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1915년, 종이에 담채, 15.1×4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도영·고희동·안중식 '기명절지'

올해는 늦장마로 벼 베기가 좀 늦어진다고 하지만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가을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잎이 달린 동그란 무, 갈대에 꿴 쏘가리 두 마리, 뚜껑이 없는 주전자, 붉은 고추, 가지 채 꺾어온 복숭아와 비파, 수염이 긴 옥수수, 알알이 반짝거리는 도톰한 산딸기, 씨가 가득 박힌 수박 등이 있다. 그림이니 만치 계절은 따질게 못된다. 주전자에 뚜껑을 안 그린 것은 술이 가득 들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 먹거리들은 안주거리거나 비주류(非酒類)의 간식거리일 테다. 아무렇게나 늘어놓아 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청신한 담채의 아기자기한 색깔과 형태의 특징을 살린 시원스런 붓질이 시각적 흥겨움을 더한다.골동 그릇과 화훼류를 그리는 기명절지화에서 기명은 술 주전자로, 꽃 대신 술안주와 먹음직스런 음식물류로 실속 있게 구성했다. 주변에 흔한 정겹고 친근한 소재들 속에 출세와 부귀, 장수와 자손 번창을 상징하는 뜻도 담았다. 그런데 복숭아는 반쯤 익은 푸른색 벽도(碧桃)이다. 삼천년 만에 꽃이 피고, 삼천년 만에 열매가 열리고, 삼천년 동안 익기까지 푸른색이어서 벽도라고 한 서왕모의 천도(天桃)를 그린 것이다. 동방삭이 훔쳐 먹고 삼천갑자, 곧 18만 살까지 살았다는 벽도를 그려 부채주인의 장수를 축원한 것이다.세 군데에 화제와 낙관이 있는 세 사람의 합작품이다. 오른쪽은 이도영이, 왼쪽은 고희동이 맡아 부채를 다 완성했는데, 안중식에게 다시 화제를 요청해 안중식이 왼쪽 모서리에 어울리는 시를 써 넣었다. 안중식이 화제에서 '양형(兩兄)'이라고 했듯이 이도영과 고희동은 그가 길러낸 근대기 한국화가들 중에서도 조교 급의 고제(高弟)여서 스승에게 감히 이런 요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셋과 부채주인 등이 시주(詩酒)로 어울린 유쾌한 자리에서 스승은 두 제자가 합작한 그림에 붓을 넘겨받아 화제를 쓰며 흐뭇했을 것 같다.1915년 5월 탄생한 이 부채그림은 근대 화단의 주요 작가 세 명의 손길이 함께 닿았을 뿐 아니라 188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장승업→안중식→이도영으로 이어진 기명절지화의 계보를 떠올리게 해주는 의미 깊은 작품이다. 기명절지화는 이도영이 가장 잘했던 분야인데 가야와 신라의 질그릇,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중국 고동기(古銅器) 대신 그리기도 했고, 당시 귀한 열대과일인 바나나를 넣기도 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으나 1933년 50세의 이른 나이로 타계하여 자신의 세계를 다 완성하지 못했다. 이도영은 타계 전 몇 달간을 대구에 머물러 그의 작품 10점이 영남대학교박물관 '오정·소정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고, 기석(箕石) 허섭(1878~1934)의 산수화에 화제를 남기는 등 대구와 인연이 깊은 작가이다. 미술사 연구자

2019-09-05 10:34:47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연극예술의 위대성

고대로부터 예술의 존재 의의와 목적에 대해 많은 질문이 제기되어 왔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해왔다. 그 가운데 예술의 영향력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술은 오로지 그 자신의 내적 가치를 위해 존재하며 외적인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아니하는 것과,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 시킬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예술 일반의 범주 아래, 연극예술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연극은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재구성된 인간의 경험을 몸짓과 언어로 표현하며 우리의 삶을 가장 유사하게 담아내는 종합예술로서 실제 인간의 삶을 모방하고 이를 허구로 가공하여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순간순간 메시지를 전하는 역동적인 예술이며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중 후자에 가장 많은 기능을 가진 예술이라 할수 있겠다.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역할로서의 연극적 기능을 가지고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많은 대중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이는 내가 직접 무대화할 때와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주었고 내가 왜 연극을 하는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지난 9월 3일 오후 7시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퍼블릭 프로그램인 '연극 울고넘는 박달재' 발표회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시민들의 문화참여 기회와 문화향유 기회가 확대되기를 바라면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놀라운 점은 여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30대에서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이 다양했으며 직업 또한 다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극을 처음 접했으며 자기 스스로 '끼'를 가지고 무대에 서고 싶어서 참여했다기 보다는 내성적인 자신의 변화와 또 다른 세계의 경험을 하고 싶어서 참여했다는 쪽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약 4개월간의 교육기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읽고 노래하고 움직이고를 반복하면서 이들은 나이도 잊고 직업도 잊은채 연극 공연이라는 하나의 공동된 목표를 두고서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워 주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난뒤 이들의 표정은 묘한 행복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연극이 가지는 매력, 즉 혼자만이 아닌 다같이 참아내고 극복하며 오늘을 성취했기에 나누는 기쁨이었으리라.어는 참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전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연극을 하는 동안 정말 행복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극할 때처럼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30이든 70이든 "내년에도 꼭 할꺼에요" 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맨 마지막 대사 때 객석에서 울었어요. 여러분들의 진심이 들려서요. 연극예술은 정말 위대 한 것 같아요. 그러니 여러분 주변에 많이 알려주세요. 같이 할수 있도록."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9-05 10:25:44

전영평(가야명상연구원장.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귀촌한담] 가을 오는 학계마을

산골은 벌써 가을이다. 매화산을 등지고 비계산, 오도산, 두무산을 앞장세운 학계마을에서는 할머니들이 앞마당, 공터, 주차장 등에 참깨, 고추, 도라지, 토란줄기 말리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나도 김장배추, 무, 갓 등을 일주일 전에 심어 놓았다.벌새는 꽃댕강 꽃을, 호랑나비는 능소화를 탐닉하고 말벌도 벌통 짓기에 한창이다. 머리칼에 자꾸 걸리는 귀찮은 거미줄도 가을 작품이다. 한밤중 도로에는 노루 가족, 너구리, 뱀 등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한다. 곤충부터 사람까지 모두 겨울나기 준비에 몰두하는 산골 풍경이다. 마을 귀퉁이 한적한 우리 집 앞에도 이때가 되면 벌초하러 온 자동차로 가득하다. 산골 여기저기 예초기 소리가 서로 어울려 마치 벌들이 붕붕대는 듯하다. 산골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싸늘해지고 있다.군불을 조금 때고 이불을 목까지 당겨 덮으면 금세 잠이 오긴 하지만 새벽 싸늘함에 오금이 당겨지고 목이 따끔해지기도 한다. 역시 가을은 가을이다. 청장년들은 비계산에 버섯 따러 나선다. 이맘때면 송이, 능이, 싸리버섯 등을 채취해서 나눠 먹는다. 엊그제는 능이버섯 잔뜩 넣고 촌닭을 잡아 닭백숙 만들어서 함께 먹었다. 마을회관에도 몇 마리 보내드렸더니 참 맛있게 드셨다며 과일을 내어 주신다.풍요로운 시절이다. 올해는 비도 잘 오고 태풍도 비켜가서 오곡과일이 풍성하다. 다음 주면 벌써 추석이다. 귀촌한 지 5년 동안 몸 안 사리고 온갖 농작물을 심어보았다. 땅도 기름지고 햇살도 좋아서 농사가 아주 잘 된다. 그런데 이제 농사짓기가 머뭇거려진다. 열정이 식어서도 힘이 없어서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그저 나하나 먹고 살만한 정도만 생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주려고 마음을 내거나 장마당에 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아무 생각 없이 큰 탐욕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살다 가면 좋겠다. 산골 예초기 소리가 오늘 따라 남의 일 같지 않다.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2019-09-04 18:00:00

[권미강의 생각의 숲] 신포도와 여우들 그리고 양치기 소년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는 자기합리화를 이야기할 때 종종 인용된다. 포도를 따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여우가 포도를 먹을 수 없게 되자 '신포도'라고 규정해버린다. 누군가로부터 무시당했을 때, 여러 상황 속에서 불안과 수치심, 죄책감이 들 때 인간은 자신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보호한다. 바로 방어기제다. '여우와 신포도'는 방어기제를 가장 잘 나타낸 우화다. 이야기에서처럼 포도가 신포도인지 단포도인지 먹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여우는 포도를 먹지 못한 아쉬움을 '분명 신포도일거야'라며 달랜다. 아쉬움을 넘어 포도를 평가절하하고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안 먹는 것이라고 자신의 무능력을 포장한다.만약 여우가 포도를 따려는 또 다른 동물에게 "그 포도는 신포도이니 먹지 말라"고 한다면 여우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방어기제로 사용한 신포도가 다른 동물에게 전해지면서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또 하나의 이솝우화인 '양치기 소년'이 오버랩된다.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일삼다가 진짜 늑대가 나타나 양을 사지로 몰아넣는 소년의 이야기다.두 이야기 모두 진실과 관련된 것이다. 진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것으로 취할 수 없게 되자 거짓으로 자기합리화하는 여우나,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이나 다른 이들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한 정치인과 그를 둘러싼 여론전을 보면서 오래 묵은 이솝우화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신포도라고 정의내리며 자기 합리화에 빠진 사람들이 여우같이 보인다. 신포도라고 규정하며 포도에게 진실의 당도를 밝힐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는다. 자기합리화를 넘어 거짓말로 수많은 신포도를 만들어낸 여우들과, 믿고 맡긴 마을 사람들에게 거짓말로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양치기 소년이 여전히 많은 세상이다.작가

2019-09-04 18:00:00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북돋움] 팥빙수의 전설

성성큼 다가온 가을이 반가우면서도 물러가는 더위가 아쉬워 살짝 붙잡아 보았다. 올해 여름의 마지막 빙수를 먹으면서. 형형색색의 빙수들이 있지만 역시 빙수의 꽃은 팥빙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팥빙수에 전해져 오는 전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팥빙수의 기원을 옛이야기하듯 풀어볼까 한다.옛날옛날 한 옛날, 깊은 산속에 할머니가 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그런 좋은 날이었지. 잘 익은 과일과 달달구수한 단팥죽을 팔러 시장에 가는데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리는 거야. 할머니는 덜컥 겁이 났어. 이렇게 따스한 날에 눈이 오면 눈 호랑이가 나온다고 했거든. 아니나 다를까 새하얗고 커다란 눈 호랑이가 할머니 앞을 가로막아 서더니 이렇게 말해.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눈 호랑이는 할머니가 던져주는 딸기를 먹고는 함박웃음을 지었어. 참외를 먹고는 덩실덩실 춤을 췄지. 수박은 또 어찌나 맛있는지. 호랑이가 수박을 허겁지겁 먹는 사이 할머니는 줄행랑을 쳤어. 하지만 바람처럼 빠른 호랑이를 어떻게 이기겠어? "맛있는 거 또 줘." "네가 다 먹었잖아." "안 주면 잡아먹는다." "그러든지." "그 봇짐 내놔!" "됐다, 이놈아."할머니는 봇짐을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호랑이는 뺏으려고 용을 썼지. 그 바람에 봇짐 안에 든 단팥죽 그릇이 하늘로 높이 치솟더니 눈 호랑이 머리 위로 '툭' 떨어진 거야. 눈 호랑이는 흘러내리는 단팥죽을 맛있게 먹었어. 그런데 이를 어째. 눈 호랑이가 뜨끈뜨끈한 열기에 사르르 녹아 범벅이 되고 말았지. 할머니는 눈 호랑이 범벅을 그릇에 예쁘게 담아 장에 내다 팔았어. 아, 그런데 눈 호랑이 범벅이 맛있다고 방방곡곡 소문이 난 거야. 그게 지금 우리가 먹는 팥빙수라는 사실. 정말이냐고? 팥빙수의 전설이라나 뭐라나.올해 여름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림책 '팥빙수의 전설'(웅진주니어)이 말하는 팥빙수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그림책을 다양한 연령대에 보여줬더니 할머니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들이 공공도서관에서 개설하는 그림책 강좌의 주요 수강생이 되었다. 기억력은 감퇴해도 공부를 향한 열정만큼은 젊은 엄마들한테 결코 밀리지 않는다.할머니들이 그림책을 공부하는 목적은 꽤 분명하다. 첫째는 잘 배워서 아이들을 만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이고, 두 번째는 손주들을 위해서이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책 공부가 어느덧 생활의 즐거움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할머니는 공모전에 낸 작품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전해온다.할머니들 사이에 불고 있는 그림책 바람이 무척 반갑다. 전라남도 곡성 서봉마을에서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할머니들이 뒤늦게 한글을 배워 쓴 시가 '눈이 사뿐사뿐 오네'(북극곰)라는 제목의 그림책으로 나왔다. 서툴고 투박하지만 할머니들이 정성을 다해 그린 그림까지 더해져 더욱 따뜻하고 정겹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한다.'어매는 나를 낳고 "또 딸이네"/ 윗목에 밀어 두고 울었다/ 나마저 너를 미워하면/ 세상이 너를 미워하겠지/ 질긴 숨 붙어 있는 핏덩이 같은/ 나를 안아 들고 또 울었다/ 하늘에서는 흰 눈 송이가/ 하얀 이불솜처럼/ 지붕을 감싸던 날이었다.' 이 시를 감상하는 동안 할머니들은 "그때는 그랬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는 출간과 동시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가난해서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여든을 앞두고 한글과 그림을 배웠다. 그들이 쓰고 그린 그림일기가 화제가 되면서 책으로 나오고 전시회까지 열렸다. 할머니들의 도전도 박수칠 만하지만 이를 가능케 한 조력자들의 숨은 노력이 더 커 보인다. 내 어머니가 아닌 남의 어머니를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여긴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과 인내로 한평생을 살아온 그들의 여생에 꽃길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리라. 할머니들에게 글과 그림을 가르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도서관 관계자들, 할머니들의 작품을 귀하게 여긴 출판사가 없었다면 곡성과 순천 할머니들의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숨은 의미를 발견하고 용기 있게 세상에 펼쳐 보인 그들의 뚝심이 멋있다.

2019-09-04 18:00:00

서미지 작 '영주 무섬다리'

[내가 읽은 책]'지하차도 건너기' /하모/우주나무/2019

8월 마지막 날. 학이사에서 마련한 교통편으로 청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열리는 2019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덕분에 '지하차도 건너기'라는 책을 만났다. 저자명이 낯설어 들춰본 프로필에 "바다를 건너는 나비처럼 글을 씁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하모 작가의 다른 작품 '알아주는 사람' 과 '소원을 들어주는 가게'는 '우주나무' 출판사 부스에 서서 읽고, '지하차도 건너기'만 사서 대구로 돌아왔다.선택이 즉흥적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강한 끌림이 있었다. 지친 몸으로 서서 훑어 읽기에도 생활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무엇이 담긴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문장이 간결해서 그런지 화자가 여자아이임에도 무뚝뚝하게 느껴져서 판매자에게 작가님이 남자분이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그 분이 하모 작가가 아니셨길 바랄 뿐이다.)'지하차도 건너기'에서 열 살 소녀 민애린의 목소리는 작고 슬프다. 동물원으로 현장학습을 가는 날. 엄마가 어젯밤 사서 냉장고에 뒀던 김밥을 혼자 먹는다. 엄마가 싼 것 같은 기분이 하나도 들지 않는 '엄마김밥'. 한 줄은 아침이고 나머지는 오늘 도시락이다. 아이는 엄마 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리면서 생각한다. '이 향수처럼 상큼한 하루가 되면 좋겠다.' 고.아이는 우리 동네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엄마는 '더 좋은 학교'에 아이를 넣었다. 더 좋은 학교에서 더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만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게 엄마 설명이었다. 아이는 매일 우리 동네와 신도시 사이 기찻길을 넘어 학교에 갔다. 기찻길을 건너는 길은 여러 가지였지만 엄마는 꼭 산일역 육교로만 다니라고 했다.현장학습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들은 더럽고 위험한 지하차도에 사는 괴물에 대해 떠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곳에 보이지 않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엄마 쥐와 아이 쥐가 벽에 있는 문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하차도에서 보았기 때문이다.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지하차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괴물에게 쫓기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비밀친구들을 만난다. 십 년 묵은 호박으로 호박죽을 끓여 먹는 날. 아이는 백 년 만에 찾아온 손님이 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가슴이 벅찼다. '나는 지하차도를 건넜다! 내가 혼자서 지하차도를 건넜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지하차도라는 무서운 공간이 사실은 천년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을 판타지 공간이라는 설정이 좋았다. 그렇지만 지하차도에서 판타지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허창우와 늑대 아이의 연결고리가 견고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한 아이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판타지로 구현하려는 작가를 따라가는 동안 많은 공부가 되었다.가을장마가 치근대는 사이. 풀벌레 소리가 금세 잦아졌다. 이제 저녁마다 놀이터 아이들 소리도 왕창 커져갈 것이다. 그 아이들도 안전한 길을 버리고 지하차도로 건너가려할 때가 온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순간은 아이가 스스로 작은 성공을 이룰 때마다 찾아오는 것임을 자주 잊고 산다. '지하차도 건너기'는 그런 나에게 깜짝 선물한 동화가 되었다.서미지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9-04 17:22:48

김성조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사장

[기고]가 봤나! 대구경북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ce·지혜로운 인간)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호모루덴스(Homo ludence·놀이하는 인간)가 문화관광 분야에선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온다.호모루덴스의 저자 요한 호이징하이(Johan Huizingga)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야 놀자"라고 부르면 먹던 밥 숫가락도 내던지고 뛰쳐나가던 때를 생각해 보면 놀이와 인간은 뗄 수 없는 관계다.수많은 놀이 중에서 관광·여행은 쉬우면서도 매력적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다"라는 말이나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여행을 하지 않은 자는 첫 장을 넘기지 않은 것과 같다"는 이탈리아 속담이 잘 말해주고 있다.최근 소득의 증대, 교통의 발달, 가치관의 변화, 풍부한 정보 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요즘 신세대들은 내 집 마련, 내 차 구입만큼이나 나만의 여행을 선호하는 것만 봐도 관광이 대세인 듯하다.이러한 때에 경상북도가 '민선 7기 출범'과 더불어 문화관광 산업을 주요 관심 분야로 선택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경북이 가진 백두대간, 강·바다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타 시도와 견줄 수 없는 다양하고 빼어난 문화유산을 고려할 때 필연의 선택인 듯하다.요즈음 관광의 또 다른 트렌드는 광장(廣場)이다. 뉴욕 센트럴파크, 파리 콩코드광장, 런던 트라팔가광장, 북경 천안문광장 등 세계 관광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광장이 자리한다. 이 광장에는 늘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난다.우리 경북에는 오직 우리만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전통적인 문화광장(文化廣場)이 있다. ▷수천 년간 치열한 구도(求道)의 광장인 불국사, 부석사, 봉정사 ▷선비들의 학문 연구와 사교의 광장인 소수'도산'옥산'병산서원 ▷양반과 평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삶의 광장인 양동'하회마을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빼어난 광장들이 경북에 자리한다. 앞으로 이들이 경북 관광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2020년은 대구경북 관광의 해이다. 대구경북 관광 산업의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대구경북은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상생의 힘을 보태고 있다.경북문화관광공사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이웃 나라를 대상으로 해외 홍보 사무소 개소, 스포츠, 문화 등 특수목적관광객(SIT)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변화하는 관광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한 개별관광객(FIT) 맞춤형 상품 개발, 생활 패턴 변화에 맞춘 수용 태세 개선 사업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각 시군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축제가 있으나 홍보 부족 등으로 그 지방만의 축제로 전락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축제에 상호 교환 방문하여 활성화시키는 축제 품앗이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특히 이러한 대구경북 관광 활성화 여건을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 '내 고장 바로알기 운동'은 경북문화관광공사가 범도민적으로 펼치는 대표적인 사업이다.'내 고장 바로알기 운동'은 대구경북 시도민이 해외나 타 시도를 방문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내 고장을 먼저 둘러보자는 것이다.우리 지역을 관광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대구경북 구석구석을 잘 알게 되고, 우수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500만 시도민이 우리 지역의 자발적 홍보맨이 될 때 상승효과가 기대된다. 사시사철 관광객이 넘쳐나는 대구경북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내 고장 우선 관광'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본다. 가 봤나 경북! 가 보자 경북!

2019-09-04 11:22:47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초상

무용은 원시시대 때부터 시작하여 공연예술의 모태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무용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무용은 상류층의 무용과 서민층의 무용이 뚜렷하게 갈라져 있어 궁중무용은 의례용으로 활용되었고, 민속무용은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춤으로 단순한 오락적 차원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이처럼 무용은 여타 공연예술처럼 천민층이 맡아왔으며 무용가들은 사회적으로 대우를 제대로 받아오지 못했었다. 보수적인 기질이 농후한 대구지역에서 1930년대를 시작으로 현대 춤이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자 춤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지난 3월, 2019년 대구문화재단 문화인물컨텐츠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인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예술감독 박현옥)의 '김상규를 춤추다-강건너 언덕 너머...'는 대구 근대춤의 아버지인 김상규를 기리고 그의 작품을 통해 현재 속에서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며 동시대의 시·공간성을 추구한 소리(음악)·몸짓(드라마)·춤의 예술형식으로서 지역의 문화예술 창달과 김상규를 통한 대구 현대춤의 자긍심을 일깨우는데 일조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김상규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과 보수적 색채가 특히 뚜렷한 대구의 지역적 특색에도 불구하고 무용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으로 대구의 현대무용이 발전할 수 있도록 중추적인 역할을 한 현대무용의 선구자이며 최초의 남성무용가 이자 역사·행정·교육에 관련된 업적을 남긴 대구 무용계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육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면적 사고를 중요시 해야 된다 했으며 그것은 다양한 작품안에서 그의 내면적 정신, 자연적 회귀, 윤회, 생명의 본질은 곧 인간 존재에 작용하는 사상으로 춤으로 나타내었다.한 시대의 예술가는 당대의 새로운 예술을 창출해내고 그 예술은 후대에 이어져 또 다른 예술가를 탄생시킨다. 그가 남겨놓은 현대무용의 정신과 자연의 법에 따라 시간이 지나도 더욱 깊이 있는 가치로 피어날 그의 초상. 이러한 예술을 모체로 김상규에 의한 대구 무용의 발전은 현대무용의 정신적 이정표이며 대구 현대무용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강건너 언넘너머' 작품 중 '초상' 을 오는 9월 18일 대구국제무용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바라본 초상은 앞으로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며 역사적 정신을 다음세대에 물려줌으로써 예술의 꽃은 영원히 살아남으리라 기대한다.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2019-09-04 11:22:33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종교칼럼] 종교의식의 비등점

물은 참으로 재미있는 물질이다. 우선 산소원자 1개와 수소원자 2개가 공유결합을 하여 이루어진 물이 되기까지 수십억 년의 히든 스토리를 갖고 있다. 온도가 낮을수록 밀도가 높아지는 다른 물질들과 달리 4℃일 때 가장 높아서 가장 무겁다. 그래서 4도일 때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온도가 더 내려가 0도가 되면 표면에 떠올라 어는 성질 덕분에 극지방의 바닷속에서도, 한겨울 강이나 호수 속에서도 생명체들이 얼음에 갇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열을 가해서 물의 온도가 올라가더라도 99도까지는 액체였다가 100도에서 형태가 완전히 다른 기체가 된다. 이런 성질을 가진 물이 순환하면서 지구촌의 온 생명체를 살리고 있다.약 38억년이란 긴 진화의 시간을 가진 지구촌의 생명체들은 인간에 이르러 자의식을 지닌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섰다. 이것은 마치 물이 99도에서 비등점인 100도에 이른 현상과 같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이후에도 물이 비등점에 이른 차원의 진화를 거듭했다. 죽은 자를 내버려 두지 않고 장례를 치르는 행위를 통해 사후세계에 대한 사유와 동경을 하게 된 시기, BC 약 1만 년 전에 있었던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의 전이,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를 넘어 철기시대로 넘어온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황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들은 서로 교류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적고 잉카, 마야 문명은 그 지역으로 미루어 볼 때 앞의 문명들과 교류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런데 이러한 문명이 그곳에서 각자 발전한 것도 물이 비등점에 이른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겠다.BC 500년 전후로 지구촌에서 살던 인간에게 또 하나의 비등점에 이른 도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가, 공자, 노자, 장자, 구약성경의 저자들과 예수, 소크라테스가 시기적으로 전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각자 살던 곳에서 등장했다. 이전의 도약은 생존과 관련된 영역에 속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인간 삶의 근본적 영역에 대한 사유와 관련된 도약이다.21세기에 들어온 인류는 또 하나의 비등점을 통과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촌과 우주에 대한 이해, 나노기술, IT, AI, 뇌과학, 분자생물학 등이 나날이 대단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이에 기초한 응용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하고 어디까지 변해갈 것인지 누구도 올바르게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자연자원의 고갈, 생활쓰레기와 산업폐기물, 늘어나는 세계인구와 빈부 차이에 의한 갈등은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삶을 어렵게 하고, 많은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게 한다.비등점을 통과하는 도약은 종교적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시대에 태어나 지구촌의 온갖 문화, 학문, 종교,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정보들로 무장한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많이 다른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 중에서 스님, 목사, 신부, 수도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의식도 이전 세대와 같지 않다.그래서 전통종교들은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고 구성원을 확보하기가 날로 힘들어지고 있다. 수세적으로 담을 높인 종교단체들은 정체성과 조직을 유지해나가기가 어려워졌다. 모든 종교가 다 같이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보인다. 진정성을 지닌 진리와 활동, 상호 대화와 협력만이 미래를 열어낼 수 있을 것이다. 냉소의 길과 삶의 길, 선택의 귀로에서 저절로 두 손 모으게 된다.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2019-09-04 10:47:01

이정호 변호사

[경제 칼럼] 저출산 문제 해소 방안에 관한 단상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28년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점차 감소해 2067년에는 4천만 명이 채 되지 않고, 평균 연령은 2019년 현재 40세 초반에서 2067년에는 57세가 된다고 한다. 노령화지수 또한 119.4에서 2067년에는 574.5가 될 것이라 한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숫자로 깨달을 수 있는 지표이다.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저출산 전담기구 설치, 결혼과 출산 친화적 환경 조성, 일 가정 양립 지원 등 일련의 저출산 문제에 대응할 해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양한 정책 방안을 수립하기도 했다. 정책 근간은 곧 출산 지원, 근로시간 단축, 신혼부부나 청년 주거지원책 등으로 이뤄져 있다.대공황기를 겪은 경제학자 케인즈는 '투자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같은 심리적 요인에 의하여 이뤄진다'고 봤다. 오늘날 여러 경제학자들도 경제 주체의 심리를 중요 요소로 삼아 거시경제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결혼이나 자녀 출산 문제 역시 결혼이나 출산 적령기에 처한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기대감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어야 각자의 분신을 세상에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 해법 역시 미래에 대한 전망과 기대심리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구체적으로 보자면, 무엇보다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경제 성장기에는 기술 발전을 토대로 산업의 탄생과 성장 등 구세대가 겪지 못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경제 참여 기회가 예상된다. 부모는 노동자로 한 세대를 보내더라도 자식은 창업을 통해 일가를 이루고, 기업 오너가 될 가망이 있어 보인다. 부모는 블루칼라로 고생하지만 자식은 화이트칼라로 안정된 일자리에서 고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할 때 미래 희망이 보인다.국내 경제의 성장 속도나 탄력이 힘을 내기가 버거워 보이지만 자식의 경제활동 기회나 여건이 부모보다는 나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이는 출산의 유인이 될 것이다. 경제의 질적 성장을 통해 부모가 겪은 취업이나 창업보다 개선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며, 이를 위하여 경제 정책과 법 제도의 꾸준한 정비와 개선이 필요하다.다음은 안전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국방이나 치안서비스 질이 향상돼야 하고, 타인과의 어울림 속에서도 기본적인 생명, 신체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이런 측면에서 남북관계 갈등 해소나 평화 무드는 저출산 해법으로도 역시나 중요하다. 자식을 나보다 더 안전한 환경 속에서 키우고 싶은 것은 부모의 본능이다. 흉악범이나 강력범죄에 대한 선정적 언론 보도와 범국민적 관심은 자칫 범죄가 사회에 만연한 듯한 과다한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보도는 안전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자살 모방효과를 줄이기 위해 보도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는 '파파게노 효과'에 대해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복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출산 지원, 워라밸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한부모 아동 지원, 비혼 출산과 양육 지원, 주거 지원 등은 모두 복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자는 방향으로 구성돼 있다.그런데 출산이나 양육 지원 정책들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양육과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 절감이다. 진학, 취업을 위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교육 정책과 철학의 빈곤 속에서 가성비가 너무나 떨어지는 구조를 갖게 됐다. 각 가정이 자녀 교육에 투입하는 과한 시간과 노력은 사회를 견인할 수 있는 청소년의 잠재역량을 저하시키는 어마어마한 기회비용을 발생시켰다.결국 저출산 해법의 궁극은 사람들에게 미래 행복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태어남은 그저 생로병사를 거치는 출발점이 아니라 삶의 행복과 가치를 끊임없이 찾아나서는 여정의 시작이어야 한다.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법 역시 다양할 것이지만, 국가가 출산의 가치를 정책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이상 출산 이후 삶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애프터서비스 역시 어느 정도는 국가의 몫이다. 다양한 저출산 정책이 근원적 효과를 내어 통계청의 2067년도 인구 예측이 오류로 판명 나길 희망한다.

2019-09-03 18:06:07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새론새평]작동하지 않는 정부의 분배 기능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가계의 소득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19년 상반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가계소득은 2017년 상반기 6개월 동안 283만3천원에서 2019년 상반기 6개월 동안 257만9천원으로 25만4천원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전 정부 때인 2015년 상반기와 2017년 상반기 중에도 1분위 가계소득이 10만6천원 줄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하락 폭이 더 커진 셈이다.1분위 가계소득이 이렇게 빠진 것은 근로소득의 감소 때문이다. 2017년 상반기 6개월 동안 116만1천원이던 1분위 가계소득이 2019년 상반기에는 84만3천원으로 31만8천원이나 줄어들었다. 반면에 최상위 20%인 5분위 가계소득은 2017년 상반기 1천757만5천원에서 2019년 상반기 1천935만1천원으로 177만6천원이나 늘어났다. 2015년과 2017년 사이에 최상위 가계소득이 59만3천원 늘어난 것보다 두 배가 넘는 규모이다.명목경제가 3% 이상 성장하는데도 최하위 가계의 근로소득이 오히려 감소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속도가 둔화되었고, 둘째 폐업 혹은 조업 단축 등으로 기존 일자리가 쪼그라들었으며, 셋째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근로시간이 줄어든 때문이다.이런 현상은 물론 전반적인 불경기와도 연관이 없진 않겠지만 2018년과 2019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추가 고용을 꺼리게 됨과 아울러 폐업 등으로 기존 일자리를 잃거나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평균 근로시간이 전반적으로 감소하였다. 예컨대 2017년만 하더라도 취업자가 31만6천 명이 증가했었으나 2018년에는 9만7천 명으로 줄어들었고, 2019년에도 고령자 취업을 빼고 보면 취업자 증가 폭은 크게 둔화되었다. 게다가 주 36시간 이하 근로자가 50만 명 이상 늘어나는 데 비해 36시간 이상 근로자는 25만 명이 줄어들면서 평균 취업시간도 지난 2년 동안 거의 3시간 정도 줄어든 것이 근로소득을 줄이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반면에 고소득계층의 소득은 현저하게 늘어났다. 최상위계층인 5분위 가계소득은 2017년 상반기 1천757만5천원에서 2019년 상반기 1천935만1천원으로 지난 2년 동안 177만6천원(약 10%) 늘어났는데 이 중 근로소득 증가가 159만9천원(증가율 12.6%)이나 되었다. 4분위 가계 근로소득도 727만2천원에서 822만6천원으로 95만4천원 늘어났다. 결국 상위계층으로 갈수록 근로소득 증가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소득양극화를 부추긴 셈이다.다른 한편으로는 사업소득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5분위를 제외한 전 소득계층에서 2019년 상반기 사업소득은 2017년 상반기에 비해 감소하거나 거의 증가하지 못했다. 사업소득조차 최상위계층만 크게 늘고 나머지 계층은 줄거나 거의 정체되었다. 앞으로 미중 무역분쟁이 더 격화되고 한일 간의 갈등도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중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의 경기마저 둔화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의 소득은 더 아래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이렇게 양극화되면 정부는 재정 정책을 통해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지출 구조를 효율화해야 한다. 그러나 소득 재분배 기능을 나타내는 이전소득 통계를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지난 2년 동안 1분위 가계나 5분위 가계나 이전소득의 증가 금액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최상위계층 이전소득이 더 많이 증가했다. 다시 말해 이전소득의 소득불균형 시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다.이제라도 이것을 고쳐야 한다. 고령자나 청년, 실업자라고 덜컥 수당을 줄 것이 아니라 재산이나 소득 수준을 꼼꼼히 따져 가려가면서 지급해야 할 것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할 소중한 세금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려 주는 게 소중한 것이다.

2019-09-03 16:17:10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살아 있는 음악

지난주에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재개관 기념공연 시리즈 중 타악페스타 '태양을 두드리다' 공연이 성황리에 이뤄졌다. '날이 밝아오다' 라는 타이틀로 공연의 대서막을 대북가락과 함께 멋진 춤으로 보여준 '장유경무용단', 국악타악기 기반의 깊이 있는 창작음악을 리드미컬하게 연주한 타악집단 '일로', 길놀이 속에 전통연희를 아기자기하게 꾸미며 관객과 함께 즐겨준 연희팀 '오락', 아프리카 음악과 춤으로 젊음의 에너지와 해방감을 무대에서 전해준 '포니케', 브라질 삼바 리듬을 아주 강렬하고 뜨겁게 표현해준 '라 퍼커션'의 연주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무대가 됐다.나는 이번 공연의 전체 음악을 맡아 진행했는데, 주로 신경 쓴 부분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며 전통에 머무른 음악이 아니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문화라는 것, 그리고 세계화에 발맞춰서 다른 나라의 전통 타악기도 지금 우리의 마음에 충분히 어필이 됨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나라뿐 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디(MIDI) 중심의 전자음악이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에 어쿠스틱한 음악이 전해주는 생명력 가득한 살아 숨 쉬는 음악, 열정과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넘치는 이 음악으로써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이날 보여준 음악과 퍼포먼스는 인류가 오랜 시간 살아오며 그들의 사상과 본능적인 세포를 갈고닦아 발전시킨 결과물로서 우리나라, 브라질, 아프리카의 지구 각각의 반대편에 살던 사람들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들의 다양한 리듬은 심장박동소리처럼 가슴을 뛰게 했고, 그러한 직설적인 타악 표현이 '살아 있는 음악'으로 만들었다.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일상에서의 쉼표가 된다. 나는 한동안 이런 공연을 직업적인 일로서 공적으로 대하다보니 온 마음으로 공연관람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생명력은 바쁜 일정 속에 오로지 곡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며 소진되고 있었는데, 이날의 살아 숨 쉬는 음악들을 보니 나 스스로에게도 에너지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햇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을텐데, 그 하나의 쉼표를 찍고 간다면 훨씬 좋은 삶의 질을 얻으리라 생각된다.여기 대구문화예술회관은 기획도 하고 공연 자체를 제작하는 제작극장이다. 양질의 공연콘텐츠를 개발해 대구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팔공홀도 다양한 첨단시스템으로 재개관했으니 더더욱 활성화되어 좋은 무대를 보여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두류공원 산책로와 붙어있어서, 가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공기 좋은 숲속 산책과 더불어 저녁즈음 펼쳐지는 멋진 공연을 관람한다면 풍부한 마음적 휴식이 될 것이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9-03 11:24:12

여상도 경북대 교수

[기고] 교수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며칠 전 나는 대형 TV가 설치된 시내의 한 광장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학교수인 어느 장관 후보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서로 쑥덕거렸다. 나도 그것을 보고 있었기에 기다리던 지인이 멀리서 다가오는데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그 지인은 날 향해 '교수님'이라고 크게 불렀고, 주변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 순간 나는 웬일인지 교수라고 불리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고개를 숙여버렸다.나는 일평생 스스로 떳떳하게 생각하던 교수라는 내 직업이 이렇게 힘없이 느껴질 때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교수의 논문이 고교생의 대입 준비물로 전락하고, 교수의 연구실이 어린 학생의 현장실습장으로 둔갑해 버리는 모습을 이 땅의 교수들은 지금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영어로 교수는 professor이며 논문은 thesis이다. 즉 교수는 고백하는 사람, 논문은 가설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교수가 수행하는 연구의 결과물은 새로운 사항들이 많기 때문에 감히 완벽한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이럴 것이라고 사료된다는 식으로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런 출판물을 가설, 즉 논문이라 부른다. 이러한 교수의 논문은 시간이 가면서 대중에게 회자되고 검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설이 진실로 되기도 하고 가설로만 남기도 한다. 교수의 논문에는 진실, 시행착오, 오류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시행착오와 오류가 무엇인지는 그 논문을 쓴 교수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수도 있다.그러므로 교수는 늘 부끄러움을 한 몸에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다. 교수는 행여나 자기가 고백한 것들이 오류로 판명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짊어지고 산다. 교수가 발표하는 논문은 자신의 피부에 새겨진 아물지 않은 상처와 같고, 행여나 이 상처를 누군가 건드리기도 한다면 아픈 곳을 때리는 일이 되기 때문에 사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교수가 논문의 표절, 부정 등의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면, 그 사람이 겪는 상실감은 그 누구보다 커진다.하지만 이러한 교수의 논문이 사회적 애물로 전락해 버렸다. 저자의 자격은 고사하고라도, 대학에서 생산되는 논문이라는 것의 기능과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돈마저 온다.지금 TV에 나오는 한 사람의 장관 후보자를 가장 원망하는 사람은 수험생과 그 부모들일 것이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분노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논문을 통해 어렵게 발표한 다음, 그 논문에 대해 숙고하고 검증을 거듭하는 교수들일 것이다. 교수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그 순간 교수로서의 기능은 종료된다. 지적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교수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그 부끄러움은 당연히 만용으로 돌변하게 된다.어느 일간지에서 '교수 카르텔'이라는 말도 했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이끌어가는 교수들마저 지탄의 대상이 된다면 이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이지 참담한 심정이다. 지적 부끄러움과 세속적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껴야 하는 요즘의 교수들은 약간의 우울한 감정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여상도 경북대 교수(화학공학과)

2019-09-03 02:3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破釜沈舟(파부침주)- 용감한 자가 이긴다

밥솥을 깨고(破釜) 배를 침몰시킨다(沈舟)는 파부침주는 도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를 나타낼 때 쓰인다. 배를 불태우고 솥을 깨서 없앤다는 손자병법의 분주파부(焚舟破釜)와 같다. 약자가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쓰는 전략이다.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죽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장한(章邯)을 파견하여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기원전 207년 항우(項羽)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는 진나라의 40만 군사가 집결한 거록(鉅鹿)을 향해 북상했다.장수(漳水)를 건넌 항우는 배를 모두 침몰시키고 밥솥을 깨뜨렸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사흘 먹을 식량만 가지고 출발하도록 했다. 배수의 진을 친 항우의 전략은 통했다. 퇴로가 없어진 초나라 군사들은 자신들보다 몇 배나 많은 진나라 군사를 맞아 20만 명을 몰살시켰다.진나라의 장한은 나머지 20만 명의 군사들과 함께 항복했다. 진나라는 무너졌고 항우는 일약 패주(霸主)로 등장했다. 거록 대전은 중국역사에서 소수의 약자가 강자를 이긴 전형적인 전투로 파부침주를 강조할 때 자주 쓰이는 고사이다.현재 미중 무역 전쟁은 두 나라 모두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하다. 뒷걸음을 치면 파멸의 언덕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중국은 약자의 입장에서 중일전쟁 때의 지구전을 들고나와 파부침주의 결사 항전의 태도를 보인다. 한일 양국의 무역 전쟁도 이에 못지않다.한국은 미국이 강력하게 연장을 요구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종료시키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일본도 찔끔 무역규제를 완화하면서도 섣불리 물러설 기미가 없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모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골목길에서 (적을) 만났을 때는 용감한 자가 이긴다(狹路相逢勇者勝'협로상봉용자승)는 중국 속담이 있다. 한국에는 아베 정권과 싸울 파부침주의 각오가 필요한 것 같다.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2019-09-02 18:00:00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손절매와 법무 장관 후보자의 거취

국제정세, 경제 모두 암울손절매 못하면 '깡통계좌' 전락 주식 거래에 손절매(損切賣)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cut loss'인데, 손실을 잘라낸다는 뜻이다. 앞으로 주가(株價)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해, 보유한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이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 손절매 타이밍을 놓치면 깡통계좌로 전락하게 된다.우리 경제의 전망은 매우 어둡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다. 한일 관계는 최악이고 한미 관계도 삐거덕거리고 한중 관계는 아직도 사드 파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북한은 사흘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 대고 한국 정부와 대통령을 비방한다. 최근 20여 년 동안 이렇게 안보 리스크가 심각한 때는 없었다.경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 수출 실적은 계속 추락하고 일본은 핵심 소재를 우리에게 팔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은 넘어져 가는데, 노동자 처우가 개선되고 실질임금이 인상되는 것도 아니다. 달러 환율, 금값이 계속 치솟고 있다. 2014년 세월호, 2015년 메르스 파문을 넘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수준으로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그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인사청문회는 도덕성 검증'불법'이면 청문회 자격 없어정치권에서도 손절매 타이밍을 놓쳤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한 장관 후보자의 거취를 놓고 하는 이야기다. 원래 인사청문회는 불법 여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불법이 있다면 인사청문회 이전에 걸러야 한다. 의혹이 제기된 초기, '불법은 없었다'고 대답함으로써, '도덕성에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 꼴이 됐다.검찰이 공개 수사에 나선 지금은 도덕성이 아니라 불법성 문제로 사안은 훨씬 더 심각해졌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이 없으면 공개 수사를 하지 않는다. 법원은 혐의가 소명되지 않으면 영장을 발부하지 않는다. 일부 인사가 목소리를 높여 옹호하는 것을 보면서, 깡통계좌에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2019-09-02 18:00:00

구미과학관 관장

[과학둘레] 지난여름의 끝

종이를 세로로 길게 잘라 양 끝을 책 위에 걸치고 중간에 동전을 한 개 올려본다. 종이가 동전의 무게를 못 버티고 무너져버린다. 이번엔 종이 양 옆을 조금 접어 올려 동전을 올려본다. 종이가 동전 하나를 버텨낸다. 종이 아래 다른 종이를 말아 넣고, 부채처럼 접은 종이를 책 위에 걸쳐본다.'와우!' 동전이 많이 올라가고 있었다. 종이와 동전으로 무너지지 않는 다리의 비밀을 알아내는 실험은 '생활과학교실' 콘텐츠 개발을 위한 것이다.숨 돌릴 겨를 없이 바빴던 여름이 지나갔다. 휴가도 미룬 채 분주했던 이유는 9월부터 시작하는 생활과학교실 하반기 프로그램 개발 때문이다. 생활과학교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과학관에서 운영하는 '찾아가는 과학교실 사업'이다.과학교실 운영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은 주로 강사들 몫이지만 그것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온전히 필자 몫으로 자처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질을 높여간다. 학생들이 호기심을 갖고 탐구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과학 원리를 습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누구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굳이 안 해도 될 고생을 왜 사서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매 학기 수고를 자청하며 힘들어도 적당히 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이 일이 은근히 즐겁기 때문이다. 과학관에서 근무하기 전 생활과학교실 콘텐츠 개발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필자에게는 과학이론을 실험을 통해 알려 주는 수업이 멋진 신세계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과학으로 즐겁게 소통할 수 있을 지 밤새 고민하며 그것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민재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청년이 되었을 그 아이는 수업 시작 전 항상 교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에 든 짐을 들어주었다.부모님이 시장에서 통닭집을 한다는 아이의 꿈은 요리사였다. 과학교실에 참여한 후로 과학자가 될까 생각 중이라던 민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프로그램 개발을 대충 넘어갈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다.올여름 무더위와 동행한 또 하나가 있다. 신영복의 '나의 동양고전독법 강의'란 책이다. 책은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생뚱맞은 선택이었지만 덕분에 무일(無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무일의 사전적 의미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음, 안일하지 않음, 편하게 놀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책에는 군자가 편안함을 취하기에 앞서 노동의 어려움을 아는 무일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군주의 도리를 설명한 서경 주공 편에 나오는 글로, 저자는 무일 편을 능력 있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가치관을 경계하는 경구로 읽으라 했다. 어디서든 책임지는 자리는 편하게 누리는 위치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깨어있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자리라야 된다는 의미일 듯싶다.과학은 일상의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손으로 조작해보고, 탐구하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이다. 과학이 우리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치를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는 거란 걸 함께 나누고 싶은 게 한여름 무일한 가장 큰 이유다.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다리 중 하나인 금문교가 놓여 있는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해협은 넓은 거리, 깊은 수심, 강한 해류, 짙은 안개 같은 요인으로 다리를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지역이었다. 다리는 적당한 지점에 높은 탑을 세우고 강철 줄로 상판을 연결해 들어 올리는 현수교 방식으로 건설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놓았다.무너지지 않는 다리의 비밀은 획일화된 구조가 아니라 상황에 가장 알맞은 형태로 변형하여 다리를 놓는 것이다. 양옆을 세우거나, 아치구조로 받치거나, 트러스구조를 덧대거나, 줄로 당기거나 해야 한쪽으로 쏠리는 무게의 압력을 분산할 수 있다. 다리는 혼자서 갈 수 없는 곳을 스스로 건너가게 해준다는 점에서 교육에 비할 만하다. 과학 교육 또한 지식 전달 위주의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치열하게 보낸 여름의 끝. 그 끝의 시작은 어디일까. 풀벌레 소리 들리는 가을이다. 다리는 혼자서 갈 수 없는 곳을 스스로 건너가게 해준다는 점에서 교육에 비할만하다. 과학교육 또한 지식전달 위주의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치열하게 보낸 여름의 끝. 그 끝의 시작은 어디일까. 풀벌레 소리 들리는 가을이다.

2019-09-02 18:00:00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대구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대구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이 카피를 쓴 지 2년이 지났다. 당시 대구 도시 브랜드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며 마지막에 방점을 찍을 강력한 한 줄이 필요한 터였다. '대구시 광고니 당연히 좋은 문장을 써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저 입에 발린 글을 쓰기는 싫었다. 공감을 얻지 못한 광고는 그대로 버려지기 때문이다.필자는 대구시와 일하며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광고에 담고 싶었다. 사실 처음 창업을 했을 때 대구의 강한 보수성 때문에 힘들었다. 더욱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도 아닌 아이디어를 파는 일이라 그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철옹성 같은 대구도 변해갔다. 정형화된 광고만 선호하던 대구는 생각의 영역을 점점 넓혀갔다. 그리고 진심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보였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쓴 카피가 바로 '대구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이다.이 카피를 쓰고 칭찬도 욕도 많이 들었다. 칭찬은 공무원에게서 들었다. "소장님, 우리는 프로야구 심판과 같은 직업입니다. 잘해도 티가 나지 않고, 못하면 질타를 한 몸으로 견뎌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노고를 광고 카피에 잘 담아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슬프게도 욕은 시민들에게 들었다. 열심히 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광고에서 자화자찬만 늘어놓았단 비난이었다. 이렇게 늘 광고주와 오디언스(시민) 사이에는 강한 괴리감이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그런 비난에 굴하지 않았다. 맞다고 생각한 부분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광고에는 일종의 종교와 같은 힘이 있어서 세뇌 효과가 크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문장이 입에 붙어버렸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대구에 관한 포스팅에 시민들이 그 카피를 댓글로 달기도 한다. 재미있는 CM송의 멜로디가 입에 붙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에 그 문장이 붙은 것이다.'소통과 혁신의 대구' 엠블럼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그 작업을 맡았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대구가 제일 못하는 것이 소통과 혁신 아닌가요?'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수록 우리는 반드시 그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생각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가는 곳마다 '소통과 혁신의 대구'라는 엠블럼이 보이면 어떨까? 대구시청에서 '대구는 하루로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라는 카피를 보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시민뿐만 아니라 공무원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봤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 문장을 품고 대구에서 일하고 살아간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 봤다. 마치 'I love New York'이라는 슬로건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뉴욕을 애착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최근 대구시의 도시 브랜드 홍보 활동을 살펴보면 눈부시다. 인기 유튜버와 협업을 통해 대구를 전국에 전파하고 있다. '고담 대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란 이미지의 판을 뒤엎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활동이 굉장히 신선했다. 내심 기뻤다. '대구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는 카피를 비아냥댔던 사람들에게 할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도시를 브랜딩할 때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참고하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시민들 역시 눈치를 보는 모습보다 '이 방향이 맞으니 믿고 따라오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대구를 더 매력적으로 볼 것으로 생각한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2019-09-02 18:00:00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예술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그 시대와 지역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사회적 관습이나 윤리, 도덕적 기준들에 대해 '정말로 그것이 당연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 왔다. 필자가 올해 초 대구시립극단의 객원 연출로서 무대에 올렸던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도 당시에는 당연하고 올바르다고 여겨졌던 여성의 역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 결과 유럽과 전 세계에서 여성운동이 일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모두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 일에 대해서 반성을 촉구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자고 외치는 것도 예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지만, 정말로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다각도의 질문을 던지는 것도 예술이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인 것이다.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예술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예술은 그 이상의 논쟁적인 화두를 사회에 던져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애국은 항상 개인의 행복에 우선하는가?',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개별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애국심이 대치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가?', '애국이라는 대의를 내세워 개인의 인권을 제한할 가능성은 없는가?' 끊임없이 당대의 주된 의견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은 없는지 경고하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이러한 당대의 올바름을 넘어서는 문제제기는 그 사회가 얼마나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라는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일본 정치권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상황일 때는 한일 양국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각도의 주제를 다루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반하장으로 행동할 때는 '일본의 경제 침략에 맞서 우리나라를 지키자'는 방향성 이외의 이야기는 다루기가 어렵다. 예술의 주제가 심각하게 제한되는 것이다.그래서, 예술가는 앞장서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 조금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안 그러면 죽을 때까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이웃 간에 화목하자는 주제의 이야기만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9-02 11:18:03

이상길 대구시 행정부시장

[기고] 대구국제오페라축제와 함께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국내 최초의 피아노는 어떻게 대구에 오게 되었을까? 국내 최초의 피아노는 미국 선교사 부부에 의해 1900년 3월 대구시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에 들어왔으며 이를 계기로 대구는 한국 피아노 음악의 발상지가 되었다. 이후 대구는 전통음악과 근대음악의 역사 속에서 음악도시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해 왔다. 대구는 대한민국 1호 클래식 음악감상실인 '녹향'(綠香)이 있었으며, '공산농요'와 '날뫼북춤' 등 전통음악이 전승'발전되어 왔고, 작곡가 박태준, 현제명과 같은 근대음악의 거장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구가 품어 온 다양한 음악적 자산들은 2017년 유네스코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대구가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금 대구의 가을, 9월은 더할 나위 없이 다양한 음악 축제들로 풍성하다. 7일에는 역외 관람객 비율이 60%를 차지할 정도로 전국적인 인지도가 높은 '청춘힙합페스티벌'이 개최된다. 16일부터 21일까지는 수성못 일원을 중심으로 '국제재즈페스티벌'이 개최되며, 9월 마지막 주말에는 사문진 야외공연장에서 국내 최초 피아노 이야기를 모티브로 '100대 피아노 콘서트'가 성대하게 개최된다.그리고 9월 5일부터 10월 13일까지 올해 17회째를 맞는 '국제오페라축제'가 개최된다. 이번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특색은 첫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인과 국가를 향해 거세게 다가오는 힘에 저항하는 인간의 운명과 도전의 의미를 오페라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개막작을 비롯해 독일 베를린 도이체오페라극장과 합작한 푸치니의 '라 론디네'(La Rondine) 등 4편의 '메인 오페라'가 선보일 예정이다.둘째, 오페라와 시민과의 지리적'심리적 거리가 없는 제로-디스턴스 콘셉트(Zero-distance Concept)이다. '소극장 오페라' 4편은 중구, 서구, 달서구 등 대구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무대를 지역별로 각각 만들었고, 이탈리아 작은 마을을 실제 광장에 재현해 공연을 펼치는 '광장오페라'는 관객들이 작품 속으로 직접 들어와 오페라를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는 무대다.셋째, '대구국제오페라어워즈'(DIOA)를 통해 오페라 배우를 선발하는 열린 오페라축제이다. DIOA는 본선 진출자들이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들로 캐스팅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아시아 최초 오페라 '아티스트 마켓'이라고도 평가받을 정도로 그 명성이 높다.15개국에서 지원한 성악가 92명이 비디오 심사와 유럽(오스트리아 빈, 독일 베를린), 아시아(대구) 지역 예선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한국을 비롯한 8개국 출신의 실력파 성악가 20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DIOA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도유망한 성악가들을 선발하고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지난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기간에 대구를 찾은 한 가족은 전국에서 유일한 오페라하우스에서 언제든지 멋진 오페라를 볼 수 있으니 대구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정작 우리들은 어떨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복한 기회들을 얼마만큼 충분히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즐겁고 풍성한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추석 명절에 운명을 거부하는 인간의 의미 있는 도전을 오페라 한 편을 통해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2019-09-02 11:10:06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교수

[세계의 창] 벨파스트 평화의 벽

북아일랜드의 도시 벨파스트(Belfast)에는 '평화의 벽'(Peace Walls)이 있다. 벨파스트의 여러 곳에 설치된 이 벽들은 크기가 다양한데, 몇백m에 불과한 짧은 것이 있는가 하면 5㎞에 달하는 매우 긴 것도 있다. '평화의 벽'이라는 이름 대신 종종 '평화선'(Peace Lines)이라 불리기도 하며 모양도 여러 가지여서, 아무도 넘어갈 수 없는 높고 튼튼한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철책을 둘러치거나 또 어떤 곳은 도로표시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밋밋한 벽도 있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벽화가 많고, 몇 해 전에는 영국의 유명한 그라피티 미술가 뱅크시(Banksy)가 이곳에 그림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근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차츰 늘어나자 택시 관광(Taxi Tour)이라는 것이 생겨났는데, 어떤 여행객은 평화의 벽에 자신의 메시지와 서명을 남겨 놓고 가기도 한다.그런데 벽과 평화라는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리기나 한 것일까? 가만 생각해보면, 벽이라는 단어에는 분리, 단절, 고립, 방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조화, 연결, 소통, 일치를 속성으로 하는 평화와 연결되는지 의아해진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기묘하게 조합된 이 구조물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벨파스트가 속해 있는 북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와 함께 영연방을 이루는 영국 영토이다. 아일랜드(에이레)와 같은 섬에 있으면서도 별개의 나라가 된 것은, 수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독립할 때 북아일랜드 지역은 영국령으로 남아 있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생겨났다. 북아일랜드에는 아일랜드와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영국 정부에 그대로 소속되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이 상황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심각한 폭력사태로 치달았다. 특히 벨파스트에서는 1980, 90년대의 유혈 투쟁으로 무고한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고, 억울함과 적개심,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자, 서로를 분리하기 위한 장벽이 도시 곳곳에 세워졌다. 그들의 상반된 주장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그 뿌리가 중세에까지 닿아 있는 오랜 적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일랜드인과 영국인, 구교도와 신교도, 공화파와 왕당파, 독립파와 통합파, 민족주의자와 연합주의자로 그들은 서로를 분리하고 배척했다. 1998년의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이른바 성금요일 평화협정 체결로 벨파스트의 무장투쟁은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영국의 브렉시트 결과가 북아일랜드에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시민들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벨파스트 곳곳에 세워졌던 벽은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 대신 역사의 무거운 메시지를 전해준다.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평화의 벽이 북아일랜드에만 세워진 것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평화를 빙자한 벽 세우기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사는 것일까? 정치적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빈부의 갈등, 남성과 여성의 갈등, 북한과의 갈등, 이웃한 나라들과의 갈등. 매일 쏟아지는 갈등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진다.나와 너를 가르는 정체성의 기준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 기준들이 서로를 적대시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허무는 것이 평화다. 높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 위해 마주 앉는 것이 평화다. 대화를 통해 협조하고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것보다, 인내와 오랜 기다림으로 대화를 맞이하는 것이 훨씬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평화가 찾아들어, 갈등으로 쌓아 올린 높은 벽들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하기를 희망한다.

2019-09-02 10:53:34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윤석열 검찰'의 '조국 수사' 국민이 지켜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스'의 실소유주인가. 다스 수사와 재판은 우리 검찰의 민낯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다스 실소유주 등 논란이 불거지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선거를 2주일 앞둔 시점에서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는 모두 아는 바대로다. 다스 등 이 전 대통령 관련 모든 의혹은 무혐의. 논란이 이어지자 이듬해에는 정호영 특검이 나섰다. 특검 수사 결과 역시 혐의 없음이었다.우리가 목격한 대로 문재인 정부 들어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후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2018년 3월 다스를 통한 339억원의 비자금 조성과 348억원 횡령 혐의로 이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1심은 일단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와 재판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자임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이쯤 되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검찰과 현재의 검찰 중 어느 검찰을 믿어야 하는가. 현재의 검찰이 맞다면 과거의 검찰은 왜 무혐의 결정을 내렸을까. 능력 부족인가 다른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까. 잘못된 수사 결과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자.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규명해야 한다. 현재의 결론을 미래의 검찰이 뒤집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을까.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냉소가 답으로 돌아올 것 같다.살아 있는 권력에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 가혹한 검찰. 정권의 향배에 따라 표변하는 검찰. 다스의 문제만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어느덧 우리는 그런 검찰의 모습이 당연한 것인 양 길들여진 게 아닐까 싶다. '윤석열 검찰'의 '진짜 의도'에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는 가히 전격적이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장관 후보자 관련 수사도 초유의 일이거니와 대대적인 압수수색 또한 심상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조국 법무부장관을 임명할 게 확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수사를 개시한 검찰의 의지를 이번에는 믿어볼 만하다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반면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맹탕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중요한 이유로 든다. 조 후보자와 증인이 진술을 회피하고, 제출할 자료가 없다는 근거로 검찰 수사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어느 쪽이든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검찰이 조 후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일 수도 물론 있다. 조 후보자는 사과를 하면서도 불법은 없었다, 법과 제도를 따랐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검찰 수사로 위법은 없었다고 확인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들 사이의 재산 관계, 석연치 않은 사모펀드 투자, 자녀 논문 및 장학금 관련 문제 등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수사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예단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점은 또다시 특검 혹은 미래의 검찰 수사가 필요하지 않도록 의혹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국민의 검찰"이라는 말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말대로만 하면 된다. 사람 혹은 정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수사하도록 검찰을 지휘해야 한다.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하라"는 주문을 한 바 있다. 본인의 언명대로 하려면 문 대통령은 여당과 청와대 일각의 검찰 비판에 제동을 걸어야 마땅하다.조 후보자는 말빚이 너무 많다. 과거의 조국이 오늘의 조국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느냐." 과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남긴 그의 말이다."조선 시대 언관(言官)에 탄핵당한 관리는 사실 여부를 떠나 사직해야 했고, 무고함이 밝혀진 후 복직했다"는 말도 있다. 역시 말한 대로 하면 된다. 언관에 탄핵당한 정도가 아니라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인물이 장관직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 다른 장관도 아닌 법무부장관이다. (검찰 수사로) 무고함이 밝혀진다면 다시 등장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모두가 자신이 한 말의 엄중함을 새기고 행동할 때 검찰 수사, 특검 수사, 검찰의 재수사로 이어지는 검찰의 흑역사 또한 청산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2019-09-01 16:59:27

김호진 경상북도 일자리경제산업실장

[기고] 일본 수출규제의 도전과 기회

일본 수출규제 상황에 국가경제는 물론 지역경제의 어려움도 더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민선 7기 새로운 도정이 출발한 이후 어려울 때마다 역사의 중심에 섰던 경북의 자존과 정체성을 되살려 경제의 활력과 희망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지역의 우선 과제이자 국가적인 사명이 되고 있다.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발로 뛰며 국비예산을 확보하고 강소형 연구개발특구와 규제자유특구 선정, 구미형 일자리 모델 투자 유치, 5G 국가 테스트베드와 홀로그램 사업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등으로 포항, 구미를 중심으로 경북 경제의 양 엔진이 다시 힘차게 가동되려고 하는 중요한 전환점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과제이자 큰 도전이 되고 있다.경상북도의 경우 2018년 기준 대일본 수입액은 22억달러 정도로 지역 총수입 152억달러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순위로는 중국, 호주에 이어 제3위의 수입국이다.무엇보다 수입업체의 현황도 전체 1천601개 기업으로 구미시가 392개사로 가장 많고 포항 263개사, 경산 210개사에 이어서 칠곡, 경주 등에 집중돼 있다.품목별로는 기계류, 철강금속, 화학공업 제품, 전기전자부품 등 주요 품목이 전체 대일본 수입의 90% 이상에 달한다. 특히 7월 이후 수출규제 중인 전자전기 및 반도체보다 기계부품류 수입이 가장 많은 9억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41%를 차지하고 있어 앞으로 부품소재 분야로 규제가 확대될 경우의 영향과 피해에 대해 더욱 긴밀히 대응하고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현실적인 사정상 개별적인 기업 정보를 공유, 파악하는 데 어려움과 한계도 있지만 다행히도 아직 우리 지역 기업들의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접수, 파악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 있을 이들 기업의 피해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사후적으로 확인, 지원하는 대응 체계 운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도정의 행정력을 집중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지난 7월 초 일본이 3개 반도체 품목 수출규제 발표 직후 구미에서 현장대책회의를 바로 개최했으며 이후 전우헌 경제부지사를 반장으로 수출입 유관기관 전체와 협력해 상황대응팀, 정책대응팀, 기업지원팀으로 구성된 종합대응반 체제를 계속 유지, 운영하고 있다.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당일에는 이철우 도지사가 휴가까지 취소하고 복귀해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상황 점검과 피해 기업 확인과 지원 대책, 추경예산 편성 등을 직접 꼼꼼하게 챙기고 지시했다.경북도는 위기와 도전 앞에서 항상 당당히 맨 앞에 서 왔다. 우리는 이미 일본 수출규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응 전략과 병행해 전자, 철강, 자동차와 기계부품 등 지역 주력산업들을 공격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세부 전략을 함께 보완하고 있다. 정부의 기술개발과 국산화, 자립화 정책 대응에도 신속히 맞춰 부품소재 분야 전략사업들을 선도적으로 정부사업화하기 위해 10여 건의 예타사업 대상 대규모 전략사업과 70여 건의 개별사업을 정비, 발굴해 정부와 적극 협의, 건의하고 있다.비상한 각오와 최선의 노력으로 이러한 대응과 준비를 하면서 현재의 힘든 경제 상황과 앞으로의 더 큰 도전과 어려움을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릴 생각도 결단코 없다. 경북도는 새로운 위기와 도전을 맞아 다시 한 번 가장 앞에서 더욱 밝은 불꽃으로 길을 밝힐 것이다.

2019-09-01 15:33:25

변화는 두렵다. 하지만 브랜드는 늘 변화해야한다. 사진: pixabay 제공 -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브랜드는 끊임없이 변해야하고 영원히 변치 말아야 한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기를' 하상욱 시인의 시이다. 이 시는 브랜드에도 적용된다. 사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우리의 뇌는 예측 가능한 일을 좋아한다. 기존의 것을 바꾸거나 변화로 인한 리스크와 싸워야 한다. 이런 익숙함에 속아 브랜드가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예를 들어 브랜드 로고를 바꿔서 새로운 이미지를 준다든지, 슬로건을 변경한다든지 하는 일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왔으니 기존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CEO들이 이런 전략을 쓰고 있다. 어쩌면 전략이기보다 시장에서 인정받았으니 검증된 방법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브랜드는 정체되는 순간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 예쁜 얼굴도 자주 보면 싫증나는 것처럼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의 시선은 냉정하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브랜드가 시장에 출시되면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애착하게 된다. 헌 집, 헌 차에서 새 집과 새 차를 마련하는 기분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찾는다.스타벅스는 누가봐도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브랜드 역시 꾸준히 변화했다. 우리가 길을 걸으며 마시는 테이크 아웃 종이컵의 스타벅스 로고는 사실 꾸준히 변화했다. 처음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탄생되었을 때 로고의 아이덴티티 색상은 갈색이었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고급스러운 녹색의 로고가 원래는 갈색이었다니.스타벅스는 시대에 맞게 디자인을 점차 변화시켜 갔다. 생각해보자. 스타벅스 로고가 만약 여전히 갈색이었다면 우리는 이 브랜드를 그토록 사랑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브랜드들은 로고의 색상, 형태들을 변경함으로써 꾸준히 새로운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주려고 한다.'휠라'라는 브랜드를 살펴보자. 휠라는 1911년 휠라 형제에 의해 설립된 의류, 스포츠 용품 브랜드이다. 지금이 2019년인걸 감안하면 엄청난 브랜드 생명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만큼 '올드하다'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이런 단점을 휠라는 다른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이겨내고자 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메로나와 협업을 통해 디자인을 산뜻하게 바꾼 것이다. 올드한 브랜드 이미지가 순식간에 산뜻하게 바뀌었다. 스포츠 용품 브랜드와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협업해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올드한 브랜드 이미지를 과감하게 버리고 소비자에게 새로운 모습을 어필하고자한 브랜드의 노력 덕분이었다.변화는 두렵다. 하지만 두려워서 피해간다면 브랜드의 생명력은 짧아진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길 바라는 하상욱 시인의 글처럼 브랜드의 정체성을 남겨두고 끊임없이 변화하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8-31 11:15:17

남지민 작 '가을'

[내가 읽은 책]'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증보판/신영복/돌베개

매년 여름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초심 같은 문장이 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로 시작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의 '여름 징역살이'라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은 대학시절,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전부이고 나의 고민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정저지와(井底之蛙)였던 나의 마음에 던져진 큰 돌멩이였다. 수인이었던 저자 신영복은 한 달에 한두 번 보낼 수 있는 편지와 엽서를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행간 행간마다 담아냈다. 이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사람에 대한 편견 없는 생각의 결을 다듬어준 내 인생 책이 되었다.저자 신영복은 1941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육사 경제학 교관으로 재직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20일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가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후 성공회대 교수를 역임하면서 정치경제학, 중문학 등을 강의했고 1998년 사면 복권됐다. 2006년 정년퇴임 후 같은 대학 석좌교수로 강의와 연구, 집필을 이어가다 2016년 세상을 떠났다. 1988년 출소와 함께 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초판에는 1976년 2월 편지부터 출소까지 지인들에게 보낸 엽서와 편지를 수신자 별로 나누어 실었다. 1998년 출판한 증보판에는 출소 후 발견한 1969년, 1997년의 메모와 편지를 더해 옥중생활 시기별로 정리해서 실었고 저자가 직접 소제목을 다시 달았다.책을 처음 읽고 난 후 25년이 지난 후인 올 여름, 증보판을 다시 펴들었다. 예전에는 갇힌 세상에서 펼쳐낸 사색의 결실을 감성적으로 읽었다면 이번에는 저자의 독서 철학과 독서 이력을 따라가며 읽었다. '독서는 타인의 사고를 반복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거리를 얻는다는데 보다 참된 의의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신영복은 옥중생활 동안 '난중일기', '맹자', '춘추', 율곡의 '공론', 허균의 '호민론', '실학', '대학', '주역', '시경' 등 동양 고전을 통해 삶에 대한 인식의 영역을 넓히고 깊이를 더했다. 더불어 '밑바닥'의 삶을 살고 있는 옥중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옥중을 삶의 훌륭한 교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독서와 관계를 통한 배움을 인식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걸음걸이로 실천의 대륙으로 걸어가길 당부하고 있다.'책이란 자기가 변하면 내용도 변하는지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다시 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또 다른 책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냥 입으로만 읽던 문장을 이제는 온 몸으로 공감의 전율을 느끼며 읊조릴 수 있는 까닭도 나의 지난 25년 인생수업 시간 덕분이리라. 매미의 절창이 이울고 숨을 들이 마시면 신선한 바람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가을이다. 저자 신영복이 터놓은 동양 고전의 호젓한 오솔길로 가을 산책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는 독서와 사색이 영글어 튼실한 실천의 열매가 열리길 기대해본다.남지민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8-31 03: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술병도 꼭 챙겨가라  姜希孟(강희맹)

호미 들고 들판 갈 때 술병도 꼭 챙겨가라 提鋤莫忘提酒鍾(제서막망제주종)호미질 열심히 했으니 술 마실 자격 있다 提酒元是提鋤功(제주원시제서공)한 해의 살림살이가 호미질에 달렸으니 一年饑飽在提鋤(일년기포재제서)호미질 하는 그 일을 어찌 게으르게 하랴 提鋤安敢慵(제서안감용)*원제: 提鋤(제서): 호미를 들다.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 그는 유교의 나라 조선의 관인(官人)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한 관찬(官撰) 사업에 두루 참여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의 여느 관인들과는 달리 여러모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근엄한, 아니면 최소한 근엄한 척 해야 마땅할 사대부로서 '촌담해이(村談解頤)'라는 야담집을 지은 것부터가 그렇다. '촌담'은 마을에 떠도는 이야기, '해이'는 턱이 빠지도록 껄껄 낄낄 웃는다는 뜻. '촌담해이'는 마을에 떠도는 아주 노골적인 음담패설들을 모아놓은 책이니, 책장을 넘길 때마다 턱이 빠지도록 낄낄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농촌 사회에 전승되어오는 민요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대부로서는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이다.위의 작품도 당시 농민들이 부르던 민요를 한시 형식에다 옮겨 담은 것인데, 파격적 요소가 수두룩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것은 이 시가 교훈시이면서도 교훈시의 상투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교훈시는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하라'거나 '~하지 말라'는 등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잔소리가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교훈이 되기도 전에 진절머리부터 먼저 나서 좀처럼 감동이 되지 않는 것, 이것이 교훈시가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이 시도 결국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호미질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교훈적 내용으로 귀착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 자체가 매우 특이하다. 보다시피 화자는 작품의 앞부분에서 대뜸 '호미 들고 들판 갈 때 술병도 꼭 챙기라'고 말한다. 진절머리 나는 잔소리가 아니라 엔도르핀이 확 솟구치고 귀가 번쩍 뜨이는 반가운 소리다. 들판으로 나가는 발걸음에 자연 신바람이 날 수밖에 없다.'열심히 공부해야 시원한 팥빙수를 사 준다'는 것과 '시원한 팥빙수를 먹어가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 느낌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그것은 호미만 달랑 메고 무더운 들판으로 나가는 사람과, 술병도 한 병 허리에 차고 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의 차이와도 같다. 이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교훈시가 우리에게 주는 아주 소중한 교훈 중의 하나다.

2019-08-29 13:55:46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무엇이 정의고 공정인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던진 충격과 파문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첫째,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신을 계승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촛불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는 공정, 정의, 평등이다. 조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은 이런 촛불 정신을 정면 부정한다. 조 후보자의 위선과 탐욕으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도로 아미타불 물거품이 됐다. 조 후보자의 가장 큰 과오는 현 정부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 OUT"을 외치며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 장관 되면 공정·정의 배반이다"고 했다.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23, 24일), 조국 후보자 임명에 대해 국민의 60.2%가 반대했다. 20대 젊은 세대에서는 68.6%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는 '여러 의혹 때문에 공정·정의 등을 내세울 자격이 없어서'(51.2%)가 가장 많았다. 여론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아집이고 오기다.조 후보자는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지명됐다. 그런데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법 개혁을 완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개혁을 하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도덕성과 언행일치,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국 캐슬',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단언컨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개혁은 설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라도 '읍참조국'(泣斬曺國)을 통해 정의와 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촛불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다.둘째, 집권 여당의 비뚤어진 '조국 지키기'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관계 기관과 협의 없이 조 후보자 주변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선 것을 "적폐" "개혁에 저항" "기관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주당의 이런 행태는 표리부동의 전형이고 검찰에 대한 정치적 외압이다.문 대통령은 7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한 법 집행"을 당부했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윤 총장 인사 청문회 당시만 해도 "검찰을 이끌 적임자"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 검사"라고 두둔했다. 압수수색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검찰이 적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외압을 가하는 집권당이 적폐다. 집권당은 검찰이 아니라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해 청와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집권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보며 맹목적으로 충성하면 결국 정부를 죽이게 된다.셋째,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와 법치와의 관계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애드워드 밴필드(Edward Banfield)는 '비도덕적 가족주의'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리 비도덕적이어도 용인될 수 있다"는 '가족에 대한 무한 충성 감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것은 법치 훼손의 주범이고 사회 불신의 근원이다. 부끄러움 없이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 빠져 있는 조 후보자는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법치를 완수할 수 없다.청와대에 묻는다. "각종 의혹으로 본인이 수사 대상이고 가족이 출국 금지당한 사람이 아직도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 생각하는가?" 집권당에 묻는다. "누가 적폐 대상이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가? 검찰인가 조국인가?" 조국 후보에게 묻는다. "당신이 부르짖었던 정의와 공정은 무언인가?" 친구 원희룡 지사의 충고처럼 '386 세대를 욕보이지 말고 부끄러운 줄 알고 이쯤에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행동은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되면 그것이 위선이고 기만이다.통상, 대통령이 오기를 부리고 특정 인물에 집착하며 집권당이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를 불러 대면 정부는 실패한다. 박근혜의 실패에서 보듯이 이것이 한국 정치에서 입증된 철칙이다. 조 후보자는 이제 허황된 권력에 대한 집착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불철저하고 안이했던 것을 성찰할 때다. 자신이 젊은 시절 매료됐다던 사르트르처럼 자기 안에 있는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2019-08-29 11:18:26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연꽃이 필 즈음에

창녕 수생식물원과 수목원에 빅토리아연이 피었더라고, 사진작가 친구가 일러주었다. 꽃 중의 여왕으로 찬사를 받는 빅토리아연의 생멸 과정을 보기 위해 수목원으로 갔다. 빅토리아연은 흰 봉우리가 열리고 왕관을 쓴 채로 스러지기까지 사흘 안에 생멸 과정을 다 한다.사진작가들이 수목원 연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모기 때문에 일찍 자리를 뜨지 않기 위해 긴 셔츠와 긴 바지를 입었다. 등으로 땀이 흘렀다. 사람이 올라앉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잎사귀 십여 장이 물에 떠 있고, 뜨거운 해를 받으며 연꽃 두 송이가 피어 있다. 열 송이 스무 송이도 아닌 달랑 한 송이, 인심 쓰듯이 그 옆에 또 한 송이. 그 두 송이의 꽃이 사진작가 삼십여 명을 불러 모았다. 빅토리아 연꽃 피어 있는 곳이 수목원뿐이랴. 지난 밤에 생을 마감한 꽃은 생을 다하고도 여전히 붉기만 한데.새벽에 흰색이었던 꽃이 분홍빛으로 변하다 오후부터 초벌 꽃잎을 벗기 시작했다. 연이 꽃잎을 한 겹 열고 나머지 한 겹마저 열고 있을 때 연지에 꽃의 몸 내음인 듯 향기가 가득 서렸다. 단단히 오므리고 있던 꽃잎이 손으로 젖힌 듯 발딱 일어서며 천천히 뒤로 젖혀지는 모양을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긴 오후가 지나고 어둠이 덮일 즈음 대관식이 가속화되었다. 한 장씩 벗겨진 꽃잎이 꽃받침인 듯 몸을 눕히자 가운데서 꽃술이 올라왔다. 소복하게 자란 꽃술 끝부분이 살짝 젖혀지고 왕관모양이 되며 절정을 이루었다. 서른 명 넘는 사람이 연지를 둘러싸고 있지만 비어 있는 듯 조용했다. 카메라는 꽃이 변하는 매순간을 잡아채어 자동접사로 저장하고, 여왕은 왕관을 쓴 채로 우아하게 스러진다.단 하루 만에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미련 없이 생을 접는 꽃, 빅토리아연은 겸손과 절제를 아는 꽃이었다. 여느 연과 달리 푸른 잎사귀는 최대한 몸을 낮춰 수면에 납작하게 깔려 있고, 물 위로 얼굴만 살짝 내민 꽃은 그 낮음으로 하여 바라보는 사람들을 고개 숙이게 만든다. 사진작가들이 빅토리아 연의 생멸을 두고 단순히 연꽃이 핀다고 하지 않고, 여왕의 대관식이 열린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에 공감했다. 그 찬란한 지존의 아름다움을 꽃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빅토리아 연이 하루 이틀 사흘이 아니라 열흘 보름 끄떡없이 피어 있어도 그렇게 여왕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환호할까. 여름 끝자락의 후덥지근한 더위에 온몸이 땀에 젖고 모기가 극성을 부려 연신 긁어대면서도 차마 발길을 돌리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저물고 만 것이 아쉬웠던지, 스러진 꽃 옆에 어느새 흰 봉우리 하나가 솟아오르고 있어서 내일을 예약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꽃 또한 내일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보여줄 터여서. 장정옥 소설가

2019-08-29 11:08:20

김광묵 대구시 산단진흥과장

[기고]성서산업단지가 나아가야 할 길

대구 성서산업단지(이하 성서산단)는 1988년 1차 단지 준공 이후 지역경제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2017년 기준 성서산단의 총생산액은 16조4천375억원으로 대구 산단 입주기업 전체의 총생산액 28조1천645억원의 58%를 차지했다.전체 면적 1천267만㎡로 국내 최대 규모의 일반산단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혁신성장의 원천인 제조업을 집적화해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그러나 올 3월 말 기준 성서산단의 가동률은 69.53%로 전 분기 대비 0.7%포인트(p) 하락했다. 6월에는 0.06%p 더 하락해 69.47%에 머물렀다. 성서산단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고, 지역경제 상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인 만큼 파장이 크다.반면 테크노폴리스나 대구국가산단 등 대구시가 최근 조성한 신규 산단의 경우 가동률이 77.7% 등으로 상대적으로 높고, 생산과 고용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정부는 4차 산업혁명과 환경규제 강화, 무역질서 재편,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 등 대내외 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주력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신산업 창출이 지연되는 등 한계에 달했다고 우려한다.조성된 지 30년 이상이 지난 성서산단도 생산설비 노후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도로·주차장 등 기반시설 부족, 열악한 근로환경 등으로 점차 청년들의 외면을 받는 상황이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구시는 산단 재생, 혁신 및 구조고도화 사업 등을 통해 인프라를 개선하고 창업공간 제공 및 근로환경 개선 등에 많은 노력을 해왔다.성서 1·2차 산단의 경우 올 연말까지 재생시행계획 수립과 설계를 끝내고 편입부지 보상 및 기반시설 공사에 착수, 2022년 말까지 493억원을 투입해 재생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지식산업센터 및 복합시설을 민간자력으로 개발하는 구조고도화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휴·폐업 공장을 개보수해 창업 기업 등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일부 공간은 산단에 활력을 불어넣을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더불어 대구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스마트 선도 산단 조성사업에 참여하고자 노력 중이다. 지난 5월부터 대구테크노파크와 공동으로 성서산단 스마트 선도 산단 조성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스마트 선도 산단은 기존 노후 산단을 '제조혁신' '근로자 친화공간' '미래형 산단'으로 바꾸는 게 목표다. 데이터와 자원의 연결, 공유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환경적으로도 주변 지역과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미래형 산단으로 만드는 것이다.현재 시행 중인 노후 산단 재생사업과 구조고도화사업의 토대 위에 스마트 선도 산단 조성사업이 추가된다면 노후 산단이 신산업 창출과 제조업 혁신의 전진기지로 대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스마트 선도 산단은 기존 산단을 스마트·친환경·융복합 혁신 테스트베드로 조성, 기업과 관련 지원시설이 집적된 제조혁신 클러스터로 조성된다. 이를 통해 창업과 혁신역량, 편의·복지시설 부족 등으로 외면받던 노후 산단을 청년이 다시 찾는 희망 산단으로 바꾸게 된다.대구에는 조성된 지 20년이 넘어 성숙 단계에 접어든 국가산단이 없다. 대구 국가산단은 1단계 구역 592만㎡가 2016년에야 준공됐을 정도로 신생 산단에 속한다.따라서 일반산단이지만 규모나 경제적 역할 면에서 국가산단에 버금가는 성서산단에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각종 정부 시책들이 우선 적용될 필요가 있다.

2019-08-29 10:27:13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시의 상상력으로

나는 흔히 사람들이 일컫는 연극쟁이다. 그것도 현장성을 매우 중요시 하는 현장예술인이다. 이 말인 즉, 감성과 이성 그리고 충동의 본질을 행동하고 표현하여 그것으로 인해 관객과의 소통을 바로 그 순간의 찰나를 통하여 교감하고 짜릿함을 느끼며 내가 비로서 무엇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쟁이인 것이다.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굉장히 이성적이면서도 지적인 면을 갖추면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으며 자기 스스로의 본능과 감정 그리고 자기의 억압욕구를 자아세계에 맞춰 비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는 이론적 무장으로 인하여 굉장히 논리적이나 약간의 딱딱함을 주며 후자는 감성적이고 창의성은 있으나 자아도취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며 전자에 대해 약간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 그것에 대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한다.그러나 작금에 들어서는 이성적이든 논리적이든 본능적이든 감성적이든 간에 예술에 있어서는 '재미 있는' 것이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으며 재미나게 표현할줄 알아야지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듯하다. 그래서 많은 쟁이들이 자기의 유형을 버리고 너도 나도 재미를 쫒다보니 각자의 색깔이 없어지고 일률적이며 보편적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그런데 '시' 라는 존재는 이러한 경향이 완전히 무시되는 그야말로 인간에 의한 자연의 예술물인것 같다. 왜냐하면 시는 느끼는 대로 말하고 인식되는 대로 표현하며 깨닫는 대로 충만해진다. 이 과정들 속에서 어느 한가지만 '의미'를 가지더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만족하고 흥얼거리며 묘한 자기 만족감을 준다. 시는 압축적이며 무한하여 모든 것을 만들게 해준다. 아름다운 시 한편은 미술로도 음악으로도 연극으로도 탄생될수 있다. 또 역으로 모든 예술장르를 한편의 시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만큼 시는 우리에게 다양성을 준다. 바로 각기 다른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어느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한편의 시를 흥얼 거렸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해 보았다. "난 네가 정말 좋은데 넌 내가 그렇게 싫어 한번 말해봐! 말해보라구! 왜 말이없지. 그래 이제와서 내가 역겹다 이거지. 날 사랑한다 말할 땐 언제고 다른 여자라도 생긴거야! 이 비열한 자식 가! 가버려! 너같은 자식 두 번다시 보기싫어 다시는 내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지도 않을거야. 어서 가버려!"시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감정으로 느끼고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다양성을 연극하는 나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수 있는 해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29 10:24:34

종이에 먹, 167×266㎝, 대전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응노(1904~1989) '군상'

미술관에 걸어도 큰 그림인데 이렇게 작게 보여드리자니 민망하지만 이 작품이 가장 마음을 끌었다. 화면 가득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역동적인 인간상을 그렸다.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별도 노소도 미추도 구별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이 동작은 춤이다.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춤은 인류가 원시인일 때부터 향유한 예술일 것이다. 이들은 팔다리를 격렬하게 움직여 춤을 추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서기 2019년인 지금 지구에 약 77억 명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 그림에 2천명은 그린 것 같다.'군상'(群像, people)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로 다른 동작이 모여 이룬 군무이다. 집단지성의 현장 행동 광경인 것이다. 몸집도 비슷하게 그려진 이들은 서로 동등한 익명의 개성이다. 국적 불명, 시공 불명의 감각 즉 보편성의 층위를 매체의 국지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느끼는 것은 이응노가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작업했다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수천의 군중이 출현하는 군상 시리즈는 1980년대에 나타나는데 그가 자신의 예술을 6기로 나눈 중 마지막인 '서예적 추상' 시대에 속한다. '군상'의 메시지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오일팔광주민주화운동이나 학생과 시민의 데모를 연상하고, 유럽 사람들은 반핵운동으로 보았지만 이응노는 양쪽 모두 자신의 심정을 잘 파악해 준 것이라고 했다. 20대부터 평생을 지치지 않고, 손을 쉬지 않으며 왕성하게 창작력을 발휘해 온 그는 80대의 나이에 민족과 민중이 생동하는 이런 꼭지 점을 이루었다. 붓이 움직이는 찰나의 순간 검은 먹이 흰 종이에 스며든 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이라고 할 수 있는 수묵화 형식이어서 더욱 강력한 울림을 주는 '군상'은 지필묵이라는 매체의 전달력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모필 붓에 먹을 찍어 종이에 그리는 것은 그가 회화를 배운 처음의 방식이며 마지막에도 진행한 방식이다. 충남 홍성 출신인 이응노는 화가가 되고 싶어 1923년 19살 때 상경하여 해강 김규진의 문하에서 대나무 그림을 배우며 죽사(竹史)로 호를 받았다. 이듬해 조선미술전람회에 '묵죽'으로 입선했고, 1935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살며 미술 공부와 작품 활동을 하다 광복 후 돌아왔다. 1954년 국전의 짬짜미를 고발하며 추천작가 추대를 거절했던 그는 1958년 12월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갔다. 자신의 예술을 넓은 곳에서 높게 펼치고 싶었을 것이다. 고암(顧菴)이라는 이응노의 호는 중국의 화성(畵聖) 고개지에서 딴 것인데, 고암은 파리에 살며 그의 호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미술사 연구자

2019-08-29 10: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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