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경제칼럼] 빚잔치와 새로운 기회

[경제칼럼] 빚잔치와 새로운 기회

어려서 시장에 갔다가 빚잔치하는 모습을 우연하게 보았다. 팔던 자신의 물건을 돈을 받을 사람들에게 내놓고 그들이 물건을 가져가면서 빚을 갚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더 신기한 것은 1년쯤 뒤 빚잔치하던 그분이 다시 시장 한쪽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열심히 장사하셨던 그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빚잔치는 금전적 어려움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을 때, 돈을 받을 사람에게 남아 있는 재산을 빚이나 돈 대신 내놓고 빚을 청산하는 일이다. 어려서 그 모습이 신기했고 무엇보다 잔치라는 용어 사용이 낯설었다. 빚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는데 왜 많은 표현 중에서 굳이 '잔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참으로 궁금했다.대한민국 경제의 3주체 정부, 가계, 기업이 빚으로 위기에 빠져 있다는 주장이다. 시장의 상인이 아니라 우리 경제 각 주체가 빚잔치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한국은행 7월 금융시장 동향에 의하면 가계 빚은 936조원으로 1천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기업 빚도 955조1천억원으로 역시 1천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로 재정지출이 늘어나 상반기 재정적자가 역대 최대인 111조원이라고 한다. 정부 재정지출과 함께 경기 악화로 세수가 감소한 것이 그 원인일 것이다.고용시장도 어렵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3월부터 5개월 연속 줄고 있다. 코로나19 타격이 큰 숙박·음식점, 도소매업과 교육서비스업의 취업자 수가 줄고 있다. 대면 서비스업 중심으로 취업자 수가 감소한 것이다. 정리하면 경제주체들의 빚은 빠르게 늘고 있고 고용된 취업자 수는 주는 상황이다.한편 대법원에 의하면 전국 14개 법원에 접수된 7월까지 법인 파산 신청 건수가 625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어려움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린 기업과 개인이 모두 늘고 있다는 것이다. 결산 시기도 아닌데 파산 신청이 늘고 있다는 것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법인인 회사가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들의 생계는 직격탄을 맞기에 그렇다.법조인이 돼 법정에서 주로 하는 일은 채권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위해, 주로 채권자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서면을 작성하고 변론을 한다. 일반 법정은 채권자 중심이다. 하지만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채무자 중심이다. 종전의 회사정리법, 화의법, 파산법, 개인채무자회생법을 통합해 제정한 법률로 채무자의 재기를 위해 하나의 법률로 통합한 것이다. 회생법원은 채무자 중심이다.법정의 일반 원칙은 채권자 중심이고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대원칙을 준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채권자 중심의 사고가 기본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개인의 책임으로만 묻기에 사회는 훨씬 복잡하다. 회생과 파산의 경우 논의와 발전이 주로 미국에서 이뤄졌다. 대공황 등 자본주의의 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한 축이 돼 있다.회생이나 파산 신청을 한 사람들을 통계적으로 보면, 분에 넘치는 과소비나 사치를 하거나 도박을 해 빚을 못 갚은 사람들이 아니다. 경제적인 위기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고 취업하지 못하거나 갑작스러운 실직을 하거나 갑작스러운 병과 질환이 생기면서 금전적인 위기에 빠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빚이 불성실과 도덕적 해이의 결과라는 기준으로 바라본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현재를 돌아보자. 대한민국 각 주체의 빚이 급증하고 있고, 코로나19 등 질환으로 인한 위기 가능성도 높아졌다. 우리 누구도 위기 상황에 처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정적인 실패는 누구라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어려서 시장에서 보았던 한 상인의 빚잔치 과정이 생소했고, 법조인이 돼서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고,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상인에게도 사회 전체적으로도 그 과정은 다시 바로 서는 잔치이다. 새로운 경제주체가 태어나 새로운 가치와 부를 창출하는 돌잔치인 것이다. 선조들의 언어 사용의 위대함을 비로소 알게 된다.벤처기업이 성공하는 확률은 2~3%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97~98%의 재기를 위한 잔치를 우리가 해야 한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채무자 회생, 파산 과정은 잔치여야 한다. 경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생성과 번영 쇠퇴 소멸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회안전망이고 복지이다.

2020-08-25 11:23:24

[매일춘추] 무(無)를 마시다

[매일춘추] 무(無)를 마시다

1990년대 중반, 어느 해 봄이었다. 무슨 계기에선가 아내와 함께 아침 금식을 결심했다. 소식이 건강식이고, 아침에는 식사 대신 물(水)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몸에 좋다는 일본의 어떤 저명 의사 – 니시(西) 박사라 기억한다 – 의 이론을 금과옥조로 삼았다. 때로 주위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지만, 애꿎은 물만 – 몇 년 전부터는 사과 한 알을 곁들여! - 마시기를 어언 25년 여, 바야흐로 오전 금식은 당연한 일과가 되었고 이제는 외려 공복 상태를 즐긴다고 말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 중 몸과 마음이 가장 가볍고 상쾌한 때가 '배고픈' 오전 중이니까.카프카의 '단식예술가'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굶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말 그대로 '단식 행위예술가'이다. "이 단식예술가는 단식 중에는 일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예술가의 명예가 그렇게 하게 했다." 카프카는 도대체 주인공의 이 굶는 행위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필자에게는 "그가 아무 것도 안 먹는 게 아니라 무(無)를 먹는다"라고 한 라캉의 해석이 가장 와 닿는다. 카프카의 주인공은 '무를 먹음'으로써 무념무상의 절대미인 '무'를 예술가의 궁극적 지향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무를 먹는다'인데, 아전인수 격이 되겠지만 필자는 그것을 '물을 마신다'와 동일한 내포로 보고자 한다. 단식한다 해도 물은 마시는 것이고, 음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물은 '무'와 통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필자는 매일 오전 물을 마심으로써 사실은 '무를 먹고 있다'고 해도 된다.소식 옹호의 입장에서 우리 한국인의 식습관은 문제가 많다. 이제는 '상다리가 휘도록'이라는 비유를 마냥 좋게만 볼 때가 아니지 않을까? 최근 노르웨이의 '미래를 위한 식습관'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한국인의 음식 소비량을 기준으로 77억 명이 먹을 음식을 생산하려면 2050년에 지구가 2.3개 더 필요할 것이라 한다(매일신문 7.18, '야고부'). 그런데도 TV 채널마다 '먹방'이 넘쳐나고, '24첩 반상' 같은 시대착오적인 상차림이 참을 수 없는 식욕의 경박함을 부채질한다. 과연 그 많은 남는 반찬들은 어디로 갈까? 음식쓰레기, 아니면 재활용? 어느 쪽이든 아찔하다.음식쓰레기만이 아니다. 빈 플라스틱 음료병과 술병 같은 것들은 또 어떤가. 왜 우리는 재활용 보증금제 같은 것을 실시하지 않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독일어로 'Pfand'(판트)라고 하는 보증금 환불제는 적어도 독일에서는 일상사가 된 지 오래다. 마트마다 재활용품 자동기계 - 'Pfandautomat'(판트아우토마트)라 한다 – 에 빈 음료수병, 맥주병 등을 하나하나 집어넣고 꼼꼼하게 환불 보증금 전표를 뽑아내는 서민들의 진지한 표정들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쨌든 오늘 아침에도 필자는 쪼르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물의 그 무미(無味), 그 무의 미를 음미해야겠다. 속이 빌수록 머리는 더 맑아진다고 했지 아마?

2020-08-25 11:20:21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세종과 문재인의 차이…국민주권 거세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세종과 문재인의 차이…국민주권 거세

◆피로 물든 경복궁… 창덕궁 인정전의 역사이성계가 1394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며 1395년 경복궁을 완공시켰다.흔히 조선 첫 궁전인 경복궁에서 조선 500여 년 역사가 펼쳐졌을 것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1398년 이방원이 이복동생인 세자 이방석과 정도전 등의 충신들을 죽이면서 권력을 잡는다. 경복궁은 문을 연 지 3년 만에 골육상쟁의 피로 물든 거다.이에 2대 임금 정종(이방과)은 1399년 수도를 다시 개성으로 옮겼다. 하지만, 1400년 이번에는 개성에서 이방원과 손위 형 이방간 사이에 권력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대활극을 펼쳤다.승리한 이방원이 그해 11월 3대 태종이 됐고, 개성을 떠나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핏기 서린 경복궁을 피해 창덕궁을 1405년 완공시켰다. 이후 그의 아들 4대 세종 이후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 인정전에서 정사를 펼쳤다.◆세종, 인정전에서 과거 문제를 내다.'御仁政殿, 出文科策問題: 왕이 인정전에 나가 과거 시험 문제 제목을 내었다'.세종 9년 즉 1430년 음력 3월 16일 세종실록 35권 기사 제목이다.세종이 창덕궁 인정전 뜰에서 각지에서 모인 인재들에게 낸 과거 시험 문제는 무엇일까? '王若曰(왕은 이렇게 말하노라)…'로 시작하며 세종은 중국 하나라 우임금의 공법(貢法), 은(상)나라 조법(助法), 주나라 철법(徹法)은 물론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 제도를 논하며 백성에게 전제(田制·토지 제도)와 공부(貢賦·세금과 부역)만큼 중한 것이 없으니 응시생들이 숨김없이 제도에 대해 진술하면 채택, 시행하겠다고 밝힌다.세종의 식견과 지식인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수렴 정치 정신이 돋보인다.세종이 과거 시험 문제로 세법을 공론화한 지 3년 만에 첫 결실이 맺어졌다.세종실록 47권에 나오는 1430년 세종 12년 음력 3월 5일 기사를 보자. 호조는 "그동안 답험(踏驗)손실법으로 세금을 매길 때 관리가 사정에 이끌리거나 아전들 횡포로 폐단이 적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공법(貢法)에 따라 전답 1결(結)에 10말을 거둬 백성의 생계를 넉넉하게 하고, 재해로 농사를 그르칠 경우 세금을 면제하시라"고 보고한다.3년간 숙의 과정을 거쳐 나온 정액 세금 제도에 세종은 시행 어명을 내렸을까? 그러면 세종이 아니다. "수도 한양의 모든 관리, 전국 각도의 관리는 물론 여염(閭閻)의 세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서 아뢰라." 관리는 물론 '여염의 세민' 즉 모든 백성의 의견을 물어보라는 지구촌 왕정 사상 전무후무한 여론조사 요구다.◆찬성 9만8천657명, 반대 7만4천149명다섯 달 뒤 1430년 음력 8월 10일 자 세종실록 49권 기사를 공직자들이 꼭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주권재민 정치철학이 스민 치세의 요체가 담겨, 읽는 이를 숨 가쁘게 만든다.호조는 한양의 지돈녕부사 안수산부터 전현직 관리들의 찬성과 반대 그리고, 이들이 낸 구체적인 이유와 대안을 자세히 소개하고, 각 도별로 민간인 상대 여론조사 결과를 맨 끝 문장에 전한다. '可者, 凡九萬八千六百五十七人, 否者, 七萬四千一百四十九人: 찬성, 9만8천657명, 반대 7만4천149명' 57% 찬성이지만, 세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양한 보완을 거쳐 1437년 전라도와 경상도부터 실시한 뒤, 1444년에야 정식 세제로 확정한다. 1427년 과거 시험 문제로 공론화 17년, 여론조사 14년 뒤다. 전국 제도로 정착된 것은 세종의 증손자인 성종 20년 1489년 때다.◆왕정 시대 민주 정치, 민주주의 시대 왕정 복고부동산 문제로 민심이 들썩였다. 8월 23일 자 중앙일보를 보면 안철수는 진중권과 대담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23타수 무안타 0할0푼0리'라고 깎아내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과 토론도 않고, 부동산 세법을 7월 30일과 8월 4일 두 번에 걸쳐 날치기 통과시켰다.7월 20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의 느닷없는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완성' 거론 뒤, 정부와 민주당은 행정수도 이전을 밀어붙인다. 이어 7월 23일 의대 정원 4천 명 증원을 발표했다. 현재 의대 정원 3천58명보다 2배나 많은 숫자를 늘리는 데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다.자치경찰제, 공수처, 검찰 직접 수사권 축소… 논란의 중심에 선 어느 정책도 국민과 대화, 공론의 장을 통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7월 28일 '나라가 니꺼냐'는 외침이 인터넷 실검 1위에 올랐지만, 모르쇠다. 완장 찬 함량 미달 민주당 의원만 일부 어용 언론을 통해 프로파간다를 쏟아낸다.검찰 직접 수사 축소를 언론으로 바꿔 말하면 자체 탐사 보도 금지다. 정부 보도 자료만 전하라는 관치 언론화다. 권력 수사에서 손 떼는 애완 검찰을 의미한다. 세종은 왕정 시대 민주 정치로 국민주권을 일궈냈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 시대 왕정 복고로 국민주권을 거세시킨다.

2020-08-24 16:54:18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파나마 운하와 엑스포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파나마 운하와 엑스포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80㎞ 길이의 파나마 운하는 1914년 8월 15일 개통되었다. 처음 운하 공사를 계획했던 프랑스의 레셉스는 1878년 회사를 설립하여 해수면을 파는 공사를 시작하며 7년이면 충분하다고 자신했으나, 돌과 산악 지형인 파나마 지형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도중에 계단식 갑문 공사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나, 차그레스강의 홍수와 속출하는 풍토병에 의한 사망자와 연계되어 회사는 도산하고 공사는 중지되었다.운하 공사는 운하의 최대 이익국이 될 미국이 굴착권과 공사 설비를 인수하며, 1904년 재개된다. 미국이 신생 독립국 파나마로부터 운하 양변 10마일(16㎞)에 대한 사용 점유권을 인정받게 되자, 철도 전문가였던 책임자 스티븐스는 우선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에 노력한다. 노동자들에게 청결한 숙소, 상수도와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며, 기술적인 진전을 위해 매진한 것이다. 그는 계단식 운하 건설을 위해 산을 굴착하여 철도 레일을 놓았고, 강 수위 조절을 위해 댐을 건설하고 만들어진 호수를 운하로 이용하였다. 특히 황열 전문 군의관인 고가스 대령을 투입하여 황열의 매개체인 모기 서식지를 제거했다. 스티븐스에 이어 미국 공병대가 투입되고 재정지원이 충분하게 되자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착공 10년 만에 운하가 완공되었다. 파나마 운하의 완공은 건설 도중 공사장의 붕괴와 황열로 사망한 미국과 프랑스의 노동자 2만7천 명의 희생에 힘입은 바가 크다.20세기 마지막 날인 1999년 12월 31일 운하의 운영권은 파나마로 반환되었으나, 아직도 운하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운하의 이권 유지를 의해 파나마는 법에 의해 군대 보유가 금지되어 있고, 파나마 정부가 반미 정책을 펴자 미군이 정부를 전복시키기도 했다.1915년 미국에서는 파나마 운하 개통을 기념하는 두 개의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미국 서부의 가장 큰 항구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운하를 지나 처음 만나는 미국의 항구도시인 샌디에이고가 서로 운하 개통 기념 국제박람회를 주최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모두에 미온적이었으나, 1906년 큰 지진으로 파괴되었던 도시의 부활을 알리고자 한 샌프란시스코의 국제박람회 개최를 승인한다. 이에 따라 파나마-태평양 국제엑스포(PPIE)가 1915년 2월에서 12월 초까지 새로 단장한 샌프란시스코 부두 지역에서 열렸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중이었으나 31개국과 1천8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성공적인 국제박람회였다.인구 3만여 명의 샌디에이고가 대도시 샌프란시스코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샌디에이고시는 자체 자금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1915년 초부터 2년간 국내용인 파나마-캘리포니아 엑스포(PCE)를 개최하였다.운하 개통을 축하하는 두 엑스포 기념 종소리에는 노동자들의 아픔과 힘이 지배하던 근대 열강들의 용틀임이 함께 스며들어 있다.

2020-08-24 16:54:04

[박창원의 기록여행] 초등학교 과외수업

[박창원의 기록여행] 초등학교 과외수업

'좁은 배움의 길은 연연 좁아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가는 문은 열릴 줄 모르고 몸부림치는 문으로 어린 아동들의 뼈아픈 문이 되어 낙방한 자가 해마다 증가하여 배움의 안타까운 가슴을 안고 장래를 방황하고 있음은 다른 나라에 볼 수 없는 이 땅 소국민의 특이한 고민일 것이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9년 12월 11일 자)초등학교에서 과외수업이 성행했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별도의 수업을 한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우려가 컸다. 게다가 학생들의 적성이나 자질은 안중에 없었다. 예체능 과목은 정규 시간에조차 무시되기 일쑤였다. 급기야 교육 당국이 나섰다. 그렇다고 과외수업을 없앨 수는 없었다.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대신에 과외수업 시간을 줄였다. 하루에 1시간은 넘지 말도록 했다. 학교를 쉬는 공휴일에는 과외수업을 금지했다. 정규수업도 시간표를 지키도록 했다.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린 아동들의 뼈아픈 문'에 그 곡절이 숨어 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의 초등학교 졸업생은 30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 정원은 20%에 불과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실패의 참담함을 감당해야 했다. 대구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대구부 내 초등학교의 입학 정원은 2천300명 정도였다. 이들이 해방 후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최소한 2배 이상의 경쟁률을 보였다. '아동들의 뼈아픈 문'은 합격자보다 탈락자가 많은 바늘구멍 같은 중학교 입학 문을 가리켰다.입시 전쟁은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시작됐다. 그 시절에는 국민학교로 불린 초등학교 입학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는 그보다 몇 배 더 어려웠다. 당국은 야간중학 개설과 학교 신설로 입학생을 늘리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중학은 야간학교 개설에서 제외되었다. 대구에는 경북중학, 대구중학, 대구농림, 대구상업, 계성중학, 대륜중과 경북, 신명여학교 등이 있었다. 그 뒤 능인중이 설립됐고 효성여중은 대건중에서 분리되었다.형편이 여의치 않은 학부모들은 자녀의 합격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후원회비, 월사금, 입학금, 후생비 등 내야 할 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립과 사립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략 2만원 남짓의 입학수속금이 정해져 있었다. 애초 지켜질 수 없는 액수였다. 학교 운영 경비의 상당 액수를 교육 당국의 지원 대신 학부모들의 주머니에서 충당했다. 이 밖에 서적, 교복 등의 구입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부모들의 허리가 휜다는 얘기는 빈말이 아니었다.치열한 입시 경쟁은 비리를 불러왔다. 입학을 미끼로 현금과 쌀 한 가마를 받은 교사가 붙잡히는가 하면 시험지를 빼내 팔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허위로 학생 모집 광고를 내 수수료를 받아 챙긴 유령학원도 등장했다. 향학열에 불타는 어린이를 가진 가정은 주의하라는 당국의 담화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외수업으로 인한 아이들의 고통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학교조차 마음껏 못 가는 지금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고나 할까.

2020-08-24 16:53:52

[세계의 창] 모리셔스 유류 오염사고의 시사점

[세계의 창] 모리셔스 유류 오염사고의 시사점

인도양의 조그만 섬나라 모리셔스에 7월 25일 일본 상선 와카시오호가 좌초하여 기름을 유출시키고 있다는 내용이 연일 언론에서 언급된다. 그 섬 주위는 천혜의 깨끗한 환경을 자랑하는 곳인데 기름 유출로 환경 파괴가 심하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1995년 시프린스호 및 2007년 허베이 스피리트호 오염사고가 떠올랐다. 두 사고 모두 유조선에 의한 오염사고로 운송 중이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어 큰 피해를 주었다.만약 경북 동해안에서 동일한 유류 오염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동해안은 다행히 섬이 별로 없어서 선박의 좌초 사고 위험이 낮고, 대형 유조선들이 입출항하지 않기 때문에 대형 사고의 위험은 낮은 편이다. 그러나, 1988년 묵호로 향하던 유조선 경신호가 영일만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해안이 오염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선박에 의한 유류 오염사고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유조선에 의한 사고와 일반 선박에 의한 사고이다. 전자는 원유를 실은 선박이 좌초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모든 선박은 추진력을 위한 기관에 사용되는 선박연료유(벙커)를 싣고 다닌다. 그 선박연료유가 바다로 유출되는 경우가 후자이다. 이번 모리셔스에서의 사고는 바로 후자의 경우이다. 포항, 후포 등에도 상선들이 입출항하고 각종 어항에도 어선들이 입출항하므로 이런 유의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유류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박에서 선장은 조심하여 운항해야 한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류 오염사고 처리를 위하여 해양환경공단을 두고 있고 포항 등에도 지사가 있다. 유류 오염사고 발생 시 펜스를 설치하거나 청소선을 투입해 유류 오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를 먼저 취한다. 선박에 남은 유류를 다른 곳으로 이적하여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피해보상도 중요한 문제이다. 해상법은 선주 보호 차원에서 선주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일정 부분 제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전액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에 유조선의 경우 정유사들이 국제기금을 마련하여 추가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한다. 우리나라는 이 기금에 가입하여 이제는 충분한 보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선주들은 책임보험에 가입하여 책임제한 액수만큼은 피해배상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 선박의 경우에는 이런 국제기금 제도가 없다. 피해자들은 선주들이 책임을 제한하면 그 이상의 피해를 보상받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제사회는 선주 책임제한의 액수를 인상하여 피해자들이 보상을 더 받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상법은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일반 선박의 선박연료유 오염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은 손해배상의 부족분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일반 선박에 의한 유류 오염사고 시, 피해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한 어민들이 생계 위협을 받는 등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국내기금 제도를 도입하여 이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법상 선주의 책임제한 액수도 국제조약에 맞추어 피해자가 더 많이 배상받도록 해야 한다. 유류 오염사고는 피해자인 어민들이 손해를 입증해야 하는데, 어민들은 수입을 잘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제는 어민들도 수입에 대한 기록을 꼼꼼히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런 제도 개선이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는 허베이 스피리트호 오염사고 때와 같이 손해배상을 위하여 또 특별법을 만들고 새로운 행정 부서를 창설하는 등 사회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번 모리셔스에서의 유류 오염사고는 우리에게 관련 법 제도를 재점검하고 개선할 기회를 제공한다.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8-24 16:26:36

[기고] 위험천만한 자전거 음주운전

[기고] 위험천만한 자전거 음주운전

자전거가 건강 증진과 레저, 출·퇴근, 근거리 이동 등의 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자전거 음주운전 등에 대한 안전의식은 미흡하다.누구나 자전거를 운전할 경우 안전모 등 인명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일몰 이후에는 발광 및 등화 장치를 작동해야 하는 등 자전거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하지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자전거 음주운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음주 후 자전거를 운전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가벼운 술자리에 자전거를 이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전거를 운전해서 귀가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례가 있다.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위험하게 운전하고 있던 노인은 언행이 부자연스러웠고 안색 또한 붉은 상태였다. 그 당시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자전거를 운전하지 말고 끌고 가도록 제지하는 수밖에 없었다.특히 여름철 농촌에서는 새참과 함께 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음주 상태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노인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자전거 동호인들이 뒤풀이 형태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술 한잔 기울이고 자전거를 이용하여 귀가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그러나 도로교통법 제44조 제1항에는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 노면전차 또는 자전거를 운전해서는 안 된다(2018. 3. 27. 개정, 2018. 9. 28. 시행)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156조 제11호에는 술 취한 상태에서 자전거를 운전할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태료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개정법에는 자전거 음주운전을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신설돼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이상일 경우 3만원의 범칙금 처분이 내려진다.법에는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과태료에 처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시행령에서 범칙금을 3만원으로 정했다. 만약 음주 측정에 불응하면 범칙금 10만원이 부과된다. 범칙금 처분 수준이 약하다.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한 처분을 더욱 강화해야 된다.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매년 자전거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있고 영주경찰서 관내에서도 매년 자전거 음주 사고는 증가하고 있다. 영주경찰서의 경우 도로교통법이 개정된 후 현재까지 자전거 교통사고는 5건 발생했다. 이 중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3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자전거 음주 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 음주운전 근절에 대한 성숙된 시민의식과 정부와 경찰의 홍보, 계도, 단속 노력이 절실할 때다.실제로 지난 1월 8일 낮 12시 영주시 대동로 215번길에서 혈중 알코올농도 0.119% 상태로 자전거 운전을 하던 A씨가 주차된 차량과 충돌, 차량 손해를 입혔지만 법칙금 3만원이 발부됐다.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도로교통법 개정도 유명무실해진다.영주 경찰서는 홍보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자전거 동호회 등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 편의점, 공원, 자전거 전용도로 등을 대상으로 음주운전 단속 또는 음주운전 예방 홍보 캠페인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자전거 교통사고 발생 시 음주 측정을 의무화하는 현장 위주의 단속도 전개해 나가고 있다.이제부터라도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한 안전의식이 전 국민에게 각인돼 음주자는 스스로 자전거 운전대를 잡지 않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20-08-24 11:22:20

[매일춘추] 조건 없는 연민

[매일춘추] 조건 없는 연민

코로나19 역병의 대유행 위기가 전국적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다. 전광훈 목사로 대표되는 서울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이 광복절 집회 참가 후 2차 코로나 확산의 주범이 되었다. 헌법 20조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2항에는 국교는 인정되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했다. 종교의 자유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인정하지만, 현실에서는 민주공화국의 나라이다. 국가 공동체의 보건과 안전을 보장하는 범위에서 종교의 자유와 사회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전 목사는 헌법정신을 무시하고, 공동체의 인간 생명을 존중하지 않았다. 자가격리 위반과 신도 명단을 불성실하게 제출해 방역 대혼란을 초래하였다. 교회가 치외법권 지대는 아니다. 종교의 자유는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경우에는 종교의 자유는 일정 정도 유보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전 목사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는 극우정치인에 불과하다. 그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공동체 정의가 없다. 책임론의 정파적인 논쟁보다도 초당적 방역이 먼저다. 정치적 논쟁은 살아서, 나중에 하자.최근 긴 장마 기간에 햇빛을 볼 수도 없고,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도 자주 만날 수 없다. 모두 '코로나 블루'의 우울증 증상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 혹자는 대전환의 시기라고 주장한다. 중국에서 최초 발생했을 때만 해도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다. 한국은행 '고용취약성 측정 및 평가' 보고서 에 따르면, 코로나 대확산 이후 국내 취업자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최대 피해자는 저소득, 저학력, 비정규직 등 고용안전성이 낮은 계층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전체 2천700만 개 일자리 중 35%(945만 개)에 달하는 음식 서비스, 매장 판매, 기계 조작 등 저숙련 직업이 대부분이다. 이런 일자리에는 고졸 이하, 30세 미만 청년층 등 교육수준이 낮고 젊은 취업자들이 몰려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과 고용대책이 저소득 저학력 청년 등 선별적인 대상에 우선 집중되어야 한다. 포괄적인 돈 풀기보다는 구체적인 돈 풀기를 시작해야 한다.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가장 순수하고 밀도도 짙은 것은 연민이다. 연민, 연민은 불쌍한 것에 대한 말하자면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것, 생명이 가려고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없는 아픔이거든요, 그것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에요. 가장 숭고한 사랑이에요." 코로나 영향으로 인해 많은 사회적 약자가 아파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조건 없는 연민'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그런 민주공화국을 꿈꾼다. 코로나 뒤편의 어두운 골목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2020-08-24 11:11:27

[기고] 자기결정권 중시한 대구희망지원금/경제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의 마중물

[기고] 자기결정권 중시한 대구희망지원금/경제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의 마중물

지난 7월 16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대구시민들에게 2차 생계자금을 지급하겠다는 대시민 담화를 발표했다. 1차 생계자금과 정부재난지원금의 생계 지원 효과가 소진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이 소식을 반겼다. 여의도에서는 이제야 2차 생계자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 감안하면 대구시의 판단은 빠르고 적절했다고 본다. 대구시민들은 2차 생계자금을 대구희망지원금이라 부르자고 했는데, 오늘부터 시행되는 이 정책의 의의를 정리해본다.첫째, '지급 목적'이다. 1차 생계자금이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삶의 터전이 붕괴된 서민들에 대한 긴급 대응의 성격이었는데, 대구희망지원금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구 지역사회의 회복 능력, 즉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희망의 불씨를 잘 살리자는 뜻이다.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생계를 지지하고 그것이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활력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 코로나19를 헤쳐 나온 협력과 연대의 정신을 더욱 돈독히 하여 다가올 어려움도 능히 헤쳐 나갈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둘째, '지급 대상'이다. 1차 생계자금이 소득을 기준으로 선별 급여를 했는데, 대구희망지원금은 모든 대구시민들에게 보편 급여를 하는 것이었다. 이 판단의 배경에는 선별 급여를 해봤더니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사회 갈등이 조성되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정 비용 손실이 상상 이상으로 컸다는 경험도 깔려 있다. 보편 급여는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는 것이다.셋째, '지급 단위'이다. 1차 생계자금은 세대를 단위로 지급을 하였다. 소득과 세대원 숫자로 지급 기준을 정하고 세대주가 신청, 수령하였다. 그런데 대구희망지원금은 개인이 신청하고 지급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개인 중심의 사회복지체제는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그리는 바람직한 비전 가운데 하나다. 세대가 의미 있는 사회복지 실천의 단위이지만 오늘날, 특히 세대의 다양성과 그에 따른 세대 내부의 복잡성, 모순성, 비민주성 등을 보면 세대주 기준의 지급은 변화된 가족구조와 가족관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이 자기 삶의 주체라는 점에서 출발하여 대구희망지원금의 지급 단위를 개인으로 한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사회복지 가치를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넷째, '사각지대 해소'다. 모든 시민들에게 개인을 단위로 10만원을 지급한다는 규칙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사회적 존재는 없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대구희망지원금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위기 가정 청소년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구의 희망, 미래라 할 수 있는 신생아들에게도 대구희망지원금을 지급하도록 했다.마지막으로, 대구희망지원금은 코로나19서민생계지원위원회라는 민간 거버넌스 기구에서 시민들이 정책 설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주목할 일이다. 대구희망지원금은 명칭공모부터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측면에서 사회복지정책 담론의 진취적 실험이다.

2020-08-23 16:22:59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두 가지 광신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두 가지 광신

코로나바이러스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 보인다.이미 전문가들의 경고가 있었다. 이를 무시하고 7월 말에 교회 내 소모임 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섣불리 쿠폰까지 쏴가며 여행을 장려한 것이 실책이었다. 바이러스를 벌써 다 잡은 것처럼 그릇된 메시지를 낸 대통령의 책임도 적지 않다.그러나 그와 별도로 8·15 광화문 집회를 연 극우 세력의 행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바이러스 2파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집회 이전에 이미 대규모 확산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이번 집회를 강행한 이들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조짐이 보였기에 집회는 자제했어야 한다.광화문 집회가 현재 코로나바이러스의 최대 클러스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광훈 목사, 주옥순 대표, 차명진 전 의원, 유튜버 신혜식 등 주도자들부터 줄줄이 확진됐다. 집회와 관련해 벌써 1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것도 전국에서 나오고 있다. 집회에서 감염된 이들이 바이러스를 전국으로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제일교회의 행태다. 이미 800여 명의 확진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외려 방역에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검사를 거부하고, 격리 지시를 어기고, 격리 중 도주를 하고, 심지어 "너도 걸려 보라"며 보건소 직원을 껴안고 침을 뱉는 일까지 있었다. 신천지 교단도 이러지는 않았다. 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광신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먼저 종교적 광신이 있다. 전광훈 목사의 말이다. "만약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다음 주 예배에 나오라. 주님이 다 고쳐 주신다." "우리는 병에 걸려 죽어도 괜찮다. 우리는 하늘나라가 확보된 사람들이다. 목적이 죽는 것이다." 그 교회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거기에 정치적 광신이 중첩된다. "이미 대한민국은 북한의 김정일 통치하에 들어갔고, 또 북한의 김정은이 오더를 내리면 청와대가 그대로 받아서 시행하는 겁니다." 목사가 이러니 그를 신으로 아는 신도들이 검사와 격리를 공산정권에 의한 탄압과 구금으로 여겨, 나라 구하는 각오로 방역에 극렬히 저항하게 된 것이다.이 두 가지 광신은 로고스(이성)와 에토스(윤리)를 파괴한다. 가령 '예배로 바이러스를 치료한다'거나, '대한민국이 김정일 통치를 받고 있다'는 말은 성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나아가 이 위험한 시기에 집회를 열고 방역을 거부해 동료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역시 사회상규에 현저히 위배되는 행위다.이 노골적인 반(反)사회성이 바로 사이비 종교의 특성이다. 사이비 교주들은 신도들의 광신을 이용해 스스로 신이 되기 마련이다. 전광훈 목사는 한술 더 뜬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최근 개신교 일각에서도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전 목사는 이단성이 있는 이단 옹호자로 규정함이 가한 줄 안다."종교적 광신이 기독교를 욕보이듯이 정치적 광신은 보수주의를 욕보인다. 미래통합당에서는 뒤늦게 이들 세력과 선을 그으려 했지만 때는 늦어버렸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광화문 집회의 책임을 엉뚱하게 통합당에게 뒤집어씌웠다. 김문수, 차명진, 김진태, 홍문표 등 통합당 전·현직 의원들이 집회에 참석한 이상 발뺌하기도 뭐하게 됐다.통합당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저들은 광화문에서 '건국절' 집회를 하려 했고, '건국절' 기획은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최근 통합당에서 중도로 외연을 넓히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 노력이 바라는 성과로 이어지려면, 우선 보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이들 혐오 기피 세력과 명확히 갈라설 필요가 있다.

2020-08-23 14:31:19

[광장] 바보야! 농업은 환경이야!!

[광장] 바보야! 농업은 환경이야!!

52조5천198억원, 1.8%. 이 수치는 무엇일까? 답은 2018년 우리나라 농업 생산액, 그리고 농업이 경제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한마디로 농업을 통해 생산되는 경제적 가치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농업의 생산, 고용, 부가가치의 감소를 이야기하며 한국 농업의 쇠퇴를 당연시한다. 1970년 한국 농업은 고용의 50%, GDP의 26%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근본이었다. 하지만 경제 발전 과정을 거치며 농업에서 제조업,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돈이 되는 산업에 인력과 자본이 이동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으로 56개 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수입 농산물이 국내 시장에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다. 이로 인한 공급의 수요 초과로 농산물 가격이 저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농산물 가격은 생산 작목과 생산량을 결정 짓는 주요 잣대이며, 이를 통해 농업 생산 체계의 변화가 발생한다.특히 WTO, FTA에 따른 농산물의 무역자유화는 단일 작물 체계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상위 10개 작물이 전체 농업 생산액의 58%를 차지할 정도로 특정 품목의 생산 집중도가 높다. 특정 품목의 집중도가 높아질수록 농촌 환경 및 자원 이용은 단순화된다. 또한 농업 생산 작물의 단순화는 경기 변동 및 기후변화 등 외부 환경 영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농업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업이 가진, 농업을 통해 창출되는 다양한 가치들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선진국은 농업을 경제, 사회, 환경, 그리고 생태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격이라는 경제적 잣대로만 농업을 평가하는 근시안적 태도로는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다.농업 생산은 그 자체가 생태 활동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의 첨병 역할을 하는 WTO조차도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 농업의 생태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 농산물이 값싼 수입 농산물에 밀려 낮은 시장 가치로 평가받고 있지만 농업은 그런 일차원적 잣대로만 볼 수 없다. 경제 이상의 생태적 가치, 현 세대를 넘어선 미래 세대의 생존 문제를 고려한 다차원적 측면에서 농업을 평가해야 한다.과거 습지는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순천만 습지를 보자. 작년 한 해 순천만국가정원과 습지에 무려 1천3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순천만 습지는 생명의 보고이자 환경의 파수꾼을 넘어 훌륭한 관광 자원이다. 심지어 순천은 몰라도 순천만은 알고 있다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지금 당장 쓸모 없다고 버린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한다. 문제는 후회해도 버려진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농업은 생태의 보고(寶庫)이자 환경 그 자체이며, 농산물은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상품 그 이상의 다원적 가치를 가진다.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만 얻을 수 있는 홍수 조절, 생물 서식지, 탄소 저장 등의 환경 가치가 있는데 한 번 파괴된 생태계는 복원이 불가능하거나 복원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한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선진국들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농업을 환경과 공동체라는 측면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농업은 환경'이라는 진리를 먼저 깨달은 선진국의 길이 우리 앞에 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2020-08-21 14:27:30

[매일춘추] Good manner Koreans

[매일춘추] Good manner Koreans

'어글리 코리언'(Ugly Korean), 주로 외국 여행길에 몰상식한 추태를 부리고 진상 짓을 하는 한국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실제로는 한국인이 같은 한국인을 타박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그러나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식민지와 전쟁이 남긴 폐허 속에서 일궈놓은 한국의 급성장에 따른 부산물이다. 외국인들의 귀에는 한국어가 본디 투박하게 들리는데다가 공항이나 식당, 어디 할 것 없이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 떠들썩함, 파마 머리와 등산복만 입고 다니는 촌스러움 같은 것들이 한국인들의 비 매너로 악명을 떨친 것 같다. 물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동양인을 얕잡아 보는 시각도 있었으리라.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전 세계 120여 개 국 중에서 인도 다음으로 못살았던 나라였었다. 하지만 상전벽해라고 해야 하나? 괄목상대라고 해야 하나? 70, 80년대 중동지역의 건설 붐을 타고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밤낮없이 열심히 일만 하는 한국인의 근면성, 성실함으로 세계는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동남아시아에서 서서히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이 지금은 K-가전제품, K-드라마, K-팝, K-뷰티, K-패션, K-푸드, K-매너 등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그러나 뿌리 없는 나무 없듯이 이 모든 건 그 당시 '어글리 코리언'이라고 불리던 70, 80세 세대들의 희생으로 한국을 Zero에서 Hero로 바꿔놓은 역사의 결과물이다. 젊은 세대들이 '수구세력', '꼰대'라고 부르던 부모님 세대들이다. 돈도 자원도 없는 땅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를 일궈나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잘라서 가발을 만들고 쥐를 잡아 가죽 모피를 만들어 수출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들께서는 가정과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과감한 자기희생으로 산업역군이 되어 혼신의 힘을 다했으며 지하 수천 미터와 전쟁터도 불사했다. 또 우리의 어머니, 이모들께서는 어떤 희생을 했던가?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서 환자들의 똥, 오줌을 받았던 것은 물론, 외국인들의 시신까지도 닦았다. 당시 서독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아시아 동쪽에 있는 아주 작은 후진국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한민국이다. '어글리 코리언'에서 이제 불과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Good manner Koreans' 모든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현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이제는 양극화와 지역 간의 갈등을 없애고 상경하애 정신으로 신, 구가 조화롭게 화합한다면 한국은 세계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코로나19와 홍수 피해로 세계와 국내 정세가 어지러운 지금, 또 한 번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 줄 때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혜안이 생긴다. 반목과 갈등, 개인주의를 버리고 하나가 되길 바라며 책임은 이제 우리 세대와 젊은 세대들의 몫이다.

2020-08-20 15:18:45

[내가 읽은 책] 시선이 머물다…「집을 짓다」

[내가 읽은 책] 시선이 머물다…「집을 짓다」

창을 연다. 첩첩한 아파트 사이로 뒷동산 깎아 올린 백화점, 기와집 부숴 지은 마트는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다. 풍광은 같아지고 추억은 사라진다."산은 움직일 수 없다. 산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으므로 우리는 산을 존중해야 한다."(296쪽) 저자 왕수는 문인이면서 건축가, 중국미술대학교 교수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2012년 중국인 최초, 최연소로 받았다. 대학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독학으로 터득하며 미국식 공동화 현상에 직면한 중국 건축을 비판한다. 근대 건축의 차갑고 형식적인 성격을 넘어 자신 내면의 진실을 견지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건축을 하고자 한다.건축 수필집인 '집을 짓다'는 '건축을 마주하는 태도'를 부제로 왕수의 인문 깊이와 건축 향기가 오롯이 담긴 책이다. 3차원인 건물을 1차원 글과 2차원 사진으로 버무려 의식, 언어, 대화 세 장으로 펼쳤다. 저자는 책에서 건축이 아닌 영조(營造), 설계보다는 흥조(興造) 즉 중국 전통 속에서 가져온 용어를 즐긴다. 공간의 정취를 통해 시간의 전통을 보존하려는 시선으로 집을 짓고자 하는 그만의 철학이다. 의식. 자연에서 정취를 배우는 중국인의 삶에 원림(집안 정원)은 일상이다. 자연 형태의 생장을 모방한 원림은 인공화된 도시에 자연의 생명을 살아 숨 쉬게 한다. 이에 왕수는 서구화된 건축 시스템을 과감히 던지고 집짓기를 한 편의 산수화에 빗대어 일상의 정취를 최고로 삼는다. 이웃한 건축 간의 거리를 고려하고, 수목 위치에 따라 집을 짓고, 잣나무를 따라 정자를 만들며 울타리는 만들지 않고 원림을 대중에게 개방한다."사람이 살아있으면 원림도 살아있고 사람이 죽으면 원림도 황폐해진다."(33쪽)언어. 왕수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자연환경에 대한 장기적인 영향이 적고 설계가 아닌 수공 작업에 의해 전체 건조 과정의 수정과 변경과정에 따라 지어진 샹산캠퍼스. 대중 만족, 전문가 만족, 리더 만족, 갑 측의 만족이라는 찬사보다 '유일하게 내 과거 생활의 흔적을 찾아주는 건축'이라는 관객의 고백이 더 벅찬 닝보박물관. 이미 잊힌 구역에 새롭고 오래된 풍경이 엇섞여서 지방색 가득한 거리로 탈바꿈한 중산로."이곳이 역사구역이기 때문에, 피폐했기 때문에, 관광객이 없기 때문에 개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도시의 훌륭한 간판으로 간주하고 이곳을 활성화하기 위해 개조해야 한다."(264쪽) 대화. 그는 좋은 건축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순수하고 이상적인 생각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망각하고 흔히 할 수 있는 방법을 거부한다. 자연이 건축보다 더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중국인다운 미학과 관념을 담은 살아 숨 쉬는 실물을 건조한다. 시골에서 진실한 어떤 것을 찾는다."역사가 이미 사라졌으므로 우리는 최소한 인간의 흔적이라도 남겨놓아야 한다."(320쪽)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형태가 생겨나는 것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의 공유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파헤쳐지고 높아져만 가는 건물들 사이로 우리의 기억은 허물어진다. 비단 건축만 그러하랴. 글로벌 물결로 나라마다 거리마다 같아지는 모양새는 저마다의 역사를 가진 우리의 삶을 한낱 기성품으로 만든다. 인공지능의 위협까지 가세한 현대 사회에, 인간의 시선이 머무는 삶을 꿈꾸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지식을 얼마나 습득했느냐보다 세계를 마주하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27쪽) 하승미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20-08-20 14:53:54

[이종문의 한시산책] 수운정 피서(水雲亭避暑) - 정래교

[이종문의 한시산책] 수운정 피서(水雲亭避暑) - 정래교

하늘 복판 붉은 태양 새 울음도 지쳤는데 / 赤日中天鳥不鳴(적일중천조불명)산 사람 말을 타고 한가하게 걸어가네 / 山人騎馬作閒行(산인기마작한행)어느덧 산속 길로 따각따각 들어서니 / 翛然去入連山路(유연거입연산로)솔바람 시냇물 소리, 우와 이제 살 것 같네 / 喜得松風澗水聲(희득송풍간수성)올봄에는 모두 가보지 못했다. 일 년에 열두 번씩은 안으러 간 나무에게. 초파일엔 어김없이 찾아가던 먼 절집에, 만 송이 꽃을 피우는 내 고향집 백목련께. 백 리 밖 어느 산골 잔돌 많은 채마밭에, 안 가면 몸살 나는 경주 남산 돌탑 앞에, 지난해 높은 산으로 이사 가신 아버님께, 올봄에는 모두 가보지 못했다. 전 인류를 공포와 전율의 도가니로 와장창 몰아넣고 있는 난데없는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올여름에도 아무 데도 가보지 못했다. 장마철에 접어들자 달포를 두고 게릴라식 물 폭탄이 마구 쏟아져서, 나라 전체가 엉망진창의 쑥대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이제 제발 푸른 하늘을 좀 보게 해 달라고 기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비가 뚝 그치자 태양이 정수리 위에다 직사광선을 내리꽂기 시작한다. 습기와 열기가 뒤범벅되어 콩죽 같은 땀이 줄줄 흐르고, 밤마다 열대야가 계속되어 며칠간 잠도 자지 못했다. 이 지경이 되면 새떼들도 지쳐서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숲속에서 살고 있는 새들도 그런데, 하물며 더위에 막무가내 노출되어있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산과 바다로 뛰어나갈 참인데 코로나가 또다시 무서운 속도로 창궐하고 있으니, 잠시 한시 속의 화자가 되어 작품 속 산속으로 피서를 떠나볼까.보다시피 화자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어디로 갈까? 깊은 산속 정자 수운정(水雲亭)이 그 목적지이다. 천천히 가고 있는데도 말은 어느덧 따각따각 경쾌한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적막한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솔바람이 쏴아~ 쏴아~ 불어오면서, 땀으로 뒤엉킨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가다듬어 빗질해준다. 어디 그뿐인가, 계곡을 내달리는 물소리가 가세하여 악보에도 없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우와 시원하다. 이제 살 것 같다. 저쪽 숲속 하얀 구름 아래 수운정의 천년 묵은 골기와 지붕이 어렴풋이 드러나 있다. 이제 곧 수운정에 도착하면, 먼저 시원한 냉수부터 한 사발 마셔야겠다. 그리고는 대청마루에 냅다 드러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면서 2박 3일간 먹지도 않고 잠이나 푹 자고 돌아올까 보다.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0-08-20 14:51:58

[춘추칼럼] 마당을 쓸었습니다

[춘추칼럼] 마당을 쓸었습니다

나는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로부터 별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학력이라야 고작 고등학교 졸업. 12년 동안 나를 특별하게 귀여워해 줬다든가 사랑해 준 선생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키가 작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특별히 미움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그저 그런 아이였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어른이 돼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한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름 아닌 김기평 선생님. 그분은 내 고등학교 시절인 공주사범학교 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셨던 분이다.1979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공주교육대 부설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부터이다. 그 학교로 내가 갈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다. 선생님은 당시 공주교육대학 교무과장 직책에 있으면서 내가 그 학교로 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주셨다.그로부터 40년 세월이다. 나는 선생님을 지근거리로 만나면서 인생 후반기에 많은 교훈을 얻었다. 먼저 온유한 성품이다. 선생님은 어떤 경우에도 말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든 겸허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 분이었다. 몸에 밴 인품이었다.그다음은 호학(好學)과 성실함이었다. 선생님은 65세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신 뒤 26년 동안 혼자서 공부해 중국의 고전인 사서삼경을 완역해 주해서를 출간하셨다. 인생 후반부의 삶과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란 것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신 실례다.그리고 무욕의 삶이다. 선생님은 식사나 일상생활, 대인관계에도 일말의 사심이 없었고 무엇이든지 줄여서 조그만 인생을 사시려고 애썼다. 그리고 부지런하셨다. 90대에 들어서 시력이 극도로 나빠지신 후에도 선생님은 하루하루 무언가를 하시면서 부지런히 사셨다.어쩌다 선생님 댁을 방문해 보면 무슨 일이든 일을 하고 계신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읽지 못하니까 정원의 꽃들을 살핀다든지 텃밭에 나가 채소를 가꾼다든지 그런 일을 하면서 소일하시는 것을 보았다. 틈이 나시면 몽당비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와 도로를 쓸기도 하셨다.나의 대표작 가운데 한 편이기도 한 '시'라는 작품을 쓴 것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감 덕분이다. 대문 밖 도로를 쓰시는 모습이 나에겐 그렇게 잔잔한 감동이었다."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2009년 내가 공주문화원장이 돼 선생님을 고문으로 모셨을 때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하시면서 나의 강력한 후원자가 돼 주셨다. 해마다 1월 초순이면 어김없이 후원금을 들고 원장실로 오신 선생님은 조용히 돈을 놓고 가시면서 절대로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시곤 했다. 액수도 적지 않았다. 어느 해는 100만원을 주시고 어느 해는 200만원을 주시기도 했다. 일단 돈을 주셨다면 선생님의 기준은 100만원이셨다. 노인이 연금으로 생활하시면서 어쩜 그렇게 배포가 크신지 번번이 놀라는 바가 있었다.2017년 7월 문화원장의 임기를 마치고 이임식이 있던 날, 나는 비로소 해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선생님'이 바로 그분임을 말했다. 그 자리에도 선생님은 와 계셨다. 이미 90대 중반의 노인인지라 지팡이에 의지하고서도 따님과 사위 되는 분의 부축을 받고 계셨다.왈칵 눈물이 솟았다. 문화원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보살핌과 사랑이 마음에 와닿아 그랬다. 그로부터 3년. 선생님은 건강이 아주 힘들어지셨고 드디어 100세가 됐다. 놀라운 일이다. 내 생전에 100세 되신 분을 가까이서 뵙다니!비록 나는 정식으로 학교 다니던 시절 학생으로서 선생님들로부터 두루 사랑을 받지는 못한 사람이었지만 학교를 떠나 어른이 돼 살면서 한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그분으로부터 인생의 교훈을 얻은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한다.

2020-08-20 14:49:29

[기고]  건강보험의 적정 급여와 적정 부담

[기고] 건강보험의 적정 급여와 적정 부담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하여 3분기에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갑작스레 발생한 이 팬데믹 상황은 여러 나라에 불확실한 경제 전망과 소비심리 위축을 불러왔다. OECD에서 발표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도 코로나19 이전 2%에서 –1.2%로 하향 조정되었다. 만약 하반기 2차 대유행이 발생한다면 성장률은 –2.5%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코로나19 외에도 다양한 감염병의 위협이 있을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 만약 병원비를 개인이 모두 부담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이번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K-방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회보험인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치료비는 건강보험이 80%, 나머지 20%를 정부가 부담해 중등도 환자의 경우, 전체 치료비 1천만원 중 본인이 직접 부담하는 금액은 0원이었다. 적극적 검사와 치료가 가능했던 이유다.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불황으로 더 힘들어진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 감면(30~50%) 시행으로 국민 생활 안정화에도 도움을 줬다. 이런 모든 지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건전한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건강보험은 2017년 보장성 강화 정책 발표 이후 병원비 부담이 큰 부분의 보장률을 높여가고 있다. 실제 2018년 중증·고액 30위 질환 보장률은 81.2%로 보장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 3명 중 2명은 의료실손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한다. 이는 건강보험 보장률이 증가되어야 할 필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 확대되려면 보험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개인은 건강보험료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얼마 전 암 진단을 받았던 친구는 교사로 근무하며 월급에서 건강보험료를 낼 때마다 강제로 돈을 빼앗긴 것처럼 아까워했는데, 막상 병에 걸려 치료를 받으면서 한국 건강보험 제도가 얼마나 좋은 제도인지 체감했다고 했다.최근 '코로나19 이후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에서는 '적정 수준 보험료는 부담할 가치가 있다'는 국민의 의견이 87%로 나타났다. KBS의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 인식 조사 결과에서도 '건강보험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이 87.7%로 나왔다. 이러한 결과는 국민 모두가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평소 잘 느끼지 못했던 건강보험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지금 세계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를 주목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위기와 새로운 감염병 발생 등의 위험은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지속성과 국민 건강 구현을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이에 대한 적정한 부담이 필수 조건이다. 이는 앞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사보험은 재정적 부담 능력이 있는 개인에게만 혜택을 준다. 그러나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은 우리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건강을 보장해준다. 의료실손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적정 급여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건강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이 나와 우리 가족, 이웃의 건강과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020-08-20 12:08:35

[매일춘추] 모티프를 통해 보는 그림

[매일춘추] 모티프를 통해 보는 그림

필자는 작년 여름, 부모님과 함께 사막 위에 세워진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을 방문했었다. 부모님은 오히려 작품 감상에 여념 없는 딸의 모습을 눈과 카메라에 담아내셨다. 때마침 에드가 드가의 '파리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마주했고, 필자는 부모님께 드가 작품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그제서야 부모님은 작품 감상에 색다른 묘미를 느끼셨다.드가의 '발레'시리즈는 파스텔 톤의 색감으로 따스한 느낌을 선사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낸다.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검은색 옷을 입은 남성이 등장한다. 이 남성들은 무용수들의 후원자이다. 당시 무용수들은 성적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재능이 부족한 무용수는 후원자를 구해야만 했다. 이처럼 작품에는 드러난 것뿐만 아니라 숨겨진 메시지가 담겨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모티프'를 알고 보면, 그림을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아담과 이브'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이브'를 연상케 한다. 두 작품 모두 사과와 뱀이 묘사되어 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를 타락으로 유혹한 사과와 뱀의 모티프는 부정적인 의미를 상징한다. 특히 뱀은 사악함의 상징과 근심을 몰고 오는 흉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모티프를 통해 비판의 메시지를 드러낸 것이다. 서양의 인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개는 주인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상징하며, 고양이는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성향 탓에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화면 구성에 배치된 모티프를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작품에 표현된 모티프는 동양미술에서도 적용된다. 특히 동양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나무 모티프는 불로장생을 상징한다. 소나무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일부 등에 분포하는 데다 사철 내내 잎이 푸른 상록 침엽수이기 때문이다. 이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도'에 묘사된 소나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새의 모티프는 성스러움을 뜻한다. 사람에게 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게 비쳤고, 하늘과 가장 가까이할 수 있다 하여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다. 반면 동일한 모티프임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의 해석이 다른 경우도 있다. 개구리는 일본에서는 작고 유머러스한 동물로 사랑받지만 서양에서는 사악함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필자는 관람객으로부터 작품 보는 눈이 없다는 말, 즉 감상 방법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그림을 해석하고 감상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미술사조의 흐름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작가의 생애를 통해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모티프를 통해서도 그림을 읽어낼 수 있다. 따라서 회화 작품에 표현된 모티프는 작가의 제작 의도와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준다. 모티프를 알고 본다면, 감상에 색다른 묘미를 느끼고 풍부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8-20 11:59:31

[유홍준의 시와 함께] 담배 두 갑

[유홍준의 시와 함께] 담배 두 갑

담배 두 갑 육봉수(1957~2013) 형님보다는 그래도 내가 더형편 낫지 않겠습니까? 인력시장 일당 오만 원에 팔려비계 파이프 정리하던건설현장에서 만난 십몇 년 전 함께해고 됐던 옛 동지 슬그머니호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어주는 심플 담배 두 갑, 서럽지도 않은데 글썽눈물 같은 게 돌아 이놈의 이빌어먹을 놈의 먼지들 육영수 여사 그리고 사진작가 육명심 선생, 내가 이름이라도 아는 육씨 성 가진 사람의 전부다. 그러다 어느 날 육봉수 시인이 추가되었다. 나보다도 더 완전 생짜 날것! 그의 시들은 건강해도 보통 건강한 게 아니었다. 언젠가 연이 닿아 술 한잔 나눌 기회가 생기면 "아이구 형님!" 저절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육봉수 시인이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뇌출혈로 죽었다.세상을 살아가니 나에게도 어쩌다 택배란 게 오긴 오는데, 얼마 전 택배 땜에 식겁했다. 외출을 했다 돌아오는데 저만치 택배차가 서 있었다. 그리고 아는 얼굴 하나가 짐을 내리고 있었다. 한눈에 딱 봐도 ○○○이었다. 아하, 하다 하다 택배 일을 하는구나! 묻지 않고 듣지 않아도 ○○○의 그간의 일들을 알 만했다. 그는 망해 버린 공장, 내 직장 동료였다. 나는 그가 일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숨어 지켜보기만 했다. 모르겠다. 내가 왜 그를 피했는지….좌우지간, 공장 다니는 사람들한테 담배 끊어라 하지 마라! 이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오래 살아 득될 것도 없는 세상, 담배라도 한 대 세게 빨아야 죽지 않고 살 거 아니가. 길이가 길고 두껍고 빨리 타지 않는 '심플'은 노동자 시인 육봉수한테 어울리던 담배. 흰 구름 흘러가는 가을이 오면 구미 선산 어디께 육봉수 시인의 무덤 앞에 앉아 나도 길게 두껍게 심플 한 대를 태우고 싶다. 참말로, 공장엘 다니면서, 시 같은 걸 쓰는 건 아니었다.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0-08-19 18:43:27

[신창환의 같이&따로] 광폭(廣暴) 사회

[신창환의 같이&따로] 광폭(廣暴) 사회

2020년 장마는 여느 해보다 길고 길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졌다. 온 마을이 잠기고, 소가 물에 떠다니다 수십 리 떨어진 마을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폭우(暴雨)였다.지루했던 장마가 끝나자마자 하늘은 그동안 내뿜었던 비를 다시 빨아들이기라도 하려는 듯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고 있다. 이제는 폭염(暴炎)이다. 한낮 최고기온이 38℃에 육박하면서 연일 폭염경보가 발령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수도권발 코로나19는 더욱 강력한 전파력을 장착하고 다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번 수도권 확산 바이러스는 GH형으로 이전에 발생했던 S형, V형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6배나 더 강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잠잠했던 코로나 감염자 증가가 가파른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코로나 폭풍(暴風)이라 할 만하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대구시에서 하루에도 몇 통씩 안전 안내 문자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 진단검사, 폭염 주의, 거리두기 및 안전 수칙 지키기 등 수시로 울리는 핸드폰의 안내 문자가 이제는 무감각해지기까지 한다.덥고 습한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려면 인내심을 요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려면 긴장감을 갖고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인내심과 배려가 요구된다. 다수의 사람들은 타인과 나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승차해 달라는 버스 운전기사의 말을 듣고 기사에게 폭언(暴言)을 퍼붓고 폭행(暴行)을 하는 사람들, 집회에서 코로나는 걸려도 죽지 않는다면서 방역 조치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웃듯이 무시하는 사람들, 교회 주변을 소독하러 온 방역 요원의 멱살을 잡고 폭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 질서는 상관 없다는 듯 자신의 뜻대로만 행동하는 일부의 사람들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하고 있다.재벌가의 폭언과 폭행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정치인들의 폭언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자신의 이념과 주장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가차 없는 폭언이 오가며 인신공격까지 이어진다.이중 주차한 자신의 차를 밀었다고 아파트 경비원에게 폭언과 협박을 퍼부었던 주민은 결국 경비원을 자살로 몰았다. 자신의 지시대로 하지 않는다고 선수를 폭언, 폭행했던 스포츠 감독과 선배 선수는 전도유망한 어린 선수를 자살로 몰았다. 폭언과 폭행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폭우, 폭염, 폭언, 폭행. 모두 폭(暴) 자가 사용된다. 한자 폭(暴) 자의 첫 번째 뜻은 '사납다'이다. 성질과 행동이 사나워 도리에 어긋나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제 기후 재난이 일상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폭우, 폭염은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이상기후가 아니라 일상적인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지속되는 위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인내심과 배려를 잃어가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간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인내와 배려보다는 폭언과 폭행에 더 노출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사회학에서 인간과 폭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사회가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의 산물이라고 본다. 폭력과 폭언, 폭행을 제어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 사회이다. 우리가 만든 사회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환경 모두 폭(暴)에 지배당하지 않아야 지속 가능하다.그러나 근래에는 자연도, 인간도 모두 폭(暴)에 지배당하고 있다. 폭(暴)이 만연한 사회, 광폭(廣暴) 사회이다. 자연은 폭우와 폭염을, 인간은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 광폭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2020-08-19 16:38:38

[강규형의 새론새평] 염치없는 정권은 썩은 방송·무조건 지지자가 만든다

[강규형의 새론새평] 염치없는 정권은 썩은 방송·무조건 지지자가 만든다

어느 정권이건 황당한 자화자찬을 하고 거기에 대해 엉뚱한 변명을 했었다. 그런데 현 정권은 도가 지나쳐서 뻔뻔함의 수준까지 갔다. 예전에는 기본적인 양심과 체면, 그리고 무엇보다 염치가 있어서 그런 짓을 할 때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특유의 '배 째라' 정신과 막무가내 대응으로 한국 정치사의 신기원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이제는 아예 변명을 안 하거나, 해도 대충 성의 없이 그냥 마구 내지른다. 수사를 받는 권력자들은 과거처럼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기세등등하다. 세상에 이런 정권이 있었던가.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8일 법무부가 전날 단행한 고위간부 인사에 대해 "인사가 만사!" "특정 라인·특정 사단 같은 것이 잘못된 것" "출신 지역을 골고루 안배했다" "아무런 줄이 없어도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검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줬다" 등등의 어안이 벙벙한 자평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줄을 잘 선' 친정권 인사들을 중용했고, 검찰의 최고 요직인 소위 '빅4' 직책에 호남 출신 검사들을 전면 포진시켰다. 그러고서도 지역 안배니 줄 없는 검사들 배려니 하는 유체 이탈 화법으로 얘기했다.이임하는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권력형 비리는 사라졌다"는 경악스러운 얘기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했다. 사실은 '권력자들의 비리를 제대로 수사 못 하게 정권이 필사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가 옳은 표현 아닌가. 이런 것들이 바로 염치없는 아무 말 던지기의 예이다.감사원, 검찰,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가져야 하고, 그래서 이 기관의 장들에게는 임기가 보장된다. 문 정부도 입으로는 이들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가증스러운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현 정권의 수족처럼 노는 민변 출신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독립성을 최소한이나마 지키려는 최재형 감사원장에겐 정권에서의 비열한 사퇴 압력이 쏟아지고 있다. 친정권인 김오수 전 법무무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집어넣기 위해 무려 세 번씩이나 지명하면서 압력을 넣었다. 이렇게 감사원장의 권한과 감사원의 중립성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면서도 자기들이 뭐를 잘못하는지도 모른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인권이니 민주니 떠들고 살았다는 게 창피한 일이다. 또한 야권에서 임명하지 말라던 윤석열 검사를 무리하게 검찰총장에 앉히고는 자기들의 사냥개 노릇을 충실히 안 한다고 마구 밀어내려는 언행들이 난무한다. 권력에서의 독립성은커녕 오히려 검찰 장악을 통한 유사전체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권력에 대한 감시자(watchdog) 역할을 해야 할 방송과 다수 언론들은 오히려 권력의 애완견으로 행동한다. KBS 내 '검언 유착' 오보에 관한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은 땅바닥에 떨어진 KBS의 위신을 조금이나마 살리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권력을 장악한 KBS2노조(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KBS지부)가 이런 활동을 오히려 "동료에게 칼을 겨누는 행위"라고 맹비난하며 그 혐오스러운 사건을 덮으려 한다. 언론노조는 '공정 방송'이니 나발이니 하는 낯 뜨거운 얘기는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약속을 어기고 한국에 피해를 준 북한의 통보 없는 황강댐 방류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는 황당무계한 변호를 하면서, 오히려 1천만달러를 지원한다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지원에 대해 미국과 미리 논의가 됐다는 허언까지 했다가, 그것이 거짓임이 밝혀졌어도 아무 해명도 없다.이러한 막가파 행동이 나오는 이유는 현 정권의 태생적인 뻔뻔함도 있지만, 이런 언행을 오히려 방어해주는 썩어 빠진 방송과 언론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5일 '문재인 퇴진 집회'는 우중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런데 경찰 추산과 YTN 보도는 겨우 500명이 모였다고 했다. 한국방송사에 신기원을 이룰 망언이 아닌가. 소위 '조국 장관 수호 집회'에 무려 200만 명이 모였다는 거짓말을 게거품 물고 떠들었던 방송과 일부 사이비 언론들 식으로 따지면 한 500만 명이 모였다고 왕창 과장해도 무방하다. 그 근거는 '딱 봐도' 500명이 아니라 500만 명이기 때문이다.여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정권을 지지하는 비이성적인 대깨문(대가리 깨져도 문재인 지지층)이 두텁게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어울려 한국 사회는 염치없는 정권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2020-08-19 15:42:48

[종교칼럼]여가, 사람답게 사는 조건

[종교칼럼]여가, 사람답게 사는 조건

여름의 끝자락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을 소환해 본다. 그녀는 "어떻게 인간의 근본악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씨름했다. 아렌트는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게 배우고, 야스퍼스(Karl Jaspers)의 지도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고, 심지어 신학자 불트만(Rudolf Bultmann)의 강의도 들었다. 그녀는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는 물론이고, 신학자와 문인들과도 깊이 교제한 시대의 지성이었다.그녀의 '인간의 조건'은 인간은 단지 장소와 운명에 제한된 존재임을 암시하지 않는다. '인간의 조건'은 오히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실천적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일까?아렌트는 우리의 삶을 크게 활동적 삶(Vita Activa)과 관조적 삶(Via Contemplativa)으로 나눈다. 그러면서 활동적 삶에는 세 가지 근본 활동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노동' '작업' '행위'이다. 노동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는 생산 활동이고, 작업은 생활 기구를 만들거나 예술 작업과 같은 활동이다.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공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아렌트는 노동은 인간 삶에 필수적이지만 사적인 영역에, 행위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공공의 장으로 자유의 영역에 두었다. 아렌트는 사적인 영역은 본질이 결여된 영역이기 때문에 그 결여는 공적인 영역에서 채워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사적(private)이란 말은 그 어원을 통해 볼 때도 '무엇이 결여된'(privative)을 담고 있다. 그녀는 인간의 근본적인 악도 결국은 사적인 영역인 노동이 절대화될 때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다운 삶은 노동이 자기 결핍을 알고, 진정한 자유에 의해 형성되는 공공성을 지향하는 데 있다.그렇다면 공공성을 만들어 내는 자유는 무엇이고, 그 자유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자유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할 수도 있고,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참된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어떤 동기나 목적 없이 발생하는 자유다. 그런데 그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여가로부터 주어진다. 그래서 수많은 사상가들이 여가의 본질을 자유로 이해했다. 여가 즉 일상의 바쁜 일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시간'이란 의미는 그리스어의 스콜레(scole)와 라틴어의 오티움(otium)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 심지어 그리스 철학은 여가를 '자유의 시간'으로만 이해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까지도 포함시켰다. 여가의 진정한 의미는 일을 쉬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코로나19는 휴가의 트렌드를 바꾸어 놓았지만 피서지를 찾는 휴가객을 막지는 못했다. 여가의 삶이 우리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여가가 휴식과 즐거운 시간이 아니라 고역일 때가 많다. 우리는 여가가 여가답지 못하고 오히려 짜증을 유발하는 '여가의 역설'을 경험한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서도 일을 생각한다. 일로부터의 자유, 사유로부터의 자유 없는 여가는 여가일 수 없다. 일이 절대화되고, 소유가 신성시되는 곳엔 자유가 없다.우리는 노동과 작업 없는 삶을 살 수 없다. 하지만 사람다운 삶은 세속적인 삶이 멈추는 여가 가운데 있다. 우리는 여가 속에서 신적 자유를 경험하는 그때에 사람답게 사는 맛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리처즈(M.C. Richards)는 여가를 이렇게 표현했다. "너무 편안해서 활동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될 때, 나는 가장 즐겁다. 또한 나는 이런 습관을 붙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2020-08-19 13:10:12

[기고] 그때나 지금이나

[기고] 그때나 지금이나

홍상수 감독의 2015년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나오는 영화감독 함춘수의 시작은 '실수'다. 실수로 하루 일찍 내려간 그곳에서 화가 윤희정을 만난다. 실수로 만난 그들은 소주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서로 다른 화두를 던진다. 그런데도 대화는 이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도 여자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남자는 그냥 여자가 예쁘다. 그걸 아는 여자에게 공감은 사치다. 그래서 받아주는 '척'한다. 상식적이진 않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 남자의 실수를 '단순한 실수'로 볼 건가, 그게 아니면 '내밀한 의도'로 볼 것이냐는 틈새다. 공교로운가.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그 일'을 실수라고 했다. LH는 최근 역세권 복합단지 개발사업 예정지에 사는 주민들에게 '조성원가 이하로 이주자 택지를 공급하겠다'는 '공문'을 뒤집었다. 그러고는 '감정가 공급'을 통보했다. '지장물 조사'에 관한 주민 찬성이 이뤄진 뒤였다. 그러면서 이것을 '전임자의 실수'라 했다. LH의 '공적 결재 라인'은 그저 실수인 걸까. 공교로운 지점이다.LH는 공공주택지구 사업에 편입된 중소업체의 부지를 두고 그때는 '조성원가 공급'을 공언했다. 그리고 지금은 '통상의 법 근거에 의한 감정가 지급 원칙'으로 노선 변경을 꾀한다. "조성원가로 협의양도택지를 공급하겠다"는 지역본부장발(發) 약속은 '공염불'이었던 걸까. 3년 만에 LH는 '협의양도택지'와 '협의양도인택지'를 구분 지었다. 이렇게 구획을 나눈 뒤 "사업자는 협의양도택지에 해당하므로 법적 사례는 미흡하지만 감정가로 공급하는 게 맞다"고 했다. 합리적 의심을 하자면 '애매하긴 해도 지금이 맞을 듯하니 그때는 틀린 셈 치자'는 게다. 보상 시점이 임박한 지금에 이르니, 이 또한 공교롭다.LH는 LH 주관의 공청회를 반대하는 주민 의견을 '다수의 주민들이 공청회를 요구한다'는 공문으로 묵살했다. 그런데 LH가 말한 '다수의 주민들'은 하루 만에 주민 쪽 패널(전문가)을 섭외해 신변 제출하라는 공청회 절차를 '요식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LH가 말한 '다수의 주민들'은 모든 주민을 대표하는 패널과 더불어 공청회 재개최를 주장했다. LH가 기대한(?) '다수의 참여 주민'은 1천여 명 중 10명 내외. 그마저도 언론사 기자들과 항의 방문한 주민을 제외하면 실제 인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동상이몽일까. 공교롭기 그지없다.LH는 뭣이 불안했던 걸까. 공공주택지구에 편입된 한 민간업체의 부지에서 '온천'이 발견됐다는데, LH는 관할 구청에 '개발(검사)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구청은 이에 발맞춰 '지하수법'과 '온천수법'을 따로 떼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온천수) 검사조차 막았다. LH와 구청에 지하수 굴착 중 온천이 발견된 것이기에 연계 선상으로 봐야 한다는 '상식'은 없던 걸까. 공교롭게도 말이다.LH가 원주민들에게 안긴 오욕의 시간을 되돌리자면 LH는 추상적일지언정 '변혁'해야 한다. 변혁하고자 한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극약일까 우려되지만 '니힐리즘'도 때로는 (LH에) 명약일 수 있다. 공교롭지 않게 말이다.이동군 군월드 대표

2020-08-19 11:47:40

[매일춘추 ]대구는 ‘단편영화제’ 개최 도시

[매일춘추 ]대구는 ‘단편영화제’ 개최 도시

대구에는 전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쟁 단편영화제인 '대구단편영화제'가 있다. 199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21회를 맞았다. 국내 경쟁 부문에 역대 최다 편수인 905편과 대구에서 제작된 25편의 단편영화가 출품되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영화제 개최가 쉽지 않았다. 봄부터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연달아 취소되거나 온라인 개최로 전환했다. 진정세를 보이던 코로나19가 재확산 추세를 보이는 지금, 대구단편영화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소소하게 누리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된 현재 상황은 영화제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 자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영화는 근대 과학기술의 발명품이었고, 19세기 과학기술의 총화였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빛과 어둠의 마술을 통해 현실의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다른 한편, 영화의 발명은 19세기 사회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봉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생산 체제가 확립되자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들이 도시의 대중을 형성한다. 영화는 도시 대중을 위한 시각적 구경거리와 오락거리를 제공했다.영화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한 사람은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이었다. 그가 1894년에 발명한 '키네토스코프'는 작은 구멍을 통해 움직이는 이미지를 구경할 수 있는 요지경 기계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의 아버지'라는 칭호는 에디슨이 아닌 '뤼미에르'에게 돌아간다. 이유는 에디슨이 만든 기계는 1인용 관람 장치로 개인 감상이 목적이었지만, 뤼미에르가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는 대중적 상영이 가능한 기계 장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영화는 자신의 탄생을 정확히 알고 있는 유일한 예술이 된다. 뤼미에르는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카페에서 1프랑을 받고 33명의 대중에게 영화를 상영했고, 이날이 영화의 생일로 기념된다. 영화는 탄생에서부터 대중과 함께 볼 수 있는 기계와 이를 위한 시설, 즉 극장이 영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였다. 대구단편영화제는 20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중과 함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지난 몇 달은 그 어느 해보다 대구단편영화제가 고유의 가치를 지키면서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치열한 고민과 논의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대면 영화제는 축소되고 행사는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게스트 초청은 취소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영화란 무엇인가'하는 고민이 깊어진다. 125년 동안, 영화는 대중이 함께 보는 행위로서의 '시네마'였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는 에디슨의 개인 영화 관람 개념을 새롭게 부활시키고 있다. 영화계는 코로나 사태 이후 분명 새로운 판도가 펼쳐질 것으로 점쳐진다. 대구단편영화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재편될 영화계에 의미 있는 역할을 찾아내야 할 때다.

2020-08-19 11:47:19

[경제칼럼] 고스톱과 포커게임

[경제칼럼] 고스톱과 포커게임

12종류 48장으로 이뤄진 화투는 한때 왜색을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면치 못했다. 화투는 일본의 카드놀이인 하나후다(花札)가 19세기경 조선으로 전해져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왜색을 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1956년 10월 29일 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광고 하나가 이색적이다. 오복실업주식회사 명의로 게재된 광고에는 "왜색화투(倭色花鬪)는 정부정책(政府政策)에 의하여 말소폐지(抹消廢止)되어야 하고 그 대체로 미장특허(美匠特許) 제323호 새 화투"라고 선전하고 있다. 일찍이 왜색을 떨쳐내려는 노력과 함께 화투의 그림을 디자인으로 등록받은 사실이 이채롭다. 화투를 이용한 놀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칭 고스톱이라 불리는 게임이 가장 대중적이다.포커는 영어권 국가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한다. 미국에서는 1850년 이후 '내셔널 게임'(國技·국기)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성행하기 시작했다. 다른 카드게임이 모두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해진 반면, 포커는 미국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유일한 놀이이다. 20세기 초에 마침내 포커게임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게임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바둑이나 체스는 정보가 완전히 공개된 상태로 진행된다. 반면에 고스톱과 포커는 상대에게 자신의 패를 감춘 상태로 진행되기에 심리전이 상당히 중요한 게임이다.게임 진행 규칙을 들여다보면 무척 재미있는 사실이 대비된다. 고스톱은 특정 점수를 낸 자가 중간에 게임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추가 점수를 얻기 위해 소위 '고'(go)를 하면 이때부터 피아의 구별은 일대다(一對多)의 대결 구도가 된다. 가진 자에 대해 다수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셈이다. 대신 한번 게임에 참여하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 또한 '박'이라 해 특정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곱절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약자는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보장하되 의무를 다하지 못함에 대한 응징이 명확하다.반면에 포커는 언제든지 게임을 포기할 수 있다.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철저히 혼자 판단하며 승패의 원인과 결과 또한 자신에게만 국한된다. 동종의 카드게임인데 도드라지는 규칙의 차이가 단순한 게임 규칙의 차이로만 보이지 않는다.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방역의 1차 성공 여부는 마스크 착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방역의 효과가 명백함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경우 여전히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주위를 의식하고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우리는 주변 이웃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흔쾌히 불편함을 감수한다. 마스크 미착용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극히 이기적 행동의 산물이라는 관점이다. 공동체 의식이 기초한 까닭이다.반면에 서구 사회는 각자의 관념이 우선이다. 개성을 중시하기에 마스크 착용과 관련한 지침이나 공동체 의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상대에게 종속되지 않으며 감염의 원인과 결과 또한 자신이 수용하면 그만이다. 포커 규칙이 만들어 낸 게임의 운영이나 결과와 흡사하다.상대에 대한 배려가 일상인 우리에게도 지적받아 마땅한 현안이 있다. 부동산 시장이다. 현 정권 들어 스물세 번이나 대책을 내놓았으나 소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정책 실패라는 여론도 존재한다. 정책 실패라면 그 대가가 상당히 치명적이다. 다주택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전 국민적 공분과 함께 대통령의 임기 전 레임덕 현상까지 거론된다.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절대다수의 국민이 패배자가 돼 버린 것이다. 현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철학이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책 입안자의 잘못된 부동산 철학만을 탓할 것인가 싶다.우리 자신의 부동산 철학은 어떠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적인 이익 추구는 마땅하다. 그러나 합법적 이익 추구 대상이 유독 주택이어야 하는 것인지, 그 결과가 얼마나 우리를 파괴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우리의 자랑스러운 공동체 의식은 공평한 위기 앞에서만 발휘되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면 그만인 것이 우리의 민낯인가 싶기도 하다. 정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어떠한 형태로든 약자에 대한 배려의 여지를 남겨 놓은 고스톱 게임의 규칙이 한낱 오락의 규칙으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2020-08-18 14:09:57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가족 위생을 위한 양치습관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가족 위생을 위한 양치습관

타스(1살, 7kg)가 내원하였다. 표정 만큼이나 쾌활해서 동물병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기 바쁘다. 너무 사교적이라 간호사가 타스를 안아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간호사 입술을 핥기 시작한다. 궈여워하던 간호사도 버거워할 정도였다. 타스의 지나친 애정 공세가 보호자의 고민이라는 심정을 이해할 만 했다.보호자는 타스의 핥는 행동을 좋아하면서도 그 정도가 심해서 난감할 때가 있다고 하셨다. 그나마 침 범벅은 참을 만한데 타스가 핥고나면 입술 주변이 알러지 처럼 퉁퉁 부어오른다고 하소연하셨다.보호자에게 상담드리기가 편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타스 보호자들에게 우리 집 상할머니, 깜순이(16살)와의 일상을 얘기해드렸다.깜순이는 들을수 없고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걷기도 불편하다. 올해 들어서는 하루 종일 자는 편이며 식사 때와 대소변 볼 때 만 조금 움직인다. 내가 다가가 엎드려 얼굴을 내밀어야 겨우 알아본다. 일단 나를 알아보면 불편한 뒷다리를 휘젓다시피 다가와서는 연신 입술을 핥아대기 시작한다. 콧구멍까지 구석구석 핥아준다. 한참 동안 애정공세를 퍼붓고 나서야 만족한 듯 헤헤거린다.심한 입냄새도 감수해야 하지만 깜순이가 연신 핥은 입술 주변은 벌겋게 부어오른다. 그러면 세면대에 찬물을 받아두고는 얼굴을 푹 담근다. 다행히 2~3분 정도 지나면 붓기는 가라앉는다.깜순이와의 일상을 들려드리자 가족들은 격하게 공감하며 문제가 해결된 양 만족해하셨다. 깜순이와의 일상을 얘기했을 뿐인데 고민이 해결되었다.반려견과의 교감은 참 신비롭다. 작은 생명이 나를 이토록 의지하는 데 감명받으며 더 잘 돌보려한다. 여러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세상 만사에도 한껏 너그러워 진다. 타스 가족들도 그 불편함을 너그럽게 감수하기로 마음 먹으신 듯하다.개가 누군가를 핥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 한다는 의미이다. 어미의 보호를 받던 유아기 때 각인된 가장 친근한 표현법이다. 핥는 행동을 자주 표현하는 개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애정 표현을 자주하는 가정의 아이일수록 자존감이 높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이유와 같다.타스 보호자에게는 이러한 애정 표현을 가족들이 행복하게 누리기 위해서 타스의 치아 건강관리가 매우 중요함을 설명드려야 했다.건강한 반려견도 평균 4-5세가 되면 치석이 생기기 시작한다. 체형이 왜소한 소형견 일수록 치아 상태는 더 빨리 악화된다. 평균 6~8세 정도가 되면 잇몸뼈가 녹아내려 치주가 노출되기 시작하며, 치석이 두텁게 형성된다. 치석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잇몸염증과 치주 손상이 심각해져 있음을 의미하며, 발치해야 하는 치아들이 있을 수 있다. 치주질환이 심할수록 치아와 잇몸 사이 염증이 심화되며, 세균 증식의 온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입냄새가 역해지고 침과 비말을 통해 호흡기와 피부에도 해를 끼친다. 혈관을 통해 흡수된 세균은 심장판막질환과 콩팥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치과질환과 잇몸병이 심한 개를 대하는 가족들의 건강에도 위해를 끼친다. 반려견의 치석 예방을 위한 양치질은 개의 생명 연장과 가족들의 위생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강조드리고 싶다. 시중에 유통되는 개껌이나 기능성 치약들은 대부분 효능이 미약하다. 치아와 잇몸 사이의 치태(플러그)를 제거하는 것이 치석 방지의 대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먹어버리는 기호성 높은 개껌과 애견용 치약은 그 효능을 의심해야 한다.가장 쉽고 효과적인 양치 방법은 치아의 바깥 면을 하루 1회 이상 닦아주는 방법이다. 치아와 잇몸 사이에 끼어 있는 치태(플러그)를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다.손가락 끝에 가아제나 화장솜을 작게 뭉쳐 부드럽게 치아와 잇몸사이를 좌우로 문질러 주면된다. 입을 벌릴 필요가 없다. 치아의 내측 면은 풍부한 침과 혀의 왕성한 움직임 덕에 치태가 자연스레 청소되는 편이다. 어금니- 송곳니- 앞니 순으로 서서히 적응시켜 나간다.익숙하지 않은 개에게 강압적으로 양치를 시도하려다 보면 개가 거부할 수있다. 좋아하는 통조림 기름이나 달달한 올리고당을 거즈에 묻혀 잇몸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시늉을 먼저 시도한다. 개의 입장에서 기분좋은 지방취나 달달한 맛이 느껴지면 거부감이 줄어든다. 양치 후 칭찬과 보상을 집중해 줄 필요가 있다.이미 치아 표면에 누렇게 침착된 치석이 닦여지지 않고 남아있다면 동물병원에 가서 스케일링과 폴리싱을 받은 후 양치질을 시작하여야 한다.치아 주변에 두터운 치석이 형성되어 있다면 이미 치아 상태는 매우 나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동물병원에서는 X-ray검사 등을 통해 치주골의 융해 정도와 잇몸의 상태를 고려하여 치과 치료를 결정하고 가정에서의 관리방법을 상담드릴 것이다.반려견 양치질은 유치가 자라는 생후 3개월 부터 습관들이기가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꼼꼼하게 치태를 닦아낼 필요 없이 가벼운 놀이 하듯 양치 습관을 익혀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치아를 관찰하며 유치잔존이나 부정교합을 체크하는 의미가 더 크다.반려견의 양치질은 수명을 늘리고 가족의 건강을 고려한 반려인의 펫티켓으로 이해하자⦁ 양치는 어릴때 부터 습관들인다.⦁ 양치는 칭찬과 보상이 곁들여져야한다⦁ 양치는 치아의 바깥 면의 치태(플러그)를 닦아낸다.⦁ 이미 치석이 형성되어 있다면 스케일링을 받아야 한다.

2020-08-18 12:21:41

[매일춘추 ]독일인들의 역사 다루는 방식

[매일춘추 ]독일인들의 역사 다루는 방식

지난 5일자 칼럼 '국가균형발전-독일의 경우'가 나간 뒤 몇몇 지인들이 큰 관심을 표명하였다. 어디 그들뿐일까? 문제는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이다. 일개 백면서생이 아무리 외쳐본들, 지금처럼 서울중심주의 사고가 횡행하는 한 대한민국의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백년하청이다. 교육만 백년지대계가 아니지 않은가?독일 가면 무심코 아무 도시나 마을을 들러보라. 어디서나 잘 가꿔진 자연환경 속에서 높은 수준의 생활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필자는 방문교수로 남서부 칼스루에에 1년간 체재했었다. 인구 27만에 불과하지만, 국가기관인 헌법재판소, 각급 대학(독일 대학은 국립이며 학비가 무료이다. 독일은 국가가 교육을 책임진다는 철학이 확고하다)과 교육과학문화시설이 즐비한 도시다. 마침 집 근처에 웅장한 성과 '기가 막히게' 잘 가꾸어진 숲이 있어 모처럼 전원생활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필자는 지금껏 교육·연구차 독일 여러 지방을 방문하였는데, 매번 이상적인 균형발전상에 감탄하곤 했다. 남동부 도나우 강변의 '발할라' 기념관도 그중 하나다. 2018년 연구년을 맞아 뮌헨대학에 적을 둔 필자는 드디어 이 기념관을 탐방하였다. 아우토반을 타고 도착한 이 거대한 건축물은 육중한 배흘림 기둥들이 열주를 이룬, 파르테논신전 풍의 석조전이었다. 문화의 다원성과 다양성 면에서 로마보다 그리스를 높이 쳤던 독일 건축양식이었다.1842년 바이에른 왕국 루드비히 1세 –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동화왕' 루드비히 II세의 조부 – 의 명으로 건립된 이 기념관에 어떤 인물을 넣을 것이냐의 논의과정에 독일인들의 역사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개관과 함께 괴테, 베토벤, 비스마르크 등 독일사의 대표적 인물 160명의 흰 대리석 흉상이 전시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완성자 루터는 1848년에, 마르크스가 '괴테 이후 최고의 독일 작가'로 꼽았던 시인 하이네는 2010년에 와서야 발할라에 초대받는 영광을 누린다. 필자는 특히 이 두 사람의 흉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또 하이네의 상에 길게 틈이 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독일인들은 왜 이 두 사람에게 그리 인색했을까.과연 하이네의 흉상은 오른쪽 광대뼈 부분에서 가슴 중앙까지 길쭉하게 틈이 나 있었다. 틈이 벌어진 이 흉상에 독일인들의 착잡한 심경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루터의 혁명적 종교관과 하이네의 진보적 문학관에 반감을 가진 보수 성향의 독일인은 적지 않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흉상에 틈을 내는 방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지언정, 파묘하듯 아예 흉상을 치워버리자고 선동하는 언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발할라 안치 여부는 바이에른 주 정부의 결정사항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 문제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 하이네 흉상 앞에 선 필자의 심경도 덩달아 착잡해졌다. 도나우 강의 잔물결 소리가 들려오는 화창한 봄날 오후였다.

2020-08-18 11:19:45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영국인이 부끄럼 많다고요?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영국인이 부끄럼 많다고요?

영국인이 부끄럼 많다고요? 영국인들이 "We are shy."라고 할 때마다 터무니없어했다. "아니, 키 크고 덩치 큰 서양인이 부끄럼을 탄다고?"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서양인에게 동양인은 정말로 어려 보이듯, 서양인은 모두 활달하고 사교적이라고 짐작한 거다. 5년을 산 미국에서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 하던데, 매일 딸의 등굣길에서 만나는 영국 여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늘 자기들끼리 인사하고,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얘기를 나눴다.영국인은 친절하지만 비사교적이고, 예의바르지만 쌀쌀맞고, 유머러스하지만 과묵하다. 수줍어서 낯선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못한다. 내성적이어서 차갑고 무뚝뚝하게 비치고, 소극적이라서 표현이 애매모호하고 단호하지 않다. 그러기에 새로운 사람과 인사할 때는 '소개시켜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대화할 때는 '차 한 잔'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에 산 지 반년쯤 지나서야 딸은 친구가 생겼고, 나는 딸 친구의 엄마와 차 한 잔을 나눈 후에야 겨우 안면을 텄다.그들은 만나면 언제나 날씨 얘기부터 한다. 마주하는 것이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하기 어렵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난감해서다. 영국 날씨는 변화무쌍하게 수시로 변해서 공통 화제로 적합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모두 날씨 얘기를 꺼내는 게 흥미롭다. 그들은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걷기를 좋아해 휴일에도 걷고 휴가를 가서도 걷는다. 아무 것도 없는 시골길을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간다. 집에서 정원을 가꾸는 일은 온 국민이 즐기는 취미다. 영국인은 이렇게 말없이 조용조용 산다.버스에서 외국인이 오랫동안 큰소리로 통화를 했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으므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불편해하면서도 그저 눈을 내리깔고 무시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기만 한다. 늦은 저녁, 버스 안에서 취객이 하모니카를 부는데,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무언의 동의를 주고받을 뿐 아무도 말을 안 한다. 대책은 승객을 대신해 운전기사가 정중하게 부탁하는 거다. 딸의 어릴 적 친구가 얼마 전 클럽에서 싸움을 했다는데, 상대방의 눈을 오래 쳐다본 것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눈 마주치는데 익숙하지 않으므로, 술 취한 젊은이들은 "뭘 쳐다보는데?" 하다가 자주 싸움을 한다고 하니.영국 집은 바깥보다 안이 더 예쁘고, 앞마당보다 뒷마당이 더 크고 좋다. 그들은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고, 집에서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며 사적인 면을 공유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상당히 열려 있고 친근하며, 놀랄 정도로 따뜻하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집안과 뒷마당처럼, 영국인의 이런 모습은 뒤에 가려져 있어 영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보기 어렵다.영국인은 곤란한 이야기는 에둘러서 말하고, 불평은 아예 말하지 않는다. 종종 손으로 쓴 카드로 표현하고, 자주 꽃으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친구가 되기는 어렵지만, 한번 친구가 되면 평생 친구가 된다.이제 우리는 친구를 집으로 부르지도 친구 집에 가지도 않는다. 손 편지와 축하 카드는 사라진지 오래다. 만남은 모두 카페에서 갖고, 모임은 전부 식당에서 해결한다. 죄다 마음 통하는 친구 하나 없다고 하는데, 그들에겐 우리가 이상하지 않을까?문화칼럼니스트

2020-08-17 15:10:43

[박원재의 삶 갈피]기우제와 꼰대 문화

[박원재의 삶 갈피]기우제와 꼰대 문화

기우제 예보와 꼰대 문화 장마가 '끝났다.' 이 말이 올해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경우도 없었던 듯하다. 올해 장마는 기간도 길었지만 전국에 걸쳐 기습적인 집중호우가 많아 더 큰 피해를 안겼다. 예나지금이나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을 당하면 원인을 분석하며 속죄양을 찾는 게 사람들의 심리이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자원공사를 필두로 지역의 저수지와 하수시설 그리고 산지개발 허가권을 쥔 지자체 공무원들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기상청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국지성 집중호우의 빈발로 예보가 많이 빗나가 심지어는 '기우제 예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서 비가 오면 기우제의 효험 때문이라고 믿었다는 인디언의 풍습을 빗댄 풍자다. '기상 망명족'이라는 신조어도 회자된다. 기상청 예보를 못 믿다보니 해외 기상청 예보에서 우리 날씨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예보'는 말 그대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의 내용을 미리 알리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것은 필연적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한다. 그럼 그 예측은 어디에 근거할까? 그때그때 기분에 따른 마구잡이 짐작에 근거할까? 당연히 아니다. 예보의 근간이 되는 예측은 이미 일어난 유사한 사례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모종의 규칙성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모든 예보에는 하나의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지금까지와 같은 조건이라면 앞으로 일어날 일도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가정이다.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언제나 지금까지와 같은 조건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내일 아침에도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리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확신은 어디에서 올까? 유감스럽게도 이 확신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지구는 서에서 동으로 자전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이다. 우리가 그렇게 신뢰해마지 않는 과학적 지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과학은 자연이 지금까지 운동변화해 온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운동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지식의 체계이다. 이것이 과학적 지식의 본성이다. "물은 100℃에서 끓는다."가 참인 것은 1기압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바로 그 경우에서만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상황이 등장하여 기존의 지식이 들어맞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새로운 조건까지 수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수정된다. "물은 용기의 내부와 외부의 기압이 같아질 때 끓는다."라는 식으로.지구상의 생명처럼, 과학적 지식 또한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면 그것을 반영함으로써 꾸준히 진화한다. 과학자 공동체의 민주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에 반하는 주장들이 자유롭게 제기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과학적 지식이 자신은 언제어디서나 타당한 진리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다. 근래 일상화된 용어를 빌린다면 그것은 '꼰대' 문화일 뿐이다. '꼰대'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틀릴 수 있는 경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반 조건들이 다름에도, 그것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절대화하여 젊은 세대들도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 자신이 적용되는 범위와 한계를 분명히 하지 않는 주장은 독단이다. 세상에 그런 지식이나 경험은 없다. 과학조차도 그렇다.그러니 '기우제 예보'라는 비아냥에 기상청이 풀 죽을 일이 아니다. 기상예보도 기본적으로 과학적 행위이다. '기상이변'이라는 표현이 잘 말해주듯이, 근래 예보가 자주 틀리는 것은 기후재난으로 기존의 규칙성을 벗어나는 예외적인 상황이 자꾸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상청의 그간의 실력을 미루어볼 때, 기존의 데이터에만 의지하는 꼰대 문화에 안주하지 않고 작금의 예외적 조건들을 신속하게 분석하여 새로운 규칙성을 도출해냄으로써 조만간 예보 적중률을 다시 높여나갈 것이라 믿는다. 건투를 빈다.

2020-08-17 14: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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