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이지영 배우·연출가

[매일춘추] 소통의 블로킹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는 배우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다.작품의 흐름과 관객의 몰입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그것을 블로킹(Blocking)이라고 한다. 스포츠 용어로 잘 알고 있는 블로킹이 연극에서는 무대 위 '동선'을 의미하는 말이다.독일출신의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블로킹에 대해 "무대와 객석이 두꺼운 유리벽으로 막혀 있어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관객은 등장인물의 움직임만을 보고서 스토리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블로킹이다" 라고 정의한 바 있다.블로킹은 연출자와 배우가 함께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장면을 만들며 의견대립으로 다투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그 움직임에 연출자는 아이디어를 더하고, 더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배우들과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블로킹을 완성시켜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교감하며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관객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기도 하는 연출자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현장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배우 사이에는 상호 이해와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10년 전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 연출자가 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연기 왜 그렇게 편하게 하려고 하냐. 그게 그렇게 힘들어? 하라면 좀 해!' 생전 처음으로 마주하는 상황이 그저 낯설었고 그 움직임이 너무 어색했다. 배우가 불편하면 관객들도 불편할 것 이라는 생각에 연출자에 대한 부정과 야속한 마음이 컸다.연출자가 되어보니 블로킹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배우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좋은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소통하고 배려하며 장면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심한 연출자와 총명한 배우의 소통이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만들어 낸다 할 수 있다.연극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만나 작품을 완성 시키는 공동체작업이기도 하며, '협력'으로 만들어내는 '소통과 공감'의 예술이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진 공연을 본 관객들은 가족과 친구 나아가 누군가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나누며 소통 할 것이다.누군가와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한다는 것.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연극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2020년 경자년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소통의 블로킹이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이지영 배우·연출가

2020-01-01 14:37:31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종교칼럼] 깊은 성찰, 희망찬 새해

결혼식, 성년식, 새해의 차례 등 '의식'(儀式, ritual)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자, 수천 년에 걸친 인류 문화와 전통의 핵심이다. 종교든 기업이든 교육이든 운동이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의식은 존재한다. 의식의 실행 속에서 일상의 몸짓은 아름다운 상징이 되고, 의식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진다.우리는 운동 경기에 열광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자기들만의 의식을 치르며 경기에 임한다. 미국의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는 경기 내내 양말을 갈아 신지 않는다. 심지어 몇 주 동안 이어지는 토너먼트 기간에도 양말을 세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양말을 바꾸거나 세탁하면 경기에 패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는 빨간색을 승리의 색깔로 여긴다. 주말마다 그는 빨간색 옷을 입고 외출할 정도다. 포르투갈 출신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축구장에 발을 내디딜 때 오른발이 먼저 잔디에 닿도록 한다.이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중요한 경기일수록 선수들은 더 긴장한다. 매 경기마다 긴장의 강도는 높아지고 불확실성은 커진다.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선수들도 기술만으로 경기를 이길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선수들은 자기 나름의 의식을 수행한다. 스포츠 저널(Journal of Sport Behavior, Vol. 34, No. 1)에 따르면 의식이 운동선수들의 높은 긴장을 완화시켜 경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의식은 시간의 흐름과 뗄 수 없다. 기독교의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등도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의식이다. 우리 고유 명절인 설, 추석, 단오와 한식도 시간에 따른 의식이다. 그래서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주기전승'(週期傳承) 의식이라고 한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새해맞이 의식이 진행됐다.유대인들의 새해 의식은 나팔절이라 부르는 '로슈 하샤나'(Rosh Hashanah, רֹאשׁ הַשָּׁנָה)다. 로슈 하샤나는 '그 해의 머리'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그레고리력이 아니라 유대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을에 새해를 맞이한다. 그들의 새해 의식은 10일 동안 지속된다. 행사는 전날 오후부터 시작되지만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첫날의 예배, 식사, 나팔 소리는 물론 한 동작 한 동작이 모두 의식이다. 새해 저녁에 먹는 빵도 독특하다. 이날 유대인들은 빵을 소금에 찍어 먹는 대신 꿀에 찍어 먹는다. 희망찬 새해를 향한 그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그들이 사과를 꿀에 찍어 먹는 독특한 장면도 볼 수 있다.로슈 하샤나의 첫날 오후에는 몸을 물속에 담그거나 강이나 바닷가에 가서 자신의 소지품을 던진다. 이 의식을 그들은 '타쉬리히'(Tashlich)라 부른다. 지난해 지은 모든 죄와 잘못들을 내어 던지며,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다.유대인들이 지키는 열흘간의 새해 의식은 대속죄일로 막을 내리는데, 10일의 새해 의식 가운데 9일이 속죄와 성찰의 기간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잘못한 모든 것들을 샅샅이 살펴 회개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 유대인의 새해 의식은 즐거운 축제의 시간, 가슴 벅찬 내일을 기대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의 내면을 보며 깊이 침잠하는 시간이다.경자년 새해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항아리에 담긴 물을 비워내듯 우리 속에 켜켜이 쌓인 묵은 찌꺼기들을 비워내자. 그것이 경도된 생각이든 왜곡된 기억이든. 새해는 더 큰 희망과 기쁨의 시간을 위해 잠시 움츠리는 시간을 가지자. 역경의 계사 편에 나오는 '척확굴이구신'(尺蠖屈以求信)이란 구절을 숙고해 보자.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장차 더 크게 펴기 위함일 것이다.

2020-01-01 10:53:40

반려견의 소변의 색을 관찰하면 다양한 질병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 약간 노랗고 투명하며 냄새가 적은 소변이 건강한 소변이다. ( 사진이미지: sutterstock)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소변에 담긴 건강정보…색깔·배뇨 자세에 주목

해피(3)가 내원했다. 보호자는 평소 건강했던 해피가 소변색이 붉고 기운이 없다고 했다. 검사 결과 해피는 양파 중독으로 적혈구가 파괴돼 혈색소뇨와 빈혈이 진행 중이었다. 보호자 분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드리자 보호자는 그제야 며칠 전 해피에게 불고기를 먹였던 사실을 떠올렸다. 불고기 양념에 포함된 양파가 붉은 소변의 원인이었다.반려견의 소변의 색과 배뇨하는 자세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 건강 정보들을 알아보자.건강한 소변은 맑다. 약간 노랗고 투명하며 냄새가 적은 소변이 건강한 소변이다.지나치게 물을 많이 마시고 물처럼 투명한 소변을 자주 보는 경우를 다음다뇨라 한다. 당뇨병, 쿠싱병이 의심된다.소변색이 짙다는 것은 소변의 농축과 수분 섭취 부족을 의미한다. 신장 질환, 결석, 심장질환, 비만한 동물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수분 섭취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소변이 뿌옇게 탁하다면 방광 내 슬러지(단백질 찌꺼기)가 많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단백뇨와 방광염이 의심된다. 다만, 과영양이 지속되면 소변의 탁도가 증가하기도 한다.소변색이 유난히 노랗다면 황달을 의심할 수 있다. 담즙의 빌리루빈이 소변으로 배설되어 유난히 노란색을 띄게 된다. 색소가 포함된 간식이나 비타민 영양제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노란 소변이 나타나기도 한다.담즙의 빌리루빈이 소변으로 배설될 때 소변이 산성일 경우 빌리베르딘 성분으로 변하면서 소변이 녹색을 띄게된다.소변이 마르면 소금처럼 반짝거리는 경우 소변 내에 무기질(크리스탈) 성분이 많음을 의미한다. 크리스탈뇨는 결석의 전단계이므로 수분 섭취를 늘려 소변이 묽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소변이 붉은 경우 근색소 또는 혈색소를 의미한다. 근색소뇨는 심한 운동 후,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 열사병, 고열을 동반한 질병 상태에서 근육 세포 파괴로 인해 근색소가 소변으로 배출되는 경우이다.혈색소뇨는 적혈구가 파괴되는 면역매개성용혈성질환(IMH), 약물에의한 용혈, 진드기매개 원충감염에 의한 용혈, 양파중독이 있을 경우 혈색소가 소변으로 배출되는 경우이다.소변에 피가 발견된다면 방광염, 방광종양, 요도염, 결석, 전립선비대 등으로 방광 또는 요도에 염증이나 궤양이 생겼을 수 있다.소변 전체가 혈액인 혈뇨의 경우 심각한 신장의 신세뇨관 손상과 심한 방광의 출혈을 의심해봐야 한다.배뇨를 불편해한다면 결석, 수컷의 전립선 비대, 암컷의 질비대, 방광과 전립선의 종양, 고양이 배뇨장애증후군(FLUTD)의 가능성이 있다.소변이 방울방울 맺히는 경우 배뇨가 깔끔하지 못하고 스며나오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방광염, 요도염, 요도 결석, 디스크 질환, 노령 동물에서 관찰된다.잠자면서 소변을 보거나, 화장실을 가는 도중에 참지 못하고 실례하기도 한다. 요도괄약근의 조절 능력이 약화되는 기력저하, 디스크질환, 노령견의 퇴행성 신경계 질환에서 관찰된다.개는 낯선 공간에 가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경향이 있다. 내원 전 소변을 보지 않고 병원에 오면 신선한 소변을 채취해 소변검사를 실시할 수 있다. 신선한 소변은 성분검사와 세포검사, 결석검사, 종양검사가 가능하다.낯선 병원을 내원한 고양이에게서 신선한 소변을 채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정에서도 배뇨할 때 생식기를 모래에 밀착하여 볼일을 보기 때문에 소변을 관찰하고 깨끗하게 채취하기가 쉽지않다.이때 고순도의 벤토나이트 모래를 제공해 소변 직후 굳어진 소변 덩어리를 관찰한다. 소변덩어리가 작아졌거나 여러 개라면 수분 섭취 부족과 배뇨의 불편을 의심해봐야 한다. 소변 덩어리가 단단하지 못하다면 단백뇨와 방괌염을 의심할 수 있다.수컷 고양이는 체형에 비해 요도가 매우 가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된 고양이는 물 섭취가 줄고 배뇨 간격이 길어질수록 소변이 농축되며 방광염이 잘 발생한다.고양이 방광염은 고양이배뇨장애증후군(FLUTD)의 주원인이 된다. 고양이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며, 배뇨 자세를 오래 취하거나, 통증을 호소한다면 FLUTD를 의심하여야 한다. FLUTD는 급성신부전으로 악화되기 쉽기 때문에 발견 즉시 수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2-31 10:54:13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자기 수행이 필요한 시대

거짓과 허위가 진실보다 더 큰소리를 내고, 폭력과 굴종이 백주에도 인륜을 이겨 먹는 일들은 뉴스에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위선적인 사람들은 처음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점점 자신의 허위에 잠식당해 버려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남들도 다 그래! 세상이 다 그렇지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며 자신의 책임을 세상 탓으로 돌리고 자기 행위에 면죄부를 준다. 자기기만에 빠져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이지만, 자신은 까마득히 모른다.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기만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오히려 힘이 없는 약자의 위치에서 경험한 것들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더 잘 알아보게 하고, 삶의 지혜를 가져다준다. 그것을 '주변성의 자원화'라고 한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나이가 들수록 불안해진다. 반면 약자로서의 경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성실하게 자신을 묵묵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평화와 자유가 주어지니 말이다. 그래서 성찰의 시간들이 더 많이 필요하고 더 깨어 있어야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이 어두운 기운과 나쁜 의식들로 어지러울수록 더 많은 수행자들이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명상, 요가, 마음챙김, 각종 테라피와 영성 프로그램들, 참선과 같은 수련의 장들은 얼마나 많은지! 지금은 바야흐로 치유와 수행의 시대가 되었다.점점 고립되고 소외가 심화될 시대에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우리가 한 행위는 선행이든 악행이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노력하며 때론 희생하고 나누며 사는 삶은 40이 넘고 50이 넘어 나이가 들수록 당당해진다.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지고 힘이 생겨, 그리움과 자비로 당당하고 지혜로워진다. 2019년도 다 지나가고 새해에는 좀 더 맑은 정신으로 나를 돌아보고 더 자연스럽게 나답게 살아볼 일이다.

2019-12-30 18:06:51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 시사로 읽는 한자] 海納百川(해납백천): 바다는 모든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모든 물줄기(百川)는 바다를 향하고, 바다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納). 진(晉)나라 원굉(袁宏)이 '삼국명신송'(三國名臣頌)에서 삼국시대 위(魏)나라 명신 서막(徐邈)을 기리는 글에서 왔다. 서막은 양주(涼州)의 자사(刺史·지방장관)로 서북의 이민족들을 잘 다스렸다. 원굉은 이러한 서막의 치정(治定)을 "물욕을 버리면(形器不存) 한 치의 마음속에 바다를 담는다(方寸海納)"고 평했다.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 이사(李斯)는 진왕(후에 진시황)의 객경(客卿·다른 나라에서 온 고급관료)이 되었다. 이때 이웃의 한(韓)나라는 치수전문가 정국(鄭國)을 진나라에 보내 논밭에 물길을 튼다며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려 했다. 이를 알고 진나라의 종실 귀족들이 "객경은 조정에서는 진왕을 섬기지만 결국 자기 나라를 위하고 있다"고 상소하자, 객경을 추방하는 축객령(逐客令)이 내려졌다.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사는 과거 진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객경들의 예를 들면서 이들을 추방하는 것은 "적에게 병사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식량을 내주는 격"이라며 추방령을 거두어달라는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렸다. 글 말미에서 그는 "태산이 큰 것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음이요(太山不辭土壤), 바다가 깊은 것은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던 까닭이라(河海不擇細流)"면서 포용의 덕치(德治)를 호소했다. 진왕은 추방령을 거두었고, 20년 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이루었다.천하를 다스리는 포용력이 해납백천이다. 마오쩌둥(毛澤東)도 집무실에 이 글귀를 걸어 놓고 항시 새겼다 한다. 2020년, 새 해의 한국 정치는 다툼과 파행에서 벗어나 해납백천의 자세로 제구포신(除舊布新·묵은 것은 버리고 새 것을 펴다)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2019-12-30 18:05:41

배상식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디아스포라의 꿈

지난달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Jeronimo)는 재외동포의 문제를 새롭게 생각하게 해준다. 이 영화는 쿠바의 에네겐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면서도 이웃 한인들과 매 끼니마다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던 독립운동가 임천택과 쿠바 한인 최초로 대학에 진학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의 주역이 된 아들 임은조(헤로니모 임) 등 쿠바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후예들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이 영화의 감독은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인 동포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한국인들이 생각지 못하는 곳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 동포들은 망국과 식민지, 전쟁으로 인해 기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다른 나라로 집단적으로 강제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래서 이들의 정착지에서의 고통과 집단적 상흔은 너무나 깊고 또 오래된 것이다.영화에서 잘 보여주지만,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헤로니모 임에게는 세 가지 꿈이 있었다. 첫째, 쿠바 한인들의 이민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 둘째, 한글학교를 세워 한국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가르치는 것. 셋째, 쿠바의 한인회를 살리는 것이었다. 헤로니모는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디아스포라였다.원래 디아스포라의 전통적 개념은 바빌론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이 다수의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는 강제 이주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스포라에는 강제 이주, 민족 분산, 비극적 경험의 공유가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한국의 재외동포들을 단지 민족적 동질성을 지닌 집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이들의 삶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사실 세계경제의 불균등 성장에 따라 지역 간 노동력의 이동이 대규모로 발생하여 디아스포라가 등장하는 사례도 많이 있다. 한인의 이민사에도 이러한 사실들이 등장하는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미국의 하와이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이나 멕시코 에네켄 농장 노동자로 이주한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현재 우리 사회도 다양한 디아스포라들이 거주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단 지역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많이 있고 또 다문화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결혼이민여성들도 많이 있다. 한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이나 멕시코로 이주할 때 이들이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이었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나 결혼이민여성들이 품고 있는 꿈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재외동포의 삶과 꿈을 통해 느꼈던 마음을 조금만 반추하여 우리 사회에서 살고 있는 다문화가족을 바라봤으면 한다. 이젠 다문화가족은 우리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든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동포들이든, 아니면 새롭게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결혼이민여성이나 난민들이든 그들의 애환과 아픔을 함께 이해하면서 따뜻한 시선이 항상 머물기를 기대한다.

2019-12-30 18:00:00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나무와 창의성] '수연'(樹緣):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변증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주로 혈연, 지연, 학연 등을 통해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고 있다. 인류가 처음 만든 씨족사회는 공동의 조상을 가진 공동체이다. 이 같은 공동체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산물인 씨족사회는 농업사회를 유지하는 데 아주 유익한 공동체였다.우리나라에 씨족 공동체가 아직 적잖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농업사회의 의식구조가 강고하다는 증거다. 혈연 중심의 공동체는 대부분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유지된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같은 성을 가진 집성촌이 남아 있고,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대종회와 향우회가 활발하다. 학교 출신에 따른 동창회와 동문회가 활발한 데서 보듯이, 학연도 혈연과 지연 못지않은 조직을 갖고 있다.혈연, 지연, 학연은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다. 그러나 '삼연'은 이성을 둔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삼연이 크게 작동하면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삼연은 각 시대마다 역할을 담당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큰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끝내야 할 시대는 제때 끝내야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던 원인 중 하나도 봉건시대를 스스로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끝내야 할 시대를 끝내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을 초래한다. "서경(書經)·태갑중(太甲中)"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스스로 재앙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갈등 중 대부분은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적지 않은 기성세대들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의식은 세대의 갈등을 넘어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변화는 세상살이의 이치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무를 좋아하는 것도 나무가 때맞춰 변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스스로 변할 뿐, 결코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변화의 주체는 자신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제때 변하지 않는 것은 철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다. 대부분 인간은 아주 절박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변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래서 반드시 변해야만 한다.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그래서 하늘이 도와서 이롭지 않는 것이 없다.' 이는 "주역(周易)·계사전하(繫辭傳下)"에 나오는 역(易)의 원리다.4차 산업혁명 시대는 새로운 인연이 절실하다. 나는 나무와의 인연, 즉 '수연'(樹緣)을 주장한다. 수연은 혈연, 지연, 학연보다 앞선다. 나무는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살았을 뿐 아니라 인간은 하루라도 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과 위기의 대부분은 나무에 대한 무지와 무시 때문이다. 그간의 문명은 대부분 숲의 제거를 통해 이룬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점차 위기를 맞았다. 인간이 위기를 맞은 것은 나무와의 만남을 악연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악연의 원인은 나무를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 탓이다. 그래서 인간은 나무를 함부로 다루었다. 나무에 대한 인간의 몰상식적 태도는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수연은 천부 인권처럼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 나는 이를 '수권'(樹權)이라 부른다. 수권 인식은 한 사회를 부강하게 만들뿐 아니라 최상의 복지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권을 실현해야 한다. '수권시대'는 나무를 인간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길 때 가능하다. 나무를 생명체처럼 여기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은 한 그루 나무 이름을 가지는 것이고, 모든 국민이 한 그루 나무 이름을 가지면 아주 가까운 장래에 수권시대를 만들 수 있다. 나의 나무 이름은 물푸레나뭇과의 갈잎떨기나무인 쥐똥나무다. 쥐똥나무는 나무의 열매가 '쥐똥'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쥐똥나무의 하얀 꽃향기는 지친 사람의 어깨를 일으켜 세우고도 남는다. 쥐똥나무는 도시든 농촌이든 전국 어디서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빛난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한 그루 나무가 희망이다.

2019-12-30 18:00:00

구현자 대구시교육청 민원담당사무관

[기고] AI 시대의 신문고

대구시교육청에는 월평균 250여 건의 민원이 접수 처리된다. 시설물의 이용 방법부터, 미세먼지 오염 대책과 같은 환경 문제까지 광범위하다.민원에 관한 가장 상징적인 제도는 신문고라 할 수 있다. 신문고는 조선의 태종이 처음 시행했다. 그는 아버지인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태조는 공이 많은 한씨 부인의 아들들을 제쳐 두고 두 번째 부인인 강씨가 낳은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이에 반발하여 이복동생인 세자와 정도전 등 수많은 공신들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재위 중에 야간 통행금지 시행 등을 통해 조선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하려 했다. 이러한 통제하에서도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등 민심은 흉흉했다.태종은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방편으로 신문고 제도를 시행했다. 1402년, 의금부의 당직청에 북을 달아놓고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북을 치도록 했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 민원에 대한 처리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신문고를 울린 사람이 오히려 처벌받는 일도 생기게 되자 백성들에게 신문고는 점차 유명무실한 대상이 되고 말았다.민원을 제기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상언과 격쟁이 있었다. 상언은 민원의 내용을 글로 적어 임금에게 고하는 것이고 격쟁은 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상언보다 격쟁을 선호했다.상언은 한문으로 작성해야 해서 문자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 백성들은 격쟁을 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군역과 환곡 등의 제도 문란으로 일반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이에 비례해 상언과 격쟁은 그 빈도가 높아졌다.격쟁과 상언은 정조 시대에 가장 활발했다. 정조는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고 그들의 삶에 제일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것을 정치에 녹여내고자 노력했다. 정조 임금 시절 처리한 민원이 3천여 건이 넘는다. 정조는 민의를 알고자 그 통로를 활짝 열었으며 백성들의 민원을 통치를 위한 빅데이터로 활용한 현명한 통치자였다.요즈음 시민들은 교육행정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만 받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권리 주장은 물론이고 아이디어를 내고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이러한 현상은 시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과 SNS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인터넷을 통해 행정기관에 쉽게 접근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으며 외국의 제도나 사례도 알아보기가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행정과 관련된 수많은 데이터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쌓이고 있다.대구시교육청에서는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민원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교육행정에 대한 요구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면 이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 행정 낭비를 줄이고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앞으로는 시민들이 직접 민원을 제기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인터넷 공간의 빅데이터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빅데이터가 신문고이며 상언이고 격쟁이 될 것이다. 처음으로 신문고를 매달았던 태종 임금은 이를 보고 과연 뭐라고 하실까?

2019-12-30 15:45:27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교수

[세계의 창] 라벤나의 모자이크

이탈리아 북동부의 산 비탈레 성당장엄하고 화려한 모자이크로 유명조각들 모여 전체의 그림 완성하듯내년엔 우리도 조화롭게 어울려야 이탈리아 북동부의 도시 라벤나(Ravenna)는 인구 16만 명이 채 안 되는 자그마한 도시이지만, 여느 대도시 못지않은 풍부한 역사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태동한 단테(Dante Alighieri·1265~1321)가 생을 마감해 묻힌 묘소가 유명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소가 여덟 군데나 있다. 산 비탈레(San Vitale) 성당,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the Mausoleum of Galla Placidia),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Sant'Apollinare Nuovo) 성당, 아리우스파 세례소(the Arian Baptistery), 정교 세례소(the Orthodox Baptistery), 테오도리쿠스 영묘(the Mausoleum of Theodoric), 그리고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쎄(Sant'Apollinare in Classe) 성당 등은 유럽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라벤나의 문화유산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산 비탈레 성당이다. 6세기에 완성된 이 건축물은 우선 생김새부터가 눈길을 끈다. 팔각형 몸통 위에 돔(dome·둥그런 지붕)이 얹혀 있어서 이탈리아의 어느 건물과도 비슷한 구석이 없고 그래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삼각형 지붕에 길쭉하고 네모난 모양의 바실리카를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건물 형태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당시 비잔티움의 황제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Justinianus·482~565)였는데, 그는 옛 로마제국의 영토를 탈환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진격하였고, 이때 비잔티움의 건축양식이 이탈리아에 도입되었던 것이다. 산 비탈레 성당은 비잔티움 양식을 따라 건물의 외관은 수수하나 내부는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명상적이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데, 높이 솟아 오른 돔과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작은 유리 조각들의 반짝거림, 그리고 영롱한 색채는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강한 인상을 남긴다.모자이크란 다양한 색깔의 돌이나 도자기, 유리, 타일, 조개껍데기 등으로 만든 작은 조각들을 회반죽이나 시멘트, 모르타르 등으로 표면에 눌러 붙여서 만드는 그림이다. 따라서 무수한 조각을 끼워 넣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재료의 특성상 변색이 적고 내구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원 상태가 오래 보존되는 장점이 있다. 최초의 모자이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기원전 6세기경부터 그리스에서는 백색과 흑색의 자갈을 바닥과 도로 포장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로마인들도 모자이크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는데, 특히 건물의 바닥 장식으로 많이 이용했다.모자이크는 비잔티움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어, '이콘'(icon)과 더불어 비잔티움 미술의 대표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기법과 소재 면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다양한 색깔의 불투명 유리 소재를 개발했고, 금박을 넣은 유리 테세라(tessera·모자이크 조각)도 사용해 모자이크에 화려함을 더했다.테세라의 배열은 표면을 평평하게 맞추는 방식을 따르기도 하지만, 각각의 테세라가 빛을 가장 잘 반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끼워 넣어 모자이크 표면에 요철이 생기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빛은 모자이크 표면 위에서 여러 각도로 반사돼 다양하고 섬세한 색채로 더욱 반짝이는 효과를 낸다. 당시 모자이크는 그리스도교 전례를 위한 영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매체였다.모자이크는 조각 하나만을 보아서는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조각들이 모여 전체를 완성하면 작품의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 사회도 모자이크처럼 구성원 각자의 모양도 다르고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도 다르지만, 그것이 분열과 대립의 이유가 아니라, 조화롭게 어울려 거대한 그림을 이루는 긍정적 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롭게 완성될 2020 경자년의 모자이크에 희망을 걸어 본다.

2019-12-30 14:23:36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대중은 멍청하다

2007년 미술 작품 경매에서 '작가의 똥'이란 작품이 한 캔에 1억원에 거래되었다. 이 작품은 1961년 이탈리아 미술가인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가 발표했는데 90개의 깡통 겉면에 '작가의 똥(Merda),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 제작'이라고 쓰여 있다. 밀봉된 이 깡통 윗면엔 작가의 서명이 있다. 당시 예술계의 작가 네임밸류를 풍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씁쓸함에 생각을 곱씹으니 똥내가 나는 듯하다. 도대체 그 작품을 1억원에 구매한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만한 돈을 낸 것일까?최근 A 배우가 주연을 맡은 어떤 뮤지컬이 티켓 오픈을 하자마자 매진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똑같은 공연이라도 그 배우가 라인업 된 회 차에만 매진되었으니 배우의 네임밸류는 이제 제작사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캐스팅 요인이 되었다. 수천만원의 개런티를 감당하면서도 어떤 배우를 쓸 수밖에 없는 제작자의 입장은 그 배우가 공연 중에 애드리브로 러닝 타임을 늘려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연출가의 입장으로 전가시켰다. 왜냐하면 관객이 티켓을 구매한 목적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배우를 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특정 배우를 보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관객을 관객이라 할 수 있는가? 문화향유 시민 집계에 포함되어도 되는가? 뮤지컬 한편을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한지 벌떼는 알고 있을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무대조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더듬이 등을 켜고 눈에 불을 밝히는 1번 바이올린 주자의 이름은 알고 있을까? 아니 최소한 작곡가의 이름은 알고 있겠지? 연출가의 이름은? 물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그 사람들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뮤지컬에 대한, 공연 예술의 특징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지 질문하고 싶다.대중은 멍청하다. 몇 년 전 열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을 기억할 것이다. SNS를 통해 시식 후기가 공유되었고 사람들은 과자 한 봉지를 사기 위해 마트를 뒤지고 다녔다. 어떤 마트에서는 시간을 정해 판매하기도 했고 인터넷 중고장터에서는 낱개로 과자를 팔고 사기도 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뜨거웠던 대중은 지금 어디 있는가?나는 연극 연출가이다. 벌떼 같은 대중을 원하지 않는다. 연극 한편이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하는 관객, 기대에 못 미쳤다면 화를 내며 나와 싸울 수 있는 관객, 그래서 1시간이 넘는 당신의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해 내가 사과할 수 있는 관객을 원한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으며 화가 난 대중이 있다면 한 연극인의 기우로 토해낸 글에 대해 안도의 사과드린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30 11:28:5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어떤 시청을 지을 것인가?  

시민 민주주의 새 역사를 쓴 대구신청사 건립 마침내 본궤도 올라새 랜드마크'관광명소도 좋지만'시민의 행복'을 최우선 목표로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터가 대구의 새로운 시청이 들어설 장소로 확정되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처음 대구시가 공론 민주주의를 들고 나왔을 때, 그리고 그것으로 신청사 입지를 결정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괜히 일만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거 아이가? 오로지 시민의 뜻대로? 말이야 좋지 그게 되나?" 곧이어 비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어떤 이는 '대구시의 백년대계를 지식과 전문성이 부족한 보통 시민들이 결정한다는 게 과연 타당한가?'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중구와 북구 말고는 더 참여할 지역도 없을 텐데 괜스레 대구시 전역으로 일을 확대해 복잡하고 시끄럽게 만든다'고 했다. '탈락한 지역이 승복하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한데 그 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공박하는 이도 있었다.게다가 공론화위원회의 핵심가치 '시민의 뜻대로'조차 잘 믿으려 들지 않았다. 말만 그렇게 해놓고 실제로는 '시장(市長)의 뜻대로' 할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찌 보면 새로운 방식, 즉 공론화를 통해 신청사의 입지를 선정한다는 건 어설프고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인 데다 심지어 위선적이고 나쁘기까지 했다.물론 이 모든 건 지난 22일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달서구와 달성군이 참여함으로써 북구와 중구가 전부일 거라던 예측은 일찌감치 깨졌다. 시민 참여단이 보여준 진정성과 성실함은 전문성 부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금까지의 과정과 선정 결과를 보면 시민의 뜻대로 진행되었다는 것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무도 지난 일을 두고 다투지 않는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지역 또한 당연히 없다. '신청사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군민들의 단합된 모습과 에너지는 절대로 헛되지 않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한 달성군수의 말처럼 경쟁한 지역들은 신청사 유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과 긍지를 확인하고 대구시민들에게 그들의 비전과 희망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선정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과거가 아니라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이로써 대구시의 신청사 건립이 마침내 궤도에 올랐다. 시민을 믿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대구시와 공론화위원회는 훌륭했고 그걸 받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쓴 대구시민은 더 위대하고 훌륭했다. 이젠 '어떤 시청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다 새롭게 해야 한다.2002년에 완공된 런던시청의 모습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원형이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원래 직사각형으로 디자인했다가 '친환경'이라는 런던시의 철학에 맞춰 다시 고친 것이다. 건물 전체를 구성하는 투명유리, 3층 회의실 안에 마련된 시민을 위한 방청석 등이 런던이 어떤 도시인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청을 짓는 과정에서 한 번도 다른 도시를 본보기로 들지 않았다.대구시청을 도쿄도청처럼 만들겠다는 것도, 두류공원을 센트럴 파크처럼 되게 하겠다는 것도 다 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만 지금은 말조차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말이 쌓이면 의식이 되고 습관이 되어 결국 방향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대구의 새로운 시청은 오직 대구답게 짓겠다고 말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명소, 새로운 랜드마크도 되어야겠지만 그보단 '시민의 행복'이 진짜 목표라고 말해야 한다. 즉, 대구의 새로운 시청은 대구의 산천과 대구의 역사를 닮아야 하고 대구의 색깔, 대구 사람들의 성정을 닮아야 한다. 그리고 대구의 산업과 대구의 미래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도쿄와 뉴욕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에 더 집중해야한다.뻔한 해외 사례가 순서대로 나오는 보고서 형식 같은 접근은 이번엔 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의 모델을 따라갈 게 아니라 대구가 세계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도시를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시민을 위한다면 시청을 저렇게도 지을 수 있구나' 하는 본보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공론 민주주의를 통한 신청사 입지 선정이라는 전례도 없고 사례도 없는 일을 해냄으로써 다시 한 번 '시작의 도시'임을 보여준 대구다. 그걸 왜 못 해내겠는가?

2019-12-29 15:44:35

전창록 경상북도경제진흥원장

[기고]경북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꿈꾸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이 1월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는 4천500개가 넘는 업체와 18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이들이 호텔·레스토랑·쇼 관람·쇼핑 등에 사용한 금액만 3억5천만달러로 추산된다. 이렇게 사람을 많이 모으고 성공을 거두는 비결은 뭘까?첫째 CES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융합과 공유'의 전시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CES는 과거엔 지금처럼 세계적인 미디어 노출을 양산하는 전시회는 아니었다. 매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0'에 밀린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가전 중심의 전시회 중 하나에 불과했다.그러나 몇 년 전부터 기조연설에 스포츠 의류용품 업체 언더아머의 CEO를 초청해 IT를 결합한 스포츠용품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게 하고, 아우디 등 자동차 업체 초청 부스를 열어 자동차와 IT의 융합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등 '기술의 융합'이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누구보다 빠르게 편승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다.2019년에도 통신사 버라이존 CEO를 초청, 5G가 가져오는 미래에 대해 기조연설을 하게 하고, 5G 기반의 자율주행차, 스마트 홈 및 스마트 시티의 융복합 중심의 기술을 선보였다. 우리도 세계적 전시회를 만든다면 전자·자동차·디스플레이 등의 산업과 제품 중심의 전시회가 아닌 기술의 융합과 그 사용자 중심의 혜택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둘째, CES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라스베이거스가 어떤 도시인가? 21만8천여㎡(6만6천 평)의 전시 면적과 15만1천 개의 객실이란 전시 참가자의 편의를 넘어, 분수·레이저 쇼 등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이고 밤이 살아 있는 도시다.1년 내내 세계적인 '태양의 서커스팀'이 공연하는 물쇼·불쇼 및 각종 공연과 퍼포먼스를 내가 묵는 호텔에서 관람할 수 있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및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쇼핑 아케이드들이 즐비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한마디로 먹고 쓰고 즐기는 모든 것들이 한자리에 구비된 곳이다.우리도 세계적인 전시회를 만든다면 이제 참가자들의 여가 시간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코나의 노래 제목만은 아니다.셋째는 타이밍이다. 오늘의 시대를 표현하는 단어로 부카(VUCA)가 있다. 환경의 변동(Volatility)이 심하고, 불확실(Uncertainty)하며 복잡(Complexity)하고 모호(Ambiguity)하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상수인 시대에 역설적으로 확실성을 구하는 게 인간이다.최소한 올 한 해 이런 기술들이 이렇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1월에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1월 9일 열리는 CES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맹자에 보면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있다.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 언제보다는 어디가 중요하고, 어디보단 사람들의 화합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사람들의 화합이란 것은 사람들 생각의 융합과 공유이다.'경북형 CES'의 성공을 바란다면 어디와 시기도 고려돼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추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시대 정신에 맞는 제품이나 산업이 아닌 생각, 기술의 융합과 공유에 기반한 전시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9-12-29 15:42:49

서창호 DGB대구은행 본점PB센터 PB팀장

[금융칼럼]생활속의 작은 변화에서 투자의 답을 찾아보길

"아마존에 좀 더 일찍 투자하지 않은 것이 어리석었다."'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이 올해 자신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종회를 앞두고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미국 경제전문지가 발표한 세계 부자 3위에 오른 위대한 투자자조차도 이렇게 투자에서 후회를 한다. 주변 변화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좋은 투자처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좋은 투자처를 찾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쉬운 방법은 우리 생활 주변 변화를 눈여겨 보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면 성공 확률을 상당히 높일 수 있다. 많은 투자자가 장기투자를 하면서도 실패를 하는 이유는 시대적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투자처에 오랜 기간 묻어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반대로 우리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변화하는 산업에 투자한다면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투자수익률도 좋은 쪽으로 바뀌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우리 주변 변화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지금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투자처의 예를 들어보면 몇 년 전부터 아파트 주차장에 하나둘씩 늘어나는 전기차 충전소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봐도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전기차가 자주 눈에 띈다. 심각해지고 있는 대기오염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전기차가 대중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실제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2021년 이산화탄소 배출규제에 앞서 최근 전기차를 대거 출시 중이고, 2019년 전기차 판매량도 전년 대비 40% 수준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전기차 시장과 함깨 2차전지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그러고 보면 내 주변의 변화가 사실은 세계적인 추세인 경우가 많다. 전기차나 2차전지 뿐만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5G 통신 서비스, OLED 가전제품 등 우리 생활 속에서 변화하고 앞으로 성장하는 산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요즘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면 생활 주변 변화 속에서 답을 찾아보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향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투자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좋은 투자처를 찾았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투자를 시작하자.투자방법은 직접 주식을 살 수도 있지만 전문가와 상담한 뒤 업종별 ETF(상장지수펀드)를 활용해 소액으로 여러 종목에 분산해 투자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 변화를 살피고 좋은 투자처에 적절히 분산하고 적립식으로 장기투자한다면 경기불황의 악조건에서도 성공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2019-12-29 14:26:26

비단에 담채, 26.8×17.2㎝, 간송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조영석(1686~1761) '노승헐각'

관아재 조영석이 주변에서 찾은 그림거리 중 스님을 그린 그림이다. 왼쪽 위에 '관아재 사(觀我齋寫)'라고 쓰고 백문방인 '관아재'를 찍었다. 노스님이 나무 둥치와 지팡이에 기대 다리쉼을 하고 있는 광경이어서 '노승헐각(老僧歇脚)'으로 제목이 붙여졌다. 눈 꼬리는 처졌지만 눈빛은 또렷한 삼각형 눈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의 스님은 수염이 무척 성글다. 입이 합죽해 보이는 것은 이가 좀 빠졌기 때문인 듯. 길쭉한 모자 안으로는 동그란 민머리가 나지막하다. 목에는 굵은 염주를 둘렀고 짚신이나 미투리일 초혜(草鞋)를 신었다. 메었던 바랑을 풀 섶에 툭 던지고 소나무 뿌리에 걸터앉으며 "휴우~"라고 하셨을 것처럼 생생하다.스님의 이목구비와 차림새, 앉은 자세가 자연스러워 한참을 모델로 모셔두고 그렸을 것이다. 조영석은 굵은 선과 가는 선, 짙은 선과 옅은 선, 속도감 있는 선과 침착한 선 등 필선 자체를 주된 조형요소로 활용해 함축미 있게 대상의 특징을 묘사했고, 옅은 먹과 은은한 담채로 노스님의 모습을 친근하면서도 실감나게 나타냈다. 조영석이 선의 표현력을 통해 보여준 격조 높은 화면은 화가가 자신의 눈으로 본 일상의 회화화가 감상화의 한 분야로 진정하게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려준다.조영석은 이렇게 실물을 직접 대하고 그리는 '즉물사진(卽物寫眞)'을 해야 살아있는 그림인 '활화(活畵)'가 된다고 했다. 그림 교과서인 화보(畵譜)나 옛 그림에 나오는 정형(定型)에 의지해 공인된 레퍼토리를 반복했던 앞 시대 화가들과 다른 태도였다. 고상한 고급 교양인 감상 회화는 오랜 미술의 역사 속에서 다듬어지며 축적된 고전을 모범으로 삼는 상고(尙古)주의의 틀 안에 있었다. 조영석은 그런 고정 관념을 허물어 감상화의 영역에 주변의 삶을 들여놓았고, 이러한 조영석의 생각과 실천으로 인해 조선후기 회화는 '풍속화'라는 새로운 영토를 발견할 수 있었다.조선후기 풍속화에는 양반도 나오고 농공상(農工商)의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을 비롯해 기생과 스님 등 특수한 직업과 신분의 인물도 나온다. 스님은 그림에 일찍이 나타났다. 인평대군 이요(1622-1658)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스님 그림도 있고 윤두서(1668-1715)도 스님을 그렸다.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등 화원화가들도 스님을 그렸다. 신윤복은 비구니 스님과 동자승을 출연시키기도 했지만 풍속화에서 스님은 대부분 노승이다. 왜 노승일까? 혈족의 인연을 끊고 세상을 등지고 출가한 스님의 나이든 모습이 누구나 늙고 결국은 죽는다는 분명한 진실을 더 확실히 일깨워주기 때문인 것 같다. 미술사 연구자

2019-12-29 06:30:00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구의원이 알게 해준 일

가까이 지내는 후배 한 명이 정치를 하겠다며, 구의원 선거에 나간다고 했다. 걱정이 돼서 주변 지인들에게 후배가 선거에 나가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적지 않은 지인들이 구의원은 하는 일도 없는데, 재정이나 축을 내는 불필요한 제도가 아니냐고 반문을 했다. 필자도 당시에 적절한 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구의원, 시의원이 하는 일과 무관하게 지냈다. 대부분 사람들은 국회의원은 돼야 나랏일을 할 수 있지, 지역의 구와 시의 일은 공무원들이 알아서 한다고 생각을 한다.후배가 의원이 되고 나서야 구의원이 얼마나 많은 일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뛰고 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구민들의 민원이 끊임없이 많았고, 그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일반사람들이 그렇게 구의원을 통해서 민원을 많이 넣는지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민원의 구체적인 불편을 파악해서, 직접적으로 뛰지 못하는 공무원을 통해 그 일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그리고 선거 때 지역구에 필요한 공약을 내세웠던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국회의원들도 지역의 민원과 공약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는 걸까 둘러보게 되었다.지역의 한 아파트 건설업체로 인해,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작은 종교단체가 많은 피해를 보았다. 아파트 완공될 때까지 근 3년 동안 입은 피해는 참으로 적지 않았다. 그런데 해당 건설회사 법무이사는 우리의 하소연 정도는 가볍게 취급을 했다. 결국 그들과 대응을 하다, 건강까지 다쳐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 때서야 후배가 하던 민원해결이 생각났다. 구의원을 찾아 어려움을 호소하자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참으로 완강했던 그 기업은 구의원이 나서도 계속 시간을 끌다, 준공검사가 끝나고 나서 뒤늦게 자기들 뜻대로 일을 해결했다.이런 일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개인들이 힘 있는 기업의 폭주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 TV방송에서도 현장을 찾아와서 취재했지만, 그 기업은 그 정도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며 무시하니, 대화가 되지 않았다. 공무원은 민원을 해결하는 시늉만 하고, 의원들은 시민의 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는 듯 했다. 어려운 일의 해결이 필요할 때, 구의원에게 손을 내밀어라, 대구 시 일이라면 시의원에게 도움 받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이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뛸 때, 국민들은 그들의 힘으로 나라가 잘 굴러갈 것이라는 신뢰를 보내게 될 것이다. 방송을 타고 연일 보도되는 국회의원들의 투쟁도 당파 싸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신뢰를 받게 되길 바란다. 대의민주주의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요구에 귀 기울일 때, 존재의 의미도 커지는 것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29 05:30:00

이광수 '무정'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근대문학을 읽다'를 마치면서

대학생들에게 이광수라는 이름을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같다. "친일파잖아요."물론 그들 대답대로다. 조선 청년들이 일본을 위한 전쟁에 끌려 나가 죽음을 맞던 일제말기, 이광수는 학도병 출전을 독려하는 연설을 했다.그렇다고 이광수가 친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십대의 이광수는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조선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힘썼다. 그는 근대조선을 향한 열망 속에서 우리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을 썼다.최남선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제말기 조선 청년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일본이 중국 땅에 세운 만주국을 '왕도낙토의 실험장'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역시 젊은 시절 이광수와 함께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조선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힘썼다. 그리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써서 우리 근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한국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두 사람 모두 친일의 길을 걸은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주요한, 김동인을 비롯한 수많은 근대문학자 역시 이광수나 최남선처럼 친일의 길을 걸었다. 대다수의 작가들이 일본제국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그들의 신념도 허물어뜨렸다.그래서 근대문학의 흐름을 찬찬히 보게 되면 '힘'과 '이익'과 '세월' 앞에서 무너져간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이육사나 현진건처럼 칼 날 같은 현실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들의 삶이 더 빛나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근대문학이란 결국 근대라는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긴 세월 동안 이어진 식민지의 굴욕적 삶 속에서 살아간 인간들의 이야기가 거기 들어있다.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저항했고, 누군가는 투항했다. 저항한 사람은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고, 투항한 사람은 인간의 약함과 시대의 잔혹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우리가 근대문학을 읽으면서 실제로 그런 깨달음을 얻는 것은 쉽지가 않다. 작가들이 쓴 문학작품과 그들의 삶을 일제치하라는 시대 속에서 퍼즐을 맞추듯 복원해나가야 한다. 시대에 대한 세밀한 조사와 편견 없는 시선으로 문학 속 인물과 작가의 삶을 어렵게 따라가다 보면 그 나약함, 혹은 그 강함의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그리고 어느 순간 그 이해라는 것이 근대라는 한 시대에 특정된 인간의 삶과 문학을 넘어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로 향하게 된다. 문학이 가지는 자기 치유의 힘이다.근대문학만이 아니라 모든 문학이 지닌 힘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근대문학 읽기란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해는 '연민'을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다.5년 간에 걸친 '근대문학 읽기'를 통해서 내가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이 '연민'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 칼럼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2019-12-28 06:30:00

[내가 읽은 책]가족 뒷모습/최인호/샘터/2009

오래전 재미있게 읽었던 특이한 연재소설이라 쉽게 손이 갔다. 많은 책을 썼고,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알려져 있어 설명이 필요 없는 인기 작가 최인호의 글이다."김수영의 시 구절처럼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가정의 방에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았던 나의 아내여. 그리고 나를 아빠라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유순한 가족,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서부터 왔는가. 그리고 또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17쪽)이 책은 월간 '샘터'에 35년 동안 연재했던 소설 '가족' 중에서 2000년 이후에 쓴 마지막 부분을 묶은 책이다. '가족'이야말로 고갈되지 않는 최고의 소재라 생각하여 시작했으며, 서른 청년기부터 투병으로 중단한 노년기까지의 이야기를 연재했는데, 이 글은 가장 후반부에 쓴 것이다. 가족들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도 하는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글 중에서 우정에 대해 재미있게 쓴 부분이 있다.젊은 시절에 생각했던 우정에 대한 생각들이 그릇된 편견이었음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친구가 많고 아내는 친구가 많지 않지만 아내 친구가 한결같고 더 진실하다는 거다. 아내는 죽은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하기도 한단다.여성들의 우정에 대해 부러워했다. 참된 우정은 여성들이 더 깊다는 것이다.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해, 남자에게는 충실한 세 친구가 있으며 하나는 함께 늙어가는 조강지처이고 나머지 둘은 함께 늙어가는 개 그리고 현금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3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상도'에 관해서도 썼다.기업인들이나 경제인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들의 사표로 삼을 만한 위대한 상인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딱 맞는 인물을 못 찾아 고심하다 우연히 열 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만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 어렵게 자료를 구해 대하소설 '상도'를 썼다고 했다.작가는 소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의 음성을 통역하거나 번역하는 일이라고 적었다. 고대 로마 희극작가 테렌티우스의 말을 빌려 모든 책에는 책의 운명이 있다고 한다.소소한 일상까지 드러내는 글이라 그런지 참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언제부터인가 청력이 떨어졌는데 두렵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장 콕토의 시 "내 귀는 소라 껍데기. 바닷소리를 그리워한다."를 인용해 바닷소리를 그리워하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거라며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썼다.투병생활에 대해서도 써놓았다.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작가가 연재를 끝내는 마지막 회에서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고 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나는 이제 내 인생의 주인공인 오직 나만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 단 한 사람의 독자면 충분하다. 그 독자로부터 인정받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292쪽)작가의 고뇌가 느껴지는 글이다. 가족이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를 묻던 작가는 머리말에서 "'가족'이여, 사랑이여!"라고 불렀다. 가족의 다른 이름은 사랑인가 보다. 신복순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2-28 06:30:00

송석화 메시지 캠프 대표

[광장] 정치인 이미지 전쟁

정치인의 이미지, 선거 연설, TV 토론 등에 대해 전문가적인 처방을 내리는 일이 업(業)이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나왔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당선될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결과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그렇기에 정치인에게는 내부의 시각이 아닌 유권자의 시각에서 이미지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마케팅의 혁신가인 루이스 체스킨(Louis Cheskin)은 사람들이 제품의 포장에서 받은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제품 자체로 전이시킨다고 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하지만 직접 학교를 찾거나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미디어에 자주 노출했고, 그 결과 교육 문제를 고심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됐다.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 진정성이 없는 이미지 전략은 위선이고 기만이다.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주디 버군(Judee Burgoon)에 따르면 사람들은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는 일정한 기대치를 갖고 있다. 또 우리 스스로도 대중이 나를 이런 사람으로 봐줬으면 하고 소망하는 모습이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가가 되겠는가. 몸에 맞지 않는 이미지 변신은 오히려 패러디의 소재가 되고 희화화될 뿐이다. 성공적인 이미지 전략은 후보자의 비전·장점과 유권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 간에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필자가 정치인들을 직접 컨설팅하면서 지켜본 결과, 이미지에 대한 후보자들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이를 기준으로 5가지 유형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먼저, 정치 영역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이미지 전략을 거부하는 '순진형'이다. 이들에게 이미지란 겉치장, 즉 나쁜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진실된 태도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작용한다. 하지만 이미지 전략은 실체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표현하기 위함이므로 후보자 본인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이미지 전략을 구사하기는 하나, 후보자의 장점을 부각하거나 단점을 보완하지 못하는 '미완성형'이다. 본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은 채 이미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만 앞선 경우로,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망우보뢰(亡牛補牢)형'은 이미지 전환의 시기를 놓쳐서 그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다. 포지셔닝은 적합했으나 실행 시기가 늦었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마음속에는 기존 이미지가 이미 각인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넷째, 후보자의 시각적 이미지와 언어적 메시지가 불일치하는 '언밸런스형'이다. 가는 안경테 안경을 쓰고 옅은 미소를 띤 사진으로 전문적이라는 인상을 주고자 한 반면에 논조는 친근함을 강조한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센스형'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리더의 덕목과 시대상을 반영한 이미지를 정립한 가장 바람직한 유형이다.선거는 우리 사회의 의식과 문화 수준이 표현되는 장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집합적 의식이 표면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선거 규모에 따라 정치인의 이미지가 가지는 중요도는 다르지만 눈앞에 있는 참모, 열혈 지지자, 지역 유지만 바라보느라 자칫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에는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공약을 내놓는 것만큼이나 그 공약을 제대로 실천할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2019-12-27 18:54:46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시장 무시 규제 일변도 부동산 대책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뀐 교육정책법·제도 무시한 채 힘으로 밀어붙여무능·위선·비도덕적 정부 비난 대두2019년 기해년 한 해를 보내면서 현 정부에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헌법 정신과 법 절차가 잘 지켜지고 있는가?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은 헌법적 가치인 시장경제의 기본 정신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충분하게 상환 능력이 있는데 고가 주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급을 늘리는 대책 없이 수요만 잡겠다는 것은 반시장적이고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 더구나 경제부총리 말 한마디로 갑자기 대출을 금지한다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이른바 '조국 사태'로 촉발된 교육 공정성 강화에 대한 대통령 지시에 교육부는 지난 11월 7일 2025년부터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관련된 사립학교 법인들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끝내 폐지를 강행할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국회 논의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시행령을 하나 바꿔 서둘러 추진한다는 것은 '행정 독재'나 다름없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정치적 중립성과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연구가 이뤄진 다음에 진행돼야 한다. 현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국가교육회의가 이런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가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청와대는 정무적 판단과 결정을 일일이 검찰의 허락을 받고 일하는 기관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검찰이 조 전 장관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 대해 청와대가 사실상 검찰을 압박하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명백한 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한편, 정부의 경제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 경제는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실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선 "한국 경제가 궤도를 상당히 이탈해 있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다"고 했다. 1%대 경제성장률, 13개월째 수출 감소세, 40대와 제조업 고용률 추락 등 경제가 침체된 상황을 두고 '궤도 이탈'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떠한가?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은 안정됐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군사 작전을 펼치듯 규제 일변도의 18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국리서치·KBS의 여론조사(12월 5, 6일) 결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은 27%에 불과했다. 경제 현실을 놓고 대통령과 실무 부처가 따로 노는데 어떻게 국민들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믿겠는가?여러 사례들을 통해 확인되었듯 문재인 정부는 유독 올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 레일과도 같은 '법치와 제도적 자제'를 무시한 채 목적을 위해 수단이나 절차를 가볍게 여기며 중요 현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정과 자유의 촛불 민주주의로 탄생했다는 현 정부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심지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도덕적으로 파탄이 난 정부라는 비난마저 대두되고 있다.한국리서치의 12월 정기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3명 정도(36%)만이 우리나라 국정 방향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임기 중반을 넘긴 정부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헌법 정신과 법 절차를 준수하고 실력을 쌓아 민생 경제를 살리고 정직하게 국정에 임하고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2019-12-26 11:30:51

이상철 자유기고가

[기고] 환동해 그랜드 디자인으로!

지중해는 어제의 역사, 대서양은 현재의 역사, 태평양은 미래의 역사라고 말했던가? 세계 바다 면적의 반을 차지하며 '미래의 바다'라 불리는 태평양에 대한 각국의 경쟁은 치열하다. 특히 동북아지역은 냉전시대에는 미·소 간 대립이, 지금은 패권을 두고 미·중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남·북한의 긴장 및 러시아, 일본 등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다.세계 경제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을 지나 동북아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세계 경제규모의 20% 이상을 차지한다는 한국·중국·일본은 그 규모나 비중에 비해 경제공동체나 산업동맹 부문에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한·중·일뿐만 아니라 북한, 러시아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지역이 있다. 바로 '환동해 벨트'다.환동해는 남·북한과 서일본, 중국 동북부, 극동 러시아가 둘러싸고 있는 동해권역을 말하는데 역사상 최대 영토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도 직접적인 환동해 진출로가 없기에 두만강과 북한 나선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특별하다. 또, 역사적으로 부동항을 갖고 싶어 했던 러시아의 극동지방 항만개발과 환동해 진출 욕구는 너무나도 당연시된다. 일본도 2011년 동북 대지진 이후 서일본 지역 항만 개발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북한도 기존의 나선지역 이외에 최근 원산항을 개발하면서 물류 및 해상관광 중심지로서 환동해를 활용하려는 듯하다.환동해를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바로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 빙하의 해빙이다. 해빙으로 북극 항로가 생길 경우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에 비해 거리와 시간이 단축돼 북극 항로는 아시아·유럽 항로의 주 항로가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현재 세계 항만 순위 5, 6위권인 부산항뿐만 아니라 포항 영일만항, 울산항 등의 물동량이 대폭 늘어나고 북한지역 항만들의 전략적 가치도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최근 포항-블라디보스토크 간 크루즈 시범운항이 있었다. 이는 뱃길로 북방 해양관광 개척이라는 첫 단추를 끼운 것으로 환동해를 냉전이 아닌 평화와 상생의 바다로 바꾸자는 화두를 던진 셈이다.또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영일만대교가 세계 최고 수준의 랜드마크로 건설될 경우 환동해 경제·관광플랫폼 선점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영일만항 크루즈에서 글로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투어 콘서트가 열리거나 영일만대교를 배경으로 영화 '미션임파서블'이나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촬영된다면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지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관광지를 가지는 셈이 된다. 또한 향후 울릉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독도의 영유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들이 만들어진다면 환동해의 경제패권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역사적으로 발해와 신라, 일본이 활발하게 교류했던 공간이기도 한 환동해! 제대로 크게 한번 '그랜드 디자인'을 해보자. 자본과 인력이 모여들고 일자리가 넘쳐나는 위대한 환동해 경제권역을 만들어 보자.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그 누군가가 말했던가!미래의 먹거리와 일자리가 걸린 기회의 바다! 환동해를 '그랜드 디자인'하자!

2019-12-26 11:13:47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내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

누구나 어린 시절 일기를 쓴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 숙제란 의무감으로 혹은 본인이 원해서 매일 매일을 기록하는 글을 쓰며 학창시절을 지내왔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일기 쓰는 것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일이 되었고, 필자 역시 성인이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그렇게 글쓰기와 한참을 멀어져 지내다가 지난 3개월간 꾸준히 글을 쓸 일이 생겼다. 일주일에 1번이지만 매일춘추에 글을 싣게 된 것이다. 글로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것은 어떻게 보면 설레는 일이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이 기록되어 남겨지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그 글을 다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은 글쓰기가 주는 독특하고 큰 기쁨이다.하지만, 처음 원고를 의뢰받고 글쓰기를 준비할 때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내가 과연 글이라는 것을 쓸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꾸준히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주변의 고마운 분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필자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이번 글쓰기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3개월간 글을 쓰며 달라진 점이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나에게 글이라는 자유로운 또 다른 표현 수단이 생긴 것이다. 이제까지 필자는 감정이나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했었고, 그것이 익숙하고 편했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고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 역시 그러하다. 말 한마디 보다 하나의 선율이 효과적일 때가 있지만 반대로 음악보다 한 줄의 글이 효과적일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이라는 것을 통해 나의 생각을 음악 외에 다른 표현 수단으로써 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필자는 큰 자유로움을 느낀다.글은 기록으로 남겨진다. 내 글이 어딘가에 남아 있고 시간이 지난 후 그 글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기록되어진 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해주는 소통창구이다. 과거의 생각을 읽고 지금은 그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어 글이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성질이 있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생각을 공유한다.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일상들을 기록하게 된다면 그것은 과거를 현재와 비교하며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나침반이 되는 것이다.이 글은 매일춘추의 마지막 원고이지만 필자는 이번 경험을 계기로 계속 글쓰기를 이어 나갈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더 많은 나를 표현하며 살아가려 한다. 앞으로의 글쓰기 역시 기록 되어져 과거의 나 자신과 소통하며 방향을 잃지 않는 한명의 예술가로 성장하려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고생해주신 주변의 분들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26 11:11:49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벽을 넘는 담쟁이들

'벽이라고 느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중에서) 삶에서 벽은 늘 있다. 그것이 권력의 벽이고 부당의 벽일 때, 앞선 누군가의 발걸음이 벽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보고 손짓할 때부터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다. 여기 스스로 담쟁이 잎이 된 여성들이 있다.1931년 5월 29일 새벽, 평양에서 가장 높은 을밀대 위에 한 여성이 올라간다. 평원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 농성자이자 1인 시위를 한 사람. 조선인이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불합리한 처우에 반기를 들며 을밀대에 올라가 죽을 각오로 농성을 벌였다. 31살의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의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85호기 크레인의 김진숙 당시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309일간 고공농성을 통해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아픈 삶을 세상에 알렸다. 21살에 입사해 용접공으로 일하다 23살에 해고된 그녀는 세 번이나 대공분실에 끌려가고 수배 생활과 감옥 생활을 반복했다. '176억원의 배당금 잔치를 벌이며 노동자들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한진에 맞서 불나방처럼 35m 크레인에 올랐다'는 그녀를 위해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줄을 이었다.2019년 크리스마스,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 한 여성이 있다. 178일째 고공농성 중인 박문진. 부당해고에 맞서 13년 동안 싸워온 그녀는 자신이 몸담았고 자신을 해고했던 영남의료원의 가장 높은 곳, 지상에서 70m나 되는 옥상에서 여름 무더위와 가을 태풍과 겨울 혹한에 맞서고 있다.지난 23일부터 35m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오랫동안 흔들려서 잘 걷지 못했던 박문진 씨의 친구 김진숙 씨가 부산에서부터 100㎞를 걸어서 그녀를 만나러 대구로 향했다는 소식이다. 함께 산티아고길을 걷겠다는 약속을 가슴에 품으며. 그 뒤를 첫 번째 담쟁이 잎이었던 강주룡이 따른다. 수천 개의 담쟁이들이 대구로 향하고 있다.작가

2019-12-25 18:30:00

김은아(그림책 칼럼니스트)

[북돋움] 마크 트웨인 없는 마크 트웨인

해는 서편 먼 산 너머/ 잠든 강물 끝에 쉬다 가고/ 새는 강 너머 어딘가 쉼 없이 흘러 흘러온 듯/ 강물에 실려 알게 된 건 내가 닿을 곳이 아니라/ 하루는 그저 이렇게 간다는 것/ 흔들며 손짓하며 음~ 뒤돌아 보내며/ 그저 하루가 저물 뿐.가수 최백호 씨가 부른 '마크 트웨인'의 노랫말이다. 5인조 밴드인 '신나는 섬'의 앨범 '집으로'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가사 어디에도 마크 트웨인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제목이 왜 마크 트웨인이지?' 하는 궁금함이 생겼다.허클베리 핀의 뗏목처럼 인생을 부유하다 어른이 된 마크가 어린 시절의 마크에게 들려주는 노래라고 한다. 작곡과 작사를 한 최성은 씨는 한 소년이 집을 떠나 방황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성장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기 위해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는데 소설의 내용보다 마크 트웨인이란 이름이 주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고 했다. '마크 트웨인'은 배가 지나가기에 안전한 수심, 정확히 말하면 '두 길(fathom) 물 속'을 뜻하는 단어이다. 지금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은 뭐지? 나만의 마크 트웨인은 뭘까? 이 시기를 다 겪고 난 미래의 나 자신을 만나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저런 대화들이 '신나는 섬' 밴드 멤버들 사이에서 오갔고 대선배인 최백호 씨에게 노래를 부탁했다는 사연을 알고 나서야 노랫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이해되었다.마크 트웨인(1835~1910본명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은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미국의 현대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란 단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가 갖는 위치는 대단하다.미국 미주리주(州)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죽은 열한 살 때부터 인쇄소 견습공으로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 20대에는 미시시피강의 수로 안내인으로 일하면서 흑인들의 노래와 사투리, 배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 관심을 가졌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은 뱃사람으로 살던 당시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그 외에 신문기자, 사업 투자자, 광산 개발자로서 일했고 발명에도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았다. '마크 트웨인의 관찰과 위트'(맥스미디어 펴냄)에는 스크랩북 발명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자신을 칭찬하는 글을 열심히 스크랩했던 그는 손으로 일일이 풀칠하는 것이 귀찮았기에 접착력이 있는 스크랩북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는 '마크 트웨인의 특허 스크랩북'이라는 이름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판매되었을 정도로 꽤 큰 성공을 거뒀다.하지만 그런 운이 자주 따르지는 않았다. 매체 기고와 작품 활동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출판사 경영과 주식 투자, 발명품 개발 실패로 빚더미에 앉을 때가 많았다. 첫아이였던 아들은 생후 22개월 만에 죽었고 인생 후반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의 자서전은 막내딸 진 클레멘스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으로 끝을 맺는다.2년 전 7월, 미국과 캐나다를 육로로 오가는 여행을 하던 중 마크 트웨인이 살던 집이자 박물관(The Mark Twain House &Museum)에 들르게 됐다.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주의 주도인 하트포드에 위치한 3층짜리 집은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 여행가이자 모험가로 살았던 인간 마크 트웨인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당구대가 놓인 그의 작업실, 따뜻하게 꾸며진 아내와 딸들의 방, 실내로 들인 정원은 그가 얼마나 낭만적인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마크 트웨인의 삶은 그야말로 모험의 연속이었다. 모험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에도 위트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했던 그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스스로 용감하다고 믿으면 용감해진다. 중요한 것은 이것 하나다."올 한 해 나는 어떤 모험을 했던가? 새해에는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한 해의 끝자락에서 '모험'이라는 두 글자를 꾹꾹 눌러 써본다.

2019-12-25 18:00:00

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전영평의 귀촌한담] 김치 먹고 생강차 마시며

동지 팥죽에 백김치와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 겨울로 가는 길이 행복하다. 동지가 지나면 밤보다 낮이 길어질 뿐 아니라 김장김치의 맛도 깊어지니 그 또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귀촌한 지 어언 오 년째, 김장은 너무 일찍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게 나의 발견이다. 몇 번이나 된서리를 맞은 배추가 더 맛나기 때문이다.우연히 알게 된 이 사실은 겨울 배추에 맛들인 닭들에게서 배운 지혜이다. 백 포기도 넘는 배추 한 판을 심어 놓고 필요한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겨울 내내 밭에 놔둬 보았다. 배추는 생각보다 생존력이 강해서 잘 덮어 놓으면 봄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월동하는 닭에게 배추를 주면 배춧속부터 먼저 파 먹는 걸 보고는 나도 겨우내 배추 겉절이, 배추 전을 심심찮게 해먹는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그 맛도 깊어지고 달콤해진다.나만 아는 지혜인 양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배추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채소지만, 우리처럼 다양하게 즐겨 먹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동의보감에 보면 숭채(배추)는 성질이 서늘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소화를 촉진시키지만, 많이 먹으면 냉병이 생기기에 그것을 생강으로 푼다고 되어 있다. 배추에 대한 허준의 담백한 평가이다. 이처럼 소박한 채소에 갖은 양념과 동물성 재료까지 사용하여 맛과 영양이 풍부한 김장김치를 창조해 온 우리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들께 노벨식품상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김장 메이커들께 한 가지 건의 드린다면 내년부터는 물이 덜 빠진 11월 물렁 배추보다는 서리 견딘 12월 꼬들 배추로 김장을 해보시는 게 어떠실지요. 지금도 우리 밭에는 배추 수십 포기가 겨울을 나고 있다. 한 달간 집을 비운 동안 옆집 할머니가 잘 덮어 주신 덕분이다. 게다가 김장김치 주신다고 내려오라 하신다. 참 행복하다. 올겨울부터는 김장김치 맛나게 먹은 후에 꼭 생강차를 만들어 가족·이웃과 함께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보고자 한다. 다들 김치와 생강차 잊지 마시고 연말연시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한다.

2019-12-25 18:00:00

박영석 대구문화재단 대표

[기고 ] 도지사가 말한 '시․도 통합' 본격 논의 필요

이철우 경북지사가 최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구경북 통합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2021년까지 통합을 완료하고 2022년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단체장을 새로 뽑아야 한다는 일정까지 제시했다. 현직에 있는 도지사가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하며 시·도 통합을 주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결론적으로 이철우 경북지사의 주장에 적극 찬성이며 앞으로 시·도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고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원래부터 대구경북은 하나였다. 대구는 경북의 중심이었고 경북은 대구를 품어 안으면서 우리나라 3대 도시로 키우고 발전시켰다. 결국 대구는 경북을 배경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고 경북 또한 대구를 중심축으로 하여 인구 500만 명이 넘는 '웅도 경북'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온 것이 지난날의 모습이었다. 대구경북이 하나였던 '웅도 경북'은 정치, 경제, 산업, 문화 모든 면에서 전국 어느 시·도보다도 우위의 경쟁력과 힘을 지녔다. 인구와 면적은 물론 인적, 물적 자원들은 타 시·도가 부러워할 정도로 넓고 크고 풍부한 편이었다.그러나 1981년 대구가 인천과 함께 직할시로 승격, 경상북도에서 분리되면서 경북의 위상은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경북은 급속한 농어촌 인구 감소 추세와 함께 구미, 포항 등 중추도시의 경제 여건 악화 등으로 이중, 삼중고를 겪으면서 도세 위축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시와 분리된 1980년대 초반 경북도는 인구가 330만 명을 넘었으나 300만 명이 무너진 지 이미 오래며 이제는 260만 명 선도 위협받고 있다.대구 또한 직할시와 광역시로 거듭나면서 한동안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갔으나 2000년대 들면서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되면서 전국 제3의 도시 위상을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직할시 승격 20여 년 만에 인천에 추월당했다. 지금 인천은 인구 3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어 대구와의 격차는 오히려 갈수록 더 커져만 가고 있다. 다만 행정기관 코드가 대구가 인천보다 앞서 각종 정부 공식 발표 자료 및 문서와 공공기관 통계 등에서 서울, 부산에 이어 대구가 인천보다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전문가들은 인구 천만 규모의 세계적인 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규모나 볼륨을 지금보다 최대한 더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구와 경북은 인구가 250만 명 정도씩 규모다. 이런 규모로 대구경북이 각각 세계적인 도시들과 따로 경쟁하고 자생력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철우 경북지사가 최근 2021년까지 대구경북이 통합을 완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나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가 교환근무를 하는 등 시·도 상생협력과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이철우 경북지사가 말한 대로 2021년까지 대구경북이 새롭게 통합된다면 분리되기 이전보다 몇 배로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대구경북도'가 되든 '경북대구시'가 되든 하나가 된다면 통합 대구경북의 위상은 금세 전국 시·도 가운데 최상부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이것은 좋은 본보기가 되어 전국의 다른 광역시와 도의 통합으로도 이어지게 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후련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다. 이철우 경북지사의 시·도 통합 제안을 시작으로 대구경북이 머리를 맞대면서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고 구체화해 나가자!

2019-12-25 13:19:55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지난주 매일춘추에서 예술의 가치에 대해 개인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가치'의 사전적 뜻은 '사물이 지니고 있는 쓸모'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즉 개인에 따라 쓸모, 중요성, 관심, 진, 선, 미는 다르기 때문에 가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만 원짜리가 천 원짜리보다 가치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적 가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날 똑같은 공연을 보고도 관객에 따라 공연에 대해 느끼는 가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지인의 소개로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예술의 가치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게 되었는데, 그 큐레이터는 예술의 가치는 돈과 비례한다고 했다. 큐레이터 다운 말이었지만 나로서는 불쾌한 언사였다. "피카소의 작품이 천억이 넘는 금액에 거래되기 전까지는 그만한 가치가 없었나요?" "그럼, 피카소의 작품이 큰 금액에 거래되기 전에 당신은 피카소를 알고 있었나요? 더 좋은 판단 기준이 있다면 제시해주세요." 더 좋은 판단 기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어떠한 답을 하게 되더라도 그건 또 다른 개인의 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모순에 빠진 나를 발견하고 얼른 입을 닫았다.예술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피카소의 그림이 초등학생이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보다 비싸므로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초등학생이 시력을 되찾고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 부모에게는 피카소의 그림보다 더 가치 있는 그림이 될 것이다. 즉 경험하는 개인에 따라 그 가치는 상대적일 수 있으나 일반화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그 부모의 가치판단이 있듯이 '나만의 기준'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일 뿐이다.그렇다면 예술가는? 일반화될 수 없는 대중의 가치기준을 쫓아야 하는 것일까? 뒤샹이 소변기를 뒤집을 때 예술은 더 이상 의미를 담는 그릇이 아닌 의미 그자체가 되었다. 대중이 소변기를 보고 무엇을 느끼든 상관하지 않았다. 뒤샹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 이 있듯이 나와 동시대에 사는 예술가들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어야 한다. 대중은 없다. 허니버터칩을 찾아 벌떼처럼 쫓아다니는 대중은 지금 어디 있는가? 더 이상 대중의 눈치만 보고 있기에는 우리에게 할 말이 많다. 나만의 언어로, 진정성 있는 나만의 의미로 무대를 만나길 기대한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25 13:18:03

영화 '캣츠' 스틸컷

[김중기의 필름통] 뮤지컬 영화화한 '캣츠', CG 이질감 극복 못해 아쉬워

뮤지컬 '캣츠'가 영화로 개봉했다.'캣츠'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음악에 화려한 춤과 분장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뮤지컬이다. 음악과 춤, 분장과 무대효과 등이 가장 뮤지컬다운 작품이다. 그러니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거기에 '레미제라블'(2012)로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톰 후퍼 감독의 연출이 아닌가.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이 영화, 그러나 이상하다. 뮤지컬과 똑같은 분장과 노래, 흡사한 설정이지만 낯선 이 이질감은 뭘까?영화 '캣츠'는 1년에 단 하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운명의 밤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뮤지컬을 그래도 옮겨온 설정이다. 뮤지컬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영화는 1930년대 런던을 그려내고 있다. 사자상으로 유명한 트라팔카 광장 등이 주 무대다.뮤지컬은 '캣츠'는 스토리 보다 퍼포먼스가 강조된 작품이다. '레미제라블'이나 '오페라의 유령'처럼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 극을 이해할 필요가 없이 인간을 의인화한 고양이들이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관람하면 된다.1년에 한번 열리는 젤리클 고양이들의 축제. 선지자 고양이가 새로운 삶을 부여받을 고양이를 선택하는 날. 바람둥이 고양이, 부자고양이 등이 자기소개에 여념이 없다. 늙은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나타나 무리와 어울리려고 하지만 거부당한다.그리고 악당 고양이가 나타나 선지자 고양이를 납치하지만 마법사 고양이가 되찾아온다. 선지자 고양이가 젤리클 고양이를 선발하려는 순간 그리자벨라가 나타나 '메모리'를 부른다. 그녀를 경계하던 고양이들은 그리자벨라를 받아들이고, 그녀는 올해 젤리클 고양이가 된다.이 스토리는 시인 T.S. 엘리엇의 우화를 따와 판타지로 재현한 것이다. 영화는 뮤지컬의 조연인 하얀 고양이 빅토리아를 주연으로 재해석했다. 낯선 곳에 온 빅토리아의 성장 스토리로 극을 가미한 것이다.'캣츠'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직접 느끼고 접하는 재미가 있었다. 쿵쾅거리는 무대의 역동성과 현장이 주는 긴장감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다. 거기에 객석에 준비된 터널로 고양이들이 깜짝 출현하면서 퍼포먼스의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다.그러나 영화는 그런 현장성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단조로운 무대 대신 다양한 공간에서 촬영해 극복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것 또한 뚜렷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영화는 관객을 얼마나 캐릭터에 공감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캣츠'의 고양이는 낯 설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배우에 CG를 입혀 전혀 호감가지 않은 기묘한 고양이들을 만들어낸 것이다.배우의 얼굴 아래로 몸에 CG를 입힌 털 쫄쫄이, 움직이는 꼬리와 위로 솟은 귀가 눈에 띈다. 뮤지컬의 분장과 흡사한 모습이지만, 스크린에서는 흉물스럽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마치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의 차장이 톰 행크스의 실제와 너무 닮아 혐오감을 준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른바 사람과 닮을수록 더 거부감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이 현실화한 것이다.노래와 춤, CG의 도움을 받아 구현된 생생한 고양이털의 질감 등 최신 기술을 동원해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의도가 엇박자를 냈다. 관객이 외피의 질감보다 이야기와 캐릭터에 호감에 더 큰 공감을 한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그래서 미국 개봉 후 새로 CG를 손을 봐 새 버전으로 내놓기도 했다.낯선 이질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마지막에 가서야 익숙해지지만 '메모리'란 명곡에 몰입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드림걸즈'의 제니퍼 허드슨과 최고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비롯해 세계적인 배우들이 함께 하면서 라인업은 풍성하다. 음악과 춤은 역시 수준급이라 뮤지컬 넘버만 놓고 보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영국 명배우 주디 덴치가 늙은 선지자 고양이로 출연했다. 그녀는 1981년 뮤지컬 초연에 그리자벨라 역으로 연기할 예정이었지만, 사고로 출연하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85세가 되어서야 '캣츠'에 출연하게 됐다. 영국 연극의 거성 이안 맥컬린이 극장 고양이 거스로 나온다. 109분. 12세 이상 관람가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12-25 13:16:30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김중기의 필름통] 새 영화… '천문', '고흐, 영원의 문에서', '와일드 라이프'

◆천문: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출연: 최민식, 한석규조선의 위대한 왕 세종(한석규 분)과 관노 출신 천재 과학자 장영실(최민식 분)의 인간관계에 포커스를 맞춘 팩션 사극. 세종의 눈에 띈 관노 장영실은 종3품에 오르며 백성을 위한 군신의 관계를 유지한다. 20년의 세월이 지난 세종 24년. 임금의 가마(안의)가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장영실은 문책을 당하고 궁 밖으로 내쳐진다. 영화는 20년의 세월을 오가면서 명나라와의 갈등, 그럼에도 백성을 향한 둘의 공통된 행보 등을 그려낸다. 세종은 장영실을 통해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간의를 만들게 하고, 태양과 달의 위치를 측정하는 혼천의를 만든다. 명나라가 반포한 역법이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장영실이 안의사건으로 자취를 감춘 이후의 이야기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132분. 12세 이상 관람가 ◆고흐, 영원의 문에서감독: 줄리안 슈나벨출연: 윌렘 데포, 오스카 아이삭'잠수종과 나비'로 제60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신작이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 살던 화가 고흐(윌렘 데포 분)는 운명의 친구 폴 고갱(오스카 아이삭 분)을 만난다. 하지만 고갱마저 자신을 떠나자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기 위해 몰두한다. 줄리안 슈나벨 감독은 화가 출신으로 '검은 피카소'로 불리던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삶을 그린 '바스키아'(1996)를 연출하기도 했다. 고흐를 그린 많은 영화가 있지만 이 영화는 화가가 그린 고흐라는 점이 색다른 점이다. 감독은 주연인 윌렘 데포에게 붓잡는 법 등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프랑스 아를에서부터 고흐가 죽은 날까지 외롭지만 눈부셨던 그의 날들을 기록으로 담아낸 영화다. 111분. 12세 이상 관람가 ◆와일드 라이프감독: 폴 다노출연: 캐리 멀리건, 제이크 질렌할1960년 척박한 미국 몬태나의 한 소년이 바라본 가족의 풍경을 조용하면서 가슴 찡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14살 소년 조(에드 옥슨볼드 분)가 부모와 이사를 온다. 아빠 제리(제이크 질렌할 분)는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산불 진화 작업을 하겠다며 위험한 곳으로 떠난다. 엄마 자넷(캐리 멀리건 분)은 그런 남편을 못마땅해 한다. 가장이 없이 모자만 남겨진 집. 갑작스러운 변화가 두렵고 낯선 조. 어느 날 엄마 이웃의 부자 남자와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더욱 아빠의 부재가 가슴 아프다. 과연 첫눈이 내리고, 아빠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미스 리틀 선샤인'과 '옥자'에 출연했던 배우 폴 다노의 감독 데뷔작이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됐고, 제36회 토리노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105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12-25 13:15:44

SBS 드라마 'VIP'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종영 'VIP' 예상 깨고 선전

종영한 SBS 드라마 'VIP'는 애초 이 정도의 기대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보란 듯이 15%를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화제성도 뜨거웠다. 도대체 이 작품의 무엇이 이런 결코 적지 않은 성취를 가능하게 했을까.◆별 기대가 없었던 작품, 그러나SBS 드라마 'VIP'는 방영 전까지만 해도 굉장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작품은 아니었다. 물론 장나라 같은 신뢰를 주는 배우에 대한 기대는 있었지만 작가와 감독 모두 첫 입봉작이라는 사실이 그랬다. 이 대본을 쓴 차해원 작가는 공모전에 당선된 후 첫 작품이고, 이정림 감독 역시 첫 연출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큰 기대를 가질 수는 없었다.이런 낮은 기대감 속에서도 첫 회 시청률이 6.8%(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건 꽤 선전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VIP'는 단 몇 회 만에 시청자들을 주인공 나정선(장나라 분)의 시선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문자 메시지 하나를 통해서였다. 같은 VIP 전담팀의 팀장인 남편 박성준(이상윤 분)이 팀내 내연녀를 뒀다는 메시지. 나정선은 그 후 팀원들을 하나하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고, 시청자들도 누가 내연녀일까 하는 궁금증에 빠져들었다.이런 궁금증은 결국 '불륜'이라는 소재가 가진 힘일 수 있었다. 그래서 관심은 증폭되었지만 그것만으로 'VIP'가 순항하기는 어려웠다. 여기서 'VIP'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불륜'이라는 소재에 사회적 함의를 담아 넣을 수 있는 우리네 사회의 돈으로 구분되는 계급구조의 현실이었다. 성운백화점의 VIP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고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전담팀의 일은 심지어 그들의 불륜까지 덮어주는 것이었다.부부이자 팀장과 팀원인 박성준과 나정선의 관계는 그래서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가 중첩되며 애매해진다. 자신들에게 벌어진 불륜은 사적인 관계로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VIP들의 불륜은 감춰주는 게 그들의 일이 된다. 불륜이란 소재가 자본화된 세상의 사회적 의미를 끄집어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게 된 것이다. 'VIP'는 이처럼 통속적일 수 있는 불륜이란 코드를 가져와 자본으로 서열화된 우리네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꺼내놓는다.◆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현실과 판타지'VIP'는 여기에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공감과 판타지를 그려 넣는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밀려나지 않는 나정선 같은 리더십을 가진 여성을 중심으로, 시크한 매력으로 전담팀의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에이스 이현아(이청아 분)라는 든든한 걸크러시 캐릭터와, 육아문제로 회사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만년 사원으로 살아가는 송미나(곽선영 분) 그리고 누구보다 동료로서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해주는 강지영(이진희 분) 같은 여성들을 포진시킨다.물론 이 드라마는 전면에 페미니즘적 관점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남성들의 세계와 여성들의 세계를 병치해 놓는다. 박성준과 그를 끌어주는 하재웅 부사장(박성근 분) 라인이나 배도일(장혁진 분)처럼 권력을 위해서는 뭐든 하고 심지어 성추행까지 일삼는 남성들의 세계가 그 라인문화에 의해 세워져 있다면, 나정선과 친구이지만 팀원인 이현아와 송미나, 강지영은 이 성운백화점에서 늘 한 걸음씩 밀려나 있지만 서로를 토닥이며 동지의식의 끈끈한 연대를 보여준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전담팀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지만 이들의 팀장이 박성준이라는 점은 우리네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담아낸다.물론 성차별적인 현실만을 드라마가 강조한 건 아니다. 거기에 바람직한 남성상의 판타지들을 대안적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드라마는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장관 아들이지만 신분을 속이고 건실하게 팀원으로 일하며 나정선을 때로는 위로해주기도 하는 마상우(신재하 분)나, 성추행 사건을 미투 폭로한 일로 사내에서 편견의 시선을 받는 이현아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바라봐주는 차진호(정준원 분) 그리고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을 뒤늦게 이해하고 아내 송미나를 돕기 위해 나서는 이병훈(이재원 분) 같은 남성들이 그들이다.◆두 개의 세계, 당신에게 진짜 소중한 사람은그래서 드라마는 두 개의 세계를 병치시킨다. 하나는 VIP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수직적 관계로 이뤄진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수직적 세계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서러움들을 서로 공감하며 보듬어주는 수평적 세계다. 박성준은 하재웅 부사장의 내연녀들과 차명계좌를 관리함으로써 이사로 승진하지만 그 수직적 세계가 그를 행복하게 해줄 지는 미지수다. 그는 자신의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부사장의 딸인 하유리(표예진 분)와 내연관계를 이어가지만, 갑자기 다쳐 쓰러진 아내 나정선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아내를 보살핀다. 수직적 세계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사랑과 성공이라는 판타지가 실상은 불륜이자 욕망이었다는 그를 통해 드러난다.반면 이 힘겨운 현실 속에서 이현아는 차진호와 드디어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고, 송미나는 남편 이병훈과 위기를 이겨내고 알콩달콩한 가정으로 돌아온다.'VIP'는 그래서 이 두 개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VIP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현실에서 우리가 갑이라 부르며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허물조차 감춰주던 저 VIP와, 그런 현실에서 돌아와 서로를 다독이는 진짜 VIP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우리는 종종 그걸 잊는다. 자본화된 사회가 주는 화려해보이기만 하는 저들의 겉모습에 눈이 멀어서.'VIP'는 첫 입봉작이라고 믿기 힘든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 묻어난 작품이다. 이렇게 불륜이라는 소재를 과감하게 가져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 후 거기서 확장해 사회적 함의까지 끄집어내는 대본이 그렇고, 대단히 섬세한 감정 표현을 인물들의 손짓 하나 대사 하나에도 집중하게 만든 연출이 그렇다.게다가 김준석 음악감독의 효과적인 배경음악은 드라마 매회 말미마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압축적이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연출과 더해져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장나라와 이청아, 곽선영 같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더해져 대본, 연출, 연기의 삼박자를 갖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애초 예상을 훌쩍 깨는 결코 적지 않은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대중문화평론가

2019-12-25 13:14:56

동진 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

초겨울 산사는 나목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 해 내내 풍성했던 푸른 풍경들이 허공 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흑백사진으로만 보인다. 허공 속에 남은 나무들의 선은 담백하다. 버릴 것을 다 버려서인지 가지들은 자신의 존재를 맑게 드러낸다. 새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텅 빈 곳 사이로 바람만 지나간다. 개울의 물소리와 달빛에 비친 낙화담은 더욱 차갑게 푸르다.빈 들녘들은 자신의 피부를 드러내고 봄의 생명을 싹 틔우기 위해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한 해를 살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삶을 살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지 않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않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본다.내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이기적으로 성내며 나누지 못했다. 가슴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고 슬프게 했던 소중한 인연들께 참회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도한다. 안락한 삶이 되게 칭찬하며 자비와 사랑을 나누는 이웃이 되길 염원한다.영겁의 세월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세월의 빠름은 달리는 말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다. 궁수가 활을 쏘아 놓고 즉시 달려가 붙잡는다면 이 사람은 굉장히 빠른 사람이다. 해와 달이 하늘을 달리는 속도는 그보다 더 빠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인간의 수명이다. 해와 달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므로 누구든지 게으르지 말고 불방일(不放逸)로 이 세상에 온 가치를 완수해야 한다.한 해를 돌아보며若人壽百歲(약인수백세) 不知大道義(부지대도의) 不如生一日(불여생일일) 學推佛法要(학추불법요)"어떤 사람이 백 년을 살더라도 진리를 모르고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진리를 알고 사는 삶이 훨씬 낫다"고 법구경에서 말한다.공자(孔子)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子曰 朝聞道 夕死可矣)고 했다.'세상 사람들은 눈멀었고 몇몇 사람만이 진리를 보네, 몇몇 새만이 그물을 벗어나듯 몇몇 사람만이 하늘 세계로 가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진리를 알 때 비로소 고통의 그물을 벗어날 수 있다.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대리석 덩어리를 그저 재료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돌 안에 갇힌 위대한 형태를 바라봤다.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그는 형상을 만들거나 다듬는 게 아니라 재료에서 모습을 찾아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냈다. 신라인들의 예술문화도 그러했다. 경주 남산의 수많은 석불, 석탑들이 그와 같이 온화하다. 지금의 정치, 경제, 노동, 사회 분야에서도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내고 정치가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좀 더 안락하고 행복한 제도를 제공해야 한다. 한 해를 반성하며 되돌아본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시간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또 새해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다짐과 목표를 세운다. 나 또한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게 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한 해의 감사와 새해의 희망을 발원한다. 우리네 삶도 불필요한 부분들을 덜어 내며 사는 것이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모습이다. 가족과 주변 이웃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새해는 더 큰 기쁨의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두 손을 모은다.

2019-12-25 1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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