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기고] 신축년, 안전으로 향하는 '황소걸음'

[기고] 신축년, 안전으로 향하는 '황소걸음'

코로나19라는 끔찍한 전염병에 시달린 사이 어느덧 '소의 해'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즉 궁하면 변하고 변화는 새로운 길로 통한다고 했던가. 우리 인류의 간절함으로 다행히 백신이 개발되고 우리나라도 곧 접종이 가능해진다고 한다.힘들었던 터널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하지만 긴장을 늦추기에는 코로나의 기세가 아직 녹록지 않아 보인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과 같이 소처럼 꾸준하고 확실하게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를 생활화해 코로나를 이겨내야 한다.화재도 자나 깨나 방심할 수 없는 생활 속 위험 요소다. 미국 텍사스주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여전히 겨울 추위가 이어지고 있어 화재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소방청 국가화재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대구에서 최근 5년(2015~2019년)간 겨울철(12~2월)에 평균 425건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겨울철 일일 평균 화재 발생 건수는 4.7건으로 연중 4.34건에 비해 높다. 인명 피해도 겨울철의 경우 0.31명으로 연중 0.24명보다 많이 발생한다.특히 최근 지어진 건물의 경우 화재가 발생하면 불꽃과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빠르게 확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과거보다 질식에 의한 인명 피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는 마스크와 손 씻기 그리고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겨울철 등에 우리를 위협하는 크고 작은 화재를 예방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화재 발생 원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부주의이다.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최근 5년간 전체 화재의 52.1%를 차지하는데 그중 담뱃불로 인한 화재가 40.6%를 차지한다.'구우일모'와 같은 작은 담뱃불이지만 화재로 이어지게 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화재는 우리들이 일상에서 '소 닭 보듯' 하는 부주의 속에 발생한다는 것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대구소방은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각종 캠페인 등 꾸준히 홍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2017년 이후 담뱃불로 인한 화재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부주의로 인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최근 5년간 화재 발생 원인을 조금 더 살펴보면 부주의로 인한 화재 원인 외에도 전기적 원인(20.6%)과 기계적 원인(11.5%)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원인들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안전 인증이 된 제품인지 확인한 후 사용해야 한다. 또한 문어발식 전기 콘센트 사용도 최대한 자제하고 기기 손상으로 인해 화재 위험이 높아질 수 있으니 난방용품의 제습도 수시로 신경 써야 한다.'바늘구멍에 황소바람'이라는 속담이 있다. 추운 겨울에는 바늘구멍 같은 작은 구멍에도 황소처럼 센 바람이 들어온다는 뜻도 있지만,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하면 큰일이 생긴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우리 시민들이 지난해부터 황소걸음처럼 묵묵히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라는 작은 실천으로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듯이, 겨울철 바늘구멍 같은 작은 예방법을 실천한다면 황소바람과 같은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지난해 매일매일을 힘들지만 꿋꿋이 버텨낸 모든 분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지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2021-02-22 11:23:54

[매일춘추] 한국인보다 한국음악을 더 사랑한 헐버트

[매일춘추] 한국인보다 한국음악을 더 사랑한 헐버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비에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라고 쓰인 비문이 있다. 이 비문의 주인공은 1886년 조선 근대 교육기관 육영공원(育英公院) 교사 겸 선교사로 내한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H. Hulbert)다.헐버트는 한국에서 영어와 지리 등을 가르쳤고 한글을 연구하여 처음으로 띄어쓰기와 점찍기를 도입한 사람이다. 그는 고종황제의 외교 고문 역할을 했고 을사늑약 후 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한국 밀사와 함께 활동했다.헐버트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알렌, 아펜젤러 등과 함께 국내 역사‧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한국휘보'에 글을 실었는데 1896년 2월에 기고한 '한국 성악음악'에는 그가 얼마나 한국음악을 사랑했는지 잘 보여준다.이 글 서두에 '서양사람들이 한국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한국인의 기질이나 훈련이 아닌 인위적인 서양인의 귀로 들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빠귀가 박자를 맞추지 않고 종달새가 세로줄이나 점음표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 것과 같이 한국음악은 박자에 구속되지 않는다. 운율에 속박받지 않는 시와 같다고 했다.지금은 제3세계 음악이 인정받으나 한때 서구음악 중심주의가 세계를 지배했다. 19세기 후반에 출발한 '종족음악학'은 그 집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악적 행위를 자민족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다루었다. 초기에는 '비교음악학'이란 용어를 썼는데 서구음악을 우위에 두고 비(非)서구음악을 비교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종족' 또는 '인종'과 '음악학'을 결합한 '종족음악학(Ethnomusicology)'으로 변경했다. 이것의 핵심은 종래 서양음악 우월주의에서 벗어나 자국 음악의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헐버트는 서양인이지만 철저한 한국인의 관점에서 우리 음악을 대했다. 가령 명창이 시조의 음표 하나를 연주하는데 서양 성악가가 3절로 된 노래를 다 부르고 앵콜송까지 부를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는 한국인이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고상한 것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했다.그는 최초로 우리의 성악곡인 시조, 아리랑, 뱃노래를 서양 오선보에 채보했다. 그 중 아리랑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밥이 차지하는 비중과 같다고 했다. 이 곡은 한국인의 사랑 노래로 서정시, 교훈소설, 서사시가 함축된 바이런이요, 워즈워스라고 칭송했다. 서양음악에서는 상상력을 해친다고 가사에 지명을 사용하지 않지만 한국음악에서 지명을 넣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면서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고 평가했다.비문에서처럼 헐버트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이다. 그는 서양인이면서 한국민족을 사랑했고 한국 정신문화를 존중했다. 그는 종족음악학에서 말하는 서구인의 시각이 아닌 한국인의 시각에서 우리의 음악을 바라보았다. 한국음악을 감상할 때 한국적인 귀로 듣고도 한국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러쿵저러쿵 한국음악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뼛속 깊이 한국음악을 사랑했다.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2-22 11:21:15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피노키오 대법원장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피노키오 대법원장

녹취록이 공개된 지 보름 만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온갖 변명으로 가득 찬 면피성 사과문. 그마저 국민에게 공개한 것이 아니라 법관들만이 볼 수 있는 내부망에 올렸다. 법원 안팎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나 보다. 심지어 그의 거짓말은 사과문에서까지도 이어진다.그의 사과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거짓말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부주의한 답변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하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여기서 그가 한 거짓말은 두루뭉술 '부주의한 답변'으로 처리되어 있다. 자신이 주의가 좀 부족했을 뿐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사안 자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제가 해당 사안에 대하여 정치권과의 교감이나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하여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녹취록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녹취록에서 그는 자신이 살펴야 한다는 그 '정치적인 상황'이 무엇인지도 노골적으로,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결국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탄핵 얘기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 두려고 임성근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얘기.그의 거짓말은 이어진다. "해당 법관의 사직 의사 수리 여부에 대한 결정은 관련 법 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고 부인하나, 녹취록에서 그는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법률적 조치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법률적인 것은 차치'해 두었다던 그가 이제 와서 '관련 법 규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법적 근거는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사표를 반려한 그 조치가 대체 어떤 '법 규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밝힐 수도 없을 게다. 왜? 그런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결국 형식이나 내용 모두 진정한 사과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외려 사과의 형식을 빌려 뻔뻔한 거짓말로 자기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상습적인 거짓말쟁이가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최종적 진실을 가리는 기관인 사법부의 수장 노릇을 하는 나라에 살게 됐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거짓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켜야 할 대법원장이 정치적 고려에서 몇몇 얼빠진 국회의원들의 영향력을 사법부에까지 끌어들였다. 이거야말로 신판 '사법 농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명 당시에도 그는 자신이 내친 그 판사들을 이용해 야당 국회의원들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정치 판사가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나고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그의 '개인적'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고로 그의 사퇴 거부는 그의 의지를 넘어 이 정권의 의지로 봐야 할 게다. 즉, 사법부가 자신들의 불법·위법·탈법·초법에 계속 제동을 거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수장에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을 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그 효과는 당장 법원 인사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낸 가운데, 정권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온 판사들은 관례를 무시하고 계속 자리를 지키게 했다. 물론 재판 결과 하나하나가 정권 교체기에 갖는 비상한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일종의 예방조치라 할 수 있다.검찰에 이성윤이 있다면 법원에는 김명수가 있다. 좌성윤 우명수, 한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두 기관을 권력이 모두 장악했다. 이 환상의 복식조에 법무부 장관이 가세했다. 정의란 곧 공정을 의미하는데, 그 정의부의 장관이 민정수석에게 '우리 편'이 되라고 종용했단다. 문재인 정권 아래서 '정의'는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2021-02-22 06:30:00

[매일춘추] 책의 생기를 되찾아 주는 북큐레이션

[매일춘추] 책의 생기를 되찾아 주는 북큐레이션

요즘 서점가에서는 북큐레이션이 화두다. 큐레이션(Curation)은 본래 미술 작품이나 예술 작품의 수집, 보존, 전시를 의미한다. 또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선별하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밀려 사라져가던 동네서점에서 이 방식을 도입하면서 부활하고 있다.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예전의 동네서점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곳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작은 서점들은 북큐레이션으로 독자와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다.특히 책방 주인의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 책과 고객을 연결해주는 방식에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를 상담하여 처방하듯 고객의 고민을 듣고 적당한 책을 처방하는 책방, 시인이 직접 운영하며 시집과 책을 추천하거나 글쓰기를 지도하는 책방, 30~40대 직장인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하는 책방, 한적한 시골에서 명상과 자연에 관한 책을 중점적으로 추천하는 책방 등. 이런 서점들은 그 자체가 특정한 주제를 가진 하나의 북 큐레이션 공간이다.서점가의 이러한 변화는 일본 츠타야 서점의 영향이 컸다. 츠타야 서점은 정해진 도서분류법이 아닌 '라이프 스타일'을 바탕으로 책을 분류하여 전시한다. 예를 들면 '요리 코너'에는 요리와 관련된 소설과 시집, 에세이와 실용서 등을 함께 배치한다. 거기다 요리에 필요한 식기와 식재료까지 전시해서 함께 판매한다. 독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한 책을 추천하고 제안한다. 츠타야 서점은 큐레이팅 서점의 모델이 되었다.도서관도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북큐레이팅을 시도하고 있다. 서가에 꽂힌 책들을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의미있게 재정리하여 디스플레이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도서관도 다양한 주제로 이용자들과 만나고 있다. 내일을 위한 청소년 책, 세상을 담은 큰 책, 나라를 지킨 인물 등 다양하다.하지만 자료실 사서가 북큐레이팅을 기획하고 디스플레이를 하기까지에는 매우 많은 손길이 간다. 도서관 서가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많은 책 중에서 이용자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와 원하는 책을 제대로 파악하고 찾아서 재정리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연구에 따르면 사서 추천 도서의 대출 회전율이 다른 도서에 비해 5배가 높다. 북큐레이팅을 하면 베스트셀러 중심의 집중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고, 독자의 관심을 다양한 분야로 넓힐 수 있다. 책이 가진 다양한 목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북큐레이팅이 더 필요하다. 사서의 손길이 더 바빠지겠지만 북큐레이션을 통해 이용자와 만나 생기를 되찾는 책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2021-02-22 06: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숙종시대 화원, ‘팔준도첩’ 중 ‘응상백'(凝霜白)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숙종시대 화원, ‘팔준도첩’ 중 ‘응상백'(凝霜白)

숙종이 도화서 화원에게 명하여 그리게 한 태조 이성계의 여덟 마리 말 그림인 '팔준도첩' 중 '응상백'이다. 서리가 엉긴 것처럼 흰 백마여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팔준은 푸른색, 검은색, 붉은색, 자주색, 황색, 흰색 등으로 털빛이 다양하고 얼룩말도 있다. 이름 옆의 화제는 "순백색(純白色) 오자(烏觜) 오안(烏眼) 오신(烏肾) 오제(烏蹄) 산어제주(産於濟州) 회군시어(回軍時御)"이다. 응상백은 갈기와 꼬리를 비롯해 털빛이 모두 희고 부리와 눈, 발굽이 검은 제주산 말이라고 했다. '회군' 할 때 탔다고 했는데 곧 압록강 위화도에서의 회군이다.'팔준도첩'은 모두 풀밭을 배경으로 말을 화면에 꽉 차게 크게 그렸고 말 그림의 전통에 따라 대부분 옆모습이다. 화법은 구륵전채법(鉤勒塡彩法)이라고 해서 짙은 윤곽선으로 형태를 그리고 채색으로 형태를 채우는 기법인데 흰 호분 물감의 농도를 조절해 입체감을 주었다. 팔준도의 말들은 비범하고 건강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전쟁터를 누비던 용맹한 군마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우아한 모습이다. 그것은 태조의 공업을 칭송하려는 목적에 맞게 명마의 이상적 모습을 나타내려 했다는 점과 주문자인 숙종의 취향에 맞추어진 화원 화풍의 산물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그런 중에도 이 '응상백'은 준마의 위용과 더욱 거리가 있다. 고개를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어딘가로 가고 있는 모습인 것은 회군의 고뇌를 투영시킨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화도 회군은 이미 천하를 차지한 명나라와 군사적 대결을 벌이려는 조정의 무모한 정책에 반발해 이성계 등 요동 정벌의 임무를 명령받은 지휘관들이 정변을 일으킨 사태이다. 이들이 결단한 회군으로부터 국가의 구조가 바뀌는 거대한 변화가 비롯되었지만 고려의 신하로서 '불충'의 고뇌가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여덟 마리 준마의 신화는 기원전 10세기쯤 인물인 중국 주나라 목왕이 주인공인 전기이자 역사이며 신화적 여행기인 '목천자전'에 나온다. 중국 서쪽의 지역에 호기심이 많았던 목왕은 천산(天山)을 찾아 황하의 물길을 따라가 황하의 신 하백을 만났고, 곤륜산의 여신 서왕모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요지연도는 서왕모의 요지(瑤池)에서 주 목왕이 참석한 연회를 그리는 그림이다. 이런 여행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이른바 '목왕팔준'이다. 목왕의 팔준은 낭만적인 서유(西遊)를 가능하게 했고, 태조는 팔준과 함께 개국의 위업을 이루어냈다. 세종과 숙종이 팔준도를 그리게 한 것은 태조 할아버지의 창업(創業)을 칭송하며 그보다 어렵다는 수성(守成)을 위한 성찰의 자료로 삼기 위한 그림, 곧 감계화(鑑戒畵)였다. '팔준도첩'의 주제는 말이 아니라 태조의 창업과 숙종의 수성이기 때문이다.미술사 연구자

2021-02-22 06:30:00

[기고]Move On

[기고]Move On

20세기 대표적인 조각 작품으로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조각이 있다."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실존의 불안을 딛고 당당히 걷는 인간을, 끔찍한 전쟁을 겪은 후 길을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살아내야만 하기에 부서질 것처럼 앙상한 몸을 이끌고 큰 폭으로 걸어가는, 인간 실존 의지를 형상화한 스위스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이다.올해 2021년 경북경제진흥원의 슬로건을 계속 나아가다, 전진하다는 뜻의 'Move On'으로 정했다.이 슬로건을 정한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우리의 사라진 일상, 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그래도 걸어야 하는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조각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경상북도경제진흥원이 지난해 12월 21~24일 지역 제조 중소기업 366개사를 대상으로 경기 전망을 조사한 경북 제조업 경기지수, 즉 GMI(Gyeongbuk Manufacturing Index)에 의하면 2021년 업황 전망은 기준 100 대비 90.5를 기록, 지역 제조 중소기업 상당수는 올해 체감 경기를 여전히 어둡게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규모별로는 50인 이상 기업이 98.1, 50인 미만 90.3, 10인 미만 88.2를 나타내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부정적 전망이 우세했다.그럼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변화로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그래도 걸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첫째, 뒤를 보면 안 된다.온라인 주문만 받아 판매하는 불 꺼진 매장이 성공을 거두며 이를 나타내는 '다크 이코노미'(Dark Economy)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과거의 상식을 깨며, 코로나로 달라진 세상이라는 뉴노멀을 대변하는 일이다. 한 번 변화된 것은 과거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뉴노멀이다. 전진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이 필요하다.둘째, 첫걸음을 떼는 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안개 속에서는 누구나 안개가 걷혀 앞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첫걸음을 쉽게 떼지 못한다. 그러나 기다리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안개는, 모호함은 이제 상수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가 보이는 세상은 끝났다. 담대하게 안개 속에서 첫걸음을 떼보라고 권하고 싶다.셋째, 피보팅(pivoting)이 필요하다.안개 속의 전진은 직진이 아니다. 더듬거리며 나아가야 하고, 길이 보이지 않으면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 와중에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룬 일 중의 하나가 여객기 좌석에 화물을 실어 나른 대한항공의 변신이라고 한다.이동시킨다는 핵심 역량에 기반한 피보팅이다. 그 결과 대한항공의 국제선 승객은 90% 이상 감소했지만 대한항공은 코로나 와중에 2·3·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코로나로 안개 속처럼 사방은 모호하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일상은, 비즈니스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Move On(계속 전진시키다)이다.

2021-02-21 16:08:44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도 로봇이 되나요?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도 로봇이 되나요?

자동차가 하늘로 날아다닌다. 거리에는 로봇이 가득하다.2035년은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로봇'에서 이렇게 그려진다. 정말 2035년은 그럴까? 이제 고작 14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넷플릭스를 끄고 주변을 살펴봤다. 이미 나는 인공지능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었다. 출근 전 AI(artificial intelligence)에게 날씨를 체크한다. AI는 마치 나의 여자친구인 것처럼 상냥하게 대답을 해준다. 추운 날은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는 로멘틱한 조언까지 잊지 않는다. 장거리 출장이 잡히면 자율주행 기능을 이용해 이동한다. 이미 나는 AI가 주는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광고에 등장시켜야 한다. 광고는 '혜택'이다. 혜택이 있어야 사람들이 움직인다. 남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좋아야 한다. 내게 도움이 되고 이점이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자기가 편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최근에 병원 경영 관리를 하는 브랜드의 광고를 맡았다. 대구 기업인데 컨텐츠 구성이 뛰어나 커뮤니케이션 방법만 좋으면 성공할 것 같았다. 지역 기업이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을 수주했다. 이 브랜드는 병원 경영에 관한 매뉴얼을 고작 월 5만원에 팔고 있었다. 좋은 서비스를 병원 뿐 아니라 결국 환자들도 누렸으면 좋겠다는 대표의 마인드가 녹아져 있었다. 컨텐츠 구성으로 봤을 때 50만원에 팔아도 될 만했다. 이렇게 좋은 브랜드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앞서 말했듯 사람들이 반응하는 광고는 혜택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골칫거리를 해소시켜준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나는 광고에서 이 두 가지를 접목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최저 임금이 1,822,480원인데 50,000원에 한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면?''사람은 9시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한다. 하지만 24시간 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이 두 가지를 답을 찾으면 풀리는 문제였다. 내게는 이 문제를 풀어줄 답이 필요했다.그것이 바로 로봇이었다. 이 브랜드는 실제로 그랬다. 월 5만원이면 나를 위해 24시간 일하는 로봇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병원 입장에선 코로나 때문에 고용도 부담되는 시기다. 고용 때문에 불안해하는 원장님들에겐 이 카피가 통할 것 같았다. 그리고 고용 때문에 불만인 원장님에게도 솔깃할 것 같았다. 24시간 우리 병원을 위해 일하는 로봇이 있다면 말이다. 최저시급에서 한참 못 미치는 비용으로 나를 위해 일해주니 말이다.앞으로 내가 만드는 광고에 로봇이 자주 등장할 예정이다. 그리고 로봇이 나의 광고를 배포하게 될 것 같다. 훗날 로봇이 나 대신 아이디어를 내고 광고를 만드는 날도 올 것이다.광고를 만들고 싶다면 광고가 아닌 시대를 공부해야 한다. 광고에 그 시대 사람들이 찾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 시대 사람들이 혜택이라고 느끼는 것, 그 시대 사람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광고도 로봇이 되는 시대가 왔다.마침내.

2021-02-20 07:13:38

[이종문의 한시산책] 종이 연을 노래함 - 권필

[이종문의 한시산책] 종이 연을 노래함 - 권필

우리 집 모든 재앙을 네가 몽땅 싣고 가서 我家諸厄爾帶去(아가제액이대거)남의 집에 앉지 말고 들나무에 걸렸다가 不落人家掛野樹(불락인가괘야수)봄이 와 바람 불고 비가 내릴 그때쯤엔 只應春天風雨時(지응춘천풍우시)찾아도 찾을 수 없게 확 사라져 버리거라 自然消滅無尋處(자연소멸무심처)*원제: 번속전지연가(飜俗傳紙鳶歌): 민간에 전하는 '종이 연' 노래를 번역함. "우리 집 모든 액(厄=재앙)을 너(=연) 혼자 다 맡아서 / 인간에 지지(=떨어지지) 말고 야수(野樹)에 걸렸다가 /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어든 자연소멸(消滅)하여라."연을 소재로 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조다. 민간에 떠돌던 이 시조를 그의 제자 석주(石洲) 권필(權鞸: 1569-1612)이 한시로 번역을 한 것이 위의 작품이다.요즘에 와서는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지 연을 날리곤 한다. 하지만 원래 연날리기는 정초에 시작해서 정월대보름날까지만 하고, 대보름 이후에는 일체 연을 날리지 못하게 했다. "보름 이후에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는 속담도 대보름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못하게 하려는 고육지책에서 나온 정말 강력한 제동 장치다.왜 그랬을까? 대보름이 되면 연에다 '액(厄)'이나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 재앙을 보내고 복을 맞음)' 등의 한자어를 써서 멀리 날려 보내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온 집안의 재앙을 연이 죄다 싣고 날아가게 되지만, 계속하여 연을 날리게 되면 재앙이 줄창 집에 머무르게 된다고 여겼으니까.연을 날려 보낼 때는 날아가던 연이 남의 집에 떨어지지 않도록 아주 각별하게 조심을 했다. 자칫 남의 집에 떨어지게 되면 우리집 재앙을 그 집에서 대신 받게 된다는 민간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이 이웃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명종 21년 정월대보름날 백성들이 날린 연이 궁궐 여기저기 추락하자, 담당 관리를 처벌하도록 명령을 내렸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이제 곧 정월대보름! 연을 날려 보낼 때가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날려 보낼 때 '제발 꺼지거라 코로나19'라고 연에다 쓰는 것이 필수사항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아주 먼 옛날에 개발해놓은 효과 100%의 코로나19 백신이니까. 날아가던 연이 남의 집에 떨어지지 않도록 거리두기도 철저히 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남의 집에 떨어진 연이 온 동네 집단감염의 슈퍼 확진자 탄생의 불쏘시개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이종문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1-02-20 06:30:00

[광장] 오병이어…집권 4년 “잔치는 한창이다”

[광장] 오병이어…집권 4년 “잔치는 한창이다”

예수님이 나신 땅, 이스라엘로 가보자. 성모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음을 전달받은 수태고지 교회의 나자렛에서 동쪽으로 달리면 갈릴리 호수가 나온다. 연중 아름답게 넘실대는 푸른 물결은 황량한 불모지 가나안 땅의 젖줄이자 꿀물이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발달한 여러 도시 가운데 카파르나움(가버나움)이 눈에 들어온다. 로마 시대 군대가 주둔하고, 세관이 있을 만큼 번성하던 도시다. 물론 그보다는 예수님이 초기 설교를 진행하며 베드로와 마태오 등의 제자를 얻은 곳으로 더 이름 높다. 그림 같은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카파르나움에 남은 로마 시대 유적과 베드로 동상을 보면 경건함이 절로 솟는다.카파르나움에 붙은 타브가 마을 작은 교회에 순례객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교회 입구에 짙푸른 녹음을 드리운 중동 지방 특유의 시카모어 고목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아담한 자태의 교회로 들어서면 어둑한 분위기 속에서도 눈길이 바닥을 향한다. 역사적 무게와 종교적 메시지의 아우라에 탐방객의 시선이 압도된다. 바구니에 든 빵(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묘사한 '오병이어(五餠二魚) 모자이크'.한국 컴퓨터선교회가 펴낸 마가복음 6장 41절에서 44절을 펼쳐보자.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41절), 다 배불리 먹고…(42절),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44절)."타브가에 처음 교회가 들어선 것은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다. 동로마제국 시절 5세기 증축을 거쳐 '오병이어' 모자이크가 설치된 것은 6세기라고 유적 안내판은 소개한다. 7세기 파괴된 교회 터를 1889년 독일성지협회(DVHL)가 찾아 매입하고, 1932년 모자이크를 발굴해 냈다. 1천500년 된 모자이크 유물에 스민 종교 절대자 예수님의 기적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예수님이 타브가에서 "민중을 만났을 때 귀와 마음을 열고, 그들의 고민과 슬픔, 소원을 들었다"는 현지 안내문의 추가 설명에 오병이어의 진정한 의미가 새롭게 읽힌다.명절 선물로 들어온 고기를 아껴 먹으며 한 달 60만원 생활비로 산다고 알려진 분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됐다. 자린고비 생활비임에도 스페인으로 가족 여행을 다니고, 중산층 지역 목동에 살며 국회의원이 됐다. 질타가 이어지자 가족의 신용카드 1년 사용액이 720만원(한달 60만원)일 뿐, 실생활비는 300여만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자신은 혼자 살아도 1년 카드 사용액이 1천만원이라면서 이태백류의 즉흥 시어를 써 내렸다. "이 정권에서 출세하려면 부패 타락이 필수". 국민은 안다. 한달 카드 사용액 60만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지만, 청와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야당 동의 없이 29번째로 장관 임명장을 준 것도 모자라, '역경에 굴하지 않는' 꽃말의 캐모마일과 '행복' 꽃말의 스위트피 꽃다발까지 안겼으니 말이다.장관의 신기한 공력은 돈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모 대학에서 도시공학 박사 학위를 영어로 받았는데, 한글 원본 파일이 없단다. 장관으로 어떤 기적을 또 일궈 낼지 걱정이 앞선다. 현 정권 첫 환경부 장관이 청와대가 점찍은 인물들을 산하기관에 앉히기 위한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찌 환경부뿐이겠는가. 문재인 정권 집권 4년째. '우리 편 죄 덮고, 우리 편 챙기기'에 골몰하는 행태는 "민중의 고민과 슬픔, 소원에 귀와 마음을 열었다"는 오병이어의 참뜻에서 크게 벗어난다.

2021-02-20 06:00:53

[안동을 걷다,먹다] 21. 엘리자베스 여왕이 찾은 산사, 봉정사

[안동을 걷다,먹다] 21. 엘리자베스 여왕이 찾은 산사, 봉정사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1번째 이야기 봉정사'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1999년 4월 21일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국빈 방문 중 봉정사를 찾아 방명록에 감회를 썼다. 여왕은 '한국의 산사'에서 한국의 봄을 제대로 느꼈던 모양이었다. 이제 이 꽃샘추위도 물러나고 나면 거칠 것 없는 봄이다.메마른 대지는 다시 살아나고 바람에는 봄기운이 물씬 묻어나면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이미 남쪽에선 파릇파릇한 보리싹이 봄을 알리고 있고 동백은 마지막 내리는 눈 속에서도 붉디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봉정사로 가는 길 옆으로 난 논두렁, 밭두렁에서는 봄농사를 준비하려 거름을 내는 안동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봉황이 앉은 자리에 지은 절이라는 의미의 '봉정사'(鳳停寺).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인 서기 672년, 능인대사의 전설로부터 시작된다. 능인대사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봉정사가 자리잡은 천등산 자락의 한 바위굴에서 불법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십년을 수도하는 그에게 어느 날 밤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나 유혹했다. 산 속에서 수도에 정진하던 능인은 하마터면 여인의 유혹에 넘어갈 뻔 했다. 그러나 능인은 "나는 편안함을 바라지 않으며 부저님의 공덕을 사모할 뿐 세속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며 여인의 유혹을 뿌리쳤다.그 여인은 옥황상제가 보낸 시험이었다. 여인이 물러나자 하늘에서 바위굴에 등(燈)을 보내 어둠을 쫓아 수도에 정진하도록 보살폈다. 그 때부터 이 산을 천등산(天燈山)이라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다. 수도를 마친 능인대사가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도력으로 날렸더니, 학가산을 거쳐 지금의 봉정사 자리에 앉았다. 능인은 봉황이 앉은 자리에 절을 지어 봉황이 머무른 곳이라는 의미로 봉정사라 이름을 지었다. 봉정사의 전설은 그렇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봉정사는 안동에서는 가장 큰 절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큰 절이라는 위압감도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부담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산사'(山寺)다. 함께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통도사나 법주사 같은 사찰보다는 훨씬 작은 전형적인 산사다. 영국여왕이 안동에 와서 하회마을과 봉정사를 찾은 것은 이같은 절제된 한국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였다.대웅전 등이 배치된 본당 영역은 아기자기하면서도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산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건물이자 고려시대의 간결하고도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극락전, 조선시대 건축된 최고(最古)의 대웅전, 고금당과 화엄강당, 무량해회,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덕당 만세루 종각 등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배치돼있다.천등산 등산로에 도착,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산 후 봉정사까지는 걸어서 20여분 정도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매표소에서 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게 여겨졌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아스팔트가 깔린 좁은 산길이었지만 양 옆으로 늘어선 '소나무길'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기대감이 들 정도로 길은 편안했다. 삐뚤삐뚤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듯 보이는 숲길에 펼쳐진 소나무의 선(線)은 세상 어느 나무도 따를 수 없는 한국의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곡선이다.유명 사진작가 배병우가 찍은 경주의 소나무는 우리 산 어느 곳에나 있다. 다만 소나무를 보는 각자의 시선이 다를 뿐이다.쭉 뻗은 전나무나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자란 키다리 잣나무숲에서 느끼는 위압감과는 다르게 소나무 숲길에선 자연과 일체가 되는 듯 몰입과 동화감이 최고조에 이른다.작고한 소설가 최인호의 '길없는 길'에서 본 '경허선사'의 게송을 통해 봄기운 듬뿍 받고 있는 산사 봉정사의 하루를 만끽해본다.'世與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化'(세상과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꽃이 피지 않는 곳이 없다)우리가 사는 속세와 산사가 자리한 청산, 어느 곳이 옳은가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다. 봄볕이 따뜻한 봄이 되면 속세든 청산이든 꽃은 필 것이니 속세와 청산, 어느 곳이 옳은지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 꽃이 피는지 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봄볕(春光)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산사에 오르며 삶의 게송 하나를 기억해냈다. 우리는 불자(佛子)가 아니어도 산사를 찾는다. 그 산에 절이 있어 오르는 것이지 그 절을 찾아 굳이 그 산을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산사가 없는 산은 그저 적막한 산이지만, 산사가 자리하고 있는 산은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설렘이 수반된다. 그래서 산행도 좋지만 그 산에 있는 산사를 찾는 산행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조계사와 봉은사 같은 조계종의 본산은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지만 산사는 살아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전통적인 불교유산을 대표한다. 산사에 가서 기도를 하고 공부를 하기도 하고 출가를 해서 수행을 했다.봉정사로 들어서는 일주문(一柱門)은 소박하기 그지없다.산사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이 일주문인데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산사에 들어서려면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오라는 가르침을 담았다. 역시나 봉정사 일주문도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얻는 일반적인 집과 달리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얻는 형태였다. 일주문의 기와지붕이 마치 머리가 지나치게 큰 '가분수'처럼 불안정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이제부터는 산사의 영역이다. 산사에 들어갈 때는 일주문을 우회하지 말고 반드시 이 문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생각보다 본당은 일주문에서 가깝다. 눈앞에 거대한 돌에 새긴 세계문화유산 봉정사 간판이 들어오고 눈을 들면 바로 절이 보였다.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누각으로 들어서게 된다. 만세루(萬歲樓)다. 봉정사 본당으로 들어서는 출입구에 해당하는 만세루를 통해 들어서면 정면에 대웅전과 화엄강당, 그리고 무량해회 등이 ' ㄷ '자 형태로 배치돼있다. 만세루는 종루의 역할도 한다. 만세루는 문득 병산서원의 만대루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조선시대 서원의 대표적인 강당이었던 만대루처럼 봉정사 만세루 역시 '불법'을 공부하는 학승과 선승들의 강당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만세루는 조선시대인 1680년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데 17세기 후반 목조건축물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본당인 대웅전과 바로 옆의 극락전, 고금당은 각각 보물과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다. 불교 문화재를 보는 안목이 없어도 가지런하게 배치된 봉정사 본당 영역은 잠시 둘러만봐도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대웅전을 지나 오른쪽으로 비껴나 걷다가 만나게 되는 요사채는 영산암이다. 이곳에서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다. 영산암으로 오르는 계단은 '사진명소'로 알려져 있어 '인생샷'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셀피' 인생샷도 가능하다.속세의 번뇌와 고민이 쉬이 해결되지 않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은 산사를 찾아 마음의 평정을 찾는 '템플스테이'를 하기도 한다. 나 역시 문득 하루 이틀 정도 세상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사에서 지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산사에서의 '느릿느릿 스테이'는 아직 실천하지 못한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천등산은 574m로 산행하기에도 힘들지 않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산행을 시작해도 되고 매표소 입구쪽에 있는 주차장 쪽에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면 굳이 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주차장 쪽에 가볍게 요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있고 봉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분위기 좋은 찻집도 여럿 있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2-20 06:00:00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

'상영시간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다. 장내는 매캐한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거나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르며 빨리 돌리라고 야단들이다. 열두어 살짜리 어린놈이 과자 등속을 담은 목판을 한 손으로 받쳐들고, 객석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사이다요 사이다, 카라멜이요, 오징어…"'(김석배, 「영락좌, 화전동에 둥지를 틀다」, 2020년 6월호)1930년대 대구 한 극장의 풍경이다. 글을 읽기만 해도 매캐한 담배 연기와 오징어 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이 시절 극장 풍경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공연장은 최상급의 시설과 환경을 자랑한다.하지만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관객'이다. 텅 빈 공연장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관객들을 보노라면, 빡빡하게 앉아 옷깃이 닿던 공연장의 술렁거림과 소음조차 그리워진다. 공연장은 공연뿐만 아니라 '추억'까지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클래식 공연을 생애 처음으로 관람한 공연장, 학교에서 반공 만화영화를 단체로 관람한 장소,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콘서트장…. 누구에게나 대구 공연장에 대한 기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절대 넘보지 못하는 나만의 추억 말이다.대구에 서양식 개념의 무대가 생긴 것이 1907년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만 생기면 그곳이 바로 공연장이 되었다. 해방 전후 키네마극장, 공회당, 대구만경관, 계성학교 강당, 6‧25전쟁 이후에는 키네마극장(문화극장, 중앙국립극장), 대구문화장, USIS(미국 공보원), 효성여대 강당, 청구대학(영남대의 전신) 강당, 대구방송국 공개홀(KG홀) 등이 당시 공연 팸플릿에 등장하는 공연장이다.재미있는 것은 예식장에서도 공연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구문화장을 비롯한 예식장들은 피아노가 있어서 연주자들이 즐겨 찾던 공간이다. 옛 공회당 건물을 활용한 KG홀은 그랜드피아노가 있었고 비교적 현대적인 공연 무대와 객석을 갖춰 클래식, 연극과 무용 공연장으로 인기 있었다.먹고 살기도 벅찼던 1950~1960년대, 문화에 대한 목마름 때문일까. 사람들은 공연이 열리는 곳마다 찾아가 자리를 메웠다. 당시 공연 사진을 보면 객석이 가득 차 있다. 클래식 인구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텐데 말이다. 원로음악인 우종억(90) 지휘자는 "TV 등의 대중매체가 일반화되지 않았기에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공연장에 가야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공연 관람 외에 다양한 정보를 교류할 수도 있었다."고 회고했다.1970년대를 거치면서 대학에서 예술 전공자들이 속속 배출되면서 보다 전문화된 문화시설이 생겨났다. 1975년 개관한 대구시민회관(콘서트하우스의 전신)은 현대화된 음향시설과 무대장치, 객석을 갖춘 최신식 공연장이었다. 1천 7백석의 대극장과 4백 석의 소강당 및 대‧소전시실, 상설전시실 등을 구비한 시민회관은 1990년 대구문화예술회관이 건립될 때까지 15년 동안 대구 공연‧전시예술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되고 이후 구(區)별 문화회관, 각 대학 공연장이 들어섰고, 시민회관은 클래식 전용홀인 콘서트하우스로 리모델링됐다. 대명공연거리를 비롯한 지역 곳곳에 소극장들도 들어서있다. 2011년 대구미술관이 건립됐고 지역 내 크고 작은 전시장의 숫자는 100여 곳에 이른다. 대구예술발전소와 수창청춘맨숀과 같은 융‧복합 문화공간도 있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문화도시 대구의 면모이다.하지만 지금 모든 공연장이 멈추어 있다. 평년 같으면 봄을 앞두고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이 매일같이 열려, 연일 만원을 기록할 만한 공연장들이 지금은 한산하다. 좋은 공연을 보면서 공연장에서 쌓았을 법한 시민들의 추억도 지난 1년 동안 삭제되어 있다.이제 함께 공연을 보면서 환호하던 사람들이 그립다. 가끔은 내 의자를 발로 차서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꼬마 아이, 옆자리 영화 관람객의 팝콘 냄새가 그립다. 공연을 보고 한꺼번에 일어나 커튼콜을 외치던 옆자리 관객들이 그리운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공연을 만드는 것은 공연 위의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텅 빈 객석을 보면서 다시금 깨닫는다. 무대 위와 아래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던 그 공기, 공연장 언저리를 휘감던 환호성과 설렘마저 공연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소였다는 사실을.

2021-02-19 14:30:00

[매일춘추] 우리를 지키는 힘 '문배(門排)'

[매일춘추] 우리를 지키는 힘 '문배(門排)'

우리 선조들은 집안의 길흉화복이 문을 통해 들고 나간다고 여겨 집 안에 잡귀가 대문을 통하여 들어온다는 인식 때문에 유독 주술적인 벽사(辟邪: 악한 것들을 물리치는 것)의 풍습이 많다.특별한 의례 없이 집안 고사를 지내고 나서 떡을 조금 떼어내 대문 난간에 놓아두거나, 동짓날 팥죽을 쑤면 대문에 조금 뿌리거나, 아기를 낳으면 금줄을 거는 등의 문화는 대문을 집안의 통로이자 상징이며 중요한 방어기능을 지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조선 초기의 풍속을 기록한 성현(成俔, 1439-1504)의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이른 새벽에는 그림을 대문간에 붙이는데, 그림은 처용·각귀(角鬼)·종규(鐘馗)·복두관인·개주장군·경지보부인 그리고 닭 그림과 호랑이 그림 따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궁궐에서 한 해 동안의 질병과 재난 등을 막기 위해 나례(儺禮)를 행한 후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문간에 붙이는 그림이나 글씨인 문배(門排)에 대한 설명이다. 초기 문배 그림은 처용상(處容像)처럼 얼굴을 중심으로 그려졌으나 대부분 중국의 무신인 장군상, 선녀도, 신장(神將) 등 인물상 전체의 모습이 중심을 이룬다. 궁중에서 시작된 문배문화는 민간층으로 확산되어 조선 말기까지 성행하였다.대문에 짝을 이뤄 붙이는 주술적 의미를 띈 문배와 반대로 길상의 의미를 지닌 세화는 서화(書畫)를 관장한 도화서(圖畫署)에서 그림을 그려 신년을 축하하여 왕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 그림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액막이 '문배'와 길상적 요소를 지닌 '세화'로 구분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통적 쓰임새를 보였다. 삼재를 막아내는 호랑이 그림과 오복을 가져다주는 용이 짝을 이루는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가 대표적 예이다.지난 설날을 맞아 2월 11~14일 서울 경복궁 광화문에 문배도(門排圖)가 걸렸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잡지 '데모레스트 패밀리 매거진'(1893년 7월호)에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내부 사진 속 '금갑장군(金甲將軍·금빛 갑옷을 입은 장군)' 문배도 이미지를 발견하였다.수년에 걸친 자료조사와 자문회의 등을 통해 현존하는 유일한 완본인 안동 풍산 류씨 하회마을 화경당 문배도를 바탕으로 고증 재현하였다.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척사의 의미를 살려 코로나19 극복과 지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취지로 기획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오랜 세월 향유한 소중한 세시 풍속으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2-18 11:33:11

[기고]코로나 극복의 열쇠는 공동체 의식

[기고]코로나 극복의 열쇠는 공동체 의식

위기에 강한 민족 대한민국. 역사에서 보았듯 우리는 늘 어려움을 이겨 냈고 그 바탕에 특유의 단결력과 연대 의식이 있었다. 코로나19가 만든 깊은 계곡을 지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문화관광 산업에도 함께 살아남기 위한 상생의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공동체 의식을 통한 위기 극복의 좋은 선례가 있다. 1991년 3월 대구에서는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있었다. 구미 두산전자에서 엄청난 양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으로 유출돼 대구에서 부산까지 낙동강 수계 주민들이 오염된 수돗물로 큰 고통을 겪었다. 필자는 당시 KBS대구방송총국 기자로 재직하며 현장 취재로 페놀 유출을 확인하고 이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회적 위기를 맞닥뜨린 시민들의 하나 된 자세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제보가 이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끌어올렸고, 확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참여로 공동체 정신을 발휘한 것이 대한민국 환경운동의 모체가 됐다.이처럼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자 열쇠가 공동체 의식이다. 코로나를 극복해 나가는 문화관광 업계도 현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결속력과 연대 의식을 갖춰 준비해야 한다.경주엑스포공원도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한 다각적인 협력을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다. ▷콘텐츠 혁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 ▷콘텐츠 교류와 홍보 협력을 통한 네트워크 강화 ▷온라인 채널 상호 활용을 통한 온택트 문화 선점 등이 중심이다.이를 위해 문화엑스포는 지난해 5월 일찌감치 경북도 문화 관련 5대 실무기관 회의를 마련해 협력의 물꼬를 텄다. 문화엑스포와 경북문화관광공사, 경북문화재단, 경북콘텐츠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등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체 정신을 기반으로 온·오프라인 협업과 콘텐츠 공동 개발 등에 뜻을 모았다.코로나로 형성된 온택트 관광 수요를 잡기 위한 협업은 한 박자 더 빠르게 진행했다.문화엑스포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글로벌 광고와 유튜브 인플루언서 영상 촬영 장소로 낙점받으며 온라인 관광의 강자로 올라섰다. 올해도 방송과 광고, 뮤직비디오 등 촬영과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콘텐츠의 힘을 바탕으로 한국관광공사와 경북도, 경주시 등과 함께한 적극적인 협력이 미래 관광 수요를 선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네트워크 파트너십을 통한 '합종연횡'(合縱連橫)도 활발하다. 지난해 3월부터 민간기업과 교육기관, 문화 관련 단체 등 13곳과 전략적인 협력 관계를 선언하며 문화관광 부흥을 위한 외실을 다졌다.어려운 상황에도 지역 문화예술인의 활동 위축을 막기 위해 국악 공연과 버스킹, 지역 예술인 지원 사업 등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코로나를 피해, 즐기는 힐링 파크'라는 이미지를 다져 2020년 유료 관광객 22만 명이라는 성과를 기록해 냈다.특히 경북도가 새해 들어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춘 행정과 대학 간 공동 운영 체제 구축 등 효율적인 협업 방안을 밝힌 만큼 문화엑스포도 민간기업과 제휴를 통해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북형 스마트 뉴딜, 뉴노멀 문화관광 시대 힐링 경북 조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이후의 문화관광 활성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연대의 길을 모색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한다.공동체를 위한 연대와 상생의 정신이야말로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가장 현명하고 적극적인 자세다.

2021-02-18 11:22:04

[춘추칼럼]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에 생각한 것들

[춘추칼럼]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에 생각한 것들

화요일은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재활용할 종이, 박스, 비닐, 유리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을 분리해서 내놓는다. 여러 가구에서 나온 생활 쓰레기가 작은 동산을 이룬 것을 볼 때마다 가느다란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가 이용하던 신선식품 배송업체는 식품을 제각기 다른 박스에 담아 배송한다. 박스를 줄여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을 했으나 시정되지 않아 배송업체를 바꾸었다. 새 배송업체는 주문 식품을 한 재활용 비닐 박스에 넣어 배송하고 다음 배송 때 수거해 간다. 따로 버릴 박스가 없으니 그만큼 분리수거의 필요를 덜어 주는 것이다.지구 인구가 늘면서 쓰레기 배출량도 늘어난다. 자연을 가공하는 문명화 과정에서 쓰레기 발생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손에서 설계와 제작을 거쳐 나온 물건은 본디 쓰임을 다하고 폐기될 때 쓰레기로 돌아간다. 쓰레기란 인간의 관점에서 효용 가치가 다한 자연이다. 인간이 생산과 창조 활동을 하는 곳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생산의 이면에 가려진 비밀이고, 그 처리는 인간이 풀어야 할 영구적 난제 중 하나다.산업 쓰레기와 생활 쓰레기가 지구의 생태학적 균형을 깨트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쓰레기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일까? 누군가에겐 쓰레기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자원이다. 쓰레기는 그 용도를 미처 찾지 못한 물건일지도 모른다. 쓰레기는 매혹과 혐오라는 양면성을 다 갖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쓰레기는 모든 창조의 산파인 동시에 지극히 가공할 만한 장애물이다"고 말한다.지구 인구가 10억 명이 되는 데 20만 년이 필요했지만, 70억 명이 되는 데 불과 2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구에 생육하고 번성한 인류는 자연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과부하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지구 자원을 제 마음대로 퍼 쓰는 인류의 번성은 지구 생태계에는 미증유의 재앙일 테다. 인류는 육류와 동물성 제품을 얻으려고 680억 마리의 가축을 사육한다. 가축 사육에 어마어마한 곡물을 쓰고, 울창한 숲을 목초지로 바꾸며, 인간이 쓰는 담수 3분의 1을 쏟아붓는다. 축산업이 전 지구적으로 온실가스의 18%를 발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로 이루어진 온실가스는 기후재난의 주요 원인이다.지구는 지난 세기보다 더 자주 기상이변을 겪는다. 초강력 태풍이 오고, 해수면은 상승하며, 잦은 가뭄과 물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대기와 해양은 각종 쓰레기로 뒤덮여 간다. 사하라사막에 난데없는 폭설이 내리고, 페루 바닷가는 죽은 정어리 떼로 뒤덮이며,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강으로 떨어져 나와 홍수를 일으켜 인근의 수력발전소 댐을 붕괴시키고 마을을 휩쓰는 것도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기후재난은 지구 생태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전조 증상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날씨다'에서 "기후변화는 재깍거리는 시한폭탄이다"고 경고한다. 우리 안에 퍼진 '무관심 편향'이 기후재난이라는 시한폭탄이 재깍거리는 시작점이다.오늘 태어난 아기에게 "지구라는 초록별에 온 걸 축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인류는 미래 세대에게 생태적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 깨끗한 대지와 공기들은 미래 세대가 누릴 것을 빌려 쓰는 셈이다.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땅에 묻혀 썩는다. 하지만 잉여의 쓰레기는 늘 골칫덩이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는 대양에서 섬을 이루고 떠돈다. 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탄소발자국을 줄이자고 한다. 그것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은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인간 사회는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초유기체, 즉 하나의 덩어리다. 한 사람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이고, 모두의 문제는 결국 한 사람의 문제다. 인류가 현재 수준의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배출한다면 지구는 곧 쓰레기로 뒤덮일 테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 각자가 생태적 각성과 더불어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윤리적 실천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2021-02-18 11:19:43

[매일춘추] 미다스(midas) 여왕,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1)

[매일춘추] 미다스(midas) 여왕,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1)

아득한 미래, 우리 은하계에 미다스 여왕이 살고 있었다. 일상이 권태롭던 미다스 여왕은 테크놀로지의 신, 라타바(ratava)를 찾아가 손대는 모든 것이 은빛 사이버 세상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라타바는 그녀의 바람대로 손대는 모든 것이 은빛 가상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미다스 여왕은 기뻐하며 돌아와 꽃과 나비, 나뭇가지와 가구 등 자신의 정원과 궁전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가상공간으로 변하게 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그러나 시간이 흘러 손대는 모든 것이 가상으로 변하자 그녀는 더 이상 먹고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빵은 홀로그램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고, 물은 은빛 구슬처럼 가상현실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녀의 왕국은 온통 은색의 차가운 가상공간이 되어버렸다. 슬픔에 잠긴 미다스 여왕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미다스 왕자를 안았다가 기겁을 했다. 왕자마저 은빛 사이보그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미다스 여왕은 그제야 자신이 말한 소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라타바 신전을 찾아갔다.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신, 라타바에게 두 팔을 벌려 자비를 구했다. 간절한 그녀의 기도에 라타바는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에 가서 몸을 씻으라고 명했다.미다스 여왕은 그의 말대로 유로파의 바다에 몸을 씻었고, 마침내 세상은 찬란한 빛을 발하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며 현실과 가상이 중첩된 증강현실을 구현했고,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 또한 잊지 않았다. 한편 미다스 여왕이 목욕한 유로파의 바다에는 수많은 은빛 생명체들이 헤엄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몇 년 후 미다스 여왕은 한 음악 연주회에 초대 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연주회는 테크놀로지의 신인 라타바와 인간이 서로의 음악 실력을 겨루는 연주회였다. 라타바의 연주가 끝나고, 이어서 인간의 연주도 뜨거운 박수와 함께 끝났다.연주를 들은 청중들은 모두 테크놀로지의 신이자 A.I인 라타바의 음악이 훨씬 더 훌륭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미다스 여왕은 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인간의 연주가 더 훌륭하다고 주장했다. 영혼의 소리인 음악만큼은 인간의 몫이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깜짝 놀란 사람들은 일제히 미다스 여왕을 쳐다보며, 은혜도 모르는 그녀가 어떤 벌을 받을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과연 미다스 여왕은 어떤 벌을 받게 될까?연주회 이후 미다스 여왕은 언제나 자신의 귀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사람들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고, 그녀의 전용 미용사만이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왕은 자신의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미용사를 엄하게 단속했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던 미용사는 어느 날 들판에 구덩이를 파고 소리쳐 비밀을 누설했다. 시간이 흘러 그 자리에 대나무가 자라났고, 숲을 이룬 은빛 대나무들이 바람에 부딪칠 때면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한다. "여왕님 귀는 블루투스 귀, 여왕님 귀는 블루투스 귀이이이이…"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2-17 11:37:48

[기고]대구를 독립운동가가 꿈꾸던 세상으로

[기고]대구를 독립운동가가 꿈꾸던 세상으로

현재 코로나 한가운데에 있다.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고, 축구장과 야구장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꿈이 돼 버린 힘든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우선 참회를 해야 한다. 이런 세상을 만든 것에 대해 그 책임의 크고 작음은 있을지언정 우리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까운 거리도 걷지 않고 차를 타고 다니며 환경을 더럽힌 죄, 남을 상생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가르친 교육과 이를 당연히 생각해 온 죄, 인간이 만들지도 않은 땅에 대해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하며 불로소득을 누렸거나 누리려 해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 데 동참한 죄 등등.우리는 이 코로나 사태를 초래한 공범임을 스스로 자백하고 참회를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 정권에서도 근본적인 사회 개혁은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값 폭등은 현 정권이 처해 있는 현주소를 무엇보다도 잘 보여 주고 있다.서울이나 수도권이 시대적 사명을 담당하지 못하면 지방이 해야 한다. 원래 혁명은 변방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 중 대구가 그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구는 서대문형무소보다 20여 명이 더 많은 독립군 희생자들을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다. 이러한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여기에서 참회를 시작하고 시민의 힘으로 독립운동기념관을 만들어 내야 한다.이 독립운동기념관은 물리적 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건설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의 꿈을 담아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공동체를 대구에서 실현해야 한다.우리 역사는 관군의 역사가 아니라, 의병의 역사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에서 보듯 관군은 외세가 침략하면 주로 도망을 갔고, 끝까지 남아 싸운 것은 다름 아닌 의병들이다. 대구독립운동기념관도 관이 시작을 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후손의 부지 기부라는 첫걸음으로 시작된 것이다.대구시민헌법 우대현 선생 조항은 '대구시민은 1915년 대한광복회가 대구달성공원에서 결성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대구달성공원을 독립운동정신 함양의 장으로 만들고,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순국한 대구형무소지를 복원해 열사관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돼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이런 공동체에 대한 소박한 꿈은 대구에서부터 실현돼야 한다.2021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주권면제 이론을 배척하며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회복해 주는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일제 피해자들도 한이 풀리고 독립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대구의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국을 상대로 배상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죄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일본 정부가 진정한 반성을 한다면 소송을 취하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이것이 대구정신이다.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 정의를 우선하는 것이 대구정신이며, 사랑과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목숨을 걸고 투쟁한 독립운동가 정신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동시에 추구하는 탐욕을 견제하지 못하여 탐욕의 부산물 코로나를 초래한 인류에게 대구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주권자 한 명 한 명의 꿈이 실명으로 제안되는 공동체의 꿈을 그린 대구시민헌법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을 대구에 세우는 진정한 의미다.

2021-02-17 11:33:43

[도태우의 새론새평] 일당독재와 역설적 희망

[도태우의 새론새평] 일당독재와 역설적 희망

현 상황은 일당독재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삼권분립은 쓰레기통에 내버려졌다. 먼저 국회의 상황을 보자. 174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초거대 여당 앞에 야당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이 정부 들어 야당이 낸 29번의 인사청문회 부적합 의견은 모두 무시됐다. 공수처법, 임대차3법, 5·18특별법에 대한 야당의 반대 또한 쓰레기통에 내버려졌다. 행정부 공무원들은 정권의 손발이 되어 남에 있는 원전은 폐기하고 북에는 새로 원전을 짓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는 알아서 삼권분립을 반납하고 국민을 속였다.일당독재는 국가 전역에 미치고 있다. 전국 광역단체장 17명 중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중 3분의 2인 151명이 여당이다. 헌법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 각 군 참모총장 모두 여당이 고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무엄하게도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일말의 저항을 보이자 여당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듯 으르렁대며 엄청난 소동을 벌였다. 언론, 노조, 각급 관변단체 및 시민단체, 교육계, 문화계, 종교계, 학계, 변호사단체 할 것 없이 노골적인 친여 성향이 아닌 곳을 찾기 어렵다. 한마디로 일당독재, 여당독재의 상황이다.현 여당은 1987년 민주화 이래 33년 동안 나라 곳곳에 뿌리를 내려왔다. 그 핵심 세력은 1970, 80년대 운동권이다. 기존에 국가 발전을 주도한 세력은 국가기관을 주축으로 했기에, 정당과 시민사회 모두에 취약했다. 현 여당은 운동 조직을 정당 조직과 연결하고, 시민사회를 장악한 뒤 마침내 모든 국가기관과 제도권을 접수했다.권력 독점을 위한 그들의 기만술은 이러했다. 그들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동구권이 몰락하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며 조직을 수습했다. 권력 형성 초기에는 분권을 강조했고, 어느 정도 진지를 구축한 후에는 관용과 협치(協治)를 주장했다. 상대 당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며 비판에 열을 올렸고, 결국 탄핵을 유도해 국면을 전환했다. 탄핵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자 이제 그들에게 두 날개는 필요 없어졌다. 우선 과제는 적폐 청산이며, 관용과 협치,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은 사전에서 지워졌다. '선출된 권력'을 내세워 '선출된 독재'를 거리낌 없이 행하면서 그들은 주장한다. 자신들의 DNA에 독재는 없다고.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부패와 위선으로 같이 녹아내린다면 그 권력은 결코 교체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린 고도(Godot)처럼 오지 않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가? 이권 정치와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맞대응하며 초등학생 대 대학생 수준의 게임을 이어갈 것인가? 대체 탈출구가 있기나 한 것일까?역설적이게도 희망은 현재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일당독재가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일인독재인 김정은 체제와 운명 공동체라는 지점에 있다. 저들은 평화, 민족, 경제 등 갖은 거짓말을 둘러대고 있지만 본질은 유엔 안보리에 회부돼 있는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의 협력범일 뿐이다. 이 본질을 분명히 인식할 때만 저 독재 집단을 고립시키고 그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는 시민세력을 결집할 수 있다. 20만 명이 정치범수용소에서 인간 이하로 취급되며, 3만 명이 인신매매되고, 성경을 지니는 것은 곧 죽음인 휴전선 이북의 '사람'에 눈뜨는 것이 위선과 부패의 극치인 독재 세력의 마법을 깨뜨리는 주문이 될 것이다.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며 인간의 존엄을 옹호하는 건국 이념의 푯대를 높이 올리고 거국적인 전선을 형성하자. 반인도범죄에 협력하는 부패하고 위선적인 일당독재 수뇌부를 철저히 고립시키자. 자유는 지키려 애쓸 때만 유지할 수 있다. 인류 보편 가치와 규범의 빛으로 야만 독재의 진원지를 깨끗이 말려 버려야 할 것이다.

2021-02-17 11:33:18

[경제칼럼] 창업 권하는 사회

[경제칼럼] 창업 권하는 사회

1921년,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지성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술 없이는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었던 시대를 소설가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로 표현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은 4차 산업혁명의 흐름 및 경제적 위기의 돌파구로 창업이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 즉 창업 권하는 사회를 맞이했다.소니, 노키아와 같이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20세기 대표 기업들이 몰락하고 전통산업의 가치는 급속히 하락했다. 그에 비해 애플, 구글과 같은 IT 기업들이 이전에 없던 산업 생태계를 만들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기존 산업의 지각변동에서 생존을 위한 변화를 택한 기업들이 혁신을 일으키며, 글로벌 창업 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은 경제 활성화와 청년 취업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지난 2015년 범국민적 창업을 강조한 이래로 창업가를 이르는 '촹커' 1억 명 육성을 위해 중관촌을 중심으로 청년창업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서울의 노량진이 공시촌이라면 베이징의 중관촌은 청년창업의 메카이다. 한국의 청년들이 공무원을 꿈꿀 때, 중국의 청년들은 IT 창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그 영향으로 중국의 하루 평균 신생 기업 수는 2017년 1만6천600개에서 지난해 2만2천 개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0년 5월 기준 전 세계 436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중 미국(214개)에 이어 중국(107개)이 2위를 차지한 데 비해,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12개에 불과했다. 중국 대학가를 점령한 창업 열풍에 중국 대학생의 90%는 창업을 생각하고, 20%는 창업을 준비한다고 한다. 인구 1만 명당 신설 기업의 수가 한국은 15개인 데 반해 중국은 32개로, 창업 생태계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핀란드 정부는 노키아 사태를 통해 특정 대기업에 의존한 산업 구조의 위험성을 깨닫고 청년들의 혁신 창업에 대대적으로 지원한 결과, 대구경북 인구와 유사한 인구 550만의 작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4천여 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하며 세계에서 인구당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스타트업 선도 국가로 손꼽히게 됐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 취임 후, 프랑스를 창업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스타시옹 F' 및 창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취·창업자를 위한 '프렌치 테크 비자' 등 정부 주도의 창업 지원 정책을 펼치며 창업 붐을 조성하고 있다.다행히 한국도 민간뿐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창업 생태계가 점진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2000년대 초 법적, 제도적 기반이 미비한 상황에서 투자 주도로 일어났던 1차 벤처 붐은 닷컴 버블과 함께 붕괴되며 주가 폭락과 수많은 벤처기업의 파산을 야기했다. 하지만 네이버, 카카오, 넥슨과 같이 닷컴 버블에도 살아남은 잔류 IT 기업들이 도약해 대한민국 IT 강국의 근간을 이룰 수 있었다.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으로 인해 경제와 산업 구조 전반에 급격한 변화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은 그 대응 방안으로 한국형 뉴딜정책을 제시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중심으로 제2의 창업 붐이 조성되고 있다.세계 어디에도 서울과 같이 상위 10%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도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 생태계 평가 지수 세계 20위 도시 가운데 서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중국의 중관촌 같은 창업의 메카도, 핀란드와 같은 창업 환경도 아직은 없다.국가의 운명을 위해 창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하는 이 사회에서, 청년들이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기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실패에 따른 위험을 정부와 사회가 함께 분담하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100번의 이력서보다 1번의 창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창업 활성화를 위한 인식의 개선과 탄탄한 사회 안전망이 뒷받침될 때, 진정으로 창업을 권할 수 있는 사회, 혁신 창업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2021-02-16 14:02:38

[기고]대구지역 공공의료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기고]대구지역 공공의료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소위 공공의료 논쟁이 10여 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와 맥을 같이하는 공공의대 설립은 의료계 파업의 한 가지 이유가 됐다. 대구에 제2의 대구의료원을 건립해야 한다는 논쟁도 뜨겁다.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공공(公共)은 '공적인 것'과 '공통' '모두에게 해당되는' 등을 의미하는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의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있어 공공성을 매우 좁은 의미로 해석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좁은 의미로만 바라봐 공공과 민간을 구분하고, 공공의료 강화 논쟁이 편 가르듯이 진행되는 지금의 상황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잘못된 논쟁으로 보인다.우리나라의 공공의료를 이렇게 좁은 의미로 해석하게 된 이유는 보건의료 분야의 공공성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미국 의료제도의 영향을 받아 소위 민간 중심의 인프라와 기능 확대가 진행된 탓이다. 민간의 역할이 급속히 확장되다 보니 반대로 좁은 의미의 공공의료 규모와 기능은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해지면서 의료의 공공성도 지나치게 국가나 지자체 소유의 개념으로 한정적으로 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하지만 취약계층의 건강 보호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건강을 보장해야 하는 건강권은 헌법정신 중 기본권으로 명시돼 있다. 건강권은 협의의 공공기관·공공병원만이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민간과 공공 나눌 것 없이 함께(共)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더 상식적인 접근이다. 공공이나 공공성을 소유와 관리주체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합의·협치의 철학, 행정의 문제로 확대해 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이제 대구 지역의 공공의료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라는 과제로 다시 돌아와 보자. 공공병원 하나 더 만든다고 해서, 1천 병상을 더 확충한다고 해서 공공의료가 강화될 것인가.공공의료기관 확충은 지금과 같은 감염병 대유행과 같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시민들의 건강 형평성을 개선하는 방편으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는 협의의 공공의료기관만으로는 인력과 장비 모두 절대 부족하다는 것을 목도했다.대안은 '지역 보건의료 체계'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모든 의료 서비스는 공공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의료계와 지자체·의회가 함께 지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시킬 전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대구경북에도 암센터, 심뇌혈관질환센터, 호흡기전문질환센터, 류마티스관절염센터, 응급의료센터 등 국가지정 권역센터가 즐비하다. 이런 권역센터는 특정 병원의 센터가 아닌 우리 지역의 '공공' 센터로 지역의 자산이다. 다른 병원들과 힘을 합쳐 각종 중증질환과 감염병으로부터 지역민들의 건강을 함께 지켜내라고 지정된 우리 지역의 센터이다.대구시의 역할은 이 센터들이 협력하도록 상생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데 있다. 과다한 경쟁을 부추기고 비효율을 증가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권역센터를 중심으로 각 병원들이 평소에도 상생·협력하도록 지원해 '대구형 보건의료 협치 모형'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지금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진일보한 대구형 공공-민간 협치의 공적 지역 보건의료 모형을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시민들의 안녕과 건강을 보호하는 안전 그물망이 튼튼해질 수 있다.협력(協力)을 한자로 쓰면 '힘 력(力)' 자가 네 개가 들어 있다. 협력을 위해 서로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그 먼 과거부터 그들도 벌써 알고 있었다.

2021-02-16 13:58:45

[매일춘추] 여성감독의 시대를 고대하며

[매일춘추] 여성감독의 시대를 고대하며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 그리고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 등 일군의 여성감독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던 2000년대 초, 많은 영화 관련 매체들은 일제히 충무로의 새로운 물결이라며 뜨거운 관심을 보냈다. 아직도 '여성감독 전성시대', '여성파워' 같은 전형적인 문구들이 기억난다.이 유치찬란한 문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2010년대 초, 그 언저리였다.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화차'의 변영주 감독, 그리고 '용의자X'의 방은진 감독의 작품이 한창 주목을 받던 때였다. 10년 전 열릴 것 같았지만 끝내 열리지 않았던 여성감독 전성시대가 이번에야말로 열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마침 헐리우드에서는 캐서린 비글로우가 여성 최초로 82년 만에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던 시기이기도 했다.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 요즘 들어 여성감독이 약진하고 있다는 언론기사가 부쩍 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해 헐리우드 개봉영화의 여성감독 비중이 16%로 급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호들갑 떨 정도의 수치는 아니다.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순제작비 10억원 이상의 영화 중 여성감독 비율은 10%를 넘지 못했다. 10년을 주기로 회자되는 '여성감독 약진'이라는 레토릭은 남성 중심 주류 상업영화 시스템이 얼마나 공고한 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확인시켜줄 뿐이다.그나마 이번에는 지난 20년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적어도 독립영화계에서부터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때문이다. 괜찮은 독립영화는 죄다 여성감독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재 독립영화계의 흐름은 여성감독이 주도하고 있다.작년만 놓고 봐도 '프랑스여자', '남매의 여름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얻은 여성감독의 화제작들이 단연 돋보였다. 또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 경쟁작 27편 중 여성감독의 연출작은 23편으로 그 비율이 무려 85.2%에 달한다.물론 이러한 독립영화계의 혁명적 변화가 주류 상업영화계의 관성 타파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이번만큼은 꼭 제대로 된 지각변동이 일어났으면 한다. 남자감독이 거친 영화현장을 잘 장악할 수 있다 같은 구태의연한 관성은 이제 깨질 때도 되었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2-16 11:38:10

[종교칼럼]목사님의 군종사병

[종교칼럼]목사님의 군종사병

아무리 과묵한 남자도 군대생활이 화제가 되면 갑자기 달변가가 되기 일쑤다. 오늘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뚜렷한 나의 군복무시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난 10년 동안 한 일들은 희미해져 가는데 40여 년 전에 했던 그 생활은 어찌 이리 아직도 또렷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논산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 후 이등병 계급장을 달게 된 기쁨(떨어지면 재수해야 했기에)과 더불어 부산 병참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강원도에 있는 군수지원 사령부로 배치되었다. 그곳에 배치된 다른 많은 수의 전입 장교 및 사병들과 함께 지시에 따라 연병장에 줄맞추어 서서 전입신고를 하는 시간이었다.기본 예식이 끝난 후 단상에 있던 별 두 개 사령관께서 수많은 참모들과 부관을 거느리고 밑으로 내려와서 전입 장교와 사병들을 일일이 보시다가 내 앞에서는 멈추어서 다른 사병들에게는 묻지 않던 질문을 던지셨다. "자네 어느 대학 다녔는가?"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는 놀람과 약간의 두려움 섞인 얼굴로 즉시 큰소리로 "예, 가톨릭대학교 다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령관은 부관을 보고 "이 신병을 병참부로 배치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군종부(군인들의 종교 활동을 맡아 하는 특별 참모 부서)로 배치하게."라고 하셨다.사령관과 함께한 군종참모 조한성 중령 목사님도 바로 나에게 다가오셨다. 이 일은 미리 계획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 많은 사병들 중 하필이면 내 앞에 와서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런 조치를 취했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령관은 불교신자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와 배려로 간주하고 이 믿음으로 살아갈 의미와 에너지를 갖는다.그 일 덕분에 나의 군복무는 가톨릭 신자 장병들을 위해 일하는 것과 더불어 개신교를 좀 더 깊이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가톨릭 신학생은 나뿐이었고 개신교 신학생은 16명이었다. 서로 종파가 다양했으나 협력하기를 거듭했다.시간이 좀 지나니 나에게 예배 사회를 보게 했다. 군대에서 상관인 목사님의 말씀을 거절할 수 없었거니와 거절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사회를 끝까지 했던 것을 감안하면 썩 잘하지는 못했겠지만 중도하차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인근 부대에 군종신부님과 군종법사님이 계셨는데 조 목사님은 이분들과 종종 만나서 회의에 이어 긴 시간 즐겁게 식사하며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그때 본 일인데 평소 달변가이던 조 목사님이 그 군종법사님과 함께한 자리에서는 좀체 말할 기회를 잡지 못하셨다. 침묵을 더 좋아할 것 같은 그 법사님이 재담을 늘어놓으면 모두 빠져들어 즐거워했다. 그분의 그 달변에 담긴 내용은 모두 잊었지만 대단한 달변이었고 대단히 흥겨웠다는 사실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당시 10·26사태, 12·12사태에 이어 군사독재가 심화되던 시절이었지만 장교는 물론이고 사병들의 의식도 많이 개화되어 삶의 희망이 커지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군복무를 한 경험은 이어진 삶에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군복무 중 알게 된 개신교 신학생 몇 사람은 목사가 된 뒤에도 연락이 있었다. 목사에 대한 나의 호의적인 태도는 여러 명의 목사들이 내가 근무하는 대학 종교영성학과에 입학하여 박사학위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 같다.훈련소 우리 소대 훈련병 대표였던 동화사 전 주지 효광스님과는 가끔 만나 서로의 내면세계를 나누는 관계를 이어왔다. 지난 가을 내가 있는 호산서재를 다녀가신 이후 두문불출 용맹정진 수행 중이신지 감감무소식이다. 스님의 해맑은 미소의 그 얼굴이 떠오르면 나도 미소 짓게 된다.새삼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를 기원하게도 된다.전헌호 신부,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2021-02-16 11:37:21

[매일춘추] 세계를 향한 K-Classic의 꿈

[매일춘추] 세계를 향한 K-Classic의 꿈

문화는 선진국의 척도다. 일찍이 열강들은 자국 문화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세계를 정복했다. 문화패권의 속성은 지배집단의 문화를 피지배집단이 수용하도록 강요한다.한때 우리는 일제에 의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가 말살된 적이 있다. 해방 후 일본문화를 걷어내고 서양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과오를 범했다.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그것에 대한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우리 스스로 자국의 문화를 폄훼했다.인구 비율로 보면 우리나라 서양음악 전공자는 클래식 음악 종주국보다 훨씬 더 많다. 음악대학에서는 서양음악 전공자를 양산하고 학생들은 선진음악을 터득하기 위해 앞다투어 서양음악 종주국에 유학한다.귀국한 후 그들은 연마한 서양음악을 이 땅에 실현하고 전파자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민주국가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하든 전파하든 자유다. 하지만 공적 매체와 주요 연주회마다 서양음악 작곡가들의 작품 일변도로 방송하거나 연주하는 형태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이미 이 땅에 서양음악이 범람해 있다. 일반적인 연주회장에서 한국인의 작품 연주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기악곡의 경우 더 심하다. 연말연시가 되면 TV에서 오스트리아 빈의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를 중계하고 큰 연주회장에서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서양 음악문화에 서서히 침식당하게 된다.모름지기 우리는 우리 땅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음악을 표방해야 한다. 먼저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과 소중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발달돼 온 서양음악의 우수성을 세계는 익히 알고 있다. 우리의 음악은 그들의 음악과 같지 않고 같아질 수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혼이 담긴 클래식을 만들어 그것을 즐기고 누리자는 것이다. 이제는 서양음악을 열심히 수입해 전파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최근 일고 있는 클래식 음악계의 'K-Classic 운동'은 우리가 우리 작품을 연주하자는 대의의 발로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세계화해야 할 명분이 있다. 이것을 실현할 때 비로소 음악문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우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어느덧 우리 영화는 세계와 나란히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우리의 음악문화산업을 제대로 육성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서양음악 패권에 식음지(植音地)로 전락하고 만다.은퇴하신 모 음악대학 교수님의 말씀이 의미심장하게 들려 온다. 언젠가 우리나라 가야금 연주자가 유럽에서 개량된 가야금으로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자랑스럽게 연주했다고 한다. 연주를 듣고 난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더니 그 악기로 당신네 음악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하더란다.우리가 서양음악을 흉내내어봐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다. 지금까지의 시각을 바꾸어보련다. 세계의 음악인들이 우리나라 정서가 담긴 기악곡을 연주하고 우리의 가곡을 즐겨 부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 기대가 허황된 꿈에 불과한 것인가.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2-15 11:08:14

[세계의 창]메흐메트의 혁명

[세계의 창]메흐메트의 혁명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 이스탄불을 꼽겠다. 한 작가는 이스탄불을 일곱 개의 베일을 쓴 살로메에 비유하면서, 서서히 한 겹씩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썼다. "…수백 년에 걸쳐 그녀는 수많은 남성들의 유혹을 받았지만 그녀를 차지한 이는 많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남성들이 그녀의 춤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유스티니언, 콘스탄틴, 정복자 메흐메트가 그녀를 제국의 황녀로 만들었다. 이들과 결혼하면서 그녀는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 주면서 두 대륙을 안고 있는 이스탄불에서 "점심은 아시아에서 먹고 저녁은 유럽에서 먹는다"는 말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수많은 이야기와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는 모스크, 케밥, 돌마, 고등어 케밥, 샤월마 등 군침 돌게 하는 먹거리, 그리고 현기증 나게 달콤한 바클라와가 여행객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이스탄불이 이처럼 찬양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유럽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노쇠한 제국의 쇠락을 목격하고 있었다. 반면 오스만제국의 새 술탄으로 등극한 메흐메트 2세는 스물한 살의 청년, 젊은 지도자였다. 메흐메트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지 않고는 유럽으로의 진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열아홉 살에 술탄이 된 메흐메트는 즉위 2년 만에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계획하고 1453년 4월 6일 작전을 개시했다.전쟁은 쉽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로 들어가려면 육상과 해상의 두 개 진입로를 뚫어야 했다. 이 전쟁에서 메흐메트는 거대한 공성포를 세계 전쟁사에 소개한다. 대포 제조자 우르반이 제작한 공성포는 포 길이가 8m가 넘고 지름은 75㎝에 이르는, 당시로는 최초의 거대한 신무기였다. 대포는 544㎏의 포탄을 1.6㎞까지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거대한 대포조차도 비잔티움을 함락시키는 결정적 무기가 되지는 못했다. 제노아 공화국 출신의 용병 지오반니 쥬스티니아니가 이끄는 비잔티움의 군대는 무너진 성벽을 복원하면서 맞섰다. 전투는 장기전으로 가고 있었고 신하들은 메흐메트를 흔들어 댔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다음 기회를 찾자고. 콘스탄티노플을 눈앞에 둔 메흐메트에게는 두 개의 선택이 남았다. 콘스탄티노플로 진입해서 승패를 하늘에 맡기든가, 아니면 후퇴하든가 양단의 길이었다.궁즉통이라고 했던가. 개전 2주일 뒤인 4월 20일, 메흐메트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생각을 해냈다. 배를 산으로 보내는 방법이었다. 해상 진입로를 뚫기 위해서는 전함들을 골든혼 해협 안으로 진입시켜야 했지만 입구를 쇠사슬로 막아 두어서 진입이 차단된 상태. 메흐메트는 육상의 통나무들을 잘라서 기름칠을 하고 이 통나무들 위에 전함을 끌어올려 해협 안쪽으로 이동시키도록 했다. 배를 산으로 끌어올리는 이 작전은 비잔틴 군대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반대쪽 육상 성벽을 방어하던 군대가 해변 쪽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방어 병력이 분산되었다. 얼마나 타격을 입었으면 비잔틴 쪽은 오토만 포로 260여 명을 성벽에 끌어올려 오토만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하나 처형했다고 한다. 해변 쪽 방어선이 뚫리면서 오토만 병력의 사기는 크게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은 성공으로 끝났다.만약 메흐메트 2세가 배를 산으로 올리는 기막힌 생각을 해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메흐메트 2세는 중간에서 후퇴한 그저 그런 존재로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목표와 의지가 배를 육상으로 옮긴다는 발상을 하게 만들었다. 혁명적인 생각만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고 혁명적인 생각만이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이전에 하던 대로 한다면, 이전에 했던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면 변화는 없고 혁명은 불가능하며 성공은 없다. 이전과는 다른 사람, 이전과는 다른 방법, 이전과는 다른 생각이 필요하며 그것이 혁명이다.

2021-02-15 11:07:48

[기고] 팔공산을 명품으로 만들자

[기고] 팔공산을 명품으로 만들자

지금 대구 상황은 심각하다. 코로나19의 장기화 때문에 도시 중심 곳곳에 빈 점포가 자리해 거리가 살벌해 보일 정도다. 대구시청 부근에 있던 여행사 50개가 지금 7곳뿐이다. 대구 관광의 불모지 자화상이다.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모양도 없는 관광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팔공산을 개발하는 것이 대구가 변하고 대구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다.대구시가 팔공산 개발을 위해 '구름다리 사업'을 5년간 추진했지만 흐지부지하다 결국 무산됐다. 무산 요인은 크게 부지 확보 어려움과 시민 혈세 낭비 우려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화사의 사찰 부지 사용 거부로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또 일부 시민의 반대도 있었고 코로나19 때문에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 혈세를 들여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그렇다 하더라도 힘들게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5년간 힘들게 추진한 팔공산 구름다리 사업이 무산돼 충격이 크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송세월한 무책임한 행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시민을 기만한 것에 다름 아니다. 조상이 물려준 명산을 관광자원화해 힘들어하는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팔공산은 대구 시민에게 황금알을 낳게 하는 보물단지다. 대구의 명산이자 관광 명소, 시민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팔공산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 명품으로 조성하는 것은 많은 대구 시민들의 바람이자 염원이다.경북은 벌써 팔공산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하여 팔공산 능선에 둘레길을 조성하고 있는데, 대구는 구름다리 사업 무산 후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시는 경북도와 같이 팔공산이라는 명품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팔공산 구름다리의 실패를 거울 삼아 최대한 빠르게 대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팔공산은 대구경북의 공동 명산이기에 공동운명체이다. 시도가 함께 보존하고, 개발하고, 보호해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선진국은 많은 명산을 개발하여 명품으로 만드는 데 열을 올리며 세계적인 관광국으로 도약하고 있는데,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산이 70%나 돼 많은 명산이 있음에도 보존의 제약 때문에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고 있는 실정이다. 보존과 개발을 두고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환경을 가꾸고 관리하는 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고 또 환경과 인간이 서로 상생하는 과정에서 미래가 있고 발전이 있다는 걸 분명히 새기고 힘을 모아 명품으로 만들어야 한다.우리의 소중한 명산 팔공산을 그대로 버려둬선 안 된다. 갈고닦아 보물로 만들어 후손에게 좋은 유산으로 물려줘야 한다. 이번에 구름다리 조성 사업 실패의 아픈 상처를 회복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유명한 관광 명소로 조성하는 데 250만 대구 시민들이 대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우리의 보물이자 명산인 '팔공산을 살리는 길'이 대구가 변하고 대구가 발전하는 일이고, 또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는 일인 만큼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팔공산을 최고의 관광 명소로 조성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2021-02-15 11:07:29

[매일춘추] 독서 골든타임

[매일춘추] 독서 골든타임

2월 초, 청소년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지난 1월에 시작해 4주간 진행된 '청소년 독서챌린지'다. 이 프로그램은 많은 고민과 걱정 속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공공도서관으로 찾아오는 청소년의 발걸음은 매년 줄어들고 있었기에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이 공공도서관에 책을 보러 올까?'라는 화두가 고민의 출발점이었다. 그동안 청소년 대상 독서교육 강좌나 행사 등을 기획해도 참가 학생을 모집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학교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었다.지난해 가을, 도서관 직원들끼리 연구동아리를 결성했다. 공공도서관에서 운영할 수 있는 청소년 대상 독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지역 사례도 살펴보고 학술 자료도 찾아보았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에게 전화 인터뷰도 했다. 가정과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그 과정을 통해 프로그램에 대한 몇 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첫째, 참여자가 스스로 책을 읽도록 한다. 둘째, 참여자가 직접 책을 선택하는 기쁨을 체험하게 한다. 셋째, 언택트 시대에 적합하도록 온·오프라인 미팅을 병행해 학생들이 도서관까지 오가는 시간을 줄인다.참가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일부 학교는 담당자가 직접 방문도 해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그 결과 중학생 1~2학년 팀에 12명, 중학생 3학년 팀에 4명, 고등학생 1명이 모였다. 1월 8일 첫 대면 모임을 했다. 참여 학생들에게 진행 방법을 안내했다. 한 권의 함께 읽기 도서는 4주간 분량으로 나누어 매일 읽고 한 줄 감상평이나 책 속의 문장을 단체 채팅방에 올리도록 했다. 매일 함께 읽고 있다는 정서적 연대감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혼자 읽기 도서는 도서관에서 미리 준비한 교과와 연계된 책 중에서 학생들이 목차도 보고 내용도 훑어보면서 4권씩 직접 골랐다. 자유롭게 읽은 후 소감문만 간단하게 작성하도록 했다.담당 사서 3명이 매일 아침 채팅방에 그날 읽을 분량을 알려주었다. 가끔 간식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시행했다. 채팅방에 매일 꾸준히 글을 올리는 학생도 있었고, 2~3일 주기로 올리는 학생도 있었다. 그렇게 4주간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마지막 날에 평가회를 겸한 대면 모임을 했다. 학원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빠진 몇 명을 제외하고 학생 대부분이 참석했다. 특히 한 권의 함께 읽기 도서를 완독한 학생 비율은 90%를 넘었다. 매일 읽기가 다소 힘들었다는 학생도 있었지만 후속 프로그램에 다시 참가하겠다는 학생들의 비율도 90%로 높았다.지난해 12월 '청소년 책의 해 네트워크'에서 전국 청소년(중1~고2) 1천120명의 독서 관심도를 조사하고 분석해 결과를 발표했다. 학생들이 독서에 관심을 갖는 골든타임이 2번 있다는 내용이다. 첫 번째는 미취학 및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이고, 두 번째는 중학교 시기다. 학생들의 독서 관심도가 높아지는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다. 곧 3월 개학이 다가온다. 제2기 '청소년 독서챌린지'를 부지런히 준비해야겠다.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2021-02-15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황당한 2·4 부동산 대책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황당한 2·4 부동산 대책

"여러분 집 앞에 길이 있지요? 지금은 없지만 이 길 어딘가에 앞으로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만들 예정입니다. 길을 건너는 분들은 언제인지 몰라도 장차 생길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감안해서 거기에 맞게 보행해야 합니다. 무단횡단을 하는 분들은 CCTV로 녹화해 놓았다가 나중에 과거의 보행 기록을 사후 적용해서 과태료를 물릴 것입니다."'여러분'이 이런 고지를 접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황당해하거나 아니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할 게 분명하다. 누구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정책의 내용이라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4 부동산 대책은 바로 그 같은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 전에 나올 부동산 대책을 예고했다.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한 문 대통령이 "부동산 안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며 주택 공급 정책을 밝힌 것이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는 자세에서 인식의 전환을 보인 건 긍정적 신호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언급했던 '특단의 대책'을 넘어 "국민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자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서 "저도 기대가 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기대를 더 크게 했다.2·4 부동산 대책은 이런 기대 속에 탄생한 획기적 작품이다.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어서 주택 공급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처지는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2·4 대책이 현 정부 정책의 여러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권은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여러 구설과 의혹에도 '주택 공급 전문가'라는 명분으로 임명을 강행했다. "청문회에서 시달린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청문회에서 얻은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는 길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내는 것"이라고 당부했을 정도다.이처럼 무리한 장관 임명이 문제 있는 정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다. 장관이 국민 대신 대통령 혹은 여권의 눈치만 살피느라 무리수를 두기 십상이다. 국정을 블랙홀에 빠뜨린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에서 익히 목도한 바 있다. 이번에도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관념이 황당한 부동산 정책으로 귀결된 것이다.솔직히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구체적 장소도 없이 공공 주도로 전국에 총 80만 가구, 서울에 32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낯선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발표일 이후 '사업구역 내'에서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우선 공급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한다는 내용은 더 이상했다. 어떤 지역에 어떤 사업을 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곳에' 집을 사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앞서 소개한 횡단보도 비유를 들어 설명한 지인의 글을 보고 문제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위헌 논란이 불거져도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강변으로 버틴다. 현 정부 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인식이 드러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부동산 투기 방지라는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헌법과 법률은 장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 공약인 월성 원전 폐쇄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성 조작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무엇이든 정부가 하겠다는 과욕 역시 중요한 문제점이다. 빵이든 집이든 만드는 것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민간이 해야 할 일이다. 심판인 정부가 선수로 뛰는 순간 낭비와 비효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정부는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민간인 선수들의 반칙을 시정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민간이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일에만 정부가 나서야 한다. 허탈하지만 이런 종류의 고언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언론을 통한 비판과 지적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시정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이다. 현 정부는 다른 의견을 개혁 저항 세력의 틀린 의견으로 적대시해 왔다. 남은 1년여 기간도 지금까지 견지해 왔던 자세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측이 틀렸으면 하는 한 가닥 기대는 있다. 2·4 대책을 시작으로 정부가 비판에 귀를 기울여 정책을 보완하는 기대 말이다.

2021-02-15 05:0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숙종시대 화원, ‘팔준도첩’ 중 ‘유린청’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숙종시대 화원, ‘팔준도첩’ 중 ‘유린청’

숙종시대 도화서 화원이 8마리 준마를 그린 '팔준도첩' 중 한 폭인 '유린청'이다. 신령스런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연상시키는 푸른 털빛의 말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팔준마는 한글로 된 최초의 노래인 '용비어천가' 제70장에 나오는 태조 이성계의 애마다. 고려 말 무장 이성계는 공민왕을 도와 원나라 세력을 몰아냈고, 원이 명으로 교체되는 혼란기에 홍건적이 북쪽 국경을 침입하고 왜구들이 내륙까지 약탈할 때 남북을 오르내리며 외적을 물리친 구국의 영웅이었다. 팔준은 이성계와 함께 전장을 누빈 군마(軍馬)였다. 8마리의 이름은 횡운골(橫雲鶻), 유린청(遊麟靑), 추풍오(追風鳥), 발전자(發電赭), 용등자(龍騰紫), 응상백(凝霜白), 사자황(獅子黃), 현표(玄豹) 등이다.세종시대에 태조의 팔준이 그림으로 그려진 적이 있었다. 세종은 안견에게 팔준도를 그리게 했고, 집현전 학자를 비롯한 문신들에게 이 그림과 관련된 문학 작품을 짓게 했다. 팔준도를 칭송한 박팽년, 성삼문, 신숙주, 서거정 등의 시(詩), 찬(贊), 송(頌), 부(賦), 행(行), 명(銘), 전(箋) 등이 문헌으로 전하지만 안견의 팔준도는 보존되지 못했다. 왕실의 사적을 정비하며 왕권 강화에 힘썼던 숙종에 의해 '팔준도'가 다시 그려져 태조의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유린청'에 써 넣은 글은 '대동야승'에 나오는 이 말 이야기이다. 청색(靑色) 산어함흥(産於咸興) 취오라(取兀刺) 전해주(戰海州) 첩운봉시어(捷雲峰時御) 응우중일전(膺右中一箭) 항좌중일전(項左中一箭) 우둔중일전(右臀中一箭) 마치육세시어(馬齒六世始御) 매당전진(每當戰陣) 어차마위다(御此馬爲多) 치삼십일이사(齒三十一而死) 국인애지(國人哀之) 비석조매지(備石槽埋之) 유린청의 산지는 함흥으로 이성계가 오라산성을 빼앗고, 해주에서 싸우고, 운봉에서 크게 이긴 황산대첩에서 탔던 말이다. 오른쪽 가슴, 왼쪽 목, 오른쪽 볼기 등에 세 번이나 화살을 맞았다. 유린청이 여섯 살 때부터 이성계가 전투에서 많이 탔는데 이 말이 31살에 죽자 나라사람들이 슬퍼했고 석조(石槽)를 마련해 묻어주었다고 했다.그림으로 그려진 유린청의 모습은 이 명마를 탔던 태조의 존재와 그의 무공(武功), 조선 건국의 대업과 왕실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숙종은 그림과 글씨에 각별히 취미가 있는 왕이기도 했지만 예술품인 동시에 상징을 구축하는 강력한 수단인 시각물로서 회화의 효능감을 잘 활용한 세종의 통찰을 이어 받은 왕이었다.미술사 연구자

2021-02-14 19:30:00

[기고] 신축 아파트 하자보수, 지자체가 나서야

[기고] 신축 아파트 하자보수, 지자체가 나서야

신축 아파트 입주민들이 건설사에 하자를 신고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입주민과 시행·시공사의 분쟁은 집계되는 것만 매해 4천 건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신축 아파트 입주민들이 건설사로부터 하자보수를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권리는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하자보수의 근거가 되는 공동주택관리법 제37조를 감독기관인 기초 자치단체가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아서다.최근 대구시를 비롯한 서울, 경기, 인천 등 기초 자치단체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81개 지자체 중 9개 지자체만 하자보수 미비로 인한 시정명령을 발동했다.9개 지자체 중에서도 하자보수를 이행하지 않는 시행・시공사에 과태료 처분을 한 곳은 1곳뿐이었다. 이 과태료 규정은 입주민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감독기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들었다.공동주택관리법 제37조 제1항에 따르면 시행·시공사는 담보 책임 기간 내 발생한 하자를 보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법 시행령 제38조에는 하자가 접수될 경우 15일 이내 보수하거나 구체적 보수 방법과 시기가 포함된 하자보수 계획서를 서면으로 통보할 의무가 있다. 또한 제5항에는 1항의 하자보수 청구를 정당한 사유 없이 따르지 않을 때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같은 법 제102조에는 위의 규정에 따른 하자보수에 대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한다고 규정돼 있고 '별표9'에는 1회 300만원, 2회 400만원, 3회 이상 위반 시 500만원이라는 구체적인 과태료 금액까지 규정돼 있다.하자보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은 2015년 8월, 이 법률 제정 당시부터 있었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때 시장, 군수, 구청장이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는 규정은 2017년 4월 18일 신설돼 4년이 다 돼가고 있다.하지만 지금도 많은 시행・시공사가 하자보수를 접수하면 15일 이내 보수하거나 '하자보수 계획서'를 접수한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법 시행 3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필자는 지난해 12월 서울의 25개 구청과 인천의 10개 구·군, 대구의 8개 구·군, 경기도의 38개 시·구 등 총 81개 지방자치단체에 지난 3년간 이 법에 따른 행정명령 실적을 문의했다.최근 각 지자체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한 결과 경기도의 의왕시, 파주시 등 9개 기초 자치단체가 하자보수 미비를 이유로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중 오직 의왕시만 과태료까지 부과해 주민 재산을 지키려는 노력을 시행했다. 나머지 72개 자치단체는 시정 명령을 한 실적이 전혀 없다고 통보해 왔다.하자보수는 시행·시공사의 의무이고 하자보수를 받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다. 그리고 그 권리가 잘 지켜지지 않을 때는 감독관청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 대부분의 기초 자치단체는 대형 건설사와 상대해야 하는 입주민과 대표회의 그리고 관리사무소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신호등에 적색등이 켜졌음에도 지나간 운전자는 신고됐을 시 100% 벌금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아파트에도 하자 보증 기간 내 무상 수선을 해주지 않는 업체는 주민 신고가 있을 시 당연히 과태료 처분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시행·시공사는 집을 더 꼼꼼히 지을 것이고 입주민들의 권익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21-02-14 15:36:22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견의 요실금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견의 요실금

라온(푸들, 8Y, SF, 4.5kg)이 내원했다. 발랄하고 애교많은 애프리코트 푸들답게 진료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나에게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건강에 전혀 문제없어 보였지만 의외로 보호자의 고민은 깊다. 라온이는 소변을 흘리는 요실금 증상이 있었다. 라온이는 중성화 수술받은 암컷이었다.◆중성화 수술받은 암컷의 요실금중성화 수술을 받은 암컷 반려견 중에 요도 괄약근의 기능이 미약해 소변을 흘리는 증상을 'USMI'(Urethral Sphincter Mechanism Incompetence)라 명칭한다.앉아 있던 방석 위에 소변을 흘리기도 하고, 잠자는 동안에도 이불에 소변이 적셔지기도 한다. 소변을 보러 가는 도중에 조절하지 못하고 소변을 흘리기도 한다.USMI는 중성화된 암컷에서 발생하는 요실금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너무 어린 시기에 중성화 수술을 받았을 경우 발생하기 쉬우며, 6세 이상 중년이 되어가면서 다발하는 경향이 있다. 살이 찔수록 발생률이 높다고 한다.요실금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PPA'(Phenylpropanolamine) 약물 처방이 도움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약물은 고혈압과 심박수를 상승시키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수의사의 검진 후 처방을 받으셔야 한다.해부학적으로 방광이 복강의 뒤쪽에 위치하고 요도의 길이가 짧을수록 요실금 증상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약물 처방과 동시에 방광 괄약근의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후지 근육을 강화시키는 산책이나 달리기 운동이 도움줄 수 있다.◆질병이나 배뇨 이상 행동과 관련된 요실금방광염, 방광(요도)결석, 척추질환(디스크), 이소성 요관증, 방광 괄약근 신경 수용체의 감수성 감소 등으로 인해서도 생식기 주변에 소변이 젖혀지는 요실금이 나타나기도 한다.물을 많이 먹게 하는 질병들이 요실금을 유발시키거나 악화시키기도 한다. 당뇨병, 쿠싱병(부신피질기능항진증), 요붕증(diabetes insipidus) 등이 이에 해당하며, 기력이 현저히 약해진 노령견에서 요실금이 나타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복종성 배뇨와 흥분성 배뇨는 자발 배뇨다. 사람이나 동료와 만나는 과정에서 복종이나 반가움을 과도하게 표현할 때 발생한다.인지장애(치매)로 인한 배뇨 이상 행동은 나이가 들거나 뇌병변이 있는 반려견에게서 관찰되며, 배뇨 장소를 가리지 못하거나 배뇨 횟수와 습관 변화로 인해 난처한 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한다.극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극도의 두려운 상황에서 소변을 지리는 경우도 있다.◆요실금과 배뇨 이상의 진단과 치료보호자가 배뇨 습관이나 증상을 잘 관찰해 주셔야 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요실금이나 이상 배뇨가 나타나는지를 관찰해 수의사에게 전달해야 한다. 수의사는 보호자와의 상담을 통해 이상 배뇨의 원인을 추정하고, 관련된 검사를 선택한다. X-ray, 초음파 검사, 소변검사가 우선 선택되며 내과적인 질병이 의심되면 혈액검사와 CT 검사가 이뤄지기도 한다.방광염과 요로감염은 지속적인 항생제 처방이 필요하며, 방광·요도결석은 수술이 우선된다. 재발 방지를 위해 증상이 개선되더라도 꾸준하게 수분 섭취를 늘려주는 식습관이 요구된다.당뇨병, 쿠싱병, 요붕증 등의 내분비질환은 호르몬 약물 처방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속적으로 주치 수의사와 건강 상태를 상담하고 규칙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이소성 요관이나 자궁외 요관처럼 해부학적인 기형 질환은 CT 검사를 통해 확진하고 교정 수술이 필요하다.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2021-02-13 06:30:00

[안동을 걷다,먹다] 20. 안동 간고등어 이야기

[안동을 걷다,먹다] 20. 안동 간고등어 이야기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0번째 이야기 '안동 간고등어'공대를 나온 농부가수 '루시드폴'이 부른 고등어 라는 노래를 들으면 푸른 바다를 가르며 시원하게 헤엄치는 고등어의 푸른 등이 눈앞에 보이는 듯 선했다.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 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이라는 가사를 듣는 순간, 어머니가 차려낸 온 가족의 밥상 한가운데 자리잡은 잘 구워진 고등어 한 마리가 눈 앞에 나타났다.제주 고등어는 가수 김창완이 부른 '어머니와 고등어'와는 다른 고등어였다. 고등어는 엄마가 해주시던 집밥을 생각나게 한다."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소금에 절여 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일 먹을 수 있네..."루시드폴의 '고등어'와 김창완의 '고등어'는 조금 다르긴 하다. 김창완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 에 등장하는 고등어는 소금에 절인 '간고등어'였다. 아마도 생물고등어를 사서 소금에 절여서 냉장고에 넣어둔 모양이다. 간고등어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고등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다 빼낸 후 소금을 적당히 쳐서 염장을 하면 끝이다. 소금을 친 고등어를 안동에서는 간잽이라고 하고, 소금을 쳐서 간고등어를 만드는 사람도 '간잽이'라고 한다.우리는 신선한 '생물'고등어보다는 소금에 절인 '간'고등어에 더 익숙하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서(?) 잡히는 즉시 죽는다. 바다생선이지만 부패가 빨리 진행돼서 생선회로는 적합하지 않다. 다만 주산지인 제주도에서는 어느 정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어서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더러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실린 고등어는 "길이가 두 자 가량이며 몸이 둥글다. 비늘은 매우 잘고 등에는 푸른 무늬가 있다. 맛은 달고 시고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담글 수는 있어도 회나 어포는 할 수 없다."고 기술돼있다. 조선시대에도 고등어는 쉽게 잡혀서 즐겨먹던 '백성생선'이었던 모양이다.가난한(?) 대학생 시절, 학교 앞 학사주점에서 학생들이 즐겨 찾던 안주 역시 '고갈비'라는 이름의 고등어구이였다. 고등어기름이 흐르는, 연탄불에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등어구이는 '고갈비'라는 이름으로 변신해서 막걸리 몇 통을 거뜬하게 해치웠던 시절도 있었다.그런 국민생선 고등어가 2016년 환경부의 미세먼지 주범으로 오해할만한 발표로 인해 난리가 난 적도 있다. 환경부 발표이후 고등어는 시장에서 외면받았고 소비자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당시 환경부 발표는 주방에서 요리할 때 미세먼지의 주범인 PM2.5가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고등어 구울 때 가장 많았고 삼겹살과 계란 프라이 그리고 볶음밥 순이었다. 조리할 때 주방환풍기를 꼭 사용하고 요리후 창문을 열어 환기하라"는 내용이었다.환경부가 2주 후 "고등어가 대기중 미세먼지 주범이라는 것은 오해입니다"라며 해명에 나섰지만 미세먼지의 주범이 된 고등어에 대한 명예훼손은 보상받을 길이 없었다.고등어의 변신, 안동간고등어의 탄생안동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중의 내륙이다. 가장 가까운 동해의 영덕까지는 100km 정도로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았던 예전에는 하루 이상 걸렸다. 지금과 같은 넓은 고속도로와 차량초자 없던 조선시대에는, 고등어같은 동해바다에서 잡힌 생선은 달구지나 등짐에 실려 내륙 깊숙한 안동까지 운반되곤 했다.요즘 시장에서 팔리는 안동간고등어는 대부분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경락된 제주산 고등어를 가공한 것이다.동해에서 잡힌 고등어는 주로 영덕 강구항에서 영덕 황장재나 청송 가랫재 두 고개를 통해 안동으로 넘어 오는데, 고불고불 험준한 산길이 무려 300여리에 이른다. 소달구지를 타고 오거나 등짐을 지더라도 최소한 하루 이틀 정도가 걸렸다. 고등어가 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그 때 서해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서해에서 부산까지 와서 다시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는 '소금배'에 실려 안동 개목나루까지 올라왔다. 싱싱한 고등어는 하루가 지나면 상하기 시작한다. 염장작업을 하지 않으면 고등어는 상해서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진다. 안동에 넘어오는 즉시 소금에 절여야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안동간고등어 탄생의 시초다.그렇게 수백 년, 안동에서는 고등어를 '간고등어'로만 알고 먹었다. 안동장은 물론 인근 청송 진보장에도, 예천장에도, 의성장에도 안동에서 염장한 간고등어가 어물전에 올랐다. 그때부터 고등어는 무조건 '안동간고등어'가 됐다. 고등어가 안동에 오면 간고등어, 즉 '간고디'로 변신하는 것이다. 짜지만 적당이 짠맛이 나서 짜지 않은 듯한 짠맛, 그것이 '짭쪼름한' 안동간고등어의 특징이었다.요즘 안동에 들어오는 고등어는 대부분 부산 어시장에서 경락받은 제주산 고등어다. 노르웨이산 냉동 고등어에 비해 제주산 고등어는 때깔도 맛도 다르다. 노르웨이산이 심심하다면 국내산은 씨알이 굵은데다 고소하고 감칠 맛이 강하다.시장에서 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해서 말이 '국민생선'이었지 천덕꾸러기 신세처럼 여겨지던 안동간고등어의 변신은 IMF사태가 계기였다. 시장상인들이 가내공업수준으로 소규모로 염장을 해서 그 때 그때 판매하던 간고등어를 위생적으로 공장에서 짜지 않게 염장을 하는 방식을 개발, 대량생산하는 한편, 브랜드를 도입한 것이다.그때까지는 조선시대로부터 내려오던 굵은 왕소금으로 염장하던 방식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 굵은 소금으로 염장한 고등어는 시간이 갈수록 짠 맛이 강해졌다. 그래서 간이 세지 않도록 소금물에 담궈 염장하는 저염식 얼간 염장방식으로 바꿨고 염장기술자인 '간잽이' 고 이동삼씨를 모델로 내세워 간고등어의 브랜드화를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위생적으로 잘 포장된 간고등어는 백화점과 홈쇼핑으로 진출했고 해외로도 수출됐다.안동간고등어가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고 그 이후 간고등어 가공산업은 안동의 주요산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브랜드화한 안동간고등어 가공공장은 10여 개에 이르고 안동신시장에는 간고등어를 전문적으로 가공해서 파는 가게만 수십여 곳에 이른다.안동사람의 간고등어 사랑은 타지방의 추종을 불허한다. 늘 냉장고에는 간고등어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두 손 정도는 쟁여둔다.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처럼 냉장고에 다른 반찬은 없어도 간고등어는 떨어지지 않았다.안동에서는 매년 가을 '안동간고등어축제'가 열린다. 동해안에서 소달구지에 실어 고등어를 운반하는 풍경과 고등어를 염장하는 모습 등을 재현하는 등 안동시내가 온통 고등어굽는 냄새로 뒤덮힌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로나사태는 이 모든 축제를 중단시키고 있다.설연휴를 앞둔 11일 안동신시장에 나갔다. 5인이하 집합금지라는 코로나 거리두기 행정명령에도 불구하고 차례를 지내지 않을 수 없어 제수용품을 장만하려는 집집마다 장을 보러나온 탓에 신시장 중앙거리는 인산인해였다. 그 중에서도 간고등어와 문어 및 상어돔배기 등을 파는 어물전이 가장 북적거렸다.눈에 띄는 꼬지가 간고등어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꼬지로 꿰어놓은 '간고등어꼬지'였다. 집집마다 제사풍습이 달라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간고등어 한 마리를 구워서 차례상에 올리기도 하고 간고등어를 소고기와 돔배기처럼 꼬지로 만들어 상에 올리는 집도 꽤 있기 때문이었다.안동의 명문가 중의 하나인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의 종가집 제수품목에도 고등어는 당당히 올라있었다.간고등어는 다양하게 요리를 해서 먹는다. 적당히 간이 되어있기 때문에 따로 소금을 뿌리거나 간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구워먹을 때는 이름난 고등어구이집에서 요리하듯이 숯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으면 가장 맛이 좋다. 학사주점에서처럼 연탄불에 구워도 좋다. 고등어조림을 하거나 찜을 해서 먹기도 한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2-1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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