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케렌시아, 마음의 고향

작가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수록된 첫 작품이 '퀘렌시아'(Querencia)인데 '자아 회복의 장소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국어사전엔 '퀘' 대신 '케'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케렌시아'로 부르기로 한다. 이 말은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를 뜻하며 투우장에서 투우가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쉬는 곳을 가리킨다.'케렌시아'를 '자아 회복의 장소'로 번역하면 너무 길고, '피난처'나 '안식처'로 해석하면 다소 건조하게 들린다. 김형석 교수는 '고향'이라는 수필에서 고향이라는 단어를 케렌시아처럼 썼는데, 고향은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므로 그것을 케렌시아로 보는 데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심향'(心鄕), 즉 '마음의 고향'으로 옮기기로 했다.심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곳에선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마음은 편해지고, 몸엔 힘이 솟으며, 없던 자신감도 생겨나고, 선택의 기로에서는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심향이라 해서 특별한 곳이 아니라 집 안의 작은 방일 수도 있고, 거실 내의 소파일 수도 있다. 주택에 거주하는 지인이 그 집의 반지하 공간을 소개한 적이 있다. 독서·음악·영화 등을 즐길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분이 방의 이름을 고심하고 있어서 '심향'을 추천해 주었다.필자에겐 심향이 많다. 셋만 꼽으면, 첫째는 경북대 꽃시계 옆의 숲, 둘째는 문경새재, 셋째는 영천호(湖)다. 학교에서 시간이 나면 백양로를 따라 걷다 꽃시계 옆의 숲속 벤치에 앉는다.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주변엔 소나무와 물푸레나무가 에워싸고 있으며, 바닥에선 부엽토의 온기가 전해온다. 복잡한 일도 이곳에 앉으면 단순하고 수월하게 느껴진다.종일 시간이 나면 새재로 간다. 1관문인 주흘관에서 2관문인 조곡관을 거쳐 3관문인 조령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명품이다. 소나무, 잣나무, 박달나무가 조화롭게 숲을 이루고 곳곳엔 역사와 전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좌측의 조령산과 우측의 주흘산으로 난 등산로도 일품인데 특히 주흘산의 주봉, 관봉, 영봉과 6개의 부(釜)봉은 비경이다. 그간 수도 없이 방문했지만 갈 때마다 몸과 마음이 새 기운을 얻는다.세 번째는 영천호다. 공식 명칭은 영천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천호'라고 부른다. 순환로가 산기슭을 따라 나 있으므로 자동차로 굽이굽이 도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호수 안으로 내달리다 멈춰선 듯한 키 낮은 산 능선, 이어 놓은 표주박처럼 물 위로 봉긋봉긋 솟은 봉우리들을 바라본다. 호수의 동쪽은 운주산, 북쪽은 꼬깔산과 기룡산이 있는데 서너 시간의 산행 코스로 아주 멋지다. 4월 초순엔 순환로를 따라 벚꽃이 끝없이 만발한다. 벚꽃이 질 때 눈송이가 되어 흩날리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위의 심향들과는 달리 우리 모두가 갖는 마음의 고향이 있다. 명절이면 찾아가는 곳이다. 부모님이 계신 집일 수도, 큰집이거나 작은집일 수도 또는 시가나 처가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좋은 시간만을 보내면 좋겠지만, 너무 반가운 나머지 예기치 못한 사소한 일로 마음이 상한 채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번 설에는 형편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동근생'(同根生)끼리, 즉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들'끼리 따뜻한 정을 나누는 명절이 되길 바란다. 자신을 찾고 소중한 추억 하나 만들 수 있길 기원한다.

2020-01-17 19:47:53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시대산책] 이란과 북한에 대한 차별 대우

핵개발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란 트럼프, 솔레이마니 암살 무리수 노골적으로 핵보유 선언한 북한 경제제재 외 일체의 강경책 없어연초에 미군의 솔레이마니 암살로 촉발된 중동 사태가 싱겁게 일단락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도 어느 정도 체면에 손상이 있었지만 이란이 입은 상처는 엄청나게 컸다. 일단 솔레이마니의 암살은 무리수이자 불필요한 일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그가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인 것은 맞지만 낡은 전술과 불필요한 강경책을 고집하는 등 그를 제거하는 것이 이란에 타격을 가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분에서도 밀리고 필요성도 의문이 들고 오히려 이란인들의 결집을 가져오면서 역효과만 큰 공격으로 끝날 뻔했다. 이란 정부의 더 치명적인 실수들이 아니었다면.이란은 미국의 이런 공격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듯했다. 내정의 실패와 심화되는 제재 때문에 이란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가는 와중에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이 오랜 적인 미국에 의해 암살되는 사태가 터지자 갑자기 국민적 단결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솔레이마니 딸의 등장과 그녀의 선동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달구었다.솔레이마니의 암살을 보복하기 위해 이란이 미군 기지에 가한 미사일 공격이 이란과 미국이 짜고 친 쇼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오랜 기간 반미투쟁의 선봉장을 자처해 오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미국에 대한 처절한 보복을 외치던 이란 정부가 이란 국민을 속이기 위해 쇼를 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그런데 이보다 더 큰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란이 보복 공격 쇼를 하는 와중에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시켜 176명이 사망했는데 승객 대부분은 이란인이거나 이란계 캐나다인이었다. 보복 공격을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미군은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자국인이나 자기 민족만 대거 죽인 것이다. 이 사건 직후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태도 때문에 더욱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이란 정부는 국제적으로도 유구무언이 되고 국내적으로는 반정부 분위기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솔레이마니 암살을 계기로 국민적 단결을 기대했던 이란 정부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말았다.최근의 이런 사태들을 보면 영화 제목 '덤 앤 더머'(dumb and dumber: 어리석은, 그리고 더 어리석은)가 생각난다. 누가 더 바보인지 경연대회를 하는 것 같다.최근의 이란을 둘러싼 사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 것이 있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하고 핵보유를 선언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노골적으로 개발하는데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는 아주 부드럽게 대하고 핵개발을 하고 있는 것인지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란에 대해서는 아주 거칠게 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그 이유는 첫째, 한반도는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등 세계 경제의 중심적인 도시들이 바로 그 주위에 즐비한 곳이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충돌은 동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 엄청난 경제적 충격을 줄 것이지만 이란 이라크는 경제 중심지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이란이나 이라크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국제유가에 매우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미국 셰일가스의 시장 탄력성이 매우 높아 큰 충격은 없으리라는 예상이 더 많다.둘째, 이란은 종교적 이유 때문에 미국이 아무리 관대하게 대하고 공을 들여도 결국 미국 편으로 돌아오거나 최소한 중립화될 가능성도 없다고 보지만 북한은 제2의 베트남이 될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종교적 배경이 없고 6·25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망하면서 미국에 대한 원한도 점차 그 깊이가 얕아지고 있다.셋째, 이란 이라크 등에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이 낮지만 북한은 중국의 핵심이해지역으로 보기 때문에 북한에 어떤 사태가 벌어지면 중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권이 중국에 대한 강경책을 외치고는 있지만 중국과 전쟁할 엄두를 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이러한 사정들을 미국 지도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는 경제제재 이외에는 일체의 강경책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그동안의 태도로 볼때 경제제재 외의 그 어떤 강경책을 사용하더라도 절대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지만.

2020-01-16 15:04:35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Veni Vidi Vici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몇 해 전부터 '워라밸'이라는 말이 이슈이다. 이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를 우리말로 줄인 신조어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유럽에서는 1970~80년대부터 등장한 단어인데, 과도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야근이 당연시되는 관행과 퇴근 후 SNS로 업무지시를 하는 등 갖가지 이유로 여가 생활을 할 시간이 극도로 줄어들면서 발생하게 되었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유럽보다 한참 늦게 등장한 이유는 빠른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경향이 크다. 이제 한국은 GDP 10위의 국가로서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은 휴식 없는 사회라는 아픈 이면을 만들게 되었다.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생활양식에 있어 '놀다'라는 말은 무척이나 부정적이다. 소위 말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노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효율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여가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나아가 '놀이', '재미있음' 등이 사회적 키워드로써 작동하고 있다. 그 예는 곧 다가오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아마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예전의 개표방송은 딱딱하게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하였지만, 최근에는 위트 있는 표현으로 각 후보자들의 특징을 살려 재미있게 표현함으로써 후보자들을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함과 동시에 정보 전달의 집중도를 높인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놀이적 요소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라는 저서에서 놀이를 두고 자유, 탈일상적 활동, 환상의 공간, 질서를 창조하며 질서 그 자체인 완벽성을 가져다주는 활동 등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놀이의 개념은 예술의 요소와도 닮아있다. 예술은 스스로 질서를 구축하고 다시 벗어나고 다른 질서를 구축하는 형식, 즉 놀이적 방법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예술은 놀이로서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문화를 구축하였다.이 같은 예술을 통한 놀이의 사유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 봉산문화거리에 위치한 우손갤러리에서는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타이틀로 이명미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다. 작가는 회화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여 예술적 표현으로 놀이를 한다. 사물에 대한 시각적 기호와 언어라는 기호, 두 경계를 넘나들며 기존의 틀에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한다.오늘날 사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아직은 그 경계에 있는 탓인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지만, 늘 그랬듯 우리는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것이다. 스스로의 시각과 방법을 통해 하나의 놀이(질서)를 만드는 이명미 작가의 전시를 통해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볼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사유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2020-01-16 13:39:41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아침놀] 어쩌랴, 내 마음속의 '쥐'를

상주 출신의 유학자 소재 노수신(1515~1590년)의 시를 읽는다. 그는 진도에서 19년간 귀양살이하며 아픔을 달래는 많은 시를 썼다. 올해가 '흰 쥐의 해'여서일까, '생쥐'(鼷)라는 시가 눈에 띈다."머리를 쳐들고 등경 뒤쪽을 냄새 맡다가/ 멀리 밥상 가를 타고 다니곤 하네/ 요즘 들어 내가 잠을 잘 이룰 수 있어서/ 요놈이 구멍 뚫는 것을 거듭 살피지 못했더니만/ 벼루를 지나다가 먹물을 적셔 가지곤/ 책을 헤집고 다니며 성현의 문자를 더럽히기까지 하네/ 무심하게 말없이 웃노니/ 네 놈의 목숨 또한 하늘에 달려 있노라!"한밤 중의 깜깜한 시골집 천장과 방구석으로 으레 찾아들던 불청객. 어릴 적 나도 그걸 경험해 봤다. 쥐는 자유분방하다. 인간들의 윤리나 룰 따위엔 아랑곳 않고 온 방을 헤집는다. 벼루의 먹물을 몸에 묻혀 성현의 문자가 적힌 책장에다, 왕희지가 처음 만들어 썼다는 서수필(鼠鬚筆·쥐 수염 붓)인 양 찔끔 낙서까지 한다. 우스꽝스러우나 요놈은 참 운도 좋다. 대학자의 시에 캐스팅돼 이날까지 살아남았으니. 쥐는 욕쟁이의 입에 담기면 '쥐새끼'로 바뀌나 가끔 '양상군자'(梁上君子) 같은 멋진 칭호도 얻는다.시 황제를 도와 진나라의 통일에 공을 세운 이사(李斯).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하급 관리였는데, 어느 날 관청의 변소에서 쥐가 오물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는 것을 본다. 또 다른 날, 창고에 있는 쥐들이 곡식을 먹어대면서도 사람이나 개를 겁내지 않는 것을 보고 깨달아, 탄식한다. "사람의 현명함과 현명하지 않음은 쥐와 같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달려 있구나!" 호화로운 곳에 살면 고급 음식을 누리고, 지저분한 곳에 살면 추잡한 것을 먹어야 하듯, 쥐는 처한 여건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결국 그는 부유한 집의 쥐처럼 살기 위해 초나라를 떠난다.서양 고대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흑해 연안의 도시 시노페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나, 사기를 치고 죽은 아버지에게 충격을 받아 아테네로 도망친다. 빈털터리의 구차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한다. 밤이 와도 개의치 않고 음식물도 건드리지 않는 쥐를 보고 그는 깨닫는다. 궁핍 속에서도 만족을 느끼고, 어떤 구속도 없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쥐에게 배워, 그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맨몸으로 무소유의 삶을 누린다. 견(犬) 유학자가 아닌 쥐 같은 학자로 산다.옛날 중국에서 생겨난 '자-축-인…'의 십이지(十二支). 이 열두 마리 우주 동물원 속에서 쥐는 서열 1위다. 보통 자시(子時)에 하늘이 열리고, 축시(丑時)에 땅이 열리고, 뒤따라서 인시(寅時)에 사람이 생겨났다고들 한다. 우리 설화에는 쥐의 앞 발가락이 4개, 뒷발가락이 5개인 것을 이렇게 풀이한다. "앞발이 짝수(陰), 뒷발이 홀수(陽)인 것은 자정을 축으로 앞쪽은 음기의 시간, 뒤쪽은 새로 하루가 시작되는 양기의 시간을 가졌다는 뜻. 그래서 열두 때에 자시가 제일 앞에 온다!" 앞발은 깜깜한 야(夜)자시, 뒷발은 새벽이 오는 조(朝)자시이리라. 위 다섯 효(爻)는 전부 음이나 맨 밑바닥에 한 가닥 양 효가 꿈틀대는 지뢰복괘(☷☳)가 떠오른다. 깜깜한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 따신 기운이 들어서는 때다. '불경'에는 호랑이에 쫓기다 구덩이에 뛰어들어 가까스로 붙잡은 넝쿨을 갉아 먹는 쥐 두 마리가 등장한다. 밤낮이라는 시간의 은유이다. 송곳니로 쥐가 물건을 갉아대듯 해도 달도 차면 기운다. 아울러 쥐는 새끼를 많이 낳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이것을 서산(鼠算)이라 하며, 풍요의 근거가 된다.사도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육신이 있어 죄가 깃들었다'고 번민했다. 육신의 숲에는 쥐뿐만 아니라 개・돼지, 악마도 숨어 산다. 인간은 그들과 밀회하며 흉내를 낸다. 우리가 말하는 쥐 이야기는 모두 인간 자신의 그늘이거나 빛이다. 쥐띠 해에 마음속의 쥐를 사랑할지 잡을지 공부했으면 좋겠다.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2020-01-15 18:43:09

김태훈 대구 영남중 교사

[대구 옛 이야기] 대구 의병장 우배선

화원현 월촌리에서 태어난 우배선(禹拜善·1569~1621)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걸쳐 100명가량의 의병을 이끌며 왜군에 맞서 항전했던 의병장이었다.학업에 몰두하며 고향에서 생활을 이어가던 중, 1592년 5월 23일(양력, 이후 모든 날짜는 양력)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를 선봉장으로 앞세운 왜군 20만 명이 조선에 상륙하여 부산진과 동래성을 차례로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북상하였다. 왜군이 대구에 다다르자, 대구부사 윤현(尹晛)은 관민을 데리고 공산성으로 퇴각하였고, 드디어 왜군은 1592년 5월 31일 대구읍성을 점령하여 그들의 주둔지로 삼았다.왜군의 침략으로 삽시간에 조선의 영토가 유린당하자, 우배선은 곧바로 비슬산 장수동에서 용맹하고 건강한 자 50여 명을 선발하여 의병부대로 편성함과 동시에 무기를 제작하고 군량을 확보해 군사훈련에 돌입하였다. 그는 1592년 7월 2일 화원현과 그 인근에 격문을 배포한 후 비슬산 아래 주요 길목, 낙동강변, 원월산 아래에서 왜군과 격전 끝에 수십 명씩 척살하였다.1592년 9월 즈음에 그는 하빈현에서 초유사(招諭使· 난리가 발생했을 때, 백성을 타일러 경계하는 일을 맡았던 임시 벼슬) 김성일을 만나 그로부터 화원현 가장(假將·전쟁터에서 어느 장수의 자리가 부재했을 경우, 잠시 그 직무를 대신 맡았던 임시 장수)에 임명되었다. 이와 함께 그의 의병부대는 형식적으로 합천·성주 지역의 의병장 정인홍의 지휘하에 들어갔다.우배선 의병진은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11월부터 12월까지 대구를 비롯하여 화원현 조암·감물천, 화원현 성평곡, 심천사·달천, 하빈현 마천현·이천·북면·서면, 현풍현 쌍산역, 화원현 성평동에서 왜군과 교전하여 군공을 세웠다. 1593년 1월부터 6월에 이르는 시기에도 대구뿐만 아니라 송림리, 화원현 감물천, 오동원, 화원현 월배·조암, 달성 등지에서 왜군과 격전을 펼쳐 전공을 거두었다.이 과정에서 우배선은 의령 출신 의병장 곽재우를 만나 왜군 토벌 작전을 논의하였고, 진주성 전투에 참여하려다가 곽재우의 만류로 중단하기도 하였다. 한때는 경상우도 병사로부터 팔거현에 주둔한 왜군을 격퇴하기 위해 합동작전을 요청받았던 적도 있었다.1597년 4월 7일에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우배선은 관찰사 이용순과 신녕 의병장 권응수와 합세하여 달성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고, 다음 해에도 성산·금호진·어느 강가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왜군이 전쟁을 멈추고 철병을 감행하자, 우배선은 예하 의병들을 귀향시켜 생업에 종사하도록 조처하면서, 우배선의 의병투쟁은 끝을 맺었다.우배선 의병진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배선은 예하 부대에 별장들을 각각 임명하여 독립적인 전투 단위로 구성하였다. 또한 그는 병사들을 기병·보병·사수·창수·포수 등으로 편성하였고, 매복·추격·접전·야습·첩보 등의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였다. 다만 우배선은 대구 다른 일부 지역에서 거병했던 의병부대와 연대하지 못한 채 거의 독자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우배선 의병진은 대구와 청도의 접경지를 오가며 왜군의 주둔지를 공격하거나 그들의 이동경로를 차단하여 그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이에 힘입어 정유재란이 마무리되자, 우배선은 선조에 의해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책봉되었다.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에 자리 잡은 월곡역사공원은 단양 우씨 문중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우배선을 기리는 낙동서원(洛東書院), 그가 낙향하여 학문을 강론했던 열락당(悅樂堂), 그의 동상 및 창의유적비, 파리장서비, 월곡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월곡역사박물관 안에는 그의 자료, 농기구와 생활용품, 단양 우씨를 대표하는 인물(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한 우경동·우성동·우승기·우찬기·우하교·우하삼, 산남의진·대한광복회·주비단에서 활약했던 우재룡)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배선을 비롯한 단양 우씨 문중에서 애국정신을 깨닫는다.

2020-01-15 18:00:00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새론새평]정부의 혁신성장, 무엇이 문제인가?

집권 초기부터 정책 순위서 밀려 올해는 '혁신동력강화'라고 명칭 내용은 그대로인데 포장만 바꿔 여기 넣었다가 저기로 옮겨 놓아굳이 슘페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 경제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가 전체 실질성장률이 2017년 3.2%에서 2019년 2%로 거의 절반 가까이 추락하기도 했지만 경북지역은 그보다 훨씬 상황이 나빠서 2017년에 이미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대구도 조만간 그리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지역보다도 혁신성장이 시급한 곳이 대구경북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만약 서둘러 혁신성장이 되지 못한다면 대구경북지역은 10년이 안 되어 고령 세대로 가득 찬 거대한 슬럼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가장 눈 빠지도록 기다리는 곳도 대구경북지역이다.집권 직후 나온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 다섯 가지 경제 정책(5대 전략이라 불렀음) 중에서 혁신성장은 최후순위에 두었었다. 가장 머리에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 정책을 둔 다음 그다음으로 공정경제, 서민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창업과 혁신성장을 배치했다. 그리고 혁신성장의 내용도 '창업을 응원하는 창업국가 조성'이나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매우 축소된 의미로 국한하여 설정한 것이다.몇 달 뒤인 2017년 12월에 나온 '2018년 경제 정책 방향'에서는 5대 전략을 3대 전략으로 압축한 뒤 일자리-소득주도 전략에 이어 혁신성장을 두 번째로 두었으며 공정경제를 제일 뒤에 배치했다. 여전히 소득주도성장보다는 뒤에 놓여 있지만 공정경제에 앞서 놓였으니 혁신성장의 위치가 상당히 올라왔다. 아마도 청와대의 거부 기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 혁신성장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인데 ①8대 핵심 선도사업을 선정하는 것과 ②'전방위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온갖 부문에다 혁신이라는 이름만을 갖다 붙였다. 예를 들자면 교육훈련 혁신, 기존 산업 혁신, 노동시장 혁신, 중소기업 혁신, 서비스업 혁신, 전 방위 금융 혁신 등이다. 나머지 하나가 ③규제 혁신과 혁신 인프라 구축인데 기존 규제의 적용을 탄력적으로 면제시켜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이나 혁신성장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이런 계획을 야심 차게 추진하기 위하여 정부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혁신성장지원단'을 출범시키고 기획재정부 차관과 함께 이재웅 다음 창업자를 공동본부장으로 영입했다. 김동연 부총리의 2018년 혁신성장 정책은 거기까지였다.2018년 혁신성장 정책의 실패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는 임명된 지 4개월 만인 2018년 12월 "혁신성장이 한 발짝도 못 나갔다"는 비관적인 진단을 남기면서 '혁신성장지원단' 민간인 본부장이 사퇴한 것이다. 물론 혁신성장이 안 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하긴 했지만 200명에 가까운 혁신성장본부 민간자문위원도 거의 같은 한계를 느꼈다. 다른 하나는 2019년 경제 정책 방향에 혁신성장이라는 말이 아예 빠져버렸다. 대신에 '경제체질개선과 구조개혁'이라는 대과제가 들어왔다. 그 안에는 핵심규제 혁신과 제조업 혁신 전략을 포함하는 주력 산업 육성 대책들이 들어갔다. 8대 선도사업 지원 추진, 서비스 산업 획기적 육성과 같은 것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이미 2018년 계획에 들어가 있던 것이라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2019년은 새로운 혁신성장 정책 없이 지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지난해 12월 19일에 나온 2020년 경제 정책 방향에는 혁신성장이라는 말 대신 혁신동력강화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왔다.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빅3(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자율주행차),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2019년 경제 정책 방향과 대동소이하다. 핵심규제 혁신은 혁신동력강화에서 따로 떼어내 경제 체질개선이라는 큰 테두리 안으로 옮겨 넣었다. 말하자면 내용은 거의 그대로인데 포장만 바꾸어 여기 넣었다가 저기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혁신성장단의 비판과 한계를 느껴서인지 정부는 새로운 기구인 관계부처 합동 '혁신성장추진기획단'을 만들어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집권 처음부터 혁신성장은 정책 순위에서 밀려 있다가 2019년에는 정책과제에서 아예 빠져버렸다. 2020년에는 혁신동력강화라는 말로 바꿔서 들어왔다. 이 정부에서 혁신성장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0-01-15 13:56:02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귀를 막고 종을 치다

긴 겨울 만물은 뿌리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성숙시킨다.겨우내 오지 않던 비가 내리고 며칠 날이 따뜻해지자 뒤뜰 매화나무 가지가 파릇해지고 움이 맺혔다. 움이 꽃을 피우고 눈이 내리면 눈 속의 꽃인 설중매가 된다. 다른 꽃나무들은 아직도 겨울인 양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지는 매화는 계절을 알리기 위해 맹추위를 뚫고 봄을 준비하고 움직인다.산책을 위해 망월사 주변을 걷다 보면 낙화담의 청둥오리들이 물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편대비행을 하더니 수면에 내려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자맥질을 하며 은빛 날개로 물살을 가른다. 물 위에 앉은 오리 떼를 바라보며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 9번 2악장을 들으며 나라를 생각한다.'여씨춘추'(呂氏春秋)에 범씨가 다스리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한 백성이 혼란을 틈타 범씨 집안의 종을 훔치려고 했다. 종이 너무 커서 도둑은 망치로 종을 깨 가지고 나가려 했다. 그 도둑은 종소리가 크게 울려 펴져 다른 사람이 올까 봐 두려워서 자기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이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엄이도종·掩耳盜鐘). 송나라 주희는 이 일화를 인용해 "종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는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문재인 정부가 보복인사를 통해 검찰총장의 손발을 잘라내고 탄압하고 부정을 덮으려는 짓이 위와 같다. 정권의 비리가 드러날까 봐 수사를 막고 무력화하려는 것은 귀를 막고 종을 깨는 행위이다. 권력의 힘으로 정의를 뭉개고 가겠다는 정권의 시도는 반드시 국민의 분노와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공정을 외치며 반칙과 특권을 일삼는 측근들을 물리치지 않는 한 정의의 종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 펴지고 성난 민심은 개혁되지 않으면 정권을 무너트릴 것이다. 이제 겨우 임기 반환점을 넘긴 이 정권은 측근들의 부패가 심각하다. 문 정권은 역사에서 부침(浮沈)을 배우며 읍참마속하는 지혜를 자연에서 얻어야 한다.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어린 동승이 개구리와 뱀, 물고기를 잡아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리며 실로 돌에 매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자고 있는 동승의 몸에 돌을 묶어 동일한 업보로 보상을 받게 한다.부처님은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라 하시면서 "부끄러워할 줄 알고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김수환 추기경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고 했다.인간의 삶은 수많은 행위의 집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에 의해 그 사람의 귀함과 천함이 나눠진다. 보람과 가치가 있는 삶인지 후회만 남는 삶인지 결정된다. 좋은 행위를 한다면 점점 귀해지고 나쁜 행위에 길들여지면 점점 천해진다.인생(人生)이란 바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한 조각 구름이 아닌가. 일순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순간 사라져버리는 것들. 고정된 실체 없이 찰나생멸(刹那生滅)하는 이 세상에 단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갈 뿐. 왜 위정자들은 나눔과 평화의 상생을 연주하지 못할까?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어둡고 마음이 밝으면 세상이 밝다.

2020-01-15 13:54:20

문상부 회장

[기고] 잘못된 선거구, 이번엔 바로잡아야 한다

제21대 총선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국회의 진행 상황을 보면 전체 지역구 수 253석이 유지되면서 경북 지역은 지역구 수 13석으로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의 4+1협의체에서 인구 하한 기준을 13만9천470명으로 유력하게 검토 중이고, 이 안이 확정될 경우 경북에는 영양영덕봉화울진 선거구가 인구 하한에 미달되어 현재 포항남울릉 선거구에서 울릉군만 떼어 여기에 붙이는 획정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경북 지역의 경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다수의 선거구가 2개 이상의 시군을 합쳐 획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년 전의 선거구 획정을 보면 특정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가 기형적으로 획정되어 주민들의 의사가 무시되고 주민들의 생활문화권과 동떨어져 있어 이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지난해 10월 한국도시행정학회가 경북 북부 지역 4개 권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에 의하면 현행 선거구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사유는 시군 간 생활권이 다르고(35.3%) 이해관계가 다르다(30.4%)는 이유가 65%를 넘었다. 이것은 바로 경북 북부 지역 선거구가 기형적으로 획정되었음을 입증한 것이다.또한 경북도청, 경찰청, 교육청이 이전한 도청신도시를 품고 있는 안동시와 예천군이 서로 다른 선거구로 나누어져 있어 향후 경북 발전을 주도하기 위한 정책 추진이나 예산 집행 등 여러 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행정기관 이전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상황이 이러한데도 현행 선거구 중 인구 하한에 미달하는 영양영덕봉화울진 선거구에만 땜질식으로 울릉군을 갖다 붙이자는 정치인의 주장은 지역 실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울릉군 주민들은 배편이 가장 많은 포항시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고 파도가 높은 겨울철에는 포항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울릉도로 들어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활문화권을 무시하고 다른 선거구에 편입시키는 것은 교통과 생활문화권을 고려하여 지역구를 획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25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국회나 정치권에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선거 때마다 땜질식으로 획정해 왔는데, 과거의 사례를 보면 지루한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선거를 40여 일 앞두고서야 선거구가 획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직도 총선을 3개월이나 남겨둔 시점이므로 선거 일정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또다시 땜질식으로 획정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이번에는 정치인의 의사보다 지역구민의 의사를 더욱 존중하여 지난번 획정 시 정치인의 지나친 개입으로 주민의 생활문화권과 불일치하는 잘못 획정된 선거구를 바로잡아야 하겠다.이번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독립기구로 출범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공정하게 선거구를 획정할 수 있도록 정치권력이 획정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이 또다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가 졸속으로 획정되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획정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현행 선거구 중 잘못된 선거구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단체를 결성하고 '선거구 바로잡기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 획정 과정에 개입하여 사익을 취하려는 나쁜 정치인이 있다면 이 정치인에 대한 강력한 낙선 운동을 벌여야 하겠다. 그래야만 잘못된 선거구를 생활문화권과 일치하고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선거구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0-01-15 13:52:21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매일춘추] 인공인간의 감정  

얼마 전 삼성전자가 극비리에 개발해온 인공인간(Artificial Human)프로젝트 '네온(NEON)'을 공개하였다. 스크린 속에서 다양한 인종과 생김새를 지닌 몇 명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말투와 표정, 손동작, 목소리까지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가상의 아바타라고 한다.누가 진짜 인간인지 구별이 쉽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아바타를 보면서, 뭐 워낙 과학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보니 자연스러운 모습 중 하나라 여겨졌고, 정교함을 잘 살려서 만들었구나 했다.하지만 이들은 수백만 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며, 게다가 감정과 지능, 학습 능력까지 갖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과 그 학습이 쌓이면 지능이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은 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감정이란 어떤 상황을 대할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말하는 것인데 어떻게 이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기분은 제각각일 텐데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학습하고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행동한다는 것인가? 그럼 이것은 살아있는 감정이 아닌 '죽은 연기(演技)'인가? 만일, 인공인간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면 상황에 따라 감정기복이 심한 특이한 인공인간도 있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질문은 여기서 멈추었다.'서브텍스트(sub-text)'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생각, 느낌, 판단 등의 내용을 뜻하는 개념으로, 말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쫌!' 이라는 사투리는 가장 많은 서브텍스트를 가진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상황과 분위기, 감정 상태에 따라 뜻은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관계에서 오가는 언어뿐만 아니라 언외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참 어렵고 중요한 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영화 'A.I.'보면 꿈과 희망, 사랑이 학습된 충격적인 로봇이 나오지만 서브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것은 분명 '진짜' 감정이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기에 학습에 의한 경우의 수로 표현하기란 한계가 있어 감독은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감정'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고, 이로 인해 서로 다투고 미움을 만들기도 하지만 교감하며 '희망'과 '사랑'을 나누게 하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여도 인공인간이 사람의 서브텍스트를 이해하고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지며 진짜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다가올 시대는 분명 인간과 인공인간이 공존할 것이다. 그 공존할 시대의 가치를 지금보다 '인간다움',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좀 더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0-01-15 11:27:31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매일춘추] 이미 정해져 있던 주인공

연습실 마룻바닥 위에는 대학생 배우들과 코칭 스태프들의 뮤지컬 연습이 한창이다. 낯선 이의 방문에 이목이 집중된 터라 총총걸음으로 연출석 테이블을 가로질러 구석에 잽싸게 자리를 잡는다.끼와 흥으로 무장한 학생 배우들은 또래로 보이는 낯선 소년을 의식이나 한 듯 더 격렬한 춤사위로 자신의 재능을 뽐낸다. 과장된 몸짓과 노랫말로 대사를 주고받는 장르를 난생 처음 보게 된 소년은, 특유의 무뚝뚝함을 팔짱에 장착한 채 오그라드는 몸을 숨기느라 애꿎은 혀를 어금니로 깨무는 듯해 보인다. 스승은 소년에게 다가가 귀에다 대고 성악 발성으로 음가를 넣어 조용히 한마디 거든다. "중요한 대사는 노래로 해야 해. 왜냐면 이건 뮤지컬이니까~""웩!"처음으로 소년에게 주어진 일은, 소리가 나는 장비를 조작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Sound Operator이다. 이 일은 배우들의 대사에 따라 음악을 재생하는 아주 단순한 노동이지만 연습 내내 콘솔 옆에 죽치고 앉아있어야 하는 아주 곤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연습이 없는 오전 시간에는 무대 제작 일을, 연습을 마친 늦은 밤에는 로드 매니저 일을 병행하며 뮤지컬 공연 외적인 일들까지 맡아 오고 있다. 소년은 늘 소망한다. 주인공들을 보조하는 삶이 빨리 끝나기를.그토록 기다린 공연 날이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배우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여 음악을 재생하다 보니 10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이다. 커튼콜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를 빠져나가는 순간 긴장이 풀린 듯 소년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에 맺힌 땀을 털어낸다. 더 이상 무대 세트 가시에 찔리는 일도,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노래를 트는 일도, 배우들을 집에 태워다 주는 일도 소년에게는 추억이 되어버린 감격스러운 순간이다.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객석에 불이 밝혀지자 갑자기 1천여 명의 관객들이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소년에게 일제히 줄을 지어 다가온다. 당황스러운 소년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보는데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관객들이 그에게 다가와 한마디씩 건네며 객석 밖으로 유유히 사라진다."정말 멋진 음악 재생 능력이예요!" , "당신의 견고한 못질로 세트가 넘어지지 않았군요"이 일만 끝나면 스승을 떠나 소년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려고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무대 세트 제작실에서 혼자 안무 동작을 따라 하고, 주인공을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목놓아 노래를 부르며, 배우들의 호흡에 맞춰 스페이스바를 누르며 기뻐했던 소년은 이미 정해져 있던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른다.쏟아지는 환청에 어안이 벙벙하다. 마치 오케스트라 마에스트로가 된 것만 같은 소년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세로 남은 한 곡을 향해 스페이스바를 누르며 외친다."Exit Music, 큐~!"

2020-01-14 11:36:06

장현우 법무법인 두우 변호사

[경제칼럼] 인공지능(AI)은 공정한가

인간이 쌓아온 수많은 데이터를 선택과 결정에 반영하는 것이 AI 축적 데이터가 공정하지 못하면 AI 판사'변호사도 공정하지 않아"인간 판사, 변호사보다 인공지능(AI)이 빠르고 공정할 것 같다." 최근 주위에서 자주 듣곤 하는 말이다.실제 유럽 에스토니아에서는 소액재판(소송가액이 적은 민사재판)에서 AI 판사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하며, AI 작가가 그린 그림이 5억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우리 정부도 작년 말 AI 국가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 경쟁력 세계 3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등 디지털 혁명은 정부, 개인과 기업들에 더 나은 효율성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이미 인간과 AI 간에는 대결이 진행 중이다. 바둑의 이세돌 9단이 대표적이다. 알파고에 이어 작년 12월 바둑 AI 한돌과 은퇴 대국을 했고, 변호사가 법률 자문 대결을 해 AI 변호사에게 우승을 넘겼다는 소식도 들린다.인간계 대표 선수들이 AI와 대결을 펼쳤지만 승전보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AI는 강력하고 빠르다.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스피드 있게 계산하고 처리한다.제조·유통업계는 AI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자율주행차 관련 소식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드론이 집 문 앞까지 택배를 하는 세상이고, 스마트폰으로 쇼핑과 구매를 하면 로봇이 소비 성향을 파악하고 추천 상품을 제시한다. 손안에서 해외 송금, 환전도 가능한 세상이다.나아가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차를 운전하면 불법이 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은 난폭·졸음·음주운전 등을 하여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양산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최근 '윤창호법'으로 음주운전의 처벌 기준이 대폭 강화되는 것을 보면 그런 예상을 부인할 수도 없다. 실제 서울의 신분당선은 운전석이 없는 무인전동차이다. 이렇게 운전까지 넘겨줄 정도로 인간은 AI에 패배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AI가 인간보다 신속하며 공정할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기업의 채용 과정에 AI를 도입한 결과, 기존 남성 중심적 데이터를 학습해 여성에게 부당한 감점을 주었고, 미국 범죄 예상 시스템에서는 백인보다 흑인에게 2배 이상 부정적인 범죄 발생 결과를 예측했다고 한다.AI가 인간의 차별적인 데이터를 학습해 성차별 및 인종차별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AI도 살아온 인간을 닮는 것이다. 그럼 AI도 공정하지 못한 것인가.결국 인간이 쌓아온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 것이 AI이다. 우리의 살아온 모습이 데이터로 AI에 반영되는 것이다. AI 판사와 변호사가 공정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우리의 사법 관련 데이터는 공정한지, 전관예우는 없었는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상 데이터는 공정한지, 소위 말하는 갑질은 없는지, 학연·혈연·지연이 없는 판단과 결정을 하였는지, 우리가 살아가며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렸는지, 내가 속한 지역·기업과 가족 속에서 공정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공정한 소비와 생산을 하며 공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지.공정하지 아니하고 차별이 많은 사회에선 이를 학습한 AI도 공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AI의 신속함과 공정함은 우리의 미래 세계를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끌어 주는 도구이다.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고, 경제적 번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고 어떤 모양새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숙제는 결국 인간의 책임이다. AI는 우리를 꼭 닮은 모습이기에 그러하다.새해에는 차 운전을 하면서 과속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횡단보도 정지, 신호등 지키기 등 기본에 충실하려 이전보다 더 노력해 본다.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하고, 가족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며, 스마트폰 검색어에 신중을 기하고, 기사 보기도, 투표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데이터를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2020-01-14 11:23:49

퇴행성 관절질환과 수술 후 세포 재생과 통증 경감을 위해 레이저 치료가 적용되고 있다. 동물이 편안하게 안겨서 레이저 조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령동물과 허약한 동물에게 적합하다.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노령동물의 가정재활운동과 레이저치료

반려견도 나이가 들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몸이 약해지고 퇴행성 관절질환이 발생한다.공주(페키니즈, 15세)가 기저귀를 차고 내원하였다. 공주는 어릴적 슬개골 탈구 수술을 받았었고 척추유합(척추가 융합되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앓으면서 최근들어서는 뒷다리를 딛지 못하고 소변마저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야하는 상태였다. 가족들은 수술을 해서라도 회복하기를 바랬지만 나는 "나이 많은 공주에게는 수술이 아닌 재활 치료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노력으로 공주는 두달 뒤, 스스로 보행이 가능해졌고 이전 보다 더 건강해지고 있다.공주가 뒷다리 보행 장애를 이겨낸 사례는 노령동물과 골관절질환을 앓고있는 모든 반려동물에게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령의 반려동물이 퇴행성 골관절질환으로 보행이 불편해질 때 효과적인 가정에서의 재활 운동을 소개한다.노령동물의 퇴행성 관절질환 치료의 대원칙은 통증관리와 근육량 증가에 있다.통증 관리는 전적으로 수의사의 처방에 의존해야 한다. 수의사는 동물의 혈액검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적합한 진통제와 영양요법을 병행한다. 통증이 어느정도 관리되는 시점부터는 근력증가를 위한 재활 운동이 이뤄져야 한다. 정신적으로 쉽게 위축될 수 있는 노령동물의 특성 상 통증의 개선 없이 무리한 재활운동은 역효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노령동물의 노화는 근육량에 반비례한다. 근육과 인대가 건강하면 관절의 손상을 막아주고 혈류량이 증가하면서 염증과 통증을 완화시킨다. 반면에 통증이 지속되어 보행을 기피하면 근육과 인대는 급속히 위축되어진다. 노령동물에게 근육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근감소증(Sarcopenia)을 의미하며 사망에 이르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노령동물의 재활 운동은 자발적인 보행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보행의지를 키워주기 위해서 먹거리나 애착어린 장난감을 이용할 수 있다. 사료는 한곳에 담아 주기 보다는 한 알씩 흩뿌려주거나 수건 아래에 감추어 줄 수도 있다. 특정 보호자를 의존하는 동물이라면 보호자가 자주 이동하며 동물이 안겨오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동물이 자발적으로 이동하려는 동기를 만드는 것이 재활운동의 첫 단계이다. 동물이 스스로 이동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간식이나 칭찬이 보상으로 주어지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이동할려는 의지가 있지만 제대로 서는 게 불가능해서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경우라면 허리 또는 양측 뒷다리를 붕대나 수건으로 견인하여 도와줄 수 있다. 단, 최소한의 도움이 효과적이다.체중의 감량이 필요하다. 뒷다리 보행이 어려운 만큼 상대적으로 앞다리로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중이 과할수록 앞다리로는 체중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며 동물의 보행의지는 감소한다. 치료 목적이던 예방 목적이던 과체중은 반드시 감량돼야 한다.보호자는 발목, 무릎관절, 엉덩이 관절을 부드럽게 마사지하거나 회전시키며 근육과 인대가 굳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ROM). 발바닥이 지면에 닿아 체중을 받치듯이 보호자가 손가락으로 발바닥을 밀쳐주면서 발목 뒷부분의 비복근(종아리근육)과 아킬레스건이 단단하게 신장되도록 반복하여야 한다.바닥재는 미끄럽지 않은 재질을 깔아준다. 푹신한 담요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발바닥 패드 관리도 중요하다. 동물들이 핥더라도 해가 되지않는 코코넛오일을 패드에 자주 발라주며 보습상태가 유지되도록 관리한다. 발톱은 깎기 어렵다면 갈아줘야 한다. 발바닥 패드가 지면과 밀착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발톱은 항상 잛게 유지돼야 한다.최근에는 퇴행성 관절질환과 수술 후 빠른 회복을 위해 세포 재생과 통증 경감을 위한 레이저 치료가 적용되고 있다. 동물이 의사에게 편안하게 안겨서 레이저를 쬐기 때문에 노령동물과 허약한 동물에게 적합하다.디스크질환은 재활운동을 시도하기 전에 수의사와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 척추 신경의 압박 정도에 따라서는 재활 운동이 신경손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1-14 09:19:11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인류의 후계자 쥐

'금년은 무자년이다. 무자년은 '쥐'년이라고 한다. 도대체 쥐를 해에다 부치는 것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쥐는 인류 생활상 거의 대부분이 유해하며~작년에 북조선 일대에 창궐하여 38선을 넘어 남조선에 침입한 흑사병의 공포는 기억에 생생하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1월 1일 자)1948년은 올해처럼 쥐띠 해였다. 새해 첫날 '인류의 후계자 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12가지 띠 동물의 첫 번째인 쥐. 인류의 후계자라고 하면서도 덕담 한마디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강점에서 해방되어 3년이 되었지만 민생고는 여전했다. 게다가 수시로 전염병이 돌았다.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 중 하나가 쥐였다. 그런 마당에 쥐띠 해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해방 이듬해에 번진 콜레라의 후유증이 그대로인데 이내 흑사병 공포에 휩싸였다. 흑사병은 쥐에 붙어사는 쥐벼룩이 옮기는 페스트균이 원인이었다. 전염되면 살이 썩어서 검게 된다고 흑사병으로 불렸다. 이미 중세 유럽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흑사병이 북조선 일대에 번졌다고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38선 인근의 양양 등에서는 실제로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니 흑사병을 옮기는 쥐가 원수처럼 여겨졌다. 쥐 가죽으로 추위를 막고 쥐 수염으로 붓을 만들어 썼다는 선조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민망했다. 새끼를 많이 낳고 쥐구멍 안에 먹거리를 확보해 둔다고 다산이나 물질적 풍요로 연결 지어 말하는 것도 꺼림직했다.병균을 퍼뜨리는 쥐는 씨를 말려야 하는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쥐잡기가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쥐잡기는 그야말로 사치에 가까웠다. 오죽했으면 해방 직후 구서(驅鼠) 주간을 정해 쥐 한 마리를 잡아오면 5원씩 현금이나 물품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했겠나. 구서는 쥐를 잡아 없앤다는 뜻이다.'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는 식량이 부족한 시대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구호였다.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쌀을 축내는 쥐를 그냥 둘 수 없었다. 6·25전쟁이 끝난 가을에 경상북도는 쥐 170만 마리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숫자를 어떻게 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쥐잡기는 큰 뉴스였다. 쥐약을 놓는 시간까지 당국에서 정해줬다. 쥐를 잡은 증거로 쥐꼬리를 학교에 들고 가는 일도 벌어졌다. 애완 쥐를 키우거나 인간의 유전자와 닮은 쥐가 주는 의학적 혜택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경자년 쥐띠 해의 첫 달도 절반이 흘렀다. 다만 과거에 띠가 바뀌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입춘은 스무날 남짓 남았다. 올해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수시로 쥐 소탕을 벌일 게 뻔하다. 쥐들은 의심할지 모른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분풀이로.

2020-01-13 18:00:00

김문환 세명대 교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명을 거역한" 이순신과 검찰 인사

'일본 침략 대비'를 뭉갠 무능한 선조와 집권 동인 파당한국인 다수가 일본 여행을 자제하면서 대마도 관광산업은 초토화됐다. 대마도에 여러 차례 탐방하며 느꼈지만, 대마도는 한국 관광객이 없으면 쓰러진다. 대마도 중심 도시인 남부 이즈하라 박물관에 가면 귀한 그림이 탐방객을 맞는다. 「조선통신사 일행」. 부산과 대마도를 거쳐 오사카로 가던 통신사의 모습을 담았다. 1590년 일본의 조선 침략 정보가 돌자 조정은 황윤길 정사, 김성일 부사로 조선통신사를 구성해 오사카로 보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온 정사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부사 김성일은 반대로 가능성 없음을 아뢴다. 선조와 집권 파당인 동인 세력은 부사 김성일의 그릇된 의견에 방점을 찍는다. 이유는? 김성일은 동인이요, 옳은 정보를 낸 황윤길은 서인이었던 탓이다. 당파에 찌든 조정과 무능한 왕은 국가의 안위를 뒤로한 채 사사로운 감정으로 국사를 그르친다. 류성룡, 파벌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으로 이순신 발탁국보 132호 징비록(懲毖錄)을 펼쳐보자. 서애 류성룡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양란을 겪으며 적은 뼈저린 반성록이다. 이재호가 번역한 「징비록」(위즈덤하우스)을 보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성을 쌓던 관리를 조정에서 상 대신 벌을 주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일본이 1592년 4월 13일 부산으로 침략해 들어왔고, 불과 20일도 안 돼 한양을 빼앗긴다. 선조와 파당 세력은 백성을 일본 군사 수중에 팽개친 채 명나라와 가까운 의주로 도망간다(몽진). 무능한 선조가 잘한 일 하나는 류성룡을 좌의정 겸 이조판서(인사 담당)로 임명한 거고, 류성룡이 잘한 일은 임란 직전 평범한 지방 수령인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발탁해 일본 침략에 대비토록 한 거다.이순신의 연전연승 국란 극복의 초석이 되다일본에 대비한 남해안 앞바다는 4개의 수군이 맡아 지켰다. 부산 앞바다 경상 좌수영, 그 오른쪽 거제 앞바다 경상 우수영, 여수의 전라 좌수영, 목포의 전라 우수영. 임란이 터지자 경상 좌수사 박홍은 그길로 달아났다. 경상 우수사 원균도 군선과 무기를 대부분 수장시키고 이순신 부대에 기대는 형국이었다. 이런 기막힌 상황에 이순신의 분전은 눈부시다. 전란을 예견해 거북선을 만들고 군사를 조련한 덕에 5월 7일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연전연승을 거둔다. 조정은 직제에 없던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이순신에게 주며 경상, 전라, 충청의 수군 총괄 임무를 맡긴다. 이순신 전성시대가 열리며 나라는 위기 극복의 힘을 얻는다.간신들의 무고로 파직된 이순신, 무너진 수군침략군으로 조선에 쳐들어온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 제거 없이 승리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공작을 편다. 간첩 요시라를 보내 고니시 유키나가의 경쟁자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을 재침할 것이니 상륙하기 전에 그를 치라는 정보를 경상 우병사 김응서에게 흘린다. 보고를 접한 조정은 이순신에게 가토 기요마사를 치라는 출전 명령을 내린다. 일본의 정보 공작을 의심한 이순신이 합리적 판단으로 출전을 미루자 원균이 이순신을 비방하는 소를 올린다. 조정의 북인 패거리와 선조는 "임금의 명을 거역했다"는 구실로 이순신을 파직한 것도 모자라 의금부로 압송해 혹독한 고문을 가한다. 북인의 견제를 받던 류성룡도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대패한 뒤에야 조정은 이순신을 복직시키고 이순신은 12척 배로 명량해전 대승 신화를 쓴다.왕명을 거역한 이순신과 명을 내린 파당 세력 평가"검찰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정권의 핵심 친문 세력을 가차 없이 수사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내뱉은 말이다. '거역'. 왕조시대도 아닌 21세기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생뚱맞은 아니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크다. 이순신 장군은 비합리적인 왕의 명을 따르지 않아 나라를 구해냈다. 명을 거역한 이순신은 후대에 영웅으로 남지만, 명을 내린 선조와 파당 세력은 나라를 그르쳤다는 쓰디쓴 비판을 받는다.

2020-01-13 18:00:00

남평문씨 세거지 담장

[세월의 흔적]<56>담장

2천 년대 초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4년부터 대구에서 '담장 허물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삼덕동의 한 가정집이 담장을 허물었는데, 예쁜 정원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였다. 정원이 담장 때문에 늘 그늘이 질 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만이 보고 즐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담장을 허물고 난 뒤 한동안 불안감이 없지 않았으나,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담장을 허물자 새로운 '골목공원'이 생겼다. 이웃의 주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놀이터가 되었다. 또한 담장 옆에 세워두던 차량들이 사라졌고, 대문 앞 쓰레기도 깨끗이 치워졌다. 삭막하던 골목이 조금씩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대구시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시민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먼저 행정기관부터 동참하였으며, 공공기관을 비롯한 도심에 자리 잡은 공원이며 대형 병원도 담장을 허물었다. 도시공동체 운동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담장은 농업사회에서 활발하게 발달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달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온돌이라는 특유의 난방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온돌 때문에 건물을 단층으로 지어야만 하였다. 단층 건물로 지으니 건물이 낮고 넓게 깔릴 수밖에 없고, 방이 필요하면 별채로 짓는 구조가 되었다. 자연스레 좁고 긴 건물 여러 채가 있는 구조가 되었고, 흩어진 건물들 사이에 마당이 많은 공간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그 같은 마당은 외부인들이 들어오기 쉬운 구조라서, 그런 불편을 막기 위해 담장을 둘러쌓았다.담장을 높이 만들면 공사비가 더 들게 마련이다. 또한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땅이 물러져서 담장이 쓰러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담장을 최소한의 높이로 만들어 영역을 나누었다. 그로 해서 낮은 담장과 골목길이라는 우리네 특유의 주거 형태가 조성되었다. 오래된 전통 마을에 가보면 그 같은 정취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 같은 모습은 1970년대 2층 양옥집을 짓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담장이 만들어 주는 공간인 골목길에서 만나고 머무르고 이야기하며 오순도순 살았다.현대 도시에서 담장은 집단 이기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남과 나를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담장은 분리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아파트 단지는 담장을 둘러쌓고 일반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런 경우 담장은 허물어야 마땅하지만, 아파트의 담장과 주택의 담장은 성격이 다르다. 주택의 경우 도로에서 거실이나 안방이 들여다보이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람살이의 내밀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도시에 가보면 담장은 없지만 주택을 요새처럼 만들어 놓은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담장을 허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아니겠는가.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20-01-13 18:00:00

아우슈비츠 유대인 모습을 대리석 조각에 올린 청동 종

[세상속의 종소리]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슬픔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는 그리스어로 전체(hólos)를 태운다(kaustós)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동물을 잡아서 태우며 연기를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인 번제(燔祭)에서 유래하였다. 1933~45년 사이에 있었던 홀로코스트 결과 유럽의 유대인은 600만 명이 죽고 350만 명 정도가 살아남았다.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나치의 유대인 절멸캠프에는 20만 명의 생존자가 있었다. 소련군이 동부에서 진격해오자 나치는 수용소를 폐쇄하고 수용자를 이동시켜 후일을 도모하고자 했다. 1945년 1월 18일 엄청나게 추운 겨울밤에 6만 명의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은 서부에 위치한 우지슬라우로 향한 야간 행진으로 내몰린다.수천 명은 이미 며칠 전에 학살되었다. 대부분은 얇은 옷차림에 신발도 없었고, 쓰러지거나 따라올 수 없는 사람들은 즉시 사살되었다. 도보로 예정지에 도착한 수감자들은 난방이 없는 기차로 다시 독일로 옮겨진다. 이미 영양실조나 질병을 앓던 상태인 이들에게 물과 식량도 제공되지 않았다. 이 겨울밤의 '죽음의 행진'에서만 1만5천 명이 죽었고, 그해 봄까지 5만 명 이상이 총살당하거나 사망하였다.유대인들은 강인하였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 이름을 바꾸고 출생지를 속여 타 민족 주거지에 숨어들었고, 가끔 선한 이웃의 도움을 받았다. 해방된 나치의 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가족과 집을 잃었고, 그들 고향의 반유대인 정서로 귀환할 곳도 없었다. 5만 명의 동유럽 유대인들은 2차대전 승전국가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지역에 설치한 재배치캠프에 수용되었다.이들의 수는 점차 증가하여 1946년 당시 독일의 18만5천 명을 비롯하여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캠프에 25만 명이 수용되었다. 여기서는 살해의 위험은 없었으나 생활은 고달팠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중동부 유럽 출신자를 중심으로 13만여 명이 고국으로 떠났다. 나머지는 유럽 국가나 미국으로 떠났다. 소련의 유대인들도 소련이 해체되며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홀로코스트에서도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은 또 다른 고통을 마주하였다. 우선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여야 했다. 종교적인 민족 유대인들에게 지옥과 같은 상태에서도 신의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영적 좌절이었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홀로 살아남았다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는 생존자증후군을 겪었고 자살자가 속출했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목숨을 부지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했기에, 사랑하거나 살해당한 동료를 애도하는 감정조차도 없었다.직접 참극을 겪지 않았던 생존자의 후손에게도 정신과 환자가 많았다. 타인과 교감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떨어졌던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가 유전자로 전달된 것이다.1940년대 후반 유대인 생존자가 만들었다는 아우슈비츠 유대인 모습의 대리석 조각을 올린 청동 종을 만났다. 긴 수직 줄이 쳐진 얇은 옷차림의 깡마른 사내가 초점을 잃은 모습으로 무감각하게 시선을 주고 있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만났던 사진 속 수용자의 바로 그 모습이다. 동유럽의 어느 생존자는 아우슈비츠의 아픈 기억을 잊으려, 아니 잊지 않으려 이 종을 만들었다. 말로서는 전할 수 없는 아픔이 담긴 종소리가 퍼져나간다.

2020-01-13 16:51:23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세계의 창] 육지보다 4배 넓은 대구경북 바다

내륙의 중심인 대구에 집중시킨 대구경북인 시야는 육지바라기 긴 해안선을 갖고 있는 대구경북 해양 자원 충분히 이용해야 번영대구경북은 긴 해안선에 면해 있다. 대구경북지역이 갖는 육지 면적보다 바다 면적이 4배가 더 넓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략 생각해보자. 포항의 해변가에서 충청남도 경계선까지는 약 100㎞이다. 우리나라의 영해가 3마일까지였던 때에는 바다 면적이 오히려 육지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1982년 유엔 해양법(이하 82년 해양법)이 적용되는 지금은 기선(해안선)에서부터 200해리(약 370㎞) 바다를 가질 수 있다. 바다가 육지보다 약 4배가 더 많다.공해에는 항해의 자유가 있어 왔다. 영해가 넓어지면서 공해는 줄어들어 연안국의 힘이 세어지고 자유 항해는 제약을 받게 됐다. 82년 해양법 체제에서는 영해가 3해리에서 12해리로 늘어났다. 또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졌다. 기선에서 200해리까지 연안국이 어로, 환경 등에 대한 제한적인 관할권을 가진다. 선박이 항해할 자유는 보장되면서도 생물자원의 보호, 환경, 안전적인 측면에서만 연안국에 배타적 관할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유엔 해양법의 적용을 받는다. 82년 해양법 체제하에서 동해안은 그 전에 가지지 못했던 넓은 바다의 주인이 되었다. 과연 이렇게 4배나 넓어진 우리의 바다를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바다는 오랫동안 어업인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각 군에는 1, 2개의 단위수협과 어촌계가 존재하고 바닷가에서 김이나 미역 등을 채취하여 왔다. 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수산물을 획득했다. 오징어를 건조하거나 꽁치나 청어를 과메기로 건조하여 판매하는 수산물 가공업도 발달했다.이제 우리가 조업할 수 있는 수역이 EEZ로까지 확대되었다. 다른 국가의 어선들은 우리의 허가 없이는 들어와서 조업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작년 러시아의 EEZ 허가권을 14억원에 사서 오징어를 잡아왔다. 이렇게 바다는 재산적 가치를 창출해 낸다.바다를 이용한 상품의 이동, 즉 해운업은 바다 위에서 이루어지는 운송 활동이다. 포항의 바다는 미국이나 중국으로 포스코의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데 중요한 수로가 된다. 후포와 같은 경우 국내 해운의 항구로서 기능을 해오고 있다. 울릉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다닌다. 포항항이나 후포항, 축산항은 어선의 건조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크루즈 산업도 이런 기능 중 하나이다.위 전통적인 수산업과 해운업 이외에 바다를 활용한 해양 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바닷속의 심층수 개발, 심해 양식의 상용화, 바닷속 자원의 개발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울릉도와 독도의 심해 절경을 관광자원화할 수도 있다. 바다를 이용한 레저 활동의 증가, 연안을 따라 천천히 항해하면서 축산항 등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연안 크루즈도 가능하다. 과거 3해리까지만 관할권을 행사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20마일 떨어진 바다에 심해 양식장을 만들 수 있다.바다의 개발과 활용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사무이다. 그렇지만 군이나 도에서 이와 병행하여 개발할 수 있는 여지도 크다. 최근 들어 지방정부도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변화를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경상북도가 바다에 면한 포항에 경북 환동해지역본부를 설치·운영하는 것, 동해안 바다 관련 연구기관으로 환동해산업연구원을 운영하는 것도 바다를 중시하는 탁견이다.대구경북인들은 시야를 내륙의 중심인 대구에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어 왔다. 육지바라기였다. 이제는 시야를 육지에서 바다로 넓혀야 한다. 신라 시대 문무왕이 자신의 무덤을 동해에 만들라고 했다. 그만큼 바다를 중요시했다. 신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수산부인 선부(船府)가 존재했고 번성했다. 해방 이후 동해를 건너 미국으로 인력들이 건너가 선진문물을 익히고 무역대국을 이룸으로써 오늘날 우리나라의 번영이 이루어졌다. 바다를 충분히 이용할 때 우리에게 번영은 찾아왔다. 4배나 넓어진 해양 영토를 충분히 활용하여 해운, 수산, 해양의 중심지로 경북 동해안이 거듭나도록 하자.

2020-01-13 15:55:25

이성재 대구 서부소방서 행정안전팀장

[기고] 작은 관심, 큰 안전

바야흐로 한 해 계획을 구상하는 1월이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새해를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야심 차게 목표를 세울 것이다.필자 역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보람 있게 할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바로 독서와 운동이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미루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었네", "피곤하니까 운동은 내일 해야겠다" 하는 식이다.'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사흘만 지나도 목표는 조금씩 잊힌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덧 새로운 해를 덜컥 맞이하면서 후회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잠깐 책을 읽거나 운동할 시간 정도는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일종의 핑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우리의 생활 속 안전 점검도 이와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앗아가는 화마(火魔), 그 불씨의 시작은 아주 작은 무관심에서 시작된다. 귀찮아서 혹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주 잠깐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겨울철이 되면 화기 사용과 실내 활동이 증가하게 되면서 화재의 위험 요인도 함께 증가한다.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철에 화재 발생 건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특히 겨울철에는 난방용품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이로 인한 화재가 늘어난다.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2014~2018년 전국적으로 겨울철 난방용품에서 발생한 화재 중에서 전기장판·전기히터가 1천603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기열선 1천207건, 화목보일러 1천184건의 순이었다.특히 전기장판, 전기히터 등의 난방용품은 온갖 전선과 발열체들로 이루어져 전선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고, 그 전기를 열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화재 발생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또한 장기간 보관하는 과정에서 접혔던 부분의 열선 피복 손상으로 발열되거나, 전기장판 위에 천연고무 침구류를 장시간 놓아둘 경우 혹은 전기장판 자체의 노후화로 열선이 단선이 되어 화재가 발생하기도 한다.이러한 위험 요소들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작은 관심'들은 무엇이 있을까?우선 겨울철 난방용품은 가급적이면 같은 시간대에 1개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옷장이나 이불, 소파 등 가연성 물질 가까이에서는 난방용품을 자제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난방용품은 반드시 고장 여부를 확인해야겠다.그리고 전기장판은 KC마크와 EMF마크가 있는지 확인하고, 사용하기 전에는 전선의 파열 여부나 장판이 파손되거나 마모된 곳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온도 조절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작동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애프터서비스(AS)를 받아야 한다.화재 예방을 위한 작은 무관심. 이처럼 너무 당연한 것들이지만 우리가 매년 세웠던 야심 찬 새해 목표와 마찬가지로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작은 무관심들이 쌓이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화재가 발생하는 원인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부주의'이다.부주의로 인한 화재는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3년간 2천107건으로 이는 대구에서 발생한 약 4천375건의 화재 중 48%를 차지하는 높은 수치다. 곱씹어 생각해보면 지난 한 해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4천여 건의 화재 출동들이다.경자년 새해, 우리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며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쥐꼬리만큼' 작은 관심이 커다란 화마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도 함께 명심하자.

2020-01-13 15:18:56

김득주 대구예술발전소 운영팀장

[매일춘추] 시간이 만들어낸 공간 '교차된 시선'전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 인생을 걸쳐 매일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 24시간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이야기를 쓰면서 살아간다.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태고의 시간들'은 20세기 폴란드 역사를 관통하여 탄생에서부터 성장, 결혼, 출산, 노화,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여성들의 삶의 여정을 그리는 소설이다. 태고라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이 하나씩 이야기되는데 그들이 살아가는 인간적인 모습과 사건들로 태고라는 마을의 시간들이 채워지는 이야기이다.작가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풀어낸 시간의 흐름은 태고의 마을이라는 하나의 공간이 되고, 소설은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태고의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크워스카의 시간, 플로렌티카의 시간, 루타의 시간, 게임의 시간 등 누구누구의 시간이 촘촘히 엮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게 되고, 태고마을은 그들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공간이 된다. 그렇게 '시간은 공간이 된다'라는 것이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으로 기억된다.대구예술발전소에도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예술가에게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이들 간의 네트워킹으로 각자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예술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레지던시에 선정된 작가들은 매일같이 1년 365일 동안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작업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작가들과 만나게 된다.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는 무용수를 만나본 적이 없어 처음 만나는 시간이 어색하기도 하고, 전통악기 연주자에게는 영상작가, 설치작가가 생소하기만 했다. 같은 장르의 작가에게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작업한다는 것이 그리 자연스럽지만은 않았다.하지만 스튜디오 복도에서 매일같이 굿모닝 인사를 나누고, 점심에는 무엇을 먹었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상의 이야기를 종종 나누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예술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와 다른 장르의 작가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했다.작가들의 수많은 시간이 엮여서 그들의 예술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들만의 예술세계가 모여 하나의 공간이 되어 태고의 마을과 같은 대구예술발전소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입주작가들이 지나온 시간 동안 함께 만들어 낸 특별한 공간을 엿볼 수 있는 전시인 '교차된 시선'이 오는 14일부터 열린다.대구예술발전소에서의 1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들이 던지는 다양한 시선들이 조우하고,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면서 공존하며 대립하는 공간을 창조해냈다면, 그 공간에서 평면, 사진, 영상, 설치, 무용 등의 방식으로 다양한 그들의 생각과 움직임을 예술작품으로 보여주는 전시이다.예술가들의 시간으로 엮어진 작품과 그들이 만들어 낸 대구예술발전소에서의 특별한 공간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제안해 본다.

2020-01-13 11:19:43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랫폼 공동대표

[이른 아침에] 공멸할 것인가 공존할 것인가

지난 한 해 시종일관 싸워댄 정치권사회 전체가 온통 싸움판으로 보여지도자라면 모두가 싸우자고 할 때공존의 길 찾아 보여 줄 수 있어야 '킹덤 오브 헤븐'은 십자군 전쟁을 다룬 영화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이 영화의 막바지쯤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예루살렘은 무엇이오?" 발리안(올랜도 블룸 분)이 불현듯 묻는다. 그러자 살라딘(가산 마소드 분)이 태연스레 "아무것도 아니오" (Nothing)라고 답한다. 그런 다음 씩 웃으며 "모든 것이기도 하고"(Everything)라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 양쪽 모두의 성지다. 발리안은 그 예루살렘을 지키는 십자군의 대장이고 살라딘은 자신들의 성지를 되찾으려 군대를 몰아온 이슬람의 왕이다. 양측은 몇 날 며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하지만 승부는 나지 않고 계속되는 싸움에 병사들의 희생만 늘어 갔다. 게다가 도시마저 점차 파괴되자 두 사람은 결국 얼굴을 마주한 채 협상을 시작한다. 발리안은 예루살렘을 내어주고 살라딘은 기독교인들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할 것, 둘은 그렇게 합의함으로써 상황을 타결한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살상과 파괴도 막을 내린다. 위의 장면은 협상을 막 끝내고 돌아가던 살라딘을 향해 발리안이 혼잣말처럼 던지는 질문으로 시작된다.사실, 종교적 또는 상징적 의미를 제외하고 나면 예루살렘이 그리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땅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이교도를 모조리 멸해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발리안은 기독교인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으로, 그리고 살라딘은 이슬람의 자존심을 지켜낸 것으로 충분했다. 그들은 그들과 그들 세상의 평화와 번영을 원했고 그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할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둘은 서로 통했고 의표를 찌르는 질문과 절묘한 답변이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비록 영화 속 이야기지만 천 년 전에도 그랬다. 상대를 쳐서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상을 덮을 때도 그렇게 하면 결국은 공멸하고 만다는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지도자들이 있었다.조금 뜬금없을지 모르겠으나 올해는 우리 정치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지난 한 해 국회는 문 연 날 치고 안 싸운 날이 없다시피 했다. 심지어 문을 열기 전에도 싸웠고 문을 닫은 후에도 싸웠으며 급기야 문을 어떻게 열 것인가와 어떻게 닫을 것인가를 두고도 싸웠다. 물론 국민을 대신해 싸움도 하라고 국회로 보낸 국회의원들이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였다. 그들은 등 뒤로 수천 만의 국민이 지켜보고 있거나 말거나 한 번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들끼리만 웃다가 삐치고 화내고 비난하더니 결국엔 몸싸움까지 해가며 시종일관 싸워댔다. 예전에 한 초선 국회의원이 그랬다. 그 안에 들어서면 그곳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고.여론조사기관들과 미디어도 한몫했다. 눈만 뜨면 정당 지지율과 대통령 지지율이 보수 대 진보, 몇 대 몇으로 나뉘어 흘러나왔다. 마치 격투기 선수들이 매 라운드 상대를 가격해 따낸 점수처럼 말이다. 때론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체가 온통 싸움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더구나 보수와 진보는 실체조차 모호하다. 정치적 이념이 실제적 의미를 지니려면 그것에서 그 사람의 정치적 행위가 비롯되고 그것으로 그 사람의 정치적 선택이 매듭지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이념에 따라 정치적 선택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정치적 선택에 따라 이념이 달라진다. 그러니 누가, 무엇 때문에, 왜 그 편에 서서 싸우는지 설명이 안 된다. 심지어 보수 정치인도 보수의 가치를 모르고 진보 정치인 또한 진보가 뭔지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여론조사기관들은 새해에도 변함없다. '당신의 이념적 성향은 무엇입니까?'를 무슨 인적사항 묻듯이 반복한다. 다른 결괏값들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리고 굳이 그게 필요하다면 그 값을 구해내는 건 자기들 몫의 일일 텐데 말이다.올해는 총선까지 있는 해라 더 난망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좀 하자. 그까짓 이념, 배고플 때 밥 한 그릇만도 못 한 것 아닌가? 역사에서 증오와 저주, 대결과 적개심이 시대정신을 대신했던 적은 없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모두가 싸우자고 할 때에도 협상하고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공존의 길을 찾아내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올해는 그렇게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한다.

2020-01-12 15:43:27

박창원 문화도시 심의위원

[기고] 대구는 문화도시에 재도전해야 하나

'모든 도시는 특별하다.'문화도시 추진의 모토였다. 지역문화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살려 도시 브랜드를 만들고 사회경제 활성화로 연결되어야 하는 당위성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 한들 모든 도시를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꺼내 든 것이 문화도시 지정이었다. 지원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재정이었다. 적지 않은 돈을 그것도 5년 동안 지원하기로 했다. 지역의 도시들은 솔깃했다. 게다가 단체장들은 덤으로 업적 홍보를 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2018년 5월 문화도시가 첫발을 내디뎠다. 문화도시의 지정 근거는 2014년 만든 지역문화진흥법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예비사업자로 19개 지방자치단체가 신청을 했다. 서류와 현장 평가를 거쳐 10개의 예비도시가 선정됐다. 대구와 포항이 포함됐다. 작년에 이들 도시는 1년 동안의 예비도시 성과와 사업의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받았다.지난 세밑에 발표된 전국 7곳의 문화도시 선정은 이 같은 과정을 거친 결과였다. 대구경북에서는 포항이 선정된 반면 대구는 탈락했다. 포항처럼 문화도시로 선정되면 앞으로 5년간 재정 지원을 받는다. 올해는 국비 100억원으로 선정 도시에 균등 지원한다. 국회에서 50억원의 예산 증액이 막판에 무산되어 액수가 늘지 못했다. 매칭 사업이므로 각 도시별로 평균 30억원 정도의 예산은 마련되는 셈이다. 내년에는 도시에 따라 차등 지원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포항과 달리 문화도시에서 탈락한 대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문화도시에 재도전하는 길이 있다. 말하자면 기존의 문화도시 추진 계획과 과정을 새롭게 고치고 보완해 재수를 하는 것이다. 예비심사를 통과한 뒤 탈락하면 한 번 더 예비사업을 연장하고 심의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번 문화도시에서 탈락한 3개 도시 모두 재신청을 할 경우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진다.기초단체가 아닌 광역단체로 심의를 받은 도시는 대구가 유일했다. 지난해 예비도시 신청에서 3개의 기초단체를 묶어 문화도시를 신청한 광역시는 있었지만 탈락했다. 무엇보다 예산 규모 면에서 광역시가 추진하기에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문화도시 선정을 위한 최종 발표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언급이 있었다.대구처럼 광역시가 조성할 수 있는 문화도시의 장점은 적지 않다. 구군 전체를 아우르며 소외 지역이나 기초단체가 손대기 힘든 콘텐츠를 찾아 주민들의 문화 향유와 참여를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를 지역적 공간으로 뚜렷이 나눌 수 없는 마당에 구군을 고르게 배려하고 함께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번에 대구는 이 같은 광역시로서의 고유성이나 장점을 다 보여 주지 못해 탈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따라서 문화도시 재신청을 포기하는 것 또한 고려할 수 있다. 대구시가 재도전하면 구군은 문화도시 신청 기회조차 없다. 문화도시에 도전하려는 기초단체는 대구시의 탈락을 반겨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 된다. 문화도시는 앞으로 해마다 한 차례씩 3번의 예비도시 신청 기회가 남아 있다. 이론적으로는 대구의 2, 3개 구군이 문화도시로 지정되어 예산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전국 30개 안팎, 광역시도별로는 2, 3개의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방침과도 일치한다. 대구시의 선택과 집중을 주시하는 이유다.

2020-01-12 15:30:31

[금융칼럼]2020년, 자산배분투자로 시작해보자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난해는 한결같이 힘든 시간이었고 수익보다는 손실이 큰 한 해 였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미중 무역분쟁, 일본과의 무역마찰, 바이오산업 이슈, 그리고 지난 8월 코스닥 시장 사이드카 발동 등 크고 작은 사건들로 변동성이 매우 큰 시장이었다.그런데 실제 2019년 주식시장 성적표를 살펴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연초 대비 1년동안 코스닥 지수는 0.86% 소폭 하락했지만 코스피 지수는 7.67%상승했다. 1년 내내 이슈를 만들면서 투자자들을 힘들게 했던 미중 무역분쟁 당사국인 미국 S&P500지수 28.88%, 중국 상해지수 22.30% 으로는 등 주식시장에서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물론 연초 낮은 주가에서 출발한 기저효과도 있지만, 한 해 동안 불안한 뉴스들로 시장을 어둡게 만들었던 상황들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다.항상 투자를 시작할 때는 장기 투자할 것이고 급락이 발생하면 꼭 용기를 내서 추가로 투자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만약 작년에 그 다짐을 지켰더라면 분명히 충분한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하지만 현실에서는 예상치 못한 큰 하락 장이 펼쳐지면 그 굳은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용기를 내기는커녕 겁에 질려 시장에서 도망치고 손실을 보는 일을 반복한다. 지나고 나면 항상 때늦은 후회를 하지만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해도 잘 개선되지 않는다.우리는 위협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도망가고 군중과 함께 집단으로 행동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선조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용기 내어 투자해야 한다는 원칙을 잘 알고 있더라도 행동하기는 매우 어렵다.그럼 어떻게 하면 본능을 거슬러서 투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 답은 자산배분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식을 투자를 할 때 채권이나 달러처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에도 일정 부분 배분해서 투자를 해보자.주식이 급격하게 떨어질 때 다른 자산이 상대적으로 상승하면서 하락폭을 상쇄시켜 손실률과 심리적 불안감을 상당부분 완화 시켜준다. 이때 상승한 자산을 팔아서 하락한 주식을 살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자산배분 덕분에 폭락장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틸 수만 있어도 투자에는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역사를 돌아보면 폭락장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결국 자산배분은 파도(변동성)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목적지(성공투자)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좋은 수단이 된다.올해도 늘 그래왔듯이 주식시장은 여러가지 예상치 못한 이슈들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할 것이다. 지금까지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잘 견디지 못하고 투자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면 2020년은 투자원칙을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적절한 자산배분으로 한 해를 시작해보기를 추천한다.대구은행 본점PB센터 서창호 PB팀장

2020-01-12 14:36:45

비단에 채색, 118.2×60.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정홍래(1720~?) '욱해창응'

영조시대에 활동한 화원화가 정홍래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림이다. 정홍래는 매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이 '욱해창응(旭海蒼鷹)'과 비슷한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2점 더 있고, 간송미술관에도 '해응관일(海鷹觀日)'이라는 제목으로 1점 소장되어 있다. 본(本)이 있어서 되풀이 그려진 수요가 많은 그림이었던 것이다. 모두 값비싼 화견(畵絹)의 비단 바탕인데다 규모도 커서 왕실을 비롯한 최상류층이 수요처였을 것이다. 붉은 색과 청록색, 갈색과 흰색 등 짙은 채색의 화려함, 섬세하고 치밀한 붓질의 정교함, 매의 깃털과 파도 묘사에서 보이는 도식화된 정연함과 규칙성이 주는 정돈된 맛 등이 특징이어서 장식성과 사실성이 적절히 조합된 화원화풍의 세련미를 잘 보여준다.솟아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바다 가운데 솟은 바위에 앉아 있는 매를 그린 이 그림의 쓸모는 삿된 것이 범접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벽사(辟邪)의 용도이다. 매는 해안가 절벽에 서식하는 우리나라 텃새여서 바다의 일출과 잘 어울린다. 세시풍습의 그림으로 세화(歲畵)가 있었다. 세화는 새해를 맞이하며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고급한 감상화도 있었고, 부적처럼 문에 붙이는 일회용 문배(門排), 문화(門畵)로도 그려졌다. 중국에서는 연화(年畵)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인쇄로 된 장군 그림 등 연화를 정초에 문에 붙인다.매는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사나운 새임에도 죽은 고기를 먹지 않고, 새끼 밴 것을 잡지 않는다 하여 영물(靈物)로 여겨지며 한국인에게 경외와 사랑을 받았다. 높이 떠 있다 날쌔게 낙하해 조류와 들쥐, 토끼 등을 사냥하는 것을 보며 매가 인생사의 삼재팔난(三災八難) 또한 그렇게 낚아채기를 바랐던 것이다. 매는 부적에도 애용되었는데 부적에서는 몸통 하나에 머리가 셋인 삼두매로 그린다. 삼재가 든 해에는 이 삼재부(三災符)를 집 기둥이나 문에 붙이기도 하고 몸에 지니기도 했다.그림과 풍속으로까지 매가 스며든 것은 낯설지 않으면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 같다. 유능한 사냥꾼인 매는 몸집이 작아 거추장스럽지 않았고 길들일 수 있어서 삼국시대이전부터 사냥에 활용되었다. 매사냥은 고급 스포츠였다. 길들인 매를 어깨에 앉히고 산과 들로 말을 달리며 토끼를 잡고 꿩을 사냥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신난다. 매와 연관되는 말도 많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치미와 보라매, 송골매, 산지니, 수지니, 수알치, 매받이 등 순 우리말은 그만큼 매와 함께한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려준다. 문(文)보다는 매 사냥을 즐긴 무(武) 성향의 소장자들에게 매 그림 인기가 더 높았을 것 같다. 미술사 연구자

2020-01-12 06:30:00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광장] 인권의 시대

2020년 새해가 희망차게 밝았지만 새해를 전후한 우리의 뉴스는 여전히 어둡다. 한 가족은 빈곤과 빚 독촉에 몰려 삶을 마감하고, 살해의 위협을 피해 한국으로 온 한 인도 가족은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또다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지구 한쪽에서는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있다.지난해만 해도 세상을 얼마 살아보지도 못한 아이는 친부모 손에 고통을 당하다 목숨마저 잃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건물 옥상에는 여전히 사람이 노동하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주거의 안정을 잃어버린 이들은 철거를 앞둔 건물 앞에 주저앉아 있다.학생들의 성적과 두발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증명은 여전히 힘들어 보이는 데도 각 학교에서는 성적 향상을 위한 두발 단속이 실시되고 있다. 조사한 사건 중에는 흡연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소변검사를 강제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기본권인 학생 인권을 논의하면 교권이 갑자기 같이 등장하기도 한다.수많은 청년들은 '수저'라는 신종 계급론에 의해 각자의 고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었다. 가정을 꾸리려던 이들도 벌이로 감당할 수 없는 집값의 무게에 행복을 미루어야 했다.여성들의 삶 역시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여성은 아름다움이 미덕인 듯 칭송하고 있다. 남녀평등한 세상이고,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했다는 뉴스 아래에 여성은 아직 밤길이 두렵다. 한국의 취업률과 평등지수 역시 OECD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하는 이들도 노동에 의해 자유로운 삶이 아닌, 노동에 예속된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내가 가진 휴식의 권리를 행사함에도 사측의 눈치가 보이고, 쉬는 동안에도 울려대는 핸드폰 메시지를 무시할 수가 없다.올 한 해 조금씩 인권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것이다. "저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인사할 때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 편하지만은 않다. 인권은 낯설고 힘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배어 있다. 인권은 아직도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고, 인권을 이야기하면, 먹고살기도 힘든데 배부른 소리라는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기도 했다. 앞서 세상 살기 고단한 이야기를 나열한 것들은 바로 이 인권이라는 영역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례들이다. 즉,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면 오히려 먹고살기 편해지는 세상이 된다.우리의 삶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는 사소한 불편함부터, 끔찍한 인간 존엄의 훼손까지 인권의 가치는 두루 작동한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해 일을 한 후 장을 보고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에도 인권의 원리는 작동한다. 저 멀리 멕시코의 국경과 중동의 전쟁 난민 혹은 과거의 대량학살과 인종차별에도 인권의 가치가 논의된다. 인권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기본 원리이자 가치 기준이다. 어렵고 낯선,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잘살기 위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로 인식해야 한다.덧붙여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인간의 존엄이 말살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1948년 만든 약속이 세계인권선언문이다. 선언문 중에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고(14조),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22조). 7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우리 사회는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야기해야 하는 인권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2020-01-10 15:11:43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매일춘추] 값진 선물 '추억'  

세상이 힘들어짐을 느낄 때 사람들은 추억을 회상한다. 사람이 그리워하는 이유는 '추억' 때문이고, 세상이 미워지는 이유도 치유받지 못한 상처에 대한 아픈 '추억' 때문이다.늘 해가 바뀌면 나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새로운 날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행복한 감성으로 세상에 나를 맡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과거 학창 시절 새 학기 노트에 첫 장을 펼치는 느낌으로 새해에는 '추억'과 '희망'에 대한 감사함에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이다.요즘은 트렌드라는 말로 '추억'을 재생산하고 이를 통해 물질적 풍요를 얻는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감을 주는 단어가 '추억'이 아닐까 한다.최근 TV를 보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자신의 '추억'을 얘기하시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새벽에 일찍 무거운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던 그는 자신이 나름 경제력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어 택시 기사에 대한 내면적 우월감이 있었다고 했다.조용하고 상쾌한 새벽 공기와 그 분위기를 느끼며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그에게 택시기사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불편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성의 없이 답변해야 하는 그 시간이 불편하게만 느껴진 것이다.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택시에서 내리며 택시비 6천900원을 결제하면서 7천원을 주고 내렸다. 그런데 그때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차에서 내려 그를 부르며 환한 웃음을 짓고 다가온 택시기사가 한 행동과 말이 그의 인생의 소중하고 값진 '추억'이 된 것이다.그 택시기사는 따뜻한 온기가 있는 손으로 자신의 손을 잡으며 동전 200원을 환한 웃음과 함께 쥐어주며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잔 하시고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라고 했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느낌으로 한참 서있었다고 한다.자신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택시 기사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삶을 깨닫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값지고 소중한 '추억'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운 듯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 자판기 커피 가격이 300원이라서 100원 모자라 커피를 마실 수는 없었다고 자신의 값진 선물 '추억'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사람들은 이렇게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미래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또한 사람들은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추억'은 인간의 지친 삶의 단비와 같은 귀한 '기억'이 된다.고단한 우리 세상살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밖에 없는데도 늘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추억에 대한 기억은 자신을 바꾸는 귀한 힘이 된다.

2020-01-10 06:30:00

[기고] 겨울왕국을 꿈꾸는 시골 간이역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는 여우천이 흘러 내려와 갈라진다 하여 '분천'(分川)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이곳 분천리에 1956년 1월 영동선 개통과 함께 생긴 분천역은 봉화와 울진 등지의 목재를 전국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몰려들었고 1970년대 큰 호황을 누리다가 벌목업의 쇠퇴와 정부의 석탄합리화 정책에 따라 열차가 줄면서 분천역 간이역이 있는 이곳은 하루 10여 명이 이용하는 조용한 산골 작은 마을이 되었다. 그러던 1991년 어느 봄날, 분천역 앞에는 거대한 바위산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길을 지나던 점쟁이가 이를 보며 "저 산 모양이 호랑이를 닮아, 사람들이 무서워 이곳에 오지 않는다. 저 산을 잘라 깎아내리면 이곳에 천호가 들어설 것이다"라고 하였다. 때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자갈공장이 들어서게 되어 산을 깎아 자갈을 채취하였고 호랑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되었다.20여 년이 흐른 2013년에는 V-Train과 O-Train 관광열차가 개통되었고, 다음 해인 2014년 12월 20일에는 산타마을과 산타열차가 생겨나면서, 불과 50여 일 만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전설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올해로 6회째를 맞은 분천 한겨울 산타마을의 실제 이야기다.봉화군을 가로지르는 영동선은 분천역을 비롯해 13개의 간이역이 있으며, 낙동강 상류를 따라 전국 유일의 천혜의 협곡을 안고 있다. 봉화군 발전의 걸림돌이 될 것만 같았던 영동선을 활용해 지역 발전의 기회로 만들어 보자는 의견들이 모여 코레일, 산림청, 경북도청과 함께 힘을 합쳐 2014년 산타마을을 만들게 되었다.조성 첫해에만 10만6천여 명이 찾아왔고, 이후 매년 여름, 겨울마다 1, 2개월간 산타마을을 운영하여 78만여 명이 다녀갔다. 핀란드가 있는 유럽 관광객들도 산타마을 유명세를 듣고 찾아왔으며, 2016년에는 산골마을로선 이례적으로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지로도 선정되어 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기도 하였다.이에 만족하지 않고 분천 산타마을을 국제적인 관광지로 육성하기 위해 '분천 산타마을 관광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겨울왕국 분천 산타마을의 관광명소화는 산타마을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산타마을뿐만 아니라 산타마을을 통해 봉화군의 미래 먹거리인 관광산업의 교두보를 만드는 중요한 사업이다.이 사업은 분천 산타마을을 지나가는 관광지에서 체류형 관광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강조를 두고 있다. 중점 콘텐츠로는 산타스퀘어(광장), 산책로, 북유럽형 레스토랑, 루돌프 미니기차, 옹달샘 물놀이장, 요정마을 조성 등을 주된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미 도비 50억원을 지원받아 준비 중이고 2022년까지 사업이 마무리되면 산타마을은 국내 유일의 산타 이미지 확보와 함께 놀이시설뿐 아니라 휴식하고 먹고 즐기는 가족 체류형 관광 장소로 인기를 얻게 될 것이며 지역 경제 활성화도 기할 수 있는 겨울왕국이 될 것이다.올해 한겨울 산타마을은 지난해 12월 21일 개장식을 시작으로 2월 16일까지 58일간 운영된다. 매일 산타썰매, 알파카 먹이주기, 산타딸기 핑거푸드 만들기, 전통 민속놀이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운영되고 있으니 경자년 올겨울은 가족과 함께 이색적인 겨울 추억을 만들며 겨울왕국을 꿈꾸는 시골 간이역의 새로운 변화도 응원해주길 바란다.

2020-01-09 17:11:12

나태주 시인

[춘추칼럼] 빨라도 너무 빠르다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한국 사회그러다 보니 집단 어지럼증 앓아자신을 느긋하게 좀 살펴야 한다그래야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와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속도 제일주의, 조급증이다. 도무지 진득하지 못하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뚝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참지를 못한다. 기다리지 못한다. 특히 남의 일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그러고는 쉽게 결론을 내리고 돌아서 버린다.우리가 예전에도 그랬을까? 내가 살기 이전 세상은 모르겠거니와 내가 어려서 보아온 세상은 조금은 여유가 있고 그윽한 정취가 있었던 세상이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웠으며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과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이렇게 조급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우선 자동차가 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번 서울서 저녁 행사를 마치고 후배 시인이 운전하는 자동차 편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귀가한 적이 있다. 마침 밤이었고 그 운전자가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사람이라서 한껏 속도를 낮추어 한참을 달렸다. 많은 차들이 비켜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차를 세웠을 때 경찰 한 사람이 다가와 후배 시인을 불러세우는 거였다."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해서 왔습니다. 혹시 약주를 잡수셨습니까?" 그러더니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결과가 술을 먹지 않은 것으로 나오니 다시 물었다. "혹시 몸이 아프신 건 아닙니까?" 후배 시인이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경찰은 몇 마디 조언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느만큼은 속도를 내어 달려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를 합니다."나는 옆에서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내가 보기론 정상적인 속도로 달리는 것 같던데 그것이 신고의 대상이라니! 그러니까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으로 통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으로 통하는 실례라 하겠다. 우리들 사는 세상이 모두 이렇다.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자동차가 웬만큼 달려서는 달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갑갑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그건 마찬가지다.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도 그렇다. 컴퓨터가 얼마나 빠르고 좋은 기계인가. 그런데도 컴퓨터가 느리다고 불평한다. 도대체 얼마나 빨라야 빠른 것이 될 것인가. 이는 속도 불감증 수준이다. 일 처리 하나하나가 그렇고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이 모두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빨리만 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지 모르겠다.그렇다고 속도를 아주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나 빨리 가자는 말을 하고 싶다.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지금 충분히 빠르다는 걸 알게 되면 저절로 속도가 조절될 것이다.무엇보다도 자신을 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의 방책이 나오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무조건 서두르고 빨리만 가자고 재촉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잘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족감을 느끼고 불만을 말한다. 심한 경우는 화가 나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우리들의 속도감에 있지 않나 싶다.'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이것은 괴테의 충고다. 방향을 잘못 정하고 속도만 낸다면 망하는 길이 빠를 뿐이다. 속도를 좀 줄이자. 쉽게 줄어들지 않겠지만 지금 내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조절을 해보자.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러다 보니 어지럼증을 앓는 것이다.

2020-01-09 16:20:39

박천 /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peel – 그 경계를 상상하다

"나는 선을 넘는 사람들, 제일 싫어하는데…."지난해 개봉한 영화 '기생충' 대사의 한 대목이다. 영화 '기생충'은 장면 장면마다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 가능한 메타포를 심어뒀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직접적인 답안은 배제하고, 다양한 여지를 넓게 두었던 영화였다. 때문에 한국을 배경으로 진행되지만, 세계적인 공감을 얻어내며 각종 권위 있는 국제적 영화제에서 우수한 상들을 수상하게 되었다.그런데 심사위원들은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본 것일까? 아니다. 그들의 상황과 개인적 지식을 통해 영화를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프로세스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일까?인간은 일련의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대상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인종, 언어, 문화, 국가, 성별 등 다양한 요소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난해함 속에서도 인간은 늘 공통된 본질, 즉 진리를 찾고자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이러한 진리와 마주하여 늘 새로운 상상과 시도를 탐구하는 영역이 바로 예술이다.예술은 사냥이나 주술적 목적 등을 위한 삶의 방식으로 시작되어 비례와 형식을 통해 아름다움의 구조를 이해하려 했고, 이러한 이성적 패러다임에 반하는 형식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이런 질문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전시가 있다. 수성구 범어역에 위치한 021갤러리에서 박동삼, 이병호, 이환희 작가의 작업들을 선보이는 'peel – 그 경계를 상상하다'라는 전시이다. 제목에서부터 내용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는 '형(形)의 현상과 본질을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어떤 대상에서 껍데기를 벗겨내고 남은 알맹이는 구분되어 인식해야 하는지 혹은 구분된 두 요소가 어쩌면 같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봄에 있어 피상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지, 혹은 그 속에 숨겨진 맥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인간은 선을 긋고 나눔으로써 세계를 인식한다. 하나의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비교 대상을 둠으로써 비교적 쉽게 인식하지만, 비교 대상이 명확하지 않게 되는 지점에서 인식의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인간은 각자만의 가치관과 지식을 통해 대상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함에 있어 인상 깊을수록 바라보는 입장은 획일화되고, 평범하거나 소소한 것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해진다. 전시를 통해 드러내는 작가들의 본질에 대한 접근 방식이 모두 다르듯이, 우리 역시 각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시를 보며 자신의 시야를 객관적으로 구분지어보는 것은 어떨까.

2020-01-09 12:45:34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경자년 새해 운세 어떠신가요?

"나는 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했다. 내 인생에는 기회와 선행의 운이 있었는가 하면, 한평생 팔자를 고쳐볼 행운이 허용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는 잔인한 운이 있다는 것이다."컬러 오브 머니, 스팅, 타워링 등 수많은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폴 뉴먼의 말이다. 그는 '내일을 향해 쏴라'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골든 글로브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면서 배우로서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다. 56년간 60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40회가 넘는 수상 경력을 가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였다. 그는 배우로서 멈추지 않고 영화감독으로서, 카레이서로서도 활동하였다.2008년 폐암 투병 중 83세로 사망한 그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또 하나 있다. 사회적기업가라는 이력이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만든 샐러드 드레싱을 먹어본 친구가 그 맛에 반해 샐러드 드레싱 사업을 제안하였고, 1982년 뉴먼스 오운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제품을 출시하였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본금 1만2천달러로 시작하여 창업 10년 만에 총매출 1억달러에 수익 1천200만달러를 달성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사업을 시작하기 몇 년 전, 자신의 외아들을 약물 남용으로 잃었던 그는 사업의 성공이라는 행운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일을 시작하였다. 비영리재단을 설립하고 청소년 약물 오남용 방지와 치유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도록 회사의 이익을 기부하였다. 1985년에는 늘어난 수익금 전액을 어린이 무료 캠프 운영에 기부하였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나오는 비밀 은신처 이름에서 따 온 '벽 속의 구멍 갱단'(Holl in the Wall Gang) 캠프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난치병이나 희귀병으로 병마와 싸우는 어린이들을 무료로 캠프에 초대하여 추억을 만들어주는 활동을 전개하였다.그렇게 아픈 아동을 위해 시작한 캠프는 이후 미국 전역과 해외까지 지부가 설립되는 국제아동기구로 성장하게 된다. 그의 삶은 행운과 불운의 간격이 그리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들을 잃은 불운에 허우적거리며 인생을 낭비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인 부와 명예를 사회적인 선한 영향력으로 승화시켰다.그의 드레싱 회사가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4천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재미 삼아 시작한 일치고는 그 결과가 가져온 사회적 영향력은 엄청나다. 폴 뉴먼은 흔히 미국의 부호들이나 셀럽들이 하는 단순한 일회성 차원의 기부금 납부로 그치지 않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회사의 수익금을 기부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자신의 재단과 기업을 통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사회사업을 운영하였다.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사회적기업으로서 폴 뉴먼의 사례는 사회적기업 교재에서 자주 인용된다.그렇게 돈 많은 사람이니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환원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 정도의 부, 명예가 있다면 할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아직 필자도 폴 뉴먼 정도의 부와 명예를 누리지 못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과 실천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는 "나는 운이 무척 좋았고 나와 같이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자신이 가진 것을 행운으로 인식하고 행운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회적기업이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세밑이나 연초가 되면 우리는 항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새해 운세를 보면서 행운을 바란다. 하지만 때로는 기대치 않던 불운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 인생에 찾아온 행운도, 타인에게 찾아온 불운도 우연히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나의 우연한 행운이 누군가의 불행을 포용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행운에 대해서 조금은 겸허해지고 타인의 불운에 대해서 배려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까.독자 여러분, 2020년 행운 가득하시고 그 행운을 나누어주는 한 해 되길 바랍니다.

2020-01-08 18:00:00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불가사의 인도]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두 가지 사슬 이도수

예전 하와이대학 도서관에서 친해진 동갑내기 인도인 친구와 하찮은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힐 만큼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같이하기 위해 인도 음식점에 들어갔다. 식당 주인과 상의하여 메뉴를 정하기 위해 카운터에 다가가며 그의 가방을 내 발 옆 바닥에 두었다. 그가 돌아와 맞은편 자리에 앉기에 내가 무심코 그의 가방을 내 발로 밀어 그의 곁으로 보내주었다. 그 순간 그가 발끈하며 "아니, 저주의 발로!"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에 내가 "뭐, 저주의 발이라고?"라며 대꾸했다.그는 곧 이민족 간의 문화충돌 사건임을 깨달은 듯, 그가 화낸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의 설명 요지는 악명 높은 인도 신분제도를 인체에 상응시켜 해설하는 내용이었다. "인체의 발은 불가촉천민 달라트에 해당한단 말이야. 친구가 발로 내 책가방을 밀친 행위는 불가촉천민이 최상층 신분 브라만에게 발길질을 한 행위에 비견할 수 있어." 이에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무슨 근거로 그런 억지 이론을 펴는지 따져 물었다.이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약 3천500년 전까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떠돌며 유목생활을 하던 서양 혈통 아리아족이 인도에 쳐들어와 온순한 동양 혈통 정착 농경민족 드라비다족을 정복했다. 서양 혈통의 백인 아리아족이 동양 혈통 황갈색 드라비다족을 지배하기 위해 내세운 통치 이념이 인체 구조에 상응시킨 계급 구분이었다.아리아족의 고대 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아리아 고대 경전 "베다"를 해설할 줄 아는 극소수인들에게 '브라만'이라는 최상층 계급을 부여하고, 이들을 사람 머리에 해당된다고 가르쳤다. 그 바로 아래 계급인 '크샤트리아'에게는 백성들을 관리하는 권한을 허용했다. 국왕을 비롯해 행정관료, 치안을 유지하는 군인, 경찰 등이 이 계급에 속하는데 인체로는 심장과 폐가 들어 있는 흉부에 해당된다고 가르쳤다. 그 아래 다수를 차지하는 평민 '바이샤'는 인체 복부에 상응한다고 가르쳤다. 그 아래 피정복민족 드라비다족은 '수드라'라는 천민계급에 처했다. 이들은 발로 뛰면서 지배계층과 평민들의 손발 노릇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중 최하 신체부위인 발은 신체 접촉도 금기시하는 불가촉천민에 상응한다고 가르쳤다.이렇게 친절한 해설을 한 인도 친구가 자기의 해설에 수긍하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기에 나는 이렇게 응답했다. "그 따위 견강부회적인 논리에 속아 3천 년 이상 동안 굴종적인 삶을 살아온 인도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해." 그가 뜨악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기에 내가 이런 말로 한 방 더 먹였다. "모든 인간이 무지몽매하던 원시시대에 선각자인 체하며 자기 논리를 무지막지한 대중들에게 주입시킨 원시사회 규범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3천 년 이상 준수해 온 인도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해. 인도인들은 왜 모든 인간, 심지어 신체부위까지 차등의식으로 바라보는지 모르겠어. 인도인들의 심리를 옥죄는 두 개의 사슬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인도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이에 그가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두 개의 사슬이 뭔데?"라고 반문하기에 내가 이렇게 답했다.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첫째 사슬은 인체 구조에 비유하여 규정한 신분제도라 생각해. 이 신분제도의 기본 가정은 인체의 발이 영원히 머리가 될 수 없듯이 주어진 신분에서 영원히 탈피할 수 없다는 체념에 빠지게 하거든.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또 다른 사슬은 인과응보에 근거한 윤회사상이라 생각해. 이승의 수난은 전생의 업보라며 순종해야 하고, 내세에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서도 현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이니 이거야말로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이중 사슬이 아니고 뭔가? 한국 역사에서도 그런 차별적 신분제도가 있긴 했어. 하지만 18세기부터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평등사상이 확산되었거든." 이렇게 하여 토론에는 지는 일이 없는 인도인 친구가 그날은 웬일인지 반격하지 않았다.

2020-01-08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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