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동교동서 독재자 딸 지지한다고 비난…그것은 DJ 욕되게 하는 것"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은 국민통합과 동서화합 때문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2004년 박 후보가 동교동을 예방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환생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며 '박 대표(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동서화합을 이뤄 국민통합을 이룰 적격자'라고 말씀하셨다. DJ 대통령은 이미 유신이고 뭐고 정치보복 하지 않겠다며 다 용서했다. 화해하자고 했다. 내가 박 후보 지지하니까 동교동에서 독재자의 딸을 어떻게 지지하냐고 비난하는데 그것은 DJ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의 핵심이었던 한화갑(73) 전 민주당 대표의 박근혜 당선인 지지는 이번 대선에서 동서화합의 상징이었다. 비록 광주 등 호남에서 박 당선인이 10% 안팎의 득표에 그치기는 했지만, DJ의 적자였던 한 전 대표의 지지는 박 당선인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는 박근혜 지지 선언 후 '동교동'의 옛 친구였던 김옥두 전 의원으로부터 모욕적인 공격을 당하기도 했고 고향에서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미 동교동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던 터라 동교동 쪽의 비난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한때 '리틀 DJ'로 불리면서 DJ의 후계를 자처했다가 실패했던 과거의 정치적 선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평생 DJ를 모셨는데 나 스스로 언제나 '김대중이라는 거울'에 비춰봤다. (DJ와)같으면 하고 (DJ와)다르면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정체성 없는, 개성 없는 정치인이었을 뿐이었다. DJ 대통령도 서거하셨으니 이제 내 정체성을 확립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80도 변신했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면 (그런 결정을)못했을 지도 모른다. (박 당선인을)지지하고 나니까 그렇게 마음이 후련하더라."

1967년 동교동에서 정치를 시작한 이후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 'DJ 거울'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그의 고백이다.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정치를 한 후 지금껏 박 당선인을 세 번 만났다. 첫 번째가 2000년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식 때 미국에 갔을 때였는데 당시 주미대사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점심 하자고 해서 만난 것이 두 번째였고 이번에 전화가 와서 세 번째 만났다. 만나서 보니까 요조숙녀고 양순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한나라당을 남자들 속에서 이끌고 왔을까, 리더십이 있구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대답하고 돌아왔는데 집에 오니까 자꾸 마음이 끌렸다.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러면 전라도에서 역적이라고 할 텐데 하는 생각 속에서 고민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전라도 개발을 약속해달라 그러면 지지해주겠다고 했더니 박 당선인이 5일 광주에 가서 한화갑 대표가 제시한 지역발전 공약을 약속했다. 그 다음 날인 6일 지지 선언을 했다.

-박 당선인을 지지한 것은 문재인 전 후보에 대한 감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솔직히 얘기하겠다. 개인적으로 문재인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나를 팽(烹)시켜서 내 정치생명을 빼앗았다. 그때 경선후보 중 유일하게 나만 경선자금을 이유로 기소했다. 열린우리당 초대 의장을 맡은 김원기 씨가 경선자금을 조사하라고 기자회견을 한 이후였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청와대 정찬용 인사수석이 광주에 와서 왜 전라도 사람을 냉대하느냐고 하니까 '사무관 이상 진급을 올리면 문재인이 다 지워버렸다고도 실토했다. 그런 사람을 내가 지지할 수는 없었다."

-당분간 고향 가기 힘들겠다.

"고향의 지지자들이 '어디서 형님 얘기 나오면 귀를 막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고향 밖에서는 잘했다며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목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노동자 7명이 '한화갑이를 죽이러 가겠다'고 했다. 한광옥이 박 당선인 지지할 때는 말썽 없더니 내가 지지하니까 그렇게 말썽이다. 동교동에서 난리라고 하는데 사실 동교동은 나를 이미 파문했다. 동교동 모임이 있을 때 나한테 연락도 하지 않는다. DJ대통령 살아계실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놓고 이번에 무슨 한화갑이를 파문한다느니 난리를 치더라.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이희호 여사님이 '문재인의 집권은 DJ의 유지라며 집권 못하면 5, 6공 사람이 등장한다'고 전했는데 그 사람 본인은 5공 사람 아니냐. 동교동이 5공 사람에게 점령당했는데 이 여사께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이 여사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리가 없다."

-지금 동교동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대변하는 것 같다.

"동교동의 뿌리는 없어지다시피 했고 5공 세력인 박지원이 동교동의 상속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거기에 동교동의 역사의식이 어디에 있으며, 뿌리가 내릴 수 있는 터전이 어디 있는가. 정치지도자가 사람을 키워주기 위해 사람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할 때 썼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온 것이다. 지금 동교동은 나쁘게 말하면 박지원이 이 여사를 조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돼 버렸다. 뿌리가 소멸한 것이다."

-DJ의 뿌리는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훼손시켰다고 봐야 하는가.

"참여정부는 DJ대통령이 만들어 준 것이다. 당시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전라도 사람인 한화갑은 어렵다' 며 나를 제치고 영남 사람인 노무현을 밀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었다. 청와대 사람들이 광주 경선에 와서 노무현을 밀어주고 올라갔다. 노무현을 당선시켰는데 노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DJ와 완전한 차별화 정책을 했다. 대북송금 특검과 분당이다. 그것은 '김대중 당'은 필요 없고 '노무현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였고 자신은 DJ의 후계자가 아니다는 뜻이었다. 동교동의 뿌리는 그때 뽑혀나간 것이다."

-정치를 하면서 언제가 절정기였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래도 집권 시절이 최고의 절정이었다. 집권여당의 원내총무와 사무총장, 당 대표를 지냈다. 좋은 시절이었지만 제대로 선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1997년 대선 때 제가 성명서를 기초해서 '집권해도 청와대나 내각에 가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대통령에게 보탬을 줬는가는 모르겠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치인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한 셈이다.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당선인도 대탕평 인사를 공언했다. 친박핵심이나 영남인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탕평책이 국민화합에 보탬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미국의 인종차별 금지법 같은 제도적 장치를 해야 한다. '호남 총리', 호남출신 인수위원장 운운하는데 지금 이명박 정부도 호남출신이 총리를 맡고 있지 않으냐. 그 사람들이 총리 한다고 해서 호남의 차별을 시정하는 경우는 못 봤다.

총리는 청와대와 호흡을 같이해야 하고 청와대 수석들과 호흡을 같이 못 하면 총리 바꾸라는 소리가 나온다. 누구를 총리로 임명하느냐 중요하다. 애국심과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필요하다. 더불어 책임을 공유하고 봉사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지역만 나눠서는 화합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는 '친박' 등 핵심인사들의 역할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김대중 정부 때 우리 공신들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 각료들은 김대중 도와준 사람이 아니라 김대중 덕 본 사람이었다. 충성심을 갖춘 김대중 사람이 없다. 그런데 참여정부 때는 공신들을 전부 총리, 장관 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비교해봐라. 차이가 난다.

공신을 예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권을 잡는 것 아닌가. 감투를 주고 영화를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라는 경쟁을 시켜주면 된다. 그런 자격이 없으면 못 주는 것이고….

사람들이 '친박'할 때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친박'한 것이다. 국회의원 한 번 하려고 친박한 사람도 있겠지만, 정권을 잡으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 것이다. 그 기회가 박탈되면 얼마나 섭섭하겠느냐. 솔직해야 한다."

-이번에 호남과 영남 간의 대결구도가 재연됐다. 지역구도가 완화되고 바뀔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전라도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민주당을 '우리 당'이라고 한다. 민주당은 (전라도 사람들이)DJ를 대통령 만들려고 지지했던 정당이다. 그때 관성이 그대로 살아 있다. 문재인같이 전라도를 차별한 사람이 후보로 나와도 민주당으로 나오면 '우리 후보'가 된다.

유권자는 투표하는 기계다. 사고하는 유권자가 아니다. 앞으로 전라도 사람은 생각하는 유권자가 돼야 한다. 그리고 경상도도 전라도에 대한 우월의식을 버려야 한다. 전라도 개발하는 데 대한 시기심도 버려야 한다. (경상도는) 그렇게 잘 살면서 좀 나눠주면 어떤가. 전라도 사람들도 '국내화'부터 해야 한다. 다른 지방사람과 교류해야 한다. 전라도 바깥에서는 어디를 가도 전라도 향우회가 있는데 전라도 안에는 다른 지방 향우회가 없다. 전라도는 완전한 고도다. 변화를 싫어한다.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폈는데 얼마나 어리석었냐. 전라도 사람들도 깨달을 것이다.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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