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와 함께 나누고픈 북&톡] 침묵으로의 소통, 그 무게감

봄,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이젠 더 깊어진 주변을 돌아보며 안부를 묻는 가을입니다. 여름에 이어 '가을 장마'가 완전히 지나가버린 지금, 이 계절에 '장마엔딩'이라는 이름을 붙여봅니다. '벚꽃엔딩'에는 날씨만큼 마음도, 표현도 한없이 살랑이고 가벼운 계절감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의 계절은 둔탁하지만 묵직하고 깊게 전해지는 이야기같이 사람을 깊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표지 박준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표지

박준의 시 '장마'의 화자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적습니다. '함께 벚꽃을 보러가자'도 아니지만 설렘을 주는 말입니다.

시의 부제를 대하고 시의 전문을 모두 읽으면 시를 대하는 마음은 훨씬 깊고 묵직해집니다. 시의 부제는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내용은 이 시가 사랑 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은 처음부터 편지에 썼던 내용이 아닙니다. 먼저 썼던 편지를 구겨버린 후 새로 적은 것입니다. 앞선 편지에는 태백의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전했습니다.

시인은 '장마'에서 편지를 구겨버리는 것으로 과거의 일상 속 겪고 들은, 힘든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대해 침묵합니다. 그리고 막연하기는 하지만 미래의 희망과 연대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섬세한 결의 언어로 조심스레 담습니다.

구겨버린 답장에 담긴 내용과 새로 적은 내용은 필연적으로 시라는 장르의 언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시인이 시어로 시에 담지 않았지만 시에 분명히 담겨 있을, 수많은 이야기를 구겨버린 종이로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부피감이 크지 않지만 그 무게감은 그 어떤, 두꺼운 책 못지않게 수많은 시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 능동적 언어로의 침묵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표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표지

막스 피카르트는 제법 두꺼운 '침묵의 세계'라는 책에서 침묵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침묵은 단순하게 말을 하지 않음, 말의 중단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능동적인 언어라고 강조합니다. 침묵은 태초부터 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었지만, 침묵이 없이는 말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도 역설합니다.

또 내면에 침묵을 간직한 사람은 그 침묵으로 말미암아 외부 세계로 움직여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 움직임은 한 사람의 침묵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침묵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사랑이 가장 멀리까지 뻗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사랑 역시 침묵할 때에 더 쉬워진다고 합니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이제 데이터의 단위는 페타, 엑사, 제타를 넘어 요타바이트까지 출현했습니다. 우리가 정보를 활용하는 즉시 우리의 정보 이용 행태는 다시 수집되고, 이는 다시 정보 표현과 생산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정보로, 또 정보의 정보로 재생산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 침묵을 존중하는 문화는 퇴색되었습니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오랜 격언은 정보 공유와 소통이 강조되는, 이 시대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침묵의 중요성을 생각할 기회도, 침묵할 기회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신조어는 눈 깜짝할 사이 늘어갑니다. 심지어 좀처럼 침묵할 줄 모르는 이를 가리키는 말까지도 생겼습니다. 바로 'TMI(Too Much Information)'와 'TMT(Too Much Talker)'입니다. 이는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침묵의 중요성에 대해서조차 침묵하지 않는 시대를 반영합니다. 우리에게는 침묵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침묵을 잃은 사회에서의 소통은 오히려 더욱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단언컨대 능동적 언어로의 침묵은 가장 강력한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 너무나 많은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때, 침묵으로의 소통, 그 무게감을 상기해보시기를 권해봅니다.

수많은 정보를 전하고 또 전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함께 나눌 수도 있을, 미래의 희망을 기도하며 그저 침묵해 보는 것으로도 소통하는 경험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침묵으로의 묵직한 소통이 주는 힘이 함께 할 것입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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