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서 속 인물]지혜의 왕 솔로몬의 반전

루벤스 작 '솔로몬의 재판'
루벤스 작 '솔로몬의 재판'

구약성서 열왕기상(4:32~33)을 보면 '그는 삼천 가지의 잠언을 말하였고 1천500편의 노래를 지었고 레바논에 있는 백향목으로부터 벽에 붙어서 사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목을 논할 수 있었고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두고서도 가릴 것 없이 논할 수 있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그는 다름 아닌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며 "살아있는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는 명판결로 회자되는 솔로몬 왕이다.

솔로몬이 지혜롭게 될 수 있게 된 계기는 그의 업적을 기록한 '왕상'편에 잘 드러나 있다. 솔로몬이 일천 마리의 제물을 바치는 성대한 번제를 올리자 하느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줄테니 너는 구하라"하시니 그는 지혜를 구했다. 이에 하느님은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다"고 예시했다.

다윗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국 3대 왕인 그가 이렇게 '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은 그가 처음부터 왕위를 계승하기에 적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다윗이 본부인이 아닌 여인으로부터 낳은 두 번째 아들로 왕위계승 서열에서 밀려나 있었으나 그의 어머니(밧세바)가 이복형이자 왕위계승의 1순위인 아도니야를 따돌리고 그를 왕위에 올렸기 때문에 정통성의 측면에서 볼 때 그에게는 큰 콤플렉스로 작용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왕권 초기 정적들로부터 곤경을 겪고, 통치기간 40년 중 절반가량을 왕궁과 성전 건축에 주력함으로써 수많은 불만세력의 저항에 부딪혀야 했던 그는 이 모든 얽인 실타래를 풀 묘안이 필요했고 그 묘안은 지혜로부터 연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즘 말로 정적도 물리치면서 명분도 쌓을 수 있는 지혜로운 '신의 한수'가 그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했던 셈이다.

'지혜'로 날개를 단 솔로몬은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 뛰어난 국제적 감각을 지닌 군주로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끌어 갔고 많은 주변국에서 그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스바 여왕이 어려운 문제로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고자 예루살렘에 온 일이다. 질문에 막힘없이 답한 솔로몬의 지혜에 감탄한 스바 여왕은 결국 온갖 종류의 향료와 금은보석을 솔로몬에게 주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열정이 지나치면 격정이 되고 격정이 오래가면 자만심이 고개를 곤두세우는 법.

국가적 부의 팽창과 화려한 외국문물의 수용이 솔로몬의 열정을 부채질했던 만큼 내부 모순도 역시 심화됐다. 궁정과 성전 건축에 따른 과중한 세금과 솔로몬의 여성편력은 이후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을 예고했다.

권력의 암투 속에서 성장했고 불리한 조건에서 왕권을 손에 쥔 솔로몬의 콤플렉스에 대한 불똥은 사랑의 갈망으로 나타났다. 솔로몬은 파라오의 딸과 결혼한 후 수없는 이방 여자들을 후궁으로 맞이했다. 열왕기상(11:3)에 따르면 후궁이 700명에 첩이 300명에 이르렀다.

원래 욕망은 결핍을 먹고사는 '괴물'인 까닭에 채울수록 부족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초기에 현명했던 군주가 말년에 탐욕에 빠져 나라를 망쳤던 경우는 적지 않았다.

마치 화려한 지혜 속에 숨어든 어두운 그늘처럼 드리워졌던 솔로몬의 여성 집착은 타락의 전조가 됐고 마침내 그들의 꼬임에 빠져 다른 신들을 섬기는 과오를 저질러 이후 이스라엘 왕국을 분열시키는 원인이 됐다. 말년의 여성 집착이 솔로몬 왕의 뛰어난 지혜를 잠식시켜버린 것이다. 이럴 바에야 넘치는 지혜보다 진솔한 일상의 삶이 오히려 감사하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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