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예술가는 동냥아치가 아니다  

예술에 '국민의 혈세'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도 많을 테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쌀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그들만의 행위에 왜 세금을 낭비한단 말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로또 등의 복권, 토토, 경마, 경륜, 경정, 강원 카지노 같은 국가공인 '도박', 술 담배 등에서 뜯어낸 나랏돈 중의 일부를 예술에 쓰는 것을 너그럽게 보아주신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한 건전한 정신, 정서, 인식의 함양 또한 나라를 나라답게 한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일 테다.옛날에 자식이 '예술'을 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화를 내셨다. "굶어 죽으려고 환장했니?" 예술가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직업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직업도 아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대중이 알고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버는 예술가도 1%는 된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으며 나름대로 권위와 권력을 누리는 예술가도 5%는 된다. 예술가의 50%는 취미생활로 즐긴다.하지만 예술가의 40% 정도는 '직업예술가'로서 살기가 녹록지 않다. 잠잘 데 있고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만사 편안한 세상이 아니다. 예술가 또한, 없으면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야 할 때가 많다. 직업예술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수입을 보면, 사실 그 본예술 행위로 버는 돈보다, 강의와 심사와 관련 알바 등의 부수입이 훨씬 많다. 이 생계형 예술가들이 바로 국가보조금 타 먹는 예술가들이다.'창작지원금' 형태로 나오는 국가보조금은 돈도 돈이지만, 상당한 자족감을 준다. 내가 대중이 자기 돈을 직접 들여 소비해주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창작지원금을 탈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생산하는 진짜 예술가라고!공연예술 작품은 국가보조금을 받아야만 제작 자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3천만원 정도 지원받았을 때, 수십여 명이 한두 달 이상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인건비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보조금 선정 사업이기 때문에, 일단 제작에 들어갈 수가 있고, 후원도 받을 수 있고, 대중의 참여를 얻어낼 수 있다.국가보조금은 예술가에게 계륵이거나 필요악이다. 받고 싶지 않지만 받지 않으면 예술이 불가능하다. 받고 싶다고 쉬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토록 예술가로 살기 어렵다는데 왜 그렇게 예술가는 많은지 나름 경쟁이 치열하다. 국가보조금 받겠다고 경쟁하는 것부터가 왠지 서글프다. 국가보조금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부끄러워 하는 이들도 있다.'e나라도움은 보조 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보조금의 중복부정수급을 방지하며, 보조금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보조금 관련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하여 구축되었다'고 한다. 말은 번드르르 좋은데 실시 3년째, e나라도움 시스템은 악명이 드높다. 공무원은 '써 보니 참 편리한 것'일 수 있겠다. 그런데 예술가들에게는 고난도 수학문제나 다름없다.일단 지원할 때부터 쉽지 않다. 하다 하다 안 돼서, 지원 자체를 포기하는 예술가들이 수두룩하다. 지원대상자로 선정되면 배 부른 소리 같지만 더욱 난관이다. '예산 편성교부집행정산 등 보조금 처리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 정보화하여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데, 이 '자동화, 정보화'가 예술가에는 산 넘어 산, '넘사벽'이다. 기획재정부와 재단의 담당 공무원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하여 정말 큰 도움 받아서 겨우 해낸 이가 대부분이다. 예술가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감내해야만 마침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기재부는 '지원하되 간섭을 넘어 통제'하려는 것일까? 예술가가 그 예술에 충실해야지 보조금 타 내는 지엽적인 과정에 정열을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꼭 필요하다면, 예술가도 좀 쉽게 할 수 있도록, 간소화간략화되기를 촉구한다. 일단 '도움'부터 다른 말로 바꿨으면 좋겠다. 예술가를 무슨 동냥아치 취급하는 말 같다. 예술가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이들이지 거지가 아니다.

2019-04-25 15:44:30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매일춘추]청문회 유감

인사청문회의 사전적 정의는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고위 공직에 지명된 사람이 자신이 맡을 공직을 수행해 나가는 데 적합한 업무 능력과 인성적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검증받게 하는 제도다.한 때 2명의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 문제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의 후보는 대법관 퇴임 후 받은 수임료 수입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아 평소의 그답지 않게 전관예우 특혜로 부를 축적했다는 이유로, 또 한 사람은 쓴 글이 친일 망국적인 역사관을 토로하고 있다는 이유로 언론이 앞장서 파헤치자 야당은 후보직에서 물러나라 하고, 민심이 등을 돌리자 여당도 비호할 수만은 없어 결국 둘 다 낙마하게 되었다.선진국에서도 총리든 장관이든 검찰총장이든 청문회에 앞서 구설수에 오르게 되어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는 구설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치부를 드러내고 만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논문 베끼기, 역사관, 전관예우, 병역문제, 탈세, 부동산 투기, 위증, 음주운전, 전과 등등 파헤치면 비리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런 자들을 고위 공직자로 천거하는 나라꼴이 말이 아니지만 정말 이런 자들밖에 인재가 없을까? 그렇다면 나라꼴이 더욱 서글프다.차라리 나라에서 고위 공직자를 '공개모집'하면 어떨까? 스스로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자들만 응모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아예 생각을 품지도 못하게 공모제를 한번 해보자. 하자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응모하면 서류 탈락시키고 언론에 공개해서 욕을 보게 하면 제대로 품격 있는 분이 고위 공직자가 될 것이므로 청문회 따위 안 해도 될 것이다.인재가 서울 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니 공모를 하게 하면 전국적으로 지원자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널리 인재를 쓴다는 의미도 부각될 것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을 뽑아 놓고 출신지 안배 운운할 게 아니라 실재로 지역에 살고 있는 유능한 인재를 뽑아 써야 할 것이다. 정부의 인사를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만 뽑아 올리지 말고 제주도를 포함해서 전국적으로 살펴봐서 어떤 곳에서라도 머리와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사람을 바탕으로 하되,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을 뽑아서 쓰면 언론이 오히려 칭찬하지 않겠는가.이참에 혁신 도시를 만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고 인사가 만사라 했으니 인사의 혁신을 도모해볼 일이다. 대한민국에 서울만 있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은 서울보다 훨씬 넓다. 손상호(경북대 교수·시인)

2019-04-25 11:20:31

신용카드로 광고판을 긁으면 마치 빵 조각을 자르는 듯한 인터렉티브 광고. 사진: 유튜브 캡처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광고는 어떻게 변화할까?

9시 뉴스 앞에 나와야 광고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예인은 광고의 필수였다. 9시 뉴스 앞에 연예인이 제품을 들고 웃는 것이 그 시대의 광고였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더 이상 뉴스 앞에 광고할 필요가 없어졌다. 네이버, 다음에 가면 광고가 넘쳐났다. 포털사이트는 광고비로 엄청난 매출을 이어갔다.2009년 스마트폰 출시와 함께 광고는 또 달라졌다. 더 이상 PC 화면에 나오는 광고에 목맬 필요가 없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SNS의 등장으로 광고 제작을 위해 굳이 광고회사에 의뢰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졌다. 광고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의 음식 사진과 글 한 줄이 광고가 되어 버렸다. 본의 아니게 전 국민이 광고인이 되었다.광고의 태생부터 2010년까지 우리는 보는 광고에 익숙했다. 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광고는 또다시 변화하시 시작했다. 우리 뇌는 더 이상 시각 자극만으로 메시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시각적 충격을 넘어 광고를 경험했을 때 비로소 메시지가 뇌에 달라붙었다. 사람들이 똑똑해질수록 광고인은 더 똑똑해져야 했다. 그렇게 광고는 사람을 따라 변했다.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해 광고를 경험하게 하는 '인터렉티브 광고(interactive advertising)'가 탄생한 것이다.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광고는 어떻게 변화할까? 4차 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역시 '인공지능'이다. 그렇다. 앞으로 광고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기술'이다. 광고와 기술이 만나 당신에게 파고들 것이다. 더 나아가 광고는 이미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맞춤형 광고로 당신을 유혹할 것이다.2002년에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를 보면 미래 광고에 대해 잠시 맛볼 수 있다. 톰 크루즈가 광고판 앞을 지나가면 그의 동체를 인식해 그의 상황을 파악한다. 모든 사람의 정보는 ID화되고 그것으로 성별, 나이, 경제 상황 등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필요한 상품을 추천한다. 만약 금요일 밤 퇴근 시간이라면, 또 당신이 매주 금요일 밤 치킨을 시킨다는 데이터가 있다면 광고판은 그에 맞는 카피로 유혹할 것이다. "김종섭 씨, 오늘 불금인데 치킨에 생맥주 한잔 어때요? 당신이 좋아하는 간장치킨 집이 100m 앞에 있습니다"라고 유혹할 것이다.독일의 공익단체인 미제레오르(MISEREOR)는 'the social swipe'라는 캠페인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디지털 광고판에는 빵이 놓여 있고 그 중간에는 신용카드를 긁을 수 있게 제작했다. 기부자가 신용카드를 긁으면 2유로(약 3,000원)가 기부되면서 빵이 잘린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잘라진 빵을 가져간다. 기부하면 빈민국의 아이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표현했다. 즉, 기부하는 즉시 자신의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 캠페인은 재미있는 경험과 좋은 일을 하는 공익성을 동시에 잡았다. 기술을 입힌 '인터렉티브 광고'의 효과는 대단했다. 공항에 설치된 한 달 동안 기부된 금액만 3,000유로였다. 전년 대비 3개월 이상 정기 기부자들의 비율이 23%나 증가했다. 기부한 후에는 카드 청구서로 지속적인 후원을 권하고, 기부금의 사용처를 알려주었다. 새로운 기법의 마케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광고는 더 이상 광고가 아니다.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삶 자체가 광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광고로 소비자들과 소통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광고를 만들지 마라. 대신 우리 삶 속에 녹여진 이야기를 말하라. 광고인지 몰랐지만 광고였던 것. 광고의 냄새는 아주 약하도록 만들고 우리 삶의 향기를 강하게 풍기도록 하라. 그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은 광고가 될 것이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4-25 10:21:39

조무호 전 대구중부경찰서장

[기고]성웅 이순신 리더십

4월 28일 전 국민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성웅 이순신 탄생 474주년 기념일이다. 왜 또다시 이순신인가. 장군은 모든 공직자의 사표이자, 과거·현재·먼 미래, 즉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리더십의 표상이기 때문이다.우리 사회는 단기간 압축 성장에 따른 폐해와 인성교육 소홀로 인한 극단적인 이기주의, 금권 만능주의, 부정부패, 양극화로 인한 사회 갈등 등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어떻게 이순신 장군은 23전 전승을 했고 가장 존경받는지, 그 근원을 오랜 기간 몰입해 탐구해 보았다. 장군에게는 21세기, 먼 미래에도 통용되는 리더십인 고매하고 훌륭한 인성, 역사·철학·시에 대한 깊은 소양을 가진 인문학적 식견, 사즉생의 자세로 임하는 지극정성의 진정성, 군사적인 탁월한 핵심 역량과 당시 세계 최신 무기인 거북선을 창제한 혁신과 최고의 창의성을 들 수 있다.필자가 특강이나 대중 강연을 하다 보면 극소수의 사람은 이순신, 세종대왕은 옛날 사람이고 고리타분하다는 오해를 하는 이들도 있다.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이고 거북선은 당시에 세계 최신의 수군 병기였다. 우리는 성군·성웅에게서 애민정신, 최고의 창의성, 애국구국의 정신을 배운다.장군의 말·글·행동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관계를 넘어 내면적 가치 즉 정신을 깊이 이해하려면 사서삼경·역사·손자병법·오자병법 등의 원전과 난중일기 문집을 독해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한자 초서 등을 오랜 기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동양 고전을 통해 장군의 정신을 알아보면 이순신의 이름은 서경원전 순전에서, 자 여해는 서경원전 대우모에서 인용했다.채근담에서 '대인춘풍, 지기추상'처럼 전쟁 피란민·부하·가족은 사랑했지만 왜적과 자기 자신에게는 추상같았다. 중용에서 '성즉명, 불성무물' 즉 전투 때나 매사에 지극정성을 다하였고, 주역 중천건 괘에 '자강불식'처럼 자력으로 군량과 군수품을 조달했으며, 각종 병기 창제와 훈련으로 강력한 수군을 만들었다.이순신의 자강정신으로 미일중소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측면에서 신라 삼국통일, 임진왜란, 한일병합, 6·25전쟁을 상고해보면 국제 관계는 냉혹했다. 당사국의 국력·국익에 따라 좌우되어 왔다. 우리는 현재는 물론 먼 미래에도 명심해야 할 정신이다. 명량해전에서 '생즉필사 사즉필생'은 오자병법 치병 편에서 인용했다. 그런가 하면 전투에서 큰 승리를 하고도 장군은 난중일기에 '차실천행'이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겸손의 극치다.정의선 현대자동차 대표가 이순신 마니아이고, 우리나라 초일류 기업 CEO들이 전 임직원과 함께 장군의 정신을 거울삼아 경제 전쟁시대를 잘 극복하고 있으며, 유명한 경제경영학자가 장군에 대해 연구하는 분이 많은 이유는 핵심 역량을 갖고 전승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위기 대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은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 사리사욕, 진영논리, 당리당략을 자제하고 국민과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는 선공후사 등 이순신 정신을 본받아야 겠다.

2019-04-25 10:20:36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매일춘추]제비전 그리고 도전

최근 필자는 대구연극협회의 국제공연교류콘텐츠 연극 '제비전' 연습에 한창이다. '제비전' 은 판소리의 다섯 가지 이야기 중 '흥보가'를 각색한 작품으로 연극의 바탕에 국악의 소리와 장단을 접목, 무대의 형태도 소리판 혹은 마당놀이 판과 같이 꾸며 한국적인 색채가 가득한 작품으로 탄생 중이다.석 달쯤 전, 연출가와 만나 출연제의를 받았던 때가 떠오른다. 아기를 낳고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나를 선택해준 연출님께 감사한 마음과 함께 잘 할 수 있을까.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보다 전통 판소리 '흥보가'를 활용한 컨텐츠라는 점이 무척 반가웠고 소리꾼과 고수가 펼지는 판소리 무대, 소리꾼들이 극을 펼치는 창극과는 또 다른 연극 연출과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작업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설레고 기대되어 고민 끝에 섭외에 응하게 되었다.연습을 거듭하며 보고 느끼며 배운 점이 참 많았다. 움직이고 연구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조율하고 반복하고 맞추고. 끊임없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꺼내어 다양한 목소리와 어투로 종횡무진 '제비전'을 채우는 배우 한분 한분의 모습 덕분에 웃기도 참 많이 웃었고 몰입되어 넋을 놓고 구경을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연출가는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고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포용의 마인드로 중심을 잡아주었다. '책임' 이라는 무게를 버티고 어렵디 어려운 자리를 견디는 연출가의 강인함을 보며 응원과 존경의 마음이 샘솟았다. 찰떡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 안무와 동선을 짜준 안무 감독의 프로페셔널, 톡톡 튀는 음악으로 극을 끌어주시는 음악감독, 묵묵히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시는 조연출. 전문적인 모습이 멋져 보이고 배워야지, 본받아야지 싶기도 했지만 톱니바퀴가 딱 맞추어져야 돌아가는 시계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일사 분란한 모습을 보며 그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없구나. 나 역시 내 역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구나하고 가슴 깊이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도전' 이지만 작품을 함께 하는 배우로서는 역할에 대한 책임을 실감해야하고 그 무게를 마땅히 견뎌야 한다는 부분에서 '제비전'을 떠나 살아가며 만나는 나의 맡은 바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연극 속에 한국적 요소를 적절히 배치하는 작업에 연출가도, 배우의 한국적임이랄지 소리꾼의 배우스러움이랄지, 마당놀이 형식을 처음 접하는 배우들도, 연기가 쑥스러운 나도, 누구에게나 도전이었을 시간. 하지만 중심은 잡혀지고 어느덧 잘 다듬어져 이제 무대에 올리는 일만 앞두고 있다. 함께 고생한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고 그 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후회 없는 무대를 기대해 본다.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2019-04-25 10:19:58

소헌 김만호의 글씨 '일통'

[김영동의 시대와 미술]소헌 김만호 선생의 글씨

어려서 우리는 모두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 반듯한 글씨가 알아보기 좋고 바른 몸가짐도 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요즘 글쓰기는 자판을 치는 행위로 대신해 메모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손으로 쓴 편지가 화제가 될 정도이니 이런 시대라면 유구한 전통의 우리 '서예'는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서예 작품의 감상은 재료와 기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 지필묵(紙筆墨)이 가진 특유의 물성과 서법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세대들이 운필(붓의 움직임)의 묘나 글자 자획의 구성에서 비롯되는 조화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서예 작품의 훌륭한 감상자가 되는 길은 바로 직접 써보는 공부를 하는 것인데 시대 상황이 너무 급속히 바뀌고 있다.마침 수성아트피아에서 소헌 김만호선생을 조명하는 전시를 열어 현대 서예계에서 드물게 일가를 이룬 대가의 작품을 직접 만날 기회를 마련했다. 선생은 1960년대 국전을 통해 동시대 서도인으로서 해서의 명가로 불렸다. 가장 바르면서 거기에 멋과 아름다움이 깃든 고상한 글씨체로 많은 이들을 감동케 했는데 선생의 서체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구체적인 생활언어로 표현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특히 힘차게 우렁우렁 굵은 획으로 써나간 큼지막한 글자 앞에서 느끼는 웅혼함, 넘실거리듯 이어지는 행서에서 우아하고 고상한 기운 등을 느낀다.바른 마음에서 바른 글씨가 된다는 철학으로 서도에 정진한 선생의 가르침은 서예에서 격조를 강조할 때 결코 기예에 의한 조형미만은 아니며 당연히 인격과 높은 정신세계를 의미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서예는 문자를 바탕으로 하므로 글 뜻의 해석 폭도 넓고 글제로 선택한 시문의 내용에까지 이르면 자연 심오함으로 확장된다.소헌선생은 1908년 경북 의성에서 나시고 상주에서 자란 분이다. 이미 소년기에 글씨의 신동으로 유명했고 성년이 되어서는 명사로 각지를 순례했다. 생계에 책임을 떠안고 서도에 집중하려고 한의학을 함께 공부해 인술을 펴는 한의사를 겸업했다. 6.25가 나자 대구로 와서 상주한의원을 개원한 뒤 서예를 연구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자택 2층에 봉강서실을 열고 평생 무료지도를 했다. 서예를 대중화하고 심화 보급하는 데 힘쓴 덕택에 선생의 서숙은 오늘날 서예의 명가로서 뛰어난 서가들의 산실로 발전했다. 근대이래 드물게 독자적인 서체로 일가를 이룬 선생은 대구의 지역 서단은 물론 한국 현대 서예계에 큰 위업을 남긴 대가로 한국 현대 서예계의 가장 대표적인 한 분으로 평가받는다.미술평론가

2019-04-25 10:14:59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술에 흠뻑 취해[취후(醉後)] 정지상

붉은 복사꽃은 지고 새는 뭐라 재잘대고 桃花紅雨鳥喃喃(도화홍우조남남)집 두른 푸른 산엔 간간이 푸른 이내 繞屋靑山間翠嵐(요옥청산간취람)비뚤어진 오사모를 비뚠 대로 그냥 두고 一頂烏紗慵不整(일정오사용부정)꽃 언덕에 취해 자며 저 강남을 꿈꾼다오 醉眠花塢夢江南(취면화오몽강남) 다 알다시피 정지상(鄭知常:?-1135)은 묘청과 함께 서경천도 운동을 주도하다가, 김부식에 의해 처형을 당했던 시인이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정지상의 시들은 피비린내 나는 그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작품 속에 설정된 공간부터가 세속 현실과는 멀리 떨어진 탈속적 공간인 경우가 많다. 홍진세계와는 전혀 다른 순수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 순간 그림이 펼쳐지기 일쑤인데, 이 작품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환한 봄날, 푸른 산 한 가운데 조그만 초가집이 한 채 서 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산에서는 간간이 푸른 이내가 일어나고 있다. 바로 그 푸른색을 배경으로 하여 붉은 복사꽃이 꽃비가 되어 펄펄 떨어진다. 신바람이 난 새떼들도 무어라, 무어라고 지저귀고 있다. 시선을 좀 더 가까이로 돌리면, 떨어지는 복사꽃 아래 지금 한 사내가 낮술에 벌겋게 취한 채로 누워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곤다. 비뚤어진 오사모(烏紗帽)를 비뚠 대로 그냥 내버려 둔 채.오사모는 조정에 출근할 때 쓰는 모자다. 조정에 있을 때라면 근엄한 법도와 삼엄한 규범을 따라야 할 터. 오사모가 비뚤어져 있다면 그 것 자체가 바로 불경(不敬)에 해당된다. 하지만 여기는 조정이 아니라 꽃 지고 새우는 자연이므로, 화자는 비뚤어진 오사모를 비뚠 대로 그냥 내버려 둔다. 지금은 법도와 규범의 뻣뻣한 구속에서 완전 해방된 상태이니까. 아마도 조정에서 퇴근을 하다가 아름다운 봄날의 정경에 취해 거나하게 한잔 들이켰나 보다. 벌렁 드러누워 강남땅을 꿈꾸고 있는 그의 얼굴 위에 복사꽃이 막무가내로 떨어지고, 떨어지고...."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당나라의 시인이자 남종(南宗) 산수화(山水畵)의 창시자이기도 한 왕유(王維)의 시와 그의 그림에 대한 송(宋)나라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평(評)이다. 하지만 어찌 왕유의 시에만 그림이 있으랴. 이 작품도 역시 이왕이면 수채화로 곱게 그려서, 호연정(浩然亭 ) 대청마루에다 걸어두고 싶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화자 대신에 독자를 그려주면 더욱더 좋고.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4-25 10:12:56

김주영 소설가

[새론새평]쾌락과 미혹에 빠져 허덕이는 나라

오래전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로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연달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도시에 도착한 이튿날 우리 일행은 국립대학의 여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체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한류를 사랑하는 모임의 구성원들이었다.그들은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에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물론 이구동성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들이 너무나 절실했으므로 한국을 방문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예상 못 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피부 관리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외국의 유명 사립대학 졸업을 앞두고 유학생이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했다. 서울에 도착한 바로 그날, 여행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부랴부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자정을 넘긴 새벽 3시쯤이었다.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홍대 앞을 다녀왔다고 했다. 거긴 왜 갔느냐고 다그쳤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재미있잖아요."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에 가보면 거의 끊임없이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열린다. 공연이 있는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동남아를 비롯해 먼 나라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긴 대열을 만들며 삼삼오오 노숙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여행용 가방은 물론이고 간이 침대와 가벼운 이부자리, 몇 끼니를 때울 식품까지 갖추고 있다. 그리고 공연을 보고 나면 옆도 돌아보지 않고 귀국길에 오른다.탈북한 여성들이 출연하는 좌담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탈북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남한의 젊은 연기자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함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참말인지 웃자고 하는 흰소린지는 모르겠으나 그 여성은 남한의 인기 연예인 아무개의 실물을 보기 위해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탈북을 감행한 것이었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선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에 요즘 젊은이들은 목숨조차 걸 수 있구나 싶었다.그 눈부신 성과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류는,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란 어둠 속에서 우박처럼 쏟아진 행운이었다. 싸이나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아이돌 가수들이 획득한 대중적 성과는 세탁기에 들어간 봉제 인형처럼 방향감각을 잃고 곤두박질치던 우리 경제에 눈부신 활로를 열어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찌그러진 동냥 그릇을 손에 들고 좌왕우왕했을지도 모른다.이처럼 한류의 성과에 힘입어 우린 희망의 경이를 목격하게 되었고, 국민 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다. 이집트 인구의 95프로가 나일강가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한류가 이루어 놓은 산업적 성과에 기대어 살아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탈북 여성의 발언이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성과를 거둔 K팝 스타들이 저지른 스캔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이 크다. 그들은 심지어 공직자와 결탁해서 뇌물 혹은 탈세와 같이 노회한 범죄자들을 뺨치는 지저분한 비리를 저질렀다. 똑같이 생긴 칼이라 하더라도 어머니가 들고 있을 때와 도둑이 들고 있을 때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 연예인들이 인기에 도취되어 방만한 일탈에 젖다 보면 그때까지 거둔 성과는 바람 부는 날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사람이 시대가 낳은 미혹과 풍기를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쾌락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악령의 손짓에만 무분별하게 쫓아가다 보면, 양녕대군처럼 따 놓은 왕의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차는 치명적인 불상사를 저지르게 된다.한국인의 애환을 달래 온 국민 가수 이미자 씨가 자신의 노래 인생 60년을 회고하면서 악보대로 노래하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젊은 연예인들이 오늘날과 같이 절제력을 잃게 되면, 필경 오만해지며 나아가서는 범죄 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교훈으로 기억해야 할 말이다.

2019-04-25 01:30:00

[매일보감]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만남

4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두 의학 남녀의 운명적 만남을 소재로 다룬 TV드라마 '명불허전'이 한때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었다.'명불허전'은 조선 최고의 침술가로 불렸던 실존인물 허임(김남길 분)과 메스를 든 현대의학 신봉자 흉부외과의 최연경(김아중 분)이 조선에서 서울로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펼치는 조선왕복 메디활극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응급환자를 보고 혜민서 의원 복장으로 나타난 허임이 침을 놓으려 하자 그를 막아선 흉부외과의 최영경이 가방에서 의료도구를 꺼내 응급처치를 나선다.생애 처음 보는 의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허임의 모습 역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조선과 현대, 극과 극의 차이를 가진 허임과 최영경을 통해 한의학과 서양 의학이라는 두 의학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한의학과 서양 의학은 같은 질병을 다루지만 기본적인 철학과 이론이 달라 의료 수행에 있어서 접근 방식이 차이를 보이지만 환자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궁극적 목적은 다를 수 없다.응급환자 발생 시 서양 의학은 CT, MRI 촬영 등 정량적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하고, 다양한 수술기법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다. 이에 비해 한의학은 응급상황 대처에는 다소 부족하지만 환자의 원기를 북돋워 건강을 되찾게 한다.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오제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국립암센터 국정감사에서 "존스홉킨스대학이나 엠디앤더슨 등에서는 암 치료에 침술 등 한의학과 함께 한·양방 협진을 하고 있다"며 "또한 경희대병원 등 국내에서도 한·양방 협진이 이뤄지고 있는데, 왜 국립암센터에서는 한·양방 협진을 하지 않느냐"고 질의한 바 있다. 한의학에서도 혈액분석기나 양자의학을 응용한 측정기 등을 도입해 질병치료에 나서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한방과 양방의 협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성호 한의원 원장

2019-04-24 18:30:00

[나무와 창의성] 5월의 나무: 느릅나무

식물과 기후는 언어 탄생의 뿌리다. 따라서 기후와 식물을 알아야만 언어 탄생의 배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글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를 잘 살펴야 한다. 한글의 다양성은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은 우리나라의 기후 때문에 생긴 것이고 느릅나무, 개나리, 수수꽃다리, 잣나무 등은 우리나라에 살기 때문에 생긴 나무 이름이다. 언어는 한 민족의 자존이다. 그래서 언어의 자존은 한 민족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일제가 우리말을 말살시키려 했던 것도 언어가 민족의 자존이었기 때문이다.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느릅나무는 한자 유(楡)의 한글 이름이다. '유'는 이 나무로 배를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글자이고, '느릅'은 줄기의 껍질이 흐물흐물한 데서 생긴 이름이다. 느릅나무는 버드나무와 더불어 봄의 불씨를 상징하는 나무였다.느릅나무는 푸른색을 상징하기 때문에 봄의 불씨로 사용했다. '주례'에 따르면 중국 고대에는 계절에 따라 불씨를 바꾸었다. 계절에 따라 불씨 바꾸는 것을 개화(改火)라 불렀다. 느릅나무는 '청명화'(淸明火)로 불렸다. 계절에 따라 불씨를 바꾼 것은 불씨를 오래 사용하면 양기가 강해서 질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불씨를 바꿔 질병을 막았던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 '태종실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회남자'에는 느릅나무가 5월의 나무로 등장한다. 회남자에는 음력 5월, 천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백성이 쪽 풀을 베어 옷감에 물들이거나 나무를 태워 재를 만드는 행위를 못하게 하고, 삼베를 햇볕에 노출하지 못하게 하고, 성문이나 관문을 닫지 않게 하고, 관문이나 시장에서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게 한다. 중죄인에게 형량을 감해주고 급식을 좋게 해주고, 홀아비와 과부를 보살펴 주고, 장례 치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세한 음의 기운이 잘 성장하도록 한다."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느릅나무는 가난을 구한 구황식물이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듯이 느릅나무는 고구려의 장군 온달이 노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한 귀중한 나무였다. 평강공주는 온달이 느릅나무를 구해 노모를 봉양하던 시절에 만났다. 나의 어머니도 고향 뒷산 마음산 자락에 살고 있는 느릅나무 껍질로 가난을 이겨냈다. 어머니는 느릅나무를 '누룩나무'라 불렀다.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느릅나무를 전나무, 잣나무, 흰느릅나무, 단풍나무, 비자나무와 더불어 아름다운 나무라는 이유로 벌채를 금하고 세금 부과의 대상으로 삼았다. 느릅나무가 3년 정도 자라면 서까래를, 10년 정도 자라면 각종 농기구를, 15년 정도 자라면 수레바퀴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느릅나무는 중국 북위의 가사협이 쓴 '제민요술'에서 "한 번 수고하면 영원히 편안하다"라고 할 만큼 소중한 나무였다.중국의 경우 느릅나무는 화폐의 특성을 표현하는데 기여한 나무였다. 한나라에서 만든 '유협전'(楡莢錢)은 동전의 무게가 느릅나무의 열매인 유협만큼 가벼워서 붙인 이름이다. 한나라에서 사용한 유협전은 앞 왕조인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화폐통일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용한 반량전(半兩錢)에 비해 아주 가벼웠다. 유협은 바람에 쉽게 날려갈 수 있을 만큼 아주 가볍다. 느릅나무는 중국 한족이 유목민족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긴요한 나무였다. 중국의 '천하제일관'으로 불리는 산해관은 보루를 느릅나무로 만들어서 '유관'(楡館)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늦봄에 느릅나무에 꽃이 필 때 내리는 비를 '유협우'(楡莢雨), 느릅나무에 꽃이 필 때 치른 과거시험을 '유책'(楡策)이라 불렀다.우리나라 농촌 어디서나 느릅나무를 만날 수 있다. 느릅나뭇과에는 당느릅나무, 참느릅나무가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의 참느릅나무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 만큼 귀한 나무다.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2019-04-24 18:00:00

최유정 작 '남과 여 그리고 사랑'

[내가 읽은 책]영혼의 친구와 나누는 대화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민음사/2018

누군가와 같은 생각, 감정을 공유할 때 우리는 가슴 벅참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친구가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과 나는 단번에 친구가 되었다. 그의 소설이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여서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특별함이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 놓인 남녀의 섬세하고도 탁월한 심리묘사. 그의 글을 그저 연애소설이 아닌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유이기도 하다.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 대사, 행동들은 남녀의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 아래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 내가 경험한 감정을 토로하는 주인공이라니! 겨우 몇 페이지 만에 성별도 나이도 모를 작가에게 나는 깊은 애정을 느꼈다. 그가 남자라면 세상에서 여자의 심리를 가장 잘 아는 남자로 그를 찬미할 것이고, 그가 여자라도 그녀와 사랑에 빠지리라. 책을 읽다 말고 흥분된 마음으로 작가 이력을 찾았다. '아 역시 여자였구나.' 하는 순간, 당시 작가 나이 스물넷. 그 나이에 인생을 다 아는 것 같은 완숙함이라니?!본명 프랑수아즈 쿠아레.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에서 태어났다. 1954년 19세에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해 프랑스 문단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 해 비평가상을 받았다.'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에 이어 1959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발표했다. 알코올과 마약, 도박 중독,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등 굴곡진 생애를 보내면서도 소설을 비롯해 자서전, 희곡,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서른아홉의 실내장식가 폴은 남자친구인 로제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가 자신을 외롭게 하고 있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다. 그런 그녀를 알면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로제는 다른 어린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수려한 외모를 가진 스물다섯의 변호사 시몽은 폴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폴은 그런 그에게 호기심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주목할 곳은 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에 복잡하고 섬세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심리다."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p.11) "오늘 밤 그녀 곁을 떠나면서 그녀가 슬퍼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중략) 그녀가 그 자신에게 막연하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무엇이라는 건 그가 그녀에게 줄 수 없는 것, 그가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줄 수 없었던 것이었다.(p.18)"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우리 삶 속의 실제 감정들과 맞닿아 있다. 아는 언니가 들려주는 경험담처럼 그녀는 소설을 통해 어떤 보편적인 남녀 심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오늘은 복잡한 감정들을 친구에게 쏟아내는 대신 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쏟아내고 싶다.최유정 책 읽는 사람들 회원

2019-04-24 13:00:38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대구 아리랑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요이자, 명실상부한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노래는 아리랑이다. 지역마다 무수히 많은 버전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랑은 강원도에서는 정선 아리랑, 호남 지역에서는 진도 아리랑 그리고 경남지역에서는 밀양 아리랑인데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아리랑은 단연코 경기 아리랑이다.전문가들의 말로는 아리랑 제목으로 전술되는 민요는 약 60여종, 3,600여 곡에 이른다고 한다. 아리랑이 그렇게나 많이 불리면서도 뜻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노래 내용이 대체로 슬프고 한스러운 데 이런 의미에서 아리랑은 '나를 버리고 다른 이에게 가버린 연인은 다리에 알 베기고(아리랑) 쓰라려서(쓰리랑) 발병이 나서 걷지도 못할 것이다'라며 원망하는 뜻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고운 임, 그리운 임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리따운의 '아리'에 옛 인칭대명사인 '랑'을 붙였다는 말과 아리다의 '아리'에 '랑'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얼이 얼려있는 노래라는 뜻의 어러리가 원형이라는 말도 있다. 설이 많다는 것은 다 뻥이라는 말이다.대구 아리랑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알더라도 대구에서도 잘 불러지지 않고 노래가 발굴 된지도 오래되지 않는 탓인지 그 가치를 별로 인정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딴 고장의 아리랑도 대구 것과 다 비슷한 형편이다.아리랑이 유명한데 비하면 노래가 생겨난 시기는 그다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강원도 아리랑은 그 중에서도 꽤 오래된 것으로 생각이 되나 그 외 것들은 다 최근 것들이다. 밀양아리랑도 빛은 본 것은 30년대이며 경기아리랑도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가 된 다음에 유명해졌다. 1936년 봉무동 출신 최계란 명창이 밀리온 레코드에서 대구 아리랑을 취입하였다. 그러나 한 동안 잊히고 있었다. 아리랑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대구아리랑이 타 지역 아리랑과 함께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 되면서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경상북도와 영천시 후원으로 전국 최초로 전국아리랑 경창대회가 시작되었고 2016년부터 대구시가 대회를 인수하여 '최계란 명창 대구전국아리랑 경창대회'로 개명하면서 거듭나게 되었다."낙동강 기나긴 줄 모르는 님아, 정나미 거둘라고 가실리요,아롱아롱 아롱아롱 아라리야,아이롱 고개로 넘어가네./낙동강 해다 진데 우리 님아 관산만리 어디라고 가실라요. 아롱아롱 아롱아롱 아라리야 아이롱 고개로 넘어가네./ 언제나 오실라요, 내 사랑아, 봄풀이 푸르거든 오실라요, 아롱아롱 아롱아롱 아라리야, 아이롱 고개로 넘어가네./공산에 우는 두견 너 무삼일로 임 그려 썩은 간장 다녹이노, 아아롱아롱 아롱아롱 아라리야 아이롱 고개로 넘어가네./관산만리 구름 속에 저 달이 숨어, 금호강 여울에 눈물지네, 아롱아롱 아롱아롱 아라리야, 아이롱 고개로 넘어가네."아리랑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때 남북한 대표 팀이 공동 입장할 때 연주가 되었고 2002년 한일 월드 컵 축구경기 때 붉은 악마가 응원가로 부르기도 했다. 2011년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도 김연아 선수가 아리랑은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배경 음악으로 쓴 적이 있다. 삼성 야구나 대구 F.C축구 시합 때 대구 아리랑을 응원가로 쓰면 좋겠다.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9-04-24 12:09:59

[종교칼럼] 생명사랑이 제일이다

직장에서 해외 근무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간 한 여고생의 경험담이다. 수업 시간에 낙태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논쟁 중에서 몇 가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혼전 임신 상태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진 경우, 강간을 당해서 임신한 경우, 태아가 기형아인 경우, 이런 이유들이 중복된 경우에 태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한국 여학생은 이 경우들이 모두 당연한 낙태의 이유라고 생각했고 그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그녀 외의 모든 학생들은 어떤 경우에도 출산을 하겠다고 했다. 이 여학생은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그녀는 친근한 교포 학생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토론에서 왕따를 당했어." 그 교포 학생은 절대 왕따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도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을 하면 반드시 출산을 하겠다고 했다. "왜 그런데?" 하는 질문에 "내가 생명을 보호해야 하니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법적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여고생이 집에 와서 부모에게 이 토론을 말하면서 "이 나라 학생들은 생각하는 것이 나와 많이 달라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것이 교육의 힘이다.최근 낙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낙태 찬성파와 반대파가 대립을 했다. 두 그룹은 같은 시간에 헌재의 정문 양쪽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낙태죄의 존재 여부와 낙태율은 상관관계가 없다. 우리는 낙태죄의 존재 여부보다는 낙태율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낙태율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반비례한다. 대한민국보다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에서는 혼외 출산이 가정 안에서의 출산보다 많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나라처럼 미혼 출산을 기피한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배울 점은 생명 사랑이다.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낙태 논쟁이 권리 주장(자기결정권, 재생산권, 건강권, 생명권), 경제 논리(양육비, 경력 단절), 죄책감 등의 단어로 표현될 때 우리 사회 영혼의 메마름이 드러난다. 헌재 앞 시위가 누구의 권리가 더 중요한가라는 차가운 법리 논쟁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사랑 경쟁이었으면 좋겠다.태아 때문에 여성이 희생당하고, 여성 때문에 태아가 희생당하는 논리가 아니면 좋겠다. 임신으로 인하여 여성이 행복해지고, 여성이 태아를 보호하는 논쟁이었으면 좋겠다. 낙태 논쟁을 책임 윤리, 생명 사랑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낙태가 생명 사랑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누구든 사랑받는 아이로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는 가정, 사람이면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 생명의 가치를 그 어떤 가치보다 높게 여기는 사회를 향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어거스틴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네가 말을 삼간다면 사랑으로 말을 삼가라. 네가 말을 한다면 사랑으로 말을 하라.… 사랑의 뿌리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라. 이 뿌리에서는 선(善)밖에 나올 수 없다"라고 했다.사랑이 없으면 수많은 논쟁과 다툼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을까? 유행가에서 그렇게 많던 사랑은 다 어디로 가 버렸나?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2019-04-24 11:51:19

이상식 더불어 민주당 수성을 지역위원장

[기고]권력 견제와 균형, 공수처와 수사권조정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 검찰은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경찰도 힘이 세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경찰이 가진 힘은 숫자가 많은 데서 나오는 규모의 경제일 뿐이다. 현행 형사법 체계에서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또 검사동일체라는 원칙에 따라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야 하며 체포와 구속 및 압수수색은 반드시 검찰을 통해야 법원의 영장을 받을 수 있다.필자가 현직에 있을 당시 경찰은 현직 세무서장의 비위를 밝히기 위해 그가 골프 접대를 받은 골프장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일곱 번이나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부장검사로 재직하는 친동생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경찰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워낙 서슬이 시퍼렇다 보니 언론도 경찰은 쥐 잡듯 하지만 검찰이라는 고양이 앞에서는 방울을 달기 주저한다.검찰은 청와대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물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처음에는 검찰도 웅크리고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정부의 실세가 비리에 연루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정의 칼을 검찰이 쥐게 되는 것이다. 법대로 한다는데 청와대인들 어쩔 것인가? 검찰은 그때부터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권력 자체가 되는 것이다.이렇듯 막강한 검찰이니 태생적으로 부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누가 우리를 건드리겠느냐는 특권의식과 우월의식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최근 전직 고위 검찰 간부의 성폭행 의혹은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또 피의자를 모욕주고 창피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강압수사가 횡행하게 된다. 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을 들자면 대기업 총수에서 전직 대통령까지 그 끝이 없을 정도이다.최근 버닝썬 사건으로 경찰비리가 불거져 나오면서 수사권 조정에 대한 동력도 약화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경찰의 비리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별별 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다. 또 아직 봉급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니 이런저런 유혹에 노출된 경찰관들 중 일부가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이 되어 경찰의 권한이 강화되더라도 경찰은 최소한 언론의 감시와 검찰의 강제수사 통제하에 있다. 현재의 검찰처럼 무소불위의 권력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못한다. 자치경찰제도 수사권 조정을 통해 강화된 경찰의 힘을 분산시킬 수 있는, 한편에서 강화된 힘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법치국가에서 최고의 권력은 사법권이다. 권력은 독점되어서는 안 되고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공수처를 설치하고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이 가진 독점적 권한을 분산시켜 검찰-경찰-공수처가 솥발처럼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이다. 청렴해진 사회는 국가경쟁력을 향상시켜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하루빨리 공수처와 수사권 조정이 현실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게 진정한 개혁이다.

2019-04-24 11:27:32

현동헌 테너

[매일춘추]마음의 거울인 예술

사람에게는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은 알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부분은 글이나 그림 혹은 노래를 통해 마음이 표현되어 보인다는 것이다.예술은 인류의 기원과 함께 시작되었다. 최초의 인류가 만든 도구나 원시의 동굴벽화가 예술적으로 승화되었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원시시대의 예술은 생계에 대한 주술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예술은 인간의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오래 전 개봉했던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남사당패(남자들로 구성된 유랑 예인집단)같은 전문연희패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미치는 영향을 우리는 익숙하게 볼 수가 있다. 극 중의 연희패는 음악을 사랑했던 연산군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우리가 알고 있는 연산군은 술과 음악에 빠져 정치를 올바르게 돌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왕이기도 했지만, 시에 매우 능했고 음악을 좋아했기에 예술단을 확충하였는데 연산에게는 예술가들이 대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505년(연산군 11년) 9월 연산군은 예조에 속한 한성부의 장악원(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을 연방원으로 개칭하고 재정비하기도 했으며, 그는 생모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흥청과 운평(관기), 무희를 곁에 두고 고운 음률과 가락, 그리고 익살과 재담을 즐겼다. 폭군일지언정 그는 기생과 재인의 재능을 아끼고 보호하며 사랑했던 그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문학과 예술가들의 후원자였던 것이다.이러한 예술은 인류에게 역사로서의 가치도 부여하지만 치료로서의 가치 역시 부여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 음악치료라는 영역이 부각되었지만 이미 음악은 수 천년 동안 치료에 사용되어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음악이 육체와 영혼을 치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음악치료가 현대적으로 구체화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전쟁의 충격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군인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음악을 치료적 목적으로 체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에 대한 사회적 필요가 대두되면서 음악치료사를 양성하는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과 기관들이 생기게 되었다.보이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기에 마음이 병들어 있다면 그것이 표현되어 나타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마음의 거울인 셈이다. 필자 또한 노래를 하는 연주자로서 선곡할 때 그 음악의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음악을 최대한 표현해 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연주를 하면서 필자의 마음도 함께 치유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마음을 표현하고 치료하는 역할을 가진 예술이 오늘날 과다한 입시경쟁구도 속, 현실의 교육에서는 아직도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은 비단 필자의 생각일 뿐일까. 현동헌 테너

2019-04-24 11:22:26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경제 칼럼]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렵게 하는 30대 장벽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다. 기업들은 한국 탈출 러시다. 2017년부터는 연간 해외투자액이 400억달러를 넘어서 지난 2년간 6천966개 기업이 944억달러, 약 100조원을 해외에 투자했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있나.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렵게 하는 30대 장벽을 정리해 보자.1. 창업 인허가가 어렵다. 수도권 규제, 환경 규제, 기득권 규제 등 수개월에서 수년이 보통이다. 중국 중관촌 같은 원스톱 서비스, 영국 같은 온라인 인허가는 꿈도 못 꾼다. 공익 기부도 당연시된다.2. 갈라파고스 규제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17년을 끌어온 제주도 영리병원이 좌초되고 원격의료는 시범 서비스만 19년째다. 서비스발전기본법은 1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암호화폐와 공유경제는 줄줄이 무산되고, 인터넷은행도 규제로 지지부진하다.3. 코넥스·코스닥시장 등 혁신자본시장 육성이 부진해 돈줄 마르는 죽음의 계곡 돌파가 쉽지 않다.4. 강성 노조 파업 파고는 태산준령이다. 불법을 제어할 공권력도 무력하다. 해직자 노조원 인정 주장도 확산되고 있다.5. 노조이사제 등 노조 기업경영 개입도 확산되는 노조 천국이다.6.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7.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면서 생산성은 낮아서 단위당 노동비용이 높다.8. 근로시간 단축은 업종 지역 구분 없고 탄력근로도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9. 정년 연장과 성과급 폐지로 연공급 부담이 크다.10. 저성과 근로자도 해고 규정이 엄격해 사실상 해고가 어렵다.11.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이 과도하게 엄격하다. 유해가스 배관검사 의무화로 1년 넘게 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12.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하도급 업체 안전사고도 원청 업체가 책임져야 한다.13. 탄소배출권은 공급이 부족해 비싸게 사야 한다.14. 법인세율은 미국보다도 높다.15. 각종 정부 행사 후원은 빼놓아서는 안 된다. 기업 후원 없으면 올림픽도 스포츠도 어려울 정도다.16. 높아지는 전기요금과 잦아지는 급전 지시로 기업이 자체 발전소를 세우는 나라다.17. 대기업 집단에 지정되면 각종 규제가 급증하므로 기업을 키우기는커녕 대기업이 안 되고 버텨야 이익이 되는 나라다.18. 순환출자는 전면 금지되어 있다.19. 일정 이상 내부거래에는 과징금이 부과돼 인수합병으로 계열회사 늘려봐야 실익이 적다. 그 결과 벤처기업의 자금 회수 시장이 발달 안 되고 있다.20. 법도 없는 통합 금융감독의 모범 규준을 지키기 위해 금융회사의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21. 적은 지분 가지고 자본조달해 경영하는 자본주의 원리가 무시되는 나라다.22. 오너 경영인보다는 전문 경영인이 강조되는 나라다.23. 전속고발권 폐지, 내부거래 규제 강화,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등 공정거래법 개정이 주장되고 있다.24.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 의무화 등 상법 개정도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25. 선진국에는 있는 차등 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어 행동주의 펀드 공격에 속수무책이다.26. 국민연금의 연금사회주의 공세도 거세다.27. 재계 총수 줄줄이 구속 수감 등 기업 경영은 사법 단죄를 각오해야 한다. 경영은 형무소 담장 외줄 타기라고도 한다.28. 줄줄이 투자계획서도 제출해야 한다.29. 중소 기업과 이익도 나누어야 한다.30. 이러고도 일생 키워온 기업은 세계 최고의 상속세로 가업 상속이 어렵다.이 정도의 장벽을 넘어 기업해서 일자리 만들어 내는 대한민국의 기업가들, 가히 애국자가 아니겠는가.

2019-04-23 15:39:10

김동훈 연극 배우

[매일춘추]오디션 준비

스스로를 향해 '자기소개'를 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소개를 이름과 나이, 학력 등 흔한 형태로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적 사실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거침없이 설명할 수 있는가?연기자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오디션 현장에서 '자기소개'는 빠지지 않는다. 특히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력과 유사한 외형을 지닌 배우들의 치열한 경쟁은 자연스레 '자기소개'에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배우들이 준비해 온 연기만으로는 그들의 실력이 쉽게 과소평가되거나 과대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소개를 통해 응시자가 지닌 배우로서의 자세와 가치관, 언어적 습관을 포착하여 오디션 합격 당락을 좌우지한다. 이는 비단 오디션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회사 면접에서도 자기소개를 통해 지원자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전달해야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진짜 나'를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을 해봐야 한다. 흔히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가?' 와 같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니체의 사유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현대 철학의 포문을 연 니체는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의 비유를 통해 인간을 조망한다. 낙타는 기존의 관념과 제도에 순응하며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인간이고, 사자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규범과 제도를 벗어나 자유의지를 가지고자 하는 인물을 말한다. 어린아이는 낙타와 사자를 넘어선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삶 자체를 놀이로 받아들이는 절대적인 자유로움을 지닌 인간을 일컫는다. 이렇듯 니체는 세 단계의 변화를 통해 인간이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과 정체성에 대해 서술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느 단계에 존재하고 있는가.오늘날 우리는 사회에 얽힌 많은 규범과 제도 속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 이로 인해 스스로를 탐구하며 고민하던 어린 날의 나를 잃어가고,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사는 껍데기의 '나'만 남아 있다. 예술가가 기존의 관습과 제도에 지나치게 얽매인다면 과연 자유로운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어떤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는가.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을 가지는 것은 결국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길이다.연기 오디션을 준비하거나 시험의 합격을 위한 면접, 단체모임 등 여러 자기소개의 기회에 니체의 사유를 되짚어보며 스스로를 향해 질문해보자. 오늘날 우리를 속박하는 많은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 어린아이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보다 자유로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훈 연극배우

2019-04-23 11:26:19

하이(6·스피츠)의 재활치료 전(좌) 모습과 재활치료 후(우) 모습.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가정에서 하는 반려동물 재활 운동

하이(6·스피츠)가 휠체어를 타고 내원했다. 하이는 3개월 전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MRI 검사 결과 1번 요추부 척수에서 발생한 출혈, 염증으로 인해 척수 신경 손상이 의심되었다. 하이는 수술 대상이 아니었으며 내과적인 약물 치료, 전침 치료, 재활 치료가 병행되었고 두 달 뒤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의학적으로 신경세포는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손상되지 않은 신경세포가 일부라도 남아있는 경우, 남은 신경세포를 활성화해 운동과 감각 기능을 대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재활치료의 기본 원리이다.내과적인 약물치료와 침 치료는 수의사에게 의존하여야 할 부분이지만 재활운동은 보호자의 역할이 크다. 하반신 마비뿐만 아니라 수술 후 재활에도 도움 될 수 있는 가정 재활 운동법을 소개한다.◆1단계: 누운 자세에서의 재활 운동이는 기립이 불가능한 동물환자의 배뇨 유도, 장운동 촉진, 근육과 인대(건)의 위축 방지, 관절의 운동성 유지가 목적이다.1. 손으로 아랫배를 마사지한다. 방광이 확장된 것이 느껴지면 천천히 압박하여 배뇨를 유도한다.2. 허리 근육(췌장근)을 마사지하여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정도까지 허리를 펴준다.3. 엉덩이, 무릎, 발목, 발가락 관절을 굽히고 펴는 굴신운동을 느리게 각 10회씩 반복한다.4. 발바닥을 받쳐주며 다리를 구부렸다 펴는 운동(페달링·pedaling)을 아주 느리게 20회씩 반복한다.◆2단계: 서 있는 자세에서의 재활 운동미끄럽지 않은 바닥에서 발바닥이 지면에 밀착된 상태에서 실시한다. 털과 발톱은 깎아주는 것이 도움 된다.1. 허리 또는 엉덩이를 받쳐주어 앞다리 힘으로 버티고 서있는 자세를 유도한다. 장애가 심한 경우 스탠딩 보조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2. 뒷다리의 보폭은 조금 넓게 벌리고 발바닥을 지면에 밀착시켜 서 있는 자세를 유도한다.3. 서 있는 자세가 익숙해졌다면 엉덩이 윗부분을 가볍게 눌러주어 스쿼트 운동을 반복한다.5. 스쿼트 운동이 익숙해졌다면 손바닥으로 발바닥 패드를 받치고 페달링(standing) 운동을 유도한다. 잘 적응한다면 두 발을 동시에 실시할 수 있다.◆3단계: 걷기(Walking) 유도걷기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걷기를 즐거워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 하는 것이 도움 되며 과체중일 경우 체중감량은 필수다.1. 서 있는 자세에서 엉덩이를 머리 방향으로 살짝 밀어주면 앞발로 체중을 버티려는 반응을 보인다. 보호자는 최소한의 도움만 주면서 동물이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유도한다.2. 걷는 과정에서 넘어짐이 반복되므로 주변에 담요를 배치해 동물이 두려움 없이 넘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도록 유도한다. 보호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간식을 제공하거나 칭찬을 통해 동물이 스스로 걷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3. 걷기가 가능하더라도 굴신 운동, 페달링 운동, 스쿼트 운동은 반복한다.◆4단계: 자발적인 놀이 운동1. 보호자와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나 산책은 재활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2. 짐볼을 이용한 균형잡기, 수영, 장애물 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난이도를 높인다. 재활치료는 동물의 건강 상태가 정확히 진단되어야 하고, 수의사에게 재활의 목적과 방법을 충분히 설명 듣고 숙지하신 후 재활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활 과정에서 통증이 발생할 경우 운동은 즉각 중단하고 수의사의 검진을 받길 바란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4-23 09:52:14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호모 노마드(Homo Nomad)

우리 인간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 많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루덴스, 호모 파베르 등 실로 다양한 정의가 있으나, 지금도 새로운 정의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일찍이 인간의 본질을 '호모 노마드'(Homo Nomad)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호모'는 인간을 나타내는 말이고, '노마드'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호모 노마드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떠도는 사람, 곧 이주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우리 지역 곳곳을 다니다 보면, 외국인 이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재 대구경북의 외국인 이주민 수가 무려 10만 명을 넘어섰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이주민들 중에서 인종차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자의 약 70%정도가 정주민들로부터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우리는 종종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한 예로, 최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가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국내 팬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1966년 3월 21일부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지정하여 계도하고 있으나, 아직도 국제 사회나 우리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철학자 테일러(Paul C. Taylor)에 의하면, 원래 인종(race) 개념은 스페인어 '라자'(raza)에서 유래하며, 백인과 다른 인종을 차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이러한 인종차별은 더욱 심화되어 피부색뿐만 아니라 소득이 낮은 동남아시아 출신자나 중국 동포(조선족) 및 러시아 동포(고려인 3세), 나아가서는 혼혈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사실 대구경북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다 이주민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직장이나 유학 혹은 여타 다양한 사유로 인해 이곳으로 이주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 지역에 오래 살았던 사람도, 처음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고향을 떠나 이 지역에서 30여 년을 살고 있는 이주민이다.이렇게 조금만 넓게 생각해 보면, 국내에서 이주하였건 외국에서 이주하였건 간에 이주민이라는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반 가정이나 다문화가정이나 관계없이, 그들은 모두 이주민이고 유목민이다. 우리 인간은 고향을 떠났다는 점에서 노마드이며,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아간다는 점에서 노마드이다.따라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이란 말도 이러한 이주민들에게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조금 일찍 이 지역에 정주했다는 사실로 그들을 차별하는 행위는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우리는 한데 어울려 사랑으로 살아가야 한다.곳곳에 꽃들이 만개하여, 온갖 향기로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축복받은 계절에, 지역 이주민들을 미소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2019-04-22 18:00:00

[이은주의 잉여현실]공감의 법칙 II

'공감'을 주제로 한 교육 중에 누군가 질문을 해왔다."남편이 어제도 12시가 넘어서 술에 취해 들어왔어요.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고, 자기도 힘들 거라 생각해요. 이해는 되는데 말하기 싫고 화가 나요. 11시 넘지 않기로 지난번에도 약속을 했었는데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어요!""지금 그 말을 하면서 기분이 어떠신가요?""가슴이 쪼그라들고 슬퍼요."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가슴으로 손이 올라갔다. 그분에게 쪼그라든 가슴과 눈물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했고, 내가 들은 말 중에 나에게 울리는 말을 반영해주었다. 그리고 '공감의 길'을 안내했다.공감은 '행위'가 아니라 '심정'에 관한 것이다. 행위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끝없는 도돌이표 위를 걷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공감한다는 것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의 행위가 아니라, 생의 고단함과 실패의 두려움, 그의 꿈과 열망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내려놓고 상대가 있는 그곳으로 가려고 하지만 가지지 않는다. 무언가 가로막혀 있다. 그건 바로 좌절된 욕구들과 얼어붙은 감정들과 관련이 있다.'나는 얼마나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고 싶고, 인생을 예찬하고, 삶을 확장하고, 성장하고 싶었던가! 그 꿈이 깨어지고 나는 또 얼마나 화나고 슬프고 외롭고 무서웠던가!' 이런 나에 대한 이해와 애도의 시간들이 있어야 나답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질문했던 분은 자신은 살아오면서 남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고, 힘들다고 말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렇게 반복되면서 버틴 힘들이 자신의 몸을 긴장과 딴딴한 갑옷으로 가둔 것이다. 긴장과 갑옷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내 속의 초라한 겁쟁이를 만나야 할 용기가.안전한 공간에서 때로 눈물 흘리고 힘겨움을 탄식하면서 뭉쳤던 감정을 풀고, 위로와 지지로 재경험한다면, 당신은 자신 속에 숨은 빛을 발견하고 타인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대한 공감은 먼저 '자기공감'이라는 통로를 거쳐야만 다다르는 곳이다.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2019-04-22 18:00:00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새 말, 새 몸짓

지난 2년여간 매일신문 지면을 통해 < 老莊的 생각>을 연재했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이란 제목으로 필을 다시 들었습니다. 최 교수는 한국의 '인문학 바람'을 이끈 대표적인 철학자로 삶과 세상을 읽는 통찰과 혜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5월7일 2회에 이어 4주에 한 번꼴로 연재되는 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바랍니다.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않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새로움 정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급속하게 더 낡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한 단계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면 지금 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하강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우리는 지금 답답한 처지에 있다. 중진국의 함정이라고도 한다. 말레이시아, 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나 칠레도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우리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말들이 있어 온지 오래다. 2013년 한국 경제를 끓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면서 한국의 침체와 하락 가능성에 경종을 울렸던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2018년에 한국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재차 경고를 했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물이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상태다. 5년 전보다 물 온도는 더 올라갔다." 나는 이 말 속에서 날카로움도 읽지만 조롱도 발견한다.이런 조롱을 받을 나라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세계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박수를 보내주던 일이 그리 오래전도 아니다. 현대사에서 '한강의 기적'을 말할 때, 독일이 이룩한 '라인강의 기적'도 함께 말하지만, '기적'이라면 '한강의 기적'만이 기적이다. 독일의 그것은 있다가 없어진 것을 회복한 것이지만, 우리는 없던 것을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적을 이룬 나라고, 기적을 이룬 국민이다. 이런 기적을 이룬 나라는 사실상 인류 현대사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식민지 시절을 보내다 독립하여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는 없다.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다. 원조 받던 국가에서 원조 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도 우리가 유일하다. 자원과 기초적인 물적 토대 없이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식민지 착취를 통해서 발전의 토대를 갖췄지만, 우리는 외부의 착취 없이 우리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니 발전의 내용 또한 다른 나라와 비교 하자면 더 도덕적이다.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이는 딱 여기까지라는 점이다. 끓는 냄비 속에 있으면서도 뜨거워지는 줄을 모르는 형국이다. 기적을 이룰 정도로 그렇게 근골을 잘 사용하고 영특하던 우리가 끓는 냄비 속에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무지 속으로 빠져버렸다. 우리는 한계에 갇혔다.우리를 한계에 가둘 정도로 몸에 밴 익숙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따라 하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종속성'이다. 해방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룬 발전과 번영은 이 '따라 하기'의 속도와 효율성이 빚어낸 결과다. 우리는 물건을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돈을 벌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것을 들여와 만들어 돈을 벌었다. 우리가 만든 제도로 우리 삶을 제어하고 북돋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제도를 들여와 우리 삶을 거기에 맞췄다. 우리가 독립적으로 한 생각으로 우리의 세계관을 삼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철학을 우리의 비전으로 하며 살았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발전과 번영의 속살이다. 이 일을 세계 유례없이 잘해냈다. 그러나 '따라 하기'로 살 수 있는 높이는 여기까지다.따라 하기에 습관이 되면 삶의 태도와 사유 구조가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종속적인 삶을 살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이익보다는 명분에 집착하고, 지적이기 보다는 감각적이고, 실재보다는 도덕에 빠지며, 본질보다는 기능에 집중한다. 명분과 도덕은 정해진 기준을 수행하는 일이므로 과거의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태도에서는 미래를 여는 도전보다는 과거를 헤집는 일에 빠진다. 당연히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믿고 있는 것만을 수행하려 들지, 그것들을 바꿔 새로움을 기약하는 혁신적 도전에 나서지 못한다. 사회가 멈추고 썩기 시작하는 이유다. 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못하면, 썩는다.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면 하강한다. 우리는 조선 말기에 이미 경험했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우리가 다급한 이유는 조선 말기 다산 선생의 이 절절한 경고가 지금 우리에게 어느 하나 어긋남 없이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가 단계의 높이에서 통치력을 행사했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이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의 통치력은 감성적 민족주의에 매몰되거나 권위주의적 시대가 남긴 탐욕과 특권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과거의 운동권 이념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에서 반대쪽 진영을 부정하려는 기능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정도 이상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이명박과 노무현 사이나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 있는 수평적 차이를 수직적 차이로 착각하지 말자. 높이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같은 높이에서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로 시작한 진영이 이젠 "이건 나라냐"라는 말을 듣는다. "이게 나라냐"라고 주장한 쪽과 "이건 나라냐"라고 주장한 쪽 사이가 얼마나 멀까? 4대강 보를 만든 쪽과 허무는 쪽 사이는 또 얼마나 멀까? 같은 높이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방송 장악은 어느 정권에서나 똑같다. 안하무인의 인사, 어용 기자들의 득세, 표현의 자유 억압, 불통, 협치 실종, 권력의 청와대 집중, 낙하산 인사, 블랙리스트 등은 어느 정권에서나 모두 나타났다. 다름이 없다. 같은 높이에 있으면서는 사실 다르기가 더 어렵다. 다름이 없는 이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아무리 다르다고 각자 주장해도 모든 진영이 실제로는 같은 높이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계를 뚫고 올라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점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즉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는 이미 할 일을 다 해버린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도달할 그 높이에 이르는 도전 이외에는 가져야 할 사명도 달리 없다. 중진국의 한계에 이른 우리는 이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전술적 차원에서의 사고를 전략적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대답에 익숙한 지적 활동성을 질문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건국 세력이 산업화 세력에 의해 도태되고,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 세력에 밀려나는 과격한 운동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가 진보했듯이 이제는 민주화 세력도 도태되어야 한다. 민주화 세력도 이미 구세력이다. 민주화 세력을 도태시킬 새로운 세력의 형성을 도모해야 한다. 당연히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해진 이유다. '따라 하기'로 갈 수 있는 최고점까지 왔으니, '따라 하기'가 아닌 방법으로만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다른 결과는 다른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다. 다른 결과를 기대하며 방법과 태도를 바꾸는 것을 혁신이라고 하지 않은가.그런데 전략적이고 선진국적인 높이로 상승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문명의 파라다임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라면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1820년 대분기 이후에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의 교체는 없었다. 이 말은 한 번 후진국은 계속 후진국에 머물기 쉽고, 한 번 선진국은 계속 선진국이기 쉽다는 말이다. 각 단계를 결정하는 높이의 시선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축복이 왔다. 바로 몇 백 년 계속되던 파라다임이 깨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의 파라다임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생긴 것이다. 후발 주자들이 자신의 단계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상승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파라다임이 깨져야 하는데 우리의 국력이 가장 강해진 지금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문제는 우리가 그 축복을 직시하고 있는가의 여부와 그 축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본질보다는 기능, 실재보다는 도덕, 이익보다는 명분, 질문보다는 대답에 더 비중을 두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시선이 항상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해 있다. 미래를 여는 도전보다는 먼저 과거를 한 점 오차 없이 헤집는 일을 해야 더 진실하게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도록 훈련되었다. '따라 하기'에 익숙해지면 결국 미래보다 과거를 더 중시하게 되는 심리를 갖게 된다. 입으로는 미래를 말하지만 사실은 과거를 산다. 그래서 과거의 규정으로 미래의 전개를 제어한다. 과거에 정해진 규제로 있어본 적이 없던 미래의 변화를 제어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빅데이터의 시대에 데이터를 모으지 못한다. 초 융합 연결의 시대에 원격 의료를 막는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인 공유경제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이것은 과거로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야 진실한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우리가 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어나는 문명적인 혁명의 시기에도 과거로 과거로만 계속 회귀하려 한다. 이 절박한 시점에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인 각성을 통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각성이 없으면 여기까지만 살다 가지 이 이상의 삶을 누리지는 못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후손들에게 영광이 아니라 치욕을 물려줄 수도 있다. 진영 지키기에 빠진 우물안 개구리들은 역사의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낡은 문법을 지키는 투사들은 이제 필요 없다. 차라리 경쾌한 도전에 나서는 젊은 무모함이 더 의미 있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인데, 우리가 어떻게 되찾아 어떻게 발전시킨 나라인데, 여기까지만 살다가도 괜찮겠는가? 낡은 문법과 결별하여 새로운 문법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노래할 수밖에 없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정해진 모든 것.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모든 언어들, 모든 생각들. 백설의 새 바탕에 새 이야기 새로 쓰세. 새 세상 여는 일 말고 그 무엇 무거우랴. 새 말 새 몸짓으로 새 세상 열어보세." 최진석 건명원 원장·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2019-04-22 18:00:00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多多益善(다다익선): 오늘의 선행은 훗날 덕(德)으로 돌아 온다

많으면 많을수록(多多) 더 좋다(益善)는 말은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온다. 회음후(회음 지역의 제후) 한신(韓信)은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한고조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뒤 초왕(楚王)이 된 사람이다.고향에 돌아와 일찍이 밥 한 그릇을 먹여준 은혜를 천금으로 갚았다는 일반천금(一飯千金)의 주인공이다. 유방이 왕실의 안정을 위해 개국 공신들을 숙청할 때, 항우(項羽)의 옛 부하 종리매(鍾離昧)를 거두어 준 탓에 역모로 몰려 회음후로 좌천되었다. 필요할 땐 쓰이고 용도가 없어지면 버려진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을 당하기도 했다.유방과 한신이 장수들의 능력에 대해 나눈 대화다. 유방이 한신에게 "그대는 과인이 얼마나 많은 군사를 거느릴 수 있다고 보는가?" 한신이 "외람되오나 폐하께서는 10만쯤 거느릴 수 있습니다"고 답했다. 유방이 불쾌한 듯 "그러면 그대는 얼마나 거느릴 수 있는가?" "예, 신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흠, 그러면 그대는 어찌하여 과인의 포로가 되었는가?" 한신은 답했다. "폐하,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폐하는 병사를 거느리는 장수가 아니라 장수를 통솔하는 군왕입니다.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장수의 통솔력을 논하면서 만들어진 다다익선은 오늘날 많을수록 좋다는 뜻으로 두루 쓰인다. 다다익판(多多益辦)이라고도 한다.산불로 발생한 이재민들을 위한 기부가 이어지고 있어 마음이 훈훈하다. 세금 공제 혜택을 노리고 하는 일이라고 꼬집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선행은 다다익선이다. 지금의 선행은 일반천금의 덕행(德行)으로 돌아올 것이다.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4-22 18:00:00

[세월의 흔적] 떡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였다. 밋밋한 떡에다 다양한 문양이나 무늬를 찍어 놓으면 때깔이 나고 한층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그 같은 문양이나 무늬를 찍는 도장판을 떡살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떡본' '떡손' '병형(餠型)'이라고도 한다. 우리 겨레의 격조 높은 음식문화이자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술과 음식은 제사나 행사 때 매우 중요한 준비물이다. 그 가운데서도 떡은 명절이나 잔치 때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그 같은 연유로 해서 떡에다 무병장수․다산․부귀와 같은 염원을 담아 문양이나 무늬를 찍었다. 또한 밋밋한 떡에다 다양한 문양을 새김으로서 멋스러움을 더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떡살은 만든 재료에 따라 나무떡살과 자기떡살로 구분한다. 나무떡살은 참나무․밤나무․박달나무 등으로 만든다. 자기떡살은 사기․백자․오지 같은 것으로 만드는데, 주로 백자로 만든 둥근 모양이 많다. 특히 궁중에서 쓰던 것은 매우 고급스러운 것들이 많다. 그리고 문양은 기하학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꽃․새․나비 같은 아름다운 무늬를 음각 또는 양각으로 파서 사용한다. 예컨대 연꽃․국화․매화․석류 같은 꽃무늬가 많고, 더러는 수복(壽福)․원희(圓喜) 같은 글씨 문양도 있다.고증에 따르면, 태초부터 벽에 그리는 행위 또는 그림․문양․무늬는 의사표현 방식이자 언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치를 때 음식에다 메시지를 새겼다. 그 같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문양이나 무늬다. 이를테면 연꽃문양은 군자 또는 선비의 표상으로 사용되었고, 물고기문양은 과거 급제나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로 해서 지체 높은 집안에서는 고유의 문양이 있었으며 대대로 물려받아 사용하였다.떡살의 경우 문양이나 무늬는 가문에 따라 정해졌다. 또한 그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어 왔다. 그렇게 해서 어느 집안에서 통용이 되면 좀처럼 그 문양을 바꾸지 않을 뿐더러 다른 집안에서 빌리려 해도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정해진 떡살을 부득이한 일로 바꾸려고 하면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비로소 가능하였다. 그런가 하면 서민들 가정에서도 문양이나 무늬를 새기는 떡살은 소중한 생활도구 가운데 하나였다. 좋은 운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조선 말기에 이르러 떡집에서는 여러 가지 문양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전통을 지키는 양반 댁에서도 웬만한 것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네 살림살이 가운데 떡살을 갖추고 있는 가정을 별로 보지 못하였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4-22 18:00:00

이상길 대구시 행정부시장

[기고]대구시가 경력단절여성에게 희망을

2019년 우리는 더 이상 저출산·고령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17년 대구시 고령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처음 진입하였고, 2018년 대구시의 합계출산율이 0.99명을 기록해 인구동향조사 시작 이후 처음으로 합계출산율 1명 선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계들은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와 그로 인한 경제 잠재성장률 둔화라는 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 방안들 가운데에서도 지역사회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남성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여성 고용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다.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 고용 구조의 특징으로는 결혼·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특히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가부장적인 가치관과 경직적인 조직 문화가 여성 고용의 양적·질적인 저하를 불러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일본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4년부터 구조적인 개혁을 단행하고자 'Womenomics'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17년까지 보육시설 40만 개 확충, 2020년까지 여성 리더 비율 30% 상향 등의 목표를 세우고 집중 관리해 왔다. 그 결과 최근 일본의 25~34세 여성 고용률이 2006년 65.1%에서 2016년 74%로 빠르게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한편 우리 정부는 경력단절여성의 사회 재진입을 지원하기 위해 2008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을 제정하였으며, '노동시장 재진입 여건 개선'과 '경력단절여성 규모 축소'를 경력단절여성 경제 활동 지원의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대구시 또한 경력단절여성들의 취업 역량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우선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2009년 3곳에서 2018년 5곳으로 확대해 여성 일자리 인프라를 강화하였으며, 찾아가는 취업 지원 서비스인 'Good-Job 버스'를 운영하고, 취업 역량 제고를 위한 무료 직업교육 훈련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24일 개최되는 2019 대구여성행복일자리박람회에서는 대구시 거주 미취업 여성들을 대상으로 채용관, 정보관, 취업컨설팅관 등을 운영하여 직업 정보 제공 등 취업 기회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대구시 경력단절여성 수는 2014년 11만3천 명에서 2018년 9만 명으로 20% 감소한 반면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은 2008년 47.6%에서 2018년 52.9%로 5.3%포인트 증가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더불어 여성가족부의 2018년 새일센터사업 평가에서 3년 연속 전국 1위라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하였다.대구시는 앞으로도 경력단절여성들이 자신감을 회복해 취업 시장에 마음 놓고 진입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은 여성 누구나 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정책적 지원을 아낌없이 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대구시가 전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여성친화도시, 여성들이 마음껏 꿈을 펼쳐 나가는 꿈의 도시, 희망으로 가득 찬 희망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19-04-22 11:14:27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세계의창] 미국과 쿠바의 화해 무드는 끝났는가

미국 정부는 지난 17일 '헬름스-버튼법' 제3조에 대한 효력 발동 유예 조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헬름스-버튼법은 쿠바 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1996년 제정된 법으로 정식 명칭은 '쿠바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법'이다. 그중 제3조는 다른 외국인이 몰수된 재산을 취득하거나 그 재산을 이용해 이득을 얻을 경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환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법의 핵심 조항이다.1959년 쿠바혁명 이후 쿠바 정부가 미국인들을 추방하면서 쿠바 내 재산을 몰수했는데, 내달 2일 이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면 미국인들은 쿠바가 국유화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동안 미국은 이 법을 제정하고도 쿠바 투자가 가장 많은 유럽과 캐나다 등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6개월 단위로 효력 발동을 유예해 왔다.중남미 정책을 총괄하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날 발표에서 미국 내 쿠바인들이 쿠바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송금액을 제한하고, 가족 방문을 제외한 미국인들의 쿠바 여행을 금지한다고도 밝혔다. 이는 여행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쿠바 정부에 미국 달러가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에서다. 해외 거주 쿠바인들의 송금과 관광 수입이 쿠바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이기 때문이다.그뿐만 아니라 "먼로주의는 살아있다"며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3개국을 '폭정의 트로이카'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쏟아냈다. 먼로주의는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이 1823년에 주창한 것으로 미주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거부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실제로 멕시코와의 전쟁, 중남미 공산화를 막기 위한 민주정권 붕괴 공작과 군사독재정부 지원, 파나마 침공 등 오랫동안 미국의 중남미 국가에 대한 개입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었고, 이렇게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 되었다.그러다 9·11 테러 이후 중남미는 미국 대외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고, 트럼프 정부 역시 국내 문제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쿠바의 베네수엘라 지원,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러시아·중국과의 갈등,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과 같은 미국의 중남미 안보 개입을 불러왔다.이날 존 볼턴 보좌관이 발언한 곳은 피그스만 침공 58주년 기념식장에서였다. 피그스만 침공은 쿠바 혁명정부를 전복시켜 다른 중남미 국가로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케네디 정부가 계획한 일이었지만 실패하였고, 후에 쿠바 미사일 위기의 원인이 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쿠바와의 데탕트 종식을 선언하고, 먼로 독트린과 폭정의 트로이카를 언급한 것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는 쿠바에 대한 경고를 넘어 이제 다시 중남미에 개입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주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의도인 것이다.이에 맞서 유럽연합(EU)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미국 소송에 대한 맞소송 등의 방식으로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쿠바 정부도 헬름스-버튼법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의 쿠바 재식민지화 의도가 분명하다는 내용의 강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과거 미국의 금수 조치와 동맹국의 붕괴 등에도 쿠바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먼로주의 이후 미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이 중남미 국가들의 반미주의를 확산시켰다. 미국의 대중남미 압박 전략이 중남미 국가들 간의 혼란만 가중시켜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2019-04-22 11:14:04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매일춘추]왕관을 쓴 자의 고민

어릴 적 미스코리아 왕관은 탐나는 아이템이었다. 종이로 만들어 쓰고 놀았을 만큼.요즘은 반짝이는 왕관을 씌어주는 카메라 어플이 있긴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관을 쓰고 싶어 할 것이다. 화려한 왕관의 자태는 왕권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기똥찬 이 문장을 17세기에 세익스피어가 남겼다. 한때 이 말이 드라마 부제로 쓰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메시지 상태 창에, SNS 프로필 문구로 애용되기도 했다. 왕관을 쓴 왕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도 있고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은 16세기 말 러시아를 지배했던 보리스 고두노프의 일대기를 다룬 희곡을 탄생시켰다. 이 희곡에서 범죄를 짓고 왕위를 빼앗았다는 의혹에 괴로워한 고두노프는 "아 그대는 참으로 무겁구나, 모노마흐의 모자(왕관)여!"라고 탄식했다.'모노마흐의 모자'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모스크바의 군주들이 대관식 때 사용한 왕관으로 왕권의 상징물 중 하나이다.왕관은 리더가 쓴다. 크든 작든 조직이 있으면 왕관을 쓸 수장이 필요하다. 이 리더는 무엇보다도 빠른 결단력과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결정장애 극복중인 필자가 리더가 못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더는 하루에도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 홀로 고민의 순간도 많을 것이다. 이래서 리더의 어원이 '외롭다' '고립되다'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지, 누구에게 득이 가고 누구에게 해가 되지 않는지 고려사항이 많다.오랜 직장생활 덕분에 많은 리더들을 보아 왔다. 카리스마형, 자유주의자형 등 스타일은 다양하지만 성과를 내려는 목표의식은 일맥상통했다. 되기 어려운 것도 리더지만 되고 난 후 책임을 다해내기는 더 어렵다. 자리라는 게 높으면 높을수록 헌신해야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법이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는 속담처럼.리더 못지않게 참모의 중요성도 크다. 왕의 정치를 도왔던 참모들의 이야기는 여러 역사서에도 남아 있다. 훌륭한 참모가 위대한 리더를 만든다는 사실은 진리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항상 문제가 있는 법. 특히나 조직원들 간의 갈등은 성장의 발판도 되지만 대립으로 인해 조직을 무너트리기도 한다. 사공이 많아 산으로 배를 몰기도 하고 싸움닭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간언하는 참모들이 필요하고 조정 능력이 요구된다.정상을 오르려는 사람은 응원도 받지만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한다. 비난이 두려워 왕관을 쓰려고 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왕관의 무게가 천근만근 같아도 이겨내면 얻는 게 있을 것이라 믿는다.그런데 말이다. 지금 혹시 왕관이 아니라 종이 모자를 쓰고도 무겁다고 내던지려 하지는 않는가.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2019-04-22 11:11:00

경북도 김장호 기획조정실장

[기고] 경북도청 현판 '안민관(安民館)' 을 보며

다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지방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농상성(農桑盛)과 호구증(戶口增)을 꼽았다. 즉 무엇보다 백성들이 먹고살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며 백성들이 떠나지 않도록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인구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현재 우리는 의식주 수준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위의 두 임무는 오늘날 공무원들에게도 절실한 과제이다. 경제적 기반과 정주 여건이 잘 갖추어진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여전히 일자리 부족과 열악한 생활 인프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무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 삶을 보듬고 지역을 되살리는 사업을 추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 부처를 상대로 재원을 끌어오는 세련된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올해도 어김없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1년간의 정부 예산 농사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분주하다. 해마다 정부 예산 일정은 각 지자체가 중앙 부처에 국비 예산을 신청하는 4월부터 본격 시작된다. 지자체가 요구한 국비 예산은 5월 말쯤 부처 예산 심의 그리고 6~9월 초 기획재정부의 예산 심의를 거쳐서 국회에 제출되고 12월 본회의 통과 후 최종 확정된다.경상북도도 2020년 국비 확보를 올해 최우선의 도정목표로 삼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메가프로젝트 TF'를 구성해 60여 개의 중대형 미래 먹거리 사업을 발굴하는가 하면, 올 초에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 방향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335개 사업, 5조9천여억원의 1차 국비 건의 사업을 발굴했다. 여기에 운동화와 점퍼 차림으로 한 달에 1만㎞ 이상씩 현장을 누비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민선 7기 실용주의 리더십이 도청 전반에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도 한껏 고조되어 있다. 그럼에도 주변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가적으로는 경기 상황이 불확실한 데다가 올해부터 중앙-지방 간 재정분권 차원에서 국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이양하는 첫 단계로 지방소비세 비중이 높아졌다. 중앙정부 재원이 지방으로 일부 옮겨오는 등 중앙정부의 세입 호주머니가 예년만큼 넉넉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하지만 이런 여건들이 결코 국비 확보의 무조건적인 걸림돌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우선 경북도와 시군은 과연 정부 정책과 산업 변화의 빠른 흐름을 읽고 세련된 프로젝트를 정교하게 개발하여 왔는지, 중앙 부처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치밀하게 고민하여 왔는지를 스스로 채찍질해 볼 필요가 있다.아울러 한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던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프로젝트가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의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연내 입지 결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듯 5월부터 시작되는 험난한 국비 확보 레이스의 성패도 이처럼 우리의 확고한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전방위적 노력에 달려 있다.경북도청 본관에는 '안민관'(安民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우리 공무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뛰어야만 하는 이유인 농상성과 호구증 임무의 근본적인 목적도 결국은 도민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이다. 우리의 이정표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되새기고, 도와 시군이 함께 올해의 국비 확보 레이스를 위하여 힘차게 운동화의 끈을 조여 매어 볼 때다.

2019-04-21 16:46:47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당부하지 마시라

누구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는대한민국 국민의 대표 될 수 없어국민에 '당부하겠다' 말하지 말고'부탁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해야 제국주의가 몰려오던 서세동점의 시대, 고종은 대신(大臣) 수십 명만으로 조선을 지켜내려 했다. 당연히 힘에 부쳤지만 그래도 궁궐 밖의 다른 선비, 다른 백성과는 의논하거나 소통하려 들지 않았다. 대개의 양반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어도 백성의 힘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그들에게 백성은 훈육의 대상이지 자신들처럼 조선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서구 열강과 바로 옆 일본이 제각기 수천만 시민계급의 힘을 바탕으로 강력한 무기와 남아도는 힘을 분출하며 짓쳐들어오던 때였다. 그 어마어마한 힘과 맞서야 함에도 고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매국노 이완용,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우국지사 이범진 등의 근왕주의자들에만 의지해 국체를 보존하려 했다. 양반이라도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빼고 여자는 말할 것도 없이 빼고 대다수 상민(常民)도 빼야 했으니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것밖에 안 된 건 어찌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유림, 즉 선비들에게도 함께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충절의 선비, 매천 황현(黃玹)도 그랬다. 그는 경술년의 국치가 있자 "나라가 500년이나 사대부를 길렀음에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하나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할 노릇이 아니겠는가?"라며 음독 자결했다. '무궁화 이 강산이 속절없이 망하였구나'라는 절명시를 남긴 그가 동학교도들을 동비(東匪) 또는 비적(匪賊)이라 칭하며 비하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니 신분의 벽은 그만큼 두껍고도 높았다.모든 백성의 힘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도 세계사적 격랑 속에 버티고 서 있기조차 힘든 19세기 후반이었다. 이래서 저들과는 함께 못 하고 저래서 이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하니 그렇게 해서 나라를 지켜낸다는 건 기실 가당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 나름 애쓰며 버티던 왕과 그의 신하들은 자신들의 안녕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일제에 나라를 넘겼다.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않았던 그들에게 백성의 존재는 마지막 순간까지 머릿속에 없었다.하지만 그렇게 버려진 백성들은 스스로 일어나 자신들이 주인인 나라, 즉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웠다. 과정은 길고 힘들었지만 그 간난의 세월은 전과 달리 평민과 양반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했다.경북의 혁신 유림들은 솔선해 노비를 해방시키고 가진 재산 모두를 송두리째 독립운동에 바쳤다. 평생 한학을 갈고닦은 유학자였음에도 먼저 나서 수학과 과학 등의 서양 학문을 배웠고 나이 어린 제자에게도 진심으로 존대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는 동지로 대했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양반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되었다.1917년, 예관 신규식(申圭植) 등은 '대동단결선언'에서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바로 민권이 발생한 때임을 밝힘으로써 나라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1919년 3월, 그 나라의 주인들은 선언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사실이었음을 3·1만세운동으로 증명했다. 이어 4월 11일, 이국땅 상하이에서 민주와 공화를 기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임시헌장 제1조로 채택했다.그로부터 지금까지 100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제 누구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는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없고 시민과 함께하지 않고는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을 수 없다. 정치를 하겠다면 그 마음이 참이든 거짓이든 형식과 절차만큼은 따라야 하고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국민이 분명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어느덧 내년이면 총선이다. 미리 말하건대 '소통하겠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라. 나라의 주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부탁처럼 말해야지 시혜처럼 말하면 안 된다.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의 주인인 왕과 소통하려 신문고를 두드리고 격쟁을 해가며 고생고생 애를 태웠다. 그리고 만약 선출되거든 국민에게, 시민에게 '당부한다'는 말하지 마시라. 유권자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나라를 위해, 지역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당부'가 아니라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게 맞다. 100년 전에 이미 결정된 일이다.

2019-04-21 15:46:1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갓바위 불상에 관한 단상(斷想)

팔공산 주 능선 동편 끝자락 관봉(冠峰, 853m) 정상부에는 갓바위 부처로 불리는 보물 제431호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2015년 국립공원연구원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00여 평도 채 되지 않는 관봉 정상부의 갓바위 불상을 보기 위해 연간 약 250만 명(경산 쪽에서 오르는 사람 178만 명, 대구 쪽에서 오르는 사람 72만 명)이 방문한다는 공식 통계가 있다.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의 탐방객 수를 보여주고 있어 세계문화유산급에 해당하는 중요 문화재다.평면적 신체 탄력성이 약해 8세기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게 불교미술사적 해석이다. 본 불상은 7세기 후반과 8세기 중반에 각각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아미타여래좌상)과 국보 제24호이자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석가여래불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선본사 사적기'를 발굴하여 그 내용을 불교신문에 게재한 기사(2013년 5월 15일)를 보면 이러한 추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전략) 이 불상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승려들만 불상을 보고 발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남녀들도 깊은 신심을 일으켰다. 이것은 의현(義玄) 화상의 공(功)이고 불일(佛日)이 멀리 비추어준 덕(德)이라 할 것이다.-도광 원년(1821, 순조 21년) 하안거 해제일에 쓰다. 이때의 주지 범해(梵海)가 분향하고 삼가 쓰다-"의현 대사는 화랑의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 법사의 제자로 전해져 오던 인물이다. '선본사 사적기'에서 의현 대사의 실명이 사실로 밝혀져 갓바위 불상 조성 시기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금까지는 불상이 9세기에 조성되었고 불상 머리 위에 얹혀져 있는 갓 모양의 평평한 돌은 후대인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선본사 사적기'의 기록과 최근에 밝혀진 갓 모양의 바위에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보상화 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기존의 판단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상 머리에 얹혀져 있는 갓모양의 돌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라면, 불상은 통일신라 이전 시기에 조성돼야 논리적으로 맞다. 부연하면, 갓바위 불상은 7세기경에 조성되었고, 갓 모양의 넓적한 돌은 8세기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 불상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의 영향을 받아 갓바위 불상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갓바위 불상의 영향을 받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석굴암 본존불이 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불상의 왼손에 작은 약합이 있어 약사여래불로 인식되어 왔으나 실은 약합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이며, 갓을 쓰고 있어 미륵불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대좌(臺座)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갓바위 불상은 돌 하나조차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불교적 자연 존중 사상이 오롯이 녹아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바라건대,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갓바위 불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이 함께 공유할 날을 기대해 본다.

2019-04-20 03:30:00

영화 '일레인의 영웅적 행위(The exploits of Elaine)'(1914)의 한장면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1920년대 조선과 위기에 빠진 서양 아가씨 이야기

1910년대 미국에서는 위기에 빠진 아가씨 구출기를 다룬 연속무성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와는 달랐다. 전체 내용을 부분 부분 잘라서, 한 부분을 영화관에서 일주일 간 상영하고 나면 다시 그 다음 부분을 일주일간 상영하는 일종의 연속극 형태였다. 상영이 모두 마무리 되고 나면 작가가 내용 전체를 책으로 엮어서 출판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책 역시 영화만큼이나 미국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아서 벤자민 리브의 탐정소설 '일레인의 영웅적 행위(The exploits of Elaine)'(1915)이다. 탐정 소설 '일레인의 영웅적 행위'는 1921년 '엘렌의 공(功)'이라는 제목으로 김동성이 번역하여 조선에 소개한다.번역소설 '엘렌의 공(功)'은 탐정소설이라고 하지만 셜록 홈즈류의 정통추리물과는 달랐다. 총격과 손에 땀을 쥐는 추격, 격투와 같은 액션은 물론, 여기에 탐정 크레이그 케네디와 아름다운 의뢰인 엘렌 간의 달콤한 로맨스까지 더해져서 오히려 로맨스 모험소설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대호평에 이어 일본에서도 영화와 소설 모두 소개되어 큰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조선에서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일단 사건 해결을 위해 제시되는 어려운 화학용어라든가, 복잡한 과학적 설명이 당시 조선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다.이와 더불어 여주인공 엘렌의 행동거지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엘렌은 자산가의 딸로 교양을 익힌 인물이지만 정숙한 양갓집 아가씨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케네디 탐정과 공공연하게 애정을 주고받는가 하면 일촉즉발의 위기도 마다않고 모험에 뛰어드는 등 적극적이고 활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모습이 보수적인 조선사회의 정서에 맞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양에서 불어온 자유연애 바람과, 여성 해방을 다룬 입센의 '인형의 집'이 조선 젊은이들 마음을 휘젓는 통에 조선 어른들의 심사가 불편하던 터였다.번역가 김동성이 수많은 탐정물 중에서 '일레인의 영웅적 행위'를 번역작으로 선택하고, 동아일보가 귀한 지면을 내어 이 소설을 연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동성과 동아일보 모두 조선이 낡은 의식을 벗고, 새로운 근대문물을 받아들여 힘을 지니기를 원했다. 그 힘을 쌓고, 또 쌓아서 조선이 독립국이 되기를 원했다. 그 새로운 문물에는 남녀평등, 여성의 해방이 들어 있었다. 새로운 조선 건설은 미국유학을 통해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 돌아온 식민지 지식인 김동성에게 부과된 소명이었다. 그리고 삼일운동의 열망 속에서 창간된 민족지 동아일보가 담당해야 할 사명이었다.1920년대의 조선은 지식인도, 언론도 새로운 조선 건설을 이루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명감은 이데올로기도, 지방색도 뛰어 넘어 모두를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해주었다. 그렇다면 2010년대 우리의 언론과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 어떤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4-18 14: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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