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기고] 세계 물의 날, 물의 가치에 대한 고민

[기고] 세계 물의 날, 물의 가치에 대한 고민

매년 3월 22일은 심각해지는 물 부족과 수질오염을 방지하고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하여 1992년 유엔(UN)이 지정·선포한 '세계 물의 날'이며, 우리나라도 1995년부터 매년 정부 차원에서 기념해 오고 있다.올해 우리나라 물의 날 주제는 유엔이 정한 주제(Valuing Water)를 토대로 인간과 자연에 물이 주는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보전하자는 취지에서 '물의 가치, 미래의 가치'로 정했다.최근 발생했던 수돗물 적수 사태와 유충 발생은 국민들에게 상당한 불편과 건강상 위협을 초래했다. 언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던 먹는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주는 사건이었다.정부는 이런 소중한 물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통합 물관리 체계 구축 및 하천 관리 일원화 등으로 그간의 지역 간 고질적 물 문제, 물 분배 불균형 문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해 왔다. 특히 수돗물 적수 사태, 유충 발생 등 사고 대응 지원을 위한 유역지원센터의 운영, 실시간 수질 감시·사고 대응을 위한 스마트 관망 관리 구축 등 과학적, 체계적 물관리를 위해 다각적인 시도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건강한 물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할 예정이다.물은 앞서 말한 생활 속 음용수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가정과 공장에 안전한 식수와 공업용수를 제공하는 산업 그 자체로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8년 기준 환경부의 '물 산업 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물 산업은 이미 18만 명이 종사하고, 전체 43조 원의 매출액을 내는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러한 물 산업의 성장 여건 마련을 위하여 대구 물산업클러스터와 같은 인프라 확충, 혁신형 물 기업 발굴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렇듯 물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으로는 음용수로서의 역할로 시작하여 농업과 현대 반도체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간뿐 아니라 생태계에 있어서 생물 다양성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한편, 1993년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1인당 가용한 재생성 가능 수자원량이 1천452㎥인 '물부족국가'로 분류한 이래로 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라는 인식이 사람들 속에 자리 잡아 왔다. 통상 재생성 가능 수자원량이 1천~1천700㎥이면 물부족국가로 분류된다.그러나 그러한 인식과는 달리 실제 일반 국민들 중 생활 속에서 물 부족을 체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환경부의 2018년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나라 정수장의 최대 가동률은 71.3%로 생활용수가 공급되고도 남는 상황이므로, 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라는 말을 일반 국민들이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그간의 인식은 "우리나라는 물부족국가이니 물을 아껴 쓰자"라는 단순한 양적(量的) 구호로만 이어져 왔다. 이제는 마시는 물, 씻는 물, 자원으로서의 물 등 물이 가지는 다양한 질적 가치를 고찰해 볼 시간이다.이번 '세계 물의 날'엔 물의 가치와 그 잠재성에 대해 다 같이 고찰해 보도록 하자. "물을 아껴 쓰자"라는 단순한 구호에서 벗어나 "물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라는 진정한 물음을 던질 때 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2021-03-21 16:02:2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윤덕희(1685-1766) ‘말을 탄 여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윤덕희(1685-1766) ‘말을 탄 여인’

드물게 여성이 주인공인 조선시대 그림으로 말을 탄 모습을 그렸다. 미인도이면서 준마도인 마상미인도(馬上美人圖)는 명마와 미인이라는 선망하는 두 대상에 대한 시각적 즐거움을 남성 감상자에게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그림이다. 영조시대에 윤덕희가 그린 '말을 탄 여인'은 "병진년 여름 백련포옹(白蓮逋翁)이 그려서 둘째 아들 용(熔)에게 준다"는 낙관이 없었다면 중국 그림으로 여겨질 만큼 중국 미인도풍이다. 인장엔 윤덕희의 당호 '회심루(會心樓)'와 자(字)인 '경백(敬伯)'이 새겨져 있다.여인(麗人), 가인(佳人) 그림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부인, 부녀, 사녀(士女), 미인, 기라(綺羅), 빈장(嬪嬙) 등으로 불리다 송나라 때부터 사녀화(仕女畵)로 분류되며 다양한 양식으로 아름다운 여성이 그려졌다. 기녀를 그린 조선시대 미인도는 신윤복 이후의 그림이 몇 점 알려져 있지만 하나의 장르로 구분할 만큼 많이 그려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은 미인도의 주문 또는 제작, 감상, 소장 등의 행위가 공공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색(女色)은 경계의 대상이었고 미인도에 대한 언급 또한 인격 관리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미인은 서양과 동양에서 모두 그려졌으나 그 외피는 달랐다. 인상파 이전의 서양미술사에서 미인은 신화 속 여신으로 등장하며 누드화로 그려졌고, 한자문화권에서는 여성이 등장하는 역사적이거나 문학적인 내용을 그리는 고사화(故事畵), 감계화(鑑戒畵)가 일종의 미인도로 그려지기도 했다. 미인도를 감상할 명분이 필요했다는 점은 같았다.'말을 탄 여인'은 흉노에게 시집보내졌던 한나라 원제의 후궁 왕소군(王昭君)의 고사를 그린 것 같다. 주인공은 상반신을 살짝 뒤로 돌려 얼굴을 내보이면서 고개를 수그린 모습인데 가냘픈 두 손은 붉은 고삐를 잡고 있다. 말도 여인도 애잔한 모습인 것은 고국을 뒤로 하고 오랑캐의 땅으로 떠나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쓰개와 옷차림이 모호한 고전성을 띠는 가운데 비단옷의 파스텔 톤 색채를 세심하게 조화시키고 무늬도 서로 다르게 그려 넣어 이 여성이 귀한 신분임을 나타냈다.말 그림의 전통에 따라 희고 둥근 반점이 빽빽한 청색 말은 옆모습으로 그렸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등에 윤덕희의 말 그림으로 춘지세마도(春池洗馬圖), 백마도(白馬圖), 군마도(群馬圖), 팔준도(八駿圖), 쇄마도(刷馬圖) 등이 있다고 열거해 다양한 형식의 말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말을 탄 여인'은 아버지 공재 윤두서와 함께 말 그림으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쳤다고 한 윤덕희의 실력을 확인시켜주는 말 그림이자 조선후기 미인도의 이른 예이다.미술사 연구자

2021-03-21 06:30:00

[이종문의 한시산책] 진짜와 가짜 - 일연

[이종문의 한시산책] 진짜와 가짜 - 일연

가짜 색이 진짜 색을 마구 어지럽게 하고 紅紫紛紛幾亂朱뭐라고! 고기 눈을 구슬이라 속인다고? 堪嗟魚目誑愚夫거사님이 손가락을 탁 퉁기지 않았다면 不因居士輕彈指하고 많은 상자 속에 옥 같은 돌 담았겠지 多小巾箱襲碔砆 어느 해 스승의 날에 한 졸업생이 가짜 선생을 진짜 스승으로 착각을 했는지 야자 화분 하나를 보내왔다. 딱 보는 순간 가짜 같았다. 진짜는 저리 가라는,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가짜 말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잎새 끝이 말라있는 데가 있어, 어라? 진짠가 싶어 손톱으로 살짝 째비봤다. 그래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더러 물을 주곤 했다.일 년을 물을 줘도 새 잎새도 아니 나고 말랐던 잎새 끝이 더 마르는 법도 없어, 가짜야, 가짜일 거야, 하면서도 물을 줬다. 하지만 삼 년 뒤에 진짜임이 드러났다. 그 모질고 혹독한 수모 더는 참지 못했던가. 어느 날 혀를 깨물고 죽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은 진짜 어렵다.김유신이 한 늙은 거사와 교유가 두터웠다. 그때 유신의 한 친척이 오래도록 모진 병을 앓고 있었으므로 거사를 보내어 치료하게 했다. 마침 한 승려가 거사를 보고 거만스럽게 깔보며 말했다."너 주제에 무슨 병을 고쳐? 나의 신통력을 한 번 봐라."말을 마친 그가 주문을 외우면서 향을 피우니, 오색구름이 머리 위에서 감돌더니 하늘의 꽃이 흩어져서 펄펄 떨어졌다. 거사가 말했다."스님의 신통력은 불가사의합니다만, 저도 변변찮은 재주가 있으니 시험해보도록 하겠습니다."거사가 손가락을 한 번 퉁겨 소리를 내자 그 승려가 공중에 거꾸로 튕겨 나갔다가, 한참 뒤에 물구나무선 채 서서히 내려오더니 머리가 땅에 박혀 말뚝을 박아놓듯 우뚝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밀고 당겨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사가 나가버리니, 스님은 거꾸로 박힌 채로 새벽까지 그렇게 서 있었다.삼국유사에 수록되어있는 이야기인데, 인용한 시는 그 이야기 뒤에 첨부한 저자 일연의 작품이다. 붉을 홍(紅)과 붉을 자(紫), 붉을 주(朱)는 모두 붉은색이지만, 그 가운데 진짜는 붉을 주(朱) 하나다. 그런데 사이비들이 마구 판을 치니 진짜가 설 자리가 없다.그런가 하면 물고기의 눈을 구슬로 팔아먹는 가당찮은 놈들도 있다. 거사가 손가락을 한번 탁 퉁겨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옥 비슷한 돌을 진짜 옥으로 착각하고 소중하게 갈무리를 했겠는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구나, 아아!불과 얼마 뒤에 나라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 보궐선거가 실시된다. 후보들이 서로서로 상대방을 향해 더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으니,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 그래도 그 가운데 하나라도 진짜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는데, 혹시 둘 다 가짜일까 봐 정말이지 진짜 걱정이다.이종문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1-03-20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25. 경북도청 신도시, 그리고 천년 숲

[안동을 걷다, 먹다] 25. 경북도청 신도시, 그리고 천년 숲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5번째 이야기. 도청신도시 천년 숲과 검무산'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퇴직한 후 예순 두 살의 나이로 배낭을 매고 길을 떠났다. 베르나르는 책을 쓰거나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길을 떠났고 끝없이 두 발로 걸었다.그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걸어간 1099일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였다.2000년대 초반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퇴직하면 베이징에서 이스탄불까지 베르나르의 여정을 거슬러 걷겠노라 결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제주 올레길도 허락하지 않았다.안동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수시로 혹은 짬을 내서 안동을 마음껏 걸을 수 있게 되었다.이제는 정말 걷기 좋은 계절, 봄이다. 지금 걷지 않으면 땡볕을 견디기 어려워서 걷기가 힘들어지는 여름이 금방 올 것이다.점심을 먹고나면 졸립기 시작했고 졸음을 쫓기 위해 강변으로 나갔다. 늘 낙동강을 따라 걷다가 오늘은 경북도청이 들어선 신도시로 갔다. 그곳에는 신청사뿐 아니라 천혜의 검무산과 천년 숲이 있다. 경상북도에서 대구시가 직할시로 분리되면서 대구시까지 관할하고 있던 '경상북도' 청사는 엉겁결에 남의 땅에 있는 손님이 되어버렸다. 경북도청의 경북 이전은 그래서 추진되기 시작했고 도청이 이전하면 낙후된 경북은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것처럼 보였지만 안동은 도청이 들어서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변화가 없다. 안동과 예천 사이 '신도시'가 들어선 것 외에는 표면적으로는 말이다.경북도청 신청사는 우여곡절 끝에 2016년 3월 10일 공식 개청했다. 검무산 아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길지(吉地) 풍수를 바탕으로 자리잡은 신청사는 전통 한옥 구조의 웅장한 건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칭송이 자자할 정도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청와대나 경복궁 같은 조선시대 궁궐보다도 낫다는 소문이 자자했다.신청사를 감싸안은 검무산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하회마을을 휘돌아 도는 낙동강이 청사 앞을 흐르는 전형적인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의 풍수명당이다. 신도시에 가서 도청 신청사를 바라보고 해발 332m의 검무산에 올라 신청사와 신도시를 내려다보니 '과연 기가 막히게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무엇보다 도청 신청사는 걷기에 좋았다.공공기관이나 관공서답지 않게 아예 담장이 없다. 신청사 정문인 솟을삼문 '경화문'(慶和門)에서부터 새마을광장, 긴 회랑에 이어 본청인 안민관으로 이어지는 도청 경내는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해도 좋을 정도로 탁 트여 있어서 '개방'과 '소통'이라는 요즘 시대의 트렌드와 딱 들어맞았다.천년 숲사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아무리 으리으리하고 좋다고 한들 관공서 경내를 구경다니는 건 별로다. 그러나 신청사 정문 바로 앞에 조성된 '천년숲'은 다르다. 봄이 시작되는 요즘에는 아직 푸르른 숲의 원래 모습이 조금 부족해보이지만 천년 숲은 '신라 천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경주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 울창한 '계림'을 떠올리게 했다.도청 신청사를 중심으로 왼쪽에 조성된 아파트 등의 주거와 정주시설들은 아직 건설 중인 것처럼 어설퍼 보였어도 천년 숲은 신청사가 들어서기 오래 전, 아마도 천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숲처럼 자연스러웠다.어디서 옮겨 심었는지 모르지만 수백 년은 족히 됐을 것 같은 소나무를 옮겨 심어 조성된 소나무 숲은 편안했다. '천년 숲'은 신청사 이전을 시작으로 새로운 천년의 역사와 시간을 담을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한 경북도청 신청사 이전을 기념하는 공원이었다.천년 숲 입구에는 '산림부문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외부사업으로 등록된 숲으로 연간 65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후손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조성된 건강한 숲'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었다.경화문 앞 도로를 가로질러 천년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황토 족욕장'과 황톳길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황토족욕장은 난생 처음이다. 신발과 양말을 차례로 벗고 어린아이처럼 황토에 발을 씻어내고 싶은 욕망을 느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아직 아침 저녁 기온이 서늘해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봄이 완연해지면 너도나도 족욕장에서 황토 족욕 러시가 이뤄질 것 같다.족욕장 바로 앞에 세족시설도 다 마련돼 있다. 족욕장 바로 앞에는 맨발로 걸으라는 황톳길이 100여m 정도 조성돼있다. 천년 숲에서는 발이 호강하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하루정도라도 맨발로 황톳길을 걷고 황토 족욕을 할 수 있다면 발 건강엔 최고가 아닐까.천년 숲 남쪽에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과 마사길, 지압보도 등이 마련돼 있다. ​느티나무 쉼터 쪽이다.언덕길로 올라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노라면 여기가 신도시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마치 깊은 산 휴양림에 온 듯한 기분으로 걷다 보면 소나무 사이로 작은 연못 하나가 보인다. '천년지'다. 천년을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이 숲도, 이 연못도 천년 후에도 영속하길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담았다.연못 주위에는 능수버들이 주렁주렁 늘어져있다. 며칠 사이 파릇파릇 능수버들 새잎들이 솟아난 모양이다. 말 그대로 '물이 올랐다'. 중국 황사가 오고 봄비가 내리면서 주체할 수 없는 봄기운이 능수버들 '머리꼭대기'까지 올라왔다.천년지는 어쩌면 또 다른 비밀의 숲일 수도 있다. 어스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갔을 때 천년지는 새벽안개로 가득했다. 그래선가 마치 안동댐 아래에서 만난 그 '낙강물길공원', 비밀의 정원을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봄이 오고 녹음이 우거진 어느 날 새벽 나는 다시 '비밀의 숲' 같은 천년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안동과 예천의 경계 지역인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에 걸쳐 조성된 도청신도시 인구는 2020년 연말을 기점으로 2만 명을 훌쩍 넘었다. 도청이 이전한 2016년 3천67명, 2017년 8천63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증가세다.주민등록상으로는 40대 이하 인구가 81.1%에 이르고 주민의 평균연령 32.5세로 경북도내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그래서 초등학교 2개소에 중학교 고등학교가 각각 1개소로 정주하는 신도시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신도시 주민들의 다수는 도청과 신도시에 입주한 공공기관 직원 가족들이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이 검무산이다. 검무산과 천년 숲은 신도시 주민들에게는 자연의 선물같은 존재다.검무산을 올랐다.해발 300여m 남짓한 산은 가볍게 산행하기에 적당하다. 검무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복장은 가볍다. 마트에 갔다가 혹은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경북도청 본청 바로 뒤쪽으로는 검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두 곳이 있다. 등산로 초입에 자리한 '관풍루'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관풍루 옆에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해 문을 연 '마음 한쪽 정원'이 있다. 예천이 고향인 안도현 시인이 이름을 지은 이 정원은 주목나무를 병풍처럼 겹겹이 심었고, 안쪽에는 측백나무와 사철나무로 4개 구역을 구분, 직원들과 주민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내 집의 뜰처럼 여기고 산책하면서 마음 한쪽에 담아두는' 정원이다. 그냥 편안하게 걸었다.정원을 뒤로 하고 산으로 향했다. 산길은 평탄했고 잘 정돈돼 있다. 중간 중간 오르막이 있어 그다지 긴 등산로가 아닌데도 적당한 운동감이 든다. 정상으로 오르는 고비는 나무 계단이다. 정상은 게으름 피지 않고 쉬지 않고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깨닫게 하는 기나긴 계단이다.드디어 정상이다. 검무산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발 아래로 도청 신청사며 도의회 그리고 도교육청이 보였고 멀리로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 줄기와 시루봉(안산)과 봉화산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으로는 아파트군락이 보인다.신도시 주변으로는 검무산 산행코스를 비롯한 다양한 둘레길이 조성돼있다. 천년 숲에서 검무산으로 이어지는 제1코스를 비롯, 풍천면사무소를 거쳐 하회마을과 부용대까지 둘러볼 수 있는 제3코스, 구담정사에서 '말 무덤'을 거쳐 선몽대, 호명면 사무소로 이어지는 제4코스 등 무려 7개의 둘레길이 있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3-20 06:00:00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영원한 인기는 없다! 마시는 술도 뜨고 진다!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영원한 인기는 없다! 마시는 술도 뜨고 진다!

영원한 인기는 없다. 잠깐 유행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인기 음식, 인기 연예인, 인기 정치인, 인생도 늘 순항으로 이어지는 법이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술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인간이 언제부터 술을 빚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탄생했을 것으로 예상한다.인류가 목축과 농경을 영위하기 이전인 수렵, 채취시대에는 과실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실이나 벌꿀과 같은 당분을 함유하는 액체에 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면 자연적으로 발효하여 알코올을 함유하는 액체가 된다. 취기가 돌고 기분이 좋아지는 액체 제조법을 터득한 인간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애음해오고 있으며, 원시시대의 술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모두 그러한 형태의 술이었을 것이다.유목 시대에는 가축의 젖으로 젖술(乳酒)이 만들어졌고,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는 농경시대에 들어와서야 탄생했다. 청주나 맥주와 같은 곡류 양조주는 정착 농경이 시작되어 녹말을 당화시키는 기법이 개발된 후에야 가능했다. 그러다 인간이 식물을 달여 그로부터 원액을 얻어내면서, 증류 기술을 이용하여 순수 알코올을 농축한 소주나 위스키, 브랜디, 진, 보드카, 럼, 테킬라 같은 증류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혼성주인 리큐르는 후대에 와서 제조된 술이다.최근에는 와인과 더불어 독한 술보다는 가벼운 저도주가 대세며, 가볍게 마시는 칵테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 리큐르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독특한 향과 달콤한 맛, 화려한 색깔 때문에 칵테일 베이스로도 많이 쓰이는 리큐르는 중세시대 연금술사들이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생명의 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증류 과정에서 각종 과일, 약초와 향초를 넣어 그 향이 우러나게 한 특수한 증류주를 만든 것이 리큐르가 발전한 원동력이다. 리큐르(Liqueur)는 양조주나 증류주에 과일이나 초, 근, 목, 피 등의 향신료나 감미료 및 착색료를 첨가한 술로, 독일에서는 리쾨르(Likor), 영국과 미국에서는 코디알(Cordial) 이라고 부른다.마시는 술도 뜨고 진다. 오늘날 국내의 주류 업계는 저도수 트렌드는 물론 '뉴트로(New-tro)' 마케팅까지 펼치며 확실한 성공을 이끌고 있다. 새로움(New)과 복고(레트로·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단순한 복고가 아닌 새로운 외향과 기능을 갖춘 새로운 복고를 의미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취향에 맞게 술을 제조해 마시는 것이 유행하면서 하이볼을 중심으로 다양한 감성과 맛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칵테일 리추얼(Ritual·음용법)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하이볼은 칵테일 종류의 하나로 위스키나 브랜디와 같은 증류주에 탄산수와 얼음을 넣고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며, 주류와 탄산수의 비율에 따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가볍게 혹은 취하지 않게 즐기려는 음주 트렌드 변화가 나타나면서 주류 업계에서도 무알코올 음료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술도 취향대로 자신에게 맞는 건전한 음주 습관이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면서 집에서 혼자 술을 즐기는 '홈술‧혼술'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층을 겨냥한 캐릭터와 굿즈 마케팅(Goods Marketing) 바람이 주류 업계에도 불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 소비세대로 등장하며 과거와 음주 문화가 달라졌고, 건강과 웰빙이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식사 후 또는 집에서 즐기는 소모임에서 가볍게 즐기기 위해 쓴 술 대신에 달콤한 술이 뜨고 있다. 개인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주류 시장에도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마시는 술도 뜨고 지듯 우리의 삶도 풍족함은 언젠가 사라지게 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된다. 언제나 그림 속 꽃처럼 시들지 않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자. 글 :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2021-03-19 14:30:00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문체의 사상가, 정점식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문체의 사상가, 정점식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 '때와 땅'을 관람하러 갔다가 故 정점식(1917~2009) 선생님의 작품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전시장에 초대된 작가 중 몇안되는 '직접 만났던' 작가이기도 하고, 1950년대 선생님의 작품을 본 게 오랜만이기도 했다. 정점식 선생님은 구상미술 위주의 1940~50년대 대구 화풍에서 추상회화를 개척한 작가다. 또 오랜 세월 대구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며 지역 화단을 이끌었다. 화가로서의 이름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서울 화단으로 진출할 때도 줄곧 지역 화단을 지켰다. 오랜 만에 작품 앞에 서서 그의 존재가 지역 화단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을 더듬어 봤다.선생님은 계성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4년부터 계명대에서 제자를 길러냈다. 정년퇴임한 1983년 이후에도 2001년까지 강의를 계속했다. 계명대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호 '극재(克哉)'를 따서 이름 지은 극재미술관을 건립 운영하고 있다. 그가 대구뿐만 아니라, 한국 추상회화에 미친 영향은 컸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2009년 작고하던 해에는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정 선생님은 유년시절 약전골목에서 한의사를 하던 고모부로부터 한문과 국어를 배웠고 일본 경도시립회화전문학교에서 유학했다. 당시 일본에는 큐비즘과 다다이즘과 같은 새로운 사조가 유입되었는데 그도 그런 경향에 관심을 쏟았다. 1941년 귀국했다가 삼촌이 살고 있던 북만주 하얼빈으로 거처를 옮겼다. 넓은 황야를 보면서 시대적 고뇌와 무의식을 캔버스에 표현했고 이따금 하얼빈 거리의 이국적인 풍물을 스케치했다. 아쉽게도 그 시기의 작품들은 전쟁 기간 중 상당 부분 유실됐다.광복 후 다시 돌아온 대구의 서양화단에는 자연주의 경향의 화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작품은 이런 경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 6·25전쟁으로 인해 수도권에서 활동하던 많은 예술인들이 대구로 피난 오게 되고, 선생님은 그들과 수시로 만나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1953년 대구미문화원에서 열린 첫 개인전 때는 마해송, 박두진 등의 문인이 그의 화풍에 대한 글을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박두진은 한 일간지에 '금세 워이워이 들판으로 소라도 몰고 나갈 농부와 같이 소박하면서도 끝없는 겸허와 예리한 지성을 가진 작가'라고 평했다.많은 학자들이 우리나라 현대미술 시작의 기점을 1957년 무렵으로 잡고 있다. 그 해에 서울에서 중견작가들로 구성된 모던아트협회가 창립되었기 때문이다. 모던아트협회는 표현주의, 입체주의를 초월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전위 회화운동으로, 창립 회원은 박고석·한묵·유영국·황유엽·이규상·황염수 등이었고, 2회 전시 이후에 김경·천경자·문신·정규, 그리고 정점식 등이 참가했다. 모던아트협회 회원들의 작품은 대체로 구성주의적 추상을 지향하여 그 뒤에 오는 앵포르멜 회화운동과 1960년대의 구상회화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1970년대 이후 선생님은 문자의 형태를 활용한 작품을 시도했다. 화면에서 역동적인 형태가 나타나고 서예와 같은 붓놀림이 이어졌다. 1978년 무속의 부적과 같은 형상을 그린 '발(拔)' 이라는 작품으로 『계간미술』에서 평론가 11인이 선정한 '한국 추상화가 베스트 10'에 뽑혔다. 이것은 대구 지역을 떠나지 않고 활동하던 그가 '한국의 화가'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선생님은 그림뿐만 아니라 이론에서도 이름 높았다. 특히 그의 글은 간단명료하면서도 깊은 뜻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미술 평론가 유준상은 평론을 통해 그를 일컬어 '문체의 사상가'로, 시인 김춘수는 '출중한 문장력을 가진 화가'로 칭송했다. 여든을 훌쩍 넘겨 아흔을 바라보던 때까지도 책을 가까이 했고, 그는 생애 동안 예술관과 삶의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네 권의 에세이집을 묶어냈다.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작고 한 해 전이었던 2008년이었다. 그때도 그는 1955년 개인전 때 스무 살 남짓의 한 소녀가 방명록에 남긴 글의 한 구절을 이야기했다. '벅차오르는 마음에서….' 그는 그 글과 소녀에게서 받았던 감동을 평생 잊지 못했다. "당시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던 내 그림을 보고 어린 소녀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그것을 글로 표현한 것이 너무나 기뻤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작가는 보람을 느낀다." 한국미술의 거장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경받은 그였지만, 한 명의 예술가로서 회상한 생애 감동의 순간은 이처럼 소박했다.

2021-03-19 14:30:00

[광장] “주사위는 던져졌다”…‘부패완판’의 슬로건 정치

[광장] “주사위는 던져졌다”…‘부패완판’의 슬로건 정치

3월 15일, 4·19 혁명 도화선이 된 1960년 3·15 부정선거가 떠오른다. 역사의 시곗바늘을 돌려 이탈리아 로마로 가면 B.C. 44년 3월 15일에 이른다. 로마 공화정을 지키려는 절박한 칼부림 속에 난세 영웅 카이사르가 57세에 나뒹군 날이다. 브루투스를 비롯해 공화파 의원들이 카이사르를 쓰러트린 곳은 공화국 청사 코미티움 앞이었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터는 남았다. 로마포럼(포로 로마노) 서쪽 끝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앞이다. 여기서 동쪽 콜로세움 방향 150여m 지점에 카이사르 신전이 자리한다. 탐방객들은 여기서 로마의 위세를 떨친 영웅이지만, 공화정을 독재정으로 바꾼 카이사르의 역설적 삶을 곰곰 되새긴다.카이사르의 공과를 일단 뒤로 제쳐 두고, 그의 탁월한 언어 감각, 지지자들을 결집해 반대파를 제압하는 메시지 정치의 구호를 살펴보자. 먼저 '이악타 알레아 에스트'(Iacta Alea Est·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전에는 '일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단행하는 수밖에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121년 '황제전'(De vita Caesarum)에서 카이사르가 B.C. 49년 1월 10일 이탈리아 반도 중동부의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행진하며 휘하 병사들에게 이 말을 했다고 적는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B.C. 509년 공화국으로 전환한 로마는 소집된 군대가 해외 작전을 마치고 귀국할 때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자동 해산하도록 했다. 군 지휘관이 시민병사들을 사병화해 쿠데타로 공화정을 뒤엎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갈리아(프랑스)에 나가 공을 세운 카이사르는 제왕의 야망을 품고, '권력을 잡아 새로운 로마를 건설할 테니 나를 따르라'는 불가역의 정치 메시지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병사와 로마 시민에게 외친 것이다. 이 말의 원작자는 B.C. 4세기 탁월한 그리스 극작가 메난드로스다. 적절한 시점에 재활용한 카이사르의 언어 감각이 돋보인다. 카이사르의 창작 구호도 귀에 익숙하다. '베니 베디 베키'(Veni Vedi Ve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루비콘강을 건넌 쿠데타로 공화파 폼페이우스를 물리친 카이사르는 B.C. 4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간다. 여기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22세 꽃다운 여왕 클레오파트라(그리스 혈통)와 사랑을 나눈다. 그때 터키 땅 폰투스 왕국이 로마에 반기를 들자 클레오파트라 품을 떠나 출정 나팔을 분다. 터키 수도 앙카라 북쪽 젤라 전투에서 B.C. 47년 승리를 거둔 뒤, 로마 원로원에 '와서 보고 이겼다'고 서한을 보냈다. 치기 어린 자랑질이 아니다. 아직 공화파를 모두 제거하기 전이다. 이 구호를 통해 누구든 자신에게 대항하면 보는 순간 제압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띄운 것이다. 2년 뒤 공화파에 암살당하고 말지만…. 링컨 미국 대통령이 아직 남북전쟁의 포성이 멎기도 전인 1863년 11월 19일,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의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몇 분짜리 짧은 연설 속 구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는 그 간결함에도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간명한 말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난 3월 4일 사퇴 하루 전 대구고검에서 "'부패완판' 속 법치 수호"라는 창작 구호를 화두로 던졌다. LH 관련 투기가 국민 가슴에 불을 지른 형국에 '부패가 완전히 판친다'는 메시지는 아직 정치의 '정' 자도 꺼내지 않은 그를 단박에 대선 지지율 1위로 올려놓았다. 서양 명의 히포크라테스는 '예술(의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간명한 아포리즘으로 2천400여 년 지나서도 회자된다. '역사는 길고 정치는 짧다.' '부패완판'의 법치 수호 슬로건으로 쏘아올린 정치 주사위 숫자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6으로 역사에 항성처럼 남을지, 1로 유성처럼 사라질지는 전적으로 그의 몫에 달렸다.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2021-03-19 14:05:46

[춘추칼럼]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다 어디 갔을까?

[춘추칼럼]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다 어디 갔을까?

언제부터인가, 티브이 방송 편성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코미디 프로그램은 찾아볼 길이 없다.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티브이 지상파 방송 편성에서 왜 사라졌는지, 나는 그 사정을 알지 못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유머 1번지', 가장 최근의 '개그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유머와 위트를 뒤섞은 콩트로,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쓴 쩨쩨한 정치에 대한 날 선 풍자로 서민에게 웃음을 주며 번성기를 누렸다. 이제 코미디 프로그램은 명맥이 끊겼다. 팍팍한 나날의 삶에서 그나마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는 노릇을 하던 코미디가 없으니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주던 그 많던 코미디언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웃음이 항상 기쁜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웃음은 복잡한 프로세스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한 표현이다. 웃음은 대상과 당위적 기대 사이에 비대칭이 형성되는 찰나에 솟구친다. 잘 차려입은 신사가 거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질 때 사람들은 웃는다. 이때 제3자는 그 실수의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는 안도감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웃음에는 주체의 우월감과 짓궂음이 묻어난다. 타자의 낭패에서 즐거움의 계기를 찾는 이 무의식의 행동에 깃든 짓궂음은 악취미에 지나지 않는다.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압달라에서 살았는데,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가진 철학자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이 아흔 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온종일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구로 나와서 부둣가 노동자를 바라보며 웃어대는 그를 가리키며 노망이 들었다고 수군거렸다. 유명한 의사인 히포크라테스가 이 늙은 철학자를 관찰한 뒤 그가 미친 것도, 병에 든 것도 아니라고 단정했다. 늙은 철학자가 온종일 발작하듯이 웃어댄 것은 주민들의 부조리한 상업 활동과 어리석음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었던 것이다.생리학자들은 웃음이 인간 내부에 있는 과도한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코미디언들의 바보 연기가 웃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실이' 배삼룡, '맹구' 이창훈, '영구 없다'의 심형래 같은 바보 연기의 달인들은 무의식 중에 우리 안의 우월의식을 부추긴다. 그들이 연기한 바보스러움과 엉뚱함이 우리 안의 '자만과 착란'을 자극해 웃음을 터지게 한다. 광대의 익살극이 유행하던 시대의 천재 시인 보들레르는 웃음을 '불행의 징후'라고 했다. 웃음이 제 고통에 대한 신체적 경련일 때, 혹은 제 자만의식을 분출하는 행위일 때 이것은 내면의 불순물이고, 제 안의 '불행의 징후'를 타인에게 되비춘 것에 지나지 않을 테다.인간은 웃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웃음은 근심과 시름을 잊게 하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고, 억압과 고통에 맞서는 비판과 저항의 뜻을 담아낸다. 웃음은 근엄한 독재와 파시즘, 광신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악에 항변하는 저항의 한 방식이었다. 경제 불황에 전염병 팬데믹이 덮치면서 서민의 삶은 더욱 암울하고 팍팍해졌다. 그럴수록 유머와 웃음이 필요하다. 웃음은 현실 극복 의지를 북돋는 청량한 자극제가 되거나,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들에 찌든 마음의 치유제가 될 수도 있을 테다. 맘껏 웃다 보면 감정을 옥죄는 불안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진 자리를 '먹방'이 꿰찬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매몰된 개인 미디어에서 방출하는 '먹방'이 자아내는 웃음은 상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코미디를 대신하는 '먹방'은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비틀린 웃음만을 낳는데, 그런 웃음은 가짜 치료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진짜 즐거움으로 꽉 찬 유머들, 남이건 자기건 아무도 해치지 않는 무해한 웃음들이다. 그런 유머와 웃음들이 우리를 살리는 명약이다. 우리를 웃기는 코미디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들의 활동 무대인 공중파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하기를 기다린다.

2021-03-18 16:14:13

[매일춘추] 예술의 일상화

[매일춘추] 예술의 일상화

지난 2월까지 진행된 '우리 동네 미술'은 2020년 전국 228개 지자체에서 진행된 역대 최대 규모의 예술 뉴딜 사업이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화 예술 분야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759억원을 지원하고 각 지자체에서 189억원을 매칭해 총 948억원 규모로 진행되었다.지난해 8월부터 추진된 이 사업의 실질적인 수행은 약 3~4개월 남짓이였기에 사후관리나 설치 장소의 특수성 등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공공미술을 통한 도시 환경의 변화와 예술의 일상화를 이루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공미술은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에 의한 조형물이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1995년부터 연면적 1만㎡ 이상 건축물의 건축비 1%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조각 등 미술작품에 사용하도록 돼 있다. '퍼센트 법'이라고도 불리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2011년부터 선택적 기금제가 도입되어 미술작품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일정 금액을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하고, 작품 구매금액 비율도 건축비의 1% 이하로 경감할 수 있도록 개정하였다.공공미술은 초기 기념비적인 조각에서 건축장식물(건축미술품)으로 변화하였고, 최근에는 환경조형에서 공동체 미술에 이르렀다. 2006년 복권기금을 이용한 도시예술 캠페인을 통해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이 탄생하여 환경조형을 통한 도시 재생에 성공하였다.그러나 이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며 무분별한 소음, 사생활 침해 등 주민들의 잦은 불편으로 이어지자 벽화는 제거되었다. 결국 공동체 미술의 실패 사례로 남아 있다. 이를 계기로 공공미술의 범위와 역할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되었고, '정숙관광 캠페인'과 같은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2016년 서울 쉐이크쉑 강남 1호점 오픈 당시, 공사장 주위에 임시가림막을 설치해 그곳에 'MEET UP, POWER UP'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매장 앞을 지나는 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 휴대폰 충전 케이블을 뒀다. 공사장 임시가림막 작품(호딩아트)을 선보여 지속적인 작품이 아닌 일시적인 상황에서도 공동체적 공공미술의 역할을 부여한 성공적 사례다.공공예술은 대중을 위한 미술이다. 도시의 흉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간을 향유하는 시민들의 일상과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 기본요건이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공공성과 공간성, 환경에 맞는 적절성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체계적인 관리와 지속적인 관심으로 작품 가치를 보존하는 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3-18 11:49:04

[기고]대구 생활치료센터, 희망을 심다

[기고]대구 생활치료센터, 희망을 심다

작년 2월 18일 대구 지역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확진자는 급격히 늘어나 병실 부족으로 자택에서 입원 대기 중이던 환자가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일까지 발생하는 등 지역 의료 시스템은 그야말로 카오스 직전이었다.전대미문의 사태에 직면한 시민들은 막막하고 암담했지만 결코 침착함을 잃지 않았으며, 대구시와 정부 역시 좌절하지 않았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대구시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댄 결과 무증상·경증 환자들이 생활하며 치료받을 수 있는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1년 전, 세계 최초의 생활치료센터가 대구에서 열렸다.하지만 의료시설이 아닌 곳에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감염병 관리에 필요한 기준을 충족해야 했고, 생활치료센터 인근 지역민들의 불안감도 불식시켜야 했다.이에, 대구시는 중앙 부처와 한마음 한뜻으로 센터 운영에 적합한 시설을 찾기 위해 2주 동안 밤낮으로 전국 곳곳을 누볐다. 총 이동 거리만 6천450㎞에 이르렀다. 주민 간담회를 개최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면서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도 구했다.금석위개(金石爲開)라 했던가. 어떤 일이든 강한 의지로 전력을 다하면 쇠와 돌도 열리게 한다는 말처럼 작년 3월 2일, 대구시는 동구 혁신도시에 소재한 중앙교육연수원에서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시작했다.이후 경북, 충남·북, 전북 등 전국 14개소에서 대구 생활치료센터가 60일간 운영되었다. 이 기간 동안 총 3천25명의 무증상·경증 환자가 입소해 2천844명이 완치돼 퇴소하였으며, 완치율은 무려 94%에 달했다. 누적 종사자는 총 1천601명으로 이 중 의료진이 701명, 중앙 부처·군·경찰·소방 등에서 470여 명, 대구시에서 430여 명의 직원이 교대로 파견근무를 하였다.그리고 지난겨울, 3차 대유행이 시작됨에 따라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수도권의 생활치료센터 개소에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으며, 지역 환자를 위해 12월 초부터 안동 인문정신연수원, 경주현대자동차연수원,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차례로 생활치료센터를 개소하였다. 개소 후 현재까지 총 385명의 환자가 입소해 360명이 무사히 완치되었으며, 단 한 건의 사건·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지난 1년간 2차례에 걸쳐 생활치료센터를 준비하여 운영하였고, 아직도 코로나19와의 기나긴 싸움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다행히 확진자 수가 감소함에 따라 현재는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잠시 중단하고 있다.돌이켜 보면,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면서, 힘든 일보다는 감사한 일이 더 많았다.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선뜻 시설을 내어 주신 기업과 기관 관계자분들과 응원 현수막, 손편지로 환자들의 쾌유를 기원하고 종사자들을 격려해 주셨던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은 언제까지나 가슴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무엇보다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한다고 했을 때 전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주신 의료진과 군인, 소방, 그리고 대구시 공무원들이 흘린 땀과 노력에 너무나 감사드린다.3차 대유행을 끝으로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대유행이 다시 오더라도 우리 대구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위대한 대구 시민 정신을 바탕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대처해 나갈 것이다.우리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고, K-방역의 핵심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생활치료센터가 그 희망의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는다.

2021-03-18 11:48:15

[매일춘추] 코로나19의 선물, 도서관 비대면 서비스

[매일춘추] 코로나19의 선물, 도서관 비대면 서비스

"코로나로 사람들과 만남이 별로 없어 우울했는데 온라인 책모임으로 마음껏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해요.""낮에는 아이들 돌보느라고 시간이 나지 않았는데 밤에 온라인으로 강좌가 열려 너무 좋아요."지난 3월 초에 개강된 온라인 책 읽기 강좌 참가자들의 반응이다. 이 강좌는 도서관이 문을 닫은 오후 8시부터 9시 반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도서관에 찾아와서 참여하던 기존 프로그램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였다.대구지역 공공도서관은 코로나19의 위기를 기회의 발판으로 삼았다. 작년부터 비대면 또는 온라인으로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서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했던 작년 2월 말 도서관은 전면 휴관이 되었다. 책 대출은 물론이고 모든 강좌와 행사가 전면 취소되었다. 그러나 4월 초부터는 시민들의 독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했다. 읽고 싶은 책을 예약하면 사서가 서가에 가서 책을 뽑아서 책소독기에서 소독 처리한 후 봉투에 담아 비대면으로 전달하는 '워킹스루 대출'도 처음으로 시도했다.온라인 프로그램도 새롭게 개설되었다. 줌(Zoom), 웹엑스(Webex), 네이버밴드 등을 활용하는 비대면 강좌로 전환했다. 사서가 먼저 프로그램 사용법을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익혔다. 그렇게 익힌 사용법을 강사와 수강생에게 전수하여 온라인 강좌를 개설했다.전시도 온라인으로 했다. 저작권 관련 법적 절차를 확인한 후 원작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전시물을 파일로 작업하여 홈페이지에 올렸다. 코로나19 등 질병과 관련된 책을 주제별로 추천하는 'e-북큐레이션',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남기는 '한 줄 독서방', 집에서 가족끼리 책을 낭독하고 후기를 남기는 '가족 낭독회' 등도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했다.독서강연회도 랜선 라이브로 개최했다. 거리두기 2단계였던 지난 1월 말이다. 처음에는 '온라인이라 신청자가 있을까?' '강사의 일방적인 전달식 강의로 지루하지 않을까?' '영상과 음향 상태는 문제가 없을까?' 등 고민이 많았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사서와 강사는 수차례 협의했다.그 결과 사서가 MC를 맡아 질문하면 강사가 대답하는 방식의 독서강연회를 진행했다. 초청된 학부모 두 명은 강사에게 집중하며 눈을 맞추고 리액션도 하며 현장감을 살렸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신청자도 많았고 프로그램은 대면 강연회 못지않게 활발하고 알차게 마무리되었다.참가자들의 소감도 좋았다."안방에서 생생한 강의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채팅창으로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바로 답을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행사 후 도서관 유튜브 채널에 강연회 영상을 업로드하여 학부모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여러가지 비대면 행사와 강좌를 운영하면서 교훈도 얻었다.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책이며, 코로나19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은 '책 읽기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도서관 주간이 있는 4월이 다가온다. 예년과 다르게 이번 도서관 주간에는 비대면 행사가 다양하게 마련될 것이다. 사서들은 비대면 행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시민들도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서 도서관 행사에 참가할 것이다. 도서관의 이런 비대면 서비스는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더 진화되고 확장되어 시민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것이다. 위기는 위험하지만 또 다른 기회다.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2021-03-18 11:44:31

[도태우의 새론새평] 문 정권을 반인도범죄 공범으로 심판할 자는 누구인가

[도태우의 새론새평] 문 정권을 반인도범죄 공범으로 심판할 자는 누구인가

지금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제46차 유엔 인권이사회 정기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올해도 역시 주요 의제 중 하나는 북한 인권 문제이다. 매일같이 북한 인권에 관한 고강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특히 3일 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북한 내의 반인도범죄에 대해 기소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는 '인도(人道)에 반하는 죄'라고도 하며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가할 정도로 중대하고 조직적이며 광범위한 인권침해 범죄를 가리킨다. 2차대전 후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에서 개념이 형성되어 1998년 로마규약에 의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창설로 체계를 갖추었다. 반인도범죄는 개인이나 작은 집단이 주체가 될 수 없고 국가기구나 그에 준하는 조직을 갖춘 범행 주체를 상정한다. 북한의 김정은과 보위부 등은 이미 유엔의 조사를 통해, 북한 주민을 상대로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반인도범죄자로 결론 내려졌다.북한이 이처럼 반인도범죄의 대명사가 된 데는 7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충격적인 보고서가 큰 역할을 했다. 런던, 도쿄, 워싱턴, 서울 등에서의 공청회와 증언들이 집대성된 이 보고서에 소개된 끔찍하고 심각한 사례들 중 두 가지를 들어 본다."김 씨는 감방 출입문 높이가 80㎝밖에 되지 않아 40명과 함께 수감된 감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손과 무릎으로 기어 들어가야 했다. 계호원은 '이 감옥에 들어오면 사람이 아니고 동물이기 때문에 이 감옥에 들어오는 순간 동물처럼 기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경비견들이 어린이 수감자를 위한 학교에서 난폭하게 덤벼들어 세 명의 어린아이를 죽였다. 지휘관은 개들의 풀린 상태에 대해 일단 경비견 훈련사를 호되게 꾸짖었으나, 추후에 다른 경비병들 앞에서 그가 정치범들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게 경비견을 잘 훈련시켰다고 칭찬하였다."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범죄라 불릴 만한 사례가 보고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번 회기 마지막 날인 3월 23일에는 북한인권결의안이 19년째 연속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전 세계 43개국이 공동 제안한 이 결의안에 우리나라는 3년 전부터 제안에도 불참하고 있다.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0일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과 협상 시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룰 것,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을 비롯해 북한인권법을 제대로 시행할 것 등 권고 사항 8개를 발표했다. 북한 인권에 눈감아 온 한국 정부의 직무 유기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사실 문재인 정권은 직무 유기를 넘어 적극적인 협력 행위 또한 서슴지 않아 왔다. 귀순한 국민 2명을 강제 북송하여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대북전단금지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노예노동인 개성공단의 재개를 주장하고,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꾸는 법 개정을 시도했다.문 정권은 정부와 집권당의 지위에서 이런 일을 벌여 왔기에 반인도범죄의 구성 요건인 대규모성, 조직성, 중대성까지 충족시켰다. 우리나라는 2007년 로마규약을 국내법화한 '국제형사재판소법'을 제정한 바 있다. 이 기준에 따를 때 문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북한 반인도범죄의 지속에 고의적으로 협력한 공범(共犯)으로 구성되어 우선적인 관할권을 가지는 우리나라 법정에서 심판이 가능하다.북한 김정은과 문 정권이 반인도범죄 행위로 재판을 받는다면 그 진정한 심판관은 누구일까? 심판대에 앉아 있는 판사들일까? 차라리 80㎝ 감옥 문을 기어간 수감자들, 수색견에 물려 죽어간 어린이들, 안대를 떼고 북한 병사를 보자 무릎이 풀려 무너져 내린 강제 북송자들, 그 한 사람마다 지닌 양도 불가능한 존엄성이 진정한 심판관이 아닐까?도스토옙스키의 우화적인 소설에서는 종교재판으로 하루에 100명을 화형시킨 대심문관이 남루한 옷을 입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예수를 도시 밖으로 쫓아 버린다. 예수는 영원히 쫓겨나 버렸을까? 역사는 쫓겨난 자들 속에 숨겨진 존엄이 보이지 않는 '대심판관'으로 되돌아옴을 거듭 웅변하고 있다.

2021-03-17 11:42:25

[기고]4차산업혁명시대 맞춤형 기후변화 대응

[기고]4차산업혁명시대 맞춤형 기후변화 대응

최근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을 활용해 봄꽃 개화 시기를 분석했다.인공지능 기반의 통계 모델인 기계학습 기법을 적용해 관측 지역의 온도, 고도, 강수량, 전년도 단풍 시기는 물론 12년간 축적된 실제 개화 시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개화 시기를 예측했다.올해의 산림 봄꽃 만개는 3월 중순 무렵부터 제주도에서 시작하여 완도를 거쳐 내륙으로 점점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관측 지점의 해발고도가 높은 지리산, 소백산, 속리산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봄꽃 만개가 늦을 것으로 알려주고 있다.이러한 인공지능은 1943년 인공지능의 일종인 신경망 모형(Artificial Neural Network)이 제안되면서 시작되었고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1956년 존 매카시가 사용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인공지능 기술은 학습을 위한 데이터가 필요했으나 2000년대 이전까지는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 그리고 사물인터넷(IoT)의 출현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정보 수집(인터넷・스마트폰・IoT)-빅데이터-클라우드-AI로 이어지는 산업 플랫폼의 구축과 이를 기반으로 한 산업 환경의 변화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고 있다.21세기 인류의 최대 난제는 양극화와 기후변화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집중호우가 증가하면서 인공지능, 수자원 위성 등 첨단기술로 집중호우와 이에 따른 피해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이를 활용한 선제적 예측・분석 체계, 즉 과학적 홍수 관리를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정부 정책에 발맞추어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유역본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여 댐 운영 고도화 기법을 마련하고, 홍수기 최적의 댐 운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댐 운영 고도화 기법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특히, 정부가 지난 2004년 9월 '치수 능력 증대 기본구상'을 수립하고 전국 24개 댐이 극한홍수 시 댐의 붕괴를 막고 댐 하류 지역민의 소중한 재산과 인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한 '극한홍수 대응사업'과 댐 운영 고도화의 연계 시행은 극한홍수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든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최근 지역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고 있는 남강댐 극한홍수 대응사업에 대해서도 댐 시설을 개선하는 구조적 대책과 운영을 고도화하는 비구조적 대책을 병행하여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이에 더하여 물관리 일원화 이후 유역 내 수량-수질-수생태를 연계한 통합 물관리 체계 구축에 착수하고 단계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여 고도화를 추진 중에 있다.댐 운영 시 수량과 수질을 동시에 고려하는 모델링 체계 구축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녹조 예측 고도화 등을 동시 추진함으로써 수질사고 및 녹조 발생 등의 이슈 발생 시 적기에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댐 운영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앞으로도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유역본부는 극한홍수 대응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과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기후변화 대응에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댐 운영 기법 고도화 연구를 추진할 것이며, 사후 관리가 아닌 사전 예측 시스템 마련으로 물관리 선진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2021-03-17 11:25:41

[매일춘추] 예술의 종말

[매일춘추] 예술의 종말

마르셸 뒤샹(1887~1968)은 소변기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상의 오브제가 미술작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말년에 그는 아예 미술작업을 하지 않고 체스를 두며 무위의 시간을 보낸다. 엔디 워홀(1928~1987)은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를 쌓아올려 작품으로 둔갑시켰다. 이 작품을 보고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1924~2013)는 '예술의 종말'을 선언했다.백남준(1932~2006)은 바이올린을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고, 서서히 들어 올렸다가 전광석화처럼 내려쳐 부수고, 멀쩡한 피아노를 밀어 넘어뜨리곤 했다. 덕분에 그는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존 케이지(1912~1992)는 무대에 올라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냥, 내려왔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 '4분 33초'다. 관객들은 자신의 숨소리와 기침소리만 감상한 셈이다.제프 쿤스(1955~ )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석이나 막대풍선 모양 강아지를 확대하여 비싼 값으로 팔며 유명해졌다. 데미안 허스트(1965~ )는 돼지를 반으로 갈라 포름알데히드에 넣어 전시했고, 실제 인간의 두개골에 8천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았다. 제목은 '신의 사랑을 위해'였다.아, 예술가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예술의 자기 전복적 정체성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 식으로 말하자면 '예술은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형식이다'. 콜럼버스는 계란을 깨서 세웠다. '콜럼버스의 달걀', 발상의 전환이다. 예술은 참을 수 없는 반복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의 형식, 하나의 세계를 깨고 새롭게 태어난다.그렇게 끝없이 깨고 예술의 정의를 확장시켜 나가면 하얀 캔버스와 텅 빈 전시장만 남겠다(실제로 그런 작품과 전시회도 있었다). 그렇게 예술은 찬란하게 산화한다. 아서 단토의 말처럼 예술의 종말이다. 그러나 예술의 종말은 예술의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생만 짧지, 예술은 길다. 예술을 정의하여 화이트 박스에 가두려는 작가들의 덧없는 시도, 즉 예술의 내러티브가 종말을 맞이했을 뿐이다.예술가들은 예술을 전복하고 살해하지만, 예술은 오히려 기화하여 우리의 삶과 일상 속으로 스민다. 아니, 사실은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아득한 과거부터 예술은 우리의 삶속에 있었다. 예술은 일상 속에서 매 순간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곳곳에 존재한다.그런데 어디에나 예술이 있고, 누구나가 예술가라면, 예술가는 구차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바빠 주위에 널린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보는 것은 단지 망막에 비친 이미지가 아니다. 대상과 내가 만나 교호작용해야 한다. 꽃도 이름을 불러줘야 의미가 된다.시멘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작은 꽃. 우연히 발견한 벽면의 균열. 땅에 떨어진 나비. 도시를 닮은 기판.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 그리운 사람… 사람들은 그런 아름다움을 볼 여유가 없다. 보고도 예술인지 모른다. 그래서 굳이 시간을 내어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러 간다. 자신의 감성으로 세상을 보면 일상이 예술이고, 누구나 예술가다.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3-17 11:24:18

[경제칼럼] 실패율 90%에 도전하라

[경제칼럼] 실패율 90%에 도전하라

"우리는 실패율 90%에 도전한다."이는 필자가 2017년 국내 대기업 재직 시절 도입했던 사내 벤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C랩'의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기자 간담회에서 최종 목표로 내세웠던 말이다. 당시, 다수의 기자가 "실패율 90%에 도전이라니, 성공률에 대한 오타가 아닌가?" 하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실패율에 도전하자는 것이 맞다. 이는 10%의 낮은 확률로 성공할지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패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이처럼 실패가 예측되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부딪히고 깨지며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비록 실패할지라도 이는 성공보다 가치 있는 경험임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높이뛰기 1m라는 비교적 쉬운 목표를 100번 달성하는 것보다, 높이뛰기 2m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100번 실패하더라도 결국에는 1m 50㎝의 높이뛰기에 성공하게 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또다시 도전하는 일은 창조를 위한 건설적인 실패일 수 있다.빌 게이츠는 실패 기업에 몸담았던 간부를 의도적으로 채용하고 있으며,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우주 비행사를 뽑을 때 실패 경험이 없는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실패를 겪지 않은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나, NASA는 실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선발했다.여기에서 분명한 전제는 실패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보다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일어선 사람이 더 강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주여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들을 극복할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실패 경험이 필수라고 판단한 것이다.학생들에게 실패 이력서를 쓰도록 권한 스탠퍼드대학의 티나 실리그 교수는 "실패는 미래의 같은 실수를 피하게 한다. 이따금 실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도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는 반드시 실패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우리 사회는 실패를 권장하면서도 정작 실패하게 되면 오롯이 개인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곤 한다. 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려면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시스템과 실패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미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일찍이 실패를 통한 배움을 연구하고자 실패학을 창시하고, 실패에 담긴 성공 법칙을 발굴해 활용하고 있다. 805번의 실패 끝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비행, 그리고 1만여 번의 도전 끝에 이루어진 에디슨의 전구 발명은 실패에 대한 정의와 가치를 재조명하게 한다.'실패는 도전의 역사'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마주하게 된 실패의 결과를 용인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성공으로 가는 길에서는 무수히 많은 장애물을 만나 실패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받아들이고, 실패의 무대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성공 창업자들을 배출하고 있는 미국은 실패자들의 풀(Pool)을 관리해 실패한 이들이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결국, 그 안에서 연쇄 창업이 일어나게 되고 성공 창업자들을 배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실패자들에 대한 비난이나 낙인이 아닌, 실패를 격려하는 분위기를 통해 그들이 도전의 풀(Pool)을 떠나지 않게끔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마지막으로 우리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적당한 성공을 꿈꾸지 말고, 장엄한 실패에 도전하라. 성공률을 지나치게 높게 잡아 단순한 목표만을 추구하는 안일한 태도보다, 무조건 부딪히고 깨지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 청년들의 실패를 경험과 자산으로 인정하는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와 법적·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90%의 실패율도 두려워하지 않을 청년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2021-03-16 13:11:51

[종교칼럼] 학교 폭력

[종교칼럼] 학교 폭력

요즘 신학기가 되어 한 학년 올라가는 학생들 마음이 부풀어 올라서 매우 들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매스컴을 통해 유명한 운동선수, 연예인들이 학교 폭력의 과거 주인공이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부모님들과 학생들이 학교를 두려움의 장소로 떠올린다면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물론 유명하고 특별하지 않아도 다른 학생을 괴롭혔던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의 명성을 한 눈에 받던, 우리가 좋아했던 유명인사가 학창시절에 자신의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해 나보다 가정형편이 어렵다거나, 신체적으로 약하다거나, 공부에서 뒤진 친구들을 괴롭혀서 희열을 느꼈던 학생이었다면 지금 아무리 인기 절정이라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재능은 인성이 바탕이 되어서 이루어졌을 때 그 아름다움은 더할 나위가 없다. 조금이라도 피해 학생의 심정으로 돌아가봤다면 이렇게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한참 새싹이 돋아오는 것만 봐도 마음이 설레고 부끄러워하고 가슴이 뛰는 친구들을 새싹 밟아 버리듯이 잔혹하게 밟고, 뜀뛰기를 시키고, 용돈을 뺏고, 이유 없이 빨리 오면 빨리 왔다고 때리고, 늦게 오면 늦게 왔다고 때리며, 같은 동료끼리 자기 말을 안 듣는다 하여 물을 뒤집어씌우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가두고, 낄낄대며 비웃고, 이러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것은 언론을 보는 우리 자신도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다.피해 학생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우리가 판단하는 것 이상으로 존재감이 없고, 자신의 가치성도 느끼지 못하며, 같은 동료끼리 왕따, 공갈, 협박, 모욕 등 당하는 것은 모든 세상사 일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 원한으로 가득 찬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다. 또는 우울증으로 발전해 학창시절의 트라우마가 지워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성격형성과 감정이 학창시절에 가장 많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생활도 그때 보고 느낀 것으로 평생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절에 감성이 풍부해야 할 나이에 누군가에게서 짓눌리고 억압당하고 살았다면 어른이 되어서 어떤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가해자는 나의 유명세 때문에 잘못했다고 하는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피해자를 만나서솔직하게 그 시절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고 용서와 진 참회를 해야 할 것이다.피해자도 분노를 오래 가지고 있으면 나에게 자비로운 마음이 없어져 버리니 가해자가 참회를 한다면 용서를 해주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좋다.그리고 사회에서도 법적인 제도를 마련하여 대처를 해야 되겠지만 그보다 각자의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친구와의 우정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을 잘 훈육하여 좋은 관계를 맺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원한은 '이 사람이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 손해를 끼친다, 끼칠 것이다'라고 해서 생기는데 '정법염처경'에는 "분노는 지옥으로 이끄는 첫 번째 원인이며, 사람을 지옥으로 가게 하니, 마치 노끈처럼 너를 결박해 지금 이런 고통을 받게 한다. 마음이 분노에 얽혀 판단력이 없는 사람은, 항상 분노를 버리지 않고 언제나 그 마음이 고요하지 않는 것이 마치 굴속에 뱀과 같다. 그리고 화내는 마음은 좋은 법의 곡식들이 잘 익은 뒤에 내리는 우박과 같아서 좋은 곡식들을 못 쓰게 만든다. 오직 바른 지혜의 눈만이 그 어두움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진솔한 진 참회가 되었을 때, 순식간에 화의 얼음이 스르르 녹아질 것이다.화내는 마음은 불과 같아서 모든 계율과 법과 바른행을 부셔버리고 마음속에 머무르면서 마치 원수의 집에 들어간 것과 같다. 화내는 마음을 버려라. 자비가 그것을 다스린다.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2021-03-16 11:13:31

[매일춘추]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매일춘추]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가만히, 10분 멍TV'라는 EBS 프로그램이 있다. 멍하니 넋을 놓고 보게 되는 10분 짜리 영상이다. 초록의 숲길을 걷는 10분, 수조 속을 유영하는 거북이를 담은 10분, 불을 때는 시골 아궁이를 담은 10분 등 종류도 다양하다.개인적으로 일몰 직전 광안대교를 담은 10분을 가장 좋아한다. 검은 실루엣의 광안대교가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해변의 정경 속에 붉은 석양을 품은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반짝이는 파도가 기분 좋은 리듬으로 철썩인다. 고요한 10분의 풍경은 생각보다 큰 평온을 준다. 무엇보다 '멍TV'라는 이름과 달리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 좋다. 하찮은 상념일지라도 사색의 10분이 주는 충만함은 꽤나 크다.동영상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보듯 영상은 기본적으로 움직임을 전제한다. 영상의 홍수 시대, 우리가 접하는 영상의 대부분은 현란한 움직임을 담고 있다. 움직임이 격하고 현란할수록 우리는 그 영상을 '감각적'이라 부른다. 드라마도, 영화도, 유튜브 동영상조차도 감각적이지 않으면 외면 받는다.사실 모든 미디어 콘텐츠는 장르에 맞는 문법을 가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TV 속 광고영상을 보라. 멈춤이라고는 없다. 광고 속 피자를 찍는 카메라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정지화면인 듯 보이는 장면조차 미세하게 상하좌우, 그리고 앞뒤로 카메라가 움직인다. 화면의 전환도 빠르다. 재생속도도 빨라졌다 느려졌다 현란하긴 마찬가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광고영상은 목적 달성을 위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이용한 그만의 장르문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이런 광고 스타일의 현란한 영상 문법은 이미 다른 영상 장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 역시 익숙해져 가고 있다. 문제는 시각적 본능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영상이 깊은 사고의 여지를 앗아가 버린다는 데 있다. 생각할 겨를 없이 눈이 반응하고,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한 때 바보상자라 불리며 마법의 움직임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TV는, 동영상 플랫폼이라 불리는 더 빠르고 현란한 움직임에 이미 오래 전 자리를 내어 주었다. 스마트폰이라는 더 작고 편리한 디바이스가 결합되면서 그 파괴력은 훨씬 더 강력해졌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 영상의 현란함이 생각을 잠식해 나가는 것이다.영상은 움직임과 멈춤의 조합이다. 영상의 훌륭함을 결정짓는 요인은 움직임보다 멈춤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멈춤 속에 사색의 공간이 자리할 여지가 큰 까닭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따듯한 차 한 잔을 내어 멍TV 한 편을 틀어야겠다. 눈이 아닌 내 생각에 자극을 주어야겠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3-16 11:12:36

[기고]현진건과 이상화를 생각하며

[기고]현진건과 이상화를 생각하며

대구가 낳은 문학가 현진건과 이상화는 꽤나 비슷한 삶을 살았다.1900년에 대구에서 태어난 현진건은 1921년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 1924년 '운수 좋은 날', 1926년 '고향'을 발표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다. 동아일보에 재직하던 1936년에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보도하면서 사진의 일장기를 말소시킨 일로 일제에 구속돼 옥고를 치른다. 현진건은 신문사 강제 퇴사 이후 줄곧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지만 끝까지 친일문학을 거부하다 1943년 4월 25일 타계했다.1901년에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화는 현진건의 추천으로 동인지 '백조'의 일원이 된 후 1923년 '나의 침실로',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해 한국문학사에 큰 이름을 남긴다. 윤봉길 지사가 '개벽'에 발표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보고 감동해 중국으로 망명한 일화는 유명하다. 3‧1운동과 'ㄱ당' 사건 등 항일운동에 헌신한 독립유공자 이상화는 현진건과 같은 날인 1943년 4월 25일 별세했다.가족사에도 비슷한 점이 있다. 현진건의 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현정건이고, 이상화의 형은 중국군 장군으로서 임정을 크게 도운 이상정이다.똑같아서 마음이 아픈 것은 두 분의 삶과 죽음만이 아니다. 걸출한 문학가이자 언행일치를 생의 최고 덕목으로 여긴 선비의 전형을 보여준 두 분을 후대가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있는 점 또한 같아서다.우선 문학관의 부재가 뼈아프다. 친일 행위를 한 유명 문인들을 섬기는 문학관은 전국 방방곡곡에 수없이 많지만 참된 지식인의 면모를 온몸으로 보여준 두 독립지사를 기리는 '이상화 문학관'과 '현진건 문학관'은 없다.문학관에 대해서는 두 분의 옛집이 모두 계산동에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면 한다.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만 현진건 생가는 계산동2가 169번지에 있었고, 이상화가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집은 현충시설 '상화 고택'으로 변하여 계산동2가 84번지에 남아 있다. 삶의 궤적이 거의 흡사하고, 집도 인근인 만큼 '이상화 현진건 문학관'이라는 공동 이름의 기념 공간이 탄생하면 금세 전국적 지명도를 얻게 될 것이다.이상화 문학상과 현진건 문학상에 대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문학상 대상을 차세대의 주역인 학생들로 했으면 한다. 기성 문인들을 대상으로 하면 문학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그 분야 전문가들로 제한되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면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장점이 있다.또 하나, 상의 성격과 명칭도 바꿨으면 한다. 두 분은 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시인 또는 소설가로만 정체성을 좁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상화 문학상'과 '현진건 문학상'을 '이상화 상'과 '현진건 상'으로 바꾸어 두 분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도 격려하면 더욱 의미 있는 상이 될 것이다.인구 18만 명의 경기도 안성은 향토 출신 박두진 시인 탄생 100주년에 기공해 타계 20주기를 맞아 2018년 '박두진 문학관' 준공식을 가졌다. 인구 250만 명의 대구는 이상화, 현진건 타계 78주기를 넘기고 있다.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이상화 현진건 두 분을 제대로 현창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후대인인 우리의 역사 인식이 흐리기 때문이다. 두 분의 기일쯤에 바람직한 대책이 발표되기를 바란다.

2021-03-15 11:41:31

[세계의 창] 여성 혁명

[세계의 창] 여성 혁명

"사상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운전을 하고 있어요. 정말 흥분이 돼요. 역사적인 순간이죠."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도로 주행을 한 사람의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자동차를 사고 시험 운전을 하는 사람의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카리마 부카리다. 2018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천 달러를 넘는 나라에서 여성이 운전을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말로 들린다. 카리마는 캐나다에서 운전을 배웠지만 사우디아라비아로 귀국하는 순간 운전을 할 권리를 빼앗겼었다.중동의 일부 나라에서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성을 소유물로 보는 부족 관습이 남아 있다. 여성의 운명은 세 남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은 여기에서도 통한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엄한 보호 아래,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그리고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에게 '보호권'은 이전된다는 것.'중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일부다처제이다. 하지만 일부다처제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매우 인도주의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자원이 부족하던 6~7세기, 다른 부족을 침입해서 식량과 자원을 빼앗아야 했고, 그래서 종교도 생존을 위한 전쟁은 용인해 주었다. 이슬람 이전에는 여아가 태어나면 사막에 묻어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전해진다. 성장하기 전에 입을 줄여버리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할까. 전쟁이 잦아지면 인구의 불비례 현상이 발생한다. 전투가 이어지면서 많은 미망인들이 생겨났는데, 전근대 부족사회에서 미망인이라는 지위는 요즈음으로 치면 한순간에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와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는 남성 한 명이 네 명의 여성과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현재의 사회보장제도와 비슷한 역할을 하도록 했다는 것. 전쟁으로 줄어든 남성 인구와 여성 인구의 비율이 1대 4 정도가 되었으며 이것이 일부사처제의 기원이라는 설명이다.물론 21세기에 이런 설명은 현실감이 전혀 없다.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진 나라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있고 생존을 위한 전투도 일상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도 제도는 남았다.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제도와 일부다처제를 유지했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막았다. 결혼 전에 연애를 하면 가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버지나 오빠가 딸(동생)을 살해하는 '명예 살인'(Honor Killing)은 지금도 왕왕 발생한다. 요르단처럼 개방이 진행된 나라들에서는 전근대적 전통주의가 많이 사라졌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에게 운전이 허용된 것이 2018년이라면 놀랄 일이 아닌가.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을 허용한 것을 두고 아랍 문화권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 변화했다는 상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근대적인 일부다처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장하는 나라일수록 경제 발전 수준이 더 높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는 중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동에서 가장 부자 나라는 이스라엘, 1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 기준 3만3천 달러에 이른다. 노동부 장관, 외교부 장관을 거쳐 총리까지 오른 골다 메이어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장했고 2020년 UNDP 조사에 따르면 여성 불평등지수는 19위를 기록하고 있다(수치가 낮을수록 여성 지위가 높다). 반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상대적으로 더딘 팔레스타인(107위), 이집트(110위), 시리아(118위), 이라크(120위), 예멘(154위)의 경우 경제적 발전도 크게 뒤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또 대구는 어떨까. 1981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14명의 시장 가운데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국회의원은 어떤가. 16대부터 21대까지 20년 동안 대구·경북 지역구 국회의원 150여 명 가운데 여성은 단 5명(8선)에 불과했다. 3대 도시였던 대구가 현재 4대, 5대 도시로 떨어진 배경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여성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1-03-15 11:40:54

[매일춘추] 커다란, 그리고 훌륭한 야외 공연장

[매일춘추] 커다란, 그리고 훌륭한 야외 공연장

영농방식이 기계화되기 전만 해도 농촌 들녘에서는 농요를 들을 수 있었다. 농요는 농사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노래로 유희요나 의식요와 달리 고된 노동의 시름을 달래기 위한 기능이 있다. 전문 소리꾼을 통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통속민요에 비해 농요는 지역 농사꾼에 의해 구비 전승되어 온 토속민요에 속한다. 또 권역에 따라 서도민요, 경기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제주민요로 구분한다.동부민요 권역에 속하는 경상도 민요는 함경도, 강원도와 함께 메나리토리의 음악적 특성을 갖는다. 메나리토리의 음계 구성은 상행할 때 '미라도레'이며 하행할 때 '솔'음이 첨가되어 '레도라솔미'가 되는데 소리가 매우 구성지며 한탄조의 느낌을 준다. 지역마다 말씨가 다르듯 민요에도 권역별 다른 음계를 사용하거나 시김새와 요성(떠는 음), 소리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경상도 사람들이 서울말을 잘하기 힘들 듯 경상도 사람들이 경기지역이나 남도지역 민요를 잘 부르기가 쉽지 않다. 경상도 사람들이 경상도 민요를 제일 잘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대구와 경상지역 민요 전수소에서는 대부분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를 전수하고 있다. 그 까닭은 통속화된 경기민요나 서도민요가 음악적으로 활달하고 경쾌할 뿐 아니라 노래를 불러도 맛깔스럽기 때문이다.영남지역 농요에는 보리타작할 때 도리깨질을 하면서 부르는 '옹헤야'와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칭칭이(치나칭칭나네)'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영남 각 지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토속민요가 셀 수 없이 많다. 지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몇몇 곳을 지정하여 무형문화재로 보존‧전승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농사 현장에서 들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예천 통명농요의 경우 모심기소리 '아부레이수나'와 논매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캥마쿵쿵노세' 등은 독특한 방언과 음악구성으로 인기를 독차지 한다. 경북무형문화재로 안동 저전농요, 예천 공처농요, 상주민요, 구미 발갱이들소리, 자인 계정들소리, 문경 모전들소리, 그리고 대구시무형문화재로 공산농요, 달성 하빈들소리가 지정되어 있다.경상지역 머슴들의 신세 한탄소리 '어사용'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애절하다. 나무를 하거나 꼴을 베기 위해 깊은 산속에 홀로 들어간 머슴은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갈까마귀와 주고받는다.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이름하며 살건마는 니 날 적에 내가 나고 내 날 적에 너도 났는데 이내 팔자가 와 이렇노"모심기 철이 되면 하빈 들녘에서는 '모심기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모야~ 모야~ 노랑 모야~ 언제 커서 열매 열래"를 선창자가 부르는 동안 허리를 구푸려 모를 심고 "이 달 가고 저 달 커서 내 훗달에 열매 열래"를 다함께 후창하면서 구푸렸던 허리를 편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때가 되면 하빈 들녘뿐 아니라 모판이 펼쳐진 온 들판에는 농사꾼들의 우렁찬 들소리가 메아리쳤다. 들판마다 천장 없는 커다란, 그리고 훌륭한 야외 공연장이 되었다.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3-15 11:35:46

[매일춘추] 영화 속의 도서관

[매일춘추] 영화 속의 도서관

언제부터인가 도서관이 영화에 주요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고 있다. 직업이 사서이다 보니 도서관이 등장하는 장면을 매우 관심 있게 보게 된다. 도서관이 등장하는 영화 중에서도 '투모로우'와 '라라랜드'를 보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투모로우'는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기후 재난 영화다. '라라랜드'는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의 꿈과 희망을 그리고 있다.'투모로우' 배경은 세계 5대 도서관 중 하나인 뉴욕 공공도서관이다. 급격한 강추위를 피해 사람들은 도서관으로 대피한다. 추위에 떨던 사람들은 도서관 책을 장작 삼아 불을 피운다. 책을 땔감으로 사용하겠다는 말에 사서는 잠시 고민을 하지만 당장 추위로 얼어 죽을 상황을 인정하고 책을 내어준다. 빙하기로 찾아온 추위를 도서관의 책을 태우며 견뎌낸다. 도서관이 생존의 대피처가 되었다. 여자 주인공 로라 챔프먼이 사경을 헤맬 때 남자 주인공 샘 홀은 도서관에 소장된 의학도서를 찾아 병명과 치료방법을 알아낸다. 도서관과 책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라라랜드'에 등장하는 도서관은 네바다 볼더에 있는 공립도서관이다. 캐스팅 담당자로부터 미아에게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대신 받은 세바스찬. 미아의 고향 집을 정확히 모른 채 도서관 앞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먼 길을 달려 밤새 찾아간다. 도서관 앞에 도착해서 자동차의 경적을 세차게 울리자 미아가 익숙한 소리에 놀라 뛰어나온다."여긴 어떻게 찾아왔어?" "집 앞에 도서관이 있다고 했잖아!"미아는 전에 대학교를 그만두고 왜 로스앤젤레스에 왔는지 세바스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에 도서관에서 극단 배우였던 이모와 함께 자주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도서관은 어린 미아에게 배우의 꿈을 키워 주었다.두 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도서관은 주인공들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어릴 적 꿈을 키워주는 공간이다. 이 영화들은 도서관의 역할과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체로 외국 영화에서 도서관은 슈퍼마켓처럼 일상적인 장소로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된 도서관은 영화 유명세로 관광명소가 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한국 영화 속 도서관은 등장인물이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거나, 서가 사이에서 책을 고르거나, 청춘남녀가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들 틈새로 그윽한 눈길을 주고받는 모습 정도다.최근 한국 영화가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에는 영화 '기생충'이, 올해는 '미나리'가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앞으로 도서관이 한국 영화의 배경으로 더 많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주인공이 도서관에서 자신의 꿈을 발견하거나, 책을 읽으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설정이면 어떨까. 그래서 도서관이 관광명소가 되어 더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자료를 찾고 영화를 보고 지식을 만끽하는 장소가 되길 희망한다. 우리 도서관이 '라라랜드'에 나오는 도서관처럼 많은 이들의 꿈을 키우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2021-03-15 06: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수하도'(受賀圖)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수하도'(受賀圖)

'왕세자입학도첩' 6점 중 마지막 그림인 '수하도'는 입학례를 무사히 마친 왕세자가 2품 이상 문무 관료와 종친의 축하인사를 받는 장면이다. 아들의 입학을 대견해 하며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후계자가 되기를 당부하고 관련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왕의 치사(致詞)가 대치사관(代致詞官)에 의해 낭독되고 왕세자는 이 행사를 위해 애쓴 세자궁 소속 관원과 성균관 관계자에게 포상을 내린다.왕세자 교육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왕은 권력의 정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인데다 즉위하면 특별한 결함이 없는 한 평생 계속하는 종신직이었으므로 어떤 인물이 국왕이 되느냐에 따라 국운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왕세자에 대한 존중이 왕 다음으로 중요해 왕세자 전용의 어휘가 마련되어 있었다. 호칭은 전하 대신 저하로, 덕망이 있음을 성덕(聖德) 대신 예덕(睿德)으로, 초상화는 어진 대신 예진으로, 필적은 어필 대신 예필 등으로 '슬기로울 예(睿)'자를 붙였다. 왕세자를 일컫는 말도 동궁, 춘궁, 이극(貳極), 저군(儲君), 중화(重華) 등 많다.효명세자는 입학례를 치른 2년 후인 11세 때 조만영의 딸과 가례를 올렸고 1827년 19세 때 부왕 순조의 명으로 공식적으로 국정을 돌보는 대리청정을 시작해 문예를 숭상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행하려 노력했다. 대리청정 3년 만에 22세의 나이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이 기간 동안 정치, 문학, 회화, 궁중연향과 정재(呈才) 분야에서 이룩한 효명세자의 업적은 정조를 잇는 또 한 명의 문예군주를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회화사의 업적은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 중에 제작된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이다. 천(天), 지(地), 인(人) 3본이 제작된 '동궐도'는 그 중 두 본이 고려대학교박물관과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펼치면 가로 3m 세로 6m에 달하는 거작으로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다.'동궐도'도, '왕세자입학도첩'도 순조시대 화원이 그렸다. 화원들은 주요업무 중 하나였던 지도와 기록화를 그리는 독특한 양식을 축적했다. '수하도'는 행사의 배경과 내용, 참여 인원 등이 한 눈에 파악된다. 건물은 자를 대고 긋는 계화법(界畵法)의 직선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주었고 인물은 그룹별로 정연하게 동질화시켰다. 각각의 대상을 주시한 시점(視點)은 앞에서 본 것, 뒤에서 본 것, 오른쪽에서 본 것, 왼쪽에서 본 것, 내려다 본 것, 올려다 본 것 등을 필요에 따라 섞어 전체 광경을 알기 쉽게 했다. 화원들의 오랜 경험의 결과인 이런 복합 시점은 행사의 시각적 기록물이라는 이 그림의 목적에 잘 들어맞는다. 화가의 입장이 되어 통일과 반복 속에서도 변화와 차이를 주려 했던 고심을 찾아보는 것도 기록화를 보는 재미의 하나이다.미술사 연구자

2021-03-15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투기가 아니라 부패 범죄다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투기가 아니라 부패 범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입을 모아 발본색원, 패가망신을 외치고 있다.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격노했다는 소식은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첫 메시지가 나온 지 여섯 번째 언급이었다. 같은 사안에 대해 거의 매일 대통령의 지시나 언급이 있는 것 역시 드문 일이다. 그만큼 국민의 분노 정서를 자극하는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미니 대선이라 불리는 서울, 부산 시장 선거를 앞둔 다급한 상황도 의식한 행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문제의 본질은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단순히 투기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흔히 투기는 필요악이라 한다. 투자와 투기 모두 이익을 추구하지만, 투자는 생산 활동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반면 투기는 생산 활동과 관계없는 이익을 추구한다고 한다. 투자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안정성을 전제로 하지만, 투기는 불확실성을 내포한 위험부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설명도 있다.부동산을 사면서 생산 활동을 할 목적이면 투자, 시세 차익만이 목적이면 투기라고 보기도 한다. 어떻게 설명하든 종이 한 장 차이인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투기가 좋은 일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중요한 것은 투기가 범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한국토지주택공사법은 공사의 임원 또는 직원이 비밀을 누설하거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을 금지(제22조)"하고, "공개되지 아니한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이용하여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 등을 자기 또는 제3자가 공급받게 하는 행위를 금지(제26조)"하는 규정이다. 벌칙도 상당하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22조 위반),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26조 위반)에 처한다. 부패방지법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다.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단순 투기가 아니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적처럼 "공적인 정보를 도둑질한 망국 범죄"이기 때문이다. 광명·시흥에서만 자기 이름으로 땅을 산 LH 직원이 20여 명이라고 한다. 차명이 아니라 단순 서류 대조만 해도 드러날 수 있는 본인 명의 투자를 한 직원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땅 매매가 지금까지 문제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직원들의 배포를 키웠을 것이다. '사내 복지'라는 LH 직원의 언급도 있지 않았는가. 설사 문제 되어도 업무 관련 정보가 아니라고 하면 빠져나갈 수 있거나, 땅으로 얻는 이익이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계산도 섰을 것이다. 국민의 더 큰 분노가 향하는 지점이다.본질이 범죄라면 대책 역시 그에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 정부합동조사단 등 소리만 요란한 채 변죽을 울리는 것은 국민의 분노를 키울 뿐이다. 보궐선거를 의식해서 문제가 더 커지지 않는 데 주력해서도 안 된다. 그야말로 발본색원을 위해서는 국가 수사기관의 역량을 총동원한 제대로 된 수사가 있어야 한다. 경찰을 믿지 못한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지만 검찰 배제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전수조사 주장이 이른바 물타기라 치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지방의원, 국회의원 등도 본인이나 가족이 문제 된 곳에 땅을 산 기록이 나오고 있다. 범죄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면서 이들을 포함, 정부 고위직 땅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할 필요가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재산 공개 파동이 공직자들의 청렴성을 한 단계 높이고 공직자 재산공개법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이번 파문이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까지 이어진다면 망외의 소득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도덕성이 과거 정부보다 나빠졌다"는 응답이 45.2%, "비슷하다"는 응답이 15.3%라는 한 여론조사(10일, 알앤써치)가 있었다.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진영의 유불리를 의식하지 않고 망국의 범죄를 뿌리째 뽑아낸다면 문 대통령은 국민의 박수 속에 퇴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대 여당의 이해충돌방지법 전격 입법 작전 역시 바로 이런 데 쓰여야 한다. 물론 수사 이후에 말이다.

2021-03-15 06:25:36

[기고]아동학대신고, 선택 아닌 필수

[기고]아동학대신고, 선택 아닌 필수

아동학대는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그동안 우리 사회는 부모의 체벌은 꼭 필요한 훈육이고 집안일이니 부모가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수수방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되겠다는 것이다.아동학대 피해자는 대부분 스스로 신고를 못하는 어린아이들이다. 약한 아이들을 상대로 한 폭행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가해자들이 변명한 학대 이유는 참 아이러니하다. "아기가 울어서, 밥을 잘 먹지 않아서, 그냥 기분이 좋지 않아서…" 등이다.이런 이유는 아이들이 "나를 봐 달라"고 하는 의사 표현일 뿐이다. 가해자들에게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을 학대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아이를 때리고 학대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얼마 전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적이 있다. 도착한 집은 어두컴컴하고 불결한 환경에 냉기가 가득했다. 좁은 방에는 아버지와 두 아이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추위에 떨고 있었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아이들에게 연신 폭언을 일삼고 있었다.아이는 술을 마시고 기분에 따라 폭언하고 화를 내는 아버지가 무서워 배가 고파도 '밥 달라'는 말도 못하고 있었다. 아동을 때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방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학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면담조차 강력하게 거부했다.방임도 학대다. 부모들이 간과하는 사실 중 하나가 바로 방임이다. 방임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아동들을 상대로 한 학대는 계속될 것이다.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가 출생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다. 부모는 신체적 학대나 폭언 등으로 아이의 정서를 해쳐서는 안 된다. 아동을 보호하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최근 5년간 우리 사회의 아동 수는 줄었지만 아동학대 건수는 122% 증가했다. 최근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사망 사건을 비롯해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자 국회는 물론 전 국민이 사회안전망 확보에 팔을 걷고 나섰다.국회는 지난달 26일 아동학대 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학대처벌법(대안)'을 통과시켰고 이달 1일에는 아동학대 범죄를 조기 발견하는 신고 의무 대상에 어린이집 평가제 현장평가자를 추가해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일부 개정 법률안도 발의했다.신설된 법안은 ▷아동학대 살해죄 신설 ▷아동학대 범죄로 아동 살해 시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형 ▷피해 아동에 대한 국선변호사 및 국선보조인 선정 의무 등을 포함하고 있다.경찰도 아동학대 신고 접수 시부터 이전에 신고 이력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현장 출동 시에는 피해 아동의 보호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판단, 분리 조치한다. 또 증거 자료를 확보,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재발 방지 등에 앞장서는 보호 지원을 마련했다. 그렇지만 법보다는 주변의 무관심이 더 무섭다. 학대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바로 발견 즉시 신고하는 것이다.아이들은 부모의 행동, 말투, 눈빛 하나하나에 행복해 한다. 꾸밈 없는 아이들의 웃음만큼 미소 짓게 하는 것도 없다.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꽃은 인(사람)꽃'이라 했다.아이들이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사회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매의 눈으로 살피고 신고에 앞장서야 한다. 아동학대는 신고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2021-03-14 15:47:32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 치매(인지기능 장애·CCD)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 치매(인지기능 장애·CCD)

톨리(12Y·말티즈·2.8kg)가 내원했다. 보호자가 툴리를 내려놓자 무언가에 홀린 듯 진료실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보호자가 이름을 부르면 잠시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배회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보호자는 지난해까지도 영특했던 톨리가 몇 달 사이 산책도 힘들어하며 며칠 전부터는 온종일 집 안을 배회하고 있다고 하셨다.반려견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확연히 늘어났다. 과거에 드물었던 종양질환, 퇴행성 만성질환, 치매 등의 노령견 질환이 증가하는 것도 수명의 연장과 관련이 있다.톨리의 이 같은 증상은 개 치매(CCD·Canine Cognitive Dysfunction)로 진단되었다. 개의 인지장애 또는 개 알츠하이머병이라 부르기도 한다.캘리포니아 대학의 데이비드 동물행동 클리닉(Clinical Animal Behavio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Davis School of Veterinary Medicine)의 Melissa Bai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1~12세의 개 28%가 치매 징후를 보이며, 15~16세가 되면 개의 68% 정도에서 치매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한다.◆개 치매(CCD)의 원인개 치매(CCD)는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의 고갈과 관련이 높으며, 뇌위축증과 알츠하이머병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원한 개의 치매(CCD)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감별해 내기는 쉽지 않다. 사람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으며 뇌파검사와 MRI 검사를 쉽게 활용하는 편이지만, 개는 보호자의 검사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다 보니 MRI 검사마저도 활용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개 치매(CCD)의 유형워싱턴 주립 대학 동물과학부의 Leticia Fanucchi 박사는 CCD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Involutive depression(만성 우울증) – 사람의 만성 우울증과 유사하며 불안해한다.Dsythymia(지속되는 우울증·PPD) – 혼란, 방향 감각 상실, 자기 신체에 대한 인지 결여Hyper-aggressiveness(과잉 공격성) – 뇌의 세로토닌(행복 호르몬)의 결여로 인한 공격성 증가Confusional syndrome (혼란 증후군) – 인지 기능이 현저히 악화(알츠하이머병과 유사)◆개 치매(CCD)의 증상물건 흩트리기, 좋아하던 물건에 대한 애착 감소, 불규칙한 수면, 활력 감소, 배뇨·배변 실수, 식욕 감소 또는 항진, 벽 보고 서 있기, 교감 능력 저하, 이유 없이 짓기, 공격성, 배회하기, 선회운동, 방향 상실 등 치매의 정도와 노화, 불안, 호르몬 등의 영향을 받으며 다양한 증상으로 관찰된다.◆개 치매(CCD)의 진단수의사는 개의 증상을 관찰하고, 보호자와의 문답식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개 치매의 정도를 평가한다. 노화와 여타 다른 질병으로 인해 유사 증상이 나타났는지를 감별하고자 혈액검사와 영상진단 검사를 하기도 한다.개 치매검사(CADES) 서식을 통해 개의 치매 정도는 정상적인 노화, 경도 인지장애, 중도 인지장애, 심도 인지장애로 구분한다.◆개 치매(CCD)의 치료와 예방인간 치매에 적용되는 여러 약물이 개 치매 약물로도 개발되어 있다.California Pet Acupuncture and Wellness(CPAW)의 Patrick Mahaney 교수는 항산화와 항염 효과가 있는 Silybin, S-Adenosyl Methionine (SAMe), omega 3와 omega 6, Vitamin E. 가 도움 된다고 소개한다.치매 증상을 지연시키며 예방에도 도움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성분들을 함유한 영양제와 간식들이 시판되고는 있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성분들은 공기와 접촉하면 쉽게 산패되는 성분들이므로 원료의 함량과 순도, 그리고 유통 과정에서의 안전성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섣불리 영양제를 선택하다 보면 오히려 변패된 지방이나 과량의 보존제가 함유된 불량 식품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반드시 수의사와 상담하여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개 치매(CCD) 환자의 관리이미 치매 증상이 발현된 개에게 이상 행동을 교정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개를 더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이상 행동 자체가 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므로 보호자는 개를 안정시키고 반복적인 이상행동으로 인해 상처나 통증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해 줄 필요가 있다.아침 저녁 햇살을 받으며 가벼운 산책이나 실내 운동을 시켜주면 Serotonin 분비를 촉진시킨다. 낮부터 저녁 시간까지는 좋아하는 간식을 이용한 노즈워크(탐색놀이)를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운동량을 증가시켜준다. 밤에 잠이 들게 하고 수면의 질을 높여준다.개 치매 환자의 식이 또는 영양제 처방은 노화, 만성질환, 현재의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되어야 하는 만큼 반드시 수의사의 검진을 받으신 후 처방받으셔야 한다.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2021-03-13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24. 풍산 체화정

[안동을 걷다, 먹다] 24. 풍산 체화정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4번째 이야기. 풍산장 체화정'봄꽃'은 성격이 급하다. 봄 기운을 살짝만 느껴도 지체없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빼꼼이 고개를 내민다. 얼마나 급한지 잎이 움트기도 전에 꽃부터 피우는 꽃들이다. 순서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자연의 섭리지만 성격 급한 봄꽃은 참지 못한다.눈 내리는 겨울, 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동백은 붉디 붉은 꽃잎째 떨어뜨리며 전령사 노릇 마다하지 않는다.남도는 봄꽃이 한창이지만 산골 깊숙한 안동에는 봄꽃 소식이 이제 '올락말락'한다.여긴 동백도 보기 어렵다. 그래도 순서대로 피는 봄꽃들이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 봄비 촉축히 내리면 목련이 활짝 필 것 같다. 이미 홍매화는 곳곳에서 나홀로 붉은 자태를 뽐낸다. 산수유도 시작이다. 이제 매화와 목련이 나올 차례다. 꽃들도 순서를 안다. 아무리 성격이 급하다고 해도, 기상 이변 현상이 이상하지 않더라도, 꽃들도 제 차례를 안다.봄기운이 완연해지는 3월 중순이 지나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온세상을 울긋불긋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 때쯤이면 진달래 한 잎 따다가 화전(花煎·꽃전)을 부쳐 먹거나 막걸리 잔에 진달래 꽃잎 동동 띄워 두견주 마시는 호사라도 누리고 싶다.사는 게 얼마나 삭막한지, 도심에 사는 도시인들은 빌딩숲 한 켠에 심어놓은 자목련 한 그루만 봐도 하루가 즐겁고, 동네 골목 어귀에서 만나게 된 마당 깊은 집에 핀 봄꽃만 발견해도 반갑다.봄의 섭리란 건 아무리 추운 동장군의 기세등등했던 겨울도 한 철뿐이란 걸 해마다 깨닫게 해주고 늘 봄은 새로운 봄이라는 것이리라.체화정안동에서 예천 방향으로 가다가 만나는 풍요로운 마을이 있다. 풍산이다. 풍산개의 원산지인 함경도 풍산과 지명이 같다. 풍산은 요즘 코로나 사태의 첨병으로 이름을 알린 AZ(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이 있어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급성장하고 있기도 하다.풍산장터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정갈하고 깔끔한 정자 한 채를 만나 깜짝 놀라게 된다. 어떻게 이런 시끌벅적한 대로변에 세상과 담을 쌓은 듯 평온한 정자가 자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체화정(棣華亭)이다. 안동에는 곳곳에 정자들이 산재한다. 하나같이 선현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이 있는 정자들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가 되기도 한 만휴정과 고산정도 있고 체화정과 소호헌 같은 나름의 역사와 사연을 담은 정자도 즐비하다.체화정은 조선 중기라고 할 수 있는 영조 37년(1761)에 죽사 이민적이 형인 이민정과 함께 책을 읽고 학문을 연마하면서 형제간의 우의를 다진 곳이라는 의미에서 '체화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체화(棣華)는 상체지화(常棣之華)의 줄임말로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을 의미한다고 한다. 〈시경〉(詩經) '상체'편에 나오는 말로 산앵두나무의 꽃은 수많은 꽃잎을 갖고 있는데 이는 형제가 많아서 집안이 번성한다는 것을 뜻한다. 당체지화(棠棣之華)라고도 한다.추측컨대, 체화정을 지은 이민적이 높은 벼슬에 오르지 않고 그저 '진사'(進士)였다고 하니 아마도 학문을 닦기보다는 형과 함께 정자에 올라 어울려 놀면서 풍류에 더 몰두하지 않았나 하는 여담도 들을만 하다.눈앞에 보이는 단아한 체화정을 보고 풍류를 떠올린 건 정자 앞의 인공연못과 인공섬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체화정 바로 앞으로 큰 길이 뚫리는 바람에 정자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지만 체화정에 올라 연못안의 '삼신산'을 바라보는 것도 꽤나 운치가 있다.체화정 앞의 네모난 연못에는 세 개의 둥근 섬이 조성돼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아시아 전통 우주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체화정 앞에 설명문이 알려준다. 이 세 개의 인공섬은 신선이 사는 '삼신산'을 의미한다. 중국 전설에서 유래한 삼신산(三神山)은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의 세 산으로 불로불사하는 신선들이 산다는 곳이다.체화정을 지은 때가 탕평책을 시행한 영조시대니까 그나마 안동 선비들에게는 태평성대와 같은 호세월이었을 지도 모르겠다.체화정은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51호로 승격했다. 정자는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꾸며졌다. 살림채도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정자의 전면에는 개방된 툇마루로 되어 있고, 그 안쪽에 온돌방을 들이고, 좌우에 우물마루로 마감된 마루방이다. 온돌방 정면에는 '눈꼽째기창'이라는 작은 창을 내서 문을 열지 않아도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한 것이 독특하다.체화정이라는 현판 안쪽에는 담락재(湛樂齋)라고 쓴 이중 현판이 있어 눈에 들어왔다. 형제간 우애가 돈독해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조선 최고의 서화가 김홍도(金弘道)의 글씨다.체화정을 보다가 고산 윤선도가 말년을 보낸 남도의 끝 보길도에 지은 세연정이 떠올랐다. 제주도로 유배가는 길에 들른 보길도의 풍광에 빠져 눌러앉은 고산은 이곳에 세연정을 비롯한 여러 누각을 짓고 어부사시사 등을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세연정이 자리한 원림과는 차이가 있지만 단아한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원림을 조성, 은둔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고산의 시대보다 100여년 뒤인 조선 중기 선비들의 삶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겠다.세연정엔 지금 목련이 뚝뚝 꽃잎채 떨어질 테지만 체화정 앞뜰의 목련이 이제야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노오란 산수유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키낮은 목련과 산수유에게 다가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봄냄새가 그윽하게 코끝을 찔렀다.'체화정의 봄'이다. *** 풍산장체화정에서 100여미터만 걸어 내려가면 풍산장터가 나오고 거기서 부터가 풍산읍내다. 가는 길에 문닫은 풍산 시외버스정류장도 나오고 소달구지를 끌고가는 농부와 주막집 벽화도 정겹다.풍산(오일)장은 1917년경에 현재의 자리에 형성돼 인근의 안동구시장과 더불어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장은 매월 3, 8일에 열리지만 지금은 과거와 같은 북적거림도 없는 시골장이다. 당시 곡물과 과일 철물 땔감 기름 등이 주로 거래되었을 텐데, 시장 곳곳의 조형물들 중에는 지게에 나무를 해서 파는 나무꾼들이 많았다는 것을 방증한다.풍산읍내는 이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돼있다. 시장은 오일장이 서는 날에만 반짝하고 평소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그래도 돼지국밥식당도 있고 한우갈비식당, 횟집과 치킨집 분식집 등 있을 것은 다 있고 없는 건 없다.대형마트가 우리 소비 생활을 장악했다. 과거와 같은 오일장이 성황을 이루는 시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장터에 가면 그 시절과 장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그래도 장날이 돌아오면 전국 각지를 떠도는 장꾼들이 자리를 잡고 온갖 물건들을 선보이고 마트보다 장날을 기다려 온 어르신은 어슬렁 어슬렁거리며 장을 보고 국밥집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낼 것이다.풍산장터 입구에는 방송에도 소개된 유명한 대구식육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소불고기와 돼지주물럭 등이 인기품목이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3-13 06:00:00

[광장] 대학 신입생과 젊음

[광장] 대학 신입생과 젊음

내가 대구경북권 대학에서 강의할 때 매년 1학년 신입생 수업을 할 때면 늘 빠트리지 않고 강의하는 내용이 있었다. 한 달을 4주로 나눠 첫 주말에는 삼삼오오 친한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 대구 시내 번화가인 동성로나 백화점, 패션 거리인 야시골목, 박물관, 화랑, 문예회관, 영화관 등을 구경하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둘째 주는 역시 친구끼리 짝을 맞춰 대구역에서 완행 기차를 타고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에 가서 소위 명문대 캠퍼스를 구경하고 혹여 학술세미나나 유명인 강연이 있으면 참여도 해 보고 고교 때 친구도 만나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서울의 인사동, 북촌, 익선동이나 대학로, 신촌, 홍대거리 같은 전통과 현대의 문화가 공존하는 거리를 다녀보고, 고궁, 박물관, 미술관, 강남의 현대 거리 등을 미친 듯이 쏘다녀 보라고 한다.셋째 주에는 토요일 아침 일찍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싸서 전공책 이외의 문·사·철이나 시사 관련 책만 들고 학교에 등교해 도서관이나 교실에서 토·일요일 이틀 동안 다른 짓 하지 말고 눈알이 시리게 독서를 하라고 한다. 마지막 넷째 주말에는 시골에 가서 부모님 농사일을 돕거나 슈퍼 가게를 봐주거나, 아니면 부모님과 손을 잡고 동네 뒷산이나 강가를 도는 산책을 하면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하라고 한다.이런 말끝에 나는 혹시 귀신을 본 학생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혹시 여러분 머릿속에 서울의 S대는 대단하고 우리 대학은 그저 그렇다, 의사와 변호사, 대기업은 대단하고 월급쟁이나 노동자는 그저 그렇다는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묻고는,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여러분은 지금 귀신에 홀려 있다고 말한다. 귀신은 여고 화장실이나 공동묘지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여러분의 생각이나 태도야말로 귀신에 홀린 것이라고 말해준다.우리 선조들은 젊은이들에게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돌아다녀라'(萬卷書讀 萬里行)라고 가르친 바 있다. 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고 만 리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고 배우라는 뜻일 것이다.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가 젊음을 얻기 위해 영혼을 걸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하는 광경은 유명한 고전적 장면이다. 영혼을 걸고 쟁취해야 하는 게 젊음인 것이다.대학 1년 신입생들에게는 대학생다운 정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젊음이다. 기존의 낡고 오래된 가치를 허물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의 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존의 수직적 서열주의, 연고주의, 배타성과 같은 낡은 이데올로기를 깨고 연대와 관용과 평등과 소수자나 약자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정신이야말로 젊음인 것이다.나는 의성군 단촌에서 태어나 안동과 대구에서 중등, 대학교까지 쭉 다니고 직장 생활도 대구와 경북에서만 보낸 말하자면 정통 TK 출신이다. 그런 내가 환갑이 다 돼 갈 무렵 직장 따라 서울에 옮겨와 햇수로 5년째 서울서 보내고 있다. 그간 내가 만나 본 서울 사람들은 눈과 마음이 바깥 세상, 넓은 세계로 향하고 있다. 글로벌 마인드이다.내 고향 TK는 어떤가? 한때 한국 사회를 이끌었던 큰 집안의 장자와 같던 의젓함과 대인다운 풍모의 그 빛났던 관용 정신과 태도는 어디로 가고 현재는 음침하고 습한 배타적 연고주의, 서열주의, 복고주의와 같은 낡은 이데올로기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 솔직히 걱정될 때가 많다. 대학 신입생 같은 팔팔하고 젊은 청춘의 도시 대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마음을 열어 바깥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2021-03-13 05:00:00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끝없이 매력적인 술과 전쟁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끝없이 매력적인 술과 전쟁

산다는 것은 전쟁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 그 전쟁에서 지면 죽는다. 입시전쟁, 취업 전쟁, 아이디어 전쟁, 일과의 전쟁, 코로나 바이러스 전쟁 등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게 전쟁이다. 자신의 목표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나보다 잘나가는 경쟁자가 끝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계속 전시 상태로 살아가야만 한다.그래서 우리는 늘 전쟁 같은 삶에 빠져들고 시간에 쫓기면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는다. 술의 힘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의 혹독한 현실은 지친 하루를 달래며 밤이면 술과의 전쟁을 펼치고 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음날 또 승리의 후유증에 시달리곤 한다. 음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인류는 술을 빚었고, 이를 통해 삶의 고달픔을 달래고 기쁨을 표출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은 전쟁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두려움을 쫓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시대부터 군인들은 전투식량으로 일정량의 와인을 지급받아서 외지에서는 물과 함께 섞어 마셨다.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알려진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참호에서 추위, 공포, 외로움을 달래준 것이 바로 와인이며, 이때 참호 속의 군인들에게 지급된 것은 '뱅쇼(Vin Chaud)'라는 따뜻한 와인이었다. 19세기까지 와인은 전쟁의 필수품이었다. 와인은 상처를 소독할 때도, 식수로 사용하기 힘든 물을 소독해 마실 때도 사용했다.오늘날 세계의 와인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존재이다.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의 시음회가 열렸다. 프랑스와 캘리포니아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각 10종씩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이루어졌고, 심사위원은 전원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평가단은 가장 우수한 순서로 점수를 매겼다.결과는 화이트 분야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샤토 몬텔레나', 레드 분야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스택스 립 와인 셀러'가 각각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 와인이 일방적으로 우세하리라 생각했고, 오랫동안 프랑스 와인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뒤바꾼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것은 와인 세계의 민주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파리의 심판 이후로 구세계(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독일, 포르투칼 등)와 신세계(미국,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남아공, 뉴질랜드 등)의 와인 전쟁은 포도 재배기술의 발달과 양조의 발달, 과감한 투자와 다양하고 과학적인 실험적 연구의 끊임없는 각고의 노력 결과, 와인의 깊은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빠르게 변해가는 소비자의 트랜드도 충족해가고 있다.경쟁은 진짜 전쟁이다. 그것은 경쟁에서 그만큼 전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은 상대를 죽이면 안 되고 상대보다 좋은 점과 나은 점이 있어서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오늘날 전쟁 같은 삶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겐 성공에 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사람들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우리 자신의 건강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지혜를 가꾸며,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베풀 수 있어야 한다.어려운 시기일수록 서로의 협력과 도움이 필요하고, 그 어떤 위기와 난관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견디어 낼 수 있다. 고달픈 삶의 핑계로 술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과도한 음주는 건강을 해치는 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으며,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술과 인간은 전쟁하듯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화해하고 있는 사이좋은 투사와 같다. 절제와 극기, 근면과 의지력, 유쾌와 만족만이 자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2021-03-12 14:49:00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겨우 이런 일로 행복한 나라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겨우 이런 일로 행복한 나라

영국은 꾸준히 변하지 않는 나라다. 500년 전의 거리가 지금과 똑같고, 백화점과 서점이 수백 년째 그 자리에 있고, 1950년대 검정색 택시가 아직도 런던거리를 달린다. 영국인은 새것을 경시하고 옛것을 우대한다. 이삼백년 된 집을 고쳐가며 살고 골동품을 자랑스러워한다. 물려받은 물건을 다시 물려주고, 낡은 가구와 손때 묻은 찻잔을 그대로 사용하고, 반세기가 지난 연속극을 지금까지도 즐겨본다. 속도가 미덕인 오늘날에도 시간을 들여 꽃을 가꾸고 손으로 쓴 카드를 주고 받는다. 심지어 여름휴가도 매년 같은 곳으로 간다.시골은 더욱 변함이 없다. 30년을 드나들던 노천시장이 여전히 북적거리고, 20년 만에 다시 찾은 빌리지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고층건물이 없고 꽃과 나무가 많은 시골은 마치 아름답고 정교하게 꾸며진 공원 같다. 집은 작은데 공원은 크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공평하다. 넓고 푸른 들판에 흰 양떼가 참으로 평화스럽다. 오랜 세월 묵묵히 가꾸어온 덕분이다.세월을 뛰어넘는 고풍스러운 풍경을 지닌 코츠월드(Cotsworld) 지방은 영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수백 년 된 집에 살고 무너진 돌담의 돌을 다시 쌓아올린 덕분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영국으로 몰려온다. 유서 깊은 건축물과 옛것을 보관해놓은 박물관에 감탄하고, 영국식 정원과 차 문화에 열광한다. 전부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거부하며 옛 것을 보존한 덕분이다.영국인은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삶'을 꿈꾼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기'보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기'를 좋아한다. 삶의 여유를 만끽하며 느긋하게 살기를 바란다. '영국인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에 필요한 물건은 손가방, 머그잔, 티 타월, 선탠용 접이의자, 책'이라니, 행복이 놀랄 만큼 단순하고 쉽다. 구식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린다. 강에서 보트를 타고, 아빠와 아이가 낚시를 하고, 오리들에게 빵을 던져준다.개와 함께 산책하고, 정원을 가꾸며, 하루에 두 번은 차를 마신다. 노부부가 접이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엄마가 벤치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아이들이 잔디밭에 둘러앉아 재잘재잘 떠들고, 가족들이 담요위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다. 집으로 친구를 불러 소시지를 굽고 웃고 떠든다. 그들은 바꾸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겨우 이런 일로 행복하다.'수세기 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지만, 인간의 행복을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변하지 않았다.(윌리엄 파워스, )'라는 말을 마치 눈으로 보는 것 같다. 인생은 꼭 뭔가를 이루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고, 행복은 갖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라고 상기시킨다. 큰 기쁨만 쫓으려 하지 말고,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기쁨과 만족에 눈을 돌리라고 한다. '행복해지는 최고의 방법은 행복해하는 것'이라고 넌지시 가르쳐준다.영국인은 '영감(inspiration)'이란 단어를 제일 많이 사용한다는데, 나는 영국에 가면 '평화'와 '행복' 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떠오른다. 크고 웅장한 나무들, 고즈넉한 골목, 띄엄띄엄 놓여있는 낡은 벤치가 익숙해서 좋다. 집집마다 걸려있는 꽃바구니, 오후의 차 한 잔, 손으로 쓴 카드가 아늑해서 좋다. 늘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이 따스하게 마음을 어루만진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갑자기 달라지는 곳에서는 막막하고 불안하지만, 천천히 흘러가며 변하지 않는 곳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안정감을 준다.삶이란 본래 자질구레한 거다. 인생은 그런 삶들이 오래 누적된 거다. 오래 공들여 가꾸는 것이 소중하지 않은 게 있던가. 어디에나 있는 것에도 기쁨이 있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에도 기품이 있다. 매일의 식사, 하찮은 집안일, 특별할 것 없는 생활 속 대화 같은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진짜 삶이다. 그런 작고 평범한 일상이 실은 경이로운 거다. 오래된 삶의 방식은 뻔하고 진부한 게 아니다. 그건 긴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남아 지금까지 인정받는 인생의 지혜이자 답이다. 영국이라는 낯선 나라가 은근히 가르쳐준다.

2021-03-12 14:35:00

[도용복의 골프 에티켓]골프 사고 막는 에티켓

[도용복의 골프 에티켓]<37>골프 사고 막는 에티켓

최근 한 골프장에서 초보 골퍼가 주의 안내 없이 친 골프공에 10m 앞에 있던 경기보조원이 얼굴을 맞아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코로나19 장기화로 골프장의 이례적인 호황기가 작년부터 지속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여가활동에 대한 관심과 소비는 갈수록 증가하고 스크린 골프장의 대중화 영향으로 모든 골프산업이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이다.급증하는 골프인구에 비해 갖추어야 할 에티켓과 매너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양새이다.특히, 필드에서 경기 중에는 얘기치 못하는 위험 요소들이 여기저기 지뢰처럼 널려 있다. 따라서, 골퍼들은 자기 책임 아래 경기가 진행돼야 한다.이번 골프장 사고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부상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고 사고 이후 다른 경기보조원으로 교체해 남은 경기를 마무리했다는 도의적 비난이 이슈가 된 것이다.지난 오랜 시간 골프를 즐겨 온 필자도 이런 비슷한 경우를 왕왕 목격해 왔다. 어쩌면 지금까지 사고의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만큼 잠재적 가해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우리나라 골프장의 티업 간격은 약 7~8분이다. 4명의 골퍼가 준비시간을 거쳐 샷을 하는 시간과 이동시간, 골프공을 찾는 시간까지 합하면 마음이 당연히 급해지기 마련이다.특히, 필드경험이 부족한 비기너에게는 쫓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부정확한 샷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샷을 할 때 주의 안내를 더욱 큰소리로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이것은 모든 아마추어 골퍼가 지켜야 할 에티켓이자 의무이다. 싱글 핸디캡 골퍼라고 해서 미스샷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대부분의 골프장이 산지를 깎아 만든 특성상 홀과 홀 사이의 간격이 좁아 옆 홀에서 친 샷이 내가 서 있는 티박스 혹은 그린으로 향하는 경우가 잦다.경기보조원들이 무전기를 휴대하고 경고 안내를 하지만 순식간에 날아가는 골프공의 속도를 따라잡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린 위에 올라가 보면 때로는 5개의 골프공이 있을 때 섬뜩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본인의 실력을 스스로 평가해 샷을 할 때마다 생길 수 있는 위험요소를 체크하는 것이 몸에 배 있어야 한다.특히, 위험한 순간을 즉시 동반자나 경기보조원에게 알리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어야 한다.코스 설계도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직선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흔치 않다.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휘거나 오르막 지형으로 앞 조의 플레이가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이럴 경우 플레이에 앞서 경기보조원에게 본인이 샷을 해도 괜찮은지 필히 확인해야 한다.아마추어 골퍼는 많은 미스샷 사이에 '오잘공'이 숨어 있다. 자칫 앞 조에 위협이 되는 멋진 샷은 경기 내내 불편한 심기를 유발할 수 있다. 경기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것도 지양해야 하지만 들쭉날쭉한 본인의 비거리를 우습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늘 베스트 샷을 생각하며 골프를 즐기는 것이 실력 향상과 일관성에도 도움이 되지만 안전을 위해 필수이다. 스스로를 과신하지도 말아야 하며 과소평가도 금물이다.미스샷에 골퍼보다 경기보조원이 맞는 것이 다행이라는 말도 들었다. 더 힘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근로자의 권익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골퍼는 스스로 룰을 지키는 책임도 중요하지만 주변을 안전하게 지키는 의무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대구한의대 특임교수

2021-03-11 1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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