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문화유산,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

[매일춘추] 문화유산,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

목조 건축물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건축물 화재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이달까지 문화재 화재 건수는 총 14건으로, 화재 원인은 자연적 요인보다 부주의나 전기시설, 방화 등이 많았다.2008년 국가적 상징물인 국보 1호 숭레문이 소실되는 충격적 방화사건을 경험하였다. 재발 방지를 위해 다음 해인 2009년 2월 소방시설법과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고, 정기적인 안전점검과 국보·보물인 목조건축물에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였다. 또한, 문화재 안전관리 의식을 높이고자 화재발생일인 2월 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하였다.일본의 경우, 1949년 국보인 호류샤 금당벽화 소실을 계기로 '문화재 방화(防火)의 날'을 지정하였다. 이후 최첨단 방화 시스템을 구축하였는데, 그 중 눈길을 끄는 시설은 건축문화재 처마 끝에서 물을 분무해 화재 확산을 막아주는 물안개 수막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중국은 문화재 훼손 예방과 소방 대책을 위해 구체적 방안 제시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60W 이하 백열등만 사용하고, 형광등과 수은등은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고궁의 경우 CCTV와 열·연기 감지기 등이 설치되어 있고 화재 발생 시 2분 내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매뉴얼을 구비해 두었다. 특히 자금성 내부에 영업 중인 카페와 식당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가스를 공급하지 않고 있다.지난 5일 전북 정읍시 내장사 대웅전에서 우발적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백제 무왕(636년) 때 창건된 내장사는 전쟁 등으로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하였고, 가장 최근인 2012년에는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2015년 재건되었으나 이번 방화로 또다시 소실된 것이다. 내장사 대웅전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즉각적 대응이 어려웠다. 오래된 고찰이나 비지정문화재의 소방시설 설치는 의무화가 아니어서 구비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우리나라의 건축 문화재 및 사찰은 산이나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여 진입로가 협소한 경우가 많다. 소방서는 주로 인구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어 현장에서의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소화기와 비상소화장치함 등과 같은 시설을 확보하고 관리자의 화재 예방·진화법 등의 매뉴얼 마련과 교육·훈련이 필요하다.문화유산 헌장에는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어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은 우리의 마땅한 권리이자 의무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화재는 제도적 마련만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우리가 문화와 정신이 담긴 역사적 자산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소임을 다 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3-11 12:01:47

[기고]다시 되살린 거창국제연극제 불씨

[기고]다시 되살린 거창국제연극제 불씨

필자가 지난 2018년 7월 거창군수로 취임할 당시 지역에는 골치 아픈 '3대 난제'가 놓여 있었다. 첫 번째가 거창구치소 건립 문제요, 두 번째가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과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의 법조타운 내 이전 문제,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거창국제연극제 정상화 문제였다.거창구치소 건립 문제는 주민투표까지 가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현 장소로 확정되었고, 이후 순조롭게 진행되어 내년 8월 완공될 예정이다. 또 거창지원과 지청도 거창구치소 인근으로 옮겨 타운화하는 계획이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인 공문을 받아 매듭이 지어졌다.마지막 남은 게 거창국제연극제 정상화 과제였다. 앞서 거창국제연극제는 불투명한 예산 집행과 상표권 사용 등으로 2016년부터 보조금 지원이 중단되고, 파행 운영으로 거창군의 갈등 요인이 되고 있었다. 이에 필자는 2018년 지방선거에 나서면서 거창국제연극제를 정상화시키겠다고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군수 당선 이후에 수차례 협의를 거친 후 거창국제연극제 상표권을 군으로 이전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었다. 하지만 양측 평가팀의 감정가격 차이가 워낙 커 집행위원회 측에서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분쟁으로 가게 되었다.급기야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거창군이 집행위에 17억3천5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거창군과 집행위는 협의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지난해 12월 10억 원에 상표권을 이전한다는 합의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올 2월에 집행위원회로부터 상표권 4개를 거창군이 최종 이전받음으로써 그동안 군정의 걸림돌이 되어 왔던 3대 악재가 모두 해결된 셈이다.거창군은 지난 수십 년간 서부 경남의 중심지로 불려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부에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문화적 자산이 없다는 점이 군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0여 년을 이끌어 온 거창국제연극제는 그나마 거창의 문화적 자존심을 지켜준 유일한 자산이었다. 그런 국제연극제가 휘청거리게 되자 군정의 책임자인 군수로서는 책임과 부담의 무게로 잠이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얽히고설킨 매듭은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어도 차분하게 정공법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 일각에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문제 해결 노력이 벽에 부딪힐 때는 안타까움과 함께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한번 어그러진 일을 봉합하려면 몇 배의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교훈도 얻었지만 마지막 고비에서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타협의 물꼬를 틀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거창 군민이 뒤에 있었기에 가능했다.한쪽 당사자로서 문제 해결을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려 준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를 비롯해 힘을 보태 준 거창군의회와 군민들께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난산 끝에 옥동자가 나온다고 했다. 30여 년을 이어온 거창국제연극제가 뜻하지 않게 파행을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꺼져가던 불씨를 어떻게 되살리고 어떻게 발전적으로 이어가야 할 것인지에 매달릴 때다.지금부터 알차게 준비해서 올해는 거창국제연극제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원년으로 만들고 싶다. 때마침 지난해 3월에는 거창연극고등학교도 문을 열었다. 연극도시 거창으로서는 지원군이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이런 기회 요소들을 잘 살려 나간다면 거창국제연극제가 지난 5년 동안의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 거창의 미래 먹을거리 문화상품으로 더 높이 날아오르게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2021-03-11 11:44:44

[춘추칼럼] 지금은 대차고 올곧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

[춘추칼럼] 지금은 대차고 올곧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

해마다 3월은 봄이 왔다는 설렘에 앞서 일제강점기에서 독립한 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더욱이 올해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보궐선거를 치러야 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정치가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선거를 치러야 하는 서울, 부산 등지에서는 당마다 대표적인 주자를 정하고 선거운동에 한창이다. 누군가에게 한 표를 찍어야 하는데 누구를 찍을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다. 누가 우리를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누구의 부동산 및 주거 정책이 좀 더 명확하고 효율적인가.각 후보는 '35층 층 높이 제한을 완화하겠다' 또는 '대대적 재개발과 재건축을 추진하겠다' '신혼부부용 한강 변 초고층 아파트를 짓겠다' '뉴타운 6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 '65세 이상 1주택자 종부세를 면제하겠다' '주택청약 세대별 할당제를 실행하겠다'고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부동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선거는 입후보한 사람에게는 될 수 있는 한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하더라도 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권력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표가 절대적일 것이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을 찾아가고 전직 대통령 부인을 찾아가고 서로 간에 나눈 대화가 신문 방송을 통해 보도되기도 한다.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대학 때 배운 맹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맹자 이루하' 편에 보면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부인과 첩을 두고 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편이 밖에 나가기만 하면 술과 고기를 아주 많이 대접받고 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부인이 "오늘은 누구랑 만나서 그렇게 드셨어요?" 하고 물으니 "오늘은 고관대작하고 마셨지" 하는 것이다.부인이 첩에게 "우리 집 남편이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저렇게 고기와 술을 대접받았다고 하면서 매일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데 그 정도면 남편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해 준 손님들이 집에도 와야 하는데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고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내일은 남편이 밖에 나가서 누구를 만나서 뭐 하고 술을 누구와 마시는지 한번 미행해 보겠다"고 하고 따라 나가 보았다.남편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다른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마침내 동광에 이르렀을 때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남편은 그곳에 가서 구걸하면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그곳에서 부족하면 또 다른 곳에서 얻어먹고 있었다.그걸 본 부인이 집에 와서 첩에게 하는 말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러러보며 살아야 하는 양반이 이러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며 서로 붙잡고 울 때에 남편은 이런 일도 모르고 또 밖에서 돌아와 잘난 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진정한 정치가는 초지일관 소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존경하는 김구 선생님은 한평생을 온전히 조국의 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바쳤다. 동학에 입도하였고 유가 학문을 공부하였으며 의병 활동에도 가담하였다. 옥중에서 새로운 문물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승려가 되기도 했다. 고향에서 농장의 관리인 생활을 하며 농민 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3·1운동 이후에는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최선봉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한평생 민족 자체의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였고 민족 통일을 위한 노력에 매진하였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하지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시장은 있는데 정치가는 없고 국회의원은 많은데 올곧게 철학을 갖고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대차고 올곧은 시장을 뽑고 싶다.

2021-03-11 11:44:25

[데스크칼럼] 그 대구

[데스크칼럼] 그 대구

2월 21~28일은 대구시민주간이었다. 각종 기념식과 문화예술 행사, 이벤트 등이 다양하게 마련됐지만 아쉬움도 컸다. 어느 때보다 시민의 의지와 역량 결집이 필요했던 시기라 시민주간이 좋은 장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 같아서다.올해 시민주간은 코로나19의 국내 진앙이라는 오명을 쓴 채 갖은 설움을 당해야 했던 지난해 2월 이후 1년 즈음 되던 때였다. 대구시민답게 우직하게 잘 이기고 견뎌내긴 했지만 1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적잖은 시민의 삶은 피폐해져 위로와 격려, 비전이 절실했다.통합신공항, 행정통합 등 꼬여가는 지역 주요 현안과 관련해서도 분위기를 다잡고 다시 힘을 내 동력을 끌어올릴 기회였다. 천신만고 끝에 합의에 성공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본궤도에 오르나 했지만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 논리에 밀려 짙은 안갯속에 갇혀 버렸다. 대구경북 행정통합도 가장 기본인 당위성이나 공감대, 시민 관심을 얻지 못한 채 좀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정치 지형에서도 이런 찬밥 신세가 없다. 여당과 야당 어느 곳으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소외받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 과정에서 부산 민심을 잡기 위한 정치 놀음에 대구는 뒷전이다 못해 아예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다.그래서 이번 대구시민주간은 어느 때보다 중요했고 의미가 컸다. 상처받고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고, 나아가 힘들 때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대구 시민의 저력을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었고 기회였다. 그러나 늘 하던 기념식과 공연, 행사만 곳곳에서 열렸을 뿐 시민들을 향한 특별 이벤트도, 메시지도 없었다. 국회의원, 대구시장 등 지역 리더들의 존재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시민주간은 대구 역사와 정체성을 되새기고 위대한 시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마련한 기간이다. 기존 10월 8일이던 대구시민의 날을 지난해부터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인 2월 21일로 바꿔 시민주간 첫날로 삼았고, 마지막 날은 2·28민주운동 기념일인 28일로 정했다. 2·28민주운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최초의 시민 주도 경제주권 수호 운동이다.몇몇 형식적인 행사, 공연, 이벤트를 하려고 대구시민주간을 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시민의 날, 시민주간 제정이 대구 정신을 기억하고 기리고 이를 현재에 되살리기 위해서라면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대구에 그 의미와 역할이 더욱 절실했다.코로나로 대규모 집합 행사가 어려웠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결과가 성공적이었든 아니든 공격적·대대적으로 시도하고 추진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대구와 대구시민의 정신과 힘을 모아 돌파구를 마련하고 폭발시킬 뭔가를 위해 시정부의 적극적인 관련 콘텐츠 연구·개발이 필요했다.최근 검찰총장의 대구검찰청 방문 때 꽃다발을 들고 달려간 대구시장이 왜 대구시민주간 땐 시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그때 거기서 나올 것이 아니라 시민주간에 시민 앞에 나와 대시민 호소문, 담화문이라도 발표해야 했다. 직접 대면이 어려우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라도 말이다.위로와 격려, 희망, 재응집이 필요했던 시기에 때마침 대구시민주간이 찾아왔지만, 아쉽게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놓쳐버린 그 기간과 그 대구를 찾고 싶다.

2021-03-10 18:21:14

[기고]사중구생, 경북도의 소상공인 살리기

[기고]사중구생, 경북도의 소상공인 살리기

코로나19 상황이 1년 넘게 계속되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가혹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정지·제한 등 방역 지침을 누구보다 열심히 따랐음에도 너무 큰 피해를 당하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경북의 소상공업은 도내 사업체의 81.3%(23만2천40개 중 18만8천733개)를 차지하고 있다. 종사자는 36만6천1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2.7%에 이른다. 3명 중 1명이 소상공업 업체에서 일하는 셈이다. 서민 경제의 근간이자 지역 경제에 피를 돌게 하는 모세혈관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북도는 민선 7기 이후 소상공인 지원 기반 구축에 최선을 다해 왔다. 지난해 소상공인 전담팀 신설, 포항, 경주, 안동, 구미에 이어 영주에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역센터를 추가 유치함으로써 현장 밀착 지원 체제를 강화했다. 또한 '소상공인 지원에 관한 조례' '상권 활성화를 위한 특화 거리 지정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해 제도적인 지원 기반을 마련하고, 경북도와 12개 시군에서 소상공인연합회를 설립하는 등 조직과 제도를 착실히 정비해 왔다.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돼 추경예산에 240억 원을 확보해 7만여 소상공인에게 카드수수료를 지원했다. 피해 점포 지원을 위해서는 1천151억 원을 확보, 업체별로 50만 원에서 최대 300만 원까지 지급했다. 소상공인 무이자 특별경영자금도 1조 원 규모로 별도 지원했다.하지만 장기적인 코로나19 피해를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경북도는 이에 올해 '민생'을 도정 운영 방향의 핵심으로 정하고, 도지사는 신년사를 통해 죽을 고비에서도 살길을 찾는 사중구생(死中求生)의 정신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고 밝혔다.더불어 지난 1월 26일에는 도지사 직속으로 '민생 살리기 특별본부'를 구성해 경북형 민생 살리기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기를 살리는 다양한 방안이 포함돼 있다.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200억 원 지원, 폐업 정리를 포함한 소상공인 새바람 체인지업 사업, 소상공인 육성 자금 이차보전 500억 원에서 2천억 원으로 확대 지원, 생계형 차량 취득세 100% 감면과 같은 대책이 추진된다. '지역사랑상품권'도 지난해 7천430억 원을 크게 상회하는 1조 원 규모로 확대 발행해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을 막고 지역에 돈을 돌게 하여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도지사가 직접 '새바람 행복버스'를 타고 민생 현장 곳곳을 방문해 지역 현안을 듣고 해결해 주는 밀착형 민생 탐방도 3월 3일 영천을 시작으로 실시하고 있다.소상공업의 온라인 마케팅 서비스 체계 개편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경북도는 비대면 기반의 소상공인 온라인 판로를 지원하는 온라인희망마켓과 전통시장에 경영 매니저를 지원하는 등 새로운 판매 방식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길어지는 코로나19로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다행스럽게도 2월 15일부터 우리 지역은 거리두기가 1.5단계로 완화돼 조금은 숨통이 트일 수 있게 됐다.그러나 완전한 피해 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다.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모두의 지혜와 힘이 필요하다. 경북도는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한 절규에 귀를 기울이며 사중구생의 정신으로 기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루빨리 이들의 주름이 활짝 펴지고 지역 경제의 든든한 희망의 다리가 돼 도민들의 삶이 안정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2021-03-10 11:32:57

[최재목의 새론새평] 좌우에서 ‘제3지대’로 향하는 까닭은

[최재목의 새론새평] 좌우에서 ‘제3지대’로 향하는 까닭은

2월에서 3월로 들어섰다. 정치권의 흐름도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적 분열에서 차츰 제3지대로 향한다. 2에서 3으로 분화되는 모양새가 요즘 말로 '신박하다'(놀랍고 새롭다). 일석이조, 일거양득, 일심이문처럼 1은 왜 반드시 2로 향하는가.2는 '맞섬'(이분, 대립, 분열, 대치, 양극, 불화, 긴장)인 동시에 '마주함'(상대, 대비, 대칭, 동반, 반려, 균형, 화해, 안정)이다. 보통 2는 합일을 파탄 낸 분열・대립의 주범으로 간주된다. 둘이 평행선을 달리며 서로 만날 수 없는 상극으로서, '하나가 둘이 되는' 갈등이라는 부정적 방향에서 파악한 것이다. 한편 2는 1이라는 하나=전체의 잠재성・다양성을 의미 있게 처음으로 가시화한 것이라는 긍정적 의미도 있다. 분리된 둘이 화합・화해하는 상생으로서, '둘이 하나가 되는' 치유의 방향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이처럼 2는 우리 인간 정신의 이중성이다. 이념, 가치, 기호(嗜好)의 면에서 이쪽저쪽으로 갈라지거나 이곳저곳을 오가는 인간 내면의 진실을 말해 준다. 우리는 수시로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둘이 되는' 경험을 한다.둘은 선(線)으로서, 2차원에 머문다. 단조로운 편 가르기, 줄서기를 강요하는 이분법이다. 대개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선전・선동은 이쪽 아니면 저쪽에 서라는 무언의 권력적 강요이다. 최근 가덕도로 부산 민심을 잡으려는 노력도 그렇다. 과거에는 선거를 앞두고 고무신・막걸리를 돌렸다. 민심은 속고 속으면서도 표를 몰아 줬다. 여하튼 2는 너무 단조로운 게임을 만든다. 3이 되어야 비로소 이분법의 한계를 탈피할 수 있다. 2에서 3이 되면, 3각형처럼 3차원적 입체화를 이룰 수 있다. '3에서 만물이 생겨난다'(三生萬物)고 했듯 비로소 다양한 분화가 일어난다. 다양성은 생명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이분법에 길들여진 영혼들은 자주 갈림길, 경계선에서 두리번거리며, 아찔한 정신적 경련을 경험하며, 실존적 자아를 형성해 가야 한다. 서양에는 '세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반드시 바보 한 명이 끼어 있다'는 속담이 있으나 동양에서는 '셋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거울이 될 만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三人行必有我師)라고 했다. 진보/여, 보수/야의 둘이 아닌 또 다른 선택지를 호출하고픈 까닭이다.마침 서울시장이나 대선 후보를 거론할 때 '제3지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반가운 일이다. 특정 이념과 당파에 빙의된 자아를 넘어서서, 국민들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는 말을 여전히 믿고 살아간다. 그러나 희망은 늘 우리를 속여 왔고, 거짓말을 해 댔다. 그렇다고 양식과 양심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면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하리라는 믿음이 헛되다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개떼, 도둑질을 너무 많이 목도해 왔기에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우리는 자꾸 현실 너머의 제3지대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을 향할 지도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에, 한두 마디 소망을 적어본다.첫째, 기성 권력으로 쉽게 회귀하거나 야합하지 말라. 현실의 2분법에 지친 국민들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3자의 마음'을 찾고 있다. 좌우 양변을 떠나되 어정쩡한 추상적 '중도'(中道)라는 관념은 걷어차야 한다(離邊而非中). 오로지 국민의 여망 편에 서는 것이 중(中)이어야 한다. 기성 권력에 빌붙지 말고 국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 일심(一心)의 정치를 고민했으면 한다.둘째, 대한민국의 정치는 늘 대립과 갈등으로 요동쳐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대립・갈등의 역동성 위에 빅 텐트를 치고서 그 힘을 긍정적 추진력으로 삼아 화합을 이끌어내는 화쟁(和諍)의 정치 기법을 익혔으면 한다. 칼 손잡이를 잡은 손이 결국 칼날을 쥐고 피를 흘려 온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부도덕한 것은 일찍 끝났고(不道早已), 해도 달도 차면 기울었다(日月盈昃). 제3지대로 가는 길은 양식과 양심 있는 건강한 민심의 결집에 달려 있다. 문제는 평등, 공정, 정의의 실현이다.고요한, 불안한 3월. 꽃 피우고 싶어 서성이는 대지 위의 환한 생명들처럼, 민심의 아린 고갱이는 자꾸 제3지대로 눈길을 돌린다. 자꾸 개판이 돼 가는 세상을 속 시원히 한판 뒤집어 달라는 뜻이리라.

2021-03-10 11:32:31

[매일춘추] 최초의 미술

[매일춘추] 최초의 미술

약 2만 년 전 유럽. 뗀석기로 슴베찌르기용 창을 만들어 들소 사냥을 나서는 한 무리의 구석기인들이 있다. 이들은 날카로운 창으로 무장하고 서로 협력하며 사냥을 한다. 움막으로부터 먼 길을 이동해 다른 부족과 합세하고, 들소 떼를 벼랑으로 몰아 겨울을 날 식량을 확보한다.그 와중에 족장의 아들이 들소에게 받혀 벼랑 중턱의 바위에 떨어지고, 그가 죽은 것이라 판단한 사람들은 슬퍼하며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죽지 않고 깨어난 주인공은 가까스로 절벽을 내려와 늑대를 길들이며 멀고 먼 귀향의 여정에 나선다.이상은 2018년 알버트 휴즈 감독의 '알파'라는 영화의 줄거리다. 냉혹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삶이 다큐멘터리처럼 리얼하고, 드라마처럼 감동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미술사적 관점에서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우선, 동굴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하이에나 무리를 피해 숨고 기력을 회복하는 곳이다. 구석기 시대의 미술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곳 중의 하나가 동굴이다. 스페인과 남프랑스에서 발견된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에는 후기 구석기인들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술의 역사 첫 장을 장식하는 바로 그 유명한 동굴벽화이다.벽화의 소재는 들소다. 횃불에 비친 동굴 벽면의 요철을 보며 그들은 들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들소는 생존이 걸린 대상이니, 들소의 털 한 오라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는 들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그들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놀라운 묘사력으로 들소를 그려냈다. 동굴은 그들에게 휴식과 제의를 위한 장소였다. 그래서였을까? 벽화의 들소 그림에는 마치 살아있는 들소를 사냥하듯 창 자국이 남아있다.두 번째는 돌칼이다. 주인공은 뛰어난 솜씨로 돌칼을 만든다. 그런 솜씨로 구석기인들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빚어냈다. 그러나 최초의 비너스로 기록된 이 조각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약 2만3천년 전 제작된 11.1cm의 이 여인상은 가슴과 엉덩이가 과장되게 묘사되어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불린다. 얼굴과 손의 묘사를 생략해버린 이 비너스는 그들에게 조직적 사냥을 위한 다산을 의미했고, 다산은 풍요와 연결되는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주인공의 귀향을 도운 타투를 보자. 초행길이었던 사냥터,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부족마을.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린 그에겐 미로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 길을 찾게 해준 것이 바로 동굴에서 아버지가 새겨준 별자리 타투였다. 손에 새긴 타투로 밤하늘을 관찰하며 방향을 찾고, 마침내 부족이 살고 있는 움막으로 주인공은 돌아갈 수 있었다.타투는 그에게 내비게이션이 되어준 셈이다. 어쩌면 그의 타투는 추상적인 문양으로 도구와 장신구를 장식한 기원이 아닐까? 신석기 시대 유명한 빗살무늬토기 같은 다양한 문양들 말이다.이와 같이 미술은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간절함을 담는다. 미술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과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3-10 11:29:02

[경제칼럼] 디지털 전환의 새로운 단계 '제조-서비스 융합'

[경제칼럼] 디지털 전환의 새로운 단계 '제조-서비스 융합'

제조 현장의 디지털화 바람이 거세다. 컴퓨터 기반 설계(CAD) 기술 활용, 수치 제어 장치나 3D프린터 같은 디지털 제조 장비의 도입, 센서를 이용한 생산 관리 등은 이제 흔한 것이 됐다.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을 종합적으로 도입해 생산 체계 전반을 혁신하는 스마트팩토리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도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스마트팩토리 도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정부 계획대로 라면 2022년까지 전국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50%인 3만 개가 스마트팩토리로 변하고, 대구도 1천700개의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할 전망이다.스마트팩토리 같은 디지털 기술의 도입은 생산성 증가, 품질 향상, 원가 감소, 납기 준수율 증가 등 제조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어 전환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 제조기업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스마트팩토리가 생산 현장의 디지털 전환과 관련이 있다면 공장을 넘어 사회 전반적인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 제조기업이 놓치지 말아야 할 추세가 바로 제조-서비스 융합 또는 제조업의 서비스화이다.기존에는 제조와 유통·판매를 분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인식됐고, 제조기업이 담당해야 하는 서비스라는 것이 하자 보수나 고장 수리 즉, 애프터서비스(AS)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 제조기업이 직접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이것은 디지털 전환에 따른 영역 파괴의 결과이며, 플랫폼 중심으로 경제가 움직이는 시대에 맞춘 제조기업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제조-서비스 융합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데, 애플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의 모바일 기기만 판매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앱이나 콘텐츠를 제공하여 매출액을 올리고 있으며, 실제 앱과 콘텐츠 등 서비스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의 20%를 넘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매달 사용료를 받고 자율주행 기능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형태로 제조-서비스 융합을 추진하고 있다.이러한 제조-서비스 융합이 단순히 몇몇 기업이 주도하는 사업 전략이 아니라 전 세계 제조기업이 직면한 메가 트렌트가 된 이유가 있다.먼저, 제조업만으로는 기업가치를 떠받쳐 줄 이익률을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에서 원천기술이나 엄청난 제조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제조기업은 영업이익률 20%를 넘기 어렵고, 대부분 한 자릿수에 머무는 반면, 서비스를 결합해 쉽게 이익률을 높일 수 있다.다음으로 충성도가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문제다. 제품의 뛰어난 기능은 어렵지 않게 복제할 수 있지만, 익숙한 것을 다시 찾게 되는 사용자의 경험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서비스가 필요해서다. 같은 기능의 자동차라도 왼쪽 운전석에 익숙한 사용자에게는 오른쪽 운전석이 있으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이 사용자 경험은 재구매율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고, 그 중심에 서비스가 있다.마지막으로 고객을 장악하고 있는 서비스 기업들의 공략 때문이다. 플랫폼을 가진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PB(Private Brand) 제품을 쏟아 낼 시기가 머지않았고, 이제 제조기업들은 거대한 공룡과의 싸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협력사도 아닌 전자상거래 기업의 단순 하청으로 전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객을 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과 함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제조-서비스 융합의 중요성을 인식하더라도 인력 구성이나 투자 여력 측면에서 개별 중소기업이 대응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제조에 능통한 인력만 가진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어렵고, 거래선 관리나 영업에만 익숙한 인력으로는 마케팅이나 고객 발굴이 쉽지 않을 수 있다.하지만,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못 할 것은 없다. 공기청정기 제품에 앱을 결합하여 필터 판매나 통합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교구와 함께 교육용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업 등 다양한 성공 사례도 있다. 특히, 정부나 지자체에서 제조-서비스 융합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마트팩토리가 디지털 전환의 기초였다면 제조-서비스 융합은 제조기업의 지속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임을 명심하고,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2021-03-09 14:30:22

[종교칼럼]금성과 화성에서 지구를 본다면

[종교칼럼]금성과 화성에서 지구를 본다면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인류가 금성에서 지구를 바라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곳에 도착하여 살아낼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화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으니, 상상의 나래를 펴서 조금 이야기해 보고 싶다.금성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우리가 여기서 화성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두터운 구름으로 둘러싸여 하얀색인 금성이나 산화철로 뒤덮여 붉은색인 화성과는 달리 지구는 푸른색이다. 금성에서는 한밤중에도 지구를 볼 수 있다. 지구가 금성 바깥 궤도에서 태양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화성에서는 지구에서 금성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초저녁이나 새벽에만 볼 수 있다. 화성 안쪽 궤도에서 돌기 때문이다.금성이나 화성에서 엄청나게 좋은 망원경으로 지구의 표면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볼 수 있다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땅, 물, 공기, 햇빛 등이 어우러져 살려내는 생명체들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할 것이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면서 면밀하게 유지되는 지구생태계! 왜 여기에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지, 왜 생로병사, 생자필멸의 원리에 예외가 없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금성이나 화성에서 보면, 지구표면의 79억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이상적으로 여겨질까? 필자가 지금 종교칼럼을 쓰는 중이니 상상의 범위를 좁혀서 종교적 현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할 이야기들이 천일의 야화처럼 많을 것이다.지구에 이렇게도 많은 종류의 종교들과 종교단체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먼저 놀랍게 여겨질 것 같다. 이어서 '도대체 종교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저다지도 많이 존재할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저 많은 종교들과 종교단체들이 무엇을 하자는 것이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물음도 강하게 일어날 것이다.오래 전 우리 학교 생물학과 교수 한 분이 좁은 승용차 안에 함께하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기세로 "신부님, 도대체 교회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제법 열성적인 개신교 신자였기에 즉시 '이 질문은 예사로운 질문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교리를 가르치듯이 일반적인 교회론을 이야기해서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그런데 그 승용차 안에는 나보다 많이 선배인 총장신부가 함께하고 있었다. 이쪽저쪽을 고려해가며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총장신부님께 질문할 것이지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이런 다소 원망의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대답하기까지 시간을 오래 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교수님, 교회를 계모임으로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고 질문한 교수도, 함께 들은 총장신부도 침묵했다. 나도 침묵했다. 더 이상 긴 말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공감했던 것 같다.지구촌의 각 종교들이 나름대로 고유한 세계관을 갖고 있고 자기 종교에 대해 가르칠 것이 많아서 서로의 차이점들에 주목한다면 참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이고 멀어지고 심하면 다투기까지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로 안에 든 긍정적인 면과 공통점에 주목한다면 많은 것을 발견하여 활발한 대화와 더불어 친밀감을 느끼고 종교간 평화가 정착되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다.이어지는 종교칼럼에서는 종교간 대화와 종교자유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전개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이 흥미를 느낀다면 여러 차례 진행할 것이고 지루해 한다면 주제를 바꿀 것이다.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일이다.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2021-03-09 11:55:54

[매일춘추] 영상시대의 골드러시

[매일춘추] 영상시대의 골드러시

미디어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 1인 크리에이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실감한다. 시작을 막막해하는 분들에게는 처음부터 좋은 장비가 필요 없으니 일단 시작부터 해보시라 적극 권한다. 센터의 초급교육과정도 안내드린다. 영상제작에 대한 저변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기 때문이다.그러나, 산업 육성의 차원으로 가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유튜브가 대세이니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크리에이터 양성만으로는 지역 내 영상 산업 육성이라는 장기목표 달성을 기대할 수 없다. 이미 포화상태인 크리에이터 시장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도 힘들거니와, 성공한다 하더라도 소수의 지역 유튜버들에게서 유의미한 고용, 부가가치 창출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영상산업의 전망이 어둡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영상산업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인 미디어 플랫폼뿐 아니라 IPTV, OTT 등 새로운 플랫폼에서 요구하는 영상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증가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확실한 추세다. 문제는 온택트 시대를 맞아 더욱 성장할 산업 분야에서 대구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비교우위 분야를 발굴하고 육성하느냐에 있다.우선 접근의 인식부터 변화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서부로 몰려들었던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러시 때 금을 찾아 돈을 번 사람은 극소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작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들은 채굴장비, 생필품, 식료품업자들이었다. 청바지의 대명사 리바이스의 시작도 이 때였다.1인 유튜버 양성에 초점이 맞춰진 영상 분야의 육성 방향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편집 혹은 CG, VFX 등의 특수효과, 애니메이션 디자인, 사운드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 영상의 후반작업(post prodution) 분야나 파생산업을 특화시켜 육성하는 것이다.영상물의 후반작업은 온라인영상, 드라마, 방송,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상물의 필수과정이다. 실제로 영상영화산업을 미래먹거리로 중점투자하고 있는 부산, 전주 등은 후반작업 분야의 시설 유치와 지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장의 규모도 급격하게 커지고 있어 효과적으로 육성만 한다면 충분히 향후 대구 미래산업의 중추가 될 수 있다.실제로 인구 80만 명의 캐나다 퀘벡은 방송, 영화의 제작 유치와 후반작업이 주요한 기반산업 중 하나이다. 드라마나 영화 후반작업을 해봐야 얼마나 벌겠나 싶겠지만, 퀘벡영상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규모가 10억 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1조1천억원이 넘는다. 영상시대의 골드러시는 이미 시작되었다. 무엇을 쫓을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3-09 11:54:44

[기고]위치추적장치 사회안전 크게 기여 가능

[기고]위치추적장치 사회안전 크게 기여 가능

지난해 4월 코로나19 자가격리자 무단이탈 사례가 이어지자, 방역 당국이 위치추적(전자감독)이 가능한 '전자 손목 밴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가 인권침해라는 거센 논란에 부딪혀 지침 위반자에 한해서 착용시키는 것으로 후퇴했다. 당시 홍콩이나 미국 켄터키 등 미국 일부 주에서는 '손목 밴드'를 도입하였고 대만 등은 검토 중에 있었다.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도입에 반대하는 여론이 컸을까.우리 국민은 '위치추적'이라는 말에서 성범죄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2007년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제일 먼저 위치추적을 실시했다. 그 이후 법률 개정을 통해 미성년자 유괴 범죄, 살인죄, 강도죄 등 강력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추가 도입했다.이에 반해 우리보다 앞서 위치추적장치를 도입한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강력 사범보다는 가택 구금과 결합하여 교도소 과밀 수용 완화와 교정 비용 절감, 대상자의 원활한 재사회 및 낙인 효과 감소에 중점을 두고 재범 위험이 낮은 대상자를 상대로 우선 실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비해 전자장치 도입에 대한 반감이 적었다.우리나라에서도 전자감독제도를 일반 사범으로 점차 확대해 가고 있다. 2020년 2월 법률안이 개정되어 전자감독(부착) 조건으로 보석이 가능해졌고, 가석방 예정자의 경우에도 범죄 내용, 개별적 특성 등을 고려해 가석방 기간의 전부 또는 일부의 기간을 정하여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전자장치 부착 보석이 불구속 재판 확대 및 피고인 방어권 행사 강화, 교정시설 과밀 수용 완화 등 순기능과 함께 허가 대상자의 도주 방지와 출석 담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가석방 출소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이 밖에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전자 목걸이, 단기자유형의 대체 방안으로 가택 구금 장치, 보호관찰 대상자의 음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음주 감응형 전자장치, 외출제한명령 감독을 위한 스마트워치 등의 전자 부착 장치를 개발 중에 있거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면 최근 스위스 법원이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를 준수 사항으로 부과하면서 그 이행 여부를 감독하기 위해 전자장치 부착을 명하고 있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가택 구금 제도를 통해 단기자유형의 폐해를 줄이고 있다.또한 AI 전자감독 서비스(범죄 징후 예측) 개발로 전자장치 부착 대상자의 과거 정보와 현재 생활 동태 등의 자료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재범 위험성 정도와 내용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적기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성범죄 관리에 있어서도 대상자의 정보통신기기 이용 내역(성 착취물 접근 등)의 차단이 가능한 점검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으로 있다.전자 부착 장치 기술이 점점 진화하여 범법자(가해자)의 관리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활용되고 있다. 이런 전자장치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완화된다면 사회 안전과 공공 복지 증진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2021-03-08 11:31:41

[세계의 창] 중국 양회에 주목하라

[세계의 창] 중국 양회에 주목하라

'양회'가 열리는 중국 베이징의 하늘을 엷은 스모그가 덮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일은 더욱 불편해졌다.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에는 3월에 열지 못하고 5월에 개최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예정대로 지난 4일 정치협상회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5일 전국인민대표회의 등 양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통상 보름 정도의 일정이었지만 올해는 10일과 11일 각각 폐회하는 일주일짜리 단축 일정이다.원래 양회 기간 베이징은 인민대회당이 있는 톈안먼광장에 대한 통행금지 등 초긴장 상태로 돌입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방역 비상까지 겹치면서 베이징의 분위기는 중국 최대 정치행사가 열리는 '축제'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삼엄한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조성돼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달랐다.양회에 참석하는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해 전인대 의원 등 5천여 명은 모두 중국 국영 제약사인 '시노팜'이 개발한 백신을 사전에 접종했다. 백신 덕분에 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인지 시진핑 국가주석 등 당 지도부는 주요 회의에 참석할 때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연설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교적 자유로운 취재가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외신기자들의 취재는 선발된 20여 명으로 제한했다. 그나마 주요 인사들의 기자회견은 화상으로 진행하는 등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과거와 같은 내외신기자들의 직접 취재는 사라졌다.두 가지 정치기구인 '정치협상회의'(정협)와 우리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가 통상적으로 3월에 동시에 개최된다는 점에서 '양회'라고 부른다.그중에서도 전인대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결정한 당의 주요 정책을 추인하는 당의 최고 의결 기구다. 따라서 양회 기간 중 전인대에서 추인되는 경제성장률과 각 분야 발전 방향 및 목표는 중국이 추구하는 올해의 주요 정책을 짐작할 수 있는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이번 양회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체제 출범에 대한 중국의 대응 방안의 윤곽이 드러나고,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준비하는 성격도 있다는 점에서도 양회가 끝나면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 포석이 자연스럽게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2012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시 주석은 집권 10년이 다 된 지금도 자신의 후계 구도를 결정하지 않았다. 과거 같으면 차기 지도자가 지명돼 권력 인수 준비에 나설 때다. 시 주석 역시 조기에 차기 지도자로 지명돼 지도자 수업을 쌓은 바 있지만, 지금의 후계 구도는 오리무중에 빠져 있다.여전히 공식화되거나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시 주석은 최소 5년은 더 집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이후 3세대 지도자인 장쩌민 전 주석 체제 이래로 10년을 넘겨 집권한 경우가 없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관례를 깨는 집권 구상은 국내외적으로도 적잖은 파장을 야기할 전망이다.시 주석 집권 연장의 근간이 지난해 제시된 '14차 5개년 계획'(14.5규획)과 2035년까지의 장기 전략 목표다. 초강대국 미국과의 경쟁 구도를 염두에 둔 2035년 초강대국 실현은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구상의 기본 포석이었다. 양회를 시작으로 오는 7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10월 19기 중앙위 6차 전체회의,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 등 굵직굵직한 정치 일정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중국공산당의 관례대로라면 내년 10월 당 대회에서 권력을 이양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장기 집권이든, 후계 구도든 시 주석은 차기와 관련한 정치 일정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문제는 권력이 강화된 시 주석을 견제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데 있다.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의 공고화와 1인 장기 집권은 마오쩌둥 이후 새로운 시도이다.시 주석이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전략에 맞춘 대미 대응 방안의 핵심으로 장기 집권을 제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반발이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현재의 중국 정치 구도상 시 주석의 지도력에 도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전무하다. 장쩌민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은 와해 상태에 있다. 베이징 교외에 위치한 '친청교도소'에 갇혀 있는 저우융캉 전 정법위 서기와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등 정적들의 위상은 중국 인민들의 머릿속에서는 사라졌다.시 주석의 장기 집권 구상은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중국의 2035년 목표의 첫 단계인 14.5규획의 성공적인 출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03-08 11:31:09

[매일춘추] 아름다운 선율과 3화음에 귀를 맡겨보자

[매일춘추] 아름다운 선율과 3화음에 귀를 맡겨보자

대장간을 지나던 피타고라스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평소와 달리 두 개의 망치 소리가 오묘하게 들렸다. 오늘따라 망치 소리가 왜 이리도 아름답지? 호기심 많은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두 개의 망치 무게가 일정한 비율일 때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타고라스는 이 원리를 이용해 현의 길이가 1/2이 되면 8도(한 옥타브) 위 소리가 나고 현의 길이가 2/3가 되면 5도 위의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계속 적용, 음의 높이와 음계를 정리, 오늘날의 '도레미파…'와 같은 음계를 만들어 냈다.소리의 높낮이는 진동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음악에서 완전음정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소리는 두음의 진동수 비율이 같은 완전1도(1:1)와 한 옥타브인 완전8도(1:2), 완전5도(2:3), 완전4도(3:4)로 돼 있다. 여기에 열거된 음정 도수 앞에 '완전'이라는 말을 붙여 두 소리의 어울림이 완전하다는 뜻을 부여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두음 사이 진동수의 비율이 복잡해지는데 두 개의 음정 비율이 단순할수록 심리적인 편안함을 느낀다.한 번은 필자가 이탈리아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정오가 되자 주위 성당에서 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종소리와 함께 조용하던 동네의 개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 보니 개들이 그냥 짖는 게 아니라 종소리의 음높이에 맞춰 노래하듯 짖어댔다. 여러 개의 종소리 음정은 완전5도 또는 완전4도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짐승들도 아름다운 소리에 반응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9세기경 서양음악의 그레고리오 성가 단선율에 완전5도 간격으로 병행하는 선율을 첨가했다. 이것을 '오르가눔(Organum)'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두 선율 사이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협화음정을 고려했다. 흔히 '화음이 잘 된다'라고 했을 때 성당의 종소리처럼 완전5도 음정이 바탕을 이룬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주파수가 어떻고, 진동 비가 어떻고 하는 물리적 계산을 두고 감상하지 않는다. 음악 소리는 물리적 현상을 뛰어넘어 감각기관을 통해 청각 세포를 자극한다. 그리고 감상은 인지 단계에서 음들의 순응 관계와 상호작용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서양 음악사에서 다성음악의 출발은 이처럼 완전 협화음정에 바탕을 둔다. 화음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르네상스의 다성음악 양식(Polyphony style)과 바로크 시기에 들어와서 확립됐고 18세기의 짧은 고전기에서 '도미솔'과 같은 완전음정과 장단음정의 조합으로 구성된 3화음으로 꽃을 피웠다. 고전기의 모차르트는 이들 협화음정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아 누린 행운아였다.감상이랍시고 굳이 소리를 추적할 필요가 없다. 아름다운 선율과 3화음으로 된 분산화음에 그냥 귀를 맡기기만 하면 된다. 마침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봄을 기다린 동심의 세계로 '봄의 동경(K.596)'을 모차르트가 불러냈다.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3-08 11:30:37

[매일춘추] 도서관, 소풍 가듯 즐겁게 찾는 제3의 공간

[매일춘추] 도서관, 소풍 가듯 즐겁게 찾는 제3의 공간

"카페 같은 도서관, 삶의 품격이 달라졌다.""아이들과 주말마다 오고 싶어요.""웬만한 카페보다 더 아름답고 편안한 도서관""책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도서관"최근 새롭게 개관하거나 리모델링을 한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다. 도서관이 자유롭게 독서하고 사색하고 커피와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편안하게 만나는 공간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변화를 했다. 2010년 759개에서 2019년에는 1천134개로 50% 정도 늘었다. 매년 40여 개의 도서관이 새로 건립되었고, 지어진 지 오래된 도서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재탄생되었다. 요즘 도서관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곳에서 삶의 휴식을 주는 제3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 개념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그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주창한 것이다. 제3의 공간을 "집, 회사 이외에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자주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정의했다. 제1의 공간은 거주공간, 제2의 공간은 근무공간, 제3의 공간은 집과 일터가 아닌 편리하고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용자가 가장 많은 제3의 공간으로 상업용 공간은 카페이고, 공적인 공간은 공공도서관으로 드러났다.문화체육관광부의 2018년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문예회관 등 문화예술 활동 공간 중에서 도서관 이용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몇 년 전 필자는 건립된 지 34년이 지난 도서관의 리모델링을 진행한 적이 있다. 칸막이로 막힌 공간을 최소화하고 감성적 가구와 심미적 집기로 배치하여 개방된 통합자료실을 조성했다. 책 읽는 장소도 넓은 테이블, 둥근 탁자, 1인용 안락소파 등을 비치하여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리모델링 후 도서대출자 수와 대출 권수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전년도 대비 대출자는 24%, 대출 권수는 19.2%나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다.요즘 사람들은 집보다 분위기도 있고 집중이 잘 되는 제3의 공간을 자주 찾고 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타인과 공감을 나눌 수 있고, 서로 적극적인 소통을 하지 않아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의식하며 느슨한 연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3의 공간은 새로운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도서관은 직장과 가정을 벗어나 정서적으로 휴식하면서 정신적으로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대구지역에는 36개의 공립 공공도서관이 있다. 예전보다는 편리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조성된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일부 도서관은 여전히 낡은 건물과 내부시설, 칸막이 공부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 3개 도서관이 새롭게 건립되고 3개 도서관이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도서관을 상상해 본다. 책과 함께 멋진 공간의 아우라를 체험할 수 있는 도서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새로운 도서관은 대구시민들이 소풍 가듯 즐겁게 찾는 제3의 공간으로 멋지게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2021-03-08 06: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수폐도’(脩幣圖)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수폐도’(脩幣圖)

효명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행사를 그린 '왕세자입학도첩' 6점 중 왕세자가 스승인 박사(博士)에게 입학을 허락받고 수업료라고 할 폐백을 드리는 '수폐도'이다. 박사는 대체로 대제학이 맡는데 당시는 세자시강원 우빈객(右賓客) 남공철(1760-1840)이었다. 그림 왼쪽의 차일을 친 붉은 기둥의 명륜당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처마 아래 오른쪽에 붉은 공복(公服)을 입은 박사가 서 있고 성균관 유생 셋이 왕세자를 대신해 술과 마른고기, 옷감을 드리고 있다. 왕세자는 세자시강원 관료들과 함께 절을 하고 있는데 노란 직사각형으로 자리만 그려져 있다. 왕세자가 스승에게 드린 예물은 백비(帛篚, 모시 3필), 주호(酒壺, 술 2말), 수안(脩案, 마른고기 5정) 등으로 기록에 나온다.성균관에 들어설 때부터 왕세자는 왕위 계승 예비자가 아니라 학생의 신분이기 때문에 출궁할 때의 곤룡포와 익선관 대신 도포를 입고 유건을 쓴 청금복(靑衿服) 차림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성균관 유생들과 같은 학생복이다. 세자를 호위하는 경호부대인 세자익위사의 무관과 의장대는 명륜당 담 밖에서 대기하며 왕세자의 여(輿)와 간이천막인 편차(便次)를 둘러싸고 있다. 편차는 명륜당 아래에 하나 더 설치되어 있는데 왕세자가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절차의 사이사이에 들어가 쉬면서 기다리는 장소의 기능을 한다. 담 밖의 편차에서 명륜당까지 왕세자의 동선이 노란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왕세자는 서쪽 계단으로 오르내렸고 스승인 박사는 격이 높은 동쪽 계단을 사용해 이때도 군신이 아닌 사제의 예가 적용되었다.'수폐도' 앞의 그림은 세자가 박사에게 가르침을 청하며 왕복하는 '왕복도'이다. 박사가 "덕이 부족하여 왕세자를 욕되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사양하기 때문에 왕세자는 다시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하며 두 번 왕복한 후 세 번째에 박사가 "사양해도 명(命)을 받지 못했으니, 어찌 감히 명(命)을 받들지 않겠습니까."라며 비로소 입학을 허락하게 된다. '수폐도' 뒤의 그림은 박사와 왕세자가 명륜당 안으로 들어가 '소학(小學)'을 교재로 첫 수업이자 마지막 수업을 하는 '입학도'이다. 학생인 왕세자는 박사와 달리 책상도 없이 바닥에 책을 놓은 채 수업을 받는다.왕실은 공자와 유학이라는 성인과 학문의 진리 앞에 겸손했다. '왕세자입학도첩'을 보면 조선이 왕조국가이기 이전에 유학국가였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왕과 왕세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하나의 학문 체계이자 문화적 의식으로서 유학은 여전히 쓰임이 계속되고 있다.미술사 연구자

2021-03-08 06:30:00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임은정 검사를 공수처로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임은정 검사를 공수처로

대검찰청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사팀이 재소자들의 위증을 사주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대검은 "한 전 총리 재판과 관련해 증인 2명과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사건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사골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이 반발하고 나섰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과정인지는 알겠다. 감찰3과장의 뜻대로 사건은 이대로 덮일 것이다." 하지만 감찰3과장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발탁한 인물. 게다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산하 인권감독관실도 작년 7월 이미 이 사건에 무혐의 결론을 낸 바 있다.무혐의로 결론이 난 사건을 무리하게 끌고 온 것은 친여 성향의 한동수 감찰부장이었다. 그는 작년 8월 추미애 전 장관의 '원포인트' 인사로 부임한 사골 임은정 검사에게 사건의 검토를 맡겼다. 혐의가 있든 없든 일단 기소는 하라는 권력의 주문이다. 임은정-한동수-추미애의 뒤에는 당연히 권력의 의지가 있었을 게다.대체 이 사건에 왜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물론 친노 대모인 한명숙 전 총리의 신원 및 복권을 위해서다. 그가 별건 수사의 타깃이 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가 검은돈을 받은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생에게 건넨 1억 원짜리 수표 등 그 사실을 입증하는 여러 가지 물증들이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바 있다.따라서 '허위 증언 때문에 누명을 뒤집어썼다'는 시나리오 자체가 애초에 가망이 없는 것이다. 한 전 총리 자신이 재심 청구를 못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한명숙 구하기는 사법적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가진 기획이다. 한명숙은 억울하다는 여론을 조성해 그를 정치적으로 사면 복권해 주겠다는 것이다.그 목표는 이미 물 건너갔다. 한 전 총리 자신이 여권의 구명 운동이 "부담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여권에서 떠들어 봤자 과거에 자신의 범죄 사실만 다시 부각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건은 끝날 줄을 모른다. 왜 그럴까? '검찰 개혁'의 명분을 확보한다는 또 다른 목적이 원래 목적을 잡아먹어 버렸기 때문이다.하지만 저들이 떠드는 '한만호 비망록'이나 위증교사 의혹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 이미 재판 과정에서 다루어졌던 것. 1·2·3심 모두에서 법원의 판단은 "소환조사 과정에서 한만호에 대한 강압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마저도 한만호의 진술에 강압성은 없었다고 인정했다.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계속 반복되는 공작의 패턴이다. 항상 증언을 하는 이들은 사기 전과자나 재소자다. 채널A 사건 때에는 사기죄로 수감 중인 이철과 사기 전과가 있는 지모 씨가 제보자로 나섰다. 라임 사건 때에는 사기죄로 구속된 김봉현 회장이었고, 이 사건의 제보자 역시 재소자였다.이 제보(?)의 배후에는 늘 친여 변호사들이 있다. 한명숙 모해 위증교사를 주장하는 이의 법률대리인은 '민본'의 변호사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이다. 채널A 사건에서도 민본의 변호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라임 사태 관련 김봉현 편지 사건을 맡은 이는 '민변'(민주화를위한변호사회) 출신이다.재소자 둘이 사건으로부터 9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자신들이 위증의 죄를 지었으니 처벌해 달라고 자수를 한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한명숙 재판 1·2·3심,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이어 대검도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이 합리적 의사결정에 이견을 가진 것은 오직 임은정 검사뿐. 그는 '형사 입건과 기소 의견이었지만 대검 감찰3과장은 형사 불입건을 주장했다'며 '공무상 비밀 유출'을 했다. 검사의 직무상 범죄를 다루는 곳은 공수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수처가 이 사건을 맡아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증명하기를 바란다.

2021-03-08 06:22:18

[기고]김치가 억울해서야

[기고]김치가 억울해서야

상고시대부터 우리 조상은 소금절이와 술, 술지게미를 만들어 먹었다. 고구려에서는 술 빚기, 장 담그기 등의 발효성 가공식품을 잘한다고 했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장(醬)과 함께 김치는 무·오이·박·가지 등을 소금에 절여 양념과 젓갈에 버무려 먹는 한국의 원초 음식이다. 신라, 고려 때까지 소금절이·동치미·나박김치 같은 무 김장이 숙달되어 오다가 배추김치는 비교적 후기에 와서 개발되었다고 전한다.(한국민속대사전)15·16세기에 우리 조상들은 절인 남새인 김치를 菹(채소절임 저, 훈몽자회) 또는 葅(저, 구황벽곡방·언해벽온방·구급방·구황촬요·벽온신방 등)라 썼다. 구황(救荒) 또는 구급(救急)은 흉년을 대비하는 비상조치 방법을 뜻했다. 벽온(辟瘟)은 오늘날의 코로나19 같은 급성 유행성 질환을 물리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 선조들은 절인 남새인 김치를 한자로 菹라 썼다. 오늘날의 한한사전(漢韓辭典)에서도 '菹' 자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김치의 한자어 이름은 침채(沈菜)다.(역어유해·동문유해·역어유해보 등) 소금에 절어 갈앉은 채소란 의미다. 소금물에 절어 가라앉은 채소로, 짭조름한 맛과 촉촉한 질감, 시큼한 맛까지 더해질 수 있는 야채 식품이 김치 아닌가. 어감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 선조들은 한자어로 김치를 '沈菜'라 썼다. 17세기부터의 여러 문헌에 나온다.沈菜에서 김치란 말이 생겨났다. 沈菜를 순우리말로는 '팀ㅊ.ㅣ'(소학언해), '딤ㅊ.ㅣ'(훈몽자회·신증유합 등)라 했다. '훈몽자회'(1527년)와 '신증유합'(1576년)은 우리의 한자 입문서로 '천자문'과 함께 한자 학습에 널리 이용하던 책. '딤ㅊ.ㅣ'란 말이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딤ㅊ.ㅣ' 가 '짐ㅊ.ㅣ' '짐츼' '짐치'로 쓰이다가 '김치'가 됐다. 평안도 방언에는 '딤치'가 남아 있으며, 지금도 국내의 여러 방언에서는 '짐치'라 쓰고 있다. '짠지'라고도 한다. '딤채'는 '딤ㅊ.ㅣ'를 현대어화한 말이다. 한국 김치냉장고 중 딤채라는 브랜드도 있다.'김치녀'란 파생어도 우리 사회에 나돌고 있다.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오직 남자에게만 의존하며, 남자를 하대하고 도구처럼 생각하는 여자라는 뜻이란다. 왜 '김치'에 '녀'(女) 자를 합성해 한국의 일부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삼았는지 이유는 모르겠다.8년 전에 중국의 쓰찬성에서 '파오차이'(泡菜)를 먹어봤다. 한국의 김치와는 엄연히 달랐다. 피클 같았다. '쇤차이'(酸菜)도 김치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한국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보단 중국에서 유통, 판매되는 한국의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 또는 '파오차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기무치'도 우릴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이름이다. 근래 국내에서 김치 소비량이 줄곧 감소하는 것은 우리네 식생활 스타일이 변하는 탓, 김치 수입이 많이 증가하는 것은 노동력과 가격에 대한 부담 탓이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수입 김치가 싸니 우선 사서 쓰고 보는 탓이다.김치의 '菹' '沈菜'와 '딤채'란 이름을 우리의 식생활과 산업 현장에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국외에서도 널리 사용, 세계화해야 한국 김치의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김치가 억울해서야.

2021-03-07 16:06:54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맹견에게 공격당한 개(맹견책임배상보험)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맹견에게 공격당한 개(맹견책임배상보험)

착한 진주(진도·17kg)가 심하게 다쳐서 내원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도착한 진주는 출혈 과다로 혈압이 떨어져 있었고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앞다리 양쪽이 너덜거릴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으며 개의 송곳니 자국들이 여러 군데 뚫려있었다. 이런 상처는 맹견에 의해 집요하게 물린 상처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응급 처치가 진행되었고 진주가 안정을 찾고서야 보호자로부터 사고 당시 상황들을 들을 수 있었다.사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마리 반려견, 진주와 보리(잉글리쉬 쉽독·10살·35kg)를 데리고 산책하는 와중에 발생했다. 어디선가 맹견(핏불테리어 교잡종)이 달려와 진주를 먼저 공격했다. 맹견은 말리려는 할아버지에게도 달려들려 했지만 다행히 보리 뒤에 숨으셨다고 하셨다. 보리도 맹견에게 여기저기 물렸지만 큰 덩치 덕분에 다행히 심각한 상처는 입지 않았다.핏불테리어처럼 강한 턱 힘을 가진 맹견에 의한 교상은 근육과 인대가 거의 파열 되다시피 한다. 강한 턱 힘으로 물고는 세차게 흔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맹수가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본능이다.얼마 뒤 가족분들이 내원하셨고,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신하여 큰 화를 당한 진주를 무척이나 대견스러워하시면서도 안타까워하셨다. 모두의 바람 덕분인지 며칠 뒤 진주는 걷기 시작했다.사고를 낸 맹견은 사고 현장 인근 주택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철망 펜스가 처져 있었지만 목줄은 착용하지 않고 있었으며, 당시 현장에는 펜스 아래로 흙구덩이가 깊게 파여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맹견의 견주는 며칠 동안 개를 살펴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맹견이 자유롭게 동네를 배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맹견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견주는 고발 조치되었다.맹견에 대한 위험성은 이미 수없이 경고되었다. 맹견에게 사람이 물려 사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맹견에 의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맹견을 키우는 견주들의 경각심 부족에 있다.진주를 공격한 맹견은 핏불테리어보다는 체형이 작은 교잡종이었지만 교상으로 인한 상처는 여전히 치명적이었다. 체형이 왜소한 진돗개 수준의 진주를 쉽게 죽일 수 있는 살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사고 견의 견주는 자신이 없는 동안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라고 항변하겠지만, 맹견을 입양한 순간부터 맹견으로 인한 사고의 모든 책임은 견주에게 있음을 명심했어야 했다. 특히 법으로 명시한 의무 사항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도 감내해야 한다. 민사상의 보상 책임도 개인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2021년 2월 12일부터 맹견 소유자는 맹견으로 인한 물림 사고가 발생 시 원활한 배상을 위해 '맹견 소유자 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하도록 의무화되었다.동물보호법상에 명시된 맹견은 1.도사견 2.아메리카 핏불테리어 3.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 4.롯드와일러 5.스태퍼드셔 불테리어와 그 교잡종으로 규정되어 있다.우직하고 용맹스러운 개를 키우겠다는 견주들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그에 수반되는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입양 전에 충분히 고민해야 하며, 입양했다면 사고 예방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동물보호법상에 규정된 맹견이 아니더라도 공격 성향이 강하거나, 사냥 본능이 뛰어나거나, 낯선 사람들을 위협하는 경향이 있는 대형견을 돌보는 견주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펫티켓을 소개한다.1. 반려견 동물 등록을 한다.2. 맹견 소유자 배상책임보험(보험료 년 15,000원 정도)에 가입한다.3. 산책 시 짧고 튼튼한 목줄과 마스크를 착용한다.4. 산책 시 통제가 가능한 건강한 성인이 동행한다.5. 산책 시 소형 반려견 또는 길고양이와의 접촉을 피해준다.6. 실외 견사는 이중 잠금문 장치가 필요하며 견사 내에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보장되어야 한다.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2021-03-06 06:30:00

[광장]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중요하다

[광장]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중요하다

마당 구석의 조그만 땅은 음식 쓰레기를 처치하는 공간이다. 따뜻한 날씨에는 1주일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흙으로 변한다. 하지만 겨울은 땅이 딱딱하게 얼기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 언 땅은 곡괭이로 파도 쉽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다. 겨울 땅은 어떤 생명체도 허용하지 않는 죽음의 흙 같다. 그런데 겨울 끝자락이 되면 흙에 변화가 생긴다. 춥고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면 흙도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흙은 부드러워지고 부피도 부풀어 오른다.곡괭이의 강한 힘조차도 허용하지 않던 얼었던 흙이 부풀어 오르면 그 사이를 뚫고 연약한 식물의 새싹이 모습을 비춘다. 봄의 새싹은 아주 여리다. 너무나 신기해서 새싹을 관찰하려고 흙을 팠더니 그냥 부러질 정도로 약하다. 그런 연약한 새싹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비결은 강한 힘이 아니다. 그냥 힘으로 뚫고 올라오려고 한다면 새싹은 부러질 것이다. 연약한 새싹은 부드러워진 흙을 밀고 밖으로 나온다.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는 겨울이 지나면 점차 따뜻한 날과 추위가 반복된다. 시샘 추위라고도 하고 봄이 눈앞인데 웬 강추위가 몰아치느냐고 하지만 사실 땅속 생명체를 위한 흙의 준비 작업이다. 봄을 준비 중인 흙을 밟으면 새싹이 올라오는 데 방해를 줄까 봐서 조심스럽지만, 봄 흙을 밟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푹신한 카펫을 밟는 기분이다.나는 유도 유단자였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이 유도의 핵심이다.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과 같이 쉽지 않다. 항상 힘이 들어간다. 이건 유도뿐만이 아니다. 모든 운동에서 귀가 따갑도록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끊임없는 반복 연습으로 동작의 패턴을 익혀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유도를 오래전에 해서 잊고 있었던 사실을 흙을 만지면서 매일 다시 명심하고 있다. 힘을 빼자. 부드러움을 유지하자.이것은 몸과 마음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건강을 얘기할 때 항상 강함을 권유한다. 정신력을 강화해야 하고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중년이 넘으면 근육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물론 근육 강화가 중요하지만 50대가 넘으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이를 유지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이 근육을 만들어 방송에 나오는 특수 상황에 속지 말자. 일반인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력도 군대의 유격훈련같이 한다고 단련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 가진 정신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어려운 일을 따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사실 건강 유지에는 정신력, 근육 강화보다 균형 유지가 더 중요하다. 현대에 중요한 정신 건강은 느긋한 여유로움에서 온다. 긴장과 느긋함이 반복되는 삶에서 현대인은 긴장이 과도하게 많다.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 배워야 한다고 핸드폰을 켜고 남 이야기를 듣지 말자. 새로 배운다고 성공한 사람들을 전부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쉬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그리고 몸 건강에서 중요한 것은 울퉁불퉁한 큰 근육이 아니라 평소 사용하지 않던 작은 근육들이다. 몸의 균형을 잡아 준다. 꾸준하게 작은 노력만 해도 발달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음식을 먹을 때 천천히 씹고, 앉을 때 똑바로 앉고 걸을 때 바른 자세로 한발 한발 내딛는 연습만으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들이다.이제 봄이다. 밖으로 나가 흙을 밟자. 신발을 벗고 맨발이면 더 좋다. 흙에서 올라오는 푹신한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자.

2021-03-06 06:30:00

[책CHECK]영문도 모르고 영어를 해?

[책CHECK]영문도 모르고 영어를 해?

'한국어에선 동, 서, 남, 북의 순으로 4방위를 말하는데, 영어에서는 왜 북(North), 남(South), 동(East), 서(West) 순일까'영어는 세계 공용어로 자리매김한 가장 강력한 소통 도구다. 영어학을 통해 영어가 가진 특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어떤 소리를 만들 수 있는지, 영어 단어나 문장들은 어떻게 형성돼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등을 공부함으로써 영어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영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 영어가 거쳐온 변화의 과정을 알고, 현재 세계 각지에서 사용되고 있는 영어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영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영어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264쪽. 1만8천원

2021-03-06 06:30:00

[이종문의 한시산책] 붕새도 안 부럽소 - 장유(張維)

[이종문의 한시산책] 붕새도 안 부럽소 - 장유(張維)

백로는 원래 희고 까마귀는 원래 검고 白鷺自白烏自黑(백로자백오자흑)반 희고 반 검은 건 가지 끝의 까치라오 半白半黑枝頭鵲(반백반흑지두작)하늘이 만물 낳아 그 모습을 부여한 걸 天生萬物賦形色(천생만물부형색)희고 검은 빛깔로써 선악이라 할 순 없소 白黑未可分美惡(백흑미가분미악)비단보다 더 찬란한 제 무늬에 반한 꿩이 山鷄文采錦不如(산계문채금불여)맑은 못에 비춰보다 물에 빠져 죽잖아요 照影淸潭或自溺(조영청담혹자익)가지 하나 위에 사는 뱁새가 불쌍타고? 獨憐鷦鷯占一枝(독련초료점일지)천만에! 저 하늘 나는 붕새도 안 부럽소 逍遙不羨垂天翼(소요불선수천익)* 원제: 古意 다 알다시피 백로는 희고 까마귀는 검다. 그것은 스스로의 자율적인 의지에 따른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타고난 색깔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백로는 선(善), 까마귀는 악(惡)이라며 제 마음대로 규정하곤 한다. "가마귀 디디난 곧애 백로야 가디 말아/ 희고 흰 긷헤 거믄 때 무칠셰라/ 딘실로 거믄 때 무티면 씨을 낄히(씻을 길이) 업사리라" 선오당(善迃堂) 이시(李蒔: 1569-1636)의 '오로가烏鷺歌'라는 작품인데, 이 시조도 그와 같은 인식의 소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태어나 보니 백로는 이미 백로였고, 까마귀는 이미 까마귀였다. 그런데도 날개의 빛깔을 유일한 기준으로 하여 선악을 함부로 규정하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물론 말이 될 리가 없다. 따라서 백로와 까마귀에 대한 이와 같은 일방적 인식은 피부색의 흑백을 유일한 기준으로 한 인종차별과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까 사물의 색깔은 애초부터 선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게다가 아름다운 피부색이 오히려 난데없는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장끼의 털은 아름답지만,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스스로 도취되어 물에 빠져 죽는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에 익사한 여자들도 한둘이 아니다.뭐라고, 뱁새가 붕새를 따라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수가 있다고? 정말 터무니가 없는 흑색선전이고 유언비어다.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꿀밤을 몇 개씩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변소 청소를 시킨 뒤에 이런 시를 들려주고 싶다."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느냐고?/ 그럼 수박에다 줄 지우면 호박 되나?/ 웃기네, 호박이 언제 수박 될라 카더나?"(졸시, '천만에')이종문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1-03-06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23. 안동의 맛, 고향묵집

[안동을 걷다, 먹다] 23. 안동의 맛, 고향묵집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3번째 이야기 안동의 맛. 고향묵집맛있다, 딱 맞다, 됐다, 괜찮다. 경상도식으로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말은 간단해보이지만 오묘하다. 맛있다는 것인지 그만하면 그냥 대충 먹을만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맛이 없다는 뜻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됐다'는 정도의 표현은 '맛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안동에서는 '쓰다 달다 짜다 싱겁다 혹은 간이 어떻다'는 식으로 음식에 대해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어머니의 손에서 나온 음식처럼 맛있게 받아들인다. 달착지근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다는 식의 시시껄렁한 수식이나 허세도 부리지 않는 게 이 동네의 법도다.'안동국시'의 슴슴한 맛이나 '안동간고등어' 구이나 찜의 담백함에 굳이 '자질부레한'(군더더기같은) 수식어가 붙을 계제는 아예 없는 셈이다. 있다면 북어를 다듬어서 보푸라기처럼 긁어내는 정성 가득한 '북어보푸라기'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지르는 '아'하는 탄성뿐이다.외지인들이 안동에 와서 즐겨먹는 음식 중에 '헛제사밥'이 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서 제사때 음복으로 먹던 음식을 흉내낸, 즉 '가짜 제사밥'이라는 뜻이다. 제사를 지낸 후 먹는 음식은 양념간을 하지 않아서 경상도식 표현을 빌자면 '밍밍하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랐던 음식들을 챙겨서 탕국을 끓여 함께 먹는 것이 제삿밥인데, 제사음식이 푸짐하니까 남들 보기 민망해서 헛제사를 지내고 몰래 먹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헛제사밥이라고 부르지만 한상가득 올라오는 반찬들은 여느 대갓집 주안상 부럽지 않을 정도다. 안동소주나 안동막걸리 한 잔 하기에 좋다.그렇다고 이처럼 '슴슴하고 밍밍한 그야말로 담백한' 맛을 경상도 특히 안동의 맛이라고 특징 짓거나 대표한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안동은 맛있다.'안동시내에는 도처에 웬만한 도시처럼 온갖 종류의 식당이 즐비하고 안동한우로 만든 안동갈비골목이 있고, 당면을 넣어 조리한 독특한 안동찜닭 골목도 사람들의 발길을 당긴다. 고춧가루를 넣은 물김치같은 비주얼의 '안동식혜'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권철(1503~1578)이 어느 날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 안동으로 내려와 지내는 퇴계 이황을 찾았다. 퇴계는 끼니때가 되자 손님상을 내오도록 했다. 세계 10위안에 드는 잘사는 요즘에는 종가집의 '접빈'(接賓) 음식은 정갈하면서도 품위있는 '7첩 반상'을 내놓겠지만, 퇴계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퇴계는 평소는 물론 손님이 와도 한결 같았다.말이 손님상이지, 보리밥에 산나물과 가지무침과 미역 등 반찬 세 가지가 전부였다. 퇴계는 마치 기름진 고기를 먹는 듯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반면 따로 상을 받은 권철은 한양 입맛에 맞지 않는 밥상에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퇴계의 집에서는 정승의 밥상이라고 해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선비길이 시작되는 선성현 객사에 퇴계의 밥상이 재현돼있다.이처럼 내륙 깊숙한 안동의 밥상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해산물과 젓갈류가 풍부한 전라도의 여염집 밥상에 비한다면, 퇴계의 밥상은 머슴의 밥상보다 나은 게 없었다.안동 등 경북 북부에는 종가집이 유달리 많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종가만 120여 곳에 이른다. 종가집 마다 나름의 문중음식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주조법도 남달랐다. 반가(班家)마다 손님 접대가 달랐고 제례법도 달랐다. 손님을 대접하는 '접빈'(接賓)과 조상을 모시는 제례(祭禮)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과 술이었다.이 지역에서 전해내려 온 대표적인 고(古)조리서는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 온주법 그리고 시의전서다.지금의 안동음식은 종가음식이 대중화된 측면이 강하다. '간고등어'와 '문어'가 제수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고조리서 중에서 수운잡방은 안동 군자마을의 광산 김씨 예안파의 시조 김효로의 둘째 아들인 탁청정 김유와 그의 손자 김령이 공동저술한 한문본 음식 조리서로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다. '온주법'은 내앞마을 의성 김씨 낙봉파 김시우 씨가 소장하고 있던, 1700년대 후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 한글 조리서다. 이런 종가음식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대중화된 것이 지금의 안동음식이다.그 식당, '고향묵집'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골목 안 깊숙이 숨어있는 보석같은 오래된 식당이 있다.봄비 내리는 고즈넉한 봄날에는 '배추전'이나 '부추전' 한 장 부쳐놓고 막걸리 한 잔 편안하게 마시고 싶은 그런 고향집 같은 식당 말이다.안동 신시장에서 한 블록 너머 역시 안동우체국과 안동교육청이 자리한 오래된 구도심에 속한다. 우체국 건너 그 골목 살짝 들어간 동네가 '당북동'이다. 그 골목 눈에 띄는 입구 쪽에 자리잡은 '고향묵집'이 있고 더 들어가면 돼지국밥 식당과 안동칼국수 식당 순대국밥집도 보인다.그 자리에서만 13년이나 됐다. 1997년 고향묵집이라는 상호의 식당을 열 때는 지금의 안동세무서 앞에 있었다. 고향묵집은 애초 '묵' 잘하는 식당으로 이름이 났다. '손맛' 좋은 사장님이 묵을 쑤어서 차린 식당이었는데 내 입맛에는 그것이 안동의 맛이라 느껴진다. 여기선 안동국시와 메밀묵을 주재료로 한 '태평초'가 가장 인기를 끄는 메뉴다.종편의 유명 먹방 프로그램였던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식당의 명성은 자자하다. 북어찜과 오징어와 낙지 명란젓갈 등 입맛을 돋우는 철마다 다른 젓갈과 나물무침 등 어느 것 하나 정갈하지 않은 찬은 없다.이 식당 음식의 압권은 안동이 자랑하는 적당히 삶아야 탄력 있는 문어숙회나 수육이 아니다. 겨우내 잘 저장한 제주무를 얇게 저미듯 썰어 부쳐내는 '무전'이 가장 맛있을 때가 지금이다. 경상도식 배추전과 파전은 '장물'이 아니라 초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여기 와서야 확인할 수 있다. 장물은 헛제사밥에 넣어 비빈다면 심심한 안동국시에 간을 할 때는 장물이 아니라 간장에 파 송송, 고춧가루 한 숫갈 투하한 빨간 '장물'을 넣어야 제대로 국시 맛이 난다는 것도 배운다.고향묵집에서는 특별히 메뉴를 시키지 않더라도 사장님이 알아서 주는 대로 먹는 방법도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봄비는 내리지 않더라도 오늘 같이 봄볕 좋은 저녁 무렵, 퇴근 후 낙동강을 가로질러 구도심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다가 그 식당에 들어서면 간혹 지인 한 둘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로 안동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식당이다.물오른 '무'를 적당한 두께로 잘라 전을 부치면 무가 익으면서 내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배가된다. 고향묵집에서 처음으로 '무전'을 만나는 날에는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무전 맛이 떠올랐다. 입맛은 혀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되살려낼 때 더 감동을 받는다. 아마도 경상도 지방 이외에서도 군것질거리로 무전을 해먹었을 텐데 그 기억이 생생한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순이 가까워진 어머니는 고향집에 다니러 갈 때마다 어린시절에 내가 맛있게 먹던 음식들을 기억해내서 당신이 꼬부랑 할머니가 됐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부엌에 서곤 한다.고향묵집에선 후식까지도 호사스럽다. 마지막엔 늘 안동식혜를 먹는다. 시중에 파는 '비락식혜'는 안동에선 식혜가 아니라 '감주'다. 술이 아니지만 달콤한 맛에 '단술'이라고도 불렀다. 안동식혜는 아무리 포식을 해도 소화를 도와주는 그런 엄마의 '약손'같은 후식이었다.아니면 저녁 든든히 먹고 가라며 슬쩍 내어주시는 '시레기무 비빔밥'도 고향묵집의 별미중의 별미로 꼽힌다.'고향묵집'(054-855-3077)은 간혹 예약하지 않고 갔다가 자리가 없어 낭패보기 십상이다. 안동여행을 계획한다면 2~3일 전에 미리 전화를 해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안동에는 고향묵집 외에도 유명한 먹방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있는 식당들이 꽤나 많다. 그러나 진짜 안동의 맛은 종가음식보다는 그저 시장통 한 귀퉁이에 있는 낡고 오래된 식당에서 오히려 더 제대로 느끼기도 한다.시내를 다니다보면 '간고등어구이'를 맛있게 하는 식당도 많고 안동갈비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많이 먹으면 지갑이 가벼워지는 단점이 있지만) 갈비골목도 있고, 헛제사밥이나 찜닭 혹은 안동 권씨 종가음식을 정성껏 내놓는 대감댁 같은 '예미정' 도 있다. 오래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중화반점도 안동세무서 앞의 서울식당 등 여럿 눈에 띈다. 그런 맛이 모두 안동을 맛있게 하는 다양한 맛이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3-06 06:0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이삭토스트가 대체 어떤 마케팅을 했길래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이삭토스트가 대체 어떤 마케팅을 했길래

나는 지금 글을 파는 중이다. 신문사에 팔고 독자들에게 판다. 열심히 팔아서 원고료를 벌고 싶고 나의 광고도 팔고 싶다. 그렇게 가계에 도움을 주고 싶다. 올해 유치원에 간 아들의 학비를 벌어 당연한 아빠가 되고 싶다. 생활비를 넉넉히 주는 꽤 괜찮은 남편도 포기 못한다. 아마 이 칼럼을 읽는 독자 역시 나처럼 무언가를 파는 중일 것이다.직업상 팔고 싶어 하시는 분들을 만난다. "우리 가게 빵 정말 맛있어요. 팔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 브랜드 속옷이 끝내줍니다. 근데 생각만큼 팔리지 않네요" 미팅의 내용은 주로 이러하다. 그분들이 파는 상품엔 그들의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 미팅을 진행하면 그 분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펼쳐진다. 거의 인간극장 한 편을 시청한 후 미팅은 종료된다. 미팅이 끝날 쯤 테이블 위의 스타벅스 커피를 바라봤다. 스타벅스는 어떻게 팔았을까? 어떤 광고를 만들었기에 시가총액 140조 이상의 가치를 이루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스타벅스 광고가 기억나지 않는다.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눈에 띄는 마케팅 전략이 없이도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두었을까 궁금했다.자연스럽게 마케팅의 목적에 대해 고민해봤다. '왜 마케팅을 해야할까?' '왜 이 브랜드는 마케팅에 목숨을 걸까?'하고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즉, 마케팅의 목적은 마케팅을 안 해도 되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함이다.마케팅을 안 해도 되는 브랜드가 있다.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브랜드가 있다. 우리 동네에 있는 뭉티기 집인데 간판도 작고 복잡한 골목 안에 있다. 마치 미로 찾기 하는 식으로 찾아야 된다. 그럼에도 늘 만석이다.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안 보인다. 이 뭉티기 집의 성공이유는 비단 맛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맛, 사람, 풍경, 공기, 숟가락, 젓가락, 테이블, 티슈 등 이 브랜드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의 결과이다. 맛은 기본이요, 그 외에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경험하는 모든 것의 결과물이 사람들을 열광케 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브랜딩이라 부른다.하지만 많은 창업가들이 브랜딩을 포기한다. 마케팅에는 목숨을 걸면서 브랜딩의 중요성은 외면한다. 마케팅은 매출이라는 지표로 보이지만 브랜딩은 숫자로만 평가하기엔 너무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브랜딩은 고객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일이다. 그것을 정량화하는 작업은 무척 힘들다. (이것 역시 정량화하려는 노력이 계속 시도되고 있다.)이삭토스트의 사례가 매우 흥미롭다. 솔직히 이삭토스트의 광고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퀴즈에서 나온 얘기가 무척 감동이었다. 가맹비를 받지 않는다는 점, 인테리어를 강요해 중간에서 수수료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 이런 것들이 이삭토스트의 브랜딩이 되어 버렸다. 어떠한 마케팅 전략도 이길 수 없는 최고의 브랜딩이 되어버렸다.이삭토스트 사장님은 재무제표상의 숫자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더 멀리보고 더 올바른 브랜드가 되는 노력을 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럽게 브랜딩이 되어 버렸다. 광고 회사는 이런 브랜드가 가장 두렵고 무섭다. 아무리 기획서에 컨셉, 경쟁자 분석, 마케팅 전략을 써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이 글을 보고 계신 창업가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브랜딩을 이어가라. 물론 안다. 그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렇게 해봤자 누가 알아주나 고민일 것이다. 브랜딩은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 포기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기억하라. 좋은 브랜드는 한 순간에 탄생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리더의 눈을 통해 비로소 탄생한다. 인내심이 가득한 눈으로 브랜드를 바라보라.

2021-03-05 12:00:00

[기고]한국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고]한국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끔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구시립 중앙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간다. 그날도 예전처럼 동성로를 지나는데 대구 3·1독립운동기념비가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양이 사람이 만세를 부르는 조각품 같아 신기했다. 잠시 서 있다가 손을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쳐 봤다. 그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길, 2·28민주운동 집결지라고 쓰인 표지석이 보였다. 이어지는 길목에는 동학 교조 최제우 선생 순도비도 서 있었다. 1919년 3·1독립운동, 1960년 대구 2·28민주운동, 1894년 동학농민혁명…. 농민이, 청년이 그리고 온 민족 공동체가 함께 일어나 반봉건 반외세, 자주 독립, 민주주의를 위해 소리 높여 함께한 순간들이 대구 도심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최근 100여 년의 우리 역사는 그야말로 투쟁과 전쟁의 역사였다.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김동일 교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시장과 국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장을 통해 생산과 성장을 이루고 국가를 통해서는 복지와 분배를 잘함으로써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미래를 위한 평화 통일을 꿈꾸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그럼, 새로운 세상에 희망을 거는 보통 사람들이 꿈꾼 이상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거로 돌아가 살펴보자. 먼저, 1919년 3·1만세운동, 1948년 제주 4·3항쟁, 1960년 2·28민주운동과 4·19의거,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까지…. 수많은 침략에 맞서 일어난 의병 활동과 식민지 시대 무장 독립 투쟁도 포함해 생각해 본다면 우리 민족은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민족 해방을 위해, 사회 혁신과 변화를 위해,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늘 도전해 왔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천해 온 것이다.하지만 현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났다. 여전히 남과 북은 갈라져 서로 으르렁거리고, 작년에는 남북 경협을 위해 개성에 세운 건물까지 북한이 폭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지구 곳곳에서는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고,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그러는 가운데 지구 온난화의 병폐가 세계 여러 곳에서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있다. 일본과 한국 사이 긴장도 풀릴 조짐이 없는 데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 속에서 과연 한국이 설자리는 어디일지 가늠을 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그 비전을 시민과 공동체가 만나고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도 정이 싹트고 미래 산업도 나누는 '마을'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3·1만세운동으로부터 촛불혁명까지 늘 꿈을 꾼 그 변화의 중심에는 사람과 지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도 마을 만들기를 지원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기에 마을은 숨 쉬고 있음을 다시 느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혹은 마을 방송국을 통해 음악회를 열고 전시회와 바자회 등 성금이 나오면 이웃과 함께 나누는 마을 공동체, 그리고 아이들을 살고 있는 동네에서 서로 보살피는 우리 마을 교육 나눔 사업, 주민 참여 예산 제도 등을 통해서도 지역 공동체는 늘 새로운 피를 수혈하듯 활기를 나누고 있다.이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서로 만나 소통과 대화를 나누는 마을살이야말로 지역과 사람이 중심 되는 그런 대안이 아닐까. 변화무쌍한 미래를 시민 의식과 마을 공동체의 공공성에서 그 해답을 찾는 하루다.

2021-03-04 12:01:14

[춘추칼럼] 누가 먼저

[춘추칼럼] 누가 먼저

대학 시절 어느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배가 난파되었는데 하나뿐인 구명보트에는 2명만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배우자, 아들, 나 이렇게 네 명이 남았습니다. 누구를 구명보트에 태우겠습니까?" 많은 의견이 다양한 이유와 함께 나왔다. 심지어 "아무도 타지 말고 온 가족이 같이 죽자"라는 주장까지.10여 년 전 의료 수준과 장비가 극도로 열악한 나라에 국내 모 투석회사가 혈액투석기 2대와 관련 물품을 무상으로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혈액투석이 낯선 그 나라 의사들에게 의료 기술 전수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투석기가 2대밖에 없는 그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평생 투석을 해야 하는 말기 신장병 환자 대신 1, 2주 정도만 투석으로 버텨 주면 콩팥 기능이 회복되어 살아날 수 있는 급성 신손상 환자에게만 투석 치료를 하고 있었다. 제한된 의료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전방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대량 전상자 분류는 의무부대의 가장 중요한 훈련 중 하나였다. 전쟁으로 많은 병사가 다치거나 죽은 상황에서 군의관과 위생병은 전장을 누비며 환자들에게 빨강, 노랑, 초록, 검정 표식을 달아줬다. 빨간색은 빨리 치료하면 살 수 있지만 위중한 환자, 노란색은 위독하진 않으나 조기 치료가 필요한 상태, 초록색은 가벼운 부상, 그리고 검은색은 적극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어렵거나 이미 사망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우선순위 표식을 보고 환자를 후방으로 옮겨서 치료하는데, 이 중증도에 따른 치료 우선순위 분류법을 '선별'을 의미하는 트리아지(Triage)라고 부른다.트리아지는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 군의관이던 도미니크 장 라레가 전쟁터 부상병을 치료 가능한 곳으로 빨리 수송하기 위해 '날으는 앰뷸런스'(Ambulance volante)라는 이름을 가진-비록 날 수는 없었지만 날 듯이 빨리 후방으로 환자를 옮기는-마차 형태의 운송 수단과 함께 처음 도입하여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현재 많은 응급실과 재난 현장에서 이 분류법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의료 장비와 침상, 인력이 바닥난 나라의 의사들은 끔찍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누구에게 인공호흡기와 중환자실을 우선 배분할 것인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환자로 넘쳐나던 일부 병원에서는 실제로 나이가 많거나 아주 위중한 환자는 인공호흡기 대신 산소만 공급받기도 하였다. 인력과 장비가 충분하다면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중환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자원과 인력 한계로 모든 환자에게 같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돼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에게 치료를 집중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선택적 의료 배급'(rationing care)을 선택한 것이다.하지만 어느 생명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평소 생명 존중을 최상의 가치로 삼던 의사들이다 보니 살릴 자와 죽을 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기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의 결과를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회생 가망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쏟을 시간과 인력, 장비를 살릴 수 있는 환자에게 더 집중하여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려는 '최대 다수의 최대 구명',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라는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의 재난 버전이라고나 할까.지난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맞을 것인가, 어떤 백신이 내게 돌아올까 관심도 많고 말이 무성하다. 백신 접종 순서는 희생자를 최소화하면서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코로나19를 물리치는 방향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백신 접종 순위에 빨강, 노랑, 초록 표식은 있어도 검은 표식은 없다. 전 국민에게 돌아갈 충분한 양이 확보되었다고 한다. 내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빠짐없이 맞는 일만 남았다.

2021-03-04 12:00:56

[매일춘추]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의 고찰

[매일춘추]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의 고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가 지난 3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하였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전시나 아트페어들이 무기한 연기되고 축소되어 미술시장이 상당히 위축되었다. 아트프라이스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의 연 매출 규모가 지난 5년간 최저수준으로 집계되었다. 이에 따라 2021년 첫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는 올해 미술시장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시작이라는 점에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온라인 뷰잉룸(Viewing Room), 신인 작가등용문인 줌인(Zoom-in), 아트 토크와 아티스트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이번 행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해부터 운영된 한국화랑협회의 미술품 감정위원회 안내 부스이다.한국화랑협회의 미술품 감정위원회 안내 부스는 미술품 물납제를 위해 작품 가치 산출의 신뢰도를 높여 대중들의 인식을 개선하고자 마련되었다. 미술품 물납제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상속세·재산세 등의 세금을 현금 대신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영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지난해 5월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던 국가 보물(제284호, 제285호) 2점이 상속세 납부와 미술관 운영 비용 마련을 위해 경매시장에 나온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4천900여 건(국보, 보물 포함)의 국가지정문화재 50% 이상이 개인 소유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비슷한 사유로 문화재급 유물들이 경매 시장에 나오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대목이었다.상속세 마련을 위한 문화재 거래, 미술품 물납제를 포함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1월 이광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강원 원주갑)에 의해 발의되고 최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미술소장품 가격 감정이 진행됨에 따라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재점화되었다.지난 3일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들과 여러 문화예술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대국민 건의문에는 뛰어난 미술품의 해외 반출을 막고, 예술의 대중화·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과 정부의 적극적 참여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각에서는 특혜 논란과 각종 탈세·범법행위 악용, 현금 납부액 감소로 인한 재정적 손실 등의 우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세법 개정에 앞서 물납제 대상 선정과 가치 평가의 공정성 등 제도의 취지에 맞는 객관적인 방안 연구가 구체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3-04 12:00:17

[황환수 프로의 골프 오디세이] 이른 봄 라운드의 어려움

[황환수 프로의 골프 오디세이] <48>이른 봄 라운드의 어려움

겨우내 추위에 움츠려 필드 나가기를 주저했던 골퍼들에게 본격 시즌이 눈앞에 다가왔다.춥다는 핑계로 필드를 대신해 연습장에서 부족한 기량을 연마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쉽지만은 않았다.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기온을 피부로 느끼며 지난 가을 방 한구석에 모셔뒀던(?) 골프백에 손이 자주 가는 요즘이다.불안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연습장을 찾았으나 묵은 근육의 풀림은 엉뚱한 샷으로 연이어 터져 나와 은근히 짜증과 한숨이 반복되곤 한다.해마다 이맘 때쯤 되풀이되는 이런 현상은 자칫 봄철 필드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가지면서도 조심스레 필드에 발을 내디뎌보지만 뾰쪽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게다가 올해는 '전지훈련' 삼아 겨울철 친구들이나 골프모임을 통해 동남아로 날아가 부족했던 필드 감각을 유지했던 비책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지지 못했을 터.그나마 국내 골프장들이 전통적 비수기에 코로나19 상황으로 몰려든 골퍼들을 받느라 휴장 없이 가동한 건 어쨌든 다소나마 갈증을 없애준 통로가 됐다.그럼에도, 겨울철 골프는 추위와 바람, 그리고 정상적인 컨디션의 잔디에서 경기가 불가능한 탓에 봄을 기다리는 긴 시간을 애태워야만 했다.이제 그 빗장을 풀만큼 바람이 따뜻해졌다. 오랜 숙면 같은 추위를 견디고 나선 골퍼들이 찾은 필드는 그러나 실망과 좌절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기 일쑤다.작년 가을의 샷 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진 사실을 발견하고 안절부절하기 십상이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은 일시적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느닷없이 몇 개월 만에 불쑥 필드에 나선 골퍼들은 봄철 골프 트라우마에 시달릴 공산이 매우 높다.아직 움트지 못한 잔디는 겨울철 마른 풀잎으로 건재하고 볼이 놓인 라이에서 정확한 임팩트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만약 연습 없는 몸 상태로 연이어 골프장을 찾을 경우 분명 몸이 만든 종전의 스윙에 최악의 영향을 미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탈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가장 현명한 방식은 프로와 함께 자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필드레슨이나 훈련법을 꼽을 수 있다.차선으로 필드를 다녀온 뒤 평소 골퍼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 연습장에서 자신이 파악한 스윙과 임팩트의 제반 사항을 프로와 면밀하게 상담, 재발하지 않는 방책을 고민하는 것이다.좋은 스윙과 로우 핸디를 갈망하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봄철의 라운딩은 많은 연습과 노력으로만 극복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사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골프칼럼니스트

2021-03-04 11:44:26

[기고]경북의 사회적경제, 新새마을운동 되길

[기고]경북의 사회적경제, 新새마을운동 되길

2020년 2월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한민국은 경제 불황을 겪고 있다. 기업 매출이 줄고 지속적인 고용 유지가 어려워지면서 소비가 침체됐다. 시장은 위축됐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영세한 사회적경제도 경기침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공공의 지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각 산업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회적경제의 공동체 정신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유럽에서 산업혁명 등을 거치면서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람보다 자본을 더 중시하게 됐고 괄목상대한 경제성장의 어두운 부산물로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 환경 파괴, 공동체의 해체 등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지닌 사회적경제가 유럽에서 태동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경제의 가치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과거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공동노동체 조직인 두레와 품앗이 정신이 있었다. 300년 전 "주변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면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경주 최부자 댁의 육훈(六訓)이 바로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 뜻을 같이한다. 1927년 전준한 선생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민간 최초로 설립한 상주 '함창협동조합'은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적경제 발상지로 평가된다.사회적경제가 이루고자 하는 자율적인 협력과 민주적인 자립은 경북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 아래 주민 모두가 하나로 뭉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공동체의 정신과 물질의 모든 면을 변화시키려 했던 운동이다.이와 같은 협력과 자립의 정신을 계승해 코로나를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경북 사회적경제인들은 힘을 모아 희망꾸러미 상품을 개발했다.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금해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기업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가치 실천에 솔선수범했다.경북의 사회적경제는 기업과 종사자 수 등 양적 성장뿐 아니라 민간 주도의 연대와 협력을 기반으로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덕분에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경북도는 지난해 5월 사회적기업 성장지원센터를 조성해 초기 사회적경제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를 위해 상생 거점 공간인 유통지원센터를 안동에 유치하는 등 성장 단계별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지역 기업이 다양하고 차별화된 사회적 가치 실현과 능동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20년도 사회적경제 지방자치단체 정책평가'에서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회적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 전국의 탁월 등급 21개 기업 중 경북의 6개 기업이 선정됐다."모든 기업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전환돼야 한다."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철학과 함께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마음가짐으로 이어 나가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연대와 나눔, 그리고 배려의 정신을 토대로 만들어 가는 경북형 사회적경제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21세기형 새마을운동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해 본다.

2021-03-03 11:14:46

[홍성걸의 새론새평] 무엇을 위한 검찰 퇴출인가

[홍성걸의 새론새평] 무엇을 위한 검찰 퇴출인가

검찰 개혁이란 퍼즐 게임의 마지막 조각은 이른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설치다.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일사천리로 완성한 여당은 내친김에 중수청도 밀어붙일 태세다. 검찰 개혁의 주된 이유인 검찰의 기소권 독점과 수사지휘권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검찰 중심의 형사법체계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것은 그만큼 장점이 단점보다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형사법체계는 국민 편익에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정부 여당은 검찰 개혁의 이유로 수사지휘권과 기소권 독점으로 인권을 무시한 강압 수사나 자의적 사건 조작 가능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검찰이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검찰 개혁에 따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고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진행되는 검찰 개혁은 전혀 그렇지 않다.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제한적 수사종결권이 인정되고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폐지되었다. 검찰은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을 가지며, 경찰 수사 과정의 위법 사항이나 고소인의 수사 종결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있으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 검찰은 일정 규모 이상의 뇌물죄와 횡령죄 등 6개 유형의 특수 범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사권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권 행사에 우려가 크다 보니 수사국, 형사국, 보안국, 과학수사대, 대공수사 업무 등을 포괄하는 국가수사본부를 경찰청 내에 신설하여 보완토록 했다.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병립의 결과는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검찰 개혁의 또 다른 퍼즐 조각인 공수처에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가 설치되고 처장과 차장이 임명되어 조직 구성이 진행 중인데, 문제는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민주적 통제 가능성은 완전히 정치권력의 선의에 맡겨졌다는 점이다. 설치 과정에서 야당의 거부권 행사로 처장 추천이 어려워지자 여당은 일방적 법 개정을 통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유일한 조항이었던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켰다. 최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성윤 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가 자신들이 연루된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는 것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에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다.검찰 개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중수청은 더욱 심각하다. 검찰에 남겨진 6대 중대 범죄의 수사권을 아예 없애 검찰은 기소만 담당하라는 것이다. 많은 법조인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중수청이 과연 6대 중대 범죄를 충분히 수사할 능력과 전문성을 단기간에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사권 없이 기소만 담당할 검찰이 공소 유지에 충분한 자료와 정보를 가질 수 있을까. 그 결과 범죄인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늘어나 죄인들만 유리해지고 오히려 일반 국민들의 권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뿐만 아니라 형사사법체계가 복잡해지면서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이번 검찰 개혁은 공수처와 중수청이라는 두 개의 수사 관련 기관의 신설과 경찰청 내 국가수사본부의 신설이라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곧 최소 2개의 기관 신설과 1개 본부가 새로 만들어지고 이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의 증가가 불가피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보다 나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 형사법 관련 서비스를 받는데 많은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개혁의 이름으로 검찰을 형사법체계에서 퇴출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석열 검찰의 정권에 대한 수사가 멈추지 않으니 아예 수사권을 없애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공수처와 중수청, 국가수사본부가 언제까지 집권 세력의 충견으로 남을 것으로 보는가. 그들이 행사하는 수사권이 검찰과는 달리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호랑이가 없는 산에는 늑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검찰을 퇴출시킨다고 자신이 안전해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착각이요 오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1-03-03 11:14:29

[매일춘추]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3)-나비무사 전우치

[매일춘추]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3)-나비무사 전우치

전우치는 조선 중종 때 송도에 산 기인이자 도술가다. 밥풀을 내뿜어 흰 나비를 만들고, 산수간에 노닐며 둔갑술과 몰귀술을 얻었다. 옥에 갇혀 죽은 후 이장하려 무덤을 파니 시체는 없고 빈 관만 남아 있었다. 지봉유설, 어우야담, 그리고 이덕무의 한죽당필기 등에 기인술사 전우치의 행적이 전한다. 흰여우를 잡아 비급을 얻고, 천도복숭아를 따고, 장살된 후에도 빌린 두보집을 돌려주곤 홀연히 숲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전우치는 어디로 갔을까?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혹시 전우치는 안견이나 겸재의 산수그림 속에서 벽곡하며 유유자적 살고 있진 않을까? 나는 그림 속으로 찾아가 그에게 세상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전우치는 읽던 책을 덮고 흰 구름을 한 번 쳐다 본 다음 이렇게 대답한다."이보시오. 대저 도술이라 하는 것이 기이한 현상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인데, 이제 그런 도술이 하나도 신묘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소. 생각해보시오. 축지는 땅을 접어 수백 리를 뛰는 것인데, 자기부상열차니, 날틀이니 하는 것들이 대신하고 있지 않소. 전음은 또 무슨 소용이겠소. 스마트폰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마당에. 유체이탈? 인터넷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세상이오. 둔갑술? 아바타가 처처에 출몰하는 세상에? 뿐이겠소, 평생 피나는 수련으로 분신술을 익히고, 단전호흡으로 원신을 키워낸들 D.N.A 복제와 유전자 가위를 이겨낼 수 있겠소? 나도 한때 천상계의 천도복숭아를 따고, 옥황상제의 칙사인양 왕을 속여 얻은 황금들보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였소. 허나 이제 그런 도술이 가당키나 한 세상이오? 곧 달나라 월석 수집이 사람들의 취미가 될 거외다. 하하하"나는 자세를 고쳐 앉은 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전우치에게 말한다."소인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선가에 좌도방과 우도방이 있다 합니다. 좌도는 무공이나 기 능력으로 방술, 선술과 같은 실제적 효과를 추구하며, 우도는 이(理)에 관심을 두고 사물의 본질과 근원을 이해하려 애쓴다지요. 그렇게 영화선이니, 기화선이니 나누어 부른다지만 말로 나누어 오르는 길이 다를 뿐, 어찌 그 뜻을 얻어 깨닫는 경지가 다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서쪽 무리들의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남북동서간 인간 세상에 편리함과 양생의 도를 터득하여 사이보그와 인공지능(A.I)으로 무색계 사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합니다. 허나 그들의 저 테크놀로지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비술로만 치달아 천지간의 조화와 만물의 균형이 깨어진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비록 옛 사람들의 도술을 현실에 구체화한 신묘한 과학의 힘을 모르는 바 아니나, 연단술 너머 자연과 합일하는 무한한 기쁨을 저들이 알겠습니까? 우화등선 옛 그림에 들어 상사천, 무량수를 누리시는 지극한 경지를 소인이 다 알순 없으나, 바라건대 그림 밖으로 날아올라 세상을 가로지르며 홍익인간의 뜻을 펼쳐주소서. 이제 때가 되니, 부디 동국 나비무사 전우치의 기개와 뜻을 세상에 드러내소서."의아한 눈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난 전우치의 도포자락이 나비의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3-03 11: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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