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청년창업과 도시재생

최근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지역을 바꾸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유흥업소 밀집 지역에서 유흥업소 폐업 공간에 '청년창업가게'를 오픈하는 것이다. 출발은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었다. 자신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인근에 흔히 '맥양집'(맥주와 양주를 주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이라는 유흥업소가 밀집되어 있으니 유해 환경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이에 대한 행정의 대응은 강력한 단속뿐만 아니라 주민협의체 등과 지속적인 협력으로 업소 10여 곳이 문을 닫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일반적인 민원 과정과 단속, 효과 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북구에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다음 단계의 출구 전략을 고민했다. 단속 부서인 보건소와 성북문화재단이 함께 청년문화와 청년창업이라는 화두를 갖고 지역을 바꾸는 방법을 고민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폐업으로 빈 가게를 청년창업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행정안전부의 '청년창업공간만들기' 공모사업으로 예산을 마련해서 3개의 청년팀을 선발했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수십 년 된 건물은 구조적 문제와 복잡한 소유권, 법적 문제 등을 안고 있었으며 건물주를 설득해서 임대차계약을 맺는 일 등은 오롯이 실무자의 몫이었다.이렇게 수개월간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난 7월 초 '낭만덮밥'이라는 청년가게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오픈식이 있던 날, 그 주변의 왕복 800m 거리에서 90개 부스가 참여하는 '두근두근 별길마켓'이라는 행사를 열어 지역주민들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제공하였다. 성인 대상의 유흥업소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야간에는 일반인들의 왕래가 드물었던 곳이어서 동네 상권은 자연스럽게 활기를 찾을 수 없었다. 휴일 오후와 저녁 시간에 1만5천여 명의 주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모습은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주민들은 일시적인 변화 속에서 미래를 상상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청년창업가게 1호점'은 지역 변화의 새싹과 같다. 새싹이 자라나 나무가 될 것이고, 또 다른 새싹이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지역을 바꾸는 일은 공간과 거리를 바꾸는 일이자, 또한 '풍경'을 바꾸는 일이다. 도시 공간과 거리는 '계획'으로 바뀌지 않는다. 도로를 새롭게 포장하거나 가로등을 교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공간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거리를 찾아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맛집이나 예쁜 카페를 찾기도 하지만, 자신의 두 발로 걸어가면서 일종의 '갬성'(감성의 신조어)을 느낄 수 있을 때 거리를 찾아온다. 비록 대단한 계획이나 예산, 사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재생'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의 오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하나씩 찾아가는 작업은 그 과정 자체가 '도시재생'이라 할 수 있다. 막대한 예산과 사업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역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사례들이 '도시재생'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이야기한다. 변화는 어떤 하나의 사건, 한 사람의 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작지만 수많은 사건들이 축적될 때 변화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몇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갈 때 변화가 가능하다. 지역을 바꾸는 일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때 가능하다.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외면한 채 마치 어떤 단면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의 실험은 그 복잡성을 인정하면서 지역공동체와 상생하는 청년창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곧 말로만, 계획서로만, 돈으로만 하는 도시재생이 아니라 진짜 도시재생, 지역재생을 상상하는 일이다.

2019-07-11 14:25:51

이금주 작 '권정생의 동화나라'

[내가 읽은 책]몽실 언니 (권정생/창비/ 2017)

'몽실 언니'를 읽고 권정생 작가의 집을 찾아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이내 조탑리의 논과 밭들이 보인다. 저기 어디쯤에 작가의 집이 있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좁은 길을 따라 골목 안을 한참 들어갔다. '몽실 언니'가 살던 집이 자꾸 오버랩 되는 가운데 맞이한 작가의 집은 초록색 양철지붕, 작은 마당, 무성한 잡초들, 집이라고 부르기가 편치 않을 정도다. 이렇게 낡고 허름하고, 작은 방에서 그 곱고 맑은 글들을 써냈다는 사실이 좀체 믿기질 않고, 가슴이 싸하게 아려왔다.늘 자신에게 엄격하고 검소하게 사셨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실제 살았던 집에 와 보니 검소한 정도가 아니라, '청빈(淸貧)'이라는 단어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청빈은 '맑은 가난',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한 것을 가리킨다. 작가 권정생의 가난은 그야말로 맑은 가난이었다. 작가 권정생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될 것 같다. 교회 종지기로 일하면서 오로지,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쓰면서 산 작가의 삶은 가난으로 해서 더 맑은 지혜를 준다.권정생은 일본에서 중일전쟁이 시작된 해에 태어나 태평양 전쟁까지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경험하며 자랐다. 아버지는 도쿄의 청소부로 리어카에 버린 책을 가져오면, 읽고 싶은 그림책을 골라 읽고 즐거워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4년 만에 6.25전쟁을 맞게 된다. 청년시절부터 병마와 싸우면서 혼자 아픔과 외로움을 헤쳐 나갔다.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인형극도 보여주고, 동화도 들려주다가 자신의 작품을 들려주기 위해서 동화를 쓰기 시작, 첫 작품으로 '강아지 똥'을 내 놓았다.'몽실언니'는 교회 관련 잡지에 연재되었다가 1984년 '창비'에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널리 알려졌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268쪽)는 문장이 '몽실 언니'의 삶을 가정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으로 기억된다.지독하게 가난했고, 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난다. 몽실은 새아버지와 살게 되면서 새아버지의 폭력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다시 친아버지에게 돌아와 새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동생을 낳고 새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혼자서 동생들을 돌보며 고단하고 힘든 인생길을 걸어간다. 부모로부터 사랑받기보다는 부모가 크나큰 짐이 되는 삶을 살았다. 두 어머니의 동생들을 다 끌어안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길에서, 원망보다 용서와 희망을 보여 준다.작가는 자신의 동화를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권정생의 삶과 문학' 121쪽)고 말한 바 있다. '몽실 언니'처럼 힘들고 거친 삶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벅찬 것이다. 그렇지만 희망이란 단어가 거울로 비추어질 때는 따스한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몽실 언니'를 만나야 한다.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자신을 끌어안고 울고 있는 세상의 '몽실 언니'들에게 조용히 들려주고 싶다. 사는 게 힘들어 울고 싶거든 '몽실 언니'를 만나라, 그대 눈물을, 그대를 닮은 몽실 언니가 닦아줄 것이다. 나직이 '몽실 언니!'를 부르며 그의 가슴을 파고들어라.이금주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7-11 11:52:18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낡은 슬리퍼

꿈으로 아들을 만드는 도인이 있다. 그가 머무는 신전에 불이 났다. 강으로 뛰어들까 생각하다 죽음이 자신의 노년을 영화롭게 만들어주고 힘든 삶의 노고로부터 해방시켜 준다고 생각한 도인은 불길을 향해 걸어간다. 불은 그를 죽이지 못했고, 그는 자신 역시 아들처럼 누군가에 의해 꿈꾸어진 환영인 것을 깨닫는다. 보르헤스의 소설이다. 그의 전집을 산 것은 2002년 가을이었다. 그 해에 똑같은 책을 두 질이나 사게 된 것은 낡은 슬리퍼 때문이었다. 두 질의 보르헤스 전집 중 한 질은 내 책장에, 또 한 질은 K고교 2학년 교실에 꽂혔다.아들이 정형외과에서 깁스를 하고 있었다. 먼저 연락을 받은 담임선생님이 계단에서 미끄러진 제자를 병원까지 업고 가셨다. 제자를 병원에 내려놓고 수업을 위해 부랴부랴 돌아가시는 선생님의 등이 굽어 보였다. 아들의 한쪽 발이 되어 교실까지 따라 들어가는 날이 올 줄 몰랐다. 한없이 넓은 운동장을 감싼 느티나무 그늘이 길어 보였다. 등에 짊어지기 전까지 가방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아들이 지고 다닌 삶의 무게인 것도. 아들 친구들이 뛰어와 어깨동무도 해주고 가방도 받아주었다. 목발을 짚은 서툰 걸음이 꿈이 아닌 것을 깨닫게 했다.책장에 꽂혀 있던 보르헤스 전집을 사방무늬 포장지에 쌌다. 선생님이 국어를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다. 선생님이 책을 어떻게 하시더냐고 슬쩍 물으니 교실 책장에 꽂으시더라고 했다. '잘 하셨네.' 아들 친구들이 그 책을 한 번쯤 열어보지 않을까, 혹시 문학에 눈뜬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책도 아니고 보르헤스 전집인데.' 문학 이론과 형이상학적 주제를 소설화시킨 경이로움을 설마 모른 체 할라고. 보르헤스는 평생 다섯 권의 단편집을 남겼다. 단편에 대한 그의 천착은 장님에 가까운 시력 탓도 있으나, 그보다는 압축미를 최대한 살린 단편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여겨진다.제자를 병원까지 업고 가는 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서툴러서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는지 몰랐다. 부모보다 더 먼저 병원에 데려간 반 부모의 고마움이 생각날 때마다 머리를 숙인다. 어미가 소설이라는 환영에 잡혀 있는 동안 아들은 낡은 슬리퍼를 신고 위태롭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삶은 꿈이 아닌데, 간혹 꿈을 꾸듯이 목발 짚은 아들을 본다. 지금 그 아들은 어른이 되어 바다 너머에서 환하게 웃고 있건만, 어미는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가슴을 졸인다. '조심해!'장정옥 소설가

2019-07-11 11:40:55

192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동성의 엘렌의 공(功) 삽화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번역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채식주의자'가 멘부커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을 때의 일이다. 소설가 한강과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공동수상이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번역자가 왜?' 이 반응은 내 주변에서도 동일하게 나왔다. "소설은 작가가 썼는데 번역가가 왜 함께 받지? 번역가가 무엇을 했다고?"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간단하다. '공동수상을 할 정도로 번역가가 한 일은 많다.'일제강점기 동안 조선독자가 읽은 서양소설은 일본어 번역을 다시 조선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영어원작을 직접 조선어로 번역한 것은 단 두 편밖에 없었다. '엘렌의 공(功)'(1921)과 '붉은 실'(1921)로, 번역자는 김동성이었다. 당시 조선 인구의 99%가 글을 읽지 못했고, 초등학교 취학률이 5%를 조금 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초등교육이라도 받은 조선인은 일본어 의무교육을 받아 일본어를 읽을 수 있었기에 굳이 조선어 번역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남은 것은 한 부류, 한글은 읽을 수 있지만 초등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문물에 대한 흥미보다는 춘향전류의 읽을거리를 즐겨 읽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서양식 인명과 낯선 지명, 어려운 과학용어로 가득 찬 소설을 읽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두 편의 직역이 조선독자들에게 외면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어둠과 빛을 반반씩 가지고 있듯 김동성의 직역 시도도 그러했다. 일본을 통해서만 서양을 접하고 있었던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김동성의 직역 시도가 일으킨 긍정적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일본이라는 매개 없이 서구의 앞선 문물을 직접 수용해서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이다. 직역 시도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 시도에 깃든 희망의 기억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었다.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영미와 조선간의 사회문화적 차이까지 고려하지는 못했다. 그의 번역이 우리문학사상 의미를 지니면서도, 대중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 결과 해방이 될 때까지 김동성의 두 편의 번역소설을 제외한 모든 서양소설은 원작과는 다른 형태로 번역되었다. 읽기 쉽도록 인명, 지명이 조선식으로 바뀌고 내용도 당시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과감하게 생략되어서 독자들에게 쉽게 수용되었다.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변환을 넘어 문화의 수용을 포함한 작업이다. 번역가는 타언어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적 이질성을 고려한다. 우리가 국경을 넘어 다른 문화권에 들어서는 순간 받는 문화적 충격과 이질감을 언어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 충격과 이질감을 자국문화, 자국 언어와 잘 조화시켜 바꾸어주는 사람이 번역가이다. 그런 점에서 번역가에게도 공동수상의 영광을 함께 안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7-11 11:36:31

[기고]도시에서 농사를 지읍시다

도시농업이 뜨고 있다. 전 세계에서는 수많은 기발한 도시농업 스타일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도시농업 관계자들의 실질적인 소득 증가에도 기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유기 쓰레기 활용 버섯 재배, 호주 멜버른의 옥상 양봉, 싱가포르의 곤충 활용 옥상 텃밭, 대만의 움직이는 정원 등이 도시농업의 대표로 꼽히고 있으며 미국의 디트로이트도 도시농업으로 다시 도시의 활력을 되찾았다.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도시농업 관련 박람회를 열어 농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며 대구에서도 도시농업 박람회가 7회째를 이어가며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또한 100년 전통의 전국 최고의 농업계 교육기관인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가 수성구에서 도시농업의 전문적인 인력을 키워내고 있다.대구 시내에서 농사 짓는 사람이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2018년 통계로 총 4만2천 명의 농업인 중에 2만8천 명이 수성구와 동구, 북구에서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달성군 농업인(1만4천20명)의 약 2배에 달하는 수치다.수성구는 2019년 3월 현재 16만6천309가구에 43만1천928명이 살고 있다. 대구시민(245만5천829명)의 17.6%가 살고 있으며, 달서구 다음으로 61세 이상 어르신이 가장 많이 산다. 연령대가 높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농사에 대한 향수를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들은 농촌 생활의 정서를 갖고 있어 언제라도 농사일에 뛰어들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도시에서 농업은 꼭 전문적인 농사꾼이 짓는 농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에서 화분을 키워도 농사꾼이 될 수 있고, 텃밭에 상추를 가꾸어도 농사꾼이 된다. 이래서 도시농업이라 함은 상업적인 목적 외에 취미로 하는 농업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텃밭 농사를 의미할 때가 많다. 대구시에서도 도심지 내 자투리땅이나 유휴지를 이용해 텃밭(도시농장)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시민 정서 순화와 이웃과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소통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데 주말농장이나 공영도시농업농장이 대표적인 예이다.수성구에서도 많은 텃밭을 조성해 농업에 관심 많은 구민들을 주말농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보태어 전국 최초로 스마트팜을 활용한 또 다른 형태의 도시농업을 실천하려고 한다. 스마트팜 시설하우스 내 일정 면적을 분양해 다양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수성구 내 퇴직을 앞둔 직장인이나 은퇴자를 위해 소일거리도 제공하고, 일정 정도 소득도 얻을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수성구 성동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될 이 주민참여형 스마트팜이 도시농업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도시농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앞서 나가는 스마트시티 수성구를 실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도시농업의 궁극적 목적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농업에 참여함으로써 안심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고 스트레스 없는 건강을 유지하며, 주민들 간의 소통을 원활히 함으로써 거주 만족도를 높이게 된다. 앞으로 도시농업을 활성화해 도시민에게 행복의 원천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9-07-11 11:34:17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대구엔 좋은 창작 뮤지컬이 많다

지난 7월 8일 제13회 대구국제뮤지컬 축제가 딤프 어워즈를 끝으로 화려한 막을 내렸다. 여기에 주목할만한 점은 대구의 참가작들인데 특별공연 부분에선 대구의 중견 뮤지컬 단체인 맥 시어터의 '이중섭의 메모리'였고 창작 뮤지컬 부분에선 요즘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지 뮤지컬컴퍼니의 '유엔잇'이라는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수준작으로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이지 뮤지컬 컴퍼니의 작품 '유엔잇'은 창작뮤지컬상까지 받았으니 이는 2013년 대구산 창작뮤지컬 '사랑 꽃'이 딤프 대상을 받은 이후 거둔 수확이라 큰 쾌거가 아닐 수 없으며 대구 창작 뮤지컬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이제 대구의 창작 뮤지컬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수준이 올라와 있다고 자평 할 수 있다. 우선 대구의 창작 뮤지컬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뮤지컬 작품상을 수상한 '만화방 미숙이'를 필두로 30여만 명의 관객과 교육뮤지컬의 본보기가 된 '선인장 꽃 피다', 앞에서 언급한 딤프 대상을 받은 '사랑 꽃', 대구시립극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비 갠 하늘' 등 수많은 좋은 작품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작품들은 많은 호평 속에서도 아이러니하게 사라지거나 간헐적으로 무대에 올라가는 아쉬움을 남긴다. 여기에 반해 딤프가 제작한 투란도트는 10년 가까이 업그레이드되면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좋은 창작품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어떠한 과정과 수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좋은 창작뮤지컬이란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바로 대중적 관심을 끌 수 있는 공연의 지속성이다. 지속적으로 공연을 해야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빨래'같은 경쟁력 있는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대구 뮤지컬계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하다. 창작성은 뛰어나나 바로 유통적 구조가 서울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관계당국이나 딤프에서 지역 뮤지컬계에 눈여겨볼 대목이 바로 여기 있다. 물론 딤프가 대구 공연문화도시의 선봉에 선 것도 사실이고 대구문화의 브랜딩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며 그 위상이 국제적으로 번창하는 아주 좋은 공연축제의 모델이 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딤프의 영향으로 대구 뮤지컬계는 반사적 작용에 의한 활발한 움직임을 가졌으며 자존감으로 인한 자생적 작품이 쏟아져 나왔으며 전문 뮤지컬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은 딤프가 이뤄낸 뮤지컬 도시 대구라는 이미지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앞에서 끌어가는 자가 손을 내밀어 잡아당기듯이 경쟁적 구도를 갖춘 지역 뮤지컬계에 관계당국과 딤프는 많은 투자와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제2의 투란도트를 탄생시켜 누가 봐도 떳떳한 대구의 창작적 역량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7-11 10:21:30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닭의 오덕(五德)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켜 흔히들 '닭대가리'라고 한다. 이 놀림의 기저에는 그 사람을 깔보거나 얕잡아보는 감정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좀 모자란다 생각하면 비슷한 동물에 비유하며 놀림감으로 삼곤 한다. 어르신들 말대로 참 버릇없는 짓이다. 사람의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그 잣대를 들이대니 동물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막힌 일일까 싶다. '닭대가리'라는 말로 예를 들어보자. 과연 사람이 닭보다 나을까?닭은 세계 어디에서나 가장 빨리 눈을 뜨고 목소리로 아침을 알려준다. 참 부지런한 천성을 가졌다. 또 닭은 먹어야 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충분히 헤아리며 배를 채운다. 배가 부르면 다른 닭의 모이를 빼앗지 않는다. 닭뿐 아니라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저 자기가 먹을 만큼만 먹는다. 알을 낳으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매일 알을 낳는다. 닭에게 알은 일종의 생산이다. 사람들은 닭에게서 얻은 달걀로 다양한 요리를 한다. 달걀은 많은 영양소를 가지고 있어 완전식품으로도 불린다. 주인이 달걀을 가져갈 때 닭은 주인을 알아보고 절대 쪼지 않는다. 주인의 품을 아는 것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닭장과 주인을 알아보고 절대 다른 닭장을 넘보지 않는다. 닭에게도 온화, 양순, 공손, 검소, 겸양의 오덕(五德)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 닭만도 못하면 '닭대가리'라는 말도 아까운 거다.최근 그런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시대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관습에 빠진 사람들. 여전히 자기주장만 옳은 거라며 우겨대는 사람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악취 나는 말만 뱉어내는 사람들. 그들이 하는 말들은 닭똥보다 더한 냄새를 풍기며 세상을 역하게 만든다. 그런 막말들은 국민들에게 정치혐오를 주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50g의 완전식품을 생산하는 닭의 반이라도 닮아볼 것을 감히 권한다.작가

2019-07-10 18:00:00

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

[전영평의 귀촌한담] 내 인생 내가 살기

산골 귀촌은 행복하지만 고독하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면 할 일이 없어 난감하고 고독하다. '고독과 함께라면 나는 외롭지 않아'라는 조르주 무스타키의 패러독스를 영접하더라도 외로울 때는 외롭고야 만다. 이럴 때면 늘 위안을 삼는 좌우명이 있다. 도시에 가도 고독은 여전히 따라온다. 게다가 아까운 돈을 쓰고 나면 더욱 고독해질 것이다. 세상은 친절하기를 바라는 친절하지 않은 사람으로 가득하다.비 오는 날 마을회관은 오히려 북적인다. 농사 쉬는 날이다. 할머니들이 수제비를 장만하고 '젊은 머슴애(?)'를 부르신다. 참 친절하고 자상한 분들이다. 게다가 혹시 내 입맛에 맞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시는 모습에 죄송한 맘 그지없다. 비 오는 날 수제비는 최상의 음식이다. 나는 여친들의 정성에 보답할 길을 찾는다. 유튜브를 틀어서 인기 가요를 들려드리며 같이 따라 부른다. 후식 커피도 나오고 과일도 나올 때가 많다. 하지만 혼자 집으로 오게 되고 고독도 당연히 따라온다. 텔레비전도 재방송이고 음악도 별 재미없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더 고독하다. 침대에 누워서 온갖 공상과 걱정을 해본다. 그곳에 해답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강한 정신을 키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전화를 자주하는 것도 실례인 듯하고 별 위안도 안 된다.사르트르가 맞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따지고 보면 진정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있는 것뿐이다. 인간도 별 이유 없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를 본질적으로 구속하는 것도 없다. 그러기에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짊으로써 자기 존재 이유를 만들어 가는 창조자가 돼야 한다.'산업화를 먼저 겪은 서양 사람이 고독 속에서 실존철학과 선진 예술을 창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귀촌인에게도 고독에 맞서는 실존철학이 필요한 것 같다. 내 인생 내가 선택했으니 행동하고 끝까지 충실하자고 다짐해본다. 세상은 고독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으니 고독하지 않지 않은가.대구대 명예교수

2019-07-10 18:00:00

김은아(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북돋움] 언어의 온도

친정 부모님이 밭에 깨 모종을 옮겨 심는다고 해서 모처럼 일손을 보탰다가 외려 일을 그르쳐 놓은 적이 있다. 쪼그리고 앉아 한 이랑에다 모종을 심고는 흙을 잔뜩 덮어 손으로 꾹꾹 눌러 놨더니 엄마가 기겁을 하시면서. "아이고, 야야! 이러면 얘들이 숨을 못 쉰다 아이가" 하고 타박을 하셨다. 그래서 옆 이랑에서는 흙을 조심스레 살짝 덮었더니 이번에는 흙이 너무 적다고 하시는 거다. '어렵다, 어려워!'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식물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물과 햇빛, 흙이다. 셋 다 없어선 안 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흙이라고 생각한다. 식물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기에 물이 적으면 적은 대로, 햇빛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느 정도 견뎌낸다. 그러나 흙이 없다면 사정은 달라진다.흙이 뿌리를 아늑히 덮고 있어야 줄기가 서고 잎이 나며 열매가 달린다는 것은 유치원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뿌리를 덮는 흙의 양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될까? 흙에 짓눌려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하면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호흡곤란으로 고사하는데 노거수의 뿌리가 땅 위로 드러나 있는 것도 뿌리가 숨을 쉬기 위해서라는 말을 나무 전문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모종이나 묘목의 뿌리를 덮어 주는 흙을 '북'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stdist.korean.go.kr)에서 '북'이라는 글자를 검색해 보면 '식물의 뿌리를 싸고 있는 흙'이라는 설명이 첫 줄에 있다. '북을 주다'는 말은 흙으로 식물의 뿌리를 덮어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북돋움' '북돋우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매사가 그러하듯이 북돋움도 적당해야지 지나치거나 부족하면 문제가 생긴다. 인간관계에서의 북돋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작가 이기주는 '언어의 온도'(말글터)에서 언어에는 그 나름의 온도가 있는데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다고 말한다.그러면서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이어서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인데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기는커녕 꽁꽁 얼어붙게 한다.인간관계가 틀어지고 일에도 지장이 자주 생기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말의 온도'를 조절하지 못해서일 때가 많다. 필자 역시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말로 이런저런 오해를 사고 소중한 사람과 소원해지기도 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말로 인해 정서적 화상을 입고 동상에 걸린 적도 있다.어느 쪽이든 당시에는 마음이 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화상과 동상이 남긴 흉터가 옅어지고, 솔직하게 말해 준 사람을 향한 고마움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상처를 주고받았다고, 관계가 틀어졌다고 해서 언어의 온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기운을 북돋아주는 말,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말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하지만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거짓인 줄 알면서도 기분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직언에는 마음 상해한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너도나도 상처받았다고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말보다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말이 아닌 적절한 온도의 말인 것 같다.문학치료나 독서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에게 곧잘 물어보곤 한다. 언어에 온도가 있다면 몇 도가 적당한지. 36.5도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의 건강이 유지되는 온도가 36.5도니까 우리의 언어 생활도 체온처럼 자연스러우면 좋겠다는 뜻이다.반면 온도계가 가리키는 36.5도는 달갑지 않다면서 22~24도라고 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쾌적한 가을 날씨처럼 인간관계에서도 시원한 온도가 유지되면 좋겠다는 대답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언어의 온도'를 다시 펴본다. 책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입니까?

2019-07-10 18:00:00

종이에 수묵, 84.2×51.3㎝, 동국대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정조(1752~1800) '파초도'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예 활동을 했다. 영조는 그림에 화제를 썼지만, 정조는 직접 그림을 그렸다. 조선의 왕은 왕세자 때부터 공부도 많이 했고 시문과 서화의 교양도 높았다. 그러나 시서화를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일은 금기시되었다. 물건에 정신이 팔리게 되면 수양에 이롭지 않다고 여겨졌고, 일거수일투족이 만인의 관심사가 되는 높은 자리여서 자칫 사람들이 따라하는 일이 생길까 우려했다. 왕은 공인일 뿐 개인일 수 없었다.그럼에도 정조는 시도 많이 지었고, 글씨도 많이 썼으며, 그림도 조선 왕으로는 가장 많이 남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국왕의 활동이라는 정치의 영역과 예술이라는 심미의 영역을 통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멋진 애국가가 멋진 음악일 수 있듯 '파초도'는 왕으로서 그릴 만한 소재를 왕의 그림답게 그린 그림이다. 파초는 동아시아 문학과 미술에 자주 등장하는데 별칭 중에 잎과 줄기가 거대해 초제(草帝), 곧 '초본(草本)의 제왕'이라는 이름이 있다. 정조는 넓은 잎을 펼친 파초를 불변을 상징하는 돌과 함께 묘사보다 요약을, 채색보다 수묵을 선호한 문인화풍으로 그렸다. 조선시대 정치인들이 그렇듯 왕도 문인이었다.'파초도'에는 백문방인(白文方印) '홍재'(弘齋)와 주문방인(朱文方印) '만기'(萬機)가 찍혀 있어 홍재라는 호를 쓴 왕의 그림임을 한 눈에 알려준다. '만기'는 만 가지 일의 기미를 다 살펴야 한다는 뜻으로 왕만 사용할 수 있는 신분인(身分印)이기 때문이다. 홍재는 정조의 시문을 모은 문집 '홍재전서'로 널리 알려졌다. 정조는 홍재의 뜻을 '군자는 포부가 크고 의지가 굳세어야 한다'는 '군자홍의'(君子弘毅)라고 했다. 군자가 인(仁)이라는 막중한 가치를 평생토록 실천하기 위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로 널리 알려진 이 말은 '논어'에 나온다.왕들도 호가 있었다. 영조는 양성헌(養性軒), 육오거사(六五居士), 일녕헌(日寧軒), 자성옹(自醒翁) 등을 썼고, 영조의 아버지 숙종의 호는 종덕재(種德齋)이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호는 능허관(凌虛關), 정조의 아들 순조의 호는 순재(純齋), 요절한 손자 효명세자의 호는 경헌(敬軒), 증손자 헌종의 호는 원헌(元軒)이다.당신께서도 만기의 여가에 그림 감상 어떠실지? 지금 대구미술관에서 박생광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사 연구자

2019-07-10 15:45:31

[종교칼럼] 여름날의 피서

청포도 익어가는 여름이다.푸른 입속에 알알이 영그는 포도송이가 싱그럽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설익은 송이들이 한 알 한 알 박혀 가는 덩굴 아래의 자리는 시원하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한여름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나는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동산의 무한서(無寒暑)를 생각한다. 벽암록(碧巖錄) 제43칙에 어떤 스님이 동산화상에게 질문했다 "더위나 추위는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거라. 더위와 추위가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더울 때는 그대가 더위와 하나가 되고 추울 때는 그대가 추위와 일체가 된다면 그곳이 바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다."백낙천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려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지만, 항(恒)선사는 홀로 방에서 나오지도 않네. 선방엔들 무더위가 없으랴만, 단지 마음이 차분하면 몸도 시원한 것"이라고 읊고 있다.다산은 1824년 여름에 쓴 시에서 '8가지 피서법'(消暑八事·소서팔사)을 소개했다.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비오는 날 시 짓기, 달밤에 탁족하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인데 현대 생활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꽤 효과적인 피서 방법이었다.이 정도로 정신 무장을 하고 피서지로 떠나 보자.한여름 찌는 더위를 뚫고 이곳에 찾아가면 여름의 시원함을 만날 수 있다. 빨간 꽃이 흐드러진 배롱나무 정원이다. 연못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의 둑방 길을 따라 고목의 배롱나무가 가지를 뻗고 가지마다 빨간 꽃무리를 피우며 정원을 온통 뒤덮고 있다. 꽃이 질 때면 꽃잎이 떨어져 붉은 융단 길을 만들며 연못의 가장자리에 떠 있는 모습이 붉은 꽃비가 내린 듯하다. 담양 명옥헌(鳴玉軒)이다.명옥헌은 계곡물이 흘러 하나의 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연못은 네모난 형태이고 연못 안에는 둥근 섬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정원에 많이 나타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음양 구조를 보여준다. 즉 우리가 사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선조들의 우주관이다.연못 위에 있는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다.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았다. 젊은 시절 설레는 맘으로 혼자 여행하면서 이곳에 들렀다. 그 고졸함에 정신을 잃었다. 정자에 올라 무쇠 탕관에 물을 끓여 다관에 맑은 작설차를 우려 음다하면서 빼어난 자연에 감사드리며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와 같은 공간을 조성하리라.그 여름 지리산 칠선계곡과 담양 소쇄원, 전주 덕진공원 홍련 밭에서 피서를 했다.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편히 휴식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과 힐링을 하는 시간이었다. 많은 분들이 좋은 피서로 청포도 알처럼 맑은 삶이 알알이 박히기를 기대한다.3년 전 해남 백용지에서 옮겨 심은 토종 백련이 망월사 연밭에 무수한 병사들이 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처럼 봉우리가 솟아올랐다. 하얀 백련은 군자의 꽃을 넘어 성자의 꽃이다.부채는 땀을 식히지만 매미 소리는 마음을 식힌다고 한다.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2019-07-10 12:42:11

박형룡 더불어민주당 달성군 지역위원장

[기고] 대구공항 이전, 근본과 해법

공항 이전 문제가 대두된 근본 원인이 뭔가? 수십 년간 쌓여 온 주민들의 소음 피해, 재산권 침해 때문이다. 그 피해보상금만 연간 1천300억원이다. 또한 공항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대구 도심 발전의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적어도 군 공항 이전은 불가피하다.그러면 민간 공항은 있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민간 공항 존치 시, 소음 피해는 줄지만 고도 제한 등 동구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는 여전하다. 대구 공간 발전 전략의 장애물이다. 예천으로의 군 공항 이전은 군사 전략상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이미 연내에 경북 중 한 곳을 결정한다고 하는 마당이므로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또 K2만 정부 재정으로 경북으로 이전시키자는 주장도 있는데 수원, 광주 등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법률 개정에만 하세월이다. 공항의 이중 운용으로 엄청난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다.통합 이전에 따라 제기되는 문제는 첫째, 접근성의 문제인데 현재의 교통망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서대구 KTX와 산업철도 건설 시 달성군, 달서구, 서구, 북구는 대중교통 이용 시간이 대폭 단축된다. 김해로 이용객들이 빠져 유령 공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기우이다. 7~10년 후의 교통망은 지금과 다르다.둘째, 토건족의 잔치판이 될 것에 대한 우려인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다.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하되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 문제는 투명한 과정을 거쳐 걸러내면 된다.셋째, 영남권에 무슨 관문 공항을 두 개나 건설하냐? 옳은 지적이다. 관문공항보다는 이용객 500만~600만 수준의 거점 공항으로서의 위상이 적절하다.넷째, 민간 공항 존치에 찬성하는 60~70%의 여론에 대한 문제이다. 이 사안이 시민투표 적용 사안이 되느냐 안 되느냐 논쟁은 차치하고 단순 여론 수치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군사 전략, 비용 문제, 법률 문제, 대구 발전 전략 등 본질적인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선보다는 국가 공항 정책, 대구경북 발전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집중해야 한다.첫째, 제2작전사령부 이전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대구 발전의 장애가 되고 있는 제2작전사령부, 공군 방공포병학교, 제5군수지원사령부를 K2와 함께 또는 영천으로 이전해야 한다. 대구 남서부는 확장 가능성이 큰 달성군이 있어 다양한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반면 동부권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지난 4월 10일 대구에서 개최된 더불어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 및 예산정책간담회' 때 대구시당에서는 제2작전사령부 등 도심 군사시설 이전과 이전터 개발 타당성 조사 용역비 20억원을 반영해 줄 것을 중앙당에 1순위로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제2작전사령부 이전 부지를 놓고 미래 먹거리와 연계한 공간 전략을 수립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둘째, 통합공항 이전에 따른 SOC 구축 비용 조기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해 찬성, 반대로 싸울 때가 아니라 대구경북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우선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대구 발전 전략, 비용, 현실성, 공항 정책 등 본질적인 측면을 잘 짚어보면 해답이 보인다.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지 잘 살펴볼 일이다.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안 된다. 당리당략을 떠나 대구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을 때이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2019-07-10 11:27:17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문화 자본

우리는 문화소비에 대해 편식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연예·대중음악, 게임, 웹툰, 드라마 등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소비에 주목하지만 전통예술, 무용, 연극, 문학, 미술, 서양 음악 등에는 선뜻 다가가기 어려워한다.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지난 1년간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81.5%로 2016년 78.3% 대비 3.2%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2003년 62.4%에서 15년 만에 19.1%포인트 상승하여 80%대로 진입했다. 한편, 문화예술행사 관람횟수는 지난 1년간 평균 5.6회로 2016년 5.3회에 비해 0.3회 증가했다. 문화예술 분야별 관람률 변화 추이는 75.8%의 가장 큰 영화 관람률에 비해, 10%에도 진입하지 못한 무용, 전통예술, 서양음악, 문학행사의 관람률은 저조한 편이다. 가장 느리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무용의 관람률은 무용을 전공한 필자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필자의 어머니가 동창모임을 다녀오시며 가벼운 불평을 하신다. 중년세대를 비롯해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과도한 음주문화에 적응되어 있고 휴대폰을 통해 넘쳐나는 정보에 허덕이며 잠시도 휴대폰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의 고단함과 공동체의 응집력을 술잔을 맞대며 큰 소리로 외치던 건배사는 중년세대의 최고 삶의 낙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또 따른 삶의 낙을 문화예술에서 찾아봐야 할 사회적 패러다임에 근접해 있다고 본다.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1960년대를 전후로 하여 프랑스 사회에 확산되어 있던 지배계급의 문화적 권력양상을 고발하는 것에 집중되어 많은 연구와 집필을 한 학자이다. 그는 각 개인들이 높은 수준의 문화를 후천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면 그들은 문화 자본을 소유했다고 본 것이다. 가정에서 예술에 친숙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거나 문화예술 활동을 접할 수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서는 문화의 취향, 기호, 선호에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이는 사회로 확대 재생산되어 사회 불평등에 따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근거 내용을 인용해 본다.앞서 필자는 문화를 소비하는데 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글로 시작하였다. 어떻게 문화를 소비 활용하는지는 문화 자본의 축적과도 연관 된다. 문화를 소비하는 데 제공되는 것을 주로 소비하는 수동적 소비자인지, 제공받을 것을 찾아 소비 선택의 폭이 넓고 활용할 수 있는 능동적 소비자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충분히 우리 주변은 고급문화라 칭하는 많은 문화예술 활동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 있다. 축적되면 독이 되는 음주와 달리 삶의 질이 향상되는 문화자본의 축적은 사회적 보편성으로 추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능동적 문화소비자가 되어보자.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2019-07-10 11:26:15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새론새평]대구경북 경제의 미래

금융위기 전인 2006년만 하더라도 전국 수출의 15%나 차지했었고 2009년에는 521억달러로 국내 최대 수출 지역인 경기도나 울산의 85%까지 따라 갔었던 곳이 대구경북이었다. 포스코가 있고 삼성전자, 제일모직과 합섬, LG 계열사, 코오롱 등의 기업은 대구경북 경제는 물론 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들이었다.그러나 그 이후 지역 수출은 형편없이 추락했다. 수출 608억달러를 찍은 2014년을 정점으로 한 뒤 지금까지 4년 동안 대구경북의 수출은 14.3%나 쪼그라들어 2018년 520억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안 경기도 수출은 1천20억달러에서 1천241억달러로 22%나 늘었고, 충남도 651억달러에서 920억달러로 41%, 충북은 142억달러에서 232억달러로 63%나 증가했는데 대구경북은 울산, 경남과 함께 수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아래 표.1 [주요 지역별 수출 변동률: 2014~2018]을 보면 지난 4년 동안 울산, 경남, 부산, 전남 등 전통 제조업 지역 수출은 모두 부진했다.[표.1] 주요 지역별 수출 변동률 : 2014 - 2018원인이 무엇일까? 대구경북 지역이 잘못했다면 무엇을 잘못했을까? 대구경북이 특별히 처한 상황은 다른 지역, 즉 울산과 경남과 전남의 수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울산의 수출은 지난 4년 동안 24.6%나 줄었고, 경남도 21.3% 쪼그라들었다. 전남이나 부산도 대동소이하다. 한반도 남부 해안벨트 지역, 즉 구미-포항-울산-부산-경남-전남-전북으로 이어지는 남부의 수출 공업 전 지역이 모두 동시에 수출 경쟁력을 잃고 있다.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2013년 아베 신조 정부가 들어온 이후 엔화가 달러당 80엔에서 120엔으로 거의 50% 가까이 절하된 것 때문이다. 아베노믹스라 부르는 엔화 절하는 모든 일본 제품의 수출 가격을 수십%나 낮게 책정하게 했고, 이것이 일본 경제를 살린 반면 한국산 조선, 자동차 및 부품, 전자제품 등의 경쟁력을 절대적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2014년 이후 모든 남부 해안 수출공업 지역의 수출이 부진한 것은 이와 직결되어 있다. 이 문제는 엔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원화가 크게 약세가 되어야만 풀릴 수가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환율조작국 압력 때문에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는 과도한 원화 환율의 고평가를 시정해줘야 한다.다른 하나는 남부 해안벨트 지역의 산업이 모두 조선, 자동차, 철강 등과 같은 전통적 제조업 중심이어서 기술 혁신과 구조조정에 거대한 자본이 소요될뿐더러 인건비 부담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저부가가치의 조선은 이미 중국이나 베트남의 위협을 받은 지 오래고 자동차는 전기차 혹은 자율주행차로 무게 중심이 옮아갔으며 철강의 경우에도 고부가가치 특수목적강이 아니면 저가 중국, 인도, 러시아, 멕시코 혹은 브라질의 공세를 이겨내기 어렵게 된 상태이다.고기술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전환하기 위한 자본 투입과 전문인력 양성 및 기술 혁신을 소홀히 한 잘못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다.기업은 기업대로 안이한 현실에 안주하여 미래의 어려움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데 소홀했고,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을 독려하고 인재교육에 박차를 가하는 데 소홀했으며 근로자들 또한 장차 다가올 어려움에 대비하여 기술을 습득하고 축적하는 것에 소홀하였다.천년만년 포스코일 수 없고 천년만년 삼성전자나 LG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뽕나무가 바다가 되고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된다 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는 경기-충청 지역이 잘 나간다고 해서 그쪽으로 옮겨가는 것도 쉽지 않으려니와 이미 반도체 특수가 가라앉고 있다. 하던 것을 더 잘하는 것이 정석이다. 전국에 널리 퍼져 있는 대구경북의 인재와 자본과 창의력을 다시 결집하여 대구경북 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매진해야 할 때다.

2019-07-10 10:19:13

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교수

[경제 칼럼] 부품∙소재산업, 문제와 해법은 무엇인가

필자가 쓴 6월 26일 자 매일신문 경제 칼럼에 이런 내용이 있다.'1896년 프랑스 물리학자 기욤이 개발한 인바는 스마트폰과 OLED TV의 핵심소재이지만 우리는 제조기술이 없어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인데 일본이 인바를 수출하지 않으면 삼성과 LG가 힘들어진다. 전쟁보다 무서운 게 소재 전쟁이다.'기사가 나간 지 5일 뒤 일본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품목은 다르지만 우려가 현실이 됐다. 참고로 스마트폰과 OLED TV의 핵심 부품인 섀도우 마스크도 인바에 포토 리지스트를 입혀 노광시킨 뒤 선택적으로 에칭하여 만든다.일본이 치졸한 경제 보복을 할 거라는 낌새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8초간의 짧고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그로부터 3일 뒤 한국에 가장 타격이 큰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가 단행됐다.더 많은 부품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앞으로가 더 문제다. NHK 방송은 규제 강화 대상을 공작기계와 탄소섬유로 확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17년 기준 18.2%,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은 50.3%에 불과하다.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 3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배터리는 양극활물질, 음극활물질, 분리막, 전해질로 구성되는데 핵심 기술이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다.2018년 기준으로 일본 수입 의존도가 큰 산업 분야의 수입액과 일본 수입비율(괄호 안 숫자)을 보면 반도체 제조장비 52억4천200만달러(34%), 집적회로 19억2천200만달러(12%), 정밀화학원료 19억달러(15%), 플라스틱 필름 16억3천400만달러(43%), 고장력 강판 12억6천200만달러(65%), 화학공업 제품 12억달러(31%)로 일본 수입 의존도는 12~65%에 이른다.2018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4조9천709억달러로 1조6천194억달러인 우리보다 3배나 높고, 일본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만1천340달러로 3만600달러인 우리의 1.35배이다. 일본은 GDP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고 산업 기술은 미국, 독일과 함께 세계 최강이다.1967년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일본의 미쯔비시 엔진과 변속기를 수입하여 포니 자동차를 만들었으나 지금은 세계 5위 자동차 기업이 됐다. 1968년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된 포스코는 일본 철강 기술을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성장하였으나 지금은 세계 최고 철강기업이 됐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보다 일본이 기술 강국이다. 이번처럼 기술 전쟁에서 이기려면 시간과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일본산 부품·소재가 없으면 전 세계 전자산업이 멈춰 설 수도 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 세계 12위이지만, 아직 우리의 기술 수준으로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국산화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걸린다.새로운 소재 개발에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NHK가 새로운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칭한 탄소섬유는 일본 도레이가 1970년대에 개발을 시작했지만 항공기에 적용하는 데 약 40년이 걸렸다. 안타깝지만 지금 당장은 기술로 일본을 이길 수가 없으니 외교가 답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부품·소재 기술 개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2015년 반성백서를 펴낸 서울공대 이건우 학장의 말이다. "서울공대 교수 대부분은 번트를 친 뒤 간신히 1루에 진출하는 수준이며, 만루홈런에 해당하는 탁월한 연구성과가 없다. 전체 교수 300여 명 중에 후하게 점수를 줘도 독보적인 교수는 10명이 안 된다. 공대가 자연현상을 관측하고 해석하는 자연대의 아류로 전락했다. 탁월한 공대는 실용적인 연구와 새로운 이론이 어우러지고 국가 산업에 이바지해야 하는 곳이다."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장을 지냈고 1998년 학교기업을 세워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박희재 서울대 교수는 "공대 교수들조차 산학협력엔 뒷전이고 논문에만 신경을 쓴다. 대학 연구가 산업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지금을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정면 대응할 수 있는 부품·소재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시스템과 국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개발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정우창 대구가톨릭대학교 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 KAIST 공학박사

2019-07-09 18:35:44

이정호국악작곡가

[매일춘추] 별(star)에 대한 동경

어린 시절 역사를 좋아하고 위인전을 즐겨 읽던 나는 자연스레 위인전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피커를 통해 나온 빈 소년합창단이 부른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울게 하소서'라는 곡은 나의 온몸을 휘감았고, 그 뒤로 삶의 길은 음악으로 정해졌다. 음악으로 정해졌을 때 늘 동경해오던 위인전 속 주인공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음악을 하는 위인전 주인공은 대부분 모차르트, 베토벤, 홍난파, 박태준 등 작곡가였기에 나의 꿈도 작곡가로 정해졌다. 그러다가 국악작곡가 이준호 선생님의 국악관현악 작품 '축제'를 듣고 매료되었으며, '국악작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를 살아가며 전통을 미래로 만드는 일', 우리음악을 이어나가고픈 사명감이 생겼다.작년 KBS국악관현악단으로부터 연주시간 70분에 달하는 합창을 포함한 국악관현악곡을 위촉받았다. 보통 국악에서 가장 큰 편성인 국악관현악곡 한 곡의 연주시간이 15분 내외이기에 파격적인 제안이었고, 나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교향곡 제1번'으로 명명하고 제목을 '별'이라 하였다. 그리고 작년 말 14년간 상임지휘자로 KBS국악관현악단을 이끈 이준호 선생님의 마지막 지휘로 연주되었고, 올해 초 이 위대한 음악가는 영면에 드셨다.여기서 '별'이라는 제목은 영화 '불멸의 연인' 속 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극 중 한 소년이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배경에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 긴박하게 흐르고 있다. 그러다가 그 소년이 당도한 곳은 어느 호숫가이고, 이내 상의를 탈의하고 그 호수 속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와 동시에 '합창'의 주제 선율이 흐르면서 화면은 하늘을 향해 물 위에 누워있는 소년을 마치 하늘에서 보듯 정면으로 잡는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며 호수 전체를 보여주는데, 호수에 비친 무수히 많은 별들은 마치 소년이 호수가 아닌 밤하늘 위에 떠있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 줌 아웃이 되며 마침내 그 소년은 무수히 많은 별 중에 하나가 된다.별에 대한 동경은 평소에 가지던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이어졌으며, 그 신비하고도 장엄한 우주의 느낌과 호기심을 국악관현악이라는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우주에 관한 여러 서적을 쌓아놓고 탐독하며 영감을 얻으며, '과학으로서의 우주', '인간의 삶으로서의 우주'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공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시간적 예술인 음악 속에서 소리와 음향적 표현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은 어떤 의미를 남기며 이 세계에 나오고, 또한 사라지는 것인지. 끝없는 시간의 연속성, 차원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그 광대한 시간 속에서의 인간의 삶은 찰나의 순간을 살아가고 이내 사라지는데 그에 따른 인간의 의미를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7-09 11:17:45

폭스테리어라 하여 모든 개체가 공격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사회화 과정이 미흡하면 아이들을 경계하고 공격할 수도 있으므로 평상시 개의 공격 성향을 면밀히 관찰하여야 한다. (사진출처: https://www.dogtemperament.com)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폭스테리어 사고, '개 물림 엄격 처벌법'이 필요하다

폭스테리어가 아파트 복도에서 어린이를 물어 다치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견은 이전에도 어린이를 물어 주민들이 항의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견주가 목줄과 입마개를 하지 않아 비난을 받았고 폭스테리어는 안락사 시켜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미국은 '개 물림 엄격 처벌법(DOG BITE STRICT LIABILITY LAW)'을 대다수 주에서 적용하고 있다. 과거 'ONE BITE RULE(첫 물림 사고는 견주의 책임이 과실 수준으로 적용되지만 재발 사고에 대해서는 가중 처벌과 징벌적 배상 책임을 적용)'이 적용되었지만 최근에는 한 번의 개 물림 사고라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 견주를 엄중히 처벌하고 있다. 또한 맹견이 아니더라도 동물 통제부(animal control office)에 의해 위험하거나 포악한 개로 지정될 경우 견주는 그에 상응하는 보호시설과 안전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독일은 동물 등록이 의무화되어 있고 견주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대형견이나 공격성이 높은 품종을 키우려면 입양 전 의무교육을 이수하여야 하고 안전시설을 갖추어야 한다.일본은 개가 태어날 때부터 관리받고 분양되는 체계가 정착돼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 비해 강아지 분양금이 10배 정도 비싸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개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펫티켓을 준수해 사회적 갈등이 적다.국내법은 개를 물건으로 규정하며, 개 물림 사고를 상해 사고로 간주하여 소유자인 견주에게 과실치상 죄를 적용한다. 공격적인 개를 신중하게 관리하지 못한 견주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지만 가중 처벌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이번 사건 역시 견주에 대한 처벌이나 예방 대책보다는 개에 대한 안락사 여부가 논쟁이 되고 있어 씁쓸하다.개로 인한 인명사고는 늘 되풀이되고 있으며 매우 심각하다. 묶여있는 개, 번식 또는 육견 목적으로 사육장에 갇혀있는 개, 집 밖을 수시로 돌아다니게 방임된 개에게 이웃과 공존하는 사회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 모든 개를 안락사 시켜야 할까?미국에도 호전적인 공격성을 가진 개에게 안락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정은 생명에 대한 가치와 공공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하여 결정한다. 자칫 생명에 대한 경시와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자동차 안전교육과 개의 안전사고 예방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그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견주는 자신이 돌보는 반려견이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관리할 의무가 있으며 이것이 펫티켓이다. 그리고 펫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감수하여야 한다.보행자도 최소한의 교통신호를 준수하여 사고를 예방할 의무가 있듯이 반려견의 이웃주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에티켓이 있다. 개를 놀래키지 않아야 하며 견주의 동의 없이 함부로 다가서지 않는 것이 펫티켓이다.견주는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이웃 중에서도 어린이·노약자 등의 입장에서 개의 공격성을 관찰하여야 한다. 특히 어린이 개 물림 사고는 매우 치명적이다. 설령 물지 않더라도 어린이에게 달려들거나 위협하는 행위도 공격성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이러한 경향이 확인된다면 공격 성향이 있는 개로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목줄과 입마개 착용을 스스로 실천해주시기 바란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도 개 물림 사고에 대한 엄격한 처벌 조항이 마련되고 전국적으로 동물등록이 의무화되어 견주가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개를 관리해주시기를 소망한다. 견주의 책임감이 반려견의 행복이기 때문이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7-09 10:04:50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대구에서 보는 I⦁SEOUL⦁U

서울 브랜드인 I·SEOUL·U에 대해 서울 시민 70%가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5년 10월 서울시가 이 브랜드를 발표했을 때 엄청난 비난이 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서울의 정체성을 전혀 담고 있지 못하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서울 시민의 70%가 이 브랜드를 좋아한다니 참 알 수 없는 결과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다. 브랜딩은 사람과 같아서 성장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의료와 달리 디자인은 누구나 의견을 말하기 쉬운 장르다. 개발된 디자인을 보고 누군가는 빨간색을 파란색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다. 브랜드의 서체가 조금 더 굵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브랜딩은 수술과 같은 의료행위와 비슷하다. 리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문제가 있기에 이를 고치고자 함이다. 즉, 브랜딩과 의료행위는 닮았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환자는 의사를 믿고 자신의 몸을 내어 주는 것처럼 브랜딩 개발 역시 그래야 한다.시에서는 도시 브랜딩을 위해 전문 회사에 용역을 맡긴다. 하지만 공무 기관의 특성상 개발된 디자인 본연의 가치를 가지고 세상 빛을 보는 건 정말 힘들다. 우선 실무 부서진을 설득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그들의 상사, 그다음엔 다시 그들의 상사들에게 디자인이 보고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아이디어나 디자인 요소가 깎여 버리기도 한다. 클라이언트(광고주)의 성향에 따라서 말이다. 아무래도 실무진은 결재를 해주는 상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그때부터 디자인의 방향이 오직 상사의 취향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디자인을 봐야 할 시민들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 일이 어떻게 통과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시간의 낭비이다.브랜딩 회사 차원에서는 오히려 이런 프로세스가 편할 수도 있다. 그 부서의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 사람의 취향만 맞춰 디자인하면 결재가 빨리 난다. 하지만 이것은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 브랜딩 회사가 만족시켜야 할 대상은 클라이언트(광고주)의 클라이언트(시민)이다. 즉, 시(市)의 디자인을 보는 시민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클라이언트 측 상사만 만족시키는 디자인을 만들다 보면 전혀 효과 없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나오고 만다.물론 두렵다. 브랜딩 회사에서 만들어 온 그대로 내보내도 되는지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필자가 쓴 것처럼 리브랜딩은 수술과 같다. 수술실에서 의사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두려워도 맡겨야 한다. 도둑 잡는 일은 경찰에 맡기고, 건축은 건축가에게 맡겨야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필자는 대구시가 조금 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낯선 것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어주면 좋겠다.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I·SEOUL·U 같은 도시 브랜딩이 나올 수 없었다. 대구 도시 브랜딩에 관한 어떠한 이미지를 가져와도 낯설 수밖에 없다. 어떠한 문장도 '컬러풀 대구'보다 낯설 수밖에 없다. 브랜딩은 한 도시에 심장을 선물하는 일이다. 심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려면 당연히 산고의 고통이 따른다. 우리는 그 고통을 외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주)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2019-07-08 18:00:00

김구철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통계의 이미지화를 경계한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의 신조가 있다. '텍스트보다 숫자가 강하고 숫자보다 이미지가 강하다.' 우선 숫자는 정확하고 객관적, 중립적이라는 착시 현상이 있다. 예를 들면 "조금 부족하다"보다 "2% 부족하다"가 훨씬 피부에 와닿는다. 그래서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않고 국민소득 '1만달러'라고 말한다.이미지는 숫자보다도 훨씬 강력하다. '1만달러'보다 '마이카 시대'가 훨씬 구체적이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속담을 들이댈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유신 직후 박정희 정권은 '대망의 80년대'를 뒷받침하려고, '1만달러'라는 숫자와, '마이카 시대'라는 이미지를 제공했다.숫자 즉 통계는 강력한 설득력을 갖지만, 중립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최근 일자리 논쟁이 대표적이다. 성신여대 연구팀은, 풀타임 근로자로 간주되는 주 36시간 근로 기준으로 취업자 수를 계산하니 일자리가 20만 개 줄었더라고 발표했다. 통계청은 일주일에 1시간만 일하면 취업자로 잡지만, 그 경우 고용률은 1/36로 0.03명 고용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반론을 냈다. 성신여대 팀은 주 36시간 이상 근로자는 다루지 않았다. 우리 근로자의 평균 근로 시간이 36시간을 초과하니 근로자 1명이 취업자 1명을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최근 대구시에서 통계를 그래픽화해서 쉽게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기획을 발표했다.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함께 난관을 돌파하자는 의도라면 대찬성이다. 그러나 대구 시정을 긍정적으로 홍보하려는 의도라면 잘못된 기획이다.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통계는 맥락에서 분리될 수도, 단순화될 수도, 왜곡될 수도 있다.이미지화된 통계는 여론 조작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통계의 생산자는 단순화와 왜곡의 유혹을 느낄 것이다. 최근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등 대부분의 대구 지표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하향 곡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2019-07-08 18:00:00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과학둘레] 골디락스 세상만사

숲에서 놀다 지친 골디락스는 누군가의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가 쉬기로 한다. 식탁 위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수프가 있었다. 하나는 너무 뜨거웠고 다른 하나는 차가웠고 또 다른 하나는 적당히 식어 먹기 좋았다. 그곳에는 세 개의 침대도 있었다. 하나는 너무 컸고 다른 하나는 푹신거렸고 또 하나는 알맞은 크기여서 잠들기 좋았다.'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라는 동화에 나오는 수프처럼 우주에서도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적당한 온도의 영역을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라 부른다. 골디락스 존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지역이다. 그곳은 중심 별에서의 거리로 결정된다. 훨훨 타고 있는 별에 너무 가까우면 뜨겁고 멀어지면 차갑다.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 물이 흐를 수 있는 골디락스 존이 된다.아주 오랜 옛날, 지금으로부터 약 50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되던 시기에 태양이라는 별을 중심으로 제일 좋은 자리에 놓인 지구는 비가 내릴 수 있는 온도가 되었다. 비는 밤낮으로 퍼부었고 지구는 물바다로 뒤덮이게 되었다. 지구보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간 금성은 비가 내릴 수 있는 온도를 넘어 물 한 방울 없는 행성으로 남게 되었다.태양에서 알맞은 거리에 위치한 지구는 크기도 적당했다. 천천히 식으며 지각에 틈을 만들게 되었다. 그 틈을 통해 이산화탄소가 지구 내부로 드나들며 안정적인 대기층을 형성하고 바다를 지킬 수 있었다. 지구보다 작은 화성은 빠르게 식는 바람에 갈라진 판구조를 형성하지 못하였고, 초기에 만들어진 바다는 지각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NASA(미항공우주국)에서 진행하는 외계행성 프로그램은 생명체가 서식할 수 있는 적당한 온도와 알맞은 크기의 지구를 닮은 행성을 찾고 있다. 외계 행성은 태양 이외의 별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을 말한다. 2019년 현재 나사에서 확인한 외계 행성은 4천 개가 넘는다.대부분 해왕성, 목성 같은 기체로 된 거대 행성이지만 암석으로 이루어진 행성도 일부 있다. 이는 태양계 주변 영역만을 조사한 것으로 태양 같은 별이 수천억 개 있는 우리 은하에는 수십억 개의 지구 크기 행성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골디락스 행성을 찾아 생명체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현재 과학 기술 수준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크고 선명한 해상도를 가진 우주 망원경을 필요로 한다.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과학관에서 천체투영관에 상영할 영상물을 선정했다. 천체투영관에서 반구형 화면을 통해 보는 머나먼 우주에 관한 영상은 신비롭지만 난해한 설명과 음향 효과가 자장가 노릇을 할 때가 있다. 영상에 대한 집중이 필요했다.돔 영상물 인터넷 자료 사이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곳에 게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영어로 올라온 것이었다. 나중에 더빙 과정을 거치지만 우선 그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야 했다. 외계 행성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행성이 중심 별 주위를 돌다가 관찰자 시야에 들어올 때 일시적인 빛의 세기 변화를 포착하는 것이다.수많은 돔 영상물 중에서 가슴속 떨림을 주는 작품을 찾는 것은 외계 행성을 발견하는 일만큼 어려웠다. 그들이 교육적이면서 끝까지 지루하지 않은지 재차 확인하는 것은 단단한 지구 크기 행성을 알아내는 일처럼 쉽지 않았다.과학관에도 골디락스 존이 존재한다. 그곳은 관람객들 입에서 '아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지점이다. 그곳의 양 끝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어려워 다가서기 힘든 영역과 차디차게 식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장소가 있다.과학관에서 관람객들이 골디락스 존을 발견토록 하는 것은 성능 좋은 망원경을 갖다 놓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듯싶다.

2019-07-08 18:00:00

'녹향(錄香)' 음악감상실

[세월의 흔적]<30> 고전음악 감상실 녹향

'녹향(錄香)',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고전음악 감상실이다. 1946년 향촌동에서 문을 열었는데,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예육회(藝育會)가 있다. 예육회는 아주 오래된 단체로, 여유를 가지고 앞을 내다보려는 사람들이 모여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교육하자는 뜻으로 만들었다. 그 이름은 예술의 '예'와 교육의 '육'을 따서 지었다. 녹향은 문화 예술 도시를 지향하는 대구의 자존심이기도 하다.고인이 된 이창수의 공이 크다. 예육회의 총무를 맡고 있던 그가 회원들의 모임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자신의 집 지하를 파서 방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레코드를 가지고 해설을 곁들인 감상회를 열었고, 때로는 북성로에 있던 미국공보원에서 레코드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다. 그동안 1,500회가 넘는 감상회를 가졌으며, 지금도 정례 모임을 가지고 있다.그 당시는 클래식 음반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창수가 가지고 있던 음반은 학생들의 교재가 되었다. 또한 녹향과 예육회 활동을 통해 음악계로 진출한 사람도 숱하다. 그리고 녹향은 가곡 '명태'의 산실이기도 한데, 그곳에서 양명문 시인이 노랫말을 썼고, 그 가사로 변훈이 곡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6․25전쟁으로 대구에서 피란살이를 하던 문화 예술인들의 사랑방이기도 하였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권태호 김원경 김경윤 김종환 김진균 변훈 양명문 양주동 유치환 윤장근 이기홍 이중섭 최정희 홍춘선 …, 다 꼽자면 지면이 부족하다.그밖에 다른 감상실도 있었다. 1951년 '르네상스'가 향촌동에서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박용찬이 귀한 음반을 많이 가지고 피난을 내려와 감상실을 열었다. 시인 전봉건과 뜻을 모아 레코드를 걸고 해설하였는데, 처음 틀었던 곡이 '마태 수난곡'이었다. 그러자 외신기자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마태 수난곡'이 들린다며 토픽 뉴스로 해외에 타전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시절 단골로 드나들던 유명 인사로는 구상 권옥연 김동리 김종문 김생려 김중업 김환기 김희조 나운영 박훈산 신상옥 임원식 장민호 장만영 전봉래 최은희 홍성유 …. 또한 '하이마트', '빅토리아', '시보네', '심지' 같은 감상실도 중앙로 주변에 있었다.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고전음악을 들었다. 감상실에 앉아서 피란살이의 울울한 심사를 달래기도, 원고를 쓰거나 시국강연회에 나가서 열변을 토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뒷날 우뚝한 음악가로 성장한 사람들도 없자 않다. 아무튼 그 시절 고전음악 감상실은 문화 예술인들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7-08 18:00:00

김준 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買櫝還珠(매독환주): 구슬이 아니라 구슬 함을 산다

초(楚)나라 사람이 정(鄭)나라에 구슬을 팔러 갔다. 목란(木蘭)이라는 귀한 목재로 아름다운 함을 만들어 구슬을 넣었다. 좋은 향이 나도록 훈제도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구슬 함만 사고 안에 있는 구슬은 상인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함을 사고(買櫝) 구슬을 돌려주었다(還珠)는 매독환주의 유래다.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되어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주객전도라는 말과도 의미가 상통한다.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진(秦)나라 군주가 딸을 진(晉)나라에 시집보냈다. 딸을 시중들게 하기 위해 70명의 시녀를 화려하게 꾸며 딸려 보냈다. 그랬더니 진(晉)나라의 공자는 시녀들을 총애하고 정작 사랑해야 할 아내는 멀리했다. 좋은 동기에서 행한 것이 불행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여원위(事與願違)라고 한다.두 이야기는 모두 2300년 전 '한비자'(韓非子)의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에 나온다. 진나라의 군주는 딸을 돋보이게 하려다 낭패를 본 경우이며, 구슬 함을 산 사람의 원래 목적은 구슬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초나라 상인은 구슬을 돌려받고, 진나라 공자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취하는 망외(望外)의 '득'을 봤을지 모른다. 한비자는 인재를 등용하거나 할 때 외관보다는 내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뜻으로 이 글을 남겼다.내년 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당의 인재 영입이 회자되고 있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유명 인사들이 후보로 거론된다. 정당들은 정책보다는 그들의 대중적 인기를 이용하려는 것이다.유권자들도 그들의 화려한 외모에 매료되어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구슬 함에 현혹되어 구슬을 놓치는 꼴이 아닐까. 경험칙으로 보면, 정치인으로 변신한 스타들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구슬도 구슬 함도 모두 잃게 될지 모르니,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겠는가.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2019-07-08 18:00:00

박기원 경상북도 공무원교육원장

[기고]미세먼지 저감, 나무와 숲에서 찾자

습관처럼 날씨예보를 검색하게 된다. '우산 장수, 짚신 장수 아들 둔 어머니' 심정으로 맑고 바람 센 날은 산불 걱정, 흐리고 바람 없는 날엔 미세먼지가 염려되기 때문이다.반복되는 미세먼지는 국민 모두가 심각하게 느끼는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2018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환경문제 중 국민 불안도가 가장 높은 것이 방사능, 수돗물도 아닌 미세먼지였다. 국민 82% 이상이 불안하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민감하다. 우리나라 초미세먼지 농도는 연평균 26㎍/㎥로 WHO 권고기준(10㎍/㎥) 및 선진 주요도시(도쿄 13.8, 런던 11㎍/㎥)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정부에서 연평균 초미세먼지를 2016년도 기준 26㎍/㎥에서 2022년까지 18㎍/㎥로 감축 목표를 잡고 있지만, 이는 미국 50개 주 중에서 10번째로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워싱턴 D.C의 연평균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목표치다.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맑고 깨끗한 환경을 후세에게 물려주는 것은 우리 공직자 모두의 책무라고 강조하면서 시책 개발을 독려한다.이에 따라 경북도는 올해에만 6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대기오염측정소 확충, 저녹스 버너 보급, 사업장 굴뚝자동측정기 및 방지시설 설치 지원, 전기자동차 구입 지원 및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와 화물차 LPG전환 지원 확대 등과 함께 도시 미세먼지 휴게쉼터 설치를 통한 다양한 도민건강 지킴이 사업도 펼치고 있다.특히, 미세먼지 저감대책으로 나무와 숲이 대안이 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도시숲은 미세먼지(pH 10) 농도 25.6%, 초미세먼지(pH 2.5) 40.9%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넓은 표면적을 가진 나뭇잎은 미세먼지를 흡착, 흡수하는 능력이 주변 환경보다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고, 나무 한 그루는 연간 35.7g의 미세먼지를 흡수, 1㏊ 숲은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을 연간 168㎏ 줄여 준다고 한다. 이는 경유차 1대가 연간 1천680g 미세먼지를 배출하니 47그루의 나무가 있으면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올해 경북도에서는 519㏊의 산림에 37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도시숲 41㏊, 가로수 82㎞를 조성 중이다. 포항 철강산단 주변에 미세먼지 차단숲, 구미 도시바람길숲을 조성하여 미세먼지로부터 보다 안전한 경북을 만들어가고 있다.이미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포항 송도솔밭 도시숲, 안동 신도청 천년숲, 경주 한중우호의숲, 구미 인동도시숲, 문경 미로공원을 거닐어 보면 숲이 주는 무한한 선물을 받을 수 있으리라.탁한 하늘빛을 맑고 푸르게 되돌리는 일은 나무 한 그루 더 심는 데서 출발한다.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일은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열섬, 폭염 현상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애써 가꾼 숲을 보호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 그루 나무로 천 개비 성냥을 만들 수 있지만, 천 그루 나무를 태워버리는 건 성냥 한 개비다'(One tree can make a thousand matches, but one match can burn a thousand trees)라는 격언을 되새겨 볼 일이다.

2019-07-08 11:12:05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살아 있는 문화유산-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먼 곳에 떠나가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한 기분이 들면서 집 근처에 가까이 올수록 마음이 점차 편안해지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느낌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익숙한 풍경과 눈에 익은 건물들, 곧게 뻗은 도로 옆으로 난 좁은 골목, 내가 다니던 카페와 세탁소의 크고 작은 간판들,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 깃든 추억…. 이 모두가 나를 이루는 부분, 즉 나의 '문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생활방식이나 작은 습관 등이 모여서 '문화'가 되고, 자기와 같은 문화에 속해 있을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문화는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서 역사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문화유산'이다.지난 4월 전 세계를 안타깝게 했던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화재 사건은 문화유산의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파리 중심부의 시테(Cite) 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12~13세기에 지어진 이래로 근 860년을 프랑스인들과 함께해 오면서, 최초의 고딕 양식 가운데 하나라는 건축적 가치 이외에 프랑스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 되었다.화재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이 보관되어 있었고, 이 성유물을 구해온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튜닉(tunic겉옷)도 남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철저한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정치와 교육 등 사회의 모든 공공 분야에서 종교적 색채가 가려졌지만, 5세기 말 클로비스 왕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 '교회의 맏딸'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서구 그리스도교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프랑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또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삼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고, 프랑스의 구국(救國) 성녀로 불리는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이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건물과 조각상이 훼손되었지만, 나폴레옹 1세는 그 유명한 대관식을 이곳에서 거행하였고, 19세기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으로서 새삼 주목받게 된 후 대대적인 재건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노트르담 대성당은 돌로 쌓아 올린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의 질곡을 함께한 프랑스의 상징이기에, 그 화재를 목격한 시민들은 마치 프랑스가 불타는 것처럼 느꼈다고 증언한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성가를 부르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고, 성당이 타들어 가는 동안 시민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유물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고 한다. 문화유산은 한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 절반 이상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전의 모습대로 복원하기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건축물이기 이전에 자신들에게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숭례문 방화 사건 때, 많은 사람이 마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가슴 아파하지 않았는가? 문화유산은 나의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과거와 미래로 나를 확장시키며, 먼 곳으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오듯 역사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문화유산은 공동체라는 의미 속에 너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 같은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라는 가치는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화유산은 '연대와 일치'의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써, 개인주의의 가벼움 속에 낱낱이 흩어져버리는 존재의 무상함을 극복하도록 해준다.

2019-07-08 10:19:18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북핵 문제 서두르면 진다

역사적인, 극적인, 획기적인, 그 어떤 수식어도 과장이 아니다. 6월 30일의 판문점 3자 회동 말이다. 북한이 공개한 기록영상에서도 '력사적인'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사변적인'이란 낯선 단어도 등장한다. '트윗'이란 말 뜻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날린 작은 새의 지저귐이 불러온 깜짝 이벤트일 수도 있다. 혹은 오랫동안 기획한 행사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용 리얼리티 쇼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만남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이유는 없다.미북 정상의 판문점 만남은 싱가포르, 하노이 회담과 차원이 다르다. 서로 총부리를 겨눈 대결의 당사자들이, 전쟁의 흔적인 비무장지대에서 만난 사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측 자유의 집에서 미국 정상과 회담을 가진 사실. 모든 게 말 그대로 '사변적'이다. 6·25전쟁을 한때 '6·25사변'이라 불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전쟁과 맞먹는 정도의 역사적 장면으로 볼 수도 있다.문제는 그다음이다. 미국과 북한의 반응은 의외로 신중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답은 '노 러쉬'(No Rush)다. 서두를 것 없다, 서두르지 않겠다. 북한 관련 이슈마다 반드시 덧붙이는 말이다. 실무협상을 지켜보자며 이번에도 '노 러쉬'를 되풀이한다. 제재를 계속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미국 의회와 언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쇼는 좋지만 비핵화에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북한도 생각 외로 차분하다. 북한의 동영상을 보면 김정은의 '력사적' 결단을 강조하려는 극적인 연출을 느낄 수 있다. 장중한 음악, 과장된 웅변조 해설 등은 북한 특유의 기법이지만 군사분계선을 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걸음을 느린 화면으로 만든 성의(?)까지 보였다. '판문점의 조미 최고 수뇌 상봉'은 "온 지구촌의 눈과 귀가 판문점으로 모이고" "격정과 흥분으로 뜨겁게 달구어졌으며" "세계를 커다란 충격과 격동으로 끓게 한" 행사였음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는 사실 또한 분명히 한다. "70년간의 적대 관계와 불신을 청산하려면" "피치 못할 난관과 곡절과 시련이" 예상되지만 두 수뇌의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헤쳐 나가자고 말한다. 겉으로는 한껏 흥분한 듯 보여도 속내는 신중하다.그에 비하면 우리는 상당히 들떠 있다.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이를 상징한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의 구체적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선 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 개념부터 천양지차다. 북한의 협상 실무자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판문점 회동은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가 당사자가 아님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우리는 빠지라고 노골적으로 언급한 북한 성명은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이 여전함을 보인 것일 뿐이다. 비핵화 협상 자체에 낄 수 없는 우리의 자세는 분명하다. 우리가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미국과 북한에서 말하듯 70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문 대통령 역시 비핵화가 오래 걸리는 일임을 언급한 바 있다. 정부 여당은 그 같은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끈질긴 협상이 필요하며 우리 국민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상의 종전선언' 등 먼저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를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정은 답방 등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북풍이라는 비판과 함께, 우리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일에 실패할 수 있다.판문점 회동이 한바탕의 환상적인 쇼라 해도 좋다. 쇼도 그 나름의 효용이 있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를 현실과 혼동하면 문제가 크다. 화려한 쇼가 끝나면 지루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주관적 희망으로 객관적 분석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보다 반 발만 앞서 나가라'는 말처럼 너무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고, 신중하고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70년 적대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리 없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2019-07-07 15:37:31

박정권 대구 수성구 구의원

[기고]축제는 어디로 갔을까?

축제는 원래 개인 또는 집단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나 시간을 기념하는 일종의 의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축제가 지역 기반 문화산업으로 인식되면서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주민공동체와 놀이 문화의 관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많은 문화 인프라와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축제를 통해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한편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축제 개최를 통한 고용 창출 효과와 축제 진행을 위해 필요한 시설의 운영, 그에 따른 문화 상품의 생산과 유통 등은 지역 내 인적 물적 자원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타 지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통해 지역의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관광객들이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재화와 연관되는 경제적 파급효과 그리고 지역의 이미지와 브랜드 제고를 통해 향후 지속될 부가적인 가치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렇듯 성공적인 축제가 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단순한 축제 그 이상이다.2003년 이후 3회에 걸친 '들안길맛축제'가 점차 축제 참가 인원이 감소하는 등 축제 전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면서 수성구에서는 품격 있는 명품 축제를 발굴하고자 전국을 대상으로 축제 공모를 하였다. 그 결과로 2008년 8월 1일부터 3일간 수성폭염축제가 열려 3년간 계속되었다. 소위 말하는 대프리카와 더위라는 지역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더위를 즐기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이렇듯 축제란 그 지역만이 가지는 독창성과 차별성, 유일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수성폭염축제 첫해에는 참여 인원이 50만 명으로 성공적인 출발을 했고, 2010년 3회 때는 무려 80만 명이나 축제장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수성폭염축제는 사라졌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축제가 사라진 것이다. 폭염을 주제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로 축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역의 자연적 자원을 역발상으로 활용하여 성공한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대구는 섬유의 도시이며 패션의 도시다. 또한, 2006년 안경산업특구로 지정되고 국내 안경 제조업체의 85% 이상이 대구에 있을 정도로 대구는 안경산업의 중심지였다. 이런 지역 특화산업과 지역의 축제를 연계하는 문제에 대한 발전적인 고민이 필요했다. 그랬다면 선글라스를 활용한 안경광학산업과 선크림 등 화장품산업까지 확장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사라진 수성폭염축제를 도심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콘셉트로 발전시켜 패션과 안경광학산업, 화장품과 요식업까지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의 산업과 지역적 특성이 공존하는 축제로 더욱 발전시키는 발상의 전환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그리고 더위라는 전국 유일의 자연적 자원을 활용해 물이라는 테마의 수성못을 활용하는 것까지, 그 어떤 도시에서도 벤치마킹이 안 되는 유일성과 축제의 차별화, 지속 가능성을 일구어내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성공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2019-07-07 14:53:44

최경규 행복강연가·국제경영학 박사

[광장] 용기 있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다

경영학에서는 표준화(standardization)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은 주로 자동차산업과 같은 생산 공정 라인에서 형상과 품질을 정형화함으로, 시간을 절약하고 투입되는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전략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요즘처럼 다품종, 대량생산이 많이 이루어지는 시대, 시내에 가보면 지난주 홈쇼핑에서 판매된 옷들로 거리가 가득하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트렌드라는 이름에 무임승차하다보면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나, 정작 자신의 정체성 (Identity)은 점차 사라질 수 있다.사람은 저마다의 타고난 성품과 기질이 있고, 그 인생의 색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르게 비춰진다. 하지만 이러한 각자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남들만 따라간다면 삶의 기곡의 막다른 길에 멈추어 섰을 때 스스로는 아무런 답을 구할 수 없다.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인다고해서 자신이 반드시 행복하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반대로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행복이 맞다. 그러기 위해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과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필자는 행복강연 때 "우리는 자아결핍(ego deficiency)의 시대에 살고 있다"라는 말을 한다. 쉽게 말해 밑 빠진 독에 물을 아무리 부어도 물이 차지 않듯이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말 자신이 결핍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구멍을 매워가는 노력과 시간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학병원에 가면 작은 병원에서 하지 않는 많은 검사들을 한다. 아파서 갔는데 빨리 치료해주기를 바라지만, 대기시간만큼이나 여러 검사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하지만 수많은 검사를 하는 이유는 정확한 진단이 좋은 결과를 위해 치료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 자신을 그리고 오늘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내일의 행복이 더 클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희망,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은 불안정한 토대 위에 사는, 로또와 같은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 즉 오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나를 직시할 수 있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많은 이들이 미래 자신의 모습이 어떨 것인가에 대하여 묻는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 당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는지에 따라 당신의 미래는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 역시 미래에 대하여 오늘을 얼마나 노력하며 사는지에 따라 그 환자의 예후(豫後)를 가늠 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오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산다 하더라도 마음이 곪고 있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지 않는 자는 결국 힘든 삶을 살 것이나, 비록 오늘 죽고 싶더라도 내일을 위한 계획이 있고, 실천을 하는 사람은 밝아지고, 그 힘듦은 반드시 극복될 것이라고 말이다. 경영학 표준화에 반대되는 의미로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부터는 다른 이들의 공통된 사고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 안의 자아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남들이 눈치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리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일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 안에 머물러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너무나 빠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을 보지도 못하고 볼 생각조차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지금 거울을 보라. 그 안에 담겨있는 당신의 눈동자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이야기 해 줄 것이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있듯이, 용기 있는 자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시작은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2019-07-05 06:30:00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왜 국내 정치에선 과감한 정치적 상상력이 없는가?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회동한 것은 분명 역사적 상징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처럼 "적대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청와대에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첫째, 현 정부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과 목표는 무엇인가? 통상 정책은 개념에서 시작한다. 개념이 명확하고 정확해야 정책 목표가 분명해지고 국민 소통이 원활해진다. 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반대로 개념이 모호하고 불확실하면 목표는 흔들리고 정책 효과성은 보장되지 않으며 정책을 둘러싼 정치 갈등은 심화된다. 스티브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올해 1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선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공유된 합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것이 하노이 2차 북미 회담 결렬의 핵심 이유일지도 모른다.문 대통령은 작년 10월 12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물질들을 전부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그런데, 문 대통령은 최근 연합뉴스 및 세계 6대 뉴스통신사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는 다소 다른 견해를 밝혔다. "영변의 핵시설 전부가 검증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변 핵심 시설만 제거해도 북한 핵 능력은 거의 사라지고 비핵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처럼 들린다.정부의 비핵화 개념이 흔들리고 핵무기와 핵 물질이 폐기되지 않은 채 비핵화 협상이 종료되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된다. 문 대통령은 작년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종전선언에서 시작해 평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 관심은 북한의 비핵화 조건이 아니라 북한이 문 대통령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충실히 따를지 여부다.둘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비핵화가 이뤄지는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수차례 했다고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작년 5월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김정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것은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할 경우 미국이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 안정을 보장하겠다는 말을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밝혔다.북한은 시종일관 체제를 보장하지 않으면 비핵화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한 '선 비핵화 후 체제보장'과는 결이 다르다. 분명, 북한의 비핵화는 김정은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따라서 정부는 북핵에 대해 감성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셋째, 문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 왜 기존의 정치 문법을 파괴하는 과감한 상상력을 통해 협치와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가? 문 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킨 북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은 기존의 외교 문법 속에서 생각하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그 상상력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으며, 역사를 진전시킬 힘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인 2000년 한 해 동안 야당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청와대에서 3번 단독 회동을 했다. 6월 17일에 6·15 남북 정상회담을 설명하기 위해, 6월 24일에는 의사들이 파업하는 '의료대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회동했다. 10월 9일 회동에서는 경제·남북문제 등 시급한 국정 현안 해결을 위해 공동협력하고 영수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하는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상생과 대화 정치 복원을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문재인 대통령도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깜짝 회동을 해서 판문점 회동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민생 경제, 남북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파격을 보일 때다. 그래야만 정치 협치도 복원되고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넓어질 것이다. 한국당 대표와 깜짝 회동을 해서 판문점 회동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민생경제, 남북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파격을 보일 때다. 그래야만 정치 협치도 복원되고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넓어 질 것이다.

2019-07-04 11:34:25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반보기

태생지에서 반백년 넘게 살면서도 고향에 어떤 명소가 있는지 잘 모른다. 무침회 골목에서 친구를 만나 반고개 주위를 거닐다 '반보기'라는 벽화를 발견했다. 말이 좋아서 벽화지 담벼락 몇 개에 그림을 서너 쪽 그려둔 것인데, 그마저도 관리가 되지 않아 '반보기'를 알리는 표지판도 없었다.반보기는 여성의 외출과 친정나들이가 금기시되던 조선시대에 며느리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외출이었다. 시집살이가 고추당초처럼 매운 시절에도 근친에 대한 배려가 있어서, 딸과 어머니가 중간쯤 되는 곳에서 만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그 시절의 노랫말이 '반보기 구전민요'로 전해지고 있다.'하도하도 보고저워 반보기를 허락받아/ 이 몸이 절반가고 어메가 절반 오시어/ 새 중간의 복바위에서 눈물콧물 다 흘리며/ 엄마엄마 울엄마야, 날 보내고 어이 살았노.' 딸의 하소연에 어머니가 응답한다. '딸아 딸아 연지 딸아!/ 너를 구워 먹을 것을 삶아 먹을 것을/ 금옥 같던 네 손이사 갈고리가 되었구나/ 두실 같은 두 볼이사 돌 족발이 되었구나/ 금쪽같은 정내 딸이/부엌 간지 다 되었네.'칠 남매의 여섯째인 나는 어머니를 빨리 잃었다. 어릴 때부터 늙은 엄마만 봐왔다. 그 늙음이 연민을 불러일으켰는지 어머니가 늘 가련해 보였다. 두 아이가 다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몇 년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막내딸이 보고 싶으면 '시장에 갈래?' 하고 전화를 하셨다. 그러면 아기를 업고 달려갔다. 어머니가 아기를 받아 업으면 나는 장바구니를 들었다. 어머니와 큰 시장(서문시장)까지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기 키우는 이야기, 호박소주 내려줘서 잘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바쁠 것 없이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반고개에서 큰 시장까지 가는 길이 우리 모녀의 반보기였다. 큰 시장에서 어머니와 국수도 사먹고, 순대도 사먹고, 아기 옷과 양말도 사고.어머니는 말 수가 적은 분이셨다. 어머니라고 속에 재워둔 말이 없었을까. 도통 말이 없던 그 어머니의 '시장 갈래?'하는 요청은 사람이 그립다는 다른 말이었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고 난 후 전화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는데, 부를 때마다 뛰어갈 수 없어서 찾아뵙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 마음에 걸려 있다. 두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는 동안 얼마나 적적했을지. 택시를 타고서라도 갈 걸. 결혼할 때 어머니가 주신 내복이 아직 장롱에 있다. 어머니 마음인 듯 고이. 장정옥 소설가

2019-07-04 11:11:55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강 위의 어부[강상어자(江上漁者)] 범중엄

강이나 산으로 왔다 갔다 하는 이들 江山往來人(강산왕래인)농어회가 맛있다고 야단법석이네 但愛鱸魚美(단애로어미)그대들 보았는가 나뭇잎 같은 배가 君看一葉舟(군간일엽주)저 높은 풍파 속에 가물가물 하는 것을 出沒風波裏(출몰풍파리) "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을 알지마는/ 가마 메는 괴로움은 알지를 못한다네(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 다산 정약용 선생의 한시 「견여탄(肩輿歎: 가마꾼의 탄식)」의 첫 대목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가마 타고 다니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다. 가마를 메는 사람들이 한 번도 가마를 타 본 적이 없듯이, 그들은 언제나 가마를 타기만 하고 가마를 메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가마꾼의 괴로움을 알 리가 없다."천하의 근심꺼리를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남보다 뒤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송나라의 정치가였던 범중엄(范仲淹: 989~1052)이 지은 천하의 명문 「악양루기(岳陽樓記)」의 마지막 대목이다.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했던 사람답게, 그는 가마를 탈 위치에 있었을 때도 가마 메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의 한시에도 소외된 인간에 대한 참 애틋한 정서가 도처에 무르녹아 있는데, 위의 작품도 바로 그런 경우다.강이나 산으로 유람을 다니며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은 농어회가 맛있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바로 그 농어를 잡기 위해 어부들이 험한 풍파 속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은 모른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마찬가진데, 유람객들은 농어회를 먹으러 왔다 갔다 하고, 농어 잡는 어부들은 하나 밖에 없는 목숨 자체가 왔다 갔다 한다. 가마 타는 사람들이 가마 메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내 몰라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농어회를 먹는 사람들은 어부의 이와 같은 고통 따위에는 아예 관심 자체가 없다."그럼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느냐?(何不食肉糜)" 우매하기 짝이 없는 황제였던 서진(西晉)의 혜제(惠帝)가 온 천하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대책이라고 내 놓은 것이 바로 이거다. 곡식이 없으면 고기죽을 먹으면 될 텐데 왜 바보처럼 굶주리고 있느냐는, 정말 어이없는 반문이다. 그는 이처럼 세상물정에 캄캄한 채로 꿈속을 헤매면서 아둔하기 짝이 없는 정치를 하다가 마침내 독살을 당했다. 농어 잡는 어부들의 괴로움을 꿈에서조차도 모른 채로 농어회만 맛있게 먹었던 것이 바로 그 독살의 원인일 게다,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7-04 1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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