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저녁에

각정 스님 각정 스님

푸른 물이 뚝뚝 묻어나는 6월의 나무들은 강건하다. 오월이 지나간 산 길에는 보랏빛 하고초(꿀풀)가 향기롭다. 뒤뜰에 잡초와 돌을 걷어내고 계단 위에 옹기종기 작은 장독대를 구성했다. 옹기는 가마에서 한번 구어 낸다. 그래서 자연의 통기성이 강하고 사용하다 금이 가도 흙으로 회기하는 복원력이 우수한 그릇이다.

산중생활의 무심한 여가에 미술평론가 강 교수와 오랜만에 아름답고 황홀한 꿈 같은 시간을 가졌다.대구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리 미학의 선구자 수화 김환기 대구전에 참관하게 된 것이다.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방편이 있지만 그 중에 예술이 으뜸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미학 기조에 문화코드로 자리 매김한 달 항아리, 사방탁자, 옹기, 막사발 등은 그림과 시로 만나게 되었다. 소유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즐기는 무소유를 만끽한 하루였다.

강 교수와 함께 아침 일찍 출발해 오전 10시에 미술관에 도착하였다. 대구미술관 개관 후 지역에서도 수준 높은 전시가 많이 열려 대중들의 안목도 높아졌다. 이미 유치원 꼬맹이들이 조잘조잘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로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시대정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에도 기개와 멋을 잃지 않았었다. 조선백자를 사랑해서 마당 곳곳에 항아리를 장독처럼 세워두고 비가 오면 비가오는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과 함께 보름달이 떠오르면 매화나무를 심어서 꽃을 그리고 즐겼다.

화가 김환기와는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의 작품과 간명한 수필과 일기는 산문시라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소장품 중에는 지금도 자주 꺼내서 읽는 빛바랜 산문집 1977년 초판 '그림에 붙치는 시'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화가 김환기의 인간됨을 표현한다면 '멋'이라고 쓰고 '멋쟁이'라고 호칭하고 싶다. 한국미의 본질은 폭넓게 그 대상을 말할 때 '멋'의 세계이다. 한국의 멋은 만져지거나 잡히지 않고 아리송하다. 그것이 우리 멋이 지닌 정서이며 우리의 멋은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과 춤 등 인간의 군상 속에 흥건하게 스며 들어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계시던 때 나지 못하고, 성인의 얼굴 뵙지 못하지만, 성인의 말씀 들을 수 있으니 성인의 마음 볼 수 있다네 ' -옛 말씀에

우리나라 서양화가 그 중에서 김환기 만큼 동양정신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는 많지 않다. 더구나 서양화가임에도 한국적 정서로 우리의 일상이었던 선비의 문방사우와 함께 있었다. 이산 김광섭의 시와 미당 서정주의 시가 항아리가 되어 매화꽃으로도 만개하였다.

화가는 동양과 서양을 두루 관통하였다. 파리의 지붕 밑에서, 광막한 평야 뉴욕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찍는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 만큼 하늘 끝에 닿았을까. 눈을 감으면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강산(중략) 일을 할 때, 음악을 들을 때,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화가의 일기 중)

무수한 점들로 이어진 마치 세포의 줄기처럼 가로와 세로로 줄 그으면서 점을 찍고 작품을 완성했다. 그 작품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화가는 비로소 울 수 있었다고 한다.

철학자 헤셀은 '예술은 종교와 철학과 함께 정신의 가장 높은 진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김환기는 21세기 한국미술사에서 축복받는 국민의 별이 되었다.

누가 또 위대한 예술가의 길을 갈 것인가?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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