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세계의 창] 보수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를

[세계의 창] 보수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를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공천만 잘했으면 4·15 총선에서 참패하지 않았을까. 미래통합당 관계자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선거 결과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충격이 더 크고, 여진이 계속되는 것 같다. 대구경북은 보수의 심장인가, 지역주의의 상징인가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관건은 미래통합당의 부활 가능성이다. 김세연 국회의원의 말대로 역사적 소명을 다한 것인지도 따져볼 일이다.미래통합당의 참패와 유사한 예가 일본에도 있었다. 세계에서 집권 기간이 가장 길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던 자유민주당(자민당)은 2009년 중의원 총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했다. 전체 480석 가운데 119석만 얻었다. 총선 전의 300의석이 3분의 1로 준 것이다. 4·15 총선의 미래통합당보다 훨씬 심각했다. 아사히신문은 "당 재건에 대한 전망도 서지 않는다"고 평했다. 자민당의 선거 실무 책임자는 "자민당에는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국민의 심판이라고 했다. 패배 원인은 명확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민주당에 대한 비난에 집중하면서 자민당이 계속 정권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만 했다. 관성에 안주하는 자민당에 젊은 층이 분노했다.그런데 2012년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은 119석에서 294석으로 3배 가까이 의석을 늘리고 집권당이 되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집권 민주당의 대응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도 컸으나, 자민당이 변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로 요약하자. 비난에 몰두하지 않았고, 명확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젊은 층의 지지 회복에 노력했다. 양적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잃어 버린 20년을 탈출하겠다고 했다. 특히 인터넷 등을 통해 젊은이의 눈높이에서 소통을 강화했다. 보수의 이념을 설파하지 않고 그들의 현실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선거에서 자민당은 20, 30대 젊은 층에서 민주당에 10% 이상 뒤졌으나, 2012년에는 반대로 16% 이상 앞섰다. 젊은 층이 돌아오고, 이 추세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미래통합당은 어땠는가. 반대와 비난만 무성하고 국회를 동물로 만든 것 외에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좌파 독재, '폭망', 퍼주기라는 용어가 난무했다. 독재와 폭망(IMF와 탄핵)은 유권자들에게 통합당을 연상케 했을 것이다.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은 좌파가 아닌 중도우파 정도이고, 통합당은 극보수에 속할 것이다. 폭망한 경제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비전은 없고, 맡겨 주면 잘한다고만 했다. 노년층의 지지를 잃을까 유튜브에 매달리고, 젊은이들이 꼰대라고 해도 "나 때는 말이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보수 대통합에서 통합은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이었던가. 통합은 정치업자들의 모임이었고, 보수는 자신들도 잘 몰랐다.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라고 치장은 하지만, 내용은 없다. 지금도. 스스로 고민하고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내용과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빈번한 비대위가 왜 실패했는가를 살펴야 한다.보수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애초부터 정형화된 보수의 이념 같은 건 없는지 모른다. 영국 보수당의 아버지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노동자의 복리 증진을 보수당의 이념으로 삼았고, 부자와 빈자로 나뉜 두 국민을 한 국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자신들도 모르면서 억지로 보수라는 도그마(dogma)에 갇히지 말고 현실주의로 돌아가라. 시장을 강조하면서, 코로나 사태로 시장이 사라지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고 있는데도, 곳간이나 포퓰리즘 타령만 해야 할까. 그러니 꼰대가 되고 노년층만 바라보는 수구가 된다. 국민들이 편하게 잘사는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고, 시대를 짊어질 젊은 층의 의견을 경청하라. 노년층에 매달려서는 시대정신도 따라가지 못하고 미래도 찾지 못한다. 그래도 40%의 지지가 있다며 미련을 못 버리는데, 대통령제와 소선구제에서는 2%가 승패를 가르는 현실을 봐야 한다. 그리고 세계를 보라. 냉전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의 미래에 중대한 변수가 될 동아시아 상황도 많이 변하고 있다. 새 원내대표의 선출이 새 출발이기를 바란다.

2020-05-11 17:30:00

[일상중국] ‘농민공’의 대량실업, 중국경제의 뇌관이다

[일상중국] ‘농민공’의 대량실업, 중국경제의 뇌관이다

'티엔잔쥔'(田占軍)은 농민공이다. 대다수 농민공들이 그렇듯이 그도 고향인 허베이성 장자커우(張家口)를 떠나 베이징으로 상경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베이징에 집 한 칸은 고사하고 그럴듯한 직업도 없다.16년 전 베이징에서 처음 만난 그는 삼륜차를 모는 기사였다. 택시가 아니라 자가용 영업을 하는 이른바 '헤이처'(黑車) 기사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단속에 걸려, 삼륜차마저 압수당한 그는 백수 생활을 하다가 이후 고향에 돌아가서 면허증을 취득한 후 자동차 한 대를 구입, 베이징 시청취(西城區)쪽에서 헤이처 기사로 계속 일했다. '디디추싱'(滴滴出行) 등 차량공유서비스가 대중화된 지금도 그는 헤이처 기사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디디' 기사가 되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해서였을 것이다.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그에게 연락했지만 전화가 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중국이 5G 통신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확대, 새로 바꾸는 휴대전화는 5G로 개통하면서 그의 휴대폰 번호도 바뀐 모양이었다. 티엔 선생 가족의 안부가 걱정돼서 '웨이신'(微信)을 통해서도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그와 연락이 닿지는 않았다. 헤이처 기사들에게 코로나 사태는 직격탄이었다. 외출도 자제하고 설사 외출하더라도 낯선 '불법택시'를 누가 타겠는가?네 가족이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도 경작할 토지 한 뼘 없는 그로서는 지난 수개월이 삶의 기로였을 것이다. 대다수 농민공들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인 티엔 선생 가족이 잘 버텨내고 있는지 걱정이다.헤이처 기사보다는 나은 중국 최대 차량공유서비스업체인 '디디추싱' 서비스 기사는 무려 3천만 명에 이른다. 이들 역시 지난 몇 개월 동안 백수와 다름없었다.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폭발하던 지난 수개월 '디디'는 사실상 영업정지였다. 디디는 5월1일부터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인 우한(武漢)에서의 영업을 완전 재개했다. 봉쇄령이 내려진 1월 23일 이후 100여 일 만이다.우한 외 다른 지역에서의 영업 실적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60% 수준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디디 측은 공유서비스 차량의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비닐 칸막이를 설치, 운전사와 승객 간의 코로나 감염을 예방하고 매일 차량을 소독하는 한편, 운전사의 체온을 측정하는 등 선제적인 방역조치를 통해 차량공유서비스에 대한 방역 불안을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공유 차량이 60% 수준이라면 '티엔' 선생의 헤이처 수입은 여전히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중국 경제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중국 경제의 뇌관은 현실화되고 있는 기업 도산과 대량 실업 사태, 농민공들의 실직이다.중국 정부가 발표한 실업률은 2월 6.2%, 3월 5.9%로 회복세다. 그러나 춘절연휴를 기점으로 폭발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일터로 복귀하지 못한 농민공이 전체 농민공 2억9천여만 명의 절반에 이른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감안하면, 실제 실업률은 20%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우한'과 '후베이성'이 고향인 농민공들은 춘절연휴 때 고향에 갔다가 봉쇄령과 이동제한 때문에 아직도 복귀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또한 코로나 발원지인 우한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역차별'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농민공의 대량 실업은 중국 경제 회복의 바로미터다. 그런데 농민공 실업 문제는 중국 정부의 공식 실업률 통계에는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는 게 문제다. 타 시와 성으로 이동할 때 격리 등의 제한 조치가 발목을 잡았고, 수출 위주의 중견기업들은 아예 조업 재개 대신 폐업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인 농민공의 대량 실업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있다.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중국에서 2억~3억 명에 달하는 대량 실업 사태는 중국 경제뿐 아니라 '시진핑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는 점에서 중국 최고지도부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코로나 사태로 3월에서 두 달여 연기돼, 오는 21일 전국인민정치협상대회를 필두로, 22일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등의 '양회'(兩會)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처하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비상한 해법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존의 기로에 선 농민공 문제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궁금하다.

2020-05-11 17:30:00

[매일춘추] 문자의 시작 그리고 빅 데이터

[매일춘추] 문자의 시작 그리고 빅 데이터

문자의 시작, 그것은 인류 아카이브 역사의 서막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된 것은 6천년 전부터였으며, 장구한 세월이 지나 지금까지도 문자는 기록을 위한 훌륭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문자가 없던 시절 일상의 일이나 중요한 사건의 기록은 소리를 통해 구전되거나 선과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2만2천년 전 '프랑스 라스코 동굴', 7천년 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역사적 사건이나 일대기의 기록과 전달, 보존하기 위해 사용된 선과 그림들의 일례를 볼 수 있다.인류는 문자 발견을 신이 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자신들의 과거를 기록하여 보존했다. 불의 발견과 이를 통한 화식(火食)으로 인류의 신체가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으며 한층 진화된 신인류로 성장한 것과 비견할 수 있다. 문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설형문자를 시작으로 이집트 상형문자, 중국의 상형(표의)문자, 알파벳과 한글의 표음문자로 변화하며 나타나고 있다. 문자의 발현으로 백년, 천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선대의 기억과 꿈을 이어주었다. 주변 일상 속 바다의 파도 소리, 사소한 산속 풀벌레 소리도 문자로 표현하며 기록할 수 있게 하였다. 선과 그림, 소리로 전승되어 뜻이 불명확하게 전달되던 것을 문자로 사상과 의미를 명확하게 전하며 우리의 일상을 오롯이 아카이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원전 160년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세워졌다고 알려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러한 문자와 기록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의 상징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현대의 디지털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지로 보존되었던 수많은 자료들은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해 디지털 아카이빙 되고 있다. 자료의 축적 방식의 변화와 디지털 경제의 확산으로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쌓아가며, '빅 데이터'라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문서 자료를 수집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식의 수동적인 방식을 탈피하여 데이터를 통해 혁신적이고 능동적인 형태로 일상의 문자와 영상을 포함한 수많은 자료를 '빅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카이브 역사의 서막을 문자가 열었다면, 빅 데이터를 통해 2막으로 진입한 아카이브의 역사는 이제 또 다른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PC와 인터넷, 모바일 기기가 일상이 된 현대의 인류, 포노 사피엔스의 삶과 맞물려 일상다반사들이 날 것 그대로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 직접 제작하는 UCC를 비롯한 동영상 콘텐츠, 휴대전화와 SNS(Social Network Service)에서 생성되는 문자와 영상자료 등은 이의 활용을 통해 새롭게 도래할 아카이브 역사의 제3막을 예비하고 있다. 이와 보조를 맞추어 문화예술 분야도 잊혀져가는 근대의 자료들을 새롭게 디지털 아카이브로 복원하여 '빅데이터'를 활용한 문화예술의 재생산과 순환의 기초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문자로 문명의 도약을 이끌었던 인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서사들을 기록으로 축적해 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포스트 코로나의 문화까지 이 긴긴 세월을 이어온 인류 경험의 장대한 파노라마는 아카이브를 통해 역사적 사실로 기억되며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2020-05-11 17:30:00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게임체인저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게임체인저

차를 타고 지나다 잠시 정차하니, 도로 옆 건물들에 붙어 있는 '임대문의' 딱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어떤 연예인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당시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던 그는 저 딱지들을 보면서 한국에 엄청난 부동산 재벌이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큰 건물, 작은 건물 할 것 없이 '임대문의' 딱지가 붙어 있어서, 그 딱지가 붙은 건물들이 모두 '임대문'(씨)의 건물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의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어이없기도 해서 피식 웃었던 그때와 지금은 사뭇 달라진 것 같다. 1층인데도 공실로 비어 있거나 휴업 상태인 상점들도 쉽게 발견된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로 최악의 경기 침체가 될 것이라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망이 우리의 일상에서 확인되는 모습들이다.대공황, 미국 경제가 쇠퇴의 길로 치닫던 시기, 그 걱정과 우려의 시기에 산업디자인은 탄생했다. 위축된 소비로 힘겹고 시장 활력을 되찾을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 속에서 산업디자이너가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1세대 산업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이들은 두려움 때문에 소심하게 사업을 운영하기보다는 소비자의 수요 창출이 불황을 타개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제품의 형태, 컬러, 소재 등의 변경을 통해 겉모양을 바꿈으로써 소비자에게 미적 만족을 주고, 동시에 기업에는 생산비용 절감과 제품 가치 제고를 통해 기업이익을 확대시킴으로써 고용을 늘리는 효과를 창출했다.당시 활동하던 1세대 산업디자이너 가운데 피터 뮬러 멍크(Peter Müller-Munk)가 1935년에 디자인한 '노르망디 물주전자'(Normandie Pitcher)는 대공황 시기의 산업디자인을 대표하는 사례 중 하나이다. 그는 은(銀) 대신에 크롬이 도금된 황동을 적용해 사선이 강조된 모던 유선형 스타일의 물주전자를 디자인했다. 은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적용함으로써 관리와 손질이 쉬우면서도 가격을 낮추고, 당시 유행 스타일을 적용해 시대적 미감을 만족시킴으로써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되살렸다. 이렇게 그의 주전자는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코닉 디자인이 되었다.불황의 시대에 탄생했던 산업디자이너의 작업물들은 기계 덩어리에 가까웠던 당시의 물건 만들기의 규칙을 깬, 룰브레이커(rule breaker)이자, 극심한 판매 부진의 시장 흐름을 바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저성장의 대침체 후 포스트 코로나의 경제적 대봉쇄 시기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30년대의 대불황과 현재의 대봉쇄, 경제적 재난 사태가 쌍둥이처럼 같지 않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또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불확실의 추종자가 아니라 게임의 룰을 바꾸는 시장의 창조자로서 미래를 설정하고,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의 역할을 다시 한번 디자인계에 기대해본다.

2020-05-11 17:30:00

[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숙종과 천연두의 악연

[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숙종과 천연두의 악연

최근 병자호란에 대한 한 연구(구범진,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가 현재의 코로나 19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에서의 천연두 유행으로 청 태종(홍타이지)이 전쟁의 조기 종결을 서둘렀다는 견해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1637년 1월 16일 청군 진영에 마마 환자가 발생했고, 이것은 청나라가 조선 조정을 강화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천연두의 유행이 전쟁의 양상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는 16세기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아즈텍 문명을 정복할 때, 천연두의 유행으로 인하여 멕시코 원주민 2천500만 명 중 1천800만 명이 사망한 것이 대표적이다.조선왕조실록에는 천연두를 두창(痘瘡), 두진(痘疹), 창진(瘡疹), 완두창(豌豆瘡)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조선 왕실에서도 천연두의 유행을 피해 갈 수가 없었다.조선 후기 천연두와 악연을 맺은 대표적인 왕이 숙종이다. 1680년(숙종 6년) 9월 8일 숙종실록은 "그때 도성 아래에서 두창이 크게 번지니, 대신들이 아뢰기, '조정의 관리 중 궁궐에 출입하는 자는 모두 피하시고, 정시(庭試)도 창덕궁의 인정전으로 옮겨 설치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두창을 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대신들이 천연두 유행에 대비하여 조정 신하들의 왕 대면 금지, 과거 시험 장소 변경 등을 요청하고 있음이 나타난다.천연두는 한번 앓게 되면 면역이 생겨 병에 다시 걸리지 않는데, 숙종이 이때까지 천연두를 앓지 않아 병이 옮을 것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숙종 자신은 천연두를 피했지만, 한 달 후인 1680년 10월 18일 왕비인 인경왕후가 두창에 걸렸다."중궁(中宮·왕비)이 편찮은 징후가 있었는데, 증세가 두창 병환이었다. 그때 임금도 또한 아직 두창을 앓은 적이 없었으므로, 약방 도제조 김수항이 청대하여 임금이 다른 궁궐로 이어(移御)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것을 허락하였다.…"고 하여, 인경왕후가 두창에 걸리자 숙종이 경희궁에서 창경궁으로 거처를 옮겼음이 나타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가족을 우선적으로 격리시키는 모습과 유사하다.두창 발병 후 8일 만인 10월 26일 인경왕후는 경덕궁에서 20세의 어린 나이에 승하했다. 인경왕후의 승하 다음 해인 1681년 숙종은 21세의 나이로, 15세의 신부 인현왕후를 계비로 맞이하게 된다.1680년 두창으로 왕비를 잃었던 숙종 자신도 두창을 피하지 못했다. 1683년(숙종 9) 10월 18일 숙종실록은 "임금이 편치 못하시니, 곧 두질(痘疾)이었다"고 하여 숙종이 두창에 걸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10월 27일에 환후가 더욱 심해졌지만, 10월 28일을 고비로 병세가 나아졌고, 11월 1일에는 크게 회복되어 딱지가 떨어졌다. 천연두는 처음 걸리면 열이 몹시 높고 사흘 만에 반점이 생긴다. 기창(起瘡·부스럼이 일어남), 관농(貫膿·고름이 흐름), 수두(收痘)를 지나, 낙가(落痂·딱지가 떨어짐)가 시작되기까지 대체로 12일 정도가 걸리는데, 숙종은 대체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저절로 낙가되기 전에 가려움에 긁어서 떼면 곰보 자국이 생긴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초상화 화첩인 '진신화상첩'에는 22명의 관리 초상화 중 5명의 인물에서 곰보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세계사의 인물 중에서는 괴테, 모차르트, 조지 워싱턴 등이 천연두를 앓았다. 숙종은 왕비와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인 경종과 영조도 천연두에 걸리는 아픔을 당했다. 1699년(숙종 25)에는 당시 왕세자로 있던 경종이 12세 때 천연두에 걸렸으며, 1711년(숙종 37) 9월에는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延礽君)이 18세 때 두창을 앓았다.연잉군에 이어 숙종의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도 천연두에 걸렸다. 인원왕후의 치료는 잘 이루어졌는데, 숙종과 인원왕후의 천연두 치료에 공을 세운 어의 유상(柳瑺)은 2품직을 제수받았다.자신과 두 명의 왕비, 두 아들까지 숙종은 천연두와 특별한 악연을 가진 왕이었다. 조선시대 왕조의 운명을 가를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천연두. 천연두는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공식 선언하면서, 이제 현실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코로나19 종식 선언의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20-05-11 17:30:00

[기고] 코로나19 속 국민연금을 생각한다

[기고] 코로나19 속 국민연금을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아직 진행 중이다. 대구경북에 8천2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분이 220명을 넘었다. 상처가 크고 깊다. 모든 것이 멈춰 서고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사라진 시간, 가족 간에도 말을 아끼고 집 밖을 나서야 하는 일이면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대신 대구를 구하기 위해 전국의 의료진, 소방대원,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물건 사재기 없이 질서 정연한 대구시민을 가까이에서 봤다. 돌이켜보면 고통과 불안, 감동이 혼재된 시간이었다.지난 3월 초 대구지역 하루 확진자가 500명을 넘어섰을 때도 국민연금을 청구하러 오는 이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수급자 500만 명 시대가 봄과 함께 찾아왔다. 코로나19 속에서 국민연금의 중요성을 새삼 돌아보게 됐다.첫째, 코로나19로 생업이 위태로운 사람이 속출하면서 공적연금의 역할이 강조된다. 국경이 폐쇄되면서 수출입을 하던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고 근로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끊기고 접촉을 두려워하자 자영업자들의 기반이 흔들렸다.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은퇴자들은 그나마 안도했을 것이다. 평생 월급과 같은 연금은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주춧돌 그 이상이다.국민연금은 1988년 시행 이래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수급자 500만 명 시대를 열었고, 대구경북에는 60만 명 정도가 받고 있다. 연금액도 꾸준히 높아졌다. 대구지역의 개인 최고 연금액은 월 207만6천원이고 부부 합산의 경우 360만원에 달하며 '용돈 연금'이라는 불명예가 벗겨지고 있다.둘째, 코로나19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되었고, 그 공동체라는 말에서 사회연대와 '국민연금'을 떠올렸다.부모와 자식 간 개별 부양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지자, 인류는 사회적 부양 시스템으로 '국민연금'을 만들었다. 세대를 이어 부양하게 하고, 세대 내에서는 고소득자로부터 저소득자에게로 소득을 이전시키는 재분배를 통해 '사회연대'와 '사회통합'을 심었다.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지구촌이 건강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셋째, 정부와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가치가 더욱 강조될 것이다. 이에 따라 공공의 업무 방식과 전달 체계 정비 등 서비스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한편 '좋은 정부'나 '진짜 선진국'에 대한 잣대도 달라질 것이다.이번 코로나19를 잘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방역당국의 '중심 잡기'는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했다. 인력 등 정부의 자원만으로는 부족했기에 공항 검역소 방역과 생활치료시설 운영에 공공기관들의 협력이 함께했다.국민연금공단은 청풍리조트를 임시생활시설로 전환해 대구지역 환자를 돌보는 일을 했다. 안산의 생활치료센터, 김포의 임시생활시설을 도맡아 운영하고 있다. 국내 공항 검역소마다 인력을 파견해 방역 업무를 지원하는 한편, 전국 지사에서는 사업장의 유급휴가 비용 신청 접수와 지급 업무를 맡아 정부를 지원 중이다.우리는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코로나 속 총선'까지 잘 치러냈다. 뭇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머지않아 21대 국회가 개원할 것이다. 파탄 지경의 민생도 살필 일이지만, 연금개혁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답해야 할 시간이다. 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에 눈을 감고 미래를 향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고 지금 대한민국은 더 위대해지고 있다.

2020-05-11 16:57:51

[이른 아침에] 보수와 진보, 그게 뭐라고

[이른 아침에] 보수와 진보, 그게 뭐라고

아직도 낯설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그렇다. 원래는 사회과학 서적에서나 봄 직한 단어였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 또한 서구 사회의 역사와 정치적 배경에서 나온 터라 우리와 잘 맞지도 않았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일상 깊숙이 들어와 온갖 곳에 쓰이는 범용어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익숙지는 않다. 내가 '보수적 인간'이어서 그런지 좀처럼 '보던 굿' 같지가 않고 '먹던 떡' 같지도 않다. 누구는 세상 모든 복잡한 것들을 심플하게 딱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 좋고 이것저것 뭉뚱그려 한마디로 표현할 때도 편리하다지만 난 아니다. 가끔 말이나 글의 빈자리를 채워 넣을 때 요긴하게 쓰이지만 그렇다고 생광스럽진 않다. 오히려 안다고 여겼던 것까지 자꾸 '진보와 보수'로 갱신되니 다시 살펴보느라 번거롭고 귀찮을 뿐이다.하지만 나야 그렇든 말든 지금, 세상만사를 '보수와 진보', 정확히는 보수와 진보라는 틀, 프레임, 얼개, 뭐 그런 것들에 끼워 맞추려는 흐름은 거의 대세가 되었다. 이미 지난 것들도 '보수와 진보'의 틀에 맞춰 다시 정의하고 오늘 일어난 일들은 '보수와 진보'의 잣대로 재며 앞으로 일어날 일 또한 '보수와 진보'의 관점으로 분석하고 예측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과 나아갈 바를 '보수와 진보'의 기준에 따라 배분한다.지난달 있었던 정원식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도 그래서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그가 '보수 원로'였다는 것을 이번에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다. 제6공화국 시절의 관료였고 보수와는 배치되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를 지지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던 그가 보수주의자였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의 이름 앞뒤 어디에도 '보수'라는 말이 붙지 않았다. 그가 정말로 보수주의자였다면 거의 모든 것에 접두어처럼 '보수와 진보'를 갖다 붙이는 요즘의 유행 덕에 그의 정체성이 확인된 셈이다. 잘 믿기진 않지만 말이다.어쨌든 이렇게 모든 것을 '보수와 진보로만' 나누려는 시도는 자주 다른 것을 다르지 않게 만든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이른바 보수 정당의 참패였습니다. 오늘은 보수 정당의 혁신 방안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건 우리 지역의 한 방송사가 2년 전 6·13 지방선거 직후에 편성한 TV 토론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였다. 그게 이번 4·15 총선 직후의 방송에선 이랬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 진영은 유례없는 참패를 기록했습니다." 둘의 '싱크로율'이 거의 100에 가깝다. 사람도, 정당도, 선거의 종류도 달랐지만 오직 하나, '보수 대 진보'만 남았다.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50대의 김 모 씨는 광주에 산다. 그는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오래된 것, 질서와 도덕,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걸 보면, 그리고 이런 사람을 '보수적'이라고 한 러셀 커크(Russell Kirk)의 기준에 비춰 보면 김 모 씨는 보수주의자임에 거의 틀림이 없다. 그런데 그가 여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되었다. 언론이, 여론조사기관이 그렇게 확정해 버렸다. 그는 옛날 평화민주당도 지지했지만 그땐 아무도 자신을 진보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최근 한 주요 일간지가 보수와 진보를 가려 주는,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소름 돋게 잘 맞는다'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게 좀 황당하다.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에 관한 질문은 하나도 없다. 어떻게든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고야 말겠다는 의지만 돋보인다. 심지어 어떤 건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반대로 뒤집어 놓았다. 결국 현 정부를 지지하면 진보, 반대하면 보수가 될 뿐이다. 며칠 전엔 한 인터넷 언론사가 '국민의 정치 성향, 범진보 45.0% 범보수 40.07%'라는 제목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범' 자 하나 보태서 국민을 딱 떨어지게 둘로 나눠 놓은 셈이다.사실, 보수와 진보의 대립보다 보수 아닌 것을 보수라 하고 진보 아닌 것을 진보라 하는 데서 생기는 사회적 오류와 문제가 더 크다. 그 틈을 타 누구는 돈을 벌고 누구는 표를 더 얻고 또 누구는 자기가 지은 죄를 감춘다. 그러니 우리의 정체성을 함부로 규정당하지 말자.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말도 좀 덜 쓰자.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꽤 좋아질지 모른다.

2020-05-10 17:30:00

[기고] 새내기 선생님 "첫 제자 보고 싶어요"

[기고] 새내기 선생님 "첫 제자 보고 싶어요"

요즘 SNS에는 '1년 전 오늘' 또는 '보관함'이라는 기능이 있다. 1년 전 이맘때 내가 어떤 사진을, 글을 SNS에 올렸는지 보여주는 것이다.1년 전 3월 나는 5학년 담임으로서 나의 첫 번째 기간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교실을 꾸미고, 학생들과 규칙을 정하고, 밤새 준비한 수업 자료로 수업도 하고…. 여러 준비를 하며 힘들었다는 투정과 함께 내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또 뿌듯했는지에 대해 남긴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신규 교사로서 작년과는 또 다른 새 학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직 코로나19 확산 여파가 남아 있다. 전국의 학교가 개학을 연기하다가 '온라인'으로 개학했다. 이처럼 온라인 개학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나는 신규 교사이기 때문에 아직 서툴고 모르는 점이 많다. 하지만 교내 교사들 간의 연락망을 탄탄히 구축해 놓은 덕에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 교육청의 신규 멘토링, 현직 선생님들이 직접 참여한 커뮤니티 사이트 등이 있어 든든하다. 학교 내에서의 업무뿐만 아니라 담임으로서 꼭 필요한, 다양한 조언과 자료들도 얻을 수 있다.휴업을 하며 달라진 점은 근무 환경뿐만이 아니다. 가장 기대하고 설레던, 나의 첫 제자들과의 만남이 랜선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학급 홈페이지에 알림장과 공지사항을 올리는 것으로 첫인사를 하게 된 것이다.사실 학생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아쉽다. 하지만 현 시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이다. 비록 실제로 만날 수는 없지만 문자와 학급 홈페이지,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학생·학부모님들과의 소통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이러한 소통의 창구에는 학생들이 휴업 기간 중에도 학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학습 참고 영상과 매주 수행할 과제를 '업로드'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참여율이 낮지는 않을지, 혹은 나의 설명이 부족하여 과제 수행과 학습에 어려움은 없을지, 학부모님과의 소통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지 등 의문점들이 생겼다.하지만 나의 설명과 예시를 따라 바로바로 과제를 수행하는 학생들, 그리고 문자 안내에 회신을 해주는 학부모님들을 보며 이러한 소통 방식에 신뢰를 얻게 되었다. 아직 대면하지 못한 우리 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벌써 정이 드는 것 같다.갑작스럽게 바이러스가 유행해 우리는 모두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가까운 사람들과도 가까이 지내지 못한 지 여러 날이 지나고 있다. 간혹 문밖을 나설 때에는 꽁꽁 걸어 잠근 문처럼 우리의 얼굴도 마스크로 꽁꽁 싸매야 한다.그러나 우리의 마음만큼은 열어두고 소통의 창도 활짝 열어두고 있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인다. 지금처럼 인터넷의 발달에 감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문자와 인터넷,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소통도 좋다.다행히 곧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교육부가 13일 고3부터 순차적으로 등교한다고 발표하였다. 초등학생들도 20일부터 세 차례로 나누어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게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얼른 상황이 좋아져 나의 첫 제자들과 마스크 없이, 바이러스의 위협 없이 마음껏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하게 기다린다.

2020-05-10 17: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화가 모름, ‘회혼례도’첩 중 혼례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화가 모름, ‘회혼례도’첩 중 혼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화가 미상의 '회혼례도(回婚禮圖)'첩 중에서 '혼례' 장면이다. 바탕이 조금 떨어져나간 부분이 있는 것은 아쉽지만 감상에 큰 지장은 없다. 결혼 60주년을 맞은 부부가 자손과 친지의 축하를 받으며 해로(偕老)를 기념해 결혼식을 다시 한 번 체험하는 회혼례의 주요 장면을 그림으로 남긴 화첩이다. 모두 다섯 면인데 1. 노(老) 신랑(新郞)이 기럭아비를 앞세우고 혼례 장소로 가는 장면, 2. 혼례식 장면, 3. 부부가 자손의 축하 술잔을 받는 장면, 4. 친지들을 대접하는 장면, 5. 주인공과 하객이 함께 가무를 감상하는 연회 장면 등이다. 4, 5는 남성들만의 자리이며, 연회 장면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과 춤을 추거나 여흥을 돕는 기생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 회혼례만을 주제로 다섯 장면이나 그림으로 남긴 드문 예이지만 다른 기록이 없어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궁금하다.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자식을 결혼 시킬 수 있는 나이가 남자 15세, 여자 14세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더 이른 경우도 많았다. 평균수명이 지금의 절반이 되지 않았고 대를 이을 아들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해 조혼(早婚)이 성행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회혼례는 어느 한 쪽이 아프거나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 없이 부부가 모두 70대 중반까지 건강하게 장수해야 치를 수 있었으니 흔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과 달리 결혼기념일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60주년인 회혼만은 중시했다. 잔치를 열어 아들과 손자의 효도를 자랑하며 친척, 친지들에게 가문의 위상을 드높였다. 지금도 회혼식이 치러지고,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는 리마인드 웨딩을 하기도 하지만 이 그림에서처럼 혼례의 절차를 고스란히 재연하지는 않는다.'혼례' 장면을 보면 대청마루에 병풍을 둘러 예식장으로 꾸몄는데 정면에는 채색 모란병풍을, 왼쪽에는 묵매 병풍을 세워놓았다. 마룻바닥에는 4장의 긴 자리를 깔았고 신랑신부는 특별히 색색의 무늬를 넣은 꽃자리인 화문석(花紋席) 위에 서있다. 자리의 테를 파란색으로 두르는 것은 고려 때부터 전통이었던 것이 북송 사신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1123년)에 나온다. 마당에는 높이 차일을 쳤다. 신랑 쪽에는 남자들이, 신부 쪽에는 여자들이 둘러섰는데 갓과 머리에 꽃을 꽂은 분들은 노부부의 직계 자손일 것이다. 꽃은 초례상 좌우의 커다란 청화백자항아리에도 가득하고, 상 위의 음식도 상화(床花)로 장식했다. 기쁜 일에 꽃이 빠질 수 없는 것은 예전에도 그랬다.꽃 항아리 옆에 붉은 촛불도 보인다. 결혼은 성씨가 다른 두 집안이 만나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이면서 두 성별이 일심동체가 되는 이성지합(異姓之合)으로 여겨졌다. 우주의 구성 원리를 음과 양으로 보았던 음양 사상에서 여성은 음, 남성은 양이고, 이성이 맺어지는 결혼의 시간은 양의 시간인 낮과 음의 시간인 밤이 만나는 황혼의 저물녘이었다. 혼례(婚禮)는 원래 해가 떨어지고 삼각(三刻) 후, 즉 45분이 지난 혼시(昏時)에 치르는 혼시성례(昏時成禮)의 혼례(昏禮)였다. 촛불을 켜놓고 치렀던 회혼례를 그대로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2020-05-10 06:30:00

[2020 세상 읽기] 대한민국의 전성기, 7080세대를 주목해야 한다

[2020 세상 읽기] 대한민국의 전성기, 7080세대를 주목해야 한다

어느 한 노인이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젊은 커플을 보고 '참 좋은 때다. 나도 전성기 시절에는 참 좋았는데'라고 혼잣말을 한다. 분명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에게는 전성기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 시절 그는 젊고 누구보다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전성기' 사전적으로는 '형세나 세력 따위가 한창 왕성한 시기'라고 정의되어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리즈시절이라고도 한다. 한 사람의 일생에 분명 전성기가 있듯 국가 또한 찬란한 전성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역시 전성기는 지나간 것일까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것일 까.필자는 대한민국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경제주체 주역 모습을 보면 한 국가의 현 주소를 알 수 있고, 그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전성기를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베이붐 세대'라고 일컫는 '산업화 세대'에 의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대한민국은 점차 먹고사는 생존의 걱정을 지워나갔다. 다음 세대인 '민주화 세대'는 대한민국 사회가 급속하게 성장한 이면과 국가에 의해 개인의 인권이 억압되는 사회현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국가에 맞서 목소리를 내었고 결국 대한민국을 민주화 사회로 만들어 놓았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경제 강국과 선진화된 민주사회라는 칭호를 전 세계로부터 얻게 되었다.그리고 현재는 에코붐 세대가 경제주체의 주역으로 대한민국을 힘차게 이끌고 있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출생한 '베이붐 세대'의 2세로서 대한민국이 최고 호황을 누릴 때 태어났다. 그들은 '산업화 세대'로부터 압도적인 투자를 받았으며 그들로부터 산업의 기초 토대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선배들에 의해 선진화된 민주시민 의식도 자연스럽게 함양하였다. 그들은 앞선 세대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누군가와 비교되며 경쟁에 노출되었고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체득하며 그들의 노력들을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성세대들이 장벽을 쳐놓은 부분에 대하여는 경쟁을 과감히 포기하고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영역을 개척하여 다양한 부분에서 경쟁력을 만들어 냈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제조업 일변을 산업 강국에서 문화·컨텐츠 강국, IT 강국 등 다른 저변으로 외연을 확장해왔다. 그리고 일찍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함양한 에코 붐 세대들은 세계 시장에서도 우수한 경쟁력을 보여주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이렇게 우수한 에코 붐 세대들이 경제주체의 주역이 되어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현재는 분명히 대한민국의 전성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전성기라고 보는 시선은 미미하다.에코 붐 세대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누군가와 비교대상이 되었고 끊임없이 경쟁에 노출되었다. 경쟁은 규칙이 공정하다는 전제 하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종 입시비리, 채용비리 등이 기성세대들에 의해 불거졌다. 공정한 경쟁인줄 알고 참여했던 일부 사람들은 경쟁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경쟁을 포기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무수한 인재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정하다고 생각되는 공무원 채용 등 정량평가 영역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으로 대한민국의 공공부문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엘리트들로 구성되게 되었다. 결국, 공정한 경쟁이 정책적으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7080세대들은 인적경쟁력을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다음으로 에코 붐 세대들의 정치참여 비율이 극히 낮으며, 그들을 위한 심도 있는 정책들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사회처럼 계층 간의 특징이 뚜렷한 사회일수록 각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책들은 필수이다. 그러나 현실사회에서 정치권은 기성세대들이 장악하고 있고 에코 붐 세대의 숫자는 미미하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에코 붐 세대들을 위해 실시하는 정책들은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경우가 많고, 다소 정책적 효용성도 떨어져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에코 붐 세대의 정치권 진입은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한 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또한 척박한 산업화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에코 붐 세대는 나약하게만 보인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보니 절약과 저축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예의도 없는 것 같다. 기성세대들은 에코 붐 세대들이 경제주체가 되면 자신들이 이룩해 놓은 것을 망칠 것만 같다. 그래서 노파심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코 붐 세대들은 그런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부르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세대 간의 갭은 커졌고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기성세대들은 에코 붐 세대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거나 자신들이 이룩한 것들을 나누어 주는 것에 인색했다. 즉, 계층 간의 뚜렷한 특징이 조화를 이룬다는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조화보다는 대립의 모습으로 지나오면서 에코 붐 세대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필자가 에코 붐 세대에 주목을 하는 것은 그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주체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수한 산업토대 위해 선진화 된 민주의식을 함양하였고, 산업화 세대인 부모들로부터 압도적인 투자를 받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적경쟁력을 갖추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개성으로 산업의 저변을 확대하면서 대한민국을 문화컨텐츠 강국, IT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받지 못한다. 경제주체의 주역인 에코 붐 세대를 주목하고 그들이 겪는 문제점들을 분석하여 그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면, 대한민국의 전성기는 곧 도래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김효범 변호사

2020-05-09 23:10:32

[광장] 젊음이 그만 라면 같아라

[광장] 젊음이 그만 라면 같아라

1986년. 외사촌 언니들이 직장을, 학업을 이유로 대구로 나와 우리 집 근처에 셋방을 얻었다. 언니들이 근처에 있어 가장 좋은 이유는 그 셋방에 놀러 가면 늘 곤로에 끓여낸 라면을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라면을 앞에 놓고 길쭉한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채널을 맞춘 9시 뉴스는 온통 아시안게임 이야기였다. 그중에 단연 화제는 임춘애였다. 육상에서 우리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그녀는 너무나 가난하고 힘들어 라면만 먹고 뛰었다고 했다. 내 앞에 차려진 이 맛있는 라면과 임춘애의 고단함이나, 퇴근한 언니들의 피곤함을 연결해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30년이 지난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홀로 지하철 전동문을 수리하던 김 군이라는 청년이 죽었다. 김 군의 가방에서는 엄마가 밥이라도 같이 먹으라며 챙겨준 숟가락과 컵라면이 나왔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하다 사망한 김용균 씨의 마지막 유품도 컵라면이었다. 제시간에 따뜻한 김이 나는 밥 한 그릇 먹을 시간도 없이 고단한 그들의, 노동의 마지막 음식이 컵라면이었다. 그들의 라면은 삼십 년 전 가난하고 힘들어 뛰었다는 임춘애의 라면과 분명히 노동으로 고단했을 외사촌 언니들이 끓여낸 라면과 겹쳐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천에서, 구미에서 아니 대한민국 곳곳에서 청년들은 노동 현장에서 떨어지고 깔리고 불에 타서 혹은 스스로 죽어갔다. 죽음의 순간에도 비정규직, 일용직, 임시직,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청년들의 목숨이 오 분이면 혹은 삼 분이면 뚝딱 완성되어 젓가락질 몇 번이면 끼니가 해결되는 라면 같았다.소중하지 않은 목숨은 없지만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젊음이 살아남기 위해 노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노동해야 하는 이유는 물려받은 것이 없어서일 것이다. '수저'라는 신종 계급론에 따르면 금수저를 가지지 못했기에 죽음을 목전에 둔 노동 현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노동은 의무이기 이전에 권리다. 인간이 누려야 하는 존엄한 가치로서의 권리가 된다. 세계인권선언 23조와 24조는 노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유리한 노동 조건에서 일하며 실업에 대한 보호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차별 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정기적인 유급휴가와 휴식과 여가를 누릴 권리도 가질 수 있다고 되어 있다.공동체 유지를 위해 건강한 노동을 지속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노동은 인간이 가져야 할 권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젊은 노동이 안전하도록, 차별받지 않도록 건강한 노동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는 국가가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노동이 계급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와 경제 구조를 개선해야 할 의무도 젊은 노동자가 아니라 국가에 있을 것이다.그 시절 외사촌 언니들의 젊음도 쌀밥에 반찬을 차려내 먹고 다니기에 버거웠을 것이다. 그래서 가벼운 라면이 주식이 되었을 것이다. 임춘애 역시 라면 발언은 오해로 밝혀지긴 했지만 30년 전 청년들의 가난함과 고단함을 상징하는 것이 라면이었기에 그런 오해도 당연히 받아들여졌을 것이다.아름답고 고귀한 젊음의 노동의 대가가 오백원에서 천원 하는 라면으로 메꾸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젊음들의 허기진 노동 역시 라면 한 그릇으로 충족되는 가치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노동에 예속되는 삶을 사는 젊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 삶을 위해 존재하는 노동이었으면 좋겠다.

2020-05-08 17:30:00

[시대산책] 북한발 가짜뉴스

[시대산책] 북한발 가짜뉴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리 미디어 노출이 매우 잦다. 그래서 이번에 김정은이 20일 동안이나 미디어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특히 할아버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 행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태양절은 북한 최고의 명절이고 김일성은 북한 정권과 체제의 모든 정통성의 기원이다. 그런데도 태양절 행사에 나오지 않은 것은 뭔가 매우 중대한 사정이 있다는 짐작을 불러일으켰다. 태영호 국회의원 당선인이 '북한 사회의 전통과 관습으로 볼 때 태양절 행사는 좀 아프다고 불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사정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1, 2주 동안 각종 '김정은 유고설'이 난무했다. 간단한 스텐트 시술을 하고 회복 중이라는 설, 중태에 빠졌다는 설, 식물인간 상태라는 설, 사망했다는 설까지 각종 설이 난무했다. CNN이 김정은이 중태라는 뉴스를 내보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국 언론과 달리 CNN이 이런 보도를 내보내는 일은 이례적이기 때문에 '뭔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이 더욱 증폭되었다. 몇몇 일본 언론까지 여기에 가세하였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이런 온갖 설들을 일거에 잠재워 버렸다.북한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가끔 북한의 테러나 납치, 역공작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북한의 스파이가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늘 신경 써야 한다. 가장 일상적으로 만나는 어려움은 북한발 정보 확인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언론과 정보기관이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 내부에 정보원을 두고 북한발 정보를 매일 생산해 낸다. 그러나 북한발 정보는 그 정확성이 의심되는 경우가 많고 검증이 어려운 경우도 많아 언론뿐 아니라 정보기관들도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북한 내부의 정보를 얻는 방식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탈북자들이 북한에 거주하는 가족, 친척, 친구들과의 연락을 통해 정보를 얻는 방식이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다. 둘째 중국 등에서 접촉하는 북한 사람들과 일시적 정보 거래를 지속하다가 어느 정도 신뢰가 축적되면 정기적인 정보 거래를 지속적으로 하는 방식이다. 셋째 탈북자 신문, 탈북자 인터뷰 등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는 방식이다.북한의 가족이나 친구가 혹은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가짜 정보를 생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이 가짜 정보를 만들 이유가 없다. 가족이나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정보원의 경우에도 일부러 가짜 정보를 만들어서 밥줄 끊어지게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짜 정보는 이들에게 정보를 전해 주는 제3자가 만드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악의 없이 그냥 과장되게 이야기를 하다가 과장이 좀 심해진 경우도 있고 이야기가 두세 단계 건너가다 보니 정보가 왜곡되고 심하게 과장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상상이 많이 가미된 이야기를 사실인 양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가짜 정보를 만드는 주체가 북한 당국인 경우도 있다. 첫째 가짜 뉴스를 퍼뜨려 외부 세계 특히 한국 사회와 한국 정부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공작을 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일의 경우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외부 세계에서 허둥지둥 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즐기곤 했다는 소문도 있다.둘째 외부 세계와 연계된 북한 내부의 정보망을 파악하기 위해 이런 공작을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몇 가지 버전의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의심이 가는 몇 개의 라인으로 각각 다른 정보를 슬쩍 흘려서 외부 세계에서 어떤 뉴스가 나오는가를 확인한 다음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여 정보망을 도려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번 김정은 유고설의 경우에도 몇 가지 버전의 정보가 유통되는 것으로 볼 때 이런 케이스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간다. 다만 북한 사회의 특성상 김정은의 안위와 관련된 정보 공작을 아무나 쉽게 시도하기는 어렵다. 만약 이런 공작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의 직접 지시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다양한 북한발 가짜 뉴스와 늘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이런 뉴스를 취급하는 사람들도 보다 정확한 뉴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국민들도 이들의 이런 어려움을 감안해서 조금은 관대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겠다.

2020-05-07 17:30:00

[매일춘추] 보통의 날, 보통의 사람, 보통의 힘

[매일춘추] 보통의 날, 보통의 사람, 보통의 힘

번쩍번쩍 빛나는 금관악기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팡파레'는 왕이나 귀족이 등장할 때 주로 사용된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완전히 전복시킨 한 음악가가 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야말로 보통의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아론 코플란드(Aaron Copland, 1900~1990)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레'(Fanfare for the Commom Man)다.5월은 아론 코플란드의 이 팡파레가 생각나는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으로 가득 채워진 가정의 달에는 뛰어난 위인보다 내 주변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대함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와 사랑, 존경을 표하는 소중한 기회도 주어진다. 아론 코플란드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레'가 미국 현대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것처럼, 보통 사람을 향한 특별한 마음은 보통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아론 코플란드는 미국의 민속 음악과 재즈 음악을 혼합하여 새로운 아메리카 스타일의 음악을 탄생시킨 위대한 작곡가다. 그는 뉴욕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지루함을 느끼고, 당시 서양음악이 급부상하고 있었던 프랑스 파리로 유학길을 오르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중 지휘자 유진 굿센이 1942년 미국의 신시내티 교항악단 연주회에서 전쟁에 참여한 장병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올릴 곡을 아론 코플란드에 의뢰하면서 이 곡이 완성됐다. 곡의 내용처럼 초기 노래의 제목은 '병사들을 위한 음악'이었는데, 후에 당시 부통령의 제안으로 'Common man', 즉 평범한 이들을 위한, 서민들을 위한, 이름 없이 살다간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레로 불리게 됐다.2차 대전 직후 미국의 축구 경기장에 마련된 특별 무대에서 이 곡이 연주 되었을 때 수많은 시민들은 브라스 팡파레의 장엄함에 열광했다. 20세기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팡파레가 선사되는 순간이었다.보통 사람을 위해 쓰여져 더욱 특별해진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레'. 그러고 보니 보통 사람(common man)이라는 단어가 참 익숙한 듯 하면서도 생소하다. 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특별한 무언가를 바삐 쫓느라 '보통'이라는 단어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까. 역사 속에 이름 한 자 남기지 못하고 평범하게 삶을 살다 사라졌던 보통의 사람들, 이들이야 말로 지금까지의 역사를 손과 발로 일궈 온 위대한 힘이 아닐까.그렇게 역사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평범함을 이루는 보통 사람 개개인의 삶은 우주에서 유일무이하고, 또 고유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모르고 지나는 보통이라는 단어의 힘, 얼마나 위대한지 전하고 싶다. 그리고 평범한 삶을 아주 잘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나, 그리고 내 곁의 소중한 '보통 사람'들께 마음을 담아 전해본다.

2020-05-07 17:30:00

[기고] 포항지진, 잊히지 않는 상처

[기고] 포항지진, 잊히지 않는 상처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의 포항지진으로 피해를 본 포항 주민들에게는 이 지진이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지진이 발생한 직후 필자는 포항지진의 발생 이유가 지열발전소 건설을 위해 지하에 주입한 유체 때문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였고, 관련된 연구 결과를 국외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쳐 발표하였다.반면에 국내 관련 분야 전문가 대부분은 포항지진 발생 직후 또는 국외 전문가의 검증과 논문 발표 이후에도 이러한 합리적인 의심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폄하하였다.우여곡절 끝에 정부에서는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을 해외전문가 5명과 국내 전문가 12명으로 구성하여 2018년 3월부터 1년간 조사연구를 수행하였고, 2019년 3월 20일 지열발전소에서 수리 자극을 시행하는 동안 주입한 유체에 의해 포항지진이 촉발되었음을 공식 발표하였다.정부조사연구단에서 포항지진이 촉발 지진임을 밝힌 후 1년이 지났다. 자연재해로 받아들이고 체념해야 했던 상황으로부터 이제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당당히 배상을 요구할 기회가 생겼다.2019년 12월 31일 '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지난 2월 16일부터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4월 1일부터 법이 시행됐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전염병 감염증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포항지진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효과적인 도움이 되고, 붕괴된 지역사회의 재건과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분들의 상처 치유, 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포항지진은 2년 이상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특히 포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은 포항지진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거나 점차 잊어버리는 분들도 많다.이런 시류에 편승하여 짧은 포항지진의 발생 원인 규명 기간과 발생 원인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정부조사단의 결과를 되돌리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필자는 포항지진의 발생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연구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그러나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 제기는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만약 국내 일부 관련 업계 종사자들 또는 일부 이권 세력이 지진 발생으로 인한 책임 회피를 위해 정부조사단의 결과를 의심하거나 포항지진과 관련해 구제법안의 취지를 왜곡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불필요한 논쟁에 빠져들 수 있다.특히 이러한 목적으로 포항지진에 대한 주요 자료를 이들이 공개하지 않고 독점적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그 자료를 접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반박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포항지진과 관련된 자료가 투명하게 모든 연구자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요구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정부 여러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 있으나 개인의 사유재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보의 제한, 선별적 공개, 혹은 독점은 불필요한 논쟁과 혼란을 낳고, 피해 최소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정부와 관련 기관에서는 시민의 요청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 정부와 관계 기관의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2020-05-07 15:03:44

[신세돈의 새론새평] 보수가 진정으로 살아나는 길

[신세돈의 새론새평] 보수가 진정으로 살아나는 길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163석을 차지하고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84석밖에 얻지 못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이나 조국이라는 정치 악수를 감안할 때 과반은 무난할 것이라는 사전 예상은 처참하게 깨어졌다. 야당이 처참하게 깨진 이유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러나 거의 모든 언론은 국민의 이념 지형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드러지게 진보화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21.6%에 불과하던 진보 성향 국민은 2017년에는 41.8%로 20.2%포인트(p)나 급증하였다. 반면 보수 성향 국민은 2012년 44.3%에서 2017년 33.3%로 11.1%p나 떨어졌다. 진보와 보수의 인구 비중이 진보 우위로 뒤집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념 지형 변화 때문에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에 4연패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연령적으로 20대부터 50대까지, 즉 1960년 이후 출생 세대가 3천만 명을 넘으면서 인구상으로도 과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심의 주류가 되었다. 이들은 경제적 성과보다는 공정과 정의를 시대정신으로 삼고서 사회 불평등과 부정부패를 투표를 통해 고쳐나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보여 왔다. 댓글에서부터 조국의 촛불에 이르기까지 건수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소신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이들은 정권심판론(36.3%)보다는 야당심판론(41.5%)에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공천상의 문제점들이나 몇몇 후보들의 막말 파동 혹은 코로나 방역상의 성과들이 정권심판론을 묻어버린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퇴행적 보수'라는 낙인이 찍힌 미래통합당이 수도권에서 참패를 당한 것은 이미 오래전에 '예정된 사고'일 뿐이었다는 것이 여론의 중론이다. 만약 이런 판단과 평가가 옳다면 미래통합당이 근본적으로 살아나기 위한 방향은 명백하다.첫째, 국민의 진보적 이념 지형 변화에 맞추어 당헌과 당규, 정강정책을 근본적으로 그에 맞게 수정·조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공정과 정의와 청렴과 자율 존중과 공동체 책임이라는 전통적 보수 가치를 앞세우고 이에 맞추어 당헌과 당규, 정강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헌법 제119조에 규정된 바대로 새로운 형태와 방식의 경제민주화, 즉 경제민주화 버전3.0을 당의 중심 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경제민주화 버전1.0은 1987년 헌법 제정 당시의 경제민주화이고 버전2.0은 김종인 교수의 2016년 경제민주화이다. 여기에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되 균형 있는 경제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 간 조화라는 경제민주화의 네 가지 바퀴를 담아내야 할 것이다. 이를 '사륜구동 경제민주화'라고 불러도 좋다. 케케묵은 시장주의만 앵무새처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시장 실패에 대한 완벽한 보완 장치를 구축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시장경제 질서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둘째, 당의 모든 정강과 정책을 경제민주화 버전3.0, 즉 '사륜구동 경제민주화'에 기초하여 미래지향적으로 고치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당내에 이를 위한 상설 비상기구를 설치하고 능력 있는 내·외부 전문가를 영입하여 민심 변화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정책들을 개발해 내야 할 것이다.셋째,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것이 입증된 새로운 인물, 즉 뉴-웨이버들로 당을 채워야 한다. 참신하고 의욕과 패기가 넘치는 젊고 유능한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당으로 영입하는 상설 체제를 갖추고 대대적인 영입운동을 펼쳐야 한다. 당에 입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3인 이상의 추천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도덕성 검증이 상시 실시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넷째, 이들 뉴-웨이버들이 당내에서 합리적이고 시스템적이며 민주적으로 당을 운영할 수 있도록 당 운영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당의 지도자 한두 사람을 40대로 바꾼다고 야당이 살아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세상 바뀐 줄 모르는 사람이다.

2020-05-06 17:30:00

[기고] 김정은과 숨바꼭질

[기고] 김정은과 숨바꼭질

드디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짠' 하고 나타났다. 북한 매체에 공식 등장해 건재를 과시한 것이다. 잠적 기간이 길어지며 신변 이상설이 나왔고 후계 문제와 지도 체제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분석이 줄을 이었다.미국 CNN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들은 실체적 진실을 캐는 언론 특유의 탐색 본능을 되살리며 그의 소재지와 신체 이상설에 대한 해답을 찾는 숨바꼭질을 시작해 왔다. '과연 어디에 있으며 건강에 이상은 없을까?'라는 그 나름의 분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탈북자 출신 미래통합당 태영호, 지성호 국회의원 당선인의 한마디는 타고 있는 장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일반적으로 정보 수집을 위해서는 북한에 연고를 둔 휴민트(HUMINT·사람을 통해 수집한 인적 정보), 장소 관련 첩보는 테킨트(TECHINT·인공위성과 정찰기 등을 활용한 군사 기술 정보)에 의한 것, 테킨트에는 시긴트(SIGINT·각종 신호 정보)와 코민트(COMINT·통신 감청 정보), 이민트(IMINT·영상 정보) 정보로 일반적으로 나눈다.정보의 가치 구분은 확신은 가지만 확인되지 않은 첩보(intelligence)와 확인된 사실인 정보(information)로 나눈다.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와의 수 싸움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금번에도 북한은 김정은 전용열차를 원산역에 노출시키며 김 위원장이 원산 특각에 머물러 있다는 미끼(위장 노출)를 여러 차례 던졌다. 미국은 300㎞ 상공에서도 차량 번호판 판독이 가능한 군사위성으로 전용열차 사진을 명확히 탐지했겠지만 김 위원장이 원산에 있다는 사실을 믿었을까? 며칠 뒤 김 위원장은 원산의 반대편인 평남 순천에서 건재하다는 모습을 드러냈다. 어설픈 미끼는 도리어 상대방에게 가짜라고 판단할 정보를 주며 역효과를 내는 것이다. 선수들은 서로를 알아본다.정보원들은 일반적으로 I.O(Intelligence Officer)라 부른다. 첩보 현장에서 가장 좋은 녹음기는 사람의 머릿속에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다. 쉽게 들키지 않으며 또 들키더라도 물증이 없다. 흔히 영화에 나오는 사람의 신체에 녹음 기능을 붙이는 작업은 영화로만 즐길 뿐이고 상황에 따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기능일 뿐이다. 인간은 훈련에 따라 기억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지만 대체로 30분 정도 분량의 내용을 암기한다고 한다. 서로의 잘 훈련된 파트너는 대략 30분을 단위로 시간을 끊어 주며 화제를 돌리거나 농담을 하며 파트너를 배려해 준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김정은 부재 기간 중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 답변 내용을 보면 CIA 대북 담당 부서 정보에서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오락가락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미국 대통령의 위상은 말 한마디에도 엄청난 가치를 지니기에 주요 사안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뿐더러 더군다나 오락가락하지 않는다. 금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일자별로 분석하면 대북 정보 수집에 혼선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이 시간 이후 CIA 내부에서는 핵 적대국인 북한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엄청난 예산을 마련, 술래잡기 첨단 장비들을 보강하고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술래를 잡기 위한 첨단 기법과 더 꼭꼭 숨기 위한 새로운 기법 개발 게임이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벌어질 것이다.

2020-05-06 17:30:00

[최재목의 아침놀] 패거리 짓는 욕망과 ‘거리두기’

[최재목의 아침놀] 패거리 짓는 욕망과 ‘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으로 전환되는 동안, 나는 주변을 자주 걸으며 사소한 것들과 친밀해졌다. 어쩔 수 없을 때 '차나 한잔 들게!'로 뚫고 나가듯, 정처 없이 걷는 것도 좋았다.5월의 하천, 샛노란 갓꽃이 한창이다. 그 위를 나는 검은 새들. 뭔지 모를 음산함을 느낀다. 아룬다티 로이는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의 첫 문장에, 고향 땅 남인도 께랄라주 아예메넴의 무상(無常)을 필사해 두었다. "아예메넴의 오월은 덥고 음울한 달이다. 낮은 길고 후덥지근하다. 강물은 낮아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고요히 서 있는 초록 나무에서 검은 까마귀들이 샛노란 망고를 먹어댄다." 검은 까마귀들을 샛노란 망고와 대비시키는 장면은 아름다우나 불길하다. 내가 본 갓꽃 위의 검은 새들도 그랬다. 노란-따뜻한 것을 갉아먹는 검고-차가운 것들 때문이리라."오늘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흰 바람벽이 있어')라고 백석 시인이 말했을 때, 나는 그가 '휙 지나가는' 시대의 얼굴을 목도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고. 시인은 애써 불안을 지우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귀한 인간 존재들이,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든 '하늘'이라는 초월 세계를 슬쩍 설정한다. 참 아픈 대목이다.'격리'가 '거리두기'로 오기까지, 전염병 방지의 '보건적' 전략은 '법적·정치적' 규제 형식으로 변환되었다. 죽음에 이를 위험한 전염병과의 사투는, 생명을 위협하는 적들과의 전쟁과 닮았다. 국민을 호출·동원하고, 분리·격리하며, 줄 세우고 편 가르는 기회로 삼는 점에서 같다. "세상에는 전쟁만큼 페스트가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페스트나 전쟁이 찾아올 때 사람들은 언제나 무방비 상태였다"라는 카뮈의 언급처럼, 위기 상황엔 국민의 신체와 시공간은 무방비로 컨트롤당한다.예전에 프라하에서 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마리오네트를 본 적이 있다. 인형의 손과 발과 목은 줄로 연결되어, 섬세한 감정 심지어 영혼까지 조종당하는 듯하여 불편했었다. 합스부르크가가 프라하를 점령하여 독일어 사용을 강요했을 때 인형극만은 체코어로 상연을 허락했다고는 하나, 제어당하는 인형의 모국어란 얼마나 자유로운 것이었을까.지역별 감염자가 숫자로 표시되는 코로나 환자의 증가율은 특정 지역을 구출할 기준도 되나 격리의 빌미도 되었다. 처음 '격리'란 말이 유행할 때, 나는 몇 해 전 소록도에서 보았던 '수탄장'(愁嘆場)을 떠올렸다. 격리 수용된 어린 한센병 환자와 부모가 면회할 때, 감염을 이유로 일정한 거리에서 2열로 늘어서 서로 쳐다보며 눈물만 펑펑 쏟고 헤어져야 했다. 그런 형식을 만드는 자들은, 분리의 선도 긋고 동시에 만남의 자리도 주선한다.분명 우리가 가고 싶은 땅은 분열이 아니라 화합의 땅이나, 애석하게도 이 둘은 서로 붙어 있다. 나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글을 인상 깊게 기억한다. 나쁜 폭력은 전면적이지 않고 부분적이며, 항구적이 아니라 일시적이다.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나쁜 폭력이 없는 초월 세계로 들어가면 된다. 그 초월 세계는 어디 있는가? 이 지상에서 그런 초월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네 마음속에 있다.그렇다면 나쁜 폭력을 낳는 욕망이 바로 초월 세계를 낳는 욕망이 아닌가.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무섭다. 그 욕망이 바로 초월 세계를 낳는 욕망이다. 황석영식으로 말하자면, 가장 천한 것들이 가장 강하게 욕망한다. 분열시키는 자는, 그런 폭력으로 초월의 세계도 만들고자 한다. 무섭도록 다 가지려 한다.'거리두기'는 '가장 천한 것들이 가장 강하게 욕망하는' 저 맹목적 패거리로 양분된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길을 개개인의 양심과 자유로 연대하며 걸어가는 일이다.

2020-05-06 17:30:00

[매일춘추] 증인(證人)의 침묵

[매일춘추] 증인(證人)의 침묵

1961년 8월 영국 런던에서는 장소 이름을 따서 'A6사건'으로 불렸던 살인사건이 있었다. 연인관계였던 마이클과 발레리가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마이클은 현장에서 숨졌고, 발레리는 하반신마비가 되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 후 유력한 용의자인 피터 알폰이 체포되었지만, 발레리는 범인식별절차에서 범인으로 제임스 핸래티를 지목했다. 이후 사형선고를 받은 제임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전문 변호인단이 구성되고, 그들은 조직적으로 증인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던 발레리를 비난했다. 제임스는 1962년 4월 4일에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후 발레리는 불구의 몸으로 세상의 비난을 피해 은둔생활을 했다. 여론은 제임스를 잘못된 수사와 증언으로 희생당한 '희생양'으로 몰아갔다. 사형집행 35년이 지난 후 재수사를 결정한 영국 사법부는 제임스 가족의 DNA를 분석하여 그가 진범임을 밝혔으나,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비판까지 수용하여 결국 2001년 그의 무덤에서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그가 진범임을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35년이 흐른 뒤 사랑하는 연인도 잃고,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발레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이다.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많은 사건들을 목격하고 경험하며 살아간다. 증인이 되거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무심코 지나쳤던 상황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간혹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틀림없다'고 확신에 찬 사람을 만난다. 실상과 허상의 마법은 섣부른 마음의 주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눈'은 이미 그의 잣대로 짐작할 가능성이 높다. 그로인해 잘못된 선택과 오해로 본인은 물론 타인까지도 곤란하게 만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A6사건에서 유일한 단서는 오직 발레리가 기억하고 있었던 범인의 목소리와 눈빛이 전부였다. 만약 본 대로만 진술했더라면 진범을 검거하기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여인의 오감은 물론, 육감까지 정확했다. 종종 어눌한 실상보다 치밀한 허상에 현혹되기가 쉽다.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던 진범은 예수 그리스도의 왼쪽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악담을 퍼붓던 이의 파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한 물체를 두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보인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시각(視角)이라고 한다. 개인별로 처한 입장과 여건에 따라 시각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그 차이가 어우러져 형성된 것이 바로 사회성이다.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면 흔히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각을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마치 정면에서 마주친 어미 곰의 등 뒤에 가려진 새끼 곰 세 마리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때론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믿기 싫은 것도 믿어야만 한다. 진실이라면 말이다. 누구나 목격자는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증인이 될 수는 없다. 증인은 그 누구도 진실 앞에서 침묵할 수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2020-05-06 17:30:00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민족주의자 최능진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민족주의자 최능진

일석(一石) 최능진(崔能鎭·1899~1951)은 평남 강서군 반석면 출신으로, 숭실중학을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학 체육학과를 졸업하였다. 흥사단의 국내 조직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조만식·조병옥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한 적이 있었다.그의 형인 최능찬(1881~1932)과 최능현(1882~1933)은 반석면 상사리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최능익(1889~미상)은 미주에서 한인비행사양성소·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재미한족연합위원회·주미외교위원부에 참여하였다.해방이 되자 최능진은 조만식의 평남건국준비위원회의 치안부장을 맡았으나 곧 월남하여, 1945년 9월 16일 경찰관 강습소장에, 동년 10월 21일 경무국 수사국장에 취임하면서 친일 경찰을 청산하는 데 앞장섰다. 해방 직후 경찰 현황을 기록한 미군정 보고서에 의하면, 경사급 이상 간부 969명 중에 83%인 806명이 친일 경력을 가졌던 경찰들이었다. 심지어 친일 경찰들이 미군정청과 우익 세력의 비호 아래 좌익 세력을 탄압하며 애국자로 둔갑하기까지 하였다.1946년 가을 무렵부터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총파업이 10월 1일 대구에까지 확산되자, 당시 경무부장 조병옥은 이때 발생한 대규모 유혈 충돌 폭력사태의 원인을 '좌익 세력이 선동하고 일반 시민이 가담했던 폭동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 반면, 최능진은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에 의해 일어난 사건임을 인정하면서도 친일 경찰과 부패 경찰들이 쌀을 공출하는 바람에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여 일어났던 사건이었다고 단언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조병옥은 최능진을 경무국 수사국장에서 해임시켰다.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각각 주석과 부주석을 역임했던 김구와 김규식은 남북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5·10 총선거에 불참하였다. 남북협상에서 공동합의문을 발표하였으나, 5·10 총선거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이때 이승만이 동대문 갑구에 단독 입후보로 출마하자, 최능진은 민주주의 선거에서 이승만 박사만 단독 후보로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 도전장을 내던졌다. 그런데 유세 과정에서 민심이 최능진에게 기울어지는 현상이 나타나자, 서북청년단과 친일 경찰들은 중상모략의 방해 공작 끝에 선거 하루 전날인 5월 9일에 그의 후보 등록을 취소시켰다.최능진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승만의 대항마로서 미주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서재필을 대통령에 추대하려는 운동을 벌여나갔다. 최능진은 서재필 대통령 추대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서재필 박사 대통령 출마 요청서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돌연 서재필이 대통령 출마를 거부하며 미국으로 떠나자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곧바로 반민특위가 구성되어 민족 반역자를 단죄하여 민족 정기와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움직임 속에서 최능진은 반민특위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이즈음에 수도경찰청장 김태선이 혁명의용군 사건을 발표하였는데, 최능진오동기 등이 남로당과 결탁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하여 공산 정권을 수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었다.이승만의 눈엣가시였던 최능진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동족상잔을 결코 원하지 않는 사람이며, 여순사건의 동기를 자신에게 전가하는 것은 천만부당하다고 항변하였다. 이승만 정부가 실체도 없는 혁명의용군을 조작하여 발표했음에도 최능진은 3년형을 선고받았다가 김구 암살 직후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이 5년으로 늘어났다.최능진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지 6개월 만에 서울을 침공한 인민군에 의해 풀려났으나 평화통일과 정전운동을 주선하려 했다는 이유로 1950년 11월 특무대 김창룡에 의해 구속되어 1951년 2월 11일 달성군 가창면 파동에서 총살되었다.2015년 8월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는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능진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였다. 제1공화국 집권 후반에 이승만의 경쟁 상대가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1898~1959)이었다면, 집권 초반에는 일석 최능진이었다.

2020-05-06 17:30:00

[종교칼럼]자기만의 색(色)을 찾아보자

[종교칼럼]자기만의 색(色)을 찾아보자

색은 힘이 있다. 빨간색은 정열과 기억력을, 파란색은 희망과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는가. 색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정과 표현을 불러일으킨다. 색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각 정당들도 색상에 따라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곤 한다. 희망과 치유는 녹색, 진보는 빨강, 신뢰와 보수는 파란색. 하지만 프랑스 혁명 때는 파란색이 새로운 가치인 진보, 꿈, 그리고 자유를 상징했다. 그런가 하면 5월은 젊음과 상상력, 꿈의 색이 아름다운 경연을 펼치는 계절이다.하이멘달(Heimendahl)이 언급한 '파랑'이 떠오른다. "하늘과 바다의 색으로서 파랑은, 이미 자신의 본질적 특성이 끝없이 먼 곳과 심연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파랑에는 무지개 소년이 꿈을 찾아 떠난 것같이 먼 곳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 서양의 소설과 동화에서 푸른 꽃은 '경이로움에 대한 동경'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중세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파랑은 '신성한 천상'의 세계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파랑은 천상의 색이었고, 짙은 파랑의 사파이어를 명상하는 것은 천상을 명상하는 것이었다. 사파이어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한 하나님의 세계로 진입하는 색이었다.'파랑'이 들어가는 낱말들은 대부분 밝고 희망적이다. 주식 시장에서 우량주는 블루칩(blue chip)이라 부른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코로나19 의료진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블루라이트 캠페인까지 일어났다. 블루오션(blue ocean)과 레드오션(red ocean)이란 말에서 보여주듯 블루는 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색이 되었다. 레드오션이 이미 존재하는 모든 산업이라면 블루오션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미래 산업이다. 블루는 미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무한한 상상력을 품고 있다. 젊음을 상징하는 블루진(blue jeans) 역시 '제네바 상인의 파랑'(Blue de Gênes)이라는 말에서 왔다.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iant)는 『행복의 조건』에서 청소년 시기에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높고, 놀이를 통해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을 신뢰하지 못하고, 쉽게 친구도 사귀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젊은 시절을 보냈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에 자신은 물론이고, 가정과 아이들까지 맞추려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격과 외모, 학력과 직업, 꿈까지 세상의 기준에 꼭 들어맞아야 직성이 풀린다.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성공을 보장하는 절대기준은 없다. 이 땅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완벽한 환경도, 완벽하게 준비된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가능성'이고,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희망과 꿈과 젊음의 정열뿐이다.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는 『승리』에서 "젊은 시절에 희망을 품고 사랑을 하고, 그리고 삶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마음을 가진 남자에게는 재앙이 있는 법이라네"라고 했다. 구약성경에서 요엘은 '하나님은 꿈을 꾸게 하고 이상을 보게 한다'고 했다.(요엘2:28) 아름다운 오월, 우리 어린이들이 희망을 노래하며 마음껏 꿈을 꾸는 푸른 계절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2020-05-06 15:47:52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코로나19’ 말만 들어도 오줌 쌀 것 같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코로나19’ 말만 들어도 오줌 쌀 것 같다.

단어만 들어도 오줌을 지릴 것 같다. '코로나19'가 바로 그 단어이다. 자영업자들에게, 사업가들에게, 소상공인들에게 이 단어는 죽음만큼 무서웠다. 실제로 코로나는 우리를 죽음 문턱까지 데려갔다. 돈이 돌지 않으니 직장과 가정은 무너져갔다. 음식점은 문을 닫았고 학교는 개강조차 못 했다. 실제로 3월 28일, 황금네거리에서 한 50대 남성이 분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한 생활고 때문이었다.그러던 중 황금연휴가 찾아왔다. 석가탄신일부터 근로자의 날까지 4일간의 연휴를 선물 받았다. 연휴의 토요일 밤, 나는 지인과 동성로의 한 골목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의도치 않았지만, 하필 그곳이 클럽 골목에 있었다. 의도한 것 같지만 진심으로 우연이었다. 우리가 갔던 술집 포함 클럽 골목은 더 이상 코로나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도 다수였다. 대구의 20대는 모두 클럽 골목으로 집합한 듯했다. 서연이도 있는 것 같고 재윤이도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 끼어 있었던 마흔인 나는 혹시 20대들의 심기를 해칠까 맨 구석 자리에 가서 조용히 술을 들이켰다.지난주에 의뢰받은 광고 생각이 났다. 대구시청 청년정책과의 '생활 방역' 광고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너머 이제는 생활 자체가 방역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마스크를 강조하기 바쁘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마스크를 벗어도 좋다'라는 메시지를 만들었다. '마스크 안 쓰면 바로 왕따로 직행하는데 마스크를 벗으라니?' 메시지는 때로 역설적으로 표현했었을 때 더 강력하게 기억된다.'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강한 인물이 누구일까?' 우리 팀은 고민했다. 그 결과 찾은 사람이 이순신 장군이였다. 그에게 마스크를 씌워주고 오히려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역설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서브카피가 그 의외성을 해결해주면 되니까.'마스크를 벗어도 좋습니다. 이순신 장군보다 강하다면'이렇게 카피에서 의외성을 해결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마스크에 대한 인식 재정립이 필요했다. 아직도 마스크는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그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이제 마스크가 옷입니다'라는 카피를 썼다. 우리에게 더 이상 마스크는 마스크가 아니다. 마스크는 이제 옷이다. 외출할 때 옷을 입는 것처럼 마스크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어필했다.술자리 후 지인들과 클럽 골목을 조심스레 빠져나왔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놀다가 코로나가 다시 오면 어떡하지?' 직원들 앞에서 "이번 달은 일감이 없어서 월급을 못 주겠다"라는 말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것은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귀신들린 딸이 계단을 거꾸로 내려오는 것 이상의 두려움이다. 그냥 내려오기도 가끔 미끄러지는 계단을 요가 자세처럼 내려오니 말이다. 이렇게 놀다가 코로나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대로 광고에 옮기고 싶었다.딸린 식구가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 코로나는 생각하기도 싫은 대상이다. 하지만 공익을 위해서 필요한 메시지다. 모호한 말보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구체성이 더 무서울 듯했다. 그래서 쓴 카피가 '방심할 때 돌아올게'이다.그러니 제발 방심하지 말자. 우리 회사에서 만든 광고처럼 방심할 때 코로나는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다시는 우리가 코로나 관련한 광고를 만드는 일이 없길 희망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5-06 09:57:06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기침하는데 심장병이라고요?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기침하는데 심장병이라고요?

루(10살, 푸들)가 기침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가까운 동물병원에서 감기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검사를 다시 했더니 심장병이 의심된다며 본원으로 의뢰된 경우였다. 보호자는 루가 산책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편이라며 심장질환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상담 중에도 애꿎은 검사비와 개만 고생시킬까 걱정이었다.심장의 기능 평가는 X-ray(엑스레이)와 심장초음파 검사가 주로 활용된다. 체형이 다양한 개와 고양이는 X-ray 상의 심장의 크기를 흉추뼈의 갯수로 환산하여 평가한다. 심장의 긴축과 잛은 축의 길이를 흉추뼈의 갯수로 환산한 수치를 VHS라 부른다. 개의 정상적인 VHS는 8.5~10.5 이다. 루의 경우는 VHS가 13.2로 심비대가 심각한 경우였다. 다행히 루는 흉곽이 넓고 기관지협착이 없어서 심비대가 심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기침 증상이 덜한 편이었다.심장초음파는 심장 질환을 구분하고 기능을 평가하는 가장 정확한 검사다. 심장 내 심방과 심실, 대동맥과 폐동맥의 직경을 비교하면 어떠한 부위에 질병이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혈액의 흐름을 영상으로 평가하여 판막의 기능 이상을 진단하기도 하며, 때로는 종양이나 선천성 질병을 진단하기도 한다.루는 좌측 심장에 있는 이첨판이 두꺼워져 변형이 심했으며 그로인해 혈액의 역류가 심한 상태였다. 우측 심장에 있는 삼천판도 기능부전으로 혈액이 역류되고 있었다. 대동맥 직경과 좌심실의 직경을 비교한 LA/AO수치는 2.75로 평가됐다.반려동물의 심장초음파는 사람에 비해 검사하기가 훨씬 어렵다. 흉곽 안에 위치한 심장의 특성 상 갈비뼈 사이로 초음파를 밀착시켜야 심장을 관찰할 수 있다. 동물을 두 명의 간호사가 검사용 베드에 눕혀 30분 이상 달래가며 검사가 이루어진다. 심장초음파 전문의는 동물이 뒤척이거나 호흡하는 틈을 노려 심장의 운동 영상을 확보하고 평가한다. 체형이 작은 만큼 심장의 크기도 성인의 1/20에 불과하기 때문에 매우 정밀한 검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루의 검사 결과들을 자세히 듣고 나서야 보호자는 루의 심장질환을 인정했다. 루가 복용하는 심장약은 기침증상을 줄여주고, 폐부종과 흉복수(가슴과 배에 물이 차는 것)를 예방하기 위해 꾸준히 먹으며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루 처럼 심장질환이 있는 반려동물의 식이 관리와 관리법을 소개한다. 동물이 과체중이라면 먼저 체중을 감량해야 한다. 심장의 혈액 방출력이 약해진 만큼 체형이 가벼워야 심장의 부담이 준다. 먼저 먹는량을 감량하여 체중을 줄이자. 체중을 10% 정도 줄인 후 가벼운 산책부터 운동량을 증가시켜 나갈 것을 권한다. 심장질환이 있는 반려동물에게 무리한 운동을 통한 체중 감량은 매우 위험하다.고체온은 심장에 해롭다. 더위 노출로 인한 체열 상승, 가둬두거나 묶어두는 개의 햇빛 노출, 실내 난방 등으로 반려견의 체온상승은 과호흡과 혈압상승을 동반할 수 있다. 개와 고양이는 체온이 상승하면 호흡을 통해 열을 발산시키려 하는데 이러한 과호흡이 오래되면 고체온증이 유발되면서 탈수와 혈압이 급상승해져 심장에 매우 위험하다. 추위를 느끼지 않을 정도의 환기가 잘되는 환경이 유리하다.수분은 충분히 공급한다. 탈수는 혈액의 점도를 높여 말초혈액 순환을 방해하며 혈압이 상승되어 심장에 부담을 준다. 넉넉하게 수분을 섭취하여 소변색이 맑아지는 것이 유리하다. 반려동물이 스스로 물을 잘먹지 않는 경우라면 사료를 물에 불려 먹일 수도 있다. 야채(브로컬리, 토마토 등) 를 잘 먹는 반려견이라면 익힌야채를 이용한 간식이나 스프를 제공할 수 있다. 과일은 당도가 높아 권장하지 않는다.가벼운 산책이나 놀이 운동은 권장한다. 산책 자체가 힘들정도로 심부전이 악화된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당히 심장에 부담주는 정도의 가벼운 산책이나 놀이운동은 심장에 이롭다. 심장도 근육이기 때문이다. 근육은 사용이 줄면 위축되며, 일정 정도 이상의 부담을 가하는 운동을 할 때 신진대사와 면역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동물이 행복해 하는 정도의 운동량이 적합하다. 내원하신 보호자분들에게 동물이 언제부터 아팠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최근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검사를 해보면 의외로 경과가 오래된 질병들이 많다. 검진 결과를 들으신 후에야 눈여겨 보지 못했던 증상들이 이전부터 관찰되어 왔음을 인정한다. 기침으로 내원한 루가 심장질환으로 밝혀지듯이 동물의 질병은 보이는 증상 만이 다가 아니다. 사람의 40대에 해당되는 6세 이후의 개와 고양이에게 건강 검진을 권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5-06 07:22:55

[특별기고]코로나 위기 이후의 국가 위기

[특별기고]코로나 위기 이후의 국가 위기

인류가 직면하는 위기는 크게 네 가지이다. 기후변화, 에너지 부족, 물 부족, 식량 부족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식량 부족이 가져오는 위기를 '식량 안보' 차원에서 강조했다. 곡물 공급 부족으로 붕괴된 구(舊)소련 체제가 대표적 예이다. 1979년 미국이 취한 1천700만t의 밀, 옥수수 소련 수출 금지 조치가 소련 체제 붕괴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수년 전 중동과 북아프리카 독재국가의 붕괴도 식품 가격 폭등에서 시작되었다.'코로나19' 위기 이후 가장 우려되는 것이 식량 위기다. 식량 위기가 바이러스 등과 복합적으로 일어나면 속수무책이다. 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처리해본 경험도 없다. 국가 간에 전쟁에 버금가는 치열한 생존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FAO(국제식량농업기구)에서는 조만간 '식량 위기'가 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국제 쌀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고, 공급망도 흔들린다.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지난 3월 말부터 쌀 수출을 중단했다가 최근 수출 물량을 대폭 줄여 재개했다. 베트남의 쌀 수출 금지 내지 축소가 계속되면 세계 쌀 시장 공급량이 10~15%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밀 수출 축소도 우려된다.쌀뿐만 아니라 다른 곡물이나 축산물, 수산물 파동도 우려된다.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먹을거리 수출 중단이나 제한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자국의 식량 비축을 강화하고 식료품 사재기가 일어나거나 곡물 수급 상황이 더 악화되면 강력한 수출 금지를 행할 것이다. 식량 위기는 노동력 부족이나 공항, 항만 등 수송망 차질에서도 야기되고 심리적 요인도 파동으로 이어진다.우리나라 식량 수급 상황은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곡물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너무 부족하다. 연간 곡물 수요량은 약 2천100만t이나 생산은 450만t 수준이다. 부족분 1천600만t 정도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이 중 1천100만t 정도가 사료용이다. 축산물 소비가 많아 사료용 곡물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다. 소득 증대와 소비 패턴 다양화로 축산물 소비 증대는 불가피하다. 사료용 곡물 소비가 많은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2%에 불과하다. 그나마 쌀은 자급하고 있어 당장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농지가 도로나 주택, 공장이나 창고 용지로 전환되어 해마다 2만㏊가 줄어든다. 다른 곡물 자급률도 낮다. 보리나 콩은 25%, 옥수수는 4% 수준이다. 밀은 전체 소비량의 99.1%를 수입한다. 취약한 식량 수급 구조와 육류 소비 증대로 식품 수급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식량 수출 국가가 수출 문을 닫으면 5천만 국민의 먹을거리가 당장에 위협 받는다.다가오는 식량 위기에 대비한 장단기 대책이 필요하다. 위기 대비 매뉴얼을 재정비하고 품목별 수급 상황을 장관이 챙겨야 한다. 대통령 주재 점검회의를 통해 부처별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매점매석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통망을 점검하고 비상 대비 훈련도 필요하다. 여러 위기가 복합적으로 닥쳐올 경우에 대비하여 독립적인 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식량의 공공 비축과 수입 관리, 해외 곡물 수입망 확충이 필요하다.무엇보다 중단된 '국가곡물 조달 시스템'을 재추진해야 한다. 식량의 중장기 안정 공급을 위해 농업 생산 기반을 확충하여 우량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 농업기술 개발과 품종 혁신, 비료, 농약, 농기계 산업을 국가기간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 소비, 수출입 전반을 점검하고 안정 공급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복합 위기에 국가적으로 대비하라는 교훈을 남긴다.

2020-05-05 19:43:22

[경제칼럼]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

[경제칼럼]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

지난 4월 15일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됐지만 경제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전국을 달구던 선거는 끝났지만 코로나19에서 시작된 전 세계 경제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재 코로나19 전 세계 확진자 수는 350만 명을, 사망자는 24만 명을 훌쩍 넘겼다.한국에서의 코로나19는 진정됐고 정부는 생활 속 거리두기를 이행한다고 선언했지만 미국, EU 등 주요 경제대국들은 봉쇄돼 있고 경제 현장은 여전히 마비 상태다. 경제 활력을 측정하는 중요 지표 중 실업 관련 지수가 급증하는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4월 말에는 미국산 유가가 한때 마이너스 40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원유 1배럴을 40달러 주면서 판매한다는 것인데 상상 속 일이 현실에서 발생했다. 수요와 공급이 지배하는 시장에 전례 없는 기이한 현상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원유 시장마저 초유의 기현상이 나오고 있다면 지금 경제 상황은 우리들이 예상하고, 이해하는 이전의 지식 수준을 뛰어넘는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경제 주체인 기업들의 위기는 가계 경제의 위기를 초래한다. 실업자 증가와 같은 고용 불안으로 인해 가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어 소비 침체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현재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긴급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가계 경제에 미치는 타격을 줄이고자 경제 활성화를 위한 비상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조치들로 보여진다. 하지만 고용 불안과 실업 증가는 재난지원금의 모든 노력들을 무위로 만들 우려가 크다.가장 근원적인 경제 활성화는 기업 살리기가 돼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가계가 살고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기업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향후 지원 청사진을 보다 과감하게 그려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위기를 극복하고 가계 경제가 소비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살아난다. 지원받은 기업에 사회적 경제적 책임을 다하도록 촉구하며, 충분한 지원과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말이 있다. '호메시스 효과'라고도 하며, 진통제에 소량의 마약 성분이 쓰이는 경우를 의미한다. 벌의 독은 치명적이지만 봉침으로 활용될 때 약이 된다. 자외선은 피부암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적당한 햇빛은 비타민D를 합성시키는 약이 된다. 독성이 있는 물질이라도 소량을 사용하면 오히려 인간 생리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의미이다.경제에도 독을 잘 쓰면 약이 된다. 즉 호메시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IMF 위기와 금융위기 때 우리는 정보화 IT, BT산업 등 신사업에 지원하고 투자해 굴뚝산업 위주에서 산업 구조조정, 일자리 창출 등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기업에 대한 지원은 우선 규제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처럼, 기업을 옥죄고 있는 규제들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모래사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처럼 기업들이 의욕을 가지고 새로운 영역에서 자유롭게 놀게 만들어야 한다. 각종 규제로 인해 출시할 수 없었던 상품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하고, 문제가 있으면 사후 규제해야 한다.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바이오 산업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코로나19 진단키트와 관련한 뛰어난 검진과 생산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과 관련한 뉴스에만 관심을 두는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제 위기이자 기회가 왔다. 정부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가 잘 활용하면 약이 된다.4·15 총선의 표심은 '경제를 회복시키고 일자리를 지켜 달라'는 요청이다. 코로나19의 진정한 극복은 방역 완성이 아니라, 기업 일자리 지키기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그 핵심이다.

2020-05-05 15:59:35

[박창원의 기록여행] 어린이는 애새끼가 아니다

[박창원의 기록여행] 어린이는 애새끼가 아니다

'8·15 해방과 함께 이 어린이날도 긴긴 첩복에서 소생의 호흡을 내뿜었으니 올해는 제5회째의 어린이날을 맞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야말로 나라의 생명 나라의 보배다. 결코 연장자들의 재롱감이나 애새끼여서는 안 된다. 명일을 위하여 그들 자신을 축복해야 할 것이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50년 5월 5일 자)해방 뒤 다섯 번째의 어린이날이었지만 기쁨보다는 반성이 뒤따랐다. 혹독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 지금의 어른들이 그 어린 시절을 커온 것처럼 지금의 어린이들 역시 고초를 겪으면서 자라고 있다는 이유였다. 말하자면 어른들이 비참한 현실을 개선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게다가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도 문제 삼았다. 어린이를 놀잇감이나 애새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에서 애새끼로 빗댄 듯하다.그렇다면 어른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고, 어린이들의 고초는 또 뭘까. 어른들이 겪었던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의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은 방정환과 색동회 주도로 1923년 5월 1일 선포되었다. 몇 해 뒤에는 전국 곳곳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일제의 핍박으로 어린이날 행사는 이내 중단되었다. 어린이가 독립운동의 씨앗이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어린이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자는 어린이날의 첫 구호는 그야말로 공염불에 그쳤다.어린이날은 해방 후에 5월 5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어른들이 겪은 참담했던 어린이날의 분위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방이 되었지만 어린이들에게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데 선물 하나 사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교육 당국도 가난하기는 꼭 같았다. 기껏 5월 첫 주를 어린이 주간으로 정해 생색을 내는 정도였다.무엇보다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더 심한 굶주림에 허덕였다. 밥을 굶다 보니 학교에 다니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대구 지역 초등학생의 절반 정도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고 굶었다. 게다가 점심을 굶는 아이 열 명 가운데 둘은 아침에 죽을 먹고 오는 아이였다. 또 점심을 굶은 아이 절반은 돌아가서 저녁에 죽을 먹었다. 특식 배급 등으로 결식 문제를 해결해 왔던 일제강점기 때보다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해방 이듬해 첫 번째 맞은 대구의 어린이날 행사는 달성공원 광장에서 열렸다. 대구 시내 초등학교 학생과 중고등학생, 시민 등 수만 명이 참석했다. 다양한 기념 연예가 펼쳐졌고 귓가에 익은 동요가 하루 종일 울려 퍼졌다. 오후에는 공회당에서 초등학교 아동연합학예회가 열렸고 영화관에서는 어린이용 영화가 할인 요금으로 상영됐다. 그야말로 1년에 딱 하루는 애새끼가 아니라 대접받은 어린이의 함성이 진동하는 날이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린이날의 어린이 함성은 갈수록 힘 빠진 소리로 들린다. 어린이들이 줄어서일까.

2020-05-04 17:30:00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결혼 선물과 빅토리아 웨딩종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결혼 선물과 빅토리아 웨딩종

코로나19가 안정되어가니 계절의 여왕 5월에는 그동안 취소되었던 젊은이들의 결혼식도 다시 많아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결혼하는 부부에게는 축복의 의미가 담겼거나 생활에 필요한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 미국 여성지는 세계의 특이한 10대 결혼 선물을 소개한 바 있다. 부지런함을 뜻하는 독일의 뻐꾸기 시계, 마음에 사랑을 새기라는 베트남의 분홍 석필, 마당에 뿌리를 내리는 네덜란드의 백합 구근, 살림 밑천인 프랑스의 빈티지 린넨, 인도의 금은보석을 장식한 행운의 줄과 함께 우리나라의 금슬 좋은 목각 기러기 한 쌍 등이었다. 페루의 음식과 꽃을 담은 성스러운 바구니와 수단, 신부를 위한 향수도 독특한 선물이다. 결혼식에서 신혼부부와 춤출 수 있는 자격을 사는 멕시코의 현금 선물도 포함되었다. 사랑과 희망을 담은 각 민족의 독특한 선물이다.중세 이후 서양의 전통 결혼 선물은 면화와 종이류, 가죽류, 린넨, 과일이나 꽃, 나무와 금속 생활용품, 모직류와 도자기 등 필요 생활품을 주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이아몬드와 보석은 귀족이나 부유한 집안에 국한된 선물이었다. 경제 발달과 함께 도시가 형성되며, 부부가 예물을 주고받고 하객들은 부부에게 선물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인기 결혼 선물은 시계, 도자기, 유리와 크리스털, 가전제품, 목제가구, 은제품, 필기구와 탁상용품과 몇몇 생활용품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 및 금제품과 시계가 결혼 선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미국 신혼집 대부분에는 선물로 받은 시계 라디오나 토스터 오븐, 프랑스제 냄비가 있었고, 도자기, 크리스털 등의 생활집기, 린넨, 장식 화병도 인기가 있었다.우리나라는 대부분 축의금을 전달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선물 증정은 않는다. 서양에서도 지금은 리셉션 식사비를 기준으로 선물과 축의금을 결정한다지만 일반적이지는 않고 돈을 결혼식장에서 직접 전달하는 경우는 없다. 프랑스는 결혼식장에 초청되면 원하는 부부가 품목을 문의하고, 지정된 상점에 물건 대금을 지불했다. 미국에서도 하객들이 부부의 웨딩 선물 목록 중 선택하여 선물했으나, 이제는 해당 금액을 수표로 준다고 한다.19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하는 부부에게 아름다운 유리종을 선물했었다. 이것이 알려지며 영국 사회에는 결혼식 선물로 높이 30㎝ 정도의 화려한 유리종을 선물하는 풍습이 유행했는데, 이를 '빅토리아여왕 웨딩종'이라 한다. 손잡이는 여러 가닥의 물방울 모양 매듭을 만들었고, 파리에서 수입한 접착제로 유리종 몸체와 붙였다. 그러나 큰 유리종은 보관이 어려웠고, 잘 깨졌기에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많지 않다. 웨딩벨은 이민자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됐는데, 입으로 불어 만드는 큰 유리종은 상당히 비쌌다. 미국의 필그림회사는 웨딩벨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하여 크기는 작으나 견고하고 명쾌한 소리의 크리스털 종을 만들었다. 전통과 현재의 요구가 잘 부합한 실용적인 인기 선물이었다. 이 종은 싼 가격으로 '가난한 자의 웨딩종'이라 불렸다. 그러나 유리종의 청아한 소리를 듣는 부부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부자가 된다. 참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결혼 선물이었다.

2020-05-04 17:30:00

[기고] 뉴노멀이 아니라 노멀이다

[기고] 뉴노멀이 아니라 노멀이다

카뮈의 페스트를 꺼내어 다시 읽었다. 구구절절이 가슴을 쳤다. 수백만 명이 죽은 전쟁 역사를 알아도 가까운 친척 한 명의 죽음보다는 실감이 덜한 법이다.두 번이나 읽은 소설인데도 이번에는 느낌이 남달랐다. 우리가 몇 달간 겪은 일들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었다.어떤 재앙이나 "이 또한 지나간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은 항상 쉽지 않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당혹스러움, 어느 정도 위험한지 공포감,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절망감, 끝난 후의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감.처음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다고 했을 때, 의사로서 모든 병을 안다고 자만하면서 단순 독감을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주위를 안심시켰다.2월 19일부터 슈퍼 전파자로 인해 대구 지역에서 폭발적인 환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매일 환자가 급격히 늘었다. 모두가 당황했다.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공문이 날아들었다. 너도나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이 어떤지도 모르고 나도 병원 문을 닫고 달려갔다. 의사가 하는 일은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고 감염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들어가 회진을 하고, 검체를 채취하는 일이었다.덜컥 겁이 났다. 의사 생활 40년째이고 온갖 험한 환자들을 본 외과의사지만 이건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환자 중에 20대 젊은이가 2명 있었다. 너무 무섭다고 떨고 있었다.이건 당신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전파력이 강해서 이런 조치를 취한다고 안심시키고 아는 지식으로 여분의 시간을 천천히 보내고 병실을 나왔다. 잠시라도 안심하고 나보고 건강 조심하라는 말에 병실에 달려온 보람을 느꼈다.아직 병은 진행 중이지만, 처음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국의 대응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량이 이 정도였는지 나조차 몰랐다.사회적인 질병이 생기면 각 사회가 지닌 다양한 사회 역량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나는 이제까지 미국의 사회시스템을 아주 신봉하고 있었다. 의사로서 미국의 학문 세계는 따라잡기에 너무나 멀리 있는 대제국이었다. 의료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는 알았지만 저 정도인지는 몰랐다.일본 또한 항상 나를 기죽이는 나라였다. 기초과학이나 원칙을 얘기할 때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의 진짜 모습을 이번에 보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그 모습 그대로인데 우리가 훌쩍 컸다고 생각한다.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자 전 세계에 나가 있던 한국인들이 속속 귀국했다. 한국이 가장 안전하고, 사회시스템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이번 사태 이후를 뉴노멀의 시대라고 말한다. 많은 전문가가 나와서 답은 없다고 겁을 주고 있다.그런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 급격한 경제 팽창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과거와는 다른 뉴노멀이었다. 이제 돌아갈 곳을 잊고 있었던 노멀한 사회다. 우리가 아는 사회다. 각자 자기 일 성실히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다.소설 페스트는 말한다. 페스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없어졌다. 공포, 갈등을 거치면서 결국 사람들이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서로 연대함으로써 그 상황을 극복했다.세균은 또다시 올 것이다.

2020-05-04 17:30:00

[세계의 창] 예측 가능성으로 충만한 사회가 되어야

[세계의 창] 예측 가능성으로 충만한 사회가 되어야

나는 선장 출신이다. 선박을 이용한 대양 항해의 발전 단계에는 수백 년 동안 큰 진전이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 이전에는 누구도 유럽을 벗어나서 대양 항해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중해의 끝단에 있는 스페인의 지브롤터를 벗어나면 선박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으로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자들은 예측 불허의 바다로 나갔다. 나무로 만든 배와 돛으로 대양을 항해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바다는 위험 그 자체였다. 17세기에는 10척의 선박이 출항하면 7척만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철선이 만들어지면서 항해의 안전성이 높아졌다. 이제 사람들은 선박을 안전한 항해와 귀항이 가능한 운송수단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예측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예측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역이 이루어진다. 선박을 통해 특정 상품을 상대방에게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수출자와 수입자에게 있지 않다면 국제무역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는 물과 공기와 같이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느끼지 못하고 살지만 예측 가능성의 기능은 대단히 중요하다.선박 하나만을 두고 보더라도 인류는 선박의 안전 항해 확보라는 예측 가능성의 증대를 목표로 꾸준히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의 큰 흐름도 예측 가능성을 달성하려는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의 전공인 상법학도 예측 가능성의 달성에 그 이념을 두고 있다. 계약상 분쟁에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해야 거래가 활발히 성사될 수 있다. 상법에는 표준계약서의 사용 등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많은 법제도가 마련되고 있다.그런데, 최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예측 가능성이 전혀 없는 깜깜이를 지향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안하다. 선거제도를 보자. 우리나라는 정당의 당원이나 국민의 투표로 그 지역 국회의원 후보를 정하는 경선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신인들은 아무래도 기존 정치인에 비하면 인지도가 열악하니 가산점도 부여한다. 그런데,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원래 예측된 제도상 경선을 거치지 않고 전혀 모르는 인물이 후보자로 공천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제도의 실시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예측 가능성에 반한다. 지역에서 예비후보자들은 몇 년에 걸쳐 경선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전략공천으로 예상치 못한 인물이 경선 후보로 지명된다면, 다음에는 누가 경선을 준비하겠는가? 그렇다면 전략공천 지역을 적어도 6개월 전에는 공고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도 마찬가지다. 경북에는 대혼란이 왔다. 어떤 정당에서 각 선거구에 후보자를 발표한 다음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구가 획정되어 그 정당에서 이를 바꾸어 발표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예측과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다. 예비후보자들은 자신이 출마할 선거구를 축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인데, 하루아침에 선거운동을 해야 할 지역이 변경되다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가지 점은 예측 가능성의 증대라는 인류가 지향하는 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이 불확실하거나, 예기치 못한 전략공천 상황이 또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과연 우수한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들겠는가?우리나라의 각계각층은 예측 가능한 사회를 달성하는 것을 큰 목표로 삼고 나가야 한다. 장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드는 비용은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란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경시하게 된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수습한다고 야단을 친다. 먼 미래의 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예측하고 그 준비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 번 경험한 부정적인 것들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고 확인하도록 하자. 그렇게 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각 분야를 예측이 가능하게 만들어 국민들이 안심하고 미래를 보면서 안정적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하자. 예측 가능성의 확보야말로 우리나라 정치,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의 이념이자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05-04 17:30:00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타이스 명상곡, 변학도와 오거돈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타이스 명상곡, 변학도와 오거돈

▶알렉산더 '이수스 전투' 모자이크이제는 전설이 된 테너 파바로티의 미성으로 듣던 산타 루치아. 나폴리만의 산타 루치아항은 79년 쾌락의 도시 폼페이를 집어삼킨 베수비오 화산을 병풍으로 둘러친다. 아름다운 항구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거리에 나폴리 국립박물관이 나온다. 1749년부터 폼페이에서 발굴한 핵심 유물들이 탐방객을 기다린다. 2층 모자이크 전시실로 가면 '이수스 전투'가 위용을 뽐낸다. 폼페이 파우노의 집에서 발굴한 B.C 1세기 모자이크다.알렉산더와 당시 세계 최대 제국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가 B.C 333년 터키 남부 이수스에서 펼쳤던 세기의 대결을 담았다. 가로 5.82m, 세로 3.13m에 무려 150만 개의 미세한 테세라(대리석 조각)를 사용한 대작이다. 투구도 안 쓰고 공격 중인 알렉산더의 용맹과 겁먹은 다리우스 3세의 표정이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승리한 알렉산더는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가 주인 잃은 제국의 안방에 똬리를 튼다.▶페르세폴리스 불태운 기생 타이스이란 남서부 역사 고도 페르세폴리스를 찾은 건 2001년 3월이니 19년 전이다. 건물 주춧돌만 남아 역사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왜 잿더미가 됐을까? 시칠리아 출신 B.C 1세기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는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카'(역사박물관)라는 세계사 책에 한 여인의 역할을 두드러지게 묘사한다. B.C 330년 알렉산더가 심포지온(회식) 도중 술 취한 상태에서 총애하던 헤타이라(기생) 타이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거다. 페르시아가 B.C 480년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불태운 복수로 페르시아 궁전을 불태우자는 취지였다. 디오도로스는 알렉산더, 타이스, 헤타이라들, 장군들 순서로 횃불을 던져 궁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적는다.▶알렉산드리아 성자 타이스B.C 323년 이라크 땅 바빌론에서 알렉산더가 33세의 나이로 급사한 뒤, 타이스는 이집트 총독이 된 연인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을 따라 이집트로 간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연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후궁이 돼 3명의 자식을 낳는다. 타이스라는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에서 800여 년 뒤,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재등장한다. 흑해 서부 루마니아 콘스탄타(옛 스키타이 땅)에서 태어난 동로마제국 신학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성자 타이스 이야기를 6세기 '타이시스'(Thaisis·타이스의 삶)라는 기록으로 남긴다. 세속적인 기생에서 기독교 성자로 변신한 게 놀랍다.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현대인이 쓰는 달력(그레고리력이나 그리스 정교에서 쓰는 율리우스력)의 기본 연도, A.D(Anno Domini·주님의 해) 발명자로 알려져 있다. A.D 2020년이라고 쓸 수 있는 것은 이 사람 덕이다.▶타이스 명상곡기생과 성자가 뒤섞인 타이스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실린 바이올린의 애절한 음색 '타이스 명상곡'으로 19세기 말 다시 태어난다. 프랑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가 1890년 소설 '타이스'(Thais)를 쓰고, 작곡가 쥘 마스네가 이를 1894년 오페라로 바꿔 무대에 올린다. 배경은 5세기 동로마제국 알렉산드리아. 2막 1장에 수도사 아타나엘(소설에서 파푸누스)이 쾌락에 탐닉하는 기생 타이스에게 새 삶을 권한다. 2막 2장에 타이스는 고뇌 끝에 타락한 삶을 접고 기독교 귀의를 다짐한다. 타이스 명상곡은 이 대목, 2막 1장과 2장의 막간곡(entracte)으로 연주된다. 세속에서 신성으로 귀의하는 순간 영혼의 울림을 담는다. 하지만, 오페라는 역설적으로 아타나엘이 육욕을 누르지 못하고 타이스를 향한 일그러진 욕정에 불타오르며 막을 내린다.▶춘향전 변학도와 부산 오거돈일그러진 욕정은 춘향전 변학도로 옮겨붙는다. 1700년경 처음 등장해 무려 120종의 이본이 생길 만큼 인기 높은 춘향전에 기생 점고 장면이 나온다. 남원부사 변학도는 부임하자마자 기생부터 불러들인다. 2011년 출간된 '창악집성'(하응백 엮음, 휴먼 앤 북스)의 판소리 가사를 보자. "그때여 사또는 동헌에 좌정후 여봐라 호방형리 듣거라. 이 고을에 미인 미색이 많다 허니. 다른 점고는 삼일 후로 미루고 우선 기생 점고부터 하렸다…." 명을 받은 호방이 불러들여 부르는 기생 이름만 무려 20명…. 변학도를 돌려세울 공직자가 부산시장이었다.이 사람의 심포지온(회식) 사진을 보면 여직원들을 좌우는 물론 앞에도 앉혔다. 집무실로 불러 성추행도 모자라 관용차 성추행 의혹도 불거졌다. 불법 인권침해다. 피해자 인권은 뒷전인 채 소속 정당의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만 두드러져 더 답답해진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조선시대 탐관오리 변학도 수준으로 전락시킨 시장의 소속 정당이 유례없는 총선 대승을 거뒀다.

2020-05-04 17:30:00

[기고] 코로나 19가 발생한 해 어버이날

[기고] 코로나 19가 발생한 해 어버이날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조심하고 긴장된 나날을 보내는 2020년에도 어김없이 5월이 왔다. 그런데 신록의 계절 5월이 예년의 아름답고 화창한 계절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가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서로 예방 수칙을 지키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경상북도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다중이 모이는 행사를 중지했다. 매년 개최하던 어버이날 행사를 금년에는 취소했다. 안타까움이 크다.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특히 8일은 어버이날로서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미덕을 기리고 되새기는 날이다.우리나라 어버이날은 1956년 제정된 어머니날을 시작으로 1973년 개정된 '각종 기념일에 대한 규정'에서 어버이날로 개칭됐고 그해 5월 8일을 제1회 어버이날로 정했다.어버이날은 과거부터 내려오는 효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효경(孝經) 첫째 장구인 개종명의(開宗明義)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로 시작한다. 사람은 누군가의 자식이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산업화를 거치고 도시화가 일반화된 요즘 효의 의미와 가치도 많이 변했다.나이 든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3대 이상의 가족이 함께 생활하거나 가까이 살면서 서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요즘 우리의 삶이다. 가족의 정을 나누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같은 SNS가 한몫을 하고 있다.특히 올해는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을 위해 사람들의 생각과 일상생활이 크게 바뀌었다. 자영업을 하는 아들도, 직장생활을 하는 딸도 코로나19의 그늘을 피해갈 수 없는 이 마당에 어버이날을 맞아 자식들의 방문은 물론이고 보내주는 용돈에도 손사래를 치는 것이 코로나 시대 부모의 마음이다.경북도에는 65세 이상 어르신이 전체 도민의 21%인 56만 명이다. 금년 2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특히 어르신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어르신들이 함께 어울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경로당, 노인복지관, 노인교실, 취미클럽 등의 시설은 휴관으로 이용하기가 어렵게 됐고, 적으나마 수입이 생기는 노인 일자리사업도 중단됐으며 각종 단체가 운영하던 무상급식도 축소됐다.경북도가 이번 코로나19와 관련해 도민의 안전을 위해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양로원, 요양원 등 노인생활시설이었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어르신을 위해 마스크 등 위생물품들을 지원하였지만 넉넉하지는 않았다.코로나19가 노인생활시설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강력한 조치인 시설 입소자와 종사자를 통째로 격리하는 코호트격리를 2주간에 걸쳐 선제적으로 시행했다. 그 결과 노인시설에 대한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 조치를 잘 참고 따라준 시설 관계자와 어르신들께 고마움을 전한다.감염병이 발생하는 어려운 시기에도 부모님을 존경하고 편안히 모시려는 효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아울러 갑작스러운 감염병으로 연로하신 부모님과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은 분들을 위로하며 돌아가신 분들을 충분한 예의를 갖춰 보내드리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다가오는 어버이날을 맞아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이번 어버이날에는 감염병 예방 수칙을 잘 지키면서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부모님을 찾아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어버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2020-05-03 1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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