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앞두고 적성을 찾았어요" 동화구연가 전미순 씨

전미순(69) 동화할머니, "아이들과 만날 준비 하느라 한 주가 정신없이 바빠요"  

전미순(69) 동화할머니의 동화 이야기에 어린이들이 빠져들고 있다. 전 씨의 동화구연에는 하모니카와 뜨개질로 만든 벌·딸기 등 다양한 소품이 등장한다. 3~4세 어린 아이들인 만큼, 잠시만 방심해도 금방 집중력이 흩어지기 때문에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전미순 씨 제공 전미순(69) 동화할머니의 동화 이야기에 어린이들이 빠져들고 있다. 전 씨의 동화구연에는 하모니카와 뜨개질로 만든 벌·딸기 등 다양한 소품이 등장한다. 3~4세 어린 아이들인 만큼, 잠시만 방심해도 금방 집중력이 흩어지기 때문에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전미순 씨 제공

나이듦은 여러 모로 사람을 위축시킨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볼까 생각하다가도 도대체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나이에 내가 뭘 또 ……"

한편으로 나이듦은 젊을 때 갖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거칠 것이 별로 없다.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고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까짓것 '제대로 잘 안 되면 또 어때?'하며 대수롭지 않게 첫 발을 내딛는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동화할머니 전미순(69) 씨가 그런 경우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어린이집 동화구연이 '딱 맞는 적성'이었다. 덕분에 노년기 삶의 질이 확 달라졌다. 하루 하루가 행복하고 즐겁다.

▶행복한 나날, 시간이 짧아요

전 씨는 매주 화·수요일 지산어린이집과 수성베베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준다. 얼핏 가벼운 소일거리로 생각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준비과정이 만만찮다.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동화구연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동화구연 때 활용할 교구와 시청각 자료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색종이와 다양한 색깔의 팰트, 빨대, 나무, 색연필, 볼펜 등 온갖 문구가 총동원 된다.

토요일은 어김없이 도서관을 찾는다. 한 곳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범어·고산·용지·무학 도서관 등 여러 도서관을 탐방하듯 찾아다닌다. 동화를 들려줄 어린이들에게 알맞은 동화책을 고르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다. 어린이들은 쉽게 지루해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 있는 좋은 책을 고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동화책을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펼쳐 놓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당연히 책 내용을 암기하다시피 해야죠. 또 아이들의 집중력이 짧기 때문에 다양한 교구와 소품으로 눈길을 끌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입니다."

동화구연과 교육 사이에 낀 목요일은 취미생활의 날이다. 4년째 다니고 있는 뜨게방이 휴식의 무대가 된다. 수준급 뜨게질 실력으로 나오는 작품이 동화 속 등장인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뜨게질로 창조된 동화 속 인물(동물)들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전 씨의 일주일 스케줄은 '동화구연'을 중심으로 짜여지고 돌아간다. 하루 하루가 즐겁고 행복해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평범한 주부의 이유 있는 변신

전 씨는 한동안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았다. 중학교 때 친구들끼리 모여 연극 모임을 만든 뒤, 공연을 하면서 학생들을 모으고 그 수입으로 찐빵 파티를 여는 적극성(?)을 발휘하기도 했고, 인기연예인을 쫓아다니는 극성팬이이도 했다. 당시 최고 인기스타를 학생 파티에 초대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인기스타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냥 대구역에서 우연이 부딪친 스타 연예인에게 "우리 모임에 한 번 와 주실래요?" 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처녀 시절 연예잡지사에 7년 간 근무하기도 했다.

전 씨의 '끼'가 다시 발휘되기 까지는 환갑을 넘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컴퓨터를 조금 다룰 줄 아는 것이 계기가 되어 대구 수성구청 사무 보조원으로 근무하다가,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사회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덕을 봤다.

"직원들이 '집에서 특별히 하시는 일도 없는데, 어린이들 대상으로 동화구연 봉사를 하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나는 그런 거 못한다고 하니까, '정말 잘 하실 것 같으니, 걱정 말고 해보라. 교육도 다 시켜준다.'고 해서 들컥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발견한 '끼', 기쁨은 두 배

뜻밖의 일이 터졌다. 교육 한 번 없이 시지 피터팬어린이집에 가서 동화구연을 하라고 했다. 황당하고 암담했지만 일단 어린이집으로 갔다. 한 숨을 푹 내쉬며, 원장님에게 "사실, 저 동화구연 처음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원장님이 '팁을 줄테니, 한 번 해보라'고 하셨어요. 손자손녀에게 이야기를 해주듯이 하면서 율동이나 몸동작 같은 액션을 같이 하면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팁이었습니다."

첫 관문에서 전 씨는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괜찮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아이들과 함께 동화속 이야기로 빠져들어가는 환희를 맛봤다. 전 씨는 "이거 딱 내 적성이다. 이왕 시작한 거, 최고가 되자!"는 각오를 다졌다.

첫 공연(?) 이후 한 달 만에 교육이 시작되었다. 전 씨는 교육과정과는 별도로 집에서 과외학습을 했다. 거울을 쳐다보며 연습을 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온 식구들이 낄낄거려도 아랑곳 않고 연습에 집중했다. 재미있는 동화구연에는 '손유희'가 필수적이라 걸 깨닫고 유튜브 동영상으로 기본기를 익혔다. 나중에는 동화 내용에 맞게 응용·창작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가족들 앞에서 시연하는 것은 솔직히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뜨게방에 오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시연을 하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어르신과 아이들은 공통점이 많거든요."

전 씨는 "아이들과 함께 동화나라로 빠져들 땐 여기 저기 쑤시던 몸마저 가뿐해진다"면서 "아이들의 위해 준비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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