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관매도 꽁돌

꽁돌에서 인생사 떠올리며 민어회 안주에 개똥쑥 막걸리

진도의 남쪽 끝 팽목항에서 24㎞ 떨어진 곳에 관매도란 섬이 있다. KBS '1박 2일'의 무대가 된 곳이어서 '관매도'라고 하면 "아하 강호동이 나오는 그 섬 말이지" 하고 아는 체를 한다. 관매도는 섬의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전설 같은 이야기까지 품고 있어 아주 매력 있는 곳이다. 선착장에서 10여 분쯤 걸어 들어가면 관호마을 입구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 돈대봉으로 올라가는 길목 우물터에서 '꽁돌 가는 길'이란 표지판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면 뒷재에 올라선다. 뒷재에서 내려다보이는 맑은 바다와 섬이 그려놓은 해안선이 그냥 수채화 한 폭이다.

이 섬이 생긴 지가 몇천만 년 전인지 그건 알 길이 없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파도가 해변의 바위를 갉아먹어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한 그런 섬이다. 뒷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넓은 살평상처럼 생긴 바위 해변에 볼링공 수백 배 크기의 높이 6m, 너비 4~6m의 둥근 돌이 바다 속으로 빠지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로 앉아 있다.

이젠 이 섬의 대표 아이콘으로 관광 안내 책자의 관매도 편을 펼치면 꽁돌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다섯 개의 돌을 가지고 놀던 두 왕자가 실수로 돌 하나를 지상으로 떨어뜨려 버린다. 당시 천상에는 장기와 바둑은 물론 고스톱을 칠 화투도 없어 공깃돌이 유일한 놀이기구였다. 옥황상제가 만날 날개 달린 여신들만 데리고 놀 수도 없는 일이어서 잃어버린 돌을 몹시 아까워했다.

무료한 오후를 뒤적거리고 있던 옥황상제가 가장 힘센 하늘 장사를 불렀다. "땅에 내려가서 돌을 찾아오너라." 헬리콥터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특전사 베레모 군인처럼 하늘 장사는 관매도 왕돌끼미에 내렸다. 야구계로 따지면 옥황상제는 아주 지능이 높은 감독이었다. 명감독은 위급상황일 때 좌완투수와 왼손타자를 기용하듯이 옥황상제도 사우스 포인 하늘 장사를 기회가 단 한 번뿐인 선발투수로 지명한 것이다.

하늘 장사가 꽁돌을 보는 순간 만만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오른쪽 손으로 집으려다가 그래도 옥황상제의 심부름인데 싶어 왼손으로 들어 올려 호주머니에 넣으려고 했다. 그 순간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천상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거문고의 선율에 매혹되어 돌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두 명의 사자를 땅으로 다시 내려보내 하늘 장사를 꽁꽁 묶어 데려오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들 역시 하늘 장사를 데리고 떠나려는 순간 똑같은 거문고 소리가 들려 역시 얼어붙고 말았다. 그때 연주됐던 거문고 가락이 무슨 곡인지는 관매도 노인들은 모른다. 유추컨대 거문고가 앞장서 끌고 가는 '영산회상'이든지 아니면 천상의 단조로운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팔도유람가'나 '호남가'가 혹시 아니었을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옥황상제는 꽁돌 앞에 돌무덤을 만들어 그들 셋을 묻어 버렸다. 그 자리를 '돌묘'라고 부르는데 시방도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 꽁돌은 하늘 장사가 왼손으로 집었던 다섯 손자국이 선명하고 지문까지 어렴풋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왼손잡이 골프선수 필 미켈슨이 꽁돌을 날릴 수 있는 거대한 드라이브를 갖고 관매도를 찾아와 옥황상제가 있는 하늘나라로 티샷을 한 번 해 봤으면 어떨까 싶다.

우린 이 동네에서 만들어 파는 개똥쑥 막걸리 됫병 하나를 1만원 주고 사와 민어회를 안주로 요기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는 꽁돌에 대한 잔상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따라다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가 제우스에게 밉보여 큰 돌을 있는 힘, 없는 힘 다해 가며 정상으로 들어 올리면 거대한 돌덩이는 저절로 산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그 돌이 혹시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지만 그런대로 아름다운 생각이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시시포스는 신화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교활하다. 그렇게 영악한 인물이 제우스가 보낸 저승사자를 따돌려 죽임을 당하는 것조차 면할 수 있었지만 끝내 저승행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스 신화를 들춰보면 꾀로 뭉쳐진 인물들이 때론 영화를 누리고 여인을 차지하고 장수를 하기도 한다. 권선징악은 현대판 서부영화에서는 더러 사라지고 있지만 인류사가 계속되는 한 '순천자(順天者) 흥(興), 역천자(逆天者) 망(亡)'이란 등식은 여전히 성립되고 있다.

관매도 꽁돌은 우리의 인생사를 돌덩이 하나로 압축해 놓은 교훈석이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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