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엽공호룡(葉公好龍)-겉과 속이 다르다

옛날 엽공(葉公)이라는 자가 있었다. 용(龍)을 너무 좋아해서 장신구, 그릇, 담장 등 온통 용 그림으로 떡칠을 하고 살았다. 그의 용 사랑은 하늘의 용에게도 전해졌다. 어느 날 하늘의 용이 그의 집을 찾았다. 용이 그의 집 창문에 머리를 들이밀자마자 그는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 엽공이 용을 좋아한다(好)는 '엽공호룡'(葉公好龍)의 유래다.엽공이 겉으로는 용을 좋아하는 척하지만, 실은 용을 싫어했다는 뜻으로 쓰인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이다. 집에서는 폭군인 자가 남녀평등을 말하고, 은밀하게 특권을 누리는 자가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고, 자기 나라에 온 외국인을 차별하는 자가 인종차별을 비난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그런데 문제는 엽공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심제양(沈諸梁)이 바로 그이다. 그는 관리로 있는 동안 백성들에게 선정을 폈다. 공자(孔子)도 그를 찾아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엽현(葉縣) 지방을 다스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엽공이라 높여 불렀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들은 그의 백성을 위한 선정에 심히 불편했다. 기득권 세력들은 그를 폄하하고 비난하기 위해 '엽공호룡'이라는 말을 만들어 퍼뜨렸다. 엽공은 얼마나 억울했을까.지금 중국에서는, 아니 세상에는, 엽공의 공적은 잊히고 엽공호룡의 이야기만 남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을 혁파하고 개혁을 꾀하던 사람들이 기득권자들로부터 엽공호룡으로 힐난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 검찰은 한편에서는 과잉수사로 비난받고, 한편에서는 공정수사로 칭찬받고 있는 것 같다. 공정수사로 검찰 개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척'하면서 검찰 개혁을 또 뭉개려는 것일까. 궁금하다. 검찰이 자기 보신을 위해 '엽공호룡'하는 것이 아니고, 참된 엽공의 공적을 따르기를 바란다.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2019-09-30 18:00:00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덤, 덤으로 사는 인생

덤, 국어사전에는 '제 값어치 외에 거저로 조금 더 얹어 주는 일. 또는 그 물건'이라 돼 있다.2013년 4년 차 부장검사 윤석열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표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한다.' 멋지게 들리는 그 말을 할 때는 모든 게 끝났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윤석열에게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은 덤으로 사는 검사 인생이다.26년 전, 2년 차 지방사립대 교수 조국은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되는 순간 인생 끝이라 느꼈을 것이다. 복직은커녕 사회 복귀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조국에게 천신만고 끝에 복직한 이후의 교수 인생은 덤이다. 둘에게 검찰총장이나 서울대 교수는, 본전보다 훨씬 더 큰 덤이다.덤으로 주어진 인생을 사는 방식은 두 가지다. 굵고 짧게 또는 가늘고 길게. 총칼 쓰는 사람은 전자가 옳다. 결정적인 순간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대의명분을 살린다. 칼 쓰는 윤석열은 여당이나 위선 집단, 궤변 집단이 뭐라 악다구니를 쓴다 해도, 소신대로 단죄하고 장렬히 산화할 것이다. 글 쓰는 이는 조용히 참회하며 겸허하게 사는 게 맞다. 타인을 비난하고 제도를 원망하라고 덤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문필가 조국은 자신을 성찰하며 겸허하게 살 의무와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조국은 시끄럽고 길게 살려고 권력을 휘두르려 욕심을 부렸다.민정수석 조국은 부실한 검증으로 인사를 망쳤다. 민정수석 취임 전의 특혜와 반칙, 이후의 불법,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의 허위로 검찰 개혁의 동력을 떨어뜨렸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신인도를 낮췄다. 세상에 어느 다른 국가나 정부가, 허위로 점철된 법무부 장관의 국가나 정부를 신뢰할 것인가? 분노하지 않을 하늘이 있고, 분노하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권력을 탐하는 불나방은 스스로를 불태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른 불나방까지 함께 불꽃으로 끌고 들어가 공멸시킨다.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2019-09-30 18:00:00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대왕고래의 희망

1881년 문을 연 런던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규모와 더불어 외벽을 장식한 갈색과 회색 테라코타의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 인상적인 곳으로, 런던을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로 소개되곤 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탁 트인 넓은 공간에 거대한 대왕고래가 마치 헤엄치듯 유유히 떠 있기 때문이다.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이 화석은 길이가 자그마치 25m에 달하며, 지구상 현존하는 동물 중 가장 큰 대왕고래의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준다. 박물관에 전시된 각종 동식물의 화석과 표본은 생명체의 다양함과 풍부함, 더 나아가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한다.하지만 그것들 대부분이 절멸하였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면, 갑자기 텅 빈 마당에 혼자 서있게 된 사람처럼 허전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최근 들어 동식물의 개체 수 급감이나 멸종에 관한 뉴스가 늘어나는 추세라 더 그렇다. 대왕고래도 한때는 인간의 마구잡이식 고래 사냥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무분별한 포획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이 체결된 후 가까스로 멸종 위기는 넘긴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라져가는 동식물이 희귀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늘상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 많던 참새들, 다 어디로 갔을까? 포장마차마다 참새구이를 팔던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 흔하던 참새를 잘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께서 가끔 옥상에 새 모이를 한 줌 뿌려주시면 참새 떼가 금방 모여들어 짹짹거리곤 했었지만, 이제는 쌀을 뿌려주어도 찾아드는 참새가 별로 없다. 꿀벌이 사라져서 인공수분을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사라져가는 동물들은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다급한 경고가 아닐까?생물 다양성의 파괴를 불러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요즘 전 세계의 화두가 된 기후변화도 그 주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서유럽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에서 빙하가 녹아내려 붕괴 위기에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지구 곳곳에서 태풍과 홍수, 그리고 가뭄과 기근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일대는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사람과 동물 모두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고, 유럽은 폭염과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가 하면, 브라질과 볼리비아는 아마존의 산불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지난달 20일,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런던, 베를린, 함부르크, 나이로비, 멜버른, 마닐라, 리우데자네이루 등 전 세계의 수천 개 도시에서 기후변화 반대 시위가 열렸고, 여기에 수백만 명이 참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극의 과학자들도 동참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화석연료 감축이나 소비와 생산 방식의 재검토라는 문제에 가로막혀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머뭇거리는 사이, 젊은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이번 시위가 '하나의 이념으로 뭉친 전 세계적 청년 운동'이 된 것은 기후변화와 그 원인인 환경파괴에 대해 젊은이들이 절박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미래가 있어야 한다"는 스웨덴 16세 소녀의 외침은 어떤 꾸지람보다도 호되다.젊은이들의 요구에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답을 해야 한다. 디스토피아가 아닌 희망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혹독해지는 자연재해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라는 신호이며 문명의 도전이다. 소비문화에 근거한 개발과 경제발전 논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환경을 돌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류의 과제다.자연사박물관의 대왕고래에게 '희망'(Hope)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생각할 때다.

2019-09-30 14:05:33

손경찬 독도지킴이

[기고]'조국 사태'는 우리 시대의 불행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과 그에 관해 얽힌 온갖 의혹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현재진행형이다. 검찰이 마침내 현직 법무부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일이 이쯤 되니 여론을 무시하고 조국 장관 임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강력히 추천했던 여당 지도부가 다급해지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검찰을 맹비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될 때만 해도 개혁의 적임자라며 정의와 공정의 잣대로 대한민국의 부정부패에 철퇴를 가하라는 주문까지 했던 여당이 아닌가.검찰의 칼끝이 의혹이 한두 건이 아닌 여권의 실세에게 바짝 조여오자 그간에 추켜세웠던 말과는 다르게 검찰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검찰이 압수수색하면서 '사전에 통지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가 하면, 사실과 다른 말들을 퍼트렸다. 장관 집을 11시간 압수수색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압수수색 당일 자장면을 주문해 시간을 때우고 휴지통까지 뒤졌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퍼트렸는데, 검찰에서도 어이없고 답답한지 조목조목 반론했다.통상적으로 주택 압수수색의 경우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나 정경심 교수가 변호사를 입회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고, 변호사 입회 후에는 압수수색 내용에 일일이 이의를 달아 이와 관련해서 두 번의 영장을 추가로 신청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점심을 자장면으로 시킨 것도 점심식사를 하지 않고 압수수색을 끝내겠다는 말에 "그렇게 하면 (나도) 점심식사를 못하겠다"는 정 교수의 말에 점심을 시켜 먹었고, 수사진의 식사 비용은 검찰이 별도로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가짜 뉴스까지 흘리면서 불평을 해댔다.'조국 사태'를 보는 입장은 정치 진영에 따라 두 갈래로 상반되고 있다. 한편은 의혹투성이 속, 그것도 배우자가 피소돼 재판을 받아야 할 입장에서 조국은 부적격자이며,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독선이라는 것이다.또 다른 입장은 의혹만 있지 아직까지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자에 대해 대통령의 임명은 당연하며, 검찰 개혁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이런 논란에도 분명한 것은 조국 장관과 그 가족이 국민이 의심하는 각종 의혹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점이고, 또 언론 보도에 따르면 관계인들이 그 의혹을 감추려 한 사실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것이다. 누구든 권력을 등에 업고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도 실체적 진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아닌 것은 분명 아닌 것이다.'문재인 정부가 핵심으로 꼽고 있는 검찰 개혁을 통해 정치 검찰이 아니라 국민의 검찰로 태어나야 하는 당위성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그렇더라도 각종 의혹에 휩싸여 대한민국의 여론을 양분시키고 갈등을 유발케 하고 있는 조국 장관 건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더욱이 그 가족이 피의자 입장에 선 마당에서도 흔들림 없는 조국 수호에 안달하는 정부여당과 당사자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2019-09-30 11:13:27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비오는 날의 슈퍼맨

올해 여름은 유독 더 더웠던 것 같다. 아마 어디에나 있는 에어컨 실외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걸 보니 가을이 오나보다. 연신 부채질을 하던 손은 이제 추위를 피해 호주머니를 찾을 것이고,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 땀에 옷이 젖어 괜히 짜증이 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여름의 끝을 알리듯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특유의 비 냄새와 빗소리는 못 보던 것을 보게 만들거나 기억하지 못하던 것을 기억나게 한다.어린 시절, 비가 오면 우산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 짓(?)이 시작되었는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긴 기간 동안 호사를 누렸다. 우산을 들고 다녀야하는 번거로움에서 자유로워진 기분이랄까?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다보면 땀과 비 때문에 옷이 흠뻑 젖었다.(물론 비가 올 때마다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어느 날, 비에 옷이 젖어 바닥에 떨어진 빗물위에 서 있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웃으셨다. 아마 내 몰골 때문이거나 맷돌의 손잡이를 잃어버리셨던 모양이다.하루는 비가 오자 어머니께서 빨래통에 있던 옷 한 벌을 내어주셨다. 매번 멀쩡한 옷을 버려오니 어차피 젖을 옷을 꺼내주신 것이다.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이 통과된 사람처럼 나는 기뻐했다. 이제 합법적으로 비를 맞을 수 있게 된 것이니까. 그렇게 법의 보호아래, 슈퍼맨이 공중전화부스에서 옷을 갈아입듯 비가 오면 나는 옷을 갈아입고 슈퍼맨이 되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더 이상 빨래통에서 옷을 찾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의 이상한 시선이 의식되었던 것 같다.여전히 빨래통에는 옷도 많은데 비오는 날 슈퍼맨은 더 이상 없다. 이유 없는 행복에 대한 의심과 머리무게가 무거워진 만큼 이제는 움직이는 일에 주저함이 생긴다. 우리는 사회적 위치와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작은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연출가

2019-09-30 11:13:05

노동일 경희대 교수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이른 아침에] 원칙대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 대통령 발언윤 총장 그만두라는 말과 같지만검찰 수사 받는 법무장관 나라서총장이 물러나지 않은 것은 당연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경우이다. 박지만 씨 친구라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세월호 유족 사찰' 죄목 때문이었을까. 검찰은 그에게 유독 가혹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나타난 그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검은 헝겊인지 수건인지를 덮었지만 선명한 검찰 마크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수갑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검찰의 관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한 법집행이었다. 흉악범도 아니고 도주 우려도 없었다. 포토라인에 선 유명인치고 영장심사 과정에서 수갑을 채운 경우는 없었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안희정 전 지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도 그랬다. 집권층의 심기를 헤아린 검찰의 과잉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다.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군인의 명예에 대한 의도적인 짓밟기였다. 이 전 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에는 그 같은 모욕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지인들에 대한 수사 등 검찰의 끊임없는 괴롭힘이 있었다고도 한다. 현직 신분의 변창훈 검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역시 비슷한 충격이었다. 오전 7시 아이들 보는 앞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검찰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을까 싶다.인권 보호, 엄정하고 절제된 검찰권 행사. 지난 정권 관련 수사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여권 누구도 말하지 않던 단어였다.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정치공세라며 일축했다. 더욱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검찰에 대한 독려만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이다.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권 행사'의 핵심 지침으로 검사들의 가슴에 담아야 할 내용이다.문제는 발언 시점이다. 앞서 본대로 검찰 수사가 숱한 부작용을 나을 때 문 대통령이 같은 발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반대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천금의 무게로 작용했을 게 틀림없다. 검찰 조직 전체가 스스로 조심하며 절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조국 법무부 장관 집 압수수색에 대한 불만 표출로 해석될 뿐이다. 적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혹독해도 우리 편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워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린다.다행인 것은 과거와 같은 구도가 되풀이 되지 않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각영 검찰총장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사표를 던졌다. 강정구 교수 수사에 대한 천정배 법무장관의 지휘권 행사로 김종빈 총장이 물러난 적도 있다. 관행적으로 볼 때 문 대통령의 발언은 윤석열 총장이 그만두라는 말과 진배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진중권 교수의 말대로 "청문회를 통해 도덕성을 상실한"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도 직을 유지하고 있다. 수사는 "아내와 검찰 사이의 다툼일 뿐"이고 본인은 검찰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한다.임기가 보장된 윤 총장이 물러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어떤 압력이 있어도 중도 사퇴라는 '과거의 관행'을 따라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재차 "검찰이 해야 할 일은 검찰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검찰은 원칙대로 수사를 하면 된다. 빠른 시간 내에 조 장관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조 장관 아들 수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이 비판 받는 별건 수사이기 때문이다. 애초 제기된 의혹에만 집중하여 결과를 밝혀야 한다.여권 전체도 영웅시하던 윤석열 검찰에 돌을 던지는 행위를 멈추고 국정에 집중해야 한다. 조 장관 수사에 보복하듯 '검찰 개혁'을 외칠수록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검찰 개혁의 요체임은 다 알고 있다. 검찰이 개혁을 방해해도 필요하다면 국회의원들이 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조국만이 할 수 있다"거나 촛불집회가 있어야만 한다면 스스로 의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 말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문 대통령, 조 장관, 정치권, 윤 총장, 검찰 모두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다.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제 할 일을 할 때 국민들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9-09-29 16:36:00

하병문 대구시의회 경제환경위원장

[기고] 극일(克日)의 시작은 뿌리산업 육성부터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로 일본이 가하는 위협은 그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기초소재·부품을 납품받으며 국내 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뿌리산업 기술 개발 및 지원을 등한시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 볼 수 있다.물론, 글로벌 전문화·분업 시대에 모든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이번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기술력 확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일(反日)이 아닌 극일(克日)을 위해 일본이 어떻게 부품·소재 강국이 됐는지 살펴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성이 있다.일본 제조업의 특징은 '모노즈쿠리'란 단어로 가장 잘 설명된다.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즈쿠리'가 합성된 이 용어는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일본은 모노즈쿠리를 통해 소재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재 확보와 고용 안정, 직업 능력 개발·향상, 노동 능력 평가와 노동 조건 확보, 산업 집적 유지, 중소기업 육성 등에 힘을 쏟았다. 자율주행자동차·로봇 등 전략 분야 육성, 학교 육성, 생애학습 진흥, 국제협력 등의 분야도 체계적으로 나눠 자금·제도·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우리가 이에 대응하려면 '뿌리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대구지역의 주력산업인 자동차부품 및 기계부품과 안경산업 등의 성공은 뿌리산업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역의 미래먹거리인 로봇산업, 첨단의료기기산업, 신재생 에너지산업, 미래형 자동차산업 또한 뿌리기술의 첨단화와 융·복합화를 통한 기술력을 구현하지 않고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하지만, 지역의 뿌리산업은 '3D 업종'으로 인식돼 그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저평가돼 제조산업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또한 낮은 임금과 영세성을 극복하지 못해 인력 확보의 문제 및 자금 확보, 기술개발 등에도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게다가 기업 지원 기반이 취약하고 생산 현장 인력의 고령화, 인력난 심화, 소규모·영세기업의 비중까지 높은 실정이다.따라서, 극일(克日)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정책적 관심과 관련 예산이 수립되는 시점에서 대구 지역 뿌리산업의 근본적 체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3가지 제안을 대구시에 주문한다.첫째, 기술경쟁력 확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뒤처진 지역 뿌리기업의 부가가치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뛰어난 기술경쟁력이 필요하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역 학계·연구소·지원기관 등과 연계한 기술 지원 및 특허 공유 등이 이뤄져야 한다.둘째, 근로 환경의 개선이 시급하다.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최저 수준이나 산재율은 높아 3D 산업 이미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셋째, 체계적인 인력 수급 시스템이 지원돼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은 증가하고 기술·기능직 인력은 감소 및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관련 인력이 충원될 수 있고 뿌리기술이 지역에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일본의 소재 부품산업을 통해 시작된 위기가 뿌리산업 활성화를 통해 대구시 지역 경제 활성화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19-09-29 15:39:02

비단에 담채, 29.5×26.4㎝, 간송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정선(1676-1759), '시화환상간'

9월의 주제는 그림을 중심에 놓은 동호(同好)의 우정이었다. '기명절지' 부채의 이도영과 고희동 그리고 스승 안중식, 심사정의 그림과 강세황의 글이 나란히 표구된 '경구팔경첩'의 '산수', 강세황의 '월매도'에 써 넣은 친구 허필의 비평 등은 그림을 매개로 한 한국문화사의 의미 깊은 장면들이다. 겸재 정선의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또한 사천(槎川) 이병연(1671-1751)과의 우정과 고전 회화의 인문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맨 머리를 드러낸 소탈한 차림의 두 노인이 두루마리를 펴 놓고 냇가 소나무 아래 풀밭에 마주 앉아 있다. 한 사람은 화가 정선이고 한사람은 다섯 살 위인 시인 이병연이다. 두 분은 한 동네에 살았는데 정선이 경기도 양천 현령으로 떠나게 되자 두 노대가는 서로의 소식을 시와 그림으로 전하기로 한다. 30대부터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정선이 66세, 이병연이 71세 때인 1741년(영조 17년)이었다. 정선은 한강 주변의 명승지를 화폭에 담아 이병연에게 보냈고, 이병연은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보냈다. 두 분은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이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실력을 겨루었다. 그림이 가면 시가 오고, 시가 가면 그림이 오는 '시거화래'(詩去畵來)의 왕복에서 탄생한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첫 머리에 이병연이 아래의 시를 써서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아시군화환상간(我詩君畵換相看) 경중하언논가간(輕重何言論價間)시출간장화휘수(詩出肝腸畵揮手) 부지수이갱수난(不知雖易更雖難)내 시와 그대 그림을 서로 바꿔보는데경중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으며 값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시는 마음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데어느 것이 쉽고 어느 것이 어려운지 알 수 없다네 정선이 '시화환상간'에 써 넣은 화제는 위의 이병연 시 중 앞 두 구절이다. 정선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을 나타내는 중국풍 관념산수가 주류를 이루며 실제의 경치인 실경(實景), 진경(眞景) 그리기가 약했던 조선 산수화에서 우리 산천을 그림으로 옮긴 '진경산수'로 한국회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정선이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모델을 창안할 수 있었던 것은 "공력의 지극함은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던 평생의 노력과 이병연을 비롯한 문인, 사대부 지식층과 교류하며 당대의 문예흐름과 시대정신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선이 부임했던 양천현은 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인데 2009년 '겸재정선미술관'이 강서구 궁산 자락에 개관했다. 미술사 연구자

2019-09-29 06:30:00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文靑들에게 보내는 편지

소설이 쓰고 싶다는 분을 더러 만납니다. 꼭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요. 소설이 무엇일까요? 소설은 인간의 본성 깊숙이 적재된 상처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듯이 풀어내는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하고 싶은 욕구와 같은 억압된 초자아와 대면하게 해서 카타르시스를 행하게 만드는 그것이 소설입니다. 소설로 형상화된 초자아는 이드가 용납하지 않는 충돌을 도덕적으로 이끌고 자아를 컨트롤하며 대리만족을 끌어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첫 소설은 '자아 찾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얘기를 쓰든지 자기검열을 접어두고 마침표 찍을 때까지 자아가 나아가는 대로 따라가세요. 누가 주인공이 되든지 소설 속의 인물은 하나의 시점에 불과해요. 소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개인 중심의 글이 되거나 시대정신을 담은 글로 변모해요.오르한 파묵은 소설이 하나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어요. '그림과 관련된 세밀화가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순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그와 같이 '무엇을 쓸까?' 하는 글감이 주어지면 '어떻게 쓸까?' 하는 구성이 시작되어요. 인물, 사건,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 줄로 엮는 과정에서 소설의 가독성이 주어지죠. 이야기는 단순한 시간의 나열이 아니라 인과관계로 밀집되는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에요. 인물의 움직임과 서사의 흐름에는 반드시 합당한 동기가 주어져야 해요. 소설에는 우연이 없고 오로지 합리성과 필연성이 있을 뿐이니.이제 곧 신춘시즌이에요. 문청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며 매일춘추를 마감할까 해요. 신춘문예에 소설을 응모할 때 오타와 띄어쓰기, 단락구분 같은 기본기를 꼼꼼하게 살피고, 글씨체는 신명조나 바탕체 11포인트로 출력하는 것이 좋겠어요. 응모작 중에 단락과 단락 사이를 한 줄씩 띄운다거나 단락을 아예 무시한 작품, 원고 분량이 모자라거나 두툼하게 원고지를 묶은 소설까지 다양한 형식이 눈에 띕니다. 반듯하고 짜임새 있는 A4용지 출력에, 표지까지 입히는 정성도 작품의 격을 높이는 부분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소설은 서두가 가장 중요해요. 서두에 주제의식이 담겨 있는지, 문장은 깔끔하게 정서되어 있는지 거듭해서 살피고, 첫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인물이나 스토리의 움직임이 없으면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단편소설은 압축의 미학을 높이 사는 장르란 걸 기억하고, 소설 속의 모든 에피소드와 소도구가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기로 해요. 간결한 대화, 늘어지는 묘사, 서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보고형식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은지. 장정옥 소설가

2019-09-29 06:30:00

정화섭 작 '안데르센 동상'

[내가 읽은 책]안데르센의 지중해 기행/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송은경 옮김/예담 펴냄. 

한때 어린아이였을 어른들을 위하여 축배를 든다. 저자는 어린 시절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미운오리새끼'등의 많은 동화로 우리에게 상상을 품게 해준 인자한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1805년 덴마크 코펜하겐 근처 오덴세에서 태어난 저자는 1875년 70세의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동화와 희곡, 기행서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코펜하겐에서 동방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책은 9개월간의 긴 여정을 적고 있다. 제1부 위대한 어머니 덴마크, 제2부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리스, 제3부 신비의 땅 동방에 가다, 제4부 다뉴브 강을 거슬러 오르다, 제5부 다시 덴마크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을 물과 같다고 표현했던 저자의 말대로 새로운 여정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임을 암시한다."그 모든 것을, 그 신성하고 깊은 적막감을 내 어찌 다 기억하랴!"P108 옛날 옛적부터 신성시 되었던 델포이(델포)에서 사슴의 눈은 눈물로 무거워지고 금지된 노랫가락 속에는 어머니가 있음을 떠올린다. 부재의 이미지를 찾아가듯, 여행의 서곡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결국 나 자신으로 끝나는 나그네이다. 일상의 탈출로 인한 정신의 재충전과 여행담을 통해서 버무리는 사유의 짜릿함이 책속에는 있다.저자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비평가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여행길에 나섰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 결점만 보려고 한다. 이제 고국에 가서 헤쳐가야 할 길은 험한 폭풍우 속의 바닷길이다. 항구에 닿기까지, 수많은 거센 파도들이 머리 위에서 부서질 것임을 나는 안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내 미래가 결코 지금보다는 더 나쁘진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p274 지중해 기행을 통해서 재현된 저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불운의 이야기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고통을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삶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차가운 소나기를 맞아야만 부글부글 끓다가 꽃으로 터진다고 한다. 저자의 발자국에 채색된 그림자는 감동적인 운치와 낭만이 묻어있다."덴마크에 산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덴마크 문학이야말로 산이다. 숲이 우거진 높은 산이다. 이웃 나라들이 볼 때는 지평선 위 푸르스름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언제든 환영하니 와서 우리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산야를 거닐어 보시라." -p282 저자가 고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귀환의 첫 순간이야말로 그간의 여행으로부터 받는 환영의 꽃다발이라 한다.올해로 한국과 덴마크의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덴세 시립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로 작가의 200년을 기념하는 국제교류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불행하고 소외된 계층을 다룬 휴머니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내 작품을 이해할 것이고"…….이제 추석도 지나고 훌쩍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 저자가 집세를 내지 못해 거듭 이사를 했던 그 옛날 뉘하운을 떠올리며 이 책을 펼쳐도 좋으리라. 동화보다 아름다운 지중해기행은 더욱 풍성한 계절을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정화섭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9-28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좀 자세히 살펴보게 박제가

눈앞에 핀 꽃들이 다 붉다 해서/ 무장일홍자(無將一紅字)다 같은 꽃이라곤 말하지 말게/ 범칭안전화(泛稱眼前花)암술 수술 꽃마다 다 다르거니/ 화수유다소(花鬚有多少)그 차이를 좀 자세히 살펴보시게/ 세심일간과(細心一看過)*원제: 위인부영화(爲人賦嶺花): 어떤 사람을 위해 고갯마루 꽃을 노래하다. 과거 동양인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은 다분히 망원경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산맥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산맥 속의 산, 산속의 숲, 숲속의 나무, 나무 밑의 마타리꽃과 뻐꾹나리, 그 부근에 살고 있는 무당벌레와 땅강아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자연 전체의 거대한 윤곽은 누구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살고 있는 개별적 사물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관찰은 아무래도 부족했다는 뜻이다. 옛날 우리나라 시문들에 강은 매우 자주 등장해도 강물 속에 살고 있는 꺽지와 빠가사리, 각시붕어와 미꾸라지, 쏘가리와 모래무지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도 바로 여기에 그 연유가 있다.예컨대 나무. 나무들은 모두 나무이기 때문에 나무로서의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나무이기 때문에 각각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보편성과 동질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 특수성과 차별성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했다. 따라서 나무를 보면 나무인 줄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조선후기의 학자 박제가(朴齊家)가 지은 위의 한시는 동양인들의 이와 같은 자연관에 대해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눈앞에 있는 꽃들이 모두 붉다 해서 꽃들은 죄다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말하지 말라는 거다. 왜 그러냐고? 자세히 살펴보면 암술과 수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암술과 수술은 개별적인 꽃들이 지닌 차별성의 대표로 구사된 시어. 그러니 어찌 암술과 수술만 다르겠는가? 그 크기와 색깔, 꽃잎의 수와 꽃잎의 모양이 제각각 천차만별이다.겨자씨 속 수미산! 우주는 크지만 그 우주의 진실은 작은 것 속에서도 살아있다. 때문에 작은 것에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우주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산길을 가다가 여치를 만났으면 여치라고 불러주고, 풀무치를 만났으면 풀무치라고 불러주어야지, 일괄 곤충이라 부르지 말라. 끝순이를 만났으면 '끝순아'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고, 돌쇠를 만났으면 '돌쇠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지, '사람아' 하고 부르면 어느 누가 대답을 하겠는가.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9-28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광장으로!

광장(廣場)은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자리이다. 쾌적한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엔 커피숍, 서점 같은 상가가 있으며 바닥엔 잔디나 붉은 벽돌이 깔려 있을 법하다. 둘레엔 드문드문 벤치가 있고 마로니에나 라일락 또는 배롱나무가 서 있을 법도 하다. 한쪽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다른 쪽엔 청소년을 위한 농구대 하나쯤도 마련되어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광장은 우리 시대에 정신적으로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우선 광장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적이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선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남에게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며, 자유롭게 차려입을 수 있지만 풍속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자유와 평등도 소중하기 때문이다.평등하다면 반칙과 특권이 없어야 한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고 결국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놀이를 할 때도 부잣집 아이든 그렇지 않든 똑같이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먼저 온 사람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늦게 온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기다려야 한다.둘째, 광장엔 자정(自淨)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보장하면 평등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이 깨어지는 곳에 불화가 생긴다.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시민들의 협의에 의해 도출된 정의이다. 정의와 양심의 순(順)기능으로 인한 정화(淨化) 작용, 그것이 자정 능력이다. 편향된 이념에 중독된 집단이나 사이비 종교엔 바로 이 자정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끝으로, 광장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신체적 제약, 이념,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그 누구라도 배제되어선 안 된다. 광장에 두 명 이상이 있다면 위의 두 가지 원칙 모두가 지켜져야 한다. 혼자 있어도 스스로 어긋남이 없도록 신독(愼獨)함에 힘써 자정 능력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위의 조건이 맞지 않는 비민주적 공간, 즉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반칙과 특권은 묵인되며, 자정 능력은 실종되고 없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열린 폐쇄적인 공간을 '밀실'(密室)로 규정한다. 밀실은 혼자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정의가 죽어버린 공간이다. 홀로 거(居)해도 바르게 처신하면 그곳은 광장이다. 무리를 지어도 동반 타락하면 그곳은 밀실이 되고 만다.결국 바람직한 삶은 밀실을 떠나 광장으로 가는 쉽지 않은 여행이다. 용기와 지혜로써 불의한 이익을 멀리하고 이웃과 함께 광장에 서고자 하는 지난(至難)한 몸짓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거하는 곳을 광장으로도, 밀실로도 만들 수 있다. 마음을 잘 쓰면 온 누리가 광장이고, 잘못 쓰면 처처(處處)가 밀실인 것이다. 가자! 광장으로! 그곳은 반칙과 특권이 없고, 너와 내가 공정하게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가자!전 정부가 '광장의 밀실화'로 탄핵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러함에도 현 정부는 반칙과 부정을 일삼고 특권은 누릴 대로 누리며 밀실에서 살았던 가정의 가장을 광장의 관리인으로 고용했다. 잘못된 인사다. 계속 국민과 역사에 눈감으면 파국을 부른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본 칼럼의 모티브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얻었다. 그러나 광장과 밀실의 개념은 작품 속의 그것들과 다르며 필자가 내린 정의임을 밝힌다.-

2019-09-28 02:30:00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한반도 비핵·평화에 시동 건 대통령의 정상외교

지난 24일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DMZ의 평화 구축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얻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가치를 공유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하였다. "남북 간에 평화가 구축되면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고도 언급하였다.문 대통령의 DMZ 평화지대화 제안이 보다 현실성을 갖는 이유는 지난해 9·19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군사 분야 합의서의 영향이 크다. 군사 분야 합의서에서는 DMZ를 둘러싼 육해공 지역에서 남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큰 틀의 합의를 이루었다. 군사 분야 합의서 체결 이후 이 지역에서 남북 간 충돌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우리 측은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 간 합의사항인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작업과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파주, 철원, 고성 지역에서는 시험 폭파된 GP 장소를 따라 평화의 길 조성 작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드라마틱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군사 합의에 따라 판문점 지역에서 왕래가 수월해진 것에 기인한다. 판문점 지역의 자유왕래까지는 아직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우리는 과거와는 다르게 변해가는 남북 접경지역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이처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DMZ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역대정부에서 늘 있어 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DMZ 한복판에 DMZ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접경지역을 둘러싸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지구로 지정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남북이 한반도 번영을 공동으로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명실공히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미 DMZ는 남북의 철책을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평화, 생태, 문화의 보고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특히 아직 한반도는 수십만 발의 지뢰와 세계 최대의 군사적 화기가 대치하는 정전협정 체제 아래 있다. DMZ는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는 지역으로 되어 있다. 유엔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DMZ를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문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물론 DMZ만 평화적으로 관리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DMZ의 평화지대화는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정착 과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한 단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번에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전쟁 불가, 상호 간 안전보장, 공동번영의 3원칙에 따라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고 한반도 전체의 긴장완화와 화해 협력이 전개될 때 평화지대화 작업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면서 단계적인 방식을 통해 북한의 신속한 조치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체제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한에 먼저 비핵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상응하는 조치들을 촘촘히 만들어 연착륙시켜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음은 지난 30여 년간의 협상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북한의 핵동결에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유도해 내야 함은 자명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과 '지켜보자'는 신중한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앞으로 2, 3주 내에 개최될 북미 실무협상을 지원하면서 북미가 유연한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조치들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와 DMZ의 평화지대화, 남북 관계의 발전과 공동번영의 이슈들이 상호 선순환하면서 한반도 평화발전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

2019-09-26 15:28:59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아버지와 네 번의 눈물

오늘은 나의 아버지 생신 이시다. 근데 난 가보지 못했다. 이유야 어떻든 굉장히 불효를 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평상시 아버지의 생신이라면 온 식구들이 모여 식사라도 같이 했을 터인데…. 사실 지금의 나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리고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지신 분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아버지와의 기억, 아버지로 인한 눈물 몇가지를 적어 보고자 한다.아주 어렸을 적 굉장히 아픈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자란터라 그 당시엔 병원도 없었고 교통도 굉장히 불편했다. 이동수단이라야 걸어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꽤 먼거리 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를 업고 걸어 갔고 난 아파 정신이 몽롱했지만 아버지의 등에서 배어나오는 땀 냄새를 맡으며 울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 등짝에 배인 땀이 진통제의 역할을 했는 것 같아 5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내가 사춘기 일때는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어느날 친구들과 길을 가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우연히 마주 친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손짓과 묘한 음성으로 반겨 주었고 친구들이 누구냐고 묻자 나도 모르게 "옆집 아저씨"라고 대답해 버렸다. 그 순간 나 스스로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지 몰랐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죄송함과 막막함이 나를 짓눌렀으며 그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아버지의 몫까지 세상에 다 표현 하겠노라고…. 그 결과 오늘의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스물이 갓 넘었을 때 아버지의 회갑연이 있었다. 자식들이 쌍쌍히 나와 절을 하였고 막내인 난 맨 마지막에 절을 하였다. "아버지 생신 축하 드립니다"라고 하면서 엎드린 순간 왠지 모를 울음이 터져 나와 버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옆에 앉아계신 어머니도 울고 계셨고 누나도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채 멀뚱히 우리를 보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어머니의 한을 묵시적으로 서로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아버지 나이 90을 바라볼 때 어머니가 뒷바라지 하기가 힘이 들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지를 한번 안아 주면서 "아버지 잘 계세요" 했는데 아버지는 걱정말라고 하는 듯 내 등을 토닥 거려 주셨다. 그것이 또 얼마나 서러운지 돌아서는 순간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곳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삶의 끝의 여정을 보내기 위해 오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이제 남은 눈물은 하나 뿐인거 같다. 정말 잘 해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다. 오늘 아버지 생신 때는 찾아 뵙지 못했지만 내일 이라도 찾아 뵈어 "아버지 날 낳아 주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는 꼭 해야 겠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9-26 11:17:34

이재수(이재수한의원장·대구한의대총동창회장)

[기고] 행복한 노후 멀기만 할까

장수(長壽)는 축복일까? 나이가 들어 늙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노년에 건강을 잃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심리적, 경제적 부담 등으로 가족 간의 불화와 갈등, 고통을 겪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행복한 노후는 멀기만 한 것일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들은 약(藥)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한의사로서 마음이 무겁다. 마음먹고 생활습관만 바꾸면 질병 예방이 가능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데, 실천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약의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인 것을 알게 된다. 건보공단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해 2012년 한 해 동안 270일 이상 약물 처방을 받고 입원 경력이 없는 65세 이상 노인 환자 300만7천620명을 2013년부터 5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질병 치료를 위해 5개 이상 약물을 처방받은 노인은 4개 이하를 처방받은 노인보다 입원 및 사망 위험이 각각 18%와 25% 높게 나왔다. 이러한 결과는 할 말을 잃게 한다. 대상자 가운데 5개 이상 약물(다제약물)을 처방받은 노인은 46.6%, 이 중 '부적절 처방'을 받은 비율이 47.1%로 4개 이하의 약물을 처방받은 노인보다 33.2%포인트 높은 것이다. 고령화로 다제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환자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건강한 삶은 힘들기만 한 것일까? 약이 없는 건강한 사회가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사망 전 10년간 요양시설 이용자의 1인당 평균 입원 일수와 비용을 발표했다. 노인들의 요양시설 이용 인원과 기간을 살펴보면 2016년 11만2천554명이 593일, 2017년 12만2천531명이 661일, 지난해는 13만1천802명이 707일(약 1년 11개월)을 요양시설에서 보냈다.요양시설에서 생애 마지막 2년의 삶을 마감하는 사회.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는 가족은 물론이고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요양시설 이용 기간이 길수록 삶의 질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복한 말년을 위해선 요양시설 이용 대신 다양한 재가서비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방문 진료와 방문 간호, 방문 재활 등 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것'도 시설로 향하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지난해 정부는 2026년부터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를 보편화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 영국 등에서 실시하는 모델이다. 커뮤니티케어는 노인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신의 집이나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다양한 의료·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행복한 노후는 살던 곳에서 편안히 여생을 마치며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삶이 최선의 길이라 여겨진다. 또한 약물의 심각한 의존을 피하는 안정된 방법은 섭생에 유의하는 것이다. 과식, 과음을 피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는 등 양생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육체적 과로를 피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는 신체의 밸런스를 유지하며 건강한 삶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2019-09-26 10:23:28

김태훈 대구 영남중 교사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한훤당 김굉필

김종직의 제자이자, 조광조의 스승인 김굉필(1454~1504)은 '소학'을 중시하여 스스로를 '소학동자'라고 일컬었다. 퇴계 이황은 김굉필을 "자신을 수양하는 데 힘써서 참다운 실천으로 공부를 삼은 자는 오직 한훤당 한 사람뿐이었다"고 평가하였다.김굉필은 1480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문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천거되어 남부참봉, 사헌부감찰,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으로는 한양, 합천, 현풍, 양평 등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그중에서도 그가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희천으로 유배당하자 조광조가 그를 찾아왔던 사실은 유명한 일화이다.그러나 김굉필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쳤다. 훈구파들이 김일손의 사초에, 세조가 노산군(단종)을 폐위한 사실을 빗대어 비난하고자 실었다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비롯해, 세조가 덕종(세조의 장남)의 후궁인 귀인 권씨를 불렀던 사실, 영응대군(세종의 8번째 왕자)의 부인 송씨와 승려 학조가 밀통했던 사실, 소릉(단종의 생모 현덕왕후 능)을 파헤쳐 그 재궁을 바닷가에 버린 것을 비판한 기사, 황보인과 김종서가 절개를 위해 죽었다고 표현한 기사 등을 연산군에게 고하여 사림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이 일로 김굉필은 김종직의 문도로 지목되어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전라도 순천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이곳에서 곧이어 김굉필은 폐비 윤씨(연산군 생모) 사사 사건에 의해 발생한 갑자사화에 얽혀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중종반정 직후 김굉필은 승정원 도승지로, 1519년 우의정으로 추증되었고, 드디어 1610년 문묘에 종사되어 최고 유학자 반열에 올랐다. 현풍에는 김굉필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도동서원이 있는데, 최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된 한국의 9개 서원 중 한 곳이다. 도동서원을 방문하여 김굉필의 정신을 본받아 실천하는 자세를 기를 것을 바라는 바이다.

2019-09-25 18:00:00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플라스틱

플라스틱이 없는 일상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플라스틱의 사전적 의미는 유연하여 원하는 대로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는 가소성(可塑性) 물질이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플라스틱은 빠른 시간 내에 양동이가 될 수도 있고 보석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플라스틱은 오랫동안 인류의 삶에 필수적이던 금속과 목재 재료를 대치하여 생활용품과 공업제품에 사용되어지며 인류의 삶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플라스틱의 발명은 상아의 대용품을 찾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당구가 크게 유행하자 당구공의 원자재인 코끼리 상아의 확보가 어려워졌다. 당구공 회사는 상아 당구공을 대신할 대용품을 찾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미국의 하이아트(Hyatt) 형제가 현상금을 받기 위해 노력하여, 1869년 니트로셀룰로스와 장뇌를 알코올에 섞어 가열하여 최초의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를 발명하였다. 셀룰로이드는 폭발성이 남아 있어 서로 부딪치는 당구공의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셀룰로이드는 틀니, 단추, 만년필, 주사위, 상자로 만들어졌고 그들에게 큰 부를 안겨주었다.이 부엉이는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제작된 셀룰로이드 탁상종이다. 초기 플라스틱이 바로 생활용품에 도입된 것이다. 셀룰로이드 주둥이를 누르면 내부에 감긴 태엽이 풀리면서 따르릉 하는 자전거 종소리를 낸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플라스틱은 미국의 베이클랜드가 1909년 페놀과 포르말린을 반응시키는 연구를 진전시켜 합성한 페놀수지이다. 자기의 이름을 붙여 '베이크라이트'라 하였다. 이후 많은 화학자들이 합성수지 연구에 몰려들었고, 1930년대 이후 폴리스티롤, 폴리에틸렌, 멜라민 등 다양한 합성수지가 소개되었다. 아름답고 튼튼한 기능성 플라스틱 제품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그러나 간편함과 편리하기만 하였던 플라스틱의 그림자도 보이기 시작했다. 지구 고체 쓰레기의 80%는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이고, 생태계를 오염시킨 미세플라스틱의 환경호르몬과 발암물질은 먹이사슬을 통하여 인류의 몸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2019-09-25 18:00:00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시대산책] 북한 경제의 마법

북한의 최근의 경제 상황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스터리로 불린다. 북한 경제는 예상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다. 제재 본격화 이전인 2014년 북한의 무역액은 76억달러인데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추정액을 300억달러로 가정했을 때 무역액이 GDP의 25%에 달했다. 그리고 유류, 기계, 설비, 건설 자재, 전자제품 등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품목도 매우 많다.대북 제재는 10년 이상 계속되어 왔지만 고강도 대북 제재는 2016년 3월 2일 안보리 결의 제2270호부터 시작되었는데 북한 수출의 핵심인 석탄과 철광석 수출을 금지하고 유류 수입을 제한하며 대량 현금의 북한 유입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중심이다. 그 이후에도 2017년 말까지 강도 높은 다양한 제재가 추가되었다.북한에 대한 고강도 제재가 시작되었을 때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경제가 2년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3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북한 경제는 만신창이는커녕 너무나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북한의 환율과 쌀값은 지난 3년 반 동안 놀라울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고 유류는 고강도 제재가 시작된 직후 가격이 올랐다가 몇 달 후에 다시 정상 가격으로 돌아왔다.혜산시에는 기존에 4개의 연유판매소(주유소)가 운영 중이었는데 올해 하반기에 2개의 주유소가 추가로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이 몇 차례에 걸친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놀라운 마법이 아닐 수 없다.3년 반 전에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대략 300만~350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는데 현재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폰은 북한 브랜드가 붙어 있지만 모두 OEM으로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것이다. 상당한 외화가 들어간다.북한에서 4대 중점 건설 목표로 삼고 있는 갈마해안관광지구와 삼지연관광지구, 단천발전소, 황해남도 물길공사(수로) 등의 건설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북한에서 자체 조달하지 못하는 건설 자재나 인테리어 자재가 많기 때문에 건설도 수출입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갈마지구의 경우 그 규모가 엄청난데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건설을 다그치고 있는 광경은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부정적인 소식도 있다. 특히 북한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80%가 장사가 잘 안 돼 어려워졌다고 한다. 보천군, 신파군, 김형직군에서 최근 종합시장의 장세(매장 임대료)를 절반으로 깎아줬다고 한다. 장세를 깎아준다는 것은 그만큼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시장화가 확대되어 시장을 관리하는 관료조직까지도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어쨌든 제재가 본격화된 후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장사를 포기할 정도로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지표에서 큰 변화가 없이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제재가 지속되면 북한 경제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로 볼 때 극단적인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자생력 때문인지 아니면 중국의 은밀한 도움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미래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것은 확실하다.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지렛대가 대북 제재인데 이 대북 제재가 실효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알고 대북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지난 70여 년 동안 해온 행태를 놓고 본다면 대북 제재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대북 제재가 큰 효과가 없는 조건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고 극히 비현실적인 일이다.핵 있는 북한! 5년 후가 됐든 10년 후가 됐든 20년 후가 됐든 우리가 직면할 미래다. 여기에 기초해서 우리의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

2019-09-25 18:00:00

어려운 문제는 단순한 물건으로 풀리는 경우가 많다. 출처: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우리에겐 청렴 스위치가 있습니다

대구시청 감사실로부터 청렴에 관한 광고 의뢰를 받았다. 막막했다. '청렴'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 쓰지 않는 단어일뿐더러 카피나 이미지로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청렴하자고 말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등 온갖 고민이 머릿속을 채웠다. 광고에선 문제가 어려울수록 쉽게 풀어야 한다. 광고인에게 어려운 것은 사람들에게도 어렵기 때문이다.단순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흑과 백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속이 새까맣다"라든지 "마음이 밝은 사람이야"가 바로 그런 표현이다. 청렴에도 똑같이 대입하면 재미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청렴은 세상을 밝히고 부정부패는 세상을 어둡게 한다. 그렇게 가지고 온 것이 스위치였다. 스위치를 올리면 밝아지고 내리면 어두워진다. 이것이 마치 청렴과 부정부패를 닮아 있었다.스위치를 가져오니 문제는 쉽게 풀렸다. 스위치를 올리면 광고판이 밝아진 모습을, 내리면 광고판이 꺼진 모습을 구현했다. 말 그대로 전광판에 전기가 나간 것처럼 말이다. 시각적으로 표현하니 보는 이들도 쉽게 인지하였다.이처럼 광고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광고인은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쉽게 풀어내어야 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표현 방법의 문제만 해결한 것이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 것은 아니다. 그래서 스위치를 광고 모델의 가슴에 붙여두었다. 모델은 가슴에 붙은 스위치를 켜고 끄면서 청렴과 부정부패를 경험한다. 그리고 밝은 화면과 어두운 화면을 동시에 보여준다.청렴 스위치는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 마음에 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인지시키고 싶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청렴에 대해 고민한다. 필자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CEO의 자리에 있다. 공무원도 마찬가지이고 스타트업도 윤리적인 판단 앞에 고민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청렴 스위치가 우리 가슴에 붙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늘 그것을 켜두자. 그렇다면 이 광고를 만든 보람을 필자는 충분히 느낄 것이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9-25 15:16:58

구광회 대구지방세무사회장

[기고] 변호사 세무대리업무, 정당한가?

세무사 자격이 부여된 변호사에게 세무 대리업무 일체를 금지하거나 법령의 해석. 적용의 업무인 세무조정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변호사 세무대리 전면금지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 기획재정부에서는 최근 세무사법 개정 법률안의 입법예고를 마친 상태이다.개정 법률안의 요지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변호사가 일정한 교육을 이수하면 세무대리 업무를 일체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률안이 정식으로 입법화하게 되면 앞으로 세무사 자격이 있는 변호사도 회계 및 세무 관련 교육을 수료하는 경우 일반 세무사와 마찬가지로 모든 세무대리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세무대리 업무 중 기본인 장부작성 대리 및 성실신고 확인 업무는 회계와 세법 분야의 전문지식이 뒷받침되어야 처리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검증되지 않은 변호사에게 단순 교육 이수만으로 모든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변호사 중 조세법을 선택하여 시험에 합격한 자는 2%도 안 되며 회계학을 전공하지 않은 자가 대다수이다.이번 세무사법 개정이 전문 자격사들의 밥그릇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힘의 논리로 가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정부는 세금 문제로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변호사 자격증 하나로 세무사, 변리사, 노무사 등 많은 전문자격사 자격을 자동으로 취득해 그 직무를 수행하였을 때 과연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자동자격을 취득하는 것은 헌법 취지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017년도 말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를 폐지하는 세무사법이 국회 통과되어 2018년부터는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세무사 업무를 금지하는 세무사법에 대해 헌법소원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세무사법을 개정하여 세무 대리업무를 전면 허용하고자 하는 것은 변호사에게 과도한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세무사법 개정안은 헌법불합치 대상 변호사에게 세무조정계산서 작성, 회계 장부작성 대리, 성실신고 확인 등의 모든 세무업무를 허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무사법 개정의 부당성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자 청와대 게시판에 "변호사의 세무대리업무,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이 진행 중에 있다. 현재 수만 명이 이에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번 세무사법 개정은 변호사에게 세무대리업무의 허용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부합하는 세무조정 업무만 허용하되, 세무회계 업무의 전문성을 고려하여 장부작성 대리 및 성실신고업무를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와는 별도로 국민이 양질의 조세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세무사에게도 조세소송대리권을 함께 부여하여야 할 것이다. 분야별 전문성을 고려하여 과거의 잘못된 제도와 권위주의가 당연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납세자의 권익보호를 위하는 방향으로 세무사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구광회(대구지방세무사회장)

2019-09-25 13:15:48

민경석 대구시수돗물평가위원회 위원장

[새론새평]도시화에 따른 물흐름 왜곡, 그린 인프라 구축 시급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불투수면적율이 증가하였다. OECD주요국가별 도시화율은 2012년 기준, 이태리 51%, 독일 64%, 미국 69%, 일본 78%, 한국 87%로 한국이 가장 도시화 되었다. 도시는 콘크리트, 아스팔트 등의 포장으로 자연적 물순환을 왜곡한다. 지하수 감소, 증발산량 감소, 강우시 유출 증가 등의 물순환 왜곡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증가, 도시열섬 효과, 비점오염 유출 증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환경부는 도시지역 불투수면적율이 20%를 넘는 도시에 대하여 LID(Low Impact Development, 저영향개발) 기법을 적용하여, 물순환 구축, 비점오염유출 저감, 지하수위 확보, 열섬현상 저감, 녹지공간 확대 등을 권고하고 있는데, 2016년 물순환 선도 도시로 대전시, 울산시, 광주시, 김해시 및 안동시를 선정하였다. 대구시는 물산업 선도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정부의 물관련 정책을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향후 자연적 물순환과 인공적 물순환을 연계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녹지·공원계획과 더불어 하수관거시스템과 연계하여 구현하여야만 한다.하수관거시스템은 오수와 우수를 함께 배제하는 합류식과 분리하여 배제하는 분류식으로 구분한다. 기존의 도시는 대구시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합류식시스템으로, 강우시에는 처리없이 그대로 수계로 방류하는 하수월류수인 CSO(Combined Sewer Overflow, 합류식 하수관거 월류수)가 수질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합류식 하수관거시스템의 두드러진 문제점이다. 따라서 하수관거정비는 기존의 합류식을 분류식으로 바꾸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대구시 하수관로는 지산, 현풍, 칠곡처리분구 등의 일부 지역과 신규로 조성되는 택지개발지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합류식 하수배제방식이다. 강우시에는 공공하수처리시설 용량의 3배의 하수는 차집관로로 유입하고 나머지 하수인 CSO는 그대로 차집관로의 우수토실을 통해 처리없이 그대로 수계로 방류한다. 건기시 관로내에 쌓여 있던 오염물질이 강우시 일시에 쏟아져 수질오염을 발생하게 된다. 또한 차집관로를 통해 공공하수처리시설로 유입하는 하수는 처리시설용량만 처리하고 나머지 2배의 하수는 처리없이 그대로 방류하여 하천의 수질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지난 6월 17일에 대구시 신천의 칠성교와 경대교 사이 1km에 물고기 수백마리가 집단 폐사하였는데, 폐사한 물고기의 아가미에서 하수찌거기가 발견된 것을 보면, 15일 발생한 국지성 호우로 인해 관거내 쌓여 있던 퇴적물이 신천변 차집관거의 우수토실에서 일시에 배출한 CSO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되며, 신천 수중보의 부적절한 운영으로 인한 수량 또는 용존산소 부족의 원인도 있을 것같다. 아무튼 주된 원인은 하수관거시스템의 문제로 보인다. 뉴욕시는 대구시와 미찬가지로 합류식 하수관거시스템인데, 강우시 발생하는 CSO를 줄이고, 다목적의 기능을 갖는 인프라(Infra-structure)를 설치하고 있다. 하수도시설 개선을 위한 그레이 인프라(Grey Infra-structure)과 더불어 그린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를 추가로 도입하고 있다.대구시 하수관거 분류화율은 약 42%로 울산시 98%, 광주시 61%, 대전 55%, 부산 50%에 비해 저조하고,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선진국의 하수관거정비는 단순한 관거정비를 떠나 강우유출수를 줄여 도시홍수 피해를 줄이고, 오염된 초기 빗물을 처리하며, 쾌적한 도시공간 조성을 위한 분산형 GI/LID를 포함하고 있다. 대구시도 이를 포함한 100년 미래 하수관로 선진화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하수관거정비에는 수조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므로 중·장기적인 계획과 하수처리구역별로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서대구 고속철도 역세권 개발계획 중 하나인 달서천 및 북부 하수처리장과 염색폐수처리장의 하·폐수처리장 통합지하화 사업은 세계 최고의 시설로 첨단화·현대화하여 국가물산업클러스터 육성과 대구시 물산업 허브도시 지향에 부응하여야 한다. 하·폐수처리장 재구축 사업은 반드시 하수관로 정비 사업과 함께 추진해야 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2019-09-25 13:12:49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예술의 비전

친구가 자신의 딸 아이에게 엄마가 아파서 죽겠다 했단다. 보통 우리는 흔한 감기몸살에도 '죽겠네'란 말을 빌린다. 그랬더니 친구의 딸아이가 엄마가 죽으면 새엄마가 오게될건데 자신을 예뻐해 줄까 걱정이라는 7세 아이의 순수함과 서운함이 느껴지는 친구의 수다가 떠오른다.7세도 그 나름의 걱정이 있기 마련이고, 청년세대, 중장년세대, 노년층의 삶의 모습들이 지금 시대에는 각양각색으로 공존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스스로 본인이 속한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가려 한다. 다양한 사회적 현상과 문제들이 여러 층위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다양한 시선들은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 하고 사실을 공유하는 한편 비판적 접근과 해결을 위한 적극적 개입들을 시도한다. 오늘날의 우리 곁의 예술현장은 사회혁신, 지역브랜드와 지역재생, 공동체, 사회적 경제 등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으며 그 중심적 역할을 하는 예술가의 역할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현대예술에서 예술 사조를 살펴보면 모더니즘은 1920년대에 일어난 감각적이고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르키며 현대적이고 도시적이며 인간의 무기력함을 타파한 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롭고 열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세대, 계층, 생각, 아이디어의 분출로 표현된다. 모더니즘은 이후 여러 현대적인 큰 격변들, 2차 세계대전, 흑인인권운동이 일어난 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후기 변화된 양식으로 나타나 예술가의 내적 표현적인 자유성을 극히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기존의 예술과는 매우 다르게 개성이 넘치고 자율적이며 다양성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특히 무용은 무용수의 움직임만으로 전달받게 되는 메시지를 관객의 상상력과 함께 자발적으로 느껴야 하는 감상의 어려움을 겪는다. 간혹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이 강한 무용 작품일 경우 다양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술가의 탈 중심 사고, 탈 이성적 사고에 의한 먼 우주 너머 세계를 춤추고 있어 비난받기도 하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상상력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예술의 본래적 의미이자 속성인 자기 성찰과 세계에 대한 관계 이해라는 역량의 결과가 관용과 자기 존중의 구도에서 실행되어 사회통합과 공감능력으로 만들어진다.예술은 예술가 개인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변화를 다룬 것으로 개인적 발전을 위한 예술도 있는 반면 상호문화적이고 세대 간 이해를 통한 공감대와 사회적 결속력을 통한 예술의 역할은 공동체를 이끌어갈 동기 유발을 지지하고 문화 민주주의를 위한 참여와 협조의 예술로 볼 수 있다. 상호문화적이고 세대 간 이해를 통한 공감대와 사회적 결속력을 통한 예술의 역할은 우리에게 기대감과 삶의 상징성으로 다가오길 기대한다.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2019-09-25 11:36:56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종교칼럼]제왕절개 분만과 지능

십여 년 전, 당시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이태성 교수는 국내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낳는 빈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그때 나는 '요즘 젊은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을 때 따르는 고통을 견디어낼 인내가 부족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런 주제로 대화가 다소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후버 교수의 저서를 읽으면서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신학박사 겸 의학박사인 독특한 이력의 후버 교수 역시 산부인과 전문의다. 그에 의하면 비엔나 의과대학병원이 50년 전부터 신생아 8만여 명을 연구한 결과 엄마 배 속에서 태아가 점점 더 크게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가 지속돼 아이를 잉태한 여성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진 덕분이었다.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의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 때문에 비엔나 의과대학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분만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제 인류는 이와 같은 상황들 앞에서 문제를 잘 극복하여 보다 나은 인류로 진보해 나갈 것인지, 한계에 부딪혀 퇴보와 몰락으로 갈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새로운 세대의 체격은 앞선 세대보다 현저하게 더 크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 체격이 반에서 가장 컸던 후버 교수가 제자들과의 만남에서는 그들을 위로 쳐다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새로운 세대는 두뇌도 크기에 당연히 뇌세포도 더 많다. 좋은 머리는 뇌세포의 수보다 연결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후버 교수에 의하면 뇌세포의 수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뇌세포의 수 증가에 의해 새로운 세대의 IQ가 점점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평균 100을 기준으로 만든 IQ 테스트로 이들의 IQ를 측정하면 130은 된다고 한다.새로운 세대는 좋아진 경제력과 높아진 교육열 덕분에 어릴 때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하며 유익한 놀이도 많이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고 생각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많이 갖게 한다. 이것은 두뇌의 뇌세포들을 활발하게 하여 시냅스 연결망이 촘촘해지고 튼튼해지며 뇌세포 수도 늘리기에 당연히 IQ도 높아진다. 여행을 많이 하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으며 오감을 활성화시키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두뇌를 활발히 하여 뇌세포의 수를 늘리고 연결망을 훨씬 더 좋게 한다. 건전하고 즐거운 놀이를 많이 하는 것도 두뇌를 좋게 하는 데 일조한다. 발달된 컴퓨터와 스마트폰 덕분에 순발력을 요하는 게임을 많이 하는 새로운 세대의 IQ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좋아진 삶의 환경 덕분에 IQ가 높아지고 성격도 부드러워진 새로운 세대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좋아한다. 지구촌에서 아직도 전쟁, 테러, 다툼, 궁핍 등에 시달리는 지역이 있지만, IQ가 높고 평화를 사랑하는 새로운 세대는 시간 속에서 이런 문제들을 줄여나가고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궁의 산도를 통과하기엔 너무 커진 태아가 그 안에 갇혀 버리는 것과 같은 비극적 상황이 우리 지구촌 현대문명에서 발생할 때는 어떻게 될까? 평화를 사랑하는 새로운 세대가 현명한 방법을 동원하여 인류를 구출해 낼 수 있을까? 그러한 방법이 있기나 할까? 여전히 염려된다. 지구촌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통합된 의식을 가진 성숙한 종교인은 그런 문제가 오지 않게 하거나 오더라도 해결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현명한 새로운 세대에서 이런 종교인이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되도록 두 손을 모아본다.

2019-09-25 11:16:09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새론새평] 민부론(民富論) 비판

제1 야당이 현 정부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민부론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경제 활성화나 경쟁력 강화나, 자유로운 노동이나 지속 가능한 복지도 정부 주도가 아니라 시장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큰 정부에서 작은 정부로 가고 혼수상태에 빠진 기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바른 말이다. 그동안 유능하지 않은 정부 간섭이 너무 지나쳤다.문제는 '어떻게'다. 경제 활성화의 경우 관치경제에서 시장 중심의 자율경제로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규제개혁특별법 제정이나 은산분리 규제 합리화, 병원 등의 영리화 허용 등 수없는 입법 과제를 나열해 놓았다. 그동안 수도 없는 법안들이 혹은 야당이 혹은 여당이 반대해서 묶여 있지 않았던가? 한두 번도 아니지 않은가? 의석수가 턱없이 밀리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어떻게 입법할 것인가. 입법부 병목에 대한 대안이 나와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든다고 했는데 박근혜 정부도 깨(끗하고) 투(명하며)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하고서도 엉뚱하고 왜곡된 인사 혹은 행정 전횡으로 망치지 않았던가. 저 정도면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하겠구나, 박근혜 정부가 못한 깨투유를 확실하게 해 주겠구나 하는 신뢰를 보낼 만한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청사진을 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끼리끼리 나눠 먹고 임명하고 그럴 것 아닌가.자본시장 글로벌화나 조세의 국제기준 부합 주장도 설득력이 낮아 보인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게 해 주자는 생각인데 너무 대기업 중심의 발상이고 현실을 외면하는 발상이다. 지금 자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이 돌지 않아서 문제이다. 무분별하게 외자가 들어오면서 늘어나는 대외 부채나 강세가 되는 원화 환율의 악영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법인세나 상속세를 낮추자고 하는데 그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이 국민들의 과도한 준조세 부담을 낮추어 주는 문제가 아닌가.경쟁력 강화는 더 의아하다. 민부론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너무 과보호되어 있으므로 '보호와 규제'에서 탈피하여 '개방과 경쟁 촉진'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 신생 중소벤처기업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면면을 타고 내려오는 벤처 지원 타령이다. 그동안의 벤처 지원 성과를 꼼꼼히 따져보기나 했는가? 국민 혈세가 얼마나 새고 사라지고 탕진되었는지 따져보기라도 했는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턱대고 나눠 먹는 식의 봉이 김선달류의 맹탕 지원을 언제까지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민부론은 이 정부의 성과 없는 앵무새 혁신성장론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중소기업이 과보호되었다는 시각에는 0.1%의 중소기업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버려졌고 냉대받고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 중소기업이었다. 국가 전체 고용이나 생산의 80% 가까이를 기여하면서도 다른 모든 것이 발전하는 동안 유독 정체되거나 낙후되었던 것이 중소기업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헤매는 것도 지난 30년 이상 중소기업이 소외되고 백안시되고 왕따당해 왔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너무 과보호되어 있다는 것은 중소기업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대기업 편향적 시각이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 지식재산권이나 기술자료 임치(任置) 등 중소기업 기술을 보호해야 한단다. 이 무슨 모순인가. 앞뒤도 안 맞다.몇 가지 제안을 하면 이렇다. 첫째,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많이 나열해 봤자 아무도 보지도 읽지도 않는다. 딱 몇 가지만 찍어서 추진하자. 작은 정부를 위한 정부조직 개편안, 투명한 정부를 위한 정보 공개 및 공무원 역량 강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자. 정부가 작고 유능해지면 규제는 저절로 줄어든다. 또 다른 하나는 중소자영업 경쟁력 강화 5개년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수입과 지출을 연계하겠다는 재정건전화법도 참신해 보인다. 이 세 가지만 해도 국민들은 안심하고도 남는다.둘째, 우선순위를 밝혀야 한다. 집권하면 무엇부터 할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이것저것 다 하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내 판단에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5개년 계획이 1순위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그다음이다. 끝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이 공정하고 공평하고 유능한 새 사람들로 교체되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2019-09-24 15:53:01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고결한 아름다움

나의 곡 정가를 위한 '별한'이라는 곡이 있다. 남녀창 정가를 창작곡으로 만들었다. '별한'이라는 곡 제목은 조선시대 뛰어난 예인이던 기생 매창의 시조에서 가져온 것으로, 매창의 유명한 시 '이화우 흩 뿌릴제'를 비롯하여, '규원(閨怨)', '별한(別恨)', 그리고 그녀의 정인이었던 촌은(村隱) 유희경의 '도중억계랑(途中憶癸娘)' 이렇게 4개의 시조를 가사로 하여 곡을 썼다.매창은 황진이와 많이 비견되며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을 포함하여 그 시대 여러 선비들과 교류를 나눌 만큼 뛰어난 글재주와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고, 유희경 또한 신분은 천민이었지만 뛰어난 학식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 두 사람이 어느 날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졌는데 이는 곧 서로에 대한 문학적 깊이와 시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리라 생각된다. 시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시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며 마음의 정이 깊어갔다. 그러나 이내 긴 시간동안 두 사람은 기약 없이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그때도 서로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시로 적어 많이 주고받았는데, 그중 위의 4개의 시조를 엮어 만든 곡이 정가를 위한 '별한'이다.'임 떠난 내일 밤이야 짧고 짧아지더라도(明宵雖短短)/ 임 모신 오늘 밤만은 길고 길어지소서(今夜願長長)/ 닭 울음소리 들리고 날은 곧 새려는데(鷄聲聽欲曉)/ 두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雙瞼淚千行)'- 매창 '별한(別恨)'짧은 만남을 통해 서로 마음으로써 사랑을 나누었지만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오니 그 마음을 아쉬워하며 쓴 매창의 시이다.'고운 임 이별한 후 구름이 막혀(一別佳人隔楚雲)/ 나그네 마음 어지럽다오(客中心緖轉紛紛)/ 청조도 날아 오지 않아 소식 끊기니(靑鳥不來音信斷)/ 벽오동 찬 비 내리는 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碧梧凉雨不堪聞)'- 유희경 '도중억계랑(途中憶癸娘)'길에서 문득 계랑을 생각하다는 뜻의 도중억계랑은 길을 가다가도 그녀 생각이 나고 늘 그녀를 그리워하는 유희경의 마음이 잘 담겨있다. 여기서 계랑은 매창의 다른 이름으로 유희경은 매창을 늘 계랑이라 불렀던 듯하다. 그의 호를 딴 시문집 '촌은집'에는 매창에게 전해준 시 중 7수를 소개하였는데 모두 계랑이라는 제목이 들어가 있다. 이 시는 '별한'이라는 곡에서 남창가곡으로 표현하였는데, 지난 몇 달간의 칼럼을 통해 여러 번 언급한 정가 여창가곡은 부드럽고 순백의 미가 있다면, 남창가곡은 꿋꿋하고 기백이 넘치는 소리가 일품이다. 노래 창법적으로도 성악가, 대중가수 등과 많이 다르고 여창 정가와도 차이를 보이는 색다른 음색을 느낄 수 있으니 나처럼 그 매력에 한번 빠지기 시작한다면 헤어 나오기 힘들 듯하다. 고결한 우리 소리 정가,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9-24 14:34:53

송필용 작 무제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것

일만 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낯선 질문에 빠지기 시작한다. 나는 왜 사는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누구나 인정하는 참된 가치는 존재하는가? 이런 것들을 근본적인 질문 혹은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부르자. 이런 질문들에 빠지면 대개는 내면에서 큰 혼란을 겪게 된다. 생활도 이전과 결이 달라지면서 많이 흐트러질 수 있다. 기존의 것들은 다 뒤틀린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본 적도 없는 곳으로 이끌리며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10대나 20대에 이런 질문들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40대 50대의 나이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왜 사람들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는 삶을 살다가 갑자기 이런 질문들에 빠지는가. 이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의 성취도 얻게 되지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데서 오는 피로감을 느끼고 스스로 지치거나 고갈되어 간다는 위기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잠시 멈춰 서서 본질적인 질문들을 붙잡은 채 삶의 의미를 따져보는 일은 버겁기도 하지만 약간은 고상해 보이기도 하면서 위로를 주기도 한다.그런데 이런 질문들 앞에서 스스로 지쳤다거나 고갈되어 간다는 느낌에 빠진 채, 자신이 좀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로나 휴식이 필요한 사람으로 다독이려 한다. 많이 지쳐서 위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지쳤다는 그 기분은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을 정도의 장벽이나 절벽 앞에 선 것과 같은 부정적 심리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오히려 기능적이고 양적으로 살던 삶이 정점을 찍거나 한계에 도달한 후, 고도가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한 필요가 생겼기 때문에 질적 상승을 위해 혁신의 대문 앞에 선 상태일 것이다. 기능적이고 양적인 삶의 고도가 자신의 크기만큼 커져 버리면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환경에 처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지금까지의 삶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적이 없는 한 단계 더 높은 본질적인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왜 사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는 지칠 만큼 지쳐서 휴식이나 위로가 필요한 것이 다는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휴식 다음의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라는 전진의 명령 앞에 서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약해져서가 아니라 혁신의 요구 앞에 선 상황이다. 사실 본질이나 근본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들은 기능적인 것들보다 높다. 왜 사는가,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했다는 뜻은 그런 '가치'나 '본질'이 작동하는 높이를 향해서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낯선 질문들은 질문자의 수준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자신 스스로와 세상에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다.윤리적인 기업이 윤리적이지 않은 기업보다 더 지속적인 성장을 한다는 것이 요즘은 거의 상식이다. 윤리는 구체적이고 기능적인 행위 다음의 원리적인 높이에 있다. 기능이기만 했던 행위가 행위 자체의 본질적인 이유나 가치적인 평가와 만나려 하면 윤리가 된다. 하나하나의 행위는 기능이지만, 윤리는 본질적인 높이다. 윤리적인 기업은 수준이 높고, 아직 윤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 기업은 수준이 높지 않다. 윤리를 추구하면 본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본다는 뜻이고, 윤리 의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 않다면 본질보다는 기능에 갇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선이 높은 기업에는 지속적인 큰 성장이 보장되고, 시선이 낮은 기업에는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본질이란 이런 역할을 한다. 본질은 그냥 텅 빈 상태로 존재적 위상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동하면서 높이와 두께를 가지게 되고,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크기와 생명을 더 효과적으로 보장해주는 무기가 된다.개봉 된지 5년이나 지난 영화가 떠오른다. 이반 라이트만이 감독하고,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Draft Day)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미식축구 클리블랜드 구단장인 써니가 선수 선발을 하는 과정에 읽힌 얘기이다. 켈리헨이라는 선수가 있다. 위스콘신 대학 선수인데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대학 성적 우등상까지 받은 그는 어느 프로 구단에서나 가장 탐내는 대학 졸업 선수이다. 두 개의 일화가 중요하다. 하나는 켈리헨이 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자신의 생일 파티에 100여명의 손님을 초대했지만 그 가운데 같은 팀원의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자신의 팀 동료는 한 명도 초대하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의 일화가 더 있다.어느 구단에선가 자기 팀에 관심 있어 할 만 한 선수들에게 작전설명서를 보내는데, 그 작전설명서 마지막 장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붙여놓았다. 그것을 받은 선수들에게 나중에 설명서를 읽었는지 물어보니 모두 읽었다고는 하면서도 절반 정도가 100달러짜리 지폐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읽지 않았으면서 읽었다고 한 사람이 절반이었던 것이다. 그 절반의 선수들에게 마지막 장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붙여두었었다는 사실을 밝히자 모두들 당황하였고, 대부분은 읽지 않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켈리헨은 지폐 얘기를 하고 추궁하니까 안타깝게도 거짓말을 한 번 더한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아! 이제 생각나네요."라고 말한 것이다. 다른 선수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였지만, 특히 클리블랜드 구단 경호실장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사람이라고 켈리헨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브라이언 드류라고 하는 선수만이 지폐를 우편으로 돌려보내면서 카드를 동봉하는데, 카드에는 "우승을 안겨드릴 때까지 이건 아껴두세요."라는 문구를 적었다.브라이언 드류는 언젠가 게임에서 터치다운을 성공시킨 후, 그 공을 관중석의 어떤 여인에게 준다. 이것은 규정 위반이었던 것 같다. 그 사건으로 브라이언 드류는 징계를 당한다. 그런데 공을 받은 여인은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브라이언의 누이였다. 누이는 얼마 후 사망하였다. 징계까지 각오하고 브라이언은 누이에게 터치다운을 한 공을 선물하였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를 징계도 감수하는 행위를 하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써니는 켈리헨이 욕심났지만, 가장 본질적인 인성 문제에서 안심이 되지 않자, 마지막 선택의 시점에 한 번 더 켈리헨에게 확인한다. "당신 생일에 팀 동료가 왔었는지 진실만 말해 달라."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써니에게 한 켈리헨의 대답은 끝까지 바른 길 위에 서지 못한다. "부끄럽지만... 그날 밤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대신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을 위장한다. 켈리헨은 "부끄럽지만..."이라고 말은 했지만 아직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염치가 없는 것이다. 기능적인 것을 추구하는 욕망이 도덕적 반성 능력이라는 본질적 태도보다 컸다. 써니는 제1지명권을 행사하면서 켈리헨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브라이언 드류를 선택한다.운동선수에게는 운동 능력이 제일 중요하게 보인다. 그러나 수준 높은 단계에서는 운동 능력이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인격의 총화임을 안다. 인격적인 문제는 본질이고, 현상적으로 보이는 운동 능력은 기능이다. 이 영화에서는 우리에게 삶의 매 순간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교훈적으로 보여준다. 더 잘하고 싶으면, 기능보다는 본질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개 이런 수준의 선택을 하면서 앞서 나간다. 목표보다는 목적을 선택한달지, 성적보다는 인성을 강조한달지, 시청률보다는 작품성을 더 중시한달지, 진학률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 본달지 하는 것들이다. 왜 미식축구 선수에게서도 거짓말을 하는지의 여부나, 언행일치가 이뤄지고 있는지의 여부나, 가식적인 변명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치졸함이 있는지의 여부나, 동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지의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는 더 수준 높은 실력이란 기능적인 운동 능력보다도 결국 그런 점들로부터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높은 수준의 삶이다. 선진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격들은 이렇게 산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지켜지지 않더라도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수준에서의 선택은 삶을 기능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며, 그것은 진정한 승리의 길을 보장하지 않는다. 승리의 길 대신에 종속적인 삶으로 인도할 뿐이다.이런 의미에서 공자도 "특히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높이의 사람이라면 기능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君子不器)고 말한 것이다. 본질과 기능 사이에서 본질을 선택하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야만 제 자리에서 뱅뱅 돌거나 좌우를 수평 이동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를 차원을 높여가며 전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능에 빠지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내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고, 이 기본이 본질을 선택하게 할 수 있게 한다. 제자 자공이 학문을 닦고 인격을 도야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자 공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行己有恥)이라고 답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내면을 가졌는가의 여부가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룰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본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것을 우리는 소위 염치라고 한다. 수치심, 즉 부끄러움을 아는 자기반성 능력이 인간적인 활동의 출발점이란 뜻이다. 수치심을 모르면 정의로운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 불의가 주는 잠깐의 이익을 거부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없다. 수치심을 모르면 자식 앞에서도 정의롭지 않은 행동을 서슴없이 하거나 심지어는 자식을 데리고 함께 부정한 일을 하기도 하는데, 자식과 더불어 누릴 아주 사소한 이익이 삶의 본질적 가치를 오히려 압도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자식을 망치는 것인 줄을 모르는 것은 부정한 일을 통해서 얻을 작은 이익을 본질적 가치를 지켜서 얻을 이익보다 큰 것으로 여기는 무지와도 관련된다. 지적 능력이 전인적으로 배양되지 않으면,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수치심을 알기는 어렵다.기능적인 잠깐의 이익을 거부하고 본질을 선택하는 태도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는 수치심(부끄러움)을 알아야만 발휘된다. 그래서 "중용"은 '수치심을 알아야 용기에 가까워질 수 있다'(知恥近乎勇)고 기록한 것이다. "관자"는 더 적극적이다. 국가의 기틀 네 가지, 즉 '예(禮)·의(義)·염(廉)·치(恥)'라는 4유(四維)를 제시한다. 수침심은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 가운데 하나이다. 그 가운데서도 수치심은 정의를 실현하는 기둥이다. 사회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자기 반성력이 사라지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려서 파멸을 면치 못한다. 수치심이라 불리는 염치가 사라지면 파렴치(破廉恥)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파렴치한 사회라면, 거기서 무슨 일이 가능하겠는가.개혁을 완수하고 싶은가? 혁명을 이루고 싶은가?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가? 자녀를 잘 기르고 싶은가? 창의적이고 싶은가?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가? 선도력을 갖고 싶은가?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가? 좋은 가수가 되고 싶은가? 종합적으로 말 해, 한 층 더 오르고 싶은가? 기능에 빠지지 않고 더 본질적인 것을 선택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선택의 순간에 더 본질적인 것을 고르게 되는가? 염치를 알면 된다. 최소한 부끄러워할 줄만 알아도 한 층 더 오를 수 있다.

2019-09-23 18:00:0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過猶不及(과유불급): 차라리 모자람이 낫다

지나침(過)은 미치지 못함(不及)과 같다(猶). 과함은 부족함과 다름없으니 적당한 것이 좋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편에 나온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스승님!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가운데 누가 더 현명합니까?"라고 물었다.자장과 자하는 공자의 뛰어난 열 명의 제자를 일컫는 공문십철(孔門十哲)에 속한다.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자장은 제후를 섬겨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어 했고, 소심한 자하는 벗을 사귈 때도 좋고 나쁨을 가리고 자기 수양에 힘썼다. 공자가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자장이 낫습니까?"라고 자공이 반문했다. 공자는 "그렇지 않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過猶不及)"라고 대답했다.공자는 자장과 자하의 학문과 인품을 견주어 말한 것이 아니라 두 제자가 닦은 도(道)의 경중을 말하고 있다. 공자와 자공의 문답을 주희(朱熹)는 다음과 같이 풀었다. "도는 중용(中庸)을 지극함으로 삼으니(道以中庸爲至), 어질고 총명한 자의 지나침이 비록 어리석고 불초한 자의 미치지 못함보다 나을 것 같으나(賢知之過雖若勝於愚不肖之不及), 중용을 잃음은 매한가지다(然其失中則一也)"고. 결국 지나침은 부족함과 마찬가지이므로 모든 일은 적당한 중용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후에 와서 '과유불급'은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불러오듯이 과격한 행동은 모자라는 행동보다 나쁘다는 것이다. 부족함은 채울 수 있지만 지나침은 되돌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중용이 어려우면 차라리 모자람을 택하라는 지혜이다. 정치는 전쟁이 아니다. 입장은 달라도 국민을 위하는 목표는 같으니 타협과 절제가 필요하다. 만 건이 넘는 민생 법안을 제쳐둔 전쟁 같은 당쟁은 과유불급이다. 중용이 필요하다.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9-23 18:00:00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어머니 안아드리기

어머니가 루게릭병에 걸린 친구가 있다. 친구는 자주 여행을 했다. "여행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픈 엄마를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집을 떠난 거야. 4년 전 이혼을 했는데 그때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고, 나 때문인 거 같아 죄책감이 들어. 돌아가실까 봐 너무 무섭고, 소파에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 엄마랑 함께 산책도 하고 여행도 너무 하고 싶은데 힘을 내려고 하지 않으니. 짜증 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친구는 어머니가 그립고 미안한데 보러 가기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두려움과 죄책감은 지혜의 빛을 가린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늙고 병드는 것이 아니라 연세가 드셨기 때문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니 마음 아프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자식을 위해 애쓰셨고 우리는 그것에 죄송해 하기보다 감사할 일이다. 어머니도 우리도 지금이, 남은 생의 가장 젊은 순간이다. 내가 함께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한탄하기보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도 참 좋다.우리 어머니는 두 무릎 연골이 다 닳아 5년 전 수술을 하셨다. 여든이 넘으니 회복이 느리고 우울증이 함께 와 몸과 마음의 고통이 심하셨다. 몇 개월이 지나고 빨리 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꽃구경을 가자고 졸라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꽃구경을 갔다. 휠체어 타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아픈 다리보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올봄엔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 난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했다. 아름다운 풍경은 한순간이고 좌변기가 없는 휴게소에서 볼일을 보시느라 곤혹을 치렀다. 오히려 어머니의 회복은 지난 5년간 의식을 치르듯,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들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꼭 안아드리면 하얗게 웃으신다.온몸의 접촉은 자신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세상의 온기와 연결되는 행위니까.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2019-09-23 18:00:00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서원을 찾아가는 즐거움

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한다. 옛 선비들이 풍광이 좋은 곳에서 책을 옆에 끼고 독서하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하고 싶기도 한 계절이다. 경치도 뛰어나면서 독서가 딱 어울리는 곳으로 서원을 추천하고 싶다. 서원은 선현을 추모하고, 후진 교육을 위해 세운 기관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립 교육기관이다.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당과 강당 앞마당의 좌우에는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두었다. 서원의 제일 높은 언덕에는 배향 인물을 모신 사당을 만들었는데, 대개 존덕사(尊德祠), 숭덕사(崇德祠), 상덕사(尙德祠) 등의 이름을 붙였다. 서원의 정문에는 시원한 2층 누각을 배치하기도 했는데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가 대표적이다.지난 6월 30일 좋은 소식이 들려 왔다. 안동의 도산과 병산, 영주 소수, 대구 도동, 경주 옥산 등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것이다. 서원의 세계유산 지정으로 우리나라는 종묘와 창덕궁, 조선왕릉,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등 총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2018년 한국의 산사 11곳 지정에 이어, 서원 9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한국의 불교와 유교 유산은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까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산들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최초의 서원은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고려 말 원나라에 가서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안향을 배향한 서원을 세우고, 이름을 백운동서원이라 한 것에서 시작한다. 중국의 주희가 백록동서원을 세운 뜻을 계승한 것이었다.명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백운동서원에 서적, 토지, 노비 등을 지원받고 편액(扁額)을 하사받았다. 사액서원이 되면서 그 명칭도 소수(紹修)서원으로 바꾸었다. 선현의 뜻을 잘 계승하고 닦아나가겠다는 뜻이었다.세계유산으로 지정된 9곳의 서원 중 6곳이 영남 지역에 분포한 것도 주목된다. 조선시대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사림파 학자들이 배출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후학들을 양성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1610년에는 공자를 모신 성균관 문묘(文廟)에 함께 배향하는 영예를 지닌 오현(五賢)을 선정했는데,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이 그 주인공이다.그중 영남을 기반으로 한 4명의 학자를 배향한 서원이 모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김굉필을 배향한 도동서원, 정여창을 배향한 남계서원,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 이황을 배향한 도산서원이다.도산서원에서는 이황의 생전 자취가 잘 남아 있는 완락재(琓樂齋), 암서헌(巖棲軒), 정우당(淨友塘), 몽천(蒙泉) 등을 만나볼 수 있고, 병산서원의 2층 누각인 만대루에서는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산과 낙동강의 풍경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려볼 수 있다.호남을 대표하는 사림파 학자 김인후를 배향한 장성의 필암서원에서는 인종이 세자 시절 김인후에게 보낸 묵죽(墨竹) 그림 판각을 보관하고 있는 경장각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충청도 지역의 대표 서원 돈암서원에서는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건물인 응도당(凝道堂)과 함께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등 충청도 지역 유림들의 성장과 활동을 만나볼 수 있다.서원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 당쟁의 온상이라는 이유로 영조 때와 흥선대원군 집권기 때 대규모로 폐출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그 정신과 유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서원이 위치한 곳은 주변의 자연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서원에 배치된 강당, 기숙사, 사당, 누각 등은 전통시대 교육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가을날에 학문적 향기가 불어오는 서원을 찾아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정수들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한다.

2019-09-23 18:00:00

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연구 논문 작성과 저자

최근 학술 논문의 저자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과거에도 수차례 논문 내용과 저자 문제로 이슈가 된 사례가 있었다. 연구의 도덕성과 신뢰성은 논문의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의 역할과 그에 따른 순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올해 발간한 '윤리적인 연구 출판을 위한 국제 규범'에 따르면 '부당 저자 표시'를 연구부정행위로 간주하고 가이드를 제시했다.이 번역서에는 국제의학학술지 편집인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ICMJE)의 권고안과 영국 소재 출판윤리위원회(Committee on Publication Ethics, COPE)와 세계의학편집인협의회(World Association of Medical Editors, WAME)의 주요 지침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문화나 관습에 따라서 차이를 보인다.요즘 연구 논문에는 많은 저자가 참여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비중이 있는 우수한 논문들은 국내외 연구자 간 공동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개인이 혼자 연구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기 때문에 공동연구의 경우 저자 문제에서 문화적인 충돌이나 갈등이 발생하곤 한다.논문에서 제1저자와 교신저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공저자를 동일하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논문이 연구 업적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좋은 논문일수록 저자 순서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다. 그래서 공동 제1저자나 공동 교신 논문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언어 문제는 어떤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논문에 투고를 하려면 영문으로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영어만 잘한다고 논문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연구 논문에는 정형화된 틀이 있고 분명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써야 하며 학위과정 동안 부단한 노력을 해야 영어로 논문 작성을 할 수 있다.연구 논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차지하는 것이 결과를 고찰하는 부분이다. 새롭게 발견된 연구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든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학문적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필자의 논문에도 국제 분업을 통한 많은 참여 인력이 있다. 물질의 합성부터 분석과 응용 그리고 데이터 정리와 삽화에 이르기까지 공저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해주고 갈등이 생기는 경우 연구노트를 기준으로 교통정리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 세계적인 석학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표현을 다듬고 리뷰를 같이하여 학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려고 힘쓴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동의해야 투고가 이루어진다.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교신저자가 최종적으로 책임을 진다.이러한 고도의 국제 분업을 위해서는 데이터의 신뢰와 깔끔한 초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다. 필자의 연구실은 연구가 시작되면 최소 수십 차례의 회의를 거친다. 투고를 위한 최종본이 완성되면 다시 한방에 모여서 서너 시간 동안 이 잡듯이 오탈자를 잡고 표현을 살핀다.학술지와 수개월에 걸친 검증을 마치고 출판 직전에 최종 검토를 할 때도 다시 모여서 서너 시간 이상 사투를 벌인다. 우리 연구실에서 나간 논문에는 참여한 연구자의 숨결이 느껴지도록 하고 있다. 논문은 땀을 잉크로 바꾸는 작업이고 종이에 영혼을 담는 과정이다. 학생들과 참여 연구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2019-09-23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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