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외출했던 부부가 집에 들어온다. 아내는 부엌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서로 일상적인 말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아내는 차를 끓여 남편에게 다가간다. 미동도 하지 않는 남편. 아내는 그런 남편 앞에 주저앉는다.

그렇게 남편은 사망하고 아내는 그의 소지품을 살핀다. 지갑에서 나온 의문의 여자 신분증. 그리고 휴대폰에서는 충격적인 문자가 기록돼 있다. '언제 와?' '곧 도착해' '보고 싶었어' 죽은 남편에게 남은 불륜의 흔적, 아내는 가슴이 무너진다.

영국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감독 알림 칸)는 한 남자를 함께 사랑한 두 여자의 화해와 연대를 그린 영화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여우주연상(조안나 스캔런)을 수상한 작품이다.

막장 드라마 같은 통속적인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영화는 상실의 아픔을 공유하며 성찰하게 하는 세심하며 따뜻한 영화다.

메리(조안나 스캔런)는 파키스탄인 아메드(나세르 메마르지아)와 결혼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영국 여성이다. 아직 남아 있는 남편의 온기에 가슴이 저려온다. 도버의 절벽에서 바라 본 해협 건너에는 남편의 여자가 살고 있다. 메리는 항해사인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해협을 건너 프랑스 칼레로 간다. 남편의 여자 쥬느(나탈리 리샤르)를 찾아가는 길이다.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사랑 후의 두 여자'는 '삼형제'(2015) 등 단편영화로 영국에서 주목 받은 알림 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20대 초반에 사랑하는 파키스탄인과 결혼하기 위해 개종했던 어머니, 무슬림이면서 동성애자인 감독의 방황했던 어린 시절을 모티브로 했다. 그래서 영화는 영국과 프랑스의 두 여인과 파키스탄인 남자, 이슬람교와 퀴어 코드 등이 다 묻어 있다. 다소 낯선 조합이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두 여인이란 플롯은 너무나 공감되는 여성 드라마다.

남편 뺏은 여인에 대한 분풀이로 본다면 따귀라도 날리겠지만, 메리와 쥬느의 만남은 통속으로 치닫지 않는다.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는 파도타기라고 할까. 쥬느는 메리를 파출부로 오해하고, 메리는 속내를 감추고 그녀의 이삿짐을 정리하고, 빨래도 도와준다. 쥬느는 아직 아메드의 죽음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메리는 연적인 쥬느의 일상 속에 스며들고, 시간이 가면서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쥬느와 아메드 사이에 아들 솔로몬(탈리드 아리스)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연민의 감정까지 솟구친다.

메리의 다층적인 감정의 기복을 영화는 차분하면서 시적으로 따라간다. 메리는 남편의 음성 메시지를 반복해 들으면서 그를 그리워한다. 도버 해협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을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의 다정한 메시지다. 그녀가 배를 타고 칼레로 떠날 때는 그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풍경도 그려낸다. 메리의 무너지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절벽은 영화에서 두 나라를 가르는 해협처럼 메리의 감정선을 잘 은유해준다. 절벽은 끝이자, 다시 나아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바다는 두 여인의 거리를, 절벽은 남편과의 단절을 뜻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바다는 힘든 여정이 아니라, 물 흐르듯 건너가는 길이 된다.

메리와 쥬느는 언어가 다른 두 나라의 국경을 뛰어 넘어 이젠 수평선 넘어 보이는 거리까지 단축된다. 그리고 메리는 쥬느에게 "난 아메드의 아내"라고 고백한다.

영화는 배신이나 증오, 후회와 미련, 질투 같은 감정은 접어둔다. 쥬느가 버린 남편의 셔츠를 고이 다려 자신의 옷장에 걸어두는 메리를 통해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그런 사랑의 온화함은 그 어떤 절망도 뛰어 넘게 한다. 영화는 그런 따스함으로 남은 두 여인의 사랑과 유대, 남아 있는 또 다른 인연을 쓰다듬는다.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메리 역의 조안나 스캔런은 심연 속 깊은 감정의 조각까지 끌어내는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당혹스런 남편의 죽음, 더 당혹스럽게 목도한 남편의 비밀을 깊은 연민으로 풀어낸다. 폭발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가슴에 묻으면서 더욱 큰 울림을 끌어 올린다. 그래서 영국 아카데미에서 '하우스 오브 구찌'의 레이디 가가, '리코리쉬 피자'의 알라나 하임, '코다'의 에밀리아 존스 등을 누르고 여우주연상을 차지한다. 조안나 스캔런은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에서 베르메르의 하녀로 출연하기도 했다.

'사랑 후의 두 여자'는 크지는 않지만 잔잔한 울림과 감정적 공감을 끌어내는 영화다. 배우들의 호연도 좋지만, 화장대 옆에 걸어 두어도 좋을 그림처럼 영상도 아름답다. 특히 도버의 새하얀 백악 절벽 위에 선 주인공들의 굳건한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될 여성주의 영화이다. 30일 개봉. 90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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