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유미의 세포들’, 과몰입 유발 연애 블록버스터

tvN 금토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N포세대들의 연애세포도 깨워줄까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할 때 우리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tvN 금토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이런 질문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시작했다. 그런데 단순해 보이는 청춘 멜로의 양상들이 이 세계관 속에서는 블록버스터처럼 그려진다.

◆소소한 일상이 재난급 블록버스터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밀려드는 감정들은 복합적이다. 당장 옆 자리에 그가 없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허탈감, 다시는 사랑따윈 하지 않겠다는 결심, 그럼에도 못해줬고 또 못한 것에 대한 회한 등등. 하지만 이 쓰나미처럼 밀어닥치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보이는 말과 표정, 행동은 그 감정만큼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대개 초점없는 눈빛, 부쩍 줄어든 말수, 다소 멍한 행동 같은 것들이 그 충격을 가늠하게 해줄 수 있을 뿐이니.

tvN 금토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이런 감정들을 거의 재난급 블록버스터로 그려낸다. 그것이 가능한 건, 유미(김고은)라는 인물이 겪는 일상의 감정과 생각들을, 그의 세포마을 속 다양한 세포들의 이야기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유미의 세포마을에는 이성세포, 감정세포, 사랑세포, 출출이, 응큼이 같은 세포들이 살고 있다.

유미가 3년 전 연애를 끝냈을 때의 감정을 '유미의 세포들'은 세포마을을 휩쓸어 버린 홍수로 표현한다. 사랑세포는 그 후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3년째 깨어나지 못한다. 그런 사랑세포가 눈을 뜬 건, 유미 앞에 채우기(최민호)가 나타나면서다. 그에게 마음이 있지만 자꾸만 그 사이에 끼어드는 루비(이유비) 때문에 관계가 엇갈리던 유미가 대놓고 채우기에게 같이 꽃축제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도 이 드라마에서는 세포마을의 사랑세포가 드디어 용기를 내는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물론 채우기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실망하지만, 유미는 그가 소개해준 웅이(안보현)를 만나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고 결국 연인이 된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결과적으로 보면 유미가 마음을 뒀던 채우기가 구웅을 소개해줘 새롭게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이 '유미의 세포들'이 그리고 있는 청춘멜로의 스토리다. 드라마틱한 만남이나 운명적인 사랑같은 것도 없는 너무나 평이하고 소소한 스토리지만, 세포마을에서 이 소소함은 여러 세포의 긴장감 넘치고 스릴 넘치는 사건들이 된다.

기대했던 채우기가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충격을 받은 사랑세포는 무인도에 자신을 칩거하고, 유미의 세포마을은 잿빛 가득한 먹구름에 휩싸인다. 하지만 혼자라는 게 처절할 정도로 익숙해져 절망감으로 빗속에 서있는 유미에게 웅이가 우산을 씌워줄 때, 이 잿빛 세포마을에는 달달한 설탕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날 버스정류장에서 몸살로 쓰러진 유미를 병원까지 안고 뛰어간 웅이는 갈아입을 옷으로 개구리가 새겨진 원피스를 사오고, 깨어난 유미는 그 옷을 보고 미소 짓는다.

이 일은 유미의 세포마을에 변화를 일으킨다. 세포마을을 찾아온 개구리가 잿빛 마을을 복원하고 무인도로 찾아가 사랑세포를 데리고 나오는 것. 그 개구리는 옷을 벗으며 자신이 웅이네 세포마을의 사랑세포라고 자신을 밝힌다. 소소한 사랑의 시작이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이 되살아나는 판타지로 그려지는 세계. 그것이 바로 '유미의 세포들'의 세계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실사·애니메이션의 컬래버레이션이 만든 시너지

사실 청춘멜로만큼 익숙한 스토리가 있을까. 첫 만남의 설렘과 데이트 중 벌어지는 소소하지만 심쿵한 사건들, 그리고 오해와 사랑의 재확인 과정을 거쳐 마음을 고백하고 달달한 여행을 떠나는 그런 이야기들.

물론 최근 청춘멜로에는 여기에 현실을 겹쳐놓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임상춘 작가의 '쌈마이웨이'나 '동백꽃 필 무렵'이 그랬고, 박혜련 작가의 '스타트업'이나 하명희 작가의 '청춘기록'도 그랬다. 하지만 그래도 청춘멜로가 그리기 마련인 서사의 구조는 어느 정도 틀이 있기 마련이다.

'유미의 세포들' 역시 그 틀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처음 유미를 보자마자 첫 눈에 반한 웅이는 머리가 하얘져서 썰렁한 아재개그에 어색한 행동들을 보인다. 그래서 유미는 웅이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차츰 그 선입견을 깨는 웅이의 진심을 느끼면서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첫 키스를 하고 함께 설레는 여행을 떠나고….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하지만 이 똑같은 틀의 청춘멜로가 더 감정적인 몰입을 하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세포마을 세포들이 보여주는 사건들이 유미의 감정과 생각들을 강력하게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속으로는 질투를 느끼면서도 이를 표현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세포마을에서 표정관리 레버를 붙들고 늘어지는 세포들로 표현되고, 유미가 진심없이 리액션을 하는 대목에서는 세포마을에 이른바 '리액션 인형'이 등장한다.

데이트를 하는 와중에 생기기도 하는 배고픔과 화장실에 가고픈 욕망 등도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출출이와 대장세포로 캐릭터화돼 표현되고, 어떤 갈등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선택할 것인가 역시 세포마을 상황실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련의 과정으로 표현된다.

결국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컬래버레이션이 가능해진 이 색다른 청춘멜로는 그로 인해 더 풍부하게 인물의 감정과 심리, 생각 속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똑같은 멜로 상황도 더 극적이고 몰입감 높게 그려지게 된 이유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청춘멜로의 과몰입에서 보이는 청춘의 초상

'유미의 세포들'은 2015년 연재돼 누적 조회수 32억 회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긴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크리에이터로 송재정 작가가 참여했다는 건, 이 작품이 갖는 실험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송재정 작가는 '나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드라마에서는 좀체 시도하지 않았던 판타지 영역, 그 중에서도 허구와 현실을 오가는 이야기를 줄곧 다뤄온 작가다. '유미의 세포들' 역시 허구와 현실이 덧붙여져 시너지를 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송재정 작가의 조언은 이 웹툰의 드라마화에 균형감을 불어넣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한없이 달달하고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귀여움 한도 초과의 '유미의 세포들'은 한발 물러나 바라보면 지금 청춘들의 다소 씁쓸한 초상이 그려진다. 그것은 이 블록버스터처럼 그려지는 세포마을의 이야기가 모두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데서 느껴지는 사회 현실과의 괴리감에서 비롯된다.

유미도 웅이도 사회에서의 어떤 성취나 꿈에 대한 것들은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웅이는 자신이 게임 개발자가 된 건 거기 대단한 성공에 대한 열망이나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평생 게임만 하며 살고 싶었는데 그러면 굶어죽을 것 같아 게임을 만들게 되면서라고 했다.

유미는 작가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회사 회계팀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이상하게도 성취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빠져드는 건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연애의 세계다. 이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웹툰 '유미의 세포들'
웹툰 '유미의 세포들'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청춘을 우리는 안타깝게도 'N포세대'라 일컫는다. 현실의 무게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하는 그들에게 삶은 블록버스터처럼 거창하게 일에 도전하고 성취해내는 세계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더더욱 연애의 세계(그것도 진짜 아닌 가상의)를 마치 블록버스터처럼 느끼며 빠져드는 건 아닐까. 그래서 세포세계의 엄청난 블록버스터로 그려지는 '유미의 세계'는 마치 많은 걸 포기한 청춘들이 그래도 현실 가능한 사적인 영역에 대한 '과몰입'처럼 보이는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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