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좋은 집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진숙 문화칼럼니스트
이진숙 문화칼럼니스트

영국인은 정원 있는 집을 좋아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은 1990년에 지어진 반 이상의 집이 아파트'인데, '영국은 15퍼센트만이 아파트'라는 것이 그걸 말해준다. 그들은 아파트가 주는 '편리'보다 집이 주는 '여유'를 좋아한다.

화분과 꽃바구니로 장식한 집들이 참 예쁘다. 낮은 담장으로 뒷마당의 꽃 풍경은 나누면서도, 더 넓고 더 아름다운 앞마당은 주인만 누린다. 허리를 굽혀 꽃과 채소를 가꾸고, 오후의 차 한 잔을 챙긴다. 친구들을 불러 바비큐를 즐기고, 모임과 수업을 하고, 자선활동을 벌인다. 삶이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인데, 그들은 그런 일을 집에서 한다.

"파리는 파리지, 프랑스가 아니다."라는 프랑스 친구의 말처럼, 런던은 런던이지 영국이 아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집은 커지고 가격은 낮아진다. 도시에서는 원하는 물건이 많아지고, 시골에서는 원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런던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런던에 살지 않는 이유다. 사람들은 영국을 보기 위해 런던에 오지만, 나는 영국의 시골이 더 영국적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인에게 집은 '자기 영토일 뿐만 아니라 자기 정체성'이다. 종종 집에 이름까지 지어준다. 모퉁이라서 코너 하우스(corner house), 작은 시골집이라서 리틀 커티지(little cottage)라거나 꽃과 나무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들은 돈이 많이 생겨도 이사를 잘 가지 않는다. 나는 친구를 만나러 20년 전에 살았던 마을에 갔고, 딸의 초등학교 선생님을 그곳에서 만났다.

집을 꾸미는 일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다. 집을 수리하는 일에 유난스럽고, 손수 집을 고치는 일은 흔하고, 집을 예쁘게 바꾸는 티비 프로그램이 많다. 집들이 저마다 특색 있으며, 오래된 집이라도 예쁘다. 딸이 어릴 적 친구를 만났다. 결혼을 앞두고 둘이 헌집을 사서 직접 수리할 거라면서, 모든 외식을 끊고 돈을 모은다고 했다. 베스트 프렌드끼리 이십 년 만에 만났는데, 겨우 음료수 한잔 마시고 헤어졌다.

도미니크 로로는 <심플하게 산다>에서 "건축가와 인류학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한 개인의 정신을 찍어내는 게 바로 집이며, 인간은 자신이 사는 장소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환경은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고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장소를 보면 그 사람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했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집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거다. 내 집이 곧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집에 있으면서도 집을 누릴 줄은 몰랐다. 집은 집안일만 떠올리게 했고,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았다. 이따금 내가 보잘 것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충족되지 않은 뭔가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그게 밖에 있는 줄만 알았다. 집에 살면서도 집을 보지 못했고, 집이 보이지도 않았다. 원하는 삶의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고작 그랬다. 이제는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집이 편안하다. 친구와의 대화는 오붓해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며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사이가 깊어지고 각별해진다. 떨어져 사는 딸은 집에 오면 밀린 잠을 잔다. 집이란 그렇게 편히 쉬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좀 다른 말을 한다. 집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이란다. 집의 새로운 발견이다.

우리가 삶을 죄다 밖으로 몰아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집을 사기 위해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한다.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한 집에서 잠만 잔다. 수십 년을 만난 친구끼리 서로의 집에 가본 적이 없다. 조이스 메이나드는 "A good home must be made, not bought.(좋은 집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원하는 삶이 있어야 원하는 집을 만들 수 있다. 삶을 가꾸는 일은 집을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집을 애써 아름답게 가꾸어야하고, 유용하게 사용해야하는 이유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해답이 집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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