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정조 임금의 양어장 낚시

하응백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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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낚시를 좋아했다. 창덕궁 규장각 앞 연못에서 신하들과 낚시를 하였다는 기록이 실록에 여러 번 나온다. 정조의 낚시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낚시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연출이었다.

정조는 1795년, 꽃이 한창인 창덕궁 내원(內苑)으로 영의정을 비롯한 신하 54명을 초대해 연회를 열었다. 정조는 "올해야말로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사스러운 해이다. 그러니 이런 기쁜 경사를 빛내고 기념하는 일을 나의 심정 상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서두를 연다. 천 년에 한 번 경사스러운 해라고 말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전달에 수원 화성으로 행차했던 '을묘원행'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화성 건설이 진행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내밀하게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추모 사업이 정점을 찍은 해이니 정조로서는 그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그런 심정을 감격적으로 말하지만, 그 말에는 화성 건설이나 아버지 추모에 토를 달지 말라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

이어서 정조는 내원에서의 연회는 원래 임금의 친인척만 참여하는 것이지만, 자신은 친인척을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를 가까이하기에 특별히 신하들을 초대했음을 밝힌다. 생색을 있는 대로 다 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발언을 한다.

"필경 귀근(貴近)의 폐단이 일어나더니 요즘에 이르러서는 그 극에 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아오면 물러가게 되고 느슨해지면 펼쳐지게 되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이치라고 할 것이니, 척신(戚臣)이 이 뒤를 이어 나아오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귀근이란 왕의 최측근 인물을 말한다. 정조는 즉위 때부터 정동준(鄭東浚)을 가까이 두면서 신임했다. 하지만 정동준은 권력 남용과 부정 축재 혐의로 탄핵을 받았고, 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자살해 버렸다. 정조는 정동준 사건을 환기시킨 것이다. 자신은 신하를 가까이 해서 궁궐까지 불러서 낚시를 같이 할 정도로 총애하지만, 그렇다고 임금의 총애를 믿고 신하의 도리를 벗어나는 경우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경고를 날린 것이다.

신하들은 등골이 서늘했을 것이다. 이때 영의정 채제공이 대표로 발언을 한다. 예로부터 밝은 임금의 성덕(盛德)은 친인척과 척신을 배척하는 데서 나온다고 하면서, "신들로 말하면 직접 성대한 이 기회를 만나 특별한 은혜를 입고 있으니, 어찌 감히 스스로 순결한 마음을 지니고 만분의 일이라도 성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충성 맹세이자 청렴 서약인 셈이다. 정조 치세(治世)의 바탕에는 이토록 철저한 측근이나 관료 관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고기들도 정조의 양어장 낚시 연출에 협조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신하도 많았지만 이날 정조는 네 마리나 잡았다. 임금이 낚시할 자리에 미리 밑밥을 듬뿍 뿌려 놓았을 것이다. 임금이 물고기를 잡을 때마다 뒤에서는 풍악이 울렸다. 출연한 물고기는 도로 놓아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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