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인구 정책, 이제 가보지 않은 길을 찾자

하응백 문학평론가

하응백 문학평론가
하응백 문학평론가

"아, 칵, 이장입니다. 안녕하시지라우. 어제는 금산면 청년 체육대횔 했는디, 우리 마을은 청년이 없는 관계로, 아, 출전은 못하고 술만 디지게 마싰지라요. 다 잘 계시고 이장은 추석 때 서울 아들집에 가서 없을꺼이. 아, 칵. 마을에 별 일 없을꺼구만요. 그럼 잘 계시지라우. 방송 끝."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방파제에서 낚시하다가 들었던 마을 방송의 멘트다. 웃다가 고기 한 마리를 놓치고, 그 멘트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체육대회에 나갈 청년조차 없는 마을…. 청년이 없으면, 결혼하는 남녀도 없고, 당연히 아이들도 없다.

청년이 없는 섬이 어디 거금도 뿐일까? 섬과 같은 도서지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농촌 지역도 청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포항과 구미를 제외한 경상북도의 21개 시군도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농어촌 지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 전체의 출산율이 점점 낮아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이비붐 시대에 한 해 90만 명에 이르던 신생아 수는 곧 30만 명 선으로 줄어든다. 이민을 받아들이는 등의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전체 인구는 당연히 감소하게 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정부에서는 저출산 대책에 13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했다.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가동 중이다. 하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결혼과 출산 장려금, 아동 양육수당 지급 등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각종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헛돈만 퍼붓는 셈이다. 차라리 인구 감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우리나라만큼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도 드물다. 5천만 명이 10만㎢의 땅에 살고 있다. 1인당으로 나누면 약 200㎡가 할당된다. 우리는 그 좁은 땅을 학대하고 착취하면서, 집값과 땅값이 오른다고 악다구니를 써가며, 개발과 환경보호를 양쪽에서 외치며 살고 있다. 뉴질랜드에는 대구 인구의 두 배가량인 약 500만 명이 우리나라 면적의 약 2.5배 정도 땅에서 '널널하게' 살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이나 뉴질랜드와 같이 땅덩어리에 비해 인구가 적은 나라도 얼마든지 잘 살고 있다. 국민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더 높다.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지 말고, 엄청난 국가 예산을 인구 증가 대책에 투입하지 말고, 인구가 줄어들어도 잘 살 수 있도록 국가 개조 설계에 착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침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눈부신 것이어서,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각 분야의 여러 자동화 시스템은 곧 현실화될 것이기에 노동력의 부족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은 개인이나 국가나 다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한다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률과 증가율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 길로 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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