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이종문의 한시산책] 샘물을 노래함(영수석·詠水石)-정약용

[이종문의 한시산책] 샘물을 노래함(영수석·詠水石)-정약용

언제나 샘의 맘은 바깥세상 치닫는데 / 泉心常在外(천심상재외) 험한 돌 괴롭게도 앞을 딱 가로막네 / 石齒苦遮前(석치고차전) 그래도 우여곡절 다 헤치고 지나가서 / 掉脫千重險(도탈천중험) 태연하게 술술 흘러 골짜기를 나간다네 / 夷然出洞天(이연출동천)널뛰기의 유래를 알고 있느냐고? 잘 모르겠지만 민간 속설에 따르면 널뛰기는 담장 밖의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간절한 욕망의 소산이라고 한다. 그네타기도 같은 이유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널뛰기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더 큰 세상,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 때문에 그네가 태어났을 수도 있으니까.강가에서 어린 날을 보낸 사람들은 대개 다 기억하고 있지 싶다. 황혼녘이 되면, 유난히도 많은 피라미들이 수면 위로 폴짝폴짝 뛰던 것을. 왜 그럴까? 잘 모르겠다. 혹시 저녁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물론 강물 속에서도 저녁놀을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구두를 신은 채로 발등을 긁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터. 그래서 피라미는 저녁놀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기 위해서 수면 위로 냅다 뛰는 것이다. 청어가 바다 위로 뛰는 것도 혹시 바깥세상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지도 몰라. 그러다가 더러 바닷가의 마른 나뭇가지에 두 눈을 관통 당해 겨우내 과메기가 되기도 하고. 바깥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이토록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좁은 세상에서 더 넓은 세계를 동경하는 것은 위의 시에 등장하는 샘물도 마찬가지다. 깊은 산속에서 솟아난 샘물은 솟아난 순간부터 바다를 향해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순조로울 리가 없다. 출발하자마자 험상궂은 바윗돌이 앞을 딱 가로막기 시작하니까. 그 험한 돌을 돌아나가도 우여곡절이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천길만길의 아찔한 벼랑이 난데없이 불쑥 나타나면, 눈을 딱 감고 뛰어내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파란만장의 장애물들을 모두 다 뛰어넘고 나면, 샘물은 결국 골짜기를 벗어나서 최종적인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우와! 바다다, 바다!그런데 가만, 이 작품이 노래하는 것이 과연 샘물일까. 그렇지는 않다. 아마도 다산 자신이 살아갈 삶을 샘물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게다. 결과적으로도 다산의 삶은 이 시에서 노래한 샘물과 같다. 정치적 부침과 무려 18년 동안의 귀양살이가 바로 샘물의 파란만장과 다를 바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리하여 마침내 학문의 바다에 닿아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고, 루소, 드븨시, 헤르만 헤세와 함께 유네스코 선정 '2012 올해의 기념 인물'에 오르는 세계적 거인이 된 것도 바다가 된 샘물과 다를 바 없으니까.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0-08-06 13:18:17

[ 매일춘추] 전시를 여는 사람들

[ 매일춘추] 전시를 여는 사람들

일반적으로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전시의 준비는 기본적으로 누가(전시 기획자), 언제(전시 일정), 어디에서(전시 공간), 무엇을(전시 주제 및 내용), 어떻게(전시 구성 및 방법), 왜(전시 기획의도)의 기준을 통해서 진행된다.전시 준비 중 어느 미술품 운송·설치 관계자가 "작품이 안전하게 전시장까지 도착했을 때 가장 뿌듯하다"라고 하며 조심스럽게 작품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안전하게 운송해 온 작품이 전시장에 설치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그때야 비로소 필자는 미술품 운송·설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차렸다. 예술 작품이 이동할 때 회화, 조각, 도자기, 사진,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에 따라 재료의 특성을 파악한 포장의 기술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의 포장은 주로 완충재, 에어캡, 크레이트(나무상자) 등으로 마무리하여 무진동 차량으로 이동한다. 무진동 차량은 미술품 운반을 위해 특수 제작된 차량으로, 충격 완화는 물론 온·습도 조절까지 구비되어 있다. 이것은 작품 파손을 최소화시키는 장치이다. 예술 작품 중에는 온·습도에 매우 민감한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외국의 작품이 국내로 반입되는 경우에는 포장에 더 신경 쓰고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물감이 녹아내리거나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도착한 작품은 컨디션 체크를 거친 후에야 본격적인 설치가 가능하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특성을 고려한 포장과 운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전시를 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운송 과정에서 작품 파손이나 훼손이 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전시회 개최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최근 국내의 한 미술관에서는 전시 작품 운송 과정에서 1억원 상당의 작품이 일부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되었다. 안전한 규칙에 따라 포장하지 않은 결과로 한국화 작품의 모서리 일부가 훼손된 것이다. 그리고 광주 비엔날레 전시 작품 중 스위스에서 전달받은 35억원 상당의 설치미술품이 파손되어 온 사례도 있었다. 전시를 여는 사람들 중 필자가 만났던 미술품 운송·설치 관계자들처럼 작품의 특성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전시를 여는 데 있어서 작품의 특성에 따른 적절한 포장과 안전한 운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작품의 특성에 따른 완벽한 포장과 안전한 운송의 방법을 진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품 포장 및 운송·설치 관계자는 전시를 여는 사람들 중에서 또 다른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 작가의 작업실을 사전 방문하기도 하며 작품의 특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여 포장과 운송의 정확도를 높인다. 그것이 작품에 대한 예의이고 성공적인 전시회 개최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전시를 여는 사람들'의 활약 덕분에 예술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빛나게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2020-08-06 13:11:01

[기고] 통합신공항으로 대구경북 미래가 바뀔 것

[기고] 통합신공항으로 대구경북 미래가 바뀔 것

우여곡절 끝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부지가 군위 소보면, 의성 비안면 일대로 확정되어 대구경북 지역 발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항공산업 분야 특성화 대학인 경운대학교는 신공항과 불과 9㎞ 떨어진 곳에 위치해 신공항의 안정적인 이전과 신공항에 바탕한 대구경북 지역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어 무거운 짐을 진 느낌이다.2000년대 초반 경운대가 항공 분야로 특성화 방향을 잡고 항공운항학과를 비롯한 항공산업 전 분야의 인재 육성을 목표로 관련 학과를 개설할 때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항공산업 자체가 워낙 미래지향적인 데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고, 관련 인프라도 적은 탓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대학 주변의 항공산업 관련 기반은 미미했다.경운대는 항공 분야 연구 역량 강화 및 인재 양성이라는 본연의 목표 이외에 관련 산업 클러스터를 확충하고, 결집시키는 데도 나서야 했다. 대학 구성원들은 항공산업 전도사가 되어 항공산업의 중요성과 발전 가능성을 지역사회에서 환기시켜야 했다.그 결과 영천의 항공부품 클러스터, 구미의 항공스마트캐빈 클러스터 등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한 대학 내에 자체적으로 항공정비기술원, 비행교육원, 무인비행교육원 등 국가가 공인하는 항공 분야 핵심 3개 교육원을 개설해 전문성을 인정받은 항공 분야 인재들을 양성하였고, 풍부한 항공 전문 인력이 배출되어 지역의 항공산업 기반이 튼튼하게 되었다.이런 상황에서 통합신공항은 형성기 대구경북 항공산업의 폭발적인 발전을 이끌어 대구경북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열어갈 항공산업의 꽃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지역 생산 유발효과는 36조원에 달하며, 관련 일자리는 40만 개 이상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공항 주변에는 공항 근무자를 위한 미니 신도시가 건설될 것이며,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인프라와 문화시설도 들어설 것이다.또한 대구 등 각 지역과 신공항을 잇기 위한 도로망이 재정비될 것으로 보인다. 공항철도, 연계 고속도로 신설 등이 입안 단계에 들어갔다.이런 교통 인프라 확충을 기점으로 경북도와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관광산업 육성을 위한 노력들도 함께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통합신공항이 가져온 고무적인 변화이다.항공산업은 이제 대구경북의 핵심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항공산업과 관련된 연관 산업 분야는 무수히 많다. 항공운항, 항공부품, 항공정비, 항공물류, 공항운영, 항공보안, 관제, 통신, 항공인테리어, 항공서비스, 무인기 등 셀 수 없는 분야가 있다.창출 가능한 지역 생산 유발효과는 거의 무한대이다. 그러기에 항공산업은 지역의 새로운 신사업 성장 동력이 될 것이며, 통합신공항으로 인해 현실화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현재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에 대비해 발전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항공산업 각 분야에서 관련 학과를 갖추고 전문 인력을 배출해온 경운대도 교육의 질을 높여 통합신공항에 양질의 인력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항공교육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통합신공항 부지 확정을 계기로 낙후된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해 지역사회의 협업과 능동적인 움직임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이다.이런 움직임들이 국토의 균형 성장과 국가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2020-08-05 15:19:39

[오정일의 새론새평] 미국 대통령선거 예상

[오정일의 새론새평] 미국 대통령선거 예상

3개월 후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다. 대체로 언론은 조 바이든의 승리를 예측한다. 미국 내 모든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하는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Real Clear Politics)에 의하면 7월 셋째 주 기준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에 8%포인트(p) 차이로 앞서 있다. 양자 대결에서 8%p는 작은 차이가 아니다. 선거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지는 9개 주(州)의 경우 지지율 차이는 5.3%p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아이오와,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주만을 보면 차이는 4%p로 줄어든다.미국의 대통령선거 방식은 특이하다. 후보는 자신이 이긴 주에 배정된 대의원을 모두 가져간다. 대의원 수가 적은 주에서 크게 이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작은 차이라도 대의원 수가 많은 주에서 이겨야 한다.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는 득표율은 낮았으나 더 많은 대의원을 확보해 당선되었다. 여론조사에서 확실하게 우세한 주를 바탕으로 계산한 대의원 수는 트럼프가 63명, 바이든이 118명이다. 현재 누구의 몫인지를 알 수 없는 대의원 수는 274명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바이든이 확실하게 우세한 캘리포니아주를 제외할 경우 두 사람의 예상 대의원 수는 같다.금년 3월 이후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경기 침체, 인종 갈등이라는 악재(惡材)에 시달렸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이미 바닥을 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률이 여전히 높지만 사망률은 낮다. 금년 3월 하루 2천 명이었던 사망자는 7월 기준 500명으로 감소했다. 백신과 치료제도 개발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미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라진 일자리의 3분의 1이 복구되었다. 금년 4월 45%까지 떨어졌던 전년 대비 자동차 1대의 연료 사용량이 6월 말 기준 90%로 회복되었다.최근 실시된 워싱턴 포스트와 ABC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바이든이 인종 갈등과 코로나바이러스에 잘 대응할 것이라는 응답이 많다. 그러나 "누가 미국 경제를 잘 운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7%가 트럼프를, 45%는 바이든을 선택했다. 바이든의 무역 정책은 트럼프와 다르지 않다. 바이든 역시 관세 부과를 통한 국내 산업 보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두 사람의 차이는 실업 대책에서 드러난다. 바이든은 실업 급여 지급과 부자에 대한 증세(增稅)를 주장한다. 미국 민주당의 주장대로 계속해서 방역을 강화하면 실업률이 높아지므로 실업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이에 따라 증세가 불가피하다. 트럼프는 중소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서 고용을 유지하려고 한다. 트럼프의 실업 대책은 코로나바이러스에 취약하지만 증세는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정책적 대립은 트럼프에게 불리하지 않다.미국 대통령선거의 초점이 트럼프라는 사실도 바이든에게 불리하다. 바이든은 유권자의 관심 밖에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지지자의 72%, 바이든 지지자의 67%가 '트럼프' 재선을 위해 또는 재선을 막기 위해 투표한다고 응답하였다. 반면, 바이든 지지자의 24%, 트럼프 지지자의 21%만이 '바이든' 당선을 위해 또는 당선을 막기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하였다. 지지자의 응집력도 트럼프가 강하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의 70%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하였다. 바이든 지지자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40%에 불과하다. 투표율이 높지 않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투표 의향은 당락(當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현재 시점에서 내가 판단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50%이다. 변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사망률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많을수록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낮아진다. 다른 하나는 실업률이다. 금년 11월까지 미국의 실업률이 코로나바이러스 이전 수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실업률이 유권자가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인지가 관건(關鍵)이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2020-08-05 11:30:00

[매일춘추] 대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학’도시다

[매일춘추] 대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학’도시다

휴가를 맞아 부모님을 뵈러 온 동생의 손에 두툼한 서류 뭉치가 들려져 있었다. 휴가까지 가지고 온 서류가 궁금해 들여다보니 얼마 남지 않은 조카의 대학 수시모집 관련 서류였다. 평소엔 직장 일로 바쁘니 휴가기간 동안 자식의 서류를 읽어 봐주기로 약속하고 가져온 것이다. 덜컥 약속은 했지만, 달랑 두 쪽짜리 기록을 가지고 졸업한 세대인 동생에게 수십 장에 달하는 생활기록부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아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어설픈 반성을 들으며, 대학 입시에 관한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기생충'에서 동생 기정은 사수생인 오빠 기우에게 연세대 재학 증명서를 위조해 준다. 기우는 아빠에게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내년에 이 대학 꼭 갈 거거든요"라고 말한다. 기우는 왜 이 대학에 가려고 하는 걸까?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기우의 연세대 재학 증명서는 사수생인 기우가 부잣집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 위한 패스이다. 그 종이 한 장의 신뢰성은 여동생 기정을 미국 시카고대 나온 미술치료사 제시카로 보증해 주었고, 아빠 기택과 엄마 충숙을 취직시키는 연줄이 되었다.기우는 그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상류층은 막강한 '경제 자본'을 이용해 자식들에게 '학력 자본'을 안겨 삶의 수준을 세습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대학 입시의 스펙 전쟁이 시작된다. '2019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생 현황'에 따르면, 서울대 입시에서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학생 중 봉사, 동아리, 교내 수상 등 각 영역에서 최고 실적을 기록한 스펙은 봉사활동 489시간, 동아리 활동 374시간, 교내 수상실적 108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까지 교내 상장을 108개 받았다면 매주 1번은 상을 받은 셈이 된다. 여기에 조국과 나경원 자녀의 예에서 보듯, 금수저를 문 아이들은 부모의 '사회관계 자본'을 이용해 국내외 영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황금빛 스펙을 손에 쥔다.원래 수시전형은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됐다. 학교생활의 공식 기록인 학생부를 토대로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평가 기준이 모호해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정확한 합격 기준을 몰라 일단 최대치로 준비하고 보자는 스펙 인플레이션이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에서 사수생 기우가 아버지 기택에게 "내년에 이 대학에 꼭 갈 거예요!"라고 다짐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무런 스펙이 없는 그가 연세대에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명문대는 일부 유력인사들이 자녀에게 계급을 세습시키기 위한 변칙과 반칙이 난무한 격전장이 되었다.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통로가 봉쇄되었을 때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된다. 대학은 그 통로를 공정하게 열어주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하고, 우리의 지금 교육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0-08-05 11:19:47

[종교칼럼] 코로나19와 진정한 종교 생활

[종교칼럼] 코로나19와 진정한 종교 생활

조깅을 아침마다 학교 안에서 하지만 옆 조산천 변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넓은 바위 위나 모래사장에 촛불, 쌀, 과일들을 차려 놓은 모습들을 만나곤 한다. 다른 곳에서도 경험한 것이기에 이것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하고 간 자취란 것을 짐작한다.예전에는 이런 것을 미신 행위로 여기고 눈살을 찌푸리며 사과나 배를 한두 개 주워 들고 가면서 먹거나 아는 사람에게 주곤 했다. 요즘은 아직도 이런 행위가 있는 것을 의아해하며 그곳에서 기도한 사람의 청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된다.오래전 하양성당의 주임신부로 일할 때 이곳의 종교 분포를 어느 정도 파악한 적이 있다. 성당 하나에 열 개 정도의 개신교 교회가 있고 이보다 많은 수의 절이 있으며, 남묘호렌게쿄 등 각종 종교들이 마치 종교박람회처럼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다. 대문 옆에 대나무를 세워 놓은 무당집들도 있고 점집들도 있으며 어떤 낯선 이름의 도사를 앞세워 운세를 봐주는 시설도 있다. 이러한 각종 종교 시설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이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기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들로 하여금 좀 더 깨어나게 하여 일반 생활 영역에서는 물론 종교 영역에서도 진위 여부를 냉철하게 가려 보게 하고 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각종 의식들을 동원하고 수많은 말들로 장식을 했지만 모아서 종합해 보면 결국 막연한 주술적인 행위나 그러한 기도에 불과한 것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어떤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기에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여러 가지로 우리를 힘들게 해온 코로나19는 다른 편으로 우리에게 많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들을 한 종교단체들 중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는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를 분별할 잣대를 알려주고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올바르고 진정한 종교는 다시 활력을 찾아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갈 것이다. 다른 기회에는 처리하기 힘들었던 자신 안에 있는 쇄신되어야 할 요소들을 이번 기회에 쇄신하여 신선함을 회복하기도 할 것이다.많은 화려한 말들과 의식들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왔지만 진정성이 결여되어 결국은 그들을 속이며 등쳐 먹기만 했던 사이비 종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의식이 깨어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에는 역부족일 것이고, 시간 속에서 서서히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종교가 사람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진짜 종교이고 어떤 종교가 그렇지 않은 가짜 종교인지 알게 될 것이다.코로나19는 또한 우리에게 긴급히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참으로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하는 것이 좋은 것과 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들을 분별할 잣대들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일자리를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를 마련하는 일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기에 일자리 유지와 창출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다른 편으로는 덜 움직이고 덜 소비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만남들과 부산함으로 정작 매우 중요한 나 자신과의 만남, 나 자신이 되는 데 필요한 고요한 시간, 독서와 성찰, 명상과 기도를 소홀히 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비록 코로나19에 의해 강요되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다소 고요해진 삶의 방식과 현명한 판단력을 유지하여 참된 종교적 삶으로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 이웃도 그렇게 되는 데 한몫해 나간다면 삶의 보람을 느끼며 행복해질 것이다.

2020-08-05 10:05:46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공장서 구조된 고양이 '심심이'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공장서 구조된 고양이 '심심이'

출근할 때마다 반가운 동물병원 고양이 친구들이 있다.해리, 샤베트, 탄야, 다비, 챠샤, 그리고 오늘부터 심심이가 합류했다. 다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버려졌거나 구조돼 동물병원에 정착한 고양이들이다. 사연은 각각 다르고 적응하는 기간도 달랐지만 이제는 각자 자기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내원하는 고객들이랑 환자 친구들을 위로하고 있다. 참 신기하게도 동물병원에 오시는 고객들이나 환자 친구들을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병원 고양이 스탭들로 인정해주고 있다.병원 생활 7년 차 이상인 터줏대감 '해리'와 '샤베트', TV동물농장에서 구조되어 한쪽 앞다리를 절단했지만 온 병원을 헤집고 다니는 '탄야', 경남 창녕 하천가에 버려진 품종묘 중 한마리인 '다비', 냥줍(길거리 새끼 고양이를 입양한 경우를 표현하는 말) 되어 온 노랭이 '챠샤', 다섯마리의 고양이들이 자기들의 공간에서 내원하는 고객들과 동물 환자들을 맞이한다.오늘 아침에는 진료실에 들어서자 소파 아래서 고개를 내미는 낯선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검진 받으러 온 고양이 환자겠지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피하지 않고 자기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심심이임을 눈치챘다. 털을 깎아서 더 몰라봤지만 입원실 밖에서는 처음 마주하는 경우라 무척이나 생소하면서도 대견스러웠다. 아팠던 동물이 건강을 회복하고 나를 신뢰하고 마음을 열어줄 때가 수의사로서 가장 보람차다.심심이는 유난히 애틋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지난 5월 김해 고양이공장에서 구조되어 본원으로 위탁 입원된 두 마리 중 한 마리였다. 구조하러 가신 분들의 말로는 고양이공장의 고양이들은 뜬장에 갇혀진 채 전염병과 피부병이 만연되어 있었으며, 분양 시기에 질병으로 가치가 없어진 고양이들이 천덕 꾸러기 취급받으며 뜬창 한 켠에 나눠져 있었다고 했다. 심심이 주변에는 죽은 고양이 사체가 놓여있었다고 했다.심심이와 함께 입원한 동그리는 지난 달 입양됐다. 동그리는 구조 당시 눈병이 심해 각막이 뿌옇게 변해있었으며 눈주변 피부는 심하게 짓물러 있었다. 피부병도 심했다. 두달여 치료를 받은 후에야 호전되어 지난 달 새 가족에게 입양되었다. 입양하신 분은 달서구의회 의원이셨다. 본인도 시각 장애를 가지고 계신 터라 동그리가 더 마음에 쓰였던 모양이다.그 분은 동그리를 몇 번 더 보러 오신 후에야 입양을 결정하셨다. 만성적으로 바이러스성 질환에 노출된 고양이는 평생 그 질병으로부터 완치되기 어려우며, 면역이 약해지면 곧 잘 증상이 반복된다는 설명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은 처지에 병원비 부담을 걱정하셔야 했다. 유기냥이, 구조냥이, 길냥이를 잘 보살피겠다는 의지만으로 입양해서는 곤란하다. 치료와 건강 관리를 위한 경제적인 여건도 충분히 고려해야 했다.심심이는 동그리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피가 섞인 콧물이 딱지져 입주변이 짓물러 있었고 재채기를 할 때마다 핏물이 주변으로 튈 정도였다. 몸도 말라있었고 피부병도 만연해있었다.심심이는 동그리가 떠나간 후에도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서서히 건강이 회복되었다. 여전히 만성 바이러스 질환이 언제라도 재발될 수 있는 처지지만 동물병원을 활보하며 동료 고양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피부병이 있고 털도 듬성듬성 깎여있어 이쁜 모습은 아니지만 스탭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이 있다수익증대를 목적으로 고양이를 뜬창에 가두어 밀집 사육하는 생산업을 고양이공장이라 부른다. 고양이공장을 강아지공장 이상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이유가 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수의 고양이들을 키우면 전염성질환들이 만연해질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고양이 바이러스성 전염성 질환은 완치가 어렵고 평생 잠복 상태로 유지되며 바이러스를 재확산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분양된 새끼 고양이들은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더라도 이미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잠복되어 있으므로 면역이 약해지는 시기에 질병화될 가능성이 높다.고양이 사육 환경은 개보다 더 넓고 높은 공간이 필요하며 전염성 질병이 의심되는 개체는 반드시 격리해 보살필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반려묘 붐이 일고 있다. 누구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집사가 되고 싶어한다. 사랑스러운 새끼 고양이를 사고자 결정하기 전에 한번 쯤은 심심이를 떠올려보자. 귀여운 새끼고양이의 탄생을 위해 수 많은 고양이들이 희생 당하지 있지는 않았을까 고민해야 한다. 사지말고 입양하자는 취지이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8-04 18:30:00

[경제칼럼] 주택 수요가 변하면 공급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경제칼럼] 주택 수요가 변하면 공급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현 정부는 지난달 22번째 '7·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현재 부동산 시장의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주택자는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는 투기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따라서 이제까지 발표된 부동산 대책은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고강도 대출 규제 방안과 다주택자의 보유 주택 처분을 압박하기 위한 퇴로 없는 전방위적 세금 인상 등과 같은 수요 억제 정책에 치중해 왔다.주택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상에 대한 이해와 정확한 원인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공급은 충분하나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 때문에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는 정부의 주택 시장 진단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먼저, 주택 보급률과 주택 공급 목표(기준)는 상이한 개념이다.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전국 104.2%, 서울 95.9%, 수도권 99.0%, 대구 104.0%로, 일부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소유 형태별로 보면 자가 보유율은 서울 42.7%, 경기 53.5%, 대구 59.8%로, 다주택자는 주택 재고량의 약 50%를 투기적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주택자가 여러 채의 주택을 매점매석식으로 보유함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서는 매물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주택 보급률(총가구수를 총주택수로 나눈 값)에 적용된 총주택수에는 노후불량주택도 포함돼 있다. 서울시의 경우 총주택의 7.2%인 17만6천 호가 40년을 경과한 노후주택이다. 특히 단독주택의 25.6%인 10만1천683호는 경과 연도가 40년을 초과한 노후주택에 해당한다. 대구시의 경우 총주택의 8.03%인 5만3천185호가 40년이 지난 노후주택이고, 단독주택의 26.7%인 4만2천662호는 40년이 경과된 노후주택이다.노후주택은 주거 서비스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불량주택이다. 현실적으로 노후주택에는 경제적 형편상 어쩔 수 없이 거주하는 영세한 포로 거주자(Captive User)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노후주택은 20, 30대 젊은 수요층 및 실수요자들이 거주를 꺼리는 단독주택에 집중돼 있다.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고 시장 수요자들이 외면(기피)하는 노후불량주택은 주택 공급을 위한 목표량(주택 공급 기준)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40년 이상 경과된 노후주택을 제외한 대구시의 주택 보급률은 98.9%로, 공실률 및 멸실률을 감안한 적정 주택 보급률 102.0%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주택의 양적 및 질적 기준에서 현재 대구 주택 시장은 적어도 과잉 공급된 상태는 아니다.자동차와 주택은 물리적 수명까지 사용하는 상품이 아니라 경제적 수명까지 사용하는 대표적인 경제재다. 운행 가능한 노후 차를 새 차로 바꾸는 것이 유지관리비 측면에서 비용이 절감된다면 대다수 소비자는 노후 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사게 된다.주택 역시 안전진단을 통해 물리적으로 사용 가능한 기간까지 강제적으로 거주하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재개발 혹은 재건축을 통해 보다 높은 사용 가치(임대료)를 창출할 수 있는 다른 부동산으로 변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둘째, 금융위기 이후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출생한 20, 30대 세대)가 주택 시장의 핵심 수요 계층으로 진입함에 따라 주택 수요는 다양한 패턴으로 변화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결혼 지연 및 기피 현상으로 인해 1인 가구를 위한 소형 주택에 대한 수요는 양적·질적으로 다양한 패턴으로 변화하고 있다.밀레니얼 세대 신혼부부 대다수는 맞벌이하기 때문에 외곽의 신도시보다는 교통과 편의시설 접근성이 양호한 역세권 주택을 선호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주로 도시의 아파트에서 태어나 도시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도시환경적 유전자와 연어처럼 도시 귀소본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이들은 단독주택보다 아파트, 중대형 아파트보다 소형 아파트, 구축 아파트보다 신축 아파트, 신도시보다 기존 도시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이처럼 변화된 핵심 수요 계층의 주거 욕구를 기존에 공급된 재고 주택이나 신도시 개발로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그들의 눈높이와 선호도에 부응할 수 있는 정책으로 변화돼야 한다.이제 주택 공급 정책은 개발 시대의 양적 공급 정책에서 탈피해 수요의 다양성과 새로운 주거 욕구를 충족하는 동시에 주거의 질을 향상시키는 수요 지향적·질적 공급 정책으로 전환돼야 할 시점이다.

2020-08-04 14:06:33

 [매일춘추 ] 국가균형발전-독일의 경우

[매일춘추 ] 국가균형발전-독일의 경우

지난주 라는 여름계절학기를 종강했다. 꽤 오래 이 강의를 담당해온 필자는 독일이 국가균형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루게 된 역사적 배경을 특별히 강조하는 편이다. 이번에 이 문제에 학생들의 관심이 유독 크다고 느꼈는데, 느닷없는 집권여당의 공공기관 추가 지방 이전 계획 때문이었던 것 같다.매일신문 사설(7월 27일자)은 이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차원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를 "정부·여당이 뚝심 있게 추진하"라고 썼다. 진영을 초월한 정론지의 직필이었다. 왜 우리 정치권은 "대구경북특별자치도, 대전충남특별자치도 식으로 지역을 권역별로 묶어 입법·재정·인사·조직 권한을 부여하는 분권화 전략"(한겨레 7월 27일, 김형기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대표) 같은 국가개조론에 버금가는 국가균형발전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는가?분산과 분권 반대 단골 메뉴인 '국가경영 효율성 저하'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오히려 그 반대임은 지방분권 모범국 독일이 증명한다. 기본적으로 독일인들은 '흩어져' 산다. 8천372만 명의 유럽 최대 인구국 독일 제1의 도시인 수도 베를린은 고작 340만 명에 불과하다. 베를린에 국회, 총리관저, 재무부 등 주요 국가기관이 있으나, 헌법재판소, 중앙은행, 금융감독청 등 많은 정부기관들은 여러 지방도시에 흩어져 있다. 메이저급 신문·방송사, 대기업의 본사도 수도에 있지 않다. 대표적인 독일 주가지수 '닥스30'의 30대 상장기업 본사와 전체 기업의 99.7%를 차지하는 중소(강소)기업들 역시 수많은 지방 (중)소도시에 자리 잡아 독일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고속도로(아우토반)를 보면 흩어져 사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독일 고속도로망은 방사형이 아니라 격자형으로 짜여 있어 국가의 중심이 지방도시 곳곳에 분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독일에서 분산과 분권은 바늘과 실이다. 분권 없는 분산, 분산 없는 분권은 있을 수 없다. 국가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국민은 모두 균등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컨센서스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재정균형제도'인데, 각 주의 경제력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일종의 안전판이라 할 수 있다.교환교수 등의 일로 독일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생활도 해 보았지만, 필자는 매번 독일의 '감동적인(!)' 국토균형발전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외국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필자는 독일 갈 때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못 살까' 라고 고민에 잠기는 대책 없는 애국자가 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번 여름계절학기에서 학생들과 비대면 수업을 하다 애국병이 또 도졌다. 아무리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어도, 5천178만 국민 중 2천596만(2020.7.1. 기준)이 수도권에, 1천만 명이 서울에 몰려 사는 이 나라가 과연 정상일까?

2020-08-04 11:50:35

[기고] 코로나 이후 사회복지 현장에 변화가 필요하다

[기고] 코로나 이후 사회복지 현장에 변화가 필요하다

2020년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의 확산은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사회현상을 경험하게 하였다. 너무나 일상적인 생활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이제는 수많은 위기 상황을 겪고 극복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코로나19 이후 사회복지 현장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되짚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기존의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방식과 전달체계에도 새로운 대응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먼저, 사회복지시설별(이용자의 특성) 감염병 예방을 위한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사회복지 대상자의 경우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장애인의 경우는 면역력이 취약한 사람들이 많다. 아울러 함께 생활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사자의 감염병 예방을 위한 세부적인 매뉴얼도 마련되어야 한다.매뉴얼은 코로나19를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복지 종사자와 복지 전문가, 보건 및 의료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해서 시행 가능하고, 거주시설과 이용시설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둘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재가복지서비스가 확산되어야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거주시설에서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집단감염으로 이어지고 사망자가 증가하였다. 이는 그동안 시설 중심 사회복지서비스의 취약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요양시설을 선호했던 이용자와 그 가족들도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확산에 취약한 요양시설의 단점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지역사회 내의 복지 제공 기관과 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재가서비스의 확대와 지원체계가 확산되어야 한다.셋째, 개별 또는 소규모(집단)의 복지서비스 제공과 전달체계의 전문화가 요구되고 있다. 코로나19로 대구와 경북의 대부분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주간보호센터, 경로당, 무료급식소 등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과 기관들이 휴관하였다. 이들 기관을 이용하여 서비스를 이용하던 많은 사회복지 대상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복지서비스 사각지대로 전락하게 되었다.이러한 상황은 그동안 집단적으로 제공하던 사회복지서비스를 개별 또는 소규모(집단)의 사회복지서비스로, 제공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복지 대상자와 주민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충을 상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할 수 있는 인력과 전달체계가 전문화되고 보강되어야 한다.넷째, 민간과 공공의 거버넌스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많은 후원물품이 접수되었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나누어 지원할 수 있는 체계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시·군·구별로 행정과 민간의 복지시설과 기관 및 단체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가 준비되어야 한다. 기존의 사회복지 대상자는 물론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 이들을 신속하게 발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체계가 제도화되어야 한다.코로나19는 그동안의 사회관계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감염병 확산에 대비한 새로운 교환과 소통의 사회관계 방법을 찾고 적응하고 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는 매뉴얼 개발과 서비스 방식 변화 그리고 협력체계 제도화 등 전달체계에 대한 변화와 대응 방안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전문가 및 사회복지사들의 경험과 지혜를 모야야 할 때이다.

2020-08-03 18:01:16

[김태선의 디자인, 가치를 말하다] 요즘 라떼는...

[김태선의 디자인, 가치를 말하다] 요즘 라떼는...

"라떼는 말이야…."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떤 출연자가 옆에 있는 다른 출연자에게 이 표현에 대해 물으니, 꼰대를 일컫는 말이라고 간결한 설명을 전했다. '왜? 라떼와 꼰대가 무슨 연관인데?' 이해하진 못했지만, 신조어를 알게 된 것으로 자족하고, 일단은 넘어갔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궁금증은 가시질 않아서, 찾아봤다. 인터넷 검색창에 '라떼'를 쓰자마자, 연관검색어로 등록된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가 떴다. 이 말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 어른'들이 자주 쓰는 상투적 표현을 놀이화(化)한 멘트다. 말하자면, 요즘 애들은 '꼰대 짓'을 '꼰대 놀이'로 바꿔 놨다. 요즘 애들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뜨끔했다. 혹시 나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지 기억을 살핀다. '나 때는 말이야, 예전엔 말이지', 이 표현에는 지나간 시간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지나간 시간이 문화적 힘을 갖게 되면, 우리는 이를 '레트로'(retro-respect의 줄임말)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레트로가 대유행이다. '힙지로' '미스/미스터 트롯' '싹쓰리'까지.일상 제품에서도 레트로 스타일이 인기를 얻고 있다. 스메그(Smeg)의 시그니처 제품인 FAB 시리즈. 이 시리즈는 이탈리아 가전제품 기업인 스메그가 1950년대 스타일에 영감을 받아 1990년대에 디자인한 제품 라인이다. 1950년대 당시 가전제품에서 유행하던 동글동글하고 작고 깜찍한 형태에 블랙, 빨강, 파랑, 파스텔민트, 분홍, 라임 등의 색상에 크롬 손잡이로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다. 그리고 제품 전면에 붙어 있는 S, M, E, G라는 4개 글자의 반짝이는 로고는 멀리서도 스메그임을 알려준다. 1997년 출시되자마자 화제가 되었고, 국내에는 2013년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의 팝업 매장에서 국내에 첫선을 보이자마자 준비된 물량이 다 팔려 나갔다. 한철이겠지 했던 스메그의 인기는 아직도 여전하다. 일명 '강남 아줌마'에게 한정된 관심이라는 평가를 넘어 1인 가족, 젊은 층 등을 중심으로 타깃을 확장하며, 프리미엄 가전으로 가구와 가전의 경계를 허물고 집안 인테리어의 아이콘이 되었다.가전업계는 스메그의 성공 요인으로 획일화된 시장에서의 차별화된 디자인을 말한다. 이를 방증하듯 요즘 레트로 대신 뉴트로(뉴 레트로, New Retro의 줄임말), 영트로(영 레트로, Young Retro의 줄임말)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요즘 레트로'는 중장년층에게 묵직한 추억을 파는 대신, 요즘 사람들에게 새로운 놀이가 되었다. 최신 스타일이 아닌 과거의 스타일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 복붙(복사붙이기)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은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더했기 때문이다. 종래의 레트로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요즘 레트로는 '변하지 않는 지속적인 가치'를 말한다. 변화와 혁신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본질을 바꾸고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은 지키면서도 본질이 새로운 가치가 되도록 하는 방법에 있다. 본질을 놓치면, 꼰대 놀이가 아니라 젊은 꼰대가 되고, '예전엔 말이지'가 '예전 같지 않네'가 되기 십상이다.

2020-08-03 16:39:05

[일상중국] 톈안먼의 마오쩌둥 초상화- 마오의 제국

[일상중국] 톈안먼의 마오쩌둥 초상화- 마오의 제국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성루에 내걸린 마오쩌둥(毛澤東)의 대형 초상화는 '신중국'의 상징이다.중국을 여행하는 외국 관광객뿐 아니라 중국인들도 평생 한 번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가서 직접 보고 싶어 할 정도로 마오의 초상은 중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오쩌둥은 도대체 중국인에게 어떤 존재로 각인돼 있길래, 지금도 톈안먼 광장 성루에 내걸려 있게 된 것일까? 그가 '신'(神)적인 존재라도 되는 것일까? 사실 마오는 개혁개방 이후 재물신(財物神)으로 추앙받고 있기는 하다. 적잖은 중국인들은 마오의 초상을 신줏단지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면서 부자의 꿈을 꾼다.그가 사망한 지 올해로 44년이 지났다. 중화인민공화국, 즉 '신중국' 건국을 선포한 1949년부터 마오의 초상은 톈안먼의 일부처럼 그 자리에서 71년째 중화의 부활, '중국몽'(中國夢)을 지켜보고 있다.'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신중국은 없었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언급처럼 마오의 초상화 없는 톈안먼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코로나19 시대가 계속되면서 중국 입국이 어려워져 중국 여행을 당분간 꿈꾸지 못하게 되었고 중국인들의 베이징 톈안먼 관광도 까다로워졌다. 수도 베이징에 대한 코로나 재확산 우려 때문에 국제항공편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 착륙이 전면 금지 조치로 직항편이 사라졌고 내국인의 베이징 입성 검색도 엄격해졌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공산당 지도부의 거처, 중난하이(中南海)가 지척인 톈안먼 광장에 대한 경계와 방역도 강화됐기 때문이다.톈안먼 마오 초상에는 적잖은 비밀이 담겨 있다.마오가 사망하자 마오 초상화는 한때 톈안먼 성루에서 끌어내려져 폐기 처분될 뻔했다. 1976년 9월 갑작스럽게 마오가 사망하자, '대약진운동'과 '대기근' 및 '문화대혁명' 등 마오 시대의 과오를 지적하는 비판이 봇물 터지듯 제기됐다. 스탈린 사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으로 스탈린 동상이 모두 파괴된 상황이 중국에서도 재연될 뻔한 것이다. 덩샤오핑은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논리로 공과 논란을 마무리 짓고 초상화 존치를 결정했다. 수천만 명의 인민과 지식인들을 희생시킨 과오와 상처에도 불구하고 마오를 끌어내릴 경우에 중국공산당 운명도 인민의 손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초상의 존치를 결정한 것이다. 톈안먼의 마오쩌둥은 그렇게 해서 살아남게 됐다.덩샤오핑은 한 서방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마오 주석을 우리 당과 국가의 창시자로 영원히 기념할 수밖에 없다"며 "그의 공과를 말하자면 착오는 2차적인 것이고, 그가 중국 인민들을 위해 한 일은 결코 말살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지금 톈안먼 성루에 있는 초상은 건국 초기 그것과는 다르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기를 잡은 후 베이징에 입성한 중공인민해방군이 처음 내걸었던 '마오 초상'은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팔각모'를 쓴 마오쩌둥이었다.지금과 같은 초상이 정착된 것은 8번 판본이 바뀌고 난 후였다.두 달 후인 10월 1일이면 코로나 경계령 속에서도 '신중국' 성립(成立·건국) 71주년 기념 퍼레이드가 톈안먼 광장에서 치러질 것이다. 톈안먼 성루에 내걸린 마오의 초상화도 '국경절' 사나흘 전까지 새로운 초상화로 교체된다. 높이 6m, 너비 4.6m, 무게가 무려 1.5t에 이르는 마오의 초상화는 매년 국경절 직전에 교체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요즘은 특수 제작한 물감을 사용해서 초상화가 빨리 변색되지는 않지만, 과거 베이징의 강렬한 태양과 직사광선에 초상화가 장시간 노출되면서 변색되는 등의 현상 때문에 매년 초상화를 교체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정착됐다.'죽은' 마오쩌둥이 지배하는 신중국은 '마오(毛)의 제국'이다.

2020-08-03 16:37:05

[신병주 교수 역사와의 대화] 240년 전 여름, 박지원 열하를 가다

[신병주 교수 역사와의 대화] 240년 전 여름, 박지원 열하를 가다

240년 전 여름 박지원은 한양을 떠나 북경으로 향했다. 청나라 건륭제의 고희연에 참석하는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나라에 간 것이다. 1780년 5월 25일 한양을 떠났고, 6월 24일 압록강을 넘었다. 8월 1일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열하로 향했던 것은 건륭제가 여름의 더위를 피해 열하에 있는 피서 산장에서 휴가 중이었기 때문이다. 박지원 일행은 북경을 거쳐 8월 9일 열하에 도착하였고, 이후 다시 북경을 경유한 후 한양으로 돌아왔다. 박지원은 이때 견문 내용을 일기 형식의 기록으로 정리했는데, 1783년에 완성한 「열하일기」가 바로 그것이다. 열하까지 간 여정은 대략 압록강에서 북경까지 약 2천300여 리, 북경에서 열하까지 700리로 육로 3천 리의 긴 여행이었다. 먼 거리와 끊임없이 다가오는 산과 강, 변화무쌍한 날씨가 일행을 힘들게 했지만, 박지원은 가는 곳마다 세심하게 여행 스케치를 했고, 이를 명품 기록으로 남겼다.「열하일기」는 총 26권 12책으로 구성되었다. 각 책 표지의 우측 상단에는 '도강록'(渡江錄)과 같은 소제목을 써서 열람하기 편하게 하였다. 「관내정사」는 산해관에서 연경까지의 일정을 기록한 것으로, 이 부분에는 박지원의 대표적 한문소설 「호질」이 실려 있다. 「태학유관록」은 열하의 태학에서 머물렀던 6일간의 기록으로, 중국의 학자들과 두 나라의 문물 제도에 대해 논평한 것을 기록하였다. 홍대용의 지전설(地轉說) 등을 중국인들에게 소개하면서 지구의 자전 등에 관심을 보인 내용이 나타난다. 「환연도중록」은 열하에서 북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교량, 도로, 배의 제도 등 도로와 교통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 있다. 「피서록」은 열하의 피서 산장에서 중국의 저명한 학자들과 시문을 주고받은 내용을, 「옥갑야화」는 옥갑에서 비장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옥갑야화」에는 양반들도 생산에 종사해야 함을 강조한 '허생전'이 수록되어 있다.「열하일기」 곳곳에서 박지원은 관찰한 사물 하나하나와 견문한 내용의 느낌을 비롯하여 구체적인 여정과 거리, 만난 사람들의 행태까지를 폭넓게 담았다. 조선의 토속적인 속담을 섞어 쓰기도 하였고 하층 사람들과 주고받은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기록하였으며, 한문 문장에 중국어나 소설체 문체를 사용하는 등 판에 박힌 글과는 전혀 다른 글을 썼다. 특유의 해학과 풍자를 가미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한 점도 「열하일기」의 또 다른 미덕이었다. 박지원이 무엇보다 관심을 쏟은 것은 청나라의 발전상이었다. 가는 곳마다 그들의 문물을 살펴보았고, 선진 문물 중에서 조선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일신수필」에 실린 '수레를 만드는 법식'에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중요성을 강조한 박지원의 생각이 집약되어 있다. '무릇 수레라는 것은 하늘이 낸 물건이로되 땅 위를 다니는 물건이다. 이는 뭍 위를 달리는 배요, 움직이는 방이라 할 것이다. 나라의 큰 쓰임에 수레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 우리 조선에도 수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 자국이 궤도에 들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수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조선은 바위가 많아 수레를 쓸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보니 길을 닦지 않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저절로 닦일 것이니, 어찌 거리가 비좁고 고개가 험준함을 근심하겠는가?'라는 부분에서는 수레를 만들 것과 수레 이용을 위한 도로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박지원을 조선 후기 북학파(北學派)의 중심인물로 꼽는 것은 국부(國富)나 민생에 필요하다면 청나라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선진 학문 수용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강조했기 때문이다. 240년 전의 저술이지만 「열하일기」의 기록이 지니는 의미가 여전한 울림을 주는 것은, 주변국에 대한 정확한 정세 파악과 합리적인 대응이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은 아닐까?

2020-08-03 16:33:59

[세계의 창] 집값 폭등은 지속가능성의 문제다

[세계의 창] 집값 폭등은 지속가능성의 문제다

"결혼, 살 집이 있어야 하지."젊은이들의 이런 대화에서 한발 더 들어가 보자. 결혼을 해도 집 장만의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래서 결혼을 주저한다는 말이다. 결혼을 못 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할까. 부동산 문제는 빈부 문제를 넘어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되었다. 이보다 심각한 일이 있을까. 다주택이 죄인가라고 항변하는 정치인도 있다. 공감 능력의 문제다. 누군가 주거용이 아닌 집을 덤으로 가지니 집값이 오르고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마저 주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제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한다. 일본의 장기 불황을 상징하는 말이다. 1990년대 초에 시작된 경기 침체는 회복 기미가 안 보이고, 절망을 이야기하는 평론이 늘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일본은 가장 안정적이고 선망받는 국가였다. 빗대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일본형 사회주의라고 했다. 안정적인 자민당의 장기 집권, 전 국민의 80% 이상이 중류층, 특유의 집단(전체)주의 등을 두고 한 말이다.잃어버린 30년, 일본의 침체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서 시작했다. 저금리로 시중에 유동성이 많아지면서 1986년 도쿄 도심의 땅값이 1년 만에 53.6% 상승했다. 이듬해에는 도쿄의 전체 평균 지가가 54% 오르고, 전국의 땅값도 들썩였다. 또 1년 후 수도권 땅값 상승률은 65.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움트고 자금은 부동산으로 더욱 몰린다. 주식시장도 덩달아 과열되고, 경제 전반에 거품이 일었다.1990년대 초반 부동산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그 여파로 디플레이션이 엄습했다. 거품과 함께 일본의 성공도 사라진다. 자산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가 확대되고, 집이 없는 사람은 평생 집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미래에는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이 격차는 인생에 대한 희망의 격차가 되었다. 하류층에 속한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계급사회의 도래를 예견한다. 사회적 격차와 장래에 대한 불안은 젊은이들의 결혼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되어 자녀를 가지기 위한 경제적, 심리적 안정성이 무너진 것이다. 결혼을 해도 보다 적게 아이를 낳게 되고, 저출산 고령화가 고착된다.근대화와 함께 저출산은 피할 수 없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기 수) 2.0명은 인구 재생산의 마지노선이다. 그 이하가 되면 인구가 감소한다. 그래도 출산율 1.50까지는 자력으로 회복 가능한 최저 수준으로 보고 있다. 선진국들은 출산율 1.50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여기고,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 출산율이 1.26으로 떨어지면서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자력으로는 사회 기반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획기적인 출산 정책이 '무조건' 성공해도 한 세대가 지난 후에나 회복이 가능하다. 일본 사회의 이러한 제 현상을 총합하여 요시미 슌야 교수는 '종말의 예감'이라고 했다.('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한국은 어떤가.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용케도 아직 꺼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 외는 다 닮았거나 정도가 더 심각하다. 달리 말하면 부동산 정책이 연착륙을 하지 못하고 잘못되면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출산율의 경우, 한국은 2018년에 0.98, 2019년에 0.92를 기록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다.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재생 가능성이 없고,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자연 소멸한다.한국의 비혼과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집값이다. 그러니 집값을 못 잡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참이고, 진실이다. 악마와 손을 잡더라도 해결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유세 강화, 토지 공개념, 지역균형발전 등등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나라가 소멸하고 내 집만 남아 있으면 뭐 하나. 30년 전의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 폭등이 우리가 이룬 성과를 앗아갈지 모른다. 그들을 따라가서야 되겠는가. 일본이 고마울 때도 있다.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먼저 가주니 말이다.이성환 계명학교 교수(일본학전공, 국경연구소장)

2020-08-03 13:25:40

[매일춘추 ] 현타의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춘추 ] 현타의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대세 키워드는 '먹방'과 '트로트'이다. 어느 TV채널을 돌려도 두 가지의 키워드가 함축된 방송프로그램뿐이다. 먹방은 음식 관련 생활정보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맛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 음식점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송가인에서 유산슬, 임영웅까지, 이제 트로트는 나이 든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촌스러운 탄식과 눈물의 음악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의 노래가 되었다. 왜 우리는 먹방과 트로트에 이토록 광분하고 있는가? 요즘 청년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현타'라는 신조어가 있다. '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나는 음식도, 음악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사회현상 속에서 숨어 있는 불편한 현타의 진실은 조금 말할 수는 있다.먹방과 트로트의 신드롬. 어쩌면 이 현상은 현재 우리가 사고 있는 한국사회가 어둡고 솔직하지 않다는 역설의 증거이기도 하다. 양극화와 불평등 지표인 팔마비율은 1.44로 OECD 회원국 중에서 30번째로 나쁘다. 한마디로 진보와 보수는 없고, 위아래 불평등만 있는 '저녁이 없는 삶'의 신(新)계급사회다. 하류계급에게는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없다. 의식주 중에 생존의 주거공간(住)을 마련할 희망도 없다. 평생 일해서 집 한 채 사기도 힘들다. 아마 좌절의 심리적 대체제가 '먹방'일지도 모른다. 절망의 박탈감이 조금이라도 망각되는 '식(食)의 문제'로 의도적으로 도피한 것이다. 음식은 가격이 아니라, 맛이다. 다소 자본의 가치 경쟁이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치권이 불평등을 미화하고 조장할 때, 민심은 솔직함의 저항으로 대응한다. 그 시작이 노래다.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트로트 가사가 현재의 답답한 사회에 대한 저항과 분노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대구 계산성당 역사관에는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8가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텔레비전과 많은 시간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전에 취하면 모든 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이 말을 다시 복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맨 뒤쪽의 설국열차 꼬리칸에서 TV를 보면, 나이 걱정도 되고,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도 하고, 내 이웃과 비교하기도 하고, 자격지심도 생기고, 나만 생각하고, 쉽게 포기하고, 불안의 강박증이 생기고, 막연한 기대감만 생각한다." 춥고 배고픈 우리 시민들이여! 자책하지 마라.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다. 국가와 개인의 책임을 혼동하지 마라.국가는 시민의 하인이지, 주인이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클수록 계급적 편견과 혐오로 다양한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는 경제성장률이 아닌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타의 시간이 필요하다.

2020-08-03 11:48:10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이상한 나라의 구속영장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이상한 나라의 구속영장

사법부를 존중한다는 생각에서 그동안 채널A 이동재 전 기자에게 발부된 구속영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 왔다. 하지만 검찰에서 증거로 확보한 두 개의 녹취록이 공개되고, 수사심의위에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중단하라는 권고가 내려진 이상, 이제 발부된 구속영장의 정당성을 따져볼 때가 됐다.영장을 내주며 김동현 영장판사는 "검찰 고위직과 연결해 피해자를 협박하려 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자료가 있는 점, 매우 중대한 사안임에도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해 수사를 방해한 점" 등을 사유로 들면서 "실체적 진실 발견, 나아가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이 사유들이 내 눈에는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고작 '미수' 사건에 영장씩이나 발부된 것은 아마도 이 일이 '검찰 고위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 때문이리라. 하지만 '혐의가 소명'된 것도 아니고, 그저 '의심'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게 과연 자유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심스럽다.게다가 검찰이 신청한 영장에는 일단 이 일이 피의자의 단독 범행으로 적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영장에 적시되지 않은 사안에까지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동재 전 기자의 변호인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는 검찰이 청구한 범위 내에서 사안을 판단해야 한다는 '불고불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또 검찰 고위직과의 연결을 의심할 '상당한 자료'가 있다고 했으나, 정작 수사심의위에서 '상당'하다는 그 자료들은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대체 그는 무슨 '자료'를 본 걸까? 녹취록엔 공모 혐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한동훈 검사장의 명시적 언급이 등장한다. 이 견고한 사실을 뒤집을 만한 '자료'란 대체 뭘까?취재원 보호를 위해 핸드폰을 초기화한 것을 증거인멸로 본 것은 그렇다고 치자. 도대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인식론적 필요가 인신을 구속할 사유가 되는가? 더 황당한 것은 그 다음이다.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이 판단의 바탕에는 검찰과 언론이 유착되어 있다는 선입관이 깔려 있다. 논리적으로 '선결 문제 전제의 오류'에 해당한다. 그런 판단이 가능하려면 먼저 두 사람의 '공모'가 사실로 입증돼야 한다. 아울러 그와 유사한 사례가 다수 확인돼야 비로소 '검언 유착'이라는 일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검언 유착'이라는 것이 작년 조국 사태 이후에 여당 측에서 검찰의 예봉을 꺾으려 만들어 낸 정치적 프레임이라는 것을 안다. 검찰과 언론은 그 사태의 전이나 후나 늘 똑같이 행동해 왔다. 하지만 검찰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그 행태를 '검언 유착'이라 비난하지 않았다.'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이라는 말은 한 기자와 한 검사의 개별적 일탈에 관한 언급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상황에 대한 어떤 '일반적' 판단, 즉 검찰 집단과 언론 집단이 모종의 유착 관계에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그 판단은 보편성을 결여한 것으로서 명백히 정치성을 띤다. 그래서 이 사태는 심히 우려스럽다.이 우려는 좀 더 넓은 지평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정권은 자신들이 세운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공격하며, 이제 사법부마저 개혁하겠다고 공언한다. 검찰과 감사원에 이어 사법부마저 저들 식으로 '개혁'당하면 이 나라에 권력을 견제할 기관은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한다.사법부는 정의의 최후의 보루다. 조국, 윤미향, 박원순 사태를 거치면서 이 사회의 '윤리'는 진영의 희생물이 되었다. '무죄 추정의 원칙' 운운하며 그들은 윤리의 문제를 모두 법원에 떠넘겨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사법부뿐인데, 법마저 진영에 가담한다면 이 나라에서 '정의'라는 말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2020-08-02 15:44:42

[기고] 울진 국립해양과학관 개관의 의의

[기고] 울진 국립해양과학관 개관의 의의

경상북도에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인해 교통이 불편한 오지가 많은데 울진군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시대 울진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보부상들은 동해 바다에서 생선과 수산물을 수확해 태백산맥을 넘어 봉화까지 가서 농산물과 교환했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김주영 선생의 장편소설 '객주' 마지막 10권은 바로 봉화를 왕래하던 울진의 보부상들 이야기다. 이들은 소금과 건어물, 미역을 등에 지고 태백산맥 십이령길 열두 고개를 넘고 넘어 봉화의 내성(지금의 봉화읍) 장까지 오갔다. 보부상들이 울진에서 봉화를 한 번 왕복하는 데만 꼬박 열흘이 걸렸다고 하니 당시 조상들의 삶을 위한 의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지금도 울진은 전국의 80여 개 군(郡) 가운데 고속도로도, 철도도 없는 유일한 군이라고 한다. 필자는 울진에 '동북아시아의 샹그릴라'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샹그릴라는 지상낙원인 동시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외딴 지역을 가리킨다.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농업이 기반인 경상북도 내륙 지역은 급속히 쇠퇴했지만 울진은 상대적으로 쇠퇴 속도가 더뎠다. 바다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산업이 존속하거나 새롭게 생겨나 성장했기 때문이다. 또 지난 1988년에는 울진 바닷가에 한울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지면서 인구 감소를 막는 데 기여했다. 울진과 이웃한 내륙인 봉화나 영양의 현재 인구는 산업화 이전의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그러나 울진의 인구는 산업화 이전의 절반 수준에서 더 줄어들지 않고 인구수 5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의 소멸 위험 역시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오직 울진이 바다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나 국가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다가 왜,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는 한 사례가 바로 울진이라고 생각한다.울진은 올해 들어 상전벽해 중이다. 울진~봉화 구간 36번 개량 국도가 지난 4월 개통되어서 이제 봉화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왕피천 케이블카가 지난 7월 1일 운행을 시작했고, 오는 10월에는 아름다운 죽변항 주변 해안 2.4㎞를 따라 레일 바이크를 탈 수 있다. '울진 관광 르네상스'의 원년이 바로 올해이다.울진 변화의 화룡점정은 국립해양과학관 개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과학 전문 교육·전시기관인 국립해양과학관은 지난 7월 31일 '바다의 날'에 울진군 죽변면에서 문을 열었다. 정부가 국립해양과학관을 만든 이유는 우리 삶에서 바다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국민들에게 바다를 교육하는 일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지구 면적의 70%를 차지하고 지구 생명체의 80%가 살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바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해양적 소양(Ocean Literacy)을 높이는 일, 곧 바다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동시에 우리 삶이 바다에 끼치는 영향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하는 일은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필수 불가결하다. 국립해양과학관은 바다의 모든 것을 망라한 본관 전시실 이외에도 해상 해중 전망대(수심 6m)가 과학관 앞바다에 있고, 전망대까지 국내 최장 해상 통로 393m를 바다 위 육교로 걸어간다. 독도와 한반도 간 최단 거리(216.8㎞)인 죽변에 있어 독도를 수호하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울진에는 국립해양과학관과 함께 관광자원이 즐비하다. 가볼 만한 울진 10경으로 국립해양과학관, 불영계곡, 왕피천 케이블카, 금강송 숲길, 망양정과 월송정(관동팔경), 성류굴, 백암온천 덕구온천, 응봉산 백암산 통고산, 기성망양 등 해수욕장, 죽변 해안 레일 바이크가 있다. 우리나라 생태관광의 수도라고 할 정도로 명승지 천국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울진을 찾는다면 잊지 못할 추억을 쌓으리라 확신한다.

2020-08-02 15:44:12

[매일춘추] 아버지

[매일춘추] 아버지

환갑이 다된 아버지의 귀밑 흰머리를 보고 '애가 무슨 새치가 다 있냐?'면서 타박하시던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그 말씀을 하시고 정확히 16년을 더 사시다가 아흔 여섯에 돌아가셨다. 시간은 흘러 그 당시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당신께서는 삼남이녀의 형제 중 네 번째로 태어나셨다. 지금껏 형제끼리 다툼 한번 없을 정도로 화목한 가정 분위기였지만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하셨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서당을 다니셨기 때문에 그날그날 배우신 한문을 항상 종이에 쓰고 싶어하셨단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할아버지께 "꼭 오늘은 종이를 사다주세요"하고 부탁드렸지만 해질녘 동구 밖에서의 기다림은 술에 거나하게 취하신 할아버지의 빈손뿐이었다. 없는 살림에 당연히 일찍이 산업전선에 뛰어드셨다. 당신께서는 어릴 때부터 점원 노릇을 하며 배운 양복기술로 타인의 새 정장을 만들며 살아오셨지만 정작 당신의 바지에는 항상 무르팍이 해어져 기워 입은 자국이 선명했다. 묵묵히 평생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가족은 물론이고 고향집의 없는 살림을 돌보셨다. 아버지는 또 큰집 조카들의 뒷바라지도 마다하지 않으셨다.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갑자기 쇠약해진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자식들이 네 명이나 있지만 모두 제 살 길 바쁘니 할 수 없이 내린 처방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뵙고 싶어서 며칠 전 요양원엘 갔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5층 요양원 발코니로 나오시라 해서, 당신께서는 아래로 내려다보시고 나는 건물 바깥에서 위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 버렸다. 이제 겨우 하루에 한 명의 보호자만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면회가 허락되었다. 오늘도 나는 한 통의 안부 전화를 드렸지만 당신께서는 두 통의 전화를 더 주셨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지우개가 서서히 생기나보다. 금방 전화하신 것도 기억을 못 하시고 또 전화를 주신다. 장남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해 드렸는데 첫 정이 그렇게도 그리우신가보다. 그런 아버지의 세월 속에는 술잔이 절반이셨지만 그 술잔 속에는 희생이 절반이셨다. 평생 고고한 학처럼 묵묵히 살아 오셨지만 당신의 마음 속에는 바다가 있었다. 오래 전 할머니의 타박을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던 소년은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태산같이 높은 어버이의 은혜를 당연하게만 생각해 왔던 못난 아들이었다. 삶에 쫓겨 앞만 바라보고 살다가 이제 자식 사랑의 깊이를 느껴 효를 행하려 하니 아버지의 기력이 다하셨다. 그 흔한 비행기 한번 태워 드리려 해도 힘이 없어 여행을 못 한다고 한다. 평생을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편찮으셔도 아프다는 말씀 한번 안 하셨다. 후회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 나머지 빈잔에 큰아들의 못 다한 효를 채워 드릴 테니 할머니처럼 앞으로 16년만 더 살다 가소서.

2020-08-02 14:30:00

[2020 세상 읽기] 대출 권하는 사회

[2020 세상 읽기] 대출 권하는 사회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서 났다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암울한 식민지 사회에서 주정꾼 노릇밖에 할 수 없는 지식인이 술을 먹는 이유를 그의 아내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현진건의 소설 의 한 구절이다. 학자금, 전월세보증금, 아파트중도금, 주택자금 등 대출 밖에 낼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술 먹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식민지 하의 지식인을 떠올리게 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도대체 그 많은 대출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 채권을 받고 돈을 빌려 준다. 정부는 그 돈으로 인프라를 건설하고 복지 재원으로 쓰며 민간에게 보조금도 준다. 그렇게 돈은 돌고, 누군가는 월급을 받고, 또 누군가는 수익을 얻으며 그 중 일부를 은행에 저축한다. 은행들은 이 돈을 다시 대출해 주며 새로운 돈은 계속 창출된다.글로벌 경제도 마찬가지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에 무기를 팔고 금을 받았던 미국은 그 후 달러를 기본으로 금을 바꿔주는 브레튼 우즈 체제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해 국제수지 적자에 놓였던 미국은 달러를 계속 찍어내었다. 그 결과 달러 가치는 급락하고, 일부 국가들은 금(金)인출을 요구하였다. 결국 금 태환 정지 선언인 닉슨 조치(1971년)로 브레튼 우즈 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때부터 각국 정부는 금 없이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있게 됐는데, 연일 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최근 뉴스들은 이때부터 잉태된 셈이다.수출 주도형 경제구조인 우리나라는 수출주력 국가들의 경제 상황에 따라 국가경제가 좌우되기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내수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최근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강화, 장기 저성장 시대의 소비 패턴, 고령화·저출산의 국내 현실은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고 내수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불경기 극복을 위한 부양책으로 정부지출을 늘리고 저금리 기조를 선택하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저금리가 기업의 신사업이나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갈 데 없는 유동성은 부동산으로 몰렸다. 금리가 너무 낮으면 예금에 매력에 못 느낀 자금들은 부동화되는데 이 자금들이 부동산에 몰릴 경우, 투자와 회수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버블이 생기게 된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처음으로 1천100조원을 넘어서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부동산 불패'라는 신념이 우리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부동산 투자로 남들만큼 못 벌어 배 아픈 사람은 있어도 손해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들릴 정도니 말이다.더 오를 거라는 무주택자들의 불안심리와 주변에서 들리는 갭투자의 성공담은 대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냉온탕을 오가는 부동산 정책들과 내로남불의 끝판왕이 돼버린 기득권층의 행태들은 국민을 분열시켰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정부의 규제들이 탐욕의 부동산 시장에 패배할 때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서민들의 마음은 불안해져만 간다.대출금 회수를 위한 금리인상은 부동산 안정의 대책이 될까?우리나라 가계대출의 대부분은 변동금리부 대출이라고 한다. 이는 대출 이자율이 시중금리 상승에 따라 올라가므로 가계이자 부담이 늘고 가처분소득은 줄어 오히려 소비가 위축될 소지가 있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약 39만가구가 빚 갚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고위험가구가 된다는 과거 한국은행의 분석도 있었다.그렇다면, 공급증대는 그 대안이 될까? 신도시 건설, 재건축, 재개발 등 공급확대는 부동산 안정화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급량을 늘려도 거주 환경이 우수한 선호지역에서 살고 싶은 잠재 수요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내 집을 마련해도 더 편리하고 더 좋은 거주환경에 대한 욕구는 부동산이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누구나 돈이 있으면 강남처럼 부촌에 살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여기서 불편한 진실을 하나 소개할 까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자는 부동산과 주식이 올라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자들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부자들을 욕하거나 부러워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제 부동산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사회적·경제적 신분계층을 만들었고, 부동산 양극화라는 괴물을 탄생케 했다. 이제 부동산 문제는 가격의 안정이나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섰다. 부동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진영대결이 돼버렸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생각된다.남의 돈인 대출로 갭투자에 성공한 수혜자들과 남의 돈 무서워, 열심히 저축만 하고 산 부동산 정책의 피해자들은 운명처럼 한 나라, 한 공간에 같이 살고 있다. 누군가는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이고 시장경제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땅 한 조각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그의 국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한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한 세기 전에 던진 질문에 대해 그 누군가는 답을 해줘야 한다.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600조원을 훌쩍 넘었다. 세계경제는 바닥을 기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종료되지 않았다. 부동산이 만든 불로소득은 일부에게 돌아가겠지만, 그 거품이 만든 폭탄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모두에게 터져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그 피해 정도는 민주적이지 않다. 빚이 많은 중산층들은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기존에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더 가난해진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움을 준 자본주의가 두 얼굴을 가진 '지킬앤하이드'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현진건의 소설 는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 고!"알뜰살뜰 저축하며, 하루하루 노동의 대가로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은 지금의 세태를 보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그 몹쓸 사회가 왜 대출을 권하는 고!"이상철 칼럼니스트

2020-08-01 06:30:00

[광장] 퇴계 선생은 매화와 친구였다

[광장] 퇴계 선생은 매화와 친구였다

최근 산림청에서는 정원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원부서를 발족시키고 '수목원·정원법'을 제정하였다. 제정된 정원법에서는 국가정원, 지방정원 그리고 민간정원 등 여러 유형으로 정원을 구분하고 있는데 국가정원 제1호로 순천만 정원이 지정되었다. '정원은 자연이다'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정원이 산림청에 소속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정원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큰 이유는 정원이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깨닫고 존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퇴계 이황은 대유학자이자 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정원설계가였다. 그는 이론의 틀을 벗어나 항상 자유롭고 독창적인 생각으로 집과 정원을 조성했다. 퇴계 선생은 공직에서 물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집 한서암을 지을 때 개울에 인접해서 초가집을 지었다. 홍수의 피해를 모를 리 없었지만 물소리가 좋아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집 주위에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 즉 삼우(三友)를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들었으며, 이에 더하여 국화와 과(오이 또는 모과로 해석), 즉 이우(二友)를 더하여 오절(五節)이라 하였다.지금 우리의 시각에서 한서암은 어찌 보면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조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의 물소리와 절개를 뜻하는 다섯 종류의 나무와 식물로 이루어진 초기 정원은 청빈과 절개를 자연의 순리로서 마음에 익히고 실천해 간 퇴계의 사상을 실현한 장소였다.한서암 시절 몇 년 후 퇴계는 계상서당을 짓고 이곳에서 10여 년을 보냈는데 그 정원에는 직사각형의 작은 못을 조성하고는 과를 대체해서 연(蓮)을 심었다. 연과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 여기에 퇴계 자신을 더하여 이 정원을 육우원(六友園)이라 했다. 이처럼 퇴계는 자신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생각했음은 물론 다섯 가지의 식물을 인격화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보여 주었다.자연 속 개울을 낀 정원은 도산서당에도 조성되었다. 도산서당에 퇴계는 정사각형 연지(蓮池)인 정우당과 작은 개울 건너 화단을 만들었다. 거기에 평생의 친구였던 매화, 대나무, 소나무 그리고 국화를 심고 이곳을 절우사라 했다. 그는 식물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두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렇게 삶을 보냈다. 한서암의 조촐한 정원도, 계상서당과 도산서당의 정원도 모두 퇴계 선생이 평생 추구해 온 자연 합일의 삶을 보여주는 곳, 말하자면 이상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진 곳이었다.소박하면서 상징적인 퇴계형 정원 양식 즉 연지와 인격화된 식물이 하나의 세트로 조성된 정원은 그를 따르는 많은 후학들의 정원 구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전통정원의 식물 선택과 배치에는 유학자들의 사상이 깃들어 있었다. 전통정원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정원의 주체자인 유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퇴계 선생은 "저 매화에게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셨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흐른 현재, 절우사도 육우원도 퇴계 선생의 손길이 닿았던 그 시대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리되지 않은 채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정원은 우리가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자연이다. 우리는 4계절 정원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찾고 생명의 소중함을 배운다. 이번 여름 모두 한번쯤은 정원에 서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를 희망한다.

2020-07-31 20:25:31

[기고] 대구스포츠단훈련센터 개장 의미

[기고] 대구스포츠단훈련센터 개장 의미

1895년 고종이 지(智)·덕(德)·체(體)를 중심으로 한 '신교육령'을 공포하고 근대적인 의미의 교육기관이 개설되면서부터 체육은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어 대한민국 체육이 태동하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1920년 '건민과 신민, 그리고 저항'을 창립 이념으로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가 출범하게 된다.이를 바탕으로 대구 체육도 1981년 '대구직할시체육회', 1991년 '대구시생활체육협의회' 출범을 통해 대구만의 독자적인 체육 육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국가적으로 체육 환경에 부응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2016년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을 각각 담당해오던 '대구광역시체육회'와 '대구광역시생활체육회'가 통합하면서 그간 전문 체육과 생활체육을 구분하는 그 경계를 허물게 되었다.체육단체의 통합은 그동안 이원화되었던 체육 시스템으로 단절되었던 엘리트 체육-생활체육의 벽을 허물고 더 나아가 대구 체육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통합체육회로 출범한 후 4년 만에 국가대표선수촌을 제외하고 2020년 7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구 선수촌'인 대구스포츠단훈련센터를 개장하게 되었다. 대구스포츠단훈련센터는 대구 체육이 그동안 걸어왔던 선진적 체육 운영 혁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으며, 그동안 다소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왔던 실업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되어 그 절차에서는 좀 더 투명하게, 결과로는 효율적 관리를 통한 경기력 향상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대구스포츠단훈련센터는 혁신, 선도, 지방자치시대의 전환점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먼저, 선수촌 내에는 대구 체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체육회뿐만 아니라 대구 직장운동경기부 소속 21개 팀 184명(지도자 27명, 선수 157명)의 지도자 및 선수들이 입촌하여 숙식과 훈련이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지역 체육 운영의 혁신이라 할 수 있다.일부 지자체에서는 선수 합동 숙소를 운영하는 경우는 있지만 숙소와 훈련이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선수촌' 개념은 대구가 최초이며, 국가대표선수촌을 제외하면 17개 시·도 최초의 훈련 클러스터이다.그동안 시설 노후화와 공간 부족을 이유로 숙소와 경기장 및 트레이닝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원룸, 체육관 등을 임차해 종목별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져 훈련하고 있었으며, 최근 불거진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사건처럼 구타·가혹 행위 등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러한 관점에서 대구스포츠단훈련센터는 체계적인 선수 관리를 통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운영 예산의 효율적 사용 등을 이루어내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다면 스포츠 4대 악인 조직 사유화, 승부 조작, 성폭력, 입시 비리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체육 분야의 선도자로서 또 한 번 체육계를 선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2020년은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지방자치는 지난 25년간 주민자치의 실현을 통해 대한민국을 발전시켜왔으며, 이제 이러한 발전적 변화가 체육 분야에서도 필요했다. 지금까지 체육 분야는 국가 주도로 하향식 정책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 대구스포츠단훈련센터를 통해 지방이 중심이 되는 체육 자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으로 체육 분야에서 대구만의 독창적, 자율적 운영 능력을 갖추게 되면 향후 국가 체육 발전에도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0-07-30 16:24:41

[시대산책] 북으로 돌아간 탈북자

[시대산책] 북으로 돌아간 탈북자

3년 전 탈북해서 한국으로 왔던 김모(24) 씨가 지난 18일경 강화도 월곳리의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다고 한다. 김 씨는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이에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다시 북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배수로에는 철창과 철조망이 있었고 CCTV를 포함한 군의 전자경계망이 있었지만 이를 모두 뚫고 넘어갔다. 철창과 철조망은 원래 벌어져 있었는데 김 씨의 몸이 왜소해서 조금만 더 벌리면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군의 CCTV에는 김 씨의 모습이 찍혔지만 왜 그 당시에 이를 알지 못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근무 기강이 상당히 해이해져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설사 그 당시에 이를 확인했더라도 김 씨를 붙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 씨는 북에서 올 때도 강화도 인근의 바다를 통해 탈북했을 정도로 물에 익숙한 사람이다. 한밤중에 군인들이 출동 준비를 하고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강화도와 북한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다 보니 강이나 바다를 자유롭게 수색할 수 없다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나는 1991년 강화도의 서쪽 해안 중간쯤에 있는 양도면 건평리 해안에서 북한에서 보낸 반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했다가 2주 후 제주도 서귀포를 통해 돌아왔다. 나중에 공안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 장소는 나 이외에도 여러 사람이 북한을 오가는 데 이용했다고 한다. 이 장소 외에도 북한의 공작 조직이 이용한 출입 장소가 몇 곳이 더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에도 군 감시망의 허술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경계망을 미리 치밀하게 조사해서 가장 허술한 곳을 찾아 침투하거나 탈출하는 것을 막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북한은 1998년 여수 앞바다에서 북한의 공작선(반잠수정)이 우리 해군에 의해 격침된 이후 지난 22년 동안 북한 공작선이 적발된 사례가 없다. 일부 국민들은 북한이 몰래 보내고 있는데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공작선을 보내 해안으로 침투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큰 반면 큰 효용가치가 없는 일이다. 간첩을 파견할 필요가 있더라도 탈북자나 중국 교포로 위장해서 파견하는 것이 위험 부담도 적고 한국에서 합법 신분을 획득해서 활동하는 데도 더 편하다. 북한 공작선이 들어오는 사례가 없다 보니 군의 경계망이 더 느슨해진 면이 있고, 최근의 군 장병 관리가 과거에 비해 느슨해진 면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어쨌든 군은 경비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고 이번에 나타난 문제점을 치밀하게 잘 보완해야 할 것이다. 경찰도 김 씨가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는 다른 탈북자의 신고를 묵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문제도 철저히 조사해서 재발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흔히 알려져 있듯이 북한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 수준이 세계 최악이며 폭압적인 나라다. 그런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을 대부분의 한국인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TV에는 북한 사회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이 있고 신문이나 잡지에도 북한 사회의 실상에 관한 구체적인 기사들이 자주 나오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은데도 북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이 거의 매년 나온다.2012~2017년 동안 탈북자 중 재입북한 사람이 28명이라고 한다. 평균 매년 5명 가까운 사람이 북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북으로 되돌아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가족을 만나러 잠깐 갔다가 억류되는 경우도 있고 가족에 대한 협박이나 회유 때문에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돌아가는 사람도 꽤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한 북한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일부는 충동적으로 혹은 견디다 못해 다시 북으로 돌아간다. 이번 김 씨처럼 범법 행위를 하고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 돌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우리는 탈북자들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지만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착 지원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2020-07-30 16:12:52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내게 꼭 맞는 광고 회사, 이렇게 찾아라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내게 꼭 맞는 광고 회사, 이렇게 찾아라

'창업은 했는데 광고는 어떻게 하지?'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다. 창업은 했지만 소비자와의 소통을 어려워한다. 그럴만한 것이 브랜드 개발과 광고는 엄연히 다른 부분이기 때문이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광고주가 그랬다. 창업과 광고에 동시에 소질이 있는 분은 없었다.그럼에도 이 칼럼을 보시는 분들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업자는 만능일 수 없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빨리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분의 적임자를 찾으면 된다. 광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좋은 광고 팀을 만나 브랜드를 키워 가면 된다.네이버에서 광고 회사를 검색하면 끝이 안 보인다. 그 정도로 광고회사가 많다. 여기서 내게 맞는 광고회사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찾는 일이다. 하지만 못 찾으리란 법도 없다. 구하는 사람은 찾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내게 꼭 맞는 회사를 어떻게 찾을까?첫째, 그들의 결과물을 살펴라. 인간이 하는 일이다보니 광고회사도 실수를 한다. 특히 프로젝트 진행 중에 그런 실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물은 달라야 한다. 과정상에서 실수가 있더라도 결과에는 흠이 없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물은 거짓말을 못 한다.그리고 말 잘하는 광고 회사를 경계하라. 말 잘하는 회사는 과정이 훌륭하다. 광고주를 늘 안심시킨다. 그리고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장담한다. 그런 회사의 경우, 데드라인이 되어서야 본색이 들어난다. 광고주가 요구한 부분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발표일이 되어 급하게 작업을 한 경우이다.둘째, 기본을 확인하라.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드는 회사가 있다면 미팅을 요청해라. 아님 전화 통화도 좋다. 의외로 미팅과 통화를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고객 응대와 말투, 행동, 서비스 마인드 등과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이 광고와 무슨 상관이냐 반문할 수도 있다.하지만, 광고를 잘하는 회사가 이런 기본적인 것도 잘한다. 광고는 명백한 서비스업이다. 나 혼자 예술성 있는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니다. 광고주의 돈은 그리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광고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다. 좋은 브랜드를 팔리는 브랜드가 되도록 돕는 일이다. 좋은 광고 회사는 좋은 서비스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명함을 주고받는 일, 이메일을 쓰는 요령과 같은 기본을 확인해라. 기본이 없는 회사가 좋은 결과물을 선물할리 없다.셋째, 직원들이 즐거운 회사임을 확인하라. 이것은 '내가 이 회사에 광고를 맡기면 즐거울까?'란 질문과 같다. 회사 자체가 즐거운 곳이 있다. 일이 즐거우니 이직률도 낮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광고회사가 그렇지 못하다. 초과 근무는 기본이고 야근은 필수이다. 우리 회사도 초창기엔 그랬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였다. 그 결과 유능한 직원들을 떠나보내는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다. 우리가 즐겁지 못한데 광고주에게 즐거운 광고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구직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면 그 광고회사의 평판에 대해 알 수 있다. 퇴사한 직원들이 남긴 그 회사의 장단점을 알 수 있다. 물론, 퇴사한 직원들이 좋은 글을 남겼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런 피드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광고회사와 즐겁게 일하고 싶다면 그 회사 내부의 분위기도 보라.넷째, 이유가 있는 광고회사를 선택하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이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디테일에 있다. 경찰이면서 깡패와 어울리는 이정재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극 초반 이정재는 밝은 색 계열의 정장을 입고 나타난다. 하지만 깡패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의 양복은 어두워진다. 박훈정 감독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정재의 옷 색깔에도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이런 것이 디테일이다. 여기에서 뛰어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구분된다. 광고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광고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좋은 광고 회사를 찾고 싶다면 광고의 디테일을 살펴라.다섯 번째, 계약서를 보면 그 회사의 문화가 보인다. 보통 계약은 1~2회의 미팅 후 세 번째 미팅에서 이루어진다. 서로의 신뢰를 탐색하는 시간인거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절차가 남았다. 바로 계약서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계약서를 보면 그 회사가 고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회사 CEO가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보인다.악덕 기업의 경우, 계약 해지 시 위약금을 2배로 책정하기도 한다. 명백한 반사회적 조항이다. 그리고 계약 해지의 경우, 상대방의 잘못만 명시되어 있고 광고 회사의 잘못에 대한 언급도 없다. 계약서는 그 광고 회사의 CEO의 입김이 가장 많이 작용하는 서류이다. 그래서 계약서를 보면 이 회사의 CEO가 어떤 마인드로 사업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계약하고 싶을 정도로 믿음이 간다면 계약서를 요청해라. 그리고 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아라. 이때 자문 비용이 10만 원 정도 발생한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운 소상공인어도 이 돈을 아깝다고 생각지 마라. 그 돈을 아끼려다가 몇 백, 몇 천만 원을 잃을 수도 있다. 반드시 변호사 자문 후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라.마지막은 '안 바쁜 회사'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바쁘지 않아 우리 브랜드에 신경을 많이 써주는 회사, 일이 없으니 우리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회사가 최고의 광고회사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일이 많아야 실력 있는 회사라 믿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바쁜데 에는 이유가 있으니까.하지만 그런 순간 광고 의뢰가 '쳐내야할 대상'으로 바뀌기도 한다. '빨리 종료하고 나머지 프로젝트에 돌입하자!'는 식일 수 있다. 잘 찾아보면 스타트업인데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광고회사가 있다. 이들은 간절하다. 이번에 맡은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이들에 내일이란 없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을 과하게 한다. 자신에게 광고를 맡겨준 것 자체가 감사하고 간절한 이들이다. 물론 경험이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다. 이럴 때는 광고주로서 이들을 보듬어 주는 역할도 필요하다.광고 회사를 선택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예측'이다. 절대 예측해서는 안 된다. '내가 5정도 바라면 10정도는 해오겠지' '좋은 게 좋은 거니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예측이 그렇다. 하지만 광고 회사는 내 마음 같지 않다. 이 점을 명심하셔야 한다. 광고회사를 선택할 때에는 한 가지 관점에서 보지 마라.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 기업 문화, 서비스 마인드 등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라. 다양한 시선에서 찾을 때 보석 같은 회사가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7-30 14:16:45

[매일춘추] 대프리카 2020 / 조수현

[매일춘추] 대프리카 2020 / 조수현

2017년부터 조형물이 등장한 대프리카 시리즈는 대구 현대백화점 동문 광장에서 매년 여름철 전시되는 행사이다. 대구의 큰 이슈가 된 야외 전시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그동안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익어가는 달걀 프라이 조형물, 눌어붙은 슬리퍼와 녹아내린 라바콘 조형물 등 더위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올해 진행되는 대프리카 조형물은 바캉스와 더위를 주제로 한 녹아내린 휴양지가 표현되었다. 대프리카 시리즈에 전시된 조형물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더위를 잠시 잊고 즐기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시민들은 조형물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거나 선베드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억을 남긴다. 이 조형물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선사하는 공공미술로서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대프리카 조형물이 시민들에 의해 활용되면서 여름철 관광의 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예를 들어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러브)는 뉴욕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조형물로 유명하다. 이 조형물이 관람객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단어에 의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인다. 또 다른 예로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는 과거에 버려진 섬 혹은 쓰레기 섬으로 불렸지만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한 모습을 보여준다. 선착장과 방파제에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적 상징인 '호박' 조형물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예술가들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고 함께 작품을 제작하는 등의 도심 재생의 역할을 하였다.반면 공공미술을 저해하는 조형물도 있었다. 강남 스타일 '말춤'과 '괴물' 그리고 '꽁치 꼬리' 등 일부 공공 조형물들은 혈세 낭비 논란을 일으키며 관람객의 반감을 초래하였다. 혐오스럽고 기괴한 형상이 지역의 특성이나 정서에 적합하지 않았던 결과로 결국 흉물로 전략한 '꽁치 꼬리' 조형물은 철거되었다.공공미술은 사전적 의미로 '대중들을 위한 미술'로서 일반적으로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작품을 의미한다. 전시장을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도심의 공공 장소에서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전시 형태인 것이다.필자는 공공 조형물의 역할은 예술성뿐만 아니라 대중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역적 특성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대프리카 시리즈와 일상의 단어를 통해 쉽게 공감을 얻은 러브 조형물 그리고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으로 구성된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들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조형물이 예술에 대한 공감대가 쉽게 형성된다고 바라본다. 대프리카 2020의 휴양지 조형물은 예술을 어렵게만 바라보는 편견에서 벗어나 일상의 삶에 보다 쉽게 접근하고 있다. 올여름 코로나19로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대구 시민들의 새로운 휴양지가 되길 기대한다.

2020-07-30 13:54:49

[유홍준의 시와 함께]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유홍준의 시와 함께] 내 아들의 말 속에는

내 아들의 말 속에는최서림(1955~ )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세심해서 상처투성이인 나의 말이 들어있다 거간꾼으로 울퉁불퉁 살아온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꺼칠꺼칠한 말이 숨 쉬고 있다 조선 후기 유생 崔瑞琳의 漢詩가 들어있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아들의 비뚤비뚤 기어가는 글자 속에는 내 아버지처럼 글자 없이도 잘 살아온 이서국 농부들이 공손하게 볍씨를 뿌리고 있다 눈길을 더듬으며 엎어지며 쫓기듯 넘어온 알타이 산맥의 시린 하늘과 몽골초원의 쓸쓸한 모래먼지 냄새가 박혀있다 바벨탑이 무너진 후 長江처럼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온 광목 같은 말에는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흘린 눈물과 피와 고름만큼의 소금이 쳐져 있다 내가 살고 있는 堂고개에는 비린 말들이 60년대 시골김치처럼 더 짜게 염장되어 있다 가난해서 쭈글쭈글한 말들이 코뚜레같이 이 동네 사람들의 코를 꿰고 몰고 다닌다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추론하는 학문이 있다고 들었다. 말투도 그럴 것이다. 손글씨가 멋진 사람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글씨를 크게 쓰는 분은 문인수, 김선굉 시인이다. 이분들의 글씨 몇 자는 한 페이지를 꽉 채울 만큼 크고 활달하다.'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고 한 신해욱 시인의 글씨체는 어떤 것일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장석남 시인이 돌이나 나무에 새긴 도장을 하나 갖고 싶었다. 그의 성격과 악력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도장을 간직한다는 것은 필정(筆情)을 느끼고 싶다는 말이다.글씨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말투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말투는 나희덕 시인의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어렵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일정한 보폭으로 정확히 구사하는 것이 참 대단해 보였다.(대부분 시인들은 버벅거리거나 중언부언하는 경우가 많았다.)아버지와 나와 아들로 이어지는 이 시 속의 말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것은 '꺼칠꺼칠한 볍씨 같은 말이고, 광목 같은 말이고, 눈물과 피와 고름만큼의 소금이 쳐져 있는 말이고, 더 짜게 염장되어 있'는 말이다. 가난해서 쭈글쭈글한 말이지만 곰곰 들여다보면 자긍심이 느껴지는 말이다.배운 사람들의 말은 위장되어 있지만, 좋든 싫든, 옳든 그르든 못 배운 사람들의 말은 거짓이 없다. 아버지보다 더 배웠지만 늘 아버지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말'이다. 아버지의 지혜다. 내가 쓰는 말은 지식과 가까울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말처럼 삶의 지혜와 현답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말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보다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의 것이 더 옳고 정확하다.이제 글자를 모르고도 잘 사는 법과 이치를 알던 사람들은 사라졌고 그런 시대도 갔다. 청도군 풍각이랬나 이서랬나, 시인의 고향 사람들이 쓰던 울퉁불퉁한 말이 듣고 싶지만 어쩌랴.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말도 글씨도 유전되지 않는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을. 시인 유홍준: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0-07-29 16:30:00

[최재목의 아침놀] ‘가짜, 쓰레기’라 말하는 아픈 사회

[최재목의 아침놀] ‘가짜, 쓰레기’라 말하는 아픈 사회

요즘 세간에서 자주 듣는 말이 '가짜' 아니면 '쓰레기'다. '가짜'란 '참인 것처럼 꾸민 거짓인 것'이다. 겉으론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사이비'(似而非),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는 노래의 '짜가'와 같다. 그리고 '쓰레기'란 더 이상 쓸모없어 내다 버릴/버린 물건이나 사람을 뜻한다.세상에는 정말로 가짜도 쓰레기도 있다. 아울러 그렇지 않지만 모종의 전략으로 억울하게 그렇게 몰려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말이나 이들과 합성된 말들–예컨대 '가짜뉴스' '기레기' 등–을 들으면 우선 기분이 상한다. 평소 좋게 생각했던 사람이나 사물들, 뉴스나 정보에 이 말이 붙으면 믿음이 사라진다. 이처럼 부정적 선입견을 갖는 것은 언어의 마력이다.따라서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호칭은 무언가의 기존 가치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혼돈으로 몰아가기에 탁월한 전략이다. 그렇게 낙인찍히면, 본래의 것과 이후의 손상된 이미지가 뒤섞여 긴가민가, 뭐가 뭔지 모를 상황에 놓인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일단 그렇게 '호칭'되고 나면 그렇게 '규정'돼, 사실과 진실은 묻지 않고, 그렇게 '인식'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왜, 무슨 목적으로 이런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담는가?먼저, 가짜와 쓰레기를 진실 그대로 알리려는 것이거나, 반대로 완전히 거짓 조작하여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어느 쪽이든 시간이 지나면 사실,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다음으로, '나는 맞고 상대는 틀리다'는 것을 선전, 홍보하여 자신이 도덕적, 사상적으로 가치 우위에 서려 상대방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그들은 수세에 몰렸든 아니든 상대방 비방의 목소리를 높여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여 상황을 반전하려 한다. 이들에게 사실과 진실은 뒷전이다.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마지막으로, '나만 그런가? 너도 그렇다!'는 것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즉 자신과 상대방이 피차일반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 그게 그거지!'라며 공감하도록 하여, 사실이나 진실을 흐려 놓으려 한다. 상대방의 공격, 비판에 물타기를 하거나 물귀신 작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상대가 제기한 문제가 억지이고 어불성설임을 적극 알려 상황을 반전하려는 전술이다.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달갑지 않은 이런 종류의 말들이 자연스레 유통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우선 언어의 사회적 수요, 공급 생태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시장 규모가 제법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만큼의 언어 유통시장을 가진 우리 사회의 몸 상태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적지 않은 내홍을 겪고 있고, 어딘가 앓고 있음을 알려준다.물론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말들은 주로 정치적 맥락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깎아내릴 때 쓰는 것이다. 그런 만큼, 시장을 이끌어가는 장본은 역시 정치인들이거나 그 주변 인물들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이분화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저급 언어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에밀 시오랑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를 다시 읽었다. 뇌리에 남는 한 구절을 곱씹는다. 의식 속에 몸이 존재한다는 것은 삶이 병들었음을 의미한다.다시 위, 심장 등을 계속 느끼는 것, 몸의 작은 부분까지도 의식되는 것, 그것이 병이 아니겠는가? 맞는 말이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말들도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아픔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구태여 그런 말도 할 필요가 없다. 말을 한다는 것은 '의식' 속에 그런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어딘가가 불편하고 아프다는 증거이다.지난날엔 '나라의 대사는 제사와 전쟁에 있다'(國之大事, 在祀與戎)고들 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언어의 병 또한 '국가의 대사'로서 치유해 가야 마땅하리라.

2020-07-29 16:30:00

[종교칼럼] 단순한 삶에 자유가 있다

[종교칼럼] 단순한 삶에 자유가 있다

〈공부하는 삶〉이란 책이 있다. 프랑스에서 약 100년 전에 출판되었는데 한국에서는 2013년에 번역되었다. 전문서적도 아닌데, 그 옛날 책을 왜 번역했을까? 세르티양주(Antonin-Gilbert Sertillanges·1863~1948)가 쓴 이 책의 원제는 〈La Vie Intellectuelle〉(1920년)이다. 공부와 관련된 책이나 독서에 대한 책은 서점에 즐비한데 또 공부에 대한 책인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공부보다는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에 방점을 둔다. 이 책은 일생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산 세르티양주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낸 책이다. 그는 배우는 사람은 '일상을 단순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다시 힘주어 말한다. "다른 어떤 낱말보다 한 낱말에 유념해야 한다. 반드시 삶을 단순화해야 한다."그에게 공부는 배우는 일과 산출하는 일이다. 세르티양주는 읽기의 첫 번째 원칙을 적게 읽는 것이라고 한다. 지나치게 읽으면 오히려 정신을 둔화시키고, 성찰하고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려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는 넘치게 읽기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자연이라는 책과 함께 즐기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한다. 또한 내면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게 읽는 것이 유익하다. 공부를 하든지 일상생활을 하든지 배우는 자의 삶은 단순함에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단순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그러나 현대는 속도감과 복잡함이 아닌가. 기술 발전은 인간의 상상력을 앞지르고 변화 속도는 현기증을 일으킨다. 우리는 오늘도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무엇이든 채우면 채울수록 더 복잡해지고, 세상을 알면 알수록 더 혼란스럽다. 이 무질서, 혼란함, 복잡함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수도승의 아버지 성 안토니우스(St. Anthony·251~356)는 인간 내면에는 두 세계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우리 영혼을 두렵게 하고 생각들을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하며, 낙담하고 불화하게 만들고, 냉담과 슬픔을 야기하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평온함과 온유함과 더불어 기쁨과 즐거움과 용기를 주는 세계'라고 했다. 무질서와 혼란 세계는 우리의 정신이 수천 갈래로 나눠진 데서 왔다. 우리 정신의 복잡함이 만든 결과가 바로 무질서와 혼란이다. 그러나 평온함과 온유함은 정신의 단순함이 근원이고 기쁨과 즐거움 역시 단순함의 소산이다.단순함은 소박함이나 간단함(simple)이라는 문자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단순함은 순수하고, 원초적인 것, 진리 자체인 신성(divinity)을 향하고 있다. 김광명은 '자연, 삶,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복잡성의 깊은 곳에는 단순함이 자리하고 있으며, 단순함은 모든 복잡성의 모태가 되는 우주의 심오한 성찰이다. 단순함이야말로 우리의 존재 기반이며 만물에 숨겨져 있는 구조와 조화이다"고 했다.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단순함에 대한 명쾌한 가르침을 주셨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우리 내면에는 수많은 생각들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내면의 복잡함이 '예'를 '예'로 말하지 못하게 하고, '아니오'를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이 단순하면 우리는 '예'를 '예'라 할 수 있고, '아니오'를 '아니오'라 할 수 있다.잊지 말자. 단순함이 자유의 문이고 내면의 고요에 이르는 길임을.

2020-07-29 15: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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