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아르바이트생 비중이 매장 직원의 90%를 넘는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무인기계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대구시내 한 KFC 매장에 설치된 무인주문기인 디지털 키오스크 앞에서 한 고객이 주문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2020 세상 읽기] '없는' 일자리 '있는' 그림자 노동

셀프 주유소, 셀프 세차장, 셀프 계산대...직원을 만날 수도, 만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에서도 직원 대신 '터치스크린'이 소비자를 먼저 맞이한다. 주문도, 결제도, 뭐든지 직접 우리가 해야 한다. 로봇카페, 무인편의점, 무인정육점 등 사람이 없는 매장을 보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커피숍에서는 주문과 서빙은 물론이고 먹고 난 후, 테이블도 직접 치워야 하고 식당에서도 앱 주문이 확산돼 '이모'라 부르는 서빙 직원을 부를 필요도 없다. 이제 '직원'이라고 불렸던 그들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하던 일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일은 '고객'의 몫이 되고 있다. 우리는 돈도 받지 않고 일해 주는 '착한 소비자'가 되어 가는 듯하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말한 것처럼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하고 떠넘겨진 일을 해야만 하는 '그림자 노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가격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현실의 경제를 읽을 수 있다고 했던가!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DIY(Do It Yourself)라는 이름으로 새로 산 가구도 직접 조립해야만 하고, 소비자에게 전가된 배달비나 배송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품도 팔아야 한다. 자동화·무인화가 준 '셀프'라는 이름은 우리를 점점 더 바쁘게 하고 소비라는 행위를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하게 만든다.IT기술 발달과 자동화는 생활을 더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 삶은 더 팍팍해진 거 같다. 한 번의 전화로 콜센터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본인확인 단계부터 직접 키패드로 입력해야 하며 전화를 건 이유까지 직접 선택한 후에야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개인정보보호 프로그램 설치와 디지털 기기의 업그레이드도 직접 해야 하며, 비대면 거래를 위해서는 각종 인증 절차도 스스로 직접 거쳐야만 한다.저렴한 상품을 사기 위한 포털 검색은 일상이 되었고 구매부터 반품까지 직원들을 만날 수도 없고 전화 문의마저 힘들 때도 있다. 제품 결함 호소나 환불·교환도 이메일 문의가 기본이 되었으며 할인쿠폰을 받기 위한 제품 사용후기나 SNS 인증샷도 알고 보면 제품 홍보를 위한 노동행위가 되었다. 또, 소비자들이 가지는 정보들이 업로드되고 공유되면 될수록 포털이나 동영상공유서비스 기업들의 광고 수입은 올라가며, 멋진 사진이나 동영상 포스팅을 통해 '팔로워'나 '좋아요'를 얻어서 행복해 하는 그 순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관련 기업들의 가치는 높아져만 간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소비자나 이용자들은 최고의 직원이 되는 셈이다.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무인화 시스템이 보편화 될수록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단순 업무는 자동화나 플랫폼 등으로 대체되며, 기간제 일자리나 사내하청의 업무는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으로 둔갑될 지도 모른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을 더 늘어나게 만들 것이다. 또, 인력 채용에서도 기술의 진화는 지원자들에게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한다. 그래서 취업 전에도 많은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취업 후 '멀티맨'이 되기 위한 '스펙 쌓기' 압박은 가중되며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더 높은 '스펙'은 동료들의 일자리를 뺐어 가며 그 부작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증가될 우려가 있다.한편, IT기술 격차는 우리사회에 '디지털 래그'(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지는 현상)를 발생시킨다. 한 예로 KTX 모바일앱을 할 줄 알면 순방향을 타고, 할 줄 몰라 역에서 직접 예매하면 역방향이나 입석을 타야만 한다는 일부 노년층들의 하소연이 있다. '비대면서비스'의 확산은 분명 편리함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지만 고객이나 이용자의 디지털 학습의무나 그림자노동을 점점 증가시켰다. 또, 디지털 정보격차는 '디지털 문맹'을 확산시켜 금융사기 등의 피해 위험을 커지게 만들었다.그리고 요즘 임대료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힘들어 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해외 여행지나 도심 번화가에서만 볼 수 있었던 'Break Time' 표지판이 동네 식당가에도 버젓이 놓여있다. 저녁에 소주 몇 병 더 파는 것보다 일찍 문 닫는 것이 마진에 유리하다는 볼멘소리가 많다. 과거 '물은 셀프'라는 안내문구는 저렴한 소규모 식당들이 서빙 인력 부족 및 인건비 절약을 위해 쓰던 방편이었지만 이제는 기본적인 테이블 세팅은 물론이고 식당 내 거의 모든 것이 셀프다. 이처럼 인건비 등 영업비용을 아끼기 위한 소상공인들의 '원가 전쟁'은 일자리를 줄이고 소비자들의 '그림자 노동'을 더 많이 생겨나게 할 것이다.일자리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한 사람의 월급은 출퇴근길 교통비로, 생활비로, 취미·여가비와 유흥비로 사용되어 또 다른 일자리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 이 시대의 최고의 복지와 최고의 애국은 일자리 창출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창조적 파괴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지만 기업의 해외 이전, 제조업의 불황, 금융자본의 득세, 안전자산인 부동산 선호, 현금제일주의, 자영업의 구조적 위기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주변 환경은 녹록치 않다.결국 비용절감의 전쟁과 자동화 기술의 발달은 무인화를 촉진시키고 소비자들의 그림자 노동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우리 삶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어쩌면 고객이 '왕'이 아닌 고객이 '종업원'인 시대가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 또한, 그림자 노동이 없는 고급서비스는 많은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일부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되어 빈부격차의 체감도는 더욱 더 커질 수도 있다.경제발전과 성장의 이데올로기는 장밋빛 전망과 많은 일자리를 약속했지만 우리의 일자리는 점점 줄고 그림자 노동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성장이 주는 환상에 인질이 된 것은 아닐까? 그래도 성장의 힘을 믿고 싶다. 그나저나 노동자도 아닌 '그림자 노동자'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해야 하나? 어쩌면 성질 급한 정치인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일자리 창출과 소비자 주권을 위해서 '그림자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할지도 모르겠다.소비자의 무급노동이 유급의 일자리를 없애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있지만 일자리 창출을 넘어 일자리 발명이 필요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일자리발명특허, 그림자노동감독관 등의 새로운 업종과 직업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지금 이 시대, 최고의 영웅은 누구인가?일자리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그 영웅들을 기다려본다.이상철 자유기고가

2020-02-08 16:0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앞산'이라는 지명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에 의해 훼손된 우리 고유 지명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우리 지역에도 그러한 지명들이 더러 있어 기회가 되면 바로잡는 것이 주권국으로서, 문명국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원래 우리 고유 지명인데 일본식 지명으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바로 '앞산'이 그러한 지명이다.1768년에 발간된 『대구읍지』 '산천'(山川) 편에는 앞산의 원래 지명은 성불산(成佛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불산은 부의 남쪽 10리에 위치하며, 관기안산(官基案山)이다. 비슬산에서 뻗어 내려온다." 관기안산은 풍수적 용어로 관청 터 앞(남쪽)에 위치하는 산을 말한다. 문헌 기록상으로 성불산이 가장 일찍 나오는 고문헌은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그 후로 『여지도서』 『대구읍지』 『대동지지』 『증보문헌비고』 『교남지』 등에도 나타난다.불교적 용어인 성불산은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영향으로 대덕산(大德山)이라는 새로운 유교적 지명이 생겨나면서 공존하게 된다. 성불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지만, 대덕산은 『대구읍지』에 처음 등장한다. 그것도 자연경관을 주제로 하는 '산천' 편이 아닌 일반 문장에서 나오고 있어 그때까지도 대덕산보다는 성불산이 앞산을 대표했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 '산수'(山水) 편 '산형'(山形) 조에는 "대구비파산내유용천지석"(大丘琵琶山內有湧泉之石), 즉 "대구 비파산에는 물이 솟아나는 바위가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비파산(琵琶山)은 비슬산(琵瑟山)의 오기다. 비파(琵琶)산과 비슬(琵瑟)산은 혼돈하기 쉽다. 실제로 앞산 달비골 북사면에는 『택리지』에서 언급된 석정(石井)이 존재한다. 앞산이 비슬산에서 뻗어 내려오므로 옛 사람들은 앞산을 비슬산의 한 부분으로 인식했다.정리하면, 앞산의 옛 지명인 성불산은 시대적 이념 또는 오기로 인해 대덕산, 비파산 등으로 불리거나 기록되어 전해왔다. 그러던 중 대구의 진산(鎭山)인 연귀산(連龜山, 제일중학교 교정) 남쪽에 있는 성불산이 자연스레 '앞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주산(진산)의 남쪽을 앞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지형도에서는 앞산을 전산(前山·アプサン)으로 표기하고 있다. 전산은 우리 선조들이 부르던 '앞산'을 단순히 한자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산(前山) 지명 옆에 일본인들이 '가타가나'로 'アプサン'(앞산)을 병기하고 있다. 즉 가타가나는 외국어(외래어 포함) 표기에 사용되기 때문에 당시 우리 선조들이 앞산으로 부르던 지명을 일본인들이 한자 지명인 전산(前山)을 차용하면서 한자 옆에 한글 지명인 '앞산'을 가타가나로 병기한 것이다.앞서 얘기했듯이 성불산은 시대적 이념, 오기, 지역민들의 편의 등으로 인해 대덕산, 비파산, 앞산 등으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의 산에 여러 가지 지명이 공존하다 보니 최정상부인 앞산 외에 대덕산, 비파산 지명 등을 다른 봉우리에 갖다 붙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것은 현재 어떻게 불리는가도 중요하므로 지금의 대덕산, 비파산의 지명도 앞산과 더불어 각기 다른 봉우리에 공존해도 무방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앞산은 우리 고유의 지명으로서 현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 근거를 가지는 지명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앞산'이라는 지명을 자랑스럽게 사용하면 된다.

2020-02-07 14:30:00

박홍열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

[기고] "장애인 자립의 근본은 취업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등록인구는 258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5천138만여 명의 5%를 차지한다.이 중 15세 이상 장애인 취업률은 34.5%로 전체 인구 취업률 61.3%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장애인 근로자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보다 1.5배 정도나 높다.필자는 경상북도, 영양군, 청송군 등에서 오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9년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 취임한 첫날 '장애인 자립의 근본은 취업'라는 생각을 밝히며 지역의 여러 업체를 직접 방문해 장애인 취업의 순기능과 취업 지원 제도를 홍보했다.또 지역 사업체와의 긍정적 관계 형성과 유기적 협조를 위한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장애인 취업에 노력하고 있다. 취업 의지가 높은 장애인들의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해 중증장애인 지원 고용 사업 등 지속적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업체 상담 및 취업 후 적응 지도 등 상시 모니터링과 관리로 지역 사업체와 장애인들 간 징검다리 역할도 충실히 해왔다.그 결과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2018년 15명 대비 지난해 160% 증가한 24명의 장애인 취업을 알선했고, 이 중 10명(41.6%)을 취업시켰다.특히나 취업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지원 고용 사업을 통해 지난해 29명의 인원을 수료시키며 전년도 10명 대비 290%의 성과를 거뒀다.이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관장을 비롯해 직원과 담당자들의 장애인 취업에 대한 중요성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주효한 덕분이다. 물론 장애인 취업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사업체의 올바른 장애 인식, 장애 특성에 맞는 직무 개발, 장애인 개인의 특성과 장애인 취업 관련 법령 등 다양한 요인들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하지만 현재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 이행률은 45.5%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일부 사업체는 고용부담금을 내면 그만이란 식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이러한 장애인 고용 실태를 감안할 때 모든 문제 해결의 선결 과제는 장애인 취업과 연계된 지방자치단체, 사업체, 당사자, 복지기관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따라서 많은 장애인 취업 관련 기관과 관계자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사회 전반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장애인들의 취업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게 된다.필자가 근무하는 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 취업에 대한 의지와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면서 장애인 취업에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장애인들의 직업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체계적 직업훈련 및 직업 지원 서비스를 마련하고, 장애인 고용 기업에 대한 최적의 지원을 통해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는 책이 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비장애인들도 장애인들의 자립을,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이 같은 생각이 머리에만 머물고, 가슴으로는 가지 못하면서 장애인 취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제는 '장애인을 위해서'의 시대가 아닌 '장애인과 함께하는' 시대이다. 머리에 머물고 있는 올바른 생각을 가슴으로 옮겨 함께 행동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2020-02-06 15:28:45

나태주 시인

[춘추칼럼]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 벗어나야 반대편 사람 배려하고 함께 나눔을찬조자의 특별한 의도·사심 색안경 자기가 하지 못하면 말이나 말든지내 생애 가운데 좋았던 시절을 꼽는다면 우선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 초등학교 시절과 교장이 되어 8년 동안 시인 교장 소리를 들으며 살던 시절일 것이다. 거기다 더 하나를 보탠다면 교직에서 정년 퇴임을 한 뒤, 8년 동안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며 지내던 시절을 들어야 할 것이다.나는 공주 태생이 아니다. 서천 출신인데 30대 초반부터 공주에 와서 사는 사람이다. 어느 고장이든 문화원장은 그 고장 출신을 앉히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자존심 높은 공주 사람들이 나를 문화원장으로 허락해준 것이다. 두고두고 감사할 노릇이다.만약 나에게 문화원장 경험이 없었다면 나의 생애는 매우 단조롭고 조그마했을 뻔했다. 교직 생활은 어린 학생들과 엇비슷한 성향을 지닌 교직원들과 어울려 약간은 울타리 안에 갇혀진 생활이고 소극적인 생활이다.하지만 문화원장은 어른들을 상대로 하면서 문화 일반에 폭넓게 관여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나의 생애는 비로소 문화원장의 날들을 추가해야만 어렵사리 완성된다고 본다.내가 문화원장이 되어 시도한 일 가운데 하나가 찬조금을 많이 받아 문화원의 재정을 보다 부드럽게 하는 일이었다. 나부터 찬조금을 많이 내도록 노력했다. 그런 다음 그 찬조금 명세를 문화원 소식지에 상세히 밝혔다. 그것이 찬조금을 낸 분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찬조금을 더 많이 받아내는 길이라 여겼던 까닭이다.몇 차례 찬조금 명세를 밝히고 났더니 조금씩 반응이 왔다. 소식지를 받아본 분들 가운데 생각이 깊은 분들이 찬조금을 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찬조금은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많은 찬조금이 들어왔다. 바로 이것이다 싶어 쾌재가 나왔다. 내가 처음 의도했던 것이 들어맞은 것이다.그런데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회원 한 분이 말했다. 왜 찬조금 명세를 자꾸만 밝히느냐고. 그렇게 하면 안 낸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실은 찬조금을 낸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찬조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명세를 밝히는 거라고 대답해 줬다. 그랬더니 그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제 우리는 생각을 많이 바꾸어야만 한다. 모든 일에 있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좀 생각해 주어야 한다.돈이나 학식이나 교양이나 지위나 권력이나 명예나 모든 면에서 많이 가진 사람은 그 반대편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 사람들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나누어 줄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나누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문화원장을 하는 동안 나에게 모범과 교훈을 보여 주신 분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신데 내가 문화원장이 되면서 고문으로 모신 분 가운데 한 분이다. 그분은 내가 문화원장이 된 뒤부터 해마다 상당한 액수의 찬조금을 주셨다. 그것도 당신이 손수 연금 통장에서 돈을 찾아 가지고 문화원장실로 와 살그머니 봉투를 놓고 가시는 것이었다.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여러 가지를 깨치고 결심하는 기회를 가졌다. 가능하면 나도 선생님처럼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자! 여유 있는 돈이 생기면 그 돈을 문화계를 위해서 쓰자! 참 이런 생각은 이전의 나로선 불가능했던 생각이다. 선생님이 몸으로 본을 보여 주셨기에 스스로 배운 결과이다.그 뒤로 나는 해마다 수월찮은 액수를 문화계를 위해서 사용해 오고 있다. 고향 서천의 신석초문학상 제정을 지원하고 미주의 시인들을 위해 해외풀꽃시인상을 제정하여 시상하는 것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하는 일들이다.그런데 가끔 어이없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내가 무슨 특별한 의도나 사심이 있어 그런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자기가 하지 못하면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2020-02-06 15:23:35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기획자가 쏘아올릴 작은 공

오늘날과 같은 큐레이터(기획자)의 역할이 구축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더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큐레이터'라는 단어의 어원은 '돌보다'라는 뜻의 라틴어 'curare(쿠라레)'에서 파생되어 14세기 중반부터 '큐레이터'로 쓰이기 시작했다.최초에는 수집할 물건을 고르고 소장 중인 물건의 목록을 만들며 진열하는 역할 정도였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미술품과는 전혀 무관한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keeper(지킴이)'로서의 역할이 더 주가 되었다. 이후 18~19세기의 열강에서 대규모 컬렉터들이 생겨났고 이와 함께 큐레이터는 작품을 선정하고 해설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20세기 중반부터는 단순히 선정과 해설의 역할을 넘어 새로운 예술의 표현 수단을 실험하는 형태로 확장되었고, 현재에는 연출뿐만이 아닌 글(비평 또는 해설), 행정, 경영 등 전시 전반을 총괄하는 업무를 수행한다.큐레이터의 역할이 늘어남과 동시에 전문적 지식과 업무적 세분화가 요구되다 보니 프리랜서 큐레이터, 즉 독립큐레이터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광주비엔날레 및 대안공간들의 출현과 더불어 독립큐레이터들도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재정적 한계와 더불어 국가의 지원 사업들이 대안공간과 독립큐레이터의 역할을 흡수함으로써 독립큐레이터들의 활동은 위축되었다.작가에게 직접적으로 지원을 함으로써 행정이 독립큐레이터의 역할까지 대신하며 독립큐레이터의 수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후 2010년대부터는 기획이라는 영역의 중요도가 부각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는 각종 공모에 '기획자' 공모의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제도적 지원들이 늘어나면서 독립큐레이터들도 점차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젊은 큐레이터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으나 인적 공백을 메우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전국에 많은 미술대학이 있지만 기획이나 예술경영과 관련한 학과나 관련 교과목의 개설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관에 소속될 수 있는 큐레이터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반대로 독립큐레이터의 경우는 기관에 소속되는 형태가 아니기에 현장 경험의 부족과 선배들의 부재 등의 이유로 큐레이터 자원의 증가는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각자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담론 구축을 시도하려는 큐레이터들의 등장은 무척이나 고무적이다.큐레이터는 항상 사이에 위치한다. 프로젝트를 기획함에 있어 작가(작품), 관객(사회), 기관(제도) 그리고 여타 협력업체 등을 이웃시키고 그 가운데에서 프로젝트 전반을 조율한다. 때문에 큐레이터마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동시대를 다르게 해석하고 창조적 시야와 아이디어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시선일지라도 젊은 큐레이터들의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쏘아올릴 쇠공이 떨어질 것을 알고 있더라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지 않을까.

2020-02-06 11:14:4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배트맨과 박쥐

범죄와 부패에 빠진 도시에는 고통받는 힘 없는 시민들이 있다.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위해 항상 나타나는 한 존재가 있다. 그 영웅은 수백 마리의 박쥐와 함께 박쥐 가면과 복장을 입고 등장한다. 바로 배트맨이다.자신의 캐릭터를 박쥐로 설정한 배트맨에게는 역설적이게도 박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주인공 배트맨은 어린 시절 우물에 빠져 우물 안 동굴 너머에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박쥐를 보고 정신을 잃는다. 박쥐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배트맨은 억만장자 부모님과 오페라를 보러 갔다가 박쥐가 나오는 장면에서 중간에 나오게 된다. 오페라가 상영되는 중이라 하는 수 없이 어두침침한 뒷문으로 나서게 된 세 사람은 예상할 수 없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뒷문으로 나오다 좀도둑에게 습격을 당하고, 부모님은 좀도둑의 총에 죽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배트맨은 고아가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악을 벌하는 박쥐 캐릭터로 고담시민들의 영웅이 된다는 줄거리이다.항상 선과 악의 대립 구도에서 악을 벌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을 막연하지만 믿게 되고, 악을 벌하는 그 누군가도 그렇게 완전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점 때문에 영화 배트맨 시리즈는 빼놓지 않고 보았던 것 같다.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박쥐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해 급속도로 확산 중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근원지는 박쥐이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원인도, 에볼라의 원인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원인도 공교롭게도 모두 박쥐였다.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바이러스의 원 숙주는 박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박쥐가 최다 바이러스 보유 동물이 된 이유로 박쥐의 면역체계와 체온을 과학자들은 제시하고 있다.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돼도 아프거나 죽지 않는 뛰어난 면역체계를 가지는 식으로 진화하면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었다. 또 박쥐의 체온은 38~41℃인데 이러한 높은 체온은 박쥐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그런데 왜 박쥐는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주요 숙주가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산업화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산업화로 인해 서식지를 잃게 된 박쥐들이 과일 농장으로 몰리게 되고 이때 박쥐가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돼지와 같은 다른 동물들을 거쳐 인간에게로 전파되었다고 본다. 또 집단 공장식 사육 시스템으로 인한 바이러스의 변종이 늘어나게 되었고, 세계화로 인해 국경을 넘나드는 인간과 동물의 이동이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을 증폭시킨다고 설명한다.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자연과 환경을 통제하고 개발하면서 경제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최근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선물만을 준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과학기술이 가져온 자연과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불안감은 더 커져간다.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변화라는 점에서 불안감은 공포감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정보통신의 기술 발전은 오히려 왜곡된 정보와 가치관의 유통을 확산시켜 신뢰감은 더 떨어지고 있다.많은 가짜 뉴스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재미 삼아 확진자가 어디에 있고, 어느 경로를 통해 이동했는지를 SNS에 올린 사람도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감염된다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돌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렇게 허망하게도 근거 없는 말들과 판단에 무너져버리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실망을 감출 수 없지만, 그래도 우한의 중국 교민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환영했던 아산과 진천의 국민들이 있기에 위안이 된다. 그런데 돈 받고 교민을 받았다, 아산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가짜 뉴스까지 돌고 있으니 씁쓸하다.인간의 이기심과 과학기술의 발전, 자본의 이익을 위한 비인간적인 행동들, 정치 이념의 투영이 뒤섞여 초래한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으로서의 신뢰와 연대뿐이다. 신뢰와 연대를 깨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들을 처벌하고 안전을 지켜 줄 이 시대의 영웅 배트맨은 어디에 있을까?

2020-02-05 18:00:00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불가사의 인도] 몽골 후손 악바르 대제, 인도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 되다

인도 토착 원주민 드라비다족의 후예인 인도 친구 싱에게 인도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무굴제국 악바르 대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굴제국이라면 몽골족 후손이 세운 나라 아닌가? 강제점령지인 인도에서 어떻게 성군이 되었는지?"궁금했다. 티무르의 5대손이며 몽골의 후손인 바부르는 1526년 파니파트 벌판에서 10배나 많은 인도 군대를 3시간 만에 무찔렀다. 바부르는 이 싸움을 고비로 인도의 새 주인이 되었으며 스스로 '인도 황제'(파드 샤)라고 선언했다.인도 친구 싱은 인도의 외세 침략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불행하게도 온순한 농경민족인 드라비다족은 북방에서 끊임없이 침략해 온 유목민족들에게 영토와 주권을 빼앗겼다. 기원전 15세기경 아리아족 침략,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 지휘하의 동방정벌군 침략, 기원후 10세기 이후부터 끊임없는 몽골족 침략 등 강대국의 침략은 드라비다족에게는 방어하기 힘든 버거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드라비다족인 인도 친구 싱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5천 년 역사에서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온 우리 민족사와 오버랩되면서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다."중세시대부터 동서양에 걸쳐 지배력을 키워온 몽골족의 후손이 인도에서 어떻게 성군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싱은 바로 이렇게 답했다. 무굴제국의 발판을 마련한 사람이 바부르였다면 이 왕조를 명실상부한 대제국으로 끌어 올린 사람은 악바르(1542~1605)이다. 무굴제국 3대 왕인 악바르 대제는 다윗과 솔로몬에 비견될 만큼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성군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무굴제국 왕자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지만 불우한 성장 과정도 겪었다.열두 살 때 부왕의 석연찮은 죽음으로 부왕의 심복인 신하가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를 내세워 유모와 함께 궁중 밀실에 가두어놓고 전혀 교육을 시키지 않고 자라게 했다. 18세가 되었을 때, 그 신하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악바르는 신하를 제거하고 왕권을 장악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왕권 행사를 하기 시작하자마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국가 장악력이 뛰어났으며 나폴레옹에 버금가는 군사전략가의 능력을 발휘했다.악바르 대제는 1천㎞ 바깥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직접 코끼리를 타고 야무나강을 건넌 후, 3천 기마병을 이끌며 몽골족 특유의 질풍노도 같은 기동력으로 6일 만에 반란 지역에 이르러 반란군을 제압했다. 이렇게 군사전략가로서의 위력을 과시한 그는 인도를 강력한 제국으로 키우며 국력을 길렀다. 거대한 인도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델리를 수도로 정하고, 수도 델리를 중심으로 북방 인근 지역에 무굴제국 시대의 위세를 과시하는 많은 문화유적을 남겼다.무굴제국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타지마할궁전 무덤, 인도 라자스탄주(州) 자이푸르에 있는 천문 관측소인 잔타르 만타르, 아그라 붉은 요새 등이 있다. 특히 인도 타지마할궁전은 무굴제국 샤 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 왕궁으로 인도를 대표하는 이슬람 건축물로 세계 3대 조형건축 예술품에 꼽힐 만큼 중요한 인류문화재이다. 이 모든 인도의 빛나는 문화유적은 무굴제국의 기반을 다진 악바르 대제의 초인적 능력 덕분이다.그러나 이런 가시적 문화유산보다 악바르 대제는 다양한 종교가 대국 인도를 분열시키는 주 요인임을 깨닫고 보편적 종교를 희구했다. 그는 철야기도를 드리며 만인이 따를 인류 보편종교를 계시로 알려달라고 신에게 간청했다. 그는 포르투갈 신부, 힌두 브라만, 자이나교 승려, 조로아스터 지도자 등을 궁중에 초대하여 진지한 종교토론회를 열었다. 그는 모든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융화정책을 폈다. 그는 자신의 몽골 조상들이 숭상한 이슬람교의 교도임에도 제국 최대의 반대 세력이자 힌두교인 라지푸트족의 공주와 결혼하여 몸소 화합의 정치를 선보였다. 그의 자손들에게는 다른 종교에 대한 견문을 넓히게 했다. 훗날 두 손자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무굴제국의 황제인 악바르가 아쇼카 황제와 더불어 인도 역사상 '대제'의 칭호를 받는 이유는 '포용정책' 때문일 것이다.

2020-02-05 18:00:00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지혜와 사랑이 필요할 때

나목으로 긴 겨울을 이겨 낸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맺혔다.입춘이 지나자 추위 속에서도 봄을 알리는 자연은 위대하다. 묵언수행하듯 겨우내 정지되어 있던 나무들이 깨어난다. 겨울나무는 운동선수가 동계훈련을 열심히 하듯 내면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땅 속의 자양분을 흡수하고 기운을 모은다. 온몸으로 눈바람에 맞서던 겨울의 초상들이 여린 잎눈을 보듬어 안고 기다림의 미덕을 꽃피우려고 한다. 느티나무는 둥치가 굵어지려는 듯 겉껍질이 일어나고 밖으로 밀어낸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햇살이 따사롭다.찬 서리를 맞고도 동백나무는 꽃을 피우고 차가운 눈바람 속에서도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건 굳은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며칠 전 봄맞이를 위해 차실 내 먼지를 떨어내고 윤길중 씨가 화제를 쓴 죽농의 유작 매화 족자 한 폭을 걸었다. 한쪽 벽에는 일장 스님의 수선화와 차도구 그림이 있는 액자를 옮겨 놓았다.매화도에는梅經寒苦發淸香(매경한고발청향) 매화는 추위를 겪을수록 더욱 맑은 향기를 내고.人逢艱難顯其節(인봉간난현기절) 사람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그 절개가 드러난다.수선화 그림에는"흰 구름은 옛 벗 밝은 달은 생애로세 이곳은 예로부터 물 흐르고 꽃피는 동천 가끔 지나는 사람 만나면 차를 다려 권하네."차실을 정리하고 맑은 한 잔 차를 우려 마신다. 처마 밑 풍경소리는 바람에 일렁이며 청아하다. 자연과 연결되어 소리가 한 없이 맑다. 맑은 환경을 생각하며 감사를 느낀다. 세상은 이제 봄빛으로 깨어나려 하는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흔들린다. 인간이 살생 업으로 야생동물을 잡아먹고 그 과보로 신음한다. 그 살생의 무한한 파장이 모여 바이러스가 호흡 증상을 일으키고 감염시키며 상응한 대가를 치른다.중국 최초의 약물학에 관한 서적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박쥐가 눈을 밝게 해주고 기침, 말라리아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보양식, 중의학적 약선 요리로 섭취한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박쥐를 섭취하는 원인에는 중의학적인 효능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한다. 박쥐의 중국어 표기는 蝙(편) 蝠(복)으로 (비엔푸)다. 여기서 박쥐를 의미하는 蝠(복) 발음(푸)와 복을 의미하는 福(복) 발음(푸)가 동일하다. 발음이 같거나 비슷하지만 다른 글자가 연상되는 해음(諧音) 현상으로 뜻을 풀어내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는 박쥐를 먹는다는 것은 福(복)을 먹는다는 의미로 풀이되어 박쥐를 먹는다고 한다.확산되고 있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이 땅 위에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모두의 공업 때문에 생겨났다. 업이라는 것은 행위에 대한 결과인데 별업이 있고 공업이 있다. 혼자 짓는 행위는 별업(別業)이고 대중이 함께 한 결과는 공업(共業)이다. 공업으로 전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로 두려움을 겪는다. 마음속에 헛된 욕심을 덜어낼 때 재발되지 않는다. 마음은 진심과 망심 사이를 오간다. 선행을 가로막는 장애 가운데 으뜸은 욕심이다. 참회와 발원으로 인간만이 아닌 뭇 생명체를 살려내려는 상생으로 갈 때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불타고, 권력과 부와 명예와 사랑으로 불탄다. 이 불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고 미래에도 지속된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로 불은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건물이나 물건에 불을 붙여 사회적 재앙과 파멸을 가져온다. 이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려면 남과 더불어 내가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에 대한 연기를 자각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진리에 눈뜰 때 마음에 사랑과 자비가 일어난다. 지혜와 사랑이 있는 사회는 아름답다.

2020-02-05 15:18:18

강규형 명지대 교수

[새론새평] 조국 방어하는 폭주 정권, 선거로 심판해야

단군 이래 최대 위선자 조국 패밀리일부 좌파 양심마비 '묻지마 지키기'권력이 조롱받을 때 힘 발휘 어려워유권자의 선택 더욱 중요해진 시점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며칠 전 서울대에서 직위해제됐다.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구속돼 구치소에 있다. 이들의 범죄행위는 현 정권의 필사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드러날 일들은 아마도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내용일 것이다. 입시 부정은 물론이고 금융 부정은 범위나 금액에서 상당히 큰 규모로 밝혀질 것이다.그동안 조국 가족들이 한 변명들 중 상당수는 이미 허위로 밝혀졌고 계속 밝혀질 것이다. 그는 법무장관이 아니라 무법(無法)장관으로 재직했던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조국 교수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많은 사안에 대해 발언한 것이 이제는 자신에 대한 화살로 날아들고 있다. 거의 자기의 미래 행동을 예견하듯 쓴 것들이 많아 항간에는 '조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이 생겼다.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이다) 현상'(조국의 과거 언행이 조국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현상)이란 신조어도 탄생했다.과거 조 씨가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처럼 온갖 '정의'를 부르짖는 언행을 마구잡이로 하면서 인기를 끌 때에도 필자는 몇몇 경로를 통해 조 씨와 그의 집안에 대한 위선의 실체를 들을 기회가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는 면역이 돼 있었다. 그런데도 요번에 나타난 그 집안의 행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필자도 정신적 트라우마에 빠지게 됐다.원래 한국 좌파가 위선과 허위라는 기초 위에 서 있는 집단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는 도가 심하다. 그를 "단군 이래 최대의 위선자"라고 지칭하는 비판이 항간에 도는 이유이다.그리고 상당수 좌파 인사들도 과거 자기가 했던 언행과는 정반대의 "조국(曺國) 무조건 수호"에 들어갔다. 그들 위선의 실체가 밝혀질 기회가 된 것이 이번 조국 사태의 부수적 효과라 할 것이다. 특히 탄핵 정국 당시 온갖 비방성 허위 추측으로 도배를 했던 여러 사람들이 지금 와서 정반대 태도를 취하니, 집단적인 양심 마비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또한 정치권력을 뒤에 업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산하 기자들과 방송인들 다수는 조국 전 장관 가족들을 무작정 옹호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질' 하기에 바빴다. 예를 들어 작년 10월 5일 서울 서초동에서 검찰을 대놓고 협박하는 친조국 시위대 숫자가 무려 300만 명이라고 MBC와 KBS를 위시한 각 방송, 언론들은 창피함도 무릅쓰고 거짓 보도를 해댔다. 이것이 그대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공정보도' '정의보도'인가? 본인들이 진정한 언론인이고 방송인이라면 창피한 줄 알고 언론과 방송계에서 떠나야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최서원 씨 집안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필자는 그들을 사진으로 보거나 이름을 들으면 아직도 구토를 느낀다. 그런데 솔직히 조국과 가족들은 최 씨 집안보다 더 심하고 악질적이지 않나. 이것은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일 뿐이다. 왜 많은 (상식을 가진) 좌파 지식인들도 조국 씨를 맹렬히 비판하는지 생각해보라. 왜 조국을 싸고돌던 정의당이 현재 위기에 빠졌는지도 생각해보라. 조국 집안은 거의 '가족사기단'을 넘어서 무슨 '범죄 패밀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미국에서 가장 큰 '패밀리'는 갬비노(Gambino) 패밀리이다. 조국과 그 가족들을 보면 무슨 끈질긴 좀비들의 행진을 보는 듯해서 '좀비노 패밀리'라 칭하고 싶을 정도다.권력이 무수한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 될 때는 더 이상 권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진다. 현 정권은 조국과 그 가족의 범죄를 감추고 오히려 그를 띄워주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범했고 아직도 범하고 있다. 더 이상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라. 사회의 집단 우울증을 유발하려고 작정한 정권이 아닌가. 그 이외에도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엄청난 권력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할 정도이다.결국 폭주하는 정권에 대한 심판은 국민이 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심판의 도구이다.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더더욱 중요해진 시점이 왔다.

2020-02-05 15:18:08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매일춘추] 최고의 '캐스팅(Casting)'

영화 '내 사랑'은 캐나다 최고의 나이브 화가 '모드 루이스'의 일대기를 그렸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점점 굽어져 가는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열정에 불을 지폈던 모드의 그림은 맑고 순수한 동화 같다. 사랑과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임을 당당하게 그려나가는 예술가로서의 삶은 깊은 여운을 주었고,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모드의 삶을 그려낸 배우의 연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연극배우로 시작했다는 '샐리 호킨스'.에이슬링 월시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종이에 적은 첫 번째 배우 이름이 샐리 호킨스였다고 한다. 감독의 훌륭한 캐스팅과 배우의 완벽한 변신이 이 영화의 성공을 이끌어냈다는 호평에 손색이 없다. 배우로서 누군가의 선택을 통해 기회를 얻는다는 것과 연출가로서 작품에 적격인 배우를 찾아낸다는 것은 큰 행운이며 창작에 빛을 내려주는 고마운 일이다.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고 지금의 샐리 호킨스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몰라도 분명 좌절과 시련은 있지 않았을까. 배우는 언제나 평가받고 때로는 선택받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직업이다.배우로서 첫 오디션을 보던 날 현장에서 느꼈던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기 싸움은 숨 막히는 전쟁터 같았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위해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재능과 매력을 발산한다는 것은 꽤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었다.실제로 오디션을 보던 중 노래를 하다가 쓰러진 후배가 있었다. 눈을 떠보니 심사위원들의 눈빛에는 걱정으로 가득했고, 재빨리 일어나 응급실로 직행했다는 웃기지만 슬픈 일화도 있다.배우라면 꼭 거쳐야 할 관문이라 할지라도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를 불안감과 대처할 만한 순발력에 대한 압박감은 결코 그 순간을 즐길 수만은 없게 만든다. 누군가는 캐스팅이라는 합격의 영예를, 누군가는 탈락의 고배를 맛보면서도 다시 7전 8기의 도전 정신을 반복하기 일쑤다.수년전부터 인재를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진출자들은 그 어떤 무대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으며, 그 무대를 지켜보는 심사위원들 또한 공정하고 평등한 경쟁을 위해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고민과 선택하기를 반복한다.선택하고 선택받는다는 것. 결국 가능성을 전제로 한 소통과 협업의 힘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다. 가끔 오디션만 잘 보는 배우들이 있다. 잘못 뽑으면 팀워크가 산산 조각나고 작품의 방향이 흐려진다.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나의 영혼의 동반자를 찾는 일과도 같은 일이기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4월 15일은 총선이 있는 날이다. 단지 오디션만 잘 치르는 사람 말고 진정으로 소통 할 수 있는 사람을 보는 안목을 발휘해 옥석을 가려내야 할 때다. 샐리 호킨스와 모드 루이스가 건네는 도전과 열정으로 지혜를 모아 '어떤 사람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자. 마음을 맞대고 공정하게 최고의 캐스팅을 해보자.

2020-02-05 11:08:42

권혁성(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경제칼럼]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제학

수익 공유 통한 자본 확산에 기초전체 파이 키우는 방식으로 운영매년 시즌 우승팀 예측 흥미진진가장 인기있는 빅마켓 자리매김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18세기 이후 눈부신 기술 향상이 이루어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술 자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의 태동 또한 괄목할 만하다.신체 활동을 통한 건강 증진이 일차 목적인 운동(스포츠)도 엄연히 하나의 산업군으로 분류된다. 스포츠산업은 스포츠 활동과 관련된 경제활동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그 정점에는 스포츠 활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 구단을 비롯해 스포츠 활동을 직접 생산하는 업체나 단체가 스포츠산업의 핵심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시장규모에 기초한 스포츠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각종 경제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howmuch.net에 의하면 연간 130억달러 매출인 미식축구(NFL)가 가장 큰 시장규모다. 이어서 95억달러 규모의 미국 프로야구리그(MLB), 48억달러의 미국 프로농구리그(NBA)와 37억달러 규모의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있다. 유일하게 영국 프로축구리그(Premier League)가 53억달러 규모로 5위권 내 3위에 위치한다.박지성, 손흥민 선수로 인해 국내에도 익숙한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그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 1888년부터 운영된 세계 최초의 축구리그인 풋볼리그로부터 1992년 독립(?)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독립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프로 구단의 주된 수입원은 예나 지금이나 중계권료이다. 프리미어리그 탄생 이전 중계권료의 배분은 1부 리그와 4부 리그 전체를 대상으로 균등 배분이었다. 그런데 당시 런던위캔드 텔레비전을 운영하던 그렉 다이크가 1부 리그의 상위 5개 팀에 독점 중계권을 전제로 차등적 수익 배분을 제안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22개 팀이 새로운 독립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주목할 사안은 리그 순위와 무관하게 중계권료를 균등 배분하는 제도에 반대하며 창설된 프리미어리그가 여전히 수익의 균등 배분을 근간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위 50/25/25모델로 리그 전체 중계권을 50은 공동 분배, 25는 순위에 따라, 25는 방송 횟수 등에 따라 지급하는 식이다.특히 해외 중계권료는 전액 균등 지급이다. 이는 1위 팀과 최하위 팀의 수입 차이가 크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2018/19 시즌 수입 기준 1위와 20위 팀의 차이는 1.57배에 불과하다. 원년인 1992년의 2.7배 대비 더 균등 배분이 이루어진 셈이다.반면에 유럽 5대 리그를 이루고 있는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A의 우승 팀과 최하위 팀의 연간 수입은 각각 12.5배와 10.0배의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구단별 운영비와 우수 선수 스카우트를 위한 투자액의 큰 차이를 낳게 된다. 상대적 부익부 빈익빈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결국 유럽 축구 빅5 중 프리미어리그를 제외한 4개 리그의 우승팀은 매년 쉽게 예측이 되고 실제 하나 또는 두 팀 정도가 우승을 독점하고 있다. 반면에 프리미어리그는 매 시즌 우승팀의 예측이 어려운 흥미진진한 리그가 진행되어 결과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빅마켓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영국 축구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으로 새롭게 탄생한 프리미어리그. 그러나 그들은 수익의 공유를 통한 자본 확산에 기초해 전체 파이를 키우는 정책으로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를 소유하게 된다.그렉 다이크에게 선택받은 빅5 클럽들이 성적에 따른 중계권의 차등 지급을 고집했다면 지금의 성공한 프리미어리그가 존재했을지 궁금하다. 소위 가진 자인 빅5 클럽들이 규제일 수 있는 차등 지급을 원칙으로 승화시킨 덕분이라 해도 결과적으로 과언이 아니다.만년 우승 후보인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설립 이후 한 번도 우승을 못 했다. 그런 리버풀이 금년 시즌 우승을 향해 순항 중이다.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 구장 내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층마다 한 구절의 글귀가 적혀 있다.붉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새겨진 그 글귀는 그들의 응원가인 'You'll never walk alone'의 가사이다. 비록 먼 나라 프로축구팀의 응원가이지만 한 걸음이어도 함께 나아간다는 그들의 외침이 유난히도 큰 울림으로 다가서는 요즘이다.

2020-02-04 14:19:33

[매일춘추] 번지점프  

극장을 울려 퍼지던 음악이 멈추고 심사위원석의 서늘한 시선을 받으며 청년과 배우들은 극장을 빠져나온다."정말 떨렸어!""어떡하지? 아까 실수했는데…."홀로서기 후 뮤지컬 창작자가 된 청년은 배우들의 들뜬 어깨를 토닥이면서 애써 태연한 척한다."아니야. 너무 잘했어. 좋은 결과 있을 테니 기다려보자."배우들 틈새로 빠져나와 긴 복도 끝에 다다르자 긴장했던 한숨을 내려놓는다. 말을 더듬진 않았나, 원하는 바를 제대로 설명을 했던가, 세 번째 질문이 뭐였지? 최근 연이은 참패를 맛본 26살 청년의 얼굴에는 주눅이 가득 들어있다.몇 개월 전, 처녀작의 DIMF 수상 이후 제작사와 작품의 상업화를 착수했을 때만 해도 자신의 뮤지컬 인생이 활짝 열린 것처럼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저작권 문제로 공연화는 하루아침에 무산되어버렸다. 실망할 겨를도 없이 타 대형 뮤지컬 음악팀으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실력의 한계와 부담감으로 자진 하차해야만 했다. 밤을 새우며 만든 연극 음악은 극단으로부터 말없이 전곡 퇴짜를 맞고 작곡가가 돌연 교체되었다. 그야말로 청년은 그간 실패의 연속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쳐버린 상태였다.지금 청년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뮤지컬 지원사업 창작팩토리'에서 배우들의 시연에 이어 면접까지 끝난 후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다. 영원 같던 몇 시간이 흐른 후 모든 지원자들을 부르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후보자들 사이에서 청년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느라 손톱이 다 하얗게 되는 지도 모를 만큼 손가락을 꽉 쥐고 있다"4작품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단 한 작품만 정식 공연으로 만들어질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럼 2008년 창작팩토리 1등을 발표하겠습니다. 1등은.."긴장과 초조함으로 몇 초가 흐르고 발표자가 마침내 입을 연다."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입니다."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패배감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함께 고생해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눈에 밟혀 울고 싶었지만 울 수도 없다.'정말로 끝인가? 이 길이 아닌 걸까? 왜? 무엇이 문제였지?'1등으로 뽑힌 작품의 팜플렛을 열어보자 안에는 청년이 그토록 동경하던 배우도 있었고 스태프들도 많고 화려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내용과 주제가 굉장히 세련되게 느껴졌다.'그들은 뭐가 다르길래 나보다 한발 앞서 올라가는 걸까?'배우들의 사진 아래로 조그맣게 창작자의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다. '뉴욕대 티쉬스쿨' 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청년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처음부터 배워야겠어. 뮤지컬 본고장에서."어느새 주변의 소음은 사라지고 괴로웠던 마음은 심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뛰어보기 전까지는 그게 어떤 경험일지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지만 새로운 도전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새겨진 순간 청년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뛰어들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절박함 마저 동력이니까.

2020-02-04 11:48:53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전염병을 이기는 법

인간의 역사에서 전염병은 전쟁과 함께 가장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인류를 가장 혹독하게 했던 전염병은 페스트로 불리는 흑사병이다.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다는 흑사병에 대한 공포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회자되고는 한다. 수세기가 지나서도 마치 공포의 DNA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에 심어져 있는 듯하다.역사상 첫 전염병은 기원전 430년경 유행했던 '아테네 역병'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대륙에 일부러 퍼트린 천연두, 50만 나폴레옹 군대를 무력화시킨 발진티푸스, 유럽 인구 4분의 1을 희생시킨 결핵 등등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전염병들은 루이 파스퇴르의 백신 발명이나 알렉산더 플레밍의 항생제 페니실린 발견 이후 더 이상 인류를 괴롭히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가 지속되는 한 전염병과의 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질 듯하다. 20세기 가장 무서운 병이 된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부터 에볼라 바이러스, 사스, 메르스 등 시대가 변하면서 전염병의 양상도 변하고 있고 인류도 이에 대응하는 치료법을 개발했거나 개발 중이다. 이는 의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들의 DNA에 잠재된 전염병의 공포를 일으켜 세웠다. 우한 현지 사망자만 362명을 넘어섰고 우리나라에도 확진자만 15명(3일 기준)이며 격리 조치된 사람이 87명이다. 정부에서도 사태를 주시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를 통해 확산 방지 대책을 세웠다. 개인의 예방 수칙을 위해 꼭 필요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생기고 크고 작은 행사들도 대부분 취소되고 있다. 이런 신속한 대응은 지난 역사 속에서의 경험도 분명 한몫할 것이다.이런 어려움 속에서 늘 빛나는 것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정신이다. 중국 우한의 의사들과 그들을 돕는 많은 사람들의 미담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얼마 전 우한에 있는 우리 교민들이 전세기를 통해 입국했을 당시, 격리 조치될 지역의 몇몇 사람들이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전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이해하지만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을 피해 고국으로 돌아온 동포를 내치는 모습에 꽤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다행히 정부의 철저한 격리 조치를 믿고 지역민들이 받아들이자 많은 국민들이 환호하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끈끈한 민족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유럽에 흑사병이 일어났을 때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사는 희생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불과 23세에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일부 성직자들은 '마녀칙령'이란 걸 만들어 무고한 여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전염병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 위기, 심지어는 가뭄과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나 불임이나 남성들의 발기부전까지도 마녀들의 짓이라고 몰아세웠다. 한 시대 똑같은 전염병에 노출됐을 때 대처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한 21세기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전염병이 돌 것이고 누군가는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자신의 두려움과 공포를 다른 이들의 희생으로 벗어나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는 아직까지는 약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면역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서로 사랑하고 남을 도울 때 사람의 면역력이 가장 강해진다고 한다. 면역력을 키우기에 적당한 날들이다.

2020-02-03 18:00:00

박원재(율곡연구원장)

[삶 갈피] 마음의 흰자위

얼마 전 SNS 대화에 쓰이는 이모티콘 한 세트를 거금 2천원을 주고 구매했다. 지금까지 그런 데 돈을 쓰는 것은 감성팔이 상술에 넘어가는 바보짓이라고 생각해왔으니, '거금'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뀐 것은 역시 그것이 지니는 대화의 경제성 때문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개의 이모티콘이 더 많은 감정을 압축적으로 전달해주는 것을 누차 경험한 터에 그 매력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백건대, 물론 여기에는 이미 아낌없는 투자로 이모티콘 사용에서 신공(神功)을 자랑하는 지인들에 대한 부러움도 한몫했다.기실 이모티콘 시장은 이미 3천억원을 넘어섰고, 억대 매출을 달성한 것도 1천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모티콘은 기본적으로 SNS 대화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기호이다. 일상의 대화는 논리가 아니라 감정을 교환하는 행위이다. 설령 논리의 전달이 목표일지라도 그 대화의 성공 여부는 오고 가는 말들에 묻어 있는 감정의 색깔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상례이다. 상대와의 불화를 이성적으로 풀어보려고 시작한 대화가 감정의 개입으로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진 경험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그렇다면 이모티콘의 유행은 사람들이 그만큼 감정의 교환에 목말라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문자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엄지손가락이 아무리 불가사의한 속도로 자음과 모음을 터치하며 감정을 실어 날라도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은 매양 문자의 시체들뿐이다. 그러니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소통하는 인간)인 인간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비대면(非對面) 대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에서 감정의 허기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집 마당에 키우는 개에게서도 이따금 그런 허기를 발견한다. 어쩌다 주인을 잘못 만나 거실 소파가 아니라 마당 한 쪽 울타리 속에서 지내는 놈들이다. 모두 세 마리인데, 그중 한 놈의 행동이 재밌다. 놈은 내가 마당으로 내려서면 니가 어디로 가든 나는 관심 없다는 듯이 개집 입구 턱에 고개를 괴고는 미동도 않는다. 그러다가 내 발걸음이 자기 쪽으로 향한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득달같이 쫓아 나와 울타리에 매달려 애교를 떤다. 하지만 나는 놈의 그런 행동이 무관심을 가장한 것이라는 점을 늘 먼저 알아챈다. 놈의 눈에 있는 흰자위 때문이다. 흰자위와 눈동자가 형성하는 여백의 구도가 놈의 관심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두 놈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놈들의 눈자위는 짙은 갈색이어서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까닭이다.동물들은 일반적으로 흰자위가 없거나 있어도 부위가 넓지 않다고 한다. 이에 비하여 사람의 눈은 인종을 불문하고 흰자위가 발달해 있다. 이유가 뭘까?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기능을 함으로써 의사소통의 중요한 보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머리'보다 '마음'의 전달이 생존에 더 필수적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우리 조상들이 그 수단의 하나로 흰자위를 발달시켜 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모티콘은 상대에게 지금 자신의 마음의 방향을 암시하는 '마음의 흰자위'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이모티콘은 눈빛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지닌 호모 센티엔스(homo sentiens·느끼는 인간)의 후예들이 갈수록 일반화되어 가는 비대면 대화 문화 속에서 그것을 대신할 요량으로 개발해낸 도구라 할 것이다. 나 또한 그 종(種)의 후예이니, 앞으로 이모티콘 구매가 잦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쨌거나 전화비 명세서를 받아든 아내로부터 수시로 핀잔받을 일만 늘어나게 생겼다. 그나저나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라는데, 국민의 대표가 되려는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의 흰자위부터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민의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마음이 실제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유권자들이 알 수 있게 말이다.

2020-02-03 18: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日常중국] "우한 찌아요우!"-우한인이여 힘내라

베이징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은 춘제(春節·설) 연휴가 끝났지만 아직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의 기세가 꺾이지 않아 중국 당국이 춘제 연휴를 2일까지 연기한 데 이어 9일까지 휴업 조치를 내렸지만 아마도 10일 이후에도 당분간은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베이징의 사정은 신종코로나의 진원지인 우한 등 후베이성(湖北省)보다는 낫지만 중국 전역이 봉쇄됐다고 할 정도로 항공편과 기차 및 시외버스 등 모든 대중교통은 꽁꽁 묶였다. 베이징시 당국이 수도인 '베이징 봉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한 뒤 '사재기' 행태가 다소 주춤해진 것 같지만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는 일은 전쟁일 것이다.베이징 사정과 다르게 후베이성 주변의 충칭시와 후난성, 저장성, 장시성 등 창장(長江·양쯔강) 주변의 분위기는 사뭇 비장하다.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중국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당국이 감염 정보는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는 모양이다.춘제 연휴 막바지부터는 신종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한지역 중국 의료진과 봉쇄된 우한에 고립돼 있는 우한시민들을 격려하는 '우한 힘내라'(武漢 加油!) 캠페인이 중국 전역에서 펼쳐지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한과 후베이성 출신 중국인에 대한 눈총과 차별 격리조치 등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의 공포와 정면에서 맞서 싸우고 있는 우한인과 의료진에 대한 격려는 국경과 인종을 떠난 인류애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세계인의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신종코로나의 초기 정보를 축소·왜곡하면서 확산시키는 데 책임이 있는 당국에 대한 비난은 뒤로 미루자. 2002년 사스 사태 때는 '안심하라'며 감염자 수를 축소 발표했다가 뭇매를 맞고 곧바로 경질된 베이징시장과 위생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의 사례는 기시감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초기 대응에 실패한 베이징의 지도부에 대해서도 비난의 화살이 날아갈 터이니 말이다.우한 격려 캠페인은 곧바로 중국의 유명 연예인과 중국 국영기업, 외국 투자기업들의 기부 행렬로 이어지고 있다.그중 눈에 띄는 기부는 62세의 유명 코디미언 자오번산(趙本山)의 1천만위안(약 17억원), 농민 가수 주즈원(朱之文)의 20만위안(3천400만원)이다. 이미 200여 명의 스타들이 기부 행렬에 동참하고 나섰다. 대부분 10만~20만위안의 성금을 기탁하는데 고작 2천위안(34만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 내느니 못할 정도로 비난을 받고 있는 사례도 있었다. 중국 내에서 청순한 이미지로 잘 알려진 '선웨'(沈月)가 그 장본인이다.자오번산의 통 큰 기부 액수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는 주즈원의 20만위안 기부도 화제를 낳고 있다. 중국판 K팝 스타에 나왔던 농민 가수 주즈원은 TV 출연 당시 입고 나온 낡은 '인민복 외투'로 인해 '외투형'(大衣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그는 산둥성 자신의 고향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인민복 외투를 입은 채 삼륜차를 몰고 20만위안의 현금을 직접 당 서기에게 전달했다.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가수이지만 그는 여전히 농사를 짓는 농민 가수로 큰 돈을 벌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민 가수에게 20만위안은 엄청난 거금이다.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그는 "내가 번 돈은 누구의 돈인가? 내 노래를 듣고 좋아하던 관중의 돈이며 국가의 돈이다. 사회에 보답하는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중국 스타들의 애국심(?) 넘치는 기부 행렬이 신종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중국 공산당과 당국에 대한 비난을 비껴가는 계기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통제와 애국심이 동시에 적절하게 작동되고 있는 곳이 오늘의 중국이다.'우한'은 중화문명의 양대 원류 중 하나인 창장(長江·양쯔강)의 중심 도시다. 청 제국을 무너뜨린 우창(武昌)봉기는 신해혁명으로 이어졌다. 문화대혁명 발동 직전 마오쩌둥 주석은 우한에서 전용열차를 멈추고 장강에 뛰어들어 30리를 수영하면서 건재를 과시한 바 있다.'우한인이여 힘을 내라'.

2020-02-03 18:00:00

[세월의 흔적] <59> 정월 대보름…온 마을이 함께 한 해 안녕·풍년 기원

'설은 나가서 쇠도 보름은 집에서 쇠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지닌 의미는 객지에 나간 사람이 부득이한 일로 집에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보름에는 꼭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은 한 해 농사의 풍년을 소망하며 준비하는 시기로, 보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농사짓기가 시작된다. 따라서 보름까지는 집에 와서 생계이자 생존을 위한 농사짓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정월에 드는 설과 대보름은 상호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설날이 개인적 패쇄적 수직적인 피붙이들의 명절이라고 한다면, 대보름은 개방적 집단적 수평적인 마을 공동체의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두 관념이 서로 엇갈리며 달의 생성과 소멸 주기에 따라 긴장과 이완, 어둠과 밝음, 나에서 우리로 교체 또는 확장되는 일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둥근달을 통한 풍요 관념의 실행이라 하겠다.대보름날에는 약밥 또는 오곡밥 먹기·묵은 나물 먹기·부럼 깨기·귀밝이술 등을 먹고 마신다. 풍년을 비는 기복행사로는 볏가릿대 세우기·복토(福土) 훔치기·다리 밟기·나무 시집보내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달집태우기·달불이·집불이·소밥주기 등을 행한다. 그리고 제의와 놀이로는 지신밟기·별신굿·안택고사·용궁맞이·기세배(旗歲拜)·쥐불놀이·오광탈놀음 등이 있다. 이 같은 행사들은 마을이라는 공동체의 이로움을 위한 집단행사라 할 수 있다.부럼 깨기는 오래 동안 광범위하게 전승되어 온 우리네 민속이다. 기록에 따르면, '옛 풍속에 정월 대보름날 호두와 잣을 깨물어 부스럼이나 종기를 예방하였다. 궁중에서는 임금의 외척들에게 견과류를 나누어 주었고, 시정에서는 밤에 불을 켜놓고 그것들을 팔았는데, 집집마다 사 가느라 크게 유행하였다.'고 적고 있다.이 같은 부럼 깨기는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주술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날밤·호두·은행·땅콩 같이 딱딱한 것을 이용하는데, 때로는 그보다 부드러운 무를 대용하기도 한다. 대체로 여러 가지를 함께 골고루 마련하여 가족 구성원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였다. 이 같은 견과류는 집집마다 보름 전날 미리 물에 씻어 준비해 두었다가 보름날 아침에 저마다 어금니로 힘주어 한 번에 깨물면서 "부럼 깨물자" 또는 "올 한 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안 나게 해 주소서" 한다. 이 같은 의례는 정초의 세시풍속인데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이 더해져 우리네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았다.귀밝이술은 대보름날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귀가 밝아지라고 마시는 술이다. 남자 어른부터 남자아이, 여자 어른과 여자아이까지 모두 마신다. 그러나 아이들은 술을 입술에 묻혀만 주고 마신 것으로 하였다. 그때 "귀 밝아라, 눈 밝아라" 하며 덕담을 하였다. 평소 술자리를 함께하지 못하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귀밝이술을 함께 마셨다. 그리고 술을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은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20-02-03 18:00:00

정석윤 교수

[기고] 누가 뭐래도 독도는 우리땅!

일본 정부가 22일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앞두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자료 등을 전시한 '영토·주권전시관'을 확장·이전해 우리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달 20일 도쿄 미나토구 도라노몬 미쓰이빌딩에서 개관한 이 전시관은 총면적(673㎡)이 구 전시관(100㎡)보다 무려 7배나 커졌다고 한다.특히 전시관 천장에 걸린 대형 지도에는 독도부터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이 모두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들어 있다는 일방적 주장과 일본 본토와 EEZ를 합친 영역을 '일본국'이라고 표시해 피해국들의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2003년 한국으로 귀화한 일제강점기 전문가 호사카 유지(保坂祐二·61) 교수는 우리 국민들의 독도 영유권에 관한 논리적 증거 미인식에 관해 따끔한 충고를 전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연구를 위해 한국으로 귀화를 결심했고, 현재는 일본이 자신들의 영토라 주장하는 독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독도지킴이'로 불리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이다. '한국인'이지만 그는 '호사카 유지'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그는 "한국인은 정서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인식은 강하지만 논리적인 부분과 실제 독도에서 실효적 지배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민 스스로 독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실효적 지배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독도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일본과 어떤 분쟁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우리에게 소중한 영토이며 자산이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과 지정학적인 면에서도 가치가 매우 높아 독도 주변의 바다는 명태, 오징어, 상어, 연어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많이 잡히고 바닷속에도 다시마, 소라, 전복 등 해조류가 다양하게 서식하며 상당량의 지하자원이 묻혀 있는 곳이다.그럼 실효 지배는 어떻게 더 강화해야 할까? 우리 땅 독도에는 주민이 살고 있다. 서도에 현재 3인이 거주하며 어업으로 생활하고 있고 동도에는 소대 병력의 독도경비대가 주둔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 지배력이 미약하다는 설이 대부분이다. 필자는 어업뿐 아니라 주민들끼리의 생산자 협동조합 단체가 결성되고 경비대원들이 준조합원이나 명예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국제적으로도 실효적 지배의 국제법상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농업 생산성의 증진과 농가소득 증대를 통한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조직된 농가 생산업자의 협동 조직체인 농업협동조합 결성이 어떨까?독도에서 직접 농업인 조합원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생산하고 준조합원·명예조합원이 로컬푸드 형식으로 바로 소비하고 나머지 농축산물을 상징적으로 서울뿐 아니라 해외의 대도시에 울릉도처럼 출하도 한다면 말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 통계조사인 '2016 세계 협동조합 모니터'에 따르면 농업협동조합 부문 순위에서 대한민국의 농협이 1위를 차지할 만큼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막강하다. 심지어 개발도상국 협동조합인들은 한국 농협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현실이다.우리 국민들의 논리적 사실 인지와 교육계에서의 지속적인 교육을 병행하고 가칭 '독도농협' 개설 등을 통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 일본의 어이없는 만행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20-02-03 15:22:31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세계의 창] 경제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문정부 소득주도성장이란 이름하에제도 변경해서는 안 되는 정책 실시기업 연구개발·설비투자 여력 약화경제성장 원천 훼손시키지 말아야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가 왜 존재하며,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 간의 차이가 장기적으로 확대 혹은 축소되는지, 어떻게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가는 경제학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이 중요한 연구과제에 답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세 가지 흐름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첫째, 경제성장이론의 연구로 처음 노벨상을 수상한 MIT대학의 솔로우(Solow)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조건이 주어진 상태에서 한 국가의 생산력 증가는 자본과 노동의 부존량과 이들을 결합시키는 방법인 기술에 의해 결정됨을 이론과 실증으로 보였다. 솔로우는 1인당 자본 장비율이 높고, 저축 성향이 높은 경제일수록 더 빨리 부유해진다고 보았다.201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로머(Romer)는 기술을 주어진 조건으로 보는 솔로우의 이론과는 다르게 기술 변화는 공공재적 성질과 외부성이 있는 인적자본과 지식자본의 축적에 의해서 경제 내에서 발생한다는 내생적 성장이론으로 확장하였다. 내생적 성장이론은 교육투자와 연구개발투자로 생긴 인적자본과 지식자본이 생산활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스필오버 효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로머의 이론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높고, 연구개발 투자가 큰 나라가 부유해진다고 할 수 있다.둘째, 슘페터(Schumpeter)는 그의 유명한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에서 경제 발전의 원천은 기업가 정신에 의한 창조적 파괴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슘페터를 계승한 진화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성장과 발전은 계속적인 기술 혁신과 끊임없는 새로운 기업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시대에 뒤처진 기업의 퇴출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슘페터와 그 후계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경제의 신진대사 기능 즉 효율성이 높은 기업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비효율적인 한계기업의 퇴출과 축소가 활발한 나라가 더 빨리 성장한다고 볼 수 있다.마지막으로 경제성장의 원천을 제도라고 주장하는 신제도학파의 경제성장이론이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Acemoglu and Robinson)의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에서 정치제도와 경제제도의 존재가 경제의 지속적인 번영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지리, 기후, 문화가 같으나 국경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 미국과 멕시코 마을의 확연한 빈부 차이, 서유럽과 동유럽의 차이, 그리고 산업혁명이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아니고 영국에서 발생한 이유 등의 구체적인 사례 비교를 통해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최초의 작은 제도적인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는 과정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우리와 북한의 현격한 차이도 신제도학파의 경제성장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신제도학파의 경제성장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 수준이 높고, 개방적이고, 규제가 적은 나라일수록 더 빨리 부유해진다고 할 수 있다.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경제성장은 위의 경제성장이론이 제시하는 경제성장의 방법에 철저하게 따랐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짧은 기간에 압축성장을 달성한 원천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으로 대표되는 기업가의 등장과 이들에 의한 과감한 투자와 신산업 진출, 민주화의 달성과 가장 개방적인 경제체제 등을 들 수 있다.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소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하에 입증된 경제성장이론에 배치되는 변경해서는 안 되는 제도를 변경하고, 하지 말아야 할 정책을 실시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예를 들어 산업, 지역, 직종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의 단축 그리고 법인세 인상, 회계감사제도의 변경 등과 같은 기업의 비용 부담을 증가시켜 효율적인 기업의 설비투자, 교육투자와 연구개발투자의 여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반면, 비용 증가분을 견디기 힘든 한계기업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해서 연명시키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성장의 원천을 훼손하지 않는 경제정책을 신중하게 실시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0-02-03 15:02:02

김득주 대구예술발전소 운영팀장

[매일춘추] 달의 주인은 누구일까?

밤하늘에 떠 있는 달에도 주인이 있을까? 어린 시절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은 달이 환하게 비춰주었고, 정월대보름에는 보름달을 보며 두 손 모아 간절하게 소원을 빌기도 하였고, 달 속에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으며 살고 있다는 천진난만한 상상으로 저녁 하늘 둥그런 달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예로부터 동양에서의 달은 어둠을 밝히는 존재로 기원의 대상이기도 하고, 꽉 찬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며, 이지러지고 차오르면서 변화하는 달의 모습은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긍정의 존재이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닐 암스트롱이 퍼스트 맨으로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장면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여전히 달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신비의 상징이기도 하다.세계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밤이면 볼 수 있는 달에도 주인이 있다면 믿지 못하겠지만 달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주인이 있다. 바로 미국인 데니스 호프이다. 달의 주인인 그는 심지어 전 세계 197개국에서 달 대사관을 운영하며 달에 있는 땅을 분양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그는 달을 소유하게 된 것일까?1967년 제정된 UN의 외기권 우주조약에 '우주 전체는 인류의 공동재산으로 특정국가의 소유권 주장이 금지된다'는 조항을 본 데니스 호프는 그 어디에도 '개인이 달을 소유할 수 없다'는 조항이 없음을 알고 UN 등 여러 곳에 자신이 달을 소유하겠다는 편지로 보내, 급기야 법원의 소송을 통해 달 소유권을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달을 가지게 된 그는 24달러의 가격으로 달에 있는 땅을 분양하기 시작했다. 우주여행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볼 수 없는 땅을 살까하는 기우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명 인사를 비롯한 나사 직원들도 달의 땅을 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들의 달 구입 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570만 명이 달의 땅을 구입하였다.과학자들이 우주를 끊임없이 탐구하듯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호기심의 대상인 신비한 우주의 행성 중 하나인 달을 24달러의 돈으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이 달을 구입하는 이유였으리라 생각된다.대구예술발전소 4층 벽면에는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달이 3m의 크기를 자랑하며 떠 있다. 달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벽면에 그려진 '문 플라워'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나만의 달 속에서 우주를 여행하는 행복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이다. 이번 정월대보름에는 예술발전소에 떠 있는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소원도 빌고 무상으로 마음껏 소유해 보는 행복한 상상을 즐겨보길 바란다.

2020-02-03 11:33:33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매일춘추] 예술이 죽어가는 사회  

예술은 창의적이고 환상적인 공상을 눈과 귀를 통해 초현실적 으로 그려내는 결과물이다.예술적 표현을 위한 창작 과정 중에서는 그들의 예술가로서 꿈꾸며 노력해온 나무의 굴곡진 나이테 같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 행위들이 많다. 변화하지 않는 현상을 부정하며 새로움을 찾는 탈근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계몽주의의 철학적 이론과 현상들이 바로 예술이 만들어지는 그들의 외침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적인 혼을 담은 예술행위를 통해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집념과 열정을 드러내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다시 예술적 혼을 불태운다.현대사회의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 그들은 때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의 행위자들로 지탄받기도 하지만 예술적 행위에 대한 평가는 예술의 황금시대였던 과거부터 늘 변화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19세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세잔은 살아있으면서 인정받지 못한 대표적인 화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숙한 양식의 발전과 입체파의 발전에 큰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사후에 평가를 받았고, 이런 평가가 절대적인 호응을 얻으며 세계적인 화가로 불려지고 있다. 이들은 부유한 삶을 살기 위한 목적보다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자신의 주관적 주장을 통해서 시대를 앞서 나간 탓에 대중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다. 예술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런 변화 속에 우리에게 존재해왔다.'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에 대해 한스 애빙은 예술가가 가난한 이유는 예술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예술가의 열정적인 활동을 위한 사회적 착취 구조와 저조한 문화 인식 때문이라고 하였다.예술은 사회에 필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지만 인색한 사회적 인식 구조 및 편향적인 경제시장으로 인해 그들의 작품 활동은 정상적인 수입을 벌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예술을 죽이는 이상현상이 현대사회에서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시장의 승자독식 구조의 편향화를 촉진하고 지나친 상업성을 통한 예술의 변질을 촉진시킨다.그럼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지원 방식으로 '팔 길이 원칙'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팔 길이 원칙'은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공공의 지원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현대사회에서 예술가들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는 이유는 예술시장 실패의 속성 때문이다.경제학적 관점에서 볼때 예술은 가치재이면서 공공재로서 인정된다. 하지만 이기적인 특정 집단의 지원금 획득을 위한 비상식적 행위로 인해 예술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트렌드라 불리는 쏠림현상의 가속화는 그들의 내적 예술혼을 변질시켰고 결국 사회가 예술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변질된 예술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지나친 상품화로 인해 예술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문화의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2020-02-02 16:01:0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이른 아침에] 대구는 문화도시 선정에 왜 탈락했는가?

대구시 추진한 문화도시 사업 대구만의 정체성 보이지 않아 문화를 통한 균형 발전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와 맞지 않아지난 세밑, 제1차 문화도시 선정 결과가 발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예비도시로 선정되었던 10개의 도시 중 7곳은 통과되었고 김해시와 남원시, 그리고 대구시는 탈락했다. 선정된 도시들은 최대 100억원씩의 국비를 지원받게 된다. 특이하게도 대구시는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총괄할 본부장을 결과 발표 바로 직전에 공개 채용했다. 심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럴 거면 진즉에 뽑았어야 했다. 아니면 결과를 지켜본 후에 하든지, 어쨌든 대구는 떨어졌고 그 바람에 더욱 낭패를 당했다.그리고 지난주, 대구시가 문화도시 추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예비도시에만 주어지는 한 번의 재도전 기회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사업의 성격상 대구시가 직접 하는 것보다 구·군 단위에서 일을 추진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설명도 덧붙였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름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왜 탈락했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먼저, 다른 도시들이 모두 기초단체였던 데 비해 대구는 광역시였기 때문에 떨어졌을 거라는 말이 있다. 즉, 부잣집(광역단체)보다 가난한 집(기초단체) 먼저 지원해주자는 정부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대구가 너무 원칙대로 일을 추진한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사업의 취지에 맞게 시민 중심으로 일을 꾸려가다 보니 진척이 더뎌졌고 그래서 행정기관이 나서 밀어붙인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민 중심을 강조해 놓고 정작 심사에는 제대로 반영을 하지 않은 문화부의 잘못이 크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더해 지역 차별을 당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야권 지역인 대구를 홀대해서 그렇게 되었을 거라는 의미다. 차라리 이런 말들이 진짜였더라면 마음은 더 편할지 모르겠으나 모두 잘못된 이야기다.대구시가 문화도시 선정에서 떨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 계획과 방향이 정책 목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의 문화도시 조성사업,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문화도시 대구'라는 제목에서부터 '대구만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대구'를 빼고 다른 도시의 이름을 써 넣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대구의 정체성이 빠졌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시민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추진 과정을 살펴보면 그렇다. 소위 활동가들만 빼곡하다. 그래서 문화도시 추진을 시민 중심으로 했다는 이야기는 시민과 문화단체를 혼동했다는 소리로 들린다. 재차 이야기하지만 대구가 문화도시에 떨어진 이유는 잘못된 답을 냈기 때문이다. 정부가 원하는 일 즉, 시와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이 사업에 참여한 소위 문화기획자, 예술가, 문화 활동가, 그리고 그 단체들에 혜택이 돌아가는 일들로 사업 내용을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한 지역의 문화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인 동시에 그 지역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하지만 지역 간의 소득 격차가 문화 격차를 낳고 그것이 다시 경제적 격차로 이어지는 일들이 오래도록 반복되었다. 산업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수도권의 문화 자원은 다른 모든 지역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종당엔 '문화가 꽃피는 나라'의 꿈마저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이런 까닭에 지난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법정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이를 기반으로 나온 지역문화진흥책 중 하나다. 그 정책 목표를 개략해 보면 '문화를 통한 균형 발전과 성장', 그리고 '문화를 통한 공동체 활성화 및 사회혁신 제고'가 된다. 지역민 스스로 문화의 생산, 공유 및 확산의 주체가 됨으로써 지역을 움직이는 새로운 시스템과 동력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잘 되려면 정부 못지않게 해당 지역 또한 이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도시를 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는 그 정책 목표에 맞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게 먼저다. 그러니 대구시는 '문화도시 선정에 왜 탈락했는가?'를 제대로 되새겨 봐야 한다. 그런 다음, 문화도시에 도전하는 대구의 구·군들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지난 실패가 의미 없는 손실이 되지 않는다.

2020-02-02 15:44:31

정웅기 대구경북연구원 스마트공간연구실 연구위원

[기고] 대구도 중앙버스전용차로 도입해야

대구 시내버스는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으로 시민의 발이다. 2018년 시내버스의 연간 수송 실적은 6억3천만 명으로 도시철도(4억4천만 명)보다 43% 더 많다. 시내버스는 요금이 저렴해 경제적이고, 지상에서 승하차하기 때문에 교통 약자가 이용하기에 편리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시 시내버스 이용자는 2011년 8억1천만 명에서 2018년 6억3천만 명으로 최근 7년 동안 22.2%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자가용 승용차 이용자의 시내버스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중앙버스전용차로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정책은 자가용 통행을 억제하고 시내버스에 통행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시내버스 이용 활성화를 도모하는 대표적 정책이다. 버스전용차로는 통상 가로변 버스전용차로와 중앙버스전용차로로 구분되며, 가로변 버스전용차로는 대구를 비롯해 서울, 부산, 인천, 대전, 광주 등 대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다. 중앙버스전용차로는 서울, 대전, 부산, 인천 등에서만 운영 중이다.대구의 가로변 버스전용차로는 20개 구간, 117.2㎞이고, 중앙버스전용차로는 동대구역 주변 매우 짧은 1개 구간(길이 0.56㎞)이 운영 중이다. 가로변 버스전용차로의 경우에는 우회전 차량과의 마찰로 중간 단절 구간이 많고, 운영시간도 짧아 운영 효과도 미약한 실정이다.중앙버스전용차로는 가로변 버스전용차로의 문제점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으로 브라질 쿠리치바'상파울루, 영국 런던, 미국 보스턴'LA, 일본 도쿄'나고야, 중국 쿤밍, 대만 타이베이 등 세계 50여 개 도시에서 운영 중이다.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비교적 장거리 교통축에 적절하고, 역 주변 등 만성적 교통 혼잡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유리하다.서울의 중앙버스전용차로는 2017년 현재 12개축 117.5㎞, 부산은 1개축 6.7㎞, 대전은 4개 노선 93.6㎞(광역 85.5㎞, 도시 내부 8.1㎞)를 운영하고 있으며, 운영 효과로 버스 평균 통행 속도가 서울의 경우 81.8%, 대전은 27%, 부산은 30% 증가했고, 중앙버스전용차로 구간의 버스 이용객도 20% 정도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대구시에서도 버스전용차로의 효율성 향상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문제가 많은 기존 가로변 버스전용차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전용차로 연속성 개선과 공급 및 운영시간대 확대,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강력한 단속 및 홍보 강화, 전용차로 구간의 인식 증대를 위한 정보 제공 강화, 전용차로 구간에서 실선 구간 비율 확대 등의 추진이 필요하다.그리고 가로변 버스전용차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앙버스전용차로 확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버스전용차로 설치 기준에 맞는 차로 수, 버스 통행량, 노선 수, 승객 수, 연속성, 효율성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그중 특히 버스 통행량이 많고, 교통 정체가 심각하며, 가로변이 학원차량, 불법주차 차량, 택시 등으로 인해 가로변 버스전용차로의 기능을 전혀 못하는 구간에 대해 우선적 도입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중앙버스전용차로에 대한 충분한 의견 수렴과 더불어 체계적인 교육·홍보 시스템 구축과 버스전용차로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관련 DB 및 관리 시스템 구축 및 운용 등도 관심을 두고 체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당부한다.

2020-02-02 15:37:41

종이에 채색, 34×28.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신사임당(1504~1551) '수박과 들쥐'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수박과 들쥐'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 씨는 산수, 묵죽, 포도, 난초 등 여러 종류 그림을 그렸다고 하고 전칭작도 여럿 전한다. 그러나 어느 그림이 과연 사임당의 작품인지 확정할 기준작은 없다시피 한데 이런 사실은 일찍이 동주(東洲) 이용희(1917-1997) 선생이 지적한 바다. 율곡선생은 어머니의 일대기를 쓴 「선비행장(先妣行狀)」에서 "어머님께서는 늘 묵적(墨迹)이 남다르셨다. 7세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마침내 산수화를 그리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였고, 또 포도를 그리셨다. 모두 세상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것으로 그리신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많이 전한다."고 했다. 병풍이나 족자로 표구해 간직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임당의 그림이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사임당은 생전에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고, 여성으로서 화명(畵名)이 거론된 이례적 존재이다.'신사임당 초충도'는 여러 점이 전하는데 '수박과 들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8폭 중 한 폭이다. 채색법이 여성의 감각이라고 느껴지는 점이 있고, 형태 묘사는 전문적인 화가의 솜씨라기보다는 아마추어의 필치로 보이며, 소재가 일상적인 것이라 보고 그렸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운동감이 없고 정적이며 장식적인 점도 눈에 띤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소재를 아기자기하게 구성해 보는 재미를 주는 그림임에도 묘하게 품위가 있는 점도 특징이다.'수박과 들쥐'는 수박과 넝쿨, 패랭이꽃, 나비 두 마리, 쥐 두 마리를 화면 중앙에 꽉 채워 그렸다. 커다란 수박을 파먹고 있는 들쥐 두 마리도 마주보고, 나비 두 마리도 마주보고 있어 대칭 구도의 안정감이 강하다. 수박과 함께 바닥에 있어야 할 수박넝쿨이 위로 들어 올려져 나비와 같이 공중에 그려진 것은 회화적 공간에 대한 인식과 훈련이 없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다. 땅을 지평선으로 그려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임당의 초충도가 실물을 보고 그린 사생화가 아니라 자수도안의 본(本)그림일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율곡선생은 어머니가 그림 뿐 아니라 글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썼으며 바느질도 잘하고 수놓기까지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했다.화가 사임당은 아들이 언급한 산수, 포도가 아니라 초충도로 인식된다. '신사임당 초충도'는 18세기 회화 문화의 한 양상이며, 그 연원은 송시열을 비롯한 율곡학파에 의해 초충도가 사임당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설정되고 일종의 문화자본을 형성하게 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연구가 2013년 고연희 교수에 의해 나왔다. 아들이 획득한 대학자로서의 위상으로 인해 사임당은 화명을 남길 수 있었지만 동시에 화가 사임당은 재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거의 유일한 여성화가인 사임당과 그녀의 회화사적 의미, '신사임당 초충도'를 어떻게 자리매김해야할까. '신사임당 초충도'가 역사적 합리성을 가진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2020-02-02 06:30:00

박진용 언론인·전 매일신문 논설실장·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역사 저술가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시사 유감

세상을 바라보는 매일신문의 시각, 디지털에서도 쭉 이어집니다. 매일신문은 2월부터 '디지털 필진'을 통해 매일신문 홈페이지와 네이버 모바일 등을 통해서 다양한 주제의 칼럼을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달합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를 넘나들며 시니어 세대의 차분한 시선과 젊은 필진의 톡톡 튀는 시각을 함께 제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매일신문 지면이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2020 세상 읽기]를 통해 느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언론인의 가장 큰 매력은 세상을 자신의 주견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주목을 받는 공인이 아니어서 행동거지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나이의 장벽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다. 필자가 70을 앞두고 칼럼 집필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언론인의 무한정년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다. 그러나 언론 현업을 떠난 지 이미 10여년, 이제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만으로 글을 채울 수 있을 뿐이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을까마는 늙은 쥐가 독 뚫는다는 속담도 있으니 노병의 한마디 참견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것 같다.언론 뉴스의 대부분은 지난 7일 또는 10일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보도와 논평이 주를 이룬다. 그 내용은 무슨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두 가지다. 요즘의 우한(武漢) 폐렴과 문재인 정권의 괴변들이 그런 주제라 할 수 있다. 지난 몇 개월간 대한민국은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변란기사들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사안이 너무 많고 복잡해 늙은 쥐도 주머니 뒤집듯 진상을 보여주기 어려운 형편에 이르렀다.변란기사의 출발점은 문 정권 시작부터였지만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증세가 험악해졌다. 급기야 작년 12월 새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를 신호탄으로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사태가 본격화됐다. 한 달에 한두 건도 감당하기 힘든 변란기사들이 밥 먹듯 잇따르고 있으니 이는 정권 파국의 조짐이 아닐 수 없다.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자유민주국가의 좌파나 우파, 보수나 진보의 문제라면 지금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어렵다. 좌우나 보진은 이념적 지향은 달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변란기사의 근원은 문 정권이 유사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데 있다. 대통령의 아바타인 전 법무장관 조 아무개 씨가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주의를 시인하고, 이 정권의 역사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 대신 (인민)민주주의를 내세운 것으로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인민민주주의는 사회주의로 가는 전 단계의 정치체제다. 추 아무개 법무장관이 지난 시절 당 대표를 할 때 토지 공개념을 언급한 것은 그 전초전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떤 범여 위성정당 대표는 국민들은 선거법을 세세히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인민투표가 요식행위에 그치니 가재, 붕어, 개구리는 투표만 할 뿐 선거의 과정이나 결과를 알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일까. 국민 협박?에 능숙한 집권당 대표도 20년 집권을 공언했으니 그것이 사회주의 체제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면 오만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변란기사 다발의 상황적 이유는 민주제도의 기본인 삼권 분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입법부(집권당 및 범여 위성정당)는 행정부의 배후세력이라는 점에서 권력분립을 잠시 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그들이 지난 70년간 쌓아온 의회주의 전통을 무너트리고 의회를 무법천지로 만든 사실에 대해서는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문제는 헌정질서와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면서 민주제도 전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김 아무개 대법원장은 사조직 세력을 법원 요소요소에 포진시켜 이심전심 뇌물죄로 기업과 전 정권을 옭아매고, 부정선거를 획책한 중죄인을 풀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입법부, 사법부가 이 모양이니 행정부가 거리낌 없이 무법천지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변란기사를 막을 또 하나의 민주제도가 국민여론을 수렴해서 공표하는 언론이다.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의 감시기능이 살아있다면 유사 사회주의를 제어하는 것은 물론 정권의 정당성까지 박탈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 정권은 집권과 동시에 주력언론인 공영, 민영 지상파 방송을 유사 관제방송으로 만들어놓았다. 관제방송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 나타나는 언론현상이다. 그 결과는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다. 2019년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 시청률은 2011년의 반 토막(KBS 10.1%, SBS 5.6%, MBC 4.0%)으로 추락했다. 반 토막 시청률은 지상파 방송 신뢰도의 폭락을 의미한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방송언론 책임자들은 언젠가 국민을 배신한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다.문 정권은 입법부, 사법부, 관제언론(여기에는 여론조사회사도 포함된다)을 배후 세력으로 소수의 정론매체, 1인 매체들을 여론시장의 주변으로 내몰고 있다. 그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 소위 가짜뉴스와 인권이다. 뉴스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진짜와 가짜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물건이다. 진실을 지향하지만 진실을 보도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언론에 뉴스를 제공하는 측이 사악한 의도로 접근하면 적어도 일정기간은 거짓으로 진실을 덮을 수 있다. 그런 나쁜 의도를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부류는 주로 권력을 가진 자 또는 집단이다. 이들이 가짜뉴스의 주 생산자다.미국 시민단체가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완전 가짜, 가짜, 대체로 가짜, 가짜와 사실 반반, 대체로 사실, 사실로 구분한 것은 필자의 언론 상식과 부합한다. 이런 잣대로 분석한 트럼프의 발언은 85%가 가짜였다. 문 정권의 발언을 분석해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문 정권의 가짜뉴스가 트럼프의 그것보다 훨씬 고약하고 악의적이라는데 있다. 정부여당이 소위 가짜 뉴스를 공격하는 것은 큰 도둑이 선량한 시민을 때려잡는 적반하장으로 들릴 뿐이다.유사 사회주의 세력은 가짜뉴스와 함께 인권을 언론 재갈 물리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자유국가의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모든 공인들은 늘 국민들의 감시 아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의 안위와 국민들의 생사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의 알권리가 필요한 것이고, 그 역할을 언론이 대신하는 것이다.공인의 인권이 갖는 사적 이익은 국민의 알 권리가 갖는 공적 이익에 비해 티끌에 불과하다. 공인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막중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윤리성, 정당성, 직무능력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야할 책무가 있다. 그 때문에 공인에게는 가정이라는 공간 내부의 사생활이나 약간의 명예훼손 방어권이 주어질 뿐이다. 가족 등 그 주변인물 역시 준(準)공인으로서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그런 부담을 거부하는 이들은 공인이 돼서는 안 된다.조 아무개 전 법무장관의 다중비리 사건과 이어진 각종 국기문란 사건의 처리에서 문 정권은 이런 상식을 완전히 벗어났다. 소위 인권을 명분으로 국민들의 정당한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침탈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헌법, 법치주의를 조롱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면서 무법천지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좌파정권이 들어선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이 사태는 역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전기를 만들었다. 엄청난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대한민국의 자각은 비뚤어진 위정자들을 더욱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수호청의 신설, 대통령 감시법, 국회의장 감시법, 대법원장 감시법, 공영언론감시법, 거짓말 방지법 등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요즘이다.박진용 언론인·전 매일신문 논설실장·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역사 저술가

2020-02-01 09:00:00

송석화 메시지 캠프 대표

[광장] 통합된 조직 정체성이 없다

커뮤니케이션은 나무와 같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나무의 몸통이 먼저냐, 가지가 먼저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몸통을 정점으로 가지치기를 해야지, 가지에서 자라난 나무는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의 다양화로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MC, 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은 일종의 유행이 됐다. 하지만 매체별 통합을 강조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진정한 의미는 메시지의 통합임을 주지해야 한다.우리는 왜 커뮤니케이션을 통합해야 하는가. 이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시민 또는 고객들은 슬로건을 통해 행정기관이나 기업을 인식한다. 조직의 정체성(identity)을 드러내는 방법인 것이다. 예를 들면 A지방자치단체는 '아늑하고 편리한 서비스', B지방자치단체는 '맞춤형 친절 행정 서비스', C지방자치단체는 '친절은 내부 직원의 행복에서 비롯된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모두 친절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지만, 친절에 대해 미세하게 다른 관점이 스며들어 있고 실천 방향까지 담겨 있다. 또 해당 기관의 존재 목적과 타깃을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화자와 청자 간의 약속이다. 슬로건에서 말하는 목표에 따른 실천이 병행되어야 조직의 신뢰성이 담보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는다. 또한 장기간 누적된 결과이기 때문에 그 효과가 한순간에 나타나지도 않지만 한순간에 사라지지도 않는다.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성공하려면 일관성 있는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로 승부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제품의 장점이 많으면 그에 대한 평가도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용가능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연구에 따르면 10개의 장점을 떠올리게 하는 것보다 1개의 장점을 답하도록 한 집단의 평가가 더 긍정적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생각만 하려는 '인지적 구두쇠'의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많은 메시지를 던져봐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기관의 입장에서는 여러 개의 핵심 가치를 내세우고 싶겠지만, 장점을 나열하는 방식으로는 고객을 설득하기 어렵다. 우선순위에 따른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브랜드들은 오랫동안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 왔음을 알 수 있다.대외 커뮤니케이션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대내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실무자들이 핵심 가치를 내재화하고 공유할수록 조직은 한 방향을 향해 추진력 있게 나아갈 수 있다. 개코원숭이의 부하 원숭이들은 20~30초마다 두목 원숭이를 쳐다본다고 한다. 그만큼 리더는 직원들의 관심 대상이다. 리더가 보여주는 핵심 가치에 대한 말과 행동, 그에 따른 일관성은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자신의 지위만큼 보는 눈이 생긴다. 직원들은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목표지만 리더는 전체를 봐야 한다. 고급스러운 명품과 저렴한 가격처럼 개별 부서의 목표는 때때로 상충된다. 담당자들이 자기 부서만을 고려한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 조직의 핵심 가치에 맞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도 리더의 몫이다.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리더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를 보기보다 전체 숲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에도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2020-01-31 19:11:10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춘추 칼럼] 너무 애쓰지 말자

재테크'교육'다이어트'독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빡세게' 살아하고 싶은 목록을 늘리는 대신에 하고 있는 일들을 조금씩 줄이자계획 세우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갈 때도 꼼꼼하게 일정을 짜기보다는 일단 떠나는 것에 의미를 두는 편이다. 경자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일 년을 열두 달로 나누게 되면 벌써 12분의 1이 흐른 셈이다.작년에는 1월에 최소한의 계획 같은 걸 세웠다. 왠지 모르게 올해에는 잘 세우지 않던 계획을 그나마도 미루고 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지 모를 막연함이 존재한다.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계획을 세우려 한다. 업무 차원은 일단 제외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가장 앞서는 일은 책을 꾸준하게 읽는 것과 건강을 위한 운동이 될 듯하다. TV를 거의 안 보는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책 읽기는 삶의 새로운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운동은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 걷기, 계단 오르기, 아이들과 축구하기 등이다. 대부분 일상의 간단한 것들이지만 정작 하지 않고 있던 것들이다. 그 외에도 커피를 조금 줄이고 물 자주 마시기, 묵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을 돌아보는 시간 갖기 등도 포함해야겠다. 지면을 빌려 이렇게라도 말해 놓으면 조금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 믿음으로 하나씩 실천해볼 생각이다. 이 정도만 잘 하더라도 성공적인 한 해가 될 것 같다.평소 잘 하지 않던 일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온몸으로 경험하지 않았던가. 조금씩, 하나씩 하면서 바꿔 나가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최근에는 독서도 '빡세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잘못된 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비전을 가져서 성공적인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빡세게' 하는 것은 그 하나의 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 전체를 '빡세게' 만든다. 빡빡한 삶이 아니라 조금은 헐렁한 삶이어야 타인을 대하는 것도 유연해지지 않을까.흔히 계획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할 일'과 '하지 않을 일'. 위에서 열거한 내용들은 올해 내가 '할 일'이고, 금연이나 금주와 같은 것들은 '하지 않을 일'에 해당한다. 얼핏 보면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정반대의 두 가지 특징이 동시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둘은 하나다.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은 모두 '애쓴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한쪽으로 힘껏 끌어당기는 일이다.지금 우리 주변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서로 애쓰면서 정작 승자는 없는 구조이다.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는 재테크나 교육, 다이어트, 심지어 독서까지 적당히 하자는 말은 없고 '빡세게' 하는 것투성이다. 그렇게 힘쓰다 보면 또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애쓰는 형국이다. 차라리 애쓰지 않고 가만히 두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내가 올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사소한 것들을 '계획'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계획을 조금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기 위해 애쓰지 않기, 힘쓰지 않기, 이 악물지 않기 등이 필요하다. 그 대신에 그냥 가만히 바라보기, 곁에 서서 지켜보기, 충고나 참견하지 않기, 아무 말 하지 않기, 앞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기, 스치는 바람결 느끼기, 풀과 꽃의 향기 맡기, 온몸으로 햇살 받기 등은 어떨까.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충고하지 않아도 참견하지 않아도 그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신경 쓰고 개입하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필요하다.너무 애쓰지 말자. 그리고 하고 싶은 목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을 줄이자.비닐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과도하게 섭취하는 음식을 줄이고, 불필요한 물 사용을 줄이자. 습관적으로 하는 욕을 줄이고, 타인을 공격하거나 혐오하는 일을 줄이고, 다양한 이유로 차별하는 언어와 행위를 줄이자. 지금 우리는 충분히 누리고 있고, 너무 많은 것들을 갖고 있고,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조금씩만 줄이자.

2020-01-30 15:50:37

박신한 대구지방보훈청장

[기고] 국민이 체감하는 보훈

1961년 원호처 창설과 함께 시작된 국가보훈은 나라 경제 성장과 더불어 꾸준히 발전해 왔다. 단순히 전사상자를 구호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체계적 보상과 예우, 애국정신 선양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확대했다. 나라를 되찾은 '독립유공자', 나라를 지킨 '참전유공자' 그리고 나라를 바로 세운 '민주유공자'에 이르기까지,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그러나 여전히 많은 아쉬움이 남고 국가유공자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국가보훈처는 2020년 새해를 맞아 보훈 가족들이 일상에서 체감하고 국민들이 공감하는 성과 창출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아울러 올해가 봉오동·청산리전투 승리 100주년, 6·25전쟁 70주년, 2·28민주운동 60주년으로 독립·호국·민주의 10주기가 모두 어우러진 의미 있는 해임을 감안, 이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기 위한 '국민참여형 보훈 기념사업'을 통해 국민 통합에 기여할 계획이다.다양한 보훈정책이 올해를 기점으로 달라진다. 먼저 국가유공자와 가족에 대한 보상금을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5%로 인상하고, 복잡한 상이등급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편한다. 또 보훈가족 중 생계가 곤란한 분들에 대한 생활 지원 대책을 적극 검토하고, 보훈병원 시설을 개선하며 집과 가까운 병원을 대신 이용할 수 있도록 시·군별 위탁병원을 추가로 지정하는 등 국가유공자들의 건강한 노후를 위한 의료 지원을 개선하기로 했다.이런 보훈정책이 우리 지역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펼쳐지고 그 성과를 지역민과 보훈가족이 체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몇 가지 다짐을 해본다.첫째, 더 친절하고 더 정성을 다해 섬기는 최고의 보훈 민원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둘째, 보훈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고 민원 현장으로 찾아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셋째, 모든 민원을 법령과 관례에 우선시 하는 것에서 탈피해 보훈 민원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조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넷째, 지역적 특성이 가미된 다양한 보훈 선양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용기있게 일어나 역사의 물꼬를 텄던 대구경북민의 나라사랑 정신이 지금을 사는 시민,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계승돼 대구경북의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겠다.우선 정부 수립 후 첫 민주화 운동으로 4·19의 도화선이 됐던 2·28 민주운동 기념식을 품격 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국가 행사로 만들고, 대구시, 2·28 민주운동 기념사업회와 함께 다양한 행사를 추진해 대구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민주화 운동의 의미와 가치가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할 것이다. 또한 6·25전쟁 70주년 기념행사는 낙동강 방어선, 최후의 보루로 나라를 지켜낸 우리 지역의 특성과 참전 용사들께서 함께하는 마지막 10주기 행사라는 의미를 담은 다양한 행사를 대구시, 경상북도와 함께 적극 추진하겠다.다섯째, 국내 유일의 독립유공자 전용 국립묘지인 신암선열공원을 그 위상과 품격에 걸맞도록 시설과 환경을 종합계획에 따라 개선, 보완해 대구시민의 긍지가 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보훈은 애국의 출발이자 원천이다.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보훈이야말로 국민 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지역민들이 체감하고 공감하는 보훈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0-01-30 15:49:46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젊은 비평가의 슬픔

예술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17세기 이전에는 비평의 역할은 거의 없었지만,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 등장하면서 비평은 예술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초기 비평의 주된 역할은 '판단' 혹은 '평가'였다. 이와 같은 요소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고, 이에 기반하여 비평은 그 권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정치적인 문제를 비롯한 '주례사 비평' '암호문 비평' 등이 난무하며 비평의 권위는 추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평의 위기와 함께 비평은 '판단'이나 '평가'보다는 '해석'과 '번역'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즉 현대의 예술 비평은 판단을 통해 하나의 의미로 귀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한 부분을 찾아 숨어있던 의미를 도출하여 예술을 무한하게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이와 같은 비평의 모습과 비슷한 구조가 SNS에서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SNS는 다수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형태를 띤다. 게시물 작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항목은 '이미지'와 '글'인데 스스로가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어떤 이미지나 글을 함께 게재하며 불특정한 대상과 소통한다.지나칠 법한 일상이나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공유하려는 태도는 비평과 유사하다. 이렇듯 청년들은 너무나도 쉽고 자유롭게 글을 쓰며 서로 소통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술 비평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불편해하며 기피하고 있다.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 익숙한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청년 예술인의 비평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짧은 견해로 크게 두 가지를 들어본다면 먼저 비평가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과 글을 기고(공유) 할만한 매체가 없다는 것에 있다.청년작가들에게 늘 제기되는 경제적 불안은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오히려 비평가에 비해 청년작가는 안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각종 공모전이나 지원프로그램 등은 청년작가들에게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지만, 이에 반해 비평가를 위한 제도나 장치는 거의 전무하다. 하물며 기존의 비평가들 역시 비평만을 통한 경제적 생활은 대부분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비평의 위기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시대가 변하면서 기존의 직업들이 사라지거나 통합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 지켜봤기에, 비평가라는 직업 또한 그 형태가 변하고 있는 과도기일 것이다. 비평가라는 직업이 작가, 기획자, 갤러리스트 혹은 다른 직업군과 병합되더라도(혹은 병행할지라도) 비평은 꾸준히 예술과 함께 지속될 것이다. 근래에는 없었던 직종의 예술인들이 종종 생겨나고 있다. 이와 함께 각자만의 전략을 통해 비평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이 더욱 많아져 건강한 예술계가 구축되길 기대한다.

2020-01-30 13:53:36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찬란한 예술의 기억] 빛바랜 지면에 담긴 찬란한 기록들

연초 서울 출장길에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들러 '한국 미술잡지의 역사전'을 관람했다. 이곳에서는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창간된 미술잡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917년 나온 '미술과 공예' 1·2호를 비롯해 북한에서 나온 '미술' 등 희귀한 옛 잡지에서부터 최근 잡지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특집기사로는 국내 미술계 주요 이슈의 변화를, 게재된 광고들을 통해서는 국내 기업의 변천과 시각 디자인의 변화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잡지에는 발행처와 출판물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내용의 글이 실린다. 수십 년이 된 잡지를 한자리에 모아보면 시대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 잡지는 각 장르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료다. 잡지의 광고를 통해서는 해당 잡지를 후원한 기업이나 단체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대구의 경우는 어떨까. 광복 이후 대구에는 '죽순'(竹筍)이라는 문학잡지가 있었다. 죽순시인구락부가 1946년 5월 창간한 '죽순'은 광복 이후 발간된 최초의 문학동인지다. 대구에서 창간됐지만, 전국의 시인들이 집필에 참여하면서 높은 위상을 자랑하기도 했다.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청록파의 박두진, 조지훈 시인도 작품을 발표했고, 김춘수, 신동집, 이응창, 이효상 등 유명한 문인들이 참여했다. '죽순' 제8집에는 달성공원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상화시비의 건립 과정과 사진자료가 담겨 있다. '죽순'을 통해 해방 이후 대구 문단의 굵직한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죽순' 잡지들은 대구문학관에 보관되어 있다.또 대구가 '6·25전쟁 속에서도 음악소리가 이어지던 도시'였다는 기록은 미국 음악잡지 '에튜드' 1953년 10월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가 쓴 기사 내용과 사진을 통해, 당시 대구 중구 향촌동에서 운영되던 클래식 음악감상실 '르네상스'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이 기사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에서 진지한 음악의 잔재라 할 만한 거의 모든 것이 여기에 남아 있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기사가 실린 '에튜드' 잡지는 대구음악협회가 2018년 여름, 인터넷 경매를 통해 확보해 보관 중이다.대구에서 발행된 종합 문화예술 잡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함과 동시에 대구예총이 출범했다. 예술 장르별 10개 지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구예총이 '대구예술'을 정기적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대구예술'은 창간 초기 연간으로 발행되다가 1991년부터 월간으로 바뀌었고, 1999년 이후 폐간과 복간을 거듭하다가 2010년부터 계간지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대구예술'을 한자리에 모아보면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대구예총과 10개 지회의 역사와 작고 예술인들의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이전의 지역 예술사와 관련된 기록들도 상당히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그런데 안타깝게도 1980년대 '대구예술'이 거의 유실됐다. 1990년대 '대구예술'도 거의 유실됐다가, 최근 지역의 한 미술평론가가 개인적으로 보관하던 것을 대구시와 대구예총에 공유하기로 결정하면서 부족한 호가 상당 부분 메워졌다.1985년 12월부터 대구시가 발행해온 월간 문화예술정보 잡지 '대구문화'는 결호 없이 이어져왔고, 다행히 한 권도 빠짐없이 보관돼 있다. 2017년부터 종이 책자 외에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서도 서비스되고 있다. '대구문화'와 함께 '대구예술' 잡지가 한데 모여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서비스되면 지역의 문화예술 연구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최근 몇몇 원로예술인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1980년대 '대구예술' 3권을 찾았다. 대구예총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캠페인을 벌여 '대구예술' 결호를 모을 계획이다. '대구예술'이 다 모이면, 민간에서 발행된 다른 잡지들도 수집할 계획이다. 대구가 남긴 '찬란한 예술의 기억'을 간직한 잡지들, 그렇지만 어느새 숨 가쁜 사회가 흘리고 간 유산이 되어버린 문화예술 잡지 모으기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린다.

2020-01-29 18:00:00

김태훈 대구 영남중 교사

[대구 옛 이야기] 대한광복회, 대구 달성공원서 결성

대한광복회는 1915년 8월 25일(이후 날짜 양력) 조선국권회복단의 박상진과 풍기광복단의 채기중을 중심으로 달성공원에서 결성되었던 독립운동단체였다. 조선국권회복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 조달, 유림단의 독립청원서 전달, 독립군을 양성할 청장년 모집에 힘을 기울였고, 반면 풍기광복단은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대한광복회 총사령관이었던 박상진(1884~1921)은 울산시 북구 송정동에서 출생하여 백부에게 입양된 후, 경북 경주시 외동면 녹동리에서 성장하였다. 전기의병 당시 김산의진을 일으켰던 왕산 허위(1855~1908)의 제자가 되었고, 상경하여 양정의숙 전문부 법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중국 톈진(天津)을 방문하여 무기를 구입하였고,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의 주선으로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는 이준을 만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허위가 강화에서 거병하였을 때 군자금 5만원과 무기를 제공하였고, 영덕에서 영릉의진을 이끌었던 신돌석뿐만 아니라 군자금을 모으다가 발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던 김좌진과 각각 의형제를 맺기도 하였다.박상진은 허위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자, 스승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고, 융희 황제가 남쪽으로 순행할 당시에는 동래온천에서 매국노를 처단하려다가 적발되어 실패했던 적도 있었다. 이후 박상진은 신민회에 가입하여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만주·상해·연해주 등지를 답사하는 동안 신해혁명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만주에서 돌아온 박상진은 여러 동지들과 논의한 끝에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였다.대한광복회는 전국적으로 8명의 지부장을 임명하였고 국내외에 연락 기관을 설립하여 대부분 곡물상 상업조직으로 위장하였다. 국내에는 상덕태상회(대구)와 대동상점(영주)을, 만주에는 안동여관(신의주)·삼달양행(단둥)·상원양행(창춘)을 통해 군자금을 마련하고 독립운동 연락 거점으로 삼았다.대한광복회 지휘장 권영만과 우재룡은 군자금을 확보하고자 1915년 12월 24일 경주 광명리에서 우편 마차를 습격하여 경주·영덕·영일 지역에서 거둔 세금 8천700원을 탈취하였다. 한편, 대한광복회 부사령관 이진룡은 1916년 10월에 운산금광 현금 수송 마차를 공격하여 6명을 사살하고 체포되었는데, 그의 후임으로 김좌진이 임명되었다. 그 밖에도 직산금광·상동금광을 습격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이후로도 대한광복회는 1916년 9월 3일 서우순의 사위였던 김진만을 앞세워 서우순을 협박하여 군자금 모집을 시도하였으나 좌절되었는데, 이를 '대구권총사건'이라고 부른다(조선국권회복단도 참여함). 더 나아가 김좌진은 1917년 5월을 전후하여 중국 단둥에서 중국 지폐를 위조하여 이를 정화(正貨)로 바꾸어 사용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무산되었다.대한광복회는 의열투쟁에도 심혈을 기울였는데, 황해도 지부원들은 1916년 7월 무렵에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단둥과 창춘에서 암살할 계획을 추진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친일 부호 중에 칠곡의 장승원, 벌교의 서도현,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를 처단하였다. 박용하를 암살한 직후인 1918년 1월 말부터 대한광복회 회원들이 검거되기 시작하여 2월에는 박상진이, 8월에는 채기중이 체포되었다. 이후 채기중은 1921년 7월 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박상진은 그해 8월 11일 대구감옥에서 사형 순국하였다.현재 달성공원에는 대한광복회를 결성했던 장소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다만 박상진의 스승이었던 '왕산 허위선생 순국기념비'가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대구시 북구 검단동에는 채기중을 기리는 '의사 소몽 채기중 순국기념비'를 찾아볼 수 있다. 대한광복회는 공화주의와 복벽주의(군주국가로 회복하려는 사상)의 상반된 이념을 가졌던 인물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협력하여 헌신했다는 측면에서, 좌우 대립 혹은 진보·보수의 대결로 양분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01-29 17: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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