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녀, 환향녀, 위안부…누가 할머니를 세 번째 죽이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몽골 제국 수도였던 자나두. 고려 원종이 항복한 곳이자 공녀 공출의 비극이 시작된 곳이다. 몽골 제국 수도였던 자나두. 고려 원종이 항복한 곳이자 공녀 공출의 비극이 시작된 곳이다.

 

김문환 역사 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 저널리스트

◇미셸 폴나레프와 올리비아 뉴튼존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maman)라는 샹송을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적 명소, 파리 센강변 콩코르드 광장에서 들으면 감회가 남다르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5월의 노래'(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의 원곡이기 때문이다. 이 곡은 '홀리데이'(Holiday)라는 감미로운 곡으로 더 잘 알려진 미셸 폴나레프가 1971년에 불렀다.

이 무렵 한국 팬을 사로잡던 호주 출신 올리비아 뉴튼존을 추억의 곳간에서 호출해 보자. 1980년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제목이자 히트 팝송 '자나두'(Xanadu)는 이상향을 가리킨다. 기원은 영국 낭만파 시인 쿨리지다. 그리스 마니아로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가했다 숨진 바이런의 권유로 1816년 출간한(1797년 탈고한) 시 '쿠블라 칸'(Kubla Khan)에서 쿨리지는 '자나두'를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영국 성직자 푸르카스의 1613년 작 '푸르카스 순례기: 창조부터 현재까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목격된 종교와 세계'를 참고한 결과였다. 푸르카스 역시 다른 책을 인용한 것이니 '자나두'를 처음 찾아 기록에 남긴 이는 누구일까?

◇자나두, 몽골과 고려 공녀

'자나두' 가는 길은 멀다. 2017년 6월 북경 류리치아오(六里桥) 버스정류장에서 7시간 30분을 달리니 초원 한가운데 '원상도유지'(元上都遗址)에 이른다. 원나라(몽골) 유적지 상도(上都)의 몽골 발음이 '자나두'다. 필자에 740여 년 앞서 1275년경 이곳을 찾은 이가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다. '동방견문록'으로 알려진 원제 '세계의 기적에 관한 책'을 1300년경 출간하는데, 여기에 '자나두'를 화려하게 묘사한다.

쿨리지의 시 제목 '쿠블라 칸'은 당시 원나라 대칸 쿠빌라이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수도로 삼고, 한족 유병충을 시켜 1256년 건설한 자나두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지금은 채색 기와 몇 점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마르코 폴로가 오기 16년 전 고려 원종이 1259년 몽골에 항복하기 위해 자나두를 찾아 1260년 쿠빌라이 대관식에 참석했다. 강력한 고구려 후예가 항복한 데 만족한 쿠빌라이는 딸을 원종의 아들 충렬왕에게 시집보낸다.

고려왕이 몽골에 충성하는 '충' 자를 붙인 건 이때부터다. 세계 제국 몽골의 사위 나라, 부마국이 된 대가는 처절했다. 몽골에 고려 여인을 보낸 것. 1275년 충렬왕 때 10명을 시작으로 '고려사' 기록에만 50차례나 공녀(貢女)를 보냈다. 13~16세 꽃다운 처녀를 뽑으니 10세가 넘으면 결혼하고, 스님이 되고, 자살까지…. '자나두'는 이상향이 아니라 '아수라'였다.

◇심양, 청나라와 조선 환향녀

무대를 중국 심양으로 옮기기 전 잠실 석촌호수 앞에 4m 높이로 우뚝 솟은 거대한 비석부터 보자. '대청황제공덕비'. 1637년 1월 조선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여진족 청나라 황제 태종을 기리는 비석이다. 참전했던 여진족과 몽골족 군사들은 수많은 조선 사람을 끌고 갔다. 당시 이조판서 최명길은 '지천집'(遲川集)에 무려 50만 명이라고 적는다. 그때 끌려간 여인들이 노예로 팔리던 시장이 심양시 남탑 사거리다.

한적한 공원으로 바뀐 그곳에 서면 절규하던 조선 여인들 모습에 시야가 흐려진다. 가족들이 돈(속환금·贖還金)을 내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은 정조를 잃었다는 이유로 '화냥년' 소리를 들으며 극심한 천대를 받았다. 오죽하면 환향녀들이 다시 청나라로 돌아갔을까. 무기력한 국가와 기득권 남성들 책임인데, 여인들이 그 질곡을 고스란히 떠안는 비극은 일제 식민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KBS가 미국 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아 지난달 29일 최초로 공개한 동영상 속 위안부 여인의 피맺힌 절규는 이용수 할머니의 한(恨)과 맥이 닿는다.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다. 오마이뉴스의 지난달 27일 '국민 70% 윤미향 의원 사퇴 원해' 여론조사 결과 발표 이틀 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잘못도 사퇴도 없다"고 손사래친다. 낯 두껍다.

공정성과 담 쌓은 지 오래인 데마고그 김어준은 '냄새' 운운하며 특유의 음모론을 지핀다. "그런 말 하지 말라"는 이용수 할머니의 꾸지람은 소 귀에 경 읽기다. 윤 의원이 이사장이던 단체 사무총장은 전 청와대 비서관의 아내다. 이런 특수 관계의 청와대는 자기 편에 "마음의 빚이 있다"면서도 할머니 문제 제기에는 소 닭 보듯, 강 건너 불구경 모르쇠다. 윤 의원 소속당 이해찬 대표는 "굴복하면 안 된다"고 고개를 빳빳이 세운다.

이 대표는 5·18 광주민주항쟁 유공자다. '5월의 노래' 원곡을 알 거다. 그에게 묻는다. 일본군이 할머니에게 천인공노할 만행의 첫 인격 살인, 파렴치한 일당이 앵벌이로 두 번째 인격 살인, 그럼 지금 사태 해결에 눈감으며 세 번째 인격 살인의 비수를 할머니에게 꽂는 기득권은 누구인가. 미셸 폴나레프가 읊조리며 거든다.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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