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순화어의 운명

최근 국립국어원에서는 외국어를 순화할 수 있는 말을 선정하여 발표를 했다. 대표적인 몇 개를 보면, 스마트폰은 '똑똑전화', 킬힐은 '까치발구두', 리얼 버라이어티는 '생생예능', 팔로어는 '딸림벗', 스펙은 '공인자격', 세꼬시는 '뼈째회', 퀵서비스는 '늘찬배달', 러브샷은 '사랑건배' 등이다. 이 중에서 '동아리', '누리꾼' 정도의 지지를 받아서 사용될 수 있는 말이 '뼈째회'와 '딸림벗' 외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국립국어원에서 제안한 말과 일반인들이 연상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사전적 의미 외에도 어감이나 연상적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예를 들어 다방, 찻집, 커피숍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다방이라면 왠지 좁은 계단을 지나 지하나 2층에 있고, 소파로 된 의자에 백구두를 신은 중년 신사와 붉은 립스틱을 바른 레지가 앉아 있고, '그리움만 쌓이네'와 같은 늘어지는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반면 찻집은 전통적인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개량한복을 입은 주인이 명상 음악을 틀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커피숍은 1층이나 2층에 있고, 벽은 유리로 되어서 안과 밖이 훤히 통하고, 안을 보면 젊은 사람들이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을 만지고 있을 것이며, 계산할 때는 꼭 포인트 적립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각각에서 연상하는 것이 이처럼 다르기 때문에 커피숍을 아무리 다방이나 찻집으로 순화하자고 해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미 풍부한 연상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무리 외국어보다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억지로 바꾸기가 힘들다. '핸드폰'을 '손전화'로 순화하자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정착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전화'와 '폰'이 다르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폰 좀 사 주세요"라고는 하지만 '전화' 사 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집전화가 울렸을 때 "전화 받아라"라고 하지 '폰' 받으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똑똑전화'라고 하자고 할 때, '폰'을 '전화'로 순화하기도 어렵고, '똑똑하다'와 '스마트하다'는 어감이나 연상되는 의미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착이 쉽지 않은 것이다.

'팔로어'나 '세꼬시'의 경우 말뜻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많이 쓰이지 않는다. 이런 말들의 경우는 우리말로 순화하기가 쉽다.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할 때 다른 사람의 글이나 의견에 답을 다는 것을 리플라이(reply), 줄여서 '리플'이라고 했다. 이 단어는 일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영어 단어다 보니 연상적 의미도 잘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때 더 나은 대안인 '댓글'이라는 말이 제안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국어 순화를 할 때에는 이런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민송기<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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