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한여름 밤의 두 남자

박병욱 목사 박병욱 목사

"박 목사! 잘 지냈고? 여기 프랑크푸르트 공항인데, 집은 전에 그 주소 그대로지? 곧 갈 테니 봅시다." 전화기에서 친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웬일로? 프랑크푸르트는?" "내가 곧 갈 테니 만나서 얘기하자."

이렇게 무더운 날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 갑자기 한 친구가 우리 집에 오겠다고 연락을 했다. 잠시 후 도착한 친구는 혼자가 아니었다. 일년 후배와 함께 왔다. 그 친구는 주변 관광도 할 겸 한 이틀 머물다 가겠다고 선포를 했다. 국외교포가 간혹 당하는 황당한 경험이다.

그때 우리 집은 좁은 거실과 작은 침실 하나가 전부였다. 우리 네 식구가 살기에도 비좁은데 손님을 맞을 형편이 아니었다. 집이 비좁아 불편하지 않겠냐고 몇 번을 물어도 질문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은 거실 바닥에서 자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때는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아내는 출산 후 부기도 채 빠지지 않았고, 직장 생활을 그만 둔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주부로서의 일솜씨도 많이 서툴렀다. 우리 집에서 손님을 맞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틀 간의 시간이 엉망이 되었다. 논문 작성, 세미나 준비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나는 며칠 간의 일정을 포기했다. 처음에 아까운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때는 마음이 언짢았는데 포기하고 나니 한결 편한 마음으로 친구와 후배를 대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 큰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집에 손님이 온다니까 마냥 즐겁고 반가운 모양이다. 하루 저녁에 삼촌이 두 명이나 왔으니 아이는 흥분했다. 아이는 두 삼촌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첫날 저녁 식사 후 후배는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중국 역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왕조의 이름을 약자로 외우면서 살을 입혀나가는 방식이었다. 아이도 어른들도 함께 들으며 감탄하는 명강의였다. 둘째 날 저녁 후 후배는 한국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역시 아이도 어른들도 얼굴이 벌게지도록 재미있는 강의였다.

그 친구가 돌아간 후 우리 아이는 도서관에서 한국 역사 전집을 늘 빌려서 읽었다. 아이가 한국 역사 전집류를 독파하더니 독일어로 된 세계 역사서를 즐겁게 읽곤 했다.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보물을 놓고 간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 아이에게는 그만큼 값진 교훈을 주었던 스승이 없었고 그렇게 즐거운 만남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토록 귀찮았던 손님이 우리 인생에 너무나 귀한 추억과 즐거움을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에게 사정이 있었다. 친구는 이혼을 하고 울적한 마음에 여행을 시작했는데, 호텔 방에 외로이 혼자 있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후배와 여행길을 함께했고 우리 집에 와서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나 보다.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쓸쓸한 호텔 방보다는 학생 시절처럼 허물없이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필요했었나 보다.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의 아들을 가진 아버지로서 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을 것이다.

문득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이 생각난다.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것이 참 행복이 아닐까? 더불어 사는 삶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참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삶이 아닐까?

인간관계는 참 묘하다. 무례해도 우정이 쌓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어도 일정한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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