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판 베이비박스' 폐쇄…"불법 시설" vs "미혼모 배려한 최후의 수단" 논란

“대구에만 합법시설 23곳이나 돼”…“서울은 되고 대구는 안되나”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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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구의 한 교회에 설치됐던 '베이비박스'(부모가 영아를 두고 가도록 만든 시설)가 최근 폐쇄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한 교회 측은 "갓난아기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행정기관은 "아동 유기를 조장하는 불법 시설"이라고 맞서고 있다.

대구시와 서구청 등은 최근 "베이비박스는 사회복지사업법과 아동복지법 등 현행법상 설치 근거가 없고 아동 유기를 조장할 우려가 높다"며 교회 측에 운영 중지를 요청했다.

대구시 여성정책관실 관계자는 "대구에는 영아양육, 보호치료, 자립지원 시설 등 미혼모 아동을 보호하는 합법적인 시설이 23곳이나 있다"며 "베이비박스와 같은 미허가 시설을 두고볼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같은 조치에 해당 교회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교회 A목사는 "베이비박스는 갈 곳 없는 미혼모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곳이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것 아니냐"면서 "서울에는 베이비박스가 9년 째 운영 중인데, 대구는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미혼모들이 출산 사실을 숨긴 채 아이를 입양보내려고 베이비박스를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부모가 아기의 출생 신고를 해야 입양 절차가 시작되도록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영아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에 따르면 2012년 79명이던 유기 영아 수는 법 개정 이후인 2013년 252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210명을 기록하는 등 연 평균 23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6년 혼인 외 자녀 여부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했다.

게다가 영아를 유기할 경우 경찰 수사를 통해 대부분 신원이 드러나는데다, 아기도 일반 가정이 아닌 보호시설에 맡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려도 어차피 보호시설로 인계된다. 베이비박스는 미혼모의 신분을 보호할 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베이비박스가 우리나라 영아 보호 제도의 허점을 보여준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미숙 한국미혼모네트워크 사례관리팀장은 "정식 절차를 거쳐 입양을 하려면 숙려기간 7일을 거쳐야 하는데, 그동안 미혼모가 머물 곳이 없는 경우도 많다"며 "수요에 비해 아이가 머물 공간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영화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아이의 생명을 두고 불·탈법을 논의하는 자체가 아직 우리 사회가 '생명 초보적'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결혼하지 않고 애를 낳은 것은 죄라는 인식을 깨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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