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속 실크로드] <1>신라인은 코즈모폴리턴이었다

매일신문 창간 74주년 기념 계명대학교 실크로드중앙아시아 연구원, 경상북도 공동기획

최근 우리 고대사에서 '실크로드'(Silk Road)가 갖는 의미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서역(西域), 중앙아시아 또는 더 멀리 로마제국 유물이 경북 경주 등지에서 적잖게 출토되면서다. 이같은 관심은 역사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낯설고 기이한 물품에 대한 호기심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누가 어떤 이유와 배경 때문에 이역만리와 교류했는지를 살펴봐야 우리 역사가 풍성해진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또 다른 천년의 방향을 모색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신문은 이에 경상북도, 계명대 실크로드중앙아시아연구원과 공동기획으로 신라(新羅) 속의 실크로드를 찾아 떠난다. 그 길 위에서 보수적, 배타적이란 오해 대신 '새롭게 뻗어나간다'는 국호 그대로 진취적이고 개방적이었던 신라인들을 만나려 한다.

흉노의 활동무대였던 천산산맥. 계명대 실크로드중앙아시아연구원 제공 흉노의 활동무대였던 천산산맥. 계명대 실크로드중앙아시아연구원 제공

◆왜 고구려도 백제도 아닌 신라였을까?

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질적 문명을 연결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통로였다. 19세기 후반 독일 학자 리히트호펜이 처음 쓴 뒤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초기에는 '사막의 길'(오아시스의 길)만 의미했지만 '초원의 길'(스텝루트)과 '바닷길'에다 거미줄 같은 지선들까지 포함한다.

연구가 축적되면서 실크로드 외연은 점점 확장됐다. 중국 장안이나 터키 이스탄불, 이탈리아 로마 등을 종착점으로 보는 제한적 인식에서 벗어나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경주까지 그 선상에 올려졌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였을까?

사실 유독 신라에서 서역과 북방 초원 유물이 많이 발견된 것은 우리 고대사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이다. 지리적으로 한반도 동남부 끝에 치우쳐 있었고 고구려, 백제에 비해 전성기도 늦게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에서 유래한 로만글라스(Romanglass)는 거의 대부분 경주에서 출토돼 신라가 서역과 직접 교류했다는 근거로도 꼽힌다.

어쩌면 부여를 계승했다고 자처한 고구려, 백제와 달리 신라는 중층적 정치체였다는 사실이 실마리를 풀 열쇠일지 모른다. 경주에 먼저 정착한 토착세력, 긴 세월에 걸쳐 흘러들어온 여러 갈래 유이민들이 세운 나라가 신라였다. 중국 역사가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신라의 전신인) 진한에는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도망친 무리가 있다'는 내용이 등장할 정도이다.

김씨 성을 지배집단의 성씨로 공유한 나라는 또 있다. 일찍이 수로왕을 중심으로 변한지역에 자리잡은 가야이다. 가야의 김해김씨와 신라의 경주김씨 등장이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령총 금관.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금령총 금관.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서봉총 금관.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서봉총 금관.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그들의 뿌리는 초원과 사막, 오아시스를 넘나들던 유목 야장신(冶匠神)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신라가 금관의 나라이듯 가야 역시 금동관과 철기의 나라다. 신라와 가야는 황금 숭배와 무덤 양식, 언어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백제와는 엄연히 달랐다.

주보돈 국립경주박물관 운영자문위원장(경북대 명예교수)은 "로만글라스가 가야 등 신라 밖 일부에서도 발견됐지만 경주에서 나눠 받은 것이라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유물들의 생산지가 아니라 신라의 주체적 수용과 당시 국제 관계"라고 했다.

◆신라인이 흉노의 후예?

경주 신라대릉원 전경. 경주시 제공 경주 신라대릉원 전경. 경주시 제공

신라사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은 제30대 왕인 문무왕(?~681)이다. 경주에서 발견된 '문무대왕릉비'때문이다. 여기에는 김씨 왕실의 내력, 아버지 무열왕과 자신의 업적, 유언 등이 적혀 있다.

문무왕비 하단.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문무왕비 하단.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기록을 잠깐 살펴보면 조선 후기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는 문집 '이계집'(耳溪集)에 '682년 경주 사천왕사에 세워진 문무왕릉비 조각들을 정조 20년(1796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비문 탁본 중 하나가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의 저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실렸다. 그 뒤 실물의 행방은 묘연해졌다가 1961년 경주에서 아랫부분이, 2009년에 윗부분이 발견됐다.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문무왕이 자신의 조상이 투후(秺侯)이라고 밝힌 점이다. 일찍이 조선에서도 투후가 누구인지 고심한 흔적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해동비고'(海東碑攷)에서 투후는 곧 김일제(金日磾)라고 추정하면서 신라가 김일제의 후손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김일제가 중국 감숙성 무위에 위치한 서북성을 다스리던 흉노족 휴도왕의 태자라는 사실은 반고의 '한서'에 나온다. 그는 한나라 군대의 포로가 돼 말을 기르는 노예살이를 했으나 한무제의 생명을 구한 덕분에 말을 잘 다루는 사람에게 부여된 최고의 작위(투후)와 함께 김씨 성을 하사받았다. 그 후손은 훗날 왕망의 신나라 건국에 참여했지만 후한 광무제에 의해 멸망, 중국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이 당당히 흉노의 후예를 자처한 것은 부여계와 다른 정통성 확보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건곤일척의 싸움을 끝낸 당나라와도 분명한 차별화를 꾀하고 싶었을 수 있다. 계명대학교 실크로드중앙아시아연구원장인 김중순 교수는 "신라인들이 말한 흉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랑캐나 미개한 유목민이 아니다"라며 "그들은 강력한 무기와 군사력을 갖추고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유목문화의 상징적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기록은 김일제에게 김씨 성이 부여된 이유를 '금인제천'(金人祭天)이라고 한 사실이다. 즉 그들의 조상이 금으로 사람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 성의 근원이 금으로부터 발현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대장장이 문화, 금을 빚는 연금술의 장인들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 교수는 "신라와 가락국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금동관이 주로 김씨 왕족 무덤의 경우라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며 "이는 다시 유목민 흉노와 말(馬), 그리고 알타이가 내포하고 있는 일련의 문명코드로 연결망을 이루게 한다"고 말했다.

실크로드에서 바라보면, 신라는 이처럼 한반도를 넘어 자연스레 유라시아로 향하게 되고, 민족을 넘어 세계를 향하게 되며, 오래된 신라의 역사는 교류의 가치를 대변하는 미래의 아이콘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경주 쪽샘 적석목곽묘 출토 장신구류. 문화재청 제공. 연합뉴스 경주 쪽샘 적석목곽묘 출토 장신구류. 문화재청 제공. 연합뉴스

◆만데네와 문명왕후

문명왕후는 가야국 출신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文姬)다. 그녀는 언니 보희(寶姬)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서형산 꼭대기에 올라앉아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가 물에 잠기더라고 했다. 문희는 보희에게 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리고 김춘추와 결혼을 했더니 그가 무열왕이 되었고, 그 사이에서 나은 아들이 바로 문무왕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는 세 가지 신화소(神話素)가 숨어 있다. '홍수', '매몽(賣夢)', 그리고 '방뇨(放尿)'다. 사실 이들은 이미 고대 오리엔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라 인류 문명의 보편적 신화소라고 할 수 있다.

홍수는 세상을 몽땅 물에 잠기게 한 뒤 새로운 창조의 과정을 설명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매몽은 일종의 운명 바꿔치기라고 할 수 있는데, 동생이 형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들이는 야곱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 방뇨는 왕권이 모계로부터 비롯된다는 일종의 혈통 정체성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된 만데네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만데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 속하던 메디아 제국의 마지막 왕 아스티아게스의 딸이다. 왕은 공주 만데네가 오줌을 싸서 도시가 온통 물에 잠기고 아시아 전역에 범람하는 꿈을 꾸었다. 신관에게 물으니 만데네가 낳을 아들이 장차 할아버지인 자신마저 죽이고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손자에게 왕위를 빼앗길 것이 두려웠던 아스티아게스 왕은 만데네를 당시만 해도 보잘것 없는 이웃 캄비세스 부족 왕과 결혼시켰다. 그리고 손자가 태어나자 죽여 없애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아이가 바로 오리엔트를 재통일한 페르시아의 키루스(Cyrus, 기원전 559~530) 대왕이다. 키루스 대왕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고레스 왕이다.

계명대학교가 발행하는 실크로드 국제학술지 'Acta Via Serica' 최근호에서 이탈리아 나폴리대학의 마우리지오(Maurizio) 교수는 "문희 설화의 원형이 바로 만데네 설화"라고 했다.

이들은 새로운 왕의 등장에 결핍된 조건들을 채워주고 있다는 면에서 같은 내용이다. 문희의 아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완성하고, 만데네의 아들 키루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다. 과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 확립을 위해 홍수는 필수적이다. 문무왕이 성골이 아닌 진골 출신이며, 어머니 쪽 혈통이 신라가 아닌 가야국이라는 사실은 왕이 되기에는 결핍된 자질이다.

마찬가지로 키루스 왕이 메디아 제국이 아닌 캄비세스 부족 혈통이라는 사실도 결핍된 자질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머니의 방뇨를 통해 강력한 모계 혈통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라의 이야기를 천년 전의 아득한 서역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것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최초의 유목민, 스키타이는 고대 오리엔트를 지배하다가 메디아 제국에 의해 BC 7세기 말 밀려났다. 그리고 유라시아를 휩쓴 그들의 문명은 다시 흉노에게 계승됐으니 그 연결고리를 통해 오줌 싸는 이야기도 페르시아에서 신라로 전해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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