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걱정 말아요 그대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벳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지요. 걱정 없이 살 수 없어서인지 걱정에 관한 명언들이 참 많더군요.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는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걱정 한다'고 했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영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남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들은 그렇게 그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데이모스는 '걱정의 신'입니다. 공포의 신, 불화의 신, 싸움의 신과 늘 함께 다녔지요. 이런 데이모스 포로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심각하고, 엄숙하고, 폭발직전이어서 '되는 일은 없고, 꼬인 일은 자꾸 꼬인다'고 하죠. 그런데 '신'을 얼마만큼 믿나요? 신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버나드 쇼의 말에 빗대자면, 결국 신은 우리가 만드는 거니까 우리가 부모인 거죠. 걱정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걱정의 신을 창조하고 있어요. 상징이나 비유 없이도 '신'이라는 단어를 시에 사용하는 것처럼. 신과 가까운 걱정이 '생활'에게 자꾸 묻습니다. 가령, 집을 나선 후 "가스 불을 껐나?"에서 시작하여 "불이 나면 어쩌지?"란 걱정을 낳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 가스를 확인하게 되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면 "약속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미리 연락해야 되겠지?"하는 식으로 순환되는 걱정의 굴레를 살아갑니다. 어떤 불확실이 불행의 결말로 끝날 것이라는 막연함은 해롭지만, 생각 자체가 1도 없는, 긍정의 긍정은 오히려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무력화시키기도 합니다. 행복한 삶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걱정의 대부분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요.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퍼센트는 절대 일어나지 않고, 나머지 걱정의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하지요. 22퍼센트는 사실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고민이고, 4퍼센트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랍니다. 시대의 '질병'이 되어가는 '걱정에 대하여'의 저자는 걱정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떨림'의 일종으로 정의합니다. 아직 오지 않거나 올 리 없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절망이 '걱정할 권리'를 포기한 채 정답만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하늘에서 정답이 뚝, 떨어져도 그 정답대로 살아가지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만약 정답대로 산다면, 살아진다면, 걱정이 사라질 수는 있겠지만 내가 '선택할 권리'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걱정이란 놈과 한 몸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걱정과의 '밀당'으로 거리두기가 필요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삽입곡 한 소절을 덧붙여 봅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0-15 10:55:42

가벼운 상처라 하더라도 광견병 접종이 안 돼있으면 심각한 책임이 주어질 수 있다. (사진출처:healthline)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가 퍼뜨린다고요?" 광견병에 대한 오해

동물병원 대기실이 소란스러워 나와 보니 두 가족이 다투고 계셨다. 몽이(1·말티즈)와 짱이(12)가 공원에서 산책 중에 마주쳤는데 어리고 쾌활한 몽이가 다가서자 짱이가 거슬렸는지 몽이를 물려고 달려들자 이를 막으려던 몽이 언니가 손등을 물려버렸다.몽이가 다친 데가 없어 다행스러워 하던 차에 물린 손등을 치료하러 병원에 다녀온 몽이네 가족들은 심각해졌다. 짱이가 최근 몇 년간 광견병 예방접종을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의사는 개에게 물린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고 항생제와 파상풍 주사를 처방한다. 하지만 광견병에 대한 치료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한다. 광견병 항혈청 치료가 오히려 환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광견병에 대한 걱정이 깊어진 몽이네 가족들은 짱이에 대한 광견병 진단검사를 요청했고, 짱이네 가족들은 국내 발병 사례들도 희박한데 왜 그렇게 유난스럽게 구느냐며 반발했다.세계보건복지기구(WHO)는 사람이 개에게 물렸을 때 개가 광견병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하여 개에 대한 광견병 임상진단 검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10일간 동물병원에 입원하여 수의사가 다양한 항목의 임상증상을 매일 평가한다. 10일이라는 기간을 지정한 이유는 개의 타액에서 광견병 바이러스가 배출되는 시기는 광견병의 말기 단계이며 10일 이내에 광조 증상이나 유연 증상 등의 현저한 임상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10일 동안 광견병 주 증상이 발현되지 않는다면 개는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10일 이내라 하더라도 광견병으로 의심되는 임상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물린 사람에게 사실을 전달하여 광견병 항혈청 치료가 지체되지 않도록 전달해야 한다.우여곡절 끝에 짱이는 10일 간의 광견병 임상진단 검사가 이루어졌고 이상이 없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몽이네 가족들은 무척이나 안도했지만, 짱이네 가족들은 불필요하게 고생하고 비용만 썼다며 여전히 불평했다.만약 짱이를 집에 가둬두는 동안 짱이가 사라지거나 갑작스러운 질병이 발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짱이에게 물린 피해자는 위험한 광견병 항혈청 치료를 고민하여야 했고 어느 경우든 책임을 짱이 보호자에게 물었을 것이다.WHO가 수의사에게 광견병 임상진단 검사를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수행하도록 명시하는 이유는 사람의 목숨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며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광견병은 너무나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기 때문에 봄 가을로 반려견에 대한 광견병접종 기간을 정하여 반려인들이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며 접종을 받을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그럼에도 서울시 반려동물의 광견병 항체양성율을 조사해보면 해마다 항체형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국가와 반려인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짱이의 사례처럼 광견병 접종이 안되어 있을 경우 작은 해프닝이라 하더라도 물린 사람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명심하자. 광견병 예방은 내 반려견을 위한 배려이자 이웃과 공익을 위한 펫티켓이다.한편, 2006년 이후 국내에서 사람이 개에 물려 광견병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매년 야생동물들의 광견병 확산을 줄이기 위해 광견병 예방약을 공중 살포하고 있다. 광견병을 옮기는 주 원인체는 개가 아니라 너구리, 박쥐 등의 야생동물이기 때문이다. 광견병의 명칭도 래비스(Rabies)로 바꿔 불러야 할 필요가 있다. 광견병은 모든 온혈동물 간에 전파될 수 있는 바이러스 질환으로 야생동물이 병을 옮기지만 광견병이라는 명칭 탓에 개가 바이러스의 원인인양 오해받고 있다. 그러므로 국제적인 관례를 고려해 이제는 광견병 대신 래비스(Rabies)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행정 기관의 현명한 판단과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부분이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0-15 10:10:56

김재광 경북도 복지건강국장

[기고] 100세 시대, 경로당 행복도우미로!

"너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게다."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황혼의 반란'에 실린 대사다. 명심보감에도 '소년은 노인을 보고 웃지만 노인도 처음부터 노인은 아니었네. 내일이면 그대도 노인이 될 테니까'라는 말이 있듯이 노년은 인생의 한 시기다.우리나라 노인 세대는 급속한 시대 변화를 겪어 왔다. 20세기 우리나라에서 전개된 해방,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숱한 어려움과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헌신과 희생으로 오늘날을 있게 했다.하지만 고령화에 동반한 노인 빈곤, 노인 의료비 부담 가중, 노인 자살률 및 고독사 증가 등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노인 한 사람이 지출하는 진료비가 매월 37만8천원을 돌파하고 인구 10만 명당 58.6명에 이르는 노인 자살률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숙제다.노인복지법 제2조는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여 온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북도는 이분들의 노후를 편히 잘 모시는 것이 후손의 책무라고 생각하고 노인 복지 시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경북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인구는 54만3천 명이다. 도내에는 경로당이 8천67개가 있다. 도내 노인 인구의 58%인 31만5천 명이 경로당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경로당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형태의 노인 여가시설로 마을 단위별로 1곳 이상이 있어 노인들이 자주 이용하고 있다. 마을마다 하나 또는 둘씩 있는 경로당은 오랫동안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로 마을 노인들이 편하게 여가를 보내는 공간이다.2019년 8월 말 기준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15.2%이고 경북의 노인인구 비율은 20.4%이다.넓은 지역을 가진 경북은 농산어촌과 도시가 다양하게 분포돼 있어 노인을 위한 복지 정책도 그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 실시해야 한다. 이에 경북도는 마을마다 있는 경로당을 주목하고 노인 복지 서비스를 되돌아보게 됐다.그동안 노인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경로당에 활기를 불어넣어 그들도 활기차고 밝게 생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하에 과감히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을 시작했다.민선 7기 경북도 핵심 시책의 하나인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은 경로당에 행복도우미를 배치해 치매 예방 등 건강관리와 유익한 여가 활동을 지원하여 경로당이 마을공동체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생활복지형 일자리 사업이다.시군의 노인복지기관·단체가 지역의 청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사회복지 전문 인력, 여가 프로그램 운영자, 교육 프로그램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 경험자를 채용해 경로당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써 노인이 건강하고 즐겁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게 된다.경북도는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지난 3~5월 문경시와 예천군에서 시범사업을 했다. 이를 통해 농촌과 도시 지역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한 모델을 제시하고 23개 전 시·군이 지역 실정에 맞는 모델을 선택해 하도록 했다.아프리카 속담에 '한 명의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한 채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으로 경로당이 더 즐겁고 많은 주민이 이용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어르신들이 활기찬 노후를 영위하고 나아가 재능 기부를 통해 선대의 지식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후대로 전수하는 건강한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2019-10-15 06:30:00

김구철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늘어나는 불신의 숫자들, 민주주의 파괴

언론이라면 사실 보도와 주장 보도를 엄밀히 구별한다. 사실과 수사도 구별한다. 구별 않는다면 사이비 언론이다. 최근 사이비 언론이 부쩍 늘었다.사실과 주장을 교묘히 뒤섞어 국민을 현혹하고, 사실과 수사를 뒤죽박죽해 혹세무민하는 무리가 늘었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언론계 후배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숫자를 제시하고 통계를 인용하라'고 말해 왔다.요즘 고민이 생겼다. 집회에 모인 사람 숫자 때문이다. 필자의 현장 경험으로 한국에서 백만 단위의 인파는 1987년 1노 3김의 대결 당시 서울 여의도 광장의 대규모 유세, 2002년 월드컵 4강 당시 서울 광화문 거리 응원 정도 아닌가 싶다.45인승 버스로 1만 대를 동원해야 45만 명이다. 버스 1만 대면 100㎞ 구간에 늘어서게 된다. 지하철 한 칸에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타면 300명쯤일 것이다. 8량 편성의 지하철이면 모두 2천400명, 지하철이 6분 간격으로 운행하니, 1시간이면 10편, 1시간 동안 승객 전원이 그 역에서 내린다고 가정해도 2만4천 명이다.10시간 내내 내려야 24만 명이다. 지하철이 통째 비워지지도 않고, 10시간 내내 모든 승객이 그 역에서 내리지도 않겠지만. 그러니 잘돼야 서초동 군중은 5만~6만, 광화문은 10여만 명쯤 될 것이다. 불신의 숫자는 군중 집회의 군중 수만이 아니다.현안에 대한 클릭 건수, 댓글 건수, 여론 조사 지지율 등도 못 믿을 숫자들이다. 예산 결산, 사회 통계, 경제 통계도 못 믿고, 투표 결과 집계도 못 믿는다. 통계 불신은 국정을 혼란케 할 것이다.선거 결과 불신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파괴할 것이다. 숫자를 수십 배씩 뻥튀기하고 멋대로 속이는 자들이, 뭔들 못 조작하고 뭔들 못 속이겠는가? 숫자만큼은 제발 속이지 말자.

2019-10-14 18:00:00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대구부민의 유령생활

'대구부의 인구통계에 나타난 대구부민의 직별을 보면 총인구 33만6천524명 중 유직자가 10만9천676명이고 무직이 총인구의 약 7할인 22만6천848명이라는 놀라운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 숫자로 미루어 보아 대구부민은 거의 전부가 유령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9월 25일 자)대구부에 사는 사람 10명 중 7명은 무직자였다.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는 것은 유령생활에 빗대졌다. 일자리 없이 굶주리며 거리를 헤매는 부민들이 넘쳐났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걸까. 해방 이후의 극심한 경제'사회적 혼란의 영향이 첫 번째 원인이었다. 식량난과 물가 폭등은 허약한 경제적 기반을 급속히 붕괴시켰다. 콜레라 같은 전염병의 후유증도 컸다.이렇듯 무직자 숫자가 많은 것을 두고 실제로는 부풀려진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겉으로는 무직자지만 부정 사업 등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부패가 만연한 사회 현실을 꼬집은 것이었다. 모리배들이 물자를 빼돌려 물가 폭등을 부추기며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긴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심지어 부민들에게 나눠줄 사탕마저 가로채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국의 발표조차 불신했다.대구는 조선의 도시 중에서는 비교적 안정된 도시였다. 해방 직후 한때는 전재 동포들의 인기 도시이기도 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며 서울이나 부산 같은 항구도시에 비해 전재 동포의 정착 숫자가 줄었다. 대구는 귀환 동포 등의 외부 유입이 적어 해방 직전에 비해 7만여 명의 인구가 불어나는 데 그쳤다. 그런 점에서 대구의 높은 실업문제는 타 도시와 비교됐다.경북도 전체로 보면 45만 명의 실업자 중에 10만 명은 토착 극빈자였다. 이 같은 극빈자를 빼더라도 무직자는 넘쳤다.토착민이 이럴진대 귀환 동포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토착민보다 실업 비율이 높은 건 당연했다. 애초 대구에는 칠성동과 원대동 등 8곳에 전재 동포 수용소가 있었다. 영주, 김천 등에도 수용소가 만들어졌다. 어디든 가릴 것 없이 수용소의 동포들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 허덕였다.실업문제가 이렇듯 심각해도 당장의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돌아가던 공장은 전력과 원료품 부족으로 상당수 문을 닫았다. 경북도는 실업자 구제용으로 광산 개발을 추진했다. 또 1948년 봄에는 경북후생회가 나서 공장에 600여 명을 취업시켰다. 그때도 건설 현장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유효했다. 대구종합운동장 건설공사에 2천 명의 노동자를 알선했다. 또 대구천 제방공사를 시작해 수천 명의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하지만 이 같은 대구부와 경북도의 노력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중앙정부가 200만이 넘는 전국 실업자의 구호 대책으로 190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데 목을 맨 이유였다. 대구부민은 유령생활을 벗어났다. 그래도 걱정은 남았다. 그 허깨비가 행여나 다시 돌아올까 봐 말이다.

2019-10-14 18:00:00

김문환 세명대 교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양피지…기술개발로 경제전쟁 극복

LG디스플레이가 지난 9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생산에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완전 국산화에 성공했음을 알렸다. 일본이 정치논리 아래 경제전쟁을 걸어온 지 세 달 만의 성과다.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지난 11일로 100일을 넘겼다. 기술 개발이 곧 살 길이라는 교훈은 터키의 서부 해안, 이오니아 지방 페르가몬 유적지에서도 나타난 동서고금의 진리다.페르가몬은 한국인 여행객도 많이 찾는 유적지 트로이와 에페소스 중간에 있다. 현지 이름은 베르가마(Bergama). 작은 시골 도시인 베르가마 신시가지에서 페르가몬 유적지로 올라간다. 길이 가파르다. 그리스인들의 도시는 산꼭대기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형성됐기에 고지대다.헬레니즘시대(B.C 331년~B.C 30년) 문명을 꽃피우던 유적지로 들어가기에 앞서 2천3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B.C 332년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더가 B.C 323년 33세의 나이로 급사한다.알렉산더의 부하 장군들은 치열한 제위 계승 전쟁을 통해 알렉산더 시대에 일군 제국을 나눠 갖는다. 알렉산더 사후 46년 만에 최종 4강 구도가 형성된다.이집트, 파피루스 수출 금지령①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②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③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 ④페르가몬이다.알렉산더 사후 실력자이던 트라키아 리시마코스의 재무 담당 필레타에로스는 주군 리시마코스가 죽자 페르가몬의 통치자임을 선언한다. 그의 아들 에우메네스 1세를 이어 그의 사촌이자 양아들 아탈로스 1세가 B.C 238년 왕위에 올랐음을 선포하면서 페르가몬 왕조로 발전시킨다. B.C 197년 아탈로스 1세가 죽고 왕위를 계승한 큰아들 에우메네스 2세(재위 B.C 197년~B.C 159년)는 아버지가 일군 업적을 토대로 최고 전성기를 일군다.아버지가 전쟁에서 얻은 각종 전리품은 페르가몬을 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에우메네스 2세는 이를 기반으로 학문예술 진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당대 최고의 부국이자 학문을 발전시키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국립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 무세이온(Museion)을 본떠 도서관도 세웠다.에우메네스 2세가 만든 페르가몬 도서관은 20만 권의 책을 소장할 정도로 컸다. 50만 권의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에 이어 헬레니즘시대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었다.에우메네스 2세는 페르가몬 도서관을 발전시키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의 도서관장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스카우트 손길을 내민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당대 헬레니즘 문명권의 최고 인문학자로 칭송받고 있었다. 고전기 그리스 시문학이나 희곡에 정통했고, 그리스어 문법을 정비한 학자였다.B.C 5세기 아테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와는 동명이인이다. 페르가몬 도서관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는 크게 노해 아리스토파네스를 가둔다. 페르가몬이 감히 학문의 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도전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페르가몬에는 파피루스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령도 내린다. 정치적 이유로 무역규제를 가한 것이다.하지만 세상은 늘 반전으로 변화를 일구는 법. 파피루스 수출 금지령은 페르가몬에 전화위복의 계기를 안긴다. 에우메네스 2세는 페르가몬 도서관 학자들에게 파피루스 대체품 발명을 명한다. B.C 190년경 양가죽을 부드럽게 펴 만든 양피지(羊皮紙)다. 물론 이전에도 양피지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페르가몬의 기술 혁신으로 우수한 양피지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페르가몬 기술 혁신 전화위복후한시대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품질을 개량한 것과 같다. 종이는 전한시대부터 제작됐고 채륜의 업적은 공정 단순화와 품질개량대량생산이었다. 기술개발로 경제전쟁을 극복한 페르가몬은 이후 양피지 생산지로 명성과 부를 얻었다. 영어로 양피지(parchment)는 로마시대 라틴어로 페르가몬(pergamenum)을 가리키는 말이 프랑스어 페르가몬(par chemin)을 거쳐 나온 말이다. 양피지 이전 필기도구의 대명사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종이(Paper)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2019-10-14 18:0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兎死狗烹(토사구팽)-쓸모가 다하면 버려진다

인간은 요사한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필요하면 애지중지하다가 쓸모가 다하면 매정하게 버린다. 토사구팽(兎死狗烹)도 같은 말이다. 춘추 시대 말기 월왕(越王) 구천(勾踐)에게는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라는 두 공신이 있었다. 그들은 구천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업을 이루어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어느 날 범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제(齊)나라에 은둔한 범려는 인편으로 문종에게 "새가 없어지면 활은 창고에 처박히고(蜚鳥盡, 良弓藏),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기게 되오(狡兎死, 走狗烹). 그대는 왜 월왕의 곁을 떠나지 않소"라는 편지를 보냈다. 명예와 지위에 연연했던 문종은 범려의 권고를 듣지 않았고 결국 월왕에게 자살을 강요받았다. 문종이 죽고 월나라도 기울기 시작했다.송나라 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은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으나, 그는 늘 자신을 추대했던 공신들에게 불안을 느꼈다. 어느 날 그는 술상을 차리고 그들을 불렀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송태조가 말했다. "그대들이 없었으면 나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오. 그런데 지금 불안하기만 하오." 공신들이 이유를 물었다. "그대들이라고 왜 내 자리가 탐나지 않겠소"라고 했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驚惶罔措) 공신들에게 "그대들의 공은 영원히 잊지 않겠소. 후손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겠으니 이제는 병권을 내려놓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했다. 이튿날 공신들은 병을 핑계로 앞다투어 사직했다. 술상에서 병권을 뺏는다는 배주석병권(盃酒釋兵權)의 이야기다. 송태조는 약속을 지켜 공신들을 원로로 대접했고 300년간 지속되는 송나라의 기틀을 잡았다.조국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매우 시끄럽다. 그들이 검찰개혁의 희생자가 되어 토사구팽될지, 공을 세운 뒤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공성신퇴(功成身退)할지 궁금하다. 월나라는 기울었고 송나라는 흥했다.

2019-10-14 16:48:56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나는 프로아마추어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셀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카메라를 메고 오롯이 홀로 시간을 소비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아무 곳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기도하고 오래된 전봇대 사이를 비집고 싹을 낸 잡초에 나만의 이름을 하사하기도 한다. 무엇을 하기 위해 쫓기던 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즐겁다. 또 사진작가라도 되는 양 바닥에 누워가며 똑같은 대상을 이리저리 구도를 바꿔가며 찍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것들을 사진으로 담기도 한다. 또 다른 사진의 매력은 촬영이 끝나고 찍은 사진을 확인할 때이다. 분명 잘 찍었다고 생각했던 사진도 기대이하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날의 베스트는 항상 예상을 빗겨 간다. 그래서 사진은 찍을 때와 확인할 때, 두 가지 즐거움을 준다. 한참을 멋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에 표시된 여러 기능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마침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그룹레슨에 함께 하게 되었고, 화이트밸런스, 조리개, 셔터스피드 등 이것저것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되자 더욱 흥미가 생겼다. 마치 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종종 듣게 된 '사진 잘 찍는다' 라는 칭찬은 고래만큼은 아니지만 나를 춤추게 했다. 타인에게 받는 인정은 또 다른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만들었고 나를 기준으로 수직으로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의 늪에 빠져 즐거움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마치 어떤 기준을 넘는 수준에 달해야하는 프로사진작가가 된 것 같았다. "왜이래? 아마추어 같이. 프로답게 해!" 공연을 준비하며 실수하거나 긴장하고 있을 때 흔히 듣던 말이다. 도대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뭘까? 아마추어(amateur)는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r)에서 유래했다. 어떤 일을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프로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의 준말로 라틴어로 '고백하다', '공표하다', '선언하다'를 뜻하는 프로페시오(professio)에서 유래했다. 그래. 프로연극인이라면 실수하거나 긴장해선 안 될 것이다. 프로라고 고백한 만큼 수준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단어는 수준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비교를 통한 수준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못된 착각일 수도 있다. 사진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순수한 눈빛으로 열렬히 사랑했던 그때가 그립다. "나는 연극을 사랑합니다" 라고 선언하여 '프로아마추어'가 되어야겠다. 원하지도 않던 프로라는 족쇄에 매여 즐거움을 잃을 순 없으니까.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0-14 11:32:08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북핵 플랜 B를 준비할 때다

합의·파기 거듭하며 핵 발전시킨 北美 압박에 포기? 섣부른 기대 금물동맹 우습게 아는 트럼프 믿기 곤란우리도 자체 핵무장 방안 검토 필요지난 5일(현지시간) 열린 스톡홀름 미·북 실무회담이 별 성과없이 끝났다. 북한 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이날 오후 실무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미국이 빈손으로 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미국이 스웨덴 측의 2주 내 실무협상 재개 초청을 수락한 데 반해, 김명길은 "미국이 판문점 회동 이후 아무런 셈법을 만들지 못했는데 2주 안에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협상장에서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중단으로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취했다며, 미 측의 상응조치가 없으면 실험 재개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다.앞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금년 말까지 시한을 정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이쯤 되면 미·북 회담의 목적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무엇이 북한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자신감과 고압적 자세를 갖게 했는가?첫째는 북한이 핵 무력 완성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간 6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소형화까지 거의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핵탄두도 30개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난 2일에는 동해상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성공, SLBM 실용화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SLBM은 오키나와는 물론 괌, 하와이 그리고 미 본토도 사정권에 둘 수 있다.북한 내 지상 핵무기가 다 파괴된다 해도 SLBM은 북한이 2차 반격을 할 수 있게끔 해 준다. 즉, 상대방이 함부로 공격할 수 없도록 북한에 최소 억제전략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둘째는 안보리 제재의 무력화다. 2017년 말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로 러시아와 중국까지 제재에 적극 가담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향해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 이후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과 2차에 걸친 미·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절차를 밟았다.아울러 지난 6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북 이후 중국 당국은 대규모 식량 원조에 더해 북한 방문 관광객을 대대적으로 늘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다. 이는 결국 외환 고갈 위기에 처한 북한에 안보리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숨통을 터준 셈이다.셋째는 미국 국내정치 상황에 대한 고려다. 김정은은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탄핵까지 거론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에 조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김정은이 금년 말까지 시한을 못박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정치 스케줄을 감안한 것으로 추정된다.결국 2년에 가까운 지난 시간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협상력 강화에 기여한 것으로 판명났다. 지난 20년간 합의와 합의 파기를 번갈아가며 핵 능력을 발전시켜 온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는 북핵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 대비한 플랜 B를 준비할 때다.핵은 절대무기다.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해서는 핵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미국의 핵우산 강화나 자체 핵무장뿐이다.그러나 "동맹은 매우 쉽다"(Alliances are very easy)며 동맹을 언제나 파기 가능한 계약 정도로 여기는 트럼프에 마냥 의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북한 핵이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까지 갖췄을 때, 미국이 과연 희생을 감수하며 우리에게 핵우산을 제공해 줄지 의문이다.그렇다면 우리도 자체 핵무장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같은 동맹국에게 우호적 핵 확산을 허용하는 것이 동북아 핵 세력균형을 이루고, 더욱 효과적으로 북핵에 대응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동맹국 스스로 방위능력을 갖출 것을 주문하는 트럼프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회는 스스로 찾는 자에게 찾아온다.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대사·국제법 법학박사)

2019-10-14 10:35:27

서창호 DGB대구은행 본점PB센터 PB팀장

[금융칼럼] 장기투자는 남의 이야기?

얼마 전 고객과 상담 중에 기존 가입된 펀드 계좌의 높은 수익률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수익률도 놀라웠지만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 어떻게 투자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해서 여쭤보니 고객의 대답이 좀 황당했다. 사실 그분도 펀드에 돈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이렇듯 우리는 장기 투자가 답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을 해서 장기간 유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장기 투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먼저 적은 금액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처음 투자할 때 대부분 의욕적으로 어느 정도 금액은 조금만 아껴 쓰면 충분하게 오랫동안 투자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사회 초년생이라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혼자금이 필요하고, 결혼을 하면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가 나가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모을 수 있는 돈은 지금 생각하는 돈보다 훨씬 적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처음에 생각한 금액은커녕 기존에 투자했던 자금마저 다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장기 투자를 할 목적의 자금이라면 소액으로 해야 한다.이 돈은 내가 평생 부담 없이 넣을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이어야 한다. 10만원이든 20만원이든 아주 오랫동안 넣을 수 있는 돈을 신중하게 선택해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투자에서 복리 효과를 보려면 돈은 크기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두 번째로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 보통 계획을 세울 때는 돈을 아껴서 매월 얼마씩은 꼭 투자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투자를 시작하게 되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오기 마련이다.예를 들어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는데 주가가 단기간에 올랐다면 좀 기다렸다가 주가가 내리면 한꺼번에 사야지라는 생각으로 못 사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주가가 많이 내려가면 더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사는 시기를 미루거나 더 떨어지기 전에 손실을 줄일 목적으로 중도에 환매하기도 한다.지금은 계획대로 잘 투자할 것이라 굳게 믿지만 상황이 바뀌면 생각보다 마음은 더 쉽게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흔들림 없이 무조건 입금하기 위해서는 공과금 납부하듯 자동이체를 이용해서 강제적으로 납부해야 한다. 그래야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투자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투자하는 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확신이 있어야 한다. 주변에서 누군가 좋다고 해서 아니면 금융회사 직원이 추천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냥 투자를 하게 되면 장기 투자를 하기 어렵다. 처음 시작할 때는 편안하게 투자하다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투자금액이 늘어나게 되면 심리적으로 흔들리기 마련이다. 수익이 나면 나중에 떨어질까 두려워 해약하게 되고, 손실이 나면 더 큰 손실이 날까 두려워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가 없게 된다.힘들게 번 소중한 내 돈으로 오랜 기간 투자를 할 수 있으려면 투자처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확신이 꼭 필요하다. 내가 잘 아는 투자처에 평생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적은 금액으로 지금부터 장기 투자를 시작해보자. 지금 계획하는대로 꾸준하게 투자할 수만 있다면 먼 훗날 생각지도 못했던 복리의 마술을 경험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2019-10-13 15:53:05

김원규 대구시의원

[기고]대구 테크노폴리스 현 주소는 어떤가

'테크노폴리스'라는 용어는 일본이 1970년대 후반 산업고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용한 것으로 쓰쿠바(筑波) 연구학원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됐다.세계적으로는 미국의 '하이테크파크'와 '실리콘밸리', 프랑스의 '소피안디폴리스', 대만의 '신죽과학산업공원'이 대표적인 테크노폴리스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1978년 연구기관들이 입주한 대덕연구단지가 최초의 과학도시 테크노폴리스다. 대구도 첨단과학기술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연구기관·대학·기업을 중심으로 주거, 상업, 교육, 문화 등이 조화된 유비쿼터스 환경의 미래형 첨단 과학도시인 대구테크노폴리스를 조성했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2010년 입주했다.대구테크노폴리스가 지역을 넘어 세계 속에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대구테크노폴리스의 현 주소가 어떠한지, 인근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필자는 대구테크노폴리스가 예전에 비해 점점 안정화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개선되어야 할 사항으로는 첫째, 접근성 개선이다. 얼마 전 결혼식장에서 만난 DGIST 교수는 실력 있는 연구진을 영입하려고 해도 접근성이 좋지 않아 이곳 근무를 꺼리는 인재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맞는 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에 오려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서울에서 DGIST로 오려면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하차, 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급행 8번 버스로 환승해 대구테크노폴리스에 내려도 택시를 이용하지 않고는 DGIST에 갈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두 번째는 정주여건의 개선이다. 이곳은 내집 마련의 기회로 삼고 이주한 젊은 세대들이 많음에도 대구에서 가장 과밀한 학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학교는 어린이들을 전부 수용할 수 없어 급식실 특수목적교실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으며, 급식을 전교생이 교실에서 배식받아 먹을 정도로 열악하다.앞으로 학령인구가 늘어갈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이므로 학교 신설은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또한 인구 6만 명의 신도시에 종합병원 하나 없고, 지구 조성 당시 시행사가 어떻게 도시계획을 설계했는지 몰라도 주민이 90% 이상 입주했음에도 상업지구는 아직도 30% 이상이 공터로 방치돼 있다. 신축한 건물은 50% 이상이 공실이다.세 번째는 인근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대구테크노폴리스가 지구 중심에 위치한 제지공장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조성하는 바람에 지금도 인근 주민들은 제지공장에서 나오는 악취로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비슬산 아래 양질의 공기를 생각하며 이주해 온 주민들과 대대로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대구테크노폴리스가 대구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한다고 해도 지역과 더불어 상생발전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이라도 해당 기관은 제대로 된 도시를 완성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필자도 대구테크노폴리스 발전과 지역민들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데 미약하나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본다.

2019-10-13 15:32:43

김병삼 경북도 자치행정국장

[기고] 해피 댄스, 해피 바이러스

구글이나 넷플릭스 같은 혁신적인 기업은 직원 행복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직원이 행복해야 성과가 나고 고객도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저명한 컨설턴트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직원이 사랑하지 않는 회사는 고객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무원도 조직을 사랑하지 않으면 고객인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요즘 경상북도의 최고 화두는 변화고 그 주체는 공무원이다. 도청 직원들은 매일 업무 시작 전과 후 경쾌한 음악에 맞춰 '해피 댄스'를 춘다.이른 아침이나 퇴근 후, 도청 앞 천년숲 황톳길을 걷는 맨발의 공무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매주 수요일, 금요일은 정시 퇴근하고 매주 금요일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근한다. 특히 매주 화요일 오전 7시가 조금 넘으면 200여 석의 다목적홀은 각계 전문가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 직원들로 빈자리가 없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보수적인 공직사회,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 불리는 경북에서 말이다.도청이 안동예천으로 이전한 뒤 직원들은 가족들과 떨어진 낯선 생활로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올봄 조직문화에 대한 인식수준을 조사한 적이 있다. 도청 직원으로서의 사명감이나 만족도는 상당히 높지만 일과 삶의 균형, 조직에 대한 신뢰감,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불만은 컸다.이에 따라 조직문화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인식하에 워라밸을 통한 행복한 일터 구현, 일과 성과 중심의 조직문화 구축, 소통하는 근무문화 환경 조성을 목표로 세부과제를 정하고 실행에 박차를 가했다.좀체 변하지 않는 도청에 변화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단연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이 도지사는 취임 초부터 직원들이 건강하고 출근하고 싶어야 도민이 행복한 정책을 만들고 펼칠 수 있다는 신념을 밝혔다. 의전을 최소화하고 스스로 권위를 낮췄다. 해피 댄스를 가장 열정적으로 추고 맨발 걷기를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 도지사다. 매일신문 | #경북도청#이철우#해피댄스최근 경북도에 '건강 율동' 해피댄스 바람이 불고 있다경북도는 이철우 지사의 제안으로 일과 시작 전과 퇴근 직전 등 하루 2번씩 해피댄스를 실천하고 있다해피댄스는 신나는 노래를 튼 채 발을 굴리며 춤을 추는 동작으로 혈압을 낮춰주고 당뇨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도는경북도가 건강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일 잘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다.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최근 경북은 강소연구개발특구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에 이은 영일만관광특구 지정, 중수로해체연구기술원과 혁신원자력기술원 유치, 경북형 일자리의 첫 모델인 구미형 일자리 출범 등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무엇보다 큰 성과는 도청 직원들의 의식 변화다. 1960, 70년대 구미국가산업단지와 포항철강산업단지가 가동되고 새마을운동을 주도할 당시 경북 앞에는 항상 '웅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전국 공무원들이 경북에 와서 업무를 배워 갈 정도로 행정도 앞서갔다. 그러나 변방에 오래 머물면서 패배주의에 빠져 남 탓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랬던 경북의 조직이 살아나면서 도청 직원들도 밝고 활기차게 변화하고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게 됐다.'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가 있다.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이 말은 '큰 일을 하기 위해 오랫동안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대한민국의 중심 경북은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 도청의 해피 댄스가 새바람을 타고 시군으로, 도민 속으로 해피 바이러스로 퍼져나가야 한다. 도민 행복을 위해 신나게 일하는 경북도를 그려본다.

2019-10-13 14:41:43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국민은 정치인의 팬이 아니다

조국 장관과 관련된 여러 사안의 진상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의 문제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조 장관 딸 논문에 관한 그의 증언은 거짓이라고. 학교와 관련된 문제만은 분명한 진상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처지이다.조 장관은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학교에서 사용한 중고 컴퓨터(PC)를 집에 가지고 갔고, 딸이 서재에 있는 그 컴퓨터로 논문을 작성했다." 딸이 제1저자로 등재된 논문 초안의 문서 속성에 작성자와 수정자 모두 '조국'이라고 나타난 데 대한 설명이었다. 딸의 논문을 전혀 몰랐다는 선행 증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내가 속한 대학에서도 연구실 컴퓨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 준다. 중고 컴퓨터를 집으로 가져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구실 컴퓨터는 대학의 재물이기 때문에 관재팀에서 반드시 회수한다. 돈을 주고 구입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절차를 밟게 되어 있다. 혹시나 해서 대학 관재팀 관계자에게 확인해 보았다. "말도 안 되죠"가 답이었다. 하물며 국립서울대학교의 물품관리 규정이랴.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은 기억할 것이다. 서울대 규정을 근거로 재차 추궁하는 의원에게 조국 후보자가 답하던 모습을. "PC를 들고 나왔는지 프로그램만 복사한 것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중고 컴퓨터는 나중에 반납했다는 말도 있었다.새삼 조국 장관의 위선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언론들은 대부분 '맹탕 청문회'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상식과 합리로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조국 후보자의 본 모습을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청문회에서 주어졌다. 계속 드러나는 사실도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의학 논문은 이미 취소되었고, 서울대, KIST 인턴 등도 실체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통탄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조국 수호' 구호가 난무하고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 '내가 조국이다' '우리가 조국이다'라는 말들도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혹자는 검찰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 세력의 반격이기 때문에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검찰 수사가 과도하다는 지적은 할 수 있지만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동의어로 쓰는 것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눈과 귀를 모두 가린 외곬 진영 논리라는 것 외에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정치인의 팬 문화가 민주주의를 삼킨다.' 지난 9월 11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아만다 헤스의 칼럼은 시사적이다. 헤스의 글은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유력 정치인들을 영화 주인공, 유명 가수 등 연예인들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 정치에 대한 경험은 과거와 달리 주로 이러한 팬덤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사실 정치인에 대해 열광하는 정치적 팬덤 현상은 오래된 일이다. 영국의 대처 총리,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등도 열렬한 팬 층을 거느린 정치인이었다. 문제는 단순한 지지와 성원이 광적인 팬덤으로 변할 때 생겨난다. 연예인에 열광하는 팬은 대부분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주체가 아닌 조작과 선동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특정 정치인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국민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원리가 실종되어 버린다는 말이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시절 촛불 시위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헌법 구절이다.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원리이다. 국민이 주인이요, 정치인은 주인인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공복일 뿐이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성원과 지지를 넘은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 열광은 주권자의 지위를 스스로 팽개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수준을 넘는 정치를 갖기 어렵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도 진리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이 주인이다. 주인이 하인에게 열광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주권자는 정치인의 감시자일지언정 팬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19-10-13 14:41:00

종이에 담채, 30.3×32.9㎝,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윤겸(1711~1775) '해인사'

정양사를 그리면서 일만이천봉을 다 넣었던 스타일대로 정선은 '해인사'에 가야산과 홍류동을 다 담았으나 김윤겸의 '해인사'는 산사의 모습이 오롯해 절 생김새가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제일 위쪽 높은 축대 위에는 지금도 엄연한 팔만대장경 판전 두 채가 나란하고 그 아래 대적광전이 우람하다. 정선과 김윤겸의 그림 속 대적광전은 법보종찰 금당의 위용이 넉넉한 2층인데, 1817년 큰 불로 타버려 지금은 그 기단 위에 다시 지어진 단층 건물로 서있다. 그 앞 구광루도 지금은 맞배지붕의 일(一)자 건물인데 18세기에는 앞쪽으로 누마루를 달아낸 팔작지붕의 티(T)자형 누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규모 있는 정연한 가람 배치는 해탈문, 봉황문, 홍하문으로 이어진다.일주문인 홍하문 왼쪽에 길쭉하게 그려진 것은 원표(元標) 석주(石柱)일 것이다. 지금의 원표는 광복 후 해인사 주지를 지내며 선원, 율원, 강원을 종합한 도량인 총림을 최초로 설치하여 수행 기풍을 진작하고, 일제가 파괴한 사명대사비를 새로 건립하는 등 해인사의 위상과 한국불교 회복에 큰 업적을 남긴 환경(幻鏡, 1887~1983)스님이 1929년 건립한 것이다. 이 원표 돌기둥에는 4각의 동서남북 방향으로 있는 합천, 김천, 진주, 대구까지 거리가 몇 리(里) 몇 정(町)으로 표시되어 있다. 대구 도로원표 표석은 경상감영공원 안에 있고, 우리나라 도로원표 표석은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데 대구까지 306㎞, 독도까지 435㎞이다.홍류동 골짜기 해인사에 이정표가 서 있는 것은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명대사 입적처인 해인사는 일제강점기 불교계 민족운동에 큰 역할을 한 곳이다. 환경스님은 해인사 여러 스님들과 함께 민족정신을 유포한다는 혐의로 1929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1년 간 옥고를 치렀다. 만해스님이 잠시 머물며 강론하여 많은 스님들이 영향을 받았고, 극락암은 용성스님이 출가한 곳으로 지금도 용탑선원으로 가풍이 이어지고 있다.김윤겸은 붉은 기둥을 윤곽선 삼아 크고 작은 당우(堂宇)를 심플하게 그렸는데 일주문은 붉은 색을 가장 짙게, 대적광전은 붉은 색을 가장 넓게 해서 시선의 강약 리듬을 안배했다. 절 좌우 능선의 숲은 녹청색의 동글동글한 덩어리들을 칠해 놓고 각양각색의 점을 찍어 나무들의 서로 다른 개성을 나타냈다. 화보의 점법(點法)을 다 소화한 후에 나온 발랄하고 즉흥적인 점들이 상쾌하다. '해인사'는 김윤겸이 진주에서 함안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소촌역 찰방으로 근무하러 왔을 때 경상도 실경을 그린 '영남기행화첩' 14점 중 한 점이다. '해인사'로 장소 이름을 쓰고 호인 '진재'(眞宰) 인장을 찍었다. 미술사 연구자

2019-10-13 06:30:00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장벽 너머 '라이브 공연' 세상으로!

해마다 가을이 되면 공연예술의 장이 여러 곳에서 풍성하게 열리지만, 그것의 수혜를 받는 이들은 아직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조금만 관심을 돌리면, 곳곳에 여러 장르의 공연을 접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대라는 공간에서 열리는 예술을 접하기에는 많은 장애가 있다.원하는 공연을 보려고 해도 대부분의 공연장소가 가까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공연 시간에 맞추려면 저녁 시간의 복잡한 교통체증을 감내해야 하고, 자신의 차를 이용하더라도 공연장의 충분하지 않은 주차장 시설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명망이 있는 공연은 티켓 값도 만만치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의 일정에 나의 일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이 있는 그 시간을 위해 나의 다른 일상을 양보해야 하는 것에 이르면, 사람들은 그들의 행보를 결정해야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이 공연을 꼭 봐야할 것인가? 그 많은 제약의 벽을 다 넘어서야만 하나의 공연을 즐길 수가 있다.이런 이유로 많은 관객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와 같은 예술장르에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여유가 없는 이들은 영화감상으로 그들의 지친 삶을 달래기도 한다. 그러나 공연예술을 즐기려면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뒤따라야 한다.30여 년 전 필자가 유럽에서 살았을 때, 그들이 일상적으로 공연예술을 즐기는 삶을 보며 부러워 한 적이 있다. 저녁시간을 여유롭게 지내는 그들의 한가로움, 아름답게 성장을 하고 와서 파티에 참석한 듯, 긴 인터미션에 음료를 나누며 대화를 즐기는 그들은 공연관람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 같았다. 유학생 가정으로서 다소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하고, 그 나라의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는 이방인의 눈에 그들은 부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80년대 후반 우리나라 공연문화와는 격이 다른 그들의 여유로운 공연관람 생활을 보는 것은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도 곧 그렇게 되리라고 미래를 꿈꿔봤다. 공연예술을 즐길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면,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아직 삶에 여유가 없다면 공연예술 세상과 가까이 하기는 쉽지 않다. 단편적이고 다소 쾌락적인 재미에 빠져 있다면, 품격 있는 공연예술을 즐기기 위하여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많은 셈이다. 어제 밤 극장 '가락'에서 밴드 '그리GO'의 라이브 공연에 함께 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가득 메운 관객들의 즐거움이 가을밤을 달궜다. 이제 그 장벽을 넘는 시민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세상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0-13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나도 연꽃처럼 시들어 가네 - 원나라의 어느 여인

내게 보내주신 한 송이 연꽃 / 贈送蓮花片(증송연화편)처음엔 환하게 곱고 붉더니 / 初來的的紅(초래적적홍)꺾인 지가 지금 며칠이런가 / 辭枝今幾日(사지금기일)나처럼 초췌하게 시들어가네 / 憔悴與人同(초췌여인동) 고려 충선왕(忠宣王, 1275~1325)이 원나라에 머물 때, 뜨겁게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도 왕을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므로 왕이 귀국하게 되자, 당연히 따라나서려 했다. 하지만 함께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충선왕은 이별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꺾어주고 돌아섰지만, 그 여인이 그리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그리하여 마침내 왕은 동행하고 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에게 다시 돌아가서 여인의 상황을 살펴보게 했다. 돌아가 보니 여인은 다락 속에 앉아 있었는데,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여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다. 억지로 붓을 들어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위의 작품이다.분석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가슴에 다가오는 시다. 왕으로부터 이별 선물로 받았던 연꽃이 며칠 만에 폭삭 시들어버렸듯이, 사랑을 잃은 자기 자신도 그 연꽃처럼 수척하고 초췌하게 시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아주 단순한 작품이지만, 상황을 생각하고 음미해보면 심금을 울리는 찡한 시다.그들의 사랑을 지켜봤던 익재도 물론 가슴이 아팠을 터다. 그러나 익제는 돌아와서 아주 엉뚱한 보고를 했다. "그 여인은 술집으로 들어가서 젊은 남자들과 술을 퍼마시면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찾아봐도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익재의 보고를 받은 왕이 '더러운 년'이라며 땅에다 침을 '퉤' 뱉었다.다음 해 왕의 생일. 익재는 왕에게 술잔을 올린 뒤 뜰아래로 물러나와 엎드려서 말했다. "죽을 죄를 지었사오니, 어서 저를 죽여주십시오." 왕이 그 연유를 묻자, 익재가 그제서야 그 여인이 지은 시를 바치고 그때 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했다. 사연을 알게 된 왕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그 때 이 시를 보았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여인에게 되돌아갔을 게다. 경(卿)이 나를 사랑하여 일부러 거짓말을 하였으니, 참으로 충성스러운 일이다."조선전기의 문인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수록된 이야기다. 그 여인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면, 익재의 새빨간 거짓말이 꼭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익재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건 것만은 분명하다.이 시대의 높은 사람들이여. 가슴에다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그대들은 혹시 그대들의 목숨 하나를 위해 나라를 다 걸고 있는 것은 아닌가?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10-12 06:30:00

손인선 작 '낙동강 하중도의 가을'

[내가 읽은 책]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윤일현/시와반시/2019

가을이다. 운동 삼아 자주 나가던 금호강도 지금쯤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겠다. 지금 반짝이는 건 금호강 물만이 아니다. 강을 따라 군락을 이룬 갈대도 자신이 강물인 양 은빛 물결로 흔들리고 있겠다.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사람은 강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고 살아왔다. 낙동강 주변에서 한 시대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여낸 시집 한 권이 강물처럼 흘러 내게로 왔다.윤일현 시인은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진학지도와 상담을 하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독서를 하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집 '낙동강'으로 등단해 여러 권의 다른 시집과 인문서를 출간하고 '낙동강이 세월이고 나입니다'로 다시 낙동강으로 되돌아왔다. 강이 들려주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25편의 시와 1편의 산문에 담담하게 풀어놓았다.방문을 열어놓고/ 누님과 단 둘이 음복을 하는데/ 마당의 개 세 마리/ 갑자기 방안으로 훌쩍 뛰어들더니/ 누님의 밥그릇에 주둥이를 박고/ 평소대로 누님과 같이 밥을 먹었다/ 누님의 가슴속엔/ 빨치산과 국군이 함께 살고/ 누님의 밥상과 밥그릇은/ 개와 사람을 구별하지 않았다-p18~19 '밍밭골 육촌 누님' 일부자식 셋을 모두 앞세운 어미가 첫째 아들 제삿날 둘째가 생각나서 지방에 둘째 이름도 올리고 그러고 나니 딸도 생각나 잔 세 개 놓고 넘치도록 술을 따랐다는 다음에 이어지는 연의 내용이다. 누님에게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빨치산과 국군, 개와 사람을 굳이 구분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삶이 되었다.달빛의 무게도/ 감당하기 힘들어/ 돌아보니/ 안개 자욱하다/ 세월의 강//겨울 강에/ 발 담그고 있는/ 마른 갈대처럼/ 종일 시린 발목으로 서서/ 막막한 그리움/ 칼바람에 실어 보내며/ 꽃피는 봄날 기다린다./ 사랑아, 내 사랑아//-p52 「다시 강변에서」 전문뉴스를 접하면 잠시도 조용한 날이 없다. 그래도 살아가는 일은 늘 힘든 일만 일어나는 것도, 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기에 겨울 뒤에 봄이 오는 것처럼 '꽃 피는 봄'에 대한 기대도 살짝 가지게 된다. 그런 희망이 있기에 지금 선 자리가 겨울 강에 발 담그고 시린 발목으로도 서서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진보든 보수든 주기적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양평 두물머리에 나가 보라. 어디에 살든 작은 지류와 지류, 큰 지류와 본류가 합쳐지는 곳에 나가 해돋이와 낙조에 물드는 풍경에 오래 잠겨 있어 보라. 그리고 주기적으로 동해와 남해, 서해로 나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라." -p634대강 사업으로 유속이 느려진 곳에서는 녹조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녹조 라떼'라는 말을 만들어 비꼬기도 한다. 썩은 물이 되지 않으려면 강물은 무조건 흘러야 하는데 저자는 흘러야 하는 것은 강만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우리의 의식도 고여 있거나 닫혀 있으면 강처럼 병든다는 시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강의 신음에 귀 기울여 병을 더 크게 키우지 않는 현명한 독자가 되기를 시인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에서 출발하여 금호강을 비롯한 크고 작은 지류들을 찾아다니며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고 한다. 강과 사람이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손인선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0-12 03: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선사인류와 빙하기 이야기

대구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약 2만 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인류로 보고되고 있다. 구석기시대 이래 대구지역에서 살아온 우리 인류의 이야기를 필자는 기후적 환경과 관련하여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첫 주제는 선사 인류와 빙하기 이야기다.지구상에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빙하기가 실제로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빙하기는 또 올 수 있다. 그렇다면 빙하기는 왜 생겨나는 걸까?지구상에 빙하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지구 공전궤도와 자전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바퀴 도는 것을 공전이라 하고, 공전하는 동안에도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이것을 자전이라 한다. 그런데 공전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 그리고 자전축의 회전(세차운동)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 수만 년을 주기로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설명이다. 바로 이러한 공전궤도와 자전축 기울기 변화 그리고 자전축의 회전으로 인해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에너지는 변한다. 즉 공전궤도가 지금의 궤도보다 약간 바깥으로 이동하면 지구상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는 감소하게 돼 혹독한 추위가 나타나고 그것이 바로 빙하기가 발생하는 이유다. 반대로 공전궤도가 좀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는 증가하여 빙하기는 끝나고 고온의 지구, 즉 간빙기가 나타난다.지구 생성 이래 이러한 현상은 지속되어 왔다. 현재 우리가 사는 기후 환경보다 더 추운 빙하기가 오면 바닷물이 증발하여 눈으로 변해 녹지 않고 육지에 쌓여만 갈 것이다. 그러면 육지에 쌓여가는 눈의 양만큼 바닷물은 줄어 해수면은 낮아진다. 반대로 지구의 대기온도가 점점 높아지면 육지에 쌓여 있던 눈(빙하 포함)이 녹아 바다로 흘러가게 돼 바닷물은 불어나 결국 해수면은 높아진다. 이처럼 지구상에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나타나면서 지구상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다.지구적 기후변화는 우리 인류 문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마지막 빙하기가 존재했던 시기다. 역사에서는 이러한 1만 년 전을 기준으로 인류의 문명 역시 큰 전환점을 가지는 시기라 보고 1만 년 이전의 빙하기를 구석기시대로, 그 이후의 시기를 신석기시대로 구분한다.지금의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가르는 서해는 평균 수심 44m, 최저 수심 103m로 빙하기 당시 평균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20m가량 낮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서해는 육지로 드러난 상태이다. 또한 남해 역시 평균 수심 101m, 최저 수심 227m여서 제주도까지 육로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가능케 해준다.빙하기에는 혹독한 추위로 인해 동물은 먹잇감을 찾아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인류 역시 추위를 피하고 먹잇감을 쫓아 남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동한 구석기시대 인류는 제주도까지 이르게 되었고, 그 후 빙하기가 끝나 날씨가 따뜻해져 북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해수면이 높아져 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당시 제주도에 머물게 된 인류가 제주도 최초의 인류가 되는 것이다.한편 빙하기에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해 온 구석기 인류는 이전의 지역에서 사용했던 도구나 중요 유물들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또한 이동 중에는 필요에 따라 물물교환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빙하기와 같은 지구적 환경변화는 오늘날 지구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유적이나 유물의 유사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2019-10-11 20:33:30

최병호 전 경북도 혁신법무담당관

[기고] 경상북도의 '새바람운동' 깃발

오늘날 우리는 국경을 초월하여 하나의 거대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변화와 혁신이며,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민선 7기의 도정 슬로건으로 '새바람 행복 경북'을 내걸면서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의 새바람을 일으켜 도민 모두가 행복한 경북을 만드는 것이 민선 7기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슬로건 속의 새바람은 변화이다.지금까지 전국의 광역·기초자치단체장은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면서 저마다 장밋빛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행정의 변화와 혁신은 없고 구호만 요란했다. 그리하여 주민들로부터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즉 누가 당선되어도 마찬가지라는 따가운 평가를 받고 있다.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는 인구절벽, 지구온난화, 해양오염, 청년실업, 지방소멸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고령화, 지역 간 갈등, 세대 간 대립, 도농 간 격차, 각종 선거로 흩어진 민심, 사회 곳곳에 만연된 범죄, 낡은 비리, 그리고 안전불감증 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처럼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이철우 도지사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 정체 상태에 있는 경북도의 발전을 견인하고, 도민의 화합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이것은 300만 도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책무이다. 이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새바람, 즉 변화와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며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는 진정한 이유이다.이에 필자는 자랑스러운 경북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경북도의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철우 도지사에게 '새바람운동'의 추진을 고언한다.'새바람운동'은 행정의 변화와 혁신, 도민 의식 개혁을 목표로 하여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새바람운동추진본부 등을 구성하여 기관단체별, 단계별, 부문별 과제를 발굴하여 실천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고 평가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이 운동의 성공적인 안착과 범도민운동으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도, 시군은 물론 산·학·연의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그리하여 경북의 구석구석까지 새바람이 거세게 불 때 행정의 일대 변화를 가져오고 도와 시군, 각급 기관단체 간 새로운 협력의 틀을 정립함은 물론 도민의 마음을 결집하여 지역 발전과 도민 화합을 이룰 수 있다.이철우 도지사가 행정 혁신과 도민 의식 개혁을 이루어 웅도 경북의 위상과 영광을 되찾아 역사 속에서 성공한 도지사로 평가되고 기록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이 운동이 경북을 넘어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새마을운동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듯이 '새바람운동'이 또 하나의 기적인 낙동강의 기적을 만들 것으로 확신한다.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고, 파멸이 있을 뿐이다. 경북의 변화와 혁신이 대한민국의 변화와 혁신이다. 경북이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변화와 혁신으로 글로벌 시대를 선도할 때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경상북도여! '새바람운동'의 깃발을 높이 들어라. 그리고 다시 한 번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하라.

2019-10-10 17:03:50

권경우 본부장

[춘추칼럼] 지역축제와 지역문화

유사한 방식과 형태 보여주기 반복어느 순간 규모의 경쟁으로 치달아과거·현재·미래 공동체 정체성 지속독자적 콘텐츠 개발해 차별화해야 축제는 지역문화의 꽃이다. 지역문화 영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여러 지역의 다양한 축제를 접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지역축제가 정말 많다는 점과, 그럼에도 그 많은 축제를 왜 하고 있는지 가끔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물론 지역문화의 확장과 맞물려 지역축제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전문가와 시민의 역량이 강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지역축제를 넘어 지역 특성을 살린 멋진 축제들도 많아졌다.그렇기에 축제가 많다는 것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관점에 따라 축제와 같은 문화행사를 예산의 소모나 낭비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사실상 모든 문화와 예술은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 지역축제에 대한 비판은 그 축제들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차별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유사한 방식과 형태의 축제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규모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축제를 지역문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광산업 일변도나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외부 이벤트 기획사에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취하게 됨으로써, 지역축제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틀에 맞춰 크기만 다르게 찍어내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지역축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 때문이다. 지역축제는 지역문화의 중요한 콘텐츠이고, 이를 통해 다양한 지역문화와 역사문화 자원이 결합되어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공동체의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축제가 일시적 이벤트일지라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와 시민,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오랜 신뢰와 경험을 쌓아가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이 제대로 발현된 결과를 담아내야 한다. 간혹 지역축제가 엉망이 되는 이유는 축제를 '도구'로 생각하는 권력자와 그 주변에서 축제를 통해 '장사'를 하는 이들이 결탁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건강한 지역축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첫째, 축제 규모를 키우는 일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축제를 대규모의 국제적인 축제로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축제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래야 하는 축제만 그렇게 하면 된다. 장사가 잘되는 작은 식당이 함부로 가게를 확장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둘째, 지역축제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지역축제는 '공통 문화'(common culture)를 경험하고 축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공통 문화는 곧 지역의 특이성이자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으로 나타난다. 지역축제는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잘 담아내고 드러냄으로써 지역공동체 주민들에게는 스스로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외부의 대중들 또한 그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맛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일한 기준의 경쟁이 아니라 각각의 차이가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역문화와 지역축제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다.셋째, 지역축제는 지역의 독자적인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보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지역축제를 위한 지역의 전문가 및 활동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전문가가 아니라 지역문화를 함께 일궈갈 실질적인 주체를 생산하는 일이다. 다양한 주체들이 결합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지역의 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발굴함으로써 공동의 자산으로 만들어가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지역문화 관점에서 지역사회의 건강지수를 측정한다면 어떨까? 가장 나쁜 상태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정치'를 염두에 두거나 눈치를 보면서 활동할 때이다. 소수 정치인을 위해 다수의 주민 활동가들이 존재할 때이다. 반대로 건강한 지역사회는 활동 주체들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있을 때이다. 정치는 그러한 활동의 결과로 만나는 지점에 불과하다. 정치가 전제되고 활동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활동이 전제되고 정치가 따라와야 한다. 지역사회의 문제와 퇴행은 대부분 이 두 가지가 서로 바뀌어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19-10-10 11:40:15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새로운 경향, 보사노바(Boss Nova)

얼마 전 점심 식사 후 호수가 보이는 카페를 찾았다. 주문한 커피의 맛이 훌륭해 '여기까지는 완벽해. 여기에 음악까지 완벽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보사노바(Bossa Nova) 음악. 정말 완벽한 오후였다.보사노바는 1950년대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음악장르이다. 브라질의 전통음악인 '삼바'와 미국의 '재즈(정확하게는 쿨 재즈)'가 만나 탄생한 음악으로 50~60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시장에서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우리의 대중가요 역사 속에서도 보사노바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조덕배의 '그대 내 품에 들어오면', 마마무의 '우리끼리' 등이 보사노바 리듬을 사용한 노래들이다. 이렇듯 보사노바는 반짝하고 사라지는 트렌디한 음악이 아닌 하나의 장르로서 몇 십년동안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장르이다. 이렇게 보사노바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보사노바는 과장되고 화려한 삼바 리듬으로부터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한, 꼭 필요한 것만으로 구성된 음악이다. 삼바 리듬을 바탕으로 강한 비트는 줄이되, 당김음을 통해 지루하지 않은 불규칙한 리듬과 2-5-1 진행으로 안정감을 주지만 세련된 조바꿈과 적절하게 쓴 텐션으로 다채로운 화성을 썼다. 게다가 호소 짙은 고음과 화려한 테크닉 보다는 낮게 대화하는 듯 한 발성으로 세련된 선율과 시적 가사로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이전까지의 삼바 음악이 모든 면에서 브라질의 풍요로움을 시청각적으로 포장했던 것에 대한 반발의 정서가 생겨났고, 거기에 쿨재즈가 더해진 것이다.쿨재즈는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 된 후 탄생한 음악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열광적인 비밥 스타일과 달리 모던하고 비브라토 없는 가벼운 음색으로 긴장을 풀고 듣기 편한 방식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다. 삼바의 전통에 쿨재즈가 더해져 보사노바라는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졌고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음악은 새로운 요소들을 만나고 결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와도 같다.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래 오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본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끊임없는 변화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브라질의 전통음악인 삼바가 미국의 재즈와의 결합을 통해 전 세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이 된 것처럼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악뿐이 아닌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실험적인 변화와 협업의 모습을 보게 되길 기대해 본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0-10 11:13:13

광고 카피에도 그것을 담는 그릇(디자인)이 있다. 사진: ㈜빅아이디어연구소 제공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 카피에도 표정이 있다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작업은 제게 살이 아리고 뼈를 깍는듯한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합니다."1996년 1월 31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서태지가 한 인터뷰이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다. 창작이라는 것이 서태지가 말한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이러니하게도 필자 역시 창작의 고통을 만끽할 수 있는 광고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글로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하는 카피라이터가 바로 그런 직업이었다.카피라이터지만 여전히 카피쓰는 일이 힘들고 고되다. 그래서 필자는 양으로 승부를 보는 편이다. 아이디어노트에 수백 가지의 카피를 써보고 좋은 것을 찾아가는 식이다.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터득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글을 담는 그릇이다. 즉 똑같은 글이라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여기서 그릇은 바로 디자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디자인은 그 말의 표정이 된다. 카피를 어떤 디자인에 담느냐에 따라 글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이다.대구시 의회 광고 카피를 쓸 때 필자는 평범한 글을 썼다. '시민의 작은 소리도 크게 듣겠습니다'가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을 법한 평이한 카피였다. 그래서 이 카피에는 더욱 선명한 표정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이 카피를 더 좋아할만한 매력적인 표정 말이다.'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겠다'는 메시지니 디자인을 점점 커지게 한 것이다. 그랬더니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점점 크게 말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시민의 작은 목소리를 크게 듣는듯한 느낌이 났다. 평이한 광고 카피가 제대로 된 그릇을 만난 것이다. 이렇듯 카피에는 자기에게 맞는 그릇이 따로 있다. 자기 몸에 맞는 그릇을 만날 때 그 글은 더욱 빛난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카피라이팅은 늘 어렵다. 하지만 평이한 글이라도 그것이 맞는 그릇을 찾아보라. 당신의 카피가 빛날 것이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10-10 09:35:07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새론새평] 처음 경험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

수출·내수 감소 정부가 메우는 한국일본형 장기 불황 겪을 가능성 높아빠지면 탈출 힘겨운 디플레이션 늪닫힌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법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헌법을 공부했던 사람들은 헌법재판소 부분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 당시 헌법재판소는 하는 일이 없는 조직이었다. 정당 해산, 대통령 탄핵은 교과서에서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30년 뒤 나는 헌법재판소가 정당을 해산하고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는 것을 현실에서 보았다. 지금 학생들은 헌법 교과서의 헌법재판소 부분을 열심히 공부한다.경제와 관련해서 모든 민주적인 정부의 관심사는 두 가지이다. 실업과 인플레이션(inflation). 일자리가 있어야 소득이 생기고 물가가 오르지 않아야 실질적인 소득이 보장된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을 고통지수(misery index)라고 할 정도로 실업과 인플레이션은 일상생활과 직결된다. 내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당시 관심은 실업과 인플레이션이었다. 교과서에 디플레이션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경제가 침체되면 물가가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하락한다. 하지만 교수도 학생도 우리나라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물가는 오르는 것이지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헌법재판소가 정당을 해산하고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얼마 전 통계청은 9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하였다고 발표했다. 8월에 이은 두 번째 물가 하락이다. 책으로 공부했던 디플레이션을 현실에서 경험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농산물과 원유 가격 하락, 복지 정책에 의한 가계 부담 감소를 물가 하락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이는 억지다. 우리나라는 농산물 가격 하락이 물가 하락을 유발할 정도로 농업 비중이 크지 않다. 원유 가격은 안정적이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정부가 복지 지출을 늘렸다고 해서 가계 수요가 감소할 이유도 없다. 물론, 공급이 늘어서 물가가 하락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물가가 하락할 정도로 공급이 늘어난 경우는 없었다. 물가 하락의 원인을 수요 감소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자장면값, 택시 요금이 올랐는데 물가가 하락했다고?" 우리가 상적으로 소비하는 물건은 100개를 넘지 않는다. 그 가격은 올랐을 수 있다. 그러나 물가는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모든 물건 가격의 평균이다. 한 나라의 수요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면 물가는 하락한다. 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물건값이 싸다고 해서 물건을 사지는 않는다. 현재 소득이 적거나 앞으로 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태에 있으면 나라는 디플레이션에 빠진다. 디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작가 유시민 씨는 베네수엘라와 같은 초(超)인플레이션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당연하다. 베네수엘라는 원유를 팔아서 나라를 운영했으나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부도가 나자 돈을 찍어서 메웠다. 우리나라는 수출과 내수(內需) 즉, 수요 중심의 경제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출과 내수 감소를 정부 지출로 메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형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최근 자유한국당이 민부론을 주장하면서 2030년까지 1인당 소득 5만달러, 가구당 소득 1억원을 달성하겠다고 하였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2017년 기준 1인당 소득은 3만1천달러, 가구당 소득은 5천700만원이다. 자유한국당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향후 우리 경제가 매년 4.4% 또는 5.2% 성장해야 한다. 외국의 유명 신용평가회사가 예상하는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1.8%이다.당분간 아니 장기간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은 디플레이션이다. 디플레이션은 늪이다. 웬만해선 빠지지 않지만 일단 빠지면 벗어나기 어렵다. 디플레이션은 심리적인 현상이다. 닫힌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2019-10-09 19:45:10

김태훈 영남중 교사

[김태훈의 대구 옛이야기]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

대구 동구 공산동 출신의 이종암(1896~1930)은 의열단 부단장으로 활약하였다. 앞서 그는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제2기생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그는 대구은행 출납계 주임 시절에 가져왔던 자금 1만500여원의 일부를 의열단 창단과 활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단장 김원봉과 함께 구국모험단에서 폭탄 제조법과 조작법을 익히고 길림으로 돌아왔다.이후 이종암은 1920년 6월에 무기를 국내로 반입하여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을 파괴하려다가 발각되었던 '밀양폭탄사건' 당시 다행히 체포되지 않고 국내에 잔류하여 다음 거사를 준비하였다. 곧바로 그는 최수봉을 의열단에 가입시켜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도록 지도하였다. 1920년 12월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 사무실에 던진 첫 번째 폭탄은 유리창을 뚫고 순사부장 구스노키 게이고(楠慶吾)의 오른팔에 맞고 책상 위로 떨어졌으나 불발되었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놀란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나오는 복도를 향해 던진 두 번째 폭탄은 위력이 약해서 실패로 끝났다.1921년 12월 무렵에 북경으로 돌아온 이종암은 1922년 3월에 오성륜, 김익상과 더불어 상해에 도착한 다나카 기이치 육군대장을 응징하고자 '황포탄 의거'를 감행하였으나 이마저도 실패하였다. 이종암은 1925년에 동경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적발된 '경북의열단사건'으로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다. 위장병, 인후병, 폐병으로 병세가 날로 악화되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나 1930년 5월 29일에 끝내 순국하였다.현재 대구읍성 달서문 표지석이 자리 잡은 장소가 이종암이 독립자금을 마련했던 옛 대구은행 터였고, 석방된 후에 대구로 돌아와 병든 몸을 요양했던 가택은 '대구광역시 중구 문우관길 30-26'으로서 '이종암 생가 터'라는 작은 간판이 걸려 있다. 이 외에도 이종암의 항일정신을 기억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19-10-09 18:00:00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 불가사의 인도] 장례를 축제처럼 치르는 인도인들

초상집에서 울음소리가 끊어지면 불효 집안이라며 억지 울음소리를 이어가는 것이 한국의 전통 장의 관습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다비식(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수습하는 행사)에서 기쁜 표정을 짓지 않고 우울한 표정을 지어 축제 분위기를 흐리는 자는 군중들의 눈총을 받기 마련인 곳이 인도이다.인도인들의 이런 불가사의한 장의 관습의 근원은 인도의 전통 종교 힌두교 교리에 있다. 힌두교에서는 이승보다 더 나은 내세로 가기 위해서는 이승 삶의 껍질인 육신을 불태워 완전히 분해해서 찌꺼기는 바다로 흘려보내고, 영혼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바라보며 환희에 젖는 장의문화를 낳았다. 아열대지역이라 사람의 숨이 끊어지면 당일 아니면 익일에 화장해야 한다는 전통이 수립되었다. 북부 히말라야 산악지대를 제외한 인도 대부분의 국토가 평야지대인지라 묘지로 쓸 땅이 없어 이런 특이한 장의문화가 발생했다.이런 큰 문화 특징에서 파생된 작은 문화 행동이 더 재미있다. 인도에서 시신을 화장장으로 운반하는 행렬을 보면 한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국에서는 시신을 운반하는 상여가 떠날 때 가족 친척들은 눈물바다를 이루고 이웃들까지 나와 통곡으로 배웅한다. 상여꾼들을 지휘하는 소리꾼이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사설을 읊으면 상여꾼들은 "오~홍!, 오~홍! 오호이야 오~홍!"이라는 구슬픈 추임새를 넣으며 행진한다.인도의 시신 운반 행렬은 이와는 완전 딴판이다. 6인 정도의 시신 운반자들이 은박지로 감싼 시신을 올려놓은 긴 판자를 어깨로 받쳐 들고 뛰면서 경쾌한 가락의 주문을 외운다. 그 주문의 뜻은 "램(Ram) 신은 위대하시다!"이다. 램 신은 힌두교의 창조신으로 인간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갈 때 더 좋은 세상으로 가도록 권능을 발휘하는 신이다. 이런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들은 장작개비 하나씩을 들고 와서 시신이 불타 하늘로 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합장하는 일이 전부다.

2019-10-09 18:00:00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찬란한 예술의 기억] 아버지와 음악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시대

카메라를 세 대나 가지고 있었음에도 가족사진은 단 한 장만 남긴 사람, 음악으로 우리 사회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불철주야 뛰어다녔음에도 정작 아들의 하숙비는 마련해주지 못했던 사람, 바로 바리톤 이점희(1915~1991) 선생이다. 이점희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진정한 예술인' '진짜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 '진심으로 지역 예술을 걱정한 사람'으로 회고한다.이점희 선생은 연중 많은 음악 인구가 배출되고, 매년 가을 오페라축제로 도시를 수놓는 대구의 오늘이 있기까지 공로가 큰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한 사람의 성악가로서 활발한 발표를 했고 음악 교육자로서 오랜 기간 후학들을 길러냈다. 이기홍(1926~2018) 선생과 함께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을 이뤄냈고 대구오페라협회를 만들어 오페라 운동을 주도했다.그는 해방 후 혼란기였던 1950년 2월, 자택에서 대구 최초의 음악학원을 열어 수강생을 모집하고 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음악'이 사회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에 이르러 대구 지역 음악대학에서 음악인들이 많이 배출되기 시작했을 때는, 그들이 안정적으로 오페라를 만들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시립오페라단 창단을 준비했다. 오페라 운동에 매진하기를 20년, 그는 안타깝게도 시립오페라단 창단(1992년)을 한 해 앞둔 1991년 세상을 떠났다.향토 음악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촬영차 이점희 선생의 아들 이재원 씨의 자택을 방문했다. 현관에서부터 집안 곳곳에 선생의 유품이 가득했다. 피아노, 담배 파이프, 선글라스, 수석, 도자기, 카메라, 시계, 신문 스크랩, 연주회 프로그램, 사진 앨범…. 책장과 벽에 걸린 액자도 모두 이점희 선생이 남긴 자료들이었다.이점희 선생의 3남 1녀 중 셋째인 이재원 씨는 1948년생으로 성악을 전공했다. 유년시절의 그가 기억하는 선친의 모습은 '붉은 얼굴'이었다. 늘 예술가들과 술자리를 하고 귀가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얼굴을 '붉게' 그려 미술 과제로 냈다가, 부모의 얼굴을 모독했다고 선생님에게 회초리를 맞은 기억을 떠올렸다.1950년부터 자택에서 대구음악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 가족들은 집 안에서도 혹여나 작은 소리라도 낼까 뒤꿈치를 들고 걸어 다녀야 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 시중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이점희 선생은 학교에 재직할 때도 월급봉투를 받으면 음악 친구들과 쓴 외상값을 먼저 갚은 후 남은 돈을 생활비로 건넸고 가족들은 그 돈으로 살림을 꾸려야 했다.이재원 씨는 아버지가 그토록 몰입하는 '음악'의 실체가 무엇인지 항상 궁금했다고 했다. 선친의 권유로 음악대학에 진학했지만 이 씨는 음악가가 되면 아버지처럼 가족들을 고생시킬 것 같아 교직을 선택했다. 그가 생각한 음악은 가족들의 행복이나 여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이재원 씨는 선친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원하던 음악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아버지의 혼이 담긴 그것들을 보관해야 할 것 같았다.그리고 29년의 세월이 흘렀다. 생전에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아버지였지만,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며 어느새 아버지가 가졌던 대구 음악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자신에게도 이어진 것 같다. 국제오페라축제가 펼쳐지고, 연일 다양한 음악 공연이 펼쳐지는 요즘의 대구를 보면 이것이 선친이 꿈꾸던 음악도시의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그는 화려한 현재에 묻혀서 자신도 모르게 선친의 이름 석 자가 잊힐 것 같아 덜컥 겁이 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풍요롭지는 못해도 그저 음악과 낭만이 있어서 행복해했던 아버지와 그의 음악 친구들, 그리고 그 시대가 이 도시 어디엔가 기록되기를, 그래서 그들의 꿈과 음악이 잊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2019-10-09 18:00:00

오수진 회장

[기고] 까마귀도 돼지열병(ASF) 옮길 수 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때문에 강화군은 모든 농장의 돼지를 살처분하기로 했다고 한다.또한 ASF 확산 방지를 위해 발생 농장 500m 내 돼지를 살처분한다는 규정을 바꿔 3㎞ 이내로 확대했다고 하지만 전국의 축산 농가는 걱정이 태산이다.ASF는 사람을 포함하여 멧돼지과 이외의 동물은 감염되지 않고,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으며, 잠복기는 4~19일이며 치사율이 100%라고 한다.또한 발열과 함께 장기와 피부 등에 출혈이 나타나고 41∼42℃의 고열과 식욕 결핍 등의 증상을 보이며 발병 후 1~7일 이내 죽는다.또한 ASF 바이러스는 생존력이 높고 전염성도 강해 실온의 분변에서 5일 이상, 혈액을 냉장할 경우 1년 6개월~6년, 실온에서는 1개월 생존 가능하며, 냉장육에서는 15주, 냉동된 사체에서는 수년 동안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ASF는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 지역의 풍토병으로 2000년대 들어 유럽에 전파되었다고 한다.세계동물보건기구(OIE)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세계 14개국에서 ASF가 발생했고 그중 10개국이 동유럽과 러시아이고, 나머지 4개국은 아프리카 지역이다. 감염 경로는 동물의 침·분비물·분변 등을 접촉하므로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지난달 26일 인천 강화도 서쪽에 자리한 석모도의 ASF 확진 사례는 지금까지 알려진 발병 공식에 맞지 않아 당국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병원균이 돼지와 직접 접촉해야 감염되는데 외부와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섬에는 돼지 단 2마리만 있는 폐농장으로 해당 농장에는 축산 차량이 다녀간 사실도 없고 북한 접경 지역을 따라 흐르는 임진강 등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따라서 야생멧돼지가 DMZ의 철조망을 뚫고 넘어올 수도 없기 때문에 죽은 멧돼지 사체가 태풍 때 남쪽으로 떠내려 왔을 가능성에 방역 당국은 무게를 두고 있다.그러나 방역 당국이 ASF 병원균 매개체에서 왜 독수리와 까마귀를 제외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필자는 이해할 수가 없다.무더운 여름철 유해야생동물 포획 활동을 하는 엽사들은 고라니와 멧돼지를 포획하면 운반하기 힘들고, 여름철에 포획한 동물은 맛이 없기 때문에 산에 버리기 일쑤다.산에 버려진 야생동물 사체와 내장을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뜯어먹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까마귀는 동물성에 가까운 잡식성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ASF로 죽은 멧돼지를 뜯어먹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또한 사람을 포함하여 멧돼지과 이외 동물은 ASF에 감염되지 않아, 북한에서 죽은 멧돼지 사체를 뜯어먹은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ASF 병원균을 보유한 채 남한의 축산 농가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또한 까마귀와 독수리는 이동 경로가 광범위하여 축산 농가에서 사료도 먹고 배설물을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ASF 감염 경로를 축산 차량과 멧돼지로 한정하는 것은 방역에 허점이 있다.특히 독수리와 까마귀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남하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축산 농가에 ASF를 전파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축산 농가에 까마귀 등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막을 설치하는 등의 방역 대책이 필요하고, 유해야생동물을 포획하여 산에 버리는 것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가축전염병을 확산시키는 것으로 이 또한 대책이 시급하다.

2019-10-09 13:20:35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세월의 저편

필자에게 2019년인 올해는 의미가 깊은 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 나이로는 60, 정년이 해당되는 친구들은 올해가 마지막 근무이기도 하다. 1979년 1월에 졸업장을 받고 교문을 나섰으니 그해 대학을 간 친구들은 79학번이 된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 중에서도 볼륨 층에 속한다. 또래 인구수가 엄청 많다는 이야기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이 한창일 때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고교 졸업하던 해에는 박 대통령이 시해를 당하는 10·26 사태가 일어났다.인문계를 졸업했지만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바로 사회생활의 길을 걸었다. 친구들이 대학을 입학하던 3월에 벌써 간판 가게를 열었던 것이다. 고 3때는 이미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습득하러 광고사 부근을 기웃거렸다. 한때 미술대를 꿈꾸었기 때문에 그쪽 방향으로는 소질이 닿아 있었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은 연합고사를 합격해 대구로 유학 간 아들이 진학을 하지 않는 것에 적잖이 실망을 하셨지만, 사립대 입학금 정도의 밑천을 대주셨다.요즘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스무 살짜리가 어떻게 가게를 낼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시골 출신이라 농촌에서는 초등학생도 농삿일을 거들어야 하고 소꼴도 베야한다. 중학생이면 낫도 갈 줄 아는 등 웬만한 중머슴 정도의 일꾼이 된다. 어릴 때부터 썰매도 만들고 팽이도 깎고 연도 띄웠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작 기능이 갖춰진 상태였다. 당시 간판 제작업은 디자인 감각만 있으면 기술적으로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그 일은 군 입대 전까지, 2년 정도 하였다. 약관의 나이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 많은 경험을 했다. 사기꾼도 만나고 은인도 만났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는 걸 그 나이에 알았다. 그 경험은 인생 전반에 걸쳐 큰 도움이 된다.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이 가게를 많이 찾았다. 낮에는 짜장면을, 밤에는 술도 얻어먹을 수 있었으니 '참새 방앗간'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시공 갈 때는 보조기사 역할로 거들어 주기도 했으니 상부상조였던 셈이다. 그 친구들과는 깊은 우정을 쌓아 지금도 잘 지낸다.특히, 올해는 운수업에 종사하게 된 지 15년이 되는 해이다. 운수업은 내 인생 최대의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큰 위기를 맞았었다. 무일푼의 상태로 생판 낯선 운수업에 뛰어들었다. 단기필마, 8톤 트럭 한 대로 물류운수업에서 나름 기반을 다졌다. 대학을 나와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이제 퇴직을 하지만 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지난 4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앞으로 그 격했던 순간들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수필가이니 정감 넘치는 수필도 곁들여 가면서.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0-09 13:18:09

박병욱 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종교칼럼] 장학금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김 집사님은 50대 중반이었다. 음식점에서 함께 밥을 먹고 나서 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집사님은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급히 일어나 계산대로 달려가 계산을 하셨다. 그러고는 내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내가 신발을 신는 동안 정중한 자세로 서서 기다리셨다. 이어 출입문을 예의 바르게 열어 주셨다. 영락없는 군주와 신하의 모습이다. 세상에….당시 나는 유난히 어려 보였고, 김 집사님은 머리가 반백이었다. 음식점의 다른 손님들이 우연히 이 낯선 풍경을 보고는 시선이 고정되어 점점 더 많은 손님들의 시선이 내 등 뒤에 꽂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등에 땀을 흘렸다.나는 김 집사님의 이런 행동을 만류했지만 허리도 불편하신 분이 동작이 얼마나 민첩했는지 막을 길이 없었다. 내가 만류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 같아 나는 빠르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이런 일은 김 집사님과 여러 가지 일로 동행할 때마다 생겼다. 큰 교회라 부서도 여럿이고 사람도 많은데 인사 이동을 할 때면 그 집사님과 나는 같은 부서가 되었다.내가 대학원을 입학할 때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 성적 장학생으로 추천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교회로 임지를 옮겨서 시무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나는 이미 작은 교회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며 장학금을 포기했다. 그리고 한마디 조언을 했다. 성적 우수생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소위 우수한 인력을 자기 교회로 초빙하는 것으로 연결하지 말아야 다른 작은 교회도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후 그 교회는 장학금 지급 규정을 바꾸었다. 나는 나대로 조건이 더 좋은 다른 장학금과 연결되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걱정은 덜게 되었다.몇 년 후 우연히 그 교회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대학원생이었다. 그 교회는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당연히 나에게 장학금이 전달되었다. 나는 장학금을 이중으로 받는 것이 부담되어 동료에게 물었더니 책값 등 공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주는 기관도 다른데 무엇이 문제냐고 했다. 그래도 나는 양심의 소리를 따라 장학금을 이중으로 받을 수 없다고 반납했다.김 집사님이 나를 과도하게 예우하면 도리어 내가 불편하다고 말하며 몇 번이나 그러지 말라고 부탁을 하다가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김 집사님이 수년간 교회 재정 사무를 보았는데 성적 장학금과 좋은 임지를 거절한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고, 장학금 이중 수령 때문에 반납한 사람도 딱 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나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 마음속에 호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내가 양심을 따라 선택한 작은 일이 김 집사님께는 위대하게 보였나 보다. 김 집사님은 오랜 기간 저명 인사의 개인비서를 해서 몸에 밴 예의라고도 했다.지난날의 나는 지적인 욕구가 유난히 강했다. 질문이 생기면 답을 꼭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도 학문적인 욕구를 채울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의 희생과 주변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욕심 부리지 않아도 항상 장학금을 받아온 셈이다.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나는 지금도 개인비서를 거느릴 생각이 없고, 과장된 예의에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다만 돈에 대한 자세가 사람들의 평판에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는 교훈을 기억하고 있다.

2019-10-09 10:34:15

오정근 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영국 맨체스터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경제칼럼] 정치 리스크가 덮치고 있는 경제 리스크

한국 기업 신용등급 하향 조정 우려경제 살릴 입법은 올스톱 위기 직면내우외환으로 추락하는 한국 경제조국발 정치 리스크에 결정타 맞나조국발 정치 리스크가 내우외환으로 추락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결정타를 안겨주고 있다. 지난달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한국 기업에 대해 대거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평가 대상 24개 비금융 민간기업 중 긍정적인 기업은 없으며 13개사는 하향 조정을 검토 중이라고 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1997년 금융위기 때도 국제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 하향이 외국 자본 썰물의 결정타가 된 적이 있다. 이미 한일 갈등으로 일본 자금 유출과 그에 따른 외국 자본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무디스의 평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심리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조국발 정치 리스크가 가세해 향후 정국은 물론 경제도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시계 제로의 깊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조국 사태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자녀 입시 관련 의혹, 웅동학원 재산 관련 의혹, 펀드 투자 의혹, 사상 전향 여부다. 앞의 세 가지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 중이지만 좌파들이 외쳐 온 공정, 정의 같은 가치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3일에는 100만 명이 넘는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항쟁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여권이나 청와대에서도 노골적인 조국 구하기 엄호 발언들이 연이어 나오는 등 영달이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치 따위는 내팽개치고 똘똘 뭉쳐 물불 안 가리는 패거리 좌파들의 민낯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가치는 허울이고 개인과 가족의 영달을 위한 위선과 거짓이었던가.사상 전향 여부는 국회 청문위원들의 추궁에도 불구하고 명쾌한 답을 하지 않아 이것이 결국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한 배경인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식에서 "대선 때 권력기관 개혁을 가장 중요한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고 그 마무리를 조 장관에게 맡기고자 한다"며 임명 배경을 밝혔다.그렇지 않아도 적폐 청산 광풍이 진동하고, 그 정점에 있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에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 수사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상황에서 권력기관의 개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려의 시선이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서점가에서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시사하는 국민들의 우려를 문재인 정부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이미 한국 경제는 문 정부 출범 이후 정치 리스크로 추락해 왔다. 지난해까지 전 세계가 호황을 지속했지만 한국 경제는 나홀로 전방위적 추락을 지속해왔다. 경기 변동은 2007년 5월을 정점으로 위기 기간을 제외하고는 최장 하강 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2017년 3.2%였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7%로 낮아진 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1.9% 전망을 내놓는 등 금년에는 2% 선도 위태로워졌다.일시적 추락이 아니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일본식 장기 불황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결국 민생은 참담하게 무너지고 있다. 일자리는 날아가 실업자는 증가하고 가계 부채, 심지어 연 100%가 넘는 불법 사채를 쓰는 한계 가계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모두 소득주도성장 정책, 반기업 정책 등 좌파 이념편향적 정치 리스크에 따른 결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미중 통상 전쟁에 따른 연이은 수출 감소도 타격이 되고 있는데 수출 하락의 골을 더욱 깊게 할 한일 갈등은 다분히 정치 리스크 요인을 안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설상가상 조국발 정치 리스크로 국회는 빙하기다. 경제를 살릴 경제 입법은 올스톱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주사파들이 점령하고 있는 청와대는 정책 전환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더 이상의 정치 리스크는 안 된다. 민생이 죽어가고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19-10-08 19: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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