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춘추칼럼] 하얀 제비꽃

[춘추칼럼] 하얀 제비꽃

모처럼 데레사 수녀님이 공주에 왔다는 전갈에 서둘러 외부 일정을 마치고 루치아의 뜰로 갔다. 루치아의 뜰은 공주의 옛 거리에 있는 찻집으로 오래된 한옥 하나를 고쳐서 만든 찻집이다. 공주 바닥 사람들에게보다는 외부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잘 알려진 찻집이다.왜 루치아의 집인가 하면 찻집 주인의 세례명이 루치아이기 때문이다. 짐작하시겠지만 루치아는 천주교 신자. 그래서 찻집 이름도 '루치아의 뜰'인데 이 집에는 그런 연고로 바깥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자주 찾아오신다.내가 찻집에 들어섰을 때 수녀님 세 분과 운전을 맡은 남자 한 분이 루치아 내외와 함께 있었다. 데레사 수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안의 수녀님이다. 마치 동화 나라에서 등불 하나를 들고 이 세상으로 나왔다가 다시 이 세상의 등불로 바꿔 들고 동화 나라로 돌아가는 아이와 같다.그렇구나. 데레사 수녀님에게는 우리 공주가 동화 나라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세상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기에 그렇게 수녀님은 수녀원에서 짬만 생기면 공주를 찾는 것이고 또 루치아의 뜰과 우리 풀꽃문학관을 방문하는 것이겠구나.들어 보니 수녀님 일행은 이미 풀꽃문학관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마침 월요일이라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으므로 문학관 안은 들어가 보지 못하고 집 둘레와 꽃밭만 보았노라 한다. 그런데 일행 가운데 나이가 좀 드신 수녀님이 문학관의 꽃밭에서 제비꽃 사진을 여러 장 찍었노란다.알고 보니 그 수녀님이 데레사 수녀님이 머물고 있는 수녀원의 원장 수녀님. "수녀님, 왜 제비꽃 사진을 찍으셨어요? 다른 꽃들도 많은데." "네, 보통 제비꽃은 보랏빛인데 문학관의 제비꽃은 하얀 색깔이더라구요. 그래서 찍었어요."그러하다. 우리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있다. 있더라도 아주 많이 있다. 본래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없었는데 문학관 관장 일을 보는 조동수 선생이 다른 데서 캐다가 심어서 하얀 제비꽃이 살고 있다. 심더라도 아주 많이 심었다. 문학관 둘레 마당과 담장 아래에 촘촘히 가득 심었다.그걸 또 야생화 연구가인 백승숙 여사가 와서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원장님, 이 제비꽃 이렇게 많이 심으면 안 돼요. 이 녀석들 번식력이 강해서 나중에는 아예 제비꽃 밭이 됩니다." 그래서 꽃을 심어 준 조동수 선생의 눈치를 살피며 제비꽃들을 대충 뽑아냈다.결국은 지금 문학관 뜨락에 피어 있는 모든 하얀 제비꽃들은 그때 조동수 선생이 심었는데 뽑지 않은 몇 그루 제비꽃들의 후손이다. 말하자면 조동수 선생의 제비꽃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더러는 그 꽃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둔다.그러면 왜 조동수 선생은 그렇게도 많은 제비꽃을 캐다가 문학관 뜰에 심었을까?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조동수 선생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한 분밖에 남아 있지 않던 육친마저 돌아가신 것이다.젊은 나이이고 집안 대소가도 많지 않아 두서없이 간소하게 어머님 상을 치렀다 한다. 적적하게 어머니 상여 뒤를 따라가면서 둘러보니 자기의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더란다. 그때 문득 눈에 들어온 꽃이 길가에 피어 있는 하얀 제비꽃이었다는 것이다. '그래, 내 슬픔을 알아주는 것은 너뿐이구나.' 그런 뒤로 조동수 선생에게 하얀 제비꽃은 어머님의 꽃이 되었고 어머님을 생각하는 꽃이 되었단다. 그러니 어찌 내가 문학관 뜰에 심은 하얀 제비꽃을 깡그리 뽑아낼 수 있었겠나. 몇 그루라도 하얀 제비꽃을 그냥 놔두기를 잘했다 싶다.이런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 해마다 하얀 제비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하얀 제비꽃이 조동수 선생의 어머니이고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다. 이것을 원장 수녀님이 느끼시고 영혼의 손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래서 수녀님은 다른 예쁜 꽃들, 화려하고 큰 꽃들을 제치고 초라하고도 작은 하얀 제비꽃을 사진기에 담으신 것이리라.그러고 보면 또 수녀님 마음이 하얀 제비꽃의 마음이고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고 또 조동수 선생 모친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세상의 일들은 참으로 깊고도 멀고도 아득하다. 유정하다. 서럽도록 아름답다. 노을 속으로 꽃잎을 싣고 가는 저녁 강물 하나를 본다.

2020-05-28 16:30:00

[기고] 공공배달앱 지역 소상공인들 의견 반영해야

[기고] 공공배달앱 지역 소상공인들 의견 반영해야

지난달 1일 배달 애플리케이션 1위 기업인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를 인상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독과점 기업의 영리 활동은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공배달앱'을 통한 소상공인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현재 배달앱 시장은 이미 5조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으며, 10년 후에는 20조원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통계청은 예상하고 있다. 배달시장의 급성장은 소상공인들과 서로 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왔다. 하지만 배달앱 시장의 성장 이면에는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특히 배달앱은 한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 독일 회사 딜리버리히어로(DH)는 지난 2012년 '요기요'를 론칭하고 '배달통'과 '푸드플라이'를 인수한 데 이어 2019년 '배달의 민족'까지 인수하면서 국내 배달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독과점으로 인한 소상공인 피해 우려는 배달의 민족 수수료 인상 개편안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수면 위로 등장하면서 현실화됐다. 비록 비판적인 여론과 정치권의 공공배달앱 개발 방침, 공정위 압박 등 이유로 철회되긴 했지만 앞으로도 비슷한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데 큰 문제점이 있다.소상공인들의 고통을 대구시가 공감하고 공공배달앱 구축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추후 대구시가 공공배달앱을 개발할 때 고려하여야 할 사항 3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첫째, 공공배달앱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공공 인프라로 사회간접자본(SOC)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드웨어 세상에서 도로를 만드는 것처럼, 이제는 디지털 세상에서도 공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관련 플랫폼 시장이 독과점 상태이니 이를 해소하는 역할 역시 대구시에서 해결해야 하는 업무라 생각하고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 실효성 있고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수립・시행하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둘째, 공공배달앱이 외식산업뿐 아니라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타 시도의 공공배달앱은 외식산업에 국한되어 있지만 우리 대구시의 공공배달앱은 전통시장과 지역 소상공인들의 가게와도 연동하여 서민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고 대구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셋째, 배달공공앱 개발의 중심이 지역 소상공인들의 필요에 맞춰져야 한다. 공공배달앱 개발 시, 배달 주문-배달 중개의 분리, 라이더의 안전과 운송 수단 문제, 독점으로 인한 배달시장 재편 등 배달앱과 관련한 무궁무진한 논의가 필요하고 이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지역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한다면 대구만의 특색을 갖춘 경쟁력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앱이 단순히 민간앱을 모방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좋은 추진 배경과 의도만으로는 대규모의 인력과 자본, 경험을 갖춘 민간과 경쟁을 할 수 없다. 대구시가 공공만이 할 수 있는 특색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외식산업 외 여타 분야의 소상공인과도 상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0-05-28 15:30:00

[매일춘추] 엄마의 주름살

[매일춘추] 엄마의 주름살

시간이 지나는 모든 것들은 1분, 1초를 지나 세월을 쌓아간다.손끝을 스친 작은 인연도, 나의 인생에 크게 자리잡은 나의 많은 사람들과 지나가며 흘렸던 웃음과 눈물 모두 한 페이지의 역사를 채우며 넘어간다.마냥 어리기만 한 나의 역사가 제법 두터워지려할 때쯤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엄마의 메시지였다. '저녁은?', '운전조심'. 이라는 짧은 두 문장에 나의 대답 또한 특별하지 않다. 그저 매일 지나다니는 길처럼, 이 순간도 특별할 것 없는 그저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었다. 근데 오늘따라 그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침에 불현듯 마주한 엄마의 손, 수십 년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엄마의 주름진 손 때문이었다.참 이쁘고 고운 손을 가졌었던 엄마의 주름진 손은 아침에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웃을 일이 많아야 하는데 점점 더 바빠지는 난 나의 역사만을 부지런히 채우고 있었고, 그 역사의 책장을 넘기며 가끔, 어쩌면 자주 엄마의 역사를 잊곤 했다.가끔 대화에서 "너 가졌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경기를 자주해서 늘 응급실로 널 업고 뛰었었지" 등…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나의 역사를 엄마는 책을 읽듯이 술술 말씀하실 때면 엄마의 역사에 내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오늘 아침 내가 바라본 엄마의 손, 그리고 얼굴은 어쩌면 나의 역사를 채워주느라, 닦아주느라 생긴게 아닐까라는 확신과 함께 울컥하는 감정이 가득 올라왔다. 내가 어른이 되어 그 역사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공허했을까.내 역사의 페이지마다 엄마가 함께하고 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엄마 자신의 역사보다 나의 역사를 만들어주려 노력한 엄마에게 되레 미안해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내가 받았던 사랑과 헌신이, 나를 이만큼 키워낸 노력과 세월이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크기라는 걸 알아버린 나이가 되니 그 속상함은 가늠할 수조차 없이 커져버렸다. 속상한 만큼 큰소리를 치던 내가 오늘은 "엄마, 나 키우느라고 손에 주름이 너무 많이 생긴 것 같네" 라고 쭈뼛쭈뼛 말을 건네 보았다. 엄마가 말씀하신다. "엄마는 그래도 너 덕분에 지금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데" 라고. 부끄러웠다. 엄마가 정성껏 가꾸어낸 나라는 역사가 아직은 엄마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없는 것 같아서, 지금 내 나이 때 그 젊었던 엄마의 역사를 온통 빌려 써놓고 나의 역사를 쓰느라 무관심 했던 것 같아서 말이다.내가 힘이 들어 무너지는 것은 내가 살아온 역사가 무너지는 것이자, 엄마의 역사도 무너지는 것이고, 엄마의 세월을 찢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앞으로의 난 더욱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내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더욱더 많은 엄마와의 역사도 함께 만들어가야겠다. 나의 인생은 나만의 역사가 아니니까.엄마의 주름살은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낸 너무도 아름다운 훈장임을 꾸준히 알려드려야겠다.박성미 작곡가

2020-05-28 15:30:00

[매일춘추] 모든 시민이 하나되는 축제

[매일춘추] 모든 시민이 하나되는 축제

몇 년 전 어느 봄날,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멀리 있으니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업계에서 만난 거의 유일한 친구이기에 오랜만의 연락도 반가웠다. 하지만 친구의 제안은 나를 흥분하게 했다. '우리 에든버러 가지 않을래?' 마침 3년간 열심히 모은 적금통장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 가자!' 그렇게 나는 세계 최고의 공연 축제가 열린다는 에든버러로 출발했다.에든버러로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나는 런던에서 국내선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도착한 공항에서는 에든버러를 써놓은 커다란 조형물과 스코틀랜드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넓고 푸른 초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본격적인 축제를 만나기도 전에 에든버러의 풍광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중심가로 점점 향하면서 '아... 내가 에든버러에 오긴 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온 도시는 축제 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예약해둔 숙소는 5층짜리 오래된 건물에 들어선 호텔이었다. 에든버러시의 정책에 따라 보존을 위한 리모델링이 허락되지 않아 그 호텔 역시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그 작은 호텔에도 입구에서부터 눈에 닿는 모든 곳에 '에든버러 페스티벌' 책자는 쉽게 눈에 띄었다. 거리로 나섰다. 예약해둔 공연관람을 위해 버스를 타고 좁은 골목을 지나 극장 가까운 곳에 도착했다. 그날 공연은 '에든버러 대학교'의 캠퍼스 한켠에 마련되어 있었다. 평소에도 학생들이 공연을 많이 하는 곳인지 다양한 포스터들이 좁은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500석 규모의 공연장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가득했고 프랑스에서 온 팀의 공연 속에는 인종과 언어를 초월한 웃음과 즐거움이 넘쳤다.다음 공연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온통 축제의 향연이었다. 공연장에서만 이뤄지는 축제가 아닌 거리 곳곳이 축제의 현장이었다. 마치 내가 '이상한 축제의 나라' 속에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그날 공연은 한 교회의 교육관 같은 작은 건물의 한 층에서 이뤄진 창작뮤지컬로 스코틀랜드 지역 극단의 작품이었다. 다음 공연은 식당들 사이에 있는 빈 공간에서 이뤄지는 작은 연극이었다. 교회 강당에서 이뤄지는 어린이 음악교육용 음악극, 에든버러를 대표하는 어셔홀에서 '사이먼 래틀경'의 지휘와 함께하는 '런던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까지! 숨 막히는 공연의 홍수 속에 밤에는 에든버러 대학 캠퍼스 공간에 마련된 펍에 가서 맥주도 한 잔 마셨다. 전 세계에서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서로의 여행과 축제의 감동을 나누는 순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왔다. 하루 종일 축제 밖으로 조금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나에게 남아있는 에든버러의 모습이었다.70년이 넘은 축제의 현장은 과연 명성과 다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짙게 남아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생겨난 축제의 시작이 지금은 도시를 넘어 전 세계가 집중하고 즐기는 축제로 거듭났다. 그 사이에 물론 많은 어려움과 노력이 있었을 터이지만 온 도시가 함께 즐기는 축제를 위해 다함께 노력했고, 그 결과로 현재의 명성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제1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단축되고 또 미뤄졌지만 코로나의 아픔을 이겨내고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축제로 반드시 남게 될 것이다. 모든 시민이 하나 되는 축제, 전 세계가 집중하는 축제를 위해 딤프는 오늘도 최선을 다 할 것이므로.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2020-05-28 12:17:27

[새론새평] 위안부 인권단체가 여성 인권 말살 국가 북한을 옹호하나

[새론새평] 위안부 인권단체가 여성 인권 말살 국가 북한을 옹호하나

소위 윤미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사건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중 가장 황당한 것은 인권-여성인권-페미니즘을 지향한다는 단체가 종북활동과 깊숙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북한은 현재 세계 최악의 인권 국가이고, 특히 여성 인권은 맨정신에 언급하기도 힘든 처참한 수준이다. 그런데 정대협(현재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구성원 중 상당수는 윤 씨 부부를 필두로 대놓고 친북 운동을 한 사람들이다.아무리 인간이 모순의 동물이라 하지만 적어도 대의명분을 내놓고 사회운동을 할 때는 기본적인 일관성과 양심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정대협-정의연은 이러한 거대한 모순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그때그때 편한 대로 이득을 취해왔을 뿐이다. 진정한 여성인권단체였으면 북한의 끔찍한 인권 유린, 특히 여성 인권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해야 하는데 실상은 정반대였다.지금 일어나는 파열음은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고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필자는 이미 지난 4월 초에 쓴 칼럼에서 윤 씨가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고 언급했었다)는 유명한 친북반미주의자였다. 윤 씨의 남편 김삼석은 소위 '남매간첩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그들과 그 가족들은 이후에도 노골적인 종북활동을 벌여왔는데 정대협과 관련된 건만 해도 부지기수다. 그래 놓고 자기 딸은 미국의 비싼 음대에 유학시킨 것도 화제가 됐다. 유학자금에 대한 엉터리 해명도 계속 변하고 있다. 윤 씨가 정대협 활동을 하기 전에 일본 가네보 화장품 외판원을 했다는 얘기까지 나와 상황은 점입가경이다.윤 씨는 개인 계좌로 고(故)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 조의금을 받아서, '사드반대 대책위원회' '탈북 종업원 북송 추진단체' 등에 마음대로 지원했던 것이 드러났다. 또한 윤 씨 부부는 위안부 쉼터(안성쉼터)에 류경식당 탈북 종업원들을 초청해서 재(再)월북을 권유하기조차 했다. 이들에게 돈을 계속 지급하며 회유했다. 이런 일에 빠지지 않는 민변 소속 장모 변호사도 여기에 가담했다. 이 자리에서 김삼석 등은 "장군님, 수령님" 등의 호칭을 입에 달고 얘기하며 북한의 혁명가요를 불렀다고 한다. 이런 회유에 응하지 않은 류경식당 전 지배인 허강일 씨는 이런 일과 암살 위협 등 신변의 위협을 느껴 2019년 3월 제3국인 해외로 재(再)망명을 가야만 했고, 최근에 증거와 함께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증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윤 씨 부부와 정대협은 2014년부터 '희망나비'라는 단체와 같이 '유럽평화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참가 학생들이 북한이 고용한 간첩을 만나게 하는 등 종북반미교육을 지속적으로 시켰다. 이 정도면 본업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돈 벌기인지 종북운동인지가 애매해질 정도다.사실 정신대와 위안부는 전혀 다른 개념인데 이들 단체는 이것을 혼용해서 사람들의 인식에 혼선을 가져왔다. 이용수 할머니도 대구 기자회견에서 여기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또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본인들만 진실이고 정의라는 위압적 태도를 견지해왔고, 여기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피해자 할머니라 하더라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다"라고 외치다가 소위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폭로를 하자 "할머니의 기억이 왜곡됐다"는 기상천외하고 모순덩어리인 변명을 해댔다. 일본이 조성한 기금을 수령할 경우 자기들의 위안부를 통한 장사가 끝날 것을 두려워해서 결사적으로 반대했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윤 씨와 정대협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가 아니라 "계속 이용해서 등쳐 먹고 싶었다"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이런 일에 분기탱천해야 할 소위 여성단체-인권단체들은 일제히 침묵을 지키거나 오히려 정대협을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태 때 여성단체들이 오히려 오 전 시장을 감싼 것이 연상된다. 솔직히 얘기하자. 이들은 인권단체-여성단체가 아니라 그것의 탈을 쓴 정치 이념 투쟁 단체에 불과하다. 또한 평소에 '정의'를 엄청나게 외치던 KBS를 위시한 정권선전매체들은 이 사건을 축소·왜곡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것이 현재 집권세력의 자화상이다.

2020-05-27 17:30:00

[이도수의 불가사의 인도] 의료관광사업의 최강국으로 부상한 인도

[이도수의 불가사의 인도] 의료관광사업의 최강국으로 부상한 인도

인도 출신 국제통상 CEO인 Kumar 씨가 필자에게 인도로 의료관광 여행을 올 의향이 없는지 물어왔다. 필자는 "인도는 국민 평균수명이 한국보다 10년가량 짧고 유아사망률은 한국보다 10배 이상 높은 의료 후진국인데 그런 인도에 의료관광을 오라고요?"라며 그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Kumar 씨는 필자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의료관광사업에서는 인도가 한국의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점이 있고 앞서 있다는 것이다.인도인들이 신줏단지처럼 중시해 온 고전 '베다'는 '지식 모음'이라는 뜻이다. 그중에 '아유르 베다'는 생명 관련 지식 모음이라는 뜻이다. 그 방대한 생명 관련 지식 모음 속에는 원시시대의 고전 지식도 있지만 현대 지식의 씨가 된 알맹이 지식도 많다. 그러기에 20세기 초에 창설된 노벨상 제도에서 동양인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인도인 '벤타카 라만'(1930년 수상)을 필두로 인도계 출신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여럿 배출되었다.이에 필자가 "그런 과학지식을 축적해온 인도가 왜 유아사망률은 후진국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수도 뉴델리 도심에서 외국인들이 주로 투숙하는 고급 호텔만 벗어나면 비린내가 곳곳에서 풍기는 위생 불량 상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라고 질문하자 그는 그런 물음을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설명했다. 인도는 1947년 영국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날 당시 사회주의 노선을 택했었다.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모든 것이 하향평준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의료 혜택을 받도록 한다는 원칙의 노선을 내세웠다. 사회주의에서는 뛰어난 인재들이 힘든 의료 전문직을 택하지 않고 의사가 되어도 다른 공무원과 같은 대우를 받기에 의료 전문직을 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 후 1980년대 말,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인도가 1991년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이때부터 인도 인구의 5% 정도인 고소득자들을 위한 고급 의료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해외로 빠져나갔던 인도 출신 엘리트 의료인들이 속속 귀국하여 인도의 최첨단 의료 진용을 갖추게 된다. 인도 인구의 5%는 남북한 인구와 맞먹는다. 세계 최첨단 의료 수준에 도달한 뉴델리의 아폴로병원, 뭄바이의 워크하트병원 등이 서구 부호들을 상대로 한 의료 서비스와 관광을 연계한 의료관광 정책을 펴며 상당한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며 인도의 의료 정책 발전을 설명했다.필자는 의료관광 정책은 한국이 인도보다 앞서 시도한 정책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료관광 정책은 21세기 벽두에 한국 정부에서 먼저 시도했는데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이에 Kumar 씨는 이렇게 말했다. "실은 한국이 시도한 의료관광 정책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인도는 의료관광 정책을 수립했다. 먼저 착안한 한국의 의료관광 정책 실패 원인은 한류 열풍을 타고 Visit Korea 붐이 한창 일 때, 물밀 듯이 몰려든 외국 관광객들에게 한국에 대한 환상을 깨고 나쁜 이미지를 심어 주어 찾고 싶은 한국 방문을 꺼리게 만들었다"고 말했다.또 "한국 드라마와 K-POP이 전 세계의 안방까지 파고들며 한류의 상징인 말춤을 외국 대통령들이 흉내 낼 정도로 확산되고, 각국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어 학습 열기가 뜨겁게 일던 2010년대 초에 세계인들의 한국 방문 붐이 절정을 이루었다. 그때 한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젖어 찾아온 외국 관광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의료관광 인프라와 외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재방문의 의욕을 꺾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그는 "만약 한국이 그때 한류 열풍을 잘 살려 몰려든 외국 관광객들에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국인 특유의 손기술로 미용수술, 미용치과치료 등 특화된 의술로 좋은 인상을 심어 보냈다면 한국의 의료관광 정책은 대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장기 치료를 요하는 중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관광객 유치에는 한국이 인도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인도의 의료비, 숙박비, 교통비 등 제반 물가가 한국의 절반 이하이기 때문"이라고 인도 의료관광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2020-05-27 17:30:00

[신창환의 같이&따로] 긴급재난지원금과 무조건

[신창환의 같이&따로] 긴급재난지원금과 무조건

"누군가 당신에게 아무 조건 없이 매달 일정한 금액을 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돈을 받은 이후에 어떠한 강제적인 의무사항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이런 질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돈을 받겠다고 하지 않을까? 아무 조건 없이 준다는데 굳이 그 돈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 하겠지만, 최근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된 질문이다. 소득하위 70%에만 지급하는 것에서 우여곡절 끝에 모든 국민(개인별 지급이 아닌 가구별)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언론매체들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에 간만에 활기가 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대구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도 조금은 활기를 찾는 것 같다. 4월 초, 서문시장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다. 대구에서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조금은 지나간 시점이었지만 서문시장에는 손님보다 매장 주인들이 더 많았다. 그나마 매장의 절반 이상은 문을 열지 않았고, 서문시장의 별미인 국수 점포들도 거의 열지 않았었다.지난 18일 오후, 서문시장을 다시 방문하였다. 시장 근처에서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해 한참을 기다린 후 서문시장 입구까지 갔었지만,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긴 차량의 줄을 보고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이었지만 시장의 도로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으며, 차를 가지고 장을 보러 온 많은 사람들로 인해 시장은 만원이었다.긴급재난지원금은 사회복지제도의 새로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 기본소득은 학문적으로 보편성, 무조건성, 정액성을 요건으로 한다. 즉, 모든 국민이나 시민에게(보편성), 근로 활동 여부나 재산 및 소득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무조건성), 일정한 현금(정액성)을 지급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복지제도인 사회보험(흔히 4대 보험이라고 한다)과 공공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대표적이다)의 경우, 근로 활동 여부나 근로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혹은 대상자의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조사하여 복지 급여를 받게 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근로 능력이 있어 소득 활동을 하고 있으면 사회보험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고, 근로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서 최소한의 생계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는 공공부조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하지만 기본소득은 자산이나 근로 능력에 대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매달 일정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복지제도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유럽에서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1980년 후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미 몇몇 국가에서는 기본소득제를 실험적 차원에서 시행하고 제도의 실행 여부를 검증하고 있다.기본소득제에 대해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함으로써 근로 동기가 약화되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도덕적 비판에서부터 정부의 재정 부담이라는 경제적인 측면의 문제점까지 다양한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하여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소비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일정한 구매력을 보장해줌으로써 경제에도 도움이 되어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오히려 우파에서 기본소득제를 주장하기도 한다.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일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득(income)이라고 하면 근로소득을 의미한다. 일을 해야 근로소득을 벌 수 있고, 근로소득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해서 소비도 하고 세금과 사회보험료도 납부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왔다. 사회복지제도는 노동시장에서의 근로 능력, 고용 관계와 그에 따른 소득 수준을 전제로 운영되어 왔다.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나듯 사회복지의 기본적인 패턴이 깨져 가고 있다. 일시적으로 가구별로, 상품권으로도 지급한다는 점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건 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첫 복지제도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사회적 실험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전염병에 대비한 방역과 공공의료 체계의 정비와 더불어 사회복지의 정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2020-05-27 17:30:00

[기고] 신종 감염병의 확산과 공공의료의 확충

[기고] 신종 감염병의 확산과 공공의료의 확충

신종 감염병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이 아직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예상되는 제2, 제3의 '팬데믹'(pandemic)에 대비한 빈틈없는 준비도 필요하다.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에 발생한 '메르스' 사태 이후로 의료기관의 감염 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고 감염병 대응 체계를 확충해 왔다.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에 음압병상 설치를 의무화하고 감염병전문병원과 함께 지역별로 감염병관리지원단과 방역직 공무원을 둘 근거를 마련했다.안타깝게도 이 같은 노력이 진행되는 중 우리는 대규모 '코로나19' 사태를 맞게 됐다.감염병전문병원은 진척이 없는 가운데 그나마 전국의 29개소 의료기관에 마련된 198병상의 국가지정 음압병상은 순식간에 포화 상태가 되었고, 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면서 중증환자들이 적기에 제대로 진료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겪기도 했다.격리치료 병상 확보를 위하여 전국의 공공병원을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하고, 경증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생활치료센터를 확충했으며 중증·경증환자를 분리한 치료 체계를 마련했다.'코로나19' 재난을 겪으며 국가 방역 체계와 공공의료 시스템의 중요성과 확충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판단된다.공공의료 체계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며 감염병전문병원과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의료자원과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국·공립병원과 지역거점병원은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 가용 의료자원과 역량을 효과적으로 배분·연계하여 상호 공동 대응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공공보건의료기관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진다는 선명한 의지를 갖고 필수 의료자원 확충과 우수한 전문 의료인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신뢰와 위상을 확보하고 지역거점 공공의료 중추기관으로서 확고히 자리 잡아가야 할 것이다.현재 시설과 인력 확충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민간대형병원과 공공병원의 격차는 크다.따라서 지역 공공의료의 거점이 되는 포항의료원이 필수 의료 기능과 감염병전담병원으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와 육성이 시급하다.응급환자와 중증환자에 대한 우수한 진료 역량과 감염병 위기에 안정적인 대처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은 물론 시설과 장비 인프라를 우수한 수준으로 확충해야 한다.공중보건 위기 시, 거점 감염병전담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력과 시설, 장비 확충에 적극적인 투자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또한 국가지정 음압병상과 이동형 음압기를 의무적으로 충분히 확충해야 하고, 중증환자 치료 장비와 감염병 전문 인력을 확보하여 감염병 대응 체계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한 의료 이용 체계 개선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감염에 안전한 호흡기 전담 클리닉도 우선적으로 설치·운영해야 한다.공공보건의료의 강화는 투자다. 중증환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공공의료기관을 만들지 않으면 재난에 대응하기 어렵다.책임을 다해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민간이 수행할 동기나 능력이 부족한 부분은 공공이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공공은 보다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갖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반복될지 모르는 대규모 감염병 위기와 응급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비용이나 효율이 아니라 사전 예방 관점에서 판단하고 더 철저하게 장기적인 대응 체계를 확충해야 한다.

2020-05-27 15:21:36

[종교칼럼]기억을 생각하다

[종교칼럼]기억을 생각하다

지난 13일 종영된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을 기억하는가. 시청률은 낮았지만 화제성이 높은 작품이었다. 남자 주인공인 앵커 김동욱(이정훈)은 1년 365일 8천760시간을 모조리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이었고, 여자 주인공 문가영(여하진)은 열정 넘치는 라이징 스타였다. 남자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해서 문제였고, 여자는 소중한 것을 기억하지 못해서 문제였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억해도, 기억을 잃어버려도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기억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기억은 주관적이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도 없다.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고, 심지어 기억은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뇌과학자들은 기억을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현재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는 정신적 구성물로 생각했다. 찰스 퍼니휴(Charles Fernyhough)는 "기억은 일어났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려는 힘과 자신의 믿음과 이미지에 일치하게 구성하려는 두 힘의 총합"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기억은 그 구성적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그러나 기억이 없다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인지 알 수 없다. 에릭 캔델(Eric Kandel)은 "우리가 우리 자신인 것은 단지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해온 것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 2권에서 해리는 기억이 정신적인 자산인 것처럼 기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해리가 기억을 빼앗긴다면 더 이상 해리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서양 사유의 전통은 기억과 함께 존재했다. 서양철학의 인식 작용도 지식의 축적도 회상(recollection)과 재기억/아남네시스(anamnesis) 없인 불가능하다. 기독교 성서의 중심에도 기억이 있다. 기억은 히브리인들의 삶의 중심이었다. 하나님은 이집트 탈출 사건은 물론이고,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라고 가르치신다. 그들에게 기억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을 현재화하는 행위였다. 기억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요, 하나님과 함께 미래(prolepsis)를 열어가는 것이었다.기독교의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오, 주님, 그러면 당신은 내 기억 안의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당신은 당신이 거처할 자리를 내 기억 안에다 만들어두심으로써 내 기억에 영광을 주셨으니, 이제 나는 당신이 내 기억의 어느 부분에 거처하시고 계신지 알아봐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기억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장소라고 했다. 기억은 단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것들을 저장하거나 그것을 구성하는 능력이 아니다. 기억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온 온갖 잡동사니를 걸러내고 새롭게 하는 재창조의 자리이다. 기억은 반복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새롭게 해 참된 자신을 찾는 행위인 것이다.요즘은 기억의 수난시대다. 기억은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도구가 되었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기능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기억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왜곡의 자리로까지 추락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0장, '기억의 신비'를 다시 떠올려 본다. "오, 나의 하나님, 이 기억의 힘은 위대합니다. 실로 그 힘이 너무 위대합니다. 그것은 너무 크고 끝이 없는 내면의 방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힘이므로…."

2020-05-27 14:30:09

[매일춘추] 초상(肖像)

[매일춘추] 초상(肖像)

성 착취물 대화방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운영자인 조주빈에 이어서 최초 운영자 문형욱의 얼굴도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수많은 피해자를 노예 다루듯 했던 그들의 범죄행각은 가히 엽기적이다. 앞으로 더 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불과 1년 전 '버닝썬게이트'를 기억하는가. 폭행은 물론이고 경찰과의 유착, 마약, 성범죄, 탈세, 불법 촬영물 공유까지 여러 범죄를 집대성한 사건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불법 촬영물 공유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소리다. 이를 방조하고 함께 즐겼던 사용자들을 선량한 시민으로 볼 수 있는가. 답은 명백한데, 왜 이들을 처벌하지 못하는가. IT강국 대한민국에서 범죄에 가담한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여죄를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텐데 여태 미온적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다만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몇몇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법은 상식이어야 한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개연성과 객관성을 가질 때 힘을 갖는다. 이를 집행하는 자들이 망설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미적대는 사이 적발되지 않은 유사범죄들은 증거를 은폐할 시간을 가지고, 신흥범죄는 한층 진화된 모습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가해자를 검거하는 것과 동시에 피해자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경찰서에 들렀더니, 형사과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어머니인듯한 여성이 담당 형사에게 조사를 받고 있었다. 민원인이 오가는 트인 공간에서 남자에게 여성의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 수치심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도무지 피해자의 신상을 보호해줄 만한 배려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상식적이지 못한 처우다. '남자니까 그럴 수 있고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식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은 가해자를 더 당당하게 만들기도 한다.공개된 문형욱의 얼굴이 앳되어 보여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 반응과 딱 그렇게 생겼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때는 연쇄살인범이 다재다능한 호남형이라고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소위 범죄형 얼굴이란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얼굴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형 이야기가 아니다. 자주 짓는 표정과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눈빛이 달라진다. 관상(觀相)으로 운명을 보는 것이 미래의 것이라면, 초상은 현재의 모습이다.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이나, 두 손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불안감을 준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노인들의 초상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그의 인격이라고 믿는 편이다. 지금 어떤 생각으로 무슨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서 관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소리다. 처음부터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타고나진 않는다. 어떤 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는가에 따라 운명과 함께 얼굴이 바뀌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원하는 얼굴을 하나씩 그려가는 일이다. 이를 우리는 우리들의 초상(肖像)이라고 부른다.김사윤 시인

2020-05-27 13:55:04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6월. 야생진드기 위험 최고조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6월. 야생진드기 위험 최고조

온난화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화 되면서 반려동물 건강 관리에 주의해야할 부분이 하나 더 추가됐다. 바로 야생진드기다.풀이 자라는 토양 속에서는 어디서나 야생진드기가 발견된다. 지역에 따라 겨울철에도 진드기가 발견된다. 특히 5월부터 10월까지는 야생진드기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이므로 풀밭을 드나드는 반려견과 외출하는 고양이들의 건강이 염려스럽다.진드기는 습도가 높은 흙속에 살다가 풀 위로 올라와 지나가는 동물이나 사람에게 숨어들어 흡혈하며 성장한다. 건조된 환경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풀이나 흙에 적절한 습도가 있을 때만 지면 위로 올라오는 특성이 있다. 새끼진드기는 작지만 민첩하게 지나가는 동물의 털 속으로 숨어들어 모세혈관이 잘 노출되는 피부에 주둥이를 박고 흡혈하며 급속히 성장한다.동물에게 숨어드는 새끼진드기의 크기가 불과 1mm 정도의 작은 점에 불과해 보호자의 눈에는 관찰되지 않는다. 새끼진드기는 신체의 높은 부위로 이동하며 귀 주변과 같이 모세혈관이 피부 표면에 잘 드러나는 부위에 주둥이를 박고 흡혈을 시작한다. 일단 흡혈이 시작되면 진드기는 급속히 성장, 불과 2-3일 사이에 팥알 크기로 성장한다. 보호자가 반려동물에게서 진드기를 발견할 때는 이미 5mm 정도로 성장한 진드기를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분히 성장한 진드기는 다시 흙 속으로 들어가 산란을 하는데 그 개체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진드기를 피할 수 있는 풀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진드기로 인한 동물의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일차적으로 진드기 흡혈로 인한 국소적인 피부염이 발생한다. 진드기는 흡혈을 용이하게 하려고 혈액 응고를 방해하는 타액을 피부에 주입한다. 이러한 물질은 진드기가 제거된 이후에도 국소 피부염증을 유발한다.동물의 몸에서 진드기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진드기를 떼어내기에 급급하다 보면 주둥이가 피부 속에 박힌채로 진드기를 떼어내게 된다. 진드기의 흡혈주둥이가 피부 속에 남겨지면 이물성 피부염이 심해지고 육아종성 궤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흡혈 중인 진드기를 떼어낼 때는 진드기 리무버나 가는 핀셋을 이용하여 천천히 주둥이를 좌우로 회전시키며 분리시켜야 한다. 주둥이에 해당하는 하얀 투명막이 충분히 제거될수록 이물성 염증은 완화된다.많은 수의 진드기가 동물의 몸에서 발견되는 경우는 급성 빈혈 증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경우 한 마리 한 마리 진드기를 떼어내는 방법보다는 동물병원을 방문해 수의사의 판단에 의해 약물도포를 통해 자연 탈락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진드기 매개 질환의 감염을 의심해야 하고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통해 동물의 상태를 신중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진드기가 매개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진드기가 보균하고 있던 세균이나 바이러스, 혈액 원충이 동물이나 사람에게 감염되는 경우이다. 대부분 인수공통전염성 질환들이다. 라임병, 에를리키아병, 아나플라즈마병이 진드기가 동물에게 옮기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혈구 세포에 기생하는 혈액원충성 질환의 특성상 빠르게 전신 염증을 유발하며 면역반응을 동반한 만성 소모성질환으로 악화된다. 보호자가 반려동물의 식욕부진, 기력저하, 체중감소, 혈뇨, 피부염 등의 증상을 인지할 때는 이미 질병이 악화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드기매개질환의 치료 과정이 오래걸리고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이기도 하다.진드기 매개질환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 조기진단이 가장 중요하다. 일년마다 정기건강검진 시에 진드기 매개질환 진단 검사가 필요해진 이유다.개와 고양이에게 진드기 접촉을 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근년들어 국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작은소참진드기에 의해 전파되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때문이다. 일명 살인진드기라 부릴 정도로 사망률이 매우 높은 질병이므로 반려동물의 몸 속에 숨어있던 진드기가 실내로 옮겨져 가족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려동물에게도 치명적이므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 모두의 안전을 고려하여 진드기 접촉을 피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안타깝게도 야생 진드기를 예방하는 완벽한 방법은 없다. 매달 목덜미에 바르는 외부기생충 구제약도 진드기의 흡혈을 통한 성장은 방해할 수는 있지만 즉각적인 살충 효과는 없다. 그나마 반려동물을 위한 살충목걸이를 추천드린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진드기의 접촉 자체를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으며, 살충향 성분이 목걸이에 고농도로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간 착용하는 것은 동물의 건강에도 해가 되므로 외출시에만 착용하실 것을 권장드린다. 그 외 천연성분의 진드기 기피제는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효력은 미약했다.개와 고양이가 야생진드기 접촉이 의심될 경우 집에 들어서기 전 현관 밖에서 새끼진드기를 털어낼려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눈꼽빗을 이용하여 털을 섬세하게 벗겨내거나, 드라이어를 이용하여 미지근한 온풍으로 털을 건조시키며 먼지를 털어내는 방법도 권할만하다. 진드기가 잘 숨어있는 발바닥 사이나 귀 주변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반려동물이 발열이 반복되거나, 무기력, 체중감소, 혈뇨, 만성피부염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면 진드기 매개 질환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 외출이 잦아서 야생진드기 접촉이 의심되는 반려동물은 1년마다 진드기매개질병 진단 검사를 받으실 것을 권장드린다.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5-26 18:30:00

[경제칼럼] 합리적인 직무발명제도의 당위성

[경제칼럼] 합리적인 직무발명제도의 당위성

코로나19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책임 공방이 결국 무역전쟁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무역전쟁의 핵심 사안은 관세와 기술 냉전 심화로 요약된다. 자국의 첨단기술 유출에 민감한 이유를 정치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다. G2로 대표되는 두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선도적 지위를 점하는 데 첨단기술이 가장 큰 관건이기 때문이다.눈길을 국내로 돌려보자. 최근 반도체, 무선통신, OLED 분야 등 첨단 분야 기술 유출 관련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기술이 유출되는 대표적 대상 국가는 중국이다. 미국의 기술 규제에 따라 중국은 '독자 생존'을 위한 기술개발이 간절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기술개발은 장기간의 투자가 필수적이니 그들에게는 전문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것이 가장 발 빠른 방법일 것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전문 인력이 가장 매력적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퇴직 연령이 낮아지고 불안정한 고용시장에서 직접적인 금전적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아 보이니 향후에도 기술 유출 관련 뉴스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국내에서 핵심 기술 관련 인력 유출 방지책은 일정 기간 동종 업계 취업 제한,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적용, 국정원의 산업기밀보호센터 적발 정도이다. 모두 사후처방인 셈이다. 법적 조치를 취한 후에는 이미 상당량의 기술이 유출된 상태이다. 사전 보호 대비책이 절실한 시점이다.통상 핵심 기술은 특허로 출원해 보호받기 마련이다. 개발 주체인 연구원을 발명자로 해 기업이 출원인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허출원은 직무발명으로 규정돼 특허권은 회사 소유로 하되 발명자는 그에 따른 보상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위 직무발명제도이다.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65%의 국내 기업이 직무발명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기업이 직무발명제도를 도입 운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보상에 관한 것이다. 기업은 노동의 대가로 종업원에게 급여를 지급한다. 그런데 직무상 결과물인 특허에 대해 발명자(종업원)에게 급여 외 추가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기업의 입장이다.그러나 직무발명제도는 종업원 등의 기술개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다. 즉 보다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법정 인센티브 제도이다.그런데 근자에 연구자와 사용자 간 기여도에 대한 보상 관련 분쟁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2012년 디지털 고화질 디스플레이 연구자에게 60억원 실시보상을 판시한 사건을 중심으로 최근까지 다수의 직무발명 보상 관련 보도들이 그것이다. 보도 대상은 대기업의 경우이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 분쟁까지 고려하면 실제 다툼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지난 12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국지식재산협회 산하에 직무발명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고 한다. 보상금 분쟁의 경우 판례의 비일관성과 예측 불가능으로 경영 불안 요소가 될 우려가 존재해 현실적인 기준을 도출하겠다는 것이다.기업의 입장에서 직무발명 보상제도는 경영 리스크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 기준이라는 것은 자칫 당사자 한쪽의 입장만이 대변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현실적 기준보다 합리적 기준의 도출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경제학자 슘페터는 새로운 생산 기술·제품·시장을 창조하는 기업의 혁신(innovation)을 통해 자본주의가 발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통한 시장 창조의 출발은 연구개발이며 그 주체는 연구원이다.결국 합리적인 직무발명 보상은 단순한 지출 항목이라기보다 새로운 시장 창조를 위한 투자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모쪼록 합리적인 직무발명제도의 정착이 기술 유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전 조치의 기능과 동시에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선순환적 역할을 기대해 본다.

2020-05-26 11:40:11

[매일춘추] 1970년대 새로운 미술흐름의 전조

[매일춘추] 1970년대 새로운 미술흐름의 전조

1960년대부터 대구에는 대학교에 미술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62년 대구가톨릭대학교(구 효성여자대학교)에 생활미술과가 신설된 후 1970년엔 회화과가 생겼고, 1964년 계명대학교에 미술공예학과, 1968년 영남대학교에 응용미술과가 생겨났다. 1970년대 초부터 대학에서 교육받은 젊은 작가들이 지역 미술계에 배출되기 시작되었고, 이들은 지역 화단에 새로운 토대를 만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계명대에서는 신진들의 여러 모임이 만들어졌다. 1971년에는 권정호가 중심이 되어 학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모여 청목회(靑木會)를 만들었고, 1972년에는 이집회(二集會)가 창립되어 박종갑, 박무웅 등 계명대 출신 당대 신진들이 함께 활동하였다. 또한 1975년에는 추상 경향의 작가들의 직전(直展)이 만들어져 작품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미 1972년에는 추상화가들의 모임, 신조회가 정점식, 장석수, 박광호, 이영륭, 유병수 등 당시 중진작가들이 중심으로 창립되었고, 이들은 학교에 재직하면서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비구상계열은 지역 화단에 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그런데 1970년대가 시작될 즈음 한국미술은 이전의 국전과 반국전, 보수와 진보, 기득권과 재야세력, 구상과 비구상 등의 구분을 넘어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해프닝 등 더욱 급작스러운 변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르테 포베라, 모노하 등 서구와 일본에서 일어난 반예술 운동은 유신 체제와 같은 억압된 정치 환경과 기성세력에 대한 반감을 가진 신진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대구에서는 지역 대학 출신의 신진들과 더불어 서울권에서 대학을 나온 지역 출신 작가들이 대구에 내려왔고, 이들은 모임을 만들어 국제 미술의 흐름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연구하면서 평면을 벗어나 당대의 새로운 조형언어를 습득하고자 하였다. 1973년 김기동, 이향미, 김종호의 〈Exposé전〉, 같은 해에 열린 〈현대작가초대전〉(대구백화점 화랑)과 1974년 〈한국실험작가전〉은 전위 혹은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평면을 벗어난 설치와 사진, 오브제, 여러 매체로 표현한 개념미술 등을 보여주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예술 언어를 구사하였다.몇 차례 전시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예술을 소개하는 데서 나아가 이를 확장시키고, 더불어 대구가 동시대 미술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미술의 판도를 만들어보려는 꿈을 기획한다. 1970년대 초부터 일어난 일련의 움직임들을 배경으로 1974년 10월 계명대학교 미술관에서 '대구현대미술제'가 새로운 형식의 미술축제로 열렸다. 이들은 취지문에서 '폐쇄적인 데서 개방적인 데로', '침체에서 흐름'으로 그 방향성을 설정하였다. 이강소는 이러한 기획이 1970년대 세계적인 흐름을 익히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삼고자 했던 작가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부응해 계획되었다고 말한다. 미술제의 추진은 이강소를 비롯해 김기동, 김영진, 김재윤, 김종호,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 등이 함께하였고, 첫해 70여 명이 참여한 대구현대미술제의 작가 가운데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룹 'S.T', '신체제'의 작가 30여 명도 함께 해 동시대 미술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었다.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2020-05-26 10:50:16

[권미강의 생각의 숲] 일제를 찬양했던 문학판 카포(Kapo)

[권미강의 생각의 숲] 일제를 찬양했던 문학판 카포(Kapo)

2차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는 '존더코만도'와 '카포'(Kapo)라 불리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잡혀왔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나은 대우를 받았다. '존더코만도'는 수용소에서 잡일을 담당했다. 주로 가스처형실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그 일을 하며 아주 조금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카포는 존더코만도보다 더 적극적이고 더 구체적으로 나치에 협력했다. 카포는 주로 살인과 강도, 강간 전력이 있는 전과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을 관리했다. 나치 대신 포로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행정사무 처리도 맡아 했다. 같은 민족인 수용소 유대인들 위에 군림하며 자기 맘대로 구타와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당연히 나치의 묵인이 있었다. 수용소 안 유대인들 간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부류였으니 그들에겐 개인 주거공간도 주어졌다. 나치와 같은 식사가 제공되고 당연히 체력도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렇게 길러진 체력으로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나치는 자신들이 원하는 수용소 질서를 유지하고 유대인들끼리 반목하는 데 카포를 철저히 이용했다. 말 그대로 나치의 개를 만들었고 카포들은 충실한 개가 되어 자신의 동족을 물어뜯는 역할을 서슴없이 자행했다.일제강점기에도 나치의 카포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창씨개명에 앞장서고 젊은이들을 전장에 몰아세우고 꽃다운 소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팔아넘기고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온갖 나쁜 짓거리들을 했던 사람들. 해방이 되고 그들 중 누군가는 미군정과 독재정권에 아부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갔다. 그들은 변명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독립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그 시대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라고. 그것이 결코 민족을 팔아먹은 자들의 변명이 될 수 없음에도 한편에서는 흘러간 과거의 일로만 치부해버린다.문학판에도 그런 카포들이 있다. 그들의 펜은 일본의 칼이 되어 동족들을 대동아전쟁의 희생양으로 내몰았고 일제의 비호 아래 권력이 됐다. 해방 이후에는 소위 잘나가는 작가로 존경받으며 교과서에까지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 그들에게 죗값은 없다. 허울 좋은 문학성으로 무장한 채 그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발자취로 남아 있다.작가 김동인은 조선총독부에 찾아가서 자신이 짠 친일계획을 전하며 적극적인 친일행각을 벌였다. '광명의 원천인 태양의 단순간결한 표시인 일장기. 국체(國體)의 위의(威儀)를 넉넉히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장기는 가장 우수'라고 일본을 찬양했다. 그럼에도 모 언론사에서는 문학상을 제정해 지금까지 그를 기리고 있다.'몸에 가득 아침하늘 햇볕을 받아/ 공송하게 가지런히 허리 굽혀서/ 우리 임금 천황폐하 계신 곳을/ 마음모아 정성모아 요배 드리'자는 이광수,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이여/ 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라는 노천명,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神風) 특별공격대원'이라고 노래한 서정주, '허리 굽은 할머니도 기를 흔들어/ '반자이' 소리는 하늘에 찼네'라던 이원수 등등. 우리의 언론들은 그들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문학적 성과로만 평가하고 문학상으로 그들의 권위를 높이고 있다. 더 슬픈 것은 그런 문학상을 받으려는 작가들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2020-05-25 17:30:00

[박원재의 삶 갈피] 인간과 사람

[박원재의 삶 갈피] 인간과 사람

뜻이 비슷한데 꾸준히 함께 통용되는 말들이 있다. 뜻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말은 한자와의 오랜 인연으로 비슷한 뜻을 지닌 한자어와 고유어가 혼재되어 쓰이는 일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과 '사람'이다. 이 두 어휘는 의미가 유사하지만 놓이는 언어적 환경에 따라 때로 무시할 수 없는 의미상의 차이를 드러낸다. 단적인 예가 "이 인간아!"라고 할 때와 "이 사람아!"라고 할 때의 뉘앙스 차이다. 앞의 말이 상대에 대해 얼마간의 비하와 경멸의 의미를 지닌다면, 뒤의 말에는 상대적으로 걱정과 애정이 묻어 있다.'인간'과 '사람'의 이런 용례상의 차이는 이 어휘들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은 우리 고유어이다. 어디 확인해 본 것은 아니지만, 추정컨대 '살다-살음-삶'으로 이어지는 어휘군에 속하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이 추정이 맞다면, '사람'은 '살다' 혹은 '살아가다'는 의미를 품은 동사적 뉘앙스가 스며 있는 말이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하여 '인간'은 영어의 'human being'에 대한 번역어라는 혐의가 짙다. 문화의 수입은 상대방의 생각을 자기의 말로 옮기는 일이다. 근대에 들어 서양과 만나면서 동아시아 세 나라(한국·중국·일본)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일들이 진행되었다. 이 흐름을 선도한 것은 개항이 가장 빨랐던 일본이다. 당시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동아시아 문화에는 생경한 서양의 개념어들을 한문 고전 속의 어휘들을 매개로 번역하였다. 지금 우리 일상에서 아무런 어색함 없이 쓰이고 있는 '사회' '개인' '과학' '자유' 등이 그와 같은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 '근대'의 어휘들이다.'인간'(人間)도 마찬가지다. 한문 고전에 이 말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그러던 것이 'human being'이라는 서양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기에 '사람'의 의미가 덧보태져 새로운 개념어로 안착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라는 말이 좀 더 개념적이고 딱딱한 명사적 뉘앙스를 띠는 이유이다. 이에 비해 '사람'은 무언가 살냄새 나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것이 "이 인간아!"와 "이 사람아!"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의 갭일 터이다. '사람'에는 이처럼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곁을 내주고, 또 그들이 내준 곁에 마찬가지로 기꺼이 안기는 '더불어 삶'의 이미지가 녹아 있다.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과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렇다면 "나이 칠십이 되자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도리를 넘지 않았다"고 한 공자의 말은 칠십에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으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공자가 평생을 추구한 가치인 '인'(仁)은 곧 '사람다움'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되어간다"고 하는 것이 실제에 더 부합할 듯하다. 요컨대, '사람'이 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이제부터 연대기는 B.C.(코로나 이전: Before Corona)와 A.C.(코로나 이후: After Corona)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 사태로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모든 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근래 공영방송 한 곳에서 코로나19를 헤쳐 나가고 있는 시민들의 의식을 조사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을 들었다. 합심하여 난국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국가 역량과 시민 역량이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보다 낫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설문 결과를 보도하면서 리포터는 "그만큼 함께 코로나19를 버텨내고 있는 이웃들의 힘을 믿는다는 말일 겁니다"라는 멘트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힘든 상황을 겪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다른 이들에게 곁을 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들린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하면 지나친 긍정일까?

2020-05-25 17:30:00

[일상중국] 양회와 ‘돼지고기’의 정치학

[일상중국] 양회와 ‘돼지고기’의 정치학

지난 3월 초순경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한 아파트단지에 쓰레기차에 실려 온 냉동 돼지고기 봉지가 뒹구는 사진이 웨이보 등 중국 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중국인들의 생필품인 돼지고기를 쓰레기 운반차에 실어 배달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우한코로나 사태' 종식을 선언하기 위해 봉쇄령(1월 23일)이 내려진 우한을 처음으로 다녀간 다음 날이었다. 이날의 돼지고기 배송은 봉쇄령 속에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감염 공포 속에 돼지고기 등 식재료를 제대로 배급받지 못한 주민들이 '우리도 고기를 먹고 싶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 주석 우한 방문에 맞춰 소홀했던 당국의 대책에 항의한 데 따른 것이었다.그에 대한 화답인지, 시 주석 방문 다음 날 쓰레기차가 냉동 돼지고기를 한 트럭 가득 싣고 한 아파트단지에 도착, 바닥에 돼지고기를 쏟아 내렸다. 식품운반차가 아닌 쓰레기차에 실려 온 돼지고기 봉지를 보고 주민들이 항의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아파트 관리위 당서기 등이 면직되는 사태도 빚어졌다.돼지고기는 중국인의 주식이자 생필품이다. 중국에서 '고기'(肉)라고 하면 '돼지고기'(猪肉)다. 중국 요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탕수육(糖水肉), 동파육(東坡肉), 오향장육(五香醬肉)은 물론 마오쩌둥 주석이 생전에 가장 좋아한 '홍샤오로우'(紅燒肉), 탕수육의 원조인 '궈바오로우'(鍋包肉) 등이 모두 돼지고기가 주재료인 요리다.그런 중국에서 돼지고기가 최근 '금값'으로 치솟고 있다.지난해 하반기에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중국 전역을 강타하면서 대충 1억3천여 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거나 폐사했다. 중국 내 전체 돼지 사육 두수의 30% 수준이다. 중국은 돼지고기 자급 국가가 아니다. 돼지고기를 활용해야 풍성해지는 중국인의 식탁은 중국을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소비국이자 수입국으로 만들었다. ASF가 수그러지지 않고 있는 데다, 코로나 사태는 돼지고기 파동을 부추기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서민을 가리지 않는 중국인의 식욕은 돼지고기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소 진정된 요즘의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 동기 대비 116% 상승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 4월 발표한 올 1분기 중국 내 돼지고기 생산량은 1천38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나 줄어들었다. 돼지고기 품귀 현상으로 시장에서는 1인당 한 근(500g) 내지 1㎏으로 제한하는 식육점도 생겼다. 돼지고기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중국 경제지표를 악화시키는 물가 상승의 주범이다.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하자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물론이고 경쟁업체인 '징둥'(京東)과 '헝다'(恒大)그룹, '비구이위안'(碧桂園), '완커'(萬科) 등 대형부동산 그룹들까지 양돈업 진출에 나섰다. 바야흐로 중국에서는 돼지고기 확보가 ASF와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 경제의 화두가 됐다.'알리바바'는 돼지 사육과 유통에 자신들이 앞서 있는 인공지능(AI) 기술과 IT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사업 계획을 발표했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이 양돈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중국에서의 양돈업이 수익성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돼지고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민심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경제 대국 중국이 생필품인 돼지고기로 인해 중국공산당의 집권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ASF가 휩쓴 2019년 하반기, 후춘화 부총리는 "돼지고기 공급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경제 문제일 뿐 아니라 긴박한 정치 임무"라면서 "돼지고기 공급 문제는 샤오캉(小康)사회 달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당과 국가 이미지에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불가능한 '대기업의 양돈업 진입'을 내버려두거나 독려하는 것은 중국 당국이 그만큼 돼지고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방증이다.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미·중 냉전'의 재점화도 돼지고기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돼지고기 수입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코로나 사태 속에 열리고 있는 중국의 '마스크 양회'가 돼지고기 대책도 수립할 수 있을지 번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20-05-25 17:30:00

[기고] 코로나 이후의 시대, 방역의 주체가 되자

[기고] 코로나 이후의 시대, 방역의 주체가 되자

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100일이 되었다. 이후 확진자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하루 700명을 훌쩍 넘어서기까지 했다.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과연 끝이 있기는 할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성숙한 대구시민들과 의료진, 소방대원들은 묵묵히 버텨내왔다.힘들었던 싸움이 오래된 탓인지 지난 4월 10일 신규 확진자가 53일 만에 처음으로 0명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우리 대원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 시민의 안전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대구소방안전본부는 자원집결지를 운영해 소방력을 총집결해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소방청 동원령에 따라 전국 각지에 있는 구급차가 대구에 투입됐다.대구 소속 23대를 포함해 최대 147대의 구급차가 현장을 누비며 지금까지 8천800여 명을 이송했다. 철저한 예방으로 이송한 대원들이 감염되거나 전파가 되는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필자가 있는 대구 서부소방서 구급대원들도 가족들과 한동안 떨어져 지내며 감염병 차단에 힘을 보탰다. 우리 서부 구급대원이 코로나19 출동으로 이동한 거리는 서울과 부산을 23번 왕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다.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신문인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가 세상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코로나 발생 이후의 삶을 살고 있다.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과 생활 속 거리두기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꾸준한 참여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누그러지고 있지만, 최근 무증상 감염 및 재확진으로 인한 지역사회 전파와 재유행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우리 스스로 방역의 주체와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한순간의 방심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힘들고 안타깝지만 우리가 경험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자비가 없다. 우리 대원들도 환자를 이송하거나 재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할 때에도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소독과 감염 방지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바이러스는 우리 대원들의 선의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 여러분들 스스로 방역과 안전의 주체와 대상이 되어 주어야 한다. 생활 속 거리두기 개인 방역은 5대 기본 수칙과 4개 보조 수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 수칙은 ①아프면 3, 4일 집에 머물기 ②사람과 사람 사이, 두 팔 간격 건강 거리두기 ③30초 손 씻기, 기침은 옷소매 ④매일 두 번 이상 환기, 주기적 소독 ⑤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 등 5가지이며, 보조 수칙은 ①마스크 착용 ②환경 소독 ③65세 이상 어르신 및 고위험 생활 수칙 준수 ④건강한 생활 습관 등 4가지다.우리는 이미 엄청난 사태를 온몸으로 견뎌낸 자랑스러운 대구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되 방심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지난 몇 개월 우리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방역 활동에 더욱 담금질해야 한다. 앞서 여러 번 경험했다는 기억에 사로잡혀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 자기가 편한 대로 상황을 인식하려는 '경험의 역기능'을 경계한다면 코로나19를 물리친 자랑스러운 대구시민이 될 수 있다.

2020-05-25 15:30:00

[세계의 창] 미중의 대립과 한국의 슬기로운 선택

[세계의 창] 미중의 대립과 한국의 슬기로운 선택

중국은 1978년에 경제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후, 일본과 한국 등이 앞서 겪은 고도성장을 경험하면서 2010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정치적 자유의 확대, 인권의 신장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처럼 보인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태도는 국제적으로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를 완성한 미국은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달성된다고 믿어왔고, 그 믿음은 경제성장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국, 타이완 등에서 확인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환영하고, 경제성장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자신들이 믿었고, 확인된 사실 즉 시장이 경제성장을, 경제성장이 정치적 자유의 확대로 이어지는 필연성이 중국에서는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를 갖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회의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의 미중 무역전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 MIT의 오터 교수가 중심이 된 연구팀이 발견한 미국 제조업 종사자 수 감소의 4분의 1이 중국 제품과의 경쟁으로 설명된다는 사실도 있지만, 인공지능, 5G, SNS, 로봇, 자동운전, 사물인터넷(IoT) 등의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혁명에서 미국과 유일하게 경쟁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사실 1978년 이후의 중국 개혁개방정책에 따른 공업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체제의 일부로 편입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국가 간의 경제적 관계가 더 긴밀해져서, 각 나라가 자신의 비교우위를 살려 생산공정을 특화하고, 생산물을 중간재로 수출입을 하는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형성, 심화되어 갔다.대표적인 예로 애플사의 iPhone을 들 수 있다. 애플사는 생산공장을 직접 가지지 않고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디자인과 판매 전략만을 담당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부품을 조달, 중국에서 조립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가치사슬에 의해 생성된 부가가치는 참여국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가치사슬의 상류에 있는 미국이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가져가고, 한국과 일본이 그다음을, 중국에 주어지는 부가가치는 아주 적다. 핸드폰뿐만 아니라 옷, 신발, 가방 등도 선진국 기업들이 이처럼 생산공정을 여러 나라로 나누고 가치사슬을 연결하여 생산 판매를 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가치사슬 중 부가가치가 낮은 하류의 생산공정 대부분을 담당하면서 규모의 경제 이익을 취하고, 해외직접투자 유치와 기술이전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서 지위를 확립,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전체 수입의 40% 정도를 기계와 수송설비가, 10% 정도를 화학제품이 차지할 정도로 수출을 위해 필요한 생산설비와 부품을 대량으로 수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덕분에 2003년부터 한국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으로 바뀌었고, 한국의 제조업은 크게 성장했으며, 2011년에 무역규모는 1조달러를 달성할 수 있었다.그러나, 중국이 공업화를 추진할 때 나라를 개방해서 자유무역 체제의 일원으로 참가한 반면에, 디지털 혁명에 관해서는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서 폐쇄적인 노선을 견지하여 인공지능, 5G, SNS, 전기 자동차, 자동운전 등에서 미국과 다른 독자적인 규격으로 혁신을 이루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지식재산권과 기술 유출 방지를 강화하면서 패권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압력을 높이고 있다. 또한, 코로나19가 2002년에 발생한 사스 때와는 달리 팬데믹이 되면서, 미국은 중국 힘의 원천인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려 하고 있다.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옛 속담처럼 우리에게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에 경도되지 않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으며, 전 세계 시장으로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쪽을 선택하는 슬기로움이 있기를 바란다.

2020-05-25 15:30:00

[매일춘추] 박연(博淵) 속에서 금붕어으로  지다

[매일춘추] 박연(博淵) 속에서 금붕어으로 지다

이장희는 박연(博淵)속 자유를 꿈꾸며 살다간 시인이다. 박연(넓은 연못)은 모순적 조합으로 그의 짧은 생애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단어이며, 육필 원고조차 남기지 않은 그의 유일한 친필이다. 이 글귀는 자살 후 백기만이 펴낸 의 책 속에 사진으로 박제되어 있다. 이장희는 섬세하고 관능적이면서 특유의 회화적 기법을 통해 시대를 앞서간 근대시의 선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반일과 항일의 지역문인인 이상화와 현진건, 이육사의 빛에 가려 오랫동안 저평가 받았다. 그는 1900년 대구 태생으로 초명은 양희이고, 아호는 고월이다. 20세에 장희로 개명한 뒤 1924년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하면서부터 줄곧 이 이름을 사용하였다. 시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계기도 그렇거니와 시적 세계관 구축에 있어서도 불우했던 유년기와 아버지와의 사상적 대립, 불화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음독자살로 인한 그의 이른 죽음도 이러한 시인이 처한 가족사적 현실의 모순과 갈등의 연장선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고월의 아버지는 이병학으로 대구에서 중추원 참의(參議)를 지내면서 실력자로서의 권력을 휘둘렀으며, 3명의 부인과 21명의 자녀를 두었다. 고월은 첫 번째 부인의 삼남으로 태어나 일찍 여읜 어머니를 대신한 두 계모와 배다른 형제들의 질시와 갈등 속에서 자랐다. 이런 환경은 그를 내성적이고 시니컬한 성격으로 만들었다. 이병학은 1911년 오구라 다케노스케를 도와 남선합동전기회사의 전신인 대구전기회사 설립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2년 조선미술품제작소를 직접 운영하면서 오구라가 조선의 문화재를 수탈하면서 만든 오구라콜렉션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유년기의 가정환경과 친일 행적으로 부를 쌓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대립, 삶의 불화에서 역설적으로 시인으로서 시발점과 시작 활동에서 표현되는 섬세하고 관능적인 기법의 근간을 찾을 수 있다.어린 시절부터 수재라 불리던 고월은 대구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가업을 잇길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와 든든한 지원 속에서 1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소망과는 달리 고월은 당시 일본에서 형성되던 근대시와 시인 하기와라 사쿠다로, 야마무라 보쵸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시인으로서의 모습을 그려갔다. 본격적인 시작 활동은 목우 백기만의 주선으로 의 동인이 되면서부터인데, 1924년 등 4편을 시작으로 , , 등에 총 42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발표된 작품 중 34편만이 전하며 8편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최근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와 예술인들에 의해 아카이빙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한 그의 삶과 작품이 공연예술로 점진적으로 조명되고 있어 그에 대한 대중적 인식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스물아홉 해라는 짧은 생을 자살로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닥에 자유로이 헤엄치는 금붕어를 그리며 의도치 않은 아이러니한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냈던 이장희. 박연이라는 상반된 글귀처럼 자신만의 작지만 넓은 세계에서 최대의 저항을 하며 자유를 꿈꾸었을 그의 모습은 이제 옛 문우에 의해 몽타주로만 전하고 있다. 아카이빙된 자료를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되어, 표박하고 있는 고월의 젊은 날의 초상이 지역 문화예술의 다양한 형태로 조금 더 풍성한 풍경으로 그려지기를 기대해 본다.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2020-05-25 11:42:09

[이른 아침에]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이른 아침에]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달 7일, 기자회견을 끝내며 이용수 할머니가 한 말이다. 파장은 컸다.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단체에 이용만 당해'라는 제목의 뉴스가 줄을 이었다.보통의 경우라면 뭐 이런 나쁜 사람들이 다 있냐며 화를 냈을 법도 한데 이번엔 좀 달랐다.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그랬다. 그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30여 년을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피해자 할머니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반인륜적 범죄의 진상을 밝힘으로써 더 나은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래서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있고 나서도 감히 윤미향 당선자를 함부로 의심할 수가 없었다.오히려 정의연을 악의로 대하고 사태를 정쟁으로 몰고 가려는 듯해 보이는 몇몇 언론의 태도와 저의가 더 의심스러웠다. 그들은 왠지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정의연을 공격하는 단체들도 볼썽사나웠다. 소녀상 철거 주장에 이어 윤미향 당선자가 수요집회를 통해 성노예, 매춘 등의 개념을 청소년들에게 주입했다며 그를 청소년보호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고발하는 대목에 이르면 정의연에 대한 없던 호의도 생길 지경이었다.그런데 정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가 의심스럽다.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의혹이나 비난의 목소리 때문이 아니다. 검찰 수사 또한 지켜보면 될 일이다. 정작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가 뭔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 건, 그리고 그게 갈수록 심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해명' 때문이다.이를테면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 날, 정의연은 이용수 할머니에게 성금 1억원을 전달한 영수증을 공개했다. 피해자 할머니와 자신들이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라면서 말이다. 이건 낯설고 삭막하다. 설사 부모가 돈 때문에 화를 냈기로서니 돌아서기 무섭게 그 부모에게 얼마를 줬다며 영수증을 공개하는 자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그 태도로만 보면 그들에게 이용수 할머니는 이미 '저쪽 사람'이었다. 쉼터 관련 해명은 더 이상하다. 굳이 경기도 안성까지 간 이유, 건물을 비싸게 사서 싸게 되판 이유 등이 말은 될지 몰라도 납득이 안 된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어쩜 그렇게 연달아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자신의 부친을 쉼터관리인으로 고용한 것에 대한 윤미향 당선자의 해명은 좀 기가 막힌다. 우리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는 건 시민운동 단체의 대표가 할 소리는 아니다.그리고 한나절 만에 말을 바꾼,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사게 된 경위에 대한 해명도 이해가 안 된다. 적금 3개를 깨고 가족들로부터 돈을 빌려 집을 샀던 겨우 8년 전 일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도무지 있을 것 같지가 않다.그들의 말처럼 정의연의 활동이 피해자 지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건 맞다. 하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은 정의연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시작이며 끝이다. 할머니들의 마음이, 할머니들의 생각이 당연히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만큼 윤미향 당선자는 출마하기 전에 먼저 이용수 할머니에게 허락을 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자고 했으면 그랬어야 했다. 그는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쉼터 관련 해명에서도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라고 했다. 앞으로 그 '급박한 상황'이 얼마나 더 생길지 모를 일이다.정의연은 국회로 가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다른 시민운동단체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활동 이력은 금배지를 달기 위한 경력이 아니다. 이번 논란으로 친일파가 준동하는 것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왜곡하던 사람들이 정의를 떠벌리는 것도 문제지만 먼저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피해자 할머니가 가슴 아파 한다.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그리고 하나만 덧붙이면 윤미향 '당선인'이 아니라 윤미향 '당선자'가 맞다. 후보일 때는 '자'(者)였다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인'(人)이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헌법에도 당선자가 있을 뿐 당선인은 없다.

2020-05-24 15:52:11

[기고] 코로나19와 대구, K-방역…어느 119대원의 참여기

[기고] 코로나19와 대구, K-방역…어느 119대원의 참여기

"윙, 딩동." 오늘도 어김없이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생활수칙 안내문자가 온다. 마스크 착용과 수시로 손 씻고 소독하기, 한동안은 보고 싶은 친구와 친척들과도 모임 자제 등 우리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2월 29일에는 최대 700명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대구시민들은 패닉에 빠졌고, 전국은 물론 전 세계가 대구를 주목하고 있을 때 대구시와 의료진은 망연자실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방역과 생활수칙, 환자 이송, 확진자 관리 등 대구시의 발 빠른 대응 시스템으로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연일 사투를 벌였다. 생활치료센터 등 급박한 현장에서 대구만의 아이디어도 탄생했다.전국의 의료진이 자원봉사를 위해 대구로 몰려왔고, 소방청 동원령에 따라 전국의 구급차가 대구로 모여들었다. 대구시민들은 누군가에 의한 봉쇄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봉쇄를 선택했고 방역관리대책을 따르며 생활 속 불편을 감수했다. 전 국민이 "힘내라, 대구경북"을 외치며 온 힘을 다해 응원을 해주었다. 대구는 힘들었지만 외롭지 않았다.대구소방도 옛 두류정수장 자리에 집결지를 마련하고, 확진자를 하루 300~400명씩, 일일 최다 584명을 이송했다. 입기만 해도 땀범벅이 되는 보호복을 착용했다. 인천과 광주 등 왕복 6~8시간 거리를 이송해야 하는 구급대원들은 만일에 사태를 대비해 기저귀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누구 하나 불만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냈다.새벽까지 이어지는 환자 이송으로 인한 졸음과 보호복을 착용한 불편함보다 우리 대원들을 더욱 아프게 한 건 따로 있었다. 환자들은 주변에 피해가 될까 봐 아파트 입구에선 구급차 소리를 꺼달라고 부탁했다. 이송해준 대원들에겐 고개를 숙이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감염 방지를 위해 비닐장갑을 끼고 나오라 안내했는데, 장갑이 없어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감싼 채 "죄송하다"며 훌쩍이는 20대 앳된 환자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이달 들어 대구에는 신규 환자가 발생하지 않는 날이 적지 않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대구시의 성공적인 방역 관리의 결과다. 하지만 아직 코로나19는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시민참여형 상시방역체계에 맞추어 고강도 7대 기본 생활수칙을 지키는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대형화재 현장에서도 큰불을 잡은 뒤 혹시 모를 잔불을 제거하는 데 전체 진화 시간의 90%를 할애한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도시이자 2·28민주운동의 발원지다. 대구시민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냈고, 많은 불편함을 묵묵히 참고 견디어 내었다. 대구에선 누구나 악착같이 마스크를 쓴다.잔인한 3월, 희망찬 4월을 지나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는 5월'(이해인의 '5월의 시'에서)이다. 코로나19에 우리의 봄은 빼앗겼지만, 대한민국의 여름은 대구에서 희망을 되찾았다. 대구의 성공적인 방역이 대한민국의 방역 성공을 이끌어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코로나19를 극복한 K-방역은 '신한류'로 세계의 표준 모델이 되고 있다.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 명대사를 떠올리며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외친다. "그 어려운 걸 우리가 또 해냅니다."

2020-05-24 15:51:39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도영(1884-1933), ‘획수도강’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도영(1884-1933), ‘획수도강’

예스러운 차림의 한 인물이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 서 있어 얼핏 보면 신선도나 고사도(故事圖)처럼 보인다. 부채에 그리면서 그림 속 주인공도 깃털 부채를 든 재미있는 그림이다. 근대기 한국화가 이도영의 작품으로 '획수도강(畫水渡江)'으로 제목을 써넣었다. 제목 옆에 써넣은 글은 이렇다. 갑자(甲子) 중원일(中元日) 공축위옹(恭祝葦翁) 선생육십일세수(先生六十一歲壽)관재(貫齋) 풀어보면 1924년 7월 15일(음력)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 선생의 회갑에 이도영이 그려드린 축수도(祝壽圖)임을 알 수 있다. 생일이 더운 철이라 이 부채를 훨훨 부치시며 더위를 쫓고, 머리도 식히고, 나쁜 기운까지 날려 보내 더욱 장수하시라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바로 전 해에 오세창은 2년 8개월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왔다. 잘 알려져 있듯이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세창과 이도영은 인연이 길다. 오세창은 1906년 대한자강회를 이끌 때 이도영에게 교육부 간사원을 맡겼고, 1909년 창간한 『대한민보』에 제국주의 일본과 친일파를 풍자하는 시사 삽화를 그리게 했다. 이로 인해 이도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가로 자리매김 된다.이도영은 자신을 이끌어준 오세창의 생일 때 그림을 그려 자주 선물을 했는데 이 해는 회갑이 되는 해였으므로 각별하게 아이디어를 낸 이 그림을 선물했다. "물을 가르고, 강을 건너다"라는 제목처럼 물결을 헤치고 강을 건너는 인물로 오세창을 그렸다. 획수(畫水)는 곧 획수(劃水)로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 주몽의 고사이다. 동명왕이 채찍으로 물을 긋자 장마로 넘치던 물이 가라앉는 신이(神異)한 일이 일어나 비류국이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못했다고 이규보의 장편서사시 「동명왕편」(1193년)에 나온다. 이규보가 동명왕을 문학화하며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자부심을 북돋웠듯이 이도영은 일제강점의 암울한 시기 오세창의 분투를 동명왕에 빗댄 것이다. 머리에 쓴 상투관과 신선 풍 옷차림으로 동명왕이자 오세창을 나타냈는데 물을 내리치는 획수의 도구로 채찍 대신 우선(羽扇)을 든 것은 환갑의 오세창에게 어울리는 점잖은 물건으로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획수는 독립운동사의 획기적 사건인 삼일운동에 독립선언문의 인쇄 책임을 맡았던 오세창의 구국적 행위를 나타내고, 도강은 오세창의 호와 연관된다. 물 위에 서서 맨 몸으로 강을 건너는 도강의 인물은 달마대사이다. 석가모니로부터 이어진 불교의 28번째 조사인 보리달마는 520년 남인도에서 중국 양나라로 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갈대 한 가지를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 소림사로 갔다는 일위도강(一葦渡江), 절려도강(折蘆渡江)의 고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세창의 호 위창의 갈대 위(葦)와 큰물을 뜻하는 창(滄)은 여기에서 나왔다. 아들 오일륙에 의하면 오세창은 김홍도의 달마그림을 애장했는데 평소 "나의 호는 이것이다"라고 했다.이도영은 오세창이 실천한 독립운동을 동명왕의 획수로 비유하고 오세창의 호 위창을 도강으로 풀이했다. 김유신 고사를 그린 '석굴수서(石崛授書)'를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등 역사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상을 할 수 있었다. 오세창 선생은 개혁사상가, 개화운동가, 독립운동가, 언론인으로 민족의 스승이시고, 서예가, 전각가, 서화 감식가, 서화 수집가, 미술사학자이신 한국미술사의 큰 스승이시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생각하며. 미술사 연구자

2020-05-24 06:30:00

[광장] 나는 인정받을 때 더 잘한다

[광장] 나는 인정받을 때 더 잘한다

우리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한다. 칭찬이 없으면 불안하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도 하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는 간절해진다. 조직관리 전문가인 피터 브레그먼(Peter Bregman)은 미국 IT회사의 유능한 직원인 래리의 사례를 소개한다. 래리는 1억원이라는 통 큰 보너스를 받고도 돌연 사표를 냈다. 그의 팀장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책상 위에 수표를 놓고 갔다는 것이 이유였다. 래리의 지갑은 채워졌지만 심리적 보상은 충족되지 못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보상은 당신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물론 물질적 보상은 인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두 달에 한 번씩 보너스를 주는 회사가 왜 존재하겠는가. 물질적 보상이 지나치게 적으면 근로 의욕의 저하나 높은 이직률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물질적 보상이 2배 늘어났다고 해서 근로 의욕이 2배 또는 그 이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연봉 인상이나 승진 등 외적 보상은 휘발성 높은 알코올이나 복용량이 늘어나는 진통제와 같다. 직원이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방법일 뿐, 오로지 돈 때문에 하는 일로 변질되거나 금세 그 이상의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특히 변화가 빠른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외부의 반응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인정이라는 중독에 취약하다. 회사에만 가면 답답하고 무기력하다는 직장인들의 호소가 그 방증이다. 인정 욕구의 결여는 절망과 분노를 야기하고, 오히려 다른 물질적 보상을 통해 그 허기를 채우려 하게 된다.우리 사회는 여전히 칭찬에 인색하기만 하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성실하고 진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모든 이가 항상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가급적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다 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바쁘다거나 질투, 경쟁심과 같이 칭찬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의해 정신적인 인정은 결여되고 물질적인 보상에만 그치게 된다. 리더라면 직원들의 노력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감사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칭찬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금전적 보상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일치한다고 한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보너스를 준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칭찬은 가성비 최고의 방법이지 않은가.물질적 보상과 정신적 보상은 인정 욕구를 구성하는 2개의 축이다. 전자는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후자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 개인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어느 쪽에 더 방점을 찍느냐는 문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인간은 삶의 전 차원에 걸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다고 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인정할 때다. 인정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며 열정 엔진이 돌아가게 하는 연료다. 인정 욕구는 사람마다 요구 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칭찬해 줄 필요가 있다. 타인을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자신감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2020-05-22 17:30:00

[춘추칼럼] 한 사람의 힘

[춘추칼럼] 한 사람의 힘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2020)라는 책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생각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되돌아가고 싶은지 등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서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고 말한다.정확한 지적이다. 이 '전염의 시대'에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쓸모없는 생각을 한다. 그저 매일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보면서 불안과 안도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불안을 야기하는 바이러스 확산 주범을 찾아 분노하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빠져 있기도 한다.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인지,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묻는다. 하지만 묻는 이들도 알고 있다. 여기에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그저 서로에게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잠시나마 불안을 떨쳐보려고 애쓸 뿐이다. 수많은 예측은 빗나가고, 막연한 희망은 무너진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다. 우리가 원하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지연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지만 다시 제자리에 서 있다. 이 지연과 반복을 견디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이다.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의 한복판에서 그나마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건너가고 있는 이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이르게 된 인류의 삶을 생각하고, 언젠가 종식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상황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국가의 역할과 정체성, 기본소득의 필요성, 수많은 방역과 검사와 역학조사, 진료 등을 통해 지방정부와 공공의료에 대해 생각한다. 일상의 변화에 따라 삶과 인생, 가족, 공동체, 생태환경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한다.그중에서도 '감염'과 '전염'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본다. 언론에 보도된 '학원강사발 코로나19 감염 확산'이라는 감염 경로는 '한 사람'이 어디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일터와 삶터를 통해 만나는 타인에게 일종의 '감염'이 진행되고, 감염된 주체는 또 다른 타인을 감염시킨다. 이렇게 반복되는 감염이 결국 전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모든 전염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귀하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전염병 대란이 고작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한 사람은 대구 신천지 신도나 인천 학원강사의 사례처럼 부정적인 사례인 것은 맞지만, 역설적으로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생각해보면 다른 상상이 가능하다. 바이러스 감염의 주범으로서 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감염시키고 확산시키는 '한 사람'을 상상하는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힘'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이때 '힘'은 일방적인 권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효과'에 가까울 것이다. 한 사람이 무제한적인 힘을 행사함으로써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와 관계, 우연성, 상호성 등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것이다. 한 사람이 의도하거나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시작점을 찍는 행위에 가깝다. '한 사람'은 악하고 부정적인 것의 숙주가 될 수도 있지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나누는 최소이자 최선의 단위이다.그 '한 사람의 힘'을 주목해보자. 내가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 동물, 풍경에 보내는 눈빛과 몸짓, 말이 모여 그 사람이 감염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고 상상해보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공존과 협력, 연대와 희망, 우정과 환대, 공감과 위로, 감동과 찬사를 전파하고 전염시키자.

2020-05-21 17:30:00

[매일춘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그 사이

[매일춘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 작곡을 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일이 즐거운지,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회사원을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말이다. 직업에 있어서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난 내 삶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늘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게 된다.매일 스케줄이 다른 나는 하루를 마무리 하는 저녁에 다이어리를 꺼내 해야 할 일을 적는다. 내일 안에 다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을 잔뜩 내 가득 적어 내려간 후, 무엇을 먼저 처리하고 어떤 일이 더 중요한지를 따져 색깔이 있는 펜으로 밑줄까지 긋는다. 근데 이 밑줄을 긋고 일의 중요도를 따져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다.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 치부하고 고집 부려보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란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주어진 삶의 권리와 의무로 생각할 수 있다.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이 질문에서의 긴 방황을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가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세상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오히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중학교 2학년부터 전공을 해온 나에게 작곡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보통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는 전공자는 다른 일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 길만을 걸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갈등과 시련의 연속이기도 하고, 가슴 뛰고 떨림이 가득한 시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난 두려움이 날 엄습하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생각하는 설레는 가슴이, 저녁 잠자리에 들쯤이면 피로와 갈등, 상처로 범벅이 돼 하고 싶은 일이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돼 있기도 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야 하는 일을 해오다보니 하고 싶은 일이 되어 있었고, 그런 내가 되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였다.무언가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개척하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도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모험을 하고, 실패를 하고, 다시 일어섬을 반복한다. 그러한 반복 속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하나로 합쳐지도록 묶는 것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아닐까. 가야만 할 귀중한 삶의 길에서 너무 많은 고민으로 때를 놓칠 바에는 도전해보자. 새로움을 찾아가도 좋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이 되도록 기다려도 좋다. 시행착오를 겪을 각오만 되어 있다면, 완벽한 내일을 위해 조금은 부족한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면, 까짓거 해보자!나의 위치와 일이 바뀌더라도 그 시행착오 속에 얻은 나의 경험치는 그대로 남아 있을테고, 그 경험치가 또 다른 하고 싶은 일로 데려다 줄 것이고, 그것 하나로도 모든 것을 걸어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박성미 작곡가

2020-05-21 17:30:00

[매일춘추] 설렘과 꿈의 자리

[매일춘추] 설렘과 꿈의 자리

많은 현대인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약간의 틈이라도 생길 때면 여행을 하려고 애를 쓴다. 사실 떠난 순간의 즐거움보다는 출발 전에 미리 계획하고, 일정을 정리하면서의 설렘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이 주는 약간의 긴장감과 루틴에서 벗어나 즐기는 일탈이 아드레날린을 잔뜩 솟구치게 하기에 늘 여행을 동경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 거듭될수록 재미와 휴식을 위한 1차원적 욕구 해소의 여행에서 일과 삶, 꿈이 공존하는 다차원적 쪽으로 여행의 이유가 조금씩 옮겨가는 듯하다. 나는 과연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떠나는 것인가.처음 런던을 갔을 때, 보통의 여행자들과 같이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여러 상징물들을 실물로 맞닥뜨리면서 흥분으로 가득 찼던 기억이 난다. 과거와 현재,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런던의 곳곳에 숨어있는 문학과 예술의 정취가 또 그것을 대한 영국인들의 태도가 참 좋았다. 그렇게 템스강을 따라 길을 걷던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한 건물이 나타났다. 17세기 셰익스피어 시절의 극장을 그대로 재현한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이었다. 원래의 자리에서 고작 230m 떨어진 곳에 1997년에 개관한 글로브는 연중 셰익스피어의 희•비극들로 공연 라인업이 채워진다. 직접 들어가 본 극장 안은 무대를 중심으로 반원으로 둘러진 객석이 3층으로 감싸고 있었고, 무대 앞에 펼쳐진 마당은 지붕이 없어 뻥 뚫려 비가 내리침에도 불구하고 3시간도 넘는 공연시간 동안 온전히 작품에 집중하는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2016년, 딤프(DIMF)에서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가 중국 하얼빈에 진출하는 성과가 있었다. 순수 국내 창작뮤지컬이 해외 초청을 받아 공연 한다는 것이 이례적이었기에 큰 성과라는 평이 많았고, 특히 하얼빈오페라하우스의 개관작으로 초청을 받은 것이라 더 뜻 깊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여러 풍문을 들은 터라 막연한 두려움이었을까? 배우들과 스태프를 인솔해야 하는 부담감이 더해져 긴장감만 가득했다. 하지만 극장을 처음으로 마주하던 순간, 습지 위에 세워진 모던한 형태의 극장 건물이 자연환경과도 조화를 이뤄 신비로움 자아냈고, 진정한 '대륙'의 스케일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또한 물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이 수려하기까지 했던 극장 내부를 보았을 때의 그 전율을 잊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은 할까?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신천을 따라 가볍게 걸어본다. 오늘은 어디까지 갔다와볼까 생각하며 시선을 멀리 떨어트려 본다. 며칠 전에 비가 온 탓인지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모습을 지나 여러 다리들과 저 멀리에는 반짝반짝 관람차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도 템스강을 걷다 마음을 빼앗겨버렸던 셰익스피어 글로브와 습지 사이로 위용을 드러내던 하얼빈오페라하우스가 마음속에 떠오른다. 만약 '뮤지컬 도시 대구', '아시아의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대구에도 도시를 대표하고 상징과도 같은 근사한 뮤지컬 전용극장이 하나 있다면? 신천을 걷는 시민들, 멀리서 극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여행 이상의 설렘과 꿈을 심어줄 수 있진 않을까.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2020-05-21 14:00:37

[기고] 코로나19를 통한 ‘K-재난구호’ 모델의 발견

[기고] 코로나19를 통한 ‘K-재난구호’ 모델의 발견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 417만 명, 사망자 28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감염병으로는 처음으로 대구와 청도·경산·봉화 등 경북 일부 지역에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이뤄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안정을 위해 의료진의 뜨거운 헌신과 방역 당국 및 대구경북 시민을 시작으로 온 국민이 전심으로 협력하여 이루어낸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성공으로 눈에 띄게 진정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제 사회로부터 호평을 받은 'K-방역'이 세계의 방역 모델 표준이 되고 있다.사실 방역 모델뿐만 아니라 민간기관의 재난구호 활동 역시 'K-재난구호'라고 불릴 만하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사회재난으로는 역대 최대인 약 2천520억원의 국민 성금이 모아졌다. 국민 성금은 긴급구호는 물론 제도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재난 취약계층 지원 등에 폭넓게 사용되어 지역사회 감염 확산 방지와 대응 그리고 다음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하는 재난관리 전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일본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우리나라 민간단체의 재난구호 지원은 놀라울 정도이다. 대표적인 구호 및 모금 기관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등 3개 기관이 코로나19 재난구호를 위해 제공한 마스크만 4월 중순 기준으로 약 2천731만 장에 달한다. 그 가운데 947억원이라는 소중한 돈이 재난구호모금 전문기관인 희망브리지에 기탁되었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현재까지 마스크, 손소독제, 생활치료센터 입소자 생필품 키트, 자가격리자 식료품 키트, 의료진 응원 키트 등 다양한 구호 물품 약 529만여 점을 대구경북 중심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대구경북의 침체된 지역 경제 활성 및 안전 취약계층 생활안정 지원을 위해 상품권 193억원이 지원되었다. 일선에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전국 의료진에게도 건강 키트 1만6천 세트를 지원했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에 맞춰 전국 중·고등학교의 정보 소외계층 학생을 대상으로 스마트 패드 3만 대를 지원했다.특히 대구경북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아동센터·척수장애인협회와 골목식당을 연계한 도시락 지원과 대구경북 봉제 기업들과 연계한 경북형 면 마스크 지원, 지역자율방재단과 함께한 다중이용시설 방역 작업 등은 고용 유지 및 창출 등 지역 공동체 상생협력 모델로도 훌륭하다.민간 구호기관들은 지자체와 협력하여 국가가 지원해야 할 그리고 아직 제도상 미비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영역과 다양한 대상의 재난구호까지 묵묵히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초기,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의 임시생활시설에 머물렀던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 및 유학생들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응급구호 세트가 아닌 기업과 희망브리지가 사전에 제작한 긴급구호 키트와 생수, 위생용품, 생활용품 등의 지원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누가 구호를 하든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국민 모두가 너무나 어려운 때이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귀한 돈과 소중한 물품을 기부해 주신 국민과 기업들, 'K-재난구호'를 만든 보이지 않는 이들이 진정한 우리의 영웅이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2020-05-21 11:03:03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통찰력은 작은 것을 크게 사랑할 때 탄생한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통찰력은 작은 것을 크게 사랑할 때 탄생한다

통찰력(insight)라는 단어는 정말 매력적이다. in이라는 접두어는 '안'을 의미한다. sight는 보는 것이다. 즉, 인사이트는 안을 보는 것이다. 참 오묘한 단어이다. 밖에서 안을 어찌 꿰뚫어 본다는 말인가.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속에 보석이 있을지 똥이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사이트라는 단어는 매력적이다. 광고인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능력 중 하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까? 이제 겨우 40대인 내가 인사이트에 대해 얘기한다는 게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다. 하지만 강연을 다닐 때마다 이런 질문을 늘 받으니 아는 만큼 설명해 드리고 싶다.인사이트는 작은 것을 크게 사랑할 때 얻을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실 말이 좋지,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 혼자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세상에 무슨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단 말인가.하지만 가장 지키기 힘든 끝판왕 격인 구절이 등장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힘드니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자.어느 여름날,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로등에 벌레, 파리, 모기들이 엄청나게 꼬여 있었다. 여름철 흔히 볼 수 있는 가로등의 모습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가로등이어서 그렇지. 사람 같았으면 엄청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하지만, 이게 웬걸,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바로 지구 정반대편의 아프리카 아이들. 어릴 적 TV에서 본 그 친구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얼굴에는 파리가 들끓었고, 몸에는 벌레가 붙어 있었다. 가로수 등을 보며 그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동시에 번쩍하고 이미지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그래 이거다. 가로수 등에 아프리카 아이 얼굴만 붙여두자. 스티커 한 장으로 공익 광고가 될 수 있겠다!'하지만 메시지가 관건이었다. 밤에 벌레들이 꼬인 얼굴이 된다 해도 광고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의미 정박이 필요했다. 벌레가 꼬인다는 건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다. 말라리아라는 병이 벌레 물림으로 감염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가 유행이다. 모기장을 기부해달라는 메시지는 어떨까? 고민했다. 모기장을 받을 수 있다면 자는 순간에라도 편히 잘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말라리아라는 병에서도 한발 물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냥 널빤지에 모기장을 기부해달란 카피를 쓰기엔 뭔가 심심했다. 낮엔 보이지 않는 카피지만 밤에 그 카피가 노출된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아프리카 아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등의 아랫부분에 카피를 거꾸로 붙였다. 이렇게 되면 낮에 카피가 보이지 않는다. (가로수 등 뒤에 감춰져 있으므로) 그리고 가로수 폴대에 널빤지를 붙여뒀다. 이렇게 되면 밤에 불이 들어왔을 때 카피가 널빤지에 비치게 된다. 거꾸로 붙여둔 글이니 반사되면 그대로 보인다. 결국, 거꾸로 써둔 donate mosquito net(모기장을 기부해주세요)이라는 카피가 제대로 보였다. 나는 광고에 이런 장치들을 숨겨두었다. 낮엔 사람들이 이 광고를 당연히 지나쳤다. 아무런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끄는 광고가 되었다. 스티커와 벌레가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임팩트를 줬기 때문이다. 나는 광고에서 이런 점을 꼬집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관심한 사람들. 눈에 보여야 비로소 이타심을 갖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꼬집고 싶었다.슬프게도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로 살았다. 하지만 이런 공익 광고를 만들었으니 조금 양심의 가책을 던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뉴스에서 봤던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에 충격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광고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내게 그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조금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그 사랑이 이런 아이디어를 만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인사이트는 그렇게 작은 것도 크게 사랑할 수 있을 때 탄생한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2020-05-21 10:08:58

[찬란한 예술의 기억] 카잘스와 번스타인이 응원한 대구

[찬란한 예술의 기억] 카잘스와 번스타인이 응원한 대구

'대구교향악단 창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단체는 한국에 있는 음악가들, 음악 애호가들을 비롯해 일반 사람들 모두에게 행복과 문화적 충만함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한다. 음악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소통되는 신비로운 언어이며, 모든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신의 선물임을 믿는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가 대구방송교향악단(대구시향의 전신) 창단 연주회를 축하하며 보낸 편지의 일부다. 1963년 2월 28일, 대구시향 창단을 한 해 앞둔 때였다. 1960년대 초반, 6·25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던 시기에 교향악단이 창단되고, 세계적인 음악가가 축하 편지까지 보냈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이기홍(1926~2018) 지휘자를 비롯한 음악가들은 6·25전쟁 직후부터 교향악 운동에 뛰어들었다. 음악으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7년 대구현악회를 창단하고 뒤이어 대구교향악단, 대구관현악단 등으로 변모시켰지만, 항상 자금난에 허덕여야 했다. 안정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단체로 자리 잡게 하려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모아야 했다. 우선 대구방송국(KBS대구방송의 전신) 사장을 설득해 후원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더 노력해야 했다. 이들이 생각한 방법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우편 상황이 좋았을 리 없는데도 세계 무대에 이름난 음악가들의 연락처를 일일이 찾아 대구방송교향악단 창단 소식을 알렸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뭉친 이들의 진심이 국경을 넘어서도 통했던 것일까. '그들'이 일제히 회답해왔다.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피에르 몽퇴, 유진 오르만디, 스토코프스키,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첼리스트 카잘스 등이 그들이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짧은 축하 전보를 보내왔지만, 카잘스는 특별히 한 장 분량의 편지를 친필 사인까지 해서 보냈다.세계적으로 이름난 80대 후반의 첼리스트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 작은 도시의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에 상당한 분량의 편지를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도 공연 날짜에 맞춰서 편지가 도착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문구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살펴보면 카잘스의 이름 앞에는 항상 '휴머니즘'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카잘스의 조국은 에스파냐 왕정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부단히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카탈루냐다. 약소민족의 일원으로서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삶을 온몸으로 겪은 카잘스에게,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과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던 한국의 음악가들이 보낸 SOS는 특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카잘스의 편지는 대구방송교향악단 창단 연주회가 끝나고 한 달가량 뒤에야 도착했지만, 그 편지를 받은 대구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전쟁의 상처, 그리고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의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음악의 힘, 예술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 말이다.이기홍 지휘자는 생전에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아니다. 숙원이 이루어져야만 그 가치가 높다. 현재 대구의 음악계는 교향악 운동을 하면서 오로지 음악 발전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음악인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는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이 지휘자는 어려운 시기 자신들을 응원해준 예술가들의 메시지들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서재 깊숙이 들어있던 그들의 편지가 얼마 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의 가족이 유품 중 일부를 대구시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예술에 평생을 바친 선생의 뜻을 기리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한 감수성과 지각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예술가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카잘스의 말처럼, 이기홍 선생을 비롯한 이 땅의 예술가들은 보다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생을 살아오신 것 같다. 이제 우리는 그 정신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2020-05-20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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