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마스크 공화국 ‘만세’

지난 11일 서울 시내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서울 시내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군복무를 마친 이후에는 이렇게 자주 그리고 오래 줄을 서 본 적 없다. 외신 보도를 통해 공산주의 국가에서 빵을 구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들을 보고 남의 일처럼 여겼는데, 이 진풍경이 우리 일상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마스크 대란'이다. 온 국민이 마스크를 끼고 바깥에 나가야 하며, 온 국민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목매는 나라가 되었다.

전염병이 문제인지 마스크가 관건인지 헷갈리는 판국이다. 줄 선 사람들은 멀리서 온 만큼이나 그리고 기다린 시간에 비례하여 속이 상하다. 우체국을 그렇게 자주 찾은 적이 없었다. 약국을 이렇게 전전한 적도 없다. 여차하면 주말에도 약국 앞 줄서기에 합류해야 한다. 이게 무슨 촌극인가. 이 무슨 해괴한 풍경들인가. 과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우리는 마스크 공적 판매와 구매 5부제의 나라에 살고 있다. 마스크 2장을 사기 위해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고 노약자의 대리구매에는 주민등록등본까지 들고 가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만나면 첫 인사말이 "마스크 구입했어요?"이다. 표정들은 지쳐 있고 목소리에는 짜증과 분노가 묻어 있다. "마스크 하나 공급도 못하면서 무슨 국민 복지를 들먹이느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애당초 성장과는 거꾸로 간 집단이었지만 분배 하나는 전문일 것 같았는데, 이마저 엉터리였다. 마스크 대란과 관련한 정부·여당의 오락가락 갈팡질팡 대응은 더 가관이다. 신종 코로나 발병 초기에는 마스크 사용을 적극 권고하며 재사용은 하지 말라고 했다. 천이나 면으로 된 것은 좋지 않다며 보건용을 쓰라고도 했다. 그러나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마스크 구입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자 '재사용해도 된다'로 바뀌었다.

'마스크 사흘 사용론'과 '면 마스크 애용론'이 나오고 이제는 '마스크 사용 자제론'까지 등장했다.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민이 믿고 따를 곳은 정부뿐인데,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그 와중에 마스크는 코로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국민 신앙처럼 굳어졌다. 마스크는 이제 감기 환자들의 위생용품이나 범인들의 안면 은폐 도구가 아니다.

인기 연예인들의 멋내기 패션용품도 아니고 시위 군중의 신분 숨기기 복면용품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의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마스크는 사람들 간의 대화와 교유를 온전히 차단해버렸다. 온 나라가 무성(無聲) 가장무도회장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속에서 국민들은 오늘도 불안하고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8천 명이 넘는 확진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 그들과 접촉한 수십만 국민의 불안과 불편, 생사를 건 의료진들의 투혼과 땀방울, 그리고 코로나 한파에 얼어붙은 서민들의 눈물과 신음 속에서도 정부·여당은 자화자찬이 늘어졌다. '방역 역량이 지구상 최고' '코로나 대응이 세계의 표준'이라는 공치사가 나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국은 코로나 방역의 모범 사례로 평가될 것"이라고 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더니….

국격의 추락과 외교적 망신에 따른 국민의 한탄과 분노의 목소리조차 코로나 극복 개선가로 들리는 모양이다. 사방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전염병 바이러스를 다 불러들이고는 엉터리 사후약방문도 모자라 역설과 궤변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이만큼 대응을 잘한 나라도 없다'고 한다. 그들은 '마스크 공화국'을 만들었지만 '마스크 공화국' 사람이 아니다. 정녕 마스크가 필요 없는 달나라 사람들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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