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창] 한반도선언을 남북평화체제의 출발점으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평화의 길은 더 멀어져
남북은 서로 문호를 활짝 열고
경제 협력을 위한 대화 재개를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한반도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을 계기로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개성에 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되는 등 남북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 통일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평화의 길은 멀고 더디기만 하다. 남한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여야 정치권의 입장이 다르고, 북한은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엇박자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의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대안적 모델을 유럽 통합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오늘날 EU로 대변되는 유럽 지역 공동체 설립을 통한 평화 체제의 구축은 '장 모네 구상'에서 시작된다. 만약 국가 주권의 기반 위에 국가를 재건설한다면 유럽에 평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공동경제를 중심으로 한 단일 통합체를 건설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세계대전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45년 모네는 먼저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을 요구한다. 양국이 석탄 철강 분야에서 협력함으로써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유럽 지역 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그의 구상은 로베르 슈망을 비롯한 유럽 통합론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고, 급기야 유럽 공동체의 결성으로 이어진다.

1950년 5월 9일 슈망은, "유럽은 한순간에, 또 한꺼번에 건설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은 우선 핵심 사항에 대해 연대함으로써 확고하게 실현될 것이다"라며 유럽 통합을 실행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선언을 발표한다(슈망선언). 이 선언에 따라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6개국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1953년), 유럽경제공동체 및 유럽원자력공동체(1958년)를 설립한다. 그 결과 유럽 대륙에서는 더 이상 서로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총칼로 죽고 죽이는 전쟁 위험이 사라지고, 평화롭게 상호 공존하고 협력하는 유럽 공동체가 출범하였다.

유럽 통합 과정에서 회원국들은 철저히 기능주의적 접근 방법을 선택하였다. 슈망은 "행위의 연대를 창설하는 경제적 관계를 통한 정치적 관계를 준비함으로써 유럽의 기능적 건설에 주력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를 수용한 유럽은 이념적으로 전쟁 없는 평화 체제 구축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사람과 상품, 자본과 서비스의 자유 이동이 보장되는 경제 중심의 지역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이 전략은 주효하여 유럽은 점진적·지속적인 통합과 확대를 거듭하였고, 자유무역지대'관세 동맹'단일시장(공동시장)'경제 통합을 거쳐 현재 연방 설립을 향한 정치 통합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일 년 전 남북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지금 읽어도 가슴 벅찬 한반도 선언이 그저 꿈이나 바람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남북 통일과 평화 정착으로 실현될 수는 없을까? 유럽 통합은 그 현실적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 공동체가 출범한 1958년부터 6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적어도 EU 회원국 간에는 한 차례의 전쟁이나 내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반도에도 남북경제공동체를 넘어선 정치평화공동체가 필요하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평화를 향한 꿈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북은 문호를 활짝 열고 우선 경제 협력을 위한 정치 대화를 전격 재개해야 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아의 장 모네와 로베르 슈망이 되기를 바란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그의 역사적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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