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야 경제가 산다

文정부 경제 정책 실패 비난 피하려사실 왜곡·유리한 통계만 선별 홍보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고집하면온갖 갈등과 논쟁'불통만 야기할 뿐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으로 '잘못된 확신'이다. 크게 '통계학적 확증편향'과 '심리학적 확증편향'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통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확증하는 쪽으로 치우치는 인지적 편향이다. 가령, 현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재인 케어 등을 통해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도 늘어나면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생산투자 부진, 자영업 몰락, 고용 참사, 소득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여러 통계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 정책 실패를 피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유리한 통계 결과만을 선별해 홍보하려는 경향이 있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민간 소비 증가율(2.8%)이 경제성장률(2.7%)을 웃돌았다"면서 "소비 심리가 하락했으나 실제로는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간 소비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1.4%로, 약 52%를 민간 소비가 주도했다"는 통계까지 인용했다. 민간 소비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것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 때문이므로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 같다.그런데 현 정부 들어와서 민간 소비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정부 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인 소득 중에서 건강보험료, 대출 이자 등과 같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빼고 남는 돈이 소비가 가능한 '가처분소득'이다. 현 정부에서 가계소득은 늘었지만 가처분소득은 줄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진짜 더 심각한 문제는 못사는 사람들(소득 1, 2분위)의 가처분소득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반대로 잘사는 사람들(소득 4, 5분위)은 더 빨리 늘어난다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인데 정반대로 '소득 양극화 심화'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생 경제 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올해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고 공언했다. 아마도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평화가 경제다"라는 심리적 확증편향이 강하게 작동된 건 아닌지 싶다.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남북 관계를 한 차원 더 높게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평화가 경제가 되는 우리의 미래를 키우는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처럼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더구나, 평화가 경제가 되려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 경제 상황은 너무 절박하다. 경제의 두 축인 생산과 투자가 모두 침체하고 있고,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전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미중 통상 마찰 등 대내외 불확실성도 확대되는 추세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평화가 경제가 되기 위해서라도 당장 성과 없는 경제 정책의 수정 보완이 시급하고 절실하다.여하튼 경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지면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반대로 온갖 갈등과 논쟁과 불통을 불러올 뿐이다. 닉커슨(Nickerson) 미국 터프츠대학 교수는 "확증편향은 상당히 강력하고 침투력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편향이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마찰과 논쟁과 오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단언컨대 현 정부가 확증편향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경제가 무너지면 민심이 급격하게 이반되어 아무리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진보 정부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앞엔 장사가 없다. 이 대목에서 "진보의 미래는 국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갑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깊이 와 닿는다.

2019-02-14 13:50:05

천영애 시인

[매일춘추]나는 오직 족함을 아노라

인간의 불행은 만족을 모르는데서 온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상대적으로 비교하기가 쉽기 때문에 만족하기가 더 어렵다.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가 경제 여건에 비해 낮은 이유 중의 하나가 비교하고 비교당하기 좋은 환경이 아닐까 싶다.일본 교토의 용안사에 가면 백사정원인 석정이 있다. 백사정원은 물과 나무가 없이 하얀 모래가 깔려 있는 마른 정원인데 이 용안사 석정에는 열다섯 개의 돌이 놓여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어느 위치에 서도 열다섯 개의 돌이 한꺼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탐욕을 경계하는 의미로 자주 해석된다. 또한 있으되 없고, 없으되 있는 묘한 삶의 진리를 보여 주기도 한다. 여기서 보면 있었던 돌이 저기서는 안보이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던 돌이 저기서는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그리고 정원을 뒤로 돌아가면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거나 입을 축이는 용도로 쓰이는 물확이 있는데 영락통보처럼 생긴 물확에 '오유지족(吾唯知足)'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해석하자면 '나는 오직 족함을 아노라'라는 뜻이다. 석정의 담도 그렇지만 이끼가 가득 낀 뒤뜰 모서리에서 발견한 이 물확은 석정의 하얀 모래의 고요함과 어울려 순식간에 선정에 들게 했다.있다 한들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삶의 진리는 석정의 작은 돌에서 드러난다. 보이지 않으니 가질 수 없고, 없다고 하려니 없는 것이 아니다. 결국 마음을 비우는 도리밖에 별 수가 없다. 그리고 손을 씻기 위해 허리를 숙이면 보이는 이 '吾唯知足'네 글자가 만족할 줄 모르던 마음에 채찍을 가한다.인간의 불행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하는데서 시작된다. 상상하는 능력을 타고 난 인간은 현실의 한계를 가볍게 넘어 상상의 세계에서 탐욕을 부풀린다. 밤새 기와집을 몇 채나 짓는다는 말은 바로 이 상상과 탐욕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밤새 지었던 기와집은 아침이 되면 허무하게 허물어진다. 우리에게 보이는 현실은 밤새 지었던 기와집이 아니라 내가 거처하는 좁은 집이기 때문이다.나는 이 '吾唯知足'네 글자를 서재 방문에 걸어두고 드나들며 본다. 더 큰 탐욕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현실에 족함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불행하지 않게 사는 방법이다. 천영애 시인

2019-02-14 12:44:52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매일춘추]장벽 허물기

내가 막 대학에 입학한 때의 일인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와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를 관람하러 영화관에 갔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자리에 앉은 4, 5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옆자리의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계속 영화에 대해 뭐라 뭐라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말겠지'하며 참았는데,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계속해서 쉬지 않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헛기침으로 가볍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고, 여자아이는 눈치채고 말을 멈추었다. 그것도 잠시, 한참 영화가 재밌는 상황이 되자 다시 여자아이의 귓속말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번엔 여자아이의 어깨를 톡톡 쳐서 고개를 돌리게 한 후 "쉿 다른 사람도 같이 보는데, 조용하게 봐야지"라며 타이르듯 얘기를 했다. 영화가 끝난 후 불이 밝아지고, 아이들이 일어나 객석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먼저 계단 쪽으로 나가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자아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뭔가에 크게 머리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너무도 두꺼운 안경에 좌석을 손으로 더듬으며, 겨우 누나가 부르는 쪽으로 다가가는 7세 정도 아이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랬다. 어린 누나가 앞을 잘 볼 수 없는 동생에게 영화의 자막과 내용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었다.얼마 전부터 고령자나 장애인 등이 그들이 생활함에 불편한 요소인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으로 베리어 프리(barrier free)운동이 사회적, 제도적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문화예술계에서도 그러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베리어 프리 활동으로는 뉴스를 볼 때, 옆에 조그마하게 수화통역사가 나와서 청각장애가 있는 분들을 위해 수화로 통역을 해주는 것부터, 드라마 등의 자막방송과 시각장애가 있는 분들을 위한 화면해설방송 등이다. 또 최근에는 영화 분야에도 이러한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하지만 아직 공연의 분야에서는 그러한 부분의 활동이 조금은 미흡한 것으로 생각이 든다.아무래도 영상 등과는 다르게 공연 분야는 사전에 녹음작업을 할 수 없고 녹음을 한다고 하더라도 단락으로 끊어야 하며 또 그런 방식으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 등의 제약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불편함이 누군가에게는 장벽을 허물어 생애 처음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러한 불편함을 오히려 보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청각장애가 있는 관람객들을 위해 조금은 세세한 무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 첨부된 자막을 제공하고,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들을 위해 공연 해설사의 친절한 무대 상황의 설명을 수신기를 통해 전달한다면, 나는 지난 시절 그 어린 남매에게 저지른 실수를 조금은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2019-02-14 12:43:11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어느 날 아침[신흥즉사(晨興卽事)], 이색

풍로에는 국이 끓고 처마에는 참새 소리 湯沸風爐雀噪簷(탕비풍로작조첨)마누라는 씻고 빗고 찬에 간을 보고 있네 老妻盥櫛試梅鹽(노처관즐시매염)해야 높이 뜨건 말건 명주 이불 포근하니 日高三丈紬衾暖(일고삼장주금난)내사 마 알 끼 뭐고, 잠이나 더 자자꾸나 一片乾坤屬黑甜(일편건곤속흑감)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 왕조의 최후를 장식했던 실로 엄청난 시인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한시가 줄잡아 6000수에 이르고 있으니, 실제로 지은 시가 몇 수인지는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목은은 고려말기 역사의 한 복판에 서 있었던 비중이 매우 큰 정치가였고, 성리학의 토착화에 앞장을 섰던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어디 그 뿐이랴. 그는 시대의 흐름을 좌지우지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길러낸 교육자이기도 했다. 고려왕조에 일편단심의 충성을 다 바친 정몽주, 이숭인, 길재 등이 그의 제자임은 말할 것도 없고, 새 왕조 건설에 앞장을 섰던 정도전, 하륜, 권근 등도 목은을 스승이라 불렀으니까.위의 작품은 바로 그 목은이 지은 즉흥시 가운데 하나. 어느 날 아침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 보니, 풍로 위에서 보글보글 국이 끓고 있다.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집안에 온통 가득 차 있다. 처마 위에서는 짹짹거리는 참새들의 노래 소리가 경쾌하다. 어느 틈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빗질까지 마친 아내는 요리를 하는데 여념이 없다. 멀리서 봐도 그런 아내가 참 미쁘다. 해는 이미 서너 길 정도 어지간히 하늘 높이 떠올라 있다. 후닥닥 일어나도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덮고 있는 명주 이불이 너무 포근하다. 에라 이, 모르겠다. 일단 잠이나 더 자고 보자꾸나."백설(白雪)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험하구나)/ 반가운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夕陽)에 호올로(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이 남긴 유일한 시조다. 한시 속의 화자는 팔자가 늘어진 사람인데, 시조 속의 화자는 석양에 홀로 서서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다. 얼핏 보아도 완전 딴판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데, 왜 그럴까? 왕조 교체기의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 따라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제자들끼리 시퍼렇게 칼을 겨누는 참으로 냉혹한 정치현실에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바람에 포근한 명주 이불 뒤집어쓰고 마음껏 잠을 자고 싶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세상 사람들아,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잠이나 실컷 자고 보자꾸나. 허허 그것 참, 잠이나 실컷 자고 보자니까.

2019-02-14 10:23:09

이정은 작.

[갤러리 탐방]대구현대백화점 갤러리H 이정은 'Beyond'전

1980년대 대중문화를 회고할 때 빠지지 않는 TV외화가 '환상특급'(원제: Twilight Zone)이다. 밤늦은 시간에 방송되던 이 드라마는 매 에피소드마다 기괴하고 섬뜩한 내용이 소개되곤 했다. 드문드문 봤던 그 시리즈 가운데 내 기억에 아직 남아있는 몇 편이 있다. 제목이 심야의 화랑인가 그런데, 내용은 이렇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한 나치 전범이 남미로 도피해서 과거를 숨기고 살았다. 늘 불안에 떨던 그가 가진 유일한 낙은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었다. 그가 좋아한 작품은 아름답고 조용한 호숫가에서 어떤 사람이 느긋이 낚시하는 그림이었다. 전범 수색에 나선 기관의 추적 망이 자신에게 좁혀 오는 것을 느낀 그는 그림 속의 낚시꾼이 본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생각했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각자 확인하시라.환상특급의 주인공처럼 잘못을 저질렀던, 아니면 똑바로 살았던 상관없이 우리는 가끔 어려운 순간을 피할 수 없다. 인생의 고난은 선악과는 별개의 문제다. 누구나 삶이 어두운 구석에 와 닿을 때면 현실로부터 벗어나길 원한다. 현대미술가 이정은의 작업도 그런 이상향의 실현체다. 희뿌연 빛을 머금은 배경 앞에 네발 달린 짐승들과 나무들이 있다. 3D프린터 기계로 깎아낸 조각들이라고 한다. 말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슴 같기도 한 동물의 형상은 기계가 정교하지 못한 한계 때문이 아니다. 작가는 조형의 완성을 어느 선에서 일부러 멈춘다. 왜? 어차피 저 너머(beyond)의 세계에 뭐가 있는지, 그 피안의 상태를 우리가 기대를 할지언정 이렇고 저렇고 따질 입장이 되나.흰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들은 빛의 반대쪽 그림자와 합쳐져 흑백의 디오라마를 완성한다. 전체로 볼 때 동양화의 격을 갖춘 이 전경이야말로 지금 현실 도피를 꿈꾸는 누군가가 그 안에 끼어들 여지를 둔다. 그곳은 순수하다. 그리고 돌아올 출구가 없다. 이미지는 지극히 정적이지만 작품의 원천을 제공한 근거가 미디어 아트라는 점은 매력 있는 역설이다. 모든 예술가가 현실을 넘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을 두고 있다. 이정은은 기술과 감성이 충만한 자신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그곳은 낙원일까? 지금의 나로선 모르겠다. 이럴 땐 하이쿠 한 편이 제 격이다.이 세상, 지옥의 지붕 위를 걸으며, 꽃을 구경했네.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2019-02-14 10:13:30

허영철 공감씨즈 대표

[북한 들여다보기]북한 태도 변화 물꼬 튼 개성공단…자본주의 교육 효과 있었다

2월 말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기대와 더불어 한반도의 명운을 걸어야 할 것 같은 두려움마저 우리에게 안겨준다. 회담 결과에 따라 북한의 1차적인 비핵화 조치에 미국이 내놓을 상응하는 선물로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다.2007년 개성 지역에 연탄 지원을 위해 방북했을 때의 일이다. 연탄 지원 활동을 끝내고 개성공단에 들러 당시 운영 중이던 의류 생산기업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기업은 2천여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책임자인 현지 지사장은 "우리 업체는 인도, 중국, 베트남, 개성 등 4곳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개성공단 제품의 퀄리티가 가장 높다"며 개성공단의 발전 가능성과 북한 근로자들에 대해 칭찬을 늘어놨다.이 모습을 보며 '개성공단이 점점 더 크게 성장 가능하겠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들떴었다. 몇 년 후 그 의류업체는 5천여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게 될 정도로 규모가 성장했다.2016년 갑작스럽게 중단되기 전까지 개성공단에는 125개 기업이 입주해 있었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는 2015년 기준으로 5만4천988명에 달하였고 북한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던 최저임금은 약 73달러, 우리 기업이 지불하는 평균임금은 187달러 정도였다. 北 근로자 1인당 月 103$ 벌어 탈북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개성공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일자리였다고 한다. 남측에서는 북한 근로자에게 주는 임금이 전부 북한 당국으로 들어간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기업들은 북한 근로자에게 달러로 임금을 지급했는데, 이 중 임금의 45%(사회보험료 15%, 사회문화시책금 30%)는 북한 당국에 세금으로 들어갔고, 55%는 근로자들이 가져갔다. 평균임금 187달러라면 1인당 월 103달러(현재 환율로 11만5천원)를 벌어간 셈이다.개성공단 조업 중단 전 이곳에 근무했던 한 고위급 인사는 고향인 대구를 방문할 때마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내복 같은 제품들을 들고 공감씨즈를 방문했었다. 그러면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웠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개성공단을 바꿔놓았는지를 알 수 있는 일면이었다.그는 "개성공단에서 잔업 근무를 하지 않는 업체 근로자들이 자기네 회사 사장에게 항의하는 일이 발생했다"며 "다른 회사는 잔업도 해서 더 많은 임금을 받아가는데, 우리는 왜 잔업이 없냐는 항의였다"고 전했다.이것은 개성공단 운영이 그저 단순한 협력의 의미가 아니라, 남한 기업과 북한 근로자의 결합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조심스러운 실험교육을 해왔다는 방증이다.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고 더 열심히 일해 많은 돈을 벌고, 그렇게 해서 남들보다 잘살아가고 싶은 시장경제의 교육을 해온 것이다. 결국 이것은 북한 사회 변화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흔한 오해처럼 개성공단 월급을 북한 정부가 모두 가져갔다면, 잔업 없는 회사 근로자들이 항의하는 일이 생겼겠는가?2010년쯤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조선교류'(Chosun Exchange)라는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단체의 관계자를 만났는데, 당시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국제단체로서 베이징과 평양에서 북한의 고위층 자제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교육과 금융교육을 요청받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평양 인근 17개 스타트업 설립 이 단체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평양 인근의 은정과학지구에 약 17개의 스타트업이 설립됐다고 한다. 참으로 놀랄 만한 북한의 변화다.결국 이런 변화의 바탕에는 2016년까지 운영됐던 개성공단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고 본다. 개성공단이 북한 근로자 5만여 명을 고용하며 북한 주민들과 북한 당국에 끼친 영향이 현재의 북한 태도 변화를 이끌어 왔다고 본다.부디 이번 2차 북미회담이 잘 진행돼 평화로운 한반도로 가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그리고 하루 빨리 개성공단 재개를 희망해본다.

2019-02-13 19:30:00

이창호 행복한 찻집 대표

[찻잔을 씻으며 ]차 한잔의 행복

'한중일' 삼국의 차 문화를 비교해보면 중국은 실용적이며 절묘한 기예(技藝)를 중시하고, 일본은 형식적이며 깨달음의 다도(茶道)를 추구한다면, 한국은 예(禮)를 바탕으로 한 검박함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찻자리에서도 예를 갖춘 편안한 대화가 오고 간다. 한국만큼 '차 한잔합시다'를 인사말처럼 자주 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 문화에서 차 한잔하며 대화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증거일 것이다.행복 노이로제라고 할 만큼 주변에서 '행복'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막상 '당신은 행복합니까?'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현대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성향의 시대라고 한다. 개인의 행복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하고자 하는 모습은 어쩌면 행복하지 못한 우리 일상의 반면일 것이다. 진부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진실한 인간관계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인정받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복은 물질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지인들과 한잔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하다 보면 눈앞에 닥친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을 수도 있고, 크게만 생각되던 문제도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를 본다. 의지가 되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것이 행복의 큰 필요조건이고, 그 사람과 함께 차 한잔하는 시간이 행복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소중한 순간들이다.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가 필요한 현대인에게 가까운 이들과의 차 한잔은 소통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쉼표이고, 자존감을 찾아가는 진정하고 전통적인 '소확행'이다.행복한 찻집 대표

2019-02-13 19:30:00

[세상속의 종소리]독일인이 기대한 20세기

서양은 100년 '한 세기'의 시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벅찬 희망보다는 절망적이고 퇴폐적인 '세기말 풍조'가 매번 만연했다. 재앙을 걱정한 것이다. 20세기를 앞둔 '19세기 말'은 달랐다. 유럽은 자유와 평등의 기운이 넘쳤고, 행복이 개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산업화로 의식주가 나아졌고, 여성들도 점차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어 갔기 때문이다. 한편 시민들은 해체되던 구체제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에너지와 현재와 상상 속의 미래의 간격 사이에서 불안해 했다.'1900'이 새겨진 이 종(사진)은 20세기를 앞두고 독일에서 만들었다. 장인은 새 세기를 맞아 독일인의 자부심과 염원을 담았다. 영광된 통일 독일제국의 왕관과 문장인 '쌍머리 독수리', 번영하는 '빛나는 날개'와 국민 단합을 위한 '움켜쥔 4개의 손'을 조각했다. 되돌릴 수 없게 흘러가는 시간을 기억하라며 '모래시계'도 넣었다.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기원한다는 독일어와 함께, '세상을 살다가 갑자기 휴식을 얻고 모두의 애도 속에 죽을 지어라'는 라틴어 문구도 있다. 당시 통일 독일은 보불전쟁에서 승리하며 최초로 유럽 대륙의 맹주가 되었고, 산업화에 성공하며 부유해졌다. 그들은 나라의 번영을 바랐지만, 동시에 가정의 행복과 평화, 그리고 평온한 죽음까지를 열망하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20세기에는 인간이 존중되고 공존을 위한 지구촌의 협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쟁과 이념 대립, 기아와 공황도 있었다. 새 천년을 시작하던 '20세기 말'에도 휴거와 같은 '세기말 풍조'가 있었고, 여전히 같은 바람을 반복하였다. 국가 부도 사태를 경험하던 우리 국민들에게는 그 염원이 더욱 절실했었다.

2019-02-13 19:30:00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매일춘추]잘 쉬어가기

작년 가을, 필자에게 여러 상황적 여건이 되어 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 시기 전력질주하며 달리는 가운데 문득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방향성에 의문이 들었던 때라 더욱 쉼이 간절했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쉬면서 시작되었다. 쉴 수만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지만, 매일 할 일과 챙겨야 할 것들로 정신없던 생활을 뒤로 하고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 대한 불안감, 나만 홀로 멈춰있다는 생각으로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긴장이 풀리면서 몸 이곳저곳도 아프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안과 어지러움이 다시 안정을 찾고 쉬기를 잘 선택하였다고 깨닫는 데는 다소 얼마간의 기간이 소요되었는데, 그때 '쉰다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잘 쉬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 이라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데 길들여져 잘 쉬는 것에 무디어져있었던 것이다.사실 잘 쉰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대부분이 쉼의 기회를 가질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TV, 핸드폰 앞에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쉼을 갈망하지만 제대로 잘 쉬어내지 못하기에 충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 에너지를 방전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와 같은 쉼에 대한 도서들은 계속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본다.인간은 하루살이가 아니라 목적과 방향성을 가진 긴 여정을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때로 쉬면서 지친 마음과 몸을 돌볼 필요가 있다. 지친 나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속도와 방향을 재정비해나가는 것도 요구된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처럼 가만히 있거나 쉬는 것이 불안하여 앞만 보고 계속 달려 나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러한 내달림이 결국은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다. 한번 뿐인 인생, 살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은 늘 필요하다. 진정한 쉼 가운데 없으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았지만 그 속에서 버릴 것이 보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찾아야 한다. 제 아무리 열심히 전력질주해도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오늘 무언가 굉장히 꼬여가는 것 같고 잘 안 풀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요히 나를 들여다 보며 위로를 건네면서 단 몇 분이라도 잘 쉼을 누기기를 권해본다.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2019-02-13 11:27:57

민경석 대구시수돗물평가위원회 위원장

[새론새평] 유역별 통합 오염원 관리

수질 개선 첫 과제는 하수관거 정비저비용 집적화 시스템 도입 필수적생태복원·경제·문화·관광 분야까지환경부 중심 효율적 물관리 일원화하천은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수생태 및 하수도는 환경부, 농업용 저수지 등 관개시설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리함에 따라 하천 및 물관리가 유기적이지 못했다. 그 결과 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중복 투자와 비효율적인 요소도 많았다.이에 환경부를 중심으로 물관리 일원화를 위해 정부 조직을 개편했다. 아직 하천 관련 사항은 국토부에 남겨두었지만, 환경부는 유역별 통합 물관리를 지향하는 효율적인 물관리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수 있는 기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효율적인 물관리 및 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수량 및 수질의 통합 관리뿐만 아니라, 생태복원, 상수원, 토지이용, 경제, 역사, 문화, 관광 등의 분야까지 통합적으로 계획하고 이행하여야 한다.우선적으로 환경부는 유역 내 홍수 피해 저감, 가뭄 대비 수량 확보, 수질과 수생태 건강성 유지를 모두 통합하여 관리할 수 있고, 기후변화 등 물관리 여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며, 수자원 변화와 상·하류 간의 효율적인 물 수요와 공급을 위한 실질적인 유역 물관리 방안으로의 통합 물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지금까지의 개별 단위 오염원 제어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물 오염 관리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일원화된 물관리 체계 속에서 유역별 통합 오염원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낙동강의 물 문제는 크게 유해 화학물질 유출과 녹조로 요약된다. 두 가지 모두 사전 예방대책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생원에서의 오염원 관리가 필수인데, 녹조 문제는 발생 원인 물질인 질소와 인이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유출된다. 따라서 비록 많은 기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체계적인 유역별 통합 오염원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도시로부터 수계에 유입되는 오염 물질을 저감하고, 하천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바로 하수관거 정비이다. 하수관거 정비는 발생된 오염 물질의 차집 및 처리를 위한 기본요소이다. 강우 시 발생하는 하수관거월류수, 하수처리장 초과 유입수 등의 처리를 위한 그레이 인프라(gray infrastructure)와 강우 유출을 근본적으로 저감할 수 있는 빗물 정원, 옥상 녹화 등의 그린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를 함께 구축해 나가야 한다.그레이 인프라에 속하는 하수관거 정비가 되면, 하수처리장의 유입량이 감소해 처리 비용을 감소시키고, 처리 효율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오염 물질 배출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고,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를 직투입할 수 있으며, 악취 민원을 해소할 수 있다.하수관거 정비뿐만 아니라, 하수처리시설의 저에너지, 저비용 구조를 달성하기 위하여 처리공법 개선 및 시설 개선도 필수이다. 지금까지 건설된 하수도시설은 인프라 구축 위주의 정책으로 대규모로 건설되었으며, 과다한 용량 산정으로 가동률이 낮은 시설이 많다. 현재의 하수도시설은 다이어트를 통해 군살을 제거하고 신기술을 적용하여 집적화된 시스템으로 혁신하여야 한다. 집적화된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소요 부지 및 유지 관리비용이 적은 장점이 있다.농촌지역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을 처리하기 위한 환경기초시설의 확충이 필요하고, 수계에 영향을 주는 오염원 중에서 가축분뇨의 경우, 발생량이 적은 반면 고농도의 유기물, 고형물, 질소, 인 등을 포함하고 있어, 수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가축분뇨는 개별농가에서 직접 퇴·액비로 자원화하는 것보다는 모두 수거하여 공공처리시설에서 자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 가스를 생산하고, 발생하는 찌거기를 퇴비화하여 이용함으로써 자원 순환형이면서도 저비용, 저에너지 소비 가축분뇨 처리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질오염을 저감할 수 있다.환경부는 유역 내 통합 오염원 관리 체계 구축과 유역별 통합 물관리 계획의 수립을 우선하여야 하며, 국토부의 하천, 농식품부의 농업용수 등 부처별로 수행하는 정책들과 협업하여야 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2019-02-13 11:27:27

권영세 시장

[기고] 천만 관광 도시 안동, 시민과 함께 준비

2018년 안동을 찾은 관광객은 773만 명으로 집계됐다. 2017년보다 37%나 증가했다.'천만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 안동'이라는 목표로 지난해 관광진흥과를 신설했다. 공무원과 시민들이 나서 만든 첫 번째 결과다. 2018년은 봉정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재인 대통령의 안동 방문, 방송 '미스터 션사인' 효과 등에 힘입어 1천만 관광객 유치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는 해였다.지방 소도시에 1천만 관광객이 찾는다는 것은 관광도시로서 위상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동이 1천만 명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가 된다면 안동시민들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줄 것이다. 아울러 안동의 미래 발전에 문화관광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직접 확인시켜 줄 것이다.관광객 1천만 명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라는 무게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안동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문화관광 자원의 보고로 평가받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원을 많이 갖고 있더라도 관광객들로 하여금 안동을 찾아오게 하고, 찾아온 관광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비로소 천만 관광 도시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스마일 친절 캠페인'과 같이 안동의 세심한 배려를 담은 다양한 방송 홍보와 광고 등을 통해, 안동을 찾아온 관광객에게 정이 있고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친절 도시 안동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 모든 행정력을 집중할 생각이다. 이 또한 공무원들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함께하는 참여 속에서 온전히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지금과 같은 지방소멸시대에 가장 관심을 받는 것이 관광 분야이다. 2018년 말 안동시의 평균연령이 46세를 넘어 이제 초고령화 도시로 바뀌고 있다.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공백, 지방 도시의 소멸을 대처할 수 있는 좋은 방안 중 하나는 문화관광 도시 안동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연간 1천만 명의 관광객이 안동을 찾는다면 안동 인구가 3만 명가량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착실히 실행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지역의 문화관광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관광정책자문회'를 만들어 민간전문가의 관광정책 제안을 시정에 반영하고 있으며, 민관협력기구인 '안동시 관광협의회'를 통해 정책의 실행 가능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둘 생각이다. 또 민관협력을 통해 지역의 체류 관광객을 증대시키기 위해 한옥 고택의 시트 지원 시범사업,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안동 방문 20주년 기념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봄꽃축제를 시작으로 여름 월영야행, 가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겨울 암산얼음축제 등 안동을 대표하는 축제의 역량 강화를 통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도 추진한다.안동 관광을 위해 기본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서비스의 질적 개선, 시민의 친절 의식 등으로 무엇보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 주어야 가능한 것들이다.세상이 바뀌고 있다. 관광은 모든 지자체가 미래의 성장 동력을 위해 경쟁적으로 주목하는 부문이다. 우리의 후손이 보다 더 자랑스러운 '천만 문화관광 도시, 안동'에 설 그날을 위해, 민관 화합으로 이루어나갈 시민과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설렌다.

2019-02-13 11:18:23

각정 스님 청련암 암주

[종교칼럼]봄이 온다

눈 오는 날 호출되었다.입춘 즈음 내리는 춘설은 봄을 부풀게 하였다. 바람이 흔드는 풍경 울림에 목 너머 서어나무가 무사한지 궁금해졌다. 산문을 열고 나가면 산길은 서어나무 숲과 이어진다. 언덕 위에는 수백 년 풍상을 견디며 고행자의 풍모를 지닌 거목이 정정하게 서 있다. 가만히 안아본다. 올겨울에는 눈도 없었고 비가 없어서 식수가 충분하지 않았었다.눈이 쌓이는 숲은 고독과 명상 그리고 생명과 죽음까지도 덮고 있었다.나무는 인간이 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이다. 나무처럼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갖고 그 믿음을 끌고 갈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무의 우듬지는 바람에 굽어지고 사람은 시간에 의해서 의연해진다.짜라투스트라는 나무를 쳐다보며 이렇게 외쳤다."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나무들을 괴롭히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부러지지, 이와 같이 우리 인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구부러지고 고통받는다."고통은 신이 보내는 신호라고 한다. 나무가 바람에 굽은 것처럼 우리 인간들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단련되고 견디어진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은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이 주어지는 것은 신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흰 눈에 덮인 길은 신비롭다. 흰 세계는 꽃이나 녹음이 가질 수 없는 각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지상에 내리는 한 송이 한 송이 눈꽃은 봄을 알려오는 무한한 이야기이다. 눈,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새로운 봄의 시작을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하얀 눈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준다.시간의 도끼는 방 안 깊숙이 햇볕을 들이고 빛바랜 일상을 소실점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눈 오는 산중은 인적이 뜸해졌다. 혼자서 방 안의 오디오를 툇마루로 옮겼다. 설 전야 대청소까지 마쳤기 때문이었다. 오디오 볼륨을 크게 올렸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언제나 작별 인사가 안녕(Gute Nacht)이라고 집 대문에 써 놓는다.여행은 시인 뮐러가 봄꿈을 그리며 명상적인 서주로 시작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장소 보리수-그곳에서 쉴 수만 있다면 "여기서 쉬어가게" 쉴 수 없는 것이다. 나무그늘과 잎사귀들을 지나간다.오월의 들판을 지나갔다. 여행이건, 음악이건 보고 들을 때마다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들려서 새로운 것이다.그것은 자주 반복해서 연습할 때 새로운 것이 보이고, 새로운 것이 들린다. 차실에 수선화가 꽃망울을 피우고 서곡은 수줍게 새하얀 선물을 주었다.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한 걸음씩 가까이 와 있었다. 봄은 추위를 이기고 바람과 함께 돌아온 승리자이다.해마다 꽃이 피면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들판에서, 땅속에서, 대기에서 봄이 오리라. 봄은 우리들을 자주 그리고 많이 웃게 한다.창문을 열어 봄 공기를 방 안 깊숙이 채운다.내가 태어나기 이전보다 더욱 세상을 살기 좋은 정토로 장엄하며 행복해지는 일이다.봄은 바람과 함께 오고 있다. 봄은 무엇인가?

2019-02-13 09:37:55

창의적인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광고인, 퀸(Queen)

제목이 황당할 수 있다. 세계적인 록 밴드인 퀸(Queen)이 광고인이라니? 퀸의 오랜 팬들에게 욕먹을까 두렵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퀸에 대해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2018년,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 브랜드는 단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다. 작년 10월 31일 개봉해 현재까지 993만4천881명(2월 10일 기준)의 관객을 모았다. 천만 관객 돌파가 코앞이다. 이 영화는 순식간에 극장을 공연장으로 바꿔버렸다. 극장 측은 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은 관객들을 위해 싱어롱(sing along) 상영관을 만들어 큰 재미를 봤다. 싱어롱 상영관이 없는 지방의 팬들은 서울까지 올라와 콘서트(?)를 즐기는 극성을 보였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케 했을까?필자는 영화광이다. 하지만 절대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지는 않는다. 새로운 영화를 볼 시간을 버리는 것 같아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달랐다. 필자를 극장에 세 번이나 오게 했다. 첫 번째는 개봉작이란 이유로, 두 번째는 혹시 놓친 디테일이 있을까 봐 봤다. 마지막엔 광고인으로서 그들의 장인 정신을 배우고 싶어서 봤다.그들은 음악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음반 작업을 위해 시골 한적한 마을에 머물며 오로지 녹음에만 몰두했다. 작곡할 때 스치는 작은 영감에도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멤버들끼리 싸우는 순간에도 영감을 얻어 곡으로 만들기도 했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는 틀에 박힌 노래를 만드는 걸 거부했다. 록 음악에 오페라를 섞은 장장 6분 길이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를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대중적인 음악으로 배를 불려야 하는 제작사는 기겁했다. 하지만 그는 제작사와 결별할지언정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였다. 결국, 제작자에겐 퇴짜를 맞았지만 대중들에겐 인정을 받게 된다.퀸은 자신을 노래를 사랑해달라는 광고를 낸 적이 없다. 다만 한 곡 한 곡 내놓을 때마다 크리에이티브로 무장한 노래를 내놓았다. 그들의 음악은 다른 스타들처럼 예쁘지 않았다. 오히려 모난 노래들이 많았다. "엄마, 나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mama, just killed a man)"라는 가사는 절대 예쁘지 않다. 하지만 그다음 가사가 궁금해서 귀를 스피커에 붙여버리게 된다. 퀸은 강력한 콘텐츠 그 자체였다. 그런 힘으로 전 세계에 퀸 돌풍이 불었고, 사람들이 그들을 찾게 했다. 사달라 하지 않고 팔리게 한 것이다.광고는 이래야 한다. 이 브랜드를 사랑해달라는 말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두 번, 세 번이 넘어가면 프러포즈가 아니라 구걸이 되고 만다. 광고는 브랜드가 반짝이게 보이는 빛의 역할만 해야 한다. 그다음은 브랜드의 몫이다.필자는 퀸을 통해 장인 정신을 봤다. 그 장인 정신은 필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곡 하나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며, 작은 아이디어에도 신경이 곤두서있는 모습이 필자를 돌아보게 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퀸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땅의 광고인들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퀸을 공부했으면 좋겠다.싱어롱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관객이 뱉은 말이 무척 인상 깊다. "프레디 머큐리, 다시는 죽지 마요."이것이 필자에겐 '강력한 힘을 가진 콘텐츠는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렸다.우리는 눈만 돌리면 광고를 볼 수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 광고인들이 많다는 뜻이다. 광고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잠시 멈춰서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카피 한 줄에, 디자인 한장에 영혼을 담아 세상에 내놓는지. 우리의 창작물 속에 과연 장인 정신이 담겨 있는지.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장이' 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은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2-13 09:27:24

서영완 작곡가

[매일춘추]음악감상의 사이드 효과

음악은 청각에 의존한 예술이지만 상상력을 통해 소리를 시각화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음악 감상은 소리를 이미지화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최근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와 같은 영상의학의 발달로 외부작극에 대한 두뇌의 복잡한 반응을 실시간 화면으로 관찰, 분석 할 수 있게 되면서 두뇌과학과 인지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물론 이러한 연구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획일적으로 판단하게 한다는 우려도 존재한다).인지과학자인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보통의 사람은 눈과 귀를 통해서 70% 이상의 외부정보를 분석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시각에 의한 정보판단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음악 감상에 있어 시각은 청각의 정보를 왜곡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음악 감상을 많은 부분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각이 청각에 미치는 영향으로 반대의 경우인 청각이 시각을 자극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청각에 의해 반응하는 나머지 4개의 감각중 시각의 반응이 매우 긴밀하다.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할 때에 실제 보이지 않는 풍경이나 사물을 연상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음악 감상은 청각에 의존하지만 시각 또한 자극하기 때문에 소리로 이루어진 음악정보를 눈에 보이는 것처럼 시각화 할 수 있게 되고 이로서 음악은 우리를 상상이라는 영역으로 이끌게 된다.일반적으로 음악은 완벽한 수학적 신호와 같다. 듣기에도 아름답지만 구조적으로 완벽한 바하의 음악은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그 구조와 울림이 계산가능하다. 해서 음악을 감상할 때 우리는 우뇌의 심미적인 부분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좌뇌의 수리적인 영역도 자극하게 된다. 잘 알고 있듯이 좌뇌와 우뇌는 서로 다른 영역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은 서로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뇌 사이에 있는 뇌량이라는 부분을 통해 서로 밀접하게 소통하고 있다. 따라서 뇌량이 발달하게 되면 양쪽의 두뇌를 골고루 균형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위의 두 가지 측면은 음악 감상에서 뿐만 아니라 음악교육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음악은 상상을 자극한다는 것, 음악을 통해 양쪽 뇌를 고르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 두뇌를 더욱 건강하게 유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 되도록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외부의 자극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우리는 음악이 들려주는 소리를 깊이 있게 향유하고 또한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된 음악 감상을 통해 우리는 선율과 화성, 그리고 리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며 그러한 단계에서 우리의 양쪽 두뇌는 서로 긴밀히 소통하는 가운데에 심미적, 수리적 학습능력이 고르게 발달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서영완 작곡가

2019-02-12 11:08:32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설날에 우리 개가 아픈 이유는?…풍요로운 먹거리, 병 부른다

코코(포메라니안·4)가 내원했다. 설날에 부침개를 맛있게 먹은 후 저녁부터 잠을 못 자고 아파한다고 했다. 검사 결과 급성 췌장염이었다.같은 날 병원을 찾은 뽀(시츄·15)도 먹성이 좋은 아이였는데, 최근 체중이 빠지고 3일 전부터는 먹지도 못하고 기운이 없다고 했다. 검사 결과 만성 췌장염이 악화하여 췌장뿐 아니라 복강 내 주변 장기에도 광범위하게 염증이 퍼진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췌장은 위와 십이지장에 걸쳐 위치하며, 십이지장으로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소화 효소를 분비하는 장기이다.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분비되는 곳이기도 하다.건강한 개가 갑자기 췌장염에 걸릴 경우(급성 췌장염) 주 증상은 식욕부진, 복통, 구토와 설사다. 위장염의 증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노령견의 경우 췌장과 분비 도관 주변이 섬유화되어 굳어버린 상태에서 췌장염이 발병(만성 췌장염)하면 췌장 조직뿐 아니라 주변 장기에도 염증과 괴사가 진행돼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췌장염을 유발하는 주원인은 고단백 고지방 식이 습관이다. 사료보다는 육포, 개껌, 고기류를 즐겨 먹는 소형견과 식탐이 있고 비만한 개에게서 잘 발병한다. 만성 장염, 담관염, 당뇨, 탈수, 빈혈 증상이 이차적으로 췌장염을 유발할 수 있다. 또 고지혈증을 유발하는 다양한 질환들이 췌장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때로는 디스크 치료와 수술 환자에게 집중적으로 투여되는 약물이 췌장염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췌장염 진단은 혈액검사를 통해 간단히 이루어진다. 췌장염은 초기에 진단하여 집중적으로 치료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식성이 까탈스러운 소형견, 식탐이 있고 비만한 개가 식욕부진과 소화불량을 호소한다면 췌장염을 의심하고 적극적으로 검사받기를 권장한다.췌장염의 치료는 탈수와 전해질을 교정하고 혈류 순환 개선을 위한 수액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항구토제, 항생제, 진통제가 증상에 따라 처방되며, 복통이 심하거나 기력이 현저히 약해진 노령견은 중환자 수준의 집중적인 약물치료와 혈장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췌장염이 완화될 때까지는 수액 치료와 절식을 권장하며, 췌장염이 확연히 호전될 경우 탄수화물 위주의 식이 처방을 시작하게 된다.증상이 호전된 후에도 일주일 정도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 또는 처방식(INTESTINAL, LOW FAT) 급여를 권장한다. 탄수화물인 쌀밥으로 죽을 만들어 처방식 캔을 소량 혼합하여 주는 것도 가능하다.췌장염은 재발이 잘되는 질환인 만큼 예방을 위해선 평상시 식습관을 잘 관리해야 한다. 저단백·저지방 사료를 권장하며, 비만한 개는 사료 급여량을 줄이고 체중 감량을 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즐기는 육류나 육포와 간식, 개껌은 주지 않도록 한다.풍요로운 먹거리가 췌장염을 유발하기 때문에 췌장염을 '부자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제는 소식(小食)이 '웰빙'이고 '미덕'인 시대가 된 셈이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2-12 09:36:18

백왕흠 대구시 스마트시티과장

[기고] CES 2019 견문록, 미래의'혜안'을 얻다

전 세계의 국가와 도시들이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과 철학을 쏟아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국제전자제품박람회)는 미래 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특히 매년 새해 벽두에 전시회가 개최된다는 점에서 한 해의 IT 기술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가장 주목받는 전시회이다.CES 2019 대표 기술 트렌드는 인공지능, 스마트 홈, 디지털 헬스케어, e스포츠, 복원력을 갖춘 스마트시티 등 5가지로 이 중 '스마트시티'는 자주 거론되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트렌드로서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 아래 세계적이고 거대한 물결로 다가왔다.오늘날의 국제전시회는 드론, 자동차뿐만 아니라 크루즈 선박까지도 모두 아우르는 초대형 전시회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이동수단뿐 아니라 도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옮기려는 듯 스마트시티라는 미래의 모습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도시가 어마어마한 양의 빅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CES는 참관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여 주인의식과 함께 세계적인 기술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2013년 처음 참가를 시작으로 2017년부터는 전국 최초로 대구 지역 기업들이 참가하는 대구공동관을 조성하여 각국의 중소기업과 경쟁을 통해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뛰어난 분야는 세계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우리 기술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기술 트렌드에 발맞춰 미래형 자동차, 물, 의료, 에너지, 로봇·IoT라는 5대 신성장 산업에 스마트시티를 더한 스마트 첨단 산업도시로의 발걸음은 대구시가 나아가야 할 필연적인 방향이다.이에 필자는 스마트시티를 테마로 한 CES 전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한껏 기대를 안고 찾았으나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실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어릴 적 공상과학만화 또는 최근의 SF영화에서 보았던 새로운 도시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전시장은 교통과 통신망, 그리고 몇몇 서비스들이 전시되어 있을 뿐 상상 속의 미래도시는 전시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이쯤에서 CES가 말하는 스마트시티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스마트시티는 영화에서처럼 멋지고 으리으리한 인프라로 꾸며지기에 앞서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 통계를 통하여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서비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민이 함께하는 그런 도시여야 한다는 의미로 판단된다. 지금 국내외에서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역시 보여주기식이 아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과 기술의 조화를 바탕으로 한 '혜안'을 도시 안에 심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CES의 본거지인 라스베이거스, 스마트시티로 유명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등의 주도가 아닌 우리 대한민국, 그리고 그 속에 우리 대구시가 그러한 혜안을 바탕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개방된 서비스 구현과 ICT 기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스마트도시가 구축되고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보여 줄 것과 볼 것이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2019-02-12 05:30:00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필름통]노년이 아름다운 '미스터 스마일'

세월은 고장도 안 나고, 또 새해를 맞게 한다. 이산 저산 꽃이 피어 분명코 봄일 때도 있지만, 월백(月白) 설백(雪白) 천지백(天地白) 하니 모두가 백발의 벗일 때도 피치 못할 일. 인정머리 없이 덧없이 흘러가니 무정세월이 아니겠나.그러나 세월을 비웃듯 여전히 왕성한 이들이 있다. 전설적인 하드록 밴드 AC/DC의 브라이언 존슨(70)이 새 앨범을 준비한다는 보도가 열흘 전에 나왔다.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계속해오고 있는 그들이 앨범까지 새로 준비한다는 것이다. 밴드의 앵거스 영(61)은 지금도 20대의 그처럼 반바지를 입고 천진난만한 퍼포먼스로 무대를 뛰어다니고 있다. 1970, 80년대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끈 그룹 '스모키'의 크리스 노먼(70)도 중장년층 관객들을 끌고 다니며 공연을 계속 하고 있고,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76)는 66세에 '더 월 라이브'를 기획해서 3년간 투어를 하기도 했다. 식지 않는 열정들이다.또 한 사람. 영원한 꽃미남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83). '스팅',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으로 숱한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배우다. 여든을 넘긴 그가 지난해 '미스터 스마일'을 찍었다. 얼굴에 주름은 있지만 여전히 따스한 눈빛에 맑은 미소가 아름답다. '미스터 스마일'은 그의 은퇴작으로 은행강도 포레스트 터커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평생 16번을 탈옥한 터커는 은행에 들어가 총 한 방 쏘지 않고, 사람도 다치게 하지 않는 품위 있는 노신사 강도다.변호사가 그에게 "당신처럼 재주 있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돈을 벌수 있을텐데"라고 하자 그는 "이건 생계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 한다. 비록 강도짓을 하지만, 터커는 열정과 꿈, 도전을 즐기는 특이한 캐릭터다. '선댄스 키드'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 로버트 레드포드의 삶이 투영되기도 한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책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무정세월만 탓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filmtong@hanmail.net

2019-02-11 19:30:00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망국의 옹주, 덕혜옹주

문화재청은 지난달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가 한글로 쓴 친필 자료가 미국에서 환수되었음을 크게 알렸다. 덕온공주는 조선 23대 왕인 순조의 셋째 딸로 왕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칭하는 '공주'라는 점에서는 마지막 공주가 된다. 그런데 왕과 후궁 소생의 딸을 칭하는 '옹주'까지 포함하면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1912~1989)를 마지막 공주라 할 수 있다.1912년 5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덕수궁 함녕전에 있던 고종은 아기의 울음소리에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았다. 환갑을 맞은 해에 딸이 태어난 것이다. 귀인 양씨 소생의 덕혜다. 고종은 덕혜를 끔찍이 아꼈다. 늘 딸을 찾았으며, 자신의 거처인 함녕전으로 아기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1916년 4월에는 다섯 살 난 덕혜를 위해 덕수궁 준명당(浚明堂)에 유치원을 만들고, 딸의 동년배 5, 6명을 함께 다니게 했다.그러나 부녀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승하했다. '황제의 혀와 치아가 다 타 없어지고 온몸이 퉁퉁 부어 오른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기록에서 보듯 일제의 독살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고종의 승하는 여덟 살 덕혜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1921년 4월 덕혜는 일본 거류민이 세운 일출소학교에 입학했고, 일제의 압박 속에 1925년 3월에는 낯선 땅 동경으로 향했다. 동경의 여자학습원에 다니던 시절 덕혜는 늘 보온병을 들고 다녔고 그 안에 있는 물만 마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독살이라고 믿은 덕혜는 늘 독살의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1926년 오빠 순종의 죽음과 1929년 생모 양씨의 죽음이 이어지면서 고국에 의지할 인물 없이 이국 땅 일본에서 덕혜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그녀의 나이 20세 때인 1931년 5월 8일에는 일제의 정략결혼 정책에 의해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결혼했다. 일본인 아내를 맞은 오빠 영친왕과 같은 운명을 밟은 것이다.결혼 1년 후 딸 정혜(正惠)를 낳으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망국의 옹주로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인지 조현병이 찾아왔다. 남편은 집에서 간병을 하다 1946년 정신병원으로 덕혜를 옮겼고, 두 사람은 1955년 합의 이혼에 이르렀다.덕혜는 흐릿한 정신 속에서도 어린 시절을 보낸 고국 궁궐에 가기 원했다. 이 무렵 서울신문 김을한 기자는 그녀의 귀국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왕실의 상징인 덕혜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2년 1월 26일, 51세의 나이가 된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37년 만에 맛보는 감격이었다. 당시 언론은 "구중궁궐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산천이 낯선 외국으로 끌려간 데다 왜인과 뜻하지 않은 강제 결혼으로 정신병자가 되었다"고 그녀의 아픔을 대변하였다.귀국 후 그녀가 머물렀던 곳은 서울대병원. 병원에서의 요양도 큰 차도가 없자 1967년 거처를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로 옮겼다. 낙선재에는 영친왕비인 이방자 여사가 거처하면서 덕혜와 말년을 함께 보냈다. 조선 왕실 마지막 여인들은 운명도 같은 해에 했다. 1989년 4월 21일 덕혜가 세상을 떠난 지 9일 후에 이방자 여사도 그녀를 따라갔다.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 고종의 승하는 덕혜옹주 개인에게는 망국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비극적인 삶의 출발점이었지만 거족적인 민족운동인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망국의 공주로 살아간 덕혜옹주의 삶, 그리고 3·1운동의 함성이 메아리쳤던 100년 전 역사를 기억했으면 한다.

2019-02-11 19:30:0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 百善孝爲先(백선효위선) : 모든 선은 효에서 시작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효(孝)를 자식(子)이 늙은(老) 부모를 받들고 있는 모양으로 풀이한다. 중국 최초의 한자 사전 '이아'(爾雅)는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 효'(善事父母爲孝)라고 정의했다.동양에서는 효를 모든 행실의 근원(百行之源)으로 삼았고, 효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백유가 매를 맞으며 어머니의 힘이 약해진 것을 느끼고 눈물 흘린 고사(伯兪之孝)가 있고, 까마귀가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반포지효(反哺之孝)도 있다. 수호전(水滸傳)에는 흑선풍 이규(李逵)가 넓적다리 살을 도려서 어머니에게 국을 끓여 준 이야기가 나온다.'효경'(孝經) 첫 편에 공자와 제자 증자(曾子)의 대화가 있다. 공자 왈 "선대의 제왕은 높은 품행과 도덕이 있어 천하의 민심을 얻었고 백성들이 화목하게 살았다. 지위와 신분을 떠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알겠는가?" 증자는 "우둔한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하고 답했다. 공자 왈 "바로 효이다. 효는 도덕의 근본이고 교육의 원천이다"고 일렀다. 효는 개인의 행실만이 아니라 억울한 백성이 없는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말이다.예전에 서울에서 공부할 때 엄마는 마포 석불사에서 내가 있는 관악사까지 매주 먹거리를 한 가방씩 메고 오셨다. 졸업할 때까지 그랬다. 나는 엄마가 힘들게 가져오는 게 싫어서 늘 안 먹는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때 나는 엄마의 사랑을 알려 하지 않았다. 얼마 전 조촐하게 팔순 잔치를 했다. 어린아이처럼 웃는 모습을 보는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날 엄마를 보며 행복했다. 매일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 어지럼증으로 고생하시지만, 그래도 설거지는 꼭 당신이 하신다. 부모의 내리사랑은 자(慈)라고 한다.

2019-02-11 19:30:00

인수일 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과학과 스포츠의 시너지 효과

과학은 합리적이고 안전해야 한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선진국에서는 과학과 스포츠 모두를 강조한다. 이 둘은 달라 보이지만 많은 공통점이 있고 분명한 시너지 효과가 있다.운동선수로 대성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이 스포츠의 목표가 아니며 천재 물리학자를 만들어서 노벨상을 받게 하는 것이 과학의 목표도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 질서와 안전을 배우고 목표를 향해 합리적인 도전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이 둘의 공통점이다.그래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안전한 사회로 만들어 가는 데 스포츠와 과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올림픽을 유치하는 이유는 스포츠를 잘해서가 아니라 안전하고 공정하게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시민의식과 선진화된 과학적인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다.과학도 스포츠도 모두 뇌를 써야 한다. 우리의 뇌가 특별하게 발달한 이유는 몸을 쓰기 위해서이다. 몸을 쓰지 않는 동물의 뇌는 퇴화한다. AI의 발달로 우리의 삶이 더없이 편리해진 지금 더욱 강조되는 것이 스포츠 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한창 운동을 통해서 체력과 정신력을 길러야 할 아이들은 학원에서, 직장인들은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갈된 체력은 안전사고를 유발하고 일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우리가 국가경쟁력을 잃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청소년과 성인의 학습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상위인 반면 교육 효율성은 최하위로 나타났다.이공계 석박사 과정은 내용도 어렵고 몸도 힘들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연구는 체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체력이 바닥나면 집중력을 잃고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입시 경쟁력도 체력에서 결정된다. 몸에 좋은 보약보다는 운동장을 뛰는 학생이 입시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 스포츠 경기도 탄탄한 기초 체력에서 승부가 갈린다. 히딩크 감독이 앞세운 것도 체력이다. 체력이 강해야 전술도 통한다. 한국 청소년의 방과후 운동량이 OECD에서 최하위에 있다는 것은 듣기 좋은 소식이 아니다.스포츠는 또한 과학기술의 집약체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첨단 과학을 적용한 의복이나 용품이 개발된다. 고가의 소재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사용된다. 기본적인 동작에는 고전 물리가 적용되지만 인공위성의 도움으로 GPS가 장착된 장비도 많다. 요트는 한 줌의 바람을 잡기 위한 기술과 두뇌 싸움이 승부를 가른다. 스포츠를 통해서 경쟁을 해봐야 기록을 줄이기 위한 과학적인 훈련과 장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과학적인 창의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필자에게 묻는다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기 보다는 다양한 스포츠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요트를 타면 바람을 다룰 수 있다. 골프를 치면 고전 물리를 체득할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 점프장에 서면 도전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을 달에 보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

2019-02-11 19:30:00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갓떼구루마 발통.

우리나라 동요 '상어가족'이 1월 초 빌보드 싱글차트 핫 100위에 들어 32위까지 올라가더니 현재도 30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우리 동요가 이런 높은 평가받기는 처음이다. 스마트 스터디에서 자유교육 콘텐츠 핑크퐁으로 발표했던 곡이 이렇게 유명해지다니 놀라운 일이다. 상어가족이 히트를 치자 이 곡은 원래 영미 권에 있던 구전동요를 편곡했다느니 표절했다느니 등의 군소리도 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문화는 서로 섞여서 돌아가니 이런 이야기는 귓전으로 흘려도 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스마트 스터디는 북미지역을 대상으로 상어가족을 만화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동요도 옳게 없던 나라에 이런 날이 오다니."갓떼구루마 발통 누가 돌렸노? 집에 와서 생각하니 내가 돌렸다."이 노래를 모르면 대구 사람이 아니다. 해방 후 우리 말 동요가 없던 시절 애들은 고무 줄 놀이를 하거나 운동경기를 할 때 주로 '무찌르자 오랑캐'라던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등의 군가를 불렀다. 간혹은 '갓떼구루마'도 불렀는데 딴 노래 가사도 이해를 다 못했지만 특히 이 노래의 노랫말은 어른이 된 뒤에도 뜻을 알 수가 없었다.일본어로 구루마가 자동차인데 차바퀴를 돌렸다니 그 것도 말이 안 되고 대구서는 수레를 구루마라고 했으니 말이나 소가 끄는 수레(구루마)의 발통을 돌리다니 그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이기다 는 말이 일본어로 '카츠'라고 한다. 그렇다면 '갓떼구루마'는 일본어이고 '누가 돌렸노?'는 대구 말이다. 두 나라 말을 합쳐도, 풀어도 해석이 안 된다."갓떼구루조또 이사마시꾸(이기고 오겠노라 씩씩하게 勝ってくるぞと勇ましく)/ 지깟떼 구니오 데따까라와(맹세하고 고향을 떠나왔으니 誓って故郷を 出たからは)/ 데가라다떼즈니 시나료까(공을 세우지 않고 죽을까소냐 手柄立てずに 死なりょうか)/ 신군랏빠 기꾸따비니(진군 나팔 울려 퍼질 때 進軍ラッパ 聞くたびに)/ 마부따니 우까부 하따노나미(눈동자에 서린 깃발의 파도 瞼に浮かぶ 旗の波") -'로에이노 우따 (露営の歌-노영의 노래)' -작시 야부추치 키이치로(藪内喜一郎), 작곡 코세키 유우지(古関裕而)-이 노래는 1937년 9월에 발매된 일본 컬럼비아 레코드사 레코드 '진군의 노래(進軍の歌)'의 B면 수록곡이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군의 사기 고취를 위해 마이니치신문이 군가의 가사를 공모했고, 혼다 노부야스(本多信寿)와 야부우치 키이치로(薮内喜一郎)의 가사가 입선되었다. 그 중 야부우치의 작품을 시인 키타하라 하쿠슈와 작가 키쿠치 칸등이 '노영의 노래(露營の歌)'라고 제목을 붙이고, 작곡가 코세키 유우지(古関裕而)가 곡을 붙여서 만든 일본 군가다. 그 곡이 우리 동요가 되었다.노영이란 우리 식의 말로는 숙영(宿營)이라는 말이다. 노영의 노래와 비슷한 우리군가를 비교해보자.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외투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거뜬히 총을 메고 나서는 아침 눈 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이 강산 위에 서광을 비추고자 행군이라네."'갓떼 구루조또'가 '갓떼 구루마 발통'이 된 것이었다. 일본군가를 우리말 동요로 알고 불렀는데 누구하나 말리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어른은 없었다. 어른이 되어 양쪽 군가를 비교해보니 그 차이가 흥미롭다. 저 쪽은 이기고 돌아오겠다고 살벌한 행군을 하고 이 쪽은 산숭해심(山崇海深)에 서광을 비추고자 여유작작한 행진을 한다.전 대구적십사병원 원장

2019-02-11 14:11:55

이성환 계명대 교수

[세계의창] 두 가지의 타락

박근혜 정부 입맛 맞춘 양승태 사단日 배상 뒤집을 궁리하며 판결 지연이래저래 만신창이 된 한국 사법부日, '야만적'이라 해도 할 말 있겠나1891년 5월 11일 시베리아 철도 기공식 참석차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에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황태자의 경비를 맡고 있던 '쓰다 산죠'라는 경찰이 차고 있던 칼로 황태자를 찔렀다. 우측 머리에 9㎝의 상처를 입은 황태자는 평생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3년 후 황제로 즉위했다.사건 다음 날 천황은 황태자가 치료를 받고 있는 호텔에서, 일주일 후에는 그가 머물고 있는 군함에서 사죄했다. 아직 소국이었던 일본은 당시 세계 최대의 대륙 세력으로 불리던 러시아가 선전포고를 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국가 존망의 위기였다.국민들은 길거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학교는 휴교를 하고 전국의 신사와 절에서는 황태자의 쾌유를 비는 기도회가 열렸다. 심지어 생선 가게 점원인 하다케야마 류코는 황태자에게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글을 보내고 교토부 청사 앞에서 자결하기도 했다.주일러시아 대사는 범인의 처형을 요구했고, 일본 정부도 사형 방침을 밝혔다. 문제는 형법에 일본 황실에 위해를 가한 자(대역죄)는 사형시키도록 되어 있으나, 니콜라이 2세는 일본 황족이 아니었다. 정부는 대역죄를 적용해 사형 판결을 내리도록 고지마 고래카타 대심원장(대법원장)을 압박했다. "법을 엄히 지켜 나라가 망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고지마는 "형법에 없는 죄명을 적용하여 처벌하면 일본은 법치주의를 모르는 야만국이 된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헌법 제정자이며 귀족원 의장인 이토 히로부미는 계엄령을 선포해서 그를 처형하자고 했다.정부 대신 중에는 재판 없이 즉시 납치, 총살하자는 자도 있었다. 러시아의 보복을 두려워한 행동들이었다. 그럼에도 산죠는 살인미수죄를 적용받아 무기징역에 처해졌다(두 달 후 폐렴으로 옥사). 러시아는 보복하지 않았고, 사건 당시 산죠 검거에 도움을 준 일본인 인력거꾼에게는 상금과 평생 연금을 제공했다.국가 존망의 위기에서도 고지마 대심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을 지켰다. 그의 판결은 국제적으로 일본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였고, 문명국가 일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3년 후 일본은 니콜라이 2세의 제정 러시아와 전쟁에서 승리했다. 사법부 독립의 전통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현재 일본 헌법은 어떠한 경우에도 특별재판소의 설치를 금지해, 다른 권력의 재판 개입을 막고 있다. 대법원 판사는 10년마다 투표로 국민의 신임을 받아야 하며, 법률 전문가가 아닌 유식자도 대법관에 임명될 수 있다.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프랑스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두 가지의 타락이 있다.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와 법 때문에 국민이 타락하는 경우이다"고 했다.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적용하는 사법부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사법부 및 법관의 양심의 독립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법복이 검은 이유는 어떤 색깔에도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일본은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판결을 잘못하면 "한일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 사전 경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나라 망신이 안 되도록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양승태 사법부는 기민하게 한국과 일본 정부에 발 맞추려 했다. 사법부의 독립을 포기한 '야만'이다.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을 궁리를 하면서 판결을 계속 미뤘다. 소송 당사자들의 사망을 기다리는 듯했다.한국 사법부가 이래저래 만신창이다. '야만'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자기 나라의 법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한국 사법부의 '야만성'을 엿본 것일까. 자기만의 논리에 젖어있는 섬나라 근성일까. 일찍이 사법의 독립은 근대국가 문명의 척도였다.

2019-02-11 14:03:35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매일춘추]설 명절의 화두(話頭)는 '토정비결'  

설 연휴가 끝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설 명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집안 어른들의 얘기다. 흔히 '설'이라면 음력 정월 초하루를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24절기(節氣)로 따져 초승에서 보름(음력 1월 15일)까지 내내 설 명절이라는 것이다. 이 기간 제기차기, 윷놀이, 지신밟기 등 각종 민속놀이를 즐기다 보름을 맞이하면 오곡밥에 부럼을 먹고 액땜을 한다. 그리고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맞이로 새해의 소원성취를 비는 것이 설 명절의 대미(大尾)라고 했다.하지만 이 같은 고유의 민속놀이는 대부분 사라지고 이젠 육갑(六甲)을 짚고 운세풀이 하는 토정비결만 전한다. 한 해의 운세풀이는 예부터 민초들이 즐겨온 세시풍속 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설날 차례상 앞에서 나누는 덕담도 으레 토정비결이 화두가 된다고 했다. 조선조 중엽의 학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䓿․1517~1578)이 지은 예언서로 길흉화복을 점쳐온 신수풀이를 말한다. 새해가 밝으면 으레 토정비결의 신통력을 믿고 한 해를 점치며 살아갈 만큼 우리 삶의 도참(圖讖)으로 정착돼 왔다.우리 국민의 93.5%가 토정비결을 본다는 반세기 전(1969년) 정부의 표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DNA(유전자)에 기복(祈福)문화가 깊숙이 스며 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엔 새마을운동이 확산되면서 토정비결이 한때 민심을 현혹하는 샤머니즘으로 매도되기도 했으나 2000년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자 누구나 손쉽게 검색에 들어가 토정비결을 즐겨 보고 있다.올해엔 각 이동통신사와 금융기관에서도 새해 이벤트로 토정비결 온라인을 개설해 고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유명 역술인들의 주역풀이 결과 올해 우리나라 국운엔 어두움이 깔려 있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운세 역시 정책수행의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쩌면 끊임없이 수난의 역사를 겪어온 한국인 특유의 징크스에서 비롯된 역술풀이인지도 모른다.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한국 점술시장 규모가 연간 37억 달러(약 4조원)에 이르고 역술인만도 줄잡아 30만 명 이상이라며 한국의 샤머니즘 경제학을 보도한 일도 있다. 국내 각 일간지에서도 '오늘의 운세'란을 개설해 매일 지면을 할애할 만큼 한국의 유별난 운세 경제학에 외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2019-02-11 10:59:41

윤상화 시인 사회학 박사

[기고]문화와 스토리가 있는 명품 유통단지

매서운 경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미·중 통상 마찰 등 대외 불확실성, 내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으로 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세계 각국은 혁신을 통해 미래를 선도할 전략 산업을 육성하여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전통시장에도 문화를 입히고 스토리텔링으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가고 있다.대구시에서도 험난한 경제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 물, 의료, 미래형 자동차, 에너지, 로봇, 스마트시티 조성 사업 등의 미래 전략 산업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21년 엑스코에서 개최되는 세계가스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엑스코 제2전시장 건립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도시철도 엑스코선 건설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또 엑스코 남쪽 앞 광장에 패션창조거리를 조성하여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의 특화산업인 패션산업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하고 있다.작년에는 유통단지 중심에 있는 신기공원에 치맥 축제의 단초가 된 신기 부화장을 상징하는 달걀 모양의 조형물과 포토존, 고보조명 등으로 경관조명을 설치하여 유통단지를 한층 밝고 아름답게 조성했다. 금년에는 신기공원에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이 더위를 식히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물놀이장을 개장하기 위해 하나하나 준비하고 있다. 북구청과 지역 주민들은 2015년부터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 이인성이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웠던 산격동에 '이인성 사과나무 거리'를 조성해서 운영하고 있다.이제 대구종합유통단지도 시대적 환경 변화에 걸맞게 혁신과 변화를 통해 한마음으로 뭉쳐 세계적인 전통시장과 같이 문화와 스토리가 있는 명품 시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이를 위해 첫째, 이인성 사과나무 거리와 연계하여 유통단지 산업용재관에 이인성 화가의 그림을 벽화로 그리는 등 이인성 거리를 조성하여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품격 있는 시장으로 변모시켜 나가야 한다.둘째, 젊은이들에게 핫한 먹거리를 제공하여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야간 푸드 트럭을 운영하여 야간에도 청년들이 몰려드는 생동감 넘치는 청년의 거리로 조성해 나가야 한다.셋째, 대구종합유통단지는 대부분 주간 영업으로 야간에는 유동 인구가 적고 거리 전체가 어두워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기공원을 중심으로 유통단지 조명 계획을 종합적으로 수립하고, 상가 건물과 가로등, 가로수 등에 야간 조명을 설치하여 이미지를 밝고 화려하게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넷째, 세계가스총회에 대비하여 산만한 유통단지 상가 간판을 현대적 트렌드에 맞게 산뜻하게 정비하고 거리를 새롭게 단장하여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나가야 한다.다섯째, 엑스코와 인터불고 호텔, 유통단지 상가 등에 이인성 그림을 전시하여 격조 높은 상가로 조성해 나가야 한다.대구종합유통단지 일대에 이인성 화가와 관련된 조형물 등을 설치하고 벽화를 그려 스토리를 입히고, 신기공원과 유통단지 가로수로 관상용 사과나무를 심어 유통단지 전체를 이인성 존으로 확대 조성하여 문화와 스토리가 있는 품격 높은 명품 상가로 조성해 나가야 한다.

2019-02-10 14:53:46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성리학과 도시브랜드

기술·전문성 천대한 성리학 습성아직도 정부 당국자에 뿌리 깊어전문성 필요한 도시 브랜드 개발 시민 투표 아닌 전문가에 맡겨야조선은 단연 성리학의 나라였다. 세상만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성리학의 틀 안에 집어넣었다. 이조판서든 공조판서든 따지고 보면 다 성리학자였고 그림 그리는 도화서도 의약을 다루는 내의원도 모두 성리학자의 통솔 아래 놓여있었다. 결론적으로 성리학은 경계를 넘어선 무불통지(無不通知)의 학문, 절대 권위의 이념 체계처럼 사람의 일상과 머릿속을 속속들이 관장하고 지배했다. 그리고 그런 성리학의 절대적 권위는 오직 사대부, 즉 양반들의 것이었다.양반들은 성리학을 앞세워 무엇에든 간섭하고 무엇이든 평가를 내리며 내내 조선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했다. 그들에게 있어 성리학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 즉 인간의 재능과 노력이 만들어내는 기타의 결과물이나 지식들은 다 하찮은 것일 뿐이었다. 조선은 그런 나라였다. 사람에 더해 학문과 지식까지 차별할 만큼 온갖 것에 차등을 두었다. 그리고 대략 100여 년 전, 그랬던 조선이 몰락했다.지금의 세상은 그때와는 모든 것이 딴판이다. 나라의 형태와 권력의 구조가 바뀌었고 경제와 산업의 생태계도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양반도 없고 하늘의 해처럼 모든 곳을 내리쬐던 성리학도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습성, 기술을 천대하고 전문성을 무시하던 그 뿌리 깊은 습성만은 곳곳에 살아남아 자리를 틀고 있다. 거기엔 대개 조선의 양반이 그랬던 것처럼 나 정도 되면 웬만한 건 다 지도 편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류가 뜨니 온갖 정책에 무시로 K-POP을 갖다 붙이고 걸핏하면 연예인을 행사에 동원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여기에는 오페라도 아닌 대중음악쯤이야 쉽게 개입하고 참견해도 되는 것쯤으로 낮춰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들 대부분이 정작 K-POP을 알지도 못하고 평소 즐겨 듣지도 않으면서 말이다.10여 년 전 SM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가 한 모임에서 정부 관계자들에게 호소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아무것도 안 도와줘도 되니 제발 자기들을 그냥 좀 내버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현 정부는 급기야 한류 팬을 1억 명까지 늘리는 것을 국정과제로 삼았다.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히트를 칠 때 그를 독도 홍보대사로 위촉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처럼 SM엔터테인먼트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부의 '지원과 격려'는 어렵게 개척한 해외시장을 위협하는 하나의 불안 요소일 뿐이다.같은 맥락, 즉 이념이나 권위에 짓눌린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울시의 황당한 도시 브랜드 'I.SEOUL.U'도 마찬가지다. 운용이 불가능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더 황당했던 건 당시 서울시의 설명이었다. 새 도시 브랜드는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의견을 모아 함께 결정한 것이므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냐는 거였다. 세상에! 이런 식이라면 환자의 치료 방법도 의사가 아니라 시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게 맞다.도시 브랜드에 관해선 대구시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무려면 '컬러풀 대구' 이상 나올 게 없을 만큼 대구란 곳이 콘텐츠와 정체성이 빈약한 도시일까? 그건 아니다. 시간과 돈을 들이고도 '핫플레이스 대구'라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온 건 그것밖에 못 내놓을 사람들이 그 일을 했거나 그런 사람들이 간섭했기 때문이다.브랜드 개발은 브랜드 전문가가 하는 일이다. 서울시처럼 시민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국문학자나 역사학자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애플을 비롯해 다양한 BI(Brand Identity) 프로젝트를 수행한 마티 뉴마이어(Marty Neumeier)는 '브랜드란 당신이 말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그 무엇이다'라고 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말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 정체성을 이해하고 콘셉트를 수립하며 직관, 유추, 통찰, 공감, 몰입을 통해 그것을 형상화시키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 브랜드 개발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전문성이 필요한 일은 제발 전문가에게 좀 맡기자. 오죽하면 한 젊은 디자이너의 새해 소원이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기'일까?

2019-02-10 14:53:12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2‧28 민주운동의 근간, 왜 대구인가?

2·28 민주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두 번째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8개 공립학교 학생들이 "학원을 정치 도구화 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다.경북고에서는 학생들의 의기가 달아오르자 학생부위원장 이대우와 학생위원 안호영이 단상에 올라 "인류 역사 이래 이런 강압적이고 횡포한 처사가 있었던고"로 시작하는 결의문을 선언하고 교문 밖으로 진출하였다. 매일신문사, 경북도청, 도지사 관사로 나아가 결의문을 재차 선언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호소하였다. 나머지 일곱 개 학교에서도 시간, 경로, 학생 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궐기하였다.조동걸(1997)과 윤순갑(2000)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28 민주운동은 시대의식을 반영한 이성적 운동이며, 여러 학교가 동시에 궐기한 조직적 운동이고, 부정선거와 독재에 항거하는 목적이 분명한 의거였다. 나아가서 2·28은 3·15 마산의거의 배경이 되었고 4·19 혁명의 꽃을 피움으로써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그렇다면 왜 하필 대구에서 2·28 민주운동이 일어났는가? 2·28의 배경으로 꼽히는 이승만 정권의 부패, 독재정권의 강권적 억압, 경제 불황과 토지개혁 실패 등은 남한 전역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따라서 대구와 2·28의 개연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 오히려 대구가 지닌 역사성, 영남인이 지닌 역사의식 속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영남은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 원광(경주 출생)은 전쟁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는 정신을 강조했고, 원효(경산)는 모든 대립적인 논쟁과 갈등을 화합과 조화로 바꿀 수 있음을 설파했다. 이런 정신들이 삼국통일과 단일민족개념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다.여말선초엔 절의(節義)의 대명사이며 성리학의 비조(鼻祖)인 정몽주(영천)가 있었고, 조선 성리학의 학맥은 길재(구미), 김숙자(선산), 김종직(밀양), 김굉필(달성), 정여창(함양), 이언적(경주)을 통해 이어졌으며 이황(안동)에 이르러 사물과 사태의 본질 및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그래서 불의에 비타협적인 학풍을 꽃피웠다.근대에 와서 최제우(경주)는 동학을 창시했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그의 인내천 사상은 사회 모순에 저항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사상을 심어 주었다.이처럼 영남의 사상적 전통은 영남이라는 지역을 넘어 민족사상의 큰 물줄기를 형성해 왔다. 이런 정신적 근간(根幹)이 역사의 고비마다 영남이 앞장섰던 이유이고 영남의 중심인 대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운동이 일어났던 까닭이다. 선조들이 각각의 시대 상황에서 처절하게 고민하여 시대의 물줄기를 바꿨듯이 59년 전의 선배들도 독재정권의 불의에 고뇌하고 맞서 한국현대사를 바꿨다.그런데 현재 대구의 모습은 어떠한가? 노력 없이 상속받은 '보수의 심장'이라는 브랜드에 취해 선배들이 지녔던 문제의식, 역사의식 그리고 엄한 도덕성에 바탕을 둔 진취적 기상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2·28 민주운동 59주년을 맞아 영남인 본래의 정신적 유산과 가치를 고양시킬 때이다.

2019-02-09 03:30:00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 통일과정의 동서독 교훈

긴장 완화와 공존 정책 펼친 서독동독과 동구권 전체 붕괴 이끌어北을 국제사회 규범 따르게하여불법적인 핵'미사일 좌절시켜야내년은 독일 통일 30주년이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동서독 통일 과정은 이미 역사 속의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점이 많다. 냉전시기 분단된 동서독 관계는 동독의 국가성 인정 문제로 출발하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9년 서독 지역에 출범한 아데나워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하여 할슈타인(Halstein) 원칙을 공식화했다.할슈타인 원칙은 서독 정부가 합법적으로 구성된 유일한 정부로서 동독 정부와 외교적 관계를 맺는 국가와는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소련의 베를린 봉쇄가 연합국에 의해 좌절되고 동-서 베를린을 통해 동독인들의 탈출 러시가 증가하자 소련과 동독은 1961년부터 베를린 장벽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이 서방 세계의 완충으로서 동서독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독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서독의 단일 대표성을 인정하였고 동독의 유엔 가입은 1973년까지 좌절되었다. 닉슨의 중국 방문 등 동서 냉전이 데탕트 움직임을 보이자 서독의 브란트 정부는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고 긴장 완화와 상호 교류를 골자로 하는 '동방 정책'을 추진하였다. 1970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상주대표부 설치 등을 통해 양독 관계는 사실상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이후 동독은 영국,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74년에는 미국과도 국교를 수립하였다. 1980년대 다시 신냉전이 도래하기 전까지 유럽 내에서는 다자간 안보협력회의(CSCE)까지 출범시키는 등 밀월기를 가질 수 있었다.냉전의 전형적 분단국인 우리도 데탕트에 힘입어 1970년 초부터 남북 대화를 시작하였으나 김일성 수령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는 북한과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군사 정부 간의 대결구조 속에서 냉전의 밀월 효과를 향유할 수 없었다. 이후 우리의 긴장 완화 노력은 유럽보다 무려 20년 늦게 진행되고 만다. 1990년 냉전이 해체되고서야 남북은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유엔에 동시가입하였다. 북한의 국가성 인정과 특수관계로서의 남북관계를 동시에 규정한 것이다.동구권 붕괴와 같은 국가 붕괴 사태를 겪지 않으려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북한과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한미의 대응으로 북한은 냉전 해체기에 처절한 생존에 성공하였다. 동서독이 1970년대부터 시작한 긴장 완화와 화해 협력이 한반도에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야 시작될 수 있었다. 이후 10년의 진보, 10년의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고 그동안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지금의 핵보유국의 길을 걸어오게 된 것이다.서독의 브란트 정부가 동방 정책을 내걸었을 때 서독 내 보수진영의 반대는 극렬했다. 동독 체제의 연장과 통일의 영구적 포기가 반대 진영 주장의 골자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시대적 흐름은 동독 체제를 붕괴시킬 수도 없었고 패전국인 서독이 스스로 통일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오히려 긴장 완화와 공존 정책을 통해 동독뿐 아니라 동구권 전체의 이완 과정을 촉진할 수 있었다. 대결보다는 교류 협력을 통해 분단으로 고통받는 동서독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통일 이후 독일 내에서는 동방 정책과 같은 긴장 완화와 평화 정책이 통일에 기여하였는가에 대해 "동방 정책이 없었다면 동구권의 개혁이나 동독의 평화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다수의 평가였다. 중요한 것은 당시 동독이 보인 변화이다. 동독은 그토록 원하던 국가성을 인정받으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자유, 인권, 개방 등에 있어 국제사회의 기준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인적 교류를 허용하고 여행을 자유화하였다. 정치적 박해를 한다는 비난을 받기 싫어서 정치범을 서독에 넘기기도 하였다.냉전이 해체된 지 30년이 지난 늦은 시점이지만 한반도는 전 세계 마지막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대장정에 들어섰다.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이번엔 반드시 좌절시켜야 한다. 북한을 정상 국가화시켜 국제사회의 규범을 따르게 하고 다방면의 교류 협력을 확대하여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고 남북 간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 자유 왕래와 상호 의존성 확대를 통해 공동체적 통일을 추진해 나가면 점진적 통일 과정이 완성될 수 있다. 지난해 남북 대화를 비롯하여 새해 벽두부터 북미 대화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권과 언론, 일반 국민들은 이를 지지하고 성원해야 한다. 앞으로 있을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대화를 통해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2019-02-08 04:30:00

아르바이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알쏭달쏭 생활법률] 주휴수당의 지급범위

Q : 작은 식당을 하는 갑은 바쁜 저녁 시간의 홀 서빙을 위해 아르바이트생 을(乙)을 임시로 고용하였습니다. 1주일에 월, 화, 수 3일 5시간씩 근무하는 조건으로 시급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우 갑은 을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할까요? 지급한다면 얼마를 지급해야 할까요?A : 근로기준법 제55조는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가 1주일을 개근했을 때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사용자는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1주 15시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사안에서 을이 월, 화, 수 3일 출근하여 근무하였다면 갑은 을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을이 하루 5시간을 일한 후 하루에 지급받는 금액은 2019년 최저임금 8,350원을 기준으로 할 때 41,750원인데요. 사안에서 갑은 을에게 하루 동안의 임금인 41,750원을 모두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 15시간의 임금을 6일로 환산한 금액인 20,875원( = 8,350원 × 15시간 × 4주 ÷ 24일)을 지급하면 됩니다.만일 갑이 을과 1일 4시간씩 근무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였다면, 을의 1주당 근무시간은 12시간으로 15시간 미만이 되어, 갑은 을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류제모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변호사

2019-02-07 14:29:12

천영애 시인

[매일춘추]상처를 대하는 방식

키우던 개가 심하게 다쳤다. 한쪽 갈비뼈가 모두 부러진걸 보니 누군가 발로 찼나 보다. 그런데 개는 그냥 가만히 누웠을 뿐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평소에도 몸이 아프면 먹는 것도 중지하고 가만히 견디던 것을 보았던지라 그런 줄 알았다. 아프다고 하지 않으니 아픈 줄도 몰랐다. 오랜 시간이 가도 일어서지를 않아 병원에 가보니 그제서야 아픈 몸이 드러났다.그러고도 개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부르면 눈만 떠 볼뿐 더 이상의 아픈 표시는 내지 않았다. 야생의 짐승은 아프면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아픈 표시를 내지 않는다는데 아마도 야생의 습성이 있어서 통증을 가만히 견디는 모양이었다. 몇 번 동물들 스스로의 치유 능력을 본지라 이번에도 스스로 치유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아픈 개를 돌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조그마한 상처가 있어도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주변에서 내 아픔을 알아주기를 바라던 것을 생각하니 한갓 저 짐승보다 더 못했구나 싶다. 사람은 말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아픔도 말한다고 하겠지만 개는 말까지는 못해도 신음소리까지야 못 내겠는가. 그렇게 상처를 치유한 개는 자기를 아프게 한 대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회피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를 아프게 한 대상을 그만큼 회피하지는 않는다. 용서와 화해라는 이름으로 다시 어울리고 그것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한다.주변사람들과 상처를 견디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로 아픔을 표시해야 하는지, 짐승처럼 아예 가만히 견디는 것이 나은지에 대해서였다. 대체적인 결론은 아픔은 표시하되 너무 심하지는 않게였다. 결국 중도를 찾자는 것이다. 아픔을 표시하자는 것은 그럼으로써 내 아픔을 타인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인데 짐승은 자신의 아픔을 다른 짐승이 알아주기보다 몰라주기를 원한다. 살기 위해서이다. 가만히 웅크리고 누운 개를 보면서 그 치열한 고통의 견딤에 자꾸 마음이 간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사람을 더 만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점점 회피하게 되는데 아마도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짐승의 생존방식과 사람의 생존방식이 무어 그리 크게 다를까 싶기도 하고, 어느 것이 더 나은 방식이라고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를 대하는 방식에서 오히려 짐승에게서 배운다. 천영애 시인

2019-02-07 11:20:57

1941년 박문서관에서 발행된 _탁류_ 재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채만식 '탁류'와 군산의 기억

일본은 쌀을 주식(主食)으로 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춘궁기 보릿고개 체험을 일본 역시 오랜 역사적 시기 동안 경험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은 부족한 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조선의 토지를 강제 몰수한 후, 그 땅에서 수확한 쌀을 매년 일본 본토로 옮겨갔다. 쌀의 운송을 위해서는 항구가 필요했고 조선최대의 곡식창고인 전북평야를 낀 군산은 이 조건에 가장 적합했다.작고 조용한 어촌이었던 군산은 쌀 유통과 운송의 중심지가 되면서 경성에 이어 조선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인구밀도를 지닌 도시로서 급성장한다. 큰돈이 오고 가는 곳에 헛된 욕망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군산은 빛나는 삶의 기회를 한번 잡아보기 위해서 조선 여기저기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댔다. 채만식 소설 '탁류'(1938)에 등장하는 정주사도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 중 하나였다.정주사는 금강 유역 서촌이라는 지방에서 군청서기를 하던 인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종의 명예퇴직을 당하자 가산을 정리하여 가족을 데리고 군산으로 이주한다. 기술도, 이렇다 할 이력도 없는 그가 중년의 나이에 네 명이나 되는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왜 겁도 없이 일본인들이 흘러넘치던 신흥도시 군산으로 건너갔던 것일까.밤이면 강 건너에서 화려하게 빛나던 군산 시가지의 불빛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먹어 본 빵집 이즈모야의 달콤한 단팥빵 맛에 매료되었던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어쨌건 그는 선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선산과 논, 집까지 모두 팔아 치우고는 군산으로 이주해서는 투기꾼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걷는다.정주사만이 아니었다. '탁류'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외지에서 군산으로 흘러들 와서는 도덕적으로건, 경제적으로건 파탄을 겪는다.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던 이십 세의 순수한 여자는 돈 때문에 정조를 버리고, 정직했던 은행원은 공금을 횡령하여 노름과 난봉을 일삼는다. 일제강점기 동안 군산은 일제의 식민지 경제수탈과정에 기대어 급성장하면서 전통도 윤리도 모두 망각해버린 도시였다. 그런 도시에서 누가 삶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군산에 발을 들인 순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도덕적 가치도 잊고, 삶의 이력도 잊고 오로지 욕정과 탐욕에 마음을 빼앗겨간 것이었다.해방이 되어 일본인들이 쫓겨나가면서, 일제가 군산에 부과했던 역할도 사라졌다. 도시를 지탱해 온 경제적 동력이 소멸됨에 따라 군산은 자연히 쇠락의 길을 밟아 갔다. 이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 가옥과 이즈모야 빵집 자리에 들어선 단팥빵 전문점 등 식민지의 상흔이 역설적이게도 대표적 관광 상품이 되어서 군산을 지탱해주었다. 한국 근대사의 희생물인 이 도시가 최근 또 다시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한국 GM이 군산 공장을 폐쇄한 것이다. 근대사의 전철을 다시 밟아 가는듯한 군산의 운명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2019-02-07 11: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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