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가장 좋은 카피는 카피라이터가 쓸 수 없다

진심이 담긴 글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사진 제공 : 빅아이디어연구소 진심이 담긴 글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사진 제공 : 빅아이디어연구소

"다른 병원에서는 스포츠 스타를 데리고 광고를 하는데 우리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대구의 한 병원에서 광고 의뢰가 들어왔다. 당시 타 병원에서는 운동선수를 내세워 홍보하고 있었다. 비싼 모델료 없이 효과적인 광고를 하고 싶다는 병원 관계자의 푸념이 이어졌다.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저 스포츠 스타가 병원의 의술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물론 이미지의 힘은 강하다. 운동선수를 모델로 내세우면 강한 이미지가 브랜드에 입혀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달콤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나에게는 소비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필요했다.

아이디어라도 구할 수 있을까 해서 늦은 밤 그 병원을 찾았다. 로비에 앉아 있으면서 병원 밖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관찰했다. 그러던 중 한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퇴원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대단한 장면은 아니었는데 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다. 아프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해 보였다. 내가 그 할아버지가 되어 봤다. '내가 저 할아버지라면 의사 선생님께 얼마나 감사한 마을이 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찾기로 했다. 그 마음을 담은 문장이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광고일 것이라 생각했다.

보수적인 병원 광고의 형식을 깨트린 사례. 사진 제공 : 빅아이디어연구소 보수적인 병원 광고의 형식을 깨트린 사례. 사진 제공 : 빅아이디어연구소

병원에 요청해 지금까지 받은 감사 편지들을 모두 모아 달라고 했다. 때마침 미국 애틀랜타 출장이 잡혀 편지를 들고 해외까지 갔다. 애틀랜타 숙소에서 짐을 풀자마자 나는 편지를 찬찬히 살펴봤다. 신기하게도 글을 읽을수록 그 병원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 병원에서 병을 고친 생생한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연이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쓴 한 편지에 시선이 멈췄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보아 한글을 갓 배우신 분 같았다. 할머니의 허리 수술을 잘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는데 정확한 문장은 이랬다.

'아...아내의 허리를 고쳐줘서 고맙...감사합니다.'

이 촌스러운 문장에 내 마음이 무너졌다. 어떤 카피라이터도 이렇게는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유능한 카피라이터라도 자신의 아내를 고쳐준 마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글씨는 어설펐지만 어떤 문장보다 정성이 느껴졌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더 움직였다.

할아버지의 글을 토시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광고판에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진료 과목, 팔짱을 낀 의사 모습이나 약도까지도 넣지 않았다. 흔히들 떠올리는 병원 광고와는 완전 다르게 기획했다. 광고처럼 보이지 않고 진심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병원 광고 시장에서 파격적인 시도였다.

진심이 담긴 글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사진 제공 : 빅아이디어연구소 진심이 담긴 글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사진 제공 : 빅아이디어연구소

마침내 아이디어 발표일이 왔다. 잔뜩 기대한 광고주 앞에서 시안을 공개했다. 야심 차게 발표했지만, 병원 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일반적인 병원 광고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억대 모델이 없이도 아이디어만으로 소비자들에게 통할 수 있다고 어필했다. 이 문제로 병원은 내부적으로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다. 결국 숱한 진통을 거쳐 이 작품은 광고판에 올라가게 되었다. 진심이 통했는지 병원의 매출이 상승했다. 스포츠 스타와 같은 억대 모델을 기용하지 않고도 진심을 전달한 것이다.

진짜 좋은 카피를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진심으로 써라. 할아버지의 글을 보는 순간 나는 더 큰 진심을 내 안에서 끌어낼 수 없다는 걸 확신했다. 그래서 발견하고자 했다. 카피를 쓸 때는 기억하라. 진심으로 쓰든가, 발견하든가.

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 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

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장이' 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은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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