 이에 대구경북 전역에서 배움에 목 마른 이들이 계성학교에 입학했다.

계성학교의 교과목은 성경, 학문, 작문, 문전(文典, 말의 구성 및 운용 규칙을 연구하는 학문), 수학, 화학, 지지(地誌, 지리학의 한 분야), 역사, 음악, 도서 등이었다. 서당식 글공부에서 벗어나 신식 학문을 배웠던 계성학교 학생들은 지역민들에게 '개화꾼'으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1912년 5월 27일 달성공원에서 열린 계성학교의 춘기 대운동회 모습. 개교 이후 열린 첫번째 큰 체육대회였다고 한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1912년 5월 27일 달성공원에서 열린 계성학교의 춘기 대운동회 모습. 개교 이후 열린 첫번째 큰 체육대회였다고 한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 계성 학생들은 운동에도 흥미가 많았다. 학생들은 자발적인 모금으로 마련한 20원으로 축구와 야구, 정구(테니스의 한자식 표기)에 필요한 운동기구를 구입했고, 지도 교사가 없었음에도 학생들끼리 운동장에 모여 운동을 했다. 토요일엔 구경하는 지역민들에게도 운동을 가르쳐줘 당시엔 생소했던 운동의 즐거움을 일깨워줬다고 전해진다.

아담스관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아담스관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맥퍼슨관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맥퍼슨관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헨더슨관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헨더슨관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 문화재로 지정된 아담스관·맥퍼슨관·헨더슨관

계성학교의 세 건물인 아담스관과 맥퍼슨관, 헨더슨관은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각각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5호, 제46호, 제47호로 지정됐다.

개교 2년째인 1908년 3월 준공된 아담스관은 당시 영남 지역 최초의 신식 2층 건물이었다. 건축 자재는 미국에서 직접 가져왔고 해체된 대구성(大邱城)의 석재들도 사용됐다고 한다. 아담스 목사의 모친 명의로 기부된 9천500원이 건립 비용으로 쓰였다.

아담스관 건축에 사용된 대구성의 석재
아담스관 건축에 사용된 대구성의 석재

건립 당시 교실 4개와 강당이 있었고, 2층 강당은 예배와 교회의 집회 장소로 이용됐다. 현재 아담스관은 계성중학교 교무실로 사용 중이다.

1913년 9월 세워진 붉은 벽돌조 2층 건물인 맥퍼슨관은 계성학교 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Reiner) 선교사가 아담스 목사의 친척인 맥퍼슨(Mcpherson)에게서 6천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건립됐다.

아담스 목사와 라이너 선교사가 설계와 감독을 담당하고, 중국인 벽돌공과 일본인 목수들이 실제 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맥퍼슨관은 당시 과학실 용도로 사용됐으며 현재 계성교회가 쓰고 있다.

계성학교의 본관이자 상징인 헨더슨관은 1931년 11월 준공됐다. 건물 전체적으로 수직선이 강조됨과 동시에 벽면엔 수평 돌림띠가 있어, 수학적 조화를 추구한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집무를 보고 있는 헨더슨 계성학교 제5대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집무를 보고 있는 헨더슨 계성학교 제5대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건물 이름은 헨더슨(Henderson) 제5대 교장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헨더슨 교장은 예배 시간에 직접 찬송을 지휘하고 유창한 한국어로 설교를 하는 등 열정이 가득했으며, 일제의 억압 하에서 정의와 자유주의를 주장한 참된 교육자였다. 그러다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출국을 당하고 만다.

아담스관 지하실 입구. 대구시교육청 제공
아담스관 지하실 입구. 대구시교육청 제공

◆ 지하실에서 독립선언문 등사… 대구3·1운동의 근원

특히 아담스관 지하실은 대구 3·1운동의 요람이었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으로 온 겨레가 참가하는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대구에선 같은 달 8일 서문외(西門外, 현재 서문시장) 장날을 기해 모인 1천여 명의 군중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를 '대구3·1운동'이라고 한다.

대구 3·1운동의 주축은 계성학교, 대구고등보통학교, 신명여학교 등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계성학교가 중심 역할을 했는데, 계성개교 100년사에 따르면 대구에서 3·1운동으로 형을 받은 사람 76명 중 58%(44명)가 계성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전·현직 교사 등이었다고 한다.

계성학교 3회 중퇴생이자 대구3·1운동 당시 교사로 있었던 백남채 열사는 운동을 주도하다 예비 구속돼 2년형을 선고 받았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계성학교 3회 중퇴생이자 대구3·1운동 당시 교사로 있었던 백남채 열사는 운동을 주도하다 예비 구속돼 2년형을 선고 받았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 3·1운동 전날인 7일 당시 계성학교 교사였던 김영서, 백남채 등과 학생이었던 김삼도, 이승욱, 허성도, 김수길, 김재범, 이이석 등은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몰래 독립선언문을 베껴 옮기고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다음날 8일 계성학교의 교사와 전교생 46명이 궐기해 대구 3·1운동을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 결과 계성학교는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와 탄압을 받게 됐고, 그 일환으로 교명을 공산중학교로 개칭해야만 했다.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으며 잃었던 교명인 '계성'을 되찾게 된다.

지난 2006년 계성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대구3·1운동 재현 행사.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난 2006년 계성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대구3·1운동 재현 행사.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난 2006년 계성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대구3·1운동 재현 행사.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난 2006년 계성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대구3·1운동 재현 행사.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3·1운동을 이끈 선배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계성학교는 매년 3월 1일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 대구 최초의 자사고, 계성고의 자부심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계성학교는 116년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오며 6만5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계성고등학교는 2010년 대구 최초의 자율형사립고로 인가를 받았다. 2016년에는 서구 상리동 신축 교사로 이전했다.

계성고는 IB DP(국제 바칼로레아 디플로마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보여왔고, 지난해 IB DP 후보 학교로 인증을 받았다. IB란 탐구 중심 수업과 논·구술 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이다. 현재 2023년 IB DP 정식 도입을 목표로 계성 IB 연구소를 열고 IB 국제부를 신설하는 등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자 노력 중이다.

계성고 유도부. 대구시교육청 제공
계성고 유도부. 대구시교육청 제공

오랜 역사만큼 유서 깊은 운동부 역시 계성고의 자랑이다.

1922년 만들어진 농구부는 1975년 춘계전국남녀농구대회, 추계전국남녀농구대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고, 2011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농구대회, 고려대총장기 전국농구대회 겸 한중일 고교 농구 선발대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해 3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1943년 창설된 유도부 출신이 1984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금메달 2개,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를 획득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계성고는 유도를 정식 과목으로 채택해 교육과정에도 편성할 만큼 유도 사랑이 남다르다.

박현동 계성고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박현동 계성고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박현동 계성고 교장은 "우리 학교는 개교 이래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왔다"며 "앞으로도 IB 프로그램을 통해 창의적이고 국제적인 소양을 가진 학생들을 양성하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빠르게 변하는 미래에 역량을 펼칠 인재를 키워가겠다"고 했다.

한편, 계성고교를 빛낸 동문으로는 추경호(66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사열(63회)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진영환(52회) 삼익THK 대표, 신일희(44회) 계명대 총장, 이용두(58회) 제9대 대구대 총장, 박목월(23회) 청록파 시인, 안병근(68회) LA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이경근(68회)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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