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강규형의 새론새평]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은 웃음거리

[강규형의 새론새평]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은 웃음거리

지키기 어려운 것이 정치인의 공약이긴 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급으로 그의 공약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한미동맹을 강화시키겠습니다" "방송 장악을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등등 끝이 없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단 하나 확실하게 지킨 공약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인 듯하다. 그렇다. 지금 한국인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한심하고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 KBS, MBC 등 관영·노영 매체들을 총동원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덮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몇 개 실천했다고 하는 정책 공약들은 탈원전(脫原電)처럼 오히려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그런데 그중 가장 실패한 공약은 단연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 지금처럼 북한 체제가 우습게 알고 막 대하는 한국 대통령은 없었다. 이미 북한 조평통 대변인이 문 대통령의 작년 8·15 경축사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하늘을 보고 크게 웃을)할 노릇"이라는 역사에 남을 조롱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북핵 폐기를 이뤄내서 한반도 평화를 펼치겠다는 약속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다. 북핵 폐기를 세일즈하면서 벌인 무리수들이 지금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역시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라는 공약과는 정반대로 불가능한 북핵 폐기를 내세우며 국민과 국제사회를 농락했다. 조평통 기관지 '우리민족끼리'도 8월 16일 독자 감상글 댓글에 "문재인이… 여느 대통령들보다 훨씬 모자란 멍청이"라고 하면서 사실상 역대 가장 우습게 보는 한국 대통령임을 인증한 셈이다.문 대통령이 20년 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6·15공동성명 서명식에서 착용한 넥타이까지 빌려 매고 남북한 교류협력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지만, 북한은 바로 그다음 날인 6월 16일 국민 세금이 수백억원 들어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보란 듯이 폭파했다. 요즘 '당 중앙'이 된 김여정 북한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그다음 날인 17일 담화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놨다"고 비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 정권 인사들은 일제히 북한 옹호에 바쁘다. 국방장관은 남북 협의 위반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 책임이다" "대북 전단 때문이다" 혹은 "미국 책임이다"는 등 궤변을 늘어놓기 바쁘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는 기가 막힌 말을 했다. 뭔가 물려도 단단히 물려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북한의 당국자들이 이 정권에 대한 경멸과 협박을 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모란봉 냉면 음식점 주방장 오수봉이란 여성이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역사에 남을 독설을 퍼부었다. "평양에 와서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는 주제에" "이제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그것들의 망나니짓을 묵인하며 한 짝이 되여 돌아친 자들을 몽땅 잡아다가 우리 주방의 구이로에 처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막말을 했다. 아마도 북한의 문 대통령 능멸의 절정인 듯하다.현재 대통령이 무슨 장담을 하면 곧 현실은 거꾸로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동북아 평화가 곧 올 것이라고 얘기하면 곧 위기가 닥쳐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곧 종식될 거라고 하면 여지없이 확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면서 국민의 정권 불신(credibility gap)은 점점 커지는 것이다. 물론 '대깨문'(대가리 깨져도 문재인 지지)족이나 "우리 이니(문재인)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라고 하는 묻지 마 지지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현 정권을 지지할 것이다. 이런 지지층 때문에 정권은 점점 더 무모한 일을 하게 되고, 허위로 문제들을 덮으려 할 것이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 체제 자체의 침몰이 될 것이다.

2020-06-24 14:57:11

[매일춘추] 불청객

[매일춘추] 불청객

물건은 놓여야 할 곳에 놓여야 어울린다. 사람도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어색하지 않다. 한번쯤 이곳이 나와 어울리는 곳인지 돌아봐야 한다. 물건은 안 어울리면 치워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라면 치적이나 실정을 두고 법적 책임공방까지 벌여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고 그 자연이 가공의 무엇으로 인해 훼손되면 돌이킬 수조차 없다.그래서 사람에게는 사람다워야 할 덕목을 제일로 꼽는 것이다. 선생님은 선생님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이는 체면이나 위계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보다 겸손해야 할 사람도 그들이고, 누구보다 격을 갖추어야 할 사람도 그들이라는 말이다. 체벌 금지 이후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낙담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인식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60년대 이후의 부모세대는 알고 있다. 그 당시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이들 중에 상당수가 교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TV나 자동차 수까지 조사를 했던 가정환경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불평등이 조장된 바가 많았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긴 고등학교에서 군사교육까지 실시했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어울리는 불평등이긴 했다. 뿐인가. 대학생들은 병영이라고 해서, 며칠 군부대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오면 3개월의 단축복무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다. 입대를 하면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선임자보다 일찍 전역하는 후임자도 다수 있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다.순우리말 중에 '그냥'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그냥은 그대로 대가나 조건 없이 쓰이는 부사어다. 그냥이란 표현은 어른들의 무책임한 표현에도 많이 쓰인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실망이나 좌절이 있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한번 해보는 것에는 부담조차 없다. 심지어 '그냥'이란 표현이 점점 그 의미를 넓혀가고 있는 요즘이다.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에 '그냥 그렇지. 뭐'라고 하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 내지는 별다른 진전도 없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우리는 그냥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역할이 우리와 어울리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의사가 그냥 진료를 하고 판사가 그냥 판결을 내리면 우리는 그냥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벗어던지고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부르지도 않은 자리에 불쑥 자리하는 이를 두고 불청객이라고 한다. 다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에도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으로 살아가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냥 살아가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일, 단 한 번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2020-06-24 14:43:20

[종교칼럼]존재세계와 생명의 신비

[종교칼럼]존재세계와 생명의 신비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보는 나의 주변 세계를 멀리서 바라본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아폴로 우주비행사가 달에 가고 오고 하면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조금 더 크고 푸른색이라는 것 외에는 여기서 달을 보는 것과 거의 같은 형태였다.내가 지금 체험하는 이 땅은 엄청나게 크고 한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데, 그 사진에 의하면 한없이 큰 진공 상태인 공간에 떠 있는 공과 같다.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저 멀리 수많은 별들 중에 옳게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크기여서 안내가 없이는 알 수도 없었다.그런데 이 지구와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천체와 물체는 물리적 법칙을 따라 어김없이 움직이고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이 짧은 칼럼에 물리 법칙을 좀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비하다는 것이다.여기서 나아가 생명현상의 신비도 언급하고 싶다. 지구 표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은 햇빛을 통해 전달된 태양에너지와 지구 내부의 대류현상 그리고 중력의 복합작용에 의한 것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최종적으로 중력의 지배를 받아 아래로 끌려 내려온다. 그런데 생명체만은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풀과 나무가 그렇게 자라고,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새는 하늘에서, 사람을 포함한 온갖 동물들은 지표면에서 그렇게 움직인다.이러한 현상은 신비하다는 말이 아니고서는 옳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본래 그런 것인데 뭘 그렇게 생각하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신비하여 놀랍고 감탄스럽다. 이성적 노력으로 아무리 많은 탐구를 한다 해도 이 모든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갈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이성에 의한 논리적 탐구의 대상 이전의 것이고 또한 이후의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배우고 탐구하면 최종적으로 이러한 신비의 요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앞에서 이성적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는 장벽도 만나게 된다.하지만 호기심 많은 인간은 이것에 대해서도 어떤 말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동원되는 단어가 바로 '신비'이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도 이 장벽 앞에서 신비라는 단어를 동원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없었다.여기서 진정한 종교의 영역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싶다. 오늘날에도 '종교는 나약하고 죽음이 두려운 인간이 기대는 허상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강한 부류에 속한 사람들 중에도 종교를 가진 이들이 많다.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 중에는 외롭거나 병든 사람, 가난하고 두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귀의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마저 없다면 이들은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들 것이다.종교단체들의 조직과 활동에서 비난을 던질 일들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주변의 많은 비난을 통해 정화되어야 한다. 비난의 대상이 된 조직과 활동은 종교의 주변적인 요소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올바른 종교는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 하며, 선한 것은 권하고 악한 것은 하지 말라 하며, 신비한 것에 대해서는 신비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외치는 것은 존재 세계와 생명에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다.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이니 그것을 믿는 마음으로 희망하며 사랑으로 살아가자고 한다. 이 외침은 종교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어떤 경우에도 신뢰의 대상이 될 것이고 인간의 삶에 늘 함께할 것이다.

2020-06-24 13:30:00

[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여름철 위험한 유혹, 자두씨

[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여름철 위험한 유혹, 자두씨

여름이 다가오면서 상큼한 제철 과일들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살구는 6월 중순, 자두는 6월 말 부터 출하되기 시작하고, 복숭아는 7월 초 부터 출하되어 여름내내 다양한 품종의 복숭아를 맛볼 수 있다.반려동물 건강 스토리에 과일이 소개되는 이유가 뭘까? 복숭아, 살구, 자두가 의외로 반려견에게는 매우 위험한 유혹이기 때문이다.터키(포메라니언·10살·3㎏)가 동물병원을 방문한 시기는 지난 2월 이었다. 보호자는 터키가 2주 가량 먹지를 못하고 체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1년 전 디스크질환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인근 병원에서 관련된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이 되질 않아 우리 병원으로 의뢰된 케이스였다.터키의 혈액검사 결과는 심한 전신염증 소견이 관찰되었고, 초음파 검사에서는 소장의 장염 소견과 장관내 내용물 정체가 두드러져 있었다. 의외로 대장은 정상적인 소견으로 관찰되었다. 이러한 증상은 종양 또는 이물에 의해 장이 불통(장폐색)되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기본 X-ray(엑스레이) 상에서는 복강 내 종양이나 이물질은 확인되지 않았다. 뼈, 돌, 단단한 이물질, 거대한 종양은 X-ray 상에서 그 윤곽이 구분되는 편이지만 작은 종양, 비닐, 천, 목재, 과일씨 등은 복강 내 장기와 대변에 가려져서 구분이 쉽지 않다.그래서 장폐색과 관련된 검사에는 X-ray 조영 촬영이 이용된다. X-ray 조영 촬영은 액체 조영제를 먹인 후 조영제가 위-소장-대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시간차를 두면서 반복 촬영하는 검사법이다. 촬영 각도를 다르게 하면 장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터키의 경우 X-ray 조영 촬영을 통해 장폐색과 그 부위를 진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을 막고 있는 이물질의 정체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크기와 형태로 보아서는 자두씨가 의심스러웠지만 터키가 내원한 시기가 한 겨울이고, 자두를 먹인 적이 없다는 보호자의 주장에 나로서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수술이 진행되었고 예상되로 소장 말단 부위가 막혀 있음이 확인되었다. 소장의 안쪽 지름보다 3배나 큰 이물질이 소장을 이동하며 장내 점막층을 찢어 충혈된 흔적이 길게 연속적으로 나 있었다. 자칫 소장이 일부라도 구멍이 뚫려버렸다면 심각한 복강 오염이 발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물이 제거되고 괴사된 폐색부위는 절제한 후 건강한 장관을 연결해주는 장문합술이 이루어졌다. 소장을 폐색시킨 이물의 정체는 자두씨였다. 수술을 마치고 터키의 장에서 제거한 자두씨를 보호자에게 보여드렸다. 그제서야 작년 여름에 자두를 먹은 사실을 떠올리시며 황당해 했다. 터키는 4일 후 건강하게 퇴원하였고 장문합술을 받은 만큼 1주 정도는 정해진 처방식을 잘 지켜주실 것을 가족들에게 당부드렸다.여러 정황 상 터키를 괴롭힌 자두씨는 수 개월 전에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동물의 사망원인을 분석하고자 시행되는 부검에서 사망의 원인과는 관련없이 위 내에 자두씨를 비롯한 각종 이물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공간이 넓은 위 내에서는 자두씨가 불편을 초래하지 않지만, 위액에 의해 소화되면서 거친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크기가 작아져 소장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응급상황이 발생한다. 소장의 안쪽 지름보다 자두씨나 복숭아씨가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살구씨, 자두씨, 복숭아씨는 여름철 반려견에게 위험한 유혹이다. 과일을 먹고 무심결에 버린 씨를 반려견은 뛰어난 후각으로 금방 찾아낸다. 과육이 붙어있는 상태의 씨는 미끄러워 삼키기 쉽지만 위액에 의해 과육이 소화되면 거친 표면이 드러나 구토를 하더라도 제거되기 어려워진다.체중 5㎏ 이하의 소형견은 살구씨와 자두씨에 의해서도 곧잘 장폐색이 발생한다. 중형견도 복숭아씨가 장페색을 유발한 사례들이 많으므로 반려견에게 복숭아씨는 반드시 피해야 할 위험한 존재인 셈이다.무심결에 길거리에 내 뱉는 자두와 복숭아씨는 이웃 반려견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임을 명심하고 주의하자.

2020-06-23 18:30:00

[경제칼럼]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공존의 해법을 기대한다

[경제칼럼]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공존의 해법을 기대한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다. 예년과 달리 내심 더위를 기다렸던 것은 코로나19의 위력이 기온 상승과 함께 한풀 꺾일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최근 수도권과 충청 지방을 중심으로 지역 감염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감염 초기 엄청난 홍역을 치른 대구경북 지역은 다시금 들려오는 감염 확대 소식에 새삼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근본적인 치유책만이 초유의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듯하다.예방접종에 해당되는 백신과 감염을 치유하는 치료제의 개발이 핵심 관건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올해 연말이면 1, 2개의 백신 개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현재 전 세계에서 200여 종의 백신 후보가 연구되고 있으나, 일부 전문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가 워낙 다양하여 백신 개발 자체가 의미 없다고 주장한다. 치료제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국내 연구진을 포함해 전 세계 연구진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니 빠른 희소식을 기대할 뿐이다.백신 또는 치료제 개발 후 국제사회가 직면할 또 하나의 이슈는 개발된 의약품 공급과 분배의 문제이다. 일찍이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백신 개발 국제공조 논의체 합류를 거부하며 독자 행보를 예고한 바 있다. 반면에 파키스탄과 남아공 등 제3세계 정치 지도자들은 백신과 치료제의 무상 공급을 촉구하고 있다.과거에도 유사한 사례는 있었다. 2005년 조류인플루엔자와 2009년 신종플루가 인류를 위협할 때 인도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글로벌 기업인 로슈사의 치료제 타미플루의 복제약 생산을 강행하고자 한 바 있다. 상대적 빈국인 제3세계 국가의 국민은 고가의 치료제 수급이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 복제약 생산 여부는 자국민의 생명이 걸린 절박한 사안이기 때문이다.신약 개발은 인적 물적 투자에 기초한 장기간의 개발 기간은 물론 임상시험까지 수반돼야 하는 개발 성공도가 낮은 산업 분야이다. 특히 백신은 반복 사용되는 타 의약품과 달리 일회 사용이면 족해 경제성이 낮아 제약사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을 망설이기 마련이다. 이에 특허권에 기초한 독점권을 인정하여 연구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투자 회수에 따라 재차 새로운 신약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이익 구조가 일정 부분 보장돼야 한다.그러나 문제는 이익 구조의 정도와 독점으로 인한 공급의 불평등이다. 2004년 2억5천800만달러였던 타미플루 매출액은 2005년 10억달러에 이르렀으며, 2009년에는 상반기에만 9억3천8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실제 타미플루 특허권자는 최근에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인 렘데시비르(remdesivir)의 개발 소식을 전한 미국의 길리어드사이다. 대량생산 능력이 없었던 길리어드사는 로슈에 특허사용권을 판매했으며, 로슈는 판매액의 14~22%를 길리어드에 로열티로 지불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국내의 경우 통상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면 오리지널 제품의 가격은 기존 약가의 30%가 인하된다. 출시 1년 후에는 오리지널과 복제약 모두 53.55% 수준으로 다시 인하된다. 그렇다면 독점으로 인한 기업의 몫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하다.이윤의 크기를 떠나 더 큰 문제는 특정 기업의 독점 공급에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축량, 즉 공급의 불평등이다. 2009년 당시 선진국은 인구의 25~50%에 투여할 수 있는 양을 비축하고 있었던 반면 개발도상국가들은 전체 인구의 2% 정도밖에 비축하고 있지 못했다. 통상 신종 감염병의 경우 대부분 저개발 국가에서 유행하는데, 해당 국가들은 백신이나 치료제를 구매할 능력이 없으니 상황이 더 악화되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조류인플루엔자와 신종플루 대유행 시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였다. 47만여 명이 희생된 현 시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는 여전히 개발이 진행 중일 뿐이다. 개발 완료 희소식과 함께 백신, 치료제 가격과 공급은 엄청난 지구촌의 불평등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 명확하다.특허법은 기술 확산을 목적으로 정해진 기간 내 독점권을 부여하는 법제도이다. 당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인류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면 공존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다른 기술은 몰라도 백신이나 치료제가 인류의 생명을 담보로 국가 간 패권 경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쪼록 진정한 솔로몬의 해법을 기대해 본다.

2020-06-23 15:00:47

[매일춘추] 1990년대 대구의 미술가들

[매일춘추] 1990년대 대구의 미술가들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를 언급하는 데 있어, 큰 변화의 계기를 만든 두 개의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고, 다음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사건인데 사회 전반 뿐 아니라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화, 여행자유화와 같은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1990년대 들어 대학가의 민주화 운동은 점점 잦아들었다. 예술에서도 이념이나 투쟁, 무거운 역사의식보다는 큰 명제에 가려졌던 주변부의 목소리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여성, 약자, 환경, 신체, 성 등의 주제가 부각되었다. 또한 형식적으로 주도적 흐름이 없는 다원화 양상이 나타났는데, 추상과 구상, 모더니즘과 리얼리즘과 같은 대립적 구조가 아닌, 혼성, 차용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두 번째 사건은 1998년 IMF로 국내 경제는 곤두박질 쳤던 것이다. 국내 경제의 타격으로 미술시장 역시 붕괴되었다. 기존의 미술계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작가들은 기존 시스템과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탈중심, 탈주류의 움직임을 나타났다. 작가들은 경제적 상황이나 현실에 흔들리지 않는 자생성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생존을 모색하거나, 문제해결을 위한 단체의 조직과 협업과 같은 활로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때 대구에서는 국내 최초의 대안공간이 탄생한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결성된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이듬해 1998년 6월에 '스페이스129'를 만들었다. 스페이스129는 서울로 옮긴 인공화랑이 1996년까지 있던 중구 삼덕2가 129번지에 자리 잡았다. 이 공간은 상업화랑과는 다른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으로 작가들이 직접 작가의 자유로운 발표를 지원하는 협동조합(Co-Op)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공간은 회원뿐만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비회원들에게도 개방되었고, 전시장 사용료는 기존 상업 화랑의 절반수준으로 낮췄다. 이곳은 작가들에게 형식과 내용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발표의 장을 제공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경향, 지역, 학연을 불문한 모임들이 다수 나타났다. T.A.C(The Area of Colloquy)는 노중기 등이 중심이 되어 출발하였고, 1995년 창립전 '시대정신'에서 미술 형식의 제한 없는 풍토 형성과 집단이 아닌 개인의 자유표현을 표방하였다. 이들은 작가들의 기획으로 시의성을 반영한 주제전을 개최하였고, 홍보지를 발행하고, 후원회가 조직되기도 했다. 아트신테(Art Synthe)는 1995년 권정호가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고, 주도적 힘이 사라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대한 논의와 실천을 이들의 과제로 생각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30에서 40대 중심으로 180여 명의 많은 작가가 모였고, 그들이 함께 스스로 필요한 일들을 찾아 해결하는 거점이 되었다. 1998년 '스페이스129' 개관을 비롯해 2004년 전국 대안공간 네트워크전 개최, 2007년 가창창작스튜디오를 개관하는 등 작가들에 의해 작가들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2020-06-23 14:18:55

[기고] 지식지능형 청년기록가를 양성하자

[기고] 지식지능형 청년기록가를 양성하자

'시경'(詩經)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로 고대 중국 시대의 시가(詩歌)를 모아 엮은 책이다. 3천여 편 중 공자가 편집해 300여 편이 보존됐다고 한다.이 중 150편을 '풍'(風)이라 칭하는데, 황하 유역 15개 제후국에서 불리던 노래를 채집한 것으로 알려진다. 채시관(采詩官)들이 마을에 들어가 목탁을 두드리며 수집한 민요다.백성들의 노래엔 전쟁터에 끌려간 고통과 가혹한 부역, 억압에 시달렸던 고달픈 삶이 담겨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정서와 생활을 담아냈기에 이 시집은 수천 년간 경전으로 거듭 읽혔을 것이다.필자가 몇 년간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채집'과 '수집'이라는 목적의식적인 활동이다. 백성들은 노래와 이야기를 구술했고 채시관들은 이를 받아 적는 기록 행위를 통해 문자로 남겼다는 점이다.근대화 이후 기억과 기록은 더 다양한 형태의 정보로 가공되고 있다. 단지 정보를 생산하는 도구가 필사에서 인쇄, 사진, 영상, 인터넷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우리 민족이 걸어온 근현대 100여 년은 파란만장했고 성취 또한 대단했다. 그만큼 지역 공간에서 삶을 영위해 온 주민들은 풍부한 기록물을 생산했다.그러나 사진·서지(문서류)·영상·음원 등 다양한 원천자료가 흩어진 채 사라지고 있고, 이를 설명해 줄 기억은 소멸 중이다.척박한 생활환경 속에서 생산한 기록물이 더 값진 유산이고 더 소중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울 중심의 중앙단위 기록물만 중요하다고 세뇌당해 왔다.공동체의 혼이 담긴 민간기록물은 아직도 하찮게 취급되고 있으며 수집과 보존, 나아가 지역 가치와 자산으로 전환시키려는 상상력에는 무감각하다.안타까운 마음에 2016년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을 결성해 근현대 시기 경북도민의 기록물을 수집하고 보존, 재정립하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지역적 삶을 재발견할 수 있다고 설파해 왔다.4년 동안 지역과 주민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은 기록과 자취, 기억이 가득한 보물창고였다. 은빛세대를 만나 그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지역과 사람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유산과 기억이 담긴 기록물을 수집하게 되었다.기록과 자취, 기억이 스며 있는 생활 현장이야말로 깊이 있는 문화와 풍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동시에 지방소멸을 극복할 지혜가 묻혀 있었고 미래의 자산으로 재창출해 낼 기록·기억 콘텐츠도 엿볼 수 있었다.늦었지만 하루빨리 '채집'과 '수집'의 현대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문제는 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역은 쇠퇴하고 있고 은빛세대는 기억을 고증해 줄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청년들은 중앙의 화려한 불빛을 좇아 지역을 떠나고 있다.민간의 풍부한 기록과 기억을 매개로 삼고, 디지털 청년세대와 구술자 은빛세대의 접점을 통해 청년기록문화일자리를 창출해낼 수는 없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고 있다.청년아키비스트를 양성해 지역과 삶의 현장으로 파견하고, 현장에 능숙한 지식지능형 청년일자리로 전환해낸다면 양질의 문화콘텐츠 구축은 물론이고 명랑한 지역사회 건설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청년아키비스트들이 지역사회에 잠재돼 있는 민간 기록유산을 모으고 갈고닦는다면 경북형 청년기록문화 일자리 모델도 가능할 것이다. 지나온 30년, 50년, 100년의 지역사와 지역적 삶을 얼마나 잘 기록하고 알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2020-06-22 14:48:35

[세계의 창] 한국은 우수한 인재가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세계의 창] 한국은 우수한 인재가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20세기 전 기간에는 천재들보다 보통사람들의 평균적인 인적자본의 상승이 국부의 더 중요한 원천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사실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전기산업과 자동차산업은 에디슨과 포드 같은 한 명의 천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천지 500대 기업 리스트에 아직도 포함되는 GE와 포드 자동차는 이들 천재들의 위대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3년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 2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로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면서, 삼성전자의 급여 체계를 일본 기업과 비슷한 연공임금제에서, 실적이 있는 우수한 인재에 더 많은 보상을 하는 성과급 제도로 전환시켰다. 이처럼 기존의 우수한 사원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새로운 우수한 인재들을 모여들게 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삼성전자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이건희 회장이 예상한 대로 다시 천재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래리 페이지가 만든 검색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구글, 저커버그가 만든 알고리즘에 기초해 성립된 페이스북, 제프 베조스의 비전과 추진력이 일구어낸 아마존, 일론 머스크의 상상력으로 확장되고 있는 테슬라 등이 좋은 예이다. 짧은 시간 안에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과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1조달러, 페이스북은 6천400억달러, 테슬라는 1천50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였다. 훨씬 역사가 길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천800억달러 정도임을 감안하면, 위의 기업들이 이루어 낸 단기간의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이들 천재들이 만든 기업들로 인해서 국가 간의 소득격차가 국가 내의 소득격차보다 더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즉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더 높은 임금을 주고, 더 나은 노동 환경을 제공해서 세계 곳곳의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체 노동자 중에서 외국 출신이 15% 정도인데, 엔지니어로 한정하면 외국 출신이 30% 이상이고, 박사 학위 보유자는 50%를 차지할 정도로 고학력 노동자 중에서 외국인의 비중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새롭게 유입되는 능력 있고 우수한 인재들을 미국의 하이테크 기업들은 적극 활용해서 기존의 사업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낼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을 매수하는 형태로 더 큰 수익이 예상되는 사업으로 진입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예를 들어,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구글 이외에도 이세돌 기사와 바둑으로 대결한 인공지능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는 웨이모, 사물인터넷을 주로 연구하는 네스트,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유튜브 등을 산하에 두고 있다. 페이스북도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와츠앱을 매수해서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업체로 성장했다. 능력 있고, 우수한 인재들의 유입은 기존 기업만을 성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의 생태계를 넓히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이민자가 미국 출신자보다 창업할 확률이 30% 더 높고, 1990년대 이후에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아 창업한 기업 중에서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의 25%가 이민자에 의해 창업된 기업이라고 한다.천재들에게 그들의 성과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준 미국은 기업의 창업이 우후죽순처럼 이루어지고, 창업한 기업이 빠르게 성장해서, 고용을 증가시키고, 소득이 증가하는 소위 창조경제를 실현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미국의 하이테크 분야와 같은 시스템으로 성공한 예가 바로 K-POP이다. 우수한 인재들에게 실적에 맞는 보상이 이루어지자 더 우수한 인재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이게 되고, 다양한 음악적인 시도가 이루어져 더 많은 인기를 얻고, 다시 천재들을 끌어모아, 더 다양하고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세계를 향해 셀 수 없이 탄생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미국의 유수한 대학에 유학 중인 인재들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한국의 유수한 대학을 졸업한 뛰어난 인재들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게 되면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요원하게 된다. 한국의 뛰어난 인재뿐만 아니라 세계의 인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싶을 정도가 되려면 실적에 맞는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렵다. K-POP처럼 K-Firm의 시대가 와서 세계의 뛰어난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20-06-22 14:43:18

[매일춘추] 노스텔지어, 공간에 대한 기억

[매일춘추] 노스텔지어, 공간에 대한 기억

작품은 활동 당시 창작자의 사유와 사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술가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을 통해 비평되고 해제되면서 회자된다. 건물은 세워짐과 동시에 공간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활동하거나 생활한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시대를 관통하는 타임라인을 형성하며 사람들에게 회상되어진다.예술작품이 창작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와 함께 회자되듯, 건물 혹은 거리 등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곳 역시 오랜 기간 한자리에 있으면서 인물과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기억으로 축적되고 회상된다. 지역의 근대 문학자료를 수집하면서 당시의 문학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은 지역에 경계를 두지 않고 서로 교우(交友)하였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예술 분야와 다른 분야의 예술인들과도 서로 활발하게 교류(交流)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개인과 개인, 장르와 장르 간의 상호 연계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서성로와 북성로, 향촌동 일대인데, 이곳들은 대구의 근대 문화예술이 잉태되고 태동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1906년 대구읍성이 허물어지면서 성벽을 따라 서성로, 북성로 등의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1920년대 이후 북성로에 잡화점, 양화점, 다방들, 백화점 등의 새로운 상권이 생겨나는 것과 맞물려 모던세대, 이른바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중반 식민지 경성의 도시공간에 나타난 새로운 스타일의 소비 주체들이 지역에서도 등장하여 새로운 문화를 양산하였다. 아울러 북성로 일대는 문화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는 사교 공간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상화, 현진건, 이장희, 이효상, 윤복진, 박태준, 이인성, 이육사, 현제명, 신동집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생가와 거주지, 문화예술인의 후원, 교류의 장이었던 무영당백화점, 작품 '빈처'의 모티브가 된 현진건의 처가, 전쟁기 문화예술의 사교적 공간인 여러 다방들이 많이 존재했었다.1937년에 신축한 어느 5층 건물도 현재까지 남아있다. 개성 출신의 이근무가 서점을 시작한 후 사세가 커짐에 따라 확장하였다. 이근무는 이상화, 이인성, 박태준, 김용조, 윤복진 등 지역의 작가 및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여 이 공간을 지역 문화행사인 향토회전과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살롱, 작품발표회장으로 후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일기가 대중잡지 '삼천리'의 1933년 10월호에 소개되었는데, 이를 통해 근대 문화예술이 꽃피운 향촌동의 한 단면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혹여 지금이라도 알려지지 않은 이근무의 일기가 발견된다면 당시 예술인의 교류 모습을 더 세밀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지금은 개발로 당시의 기억을 간직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의 건물과 허물어진 건물의 터에 세워진 간단한 안내문으로만 영화로웠던 모던의 시기는 회자되고 있다. 근대의 사라진 기억들은 뒤로하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이라도 잘 보존하여 지역의 문화예술이 발현했던 공간의 기억을 아카이빙한다면 문화도시 대구의 미래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2020-06-22 14:24:08

[일상중국]  데자뷔 사스, 베이징코로나사태

[일상중국] 데자뷔 사스, 베이징코로나사태

베이징 시민들의 일상이 다시 멈췄다.감염 위험지역으로 지정된 펑타이구 등에 위치한 회사와 각급 기관은 문을 닫고 '재택근무체제'로 전환됐다. 시장이 폐쇄되고 학교도 문을 닫았다. 주거지역인 아파트는 출입구 하나만 제외하고 봉쇄됐다. 외부인의 출입은 완전 통제됐다.영화관과 박물관 등 다중이용시설의 영업 재개는 취소됐다. 장거리 시외버스 운행도 중지됐다. 항공편과 열차는 7일 이내에 발급받은 핵산검사음성증명서(코로나 음성)를 제시해야 탑승할 수 있다.베이징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베이징으로부터 유입되는 여행객의 출입을 거부하거나 1, 2주간의 격리조치가 즉각 시행되고 있다. 베이징이 봉쇄됐다. 베이징 갈 날이 다시 멀어졌다.우한발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켰다고 선언하면서 해외 감염 유입 방지에 총력을 기울여 온 중국 방역 당국의 그동안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10일 만에 베이징 확진자 수는 200명을 넘었다. 최초 감염자가 나온 펑타이구를 넘어 베이징시내 절반 이상 지역으로 확산됐고 인근 허베이성 등으로도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베이징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 시장에서 시작된 '베이징 코로나'는 18년 전인 2002년 겨울 발생한 사스(중증호흡기증후군) 사태의 데자뷔(dejavue)다.그해 12월 광둥성(廣東省)의 작은 소도시에서 발원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은 수개월 동안 소리없이 번져나갔다. 전 세계 확산의 도화선이 된 홍콩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확인되고 나서야 중국 정부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경보를 울리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그럼에도 '사스'로 명명된 감염병은 베이징에 입성, 조용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당국은 감염 정보를 은폐,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 '소문'을 통해 사스라는 괴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자 방역책임자인 위생부장(보건복지부장관)은 '(베이징) 감염자는 30여 명에 불과하고 잘 통제하고 있다'는 거짓 발표를 했다.하지만 TV로 이를 본 사스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인민해방군 301병원 의사 장옌융(蔣彦永) 박사가 국제사회에 편지를 보내 대규모 사스 발병 상황을 폭로하면서 사스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2002년 말 장쩌민(江澤民)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위생부장과 베이징시장을 전격 경질하고 사스 발병 정보를 인민에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이번 '베이징 코로나' 재발도 이와 비슷한 정보 은폐와 대응 잘못이라는 과정이 드러났다. '철통같은' 베이징 방역망을 뚫고 발병한 시점이 이미 한 달여 전이라는 분석도 제기된 상태다.코로나 사태로 3월에서 5월로 연기된 전인대와 정협 등 양회(兩會)가 21일부터 일주일간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양회 개최 기간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올 경우, 시진핑(習近平) 체제에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했다. 방역 당국이 감염 정보를 고의로 은폐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10일 만에 200명 이상으로 확산된 감염 속도는 베이징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상당 기간 노출돼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당국이 베이징 감염자가 터져 나온 초기, 곧바로 펑타이구 부서기와 신파디시장 사장을 전격 해임하는 등의 조치를 내린 것도 '사스' 때의 '꼬리 자르기' 수순과 흡사했다. 당시 경질된 멍쉐농(孟學農) 베이징시장이 후진타오 주석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에서 읍참마속을 통한 권력 기반 확보라는 절묘한 정치적 노림수였다는 분석도 있다. 베이징의 이번 코로나 해법에도 그러한 정치적 계산법이 적용되었을 것이다.필자가 기억하는 '사스의 기억'은 더욱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해 8월 여름휴가를 베이징으로 가서 3박 4일간 사스 공포가 가시지 않은 베이징을 경험했다. 중국 정부의 사스 종식 선언을 순진하게 믿었던 필자는 관광객이 사라진 톈안먼 광장 등 베이징 시내를 활보하면서 여유 있게 '황제 여행'을 했다.그해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도 외국 정상으로는 사스 사태 후 처음으로, 7월 7일부터 국빈 방문에 나서 중국을 감동시켰다. 5, 6월 미국과 일본 순방에 이어 7월 중국을 방문, '3강 외교'를 완성했고,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현장을 지켜봤다.그때로부터 17년이 지났다. '데자뷔' 현상을 보여준 베이징 코로나 대응은 자칫 G2 중국에 대한 신뢰를 깡그리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해 보인다.

2020-06-22 13:19:44

[권미강의 생각의 숲] 젊은 대구 잠 깨어 오라

[권미강의 생각의 숲] 젊은 대구 잠 깨어 오라

도시도 나이가 있다. 도시가 생성된 세월의 나이도 있겠지만 도시가 뿜어내는 향기, 보여주는 몸짓, 풍기는 이미지가 젊으면 그 도시는 오래됐어도 젊다.불의에 맞선다는 것은 정신이 젊다는 것이고 대구는 줄곧 그래 왔다. 역사 속 대구를 보면 중요할 때마다 젊은이들이 있었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때 학생들의 비밀결사운동이 있었고 이승만 독재정부 때는 학생들이 일으킨 최초의 민주운동인 2·28 학생운동이 있었다.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로 이어지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학생운동이 일어난 도시가 대구다. 우리나라 노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 전태일 열사도 대구 젊은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구는 어떤가?한 청년이 있었다. 대구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기발하고 다양한 문화 기획물을 많이 만들어냈다.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대학원에서 예술행정도 공부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공구상가로 가득한 북성로에서 젊은이들을 끌어모아 다양한 예술실험도 했다. 그것이 발단이 된 것인지 지금 북성로는 도시재생의 모델이 됐다.어느 해인가 그 청년은 동성로에 클럽을 열었다. 클럽이라면 젊은 사람들이 술 마시고 춤추는 공간. 연세가 조금 지긋하거나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 있는 클럽을 청년은 왜 열었을까? 청년은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힙합, 인디문화를 사랑했다. 그러한 청년문화를 대구에서 꽃피우고 싶어 했다.젊기에 몸속에서 꿈틀대는 자유, 갈망을 풀어내고 자신이 사랑하는 대구에서 청년문화를 꽃피우고 싶어 했다. 청년은 음성적인 클럽이 아니라 건전한 클럽문화 정착을 위해 동성로라이브클럽협의회도 결성하고 대구라이브클럽 춤 허용 조례 제정을 위해 포럼도 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청년문화를 공론화시키고 대외적인 지지도 받고 싶었을 것이다.그는 주장했다. 대구에 젊은이를 위한 문화가 활성화되어야 젊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다고. 소규모 라이브클럽이나 힙합클럽은 인디밴드 등의 공연문화이고 대구 젊은이들의 커뮤니티 활동의 중심이라고. 그 순기능을 무시한 채 버닝썬 같은 기업형 클럽에 대는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고. 하지만 보수의 벽은 높았고 청년은 SNS에 자신의 심정을 올렸다. "그저 내가 해오던 공연, 힙합, 슬램 이런 거 다 불법이었네요? 대구는 미래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청년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한때 대구 춤판은 유명했다. 국채보상공원이나 2·28공원에서 비보이, 힙합 등 스트리트댄스를 연습하며 세계의 유명한 비보이댄스대회에 나가 우승한 저력도 있다. 하지만 대구는 여전히 청년문화에는 마음의 빗장을 닫아버렸다.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를 벤치마킹하고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대구 안의 청년문화는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대구시는 대구형 청년보장제를 만들어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행복을 찾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정말 행복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다양한 청년문화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라이브클럽을 하나의 청년문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순하게만 보는 꼰대 시각은 거뒀으면 한다.그리고 대구의 보수성에 숨막혀 하면서도 사랑하는 대구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아름다운 청년 배두호의 명복을 빈다. 젊은 대구 잠 깨어 오라.

2020-06-22 13:19:19

[기고] ‘통합물관리’와 낙동강 물 문제 해결

[기고] ‘통합물관리’와 낙동강 물 문제 해결

낙동강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강이다. 황지 연못에서 강 하구까지 약 510㎞, 1천300리에 이른다. 약 1천300만 가까운 사람들이 이 강을 젖줄로 저마다의 삶과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중요하고도 소중할 수밖에 없는 강이나, 워낙 유역이 넓고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보니 이해관계가 퍽 복잡하다. 대표적인 것이 중상류 지역의 대규모 공단과 도시로 인한 수질오염 문제, 지역 간 입장 차에 따른 물 갈등, 여름철 녹조 문제 등이다.모두가 행복한 풍요롭고 평화로운 낙동강과 영남 지역을 위해서는 이러한 물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해답이 있다.통합물관리(IWRM·Integrated Water Resources Management)다. 수량과 수질과 수생태 및 유역 내 다양한 수자원을 하나의 물로 통합·관리함을 말한다. 시행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갖춰졌다. 지난해 물관리기본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 K-water를 포함한 여러 물 관리기관의 실제적인 노력도 이미 진행 중이다.국정 과제로 추진 중인 '낙동강 하구 기수생태계 복원'은 물관리 일원화 이후 매우 뜻깊은 성과다. 하굿둑 건설 32년 만에 최초로 바닷물을 강으로 유입시켰다. 이후 수회의 시범적 수문 개방을 통해 바닷물을 소통시키면서 기수생태계 복원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이는 단순한 해수 유통이 아니라 수량과 수질에 더해 수생태계까지 고려하는 새로운 물관리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수질 문제도 해결에 근접해 가고 있다. 지역사회 참여를 토대로 구축 중인 '유역통합 물환경 관리모델'이 좋은 예다. 보현산댐의 경우 2018년부터 물환경관리 종합대책을 수립·시행 중이다. 약 50%에 이르는 상류의 평균경사로 비가 내리면 금세 오염원이 유입되는 지리적‧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대책이다. 상류 공공하수처리시설 도입, 친환경 심층 시비 농법 확산, 저수지 연계 운영 등이 뼈대다. 가축분뇨에서 수질오염을 유발하는 질소(N) 및 인(P) 용출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비료 개발, 가축분뇨를 말려 고체연료로 재활용하는 축분 에너지화 등 오염저감 기술 개발 및 확산에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과제, 반드시 도전해야 할 과제도 있다. 하구 통합물관리(Estuary Integrated Watershed Management)다. 낙동강 하구는 서낙동강, 평강천, 맥도강, 운하천 등과 서로 복잡하게 연계돼 있다. 특히 서낙동강이 그렇다. 물 순환 정체로 인한 고질적인 수질 문제 등의 해결이 시급하지만, 운영 주체가 다양하고 연계 운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다. K-water에서 부산에코델타시티 사업과 연계, 평강천 및 맥도강 수질 개선을 위한 방안들을 검토 중이나 단편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수량과 수질과 수생태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스마트 하구 물관리' 도입이 절실하다.몇 가지 통합물관리를 통한 낙동강 물 문제 해결 방안을 살펴봤는데 이의 도입만으로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 하나'보다는 '우리 모두'를 볼 줄 아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 정부, 지자체, 물 관리기관,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협조와 끊임없는 노력은 당연하다. 강은 그저 흐르는 물이 아니다. 새로운 미래, 희망찬 내일을 여는 열쇠(Key)가 될 수 있다. 맑고 밝고 풍요로운 낙동강을 위해 더욱 마음과 힘을 모아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2020-06-21 16:15:37

[이른 아침에] 라스트 댄스

[이른 아침에] 라스트 댄스

대구시는 억울한 게 많다. 코로나19로 그 고생을 하고도 자꾸 욕을 먹는다. 심지어 지난 민선 6기 때는 하는 게 없다는 소리도 들었다. 대구 혁신, 특히 산업의 구조를 바꾼다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특히나 통합신공항은 칭찬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비난에 시달렸고 급기야 가당찮은 이유로 시장이 고발을 당하기까지 했다. 다 억울한 일들이었다. 굳이 말을 하자면 대구시가 이뤄낸 성과는 많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 현대로보틱스, 롯데케미칼을 대구로 유치했다. 국채보상운동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2·28민주운동은 국가지정기념일이 되었으며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도 선정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15년 동안이나 끌어온 신청사 문제를 해결했고 대구의 동서 균형발전을 위해 서대구역세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잘 알아주지 않는다. 대신 대구시의 잘못은 작은 것도 크게 다룬다. 긴급생계자금 부정수급 논란도 그렇다. 대구시가 마치 엄청난 죄라도 지은 것처럼 성토를 하지만 사실은 좀 억울하다. 3천900여 명의 부정수급자 중 대구시 공무원은 74명이었고 그중에서도 본인이 직접 신청한 경우는 5건이 전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푼의 돈이라도 시민에게 더 나눠주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물론, 대구시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그렇다면 대구 시민은 괜찮을까? 애석하게도 시민의 입장에선 그런 노력들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 IT 기업들은 대구시가 예전보다 더 불공정하고 편파적이 되었다고 한다. 긴급생계자금 지원도 그렇다. 좋은 뜻에서 그랬다지만 왜 그렇게 매사에 시민과 공무원을 구분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코로나19, 그 혹독했던 '대구살이'를 치르고도 단지 동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계자금을 못 받은 시민이 많았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남의 집에서 사는 것일 뿐, 건강보험, 가족관계 등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정부보다 대구시가 더 세심히 챙겨줄 거라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의 제기 신청도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한 방송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묻자 '어차피 기준이 바뀌면 그에 따라 또 못 받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러면 시민이 억울해진다. 너희들의 사정이야 어떻든 우린 총합만 맞으면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에서 주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갔더니 5부제가 해제되었는데도 해당 요일에 맞춰 다시 오라고 한다. 심지어 대기자가 한 명도 없는데 그런다. 재난지원금 선불카드 지급 방식도 개선한다고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현장에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민은 자꾸 억울하다. 어떨 땐 대구에 살아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미 프로농구 NBA 1997-98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의 일이었다. 시카고 불스 구단은 시즌이 끝나면 필 잭슨 감독을 해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선수들에게도 팀 해체 수준의 리빌딩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제리 크라우스 단장은 필 잭슨이 82승 무패, 즉 시즌 전승을 달성한다고 해도 그를 자를 것이라고까지 했다. NBA 우승컵을 무려 다섯 번이나 가져온 감독과 선수들이었다. 팀 전체가 술렁거렸고 마이클 조던을 비롯한 선수들과 팬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시즌이 시작되자 감독과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필 잭슨은 이번 시즌의 주제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핸드북을 나눠주었고, 그 표지엔 '라스트 댄스'(Last Dance)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해, 시카고 불스의 선수들은 구단이 아니라 팀을 위해, 자신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팬과 관중을 위해 뛰었다. 그들의 플레이는 현란하고 창의적이었으며 아름답고 격렬했다. 마치 춤을 추듯 그들의 농구에는 그들만의 리듬이 있었다. 그리고 필 잭슨 감독은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카고 불스는 여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대구시가 대규모 조직 개편과 인사 혁신을 단행할 것이라고 한다. 시민을 위하는 마음과 용기가 그 기준이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는지, 그런데 그게 왜 잘 안 되었는지 권영진 시장은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대구 혁신이 제대로 되려면 그래야 한다. 민선 7기, 남은 날들이 '라스트 댄스'처럼 되기를 바란다.

2020-06-21 16:09:05

[매일춘추] 시간을 쌓아가는 노력

[매일춘추] 시간을 쌓아가는 노력

최근 딤프와 관련된 여러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딤프가 14살의 청소년이 되기까지 지켜봐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 딤프와 함께 꿈을 찾고 커리어를 쌓아 가신 분들, 딤프와 함께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분들까지 마치 딤프의 전 생애를 관찰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현재의 딤프가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지원과 노력을 생각하면 결코 짧다 말할 수 없겠지만 중학교에 갓 입학한 듯 아직은 어리숙하고 순수한 모습을 가진 딤프의 존재가치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가, 어떤 어른의 성숙함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멋지고 원숙한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기 위해선 어떤 현재를 쌓아가야 할 것인가?감옥에 갇힌 채 힘겨운 노역을 하며 매일을 버티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죄목은 굶주림에 빵 한 조각을 훔친 절도죄.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년의 시간을 버티고 버티다 가석방의 기회를 받아 힘겹게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지만 낙인이 찍힌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주교를 만나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고귀한 사랑을 느끼게 된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새로운 인생을 꿈꾸기 시작한 그는 새로운 삶을 위해서 새로운 시간들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본인이 받았던 사랑을 세상에 다시 돌려주며 시장으로까지 선출되는 승승장구도 맛본다. 하지만 법과 제도만을 맹신하고, 그 어떤 것도 사람을 바꿀 수 없다고 믿었던 경감은 끝없이 그를 추적해왔고 과거를 숨기고 새로운 인생을 살던 그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쫓기는 속에서도 숭고한 인간애와 박애정신으로 고귀한 생명을 구하는 그를 보며 경감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위해 시간을 쌓을 줄 알았던 사람, 장발장과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이야기이다.나의 시작을 생각해본다. 아직 학교를 다니기도 전부터 어린이 뮤지컬들을 많이도 보러 다녔던 것 같다. 그것은 형제자매가 없는 내가 1시간이라도 흥미롭게 보내길 바라셨던 어머니의 배려와 노력의 결과였다는 것을 이제는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공평주차장 자리에 있던 어린이 뮤지컬 전용극장, 모 백화점 안의 '비둘기홀' 등 지금은 다 사라져버린 생경한 곳들이지만 그때의 공기와 장면들이 내겐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서 읽던 동화책들을 무대 위에서 입체적으로 만났을 때 쏟아졌던 전율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공간에서 혼자 보내야하는 시간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은 멈추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생이 되어서도 뮤지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친구들의 등을 떠밀며 공연장 문턱을 넘나들면서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났다. 그 시간들은 다시 쌓이고 있었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기다린다. 성숙된 시선으로 예리한 판단과 경계 없는 사고의 전환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로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함께 사랑을 기반으로 한 희생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딤프가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2020-06-21 15: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허백련(1891-1977), ‘귀주재월’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허백련(1891-1977), ‘귀주재월’

옛 그림 중 달이 그려진 그림을 만나면 눈길이 더욱 간다. 밤하늘의 달을 뮤즈로 삼은 예술가가 이백에서부터 백남준까지 무수히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이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외로움을 명월과 나와 내 그림자가 있으니 3사람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추사 김정희의 최고 명작 중 안짝을 '차호명월성삼우(且呼明月成三友)'로 쓴 대련이 있는 것은 그도 명월을 불러 친구 삼은 외로운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차고 이지러진 달이 12대의 모니터에 떠 있는 비디오 작품이다. 달빛아래 앉아있던 인류가 텔레비전 앞에 앉기 시작하던 1965년 33살 때 벌써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 저 달이 알아주기를 바랐던 예술가의 마음이 그에게도 있었기 때문 아닐까.'귀주재월(歸舟載月)'의 달은 벼랑의 소나무 가지 끝에 걸린 달이라 더욱 사랑스러운 달이다. 동그랗게 달을 그려 넣은 것은 먼저 머릿속에 떠올려 놓은 화제시에 밝은 달이 나오기 때문이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워 물고기 물지 않으니배에 가득 환한 달빛만 싣고 돌아오네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 의도인(毅道人) 중국 당나라 때 선승 화정선자(華亭船子)의 유명한 선시(禪詩) 중 두 구이다. 어부는 자연세계를 인간세상의 피안으로 삼는 산수화에서 은자의 상징인데 이 그림은 '은(隱)'을 숭상하는 유가와 도가의 가치관에 선가의 경지까지 담았다. 빈 배에 달빛을 가득 실었다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어부를 비추는 밝은 달은 곧 선리(禪理)를 나타내는 것 같다.의도인(毅道人)은 허백련이 의재(毅齋)를 바꾸어 회갑 때부터 사용한 호이다. 무등산 춘설헌(春雪軒)에 살면서 노자 『도덕경』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귀주재월'은 여백이 넉넉하고, 떨림이 있는 갈필과 불규칙한 태점을 은은한 담채와 함께 사용하는 허백련의 의도인 시기 전형적인 화풍이다.한국회화사에는 부채그림 걸작이 많다. 우아한 소지품인 합죽선은 소지자의 취향과 안목이 전시되는 휴대용 미술품이어서 그림의 내용은 신중히 고려되었고 작품의 품격 또한 높았다. 부채그림은 부채와 한 몸으로 사용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부채 살에서 선지(扇紙)를 떼어내 배접하고 표구해 독립된 작품으로 소장되며 감상되었다. '귀주재월'처럼 부채까지 함께 보존된 경우는 생활 속의 공예품이자 미술품이었던 합죽선의 운치와 풍류가 더욱 실감난다. 단오선(端午扇)을 추억하며. 미술사 연구자

2020-06-21 06:30:00

[광장] 분홍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광장] 분홍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부터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국민들이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실을 부정할수록 듣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BBC 앵커 출신인 빌 맥파런은 부정적인 언어를 분홍 코끼리로 비유했다. 덩치 큰 코끼리가 만약 분홍색이기까지 하다면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 있겠는가. 부정적인 표현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격성과 차별을 내포한 히틀러의 언어가 전쟁을 초래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언어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갈등의 악순환을 유발한다.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한다. 새로운 것을 표현할 때 기존 언어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나의 한계'라고 했고, 사피어와 워프(Sapir&Whorf)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방식이 달라진다'고 했다. 독일인들은 물 위에 놓인 다리를 보고 아름답다, 우아하다는 형용사를 떠올리지만, 스페인어 사용자들은 강하다, 길다와 같은 남성적인 단어로 수식한다. 다리가 독일어에서는 여성명사지만 스페인어에서는 남성명사이기 때문이다. 언어마다 주목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그 언어의 사용자들도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이 달라진다. 우리는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고 있지만 멕시코 원주민인 마야인들은 다섯 가지 색으로 나타낸다. 색깔을 구분하는 단어의 유무에 따라서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인지하는 것이다.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사람을 만든다. 언어는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동안 man으로 끝나는 남성형 단어들이 여성까지 포괄해 왔지만, 타임지는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이 남성 중심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Person of the Year로 바꿔 부르고 있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적 사고의 차이가 언어로 드러나기도 한다. 영어와 일본어를 모두 구사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에게 자신과 가족 중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영어로 질문했을 때는 '자신'을, 일본어로 질문했을 때는 '가족'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말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맨 끝에 오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끝까지 들어야 한다. 이러한 돌려 말하기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큰 의미를 두는 동양권 문화의 반영이기도 하다.서유럽의 정치적·종교적 통일을 이뤄낸 카롤루스 대제는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만큼 언어는 내적인 사고와 불가분의 관계다. 일본 제국주의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어를 금지했고, 조지 오웰의 1984에서 그린 감시 사회에서도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하기 위해 어휘의 개수를 축소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어의 제한은 디스토피아의 클리셰다. 앞서 빌 맥파런이 제안했듯이 언어에서 몰아내야 할 것이 있다면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언어들이다. 물론 긍정적인 사고와 언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넓게 보는 안목을 가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력을 하다 보면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처럼.

2020-06-19 14:20:19

[기고] 통합신공항 이전지 시민이 결정하자

[기고] 통합신공항 이전지 시민이 결정하자

대구의 진정한 백년지대계라 할 수 있는 통합공항 이전 이슈가 이전 부지 유치 신청 단계에서 시원한 해법을 보여주지 못하며 대구 경북 시도민들을 더욱 '열 받게' 만들고 있다.이전 후보지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후보지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전제하의 투표가 어느샌가 찬성률이 높은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것으로 오도되면서, 의성 비안 주민은 90%가 찬성했고 군위 소보 지역은 25.8%만이 찬성하여, 유치 신청을 할 수 없는 소보-비안 공동 후보지로의 이전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이전 자체가 무산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달 초 국방부 차관이 지역을 방문하여 부지선정위원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할 사안인 후보지 여부에 대하여 우보 단독 후보지는 부적격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공동 후보지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선정위원회도 열지 않고 두 곳 다 부적합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유치 신청이 원만하게 지역 합의하에 진행된다면 가장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합의가 되지 않는다 하여 이전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전 논의 초기부터 기부 대 양여라는 방식에 따라 초기 발생 비용이 추후 대구 시민들에게 빚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도 계속되는 가운데, 후보지 결정에만 급급하여 졸속으로 진행될 경우 우려가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공항 이용객의 70~80%를 차지하는 대구 시민의 편의는 고려치 않고 다른 지역의 뜻만으로 이전지가 확정된다면 이 또한 잘못된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20년 가까이 계속되어 온 이전 사업의 경과 속에서 3년 정도 소요된 투표를 포함한 예비 후보지 관련 논의 결과인, 76.44%의 군위 군민들이 찬성하는 우보를 두고 25.8%만 찬성하는 소보를 선택할 수 없는 지난 투표 결과만을 고집해서 서로 상처만 남기는 불편한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조금 더 시간이 들더라도 핵심 고려 사항들을 촘촘히 검증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이전 후보지부터 새로 신청을 받자. 현재 군의 검증을 거친 지역을 제외하고 새로운 후보지가 있다면 그곳만 추가 검증하고, 그렇게 통과된 곳 중 50% 이상 이전지 주민이 찬성하는 곳을 대상으로 하여 대구 시민들이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민간공항이 있어 생계를 이어가던 공항 주변 주민들에게도, 편하게 국제공항을 이용하던 대구 시민들에게도 무조건 대구의 장기 발전을 위하여 참으라고만 하는 것보다 구체적 비전과 공항 이용 편익이 감소하지 않는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전된 공항과 지역 산업의 연계 방안을 철저히 검토하여, 국제도시로서의 대구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인구 순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대구경북이 함께 공항 연계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항공 물류 거점을 마련하면서 이전터 개발을 진행해 나간다면 기계금속으로 대표되던 지역의 산업 축을 변화시켜 지속 가능한 발전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대구-광주-수원으로 이어지는 군공항 이전 사업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게 되어야만 대구와 함께 포항·경주·울산·구미 등 경상 지역을 아울러 진정한 지역 통합의 상징으로, 분권의 성공 사례로 남아 하나 된 대구경북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6-18 15:31:00

[매일춘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매일춘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어느덧 한해의 반이 흘러간다. 힘차게 다짐하고 새해를 시작했지만, 아직 눈앞에 놓인 무수한 일들을 생각하니 문득 걱정이 일기도 한다. 나는 이때마다 어릴 적 꿨던 꿈이나 현재 내가 닮고 싶은 롤모델을 떠올리곤 한다. 그렇게 환상에 젖다 보면 다시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가 샘솟기 때문이다. 나의 꿈은 항상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곡가 박 파안 영희이다. 작곡가 박영희는 예명 '파안'과 본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결합한 영희 박-파안(Younghi Pagh-Pa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디 활짝 웃는다는 의미의 파안(破顔)이었지만 철학자 도올 김용옥으로부터 '책상 옆의 비파'라는, 음은 같으나 의미는 다른 한자 조합을 선물로 지어 받은 뒤로는 그 한자를 사용한다고 했다.그녀의 앞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동양인 여성 최초 독일어권 국가 음대 작곡과 교수이자, 1975년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 최초로 오케스트라 곡을 위촉받은 여성 작곡가 등의 면면이 그것이다. 충북 청주 출신인 그가 1974년, 29세 때 "모든 게 변화하는 힘든 시기에 죽기 아니면 살기의 각오로" 감행한 독일 유학을 시작으로 그는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유럽 최고의 작곡가로 정평을 얻고 있는 작곡가 박영희. 그가 이루어낸 업적과 창작한 곡들은 사실 '여성 최초'라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 대단하다.나는 박 파안 영희 선생님을 몇 해 전 실제로 만날 기회를 얻었다. 내 스승의 스승인 그를 사석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선생님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진중함과 소녀 같은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니고 계셨다. 지금은 내가 독일을 가거나 선생님이 한국을 오실 때면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가 사용하는 메신저 아이디 '작곡하는 사람'에 대해 물으셨다."왜 작곡하는 사람이야?" 나는 작곡을 하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이유였기에 그냥 멀뚱멀뚱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작곡가라고 바꿔, 작곡가잖아." 짧은 말이었지만, 나의 꿈이자 롤모델인 그가 나를 작곡가로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가슴이 요동쳤다. 아득한 선생과 까마득한 제자 사이일거라 생각했던 우리 사이는 경계가 없었다. 그 덕에 선생님의 일상적인 에피소드와 인생에 대한 생각,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가 살아온 수십 년의 나날들이 그의 음악으로 탄생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더 깊이 안다. 아직 30대인 나는 열정 가득한 선생님을 보며 늘 마음을 다잡곤 한다.지난 7월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선생님과 일상을 보내며 함께한 시간이 2020년 지쳐가는 지금, 날 버티게 해줄 에너지임을 다시 확인했다. 꿈을 잊고 사는 여러분에게 잠시라도 꿈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 가득 담아 글을 쓴다.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2020-06-18 15:30:00

[춘추칼럼] 포스트 코로나와 지역화

[춘추칼럼] 포스트 코로나와 지역화

얼마 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동네에서 지역문화생태계 차원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문화예술인을 후원하는 일명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시 성북구에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직접 신청하거나 추천받은 이들에게 10만원을 입금하고, 필요 금액은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별도로 개설된 계좌로 자유로운 입금을 통해 마련했다. 후원자와 후원금을 받는 이를 모두 익명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예술가를 비롯해 약 60여 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지원을 받았다.프로젝트명에 사용한 '크리킨디'는 남미 케추아 부족의 이야기로 숲에 불이 나서 다른 동물들이 도망치고 있을 때 작은 부리에 한 모금의 물을 담아 와서 산불을 끄려고 한 '벌새' 이름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야"라고 답한 벌새 크리킨디의 생각을 담은 것이다.'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의 출발은 '오아시스 딜러버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오아시스 딜리버리'는 김선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통장 잔고에 있는 여윳돈을 주변 독립영화인들에게 흘려보내면서 시작되었고, 여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동참하면서 확산되었다. 또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곁에서 지켜본 지역 청년들이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는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폭넓은 공감을 일으켰고, '전통예술인긴급연대'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통한 프로젝트로 4천만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일종의 연대감과 공통의 감각을 경험하게 해준다. 공통 감각의 연결은 결국 '움직이는 소수'의 역할이다. 실제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11만원'이라는 낯선 액수가 입금되었다. 10만원을 신청해서 받은 예술가가 10%를 얹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후원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일종의 지역공동체 차원의 새로운 실험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동체 은행이나 협동조합 등 그 이름이 무엇이든 경제적 상호 부조의 사례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는 지역 단위에서 공동으로 제안했다는 점에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를 통한 커뮤니티의 성격을 더한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후원 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연계된 선택과 영향력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개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 없는 다수의 페친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삶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근대 혹은 탈근대의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코로나19 사태는 근본적인 성찰과 대안을 요구한다. 섣불리 결론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겠지만, 치열한 고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지금 시대의 궁극적 대안으로 '지역화'를 강조한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는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 낼 결정적 다수를 만드는 것으로서 '큰 그림 행동주의'(big picture activism)를 제시한다. 이론만으로는 시민 의식을 높일 수 없으며, 새로운 지역화의 감동적인 사례를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역화는 소규모 활동을 대규모로 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내가 하는 일과 활동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가까운 곳에서(local), 혹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유사한 활동을(global) 바라보고, 공유하고, 전달하고, 확산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치열한 고민과 싸움을 하고 있는 헬레나는 강조한다."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일은 이미 열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지혜와 용기를 자신과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2020-06-18 15:11:25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코로나19가 문화예술계에서도 끝없는 화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러온 온라인 공연‧전시로 인해, '관객 수'가 어느새 '접속자 수'라는 단어로 바뀌고 있다. 문화예술계 곳곳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런 형태의 소통 방법이 과연 코로나19가 앞당긴 미래의 모습인가. 문화예술의 '쓸모'에 대한 고민이 끝없는 이때,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 부분에 대해 잘 써 주실 텐데, 진단을 잘 해주실 분인데….' 그는 이처럼 항상 '급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이필동(1944~2008) 선생님이다.2008년 5월 초, 그와의 약속이 있었다. 약속일을 며칠 앞두고 그는 다리와 허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정밀 검진 권유를 받았던 것 같다. "병원에서 검진을 좀 상세하게 받아야 하니 다음에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온 것이 그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는 폐암으로 두 달 남짓 짧은 투병생활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그 이후 서울을 비롯해 다른 지역 연극인들을 만나면 '아성이 없으니 대구 갈 일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예명 '아성(雅聲)'을 전국 연극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대구에서도 '아성'의 이름을 들을 일이 거의 없어졌다.대구 예술사를 정리하려면 더 늦기 전에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하기에, 그가 생전에 부인과 함께 살았던 자택을 방문했다. 십 수 년 만이었다. '그'만 그곳에 없었을 뿐,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수집한 책과 잡지들 그리고 하나하나 메모를 곁들여 보관한 공연 사진과 팸플릿까지…. 아직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물건들을 보며 다시 그를 떠올렸다.이필동 선생님은 경북고 재학시절이던 1961년, 차범석 작 '밀주'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라벌 예술대학(현 중앙대)으로 진학해 연기공부에 매달렸다. 이후 대구로 내려와 40여 년간 배우로, 연출자로 향토 연극계를 일구고 지켰다. 그의 이력을 돌이켜 보면, 대구 연극을 위해 살아온 삶 그 자체란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그는 1967년 극단 인간무대를 창단했고 극단 공간을 거쳐 극단 원각사를 창단해 활발한 연극 활동을 펼쳤다. 1982년에는 누리예술극장을 개관하여 소극장 운동의 터를 다져놓기도 했다. 또 자신의 연극관을 바탕으로 한 연극 입문서 "무대예술입문"을 1983년 발간했고, 1995년에는 "대구연극사"를 발간하여 대구 연극의 맥을 보여주었다. 연극뿐만 아니라 대구예술 전반에 걸친 사료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때, 그의 "대구연극사"로 인해 대구 연극인들의 활동은 한국 연극이라는 큰 줄기 아래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5년에는 수정판으로 "새로 쓴 대구연극사"를 펴냈다.두 번이나 집필한 "대구연극사"를 봐도 알 수 있듯 선생님은 현장 연극 작업 중에서도 항상 탐구하는 자세를 지켰다. 그는 실질적으로 이론과 실기를 겸하는 한국의 몇 안 되는 현장연출가였다. 그 밑바탕에는 항상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이 있었다. 대구에 연극박물관이 필요하다면서 생활비를 쪼개 수천 권의 연극 관련 책자와 자료들을 수집했다.그는 책과 잡지, 신문 등 활자매체로 된 자료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 수십 년에 걸쳐 신문․잡지 창간호를 수집했다. 인쇄매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 그는 "텔레비전과 영화가 등장했을 때, 연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재는 함께 공존하며 살아남아 있듯,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공급 받지만 진짜 지식은 책을 통해 남게 된다"며 인쇄매체의 생명력을 확신하곤 했다.그는 일평생 연극뿐만 아니라 예술계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했고 여러 형태의 문화운동에도 힘썼다. 이필동 선생님은 '대구문화' 기고를 통해 '예술은 이미 죽고 예술가만 목숨을 연명하게 되는 상태'를 지적하며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 글의 함의를 모르는 바 아니나, 선생님이 떠난 지금은 그의 인생이 너무나 짧았던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부재의 공간'에서 선생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여러 가지 자료를 기증받기로 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선생님의 발자취가 흩어지지 않고 한데 모이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취가 모이는 곳이 바로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가 자리할 그곳이다.

2020-06-17 17:00:00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망우당 곽재우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망우당 곽재우

망우당 곽재우(郭再祐·1552~1617)는 정인홍·김면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영남지방 의병삼장(義兵三將)으로 손꼽히던 의병장이었다. 곽재우는 경상도 의령현 세간리에서 부친 곽월(郭越)과 어머니 진주 강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4세 때 독학으로 '춘추'를 공부하였으며 15세 때 제자백가의 서적들을, 16세에 잡학과 병서까지 섭렵하면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부친의 3년상을 치른 이후에는 돈지강사를 지어 학문에 몰두하였다.1592년 5월 23일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곽재우는 6월 1일 스스로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으로 부르면서 의병들을 모집하여 정암진 전투에서 왜군 2만여 명을 몰살하였다. 정암진 전투는 의령을 거쳐 호남으로 진격하려던 왜군들의 침략 야욕을 분쇄하였으며 왜군의 내륙 보급로를 차단하였던, 육지에서 조선군이 승리했던 최초의 전투였다. 곧이어 곽재우의 의병부대는 현풍·창녕 영산에 주둔했던 왜군을 축출하여 수복하였고 진주목사 김시민의 제1차 진주성 전투에 그의 심복인 심대승을 선봉장에 임명하고 200여 명의 군사를 지원하여 승리를 거두는데 공헌하였다.곽재우는 이러한 전공에 힘입어 1592년 6월 이후 유곡찰방(幽谷察訪)·형조정랑(刑曹正郎)·절충장군(折衝將軍)·조방장(助防將)을 거쳐 1593년 4월 성주목사가 되어 함안·의령 등지에 주둔한 왜군들의 군사 활동을 정탐하여 조정에 첩보하고 도체찰사 류성룡의 명을 받아 정진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그러던 중 1593년 6월 의병장 김천일 등이 이끄는 조선군이 왜군과 제2차 진주성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곽재우는 진주성 안에 들어가서 싸우라는 명령에 대해, 보복전에 혈안이 되었던 왜군의 전력이 우세하였기 때문에 승산이 없는 작전임을 지적하면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1593년 후반 곽재우가 산성을 거점으로 방어전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자 조정은 이를 수용하여 그에게 삼가·의령·단성·고령 등 주요 산성들을 수축·관리하는 일을 총괄하도록 지시하였다. 곽재우는 경상우도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삼가의 악견산성, 가야산의 용기산성, 지리산의 구성산성 등을 정비하였다.한편 1594년 9월 곽재우는 권율·이순신·원균·김덕령 등과 함께 거제에 주둔한 왜군을 격퇴하기 위한 수륙 연합 작전에 참전하였는데 이순신이 배에 탔던 육군의 상륙을 명령하자, 곽재우는 뭍에 내려 싸운다면 조선군이 반드시 전멸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순신의 공격 명령을 끝내 거부한 채 권율에게 보고하고 떠나버렸다.1595년 12월 말 곽재우는 진주목사에 임명되었지만 머지않아 낙향하였다. 하지만 이덕형·김우옹·윤근수·이원익 등이 차례로 곽재우를 등용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선조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다가 결국 1596년 11월 경상우도 방어사에 임명되었다. 곽재우가 임진왜란 초에 경상감사 김수가 왜군에 패배하여 도피한 것을 비난하며 그를 처단할 것을 요구한 것을 두고 선조는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킨 것에 의심을 품었다.또한 제2차 진주성 전투와 거제도 전투 과정에서 드러났던 지휘부와의 갈등과 이몽학의 난에 의해 처형당한 김덕령의 허무한 죽음을 통해 한동안 곽재우는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단념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곽재우는 1597년 경상좌도 방어사로서 현풍의 석문산성을 수축하던 중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왜란이 종식되자 곽재우는 경상좌도 병사 관직을 임의로 떠난 것과 왜적과의 화친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되었다. 1602년 귀양살이를 끝낸 곽재우는 현풍 비슬산에 들어가 창암강사를 짓고 '망우정'(忘憂亭)이라는 현판을 달고 곡기를 끊고 솔잎을 먹으며 지냈다. 광해군 재위 기간에 그는 임해군의 처단, 대규모 토목 공사 중단, 대동법 시행, 영창대군 처형 반대 등을 강력히 주장하였다.현재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에 곽재우의 묘가 있다. 그의 전기를 회상하며 그의 강직한 성품과 왜란 중에 쌓았던 무공을 기억한다.

2020-06-17 17:00:00

[기고]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적반하장

[기고]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적반하장

탈원전을 주장하는 반핵단체는 원자력산업을 '화장실이 없는 아파트'라고 말한다. 원자력발전을 하면서도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할 수 있는 부지도 시설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정부와 원자력산업계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과 영구처분을 위한 부지 마련에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1980년대 안면도, 1990년대 굴업도, 2000년대 부안 등 10여 차례의 시도를 했다.하지만 그때마다 위험한 시설인 양 전단을 뿌리고 주민을 선동해서 결국 지난 40년 동안 부지 조사조차도 한 번 해 볼 수 없게 만들어 놨다. 부지를 판단하기 위해 땅을 파 보고 조사를 해야 하는 이 과정은 주민 동의가 필수다.자신들이 반대해서 마련하지 못한 사용후핵연료 처분 부지인데 그게 없다고 원자력계를 비난하니 실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전단지에는 어김없이 무모한 가정이 들어간다. '고준위폐기물 1그램만으로도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앞에 서 있으면 엄청난 방사선 피폭을 받는다' 이런 것들이다. 결과는 맞다.그러나 가정이 틀렸다. 이런 논리라면 제철소의 용광로 앞에 방호복 없이 서 있어도 위험하고 울산의 화학공장에도 1그램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화학물질은 무수히 많다. 그런 가정을 세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지구가 쪼개질 만한 지진이 와도 안전하도록 원전을 만들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유소, 도시가스 배관 등이 파괴돼 원전 걱정을 할 틈이 없을 텐데 말이다.시위 현장에 가 보면 허수아비에 미운 사람의 이름을 붙여 놓고 때리기도 하고 불을 붙이기도 한다. 만약 그 허수아비에 자기 이름이 붙여져 있고 그것을 패고 불사르고 한다고 생각하면 당사자에게는 큰 충격일 것이다.이런 짓은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한 문제에서도 나오고 있다. 사실이 아닌데 그런 적이 있다고 부득불 우겨서 하나의 허수아비를 만든다. 그리고 이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이다.경주에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할 당시에 2016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월성원전에서 빼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약속을 했다고 반핵단체들은 주장하는데, 사실일까?내가 아는 상식과 경험으로는 그런 약속을 했을 리가 없다.첫째,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위한 부지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런 확정적인 말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아무리 공무원이 순환보직으로 다른 자리로 간다고 할지라도 그런 말을 뱉을 수 없을 것이다.둘째, 신문기자의 말은 기사다. 대학교수의 말은 논문이다. 그리고 공무원의 말은 공문인 법이다. 설령 어떤 얼빠진 공무원이 그렇게 말했다 치더라도 공문에 없는 공무원의 발언은 개인의 발언일지언정 결재선을 통해서 정제된 정부의 공식 발언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말이 있었다면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 그 말을 뱉은 공무원 개인의 책임인 것이다.셋째, 2016년은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기로 약속한 시기다. 그것이 공론화로 2020년으로 미루어지고 또 이번 정부에서 재공론화를 한다면서 더 미루어진 것이다. 사실상 그게 중간저장시설 건설 지연의 이유고, 나아가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를 추가 건설해야 하는 이유가 됐다.세상은 점점 유불리(有不利)에 눈이 어두워져서 옳고 그름이 없어져 가는 느낌이다. 우리의 합리적 판단을 감정풀이로 유도하는 세력들이 전횡한다. 적반하장, 무모한 가정 그리고 허수아비 때리기에 선량한 우리는 속을 수밖에 없다.

2020-06-17 15:43:57

[홍성걸의 새론새평]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홍성걸의 새론새평]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세상 참 희한하게 돌아간다. 정권 실세였던 유재수를 감찰하던 청와대 행정관이 감찰 중단 지시를 받고 느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희한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그토록 주장해 제도화시켰던 야당 몫의 법사위원장 자리를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강탈했다. 이번엔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위해서란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에는 국정 운영을 방해하기 위해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는 말인가. 민주당 의원들과 현 정부 인사들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하늘을 찌른다. 당선되기도 전에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겠다고 아이들 패싸움하는 식의 경고를 일삼더니 이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는 것이 검찰 개혁의 목표가 되었다. 조국 일가의 불법행위는 보이지 않고, 이를 수사하여 기소한 검찰만 불법이고 개혁의 대상이다. 지방선거 때 울산시에 대한 하명수사를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을 법무장관의 인사권을 이용해 사실상 와해시킨 것도, 그 당사자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도 희한하기는 마찬가지다.수사 중 사건에 대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넘어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까지 난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무죄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나타났다. 무죄의 새로운 증거가 있다면 당사자인 본인이 재심을 청구하면 될 것인데, 증거가 없으니 이미 판결 과정에서 검토된 증언자의 비망록을 이유로 사실상 재수사를 시작했다. 한명숙이 아니어도 그랬을까.정대협과 정의연 활동으로 비례대표 자리를 꿰찬 윤미향 의원 사건에 대한 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의 편향적 시각도 희한하기는 마찬가지다. 윤 의원을 향한 의혹을 풀기에 턱없이 부족한 기자회견을 하게 하고는 해명되었다고 넘어갔다. 그들에게는 윤미향이 중요할 뿐, 위안부 할머니들은 안중에도 없다.생각해 보니 무원칙과 비상식은 정권 초기부터 있었다. 천안함 폭침 희생자 추모 행사에는 참석조차 하지 않던 대통령이 낚싯배가 충돌해 침몰하여 여행객이 사망하자 유가족을 찾아 무릎까지 꿇고 국가 책임이라고 빌었다.21대 국회가 개원되자 민주당은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이 법은 '허위사실유포금지' 조항을 신설하여 정부 발표에 반하는 것을 허위 사실로 간주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연구, 학술, 보도, 예술 등의 목적으로도 정부 발표와 다른 내용을 얘기하면 처벌받게 만든 것이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비판하면 개인의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까지도 억압하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사상과 가치만 옳고 다른 사람의 사상과 가치는 처벌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이 아니면 무엇인가.정권 초부터 적폐 청산을 한다면서 2년 넘게 과거와 싸우더니 이제는 자기편의 유죄를 무죄화하기 위해 과거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할 시간도, 돈도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하다고 1년에 100조원에 육박하는 빚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면서도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달콤한 말로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려 한다. 이를 갚아야 할 다음 세대는 인구구조상 아무리 노력해도 감당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북한은 김여정에 이어 김영철, 리선권을 지나 옥류관 주방장까지 나서서 우리 대통령에게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해대면서 모욕을 했다. 그런데도 이 정부 인사들은 북한은 잘못이 없고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단다. 또 미국이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제재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북한 핵무장을 용인하자는 것인가. 급기야 국민 세금 180억원이 투입된 남북연락사무소를 북한이 폭파시키자 통일부 장관은 예정된 일이었다, 국회 국방외교위원장은 포를 쏘아 폭파시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까지 했다. 이 정도면 토착 종북세력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이제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미래가 아닌 과거로, 타협과 포용이 아닌 갈등과 대결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내로남불을 넘어 후안무치이면서 부끄러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의 원칙과 상식이 무너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기가 막힐 뿐이다. 세상 참 희한하게 돌아간다.

2020-06-17 15:03:46

[매일춘추] 농담의 선(線)

[매일춘추] 농담의 선(線)

'구운몽'은 조선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의 장편소설이다. 병석에 계신 어머니의 무료를 달래드리기 위해서 썼다는 설과 중국 사신으로 갔을 때 어머니가 중국소설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잊어버리고 와서 본인이 직접 창작을 했다는 설이 있다.근본적으로 그의 효심(孝心)에 의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동기는 맥을 같이 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주인공 성진은 팔선녀를 농담으로 희롱하다가 인간세상으로 유배된다.성진은 어린 나이에 등과하고 승승장구하며, 함께 유배된 팔선녀들과 차례로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 후 부귀영화는 한낱 하룻밤의 꿈이었음을 깨닫고 팔선녀와 함께 극락세계로 돌아간다는 줄거리다.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욕망이라는 사심을 담은 주인공의 '농담'이다. 성진은 한 마디로 손해 볼 것 없는 내세와 현세를 모두 경험한다. 유배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누릴 것 다 누리고 허무함을 깨달으며 열반에 이른다. 이 작품은 팔선녀의 미모나 재능을 남성 중심으로 묘사한 부분이라든지, 양소유의 아내로 연을 맺는 것이 최고의 영예인양 비춰지는 점은 다소 아쉽다. 주제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일지라도 당시 사내들의 '꿈'을 거침없이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오랜만에 선후배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중에서 선배 A와 후배 B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농담을 즐겼다. 가령 A가 "여태 살아있었네?"라고 치면 B가 "선배님도 향냄새가 그립죠?"라고 받았다. 그 둘이 농담을 주고받을 때마다 주변인들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선(線)을 넘을지 모를 일이고, 이미 그 이유로 수년 간 서로 보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만큼 그들의 농담은 늘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농담을 주고받다가 B가 정색을 하고 A에게 진담을 던졌다. 마침내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기약 없는 결별을 선언하고 그 자리를 파하고 말았다.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야 농담인 거고, 농담을 진담으로 받으면 한쪽은 무안해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진담을 농담으로 받으면 대화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 그래서 선(線)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다. 표정과 몸짓까지도 대화의 범주에 포함이 된다. 대화내용과 함께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따라서 상대의 반응이 달라진다.농담은 상대를 놀리거나 실없이 건네는 말이다. 흔히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빈다'는 말이 있다. 영어에도 이와 비슷한 단어가 있다. 유머(humor)와 조크(joke)가 그것이다. 전자가 모두를 즐겁게 한다면, 후자는 내용에 따라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위트(wit)를 기반으로 한다. 농담은 희롱한다는 의미도 내재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조크에 가까울 수 있겠다. 아무리 상대를 생각해서 조언을 한다고 해도, 비판의 형식을 띠면 수용할 마음도 사라진다. 대화도 기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이다. 상대로부터 무시와 경멸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더 이상 대화할 마음도 사라진다. 특히 요즘은 역병(疫病)으로 대화할 기회도 많이 줄었다. 서로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주는 대화가 절실하다. 누구도 선(線)을 넘지 않는 즐거운 대화 말이다.

2020-06-17 14:33:58

[종교칼럼]현재를 直觀하며 살자

[종교칼럼]현재를 直觀하며 살자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든, 많은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든 모든 선택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솔로베이치크(Soloveitchik)의 이야기처럼 우리 본성이 두 가지를 놓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적인 성공과 내적인 가치를 함께 추구한다. 이뿐인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꿈에 부풀어 내일을 살기도 하고, 실의에 젖은 마음을 과거에 묻고 살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 완성할 가치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청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미래에 있는가, 아니면 노년의 세련미로 살아가면서 적당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있는가."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는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 역시 이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 이양하는 '신록예찬'에서 청년의 삶이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마음의 약동을 소망하지 않는 인생이 있겠는가. 그러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 청년은 항상 도래할 미래를 꿈꾼다. 청년은 미래가 자신에게 무엇을 선사할 것인지를 상상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우리는 미래가 너무 천천히 오는 것 같아 빨리 오라고 손짓하기도 한다. 파스칼은 이러한 인간 존재를 "실제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살기를 희망할 뿐인 존재"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언제나 행복해지는 방법을 계획만 하고 있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하지 않았는가.나이 듦의 아름다움은 지혜에 있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친근감과 평온함을 느낀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세상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경이롭다. 울만(Ullman)의 시처럼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노년을 위로하지 않아도, 노년은 그 자체로 종결미가 아닌가. 그러나 노년은 먼 과거의 일들이 너무 또렷이 기억나고, 그 기억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아픔이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일 뿐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존재를 진정한 삶을 사는 존재라 할 수 있겠는가.우리에게 과거의 나는 생생하게 그려지고, 미래의 나도 그럴듯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로 그린 자화상이 진정한 자화상이 될 수는 없다. 더더욱 우리는 과거에 살 수도 없고 미래에 살 수도 없다. 우리가 과거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저장된 과거의 흔적이다. 미래는 단지 마음의 투사물, 상상 속의 지금이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도 우리가 속하지 않은 시간 속을 헤매느라 진정 우리 자신의 시간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우리는 미래의 시간을 말하고 과거의 시간을 말하지만, 사실 존재하는 것은 현재의 시간밖에 없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과거의 일은 현재의 기억이요, 현재 일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 일의 현재는 기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삶도 현재의 일이니 현재, 이 순간을 직관하는 삶이야말로 자기로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현재를 직관하는 삶, 즉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고 사는 삶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현재의 직관은 현재라는 시간 그 자체를 직관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직관은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을 직관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순간을 산다는 것은 뚜벅뚜벅 시간 밖으로 걸어 나와 우리의 시간을 설계한 그분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이것이 시간의 존재 영원을 경험하며 사는 길이지 않겠는가!

2020-06-17 10:05:18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 한번 하지 않은 변호사에게 생긴 일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 한번 하지 않은 변호사에게 생긴 일

미친 것 같다. 광고인이 광고하지 말라니. 대한민국 마케터들의 욕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진짜 이 글을 보고 광고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굶어 죽을 것이다.지금 독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문장이 있을 것이다. '에이 말이 그렇지 뭐 결국 광고하라는 글이겠지'. 하지만 재미있는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나는 현재 광고계에서 10년 정도 뒹굴고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 자체가 독특한 브랜드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를 쓰고 광고해도 안 되는 브랜드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광고하지 않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브랜드가 있었는데 바로 한 변호사의 경우이다. 어떤 비법이 있길래 광고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몰려드는 것인지 궁금했다그 변호사는 대구의 가장 큰 법무법인에 일하다가 독립하게 되었다.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리시면서 광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법무법인에 있었을 때는 소속 변호사였지만, 독립하려니 마케팅이 문제였다.당연히 많은 광고회사의 영업이 들어왔다. "온라인 키워드 광고를 하셔야 합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할 때 변호사님을 1순위 노출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와 같은 제안이 쏟아졌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지금 당장 의뢰인이 줄을 설 것 같았다. 내일 당장 통장에 돈이 수북하게 쌓일 것 같았다.하지만 변호사가 선택한 마케팅은 사무실 홈페이지 제작이 전부였다. 그것도 최소한의 기능만 넣은 정말 최소한의 홈페이지였다. 사실 요즘 젊은 변호사들의 홈페이지를 보면 정말 화려하다. 성형외과 혹은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찬란하다. 변호사를 일종의 스타로 보이게 해 의뢰인이 연락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외에도 키워드 광고, 블로그 광고 등 다양한 마케팅 방식을 활용한다. 그에 반해 그 변호사는 의뢰인이 연락할 최소한의 창구를 만든 것이 전부였다.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9년 12월 16일, 변호사의 수가 3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법률 상담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분명히 음지도 동반하게 된다. 수임료에 눈이 멀어 의뢰인의 인생을 고려하지 않는 고객 유치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사무장과 상담을 하게 하고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사건을 수임한다. 그리고 계약을 한 후 의뢰인은 변호사와 연락이 잘 안 된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변호사는 사무장에게 들은 내용으로 재판장에 나가는 일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렇게 해야 더 많은 사건을 수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1순위로 노출되는 사무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돈만 많이 주면 7번째로 노출된 브랜드가 1순위로 보일 수 있다. 당연히 의뢰인은 많아지고 변호사는 많은 사건을 수임하게 된다.그렇다면 광고 한번 하지 않은 그 변호사는 어떤 전략을 펼쳤길래 성공했을까?첫째, 그저 기본에 충실했다.비록 소수이지만 찾아와주시는 분들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드린다는 전략이었다. 의뢰인과 직접 상담을 하며 증거 확보, 심리 상태까지 챙겼다. 사실 법률 분쟁으로 고통받는 의뢰인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감을 받는다. 그때 변호사와 통화가 잘 안 된다든지 사무장하고만 일을 진행한다면 더욱 초조해진다. 그 변호사는 의뢰인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소통해가며 만족도를 높였다.기본에 충실한 전략은 막강했다. 이 정도 변호사라면 내 지인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비즈니스 간의 분쟁이 많은 사업가에게는 소개 후 기업 고문 변호사로서 일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사람의 입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브랜드가 참 별로라는 소문도 무섭지만, '그 사람 참 잘해'라는 말도 무섭다. 그래서 지인에게 받는 혹은 해주는 추천이 정말 힘이 센 것이다.둘째, 탐구심을 잃지 않았다.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탐구의 개념으로 봤다. 왜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상대편의 머릿속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그의 행동 패턴을 의사처럼 해부하고 관찰해갔다. 마치 추리 소설 속에 자신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행동했다. 일이 아니라 탐구의 과정이라 생각하니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다. 노동이 아니라 본인의 호기심을 해소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그러니 밤 10시에도 의뢰인에게 전화해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의뢰인은 '나의 변호사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나를 걱정하고 있는구나!'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것이 정말 좋은 광고이다. 달콤한 광고 카피가 없이도 그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드니까. 이렇게 변호사와 의뢰인이 완벽히 소통하니 이런 고객도 생겨났다. '설령 이 재판에서 져도 괜찮겠다. 변호사가 이 정도로 최선을 다해줬는데 이 이상의 결과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이다.셋째, 고객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식당에서 내놓은 음식이 상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가족이라면 이런 음식을 내놓았을까?' 나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더 깊숙하게 그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저 사람이 재판에서 지는 건 내가 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건에 임했다. 그의 태도가 브랜드 충성도를 불어온 것이다.넷째, 집요함을 놓지 않았다.사실 집요함은 마케팅의 어머니이다. 가정에 어머니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집요함이 있어야 위대한 결과가 나타난다. 근무 시간 이외에도 수임한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 방법을 찾으려는 집요함이다. 광고인 역시 마찬가지다. 금요일 저녁 지인들과의 회식 자리 때도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광고인이 있다. 눈은 상대방 얼굴을 보고 있지만, 머리로는 아이디어만 떠오를 때가 있다. 혹은 상대방이 뱉은 말을 가공해 아이디어와 어떻게 연결할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뢰인의 말 속에서도 집요하게 아이디어를 구했다. 투자하는 시간이 많으니 사건의 해결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내가 위에 나열한 네 가지 법칙은 지극히 심심하다. 마치 건강한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운동하고 술·담배를 하지 않는다'와 같은 대답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본을 힘들어한다.만약에 그 변호사가 열심히 광고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포털에서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오고 블로그 대행업체에 일을 맡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블로그에는 영혼 없는 광고성 글이 올라왔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법무법인과 차별성이 없는 one of them 브랜드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많은 수임을 해서 더 큰 돈을 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온 의뢰인들이 과연 변호사에게 만족하고 떠날까? 그렇지 않다. 한 번은 의뢰하되 다시는 맡기고 싶지 않은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다.진짜 맛집은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곳이 아니다. 지난주에 왔었던, 지난달에 왔었던 손님이 다시 찾는 집이 진짜 맛집이다. 팔리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광고보다 기본에 충실하라. 업의 본질에 충실하라. 업의 본질이 먼저이고 광고는 그다음 문제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6-17 09:55:25

[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내 반려견의 시크한 미소? 안면마비일수도…

[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내 반려견의 시크한 미소? 안면마비일수도…

콩이(포메라니언·12살)가 보호자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원장님, 콩이가 입이 돌아갔어요!"익살스러운 송이의 표정을 즐겁게 쳐다보는 주변 이들의 마음과는 달리 송이 보호자는 걱정이 가득하다.3일전 부터 콩이의 왼쪽 아랫입술이 쳐지며 침이 거품처럼 입안에 고인다고 했다. 가끔 그 침이 코로 들이켜져 재채기 할 때는 안쓰러워 지켜보기 어려울 정도라 했다. 왼쪽 눈의 눈꺼풀도 닫혀지지 않고 있었다. 콩이는 2년 전 부터 기관지협착증과 심장질환으로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데 최근 기침이 심해지면서 편히 자지도 못하고 밥도 덜 먹는다 했다.소형견이 한쪽 입꼬리가 치켜올려지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듯한 표정으로 내원하는 경우들이 가끔 있다. 스파니엘이나 레트리버처럼 대형견들은 눈꺼풀과 아랫입술이 축 늘어져 우울한 표정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둘 다 안면신경과 삼차신경의 마비에 의한 증상이다.사람의 경우 안면 마비로 인해 눈꺼풀과 입술이 쳐지는 증상이 두드러진다. 웃을 때는 마비되지 않은 쪽으로 얼굴 근육들이 확 당겨지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이 연출되기도 한다. 눈과 입술이 삐뚤어진다하여 구안와사(口眼喎斜)라 불려지기도 한다.'차가운데 얼굴을 대고 자면 입 돌아간다' 는 옛말이 있다. 심신이 피로하고 잠자리도 편치 못할 때 잘 발생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원인은 말초 신경계의 바이러스감염이나 신경염 등으로 추정하며 스트레스와 피로 등 명확하지 않은 원인에 의한 특발성 질환이다. 다행인 점은 4~8주 사이에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평생 경미한 휴유증이 남기도 한다.구안와사는 뇌출혈, 뇌종양 등의 중추성 뇌질환과의 구분이 필요하다. 눈 주변의 마비 없이 코와 입술 부위에만 마비 증상이 나타난다면 뇌출혈, 뇌종양 등의 중추성 뇌병변을 의심해 볼 여지가 높다. 중추성 뇌병변은 MRI검사를 통해 확진이 가능하지만 예후는 매우 불량하다.안면신경 마비의 치료는 휴식과 안정이 최우선이다. 심리적으로 배려받는 동물환자의 회복이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을 보였다. 동물환자 중에는 음식을 씹을 때의 불편함, 시각적인 이상, 감각 상실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이 고조되는 경우도 있다. 보호자는 동물환자의 불안감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많을수록 안정감을 찾고 회복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특발성 안면마비 증상을 보이는 동물환자들은 고령이거나 대사성질환을 가지고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건강검진 차원에서 혈액검사와 종양검사가 추천되며 귀질환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만성외이도염, 중이염, 내이염이 안면신경과 삼차신경 마비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치료는 면역을 증강시킬 수 있는 다양한 대증요법이 적용되며 전침치료, 레이저 재활치료도 신경 회복에 도움된다.개와 고양이에게 안면신경 마비가 발생하면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사람의 경우 침흘림, 음식물 저작 불편, 안구건조증을 스스로가 인지하고 대처한다. 하지만 동물은 보호자가 그 역할을 대신해줘야 한다. 콩이처럼 구강 내에 침이 진득하게 고일 경우 가제를 이용해 자주 닦아 줘야 한다. 호흡하다 침이 기도나 비강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눈꺼풀을 닫지 못하기 때문에 안구건조증과 각막손상이 함께 발생할 수 있다. 동물병원에서 눈물대용제와 각막질환 예방에 도움되는 안약들을 처방받고 자주 넣어 주셔야 한다. 각막이 혼탁해지거나 결막 부종이 심해질 경우 지체없이 수의사의 진찰을 받으셔야 한다.사람이나 반려동물이나 질병의 발생과 증상은 비슷하다. 하지만 동물이기 때문에 특별한 증상이 두드러지기도 하고 보호자의 관리가 요구되기도 한다. 개와 고양이의 안면신경 마비는 신경 회복을 위한 동물병원 치료 이상으로 2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구 손상을 예방하고 심리적 불안감을 다독여주는 보호자의 노력이 중요하다.인간과 반려동물이 같은 질병이더라도 그 치료와 관리에 있어서는 적잖은 차이가 있음을 명심하자.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6-16 18:30:00

[경제칼럼] 낙관과 긍정의 차이

[경제칼럼] 낙관과 긍정의 차이

과거 나는 낙관과 긍정을 같은 의미로 이해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무조건 잘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몇 년 전 베트남 전쟁에서 8년 동안 포로가 되었다가 생환한 스톡데일리 대령의 글을 읽으면서 낙관과 긍정의 차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베트남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미군들 중 곧 풀려날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고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기약 없이 길어지는 전쟁에 희망을 잃고 비관적이 돼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반면 스톡데일리 대령을 비롯한 생환 포로들은 반드시 풀려날 것이라는 믿음은 잃지 않으면서 그것이 그들의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장기적으로 철저히 대비해서 그날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이 이야기를 통해 긍정의 진정한 의미는 현실을 무시한 채로 무조건 잘될 거라는 믿음이 아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적인 대응책을 찾아 노력하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갑자기 스톡데일리 대령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지금 대한민국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이 코로나19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마치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포로수용소의 미군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요즘 라디오를 듣다 보면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노래가 나오면서 코로나19에 지친 국민들을 응원하는 공익광고를 들을 수 있다. 그 취지는 이해하지만 실질적 대책 없이 잘될 거라는 응원만 있는 것이라면 분명 그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와 한국의 기업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상황에서 많은 비관론이 득세하고 불안감이 증가하기도 한다. 반면 동시에 어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금번의 사태가 금방 끝날 것처럼 낙관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기도 한다.이런 낙관적인 이야기는 힘든 중소기업에는 정말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듣기 좋은 말을 애써 외면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대응책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기업의 경우에는 이전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했지만 기존 사업에 묶여 제대로 도전하지 못했던 사업에 새롭게 도전할 기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OS 윈도우의 성장 정체와 스마트폰 시장 진출 실패로 위기에 몰렸을 때 새로운 사업 분야인 클라우드 비즈니스에 도전해 큰 성공을 거뒀다.이처럼 우리 기업들도 지금의 위기를 과감한 혁신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위기 속에서 변화와 혁신을 하라는 말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참 쉽고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 그것을 실천하는 기업의 경영자나 구성원들에게는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잘 알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참 조심스럽다.그러나 이 위기 속에서 암담하다고 옛날 옛적 기우제 지내듯이 그저 손 놓고 경제 환경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기에 결코 실천이 쉽지 않은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혼자서 '진인사대천명' 을 되뇌곤 한다.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이 말을 어떤 이들은 앞의 부분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하늘의 뜻, 즉 운에 맡긴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나는 이 말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대신 그 과정에서 예측되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보통 우리는 시작 단계에서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실패의 조짐이 조금만 보이거나 본인이 기대했던 결과보다 그 성과가 작을 때 실망하고 쉽게 포기한다. 아마 지금 많은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 노력들이 부질없이 느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 노력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 위기를 잘 극복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강한 기업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2020-06-16 15:43:44

[매일춘추] 1980년대의 현실과 미술

[매일춘추] 1980년대의 현실과 미술

1980년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점철되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대학가의 민주화 시위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항쟁은 학생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참여하여 민주화를 향한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결국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기까지 민주화 운동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때에 노동자, 약자를 대변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등 시대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 민중미술이었다. 대표적인 그룹으로 1979년과 1980년 사이 창립된 '현실과 발언' 은 '현실이란 무엇인가?' '현실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발언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이뤄지는가?' 등과 같은 비판적인 테제에서 출발하여 현실과 미술의 만남을 시도하였다. 서울 경기를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민중미술 집단이 생기고 움직임이 일었지만, 1980년대의 대구 화단은 구상과 추상의 구도의 형식주의적인 경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화랑가에서는 시대를 비추는 전시가 열렸다. 1981년에는 대백화랑에서 '현실과 발언' 초대전이, 1984년에는 '시대정신' 순회전이 수화랑에서 열려 현실참여 예술의 면모를 소개하였다. 이때 대구에서도 민중미술 그룹이 탄생하였는데, 그 시작은 1983년에는 '회화9인'전(중앙미술관)이었다. 회화 9인전의 멤버 중 정하수, 박용진, 양호규, 정해균이 결성한 '인간'전(중앙미술관)이 1984년에, 1985년에는 정비파, 박용진, 정비파, 양호규, 오석찬이 참여한 '지금 우리는'전(수화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정하수가 있었다. 1980년대에 그의 작업실 '투명화실'은 민중미술가들의 교류 거점이 되었다. 2018년 아트클럽삼덕에서는 '2018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을 찾아서'전을 통해 대구 1세대 민중미술가 정하수를 재조명하였다. 그는 강필로 새긴 갯벌 사람들의 모습에서 보듯 처음의 마음처럼 '삶의 밑바닥에 깔린 사람들의 건강한 생명력'(회화9인전, 정하수의 글)을 묵묵히 지켜오고 있었다. 이러한 형상미술의 유행은 단지 국내의 상황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신표현주의가, 미국에서는 신미술과 같은 구상성이 강한 작품이 유행하였다. 이 시기 해외에 머물던 작가 중에는 외면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낸 이들도 있었다. 권정호는 198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그 자신의 삶에 자리한 심연의 공포와 불안을 마주하게 되었다. 현대적인 도시, 뉴욕에서 겪은 인간의 삶, 멀리서 바라본 야만적인 한국의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어느 날 밤'(1985), '소리'(1985)를 비롯해 '해골 시리즈' 작품에 표현되었다. 일본 유학중이었던 송광익은 작품 '당신의 공간은'(1982)을 기타큐슈 비엔날레에 출품하였다. 황무지의 화면 위에 얕게 내려앉은 하늘, 뒤를 돌아앉아 있는 민머리의 남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그물로 덮여있었다. 당시 '그물작업 시리즈'에서 그는 자신이 본 한국의 충격적인 상황을 모두 그물로 씌워버렸다.

2020-06-16 14:30:39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칫솔이 치과입니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칫솔이 치과입니다.

'임플란트 65만원!, 치아교정 256만원!' 이런 치과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연세 있으신 분들은 이런 광고에 속아 넘어간다. 그렇게 찾은 치과는 더 많은 진료를 권한다. 결국, 과잉 진료의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저렴한 마케팅으로 유인하는 치과 때문에 그들의 이미지가 말이 아니었다. 사실 그런 치과는 소수다."소장님, 저희는 진짜 최선을 다해 진료합니다. 대구 시내의 치과를 믿어도 된다는 광고를 꼭 만들어주세요." 문제는 단순했지만, 해결은 복잡했다. 나 자신도 치과에 대한 불신이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치과를 믿어주세요'라는 메시지는 위험했다. "너 같으면 믿겠냐? 저 광고인은 치과 원장이 하는 말 그대로 받아 적었구먼"이라는 댓글이 달릴 것 같았다.나는 소수의 치과 때문에 나빠진 그들의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눈을 감고 치과 광고를 하나 떠올려보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 바로 위의 글처럼 '임플란트 얼마!, 치아교정 얼마!'라는 광고다. 그 치과를 환자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가 광고 속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신뢰성을 쏙 빼고 일부 치과들은 오로지 돈으로만 환자를 유인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환자=돈'이라는 마케팅에 상처받았을 환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그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치과에 오는 것보다 평소에 치아 관리 습관이 먼저다.' 치과에서 진짜 환자들을 걱정한다면 이런 얘기를 할 것 같았다. 임플란트 가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치아 관리를 잘하라고. 그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쓴 카피가 '칫솔이 치과입니다'이다. 집 안에 가장 싸고 가장 가까운 치과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칫솔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런 말을 '라떼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살 것 같은 치과의사회에서 한다면 더 재미있을 듯했다.무너진 신뢰성이 회복될 것 같았다. '치과 의사들이 웬일이야? 가격으로 환자 유인하지 않고 평소에 양치 잘 하라고 하네?' 광고를 본 사람이 이렇게 생각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우리 팀은 열심히 제안서를 마무리했다. 드디어 아이디어 발표일. 오후 8시에 찾은 대구 동성로의 치과의사회에는 원장님들로 가득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간 준비한 아이디어를 토해냈다. 우려스럽게도 그 제안서에는 치과에 대한 쓴소리가 반이었다. 하지만 원장님들의 반응은 예상외였다."지금까지 우리가(치과 의사) 말하고 싶었던 것을 광고했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환자들이 듣고 싶을 말을 하는 것도 좋겠네요." 보수적이어서 현상 유지만 하자는 광고주를 조금씩 변화시켜 갈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럴 때는 마치 나에게 전혀 관심 없는 이성에게 한 프러포즈가 통한 느낌이다. 치과 의사는 정말 똑똑한 분들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다르다. 반에서 꼴찌 한 환자를 학창 시절 1등만 한 의사가 이겨낼 수 없다. 그것이 시장이다. 지구에서 가장 냉정한 곳이다.아무리 똑똑해도 소비자를 이겨낼 브랜드는 없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높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낮아져라. 진심으로 낮은 자세로 고객을 섬겨라. '이들이 정말 우리를 아끼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아이디어 발표를 하면서 내가 본 대구광역시 치과의사회분들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뚝뚝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하지만, 가슴속에 그 마음이 한가득인 경상도 사람들이었다.

2020-06-15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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