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어느 가을 저녁, 멋진 피아니스트

채명 무용평론가

채명 무용평론가 채명 무용평론가

어느 늦은 가을 저녁, 유망한 젊은 연주자니 한 번 보라는 지인의 소개를 받고 피아노 리사이틀을 가게 되었다. 피아노 연주회는 오랜만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가고 오는 시간이 번거롭긴 하지만, 공연장에 들어가는 순간 즐거움은 보장된다는 나의 지론을 따르고, 피곤해서 졸리면 잠깐 눈 붙이는 것도 염두에 뒀다.

큰 무대에 피아노 한 대,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늘 그득한 무대를 보다 피아노만 달랑 얹혀 있으니 썰렁했고 무대는 더 커 보였다. 음악전문 콘서트하우스에 독주의 단출한 공연을 위해서 무대 세트가 없는 걸까? 음악 전문인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내림막이나 가림막 등으로 무대를 아늑하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음악공연을 가면 친절하게 여러 시도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곡 해설을 자막으로 띄우기도 하고, 샹들리에를 천정에서 내리고, 커튼 등으로 무대를 아름다운 거실처럼 꾸미기도 한다.

프로그램엔 휴식시간을 경계로 전반부 베토벤, 후반부 쇼팽의 작품을 각각 소개했다. 극장 안내자에게 러닝타임을 물으니, 100분인데 조금 단축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두었다. 독주를 하는데, 그렇게 길게 할까, 반신반의했다.

커다란 무대의 휑한 분위기 속 키 큰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성큼성큼 무대를 쉽게 가로질러 피아노 앞에 섰다. 20세 청년이 정말 수려한 외모에 수줍은 미소를 띠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슈트의 앞 단추를 풀고 피아노 앞에 앉더니, 오로지 연주에 몰두했다. 모두를 숨죽이게 만드는 그의 실력은 관객들마저 긴장하게 하는 파워를 가졌다. 필자도 거의 눈을 떼지 못하고, 자유로이 넘나드는 손가락에 집중했다. 50분간 2개의 연주가 끝난 후 휴식시간은 관객에게도 긴장을 푸는 시간이었다.

베토벤 작품이 조금 장엄한 분위기였다면 후반부 쇼팽의 작품은 강도 높은 기교를 요구했고, 건반 위의 그의 손가락 움직임은 CG처리를 한 것처럼 빨랐다. 숨 가쁘게 따라갔다. 앙코르 곡에서 그는 더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했다. 관객들의 요청이 쇄도하니, 그는 가진 기량을 맘껏 풀어냈다. 공연시간은 100분이 넘었고, 가슴이 후련했다.

극장 2, 3층에도 많은 관객이 있었다. 멀리서 보는 이들을 위해서 이제는 실시간 공연실황을 무대 뒤편에 확대하여 비춰주는 친절함도 필요할 때이다. 피아노연주에서 어느 좌석이든 연주하는 손과 표정을 함께 보기는 어렵다. 필자는 손가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 행운을 가졌으나, 그래도 답답하고 아쉬웠다. 아직도 20세기 연출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클래식예술계의 고집은 관객을 위해 내려놓을 때도 되었다. 친절한 진행과 배려가 연주나 공연의 감동도 배가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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