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로의 벽에 막힌 다문화가정 청년·청소년…맞춤형 정보·교육 절실

사회적 편견과 진로 정보 부족에 시달려…사각지대 머물지 않도록 대책 시급

지난 8월 1일 대구 서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열린 진로탐색 및 직업체험 행사에서 미용분야 진로를 희망하는 다문화 청소년들이 네일아트와 메이크업 체험을 하고 있다. 대구 서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지난 8월 1일 대구 서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열린 진로탐색 및 직업체험 행사에서 미용분야 진로를 희망하는 다문화 청소년들이 네일아트와 메이크업 체험을 하고 있다. 대구 서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다문화가정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문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이 될 시기가 됐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기회는 결코 균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이 많은 다문화가정의 특성 상 진로 및 입시 정보에 어둡고, 교육 기회가 부족한 점도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성인이 된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받아들일 우리 사회의 준비도 아직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맞춤형 진로 교육 및 정보 제공, 취업 지원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교육 기회 못 누리는 다문화 청소년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 청소년은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올 9월 현재 대구경북의 각급 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청소년 수는 1만2천120명에 이른다. 사상 처음 1만명을 넘어선 지난해(1만765명)에 비해 12.6% 증가했다. 초등학생이 9천603명(79.2%)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 1천533명(12.6%), 고등학생 945명(7.8%) 등이었다.

한국인과 재혼한 부모를 따라오거나 외국인 근로자가 고국에서 데려온 중도입국 청소년도 2013년 248명에서 올해 473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의 상급 학교 진학율은 높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5 다문화가정 실태' 결과에 따르면 다문화 청소년의 고교 취학률은 89.9%로 전체 청소년 취학률(93.5%)에 비해 3.6%포인트(P) 낮았다.

특히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취학률은 53.3%로 전체 고등교육기관 취학률보다 14.8%p나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저소득층이 많은 다문화가정의 특성 상 정보 격차와 교육 기회 부족 등으로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동시통역사나 여행 가이드가 꿈이었던 김지연(가명·16) 양은 최근 진로를 미용사로 바꿨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데다 사교육도 제대로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양은 "친구들과 살갑게 지내는 것도 아니고 학원을 다닐 형편도 안된다"면서 "엄마가 남동생에게는 집을 팔아서라도 하고 싶은 공부를 시켜준다는데 내게는 돈을 벌라고 한다. 진로를 고민하지만 상담을 받아본적도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3년 전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이소망(가명·18) 양은 심리상담사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해야만 할 처지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이 양은 대안학교로 진학해 한국어를 익혔지만 막상 입시 준비는 갈수록 난감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 양은 "대학에 가고 싶지만 지금 학교에선 제대로 된 수능 준비가 어렵다"면서 "공장에서 일하다 크게 다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일을 하는 상황이이어서 고민을 털어놓을 곳도 없다"고 불안해했다.

◆다문화 청년, 25세 넘으면 지원 뚝

성년이 돼 사회로 진입하는 다문화가정 청년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다문화가족지원법 상 25세가 넘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3년마다 이뤄지는 다문화가정 실태조사에서도 제외돼 정확한 현황 파악조차 어렵다.

필리핀 출신의 어머니와 사는 김민정(가명·25)씨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인문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 한 이후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김 씨가 경험한 유일한 사회생활이자 경제활동이다. 김 씨는 "앞으로도 뭘 하며 살아가야 할 지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남들과 다른 외모 탓에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웠고, 성적은 항상 전교 최하위였어요. 중학생이 된 후부터 아버지는 아예 따로 살았고요. 학교에서 겉돌기만 하다보니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일본인 다문화가정에서 성장한 김현수(가명·30) 씨는 일본 취업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자라 일본어에 능숙하진 못하지만 한국에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 한국 국적을 선택하고 군 복무까지 마쳤지만 길은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요즘 들어 일본과 꽤 친숙하지만 어린 시절만 해도 일본인 혼혈이 거의 없었다"면서 "외모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 차별과 놀림은 언제나 있었다. 진로보다 정체성 때문에 방황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특히 중도 입국한 다문화가정의 청소년은 성년이 된 후에도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2세들에 비해 한국사회에 적응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탓이다.

4년 전 한국에 온 이도훈(가명·20) 씨는 성인이 됐지만 어떤 일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온 후에도 베트남 친구들과 어울린 탓에 한국어가 아직 서툴다.

이 씨는 "늦은 나이라도 고교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고 싶지만 한국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 교육·진로탐색에 대처 못하는 귀화 부모

한국에서 18년 간 살았다는 베트남 출신 귀화인 이도연(43) 씨는 "입시나 진로 교육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털어놨다.

"수시, 수능, 인문계, 특성화고 등 고등학교나 대학교 진학방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얘기하고, 학교 선생님과도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으니 모든 정보가 늦어요."

성장기 자녀들의 진로 고민을 함께 해줄 부모의 역할이 부족한 점도 한계로 꼽힌다. 귀화 부모의 경우 복잡한 입시 과정을 이해하고 진학 문제를 고민하기엔 의사 소통 능력이 부족한데다 사회 관계망 형성도 더디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5 다문화가정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자녀 교육과 관련해 의논하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한 결혼이민자는 무려 30.2%나 됐다. 이는 두 집단 이상 의논할 상대가 있다고 밝힌 응답자보다 4.5배나 더 높은 수치다.

중국에서 귀화한 장화(43) 씨는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수학공부가 어렵다고 했을 때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장 씨는 "어릴 때는 집안일 살뜰하게 챙기고 예쁘게 키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고 걱정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다문화청소년의 학습부진이나 학교 부적응 등에 대응하고자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형편이다.

대구시는 2014년 외국인 주민 및 다문화 가정 지원 조례를 마련한데 이어 대구한의대에 다문화복지한국어학과를 개설했지만 교양 교육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청소년의 성장 과정에 맞는 생애주기별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진학과 진로설정에 대해 정보제공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정의 청소년도 특성화고 진학 등 기술교육과 대학 진학의 기회는 열려있지만 구체적인 정보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영태 대구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학교마다 상담교사가 있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귀화 부모와 원활히 소통하기는 어렵다"면서 "성장 과정에 맞는 교육과 진로 정보를 전달할 인적자원연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