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대구는 교육 도시다 -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매일춘추] 대구는 교육 도시다 -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600만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 15년의 도피 생활 끝에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살아있는 악마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재판정으로 몰려들었고 37개 국으로 TV 생중계되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전범이 포악한 성정을 가진 괴물일 거라는 사람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너무나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는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 불렀다."전 지시대로 했습니다. 명령대로 따라야 했죠. 그들이 죽는 것과 상관없이 명령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행정적인 절차라는 게 있죠. 그 가운데 일부를 제가 맡은 것뿐입니다." 아르히만의 항변에서도 드러난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한 관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근면하게 직무를 수행하지만 '악'마저 성실히 반복해 무뎌진 윤리관으로 악행을 저지른다는 뜻이다. 악의 평범성의 핵심은 자신이 믿고 따른 명령이 참인지 거짓인지, 정당한 건지 부당한 건지 사고하고 판단할 수 없는 무능력에 있다.역사적 참극의 책임이 아이히만과 같은 직접적인 가해자 몇몇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관료들의 악행과 무능력을 그냥 두고 본 동시대 사람들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왜 유대인들은 저항하지 않았는가? 수용된 유대인은 많았지만, 각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600만 명의 비극을 낳았다. 흥미로운 한 연구에 따르면 '순종적인 사람들이 나쁜 짓도 잘 순종해서 따라 한다'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착한 사람들이면 착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누가 시키면 원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잘 따른다는 것이다.악의 평범성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아이히만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그냥 두고 본'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당시 나치즘의 광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미미했다. 나치처럼 직접적인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양심의 기능이 정지된 평범한 다수의 방조자와 방관자가 있었기에 홀로코스트가 가능했다. 인간의 악이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이란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교육은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이끄는 힘이다. 교육의 목표는 보다 나은 실천적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릴 힘을 기르는 데 있다. 지역교육의 목표가 용을 키워 서울로 올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유와 행동하는 개천의 건강한 시민을 길러낼 때 대구의 미래는 현재보다 밝다.

2020-09-02 14:09:02

[종교칼럼]아상에 집착하지 말라

[종교칼럼]아상에 집착하지 말라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 앞에서 드러내 뽐내고 자랑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하고 살았다.음식이 많지 않고 귀하던 시절, 자기 집에 제사라도 있는 날이면 떡이라도 갖고 동네에 나가서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나누어 주기도 하고 손님이 와서 맛있는 것을 싸오는 날엔 친구들에게 인기가 그만이었다. 그러면 한층 더 친구들에게 으스대고 큰소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너는 이 다음 내 말을 안 들으면 떡 하나 안 준다"고 엄포를 놓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는 제사가 있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이러한 마음이 자라서 돈이 생기고 여유가 있어지면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먼저 일어나서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우리는 외부에 드러내는 것을 중요시 여겨 명품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신발, 옷, 자동차 할 것 없이 가짜 브랜드라도 붙이고 다니면 남에게 있어 보이기도 하고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정 형편이 안 되는데도 외제 중고차라도 사서 뽐내야 자신이 부의 대열에 서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누가 봐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이다.이것은 우리 마음속에 아상(我相)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상에는 첫째, 내면적으로 일어나는 상(相)과 둘째, 표면으로 보여지는 겉치레의 상이 존재하는데 내면에서 일어나는 상은 자기의 고집, 이념, 아만, 아집, 관념 등등의 생각으로 실체적인 자아가 아닌데 마음에 어떤 모양을 굳게 그려서 만들어 가지고 있는 그릇된 관념을 말한다. 말하자면 나는 윗사람이라서 아랫사람에게 절대 굽히지 못한다. 나는 상사라서… 나는 남자라서… 나는 누구라서… 내가 왜… 내가 어떻게… 이러한 나의 고집의 테두리에 싸여 자아 성취를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대화와 소통이 안 되게 하며 타인과 대립관계가 되는 안타까운 사람들로 변해간다.두 번째, 겉으로의 상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상으로 나는 부잣집 아들인데 저 사람들과는 달라… 나는 서울대를 나왔는데… 내가 옛날에는 직장이 무엇이었는데… 나는 차를 어떤 것을 타고 다니는데와 같은 자기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기만의 세계에 도취되어 바깥 세계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어려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직장을 쉽게 구하지 못하고 끝내는 방에서 한 달 두 달 아니 1년, 2년 세월없이 밖으로 못 나오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그뿐인가. 남성들은 퇴직하면 다시 직장 갖기가 힘들어진다. 예전의 직위와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그것을 버리면 내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집착에 빠져 이웃과 친구 심지어 가족까지도 잃어버리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예전의 위치를 빨리 내려놓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모든 것이 즐거워지는데….아상은 무지의 뿌리이며 사견을 일으키는 토대이다. 나라는 관념과 집착은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면서 대상을 바르게 관찰하지 못하고 오만과 분노, 고통을 초래한다.내 마음속에 있는 아집이 진실한 나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저절로 세상이 보여지고 가까이 있는 사람이 친구도 될 수 있고 모든 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용기도 생기며, 좋은 인연이 되어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쓸모 없는 고집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별것 아님에 고마워하고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며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09-02 09:35:10

[경제칼럼]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 사업의 성공 조건

[경제칼럼]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 사업의 성공 조건

정부는 지난 8월 4일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서 서울권역에 2028년까지 13만2천 호를 추가로 공급한다고 발표했다.이번 대책의 새로운 내용은 전체 공급량의 60%를 차지하는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 사업(5만 호)과 공공재개발 사업(3만 호)이다.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이하 공공재건축)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방자치단체 도시개발공사 등과 같은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경우, 재건축 단지의 규제를 완화(용적률은 500%까지, 층수 제한은 50층까지)해 주는 대신 상향된 용적률의 50~70%, 개발이익의 최대 90%까지를 기부채납 형태로 환수하는 재건축 사업이다.정부는 공공재건축 사업으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주택의 50% 이하는 신혼부부, 청년 등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공공분양하고, 나머지 50% 이상은 공공임대로 공급함으로써 민영주택, 공공분양주택 및 공공임대주택이 혼재된 진정한 사회혼합형(Social Mix)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공공재건축 사업의 실행을 위해서는 용적률(250%)과 층수 제한(35층)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재건축 단지 조합원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수적이다. 재건축 조합이 공공재건축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계획에 큰 차질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사회혼합형 주거단지 조성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공재건축 사업에 재건축 단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요구된다.공공재건축 사업은 정부와 민간 재건축 조합이 협업하여 공공주택을 추가로 공급하는 민관 협동 사업이다. 정부는 재건축 인허가 규제를 완화해 주는 대가로 개발이익을 최대 90%까지 공공이익으로 환수한다. 반면 재건축 조합은 공공주택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100% 부담하는 대신 추가적인 개발이익 10%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추가적인 10%의 개발이익을 얻기 위해서, 재건축 조합은 고밀도 개발에 따른 단지 내 주거환경의 악화, 도로와 학교 등과 같은 기반시설의 혼잡 등을 감수해야 한다. 대다수 조합과 조합원은 공공재건축 사업 참여에 따른 추가적인 개발이익에 대해 실익이 없다고 판단 참여하기보다는 차기 정권 출범 이후로 재건축 사업을 유보하는 분위기이다.재건축에 따른 개발이익을 공공이익이라는 개념에 몰입돼 개발이익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100% 환수한다면 공공재건축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동업의 기본 원칙은 비용과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소위 '반반'이다. 도로 개설과 같은 다른 공익 사업에서는 실질적으로 개발이익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재건축 사업에는 재건축 안전진단,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실거주 의무제 등과 같은 개별적인 규제들이 중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공공재건축 사업에서는 기존의 재건축과 관련된 규제를 통합적으로 정비해 공공재건축 사업 참여단지의 실질적인 개발 인센티브가 확대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공공재건축 사업은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공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과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 아파트를 공급하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공 아파트를 분양한다면 로또 분양으로 인한 분양시장 과열화와 불법 및 편법 분양이 재발될 수 있다.이미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 단지로부터 환수해 분양하는 공공분양 아파트는 더 이상 서민주택(강남지역 평균 분양가 3.3㎡당 5천만원 이상, 66㎡ 기준 매매가 평균 10억원 이상)이라 보기 어렵다.10억원을 초과하는 고가 주택을 특정 지역 및 특정 계층에 한정해 저가로 분양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재건축 개발이익의 사회적 재분배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공공재건축 사업으로 발생하는 공공분양 아파트는 반드시 '환매조건부'(처분 시 분양받은 가격으로 공공기관에 되파는 조건)로 분양해야 한다.물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부동산은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민간 재건축 사업으로부터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마중물(촉진제)로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재건축 사업에 대한 규제 일변도 정책에서 탈피해 시장 친화적이고 공익과 사익을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시점이다.

2020-09-01 16:05:29

[매일춘추] 대학 독서교육 유감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매일춘추] 대학 독서교육 유감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9월. 신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대학 캠퍼스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마음속에는 우울감이 맴돈다. 영혼을 잠식하는 알 수 없는 분노의 여름은 끝자락에 이르렀지만, 며칠째 불면의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이른바 '코로나 공포정치' 때문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코로나는 그래도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 '성찰적 삶'(vita contemplativa)의 소환이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성찰적 삶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를 생각해본다. 필자는 그것을 독서에서 찾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독서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세계 최하위권(192개 국 중 166위: 2015년 UN 통계)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일단 제쳐놓자. 문제는 처방인데, 답은 대학생들에게 있다. 책읽기가 재미있으면 된다. 그러면 사회에 나가서도 저절로 책을 찾게 된다. 어떻게 책읽기에 재미를 붙여줄 것인가? 2010년 필자는 교수회 대학교육 혁신위원으로 학생들이 재학 중 100책을 읽는 '백편 프로젝트'(HP)를 입안하였다. 뭐니 뭐니 해도 창의성(output)의 원천은 독서(input)라는 생각이었다. 이 경우 대전제는 첫째, 'HP'는 '(읽기 싫은) 고전 (억지로) 읽기'가 아니라 '(읽고 싶은) 양서(良書) (마음껏) 읽기'라는 것. 둘째, 과제 제출 지양이었다. 무엇을 읽든 학생들의 선택에 맡기되, 독후감 등 과제 부담을 없애야 지적 내공이 키워지고 지적 내공이 커져야 창의력이 발양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HP 액션플랜'은 (1)교수(명예교수 포함)·강사 분야별 '권장양서 1,000선 해제집' 마련, (2)'해제집'에서 96책(1년 24책) 골라 읽기, (3)그 책을 '실제로' 읽었는지 여부를 해당 서책 추천자가 S/U로 인증할 것으로 요약되었다.이 'HP'는 2011년과 2018년 각각 대학본부 교학부총장실의 폭넓은 이해와 공감으로 주요 대학교육정책의 하나로 공론화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학내외 사정으로 그만 유야무야되어 버렸다. 정책 입안자로서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그 대안으로 필자의 소속 학과는 2012년부터 축소된 형태의 '독어독문학 독서인증제'를 학과 내규로 정하여 시행 중에 있다.오래전에 한 신문 칼럼에서 읽었지만, 책읽기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그러나 밑 빠진 독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이 딴 데 어디 갈 리 없다. 장대한 황하의 기원이 그러하다. 하늘에서 곤륜산을 타고 흘러내린 차가운 물이 몇 천리 잠류하여 없어진 듯하지만, 마침내 황하 9천리의 대역사를 이룬다. 깊이 있는 생각, 독창적인 콘텐츠, 훌륭한 글은 이 몇 천리의 잠류처럼 깊고 넓은 독서에서 나오며, 그것이 21세기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덤불이 우거져야 토째비가 나온다'는 우리 속담이나 '양의 질로의 전화'라는 헤겔의 변증법은 이 '밑 빠진 독에 책 읽기'와 맥이 통하지 않을까?

2020-09-01 14:05:24

[세계의 창] 친일과 반일의 어스름을 벗자

[세계의 창] 친일과 반일의 어스름을 벗자

지난 8월 29일은 한일병합조약 공포 1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조약 제1조는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완전하게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양여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약은 1904년 한일협약 이후 일본 침략을 '정당화'한 각종 조약의 완결판이다. 전쟁에 패한 것도 아니고 이들 조약을 통해 나라를 갖다 바치고 식민지가 된 것이다. 그 '공로'로 그들은 일본으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갖다 바친 나라가 일본의 일부로 잘 통치되도록 협조한 자들도 생겨난다. 이들을 통틀어 친일반민족행위자(줄여서 친일파)라 한다. 이들의 취급 문제는 해방 직후부터 민족적 과제였다. 해결되지 못한 이 문제는 7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국립묘지에 묻힌 그들의 묘를 옮겨야 한다거나, (애)국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국민' 통합을 해친다며 반발도 적지 않다. 그들도 신생 대한민국의 건설과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립묘지에 안장된 백선엽 장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만주의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고,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해방 후 6·25 때는 다부동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국군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래서 그는 친일과 애국 논란의 중심에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김원봉은 일제강점기하에서 가장 치열하게 무력투쟁을 전개한 의열단을 이끌었다. 해방 후 일제 형사 출신의 경찰들에게 수모를 겪고 북으로 가서 북한 정권 수립에 일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는 애국과 용공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왜 백선엽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김원봉은 독립유공자에서 배제되었는가. 백선엽이 해방 후 친일로 처벌받았으면, 그 후 그의 이력은 없을 것이다. 해방 직후 독립유공자 대우를 받았다면 김원봉은 북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 직후 한반도의 정치적 이념 공간이 그들에 대한 평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는 미군과 소련(현 러시아)군의 진주로 남북 분단이 현실화했다. 남에서는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라며 일제강점기 때의 '기술자'들을 필요로 했다. 엄습한 냉전체제가 친일 세력들의 활동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 후 그들은 반공 한국의 기득권층으로 흡수되어 보수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상대적으로 국가 건설 과정에서 소외되고 평가절하되었다. 냉전체제가 친일 청산, 즉 탈식민주의를 가로막은 결과였다.친일파 청산 담론은 프랑스의 예를 자주 든다. 프랑스는 독일 점령하에서 나치 정권에 조금이라도 부역을 한 자들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100만 명가량이 체포되고, 이 중 6천763명은 사형, 2만6천529명은 징역형에 처해졌다.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 종교인 등 사회 지배층에게는 중형을 선고했다. 9만5천 명에게는 시민권을 박탈하는 '비국민' 선고를 내렸다. 나치 협력자 색출은 40년간 계속된다. 독일의 침략을 받은 다른 유럽 국가들은 더 가혹했다. 민족 반역 행위로 구속된 사람이 프랑스는 10만 명당 94명, 벨기에 596명, 네덜란드 419명, 노르웨이 633명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일(附日) 협력자 청산에 대부분 실패한다. 유럽 국가들의 철저한 탈나치화는 새로운 독일을 필요로 했고, 독일은 반성했다. 피식민지였던 동아시아에서의 친일 세력 건재는 일본제국 부활의 동력을 제공하고, 일본은 반성할 필요가 없었다.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왜 다른가. 독일 침략 이전에 근대국민국가의 경험을 가진 유럽 국가들에 나치에 협력한 '비국민'은 새로운 국가 건설 장애 요소였다. 일본 침략 이전 전근대국가에 머물렀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해방 후 근대국민국가 건설에 직면한다. 일제강점기하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근대'를 경험한 그들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동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은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국민국가 형성을 향해 가고 있다. 백년대계를 위해 이제라도 '비국민'적 요소를 걷어낼 필요성을 지각하고, 그럴 만한 힘이 생겼는지 모른다. 친일과 반일이 뒤섞인 어스름한 혼돈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옥석을 가리면서 때로는 단호한 걸음으로.

2020-08-31 17:48:03

[일상중국] 'CoroNation', 우한을 다시 떠올리다

[일상중국] 'CoroNation', 우한을 다시 떠올리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지 9개월.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Pandemic) 터널의 한가운데에 갇혔다. 지금까지 우리는 'K-방역'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져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터널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착각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후 단 하루도 그 터널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코로나 확산세가 지속되면서 정부가 예고한 대로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첫날인 지난달 30일 인적이 끊긴 서울의 거리 모습은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 우한(武漢)을 연상시킨다. 지난 2월 '신천지'를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스스로 봉쇄를 자청한 텅 빈 대구 거리에 앰뷸런스들만 사이렌을 울리며 내달리는 모습도 겹쳐졌다.오늘 우한의 풍경은 그때와 달랐다. 도심 쇼핑몰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워터파크'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축제를 벌였다.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 워터파크에서는 '우한 맥주축제'가 열렸다. 수천여 명의 시민들이 축제에 참가, 맥주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졌다.오늘도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코로나 진원지' 우한에서 벌어지는 일상이 자연스럽기보다 '작위적인' 연출로 느껴진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코로나 확산에 최소한 도의적 책임이라도 져야 할 우한이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투로 축제를 벌이는 것은 '중국으로 인한 코로나 대확산과 전 세계인의 고통'에 나몰라라 하는 뻔뻔함의 극치다.우한은 춘절(설날)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1월 23일, 전격적인 도시 봉쇄 조치로 1천여 만에 이르는 우한 시민들이 고립된 채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76일간의 봉쇄령 동안 우한의 일상은 정지됐다. 통계상으로 5만340명의 확진자가 발생, 3천869명이 사망했다. 바이러스 정보를 통제하고 은폐한 대가치고는 너무나도 참혹한 결과다.그러나 통계는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신천지 사태'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대구경북지역 확진자는 8천454명. 수도권 확진자 7천658명과 큰 차이가 없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바이러스 감염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구식 봉쇄'에 준하는 대응이 시급한 시점이다.중국은 우한 사태 이후 바이러스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가장 효과적인 바이러스 통제는 사람 간 접촉을 최대한 억제하는 봉쇄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속성을 중국 당국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국가 시스템은 사람의 이동 금지를 강제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불필요하다. 당이 결정하면 국가는 집행할 뿐이다.그러나 우리는 그런 중국의 시스템을 따를 수 없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독재와 같은 방역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며칠 전 공개된 'coronation'은 코로나로 봉쇄된 우한을 기록한 영화다.중국 반체제 행위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우한 시민들이 직접 기록한 영상을 모아 편집 제작한 이 영화는 발이 묶인 우한역, 눈보라가 치는 정적뿐인 우한 거리. 감염 공포와 싸우는 의료진의 긴장, 봉쇄되는 바람에 고향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주차장에서 생활하는 외지 노동자의 모습들을 차례로 보여준다.우한 첫 코로나 감염자는 지난해 12월 1일 보고됐다. 그러나 당국은 감염 정보를 은폐했고 바이러스는 사람 사이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내보냈다. 그 사이 바이러스는 우한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키웠고 시민들은 죽어나갔다.한 우한 시민은 이 사태와 관련, 성장과 서기 등 지도자들이 교체됐다고 하자, "지도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누가 권력을 잡아도 마찬가지다. 마오쩌둥이 오래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공산)당이 군대를 지휘하지 않느냐"고 대꾸한다.아이웨이웨이는 'Corona'와 'Nation'을 조합한 'CoroNation'을 통해 누구도 신뢰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중국을 고발한다. 영화는 '우한 필승! 중국 필승!'을 외치며 돌아가는 의료진의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K-방역에 도취된 채 의료진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부의 모습은 이 영화 'coronation'과 다를 바 없다.

2020-08-31 15:38:47

[김태선의 디자인, 가치를 말하다]  관성의 변곡점

[김태선의 디자인, 가치를 말하다] 관성의 변곡점

대면 수업에서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한다는 급박한 통지가 또 날아왔다. 지난 2월 말 개학을 앞둔 그때 같은, 아니 더 심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변화는 가속화되어도 1년 정도 후엔 모든 것이 정상화되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전염병은 지금 당장 라이프스타일을 온전히 바꿀 태세다. 2020년은 인류 역사에 변화의 가속이 표면화된 두 번째 시기로 기록될 듯하다.그렇다면 첫 번째 가속 시점은 언제였을까?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L. Freidman)은 2007년을 그 변곡점으로 본다. 2007년(±1년), 애초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하둡(Hadoop: 빅데이터 분석에 사용되는 오픈 소스 프레임 워크), 깃허브(GitHub: 개발자들이 애정하는 오픈소스 플랫폼),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아마존 킨들(Amazon Kindle: 전자책 단말기), 아이폰(iPhone) 등이 출시되었다. 이 많은 상품 중 일반인의 일상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마도 아이폰일 것이다. 아이폰은 휴대전화의 플랫폼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애플리케이션의 소프트웨어 시장을 열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폰으로 언제 어디에서든 이메일을 확인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도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인터넷 검색은 물론 문서 작업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라이프스타일은 바뀌었고, 그 변화의 중심에 아이폰이 있다.(삼성전자의 갤럭시S는 2010년 6월 출시되었다)아이폰의 성공 요인으로 '손안의 기기 하나로 전화, 영화, 웹브라우징까지' '손에 착! 감기는 탁월한 그립감'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그때에도 다양한 기능을 한데 모은 기기로 팜이나 PDA 등이 있었고, 좋은 그립감의 제품은 너무나 많았다. 아이폰에서 비롯되어 지금은 모든 터치 기기의 보편 기능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화면을 빠르게 팍팍팍 쓸어내리면 가속이 붙어 빠르게 내려가고, 손가락을 떼면 물리적 관성과 가상의 마찰력에 맞춰 속도가 줄지만 바로 멈추지는 않는다. 그리고 스크롤이 문서 끝에 다다를 땐 살짝 튕겨서 올라갔다가 멈춘다. '관성 스크롤'(inertia scroll)과 '고무줄 효과'(rubber band effect, 일명 바운스백)이다. 이 경험 요소는 사용자에게 디지털 화면이 아닌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문서를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용할수록 손에서 놓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이 작은 경험 디자인 요소 하나가 사람들을 작은 화면 속 불편한 스크롤바에서 해방시키며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이제 디자인은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행동 방식,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혁신적 기술도 결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통해 완성된다.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디자인의 고유한 역할이다. 참고로 '사용이 재미있는 감성이 풍부한 터치스크린' 경험을 만든 디자이너는 바스 오딩(Bas Ording)이다.

2020-08-31 15:36:02

[신병주 교수 역사와의 대화] 정약용과 김정희의 유배

[신병주 교수 역사와의 대화] 정약용과 김정희의 유배

코로나19의 위세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면서 사회적 격리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배형을 받으면 정치적, 사회적 격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배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을 완성시켜 나간 인물들이 있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과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대표적이다.정약용은 180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경상도 장기로 유배를 갔다. 그런데 이해 9월 황사영이 조선 조정의 천주교 박해 상황을 중국 북경의 주교에게 보낸 이른바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나면서 정약용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다시 유배길에 오른 정약용은 나주까지 함께한 형 정약전과 헤어져 강진으로 갔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갔다. 정약용은 강진에 처음 유배를 와 동문 밖 주막에 머물렀다가, 1805년 겨울에는 보은산방으로 옮겼고, 1808년 봄 초당을 짓고 거처로 삼았다. 다산초당은 본격적인 연구의 산실이었다.이때 정약용은 초당 근처의 백련사를 찾아 혜장, 초의와 같은 고승들과 교유하면서 차를 공부하기도 했다. 해남 윤씨 외가가 근처에 있는 강진에 귀양을 간 것은 큰 행운이었다.외가에서 많은 책을 얻어서 연구에 참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배지인 만덕산의 얕은 야산에는 차가 많이 생산되어 '다산'(茶山)이라 했는데, 그의 호 '다산'의 유래이다.정약용은 외부와 격리된 초당에 인공 폭포와 연못을 만들고 채소도 심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 초당의 바위 절벽에는 정석(丁石)이라는 두 자를 새겨 자신의 공간임을 확인해 두었다. 관료 생활 기간 중에 누릴 수 없었던 시간을 활용하여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그리고 농민 생활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면서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방안들을 붓으로 정리해 나갔다. 황상 등 정약용을 따르던 18명의 제자들 도움도 컸다. 「전론」 「탕론」 「원목」(原牧) 등을 저술하여 개혁적인 토지 정책을 제시하였고,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명저를 담은 '여유당전서' 500여 책을 완성하였다. 정약용이 오늘날까지 실학을 완성한 최고의 학자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에는 유배라는 극한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는 열정과 시간 활용이 큰 몫을 했다.김정희는 헌종 때인 1840년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19세기에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대표적인 외척 세도 가문이었다. 이들의 정치적 대립 속에 윤상도의 옥사 사건이 일어났고, 경주 김씨인 김정희 가문은 풍양 조씨 편에 섰다가 김정희가 유배길에 오른 것이다.김정희가 유배된 후 그와 인연이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끊었다. 지리적 격리 이외에 가까운 사람들과의 마음속 격리는 김정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을 것이다.이 무렵 잊지 않고 김정희에게 책을 보내오는 제자가 있었다. 역관 이상적(李尙迪·1804~1865)이었다.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책을 좋아하는 스승을 위해 책을 보냈다.이에 감동한 김정희는 의리를 지키는 제자를 위해 그림을 그려 이에 화답했다. 이것이 불후의 명작 「세한도」(歲寒圖)로 1844년 김정희가 59세 때 그린 역작이었다. 「세한도」에는 '날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논어』의 구절과 함께 창문 하나가 난 조그만 집, 고고한 소나무와 함께 잣나무 세 그루의 모습이 담겨 있다.스승에게서 「세한도」를 전해 받은 이상적은 사행길에 중국 친구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었고, 이들은 이상적의 의리와 김정희의 불우한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글을 보태 주었다. 「세한도」는 올해 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어, 그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정약용과 김정희처럼 유배라는 격리의 기간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자신의 학문과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의 모습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이들 학자처럼 코로나19가 가져온 어쩔 수 없는 격리의 시간들을 자기 계발의 기회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2020-08-31 15:35:45

[세계의 창] 포스트 아베의 한일 관계

[세계의 창] 포스트 아베의 한일 관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임기를 1년 남겨 두고 정권을 내던졌다. 이유는 2007년의 1차 사임 때와 마찬가지로 건강 문제라고 하나 석연치 않다. 아베는 지난 6월 코로나 재확산 이후 지방정부에 대책을 미루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내각부는 8월 17일 올해의 2분기 GDP 성장률이 –27.8%를 기록했다고 발표해 아베노믹스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정권 운영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의욕을 상실한 듯 아베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건강 이상설이 나온 것도 이 시점이다.2012년 말 성립한 아베 정권은 일본 헌정 사상 가장 긴 7년 8개월간 존속했다. 민주국가에서 장기 집권은 부자연스럽고 바람직하지 않다. 사임 발표 직후 서일본(西日本)신문사의 긴급 여론조사에서는 아베 정권에 대한 부정 평가(50%)가 긍정 평가(30%)를 앞섰다. 언론도 입이 터졌다. "오랜 기간 권력 유지에는 성공했지만 정책이나 정치 수법의 면에서는 부정적 유산을 쌓아 올렸으며"(마이니치신문), "상처 입은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아사히신문)고 평가했다. 아베는 임기 중 금융 완화를 축으로 아베노믹스를 추진했고, 해석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도입 등 전쟁 관련 법제를 완비했다. 세계적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는 "아베가 일본을 망쳤다고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고 그의 경제정책을 혹평했다.('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시민사회는 "전쟁을 하고 싶으냐"며 전쟁 관련법을 비판했다.아베 총리의 사임 기자회견은 한국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어느 정치인은 페이스북에 "만감이 교차한다. 그동안 어지간하게 한국을 힘들게 했다"는 감상을 남겼다. 아베는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한국인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정치인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식민지화의 원흉이며, 아베는 식민지 시대의 범죄를 부정하는 '아름다운 일본'을 추구하며 보수 우경화의 길을 걸었다. 위안부는 없었으며, 1965년의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불행했던 과거사를 직시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 비판하고, 일본 국민에게 자긍사관을 강요했다. 한일 갈등 심화의 도화선이 된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대해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 국제법 위반이라 비난했다. 일본 사회의 혐한(嫌韓) 무드를 더욱 부추긴 것이다.3·1운동과 임시정부에서 민족 정통성의 근간을 찾는 한국,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베 정권과의 타협이나 양보는 어려웠다. 대법원 판결에 일본이 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명제라며 정면 대결을 택했다. 급기야 아베는 혐한 무드를 배경으로 보복성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고, 보이지 않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방해했다. '노 재팬', '노 아베' 붐과 함께 한일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했다.문재인 정부나 아베 정권 가운데 어느 한쪽이 없어지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회복이 어려운 듯했는데, 아베 정권이 사라졌다. 한일 관계도 회복될까. 아베 정권하에서 강고해진 혐한 분위기 속에서 새 정권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외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나, 변화의 모멘텀은 있을 것이다. 포스트 아베를 누가 이어갈 것이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총리 비서실장 겸 정부 대변인 격),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외상이었던 기시다 후미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 등이 아베의 후임자로 거론된다. 아베는 기시다에게 신뢰를 보내는 듯했으나, 스가를 정책 계승자로 여기고 있다는 관측이다. 아베가 새 총리 선출 때까지 직을 유지하는 것은 이시바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국민 선호도가 가장 높은 이시바보다 스가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이다.아베 정권의 축을 담당했던 스가나 기시다가 총리가 되면 탈아베에 한계는 있겠으나 장기 집권의 피로감이 누적된 아베 정치를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아베의 대척점에 있는 이시바는 아베의 노선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아베 정권은 끝났다. 누가 아베의 뒤를 잇든 비정상적인 한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암중모색이 시작될 것이다. 아베 없는 한일 관계를 준비해야 한다.

2020-08-31 12:04:25

[기고] 성서산단이 살아야 대구 경제가 산다

[기고] 성서산단이 살아야 대구 경제가 산다

성서산업단지(이하 성서산단)는 전국에서 지방 산업단지로서는 가장 큰 규모다. 1965년 공업지역으로 결정 고시되어, 1984년부터 조성사업을 시작했고, 1988년부터 업체의 입주가 시작된 성서산단의 위치는 대구시 달서구 갈산동 외 10개 동에 걸쳐 있을 정도로 넓다.이렇게 만들어진 성서산단은 대구 제조업의 중심으로 지역 경제를 이끌어 나갈 엔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현 실태는 그 기대에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지난해 연말 기준 2천700여 개 업체가 조업 중이었는데 가동률은 7분기 연속으로 내리막을 걸으며 60% 후반에 그쳤다.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치면서 많은 업체들이 휴업에 들어가거나 폐업했다. 남은 업체들마저 올 2분기 가동률은 60%에도 못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까지 일고 있는 실정이다.쇠락하는 성서산단의 문제는 단순히 지역 제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구경북 지역의 위상이 걸린 문제라고 본다. 국내 제3의 도시 위상을 공고히 했던 대구가 어느새 인구로는 인천에 역전당한 것도 성서산단 등의 쇠퇴로 인한 산업 경쟁력의 약화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대구에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인구 감소를 막고 도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수 기업이 입주할 만한 산단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기대를 걸 만한 것은 성서산단의 기업 환경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 진행 중이란 점이다. 바로 서대구역과 대국국가산업단지를 연결하는 34.2㎞ 구간의 대구산업선 철도 건설사업이다. 지난해 1월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으로 확정돼 2027년 개통을 목표로 국토교통부에서 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다. 대구 주요 산업단지를 따라 철도망이 깔린다면 기업의 물류 환경은 물론 근로자들의 출퇴근도 훨씬 편리해진다.문제는 대구시가 앞서 마련한 대구산업선 7개 역사 설치 계획에 성서산단 내부에 위치한 역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대로 사업이 추진된다면 성서산단과 가까운 역은 2호선 환승역인 계명대역, 1호선 환승역인 설화명곡역으로 모두 산단 외부에 있다. 5.8㎞에 달하는 성서산단 통과 구간에는 역사가 하나도 없으니 활용성이 매우 떨어진다.이 때문에 이달 초 대구상공회의소도 성서산단 내 호림네거리에 가칭 '호림역'을 만들 것을 공식적으로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대구시에 건의했다.대구상공회의소는 2019년 기준 16조8천억원을 생산하고 대구 산업단지 근로자의 44%를 차지하는 성서산단에 대구산업선 역사가 없다면 산업선으로서의 역할이 무색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부지가 확정되고 서대구역이 공항철도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대구산업선의 중요성도 더욱 커졌다는 점도 들었다.성서산단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산업단지 대개조' 사업지로 선정돼 생산과 고용이 증가하고 대구 권역 내 산업단지와의 인적·물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져 교통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교통 수요가 충분히 증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대구시는 대구산업선 호림역 건립을 시 정책 사업으로 추진, 국토교통부에 분명한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향후 국토교통부가 발표할 대구산업선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에서는 성서산단을 살릴 '호림역'이 반영돼 대구 경제가 재도약하길 기원한다.

2020-08-31 10:54:50

[매일춘추] 기고만장과 우물쭈물

[매일춘추] 기고만장과 우물쭈물

번아웃(burnout) 시절,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였던 제주 대정읍 근처에 머문 적이 있다. 그곳은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당시 조선 최악의 유배지였다. 풍족한 양반 생활을 누리던 그에게 유배 생활은 풍토병과 눈병, 겨울에는 한풍이, 여름에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하루하루가 괴로움과 고독 그 자체였다. 추사체는 9년 간의 유배생활에서 자기애의 울분을 누르고, 내면의 자기 절제로 만든 성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안동김씨 세력들에게 둘러싸인 '피포위 의식'의 강박관념으로 유배생활을 했다면, '추사체'와 '세한도'라는 독보적인 작품은 절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예는 문외한이지만 그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가 겪은 고난과 역경이 '절제된 성찰'을 통해 기품 있게 표현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어쩌면 인간 욕망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자기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에서 자기에 대한 사랑을 내부적으로만 집착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자기애를 철저히 부정하는 공리주의자들도 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자아 존중감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하기 쉬우며,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다른 사람을 수단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자기애가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영웅화하는 팬덤 현상도 나타난다, 양극단은 과잉의 꼭짓점에서 서로 반갑게 만난다. 그들에게는 사람의 가치가 보이지 않고, 물신화된 인간관계만 보인다. 자본 거울에 비친 위대한 자신의 모습에 이끌리어, 탐욕의 연못에 스스로 빠져 죽은 현대판 '나르시수스'와 같다. 기고만장과 우물쭈물한 전체주의자의 모습이다. 자본 앞에 인간은 나약하고 소심하다. 자본은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을 유연하게 강요한다. 특히 코로나 이후의 삶은 더 치열하다. 자연과 사람을 중시하지 않는 자업자득의 인간 재앙이다. 어느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 각자도생의 어두운 사회에서 '인간과 노동'이 배제되는 비대면의 대전환 시대가 빠르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만인의 욕망에 대한 만인의 인정'을 다 해 줄 수 없는 민감한 사회다. 불평등한 결핍이 상시적으로 발생 할 수밖에 없다. 그 민감한 결핍을 국가가 어떻게 완충적으로 만들어 주는 가에 따라 국가의 건강성이 달라진다. 나와 너 없는 우리는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 없는 나와 너는 더욱 더 존재할 수 없다. 이제 코로나로 혹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수많은 우리의 이웃이 숨죽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루하루 견디며 힘들게 숨 쉬고 있는 우리 이웃의 푸석한 얼굴을 애정 있게 바라보아야 한다. 함께 살아야 국가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함께 사는 것이 별것 있나요? 힘들 때 서로 도와주면 되지요.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2020-08-31 10:54:16

[기고]북한, 내년 1월 제8차 조선로동당대회 개최

[기고]북한, 내년 1월 제8차 조선로동당대회 개최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이 내년 1월 제8차 조선로동당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1946년 8월 제1차 당대회를 개최한 후 지금까지 모두 일곱 번의 당대회와 당대회에 버금가는 당대표자회를 네 차례 열었다. 특히 7차 당대회는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가 개최된 후 36년 만인 2016년 5월에 열렸으며 김정일 시기에는 단 한 차례도 열지 못했다. 제6차 당대회의 당 규약에 의하면 5년마다 한 차례씩 당대회를 개최하도록 명시되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으며, 제3차 당대표자회가 개최된 2010년에 이 조항을 폐지했다. 이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경제위기가 북한 역사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불릴 만큼 최악의 시기였으며, 설상가상으로 김일성마저 사망함에 따라 당대회는 요원했던 것으로 보인다.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사에 따라 김정은 후계 구도를 서두르기 위해 제4차 당대표자회를 열었는데, 이는 당대회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대표자회만이라도 열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대표자회는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에 개최되며, 당의 긴급 현안이 발생했을 때 개최되는 당대회에 준하는 정치행사이다. 북한 지도부는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열고, 김정은을 제1비서로 추대했으며 집권 5년 차에 제7차 당대회를 개최했다. 제8차 당대회가 내년 1월에 개최된다면, 비록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삭제된 규약일지라도 6차 당대회의 당 규약을 지키는 셈이 된다.제7차 당대회에서는 '당위원장' 직과 '정무국'을 신설했는데, 김정은은 '당위원장' 직에 추대되었다. 종전의 '제1비서' 직책은 집단지도체제 성격이 짙기 때문에 최고 직책명의 '위원장'으로 바꾼 것으로 판단되며, 비서국의 명칭도 정무국으로 변경했는데, 의미 있는 조직 개편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제7차 당대회 정책 방향을 보면, 경제 노선의 화두는 '인민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들 수 있는데, 주목할 부분은 경제 전문가인 박봉주 내각 총리를 당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시켜 핵 무력 완성을 위해 경제 분야에서 뒷받침되어 책임질 수 있도록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한편, 대외 안보 노선은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경제-핵 병진 노선과 핵보유국이었다. 따라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부분은 역시 핵과 미사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은 자위적 국방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핵무기 포기 불가와 핵 능력의 지속적 강화를 주장했는데, 이는 국가의 생존 전략과도 직결되며, 핵 능력을 바탕으로 대외관계를 주동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제6차 당대회에서 통일 노선은 '고려민주연방 창립 방안'이었지만, 7차 당대회에서는 제시되지 않았다. 김정은은 대남 통일 정책에 대해 '통일'을 144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당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지만, 새로운 통일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김일성­-김정일 시기를 거치면서 선대가 정립한 기존의 노선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7차 당대회에서 가장 주목된 화두는 핵보유국이었다. 그럼에도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5월 26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9월 18∼20일 평양선언, 그리고 2019년 2월 27∼28일 하노이 북미 회담,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정상 만남 등 대화의 장으로 나온 만큼 국제 환경의 조성과 원만한 대북 정책을 통해 북한의 인식을 전환시킴으로써, 출구전략을 찾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북한이 핵보유국 선포를 하면서도 남북 회담의 필요성과 한편으로는 회담을 제기한 점을 비추어 봤을 때 실질적으로 남북 간의 긴장을 줄이고 대남 전략 차원에서 대화의 물꼬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제8차 당대회에서는 어떠한 정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20-08-30 16:44:04

[이른 아침에] 원칙주의자 김부겸이 아쉽다

[이른 아침에] 원칙주의자 김부겸이 아쉽다

지난 4·15 총선에서의 미래통합당 패배 원인 중 하나로 '공천 파동'을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평론가들의 비판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나는 방송에서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대구 수성갑 공천에 관해서이다. 수성을 주호영 의원을 수성갑 지역에 공천한 것은 이른바 자객 공천이었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당선이 가능한 주 의원이다. 명분은 차치하더라도 굳이 김부겸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리저리 동원되어야 할 군번(?)은 아니다. 물론 한 석이 아쉬운 게 선거 국면이다. 하지만 주호영도 김부겸도 지역과 대한민국의 소중한 정치 재목이다. 까치밥을 남겨 놓는 여유, 보수 정치의 품격이 아쉬운 대목이어서 비판적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정치인 김부겸의 행보를 새삼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난하게 다선 의원이 되어 안정적인 정치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대구에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큰 꿈을 위해서이건 아니건 그의 길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고 학연, 지연 어느 것 하나 연결고리도 없다. 당파를 떠나 성원하고 싶은 정치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유였다. 지난 2월 비례위성정당 창당이 이슈화되었을 때이다. "비례정당은 소탐대실이다. 국민을 믿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당시 김부겸 의원의 공개적 언급이었다. 야당에 대한 비난은 구색일 뿐 결국 여당 위성정당 창당이 기정사실화되던 시절이었다. 극렬 지지자들의 비난을 자초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런 평소의 모습에 비해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는 실망과 아쉬움 그 자체이다. 내년 4월 예정된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관한 언급이 대표적이다. 중대한 잘못으로 열리는 재·보궐선거의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민주당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게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여당은 후보를 낼 것이다. 명분에만 집착할 수 없는 게 냉엄한 정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부겸 후보가 당헌을 개정해서라도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야 한다고 앞장선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일부 교회가 코로나 방역에 있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다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지지자들의 바이러스 테러'라는 김 후보의 언급은 도를 지나쳤다. 당원들의 표심을 얻어야 하는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라는 구호가 흔들리는 기미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당내 정치를 위해 무리수를 둔 김부겸은 게도 구럭도 놓친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평소처럼 원칙과 소신을 강조했다면 국민의 성원과 지지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지난 1월 19일 자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경선 후보 중 엘리자베스 워런과 에이미 클로버샤 등 두 여성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흥미 있는 부분은 버니 샌더스, 조 바이든 등 선두권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였다. 샌더스 후보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샌더스는 많은 진보적 의제를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샌더스는 트럼프 못지않게 분열적이다. 국민에 대한 편 가르기를 주된 통치 수단으로 삼는 트럼프에 이어 샌더스가 대통령이 될 경우 국민적 분열과 상호 적대감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분열 대신 통합을 추구하는 게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이라는 것이었다."뚜벅뚜벅 국민 통합의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총선 실패 후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 전 의원이 강조한 제목이다. 미국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분열의 정치가 횡행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다. 국민에 대한 편 가르기와 상대에 대한 비난만이 정치의 기술인 듯 보인다. 이번 경선에서 보여준 김부겸의 아쉬운 모습은 어쩔 수 없는 당내 정치의 한계라 대신 변명해 주고 싶다. 의기소침해 있을 김부겸 전 의원에게 당부한다.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 통합의 정치를 다시 시작해 달라고.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 달라고. 스스로에 대한 다짐도 국민이 그에게 바라는 바도 그것이다.

2020-08-30 15:51:58

[2020 세상 읽기] 우리 모두의 ‘서울’

[2020 세상 읽기] 우리 모두의 ‘서울’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가수 패티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의 한 구절이다. 노래 가사처럼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서울로 몰려들었다.사실 서울은 초기 백제와 조선의 수도(首都)였고, 고려의 부수도(副首都)였던 것을 감안하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약 2000년간 한국 역사의 중심이었다. 서울이라는 명칭도 신라의 서라벌(경주)에서 유래된 점을 인정하면, '서울'이라는 말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역사 속 우리 민족들은 나라의 수도가 어디가 되었던 '서울'이라 불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서울은 어떤 곳인가?신라, 백제, 고구려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인 곳, 수도가 되기 전엔 늘 천도의 후보지로 손꼽힌 곳, 수도가 된 후엔 조세와 곡물이 모여들었고 팔도의 먹거리가 넘쳐놨던 곳이자 전국의 인재들이 출세를 위해 몰려들던 곳이다.서울은 중앙집권체제와 관료제의 확립 그리고 우수한 기록문화를 남긴 조선의 수도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외적의 침입과 치욕적인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한반도의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해야만 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이처럼 굴곡과 환희로 점철된 역사적 시간을 거친 서울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가장 가난한 나라의 수도에서 세계적인 슈퍼스타 도시로 거듭났다. 한때 외국인에게는 대한민국보다 서울이 더 많이 알려졌고, 대한민국은 곧 서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우리나라의 모든 부문에서 서울은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교육, 관광, 문화, 의료 등에서 그 어떤 도시도 넘볼 수 없는 소위 '넘사벽'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서울 집중화를 낳아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을 출현케 했다. 인구집중에 따른 도시 인프라 부족, 과밀화에 따른 지대인상 등은 필연적으로 서울의 광역화를 낳았다. 수도권은 거미줄같은 광역철도로 하나의 생활권이 되었고 서울외곽순환도로(정식명칭:수도권제1순환도로)를 넘어 서울을 1mm도 지나지 않는 수도권제2순환도로를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이런 현실에서 지방분권과 수도이전문제가 도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그러나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예산, 인사 등 정부기능의 분권화 문제와 단순히 국가기관·공공기관의 이전 문제를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는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도이전을 행정부처의 분산이나 부동산가격 등의 지엽적인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도 있다. 얼마 전, 정세균 국무총리가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대해 "수도 이전 문제와 부동산 대책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안"이라고 말한 점은 수긍이 간다.서울이 가지는 오랜 역사적 정통성과 실재하는 글로벌 도시브랜드를 고려한다면, 수도를 옮기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묻어난 국민적 합의 없이 추진되는 수도이전 논의는 오히려 크나큰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역사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전제 왕권을 확립하여 통일신라의 전성기를 구가한 신문왕도 귀족의 특권인 녹읍을 폐지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달구벌(대구)로의 천도는 실패했다. 그 당시 신라인들에게는 경주 이외에 그 어떤 곳도 수도일 수는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야구팀은 어디일까?10여년 전만 해도, 1위는 LG도 두산도 아닌 기아타이거즈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두산, LG, 키움 등 서울연고지 구단의 인기 점유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호남, 영남, 충청 등 지방에서 서울로 유입된 인구가 많았지만 1990년대생 이후부터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태어난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 이들은 더 이상 과거 부모의 고향팀을 따라 응원하는 세대가 아니며 서울 등 수도권이라는 생활권과 문화를 공유하고 '서울 부심'이라는 심리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동향인'들이 돼버린 셈이다.만약 수도를 세종으로 이전 한 후, 향후 서울태생으로 수도권 지역감정을 대변한 대선후보가 행정수도를 다시 서울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우리는 다시 서울로 수도를 이전해야만 하는가?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는 답을 해줘야 한다. 과거 '관습헌법상 서울은 수도'라는 헌법재판소의 결론은 불가피한 것처럼 느껴진다.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한 지방의 혁신도시들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긍정적인 면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혁신도시의 경우, 이전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지역 내 빨대효과로 오히려 원도심의 인구가 줄어들고 구도심과 신도시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또한 광역철도와 고속철도 확대로 수도권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으며 최근 사상 최초로 수도권인구는 비수도권인구를 초월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으로 이전한 기관들의 일명 '서울사무소'라는 존재와 계속 늘어만 가는 KTX비용(출장, 출퇴근) 등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이런 상황에서 서울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수도 이전을 포함한 공공기관 및 주요 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시도된 정책들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아니면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교통인프라만 발달시켰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나 피드백 없이 추진된다면, 공공기관 등을 유치하기 위한 정치적 포퓰리즘과 심각한 지역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많은 지자체들은 지방분권을 주장하고 자치권 확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in)서울 명문대에 진학하는 지역출신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향토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특전도 준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진학하고, 일하는 청년들에게는 혜택이 거의 없다. 이러한 이중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공기관 이전문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어쩌면 지역에서 자라고 계속 살 의지가 있는 청년들이 해당 지역에 자리 잡게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이며 지방분권이라 생각된다.2000년간 축적된 서울의 힘은 단순히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을 옮긴다고 약해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서울에 살지 않아도, 서울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서울에 사는 것처럼 지역에서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토균형개발이 아닐까?지금, 우리 모두의 '서울'처럼 말이다.칼럼니스트 이상철

2020-08-30 06: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변관식(1899-1976) ‘단발령’(斷髮嶺)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변관식(1899-1976) ‘단발령’(斷髮嶺)

변관식의 '단발령'이다. 그림 속에 날짜는 적어놓지 않았지만 생전의 마지막 개인전인 1974년 6월 '소정 동양화전'에 나온 76세 때 작품이다. 당시 32세였던 현대화랑(지금의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은 이 전시를 기획하며 변관식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6개월 간 정릉의 한 절에 화실을 마련해 주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집중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던 덕분인지 변관식은 평생 몰두한 금강산화의 승화된 명작들을 그려내 이 전시는 그의 작품세계를 재평가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단발령'은 그 중에서도 백미여서 올해 5월 갤러리현대 창립 50주년 기념전에도 출품되었다. 올해는 소정 변관식의 44주기가 된다.조선시대부터 20세기를 통틀어 변관식만큼 금강산을 많이 그린 화가도 드물다."어떤 사람은 나의 산수화는 금강산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내가 평생 그려도 다 못 그릴 그런 장엄미를 갖춘 것이다. 금강산을 스케치해둔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내 머리와 가슴 속엔 금강산의 기억과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는 금강산의 어느 한 부분을 그릴 때마다 그 곳의 산세는 물론 바위의 생김생김과 물의 흐르는 방향과 물살의 세기까지 기억하며 그린다. 단원 김홍도와 함께 내가 가장 존경하는 화가인 겸재 정선이 금강산을 자주 찾고 많이 그렸지만 나도 8년이란 세월을 해동 제일의 산을 찾고 그를 30여 년간 그렸으니 그와 나는 이제 불가분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정도는 되어야 산수화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변관식은 일본 도쿄에 1925-1929년 유학하며 '신남화(新南畵)'를 배우고 돌아왔다. 한국적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결론과 소명에 도달해 1937년 3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8년 동안 금강산 곳곳을 스케치했다. 그러고 나서 30년을 줄곧 금강산을 그렸으니 '그와 나는 이제 불가분의 하나'라고 자부할만하다. 이렇게 무르녹은 경지에서 나온 금강산화 중 하나가 이 '단발령'이다. 흰 화선지에서 은은한 담채와 먹빛의 산봉우리와 언덕이 솟아나고 잦아드는 허(虛)와 실(實)의 강렬한 대비 가운데 무수한 점들이 마치 산하와 대기에 어린 정령 같은 존재감으로 화면에 나부낀다.지금은 북한 지역인 단발령은 이 고개에 올라서면 내금강이 한 눈에 들어와 겸재 정선의 '신묘년 풍악도첩'(1711년)에도 들어 있는 금강산 탐승의 명소였다. 단발령에서 일만이천봉을 바라보면 머리를 깎고 속세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되었다고도 하고, 신라 말 마의태자가 이 고개에서 머리를 깎고 금강산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단발령(斷髮嶺) 내금강산(內金剛山) 하운출곡지도(夏雲出谷之圖) 소정(小亭)"으로 써 넣어 쨍하게 맑은 햇살아래 여름 구름이 골짜기에서 일어날 때의 풍경이라고 했다. 노란 두루마기에 갓 쓰고 지팡이 짚은 소정산수 특유의 할아버지 유람객들이 단발령 고갯마루를 향해 바쁘게 가고 있다. 모두 7명. 더 많은 풍경을 섭취하려 전국을 다니며 사생하던 그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점경인물인 것 같다.변관식은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어 어디 하면 그곳의 강과 산, 나무, 돌, 집들이 훤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실지로 보고 스케치했던 곳이 아니면 그리지 않는다고 했던 실사(實寫)의 화가였기에 만년에 이르러 사실(寫實)과 사의(寫意)가 그윽하게 융합된 이러한 조형언어에 도달할 수 있었다.

2020-08-30 06:3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아이디어를 만나는 생활 습관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아이디어를 만나는 생활 습관

"아이디어는 타고나는 것 아닌가요?"강의 때마다 듣는 단골 질문이다. 그 속에는 '나 같은 일반인은 배워도 아이디어를 낼 수 없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의 한계를 세워버린다. 나는 '재능'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묵묵함'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묵묵함에는 말이 없다. 그저 남이 보든 보지 않던 그것을 계속 한다. 조금 다른 표현으로는 습관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연마하고 있는 기술, 지금 내가 공부가 습관이 되면 어떨까? 아이디어가 습관이 되는 방법을 알아보자.첫째, '조금씩 천천히'의 힘을 빌려라.나는 항상 아이디어 자판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판기를 누르면 내가 원하는 아이디어가 뚝딱 나오는 기계 말이다.생각해보니 내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하루 10개의 카피를 엑셀 파일에 쓰면 그것이 자판기였다. 이것이 부담된다면 하루 5줄도 좋다. 나의 경우 하루 10개의 힘은 엄청났다. 일주일 만에 70개의 카피가 모였다. 한 달 후엔 300개의 카피가 모였다.그때부터는 광고주의 의뢰가 두렵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와 아이디어 자판기를 누르면 내가 찾는 아이디어가 나왔으니까. 엑셀 파일 속에 미리 적어둔 카피를 꺼내 쓰면 되었다.가장 나쁜 전략이 '많이 빠르게'이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빠지는 전략이다. 아이디어를 많이, 빠르게 내고 싶어 한다. 그렇게 좌절을 한다. '아 역시 난 재능이 없어...'라고 말이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묵묵함의 힘이 더 중요하다. 하루 5개의 아이디어를 써보라. 그리고 꼭 저장하라. 필요한 순간 꺼내 쓸 수 있게 말이다.둘째,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한다.왜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는지 생각해보자. 고객에게 사랑받기 위해서이다.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사랑해주길 바래서이다. 하지만 그 첫 번째 고객은 당신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먼저 당신 브랜드를 사랑해야한다.그러기 위해 다시 선행 조건이 있다. 당신이 당신을 온전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광고 의뢰를 받으면 몸에 좋지 않을 것을 멀리한다. 담배는 물론 피지 않는다. 술도 가끔 마시는 편이다. 탄산음료, 커피, 밀가루 음식과 같은 것을 멀리 한다. 무엇보다 뱃살을 조심한다.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할 때 뱃살이 나오면 뭔가 불편하다. 배가 없으면 몸이 가볍고 생각도 맑아진다. 하지만 과체중일 때는 다르다. 몸이 무겁고 움직이기도 싫다. 그러면 신선한 아이디어가 내 곁에 오지 않더라. 셋째, 자신 만의 루틴을 만들어라.이 규칙은 자신을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지키려다보니 생긴 습관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려하니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잠들어야 몸이 가뿐했다. 그래서 난 루틴의 선봉자가 되었다.박진영과 이치로와 같은 혹독한 루틴을 지켜내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 하루 7시간 수면을 꼭 지켜려는 편이다. 7시간을 자지 못하면 그 다음날이 다르다. 뇌는 계속 수면을 요구한다. 몸은 계속 쳐져 있다. 하지만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뇌는 굉장히 활성화된다. 어제의 힘들고 불편했던 기억이 싹 다 비워져 있다. 오늘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기상 시간, 밥 먹는 시간, 쉬는 시간, 일하는 시간, 미팅의 시간, 공부하는 시간의 루틴을 만들어보라. 하루가 달라진다. 그렇게 일주일이 한 달이 1년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위에 쓴 세 가지의 법칙은 사실 모두 연결되어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로 말이다. 아이디어를 만나려면 나를 사랑해야한다. 나의 브랜드를 사랑해야 한다. 고객을 사랑해야한다. 브랜드에 사랑을 담아야 하고 광고에도 사랑을 담아야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만약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운이 좋아 한번은 고객의 지갑을 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고객이 너무 스마트한 시대가 왔다.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일하는 기업인지 눈치 챈다.빠르게 하기보단 바르게 삶을 살아보라. '빠르게' 편법을 쓰다보면 꼭 불량품이 탄생하게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르게 가면 좋은 아이디어도 발견하게 된다. 아이디어를 만나는 것엔 왕도는 없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위의 세 가지 법칙이 주효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사랑하면 해결되는 일이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8-29 16:25:07

[광장] 치유정원은 “건강에 초점을 둔 특수 정원이다”

[광장] 치유정원은 “건강에 초점을 둔 특수 정원이다”

최근 산림청은 영주에 국립산림치유원을 건립하면서 숲 자원을 활용한 건강관리 전문교육과 치유 시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산림청 산하 녹색사업단은 사회적 약자 계층에 치유정원을 조성해 주면서 정서적 안정감 및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사업을 하고 있다.필자는 15년 전 모 대학교 원예학과 교수분이 원예치료학 분야를 개척하면서 '치유정원론'이란 주제로 몇 시간 강의를 부탁한 적이 있어서 이를 계기로 치유정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 국내에는 두서너 군데 비슷한 성격의 치유정원이 있었으나 교과서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치유정원은 마음과 몸의 병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치료의 개념보다는 대체요법의 성격이 강한 간접 치료의 의미를 가진 정원이다. 요즘 눈에 급격하게 띄고 있는 병원 옥외 정원이 그 한 예이다. 병원 옥외 정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원예 활동과 다양한 체험을 통해 병이 나아지도록 돕는 간접적인 치료의 공간이다.치유정원의 역사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궁정 의사는 왕과 귀족들이 정치적 일로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면 "정원을 산책하십시오"라고 권유했다는 기록이 있다.이후 치유정원은 중세 시대 수도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수도원 정원이라고 하면 어린 시절 본 미국 영화 '기적'이 떠오른다. 수녀와 군인 간의 금단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부상병과 간호사의 관계로 만난 두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속삭이면서 거닐던 곳이 바로 수도원의 정원이었다. 남자 주인공은 건강이 빠르게 회복되어 예정보다 일찍 전쟁터로 떠나게 되는데 그들이 거닌 그 정원이 바로 치유정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17~18세기, 서구는 그야말로 치유정원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폐결핵과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 환자처럼 대량 발생했지만 그 당시 의학이라고는 대체의학뿐이어서 신선한 공기와 태양광선이 내리쬐는 곳, 즉 음이온이 많은 해변가나 숲 근처 병원에서 요양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그래서 환자들은 다양한 기능의 치유정원이 있는 병원 시설에서 생활하였다. 이후 첨단의학의 발달로 대체의학이 쇠퇴 일로를 걸으면서 특수목적 치유정원의 의미도 점점 옅어졌다.오늘날 도시의 환경이 나빠지자 도시민들이 쾌적한 외부 공간으로 관심을 옮겨가면서 치유정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치유정원은 건강에 초점을 둔 특수 정원이다. 일정한 양의 나무와 물이 흐르는 공간, 향기로운 허브와 약용식물 등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치유정원이라고 하면 따뜻한 햇살 아래 데크에 편안히 누워 있거나, 휠체어를 탄 환자가 향기로운 식물에 코를 대고 있거나, 녹음수 아래 환자와 식구, 또는 의료진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면서 담소하는 모습의 정원이 연상된다.여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정원으로 나갈 수 없는 소녀가 병실 침대 옆 창문을 통해 치유정원에 펼쳐진 자연의 풍경을 보는 모습이다. 굳이 정원에 가지 않더라도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쾌적해져서 치유의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치유정원이 필요한 곳이 어디 병원뿐일까? 우리들은 만성 스트레스에 더하여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까지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전 시대 사람들보다 몸을 앉히고 마음을 내려 둘 치유정원이 더 필요하다. 굳이 거창한 시설이 아니어도 된다. 건강을 생각하는 작은 정원이 도시 곳곳에 만들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장병관 대구대 도시조경학부 교수

2020-08-28 15:18:30

[시대산책] 위임통치와 김정은의 건강

[시대산책] 위임통치와 김정은의 건강

박지원 국정원장이 지난 20일 국회에 출석하여 김정은이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등 일부 측근들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곧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북한과 같은 수령절대통치 체제하에서는 수령 이외의 사람에게 '통치'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최고지도자 1인이 절대적인 권력을 독점하며 절대 2인자를 키우지 않는다. 소련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하고 중국에서 마오쩌둥과 류샤오치의 갈등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2인자를 인정하면 국가적 위험 요소를 키우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후계자 이외의 2인자는 인정하지 않고 후계자도 주로 혈육만 지명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2인자 아니라 2인자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철퇴를 맞게 되어 있다. 장성택을 비롯해서 2인자 비슷한 위치까지 갔던 사람들은 숙청을 피할 수 없었다. 1950년대의 박헌영, 1960년대의 박금철, 1970년대의 김영주 등이 그 대표적 예다. 김정일 시대에 가장 잘나갔던 장성택도 여러 차례의 실각을 경험하기도 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장성택, 이영호, 황병서 등 한국 언론에 의해 2인자 비슷한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 숙청되었다. 젊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다 보니 과거에 비해 훨씬 빈번하게 2인자 견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그런 북한에서 '통치' 행위를 위임한다는 것은 애초에 개념조차 성립할 수 없다. 최고지도자가 자기 업무가 너무 많으면 자기가 직접 하던 일 중에 일부를 밑의 사람에게 하라고 명령할 수는 있다. 이건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지 '통치'를 위임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에서 '통치'를 위임한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과 비슷한 수준의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거나 지위가 공고해진 후계자가 있을 때뿐이다.박지원 국정원장은 김정은에게 특별한 건강 문제는 없고 스트레스 때문에 권한을 위임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를 받아 핵심 간부들에게 일을 좀 나눠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스트레스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일을 좀 나눠준 것에 불과하다면 5, 6월에 발생한 일들에 대한 설명이 쉽지 않다. 당시 보도된 "김여정 동지가 대남 사업 부문에 지시를 내렸다"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한다" "다음 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 등의 표현은 단순히 업무를 조금 넘겨받는 정도를 많이 넘어섰다. 특히 청년동맹·직업총동맹·여성동맹 등의 대북 전단 항의 군중집회에서 '김여정 동지 담화 낭독'이 이뤄졌고 TV에서도 김여정의 담화 전문을 그대로 읽었다는 것은 북한의 모든 관례를 심하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북한처럼 2인자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서 이런 정도의 표현을 사용하려면 단순한 2인자여서는 안 되고 후계자여야 가능한 것이다. 북한은 수령제와 관련해서는 매우 철저한 나라여서 친동생이라고 하더라도 선을 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남북회담이나 북미회담에서 김여정이 김정은을 얼마나 깍듯하게 섬기는가 하는 것을 본다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런 북한에서 이런 표현들이 나왔다는 것은 절대 우연적인 일일 수 없고 일시적인 실수일 수도 없다. 이런 문제는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당 관계자든 신문 방송 관계자든 절대 이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아직까지 북한이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지명했다고 볼 만한 정보는 거의 없다. 젊은 김정은이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지명하게 되면 국내외적으로 김정은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 혼란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후계자를 지명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지명하지 않고 정치국이나 정치국 상무위원들만 공유하는 식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난 5, 6월에 했던 것과 같은 보도들과 집회들은 중간 간부들에게도 '유사시에는 김여정이 후계자구나'라는 것을 암시하는 효과를 주었다고 본다.문제는 '왜?'다. 국정원은 김정은에게 건강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건강 문제가 없다면 과연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국정원이 '위임통치'라는 말을 만들어내 김정은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어 가고 있다.

2020-08-27 16:21:00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승교대결(乘轎對決)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승교대결(乘轎對決)

신부가 탄 가마싸움'승교'는 이동매체인 가마를 말하고, '대결은 가마끼리 싸우는 것을 말한다. 경남 하동군 '가마고개'에서 가마끼리 맞서 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하동지 하권'에 전한다.교여지제(轎輿之制)란 가마를 보고 신분을 알 수 있는 평교자(平轎子), 사인교(四人轎), 사인남여(四人藍輿), 장보교(帳步轎)로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또 경북 의성에서는 서당 학동들이 추석 때 가마놀이를 했는데, 남·북 양 팀으로 갈려 네 바퀴가 달린 가마를 밀고 당기다 빼앗거나 부서지면 이겼다. 이긴 편이 가마에 꽂았던 깃발을 전리품으로 노획하면 마을 풍악대가 이긴 편을 환영했다.신분의 상징이었던 가마는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가는 신행길에 탔다. 가마는 그래서 가정을 이루는 새 출발이고 남녀의 결합을 상징했다. 그 신행길에 맞은편에서 낯선 가마가 오면 비키지 않고 서로 실랑이를 벌였는데, 종종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 기세에 밀리면 신부의 운세가 나쁘다고 하는 속신 때문이었다. 위의 승교대결(乘轎對決)은 조선시대 광해군 때 하동 가마고개에서 벌어졌다.한쪽 가문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가문과, 다른 한쪽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가문이었다. 남명은 유학계의 대학자로 추앙받으며 성리학(性理學)에 능통하여 경의(敬義)를 신조로 실행하는 학자였으며, 퇴계는 주자학(朱子學)을 집대성하여 대유학자로 성(誠)과 경(敬)을 실천하는 대학자였다. 그 두 집안이 오랫동안 학문적 대립으로 반목해오다 급기야 가마고개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이 벌어졌다. 어느 한쪽의 가마가 비켜가거나 비켜주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을 골수에 사무친 파벌의식으로 팽팽히 맞서 사흘을 버텼다. 학문을 같이하는 양쪽 문하생까지 합세하여 천막을 치고 힘을 보탰다. 신부를 기다리던 양가 신랑 집에서도 달려와 가마고개의 대결은 파벌인 학문과 가문대결(家門對決)로 치달았다.두 가문의 뿌리 깊은 반목은 타협을 거부하고 유가(儒家)의 인(仁)보다 의(義)만 앞세우며 양보의 미덕을 보이지 못하였다. 안동 중심의 퇴계 학풍과, 밀양 산청을 중심한 남명 학풍이 서로 우위를 강조하는 가문이기에 서로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수습해야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사흘을 눈을 부릅뜨고 맞선 두 가문에서 명예를 손상치 않고 수습할 방안을 강구하였는데 참으로 비극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유가의 인·의·예·지·덕을 져버리고 자기가문의 딸에게 자결하라는 것이었다. 무거운 돌을 가마에 넣어 주면서 그것을 치마에 감싸 앉고 벼랑으로 뛰어 내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두 신부가 절벽 강바닥에 떨어져 장사를 지내고서야 왔던 길을 되돌아감으로 이 대결은 마무리 되었다.높이 뜬 달이 사방을 비추듯 유가의 높은 도덕률은 달처럼 그대로인데, 후세인들이 왜곡하여 부끄럽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조식 선생과 퇴계 선생의 큰 가르침인 본질에서 벗어나 스승에게 엄청난 누를 끼친 것이다. 이 슬픈 '승교애담'(乘鮫哀談)은 '인간은 소우주'라고까지 천명한 유가의 본질에서 볼 때 가마고개에서 두 목숨을 낙화 시킨 것은 두고두고 애달픈 사연으로 남게 되었다.(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2020-08-27 13:26:04

[매일춘추] 전통으로의 회귀, 노트르담 대성당

[매일춘추] 전통으로의 회귀, 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 파리 박물관과 미술관 답사를 다녀온 며칠 뒤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큰 화재가 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노트르담 대성당은 잊지 못할 전율과 감동을 안겨주는 전통 건축물이다. 화마에 휩싸인 참담한 광경은 큰 상실감이었다. 이후 노트르담 대성당의 재건 과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는 노트르담 전통 원형을 그대로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현대적 재료와 구도를 가미한 변형일지에 대한 논의였다. 기존 첨탑을 유리 첨탑으로 변형한다는 안건은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에 유리 첨탑이 더해진 형태는 전통 미술 양식의 역사를 뒤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노트르담 대성당은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웅장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신비로움의 상징이다. 일반적으로 고딕 건축은 수직으로 높게 뻗은 뾰족한 형태의 첨탑, 드높은 천장, 넓고 화려한 창이 특징이다. 대성당의 중심부에는 높이 96m로 축조되어 상승감이 강조된 첨탑이 위치한다. 높게 뻗은 첨두형 아치 건축물에 늑골(갈비뼈) 모양의 늑재 궁륭은 지붕 무게의 하중을 분산시켜 건물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그리고 대성당의 창은 작고 어두운 로마네스크 창에 비해 밝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져 개방감을 더한다. 꽃잎형의 장미창에 크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처럼 고딕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율과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고딕 건축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설계를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첨탑의 현대적 재건이 아닌 전통 양식을 보존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는 숭례문의 화재를 연상케 한다. 그 원인은 다르지만 숭례문의 경우, 5년 3개월이라는 복원 과정 끝에 조선 초 창건 원형의 모습을 되찾았다. 전통으로의 회귀를 선택한 숭례문의 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반가움과 안도감을 선사하게 되었다. 만약 숭례문에 현대적인 형태를 가미했다면 국보 1호의 숭례문은 옛 전통의 모습을 잃었을지도 모른다.최근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프랑스 상원은 대규모의 논쟁 끝에 기존의 형태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은 고딕 양식 건축물의 과학적 특성에 대한 연구를 착수했고, 모형화와 건축 및 기념물 특성의 모델링, 목재의 물리화학적 특성과 구조, 납이나 석재와 같은 재료 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에게 전통의 그리움으로 남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재건을 전통으로의 회귀로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전통으로 회귀한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 바닥의 '푸앙 제로'를 밟는다면, 전통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또다시 매료될 것이다.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2020-08-27 10:53:10

[기고]생(生)과 사(死) 결정하는 3분간의 기적

[기고]생(生)과 사(死) 결정하는 3분간의 기적

30여 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수많은 현장을 누비고 다녔지만 사람을 살리는 경험은 항상 삶의 보람과 자부심을 갖게 한다.지난해 가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훈련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에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 펌뷸런스(펌프차+구급차) 출동 경적이 울려 퍼졌다. 달성소방서 인근 금리 지역 한 공장에서 근로자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이 없다는 신고가 접수됐다.훈련 중이었던 대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구급대원들이 타 지역 환자 이송을 위해 출동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평소보다 더욱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해 공장 내부로 진입했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듯 근로자들의 부산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한 남성이 쓰러져 있었고 동료들이 쓰러진 남성의 가슴을 압박하는 중이었다.미끄러지듯 차에서 내려 쓰러진 환자에게 달려가 가슴을 강하게 눌러보며 전체적인 외상 상태를 살펴보았다. 강한 통증에도 반응하지 않는 무의식 상태로 맥박과 호흡이 느껴지지 않은 매우 긴급한 상황이었다.환자가 매우 위중한 상태임을 확인하고 주변 근로자들에게 사고 경위를 묻으면서 곧바로 가슴 압박을 실시했다. 전문 의료 장비를 갖춘 구급대원들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약 5분여가 소요 되었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기나긴 것처럼 느껴졌다.곧바로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지정된 의사에게 의료지도를 받으며 전문 약품을 투여하고 수차례 자동제세동기를 이용하여 전기충격을 가했다. 병원으로 이송 준비가 완료되자 구급대원과 함께 환자를 안전하게 구급차로 옮기고 병원으로 출동하는 동안 환자의 의식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몇 시간이 흘렀을까. 구급대원에게 병원 도착 전 의식을 회복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 활동 대원으로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해당 사건의 심의 결과 환자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초기에 가슴압박을 적절하게 시행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2019년 질병관리본부와 소방청이 공동으로 주관한 급성 심장정지 조사 심포지엄에 따르면 심정지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전 일반인이라도 현장에 있던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생존율이 약 두 배 정도 높아졌다는 점이다.또 자동제세동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생존율이 약 세 배나 높아졌다. 즉, 출동 대원들의 현장 도착 이전에 일반인들의 초동 조치가 적절하게 시행된다면 환자의 생존율을 높여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심폐소생술은 가슴압박, 기도확보, 인공호흡의 3가지로 구성된다. 가족이 아닌 경우 환자의 정확한 병력이나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공호흡은 함부로 실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절한 가슴압박만으로도 초기에 시행하는 심폐소생술의 효과를 발현시킬 수 있다.가슴 압박은 심장이 위치한 곳에 양손을 포개어 실시하되 가슴뼈가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며 심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여름철 바다나 계곡에서 발생하는 익수 사고의 상황이나 가까운 주변인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 가슴 압박만으로도 생존율을 높여줄 수 있다. 이를 명심하고 간단한 처치 방법을 늘 숙지한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지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김상우 대구 달성소방서 현풍119안전센터 팀장

2020-08-27 10:51:39

[매일춘추] 금호강과 신천

[매일춘추] 금호강과 신천

대구를 키워낸 두 강이 있으니 바로 금호강과 그 지류인 신천이다. 금호강은 동서로 흐르며 아버지처럼 대구를 보듬어 왔고, 신천은 남북으로 흐르며 어머니처럼 젖줄을 공급하여 왔다.그 중 금호강은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의 가사령과 기북면 성법령에서 발원해 대구시 달서구 파호동에서 낙동강 본류로 흘러든다. 낙동강의 모든 지류 중 두 번째로 큰 강이다.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밭에서 비파 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물이 맑고 잔잔하다 하여 이름이 '금호'로 유래되었다. 근대까지 대구시민의 식수원이었다. 어머니의 강인 신천은 앞산 최정산에서 발원하여 200년 전에는 지금과는 달리 용두산-이천동 수도산-동산-달성공원 앞-금호강으로 흘렀다. 특히 대구 모노레일 3호선 건들바위역 앞으로 흘러갈 때는 많은 시인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하며 풍류를 즐겼던 경치 좋은 명소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 서거정 선생이 노래한 대구 10경 중 입암조어의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정조 때 시가지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하여 대구 판관(判官)으로 부임한 이서가 사재를 털어 1778년(정조 2)에 물길을 돌려 새로 제방을 축조하였다. 그래서 대구를 관통하던 방천은 '신천'이라는 이름이 유래되고 지금의 물길을 이루었다. 이에 감읍한 대구의 옛 주민들이 제방이름을 '이공제'라 하고 그해 8월에 이서의 송덕비를 세웠다. 그러나 그 뒤 없어진 것을 1797년에 다시 세우고 1805년(순조 5)에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또 다른 비를 세워 대구시 수성구 상동 신천동로 변에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강은 이 땅에 문화를 잉태하고 오랜 세월을 거쳐 대구를 풍요롭게 하였으며 혼신의 힘으로 내 고장을 키웠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 심정으로 지켜본 이 땅의 수많은 굴곡된 역사와 아픔을 강들은 또 어떻게 견뎌왔을까? 경산의 압독국, 남쪽 끝자락 청도의 이서국이라든지, 대구 명칭 미상의 소국, 앞산의 주봉인 비슬산 가야국과 신라의 흥망성쇠, 팔공산 왕건과 견훤의 동수대전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은 희비가 교차되었을까? 자식을 빼앗긴 일제강점기 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부짖었을 것이다.어버이의 사랑을 당연시하여 무심히 지나치듯이 강도 오염되어 간다. 항상 우리의 곁에 머물면서 맑은 공기를 불어 넣어주고 시원하고 포근한 쉼터가 되어 주며 지친 심신을 달래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힘을 주는 참어버이요 수호신 같은 강을, 자식들은 지나친 욕심을 부려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의 오수로 멍들게 하고 병을 키우고 있다. 이제는 맑은 수질의 고귀한 숨결과 자장가 들려주던 물소리도 사라지고 자식의 무관심에 금호강과 신천의 양수는 메말라 간다. 어버이가 늙어 가고 있다. 수수방관하는 자식에게 회초리가 날아올지도 모르니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내 자식들에게 쏟는 정성으로 강을 돌보아야 하지 않을까?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2020-08-27 10:50:32

[최재목의 아침놀] 정치는 코로나19에게 배워라

[최재목의 아침놀] 정치는 코로나19에게 배워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온 나라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나 첨단과학 운운하며 제법 우쭐댔었다. 한데 이게 뭔가? 백신 개발도 지지부진, 마스크 쓰기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란스러울 뿐, 근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질병 관리를 명분으로 사회적 통제와 감시는 늘어났고, 삶은 더 팍팍해졌다.아울러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전체주의니 독재니 파시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기정찰찰(其政察察), 기민결결(其民缺缺)'이라던 『노자』의 말이 새롭게 들리는 것도 이유가 있다. 나라의 정치가 개개인의 사적 영역을 너무 세밀히 들여다보면(찰찰), 백성들의 영혼은 탈탈 털려 자율·능동성이 망가지고 만다(결결)는 뜻이다. 사회가 공포스러워지면, 언론도 입을 다문다. 옳고 그름의 기준 없이 여론과 지지율에만 기댄 정치는 결국 시대정신과 백성의 힘으로 끝장난다.어쨌거나 재난을 견디며 배우고 깨달은 것도 많다. 정치 또한 코로나19라는 무언의 훈장에게 한 수 챙기고 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진심으로 배워라! 배우려 들면 모든 게 스승 아닌가.첫째, 자연 앞에서 '하심·겸손'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상의 무엇을 아직 얻지도 못했는데 이미 대단한 것을 얻은 듯 교만하다는, 인간의 저 '증상만'(增上慢)이 여지없이 무너짐을 우리는 목도하지 않았는가. 아직도 우리는 세계를 잘 모른다. 더 배워야 한다.둘째, '생로병사' 가운데, '생'이 '병·사'로 수시 전환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병·사'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이나 속에 항상 붙어 다닌다는 자각 말이다. 길거리에 나서면 차 조심해야 하듯 '생'의 여정은 '병'사'의 경고음에 항상 귀 기울여야 함을 알게 되었다. '병·사'가 '생'의 갑이고, 주인이며 스승이다.셋째, 질병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가졌든 못 가졌든, 이념의 좌든 우든, 아무 상관이 없다. 질병 앞에 공평하다는 자각은 종교 이상의 큰 깨달음을 안겨준 것이다. 감염의 공포 앞에,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누구나 공평한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아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넷째,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는 절제된 욕망의, 소규모 자치행정체가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라의 규모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라는 '소국과민'은 코로나19 시대에 유용한 전략처럼 느껴진다. 즉 『노자』에서는, "백성들이 죽음을 소중히 여겨 멀리 옮겨 다니지 않도록 하라"(使民重死而不遠徙)고 한다. 그리고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다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서로 간에 들려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隣國相望, 雞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적 질병 통제로 지금 우리는 '소국과민'의 의미를 경험 중인 셈이다.다섯째, 비로소 진정한 개인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동창회, 향우회 등등 온갖 단체 모임을 좋아하는 우리 사회가 언택트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개인의 독립된 시공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프라인의 면대면이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개개인이 연결된다는 학습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우리는 비로소 자율적, 능동적, 도덕적 개인의 희미한 가능성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어느 한쪽의 선(善)이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개인과 공동체의 상관성 속에서 실제로 우리는 너무 개인의 사적 영역을 무시해 왔다.코로나19의 불안한 시대,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끔은 유기적 연계를 벗어나, 독립된 자유롭고 도덕적인 영혼들의 사회 아닐까. 떼 지어 몰려다니는 것 말고, 누군가가 필요할 때 만나면 되는 '홀로 가끔 여럿'이 되는 사회 말이다. 정치는 코로나19로부터 이런 점을 배워야 한다.

2020-08-26 16:29:46

[유홍준의 시와 함께] 배풍등(排風藤)이 있던 자리

[유홍준의 시와 함께] 배풍등(排風藤)이 있던 자리

배풍등(排風藤)이 있던 자리 차영호(1954~) 폐교 하늘에 구름 한 장 떠 있다 풍금소리 들은 지 오래 되었다 그치?교실 앞마당 웃자란 나무들이 부스럼딱지를꼬질꼬질한 빤스처럼 헤집어 보이며열중 쉬어, 차려를 해본다 건너편 산도 열중 쉬어, 차려 따라하며그늘을 지운다 배풍등 빨간 목걸이를 건 구름시은아, 너만큼 모가지가 길다 나훈아의 '분교'란 노래가 생각난다. "늑목 밑에 버려진 농구공/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로/ 선생님의 손풍금 소리 지금도 들리네/ 지붕도 없는 추녀 끝에는/ 녹슨 종이 눈을 감고 있는데/ 다들 어디서 그 소리를 듣느뇨/ 추억 찾아 옛날로 가면/ 몽당연필 같은 지난 세월이 나를 오라 부르네." 뭐 얼추 이런 가사다. 고향 친구 두엇과 어울려 가끔 술잔을 기울이고 노래방에 가는데 그러면 친구 하나가 어김없이 나한테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내가 저보다 감정을 더 잘 잡는다나 뭐라나. 거참!'배풍등'(排風藤)은 어떤 식물일까? 알면 어떻고 모르면 뭐 어떤가. 중요한 것은 시 속의 학교는 폐교이고 그 '폐교 하늘에 구름 한 장이 떠 있다'는 것. 배풍등은 아직도 그 학교 그 교정 어딘가에서 넝쿨을 뻗고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 '교실 앞마당 웃자란 나무들도/ 건너편 산도/ 열중 쉬어, 차려'를 한다는 것은 나무와 산들마저도 그 시절 그 아이들이 그리워 그 시절 그 아이들 흉내를 낸다는 말. '배풍등 빨간 목걸이를 건 구름'이라니! 목이 가늘고 긴 '시은'이란 아이는 유독 예쁜 기억 속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폐교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인 자신이기도 할 터.그나저나 포항 어느 교정 소나무가 멋진 학교에서 열리던 푸른시 동인들의 여름시인학교는 어떻게 됐을까. 왁자지껄, 포항 시인들은 아직도 그 순수와 열정을 간직하고 있을까? 차영호 시인의 '배풍등이 있던 자리'는 '열중 쉬어, 차려' 수동적이 아니고 능동적이다. 코로나 때문에 동창회가 모조리 취소된 올해. 흰 구름 올려다보기 좋은 가을이 오고 추석이 오면 내 어릴 적 모교를 한번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다.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0-08-26 14:50:28

[도태우의 새론새평] 일어나 빛을 발하라

[도태우의 새론새평] 일어나 빛을 발하라

신라는 나라를 잃은 고조선 사람들이 내려와 척박한 산곡간에 헤어져 여섯 촌락을 이룬 데서 비롯되었다. 우두머리 중 하나인 소벌공이 알에서 난 박혁거세를 왕으로 살려냈으며, 박혁거세는 천 년을 지속하는 나라의 기틀을 세워 그에 보답했다.척박한 도망자의 나라가 하나 더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이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땅이었기에 바다를 건너 교역하다 유럽의 본류를 이루는 헬레니즘 문명의 기원을 이루었다. 척박한 변방이라면 지지 않을 나라가 또한 영국이다. 영원한 로마의 변두리에서 로마법을 뛰어넘는 보통법(Common law)을 길어 올려 근대 문명을 주도했다.척박한 환경 탓일까? 신라 또한 널리 인재를 받아들이고 무역에 열심이었으며 나라 사람들(國人)이 왕을 추대하고 함께 의논하는 정치를 발전시켰다.척박함을 극복하는 신라의 DNA는 천 년을 관통하여 19세기 후반 대구경북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되살아났다.1880년대 조선의 점포 수는 270개인데 그중 3분의 2인 184개가 대구경북에 있었다. 근대 상인들이 다수 등장했던 대구는 자연스레 국채보상운동의 선두에 서게 된다. 일본으로 취업해 근대적 직장을 체험한 인구 비율도 대구경북이 타 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그러기에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가 대구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만 하기 어렵다. 대구경북은 산업화의 모태가 될 자본, 인력, 사회적 기초가 어우러진 곳이었다.이에 더하여 아테네와 영국 민족의 자유 본능과 유사한 신라의 질주 본능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도래에 맞춰 대구경북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6·25와 낙동강 전선은 피의 희생을 통해 대구경북을 반공과 호국의 성지로 거듭나게 했다. 자유 반공 노선은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것이었고, 4·19의 전신인 2·28은 행동으로 이를 증거했다.5·16 이후 1987년까지 대구경북은 눈부신 근대화와 산업화를 추진하는 고성능 엔진이었다. 동시에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법치와 민주주의가 동반 성장했다. 이윽고 1987년 6·29선언을 통해 대구·경북은 '실질적 법치와 민주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이라는 역사적 대과제를 무사히 달성했다.그러나 그 이후는 어떠했던가. 대구경북은 미완의 헌법적 과제인 '자유 통일'이라는 국가의 비전을 잊고 지역 개발과 같은 작은 정치에 매몰되어 33년을 보내왔다. 근대사 100년간 선구적 비전을 제시해 오던 대구경북이 시야를 좁히고 안주하던 사이 국가의 방향성은 점차 위험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반공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건국과 호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반 성취가 정반대로 친일·독재·분단 세력 심지어 '토착 왜구'에 의한 수탈의 역사로 매도되면서 우리 사회는 어느 틈에 개인의 권리를 당 중앙이 좌지우지하는 중국식 전체주의로 변성되고 있다.이제 대구경북이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코로나 블루의 진실은 비전 상실이다. 대구경북의 꿈은 대한민국 근대사가 함께 꾸는 꿈이었다.적폐와 수구, 극우라는 모함과 누명을 뚫고 100년 근대사를 견인해 온 주역으로 떨쳐 일어나 공동체가 나아갈 길을 분명히 가리켜야 한다. 동아시아의 거대한 격랑 속에서 그 비전은 건국헌법부터 규정된 '자유 통일'일 수밖에 없다.아테네가 없었다면 학문과 정치가 없고, 영국이 없었다면 보통 사람들의 법치와 민주주의가 없었을 것이다. 대구경북은, 나아가 대한민국은 어떤 역사적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적어도 시대착오적인 중국몽을 넘어 광복절 노래 2절과 같이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을 품는 방향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건국과 호국에 이어 근대화와 산업화를 달성하고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대구경북인이여, 마지막 '자유 통일'의 고지를 향해 힘차게 일어서자. 역사의 서광이 그대와 함께할 것이다.

2020-08-26 13:48:20

[기고] 치유의 힘, 문화예술

[기고] 치유의 힘, 문화예술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다행히 대구의 코로나19 상황은 안정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광복절을 기점으로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이 재확산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전국으로 확대함에 따라, 대구의 모든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이 9월 5일까지 휴관한다.세계 속 코로나 상황을 살펴보면 미국 뉴욕 주요 전시장 운영은 중단한 상태이며, 거센 인원 감축 바람이 불고 있다.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인 휘트니 미술관, 뉴욕 현대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휴관하고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지난 6, 7월에 재개관했다.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뉴욕 필하모닉에서도 예정된 공연들이 올해를 넘어 내년 상반기까지 줄줄이 중단됐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로열 콘서트해보우 오케스트라는 무관중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연주를 하는 실정이다. 외국의 오페라 극장들은 유튜브나 자체 영상 시스템을 통해 오페라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적 문화예술 피해 사례를 보면서 좌절과 마음의 아픔을 느낀다.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야가 힘들겠지만 특히 공연계는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공연이 없다는 것은 실업 상태와 더불어 소득 감소로 이어지면서 예술인들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계획된 전시, 공연 행사가 멈춘 사이 예술인 복지를 다루는 정책 입안자들의 시각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점은 예술인에게 용기와 의욕을 북돋워주고 있다.지난 5월 20일 예술인 고용보험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11월까지 시행령 등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실효성 있게 만들어지게 관심과 지혜가 필요한 때다. 6월 들어 특수고용직 종사자, 프리랜서를 위해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쉽게 사용하는 전용 홈페이지가 오픈되고 현장 신청도 받았다. 7월에는 공연예술 분야 긴급 일자리 지원을 통해 잇따른 공연계 폐업 및 실업 사태를 방지하고자 2020 공연예술 분야 인력지원사업을 공모했다.사상 유례없는 위기 상황임에도 대구시와 각 구·군 공연장에서는 지역 예술인에게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사업을 기획해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침체한 대구 문화예술계를 부흥시키기 위해 무관중 공연 유튜브 업로드, 대관 및 부대시설 사용료까지 감면해 주고 있다. 앞으로도 지역 예술계와 예술 종사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사업에 적용해 주길 기대한다.코로나19로 시민들의 관람 욕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이때,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단기간에 종식될 수 없다면 코로나와 공존하는 일상을 안정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연장 역시 코로나19 전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 방식을 전환해야 하며, 공연장은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과 쾌적하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에 세워져야 한다.앞으로 대구 시민들에게 '유네스코 음악 창의 도시 대구'에 걸맞은 연주로 절망 대신 문화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을 발휘하길 믿는다. 아울러 희망을 싹틔우는 시간이 빨리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것이 대구 문화예술이 갖는 힘이 아닐까.오상국 대구시립교향악단 사무장

2020-08-26 11:52:03

[매일춘추]대구는 언택트 시대, 온택트 도시다

[매일춘추]대구는 언택트 시대, 온택트 도시다

코로나 재확산 소식은 기운이 빠지고 우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지난봄에는 처음 겪어보는 생존 위협이라 집 안에서 몇 주만 잘 버티면 끝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당시에도 지난 백 년간 인류를 덮친 팬데믹 통계에 따르면, 3차에 걸친 재확산이 있을 거라는 경고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경제적인 걱정이 겹쳐 더 시름이 깊다. 코로나가 또 시작한다니 뭘 먹고 사나?대구영상미디어센터도 9월 5일까지 휴관에 들어갔다. 센터는 다중이용시설이긴 하지만 고위험 시설이 아니라 방역지침을 잘 준수하는 수준에서 운영을 계속하려고 했다. 그런데 공공시설은 모두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는 시의 방침과 빠르게 차단벽을 만들어 조기에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논의 끝에 2주간 휴관을 결정했다.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고, 전문가들은 백신이 개발되고 안정세를 찾는데 1년 6개월은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그 사이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CJ CGV는 이미 2천508명의 인원 감축을 했고, 지난주부터 국내 여행사들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힘든 시기다. 사실 팬데믹 쇼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힘든 시기다. 이 힘든 시기 삶의 방향을 모르고 허둥대다가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코로나19가 변화시킬 시대를 잘 읽어내야 한다.팬데믹 시대에 많은 기업이 파산했고, 반대로 또 많은 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 양극화의 중심 키워드는 언택트와 디지털이다. 세계 경제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언택트 시대를 준비 중이다. 언택트 사회가 지속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본 회사는 IT 플랫폼 기업들이다. 언택트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은 플랫폼 경제이기 때문이다.팬데믹 이후에 도래할 사회는 비대면인 언택트에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on)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문명사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회 경제적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은 디지털에 있다. 인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바이러스로부터 생존할 수 있었고, 디지털을 통해 생계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지금까지의 아날로그 사업도 디지털로 '연결'해야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무엇보다 언택트 환경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건 콘텐츠 문화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공감을 얻는 콘텐츠는 공간과 언어와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나의 콘텐츠는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나의 콘텐츠를 디지털 세계로 합류시킬 수 있는 디지털 구사 능력을 익혀야 할 시기이다.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오지 않는다. 대구가 디지털 시대라는 새로운 문명에 잘 적응해나간다면 앞으로 30년은 힘차게 발전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실패해 디지털 사회에 '온택트' 되지 못한다면 새로운 문명에 도태되는 도시가 될 것이다.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2020-08-26 11:50:43

[종교칼럼] 화성여행을 위한 꿈

[종교칼럼] 화성여행을 위한 꿈

21세기 들어서 알게 된 우주에 관한 새로운 지식은 참으로 대단하고 앞으로 더욱 대단해질 것이다. 그런데 우주에 관한 지식들이 쌓일수록 더욱더 분명해지는 것은 지구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사실이다.금성은 지구에서 거리가 가장 가까워 일찍부터 천문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1970년대에 소련과 미국이 금성으로 탐사선 보내기를 거듭하여 많은 것을 알아냈다. 심지어 금성의 두터운 구름 속을 뚫고 들어가는 장비를 개발하여 그 안을 살피기까지 했다. 그 결과 금성의 대기는 90기압이나 되고 온도는 400℃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결코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그렇게 하여 관심을 돌린 곳이 바로 화성이다. 21세기 들어설 무렵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머지않은 시기인 2020년경 사람이 탄 우주선을 화성에 도달하게 하겠다는 야심 찬 발표를 했다. 그러나 2020년이 왔는데 NASA는 다시 20년 가까운 기간을 뒤로 늦추는 발표를 했다. 2030년대에는 유인우주선을 화성에 보내겠다는 것이다.그런데 놀랍게도 그 유인우주선에 우주인으로 승선하기를 지원한 사람의 수가 2만 명이 넘었다. 이들 중 가장 적합한 일부를 선발하여 조만간 훈련에 돌입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화성에 도착할 유인우주선은 지구에서 바로 출발할 수 없는 크기이기에 달에서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우주선에 필요한 온갖 장비들을 달로 옮겨서 그곳에서 조립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먼저 물도 공기도 없으며 밤낮의 온도 차이가 엄청난 달 표면에 우주정거장을 지어야 할 것이다.지구 궤도에 우주정거장을 올려놓고 인류는 그동안 지구 표면이 제공하는 조건에서만 생명 유지가 가능한 인간이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조건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비롯한 온갖 실험을 해왔다. 1년 정도 우주정거장에서 생활했던 우주인이 자신의 체험들을 우리와 공유하고자 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여러 가지 많은 난관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만 든다면, 우주선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최대 78일이었다. 화성까지 가는 데에만 이보다 몇 배나 더 긴 시간이 걸리고 지구로 귀환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화성에 가서 그곳에서 계속 생존해야 하는데 공기 밀도가 지구의 100분의 1에 지나지 않고 평균기온 영하 60℃인 곳에 착륙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내 죽음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화성 여행에 대한 꿈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고 성장하게 할 수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꿈으로 머물 것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란 사실을 더욱더 인정하고 겸손할 필요가 있다. 지구는 엄청나게 큰 우주에 비해 대단히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 표면에 살면서 누리는 정신적 공간의 크기는 대단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적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도 그보다 더 큰 여유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고, 물질적 공간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다.물질적인 차원으로만 본다면 광대한 크기의 공간과 엄청난 길이의 시간에 비해, 지구는 조그마한 천체이고 우리의 몸과 일생은 너무 작고 짧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과 신의 세계가 살아가기에는 충분히 크고 길다고 할 수 있다.물질적 차원의 공간과 시간의 세계에서 한계를 인식해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이제 물질적 차원을 넘어선 영적 세계의 가능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좀 더 힘차게 나아가야겠다.

2020-08-26 09:41:59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허필(1709-1768), ‘총석도'(叢石圖)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허필(1709-1768), ‘총석도'(叢石圖)

연객(烟客) 허필은 강세황과 마음으로 서로 알아주는 지심우(知心友)였다. 허필에 대한 기록 중 "늦은 나이에 성균관에 머물며 진사가 되었는데, 성균관 유생들의 부채는 허필의 그림이 아니면 손에 잡지 않았다. 담배 피우기를 좋아해 연객으로 호를 삼았다. 성균관 유생은 팔도에서 뽑혀 올라온 수재였지만 허필의 문장과 그림이 그 가운데 으뜸이었다."라고 『18세기 조선 인물지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 나온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려니와 어려운 일이라며 잘 그리려 하지 않았다.초선(草禪)도 그의 호인데 연초(煙草), 남초(南草), 남령초(南靈草), 망우초(忘憂草)라고 했던 담배의 효능감을 선(禪)의 경지에 비유하다니 애연가답다.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지어준 호 명선(茗禪) 못지않은 작호(作號)인 것 같다. 구도(舊濤)라는 호도 있는데 '흘러간 옛 물결'은 흩어져 사라진 담배 연기를 비유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멋진 호를 쓰는 안목이 있어 "강세황의 서화첩에 허필의 평이 없으면 점잖은 선비가 갓을 쓰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세황의 존중을 받았다.가난했지만 시간은 많았다. 36세 때인 1744년 금강산을 유람하는데 내금강, 외금강을 두루 구경하고 관동팔경을 일일이 답사해 1년이나 걸렸다. 곰방대는 당연히 물고 다녔을 터. 이 '총석도'는 관동팔경 중 으뜸인 강원도 통천 바닷가의 우뚝한 돌기둥 사선봉(四仙峰)과 이리저리 넘어져 있는 바위기둥들인 총석의 절경을 그린 것이다. '총석도'로 제목을 쓰고 함께 여행한 일행과 자신의 이름을 그림 위에 써놓았다. 통천의 총석은 일찍이 여기를 답사한 겸재 정선의 '신묘년 풍악도첩'(1711년) 중 '총석정'으로 하나의 틀이 만들어져 이후 김홍도, 이인문, 이재관 등 대부분 정선 식으로 이곳을 그렸다. 총석정에서 총석과 바다를 조망하는 구도이다.그런데 허필은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가 바다 쪽에서 총석을 바라보는 다른 시점을 택해 새로운 구도로 그렸다. 그래서 제목도 '총석정'이 아닌 '총석도'이다. 원래 총석은 총석정에서 보아도 좋지만 바다에서 배를 타고 돌아보는 것이 훨씬 실감 나 사선봉 선유는 금강산 여행의 일대 풍류로 손꼽혔다. 허필 일행이 탄 돛배가 제일 앞 쪽에 보인다. 총석을 화면 가득 그렸고 밀려오는 파도가 부딪쳐 일어나는 포말을 보글보글하게 그려 넣은 필치는 서투른 듯 졸(拙)한 맛이다.강세황은 허필보다 23년을 더 살아 79세까지 장수하며 허필이 상상하지 못했을 큰 출세도 했다. 언젠가 망우(亡友) 허필의 금강산그림을 보게 되자 그의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하고 꼿꼿한 면이 있던 모습을 대하는 듯 해 눈물, 콧물이 마구 흐른다며 허필을 그리워했다.

2020-08-25 14: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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