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세계의 창] 양천세헌록이 주는 시사점

[세계의 창] 양천세헌록이 주는 시사점

양천(陽川)은 경북 영덕군 축산 2리인 염장의 옛 이름이다. 1800년대 전반 염장에 살던 (신)안동김씨 김병형·성균·제진 3대가 효자로서 유명했다. 경상·충청도 등지의 유생들이 영해부사와 경상관찰사에게 포상을 위한 상소를 30년간 23차례 했다. 1857년 철종이 김병형·성균 부자를 표창했고 정효각이 내려졌다. 상소문, 포상 관련 결정문, 그리고 김제진·관진 형제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등을 책자로 만든 것이 양천세헌록(陽川世獻錄)이다. 이번에 국문 번역 작업이 완성되어 출간되었다.노모의 근력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김병형은 하인이 대신하여 자신에게 회초리를 때리게 했다. 김성균은 3년상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의 묘소를 찾아 산속에 길이 났는데 그 길은 효자길, 염장은 효자마을로 불렸다.비록 주인공들이 동해안의 변방에 살고 있었지만, 김병교 이조판서, 김응균 참판 등 20여 명과 한문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울 기거 중이던 이장우 영덕 현감은 1839년 김제진이 보낸 명란이 워낙 맛있어서 밥을 많이 먹었고 답례로 붓 2자루를 보낸다는 편지를 보냈다. 동해안의 명란이 이때 선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840년 김제진에게 지인인 담양 사람이 참빗을 팔러 축산항에 가는데 잘 부탁한다고 한다. 지인은 보부상으로 보인다. 서울 조정 가까이에서 포상 청원 운동을 하던 김제진은 1853.2.23.자 편지에서 도승지가 김병국에서 조태순으로 교체되었고, 예조판서는 이경재라고 알린다. 김제진은 1856.6.27. 김관진에게 계획한 일은 예조판서 남병철에게 달려 있는데, 그를 만나기 위해 예조의 대청까지 3번이나 들어갔다가 물리침을 받았다고 불평한다.김성균의 효행에 감동해 남포에서 실어오는 비석의 운반료를 상인이 받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남포에서 경상도 동해안까지 바닷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상소문마다 15명에서 120여 명이 연명을 했기 때문에 수백 명 선조들에 대한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1860년 염장 동민 15명의 이름이 나온다.이 기록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김제진 집안은 안동에서 축산항으로 내려와 200년 동안 벼슬 없이 지냈다. 3대에 걸친 효행 이후 1900년대부터 후손들이 크게 번성했다. 김창진·정한 천석꾼, 김용한·수영 도의원(초대, 3대), 김호동 군수(안동), 외손으로 한국원(2대 국회의원), 정수창(전 상공회의소 회장), 한용호(전 대우건설 사장)를 배출했다. 효행을 대를 이어하게 되면 자손들이 번창한다는 점을 말해준다.둘째, 유생들이 20여 회의 상소를 조정에 보냈지만 포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정에서 상소 내용을 조사 보고하라는 명을 관찰사에게 내려보내고 확인이 된 다음에야 포상이 이루어졌다. 3번에 걸친 예조판서 면담도 모두 거절되었다. 이렇게 정효각이 내려지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절차에 따라 행정이 집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셋째, 김병교 이조판서가 보낸 편지글에서 당시 사대부들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다. 1858년 그는 아들의 과거급제 소식을 알린다. "영광과 감축이 극에 달하여 절로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적었다. 겸손과 자중하는 모습이다. 그는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겸손한 인품을 갖출 것을 훈계하는 것 같다.양천세헌록은 사적기록에 더하여 서울 조정에서의 사무, 정효각을 받기 위한 과정, 사대부와 양반들의 품격 있는 교류의 방식, 동해안 바닷가 수산물의 활용 등 19세기 초중반의 사회·경제상을 알 수 있게 한다.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AI) 등이 출현,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할 것이다. 양천세헌록은 인간관계의 출발점인 부자간의 효행에 대한 스토리이다. 경북에 산재해 있는 선조들이 남긴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발굴, 교화의 도구로 활용하면 좋겠다. 외국어로 번역해 한국정신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도 알리면 우리의 국격도 높아질 것이다.

2020-09-21 15:36:10

[매일춘추] 나도 꽃이면, 당신도 꽃이다 -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매일춘추] 나도 꽃이면, 당신도 꽃이다 -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코로나 이후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모처럼 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 대화 중 '라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후배 한 녀석이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는 것은 ○○라면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였다. 그 이후로부터 술자리 내내 '라면 맛' 논쟁이 시작되었다. 남들이 보면 의미 없는 술자리 이야기이지만, 논쟁의 발단은 처음 이야기한 후배의 화법에서 시작되었다. 자기가 선호하는 라면 맛을 이야기했으면 논쟁이 촉발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최고'라는 확정적 단어를 사용하여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였다. 자기 맛이 최고이고, 남들이 선호하는 라면의 맛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음식의 최고 맛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과 선호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최고의 맛도 하나의 선호 의견에 불과하다.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늘 불편해한다. 저마다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한다. 정보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철저히 무시한다. 한번 옳다고 믿는 생각은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확증 편향에 빠지면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증거나 새로운 정보들이 나오더라도 자기 신념에 빠져 그와 반대되는 증거들은 모조리 무시해 버린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인간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이기적 존재다. 그래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한마디로 뜨거운 물에 들어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병 안의 개구리와 같은 존재다. 확증편향은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갈등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확증편향이 섹시한 선동자를 만나면, 점차 음모론으로 진화된다. 맛있는 케이크 위에 있는 비싼 체리만 골라먹는 비이성의 진영논리를 다시 확대된다. 자기 의견이 곧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각자의 의견이 숙의와 토론을 통해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무시한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결점의 오류는 신(神)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다. '나와 우리는 언제든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거봐, 내 말이 모두 맞잖아'의 닫힌 전체주의 시대는 이제 아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나도 꽃이면, 당신도 꽃이다.작년에 고등학교 막내딸이 지워지는 타투(tattoo)를 했다. 그 타투를 보고 한소리를 했다. "18이라는 욕을 왜 타투하노?" 이 말을 듣고 딸이 점잖게 충고한다. "딸의 나이(18)도 모르는 가련한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8은 욕이 아니고, 나이고 숫자 일수도 있다. 생각의 차이가 민주주의다.

2020-09-21 14:23:06

[기고] 코로나 시대 추석, 효도의 정석은?

[기고] 코로나 시대 추석, 효도의 정석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추석 연휴 때 대규모 이동이 발생하면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가 크다며 고향과 친지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또 2017년부터 명절에 면제였던 고속도로 통행료도 유료로 전환하고 벌초 대행이나 온라인 성묘 및 차례를 권장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가 코로나19 확산의 중대한 고비이기 때문이다.조선왕조실록에도 전국에 역병이 돌 때는 명절이라도 모임을 금지하고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교문화의 중심인 경북에서도 그러한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예천에 살던 권문해는 '초간일기'(1582년)에서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께 송구스럽다고 했다. 안동 하회마을 류의목도 '하와일록'(1798년)에서 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기록했다.역병이 발생하면 모임 금지, 외지인 출입 금지 등 사람이 모이는 걸 최대한 통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일한 치료법이자 예방법이었다. 지금의 코로나19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코로나19는 조선시대 홍역과 천연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파괴력이 강한 전염병이다. 이에 필자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 비대면 추석 문화의 확산을 위해 '언택트 추석 캠페인'을 기획했다.캠페인은 SNS에 고향 방문과 모임을 자제하자는 내용이 담긴 글을 남기고 다음 참여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캠페인이 시작되자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각계각층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성인문해 교육을 통해 한글을 깨친 백발의 어르신들은 "며느라! 올개는 눈치 보지 말고 안 내리와도 된다" "아들아! 엄마 안와도 한게도 안 섭섭다. 손자들캉 집에서 추석 재미나게 보내라"며 구수한 사투리로 혹시나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식들을 안심시키는 글을 남겼다.귀암 문익공 13대 종손인 이필주(78) 씨는 마을에서 종친들과 함께 "고향은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위해 전화로 정을 나누었으면 합니다"라는 글귀를 들고 문중들의 귀향 및 귀성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채석균 칠곡군재경향우회장도 "이번 추석 명절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향우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드립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고향 방문 자제를 호소했다.최삼자 주부는 "코로나로 힘든 아들아! 이번 추석은 마음만 보내고 그리움은 영상으로 채우자. 사랑한다"라며 아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손경희 칠곡문화원 사무국장은 "따르릉~~ 올해는 열심히 일하는 아들, 며느리에게 언택트 추석이라고 전화 주세요"라며 시어머니에게 당부하는 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이번 캠페인은 관(官)이 아닌 주민 주도로 확산되며 비대면 추석 문화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칠곡군에서 쏘아 올린 이 캠페인이 경상북도 23개 시·군으로 확산됐으면 한다.고령일수록 치명률이 높아 고향 오면 불효자라는 게 빈말만은 아니다. 귀향하지 않는 것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는 최고의 추석 선물이자 효도일 수 있다.이번 추석에는 불행히 귀향할 수 없고, 차례를 지낼 수 없다 해도 부모님과 친지, 이웃들과 더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참된 효도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260만 경북도민의 동참을 기대한다.

2020-09-20 16:31:54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이 환생 정조?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이 환생 정조?

"정조 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신 뒤로 김대중, 노무현을 빼면 수구 보수 세력이 210년을 집권했다. 그 결과로 우리 경제나 사회가 굉장히 불균형 성장을 했다. 분단 구조, 계층·지역 간 균형 발전 문제, 부동산 문제, 검찰 개혁 문제 등이 그렇다." 이해찬 전 대표가 어느 시사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이 기사를 읽고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현재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려고 2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쾌한 스케일. 그 황당함에 비하면 차라리 "이게 다 친일 청산이 안 돼서 그렇다"는 헛소리가 외려 합리적으로 들릴 정도다. 이런 허황한 역사 판타지로 당을 움직여 왔으니, 민주당이 이상해진 것은 당연한 일.문제의 인터뷰에서 이해찬 전 대표는 작년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2, 3차례에 걸쳐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윤 총장이 사전에 조국 후보에게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발견해 이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려 했으나 인의 장막에 가로막혀 하지 못했다는 풍문이 사실인 모양이다.공직 후보자에게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다면 내가 검찰총장이라도 임명권자에게 알리려 했을 것이다. 공직자라면 마땅히 국가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해야 하니까. 이 전 대표는 인식이 다른 모양이다. 그는 검찰총장의 직보 요청을 '검찰의 저항'으로, 조국의 지명을 '검찰 개혁 의지의 바로미터'로 파악했다고 한다.자기들이 임명한 총장이고, 그는 내내 검찰 개혁에 협조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 그에게 정조 대왕이 돌아가신 뒤로 210년을 집권해 온 '수구 보수 세력'의 낙인을 찍고는, 그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장관 후보자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선(先)판단을 내려놓고 총장이 대통령을 만나는 길마저 차단해 버린 것이다.이는 애초에 그들이 그 후보를 장관이라는 '임명직'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선출직' 후보로 여겼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일단 임명부터 해놓고 그에 따르는 문제는 정치적으로 돌파하려 했던 게다. 그래서 '사실'에 따라 공직자의 윤리적 자격을 판단하는 대신에 문제를 '판타지'와 '음모론'으로 처리했던 것이리라.어느새 조롱의 밈(meme)으로 전락한 '검찰 개혁'만이 아니다. '계층·지역 간 균형 발전 문제, 부동산 문제'와 같은 정책 사안마저 이 전 대표는 철저히 이념의 틀로 해석한다. 한국 사회의 '불균형 성장'이 '수구 세력이 210년을 집권'한 결과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창작한 환상에 빠져 현실감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이다.한국 사회의 불균형 발전은 보수 정권하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소득 격차·도농 격차·부동산 격차는 그가 예외로 제쳐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물론이고 현재의 문재인 정권하에서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여러 지표는 외려 노무현·문재인 정권하에서 불균형 성장이 그 어느 정권에서보다 더 심화됐다고 말해준다.그런데도 그는 이 정책적 실패를 엉뚱하게 순조·헌종·철종·고종·순종·일제·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의 탓으로 돌린다. 순결한 것은 오직 김대중·노무현·문재인뿐. 애초에 이런 황당한 현실 인식을 갖고 있으니, 문제를 판타지로 진단하고 처방은 음모론으로 내리는 버릇을 반복하는 것이다.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니 자기들이 하는 일은 모두 숭고한 개혁이요, 거기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수구 세력의 저항으로 보일 수밖에.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은 전 정권의 적폐 탓이요, 야당의 비협조 탓이요, 언론의 가짜 뉴스 탓이요, 검찰의 무리한 수사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이해찬 전 대표의 맹랑한 환상 속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210년 만에 환생한 개혁 군주 정조 대왕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야무진 착각이다. 조선의 왕들 중에서 굳이 문 대통령에 가까운 인물을 찾자면, 정조가 아니라 차라리 선조일 게다. 이분이야말로 자신의 무능을 '남 탓'으로 돌리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시지 않았던가.

2020-09-20 15:00:36

[매일춘추] 앞산 - 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매일춘추] 앞산 - 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앞산은 대구의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앞산의 옛 이름은 성불산이었다. 지금의 중앙공원으로 바뀐 경상감영의 맞은편에 있다하여 안산(관기안산)으로 불리다가 앞산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혹은 남쪽을 '앞'이라 하여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앞산으로 불려졌다는 설도 있다. 앞산에는 예로부터 고려 태조 왕건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는 천년 고찰(古刹)이 세 곳 있다. 앞산에는 골짜기가 많기로 유명한데 큰골, 고산골, 안지랑골 등 비교적 크고 이름난 골짜기가 있는가하면 용두골, 메자골, 달비골 등 작고 아담한 골짜기도 많다. 이 중 세 고찰은 큰골에 자리한 은적사, 안지랑골에 위치한 안일사와 달비골에 위치한 임휴사다.팔공산 파군재(군사가 파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에서 견훤에게 크게 패한 왕건은 동쪽으로 도망을 가다가 다시 대구 앞산 큰골로 와서 삼 일 동안 굴 속에서 숨어 지내게 된다. 이 굴이 왕굴이며 왕굴에서 살아남은 왕건은 신라 영조대사에게 사찰을 짓도록 명한다. 태조 왕건이 숨어 있었다고 해서 숨을 은(隱), 자취 적(跡)를 사용해서 은적사다.또 다른 사찰은 은적사에서 몸을 숨기고 이곳에 와서야 편안히 숨어 있었다고 해서 편할 안(安), 숨을 일(逸)을 붙여 지명이 유래된 안일사다. 원래 신라 경순왕대에 창건한 사찰로 이미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고 있었다. 이 사찰은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 운동가들이 비밀리에 국권회복운동을 펼쳐나간 뜻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915년 1월 15일 이시영·윤상태·서상일 등 13인이 이 절에 모여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한 바 있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역사적 성지다.임휴사는 왕건이 임시 휴식을 취했다고 해서 임할 임(臨), 쉴 휴(休)를 사용해서 지명이 유래된 사찰이다. 견훤에게 연이은 패배로 심신이 지쳐있을 무렵 이 절에서 부처님 전에 불공을 드리며 심기일전하여 다시 전장에서 승리의 기틀을 마련한 유서 깊은 호국도량이다. 다른 사찰처럼 이렇다 할 문화재는 없으나 절 위쪽 굴속에 석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으며,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약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는 석두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고 당시 이 샘의 천장에서는 쌀이 떨어졌는데 행자가 욕심을 부려 부지깽이로 쑤신 뒤 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 약수는 수십 년 전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동네 노인에 의해서 발견되었다.이처럼 앞산은 후백제의 견훤과 접전을 벌일 무렵 수세에 몰린 왕건이 은적사, 안일사, 임휴사 등지에서 머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는 훗날 고려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 곳이다. 또 푸른 숲과 맑은 공기, 각종 위락시설이 어우러져 있어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전국에서 등산객이 두 번째로 많은 산이기도 하다. 골짜기마다 맑은 물을 보내어 젖줄 같은 신천을 만들었다.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 한 통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듯이 앞산을 찾아서 산행이라도 해보자. 주위의 숲을 둘러보며 천천히 걷다 보면 왜 앞산이 어머니의 산이요, 산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은혜와 그 산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20-09-20 14: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윤두서(1668-1715), ‘하일오수’(夏日午睡)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윤두서(1668-1715), ‘하일오수’(夏日午睡)

제목이 '여름날 낮잠'이다. 녹음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 긴 평상 위에 수염이 멋진 나이 지긋한 어떤 분이 커다란 둥근 안석(案席)에 팔을 얹고 기대 잠들었다. 발치에 부채가 하나 있고 잠결에 한 발은 땅에 떨어졌다. 뒤쪽으로 보이는 난간은 고급 주택의 전망 좋은 누대임을 말해주는 화보(畵譜) 풍 배경이다. 이 낮잠이 그냥 일상이었다면 그림으로 그려졌을 리 만무하다. 옛 그림에서 낮잠은 고도의 문화적 행위이다. 술과 잠을 의도적 외면으로 기호화한 중국 송나라 소동파의 시 '취수자(醉睡者)'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잠은 인체의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밤잠이 아니다. 시는 이렇다. 유도난행불여취(有道難行不如醉) 도가 있어도 행하지 못한다면 술에 취하는 것만 못하고유구난언불여수(有口難言不如睡)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면 잠자는 것만 못하네선생취와차석간(先生醉臥此石間) 선생은 술에 취해 이 바위 사이에 잠들었는데세상무인지차의(世上無人知此意) 세상에 이 뜻을 아는 사람 없다네 아마도 잠 보다 술이 약간은 심한 강도일 테지만 둘 다 어찌할 수 없는 심정의 소극적 저항이자 달관일 뿐이다. 이 시의 취수선생은 술에 취해 잠들었으니 이 두 가지를 모두 실천했다고 하겠다. 눈 감고, 술 취할 수밖에 없는 취수선생의 심정에 공감한 우리나라 사람도 많았다. 취수(醉睡), 수거사(睡居士), 취면선생(醉眠先生) 등을 호로 삼기도 했고 취수헌(醉睡軒), 취수당(醉睡堂), 오수당(午睡堂) 등을 당호로 삼았다. '낮잠 자는 집' 오수당은 단원 김홍도의 당호이다. 낮잠에 관한 철학적 시는 무척 많다.해남 윤씨 종가에 전하는 이 그림은 윤두서의 정밀한 필묘(筆描)를 잘 보여준다. 살집이 적당한 두툼한 얼굴과 코, 꼬리가 위로 솟은 눈썹과 수염을 다듬은 방식 등이 그의 '자화상'과 닮아 그 자신의 모습일 것 같다. 뛰어난 재능과 포부를 지니고도 당쟁으로 치군택민(致君澤民)의 도를 실천할 수 없었던 윤두서의 일생 또한 유도난행(有道難行)이었다. 그의 재능은 어쩔 수 없이 화가로 발휘되어 이런 명작을 낳았다.눈을 감았으나 기개 있어 보이는 얼굴, 우아한 손가락, 버선을 벗은 맨발은 격조 있는 섬세한 필선이고, 옷자락은 속도감 있는 빠른 필치이면서도 굵고 가는 리듬을 살린 가운데 이어짐과 멈춤에 공감이 가는 자연스러운 필선이다. 인물을 묘사한 선과 옷자락을 묘사한 선이 주(主)와 부(副)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 주인공의 존재감, 주변의 소도구, 배경의 수목과 난간 등이 다양한 선질(線質)을 보여주는 가운데 고격(古格)의 품위가 넘친다.

2020-09-20 06:30:00

[이종문의 한시산책] 까마귀는 곡식을 쪼아 먹건만(아습립행·鴉拾粒行)-사신행

[이종문의 한시산책] 까마귀는 곡식을 쪼아 먹건만(아습립행·鴉拾粒行)-사신행

소는 앞에서 머리 들고 밭을 갈고 / 牛前仰而犁(우전앙이리)까마귀는 그 뒤에서 곡식을 쪼아 먹네 / 鴉後俯而拾(아후부이습)소가 까마귀를 위해 밭갈이를 하랴마는 / 牛豈爲鴉耕(우기위아경)까마귀는 소 덕분에 곡식을 먹는다네 / 鴉因牛得粒(아인우득립)농부는 소여물을 항상 배고프게 주니 / 農夫呞牛長苦飢(농부시우장고기)실컷 먹고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만도 못해 / 不如鴉群飽食東西飛(불여아군포식동서비)소가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 쟁기로 밭을 갈고 있다. 나름대로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데도 주인은 난데없는 채찍질을 사정없이 등짝에다 휘갈긴다. 깜짝 놀란 소가 젖먹은 힘을 다해 죽을둥살둥 용을 쓴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여물통을 보면, 노동의 대가와는 거리가 멀다. 산해진미(山海珍味)나 진수성찬(珍羞盛饌) 같은 것은 아예 기대한 적도 없지만, 실컷 먹여줄 줄 알았는데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다. 참 허탈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굶어죽기 때문에, 소는 오늘도 할 수 없이 밭에 나가 쟁기질을 한다.쟁기질을 하다 보면 땅이 뒤집히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곡식 알갱이가 튀어나온다. 까마귀 떼들이 날아들어 고개를 숙이고 곡식 알갱이를 쪼아 먹는다. 소의 노동 덕분에 아무런 땀도 흘리지 않고 알갱이를 냠냠 쪼아먹다가, 배가 부르면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마음껏 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죽도록 고생한 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까마귀보다도 훨씬 못하다. 아니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 소는 그만 도분이 난다.이것이 소와 까마귀 이야기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소 같은 사람들과 까마귀 같은 사람들 이야기다. 세상에는 소처럼 일을 하고도 배고파 죽겠다며 흑흑 흐느끼는 사람도 있고, 까마귀처럼 놀기만 하고도 배불러 죽겠다며 배를 툭툭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 까마귀들은 그래도 소가 먹을 것을 가로채진 않지만, 까마귀 같은 사람들은 소 같은 사람들이 먹어야 할 것을 탈취해서 자기가 먹어치운다. 울화통이 터지는 사람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기는 연유다. 이런 시를 쓴 것을 보면 사신행(査愼行·1650~1727)이 살았던 청(淸)나라 초에도 사회모순이 아주 심각했던 모양이다.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도 탱자탱자 놀면서 '눈먼 돈'을 찾아다니는 까마귀 떼들이 대단히 많다. 당연히 소에게 지급해야 할 코로나 선별지원금마저도 까마귀 떼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냅다 가로챌까 걱정이다. 그런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청나라 때 지어진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0-09-18 14:30:00

[광장] 기후변화,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 되다

[광장] 기후변화,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 되다

기후변화의 시대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후는 변화를 넘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빅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우리는 엄청난 양질의 데이터시대에 살고 있지만, 기후나 기상에 대한 예측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기후 위기는 변동성이 클 뿐만 아니라 예측도 어렵기 때문에 파급영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를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오래 지속되는 기후 상태의 평균이나 변동성의 변화로 정의한다. 이는 자연적 변동성을 포함하여 인간 활동과 시간 경과에 따른 모든 기후변화를 포괄한다.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완화와 적응 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완화는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인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는 활동이다. 그리고 적응은 온실가스를 감축한다 하더라도 미래에 나타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합한 행동과 기후변화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기후변화는 우리 삶뿐만 아니라 특히 농업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은 기후 노출, 민감도와 적응 능력으로 이루어지는데, 농업 생산은 기후 노출과 이로 인한 민감도가 가장 높은 산업이다. 농업은 작물의 재배 시기, 작부 체계 변화, 수확량 및 품질, 병해충 발생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다양하다. 축산업은 온도, 습도의 변화로 인한 가축 스트레스 심화와 각종 전염병 발생으로 생산성 저하 문제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의 취약성에 따른 농식품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실천 가능한 적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기후변화의 시대, 농업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농가에 농업 생산의 위험과 불확실성은 피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생명보험을 들 듯이 농가도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일정 보험료를 납입하고 기상재해 발생 시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재해보험의 보상금 지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가 농업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산업은 농업이지만 우리 모두는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만 할 상황이 아니다. 일상이 되어가는 기후변화는 우리의 인식을 무디게 만든다. 항아리 속의 개구리는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러한 개구리를 미련하다고 비웃을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속의 개구리 같은 존재가 아닐까?기후변화의 거대 담론은 마치 딴 세상의 먼 미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다 보면 미래세대의 구슬을 빼앗을 수 있다. 구슬 뽑기 게임에서 바구니 속의 구슬을 뽑은 다음에 다시 집어넣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기회는 줄어든다. 뽑은 구슬을 바구니에 복원하는 것이 하나의 지구를 함께 나누는 현명한 방법이다.기후변화는 현재에 멈추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도, 내일도 기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변화한다. 변하기 때문에 알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해결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기에 현재 시점에서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후 위험을 바로 인식하고 공통의 가치에 기반한 협력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의 연대, 단기 이익이 아닌 장기의 지속 가능성 가치를 세워야 한다.이상호 영남대학교 식품경제외식학과 교수

2020-09-18 14:02:25

[춘추칼럼] 사람 나이 50쯤이면

[춘추칼럼] 사람 나이 50쯤이면

사람이 나이 50살쯤이면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좀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공자님은 사람의 나이 50을 일러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고 하셨다. 지천명이라? 공자님 당신께서 50 나이에 이르러 하늘의 명령, 하늘이 뜻을 헤아려 알게 됐다는 말씀이다.글쎄. 보통 인간들도 50쯤 나이가 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될까? 어림없는 말씀이시다. 그것은 오직 공자님이니까 그렇게 아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대놓고 자기 나이가 50이 됐으니 지천명의 나이라고 말하는 것은 망발 가운데 망발이다.나이 50과 관련 지어 또 생각나는 사람은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다. 톨스토이는 50세 이전까지는 아주 자유롭고 호기롭게 산 사람이었다.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누릴 것은 모두 누리며 산 사람이었다. 건강과 돈과 명예와 사랑이 모두 그와 함께 있었다. 모든 일을 가능한 일로 알고 살았던 톨스토이. 그는 50세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스톱시켜 놓고 회심(回心)의 기회를 갖고 통렬히 반성하고 나서 그 이후의 삶을 완전히 바꿔 살았다 한다. 지금까지 산 인생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 인생이었다면 그 이후의 인생은 남을 위한 인생이었다. 비로소 자기가 쓰고 싶은 작품을 쓰면서 자기가 얻은 재화를 자기가 아닌 타인,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32년. 참으로 장한 인생이고 보통 사람은 꿈꾸기조차 어려운 아름다운 인생이다.인도 사람들은 또 어떻게 인생을 경영했을까? 인도의 힌두교에는 인생 4단계론이 있는데 25세까지를 학습기(學習期), 50세까지는 가주기(家住期), 50세를 넘어 75세까지를 임서기(林棲期), 75세가 넘으면 유랑기(流浪期)라 한다고 한다. 참 특별한 인생 경영이다. 어쨌든 인생살이에서 50살은 매우 중요한 나이이고 계기로 보인다. 50살이 돼 무언가 이전의 삶과 다르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의 보살핌이 있고 신의 도움이 큰 사람, 행운의 사람이라 하겠다.나의 생각은 그렇다. 사람이 비록 50살이 돼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 지어 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는 좀 다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전의 삶과는 다르게 살아보려는 노력, 자기 삶의 족적을 돌아보고 스스로 반성해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누구나 유소년기에 사람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 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가족이 생기고 이웃이 생긴 뒤로는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산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사람으로 사는 삶이다. 그렇게 살아 늙은 사람이 된다. 필경 그가 늙은 사람이 되어 신의 축복을 받고 선택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시간이 허락되리라고 본다. 누군가의 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 독립된 한 개체로 살아가는 기간이 열리리라고 본다. 더욱 좋은 축복이 있고 신의 선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 살면서 다시금 타인을 위해서 사는 삶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늙은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협력 안에서 늙은 사람이 된 것이다.늙은 사람이 된 것도 커다란 은혜 입음이다. 그러므로 갚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나눔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내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식을 나누고 내가 재능이나 재물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들을 나눠야 한다. 그것만이 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나누게 되면 늙은 사람의 한탄과 고독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늙어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젊은이 흉내를 내는 일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늙은 사람은 늙은 사람이다. 만족이 있어야 한다. 유지하려고 해야지 확장하려고 해서는 낭패다. 진정 그렇게 사는 것이 늙은 사람의 삶이고 또 그것이 늙은 사람의 명예를 지켜주는 좋은 길이다. 요즘 인생은 60부터다, 70부터다 하는 말은 지나친 억지다. 거짓말이다. 속지 말고 속이지 말 일이다. 나는 70살이 넘어서 조금이라도 타인을 생각하면서 사는 삶을 알게 돼서 매우 기쁘다.

2020-09-17 14:30:00

[매일춘추] 전시장에서 떠나는 여행 - 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매일춘추] 전시장에서 떠나는 여행 - 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퇴근을 하기도 전에 어둠이 드리워진 것을 보니 가을인가 보다. 2020년의 봄과 여름은 다른 해에 비해 유난히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 것 같다. 올해가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어릴 적부터 혼자 비행기를 타고 먼 곳에 있는 친척 집을 다녀오기도 하고, 한때 직업으로 꿈꿀 만큼 여행이 주는 설렘과 행복은 특별했다. 지금은 큐레이터로서 박물관 및 미술관 답사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온전한 휴식으로의 여행, 스포츠 취미 활동의 여행 등 여행의 목적과 즐기는 방식은 때에 따라 다양하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필자를 대구에만 머물게 만들었다. 대신 전시장에서 떠나는 간접 여행을 선물해 주었다.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치게 되는 장면 혹은 인기척 없는 고요한 장소, 해변이나 시장에서나 볼 법한 각양각색의 파라솔이 드리운 배경 등 그 장소의 주인공이 되어 여행을 떠나본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화면 중앙과 우측에 우산을 쓴 사람들이 밤거리를 걷고 있었고, 후경에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연상케 하는 건물과 푸른 나무들이 장식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작품을 보고 마치 우산을 쓴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과일이 묘사된 작품을 통해서는 자두밭이 있는 외가댁이 떠올랐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자두를 수확하던 어린 시절로 추억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눈 내리는 하얀 밤이 묘사된 화면을 통해서는 눈을 뽀드득 밟는 것처럼 그 장소에 대한 현실감이 느껴졌고, 제주의 모습이 드리운 풍경화를 통해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친한 언니가 떠올랐다. 제주도에서 함께 보낸 추억이 그리웠지만 재회의 기다림은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서양 미술사 책을 꺼내어 보면서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일주를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 예술 작품을 통한 간접 여행이었던 것이다. 특히 인물화를 접했을 때는 등장하는 인물에 따라 가족, 친구와 함께 보냈던 추억 여행을 다시금 떠올려 보기도 했다. 이처럼 전시장에서 만나는 인물화와 정물화 그리고 풍경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세계 일주가 가능하고 그곳으로의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코로나19가 바꾼 여행 문화로 '언택트 여행'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접촉을 피한다는 의미로 로드 트립, 차박 캠핑, 호캉스 등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안전하고 폭넓은 전시장에서 보내는 여행도 꽤 재미가 쏠쏠하다. 올해 바캉스를 떠나지 못했던 대구 시민들이 대프리카 조형물에서 휴양지를 간접적으로 떠났던 여행처럼 전시장에서 작품을 통해 떠나보는 여행은 아주 색다른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남은 여행을 전시장에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2020-09-17 11:54:01

[기고] 소상공인도 온라인 시장 적극 진출해야

[기고] 소상공인도 온라인 시장 적극 진출해야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소비는 급감하고 있고,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힘들어하고 있다.이러한 중소기업에 생존을 위한 직접적 자금 지원이라는 대증요법도 시급하기는 하지만 기업 생존의 핵심은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판매 활동을 지원해 생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8월 30일 기준 오프라인·온라인 유통업체 26개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매출은 2.1% 감소했지만 쿠팡·G마켓 등 온라인 유통업체의 매출은 13.4% 증가했다고 한다.이 같은 온라인 판매 급성장 추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경상북도는 지난 5월부터 '경북 세일 페스타'라는 이름으로 중소기업들의 온라인 판매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8월 말까지 중소기업 2천200여 곳이 참여해 878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경북 세일 페스타의 우등생인 성주의 침구류 업체, 경산의 물티슈 업체, 문경의 오미자 판매 업체를 방문해 판매 노하우를 들었다.그들의 성공 요인에는 오프라인과는 다른 온라인 시장 특성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었다.첫째는 한 명의 고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오프라인에서는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거나 대리상을 쓰다 보니 개개인의 고객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한 명 한 명의 고객과 매일 만날 수 있다.물티슈 업체 사장님은 매일 출근하면 판매 사이트의 리뷰를 본다고 한다. 특히 회사에 직접 클레임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불만을 올린 고객을 찾아 불만의 이유를 직접 해소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침구류 업체는 전 직원 120명 중 50명을 품질 검사에 배치해 업계 평균 20%인 반품률을 2%로 유지한다고 한다.둘째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위에 언급된 두 회사의 대표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였다."온라인은 고객 한 명을 섬세하게 관리해야 하고, 그 한 명 한 명의 리뷰가 추천이 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충성 고객이 생기고 임계점을 돌파하면 판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온라인은 느린 것 같지만 고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한 성장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대표들은 얘기한다. 'Slowly but Surely'(더디긴 하지만 확실히)를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셋째는 우리 회사, 우리 제품만의 '다움'이 필요하다.온라인은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 경쟁의 시장으로 품질·가격·배송 등 제품의 모든 경쟁력이 그대로 보여지는 시장이다.이러한 온라인 시장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선 나음도 다름도 아닌 나만의 다움이 필요하다.칠곡에서 수공예 액세서리를 팔고 있는 대표는 팔찌 매듭이라는 새로운 제작 방식과 제작 과정의 공유를 통한 다움으로 수공업품 전문 온라인 매장인 아이디어스에서 수백만원의 월매출을 올리고 있다.온라인 판매의 성장세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중소기업에 있어 온라인 시장에의 참여는 선택 사항이 아닌 생존을 위한 기본 요소가 되었다.익숙하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온라인 시장에 대한 도전은 중소기업의 위기일 수 있다.하지만 위험 속에 숨어 있는 기회를 포착한 앞서의 성공 사례를 보면서 더욱 많은 중소기업들이 앞으로 펼쳐질 온라인의 기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기대한다.

2020-09-17 11:45:15

[신창환의 같이&따로] 누구를 위한 공공성(公共性)인가?

[신창환의 같이&따로] 누구를 위한 공공성(公共性)인가?

승자 없는 상처만 남은 전투가 끝났다. 3주 가까이 파업에 나섰던 전공의들이 진료 현장에 복귀하였다. 대학병원의 핵심 인력들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필수 의료 인력마저 업무를 중단했기에 파장은 컸다. 하루하루 협상이 타결되었느니, 지도부 간에 의견 대립으로 협상이 결렬되었느니, 파업이 연장되었느니 하는 뉴스가 실시간마다 쏟아지면서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힘겨루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휴전 상태로 들어갔다.의사 파업 사태는 전공의들이 복귀하기로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아직 국가시험 미응시 의대생 해결 문제, 공공의료 확대 방안을 둘러싼 쟁점들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여전히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정원 확대를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결정하였기에 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에 복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언제든 뜨거운 감자가 될 사안이다.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대립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지방의 의료 시스템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니 정부도 뒷짐 지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뭐라도 해야 하는 여당과 관료의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다소 뜬금없는 정부의 정책 발표에 대해 왜 하필 이 시점에 이런 방식으로 발표하고 밀어붙여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지금은 코로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처방에 조금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 시점인데 장기적 관점에서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정책을 갑자기 꺼낸 정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전에 볼 수 없었던 개업의사, 전임의, 전공의, 의대생의 연합 전선을 형성시키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정부도 강경한 입장을 이어가다 결국 원점에서 재합의하기로 하였다.정부의 의도와 의사 집단의 대응이 어떠했던 간에 이번 파업 사태에서 정작 정부와 의사 집단이 대립의 명분으로 강조했던 공공성(公共性)의 중요한 가치가 상실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공공의료 확대라는 공공성 명분을, 의사 집단은 의료 서비스의 질 하락과 국민의 피해라는 공공성 명분을 가지고 서로 대치하였다.응급실을 찾지 못해 몇 시간을 길거리에서 헤매던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의료 공백으로 인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고 침해되었다. 파업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의사 집단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 대립과 국민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소통 방식은 결국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의심을 남겼다.하나의 사회문제가 정책으로 집행되기까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여론에 의해 사회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공중의제), 정부가 공중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식의제로 설정하게 된다(정책의제). 공중의제가 정책의제가 되었다고 해서 바로 정책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여러 정책의제 중에서도 의제의 중요성, 긴급성, 파급성을 고려하여 일부 정책의제만이 정책으로 형성된다. 정책을 형성하는 과정에는 세밀한 정책 내용 마련과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의료 확대라는 중요한 정책의제를 제기하고도 정부의 정책 능력에 대한 의문만 남겼다.정부의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해도 정책 발표 시기와 미흡한 정책 내용, 그리고 이를 빌미로 한 의사 집단의 집단행동 명분과 주장은 국민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집단 모두 국민과 소통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는 상처뿐인 영광도 아니고, 서로 상처만 남은 소모전이었다.2017년 기준 한국의 인구 1천 명당 임상의사 수는 2.3명으로 OECD 주요국 3.4명에 비해 적다. 2019년 기준 서울의 인구 1천 명당 임상의사 수는 3.1명이지만 경북은 1.4명이다. 서울 종로구는 16.27명인데, 경북 봉화군은 0.79명밖에 되지 않는다. 지방 사람들이 덜 아프고 더 건강한 결과라면 모를까 수치상으로 나타난 의료 서비스 불균형은 심각하다. 공공성의 가치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점에서 생각하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공공의료 확대' 정책의 합의점은 간단하지 않을까.

2020-09-16 16:30:00

[강규형의 새론새평] 정권 실세들 살리려고 나라를 망가트려도 되는가

[강규형의 새론새평] 정권 실세들 살리려고 나라를 망가트려도 되는가

지금 사회가 벌집을 쑤신 듯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탈영 사건' 하나 막기 위해 정부와 집권당, 그리고 어용 매체들이 총동원되는 이런 추태를 과거에도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이것은 정권 실세이자 소위 '검찰 개혁'을 주도하는 추 씨를 보호하기 위해 그러는 거지만, 갖다 붙이는 억지 변명들이 가관이다. 그냥 솔직하게 사과했으면 회초리 몇 대 맞고 끝날 일인데, 이제는 한국사에 남는 초대형 부정부패 스캔들로 기록될 것이다. 국방부 장관과 국민권익위원장까지 나서 요설을 쏟아내고 있으니, 이 사건 하나가 국가의 근간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 이들의 독립성은 기대도 안 했지만, 자기 직책의 엄중함을 인식한다면 이렇게까지 막 나가지는 않았을 거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추미애 가족들을 '쉴드(shield) 치기' 위해 거의 매일 한두 개씩 망언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전부 악성 발언들이지만 제일 악질적인 것은 황희 의원(서울 양천갑)이었다. "모든 출발과 시작은 당시 ○○○ 당직사병의 증언이었다. 산에서 놀던 철부지의 불장난으로 온 산을 태워 먹었다" "그동안 이 사건을 키워온 ○○○의 언행을 보면 도저히 단독범이라고 볼 수 없다"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면서 제보자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3년 전엔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발의한 황 씨가 이러는 것은 자기파멸적 행위다. 현 정권과 지지자들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속칭 '지표를 찍고'(공격 대상을 특정하고) 정권 지지자들의 공격을 부추기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증언한 청년에게 이렇게 야비한 짓을 가책도 못 느끼고 저지른다. 항간에서는 황희 정승과 이름은 같지만 행동은 '황희 짐승'이라는 야유까지 나오고 있다.방송 장악, 의회 장악, 이제는 사법부도 거의 장악됐으니 오만에 가득 차 이런 추태를 부린다. 무슨 악행을 해도 자기들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더 날뛰고 있다. 권력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유권자이다. 아무리 방송과 정부기관을 총동원해 선전선동을 해도 현명한 유권자들은 그런 정도는 간파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문제 있는 언행을 한 의원들도 별문제 없이 무난히 당선되고, 아예 심각한 문제 인물을 일부러 공천해도 당선되는 악순환 구조가 이미 자리 잡았다. 즉 정치인들이 올바르게 행동할 이유가 없어지니, 이들의 행태는 점점 더 저질화되고 있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 조사에 잘 협조하겠다고 하더니 검찰에선 묵비권을 행사하고, 법정에서 성실히 임하겠다고 하더니 약속을 다 뒤집고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심지어 조 씨의 부인과 아들까지 똑같이 증언 거부를 하고 있다. 조 씨가 과거 정권들에서 한 발언들을 돌아보자. "도대체 법무부는 정권 옹위를 위해 헌정 문란 중대범죄의 수사를 방해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무법부(無法部)인가" "첩첩이 쌓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른다'와 '아니다'로 일관했다. 구속영장 청구할 수밖에 없다. 검찰, 정무적 판단하지 말아라". 바로 현 정권, 특히 조국, 추미애 전·현 법무장관에게 해당되는 얘기 아닌가. 조 씨는 역시 조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을 가질 자격이 있다. 누가 그의 '영롱한' 어록을 정리해서 내면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역사적 문건이 될 것이다. 위선도 어찌 이런 위선이 가능하단 말인가.게다가 할 말이 없을 때는 추 씨건, 심지어는 정경심 씨건 '전가의 보도'처럼 '검찰 개혁'을 위해 버틴다고 강변한다. 검찰 개혁? 검찰을 현재 어용 방송처럼 정권의 완벽한 하수인으로 만들어 좌파 독재 또는 유사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밉보인 사람들은 손보고, 정권의 실세나 친한 사람은 권력의 의지대로 보호하겠다는 얘기 아닌가?인터넷 포털에서도 조금만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불러다가 야단치는 일까지 생겼다. 네이버 부사장,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을 지낸 윤영찬 민주당 의원이 카카오의 기사 배열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익숙한 어투로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 하세요"라고 문자 보내는 게 포착됐다. 많이 해본 솜씨다. 이게 발각되니 "의견 전달의 자유"라고 둘러댔다. 정권 실세가 불러서 '기합 주는'것이 의견 전달이라는 기상천외한 변명까지 나온 것이다. 방송 장악을 넘어서 광범위한 언론 장악의 마각을 잘 보여준 대형 사건이다.문재인 정권의 이런 이상한 행태들이 나라를 망가트린다. 그러나 정권은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는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2020-09-16 15:08:19

[기고] '자율방범 자문관'(Adviser)을 아십니까?

[기고] '자율방범 자문관'(Adviser)을 아십니까?

"인생은 60부터, 100세 인생."이런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60대는 인생의 2막을 시작하는 '젊은 청춘'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새로운 노인 일자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인사혁신처는 퇴직 공무원을 위한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퇴직 경찰관을 대상으로 '자율방범 자문관'을 선발해오고 있다.자율방범 자문관은 다년간의 공직 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전문 지식을 자율방범대에 전수하고 주민들에게 생활법률과 민원상담 등을 제공해 질 높은 치안 서비스를 가꾸어나가는 역할을 수행한다.자율방범 자문관은 2018년 충북경찰청 소속 3개 경찰서에 최초로 배치돼 현재 18명의 자율방범 자문관이 144개 자율방범대, 4천320명의 대원을 대상으로 코칭 활동을 해오고 있다. 또 1천806건에 이르는 민원상담도 진행해왔다. 이러한 사업 성과로 자율방범 자문관은 올해 대구를 포함한 전국 14개 시·도로 확대 배치되기도 했다. 대구는 지난 6월 16일 33년간 경찰로 근무하며 중앙경찰학교 지도교수까지 역임한 베테랑 자문관을 중부경찰서 신남치안센터에 최초로 배치했다.신남치안센터에 배치된 자율방범 자문관은 주 3회, 주야간 4시간씩 근무하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민원상담과 생활법률 상담, 자율방범대원을 대상으로 근무 요령 교육과 범죄 취약지역 합동 순찰 등을 수행하고 있다. 향후 점차 인접 경찰서(서부, 북부, 성서, 수성 등)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이러한 자율방범 자문관은 대구 경찰과 자율방범대의 적극적인 가교 역할도 수행함으로써 대구 시민 치안 강화와 치안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오늘날 경찰 활동은 지역 여건·주민 성향 등에 따른 맞춤형 참여 치안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 주민과의 소통과 협업이 공동체 치안 활동에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자율방범 자문관 제도가 잘 정착되고 더욱 활성화된다면 지역 경찰의 업무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전문 인력인 자율방범 자문관의 코치를 받은 자율방범대원들이 더욱 전문성을 갖춰 근무에 임해 민·경 협력 치안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현재 대구 전체의 자율방범대는 163개 대, 약 5천 명의 인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중부경찰서는 19개 조직과 242명의 대원이 늦은 밤까지 자율방범에 힘쓰고 있다.실제 자율방범 자문관 배치 이후 범죄 발생 건수가 감소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자율방범 자문관 배치 후 약 2개월간 5대 범죄 발생 건수는 227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315건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9%(88건) 감소한 수치다. 즉 자율방범 자문관을 중심으로 한 자율방범대가 시내 중심가 클럽 골목과 공원 등에 순찰 활동을 강화한 결과라 볼 수 있다.대구중부경찰서는 자율방범 자문관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자율방범대와의 끊임없는 소통으로 문제점을 발굴하고 개선해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도 긴밀히 협력할 예정이다.당신이 일상생활 속에서 법률자문을 구할 일이 있거나 상담이 필요할 때 경찰관서까지 직접 방문하기가 부담된다면 '자율방범 자문관'을 기억하시라.친근한 치안 전문가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

2020-09-16 14:31:21

[매일춘추] 대구는 미디어 미터러시 교육 도시다 -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매일춘추] 대구는 미디어 미터러시 교육 도시다 -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19년부터 초등학교 5, 6학년 교과서에 '매체를 통한 의사소통 교육' 관련 단원이 신설되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보고, 영화를 만들어 보는 단원도 있고, 광고나 뉴스를 보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고, 광고나 뉴스를 만들어 보는 단원도 있다. 공교육에 미디어 교육이 들어온 것은 시대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자녀들이 있는 집은 대부분 스마트폰과 인터넷 중독을 걱정하고, 성인들은 미디어 범람 시대를 맞아 가짜 뉴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디어는 신문, 잡지뿐만 아니라 여러 동영상 매체까지 포함한다. 현대인은 일상적으로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다. 과거에는 지식과 정보를 얻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었다면, 현대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기 때문에 다양한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글과 마찬가지로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의 영상물을 그냥 눈으로 본다고 해서 이미지를 잘 이해하는 건 아니다. 미디어를 시청한 후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하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지 질문해보자. 이런 능력을 기르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미디어 리터러시는 기본적으로 '미디어를 읽는 능력'이다. 국어 시간에 시나 소설을 읽을 때 한 단어나 문장을 뜯어보면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처럼 미디어도 생산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정보의 늪에 빠진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살면서 건강한 온라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더 절실해졌다.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 읽기와 함께 '미디어 쓰기 능력' 즉 미디어를 활용해서 나를 표현하고 내 의견을 개진하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미디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예전보다 쉬워졌다. 법도 개정되었다. 2000년대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일반 시민들도 누구나 방송에 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실행하는 기관도 만들어졌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으로 시청자미디어재단이 광역단체별로 '시청자미디어센터'를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2005년 부산, 2007년 광주를 시작으로 지난봄 세종까지 모두 10곳에서 운영 중이다.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운영되는 지역에 사는 시민이면 누구나 찾아가 미디어 리터러시 즉 미디어 읽기와 쓰기, 제작에 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여기서 문제 하나, 전국에서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운영하는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유일하게 없는 광역단체는? 정답은 대구와 경북이다. 우리 지역에도 시청자미디어센터가 하루빨리 생겨 "시청자 권익 증대와 미디어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으로서 세금 내는 보람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0-09-16 14:14:17

[종교칼럼] 땅을 똑같이 분할 소유한다면?

[종교칼럼] 땅을 똑같이 분할 소유한다면?

10만㎢ 크기의 대한민국을 5천 만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도록 분할하여 분배한다면 어떻게 될까? 1㎢에 500명이 사는 것이 되니 1인당 50mx40m 돌아간다.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배정되는 이 크기의 땅을 벗어나 이웃 땅을 밟고 지나갈 일이 수없이 발생할 것이다. 땅을 분배받은 사람들 모두가 마음이 좋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자신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배타적으로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50mx40m는 크지 않은 땅인데 최종적으로는 이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기 힘들 수도 있다.우리나라 국토의 65%가 산지이고 8%가 강, 호수, 습지이며 7%가 도시 면적이고 나머지 20%가 농지이다. 이를 고려하면 1인당 농지 면적이 20mx20m 정도 되는 것이다. 400㎡의 경작지에 농사를 아무리 잘 짓는다 하더라도 내가 1년 동안 먹을 모든 음식 재료를 생산하기는 불가능한 일이고, 요리할 에너지를 구하기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간단히 살펴본 이러한 사실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서로 얼마나 많이 양보하고 협조해야만 하는지 금방 드러난다. 땅을 가진 사람도, 가지지 않은 사람도 서로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욕심과 목소리를 낮추고 많은 것을 조율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 지금 그렇게 하고 있기에 이렇게 살아있다.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자연과학적 요소들뿐만 아니라 각자의 종교적 믿음과 세계관 등 다양한 인문학적 요소들도 동원된다. 인류는 지난 수만, 수천 년 세월 동안 온갖 경험을 했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오늘날 지구촌에 존재하는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 철학 등 각종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적 요소들을 축적해왔다. 이들은 실제(fact) 세계가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 안에서 된 것이다.앞으로도 지금까지 구축해 온 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여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오늘의 평화와 안정을 해쳐서는 안 될 것이다. 안정과 발전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항상 함께하는 것이다.안정과 발전, 두 요소의 경계선에는 항상 갈등의 요소들이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늘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국민들은 피할 수 없이 존재하는 이 갈등의 요소들을 다스려 나가기 위해 많은 지혜와 대화, 양보와 인내, 모험과 노동을 동원하고 있다.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신이 속한 종교단체 안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러한 갈등을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절대자에게 간절한 호소와 청원의 기도를 드릴 것이고 때로는 자연의 법칙을 다소 넘어서는 기복적인 기도를 드리기도 할 것이다.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밝은 세상에 우리 종교인들도 실제 세계에 들어 있는 물리, 화학, 생물학적 법칙들을 가능한 대로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하여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합리적인 삶을 계획하고 살아나가야 현재의 삶이 건강하고 평화로울 것이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현존하는 각종 종교들이 권하는 자기희생, 양보, 마음 비우기, 이웃사랑, 인내, 수련, 청빈과 같은 덕목들은 인류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에 언제나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영양소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종교들은 그 존재 이유와 가치를 충분히 갖는다.

2020-09-16 09:45:06

[경제칼럼] 다양한 양념치킨의 역설

[경제칼럼] 다양한 양념치킨의 역설

수일 전 아들로부터 TV 시청을 권유받았다. 종편 TV에서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일전에도 한번 시청했던 기억이 있던 프로그램이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히면 상금을 지급하는 매우 단출한 포맷이다. 퀴즈 정답의 성공 여부보다 출연자의 소소한 개인사에 관한 그들만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이 펼쳐주는 삶의 모습은 지나치게 무겁지도 또 그리 가볍지도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아들이 시청을 권유한 그날의 프로그램 주제는 '이거 내가 만들었어'였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인기를 구가하는 발명품에 관한 이야기다. 현업이 변리사인지라 마땅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첫 번째 발명 이야기는 노면 색상 유도선이다.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해줘도 초행길 운전 중 갈림길에서 순간 망설여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목적지에 따라 그저 분홍선과 초록선을 따라 주행만 하면 될 뿐이니 편리함이 아주 그만이다.선 하나로 교통사고를 50%나 감소시켰다고 하니 실로 그 효과가 대단하다. 반면 효과에 비해 기술사상은 지극히 간단하다. 만일 발명자가 특허출원을 했다면 등록요건 소위 진보성을 인정받아 손쉽게 등록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다. 이처럼 유익한 발명은 기술의 난이도보다 관심과 열정의 산물이다.두 번째 발명품은 움직이는 토끼모자이다. 변리사 입장에서 가장 특허등록을 추진하기 용이한 발명이다. 기술사상이 명료하고 기구적 구조에 관한 내용인지라 발명의 성립성 또한 명확해 공지된 유사 기술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등록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발명이다.미국의 최대 유통회사로부터 100억원 상당의 물량 공급을 의뢰받았으나 제작 능력이 부족해 주변 공장을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본 발명품으로 5천만원 정도의 수입만을 올렸다고 하니 시청 내내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발명의 대가치고 부족함이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세 번째 주인공은 양념치킨 조리법을 개발한 발명자이다. 노년의 신사인 발명자는 인터뷰 내내 지난했던 양념 개발 과정을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 놓았다. 직접 창업한 회사명과 제품명도 귀에 익숙하였으니 사업화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던 듯하다.프라이드 치킨으로 유명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까지는 아니었어도 적어도 국내에서는 양념치킨의 지존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것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임직원들이 독립해 다수의 새로운 양념치킨 회사를 설립했다고 하니 가히 원조임에 틀림이 없다.해당 프로그램이 주인공들을 특별히 초대한 이유는 세계 최초의 타이틀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공전의 히트 상품을 개발한 주인공들이니 응당 상당한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프로그램의 반전이었다. 주인공 모두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독점권이 없었으니 법적으로 시장의 선두 주자를 유지할 수 없었다.후발 주자라도 자본력이 뒷받침되면 얼마든지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으니 소기업 수준의 주인공들은 그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명예 이상의 대가는 얻지 못했던 듯하다. 방송 후기를 찾아보니 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안타까운 댓글이 대부분이다. 필자 역시 내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그런데 '지식 독점에 반대한다'(Against Intellectual Monopoly)의 저자인 미셸 볼드린과 데이비드 러바인 워싱턴대학 교수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전했을까.양념치킨에 독점권이 부여되지 않았기에 다양한 입맛의 양념치킨이 시장에 선을 보일 수 있었고, 토끼모자에 특허권이 없었기에 저렴한 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하지 않을까. 또한 노면 색상 유도선에 특허권이 존재했다면 제한적 활용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감소했을 것이라고 항변했으리라.지식재산권의 적극적 활용과 제한적 적용은 항상 논쟁의 화두이다. 혁신에 대한 보상으로 출발하여 순기능적 역할이 돋보였던 특허권은 이제 독점과 공유라는 이념의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결국 지식재산권은 누구나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안이기에 관련 제도의 변화를 항상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20-09-15 16:46:49

[매일춘추] 참나무와 철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매일춘추] 참나무와 철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파우스트적'이라는 단어가 유래된 괴테 '파우스트'는 첫 장면부터 파우스트적이다. "아! 나는 철학/ 법학, 의학,/ 신학까지/ 철저히 연구했건만,/ 여전히 가련한 바보!"라고 자탄하며 파우스트는 독배를 들어 자살을 기도한다. "세계를/ 통괄하는 힘과/ 근원을 통찰"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생 독문학 하나만도 벅찬 필자야말로 '가련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독일은 좀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자족한다.지독파(知獨派)로 자처하는 필자가 보기에 유럽적 보편 가치에 충실한 독일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유럽적 보편 가치라면 '공동체적 복지에 기반을 둔 삶의 질'('유러피언 드림', 제러미 리프킨)이라 하겠는데, 독일은 그것을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정책메커니즘을 통해 구현한다. 그러나 삶의 질 증진에 있어 경제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독일인의 삶의 태도에 주목하는 이유다.어느 나라나 상징목이 있다. 독일의 경우 비교적 우리 귀에 익은 보리수나 전나무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정작 독일을 대표하는 나무는 참나무다. 그림 동화에서 보듯 숲은 독일인의 정체성과 운명의 요람이었고, 숲의 으뜸은 참나무였다. 학명 '쿠에르쿠스'가 의미하는 대로 '진짜 나무'인 참나무에 대해 독일인이 가지는 애착의 역사적 연원은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또한 철(鐵)이 검소함과 견고함이라는 독일적 미덕을 상징하게 된 역사철학적 배경과 궤를 같이 한다.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처했을 때, 참나무는 철과 함께 민족의식 고양의 최정점에 선다. 1813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왕의 명으로 독일 최고훈장이 제정되었는데, 바로 '철십자훈장'이었다. 우리의 'IMF 금모으기 운동'과 비슷한 상황에서 왕실과 귀족들이 솔선수범했지만, 각종 동상과 목걸이 등 장신구는 물론 국가의 최고훈장까지 귀금속이 아닌 철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철십자훈장에 새겨진 문양이 하필이면 참나무 잎이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참나무와 철이 검약한 독일인들의 삶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참나무는 국민나무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데, 전후 독일(서독) 마르크 화 동전(1페니히)에 참나무 잎이 들어간 것이 그 좋은 예이다.흔히 '생활은 단순하게, 생각은 고귀하게'라고 구두선처럼 이야기한다. 지독파인 필자가 관찰한 독일인들의 일상 삶은 단순함과 소박함 그 자체였다. 이름난 유원지에 왜 흔해빠진 식당 하나 제대로 없는지, 왜 기껏 담소하며 산책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생활이 단순하다고 생각까지 그럴 것이라고 예단하지는 못하겠다. 어쩌면 인생사란 비울수록 충만하고 채울수록 공허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단순 소박한 삶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우리는 적어도 인식의 지평에서는 잘 느끼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말이 아니지만, 차제에 필요 이상으로 시끌벅적한 우리네 삶의 패턴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9-15 13:58:55

[박원재의 삶 갈피]  두 가지 소금

[박원재의 삶 갈피] 두 가지 소금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자신이 봉직하고 있던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회 정문에 면죄부 판매에 혈안이 되어 있던 로마 교황청을 비판하는 95개 조목의 '면제부의 효력에 관한 반박문'을 써 붙였다. 면죄부 장사뿐만 아니라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도덕적 일탈 등으로 막장까지 간 당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였다. 중세 천년의 강고한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 종교개혁의 출발점이다.루터를 비롯하여 당시 종교개혁가들이 부패한 교회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부르짖은 구호는 세 가지이다. '오직 성서'(sola scriptura)와 '오직 은혜'(sola gratia)와 '오직 믿음'(sola fide)! 이 가운데 중심은 당연히 '오직 성서'였다. '은혜'도 '믿음'도 성서 속에 있는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것이 한갓 '구호'에 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라틴어 일색이던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서'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수 지식층의 언어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읽고 쓰는 대중적 언어로 옮겨진 성서를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루터가 95개 조목의 반박문을 통해 종교개혁의 불을 댕긴 지 정확히 326년 뒤, 독일의 이웃나라 덴마크에 살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Enten-Eller)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삶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감각적 욕망에 빠져 물질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단계이다. 그런데 이런 삶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일시적이고 표피적일 뿐, 그 쾌락이 지나가면 더 깊은 허무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익히 검증된 바이다.이 때문에 이 단계의 삶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한다. 양심과 이성을 안내자로 보편적 규범을 준수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윤리적 삶의 단계이다. 앞의 단계가 개인적 안일만 추구하는 차원이라면, 이 단계는 사회 성원의 일원으로 타인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가는 단계이다. 하지만 이 단계도 곧 좌초하고 만다. 설령 윤리적으로 살아가더라도 원죄를 지닌 피조물로서 언제나 죄를 지을 가능성 속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가 인간의 실존이기 때문이다.이런 까닭에 또 한 번의 도약이 감행된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 자신을 던지는 종교적 단계이다. 신에게 백기 투항함으로써 진리에 눈 뜨는 단계이다. 이런 결단을 키르케고르는 '신 앞에서 선 단독자'라는 말로 그 고독감의 깊이를 표현했다.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이 세 단계는 어설프게 절충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이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은 오직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책 제목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인 이유이다. 비종교인으로서 외람된 발언이기는 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이처럼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아무런 매개 없이 성서 속으로, 그리하여 절대자의 말씀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일부 교회의 일탈로 기독교가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이 아니라 국민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소금으로 지탄받고 있다. 하지만 십자가와 같은 뉴스도 없지 않다. 목수로 생업을 꾸려가는 4명의 목사가 봉직하는 경기도의 한 교회가 어디서 예배하느냐보다 어떻게 예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코로나 방역 협조를 위해 교회를 철거한다는 소식이 그것이다.여기다가 그동안 모금된 헌금과 교회가 입주한 건물의 월세 보증금을 합쳐 신자들에게 매달 10만원에서 30만원까지, 그것도 길게는 열 달 동안 코로나 위로금을 나누어 주기로 했다니, 그야말로 이 엄혹한 세상에 '소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든다. 교회 예배는 신앙의 바로미터라며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일부 목회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그 목수 목사님들은 지옥에 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여,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서도 염치없이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그렇게 안 하실 거죠?" 박원재 율곡연구원 원장

2020-09-14 16:30:00

[서명수의 일상중국] 무간도의 세상

[서명수의 일상중국] 무간도의 세상

다나카(가명)는 대사관 직원이었다. 주한일본대사관 3등 참사관이라는 명함을 건넸다.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후 식사 한번 하자는 연락이 와서 한두 차례 밥을 먹은 후 종종 청와대 등의 가벼운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한 관계자들의 반응을 물어왔다.나는 별 생각없이 아는 대로 알려줬다. 국회에서 활동하는 대기업의 대관업무 관계자들의 통상적인 정보 수집 활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그는 그렇게 보통의 일본 사람처럼 예의 바르게 밥을 먹자고 했고 우리에게는 그다지 비밀스럽지 않은 일들에 대한 자문을 종종 구했다. 그가 소위 대사관에 파견된 일본 내각정보부의 '화이트 요원'인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정부 국무원 산하의 '중국 사회과학원'으로 연수를 갔을 때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공통으로 수강하는 교양과목 강의에서 만난 스즈키(가명)도 기억난다. 어쩌다 함께 학교 옆 만두가게에 여럿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중국 만두'를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그에게 '국수 예찬론'으로 응수하면서 가까워졌다.대만과 미국 대학을 거쳐 중국에 온 그의 학력과 그를 중국에 보낸 회사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세상사보다는 그와의 '먹방'이 더 편했다. 한동안 연락하던 수상한 그들과는 슬그머니 그렇게 소식이 끊겼다.중국에는 북한이 직접 투자해서 운영하는 음식점과 카페(술집)가 꽤 있다. '외화벌이'가 중국 진출의 첫 번째 목적이지만 상당수 종업원은 '공작원'이다. 북한 식당들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해가지 못한다. 베이징의 '옥류관'은 대북 제재로 닫힌 문을 지난 연말 열었는데 코로나로 5월에 다시 문을 닫았다.2004년 개업한 평양 카페 '대성산관'은 아예 폐업했다. 이 카페는 교민과 조선족들이 주로 찾으면서 북한 공작원들의 '소굴'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안쪽 별도의 룸에서 북한 종업원들이 기타로 직접 연주를 해주는 방식으로 노래도 할 수 있어서 중국을 방문하는 우리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공작'이 가능한 '위험한'(?) 카페였다. 코로나가 베이징의 북한 공작 무대를 닫게 한 셈이다.공자학원(孔子學院)도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온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세계 150여 국가에 548곳의 공자학원과 1천187곳의 공자학당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베이징의 어언대학이 주관하던 한어수평고시(HSK)도 이 기관이 가져갔다.공자학원을 거점으로 한 스파이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과 스웨덴 독일 캐나다 등에서 공자학원 퇴출이 이뤄지고 있다. 2018년 미국 FBI 국장의 공자학원은 중국공산당의 사상 선전과 스파이 활동에 이용되고 있으며 미국 내 중국인의 동향을 감시하는 거점으로도 악용되고 있다는 청문회 증언을 계기로 공자학원의 다양한 스파이 활동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그러나 아시아에서 공자학원 최다 보유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스파이 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아예 없다. 오히려 각 대학 측은 중국과의 교류 확대 및 중국 정부의 각종 인센티브 유혹 등을 이유로 공자학원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우리 정보수사기관이 적발한 공자학원을 위시한 중국 관련 스파이 활동은 전무하다. 스파이 활동이 과거처럼 군사첩보나 국가 기밀을 빼내는 것일 뿐 아니라, 주요 인사 동향과 고급 기술 및 산업 정보 취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한국 공자학원에 파견된 교수 한 분을 소개받아 '중국어 공부 모임'의 강사로 초청해서 같이 공부한 적이 있다. 장 교수(가명)는 신중했고 예의가 발랐다.한 학기 동안 수업을 진행하고 가끔 식사도 하면서 교류했지만 그가 중국 정부를 위해 어떤 다른 활동을 했는지는 모른다. 귀국한 뒤에도 우리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한국의 공자학원이 중국어 교육과 중국 문화 강좌 등 알려진 활동 외에 중국 유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스파이 활동으로 의심받는 다른 활동을 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다만 '중국국가정보법'과 '중국사이버보안법' 등은 중국 국적의 '전 인민의 스파이화'를 가능하게 할 정도로 막강하다.영화 '무간도'(無間道·2002)는 경찰에 침투한 홍콩 삼합회 조직원과 삼합회에 침투한 경찰이 각각 '스파이'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무간지옥' 같은 일상(日常)을 풀어낸 영화다. 한·중·일 동북아 3국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화보다 더 지옥 같은 무간도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2020-09-14 16:30:00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모든 것에 이길 수는 없지만 모든 것에 웃을 수는 있다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모든 것에 이길 수는 없지만 모든 것에 웃을 수는 있다

영국인의 삶에서 유머를 뺄 수 없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늘 유머가 깃들어 있다. 항상 농담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유머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시간과 장소 따로 없이 인사와 이야기에 농담을 곁들인다. 그저 웃자고 하면서 "늘 진지할 필요는 없잖아?"하는 거다. 웃는 것이야말로 현재를 사는 거라며 "지금 안 웃으면 언제 웃겠느냐?"고 하는 거다.영국인의 유머는 독특하고 미묘하다. 진지한 것과 장난스러운 것이 만나고, 경쾌함과 심각함이 어우러진다. 자신의 결점을 들추어 웃음거리로 만들고, 자기 인생을 마치 남의 것인 양 한 걸음 떨어져 가볍게 바라본다. '농담을 하는 듯해도 실제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고, 관심을 가진 듯해도 사실은 관심이 없고, 심각한 듯해도 정말 심각한 것이 아니'라서, 같은 언어를 쓰는 미국인도 그들이 언제 농담을 하는지 잘 모를 정도다.여름마다 가서 지내는 영국 집에 도착해서 쓰레기통이 없다고 했더니, 집주인이 "요즘에는 투숙객들이 쓰레기통을 기념품으로 가져가나 보다"라고 한다. 한바탕 웃음으로 긴 여행의 피로가 누그러졌다. 친구들과 펍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남자들이 주차장에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여인들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비 맞은 채로 개를 끌고 들어왔다. 크고 무섭게 생긴 개를 보고 살짝 움츠리는데, "걱정 마요. 아침에 밥 먹였으니까"란다.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영국식 유머다.친구 미셸은 길치다. 일자리 면접에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물었단다. 약점은 역시나 방향 감각이 없는 것. 면접을 마친 후, 면접관에게 어느 문으로 나가는지 물었단다. 면접관도 웃고, 미셸도 웃고, 그 얘기를 들은 나도 웃었다. 내비게이션을 사러 가서는 "바보 멍청이(idiot)도 쓸 수 있는 걸로 주세요"라고 말하고, 그걸로 샀다더라. 노인 돌보는 일을 하면서 가끔 케이크를 구워주기도 하는데, 할아버지가 감사의 표시로 돈을 꺼내줄라치면 "우리 남편보다 더 친절하시네요"라고 한다.그들은 인생이 아이러니라는 것을 이미 아는 것 같다. 우스꽝스러운 유머로 인생을 비웃고, 놀리고, 비꼬고, 비튼다. 유머를 휴식 삼아 쉬어가면서 그때그때의 삶을 만끽한다. 드러내고 털어놓아 함께 웃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 징징대고 불평하느라 시간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웃음을 진지함보다 우위에 놓고, 인생이란 수선을 피울 일이 아니라며, 주어진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라 한다. 유머는 교양 있는 기술이다.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만 더' 행복하고 싶은 게 아닐까? 유머가 좀 더 자주 웃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웃음보가 터지는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게 뒤죽박죽일 때도 호탕하게 껄껄 웃어넘기고, 걱정과 불안으로 앞이 캄캄할 때도 바보처럼 희죽 웃을 수 있다. "You can't win at everything but you can LAUGH at everything." 모든 것에 이길 수는 없지만 모든 것에 웃을 수는 있다. 웃음으로 승화된 인생이 성공이 아니라면 무엇이 성공이겠는가? 나의 행복에 이런 '소신'만 가질 수 있다면, 내가 바라는 행복은 가깝고도 단단한 거다.

2020-09-14 16:30:00

[기고] 이제는 명품 신국제공항 조성에 집중해야

[기고] 이제는 명품 신국제공항 조성에 집중해야

공항 하면 늘 생각나는 일이 있다. 경상북도 투자유치과장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투자자를 만날 때면 "공항이 있느냐? 인천공항에서 얼마나 걸리느냐?"는 질문을 항상 받곤 했다. 그럴 때마다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경북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힘든 과정과 시간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렸기 때문이다.최근 통합신공항이 의성과 군위군민, 그리고 대구경북 510만 시도민의 결집된 염원으로 공동후보지로 최종 확정됐다. 이제 대구시와 경북도는 어떻게 하면 신공항을 '아시아의 명품 국제공항'으로 만들까 하는 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다.사실 K2 공항의 이전은 대규모 국책사업이지만, 군공항의 특성상 소음 피해는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함에도 군위와 의성군민이 공항 유치에 나선 것은 평생의 삶이 녹아 있는 내 고장이 인구소멸 지역으로 사라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의지를 결집하게 한 것이다.이러한 염원으로 대승적 결단을 이뤄냈다. 지난 2003년 기피 시설이었던 방폐장 유치를 위해 호남의 한 지역에서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주민들의 대립과 반목으로 결국 성사시키지 못한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때도 경주시민들은 지역과 국가 발전을 위해 큰 결단으로 응답했다.이번에 지역을 살리고자 하는 양 지역 군민들의 염원과 결단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대구경북의 정신이고 저력이다. 특히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형 국책 프로젝트에 중앙정부보다 경북도를 포함한 4개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부지 선정에 합의해 가는 과정은 성숙한 협치로서 지방자치의 발전을 보여줬다.그럼에도 일부에서 지역 발전을 위한 대구경북의 저력과 염원을 폄하하거나 심각한 갈등으로 오해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방부와 선정위원들도 이번 유치 과정에서의 갈등관리와 부지 선정에 대해 대구경북민의 역사적 결단으로 평가하고 갈등관리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이제는 성공적인 부지 선정에 대해 논란과 오해보다는 대구경북 신(新)국제공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때다. 세계는 지금 이 순간도 공항을 통해 지역의 한계를 넘고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의 교통·비즈니스 허브인 네덜란드 스키폴(Schipol) 공항은 유럽 전역에 화훼·낙농제품을 수출하는 관문이다. 미국의 멤피스(Memphis) 공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비행장으로 사용됐지만, 세계적인 물류기업인 페덱스(FedEx) 본부가 자리 잡으면서 나이키, 애플 등 글로벌 물류 허브 공항으로 다시 태어나 지역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머뭇거리거나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대구경북민의 하나 된 에너지로 하늘길을 열고 세계와 연결된 신국제공항을 만들어 수도권에 대응해야 한다. 또 세계와 교류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부지 선정 과정에서 대구경북의 위대한 정신을 함께 경험했다. 삼국통일과 조국 근대화를 이끈 대구경북인의 자긍심으로 다시 한번 무장하고 똘똘 뭉쳐서 글로벌 기업들이 지역에 둥지를 틀고 청년들이 돌아오는 '대한민국 미래 산업 수도'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다가오는 2028년에는 신국제공항을 통해 우리의 안전 농산물이 아시아 전역으로 나가고 산업과 물류의 글로벌 거점이 되는 그런 희망을, 그리고 해외투자가에게도 공항이 없어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는, 그런 희망을 그려본다.

2020-09-14 15:20:37

[세계의 창] 왜 주택시장에서 최적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세계의 창] 왜 주택시장에서 최적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일반적으로 '국부론'이라 불림)의 출간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에서 아담 스미스는 시장 참여자들이 각자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즉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에 의해 이상하게도 사회 전체의 이익도 최대화시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이 주장을 증명하고 실제 경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은 발전해 왔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판된 해에 시장경제 원리인 보이지 않는 손을 완전히 적용한 나라인 미국이 탄생했다. 활발한 시장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나라로, 신뢰와 호혜 정신이 풍부한 사회로 만들어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따라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경제적으로 부유해졌고,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었다. 우리나라도 그중 한 나라이다.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이 잘 작동하기만 하면 시장 참여자 누구도 불만 없이 최고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가격이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 가격 수준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대된다는 것이 경제학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이다.물론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드는 가격이 정확한 정보를 담지 못하게 되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 경우 시장을 대체하는 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의 거래 비용이 높거나, 시장 참여자 간 보유 정보의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기업(경영사 분야의 대가인 알프레드 챈들러는 기업을 '보이는 손'(Visible hand)이라고 함)이 시장의 대안으로 경제 안에서 시장과 공존하며 경쟁한다. 시장에 독점자가 존재하는 경우, 대가 없이 이익과 손해를 보는 것과 같은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 시장에 맡기면 공급되기 어려운 공공재가 존재하는 경우, 즉 시장 실패가 발생하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정보통신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발생하면서 시장 거래 영역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가격에 기초해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방식과 비교해서 정보통신혁명으로 탐색 비용이 낮아지고, 정보처리 능력의 향상과 수요자와 공급자를 가장 정확하게 연결하는 알고리즘의 개발에 의해 시장 거래는 비약적으로 개선되었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이와 같은 기술 혁신을 이용해서 그동안 시장 거래 방식이 도입되지 않았던 분야에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최적의 매칭을 제공하는 마켓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생겼다. 이 분야의 연구 결과는 장기 기증자와 환자의 연결, 인턴의 수련병원 배정, 학생들의 학교 선택, 결혼을 원하는 남녀 커플의 매칭, 노동자와 기업의 매칭 등 가격만으로 담아낼 수 없었던 다양한 인간 활동에 응용되고 있다. 마켓 디자인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앨빈 로스 교수와 로이드 새플리 교수는 2012년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위와 같은 시장의 진화와 경제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왜 주택시장에서 최적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주택 가격이 시장 참여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함에도 주택 가격만을 기준으로 정책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택 가격을 내리기 위해 종부세, 취득세, 양도세 등을 높이고, 전월세 신고제,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임대차 3법의 개정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했다. 특정 지역의 급격한 주택 가격 상승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다양한 산업구조를 가진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의 실질 주택 가격이 지난 30년 동안 2배 이상 상승한 반면 다른 지역의 주택 가격은 큰 변화가 없었다. 영국과 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런던과 도쿄 등의 대도시의 주택 가격만 크게 상승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지역의 공통점은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토지 이용과 건설에 대한 많은 규제로 새로운 주택 공급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주택 수요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주택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택시장에서 거래 자체를 막는 극단적인 규제보다는 최적의 매칭이 이루어지도록 마켓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09-14 15:04:17

[매일춘추] 인성에 문제 있어? -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매일춘추] 인성에 문제 있어? -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한때 공무원시절,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회의에 참가 한 적이 있다. 공식 일정 중 프랑스에서 유명한 공립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그들의 토론 수업시간을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마침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있었다. 토론의 주제는 '공적책임'이다. 프랑스 학생은 국가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받은 교육은 어떤 형태든 사회로 환원해야 하고, 자기들의 우수한 재능은 사회적 연대로 만들어진 '통합적 지식'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랑스의 지적전통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방문한 한국대표단을 배려하여 한국 교환학생들에게도 발언 기회를 주었다. 우리 학생들은 자신있게 발언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황당했다. "한국 교육은 똑똑한 인재를 키우지 않는 편향된 교육시스템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대접받는 교육풍토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프랑스 학생은 지식의 공유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반면, 우리 학생들은 지식의 우월성만 주장하였다.이들의 주장은 요즘 '가짜사나이'로 유명한 UDT 출신 이근 대위의 유행어로 다시 표현하면, '인성에 문제 있는, 개인주의로 뭉친 엘리트주의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준 약간의 격려금이 수많은 한국의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낸 세금이라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설령 알았더라도, 당연히 받아야 할 전교 1등의 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최근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의사들은 파업을 하였고, 의대생들은 국가시험을 거부했다. 그들은 당당하게 "매년 전교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를 선택해야 국민의 생사를 책임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공감능력이 일도 없는 엘리트주의의 오만한 메시지다. 의사들이 똑똑한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소통의 방식이다. 의사들이 싸우려는 이유는 병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진료를 하기 위함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국민들은 코로나때 의사들이 보여준 헌신과 봉사를 기억하고 있다. 소통은 논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존중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싸움은 백전백패다. 환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충만한 명의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우리는 일상의 카톡방에서 대화할 때, '급여체(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이 쓰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특히 대화 내용 중 '넵'으로 시작해 '넵'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왜 '네'라고 하지 않고 '넵'이라고 응답하는 것일까? 단어 하나, 문장부호 하나로 뜻이 달라져 갈등을 유발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공감의 표시다.인성에 문제없는 소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2020-09-14 14:58:09

[기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은 우리 안에 있다

[기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은 우리 안에 있다

"위기라는 단어를 한자로 적으면 두 개의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위험(危), 다른 하나는 기회(機)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당선 전부터 이 표현을 자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이 말은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며, 실제로 역사 속에서 여러 번 증명되기도 했다.영주시가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고 인구와 자본의 수도권 집중이라는 위기에 맞서 경쟁력 있는 지방자치단체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찾은 것은 '첨단베어링산업'이다. 베어링은 항공, 우주, 정밀기계산업 등 향후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판가름할 중요 산업 분야로 스웨덴과 독일 등이 세계 시장의 50%를 차지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는 상황으로, 영주시는 첨단산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준비를 서둘러왔다.우리나라의 베어링 산업을 어느 지역보다 먼저 선점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하이테크 베어링시험평가센터를 구축하고 베어링 관련 기업과 연구소 유치에 나서는 등 베어링 산업 기반 구축을 적극 추진해 온 영주시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대통령 100대 국정과제 중 지역 공약 사항에 선정된 데 이어 2018년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최종 확정되면서 미래 산업 핵심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현재 경상북도개발공사와 지방공기업평가원이 신규 투자 사업 타당성 검토 용역에 착수했으며, 오는 10월 용역이 완료되면 이후 경북도의회 의결을 거쳐 국가산단 계획 승인 신청 및 최종 승인을 얻을 계획이다. 국가산단으로 최종 지정받아 사업비 3천116억원, 면적 136만㎡ 규모의 베어링 및 전·후방 기업, 경량 소재 관련 기업 등이 집적된 국가산단이 들어서면 1만1천 명에 달하는 인구 증가 효과와 연간 835억원에 이르는 경제 유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국가산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다면 변화와 발전의 기회 또한 가질 수 없다. 국가산단 분양에 대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방공기업평가원에 제출한 입주 수요가 분양면적 대비 130% 확보된 것을 보았을 때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단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분양가 차액에 대해 국비를 포함한 1천850억원을 단계적으로 지원해 국가산단을 성공적으로 조성한다면, 영주의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경북 북부지역의 균형발전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영주시는 지난 10년간 인구가 7.8% 감소해 지방소멸 위험 진입 단계에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단이 성공한다면 인구 유입이 이루어져 지방소멸 위험으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다.현재 영주시는 우리나라 베어링 산업을 이끌고 있는 토종 기업인 ㈜베어링아트가 터를 잡고 있고, 경북도와 영주시, 베어링 대기업 등의 전폭적인 지원과 의지를 통해 국가산단이 성공적으로 조성된다면, 건설기계로 대표되는 경산, 항공산업 발전 지역인 영천, 바이오산업 중심지인 오송 등과 함께 첨단산업 도시로 변모해 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계 첨단산업의 흐름을 읽고 대비해 나간다면 영주, 그리고 대한민국은 세계 첨단산업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단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영주와 경북, 그리고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만들어 낼 기회를 반드시 잡을 수 있길 바란다.

2020-09-13 15:21:01

[이른 아침에]  9000억 빚을 내 2만원씩 준다고?

[이른 아침에] 9000억 빚을 내 2만원씩 준다고?

'8월 31일까지만 영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학교 앞 한 카페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이다. 제법 잘 되던 가게였다. 2학기마저 학생들이 학교에 오질 않으니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코로나 직격탄은 업종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가끔 가던 식당도 6월에 내건 임시 휴업 간판을 10월 초까지 연장한다고 바꾸었다. 곳곳에 '임대 문의' 쪽지를 단 빈 점포들이 늘어만 간다.굳게 닫힌 가게 문을 보는 심정은 여러모로 착잡하다. '폐업 안내' 한 장의 종이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까. 감사하다는 말조차 힘겨웠던 것은 아닐까. 작은 사업이지만 큰 손해를 보았을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안양 노래방 운영 자매 극단적 선택'이란 기사를 보면 부디 그런 선택은 하지 마시라고 기원하는 게 고작이다.그래서 말이다. 국가는 이런 때 나서야 한다. 재정 여력 운운하지 말고 최대한, 그리고 신속히 구제에 나서야 한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때 국민 모두에게 주는 걸 반대한 이유도 그런 것이다. 당장 삶이 힘겨운 국민에게 하루라도 빨리 충분한 도움을 주는 게 긴급재난지원금이다.하지만 1인당 20만원은 '지원금'이라기에 턱없이 모자란다. 모든 국민 대신 소상공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직접 피해자들에게 좀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게 맞다. 보편이냐 선별이냐 새삼 논란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모두가 건강보험료를 내지만 아픈 사람만 진료를 받고 건강보험 혜택을 누린다. 그걸 두고 선별 복지라 원망하지 않는다. 건강 문제가 생긴 사람이 모두 차별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국민 모두 보험 혜택을 받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는다.재난지원금 역시 마찬가지다. 재난 피해자들이 회복하도록 지원하지 않으면 지원금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건강을 잃은 국민이 건강 회복 때까지 치료를 받아야 건강보험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2차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 대상이 아닌 일부 지급으로 결정한 것은 당연하다. 4차 추경 7조8천억원으로 소상공인, 특수 형태 근로자, 프리랜서, 미취업 청년, 저소득층 긴급생계지원 등 최소 5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국민 1인당 30만원씩 10번 혹은 10만원씩이라도 주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국채를 발행하는 한이 있어도 한계상황에 몰린 국민의 삶을 돌보는 게 국가의 의무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일단 건져 놓고 봐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 아닌가.그런 관점에서 만 13세 이상 국민 약 4천640만 명에게 '통신비 2만원씩' 지원은 그야말로 뜬금없다. 아무리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항목이다. 재정 여력이 충분치 않다고 고백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은 무엇인가. 전 국민 1차 지원금 지급은 약간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지체하지 않아야 한다는 긴급성의 요건이 일차적이다. 지원 대상자 선정 기준을 놓고 의견을 모으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선거를 앞둔 시기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원금 사용으로 경기 부양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통신비는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는다. '긴급'도, '재난' 대상 선별도 아니고, '지원금'이라기에는 낯간지럽다. 경기 부양에도 턱없는 액수이다. 반면 전체 약 9천300억원은 "작은 위로요 정성"이라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다. 안 받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는 말에는 분노마저 솟는다. 이들은 모두 국민의 살림을 맡은 공복이다. 1조원 가까운 돈을, 그것도 빚을 내 쓰기 위한 발언치고는 무책임하다. 성안부터 시작해 집권 여당 대표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니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혹시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헤아려 보려 해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가장 좋은 방안은 이제라도 정부가 협의를 통해 수정안을 내놓는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여당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최종적으로 야당의 심의 과정에서 삭감해야 마땅하다. 의회의 존재 이유는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아니다. 잘못된 정부 정책을 견제하고 국가 전체에 균형을 잡지 못하는 의회는 있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가장 중요한 의회의 존재 의미가 국민의 곳간을 지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그 같은 책무는 다르지 않다.

2020-09-13 15:20:37

[매일춘추] 하빈 육신사를 찾아서…

[매일춘추] 하빈 육신사를 찾아서…

단종에게 죽음으로써 절의를 지킨 신하들이 바로 사육신이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고자 거사를 도모하다가 김질, 정창손 등에게 고발을 당한다. 이들은 능지처참을 당하거나 옥에서 죽고 혹은 집에서 자결을 하였다. 세조 수양대군은 성삼문 등을 처형 하면서 "당세의 난신이나 후세의 충신이다"라고 말 할 정도로 그들의 충절과 재능을 아까워했었다. 하지만 각각의 신체부위를 소가 끄는 수레에 매어 사지를 찢어서 죽이는 '거열형'에 처하고 신체 각 부위를 조선 팔도 곳곳에 뿌렸다. 그리고 가족들 중 남자들은 삼대를 처형하고 아녀자들은 모두 관비가 되었다. 자손을 이을 수가 없으니 당연히 후손도 끊겨버렸다.하지만 사육신 중 유일하게 친손이 살아남아 자손이 남아있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세조의 모진 고문 앞에서도 세조를 상감마마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 부른 박팽년이다. 사육신의 삼대가 모두 처형당하여 멸족의 참화를 당할 무렵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부인 성주 이씨가 임신 중이었는데 마침 그의 몸종도 임신 중이었다. 박팽년의 며느리는 아들을 낳고 며느리의 몸종은 딸을 낳았는데 그나마 아녀자들은 관비가 되어 살 수 있었기에 몸종의 자식과 바꿔치기 하여 박팽년의 손자는 몸종의 아들로 자라게 된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박팽년의 손자 박비는 17세 되던 해에 자수하여 성종으로부터 죄를 사하게 된다. 그리고 궁중의 가마와 마필, 그리고 목장을 관리하는 '사복시정'이라는 벼슬을 지내다가 외가인 대구 달성군 하빈면에 내려와 순천 박씨 집성촌을 이루어 오늘날까지 살게 되었다.하루는 박팽년의 현손 박계창이 고조부(박팽년)의 제삿날에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 사육신 중 박팽년을 제외한 성삼문, 하위지, 유성원, 이개, 유응부의 혼령이 사당 밖에서 몸을 덜덜 떨며 부러운 듯 제사상을 바라보고 있더란다. 이에 직계자손 없이 멸문지화를 당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나머지 다섯 분의 제사도 같이 모시기 위해 하빈사를 세워 사육신을 함께 배향하며 서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 되었다가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충효위인 유적정화 사업'에 의해 육신사로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육신사 하늘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그들의 충절과 기개를 생각한다. 무릇 어진 군주 곁에는 충신이 많고 무능한 군주 밑에는 아첨과 아부로 자신의 득실을 먼저 따지는 간신들이 넘친다 했다. 사리사욕을 정치의 도구로 삼는 위정자들의 가렴주구가 나날이 더해가니 어찌 국민들의 삶이 순탄할 수 있으랴? 국민과 정권에 올바른 소리를 하는 충신들은 모두 내쳐진다. 국민을 기만하고 아첨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충견들이 난무하다. 국민들에게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없는 현 시국을 바라보면서 진영논리와 양극화가 팽배한 이때에 사육신이 참으로 그리운 시절이다.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2020-09-13 14:3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지옥에서 발견한 아이디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지옥에서 발견한 아이디어

어릴 적 나의 꿈은 두 가지였다.첫 번째는 '심리상담가'였는데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을 살려 주고 싶었다. 육체를 고치는 의사는 아니지만 정신을 고쳐준다는 게 보람 있을 것 같았다.다른 하나는 OOO 어학원 영어 강사였다. 학창 시절 재미없었던 영문법이 토익을 공부하니 꽤 재밌었다. 왜 하필 OOO 어학원이었을까?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구에도 학원이 많았지만 OOO은 가장 먼저 시작했고 클래식한 이미지가 있었다. OOO에 입사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타 강사가 되는 꿈을 꾸곤 했다."서울 본사에 이사님을 만나보시죠. 이런 내용은 본사에서도 알아야 할 것 같아요."OOO 어학원 동성로점 원장님의 소개로 서울 본사의 이사님까지 만나게 되었다. 이사님 역시 기존 광고와는 다른 그 무언가에 대해 목말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회사의 포트폴리오 역시 마음에 들어 하셔서 공감대는 쉽게 형성되었다.미팅을 잘 마쳤지만 우리 회사엔 핸디캡이 있었다. 바로, 지방 기업이라는 인식이었다. 서울에도 유명한 광고 에이전시가 많은데 굳이 대구에 있는 기업에 일을 맡기실까 염려되었다. 결국 결정은 리더가 하기 때문에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의문이었다.하지만 간절함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OOO에서 우리에게 광고를 맡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포트폴리오만으로 우리를 평가해준 것에 감사했다. OOO 강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광고인이 되어 그 브랜드를 알리게 되어 기쁨이 더 컸다.하지만 행복도 잠시 계약서를 쓰자마자 엄청난 책임감이 밀려들었다. 계약금 역시 컸고, 나의 꿈이었던 브랜드라 정말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날부터 엄청난 고생이 시작되었다. 도서관에 처박혀서 작업에만 집중했다. 밥에 물을 말아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아이디어에 매달렸다. 오히려 그런 방법이 부담이었는지 아이디어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발표일이 되었다. 계약된 내용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준비해갔다. 인쇄 광고 한 장이 계약 범위였지만, OOO의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까지 개발했다. 발표 장소에 가니 각 지점의 원장님을 비롯 10명이 넘는 분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한 달 동안 준비한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발표할 때 광고인은 느낌상 분위기를 알아차린다. '이 아이디어가 반응이 좋구나' 아님 '무슨 저런 걸 가지고 왔어?' 광고주가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발표가 진행되면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의 아이디어가 전혀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 눈치 챈 것이다.발표 후 피드백을 듣는 자리에서 역시 직언들이 날아왔다. 내가 만든 광고의 방향이 옳다면 방어라도 해볼 텐데 그들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그들은 당장 여름 방학 때 수강등록을 위한 광고 한 장이 필요했던 거였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수강생 등록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토익과 인문학을 접목한 아이디어를 발표했던 것이다. 너무 멀리 갔다."토익은 사람 공부다"그때 들고 간 카피였다. 경쟁사는 "토익은 기술이야"라는 상업 광고의 끝을 달린 카피를 내걸고 있었다. 난 OOO의 브랜드 이미지가 그것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익을 시험으로 보지 않고 도구로 봤던 것이다. 토익을 공부해 취업을 하는 것도 결국 인간관계의 관점으로 봤다. 아무리 토익을 잘해도 입사 후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면 허사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원한 여름 방학 때 학생들 등록을 위한 광고가 아니었음은 인정했다. 그렇게 처참하게 실패하고 나는 대구로 내려왔다. 기차 안에서 온갖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지방 기업의 한계인가...?'광고인이 자신을 의심하면 크게 무너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아이디어에서 조금 떨어져 객관성을 갖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 그것을 서울에서 잃어버리고 대구로 왔다.2차 발표까지 5일의 시간을 받았다. 두 달 동안 준비한 시안이 거절당하고, 5일 만에 탁월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했다. 5일 동안 영남대 도서관에 처박혀 작업만 했다. 발표일이 다가오는데 아이디어가 보이지 않을 때 받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광고인은 지옥에 가서라도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5일 동안 숨도 못 쉬고 아이디어를 찾으러 다녔다. 2차 발표 때에도 실망한 클라이언트의 얼굴을 보는 건 죽어도 싫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작업에 매달렸다.내가 학생이 되어 보았다. '돈 없는 학생들이 수강료 내며 학원에 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니 답이 보였다. '결국, 성적 향상이다. 내가 토익 500점이면 800점, 900점 맞으려고 학원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누가 토익 점수 뒷자리를 바꾸고 싶어 학원에 가겠어. 수강료를 내는 건 토익 점수 앞자리를 바꾸고 싶어 가는 거지' 이렇게 문제가 풀렸다.550점이라는 성적표를 그려봤다. 뛰어나지도 못하지도 않은 평범한 성적이었다. 그리곤 성적표 종이를 오려보기도 하고 접어보기도 했다. 묘하게 앞자리를 접으니 '5'자의 끝이 '9'자와 맞아 떨어졌다. '그래 학생들은 학원에 이런 걸 기대할 거야. 500점대의 점수가 900점대의 점수가 되는 것. 앞자리 숫자를 바꿔 주는 것' 이렇게 작품 준비는 의외로 쉽게 끝났다.2차 발표 날, 우리는 최대한 간단하게 제안서를 준비했다. 1차 발표 때는 광고 기획 의도까지 서술했다. 그런데 2차는 달랑 광고만 준비했다. 거리에서 광고를 보게 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기획 의도를 설명할 수 없다. 광고주를 광고주라 보지 않고 일반인으로 생각하고 발표했다. 그랬더니 발표 시간이 3분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상입니다"라는 말로 나의 발표는 끝났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실무진의 표정을 살폈다. OOO 측의 첫마디는 이랬다."이것이 우리가 빅아이디어한테 기대한 수준입니다."드디어, 5일 동안 참았던 숨이 쉬어졌다. 비로소 식욕을 되찾았고,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울역을 향했다. 대구로 내려오는 KTX 밖 풍경이 원래 그렇게 아름다웠던 걸까? 우리나라는 자연 환경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난주 내가 본 암울했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OOO은 학생들이 많이 타는 지하철역에 이 광고를 게재했다. 포털사이트와 홈페이지는 물론 강남지점은 대형 현수막으로 이 광고를 걸었다. 서울에 있는 지인들이 광고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주곤 했다. 그들도 나도 함께 자랑스러워했다.사람들은 주로 앞자리 5가 9로 바뀌는 이미지를 재미있어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OOO은 앞자리를 바꿉니다"라는 카피가 주효했던 것 같다.이 광고로 큰 매출을 올렸지만 가장 값졌던 건 '자신감'이었다. 우리 스타일대로 밀어붙이면 더 큰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더불어 지방에 있는 기업이라고 졸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나와 우리 직원들이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다. OOO과의 작업이 끝나고 회사가 한 단계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큰 매출과 함께 동시에 잡았던 것이다. OOO 광고를 만들며 죽을 뻔했지만, 회사는 그만큼 더 단단해져 갔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9-13 14:00:21

[2020 세상 읽기] 도시 은자(隱者)

[2020 세상 읽기] 도시 은자(隱者)

대학시절 중국 시문학 수업 때 읽은 시 중 아직도 은은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시가 있다.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尋隱者不遇)'이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선생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다하네/ 이 산 속에 계시기는 하지만/ 구름깊어 어디 계신지 모른다하네'마음이 헝클어질 때면 이 시를 떠올려 본다. 적막한 산중의 오두막, 맑은 눈의 귀여운 동자는 소나무 아래에서 이제나 저제나 스승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방 안에는 찻물 끓는 소리, 운무 자욱한 골짜기에는 눈썹 하얀 은자(隱者)가 약초를 캐고….속기(俗氣)라곤 찾을 수 없는 시다. 마른 목에 시원한 샘물 한 표주박 흘려보내는 듯 청량감을 준다.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법정스님의 '텅빈 충만'과도 비슷한 느낌….요즘 부쩍 은자(隱者)의 삶에 관심이 간다. 옛 중국의 숱한 시인들 중 동진(東晉)때의 도연명(陶淵明, 365~427)에 한결 마음이 향하는 것도 은자적 면모 때문이다.전 생애 내내 가난과 인연이 끊이지 않았던 도연명은 워낙 농사짓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가족들 입에 풀칠하느라 어쩔 수 없이 벼슬아치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10년 남짓 동안 번번이 사직과 낙향을 반복했다. 생활고에 쫓겨 다시 관직에 나가도 이내 사직했다. 아래위 눈치코치 봐야 하는 관료생활이 안 맞았던 탓이다. 마지막 팽택 현령 때도 부임 석달이 안돼 그만두었다. 상부에서 파견 나온 감독관의 오만한 태도 때문이었다. "겨우 쌀 닷말(녹봉) 때문에 하찮은 향리의 소인에게 굽실거릴소냐" 내뱉고는 낙향해 버렸다.이후 죽을 때까지 20여 년간 갠 날에는 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엔 글을 읽는 '청경우독(晴耕雨讀)'의 삶을 살았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 꺾어 들어 멀리 남산을 바라보고, 해질녘 더욱 아름다워지는 산(山) 기운에 감탄하는 유유자적을 누렸다. 그 시절 일상에서 길어올린 '귀거래사'나 '음주' 같은 시들은 '도연명' 이름 석자를 중국문학사에 깊이 아로새겼다.중국 역사에는 각양의 은자들이 많다. 죽림에 모여 거문고 뜯고 술 마시고 청담(淸談)을 논하면서, 속세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삶을 지향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도 그러했다.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동진시대 왕희지도 관직을 접고 은자의 길을 택한 사람이다. 부유한 귀족 출신이었지만 관료생활에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던 왕희지는 자원하여 회계군으로 내려가 저 유명한 '난정집서'를 썼고, 얼마 후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산수 아름다운 회계에 묻혀 살면서 거위의 목 움직임을 보며 서법을 연구하고, 약초도 캐며 충일한 여생을 보냈다.소동파와 함께 북송의 4대 서가(書家)로 꼽히는 미불(米芾)은 다재다능한 기인이기도 했다. 출세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던 그는 사사건건 상관과 충돌하고 좌천당하면서도 가족생계를 위해 40년 긴 세월을 관리로 지냈으니 이른바 '관은(官隱: 관료계 은자)'인 셈이다.명말(明末)의 여행가이자 탐험가, 지리학자인 서하객(徐霞客)은 30여 년간 수많은 심산유곡을 탐험하느라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 고독하고 험난한 여정의 기록물이 바로 '서하객유기(徐霞客遊記)'이다. 말하자면 '이동하는 은자'였다. 역시 명나라 때 소주의 유명 문인 4명을 일컫는 '오중(吳中)의 사재(四才)'의 스승격인 고명한 화가 심주(沈周)는 명 태조 주원장의 배척으로 집안이 크게 기운 탓에 83년 생애 동안 벼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시은(市隱: 도시의 은자)' 으로 일관했다. 심주의 영향으로 당시 소주에는 권력과 관료사회에 등 돌리는 '시은' 전통이 생겨나기도 했다.깊은 산중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TV 다큐물을 한때 즐겨보았다. 불현듯 산다는게 간단치 않은 무게로 다가오고, 인간관계가 덧없이 여겨질 때면 세상에서 한발짝 떨어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자연인(自然人) 다큐물이 인기를 얻는 것도 대리만족 때문이다.한데, 요즘 왜 이리도 세상은 더 소란스러울까.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단어들이 이토록 일상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던가 싶다. 들끓는 세상에 염증을 느끼게도 된다. 깊은 산으로 들어갈 용기일랑 아예 없으니 도시 은자의 생활방식이라도 추구해야 하나. 하기야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 공포로 우리 모두 약간은 도시 은자 비슷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참이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 몇 년이고 코로나 공포가 걷히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기상천외한 21세기형 은자들이 마구 생겨날 지도 모를 일이다.전경옥 언론인

2020-09-13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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