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망월사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진짜 커피를 찾아서

입추가 지나도 늦여름 더위는 맹렬하다. 아마도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오면 선선해지려나 보다. 이번 여름에는 차보다 더 맑은 커피를 찾아 그 향과 산미를 즐겼다. 요즘 절집에서도 작설차와 보이차에 이어 커피가 '제삼의 차'로 대세다. 품질 좋은 빈과 드립으로 풍미를 즐기고 수행에 각성을 일깨운다.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비영리단체가 스타벅스와 피츠커피 등 유명 커피 제조사 70여 곳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3월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은 커피 생두를 볶는 로스팅 과정에서 발암물질 '아크릴아마이드'가 생성되는 만큼 "커피 유통업체들은 앞으로는 판매하는 커피에 발암물질 경고문을 부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2019년 6월 3일 커피를 암 유발 경고문 부착 품목에서 제외했고 미국 커피협회 회장은 "이 소식으로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이 다시 커피의 향과 맛을 주저 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커피계의 애플이라는 블루보틀(Blue Bottle Coffee)이 한국에 상륙했다. 도올 김용옥은 최근 서양철학사 02에서 신의 커피에 대해 말했다. 커피 맛은 생두의 품질이 절대적이다. 생산된 주재료 생두 품질은 어떤 방법으로도 향상시킬 수 없다. 그래서 커피를 다루는 방법은 생두 품질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커피콩에는 유분과 배아, 세포, 섬유조직이 있다. 낮은 열과 긴 시간으로 1차 팜핑이 되지 않은 상태로 생두의 속을 익히므로 겉이 타지 않은 비교적 건강한 커피 맛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을 과도하게 배전해 버리면 커피콩의 구조와 성분을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탄화되고 질이 떨어진다. 배전된 원두는 공기, 습도, 온도에 의하여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지므로 가능하면 배전 후 10시간 이내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배전된 원두의 분쇄는 모래알 같은 입자를 가져야 커피 맛이 상쾌하다. 농한 커피의 탕색이 녹차나 홍차와 유사하다면 건강한 커피이다. 수돗물로 커피를 추출하면 수돗물에 들어 있는 염소 성분이 향과 맛을 감소시킨다. 물의 입자가 많은 생수를 선택해야 한다. 좋은 물과 도구를 사용하여 낮은 온도로 추출해야 한다.철분과 커피는 상극이다. 스텐이나 구리 기구는 물을 끓일 때 미량의 철 성분의 영향을 받는다. 이 철분은 물의 성질을 경질로 바꾸어 타닌의 용해를 방해하고 위장의 수축 운동을 방해한다. 철을 피해 유리 기구를 사용하는데 유리 제품은 납, 아연, 카드뮴 등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중금속 없는 유리 제품을 사용해야 안전하다. 추출하는 과정도 흰색 종이 필터는 염소 표백을 하기에 미국 FDA로부터 인체에 무해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극소량의 다이옥신이 우러난다. 브라운 종이 필터는 마분지 냄새가 배어 나오기 때문에 드립 커피의 부드러운 특성을 살리기 어렵다.이러한 문제점을 정제한 커피는 없는가? 차보다 더 맑은 커피는 없는가? 좋은 땅에서 유기농으로 자란 생두를 찾고 좀 더 나은 조건에서 볶고 내린 커피는 없는가?맑은 커피는 온몸의 청소부와 같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고 목이 칼칼하지 않고 입안에 단침이 고이고 사포닌 향과 성분이 나타나는 커피라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 명약이다.이 모든 사항을 갖춘 커피를 칠곡 라온에서 만난다. 라온 커피를 완성한 김대환 선생은 커피콩을 태우지 않는다. 차나 커피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이나 도구를 100여 가지나 밝혀낸 선각자이다. '문명사회의 최고 음료'라는 커피를 모든 분들이 품어 행복한 문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2019-08-21 14:30:37

종이에 담채, 29×43.5㎝,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용준(1904~1967) '문방청취'

독서의 계절은 원래 여름이라고 하는데 독서주의자들은 '여름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방금 내려놓은 듯 펼쳐진 책은 표지를 노랗게 치자로 물들였고 책장을 실로 묶은 옛날 책이다. 그 뒤에 빙렬이 있는 동그란 몸통에 긴 목의 아래와 위에 돌림무늬가 있는 청자 병이 있다. 학의 목 같다고 해서 학수병(鶴首甁)이라고 부른다. 도자기와 추사글씨를 유난히 좋아한 호고벽(好古癖)이 있던 근원(近園) 김용준이 "쌀 한 되 살 돈이 없는 판에" 두꺼비 연적을 "값을 물을 것도 없이 덮어 놓고 사기로 하여 가지고" 돌아온 날 밤 내외간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이야기가 '근원수필'에 실려 있다. 책 옆에 붉은 장식 수술을 단 여의(如意)와 불수감(佛手柑) 가지가 있다. 부처님 손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은 남방 과일인데 영어로도 'buddha's hand'이다. 귀한 물건을 그림으로 구경하는 것이 기명절지화의 한 재미이다.'문방청취'(文房淸趣)라고 화제를 쓰고, '임오(壬午) 유하(榴夏) 사우(寫于) 노시산방(老柿山房) 근원(近園)'으로 그린 날짜와 장소를 밝혀 놓았다. 1942년 석류꽃 피는 여름인 음력 5월에 그렸으니 일제강점기 말인 그때는 독서가 더욱 피서이자 피세(避世)였을 것 같다. 마당에 오래된 감나무가 있어서 노시산방이라고 했던 성북동 이 집에서 김용준은 1934년부터 10년을 살다 더 시골로 가면서 후배 서양화가인 수화(樹話) 김환기에게 팔았다. 이 집 이야기인 '노시산방기'도 '근원수필'에 나온다.김용준은 화가이자 수필가이자 미술사학자인 다재한 인물인데 원래는 서양화가였다 동양화로 전향했다. 대구 남산동이 본적으로 아버지는 대구에서 한약방을 했다. 경성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인 21살 때(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 '동십자각'이 입선하며 일찍이 재능을 드러냈다. 20대에는 대구의 서양화 그룹인 영과회, 향토회 등의 결성에 관여하고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동경 유학까지 마친 잘 나가던 서양화가 김용준이 구화주의(歐化主義)의 대세를 거스르며 36살 때 길을 바꾼 것은 "내가 지나온 청춘시절의 굉장한 역사다"라고 스스로 자부할 만큼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결정까지는 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운 가학(家學)에서부터 상허(尙虛) 이태준, 벽초(碧初) 홍명희 등 주위의 사우(師友), '향토색' 논쟁 등 미술계 담론, 1930년대 조선학 운동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화가이자 미술사학자로서 우리 미술의 '광채 나는 전통'에 대한 자각과 자신감이 그를 동양화로 돌아서게 했다고 생각한다. 미술사 연구자

2019-08-21 11:36:58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청년의 춤

필자에게 청년은 희망과 용기의 수식어가 떠오르지만 좌절과 포기의 수식어들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에게 청년은 오늘날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눈물이고 한숨이며 해탈이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청년의 주기에 대한 개념적 의미는 생애주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는 '이행기'에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우리 엄마 세대의 이행기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육아를 스스로 해냈던 용감함의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 고용 사정이 악화되면서 청년의 나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선 15~29세로 정해졌다. 우리나라는 높은 대학진학률과 군 복무 기간 등으로 2014년부터 15~29세 기준이었던 청년의 나이를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등 일부 정책에 의해 34세로 늘리기도 했다.'루마니아의 청년의 춤(Jocul Fecioresc din România, Lad's dances in Romania)'은 결혼식이나 축일과 같은 연주 축제 행사에서 공동체 활동 가운데 하나로 연행되었으며, 춤꾼들은 각자의 춤 기교와 동작을 선보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나타내는 표식이기도 했다. 이 춤은 지방과 지역 차원에서 화려한 기교를 뽐낼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겨 201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루마니아의 지역민들은 공연자로서든 관객으로든 춤판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지역적 결속력을 강화하기도 한다.우리 지역에서 청년들을 위한 창작 춤 발표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공동체 전체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안무중심 국제적 무용페스티벌인 대구세계안무축제의 청년작가전은 청년안무자들에게 작품제작비를 지원하여 그들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무용작품 발굴의 목표로 매년 6월에 그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일침, 그들의 철학적 정신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지역 전문 현대무용단체인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예술감독 박현옥)은 젊은 청년 안무가들이 스스로 자립하여 성숙한 창작활동을 하기 전까지 청년 안무자들의 창작 의식 함양을 목표로 폭넓은 작품발표 기회를 통해 1994년부터 대구지역 최초 소극장 무용공연, 거리공연 등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문화적 패러다임에 따른 공연형태를 선보이기도 했다.지역에서 활동하는 신진 무용단체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공동기획으로 이끄는 창조와 융합시리즈는 2015년부터 청년 안무자들에게 풍부한 작품발표 경험을 통해 획득되어진 장르간의 협업 및 분리된 형태의 예술공연의 장·단점을 긴밀하게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오는 8월 31일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에서는 팝댄스컴퍼니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공동기획으로 꾸며진 청년들의 춤을 볼 수 있다. 스물여덟살의 가장으로, 스트릿댄스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현욱(팝댄스컴퍼니 대표) 청년의 춤, 그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8-21 11:15:44

김정욱 대구경북중소기업회장

[기고]소기업·소상공인의 특별한 우산, 노란우산공제

천둥 번개를 동반한 기습 폭우가 잦은 요즘 같은 날씨에 "우산이 없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가끔은 우산 없이 나갔다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에 홀딱 젖어본 낭패도 경험해서인지 필자에게 우산은 비가 올 때는 비를 막아주고,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비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마음의 편안함을 주는 고맙고도 소중한 물건이다.여기 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특별한 우산이 하나 있다. 소기업·소상공인이 폐업, 노령, 사망 등 생계 위험으로부터 생활 안정을 기하고 사업 재기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노란우산공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노란우산공제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운영하는 공적 공제제도다. 압류, 양도, 담보 제공이 금지되어 있고 가입자에게는 연간 최대 5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연 복리 이자 적립으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으며 무료 상해보험 가입, 건강검진, 하계휴가 지원 등 소기업·소상공인에게 필요한 부가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제도의 우수성 덕분인지 노란우산공제에는 2007년 출범 이후 지금까지 161만여 명이 가입했다. 이는 100만 가입자 달성에 적어도 19년은 걸릴 것이라는 전문 연구기관의 예측치를 훨씬 상회하는 결과이며, 제도 도입 이후 28만 명이 넘는 가입자에게 공제금도 제공하며 명실상부 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대표 사회안전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최근에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노란우산공제 가입을 지원해주고 있다. 2016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20개의 지자체가 '노란우산공제 희망장려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당장의 부담으로 가입을 주저하는 소기업·소상공인들에게 지자체가 직접 월 1만~5만원을 최대 30개월 지원하며 노란우산공제 가입을 유도하는 제도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대구광역시도 올해부터 추경을 통해 5억6천만원의 희망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시행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예정된 자금이 조기 소진될 만큼 지역 내 소기업·소상공인의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하지만 사회안전망 확충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노란우산공제 가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는 타 지자체와는 달리, 경상북도는 전국 17개 특별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희망장려금을 시행하지 않고 있어 관내 소기업·소상공인들의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경상북도에는 9개 도 중 경기도, 경상남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0만2천 명의 소기업소상공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노란우산공제 가입률은 30.6%로 17개 특별광역시·도 가운데 뒤에서 두 번째로 낮다. 희망장려금 제도가 시행되면 노란우산공제 가입이 활성화될 수 있는 만큼 경상북도에서도 하루빨리 희망장려금 제도가 시행될 필요가 있다.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찾아왔다.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해 주의가 필요하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불확실한 대외 환경과 장기화된 내수 부진에 더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까지 우리 소기업소상공인들이 놓여 있는 환경도 먹구름이 가득 껴 있는 상태다.궂은 날씨 속 비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필자는 노란우산공제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경영 환경 속에서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소기업·소상공인들을 위한 필수품이라고 생각한다.아무쪼록 더 많은 소기업·소상공인들이 노란우산공제 가입을 통해 폐업이라는 비를 막고 준비되지 않은 위험으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08-21 11:15:04

천영식 KBS이사

[새론새평]박근혜보다 문재인이 낫다? 여전히?

눈덩이처럼 터져나오는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의 각종 비리 의혹은 문재인 정부를 새삼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조국의 비리 의혹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재산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 문제이다. 사회주의를 맹신하던 자가 어떻게 저렇게 자본주의의 더러운 것만 골라하면서 과도한 재산을 착복했느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평등교육을 강조하던 인물이 자식에게는 특수교육을 시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사회 상류층으로 끌어올려줬느냐는 것이다.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과 자식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이 행태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기막힌 현실이다. 이게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던 '정의로운 국가' 목표와 일치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을 끼고 도는 것은 운동권적 동지애로 보인다. 목표가 같기 때문에 동지들끼리 수단이나 절차의 문제가 있어도 용인해줄 수 있다는 자세일 것이다.그렇지만 우리는 조국과 같은 무리들을 기생충이나 기득권자로 부른다. 자신의 노력보다 과도한 결과물을 편법적으로 얻고, 자식에게는 기득권의 대물림을 하는 부류들이다. 그리고 타인에게는 인신공격성 인격 살인을 퍼붓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재벌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이제는 강남좌파들의 전형적 코스로 이식되었다.국가가 왜 망하는지(Why nations fail)의 답은 이런 기생 엘리트들 때문이라고 대런 애쓰모글루는 말하고 있다.경제와 안보를 내팽개치고, 외친 구호가 '사람이 먼저다'이다. 조국 같은 사람이 먼저라는 얘기인가. 운동권이 먼저이며, 민주당이 먼저이고, 청와대 출신이 먼저이며, 민주노총이 먼저이다. 그래서 서민들은 문재인 정부 탄생을 후회하고 있다. 서민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중의 후회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전임 대통령의 임기를 중도에 그만두게 하고 수립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전임 정부가 임기를 채웠다면 나라가 거덜 날 것 같으니, 탄핵으로 가자고 했다. 그랬으면 국가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야 할 운명을 갖고 있다.문재인 정부가 보여줄 게 이게 전부라면 국민들은 심한 자괴감에 빠져들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나라를 이처럼 거덜 내기만 한다면, '권력 먹튀'인 것이다.균형재정과 개혁에 나섰던 페르티낙스 황제가 근위대의 반란으로 암살되고, 뒤이어 멍청하기 그지없는 율리아누스 황제가 제위에 오르자 민심이 들끓어 올랐던 로마시대를 보는 것 같다. 그렇게 국가는 무너져갔다.문재인 정부 수립 후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결국 탄핵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환점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저 인기 없는 대통령 한 명 끌어내리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를 근본부터 흔드는 일이었다.탄핵이 민주당뿐 아니라 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의 도움을 얻어 이뤄졌다는 점은 역사의 비극이다. 탄핵에 찬성한 한국당 의원들은 박근혜 정부를 끌어내리고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는가. 혹시 탄핵에 찬성한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그래도 박근혜보다 문재인이 낫지 않느냐'는 한가한 인식을 하고 있었지 않은가. 소통이 부족한 '인간 박근혜'의 약점이 부각됐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만든 정책보다, 문재인 정부 정책이 낫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양심에 손을 얹고 물어볼 일이다.답을 하기 싫다면 최소한 집권당 의원으로서 정부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데 대한 반성은 있어야 한다. 보수 세력의 진정한 통합은 성찰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본다. 묻지마 통합은 우리 국민을 또 한 번 '묻지마 미래'로 가게 할 것이다. 문재인이 아니라면 과거불문 누구라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3년 전 '박근혜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다'고 말하던 사람들의 데자뷰 같다. 그런 안일한 인식으로 표를 달라면, 누가 표를 줄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조국 같은 좌파 위선자뿐 아니라 보수 세력들에게도 화살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2019-08-21 11:14:41

반려인은 누구나 동물과의 이별을 경험하게된다. (사진출처:www.vets-now.com)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동물의 안락사를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동물을 입양하면서 이별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와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년이며 건강 관리를 잘 해 수명이 길어지더라도 동물의 수명은 인간에 비해 짧아 반려인은 누구나 동물과의 이별을 경험한다.반려동물과의 이별은 가족을 잃은 만큼 슬프고 힘들고 우울한 경험이다. 일부는 펫로스 신드롬(Pet Loss Syndrom)을 겪기도 한다.지난 15일 유림이(17)가 세상을 떠났다. 15년 동안 가족들의 기쁨이었던 유림이가 2년 전부터 신부전으로 고생하다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검사 결과는 매우 비관적이었으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보호자와 안락사를 상의했다.힘겹게 가슴을 들썩이며 숨쉬는 유림이에게 마지막 검진이 이루어졌고 안락사가 최종 승인되었다. 안락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족뿐만 아니라 의료진과 내원 고객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슬퍼했다.반려동물의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이 이별을 맞이하고 추모하는 방법들을 알아보자.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나이가 들면 쇠약해지고, 간·신장·심장의 기능부전, 종양질환 등으로 생명의 한계에 이르게 된다. 수의사는 더 이상의 치료 과정이 생명 연장에 도움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가정이나 병원에서 호스피스 관리를 받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약물급여와 보살핌을 통해 동물의 고통을 덜고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한계가 온다. 약물로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고 살아가는 자체가 고통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되면 수의사는 동물을 대변해 안락사의 필요성을 알려준다.안락사는 보호자가 판단할 수 없다. 안락사는 수의사가 동물윤리강령에 근거하여 신중하게 결정하여야 하며 반드시 의학적인 절차를 통해 시행하여야 한다.반려동물의 안락사는 혈관이나 근육으로 마취제를 투여하여 동물을 깊은 수면상태에 들게 한 후 혈관에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안락사 약물은 빠른 시간 내에 심장을 멈추게 한다. 심장이 정지된 후에는 심장의 세동을 확인하고 심정지가 의학적으로 확연할 때 최종적인 사망을 선언한다.대부분의 수의사는 안락사를 힘들어 한다. 꺼져가는 생명의 가녀린 심장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선언하는 과정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수의사에게 부여된 가혹한 사명이다.최근에는 반려동물 안락사를 가정에서 받기를 희망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수의사가 집을 방문하여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동물을 안락사 시켜주는 의료서비스가 보편화되어 있다. 집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배려하는 취지이다.안락사를 결정하였다면 미리 장례 절차도 알아두어야 한다. 현행법 상 동물 사체는 매립하거나 유기하여서는 안 되며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화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장례를 원치 않고 비용적인 부담을 줄이길 원한다면 동물병원에 사체를 위탁할 수 있다. 동물병원에 위탁된 사체는 의료법상 의료폐기물로 분류되어 해당 지역의 의료폐기물 위탁처리업체에서 일괄 소각한다. 수의사회는 인도적인 취지에서 위탁처리업체에게 동물사체를 일반 의료폐기물과 분리하여 소각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장례를 마치면 납골당이나 동물 추모공원을 이용하기도 한다. 생전에 거닐었던 산책로나 의미있는 공간에 나만이 볼 수 있는 작은 표식을 남겨두는 것도 가능하다.슬픔은 잊으려 할수록 깊어진다고 한다. 미안하고 가슴 아팠던 기억보다는 함께 했던 소중하고 고마운 순간들을 되새기려 노력하자. 슬픔이 고마운 추억으로 승화될 때쯤이면 내 마음에 수호천사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8-20 14:46:12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시간적 예술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다. 그림의 경우에는 그림을 감상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공간적, 시각적 예술인 반면에 음악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나타나는 예술, 즉 시간의 흐름이 있어야 음악을 연주 또는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 예술이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에 또 다른 하나의 시간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미 들어봤던 음악을 들으면 처음에 그 음악을 듣던 당시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마법의 힘이 있다. 누구나 겪어 보았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문득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인해 떠나는 시간여행을.나는 지금 이병기 작사 이수인 작곡을 한국가곡 '별'을 해금을 위한 곡으로 편곡 중이다. 이 곡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유명한 한국가곡이기에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모두가 한번쯤 들어보거나 노래를 불러보았을 것이다. 해금의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연주되는 '별'을 새롭게 만드는 중인데, 이 곡을 들으며 잠시 그때의 그 추억으로 빠져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모두에게 그리운 음악이 될 것이다.'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병기 시/이수인 곡 '별'나에게도 추억이 담긴 음악 몇몇 곡들이 있다. 그중 한 곡은 전통 정악합주 유초신지곡 중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 이 그러하다. 유초신지곡은 향피리가 중심이 되는 영산회상으로 평조회상이라고도 한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유창한 멋이 돋보이는 곡인데, 이 곡을 대학교 1학년 입학하고 나서 한 달 뒤에 있을 신입생음악회를 준비하면서 한 달 동안 매일 모여 연습하였었다. 나는 작곡 전공이었지만 거문고를 연주할 수 있었던 까닭에 거문고 연주를 하기도 하였고, 타악 인원이 부족할 때는 좌고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그때 연습이 끝나고 음악대학에서 학교 밖까지 걸어 나가는 봄의 밤거리, 그때 불었던 바람,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생각난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가 버려서 아련하게 그 추억이 남아있지만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의 시원시원한 곡조가 들리면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여러분의 추억이 담긴 음악은 어떠한 곡인가? 각자마다 사연과 스토리가 있는 음악이 있을 것이니 그중에 한 곡을 찾아 들어보며 늦여름의 하루를 보내시길 바란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8-20 14:10:03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隔岸觀火(격안관화) - 일본의 계략에 빠져든 한국

강 건너(隔岸)에서 불구경(觀火)을 한다는 격안관화는 고대 병법의 36계(計) 중 하나로 상대의 내분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방법이다.진(秦)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장평에서 조괄(趙括)의 40만 대군을 격파하자 조나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종횡가(縱橫家-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 사이를 오가며 일을 도모한 사람)인 소대(蘇代)가 나섰다. 그는 금은보화를 가지고 진나라의 실력자 범저(範雎)를 찾았다. 그에게 "백기가 조나라 수도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면 그는 최고의 공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대감의 자리가 위험하게 될 것이오"라고 했다. 범저가 대답이 없자 소대는 이어서 "조나라는 이미 끝났소. 진왕을 설득해 군사를 거두시오. 그리고 백기의 병권을 박탈하면 대감의 자리는 안전할 것이오"라고 했다.범저는 소왕(昭王)을 찾아 말했다. "병사들이 싸움에 지쳐 있습니다. 조나라가 땅을 바치고 화해를 청하니 그렇게 하시지요." 범저를 신임하는 소왕은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왕명을 받은 백기는 불만 가득한 채 회군했다. 그 뒤 그는 병을 핑계로 왕명을 수차례 거부했다. 화가 난 소왕은 백기에게 칼을 보내 자살을 명했다. 그 사이 조나라는 진나라의 내분을 틈타 병력을 재정비하고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 군대를 대파했다. 일본이 전격적으로 수출규제라는 이름으로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베 총리의 공격은 한국 사회에 친일 논쟁으로 큰 내분을 불러일으켰다.야당 측은 여당을 이번 사태를 초래한 주범이라고 비난한다. 여당 측은 그러는 야당을 친일파라고 몰아붙인다. 지금까지 보면 일본의 격안관화의 계략은 성공한 듯하다. 해법은 있다. 격안관화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바로 동심협력(同心協力)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일심단결하면 아베의 발걸음도 꼬이게 될 것이다.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2019-08-19 18:00:00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프루드 수(Froude 數) 이야기

배는 물의 저항을 덜 받을수록 파도가 잔잔할수록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안다. 그러나 높은 파도가 속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파도가 없을 때 배를 움직이는데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한지 계산해내기란 무척 어렵다.더욱이 군함, 여객선, 상선은 요구되는 속도와 안전성, 기동성이 다르다. 크기와 성능에 비해 지나치게 큰 엔진을 걸면 힘과 자원이 낭비될 것이고, 엔진이 작으면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꼭 필요한 만큼의 엔진 출력을 계산하는 일은 해운 산업의 성패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미국 독립의 아버지며 과학자 벤자민 프랭클린 때부터 모두 실패, 영국의 유체동력학자 윌리엄 프루드가 어려운 과업에 성공했다. 영국은 '프루드 수' 공식을 적용해, 선박의 크기와 성능에 맞는 엔진 출력을 쉽게 계산했고, 조선산업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해양 강국으로 세계를 지배했다.프루드 수 공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중력가속도와 수심을 곱한 수의 제곱근으로 유속을 나눈 것이다. 즉 프루드 수 Fr=U/(gD)0.5(U는 유속, g는 중력가속도, D는 수심)이다.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은 공식을 찾기 위해 프루드는 무려 4만6천 번 실험을 했다고 한다. 닮은꼴 모형 선박을 2개, 3개씩 만들어 대형 수조에서 실험해야 하니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을까?일본이 한국에 핵심 소재의 판매와 핵심 기술의 이전을 거부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술 국산화로 맞서자고 주장한다.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이론적으로 성공해도 실험으로 입증해야 하고, 실험의 관문을 넘어도 상업화의 더 높은 문턱이 기다린다. 기술 국산화, 하루 아침에 해치우려 욕심부리지 말라. 그리 쉬웠으면 아직도 못했을까? 긴 호흡의 우보(牛步) 전략이 필요하다.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2019-08-19 18:00:00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

[박창원의 기록여행] 달성공원 돌문 무너지던 날

'기억을 다시하자! 오늘은 우리나라가 간사 악독한 왜적의 침략으로 인해 아마 일본에 종속되게 된 영원히 잊지 못할 민족치욕의 날이다. 강도 일제는 2차 대전이 종결되는 날까지 반세기 가까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온갖 간악한 수단과 시책으로 전동포를 압박하였고'(남선경제신문〈매일신문 전신〉 1948년 8월 29일)오죽했으면 '강도 일제'라는 표현을 썼을까. 신문은 경술국치일에 간사하고 악독한 일제를 떠올렸다. 일제로부터 당했던 핍박에 대한 분노는 시간이 가도 사그라지기는커녕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조선을 침탈해 저질렀던 온갖 악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분노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조선 민중의 희망을 되살리는 일이 급했다. 그 첫 번째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었다.'10시 53분, 미군공작자동차로 준비된 로뿌를 끊었다. 사람들의 눈은 돌문에 모였다! 움쭉 흔덕이는 큰 돌문은 끄는 힘에 철근으로 강하기 뭉치인 돌문도 어처구니없이 쓰러진다. 돌문 대지에 꺼꾸러진다.'(남선경제신문 1946년 8월 9일)해방 이듬해 8월 8일 아침부터 달성공원 안에는 큰 태극기가 내걸렸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아이와 어른 1천여 명이 모여들었다. 일제 잔재 소탕식에 온 것이었다. 일제는 대구부민의 안식소였던 달성공원에도 일본인의 신앙 시설인 신사를 들여놨다. 또 일인들의 이름을 새긴 돌문과 석등을 설치했다. 대구의 달성토성을 일제의 달성공원으로 만들었다. 이날 미군으로부터 장비를 빌려 신사 일부와 돌문, 석등을 무너뜨렸다. 만세의 함성이 터진 것은 당연했다.일제의 상징물을 없애는 일은 예서 끝나지 않았다. 광복절 당일 시민들이 직접 나서 파괴한 대명운동장의 충령탑도 마찬가지였다. 충령탑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을 기리는 탑이다. 일제가 세운 충령탑을 그대로 놔둘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같은 일제 잔재의 청산은 더디게 진행됐다. 달성공원의 돌문과 석등 철거에서 보듯 장비의 부족도 원인이었다. 미군정의 역사 인식과 좌우의 정치적 대립 또한 일제 잔재의 청산을 뒤로 밀어냈다.그럼에도 광복 첫해를 맞는 대구의 분위기는 감격 그 자체였다. 대구는 좌우 합작으로 해방 첫돌 행사를 준비했다. 좌우가 나뉘어 각기 행사를 치른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비교됐다. 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의 사회는 일제강점기에 항일노동운동을 했던 최문식이 봤다. 이날 행사에는 역전 광장을 넘어 조선은행 앞까지 5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당시 대구 부민이 30만 명 정도였으므로 열기를 가늠하고도 남는다.기념식이 끝나자 여학생들이 선두에서 태극기 행진을 이끌었다. 거리 양쪽에는 경찰이 부민들을 보호하며 함께했다. 해방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장면이었다. 광복 첫해의 감격은 달성공원의 돌문을 무너뜨린 것만이 아니었다. 좌우를 떠나 대구부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해방의 기쁨을 누린 것이었다.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데자뷔였을까. 그때 대구의 저력은 그랬다.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

2019-08-19 18:00:00

김문환 세명대 교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조선 도공이 길 터준 일본 수출산업

◆일본 도자기 산업의 중심지 아리타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많은 국민이 일본 여행을 중단하기 전까지만 해도 후쿠오카는 한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후쿠오카역에서 사세보행 철도를 타고 가는 아리타(有田). 한적한 시골도시다. 하지만 분위기가 남다르다.낡은 일본식 기와 건물 내부에 진열된 상품들이 유독 반짝이듯 눈에 들어온다. 도자기. 아리타는 일본 도자기를 대표하는 도시로 손꼽힌다. 어떻게 이런 명성을 얻었을까? 아리타 도산신사(陶山神社)에 높이 솟은 비석의 비문을 읽어보자. 도조 이삼평비(陶祖李參平碑). 일본 도자기의 시조로 불리는 도자기 명인 이삼평이다.◆아리타 도자기, 임진왜란 때 조선 도공이 기원1592년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초기 승전과 달리 고전 끝에 1598년 침략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되돌아간다. 이때 많은 포로를 잡아가는데, 규슈 사가번(藩)의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충남 공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데려간 인물이 이삼평이다. 아리타에 정착한 이삼평은 나베시마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도자기 가마를 연다. 조선의 앞선 도예 기술에 명나라의 선진 기법을 더하고 여기에 일본의 전통 회화를 접목시켜 아름다운 아리타 도자기를 탄생시킨다.◆17세기 일본 최고 수출품은 아리타 도자기1650년 나가사키 데지마섬을 근거로 일본과 교역하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145점의 아리타 도자기를 수입한다. 이 도자기들이 유럽인에게 큰 인기를 얻는다. 이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659년 수입 규모를 대폭 늘린다. 5만6천700여 점의 도자기를 주문한다. 이때 도자기의 대명사 중국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는 전란기여서 일본 도자기가 수출 기회를 맞고, 아리타 도자기가 이를 충족시킨다.이후 70여 년간 아리타 도자기는 유럽으로 무려 700만 점 이상 실려 나간다. 오늘날 유럽 각지 박물관에 일본 도자기가 남아 있는 이유다. 일본은 이렇게 선진기술을 습득한 뒤, 자유무역으로 성장한 나라다. 그렇다면 일본 도자기 산업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준 임진왜란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포르투갈 대항해와 일본과 교역천혜의 무역항인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르는 타구스강 북단에 우뚝 솟은 발견의 탑 앞으로 가보자. 15, 16세기 세계 대양을 누비던 포르투갈 범선링 카라크(일명 나오스)선을 본뜬 형태다. 15세기 포르투갈의 항해시대를 연 엔리케 왕자를 합쳐 33명의 선구자들을 새겼다.지금은 포르투갈의 위상이 유럽대륙의 작은 나라로 쪼그라들었지만 15, 16세기 지구촌 문명 발전을 주도한 선도국가였음을 잘 보여준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 뒤, 포르투갈은 1505년 알메이다를 첫 인도총독으로 파견해 총독부를 설치하고 아시아 무역시대를 연다.이때 태풍에 떠밀려 다네가시마 가도쿠라곶 해안에 표류한 포르투갈 상인들이 전한 조총으로 일본은 임진왜란의 발판을 마련한다. 만약 포르투갈이 총이라는 첨단제품의 외국 판매를 규제했다면 일본은 조총 기술은커녕 조선에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일본의 무역규제는 17세기 막부시대로 후퇴일본은 1639년 돌연 100여 년 가까이 이어지던 포르투갈과 무역을 전면 중단한다. 이어 1641년부터 네덜란드 상인에게 독점 무역허가권을 준다. 일본은 이미 네덜란드와 교역을 튼 상태였다. 1626년 인조 때 제주도에 표류한 벨테브레, 27년 뒤 1653년 역시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은 일본으로 가던 네덜란드 상선의 상인이다.일본은 포르투갈이 기독교를 포교하려 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100여 년간 자유롭게 교역하던 포르투갈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은 거다. 대신 일본은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에 강제 개항 당할 때까지 214년 동안 네덜란드와 교역한다. 네덜란드(화란, 和蘭)에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난학'(蘭學)이라는 신학문도 발전시킨다.이처럼 무역을 통해 성장한 일본이 경제 외적인 문제로 한국과 무역을 제한하며 경제전쟁을 일으키는 행태는 자신의 과거 부정이다. 또, 정치적인 이유로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중단시킨 17세기 도쿠가와 막부 시대로 회귀한 구태다. 일본이 상식을 회복해 정치적 이유를 버리고 호혜평등의 자유무역 정신으로 돌아와 동양평화에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2019-08-19 18:00:00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대사/국제법 박사

[세계의 창]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고서

주말에 넷플릭스를 이용,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봤다. 필자가 좋아하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TV를 켜자마자 바로 몰입되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둘러싼 사건이 나의 중견 외교관 시절 추억이 서린 비엔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건 전개 과정에서 펼쳐지는 법리 논쟁, 그것도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문제는 필자가 줄곧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이슈 중 하나다.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주인공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분)의 삼촌인 페르디난트가 클림트에게 부탁하여 그린 부인 아델레의 초상화이다. 찬란한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갸름한 얼굴의 여인을 그린 이 초상화는 1938년 나치에 의하여 압류당한다. 나치는 1941년 이 그림을 비엔나에 있는 벨베데르궁으로 옮기고, 그림의 주인공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그림 제목을 'Woman in Gold'로 바꾼다. 바로 영화 제목이다.한편, 페르디난트는 모든 재산을 유일한 혈육인 질녀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1945년 사망한다. 영화는 나치의 점령에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망명한 마리아가 나치에게 빼앗긴 그림을 되찾아 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그림 시가가 1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사건에 뛰어들었던 신출내기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비엔나에서 자신의 증조부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다는 것을 알고는 돈을 떠나 그림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소명 의식을 느낀다. 랜디와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나치 약탈 예술품 반환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설치한 반환위원회에 그림 반환을 요청하지만, 위원회는 아델레가 그림을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남겼다며 반환 불허를 결정한다. 랜디는 그림의 소유자는 아델레가 아닌 페르디난트이기 때문에 아델레는 그림을 기증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뉴욕으로 돌아온 랜디는 어느 날 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클림트 화보를 발견하고는 환호한다.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미국의 주권면제법(FSIA)이다. 주권면제법은 원칙적으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 외국 정부기관이 미국 내에서 영리행위를 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이와 관련된 소송은 허용된다. 화보 판매를 영리행위로 판단한 랜디는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그림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오스트리아 측은 1976년 제정된 주권면제법은 동 사건에 소급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미 법원은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대법원은 동 법은 기존 국제법을 성문화한 것이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 아니라며 오스트리아 측 주장을 배척한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은 미 국내 법원보다 중재를 통하여 사건을 해결하기로 합의한다. 중재재판소는 2006년 마리아 측의 손을 들어주고, 결국 그림은 벨베데르궁을 떠나 마리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이 사건은 한 개인이 외국 정부기관이 소유한 나치의 약탈 문화재를 되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약탈 문화재는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양시키는 데 기여한 면은 있겠지만, 많은 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2차대전 이전 반출 문화재 환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우선, 이 사건 대상물 자체가 반출 문화재가 아니다. 이 분야 국제조약으로는 '문화재 불법 수출입 및 소유권 이전 금지에 관한 UNESCO 협약'과 '도난 및 불법 반출 문화재에 관한 UNIDROIT(사법통일국제협회) 협약'이 있으나, 두 협약 모두 협약이 채택되기 이전 발생한 사안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우먼 인 골드'를 보고 고무되었던 많은 이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법의 현실이다. 언젠가는 이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국제법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2019-08-19 12:31:46

한만수 대구시 시정연구관

[기고]문화도시 대구에서의 여름 나기

대구의 힘은 문화예술이다. 무더운 여름철인 지금 대구에는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시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또한 국제오페라축제와 연극, 인문학 특강도 채비를 하고 있다.지난해 '간송미술관, 조선회화 명품전'과 '김환기전'을 기획해 여름 전시로는 전국 최대 규모의 관람객을 모았던 대구미술관에는 한국 화단의 전설인 박생광 화백의 회고전과 우리나라 팝아트의 아이콘들을 모은 '팝/콘' 전시회, 대구가 낳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인 '박종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 작품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최상으로 맞추어 놓은 이곳에서 최고의 작품들을 만나 느끼고 소통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먼저 박생광(1906~1985) 회고전에서는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드로잉 작품 100여 점을 주제별, 시대별로 정리했다. 우리는 박생광을 무속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전시회를 보고 놀랐던 것은 우리 한국화가 여백과 무채색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총천연색을 썼다는 점에서다. 더군다나 작품 활동을 한 연대로 보면 20세기 모더니즘의 영향을 물씬 받았을 텐데도 우리나라의 독특한 미감과 형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웠다. 전시 기획자로부터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프랑스 미술협회에서 '한국회화특별전'을 그랑 팔레에 유치하려고 우리나라에 왔던 세계적인 미술비평가 아르노 도트리브는 박생광의 그림을 보자마자 놀라워하며 한국의 피카소라고 격찬하였다고 한다. 또한 세계적 거장 마르크 샤갈과의 2인전을 준비하다가 샤갈이 죽으면서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때 전시가 이루어졌더라면 박생광은 샤갈급으로 유명해졌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팝/콘'전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 14명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팝아트는1950년대 중반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생해 1960년대 미국에서 크게 꽃피웠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전 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67년 정강자 작가가 '키스미'를 선보이고, 김영자 작가가 '성냥Ⅲ'를 '청년작가연립회'에 출품하면서 싹트기 시작하여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꽃피웠다. 이번 전시회 중 필자는 유의정이라는 젊은 작가 작품에 눈이 갔다. 갖가지 도자기 형태에 상업 광고 브랜드 이미지를 전사해 놓았다. 고고한 도자기 세계에 상업 광고를 입혀 서로 모순된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가는 서구 미술계에서도 인정받아 내후년에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라는 전시 기획자의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박종규 작가는 홍콩 바젤아트페어, 미국 아모리쇼 등 국제 전시회에 참여해 호평을 받은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이번에 '순항'이라는 작품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거울을 이용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대형 영상 룸은 압도적이다. 그의 대형 회화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질서와 혼돈으로 나누어 파악하는데, 미술이라는 영역에서는 혼돈마저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작가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여름날, 아이들과 온 가족이 함께 작품을 관람하고 교감하는 모습은 우리 대구가 문화도시임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다양한 문화시설에서 우리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시회와 공연 등을 다채롭게 기획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한발 더 나아가 영국왕립미술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여름 전시'(Summer Exhibition)라는 연례전과 2년마다 개최하는 '베니스 비엔날레'처럼 여름의 특수를 누리는 세계적인 전시회도 꿈꿔 본다.

2019-08-19 11:19:31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비켜주기

'보다'라는 책에서 소설가 김영하는 소설만 읽고 살아 왔기에 영화 시나리오의 빈 곳을 영상이나 연기로 채워 넣으며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그래서 시나리오는 있어야 할 어떤 필수적인 요소들이 결여된 허술한 구조물처럼 보인다고 써 놓았다. 요컨대 좋은 시나리오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뮤지컬 대본을 읽을 때도 아마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뮤지컬 대본은 기본적으로 공연을 목적으로 쓰게 된다. 그래서 활자로 읽는 것 보다는 최종적으로 무대 위에서 구현될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집필하게 된다. 뮤지컬은 음악과 무용, 미술과 첨단 기술 등이 결합된 종합 예술이어서 대본은 그 모든 요소들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먹을 수 있는 진수성찬이 잘 담겨진 그릇이 아니라 '여기는 국, 여기는 나물무침을 담아야지' 생각하며 종이에 글자로 음식 이름을 적어 놓은 것 같은 상차림이다. 당연히 아직은 아무런 맛도 없고 보기에도 엉성하며 최종적인 음식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쉽지가 않다.이건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나 속이 상하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나의 대본 만으로도 충실하고 풍성해서 읽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을 것이다.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여기 저기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나중에 무대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 지금은 감을 못 잡겠어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욕망을 억누르고 음악과 무용, 무대 장치와 연출 기법을 위해 많은 공간을 비워줘야지만 좋은 뮤지컬을 만들 수가 있다. 글로 너무 가득 채워 놓으면 다른 요소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진다. 역설적이지만 상당히 엉성해 보이는 나쁜 대본이 사실은 좋은 뮤지컬 대본인 것이다.그런 이유로 좋은 뮤지컬 작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처음 대본은 상당히 허술했는데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사람들이 그 부족한 부분들을 잘 채워서 좋은 작품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럴 때 작가는 조금 속이 상한다. 그러므로 뮤지컬 작가에게는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이 존경할만한 사람인지가 무척 중요하다. 그런 관계일 때 모두가 빛나도록 비켜주고 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8-19 11:18:52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강남좌파와 조국 교수

'법학계의 장동건'. 교수들 사이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를 지칭하던 말이다. 농반진반이지만 조 교수의 준수한 외모를 보면 전혀 근거 없는 별명은 아니다. 서울대 교수에, 미남에, 게다가 부자이기까지. 부러우면 진다지만 솔직히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조 교수는 스스로를 '강남좌파'로 규정하는 데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강남좌파라는 비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곤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조지 클루니 입 닥치라는 것"과 같다는 말로 응수한 바 있다. 서구의 이른바 '캐비어 좌파' '리무진 리버럴'이나 '샴페인 사회주의자'와 강남좌파를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왜 하필 조지 클루니인지는 의문이다. 많은 서구 좌파 인사들 중 조 교수와 가장 비슷한 인물은 교수인 노엄 촘스키 같은데 말이다. 미상불 클루니를 닮기는 했다. 늘 의식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 제스처에, 멋지게 들리는 말을 골라 쓰고, 매일 새로운 텀블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는 등 연예인적(?)인 기질이 비슷하긴 하다. 그렇더라도 조 교수가 이런 용어들의 진짜 뉘앙스를 아는지 모르겠다.스티브 프레이저가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묘사한 '리무진 리버럴'은 일반적으로 고학력에 부유한 상류층이면서 진보적 이념을 추구하는 (주로 민주당) 정치인을 일컫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저자는 리무진 리버럴이 실제로는 위선적인 진보 정치인을 비아냥거리는 말로 굳어진 역사를 천착하고 있다.겉으로는 서민과 약자를 위하는 척하지만 본인은 부자 동네에 살면서 고급 리무진을 타고 자식들을 서민들은 감당하기 힘든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는 진보주의자들의 위선과 가식을 꼬집는 부정적인 용어인 것이다. 단순히 부자이면서 진보적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과는 다른 뉘앙스이다. 강준만 교수가 강남좌파라는 용어를 쓴 이유도 마찬가지다. 특히 범여권 386 등 의식과 물질이 따로 노는 가진 자의 위선이나 허위 의식을 비판할 때 주로 쓰인다. "강남좌파가 많아져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 의미는 아닌 것이다.그동안 숱하게 목격한 강남좌파들의 행태는 그 용어의 부정적 인상을 굳게 해준다. 말로는 재벌 해체를 외치면서 속으로 그 재벌 기업들에 투자하여 부를 쌓는다. 외고 폐지 등 평등 교육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은 주로 외고나 유학 등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교육을 시킨다. 자신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면서도 겉으로는 그 모순을 지적하며 사회주의를 꿈꾼다. 환경주의자로 원자력을 사갈시하면서 태양광 설치 명목으로 국토가 유린되는 데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이 같은 부정적인 강남좌파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시도조차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조국 교수이다. 정부를 비판하면 친일파요 매국노로 단정한 '조국 민정수석'은 다른 사람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조국 법무부장관'은 정부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박멸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극도의 편향성과 당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사가 법무부장관의 생명인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킬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법무부의 영문 명칭(Ministry of Justice)은 정의 자체를 표상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폴리페서 논란, 위장 전입과 재산 및 가족 관련 각종 의혹 등은 어떤 해명을 내놓는지 일단 지켜보겠다. 중요한 것은 논점을 흐리지 않는 것이다. 임명직이냐 선출직이냐는 폴리페서 논란의 본질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특정 정치세력의 전위대 노릇을 하던 지식인이 그에 따른 정치적 반대급부를 받는 게 옳은 처신이냐 하는 게 핵심이다.위장 전입이 2005년 이후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본인은 위장 전입을 생각도 않았기에 과거 위장 전입을 그토록 비난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 투자가 불법인지 이익을 냈는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는지가 관심이다. 역시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인 가족들 문제도 사생활 문제라고 피해 갈 수 없다. 본인과 부인,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본인의 말처럼 진솔하게 사실대로 해명해야 한다. 하루만 맞고 가면 끝날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히 부자이면서 좌파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위선과 이중성이 문제인 것이다.

2019-08-18 16:26:40

유성동 문화기획가

[기고]대구시립중앙도서관 개관100주년을 기념하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 작은 도서관이었다." 빌 게이츠가 한 말이다. 이 외에도 위인들의 도서관 예찬은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도서관은 공동체 구성원의 지적 사유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이고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자유롭게 공유되는 공간이며 더 나아가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찍이 미국도서관협회(ALA)에서는 도서관권리선언(1939)을 통해 도서관을 정보와 사상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광장(FOUM)에 비유하고 있다.차치하고 우리에게는 책 한 권 손에 쥐기가 쉽지 않고 온전히 책 한 쪽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조차 갖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은 시민들을 품고 시민들은 책을 품어 온 보석 같은 공간이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그 자식에게서 자식으로 그렇게 대를 이어 현재진행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역사다. 그런 중앙도서관(이하 중도: 중앙도서관의 애칭)이 개관 100주년을 맞는다.중도는 그 역사성과 상징성 그리고 장소성의 측면에서 이미 그 자체가 근현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필자는 중도가 1974년 구 법원 청사에 있을 때부터 그 기억을 오롯이 가지고 있다. 공부방이 없고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당시 중도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구 법원의 건축 양식은 어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넓고 조경이 잘된 마당과 정원은 더없는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부족한 자리를 얻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길게 줄 서서 기다려야 했고 구내식당에서 값싼 우동으로 허기를 달래던 기억이 선명하다.중도는 긴 세월 동안 수동, 동인동, 포정동, 삼덕동, 공평동으로 몇 번의 이전에도 중구 인근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1985년에 신축,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청사는 바뀌었어도 이처럼 편리한 교통, 뛰어난 접근성, 동성로 등 번화가를 끼고 있는 주변 환경으로 각 구별로 도서관이 생긴 이후에도 절대다수의 대구 시민이 애용하고 있는 것은 그 전통과 역사성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그런 이유로 중도의 개관 100주년은 온 시민이 함께 축하해야 마땅한 일이다. 도서관 관계자들이 이런저런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느라 분주했다. 대구시나 교육청 차원에서 관심과 지원이 더욱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부족한 예산과 여건 속에서도 도서관 업무는 물론 이번 행사까지 준비하고 치러내느라 동분서주한 직원분들께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100년 중도는 시민의 손길과 발길이 닿고 닿은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든 역사다. 신분 소득 지위에 관계없이 시민들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 문화 쉼터이며 재충전소이다. 지금도 일반인은 물론 취업 준비, 퇴직 후 재취업 준비 등 저마다의 소망과 꿈을 낡은 열람실에서 키워가고 있다.한 세기를 지나 새로운 한 세기로 나아가는 중도에 우리 모두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을 쏟을 필요가 있다. 특히 예정되어 있는 도서관 리뉴얼 공사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국채보상운동 기념 아카이브 사업과 연계하여 논란이 있었고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까지가 지식을 나눈 100년이라면 앞으로의 100년은 지식을 만들어 낼 100년이기 때문이다.

2019-08-18 15:52:24

정소현 작 '꿈꾸며 사는 삶'

[내가 읽은 책]'위대한 진실' 을 아시나요?  

'연금술사'는 꿈을 좇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소설이다. 꿈을 믿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양치기 산티아고의 여행을 통해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해 준다. 살렘의 왕은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의무라며 산티아고에게 우림과 툼밈이라는 두 개의 보석을 건넨다. 보석들을 표지(標識)로 삼아 여행을 시작한 산티아고는 도둑을 만나고 사막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는 등 거칠고 험난한 여정을 겪는다.그의 극적이며 험난한 여정은 연금술사들이 행하는 실제 연금술의 과정과 맞닿아 있다. 연금술사들은 어떤 금속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가열하면 정화되어 만물의 정기만이 남게 될 것이며, 이 '위대한 업'이라 불리는 최종 물질이 모든 사물들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언어라 믿었다.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정화되었고, 만물과 대화하는 우주의 언어를 이해하며 마침내 영혼의 연금술사가 된다.'연금술사'는 브라질의 신비주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작품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인간의 영혼과 마음, 그리고 자아의 신화와 만물의 정기를 이야기하며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자아의 삶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를 끊임없이 반문하게 만든다. 1988년 출간된 후 120개국에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가 되었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의 자리에 올랐다.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문체, '머리가 아닌 마음에 속삭이는 상징적인 언어'로 높이 평가받는 코엘료의 작품들은 광범위한 독자층으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꿈을 좇기 위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미 익숙해진 것과 가지고 싶은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무서움과 현재 갖고 있는 것들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면 두려워 할 필요 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꿈을 좇는 '자아의 신화'에 관한 비밀이 담겨있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 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P.48)'연금술사'는 자신의 꿈에, 운명에 관심이 있으면서 삶의 비밀스러운 법칙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긴 여행 끝에 보물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산티아고처럼, 삶의 법칙들이 이미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결국 자신의 의지로 나타남을 알게 해준다. 즉, 자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야 그것이 반드시 당신의 인생에 나타난다는 '위대한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연금술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영혼의 연금술로 시작해 진정한 보물을, 꿈을 찾기를 바라는 모두에게 '연금술사'를 권한다.정소현 학이사 독서 아카데미 회원

2019-08-17 03:30:00

이상일 시인·수필가

[광장] 전문가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라는 의미의 한자어는 선비 사(士)이다. 우리 주위 직업군에서 그 분야 전문가를 모두 다 士자로 칭한다. 석사, 박사, 변호사, 의사, 기술사는 물론 일반 기능직 분야에서도 미용사, 기능사, 요리사, 강사 등 수없는 전문가를 통칭하여 士라 부른다.먼저 한자에서 말하는 전문가인 士의 의미를 분석해보자. 士란 글자는 十(10) 자에 一(1) 자를 합한 글자이다. 전문가란 의미의 士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 가지(一)를 들으면 열 가지(十)를 안다는 聞一知十(문일지십), 다른 하나는 열 가지(十)를 하나(一)로 묶을 수 있는 推十合一(추십합일)을 포함하고 있다.먼저 聞一知十은 똑똑한 사람들을 일컬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속담과 같이, 상당히 뛰어난 기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어릴 적 신동이나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 유형이다. 과거에는 남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빨리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識者(식자)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결국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를 정보의 비대칭 구조 속에서는 경쟁력이자 경제적 가치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전문화가 요구되는 2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미국의 헨리 포드가 주창한 3S 운동(제품의 표준화, 부분품의 단순화, 작업의 전문화)에 필요한 인재형이 聞一知十型(문일지십형)이었다.그러나 현대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 내지 정보보다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즉 AI가 훨씬 방대하고 깊은 지식이나 정보를 많이 알고 잘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과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그래서 단순히 지식, 정보를 많이 알고 처리할 능력을 가진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요즘 빅데이터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推十合一의 전문가를 요한다. 즉 열 가지의 다른 지식이나 정보를 하나로 묶어 내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각자 다른 기능들을 한곳에 모아 인간이 가장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아이폰을 개발한 推十合一의 상징적 인물이다. 각각 다른 분야의 기술이나 재능들을 하나로 만들어 내는 융합이나 통합의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옛날에는 어느 한 분야에 한 가지만을 잘해도 전문가로 능력을 인정받고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분야라도 열 가지를 묶어 하나로 통합해 낼 수 있는 멀티 사고와 기술이 있어야 진정한 전문가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이와 관련하여 그동안의 지식 전달 위주의 암기형 교육에서 정보를 어떻게 하면 인간을 위해 유익하고 효율적으로 융합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느냐에 중점을 둔 교육으로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학원이나 학교 교육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융합 내지 통합형의 미래형 전문가의 개념으로 교육 및 사고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단순 계산이나 반복은 기계가 훨씬 뛰어난 수준으로 잘하기 때문에 굳이 인간을 교육해 경쟁시킬 필요는 없다.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문가의 개념도 지식이나 정보의 양으로 승부하는 聞一知十의 과거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推十合一의 미래형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2019-08-17 02:30:00

정해모 대구 서부소방서장.

[기고]불나면, 대피 먼저!

지난 6일 경기도 안성시 종이 상자 제조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관 한 명이 숨지고 다른 한 명은 얼굴과 양팔에 화상을 입었다. 숨진 소방관은 평일 오후 시간대에 발생한 화재라 건물 안에 근로자들이 있으리라 판단하고 내부로 진입하던 중 갑작스러운 폭발로 화를 입었다.앞서 지난 2일 새벽에는 대구 강서소방서 한 소방관이 잠을 자다 '불이야' 소리에 집에 있던 소화기 2대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불난 곳은 1층 음식점이었지만 3층은 주거 공간이었기에 초기 진화를 못 할 경우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소방관은 주민의 도움으로 10개가 넘는 소화기를 사용하고 나서야 불길을 잡았다.이처럼 소방관들은 불이 나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시민은 무엇을 먼저 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소화기를 집어든다거나 119에 신고하기, '불이야'라고 주위에 알리는 것이 먼저일까?아니다. 불이 나면 먼저 대피해야 한다. 우선 본인이 안전한 곳으로 피한 뒤 119에 신고하자. 대피할 때는 불이 난 사실을 주위에 알리며 현관문을 닫고 불길과 연기 등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대구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2016년 1천739건, 2017년 1천612건, 2018년 1천440건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화재 안전에 대한 시민의 인식과 소방관들이 화재예방에 헌신한 결과라고 생각한다.하지만 화재가 줄어드는 것에 비해 인명 피해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최근 3년간 인명 피해는 2016년 94명에서 2017년 69명으로 줄어드는 듯했으나, 지난해 84명으로 다시 늘어났다.지난해와 올해 상반기를 비교해 보면, 화재 건수는 829건에서 올해 727건으로 102건 감소했으나 인명 피해는 52건에서 60건으로 오히려 늘었다.이처럼 사상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급격한 연소 확대와 복잡한 건물구조로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 과거보다 짧아져 질식에 의한 인명 피해가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지어진 건물에는 다양한 건축자재를 사용하고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불꽃과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빠르게 확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눈앞에 불이 나는 것을 보고 어떻게 불을 끄지 않고 대피만 할 수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소방관이 아닌 일반 시민이 침착하게 대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물론 화재 현장에 여러 명이 있어서 임무를 나누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119에 신고하면서 소화기로 불을 끄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긴박한 재난현장은 이런 교과서적인 상황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다만 가득한 불길과 연기로 대피가 어려울 때는 신고를 하거나 완강기 등 피난기구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안전한 곳에 대피했다고 해서 119 신고 이후 불을 끄려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행동은 자제하고 화재 진압은 소방대원에게 맡겨두자. 화재 초기라 할지라도 불꽃 주위에 어떤 가연물이 있는지에 따라 초 단위로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위험한 상황에서는 당신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다시 한 번 기억하자. 불나면, 대피 먼저!

2019-08-15 14:46:20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한국소설에도 사랑을

1998~2004년, 4단계로 허용된 '일본대중문화 개방', 그때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두려워했다.한일 국교정상화(1965년)를 했다지만, 36년간 지배당한 억분함과 일본정부의 일관된 뻔뻔한 작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가실 수가 없었다. 스포츠 '한일전'이 벌어지면 너무나도 애국적이지만, 일제를 사용하는 것은 거리낌이 없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하는 이율배반 상태에서, 자존심상 일본 영화(특히 애니메이션)·비디오·만화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개방에 두려움 없이 임하라!" 일국의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는 자체가 두려움이 컸다는 얘기다. IMF에 돈 빌린 대가로 다양한 개방 압력을 받고 있었고, 세계화를 부르짖는 터수에 세계적인 일본대중문화를 계속 막을 수도 없었고, '한류'를 팔기 위해서는 '일류'도 살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해적판이 난무했다. 차라리 정상 유통시키고 세금을 뜯어내기로 한 정부의 선택은 당연한 바였지만, 불법으로도 그렇게 잘 팔리는데 합법이 되면 얼마나 잘 팔릴지 겁나지 않을 수 없었다.이미 한국 문화시장을 휘어잡던 일본 문화가 있었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일본소설은 거리낌 없이 살아남았다. 야스나리와 겐자부로의 노벨문학상 수상(1968, 1994년)은 일본소설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데 일조했을 테다. 누가 감히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 번이나 배출한 나라의 소설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루키의 등장은 치명적이었다. '상실의 시대'는 수백만 권이 팔렸다. 출판사들은 다투어 일본작가의 소설을 출판했다. 또 다른 하루키 대박을 꿈꾸면서. 일본신인문학상에 불과한 '아쿠타가와상'은 세계적인 문학상으로 오해받았고, 그 상 받은 일본작가 치고 한국에서 안 뜨고 안 팔린 이가 없었다. 대중문화에서도 그런 장악이 당연해보였다. '대중문화식민지'가 될까봐 떨었던 것이다.일본대중문화가 완전 개방된 지 15년째, 걱정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대중문화적으로 다시 식민지가 되었다'고 통분하는 분도 계시지만, 그럭저럭 방어해낸 듯하다. 가장 우려했던 호환·마마보다 무서워했던 '비디오'는 사라져버렸고, 나머지는 '불매운동' 같은 거 안 해도 나라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일본 것이라면, 국'뽕'이랄까 신토불이 정서랄까, 그게 무엇이든 무슨 내용이든 그냥 무조건 싫은 분도 있었겠지만, 좋아하지 않는 데는 나름 까닭이 있었을 테다. 일본 것은 오래전부터 자유분방한 이야기를 누구나 마음껏 쓰고 읽고 출판했던 전통 때문인지 몰라도 자질구레한 얘기에 유난하다. 주제와 의미를 중요시하는 한국대중에게는 한심하고 사소했을 테다. 한국인 역시 개인주의로 치닫고는 있지만 대의나 사상에 기반하지 않은 일본의 극도한 개인주의는 낯설기만 했을 테다. 또 일본 것은 더는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는 듯 장면의 잔혹성, 엽기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식 엽기와 잔혹이 매우 부담스러운 한국대중이 많았을 테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좀 안다고 해도 참 맥락 없는 전개로 느껴질 때가 흔하다. 가족과 공동체와 나라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 흘리는 장면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눈물나오게 하는 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한국대중은 일본 것이 도무지 정서에 맞지 않아 감동하기 어려웠고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어쩌면 한국정서와 조금은 더 가까운 미국대중문화를 향유하기에도 바빠서 일본 것은 애초에 관심 밖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의 대중문화식민지'라고 통분하는 분도 부지기수다.그런데 참 알 수가 없다. '대중'이란 명색이 붙지 않아서일까, 일본소설만큼은 꾸준히 많이 팔려왔다. 한국소설을 압도했다. 웬만한 일본소설보다 훌륭하고 재미있고 의미있고 감동있는 한국소설이 수두룩한데 하나같이 안 읽힌다. 한국대중은 한국소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사랑도 국뽕도 신토불이 정서도 나름의 분별도 발휘해주지 않았다. 최소한의 소비에도 인색했다. 구차하지만 한국작가들과 한국소설에도 최소한의 사랑을 나눠달라고 호소 드린다.

2019-08-15 14:45:53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바닷가 작은 마을

연육교를 지나면 하조도다. 새가 무리 지은 모양새라고 '조도'로 불리는, 조도군도의 어미 섬에 해당하는 섬이다. 갯벌에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잔물결을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긴 드레스 자락을 끌고 오는 귀부인 같았다. 물결이 잔잔해서 바닷물이 실어 나르는 퇴적물로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고, 여러 개의 만이 모여 천연양식장을 형성하는 바다의 귀한 텃밭이라던가. 맑은 갯내와 신선한 파래향기가 바람에 실려 다녔다.굴 양식장 가까운 해변에서 두 사람이 패각을 깨고 있었다. 끝이 뾰족한 괭이로 맞붙어 있는 패각을 분리했다. 꽃 핑크색 바람막이를 입은 아주머니에게 패각을 어디에 쓰느냐고 물으니 씨를 심어서 바다로 보낸다고 했다. 씨를 담은 패각이 일 년 후에 석화가 되어 돌아온다며, 멀쩡한 것은 씨를 심는데 쓰고 부서진 것은 잘게 다져서 거름으로 쓴다고 했다, 하늘이 회색빛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요란하게 엔진소리를 내며 다가온 경운기가 멈추었다. 경운기에 그물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 사람은?' 물음에 그의 어머니는 며느리가 자는 것을 보고 살짝 나왔다 했다.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모든 나날을 축제로 체험한다.'고 한 사람이 롤랑 바르트였던가. 나날을 선택받은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이 기쁘고말고. 아내가 오수를 즐기는 게 그리도 좋은지,행복에 부풀은 청년이 바다를 가리키며 두 물이 들어온다고 딴청을 부렸다. 바닷바람에 그은 투박하고 순박한 부끄러움이 예뻤다. 경운기의 그물을 만지며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바다로 간다고 했다. 굴 양식만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물을 갖고 바다로 간다고. 외지고 척박한 바닷가의 삶은 한 가지 직업으로 살 수 없게 한다. '엄니, 나 갈라네.' 하고 청년은 경운기 시동을 건다. '그려. 열심히 해야 각시 멕이살리쟈잉.'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아들의 경운기가 저만치 멀어지도록 쳐다보았다. 아들이 올해 장가를 들었다면서 며느리가 빨리 아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랑에게 말을 배우는 중이라며,잠깐 눈 붙이는 것을 보고 몰래 나왔다고 했다. '새 사람이 들와서 좋쥬이.' 굴 양식장의 설치물 아래 바닷물이 들어와 있었다. '저것이 우덜 밭이랑게요. 저기서 굴을 키워 애들 공부시켰어라.' 감태가 파랗게 덮인 그 녹색 바다가 섬사람들의 기름진 밭이었다. 갈매기가 끼륵대며 날고, 바다에 감태가 자라고, 산밭에 시퍼렇게 콩대가 자라는 거기, 바닷가 아낙네의 가슴에 숭고한 사랑이 자란다. 장정옥 소설가

2019-08-15 14:35:33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대명공연거리, 네트워크로 돌파구 찾자

예술인들이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기가 쉽다. 작품에 대한 열정보다는 서로 시기하고 탐내는 순간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자기의 순수성과 예술성을 몰라주는 것 같아 자기 지역을 등져 버리고 '우리 지역의 예술은 죽었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느 지역이든 어느 예술 분야이든 마찬가지이며 나 역시 그러함을 인정한다. 그런데 다른 지역을 찾아가 공연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애적 사람을 많이 만날 수가 있다. 가끔씩 만나기 때문에 나타나는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품으로 대화하고 예술만이 가지는 힘을 공유하려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지역의 예술을 돌이켜보고 대한민국의 예술세계를 생각할 것이다.이 두 가지 측면은 예술의 생태계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자존심과 시기와 질투는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나쁜 자아이며 존경심과 공유와 소통은 그러한 자아를 극복하려는 또 하나의 모습인데, 이러한 형태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명공연거리야말로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공연 집적촌으로서 '공유와 소통'이라는 예술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요인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향후 대구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연 거점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다. 대명공연거리의 전국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 대명공연거리의 현실을 보면 지역 예술 단체에만 의존해 발전을 기대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예술 단체들도 지원에만 너무 의존해 미래에 대한 준비를 스스로가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모두들 말한다. '대명공연 거리는 서울 대학로 다음으로 한국에서 손 꼽히는 공연 거리라고'.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기대만을 하고 있다. 이제 하나씩 준비를 해야 만 한다. 이에 대명공연거리의 나아갈 바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형성에 있다고 본다. 이 지역에만 머물지 말고 대한민국 전체를 두고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 가야 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우수한 공연들은 계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대명공연거리에서 공유하며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서울 작품만이 아닌 지역의 작품들도 생존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고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관객을 몰리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본질의 연극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 한가운데 대명공연거리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주었지만 향후 30년은 대한민국의 네트워크 및 세계적 네트워크의 구축이 이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한국판 에든버러나 아비뇽축제를 만들자!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15 14:29:53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내 스스로 한탄함[자탄(自歎)] 이황  

내사 마 안타깝네, 이미 다 지난 세월! 已去光陰吾所惜(이거광음오소석)그대야 무슨 걱정, 지금 하면 되는 것을 當前功力子何傷(당전공력자하상)쌓고 또 쌓아서 저 높은 산 될 때까지 但從一簣爲山日(단종일궤위산일)어영부영하지 말게, 급하게도 굴지 말고 莫自因循莫太忙(막자인순막태망) 1564년. 퇴계 이황(李滉:1501-1570)도 나이가 어언 예순 넷에 이르고 있었다. 그 무렵 퇴계는 벼슬에서 물러나와 안동의 낙동강 가에다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우주와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제자 김취려(金就礪:1539-?)가 서당으로 찾아와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3수의 시를 지어 퇴계에게 바쳤다. 퇴계도 역시 그의 시에다 맞장구질 친 3수의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다. 위의 작품은 그 가운데 하나다.예순 넷이면 그 당시로서는 꽤 많은 나이다. 저승사자가 대문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얼핏얼핏 보이는 시점이다. 그러므로 퇴계로서도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없을 수가 없었을 터다. 그 무렵 그는 학자로서의 마지막 열정을 온통 공부에 쏟아 붓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이미 많은데다, 타고 난 몸이 쇠약했던 그에게는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당연히 퇴계는 마음에도 없는 벼슬살이 때문에 그 많은 시간들을 헛되이 보낸 데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하지만 제자 김취려는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여섯 살에 불과하였던 푸른 피가 펄펄 뛰는 젊은이였다. 그러므로 조금씩, 조금씩 쌓기만 하면 얼마든지 높고도 큰 산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이 시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쓰는 반성문이자 제자에게 보내는 격려 편지다. "제자야, 제자야. 내 나이 벌써 예순 넷이다. 금 쪽 보다도 훨씬 더 귀한 그 기나긴 시간들을 다 보내고, 지금 와서 이렇게 한탄하고 있단다. 제자야, 제자야. 너는 아직도 스물여섯의 꽃다운 나이. 쉬지 않고 꾸준히 가기만 하면 목표가 너에게로 다가온단다. 가기 싫다고 어영부영 주저앉아 있지도 말고, 의욕만 앞서서 지나치게 성급하게 굴지도 말아라. 급하게 굴면, 사흘 갈 길을 하루 만에 후닥닥 내달려간 뒤에, 열흘 동안이나 드러누워 끙끙 앓게 된단다."문득 생각하니 내 나이가 올해 예순 다섯! 퇴계보다 오히려 한 살이 더 많네. 내년이면 정년퇴직이고. 퇴계가 삶을 '한탄'했다면, 나는 콘크리트를 이마로 쿵쿵 치며 대성통곡해도 시원찮겠네. 하지만 제자들아. 그대들은 아직도 꽃다운 스물, 푸른 피 펄펄 뛰는 나이가 아니냐.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8-15 14:29:09

[불가사의 인도] 불교발생국 인도에 불교가 없는 이유

불교발생국인 인도에는 불교가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불교 사찰도 불교 신도도 찾아보기 어렵다. 인도를 방문하는 다수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것도 불가사의다. 인도인들의 종교별 인구 비율을 보면 불교 신도가 0.7%로 기독교(2.4%), 이슬람교(13%)보다 훨씬 적다. 그런데 인도를 찾는 외국인들은 왜 이걸 모르고 지나칠까? 그건 불교와 힌두교사원을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영국에 가면 영국정교회와 정통기독교회를 구별하기 어렵듯이 인도에서는 힌두교와 불교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두 종교의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힌두교가 원뿌리이다. '힌두'는 인도라는 뜻이다. 따라서 힌두교는 인도의 종교라는 뜻이다.5천여 년 동안 히말라야산맥 남쪽의 거대한 땅 인도에서 살아온 인도 민족 중에서 석가가 태어나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창설하여 포교한 것이 약 2천500년 전이다. 석가가 오랜 고행 끝에 깨달은 해탈의 교리가 깊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지만 속세에 사는 인간들이 실천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힌두교 지도자들이 이 점에 착안하여 불교에 역공작전을 폈다. 이에 통치자들이 가세하여 불교를 억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교 신도들에게 석가처럼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평생 고행하지 말고 자기 집이나 일터에 불상을 모셔놓고 수시로 예불하면 된다고 가르쳤다. 이렇게 통치자들의 엄호를 받으며 번성하게 된 힌두교는 교세가 점점 더 확장되어 인도의 국교이자 호국종교처럼 되어버렸다. 상대적으로 위축된 불교는 인도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어 동남아와 동북아에서 번성하게 되었다.그러나 석가가 주창한 해탈종교 불교는 인류 보편종교로 인정받아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가 되었다. 반면에 원시 인도 다신교로 인도에서만 계승되는 힌두교는 인도 국경 안에서 번성한 국수주의 종교로 명맥을 이어간다. 일본 민족에게 호국종교로 인정받는 신도(神道)처럼 말이다.

2019-08-14 18:00:00

[북돋움] 빨강 머리 앤을 사랑한다면

몽고메리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빨강 머리 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모가 없는 외로운 처지와 녹록하지 않은 삶의 환경은 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누가 뭐라 해도 톡톡 튀는 개성과 밝은 마음을 잃지 않는 앤의 씩씩함은 삶의 희망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얼마 전, 도서관에 강의하러 갔다가 앤을 무척 사랑하는 여성 두 명을 만났다. 이들은 소녀 시절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앤 셜리의 인생 여정을 담은 소설 열 권을 모두 읽었을 뿐만 아니라 P.E.I에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내년 여름에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묻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네, 좋아요"라고 대답했다.P.E.I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Prince Edward Island)의 약칭이다. 캐나다 동부 세인트로렌스만에 위치한 이 섬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쓴 소설 앤 시리즈의 배경이 된 곳으로 1908년 출간된 첫 번째 이야기 '초록 지붕 집의 앤'(Anne of Green Gables)이 큰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특히 앤을 좋아하고 추억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문학기행지이기도 하다.몽고메리는 P.E.I에 있는 소도시 캐번디시를 모델로 가상의 마을 에이번리를 창조했다. 한편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호수와 나무, 숲길에 '빛나는 물의 호수' '연인의 오솔길' '유령의 숲' '하얀 숙녀'와 같은 낭만적인 이름을 붙였다. 몽고메리의 외사촌 데이비드와 마거릿 맥닐 남매가 살던 집은 소설 속에서 매슈 남매가 앤과 함께 지낸 초록 지붕 집으로 재탄생해 여행자들을 반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정말 여기서 살았나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집 내부의 꾸밈이 자연스럽다.그 외에도 클리프턴(지금의 뉴런던)과 캐번디시에는 몽고메리의 생가,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던 집터, 그녀가 다닌 교회, 팬들의 편지와 엽서가 놓인 묘가 있다. 외조부모가 운영했던 그린 게이블즈 우체국은 아직 영업 중이다. 1898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스물네 살 때부터 몽고메리는 9년 동안 할머니를 도와 우체국 일을 하면서 집필에 몰두했다. 당시 캐나다의 우편 업무에 사용된 집기들과 몽고메리에 관한 기록이 함께 전시된 이곳에서 낭만이 가득한 엽서를 부칠 수 있다.몽고메리와 가장 가깝게 지내며 마음을 나눴던 친척 캠벨의 집은 앤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주의 주도(州都)인 샬럿타운에서는 여름 내내 뮤지컬 'Anne of Green Gables'와 'Anne & Gilbert' 공연이 펼쳐진다. 50년 넘게 이어져 온 뮤지컬은 원작의 탄탄함과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져 몇 번을 봐도 식상하지 않다.2016년과 2017년 여름, 몽고메리의 삶과 앤의 흔적을 따라 책 걷기를 하는 호사를 누렸다. 같은 장소를 일곱 번 찾아갔다. 더 잘 알고 싶어서, 더 섬세하게 느끼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몽고메리가 살았던 시대와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았던 가상의 세계가 마치 하나인 듯 잘 어울리는 곳. 19세기와 20세기, 21세기가 공존하는 캐번디시. 섬을 일곱 바퀴 도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이처럼 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보존될 수 있는 이유는 이 장소들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과 맥닐, 캠벨 가문 후손들의 노력 덕분이란다. 참으로 부러운 대목이자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점이다. 몽고메리의 삶과 앤 이야기가 녹아 있는 장소에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포장된 것이 없다. 아날로그 방식을 지향하며 관광객들로 하여금 현재에서 과거를 살게 한다. 접근의 편리함을 위한 셔틀 버스도, 만만한 대중교통조차 없지만 여행자들은 그곳을 찾아간다.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미래의 초록 지붕 집과 앤 박물관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여전히 스토리의 힘에 집중할 것 같다. 현대화의 바람은 불겠지만 몽고메리의 정신과 작품의 가치만은 훼손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 몽고메리가 극찬한 그 섬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두 여성의 용기 있는 도전에 함께하기 위해서.

2019-08-14 18:00:00

꿈이라는 단어가 촌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런 사회는 희망이 없다. 사진: pixabay 제공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촌스러운 꿈이다

필자의 삶은 광고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 선천적으로 게을렀던 필자는 광고를 만나 성실한 사람이 되었다. 집중력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광고에 무섭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숱한 점들이 모이니 선이 되었다. 어느덧 아이디어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꿈이라는 단어가 촌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아직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꿈을 좇니? 현실에 살아라"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 꿈을 얘기하는 강의는 시간 낭비처럼 여겨지는 요즘이다. 꿈을 얘기하는 순간 꼰대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하지만 필자는 '꿈'을 무시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꿈은 어떠한 약물로도 줄 수 없는 에너지를 준다. 꿈은 에베레스트산을 오르게 하고 노벨 과학상에 도전하게도 만든다. 한쪽 발이 없는 육상선수를 탄생시키고 전화기 하나로 60억 인구를 이어준다.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꿈은 그것을 가능케 한다.필자 역시 광고라는 꿈을 만나기 전에는 무기력한 인간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힘겨웠다. 서른이 되도록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 그러나 꿈을 만나고 필자의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1초가 아깝게 느껴졌다. 일주일이 너무 짧고 한 달, 1년이 너무 부족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간의 단위가 초, 분, 시가 아니라 제작한 광고의 수로 변경되었다. 연말이 되면 올해는 어떤 작품을 했느냐로 그 해를 결산한다. 그렇게 필자는 스스로 '아이디어'가 되려고 노력했다. 스타트업이 붐인 요즘이다. 역사상 요즘처럼 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한 적이 없다. 그 이유가 뭘까? 주어진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는 DNA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집고 싶은 사람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를 '아이디어에 목마른 사람들'의 압축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얼마 전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중국의 스타트업을 찾아간 다큐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고정된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좋지 않나" "왜 불안정한 스타트업을 하려고 하냐"라는 질문에 중국 청년들의 답은 무서웠다."남이 주는 월급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이 더 불안정한 삶이 아닌가요?"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캥거루족이 많은 한국, 일본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뱉은 무서운 대답 뒤에는 어쩌면 촌스러운 꿈이 있을지도 모른다. 꿈을 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허황한 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자신의 비즈니스로 세상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으면 그 꿈은 정말 이루어지지 않는다.촌스러운 꿈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수능성적 등급은 휴지 조각이 될 것이다. 내 인생을 남에게 맞추는 체면 문화가 없어질 것이다. 내가 없던 세상에서 내가 있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촌스러운 꿈을 두려워하지 말자. 촌스러운 사람은 있어도 촌스러운 꿈은 없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8-14 14:32:41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팬을 위하여

지난 9일 한여름밤의 음악회가 칠곡군 북삼읍에 위치한 인평체육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개최됐다. 장구의 신 박서진 가수가 온다는 소식에 엄마의 설렘에 보탬이 되고자 어린딸인 마냥 쫄래쫄래 따라갔다. 많은 인파가 이미 빼곡히 무대 앞을 가득 채웠고 병아리같은 노란 팬클럽 군단의 신명나는 열띤 응원이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노란 티셔츠, 노란 풍선, 노란 머리띠, 노란 전등 등 응원도구를 흔들며 여러 가수들의 노래에 맞춰 박자감 있는 어깨와 무릎 움직임의 단결함이 팬클럽의 위상인 듯했다.국악 가수, 성악가, 트로트 가수들의 공연들로 음악회가 물이 익었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장구의 신이라 불리는 박서진 가수의 순서였는데, 그의 팬클럽 응원 에너지가 폭발적이였다. 팬클럽 구성원들은 대부분 중년여성들이었다. 어림짐작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아주머니도 계셨다. 음악회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노란셔츠의 아주머니께 "응원 잘봤습니다" 했더니 "저희는 버스 대절해서 다른 지역에서 왔어요.(웃음) 박서진이 공연하는 곳이라면 저희는 어디든 갑니다" 하시며 늦은 밤 시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유유히 떠나시는 중년의 젊음이 대단하면서도 팬으로 구성된 집단의 위력이 강력하게 전해왔다.팬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특정한 스포츠나 연예인, 음악이나 배우, 영화, 소설, 만화 등에 열광적으로 사랑하면서 자신의 노력·시간·돈을 소비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노력에 의한 시간과 돈의 소비로 팬의 대상들은 장기적 발전을 얻게 된다. 필자가 공연기획 역할을 맡을 땐 안무자와 작품에 대한 시나리오를 구성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연구하기도 하지만 극장 측과 무용단의 공동으로 기획될 수 있는 공연의 제안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기도 한다. 안무자나 기획자는 작품의 질 높은 완성도를 위한 노력을 첫 번째라면 무용공연에서 무용관객의 성향과 관심도에 대한 연구가 두 번째 일 것이다.필자의 지난 문화예술 분야 관람률 증가세에 대한 글에서 문화예술 전 분야별 관람률은 상승했지만 무용은 매년 가장 느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을 다시 한번 빌린다. 무용의 대중화는 많은 무용인들과 학자들이 연구해 온 주제이며 현재는 다양한 대안들로 관객의 성향과 관심도를 고려한 작품을 창작하기도 한다. 어느 극장의 공연기획 담당자가 공동기획 제안을 수렴하면서 '웃기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주세요. 그래야 관객들이 많이 보러오거든요' 한다. 무용으로 관객을 웃기기는 개그맨보다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 든다.웃기고 유쾌한 작품들도 물론 안무자의 의도로 풀어내어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창작될 수 있지만, 무용의 추상적 움직임에 대한 탐색과 안무자의 작품 주제와 내용의 의도를 공감할 수 있는 무용 팬을 위해 오늘도 많은 무용인들은 창작의 고통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웃김'의 범주를 넘어선 안무자들의 추상적 미학이 때론 가슴 먹먹함과 고뇌, 때론 의도된 답답함과 불편함에 대한 의문이 진정한 무용 팬의 자격이 아닐까 한다.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8-14 11:13:28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새론새평]지역형 자사고(自私高)는 죄가 없다

공식적으로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평준화되어 있다. 현실은 이와 다르다. 학군 간, 학군 내 고등학교 사이에 학력 차이가 존재한다. 서울 강남 3구, 대구 수성구, 부산 해운대구, 대전 유성구의 의대,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 이들 지역의 집값이 비싼 것은 의대, 명문대 진학률과 관계가 있다.비슷한 수준의 교사를 배정하고 표준화된 교과과정을 도입해도 고등학교는 평준화되지 않는다. 학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직업과 소득에 따른 계층이 존재하고 계층별로 거주지역이 분리된 현실에서 학생을 근거리 배정하면 학교 간 학력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부모의 교육,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 위치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근거리 배정과 고등학교 평준화는 양립이 불가능하다.언제부터인가 과학고와 외국어고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 취지는 좋았다. 국가 발전을 선도할 과학 영재, 외국어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특목고(特目高)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과학고와 외국어고는 의대나 명문대를 진학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과학이 좋아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 외국어 전문가가 되기 위해 특목고에 진학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특목고 성공에 자극을 받아서(?) 개인 또는 기업이 '전국형' 자율형사립고를 설립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민족사관고, 상산고, 하나고, 포항제철고이다. 이들 학교는 전국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모집한다. 실질적으로 평준화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최근 인가가 취소된 서울의 8개 자사고는 전국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학부모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형' 자사고이다.고등학교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수도권 소재 과학고가 있다. 그 아래에 비수도권 소재 과학고와 민사고, 하나고 등의 전국형 자사고가 위치한다. 그 아래에 수도권 소재 외국어고,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가 있다. 지역형 자사고는 강남 소재 고등학교 밑이다. 그리고 피라미드의 최하층은 '일반고'이다.인가가 취소된 8개 자사고 중 7개는 비강남에 있다. 강남의 자사고는 1개가 취소되었다. 서울의 경우 현재 비강남에 4개, 강남에 9개의 지역형 자사고가 있다. 이 결과는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지역형 자사고가 필요한 지역은 비강남이다.사실 강남 소재 고등학교는 자사고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국가 지원금을 받으면서 근거리 배정 원칙에 따라 우수한 학생을 받으면 된다. 학생은 사교육을 통해 의대나 명문대에 진학한다. 학교가 할 일이 별로 없다.지역형 자사고는 평준화를 깬 주범(主犯)이 아니다. 종범(從犯)도 아니다. 평준화는 오래전에 깨졌다. 아니 평준화는 달성된 적이 없다. 서울 강남과 비강남의 학력 차이는 1980년대부터 존재했다. 그 차이가 커졌을 뿐이다.지역 간 학력, 진학률 차이를 심화시킨 요인은 수시모집과 쉬운 수능이다. 이는 현행 대입제도의 특징이다. 대학 정원의 상당 부분을 수시모집으로 채우면 스펙이 없는 학생이 불리하다. 수능을 쉽게 출제하면 사교육을 통한 반복 학습이 위력을 발휘한다. 사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이 불리해진다. 정시모집, 어려운 수능이 스펙이 없고 가난하지만 우수한 학생에게 기회를 제공한다.특목고와 전국형 자사고로 인해 비강남의 학교는 황폐화되었다. 강남에 거주할 수 없고 특목고나 전국형 자사고에 진학하지 못한 중산층 학생에게 지역형 자사고는 유일한 대안이다. 돈이 많아서 지역형 자사고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다.지역형 자사고를 평준화의 적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지역형 자사고가 일반고 재학생의 불만의 대상일 수 없다.자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맨 중산층 학부모는 정당하다. 특목고와 전국형 자사고의 태풍이 지나간 폐허에서 분투하는 지역형 자사고 교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지역형 자사고(自私高)는 죄가 없다.

2019-08-14 11:06:30

김백기 국민연금공단 대구지역본부장

[기고]시행 5년 차 기초연금이 가져온 변화

연금과 노후 준비에 관한 업무를 하다 보니 종종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된다. 해가 갈수록 복지관과 노인대학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최근 여가생활로 강의를 듣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고 활력이 넘치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이렇게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먼저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됐다. 세대교체가 빨라지고 평생교육이 확산되는 등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젠 은퇴 후 집에서만 머물러 있는 분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가까운 문화센터를 찾고, 사회복지관이나 노인대학을 선택해서 늘어난 여가를 즐기는 시대가 됐다.이처럼 활동적인 노년이 가능해진 데는 시행 5년 차에 접어든 '기초연금'이 한몫을 했다. 많은 어르신이 기초연금에 의지하고 든든해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기초연금이 많은 어르신의 주요한 노후 소득원으로 자리 잡아 우리 사회의 격(格)을 높이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노후소득보장 측면에서 보면 기초연금만큼 짧은 기간에 큰 영향을 미친 제도가 있을까. 기초연금제도 시행 5주년을 맞은 올해 기초연금 수급자가 522만 명을 넘어서면서 기초연금 혜택을 받는 어르신이 지난 5년간 약 100만 명 증가했고, 대구경북 지역 수급자는 67만 명(65세 이상 인구 중 73.3%)을 넘어서고 있다.국민연금공단에서는 65세에 도래한 분에게 기초연금 신청 안내와 제도를 홍보하고 있다. 한편 기초연금 신청 후 탈락하였으나 수급 가능성이 큰 분, 안내문을 받고도 신청하지 못한 분 등 연간 90만여 명의 수급 가능자를 발굴해서 안내하고 있다.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 선정 기준에 관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좀 복잡하다. 노인 가구의 각종 소득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서 합산한 금액에 근로소득공제, 재산공제, 금융재산 공제 등을 차감하여 '소득인정액'이라는 것을 산정한다. 기초연금은 노인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정부에서 고시하는 선정기준액 이하인 경우 수급할 수 있다. '선정기준액'은 65세 이상 중 기초연금 수급자가 70% 수준이 되도록 설정한 기준인 셈이다.2014년 7월 월 최대 20만원으로 시작했던 기초연금은 매년 4월 물가인상률만큼 증액해 지급하다가, 지난해 9월 월 최대 25만원으로 인상했고, 올해 4월 소득 하위 20% 이하 저소득 수급자에게는 월 최대 30만원으로 인상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조사 결과, 수급자의 86.7%가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해 어르신들의 생활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강의를 마무리할 때쯤 질문을 받아보면 국가의 공적 지원인 기초연금에 관한 것이 많다. 특히 기초연금액의 인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인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어려운 어르신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의를 하면서 이처럼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르신들에게 질문해본다. 어르신들의 마음을 자녀가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이해하는지를. 많은 분이 고개를 젓는다. 노년은 아득하고 힘겹다. 긴 삶의 여정에서 기초연금이 최소한의 버팀목이라면, 가족은 노후생활의 큰 자산이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고 있다. 고향 부모님과 이웃 어른을 살펴보는 관심도 필요할 때다.

2019-08-14 11:05:59

1981년(78세), 종이에 수묵채색과 먹, 약 68×68㎝, 대구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박생광(1904~1985) '목어'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물고기인 목어(木魚) 그림이다. 목어는 불교의식에 쓰이는 사물(四物)의 하나로 몸통은 물고기지만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어서 사실은 용두어신(龍頭魚身)이다. 이 목어를 두드려 내는 소리로 물속의 모든 생명을 제도한다고 하며,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 형상에 언제나 깨어 있는 수행자가 되라는 뜻을 담았다고도 한다. 절에 가면 범종각 안에 매달려 있는 이 나무물고기가 눈길을 끌고, 상징하는 의미도 깊지만 그림으로 그린 화가는 많지 않다.이번 대구미술관 '박생광'전에 '목어'와 '목어 밑그림'이 함께 나란히 걸려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목어 밑그림'은 나무물고기와 단청한 기둥을 그의 손이 바로 포착한 생생한 민낯의 필력이고, '목어'는 작품화에 대한 심사숙고, 채색, 공간 구성, 배경 처리, 낙관 등을 거쳐 아름다움을 한껏 고조시킨, 말하자면 풀 메이크업한 실력이다. 밑그림의 단단하고 우직한 선질(線質)은 그의 작가적 심성을 보여주고, 완성작은 형태를 해석한 굵은 주황색 윤곽선으로 붉은색, 노란색, 녹색, 청색, 흰색 등을 감싸며 불교적 소재를 소화한 한국성(Koreanity)이 민족적 감흥을 환기시킨다.박생광, 이 이름 석 자는 현대 한국화 중 채색화를 짚을 때 감사의 심정으로 떠올려진다. 만약 한국 채색그림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자기화한 박생광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허전하고 부끄러웠을까. 불교와 무속의 종교적 이미지, 역사인물화와 민화 모티프 등 그의 독자적 소재는 필선으로 이루어진 구성적 디자인과 강렬한 채색을 활용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절집의 불화와 단청이라는 역사적 미술에 담긴 거대 서사인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감정을 박생광은 칠순의 나이에 이르러 자신의 서사로 완성해 낸 것이다.20세기 한국화 분야 작가들 가운데 박생광과 같은 해인 1904년에 태어난 이응노, 김용준이 함께 떠오른다. 이들이 광복을 맞았을 때 42세의 나이였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뿌리에서부터 단절시키고 바탕조차 왜곡하고 우리말까지 말살했던 일제 군국주의의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 사회활동을 한 그들이다. 한 명의 작가가 탄생하기란 어느 시대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들이 극복해낸 암흑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짙었다. 동갑인 박생광, 이응노, 김용준의 행로는 각각 달랐다. 그러나 이들의 성취는 '한국인인 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성찰했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박생광의 말이다. 미술사 연구자

2019-08-14 10: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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