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매일춘추] 무대 뒤 숨은 주인공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초로 감독상·국제영화상·각본상에 이어 작품상까지 4관왕을 기록하며 전 세계에 한국 영화의 파워를 보여주었다. 한국영화 역사의 쾌거를 보여준 이 시상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외롭게 사투를 벌였을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돌아가는 영광스러운 상인 것 같아 더더욱 감동으로 다가왔다. 무대 위에 선 그들은 누구 보다 빛났으며, '최고'라는 영예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로운 싸움을 하는 감독과 스태프들. 그들은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게 불철주야 노력하는 숨은 조력자들이다. 영상매체이건 공연예술이건 표현 방식이 다른 장르의 차이는 있어도 창작의 한계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열정은 한길을 달린다.뮤지컬과 연극, 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오가며 많은 감독과 스태프들을 만나게 된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상상으로 던진 말에 개인적인 욕심은 안중에도 없이 흥망성쇠의 기로에서도 '함께'라는 의리로 기운과 영감을 채워주는 제작자와 기획자들, 헌신과 노력으로 텅 빈 무대를 미학과 철학을 담아 실현시켜주는 감독들은 참 고마운 존재들이다.무대 위의 배우들은 최첨단의 기술로 기교를 부려 날개 달린 작품의 큰 그림을 볼 수 없어 아쉬워하고, 연출가는 좋은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최상의 기술력을 동원해 현란한 마술을 부려주는 감독들의 노고에 보답할 길이 없어 더 아쉽다.수개월 동안 함께 고민하고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던 땀 냄새 그득한 연습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발걸음을 극장으로 옮길 때 밀려오는 떨림은 미니어처나 도면으로만 보던 디자인들이 어떤 구조물로 어떻게 무대화 될지에 대한 설렘 때문이다. 배우들의 발걸음 또한 기대감으로 분주한 것은 창작의 고통을 이겨낸 해방감과 그 예술을 펼쳐낼 무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겠지.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들 뒤에는 그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위험하고 고된 작업에도 끊이지 않는 열정으로 마음을 다해주는 감독과 스태프들이 있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늘 검정색 옷만 입고 다니는 그들의 숨은 노력에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무대 뒤에서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주는 조율명장 이종열 선생이 없었다면 어떤 피아니스트도 완벽한 무대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최고의 무대를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하고 집중하는 그들의 삶은 무대 위에 보이는 그 어떤 화려함 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을 보이지 않는 숨은 주인공들의 열정과 수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2020-02-12 14:30:00

도제헌 중부소방서 예방안전과

[기고] 전통시장의 소방안전 대책

소방청은 지난해 전통시장 화재 발생 통계를 발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화재 발생 시간이 오후 8시부터 오전 4시까지가 46.6%로,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집중됐다. 화재 원인은 전기적인 요인이 45.3%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2016년 11월 30일 서문시장 4지구에 839개 점포가 전소되고 460여억원의 재산 피해를 낸 화재도 인적이 드문 오전 2시 8분쯤 발생했다. 당시 화재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된다.소방청은 전통시장에 대해 2018년 2차에 걸쳐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화재안전등급을 A등급에서 E등급까지 분류하고, 특히 화재 위험이 높고 큰 피해가 우려되는 불량 수준인 E등급(60점 이하)은 소방청의 직접 관리를 받고 있다. 대구중부소방서 관내 26개 전통시장은 대부분 1980, 90년대 이전에 형성돼 건축물이 낡아 스프링클러, 옥내소화전 등 고정 소화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곳도 있다. 남문시장을 비롯한 D등급은 8개소, E등급(60점 이하)도 4개소에 이른다. 이들 시장은 여전히 영업 중이어서 화재나 재난 발생 가능성을 늘 안고 있다. 전통시장의 제도적, 구조적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아내는 일이 절실하다.첫째, 전통시장은 대규모 또는 50개 이상 점포로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이 인정한 곳이나, 일부는 점포가 수개 이내로 사실상 시장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전통시장 등록을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시장 상인들이 정부 지원금, 재개발 등의 지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등록권자가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면 이러한 실정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둘째, E급 전통시장은 소규모이거나 영세 점포로, 관리 주체가 제 역할을 못하거나 소방안전관리자가 없어도 되는 대상으로 화재 등 안전관리가 매우 취약하다. E급 전통시장도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대상으로 정하는 등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고 자율소방대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셋째, 시장 상인의 안전의식을 제고해야 한다. 시장 관계인은 소방시설을 설치, 유지 관리 의무가 있으나 일부 상인은 소화기, 자동화재탐지설비 및 옥내소화전 설비 등의 유지에 정부 지원을 당연시하고 안전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이다. 안전의식 강화를 위한 교육 이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넷째, 전통시장은 소방차의 신속한 진입 등 화재 대응 여건 조성이 필수적이다. 주택단지 내 시장의 경우 진입로가 협소하고, 불법 주정차와 고정형 진열 및 천막 등으로 신속한 소방차 진입이 쉽지 않다. 소방차 진입 공간 확보를 위한 예산이 필요하며, 소방관서와 시장 관계인이 협력하여 화재진압 대책을 논의하고, 중장기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다섯째, 전통시장 전기시설 노후가 화재의 원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특별관리가 필요하다. 비닐 전선 및 문어발식 콘센트 사용, 감전사고 방지를 위한 전기기기의 미접지, 누전차단기 미설치 및 용량 초과 등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주기적인 전기 안전점검이 필요하다. 기타 가스 누설 탐지 장치 설치와 용기, 배관 등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또 비상구 폐쇄, 불법 가설건축물 사용, 철근 노출, 가연성 건축자재 사용 여부도 점검해야 한다. 화재 예방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안전관리가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운영주체 및 사용자 모두 관심을 갖고 불조심을 생활화한다면 반복되는 화재나 재난을 지금보다 훨씬 줄일 수 있다.

2020-02-12 14:30:00

새롭게 개발된 딤프의 CI.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브랜드도 화장해야 팔린다

'브랜드도 사람과 똑같구나'.브랜드를 맡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얼굴은 강력한 이미지가 된다. 그 이미지로 그 사람의 성격을 추측하기도 한다. 안성기씨를 보면 어떤 고민도 들어줄 것 같은 따뜻한 사람일 것 같다. 반면 마동석씨를 보면 강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안성기씨가 마동석씨의 이미지를, 마동석씨이 안성기씨의 이미지를 갖는 일을 죽었다 깨어나도 힘든 일이다.우리가 브랜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브랜드의 얼굴을 보고 그 브랜드를 판단하게 된다. 이때 우리가 생각하는 브랜드의 얼굴은 바로 CI(Coporated Identity)이다.자, 지금 머릿속에 어떤 브랜드를 떠올려보자. 나이키, 스타벅스,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해보자. 그 순간 가장 먼저 머릿속을 차지하는 것이 CI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업은 브랜드 로고에 목숨을 건다. 삼성 역시 브랜드 로고에 수억을 들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혁신적인 정신이 들어가 있다. 그 로고에 그 브랜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딤프라는 브랜드가 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의 약자인데 지금은 대구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2006년에 시작해 전 세계의 프로덕션과 공연관계자, 시민을 아우르는 아시아 최초의 국제 페스티벌이 매년 대구에서 열리고 있는 셈이다.작년의 경우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님은 엑소의 수호를 홍보대사로 보내 아시아 팬들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그만큼 딤프 페스티벌은 국내 잔치용의 브랜드가 아니다. 특히 대구 중심가에 있는 노보텔에는 딤프 축제 동안 더 많은 외국인이 숙박한다. 대구에서 딤프가 차지하는 브랜드 파워는 강력하다.하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게 CI가 너무 올드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CI를 개발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타벅스, 애플의 현재의 로고도 처음 디자인에서 조금씩 변형된 것이다. 디자인 트랜드는 변하는데 한 가지 로고를 너무 오래 쓰면 당연히 올드하게 보인다. 카페베네 역시 위기를 겪고 다시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로고를 교체한 것이다. 이토록 로고는 소비자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로고의 중요성을 설명하다 보니 잠시 얘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다. 다시 딤프로 돌아가면 외국인이 찾는 브랜드인만큼 시각적인 어필이 필요했다. 딤프의 로고만 봐도 '아! 뮤지컬 축제구나!'라는 느낌을 줘야 했다. 즉, 글이 없이도 시각적인 언어를 전달 할 수 있어야 했다.하지만 수년 전에 개발한 딤프의 로고는 그 점이 부족했다. 필자는 애플 로고를 볼 때마다 스티브 잡스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애플 로고는 성경 속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빗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즉, 인간이 취해선 안 되는 것을 한 입 베어 무는 것을 표현해 혁신을 이야기 한 것이다. 그 로고 하나에 애플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사람들이 나이키 로고를 보면 달리고 싶고 맥도날드 로고를 보면 배고픈 것도 이런 이유다.필자는 CI 작업의 영감을 얻기 위해 딤프 뮤지컬에 참석했다. 운 좋게도 세계적인 작품인 투란도트를 두 눈으로 확인할 기회를 얻었다. 난생처음 본 뮤지컬의 흥분은 대단했다. 불이 꺼지고 조명이 켜질 때 흥분은 영화관과는 또 다른 묘미였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조명이 뭐라고 사람을 이토록 흥분시키나?' 어둠을 뚫고 나오는 빛은 우리에게 큰 임팩트를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바로 그거였다. 아이디어는 바로 거기에 숨어 있었었다. '사람들은 조명에 흥분하고 박수치니 로고에 그 모습을 담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로고를 만드니 누가 봐도 뮤지컬이 연상되었다. 외국인이 봐도 이해되는 브랜드가 완성된 것이다.아이디어 발표일 찾은 딤프의 사무실을 보고 많이 당황했다. 국장님께만 발표하면 될 줄 알았던 시안이 스무 명 정도 되는 딤프의 직원들이 사무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간절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로고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준비한 몇 가지 시안 중 아니나 다를까 딤프 팀 역시 조명 시안에 애착을 뒀다. 기존의 딤프 로고에는 시각언어를 담지 못했는데 그 문제가 해결된 것 같다고 기뻐했다. 필자도 덩달아 행복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이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으니까.딤프는 분명 매력적인 브랜드다. 하지만 세상에는 매력적인 브랜드가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손님을 맞이할 때 세수를 하지 않거나 화장도 하지 않은 채로 나간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매력적인 브랜드도 그 보이지 않는 매력을 시각화시켜야 한다. 이제 브랜드도 화장해야 팔린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2-12 12:01:09

유재경 영남신학대 기독교 영성학과 교수

[종교칼럼] 사소한 것의 가치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는 "지금 이 순간에 충만하고 강렬하게 집중하고 있을 때만이 진정한 '존재' 상태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진정한 존재의 상태인 자유와 기쁨은 '지금 이 순간을 살 때'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삶의 참된 가치가 순간에 있듯이 삶의 소중함도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것'에 있다. 우리 인생에서 사소한 것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속담이 생겼겠는가.우리는 사소한 것 때문에 웃고, 사소한 것 때문에 상처받는다. 어린아이의 환한 미소는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한다. 거실에 핀 한 송이의 작은 난은 온 집을 향기로 가득 채우고, 마음에 그윽한 기쁨을 머금게 한다. 한편 우리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큰 상처로 남을 때가 한두 번인가. 우리는 사소한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사소한 것 때문에 친구와 이웃 사이, 심지어 형제 사이가 멀어진다.공감 능력도 사소한 얼굴 표정 하나, 놓치기 쉬운 문장 부호 하나에 주목할 때 생긴다. 독서를 내적 수행이라고 생각해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독서가는 행간을 읽고, 문장과 단어보다 쉼표를 눈여겨 읽는다. 공감에 뛰어난 사람은 말보다 그 사람의 몸짓과 얼굴 표정을 먼저 읽는다. 사소하게 보이지만 글자 없는 여백을 읽어내고, 말하지 않는 말을 듣는 사람이 진정으로 공감하는 사람이다. 노자의 〈도덕경〉 41장에 '큰 소리는 소리가 없으며'(大音希聲)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도 고통이 크면 클수록 소리를 낼 수 없다. 서툰 몸짓 하나, 사소한 얼굴 표정과 침묵 속에 그 사람의 소중함이 담겨 있다.우리 영혼이 갈망하는 진리도 사소한 자연 속에 있다. 예수님은 새 한 마리, 들에 핀 꽃 한 송이를 보며 진리를 노래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6) 우리가 찾는 소중한 것들은 위대한 시인의 정신에 있는 것도, 탁월한 철학자의 언어 속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과거의 지혜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일상의 사소함 속에 있다.중국 우한의 의사 리원량((李文亮, 1985~2020)에 대한 추모 글이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의사로서 그의 삶은 '슬픔'과 '감동'을 넘어 '숭고함'과 '경외심'이다. 리원량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처음 알렸을 때만 해도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지금 중국은 어떤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하루 사망자가 100명이 넘고, 누적 사망자 수가 1천 명을 넘었다고 한다. 젊은 의사의 충고를 귀담아들었어야만 했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불행은 작은 소리를 가볍게 여기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 속에 소중함이 깃들어 있음을 기억하자.

2020-02-12 11:16:54

장현우(법무법인 두우 변호사)

[경제칼럼] 다시 현장에 집중하고 소통해야 할 때

막힌 곳 뚫을 뛰어난 아이디어는 점원과 창고 직원들로부터 나와경제 위기 해결책 안 보이는 요즘 어려울수록 현장과 소통이 중요현장이란 사전적 의미는 '일이 생긴 장소나 실제 진행하거나 작업하는 곳'을 의미한다. 경영진이나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현장경영이라고 한다.경영진이 현장을 방문해 직원과 의사소통을 늘리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경영 기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톰 피터스 교수는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는 점원과 창고 직원들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일류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한 내용이다.문제 해결 방법도 동일하다. 기업 현장을 돌아다니며 막힌 곳을 찾는다. 원활한 흐름이 멈추는 지점에서 장애를 직접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점이 발생한 곳을 떠나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한 기업에서 새로운 생산 방식 문제로 많은 노력을 했으나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외 논문을 검색하고,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그때 임원과 식사 자리에서 생산 직원이 "전에 있었던 작은 공장에서 그 방식으로 생산했던 적이 있어요"라고 한 말 한마디에 기술을 이전받아 해결했다고 한다. 직원과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두려움으로 직원과 소통하지 않았다면 해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또한 법조에서 현장이란 사건이 발생한 곳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법정도 그 대상이다.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경험이 변론의 방향을 결정하고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법정에서 상대방 측 증인을 신문하다 반전이 필요하던 중, 확인서 이름 옆 한자(漢字)에 대해 묻자, 당황하며 답변을 전혀 못하는 게 아닌가. "한글은 아세요"라고 질문하자, 한글도 모르며 사실 내용도 모르고 그냥 서류에 도장만 찍었다는 증언과 함께 극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힌 경우가 있었다. 법정에서 해결 방법을 찾은 것이다.요즘 많은 회사와 자영업자들이 경제적 위기라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며 두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매출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비용과 세금은 늘고 있어 경영하기 두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일단 버티고 있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미국 중국 일본과의 무역 분쟁,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등 경험하지 못한 복수의 상황이 겹치며 다가오고 있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현장과 소통이다.중국 우한의 젊은 의사가 신종코로나 발생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환자들의 증세가 사스와 유사하다는 경고를 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은폐한 것이 현재 상황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소통 부재가 현재의 위기를 발생하게 한 시작점이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이러한 경우는 없는지, 현장과 소통을 하고 있는지 되짚어보아야 한다.위기가 닥칠 때마다 '임자 해보기나 해봤어'라고 꼬집은 모 회장님의 말처럼, 우리 기업과 국민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그 저력은 아직도 건재하다. IMF 외환위기 때 금을 모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저력이 있는 민족이다. 과거 일본의 전자제품들이 수입될 때 국내 회사들은 다 망할 것이라고 했으나, 현재 반도체, TV, 세탁기 등 세계 시장은 일본이 아닌 우리가 장악하고 있다.어려움이 있을 때 소극적으로 버틴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때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거친 풍랑을 만나듯 어려운 위기가 올 때도 있는 법이다. 광야에서 혼자 걸어가는 위기를 도전과 용기로 맞서 싸워야 한다.문제가 발생한 현장에 나가 그곳에서 소통해야 한다. 막힌 곳이 어디이고 왜 발생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소비자와 만나 문제점을 찾는 순간 해결 방법도 함께 다가온다.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우리들의 힘을 믿고 희망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장을 다시 둘러보자. 그곳에 해결책이 있다.

2020-02-11 14:15:48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매일춘추] 쓸모를 증명할 시간

8가에 위치한 뉴욕대학교 티쉬스쿨 입구를 황급히 빠져 나와 매디슨 스퀘어 공원이 있는 23가까지 브로드웨이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거친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와 성격 급한 운전자들의 경적소리, 마약에 취한 방랑자들과 길 바닥에 앉아 적선하는 히피들, 커피를 들고 어디론가 바쁘게 지나는 뉴요커들을 곁눈에 품고 청년은 숨을 몰아 쉬며 무작정 달렸다.그렇게 오랜 시간을 달려 어느덧 보자르 양식의 '플랫 아이언' 빌딩 앞에 다다랐다. 19세기 후반 여기엔 거리 세 곳이 교차하며 생긴 삼각형 모양의 좁고 쓸모 없는 땅이 있었는데 건축가 다니엘 번햄은 이런 핸디캡을 역이용해 도시의 랜드마크를 만들어냈다. 청년은 잠시 숨을 고르며 다리미 모양의 플랫 아이언 빌딩을 바라본다."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아."이 건축이 주는 철학이다.빌딩 건너편 광장으로 들어서서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아 책가방을 내려놓고 사과가 그려진 얇은 노트북을 꺼내 열어 젖힌다. 느려터진 3G 인터넷 대신 남의 집에서 와이파이를 잽싸게 끌어당긴 후 스카이프를 연결해 화상 전화를 건다. 그간 미드 타운의 통 큰 사장님 집을 청소하며 눈치껏 연결시켜둔 와이파이 연결망은 오늘같이 아주 중요한 날 제 몫을 한다."저예요 저! 얼굴 잘 보여?" /"아이고. 그래. 그래. 밥은 잘 먹고 다니니?"낯선 땅에서 오랜만에 엄마 얼굴을 보니 가슴도 뜨거워지고 눈시울도 뜨거워진다."엄마! 방금 막 최종 시험 끝났는데…. 나 합격이래! 이제 뉴욕에서 뮤지컬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구!"새벽기도를 막 다녀오신 어머니는 멀리 떠나 보낸 아들의 희소식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다. 이뤄야 할 것들을 이루지 못한다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제 자식의 성질머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한국에서의 작은 성과 뒤에 따라온 무거운 실패와 좌절감. 이후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무작정 날아온 뉴욕에서의 1년은 그에겐 한없이 낮아지는 자존감과의 싸움이었다.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기 위해 청소용품 꾸러미를 메고 5번가와 브로드웨이, 23가를 돌아다니며 이 공원을 중심으로 빌딩 곳곳에서 청소부로 일해온 지 어언 1년, 이 공원에서 파는 할랄 음식을 좋아하게 된지도 1년이 지났다. 뉴욕대 주변을 서성이며 재학생들을 곁눈질 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드디어 청년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기회의 열쇠를 받아 들게 된 것이다.울컥 밀려드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뉴욕의 하늘을 등지고 우뚝 솟아 있는 플랫 아이언 빌딩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좁았던 너의 세상이 이제 얼마나 넓어질 지 지켜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뜨거움을 느끼고 있을 즈음, 화면 속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수고했다."충분한 대답이었다.

2020-02-11 14:05:05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콜레라균 하천서 세수‧빨래

'가. 환자의 가족으로 교통차단선을 넘어 탈출한 자, 나. 경관, 방역원, 기타 정동회장, 반장 등 지시에 반항하거나 불복종하는 자, 다. 불결한 야채를 팔거나 가두에서 음식물을 판매하는 자, 라. 환자의 대소변 기타 병독에 오염된 의심 있는 물건을 함부로 버리는 자. 이상과 같은 사실이 발견될 때에는 계급지위의 여하를 불문하고 단호 체형처분으로 처단할 방침이니~.'(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9월 12일 자)대구경찰서장은 이날 다급히 담화를 발표했다. 방역에 비협조하면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경고였다. 왜 그랬을까. 해방 이듬해 초부터 천연두와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병이 번졌다. 엎친 데 덮쳐 봄부터는 콜레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콜레라는 호열자(虎列刺)로도 불렸다. 호열자는 호랑이가 살점을 뜯어내듯 고통을 준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경상북도에서는 5월 중순 청도에서 첫 호열자 환자가 발생한 이후 순식간에 영천과 봉화, 경산, 군위 등으로 확산됐다. 더구나 그해 여름 대구에는 폭우로 인해 오염된 물이 넘쳐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경북도청이나 대구유치장, 대구역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으레 환자가 발생했다. 30명이 거주하는 달성의 한 마을에서는 집단으로 감염되어 13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당국은 전염병이 나돌면 머리와 몸에 뿌려서 이를 잡던 흰 소독약인 디디티(DDT)의 수입을 늘렸다. 하지만 콜레라에는 소용이 없었다. 먹는 음식과 식수 관리도 쉽지 않았다. 당시 대구의 하천에는 미나리꽝이 흔했다. 그런 하천에는 콜레라균이 득실거렸다. 일부 주민들은 병원균이 있는 미나리꽝의 미나리를 베어 팔았다. 또 걸레를 헹구고 옷가지를 가져와 빨래를 했다. 땀이 나면 어른들은 세수를 했고 아이들은 물속에 첨벙첨벙 뛰어들어 더위를 식혔다. 거기에 대소변을 보는 것은 예사였다.대구부의 경찰 책임자가 이런 행위에 형벌을 가하겠다고 나선 이유였다. 이와 함께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요량으로 환자가 있는 집안의 가족들 이동을 제한했다. 이른바 격리에 해당했다. 하지만 이를 어기고 탈출하는 일이 잦았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지역 간 교통차단으로 그러잖아도 부족한 쌀의 공급이 막혔다. 쌀 한 말이 1년 만에 300원에서 1천200원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콜레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일도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이렇듯 전염병은 주민들의 생존 자체를 무너뜨렸다.경북도의 콜레라는 찬바람이 불자 잠잠해졌다. 그해 12월까지 7천5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4천4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일상을 위협하는 전염병은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대비와 백신 개발 등은 전염병이 닥쳤을 때 불이 붙었다가 이내 사그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눈앞의 이익만 좇는 인류의 고질병이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충격 이후에는 달라질까.

2020-02-10 18:00:00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세상속의 종소리] 인도여인의 발 사랑

14억 인도인의 대부분은 따뜻한 지역에 거주하고, 많은 사람들은 맨발로 다닌다. 일생을 청빈하게 살았던 성자 간디의 모습에서도 맨발이 먼저 떠오른다. 맨발이 가난과 청빈함의 상징만은 아니다. 그들이 힌두 사원에서 신을 배알할 때는 존경, 겸손, 복종의 의미로 반드시 맨발로 들어선다. 인도인들은 발이 신성한 어머니와도 같은 땅에 신체가 접하는 곳이며 동시에 생동하는 우주의 에너지가 그들의 몸으로 들어오는 곳이라 믿는다. 필연적으로 거친 발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씻은 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치장하였다, 상위층 여성들은 발 관리에 많은 시간을 썼고, 발찌와 발가락 반지로 치장하였다. 서민들도 발을 씻은 후 향기 나는 오일을 바르고, 헤나나 락 곤충에서 추출한 붉은 염료로 발바닥을 곱게 염색하였다.인도 북서부의 신성한 고대 힌두도시 바라나시 여행자들의 기행문에는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갠지스 강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다. 윤회사상을 신봉하는 그들에게 목욕은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는데, 강가에서 죽음과 환생이 이루어진다는 신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태양왕조의 샤가르왕은 신에게 희생제를 지내기 위하여 말을 키웠다. 왕이 백번 째 제사를 지내기 직전 인드라 신은 이 제사를 지내면 인간들이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게 될까봐 불안했기에, 제물로 쓸 말들을 지하세계의 있는 카필라 성자의 명상처에 숨겼다.왕의 아들들은 카필라 성자를 범인으로 생각하여 처벌하려했으나 오히려 분노한 그의 저주를 받아 재로 변했다. 아버지를 찾아 지하세계로 온 왕의 손자인 안슈만이 이 사실을 알고는 성자에게 진심으로 경배하며 용서를 구하였다. 성자는 천상을 흐르는 강가 여신의 물을 땅으로 내려 정화의식을 치르면 재가 된 조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한다. 후일 왕이 된 안슈만의 손자 바기라트는 조상을 구하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히말라야에서 천년동안 고행하며, 강가 여신에게 내려와 달라고 간청했다.결국 강물은 시바신의 머리타래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바기라트는 강가에서 영혼의 재를 씻고 정화시켜 조상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힌두인은 강물에 일상의 죄를 씻어내고, 사후 갠지스 강가에서 육신을 화장한 재를 뿌려 현세의 윤회를 벗어나 영원히 천상으로 올라간다고 믿게 되었다. 강가의 목욕은 산 자의 회개와 죽은 자의 환생을 기원하는 인도인의 일상이 된 것이다. 여성들의 목욕용품 중 바즈리(vajri)라는 각질 제거 기능을 가진 발 화장 용구가 있다. 처음에는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었으나 이후 황동으로 주조되었다. 둥근형, 사각형, 마름모의 몸체 바닥면에 거친 격자 빗금이 있어, 발꿈치나 발바닥을 문지르면 자극이 되며 굳은살이 제거된다. 손잡이에는 코끼리, 말, 몽구스, 공작, 사자 등의 동물이나 전통 여인의 평범한 생활상이 조각되었다. 금속 통은 작은 구멍으로 통기되어 있고, 그 내부에 돌이나 금속 조각이 들어 있어 발을 문지를 때 '따르륵따르륵' 하는 음이 난다. 과거 인도 북서부 지방의 여성들이 강가에서 목욕할 때는 작은 종을 패용하였다. 근처를 지나던 다른 사람들에게 이 소리가 들리면 감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계의 표시였다. 여성들의 바즈리에 종소리가 추가된 이유이다. 바즈리가 내는 낮은 음에는 발을 씻으며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던 힌두 여성들의 경건함이 들어 있다.

2020-02-10 18:00:00

[세월의 흔적] <60>추녀 끝 덮은 와당, 연꽃·금수 무늬…기와집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대중가요의 한 토막이다. 내 어릴 적 소원은 '기와집에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 대다수 민서들은 나지막한 초가삼간에서 살았는데, 마을에는 기와집이 딱 한 채뿐이었다. 그 집 아들은 마을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으스대며 젠체하고 다녔다. 그 시절 기와집은 부자의 상징이었다.목조건물의 지붕은 이엉이나 볏짚, 그리고 나무껍질 같은 식물성 부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내구력이 약해서 자주 교체해야 되기 때문에 방수효과가 좋고 강도가 높은 기와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목조건물에 기와를 사용하여 지붕을 덮는 풍습은 고대 동양건축의 주요한 특징이었으나, 그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기와집을 와가(瓦家) 또는 와옥9瓦屋)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기와가 엄청 비쌌기 때문에 민서들은 감히 기와집을 지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높은 벼슬을 살거나 만석꾼 부자라 하더라도 아흔아홉 칸이 넘는 기와집은 지을 수 없었다. 오로지 궁궐에서만 그 이상의 큰집을 지을 수 있었는데, 그 시절 법도가 그랬었다.기와는 눈이나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와 함께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되기도 하였다. 가장 기본적이며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수키와와 암키와이다. 그 모양이 평평한 기와를 암키와, 둥근 기와를 수키와라 한다. 지붕을 덮을 때 산자 위에 진흙을 이겨서 얇게 편 다음, 위아래로 암키와를 걸치고 좌우의 이음매에 수키와를 덮는다. 그리고 처마위에 비아무림으로 막새를 붙이는데, 암키와 끝의 것을 암막새 수키와 끝의 것을 수막새라 한다.지붕마루는 기왓골에 맞추어 수키와를 옆으로 세워서 막고, 그 위에 수키와를 한 줄로 세워서 댄다. 앞에 것을 착고(着高), 뒤에 것을 부고(付高)라 하며, 그 위에 마룻장을 3~7겹 덮고 제일 높은 부분에 수마루장을 덮는다. 그리고 용마루의 양쪽 끝에 높게 장식된 용머리기와를 세워 장식을 겸한다. 또한 각 마루 끝에 벽사(辟邪)의 의미로 사용되는 귀면(鬼面)기와, 각 마루의 추녀 밑 네모난 서까래에 사용되는 사래기와 등이 있다.흔히들 와당(瓦當)이라 하는데, 추녀 끝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기와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암막새와 수막새는 여러 가지 무늬가 오목새김 된 나무나 도자기로 된 틀로 찍어낸 것이다. 거기에는 연꽃․당초(唐草)․보상화(寶相華)․귀면(鬼面)․금수(禽獸) 같은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채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또한 제작기법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고고학이나 미술사 연구에 중요시되고 있다.황룡사지에서 출토된 대형 용머리기와는 그 옆면과 뒷면에 얼굴무늬와 연꽃무늬를 번갈아 장식하고 있다. 그로 해서 특수한 의장을 보여주는 고대 신라의 대표적인 기와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막새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무늬들은 평안과 번영을 소망하던 당시 사람들의 정신적 이상을 반영한 것이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20-02-10 18:00:00

서성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

[특별기고] 불가능의 가능성

대구 출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총 4개 부문을 수상하며 101년 한국영화 역사뿐만 아니라 92년 아카데미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갔다.후보작이 발표되던 지난 1월 봉준호 감독은 미국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상은 로컬(지역) 시상식"이라고 말하며, 미국 영화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꼬집는 재치와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하지만 아카데미상은 92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영화상임에 분명하다. 아카데미상의 권위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약 9천500명의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투표로 뒷받침된다. 한국인 회원은 박찬욱, 이창동 감독, 이병헌, 최민식, 홍경표 촬영감독 등 약 40명이며, 세계 각국의 영화인들이 자신이 속한 부문에 투표를 할 수 있다. 특히 작품상이 남다른 의미가 있는 건 각 부문의 회원들의 표를 모두 집계한 순위로 9개 작품이 후보에 오르고 다시 순위를 정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작품상을 선정하기 때문이다.'기생충'은 아카데미상 92년 역사에서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로 작품상을 받은 영화가 되었다. 더 나아가 지난해 예술영화에 손을 들어주는 유럽의 엘리트주의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가장 대중적인 영화상인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두 번째 작품으로 세계영화사에 남게 되었다.사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상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던 '1917'을 보고 난 후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인 작품성을 비교하기보다는 70%가 넘는 백인으로 구성된 아카데미 회원들이 지금까지 보수성과 안정성이라는 선택을 해왔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한국의 아카데미상 수상이라는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이끈 힘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건 바로 불가능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미 '기생충'은 불가능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인식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불가능의 가능성을 보여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대구에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라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 출신인 영화인 봉준호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구에서도 영화인의 삶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토양 위에 대구에서 "가장 개인적인 영화로 가장 창의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라는 가능성을 가슴에 품은 영화인을 길러내야 한다. '불가능의 가능성'이야말로 대구가 가장 창의적인 영화 제작 도시로 한 걸음 성큼 다가설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주문이라 믿는다.서성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

2020-02-10 17:52:31

김문환 문명사 저술가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삼한시대 '소도'와 21세기 '청와대'

사슴뿔 쓴 켈트족 드루이드모차르트와 왈츠의 나라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공항에 내려 급행전철을 타면 30분도 안 돼 시내 중심가에 내린다. 근세 유럽 최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들이 즐비하다. 고풍스러운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서면 으르렁거리는 공룡 화석들 너머로 앙증맞은 뿔 하나가 탐방객을 맞는다. B.C 5세기 사슴뿔. 그냥 스쳐 지나기에는 뒤에 걸린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사슴뿔을 머리에 쓴 신관의 모습. 로마제국 이전 중서부 유럽을 장악했던 켈트족 신관 드루이드이다. 김경수 경남지사 관련 '드루킹 사건'의 드루킹은 드루이드 왕이란 의미다. 사슴뿔 쓴 삼한의 천군무대를 가야 유적의 보고 김해로 옮긴다. 경전철을 타고 해반천을 따라가다 박물관역에서 내린다. 대성동 고분박물관 전시 유물을 흥미롭게 훑어보며 흠칫 놀란다.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에서 보던 켈트족 드루이드 사슴뿔과 닮은 삼한시대 사슴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사슴뿔도 삼한시대 신관(제사장)이 쓰던 것일까? 답을 찾아 빛고을 광주로 간다. 전남대 박물관에서 유물을 토대로 복원한 그림에 눈이 번쩍 뜨인다. 사슴뿔 관을 쓴 삼한시대 신관이다. 그랬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한반도에서 시베리아 동토와 중앙아시아 초원을 거쳐 서유럽까지 고대 신관은 머리에 사슴뿔을 쓰고, 신의 뜻이라며 백성 머리 위에 올랐다. 삼한시대 소도(蘇塗) 전통유물로 남은 켈트족 드루이드 신관은 로마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 잘 묘사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카이사르가 B.C 58~B.C 51년 갈리아(프랑스 일대) 총독으로 켈트족과 전쟁을 치르며 기록한 책이다. 삼한의 신관 기록은? 아쉽게 우리 역사책에는 없다. 중국 진(晉)나라 진수가 289년 완성한 위(魏), 오(吳), 촉(蜀) 3나라 역사책 「삼국지」(三國志) 속 삼한의 역사를 다룬 한전(韓傳)에 고대 한국과 관련한 귀한 대목이 나온다. 소도(蘇塗).소도(蘇塗), 죄인 처벌 안 해내용을 읽어보자. "…국읍(國邑)에서는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시켰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사슴뿔 관을 쓴 삼한 신관은 '천군'이었다. 켈트족 '드루이드'다.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도망자가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아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걸리지만, 핵심은 천군 주재 성역 소도에는 범죄를 저지른 자가 있어도 처벌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백성 위에 선다.범죄 혐의자 소굴 청와대검찰이 1월 29일 송철호 울산시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13명을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겼다. 송 시장을 부당하게 당선시킨 혐의다. 추미애 장관은 공소장 공개를 거부했다. 국회법 위반이자 '공개 재판' 원칙은 물론 헌법 21조 언론 자유 정신을 찢어버린 '법무'(法無) 장관이다. 청와대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며 한결같이 어둠 아래 숨는다. 조국 아들 인턴 문서 위조 혐의를 받는 청와대 민정비서관 최강욱은 자신을 기소한 검찰에 변호사 입을 빌려 "공수처를 통해 검찰의 범죄행위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라고 겁박하며 공수처가 권력의 사적 도구임을 드러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는 이로써 거짓 인증을 마쳤다. 국민을 한 번은 경험한 나라로 이끌었으니 말이다. 2천 년 전 삼한시대 소도의 나라로.

2020-02-10 17:49:35

이희주 경북도 축산정책과장

[기고] 경북축산, 제2 도약을 준비하자

정부는 축산물 소비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동물복지형 축산, 친환경축산물인증제, 깨끗한 축산농장 지정 등 안전한 축산물 생산과 환경오염 최소화 등에 노력 중이다.친환경축산물과 환경오염 최소화를 위해서는 축산 환경 개선이 우선이며 그 핵심이 가축분뇨의 적정한 처리다. 소비자들이 가축과 분뇨가 함께 공존하는 축사 실태를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 이제는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우리도 변해야 한다. 그것은 축분 처리의 패러다임 전환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축산농가의 핵심 과업이 생산성 향상과 생산비 절감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하나 '분뇨 처리'다. 분뇨 처리는 축산농가에는 수익의 문제를 떠나 '생존'의 문제이다.도내 3만3천 호 축산농가에서 소 74만 두, 돼지 150만 두, 닭 3천500만 수가 사육 중이며 여기서 배출되는 가축분뇨량은 연간 800만t에 이른다. 이 중 80% 이상이 퇴액비화 과정을 거쳐 토양에 환원되고 있다. 문제는 충분히 부숙시켜 양질의 퇴비를 만들려니 퇴비사 공간이 부족하고 퇴비사 공간을 늘리자니 인허가 등과 추가 설비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이에 따른 민원도 만만치 않다. 주변 민원으로 양질의 퇴비를 생산하지 못하니 미부숙 퇴비가 농경지로 나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토양오염, 수질오염, 악취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된다. 공공처리장으로 보내려니 처리 용량 부족 등 사정이 여의치 않다. 한마디로 '가축분뇨의 수난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지금부터라도 축분 처리의 다양성 확보를 고민해야 한다. 일본의 육계업체와 농가에서는 축산분뇨의 에너지 가치를 확인하고 축분을 소각해 전기를 생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처리 과정에 악취로 인한 민원도 전혀 없고 분뇨를 발전소에서 수거해 처리해 주니 축분 처리 고민 없이 사육에 전념할 수 있다고 한다. 경북도는 경북형 축산분뇨 에너지화사업의 추진으로 축분 처리의 다양성을 확보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 내용은 크게 축분 고체연료 생산 인프라 구축, 가축분뇨 열병합발전소 유치, 축산정보 빅데이터 관제센터 건립 등 3가지로 구분된다.첫째, 축분 고체연료 생산 인프라 구축이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4년간 360억원의 자금을 투입, 200개소의 농가와 2개의 공동자원화센터에 축분고속건조발효기, 펠렛성형기, 저장 창고, 포장기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농가에서 48시간 내에 수분 20% 이하 부피가 75%까지 감소된 악취 없는 축분연료 분말이 생산되면 도내 공동자원화센터에서 수거해 펠렛 형태의 고체연료로 가공된다.둘째, 축산분뇨 열병합발전소 유치이다. 경북도는 도내 축분 고체연료로 전소발전하는 발전용량 10~50㎿급 발전소 4기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발전소가 가동되면 공동자원화센터에서 생산된 30만t의 고체연료가 발전연료로 활용된다. 대규모 고정 수요처가 생기는 것이다.셋째, 축산정보 빅데이터 관제센터 건립이다. 기존의 경험 축산에서 스마트 축산으로 축산정보 관리체계를 전환하고 노동생산성 향상을 도모해 나갈 예정이다. 2021년 센터 운영을 목표로 올해 100억원의 자금을 투입, 정보 수집 플랫폼 및 분석 알고리즘 개발과 빅데이터 관리요원 육성 등에 나설 계획이다. 경북은 축분 처리의 새로운 접근과 축산정보 빅데이터 활용으로 경북이 한국 미래 축산을 선도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몰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물결을 탈 것인지, 우리의 현명한 선택과 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0-02-10 16:17:56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계의 창] 국회의원 선거구제도 유감

주민등록 주소지 근거한 선거구 총선 출향인의 표심 반영 어려워고향 선거구에 유권자 등록하면 부재자 투표 가능하도록 보완을나는 경북 영덕 출신이다. 내가 어릴 때에는 우리 군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되었다. 몇 해 지나니 청송·영덕이 같은 선거구로 조정되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울진·영덕에서 이제는 영양영덕봉화울진이 한 선거구가 되었고, 이번에는 여기에 울릉군이 포함된다는 말도 나온다.이런 선거제도에 대하여 나는 최근 큰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한 명의 국회의원이 이렇게 넓은 지역을 어떻게 관리하며 각 지역 주민의 뜻을 수용 반영하고, 그 지역의 현안을 해결할 것인가? 더구나 유엔해양법 체제하에서 경북 동해안은 해안에서 200마일(322㎞)까지가 우리 영토와 같은 개념으로 포섭이 되어서 수산 쪽의 업무도 엄청 늘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서울이나 부산의 선거구를 보자. 영덕군과 같은 땅의 크기보다 작은 구에도 국회의원이 2, 3명 있다.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국회의원 선거구는 인구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서울이나 부산에는 인구밀도가 높다. 젊은 이들이 상당수 도시로 이주한 시골에는 인구가 매우 적다. 영덕군의 경우 1950년대 10만 명이던 것이 현재는 4만 명이다. 반면에 서울이나 경기도에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경북의 국회의원이 한 군에 한 명씩 있던 때인 1950년대 그 수는 수십 명이었다. 지금은 13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서울, 부산, 대구는 급격히 국회의원의 숫자가 늘었다. 2014년 11월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 획정 인구수 편차를 3대 1로 한 것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대 1로 하라고 했다. 지역 대표성보다 국민주권주의에 따른 1표의 등가성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선거구 하한선인 약 12만 명 유권자를 맞추다 보니 4개의 군이 하나의 선거구가 된 것이다. 경북의 여러 선거구가 영덕군의 사정과 같다.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제도가 현실에 맞는지, 출향인의 뜻에 맞는지,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목표에 맞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재 제도의 기본이 되는 인구는 주민등록의 주소지를 근거로 한다. 경북 사람들이 서울 등 도시에 주소지를 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출향인들의 일상을 보자. 그들은 각종 향우회와 동문회 모임에 한 달에도 2, 3차례 참석한다. 고향의 각종 행사는 물론이고 각종 길흉사에 고향 까마귀를 찾아다닌다.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누가 되는지 관심이 별반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태어나 자랐고, 부모님이 살고 계시고, 정년퇴직 후 자신이 여생을 보낼 고향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선거일에는 주민등록을 이전할 수 없으니,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주소지의 후보자에게 투표하게 된다.바다를 항해하던 선원은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는데, 선박에서 부재자 투표를 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선거제도가 개선되었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 제도의 이와 같은 문제점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출향인들은 주민등록부상 주소지를 이동시키지 않고도 선관위에 신고를 하면 자신의 고향 선거구 유권자로 지정되어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지 않을까?인구 비례를 기본으로 하고 농어촌 지역의 입장을 고려하여 인구 편차를 2대 1로 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바다와 관련된 요소가 추가적으로 고려되길 희망한다. 국가가 존속하기 위하여는 국민이 있어야 하지만, 국민이 살고 있는 영토도 필요하다. 그 영토에는 육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도 포함된다. 3해리(5.5㎞)가 우리 영해일 때가 있었다. 1982년 유엔해양법이 발효된 다음에는 해안선에서 200해리(약 380㎞)까지가 우리 땅이 되었다. 이 바다에서 다양한 생산 활동이 일어나 소득을 얻기도 하고 해상사고들이 발생한다. 이런 바다 관련 일들도 지역 국회의원이 담당해야 할 일들이다. 그렇다면, 해안가를 끼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은 유엔해양법 발효 이후 오늘날에 일이 더 늘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오징어 조업 문제가 국회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구에는 인구 편차를 3대 1 혹은 4대 1 등의 유연한 기준을 주어 국회의원들을 한 명이라고 더 배당해 주어야 한다. 바다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이다.상원 의원을 주당 1명씩 배정하고 하원 의원은 인구 비례에 따라 인구가 많은 주는 많도록 하는 미국 건국자들의 합리적 선택이 부럽다.

2020-02-10 16:11:54

김득주 대구예술발전소 운영팀장

[매일춘추] 기후 위기에 맞서는 열여섯살 그레타

16살의 그레타 툰베리. 2019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이다. 92년의 역사를 가진 타임지 '올해의 인물' 중에서 역대 최연소 주인공으로도 이슈가 되었다. 소녀는 세계 정상이 모이는 UN기후행동정상회의의 연설을 위해 비행기로 한나절이면 갈 거리를 태양광 요트를 타고 15일이나 걸려 대서양을 횡단했다.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 위기를 경고하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툰베리는 UN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헛된 말로 제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습니다.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린 대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릴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습니다."경제성장만을 목표로 하는 세계정상을 비판하는 툰베리의 외침에 세계 270여 지역의 청소년들이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기후행동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가 미래를 잠식할 문제임을 청년들이 체감하기 때문이다.게리트 드 피어의 '빌렘 바렌츠와의 세 차례 북극지역 탐험'이라는 작품은 1596년 아시아로 가는 해상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북극해를 뚫고 새 항로 개척에 나선 빌렘 바렌츠와 그 일행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후에도 수많은 희생을 낳은 북서항로 개척사는 1906년 노르웨이 청년 로얄 아문센에 의해 마침표를 찍게 된다.하지만 북극항로는 개척된 후에도 빙하로 인한 사고 위험으로 무역에 이용되지 못했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항로가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가 북극항로 활용 가능성이라는 부수효과를 낳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기후 온난화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기후 온난화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팬데믹'은 기후변화가 극심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감염병이 4.7% 늘어난다며 경고한다. 지구 온난화, 환경변화로 발생하는 문제, 국제 교역과 여행 증가, 고밀도 인구 분포 등으로 나타나는 현대화 문제를 해결할 대책은 환경, 동물, 사람을 하나의 개념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한다.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공동체이다. 환경운동가 툰베리는 생명과 공생으로 지구가 지속가능하기를 소망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미래를 되돌려주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공생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2020-02-10 14:24:18

노동일 경희대 교수.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이른 아침에] 법무부 장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8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을 갑자기 경질하였다. 형식은 사임이지만 사실상 해임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세션스 장관 본인이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사임한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세션스는 2016년 대선에서 상원의원 중 최초로 트럼프 후보를 공개 지지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트럼프 내각 초대 법무장관은 당연한 포상이었다. 세션스 장관은 그러나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거부하였다. 그는 이른바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을 수사하는 특별검사를 해임하거나 예산 지원을 중단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수사 불개입 입장을 공개한 후 실제로 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법무장관이 없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경질이 사임이 아닌 해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장관 시절 세션스는 이런 성명을 낸 바 있다. "내가 취임한 뒤 연방 법무부가 미국 시민의 안전과 권리 보호, 경제성장 촉진, 범죄 경감, 이민정책 강화, 그리고 종교자유 증진 등 대통령 정책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장관직에 있는 동안 연방 법무부는 정치적 고려에 부적절하게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훌륭한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은 장관으로서의 소신이 뚜렷한 게 큰 이유일 수 있다. 정치적 고려에 부적절한 영향을 받지 않아야 오히려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여론의 분위기도 한몫했을 수 있다. 권력자나 외부 세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라는 인식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 결정과정을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중차대한 범죄라는 것이다.법무부의 영어 명칭(Ministry of Justice)을 직역하면 '정의부'이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 등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법에 관한 일'(Legal Affairs)을 다루는 부서가 아니라 '정의 실현'을 담당하는 부서라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의 참모 이전에 한 국가의 법치와 정의를 수호하는 부서 책임자가 법무부 장관이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우리 법무장관의 행태는 걱정스럽다. 조국 전 법무장관에 이어 추미애 장관 역시 취임 직후부터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검찰 힘 빼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전 정권을 수사할 때 검찰에 보내던 박수와 환호가 미처 잦아들기도 전이다.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한 증오와 분노의 언사는 참으로 낯설다. 며칠 전 공개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보면 현 정권이 왜 그토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찰 수사 방해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공소장에는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경찰이 권력의 수족처럼 하명수사 정도가 아니라 청부수사를 한 정황도 담겨있다. 아직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로 확정되지는 않았기에 사실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로 드러난다면 실로 엄청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이 선거에 직접 개입했다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이다. 미국과 한국이 다를 바 없다. 추 장관이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도 정파적 고려에 따라 공소장 비공개를 고집한 것은 한마디로 자충수를 둔 것이다. 공개재판의 원칙상 공소장은 어차피 공개될 수밖에 없다.공소장 비공개 결정은 오히려 내용에 대한 관심만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 법무부가 홈페이지에 공소장을 실명까지 공개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범죄사실을 기록한 공소장은 사생활 영역이 아닌 공적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프라이버시를 상실함으로써 더 이상 사생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정파적 이익 수호에 매달리는 법무부 장관이 정의실현 부서의 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추 장관은 이른바 '큰 꿈'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욱 달라져야 한다. 이제라도 특정 정파의 전위대 역할을 거부하고 대한민국의 정의를 실현하는 부서의 수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법무부가 왜 '정의'를 표방하는 부서인지 본질부터 숙고하기 바란다.

2020-02-09 15:39:56

김희달 영어교수법(TESOL) 박사

[기고] 4차 산업혁명과 종이 시험의 미래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 영어학계는 언론 보도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이병민 교수와 미국의 메타메트릭스사가 한국의 수능시험과 초·중·고 영어 교과서들을 출판사별로 렉사일 평가(미국의 메타메트릭스사가 개발한 Lexile 인공지능 글 난이도 평가 엔진)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글의 수준이 비슷해야 하는 학교 교과서들의 글 난이도가 천차만별인 데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난이도의 차이도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7세 영어유치원 교과서가 중학교 교과서보다 어렵다는 내용도 기사화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 범세계적으로 영어 글에 대한 객관적인 난이도 평가가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건 이후로 영어 독서지수 사용이 삽시간에 확대되었고, 렉사일 없이는 객관적인 평가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어 ETS는 물론이고, MAP Test(미국 학력평가의 일종), SAT/ACT(미국 수능), TOEFL(미국 대학 진학을 위한 외국인 영어시험)마저도 렉사일을 기준으로 따른다. 전 세계의 많은 유명 출판사들도 도서나 교과서를 출시하기 전에 렉사일 평가를 받는다. 이제 우리나라도 영어 평가 면에서는 적어도 피해갈 수 없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앞으로 우리나라 교육부나 출판사들도 렉사일 지수에 발맞춰 각종 어학 시험을 준비하거나 계획할 것이다. 렉사일이라는 글 난이도 평가로 시작한 미국의 메타메트릭스사는 최근 미국 내에서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던 듣기 점수를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듣기는 물론 에세이 평가까지 인공지능 개발 및 평가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의미는 영어는 물론 전 과목 모든 시험이 문제은행이나 인공지능 평가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토플과 토익에서는 인공지능 평가가 상용화된 지 오래이다.우리나라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평가 개발이 활발하다. 최근 몇 년간은 AI 면접은 물론, AI 영어 면접이 관심을 크게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 850여 개 회사가 한 회사에서 개발한 AI 면접을 보고 있다. 물론 AI 영어 면접도 개발되어 있다.영어 인공지능 평가 면에서는 일본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이미 일본영어검정회는 2020년부터 인공지능 영어 말하기와 글쓰기 평가를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분명히 다가올 미래형 시험이다.영어 교육 선진국이고,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는 왜 수능을 비롯한 많은 학교 시험들을 아직도 종이로 칠까? 그리고 왜 예전에 개발된 NEAT라는 실용성 있는 국가 영어시험은 소식이 감감한가? 우리나라는 입시가 불필요하게 자주 변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적어도 일 년에 단 한 번뿐이라는 비효율적인 종이시험이라는 '틀'은 반드시 깨어져야 한다.먼저 기준점인 다양한 국가 공인 시험들이 실용성과 현실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평가 항목도 바뀌고, 평가 방법도 컴퓨터나 모바일로 바뀌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불완전하다면 완전해질 때까지, 사람과 인공지능이 함께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그러면 나머지 초·중등기관이나 학원, 사회도 자연스럽게 바뀐다.4차 산업혁명과 함께 다가온 시험도 진화해야 한다. 인간과 대화하는 AI 스피커, 인공지능 학습, 자율주행 자동차와 비행 자동차도 이미 상용화 단계인 시대에, 유독 시험만 종이 시험일 필요는 없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시기가 문제이다. 우리나라도 세계 추세에 맞춰 영어 독서지수 개발은 물론, 한글 독서지수 개발을 시작으로 모든 면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2020-02-09 15:25:20

종이에 수묵, 21.5×62.5㎝,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최북(1712-1786?) '설중귀려'

겨울산수이다. 하늘은 흐리게 먹으로 바림하고 산과 집은 윤곽선으로 형태를 잡으며 희게 남겨 설경임을 나타냈다. 찬 겨울 숲을 그린 한림(寒林)산수는 중국 북송 때부터 그려졌다. 겨울산수는 메마르고 삼엄한 나뭇가지 뿐 아니라 깨끗하고 차가운 눈과 추위 때문에 저절로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 있어 고인일사(高人逸士)의 뜻을 담기 적합했다. 설경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특유의 경관이다. 수묵화에서 눈 그리는 법은 차지위설(借地爲雪), 곧 종이나 비단의 '바탕을 빌려 눈으로 삼는' 유백법(留白法)을 가장 격조 있게 여겼고, 불투명 흰색 물감인 호분을 산봉우리에 칠하기도 하고, 호분을 퉁겨내 눈발이 날리는 광경을 나타내기도 했다. 바람에 날리는 눈인 풍설(風雪), 강 위에 내리는 눈인 강설(江雪), 밤에 내리는 야설(夜雪), 봄눈인 춘설(春雪), 저녁에 내리는 모설(暮雪), 눈 개인 모습인 제설(霽雪) 등으로 설경을 다양하게 구분해 그렸다.설경은 계절의 변화를 주제로 시리즈로 그려지는 사계산수, 사시산수에 항상 들어간다. 8폭으로 그려질 때는 사시팔경(四時八景)이 되어 한 계절을 초동(初冬), 만동(晩冬) 식으로 나눈다. 관동팔경처럼 특정지역의 명승을 뽑아 그리는 경우에도 계절이 결합되고, 보통의 산수병풍에도 설경을 넣어 끝 폭을 삼는 예가 많다. 사시산수는 자연을 씨줄로, 계절을 날줄로 하여 시간과 공간을 함께 직조한 회화이다. 자연의 네 계절을 어떻게 산수로서 인식하고, 그림으로 나타낼 것인가를 고민한 화론이 일찍이 나왔다. 북송 때 산수화론인 『임천고치(林泉高致)』(1117년)에서 겨울산수를 이미지화 한 몇 줄 뽑아보면 이렇다. 자연의 운기(雲氣)은 네 계절이 같지 않아 겨울에는 어둑어둑하고 침침하다.자연의 연람(煙嵐)도 네 계절이 같지 않아 겨울산은 침침하니 쓸쓸하여 잠자는 듯하다.겨울산은 어둡고 흐리며 가려지고 막힌듯하여 사람들 마음이 외롭고 쓸쓸해진다. '설중귀려(雪中歸驢)'는 해질녘 모설(暮雪)의 어둑한 풍경 속을 나귀 탄 한 남자가 산 아래 외딴 집을 향해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그림이다. 그 뒤를 짐을 매단 작대기를 어깨에 걸친 동자 하나가 따른다. 산수를 잘 그려 '최산수'로 불렸던 최북은 설경을 많이 그렸다. 오행(五行)에서 북(北)은 계절로는 겨울이다. 최북과 동갑인 신광수는 「최북설강도가(崔北雪江圖歌)」를 지어주며 겨울산수를 그려 달라고 했고, 동생 신광하는 삼장설(三丈雪)의 눈 속에서 얼어 죽은 최북을 「최북가(崔北歌)」로 기리며 그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했다. 겨울산수의 주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다. 미술사 연구자

2020-02-09 06:30:00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아르바이트생 비중이 매장 직원의 90%를 넘는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무인기계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대구시내 한 KFC 매장에 설치된 무인주문기인 디지털 키오스크 앞에서 한 고객이 주문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2020 세상 읽기] '없는' 일자리 '있는' 그림자 노동

셀프 주유소, 셀프 세차장, 셀프 계산대...직원을 만날 수도, 만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에서도 직원 대신 '터치스크린'이 소비자를 먼저 맞이한다. 주문도, 결제도, 뭐든지 직접 우리가 해야 한다. 로봇카페, 무인편의점, 무인정육점 등 사람이 없는 매장을 보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커피숍에서는 주문과 서빙은 물론이고 먹고 난 후, 테이블도 직접 치워야 하고 식당에서도 앱 주문이 확산돼 '이모'라 부르는 서빙 직원을 부를 필요도 없다. 이제 '직원'이라고 불렸던 그들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하던 일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일은 '고객'의 몫이 되고 있다. 우리는 돈도 받지 않고 일해 주는 '착한 소비자'가 되어 가는 듯하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말한 것처럼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하고 떠넘겨진 일을 해야만 하는 '그림자 노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가격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현실의 경제를 읽을 수 있다고 했던가!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DIY(Do It Yourself)라는 이름으로 새로 산 가구도 직접 조립해야만 하고, 소비자에게 전가된 배달비나 배송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품도 팔아야 한다. 자동화·무인화가 준 '셀프'라는 이름은 우리를 점점 더 바쁘게 하고 소비라는 행위를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하게 만든다.IT기술 발달과 자동화는 생활을 더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 삶은 더 팍팍해진 거 같다. 한 번의 전화로 콜센터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본인확인 단계부터 직접 키패드로 입력해야 하며 전화를 건 이유까지 직접 선택한 후에야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개인정보보호 프로그램 설치와 디지털 기기의 업그레이드도 직접 해야 하며, 비대면 거래를 위해서는 각종 인증 절차도 스스로 직접 거쳐야만 한다.저렴한 상품을 사기 위한 포털 검색은 일상이 되었고 구매부터 반품까지 직원들을 만날 수도 없고 전화 문의마저 힘들 때도 있다. 제품 결함 호소나 환불·교환도 이메일 문의가 기본이 되었으며 할인쿠폰을 받기 위한 제품 사용후기나 SNS 인증샷도 알고 보면 제품 홍보를 위한 노동행위가 되었다. 또, 소비자들이 가지는 정보들이 업로드되고 공유되면 될수록 포털이나 동영상공유서비스 기업들의 광고 수입은 올라가며, 멋진 사진이나 동영상 포스팅을 통해 '팔로워'나 '좋아요'를 얻어서 행복해 하는 그 순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관련 기업들의 가치는 높아져만 간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소비자나 이용자들은 최고의 직원이 되는 셈이다.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무인화 시스템이 보편화 될수록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단순 업무는 자동화나 플랫폼 등으로 대체되며, 기간제 일자리나 사내하청의 업무는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으로 둔갑될 지도 모른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을 더 늘어나게 만들 것이다. 또, 인력 채용에서도 기술의 진화는 지원자들에게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한다. 그래서 취업 전에도 많은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취업 후 '멀티맨'이 되기 위한 '스펙 쌓기' 압박은 가중되며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더 높은 '스펙'은 동료들의 일자리를 뺐어 가며 그 부작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증가될 우려가 있다.한편, IT기술 격차는 우리사회에 '디지털 래그'(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지는 현상)를 발생시킨다. 한 예로 KTX 모바일앱을 할 줄 알면 순방향을 타고, 할 줄 몰라 역에서 직접 예매하면 역방향이나 입석을 타야만 한다는 일부 노년층들의 하소연이 있다. '비대면서비스'의 확산은 분명 편리함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지만 고객이나 이용자의 디지털 학습의무나 그림자노동을 점점 증가시켰다. 또, 디지털 정보격차는 '디지털 문맹'을 확산시켜 금융사기 등의 피해 위험을 커지게 만들었다.그리고 요즘 임대료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힘들어 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해외 여행지나 도심 번화가에서만 볼 수 있었던 'Break Time' 표지판이 동네 식당가에도 버젓이 놓여있다. 저녁에 소주 몇 병 더 파는 것보다 일찍 문 닫는 것이 마진에 유리하다는 볼멘소리가 많다. 과거 '물은 셀프'라는 안내문구는 저렴한 소규모 식당들이 서빙 인력 부족 및 인건비 절약을 위해 쓰던 방편이었지만 이제는 기본적인 테이블 세팅은 물론이고 식당 내 거의 모든 것이 셀프다. 이처럼 인건비 등 영업비용을 아끼기 위한 소상공인들의 '원가 전쟁'은 일자리를 줄이고 소비자들의 '그림자 노동'을 더 많이 생겨나게 할 것이다.일자리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한 사람의 월급은 출퇴근길 교통비로, 생활비로, 취미·여가비와 유흥비로 사용되어 또 다른 일자리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 이 시대의 최고의 복지와 최고의 애국은 일자리 창출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창조적 파괴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지만 기업의 해외 이전, 제조업의 불황, 금융자본의 득세, 안전자산인 부동산 선호, 현금제일주의, 자영업의 구조적 위기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주변 환경은 녹록치 않다.결국 비용절감의 전쟁과 자동화 기술의 발달은 무인화를 촉진시키고 소비자들의 그림자 노동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우리 삶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어쩌면 고객이 '왕'이 아닌 고객이 '종업원'인 시대가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 또한, 그림자 노동이 없는 고급서비스는 많은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일부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되어 빈부격차의 체감도는 더욱 더 커질 수도 있다.경제발전과 성장의 이데올로기는 장밋빛 전망과 많은 일자리를 약속했지만 우리의 일자리는 점점 줄고 그림자 노동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성장이 주는 환상에 인질이 된 것은 아닐까? 그래도 성장의 힘을 믿고 싶다. 그나저나 노동자도 아닌 '그림자 노동자'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해야 하나? 어쩌면 성질 급한 정치인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일자리 창출과 소비자 주권을 위해서 '그림자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할지도 모르겠다.소비자의 무급노동이 유급의 일자리를 없애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있지만 일자리 창출을 넘어 일자리 발명이 필요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일자리발명특허, 그림자노동감독관 등의 새로운 업종과 직업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지금 이 시대, 최고의 영웅은 누구인가?일자리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그 영웅들을 기다려본다.이상철 자유기고가

2020-02-08 16:0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앞산'이라는 지명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에 의해 훼손된 우리 고유 지명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우리 지역에도 그러한 지명들이 더러 있어 기회가 되면 바로잡는 것이 주권국으로서, 문명국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원래 우리 고유 지명인데 일본식 지명으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바로 '앞산'이 그러한 지명이다.1768년에 발간된 『대구읍지』 '산천'(山川) 편에는 앞산의 원래 지명은 성불산(成佛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불산은 부의 남쪽 10리에 위치하며, 관기안산(官基案山)이다. 비슬산에서 뻗어 내려온다." 관기안산은 풍수적 용어로 관청 터 앞(남쪽)에 위치하는 산을 말한다. 문헌 기록상으로 성불산이 가장 일찍 나오는 고문헌은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그 후로 『여지도서』 『대구읍지』 『대동지지』 『증보문헌비고』 『교남지』 등에도 나타난다.불교적 용어인 성불산은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영향으로 대덕산(大德山)이라는 새로운 유교적 지명이 생겨나면서 공존하게 된다. 성불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지만, 대덕산은 『대구읍지』에 처음 등장한다. 그것도 자연경관을 주제로 하는 '산천' 편이 아닌 일반 문장에서 나오고 있어 그때까지도 대덕산보다는 성불산이 앞산을 대표했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 '산수'(山水) 편 '산형'(山形) 조에는 "대구비파산내유용천지석"(大丘琵琶山內有湧泉之石), 즉 "대구 비파산에는 물이 솟아나는 바위가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비파산(琵琶山)은 비슬산(琵瑟山)의 오기다. 비파(琵琶)산과 비슬(琵瑟)산은 혼돈하기 쉽다. 실제로 앞산 달비골 북사면에는 『택리지』에서 언급된 석정(石井)이 존재한다. 앞산이 비슬산에서 뻗어 내려오므로 옛 사람들은 앞산을 비슬산의 한 부분으로 인식했다.정리하면, 앞산의 옛 지명인 성불산은 시대적 이념 또는 오기로 인해 대덕산, 비파산 등으로 불리거나 기록되어 전해왔다. 그러던 중 대구의 진산(鎭山)인 연귀산(連龜山, 제일중학교 교정) 남쪽에 있는 성불산이 자연스레 '앞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주산(진산)의 남쪽을 앞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지형도에서는 앞산을 전산(前山·アプサン)으로 표기하고 있다. 전산은 우리 선조들이 부르던 '앞산'을 단순히 한자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산(前山) 지명 옆에 일본인들이 '가타가나'로 'アプサン'(앞산)을 병기하고 있다. 즉 가타가나는 외국어(외래어 포함) 표기에 사용되기 때문에 당시 우리 선조들이 앞산으로 부르던 지명을 일본인들이 한자 지명인 전산(前山)을 차용하면서 한자 옆에 한글 지명인 '앞산'을 가타가나로 병기한 것이다.앞서 얘기했듯이 성불산은 시대적 이념, 오기, 지역민들의 편의 등으로 인해 대덕산, 비파산, 앞산 등으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의 산에 여러 가지 지명이 공존하다 보니 최정상부인 앞산 외에 대덕산, 비파산 지명 등을 다른 봉우리에 갖다 붙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것은 현재 어떻게 불리는가도 중요하므로 지금의 대덕산, 비파산의 지명도 앞산과 더불어 각기 다른 봉우리에 공존해도 무방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앞산은 우리 고유의 지명으로서 현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 근거를 가지는 지명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앞산'이라는 지명을 자랑스럽게 사용하면 된다.

2020-02-07 14:30:00

박홍열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

[기고] "장애인 자립의 근본은 취업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등록인구는 258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5천138만여 명의 5%를 차지한다.이 중 15세 이상 장애인 취업률은 34.5%로 전체 인구 취업률 61.3%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장애인 근로자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보다 1.5배 정도나 높다.필자는 경상북도, 영양군, 청송군 등에서 오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9년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 취임한 첫날 '장애인 자립의 근본은 취업'라는 생각을 밝히며 지역의 여러 업체를 직접 방문해 장애인 취업의 순기능과 취업 지원 제도를 홍보했다.또 지역 사업체와의 긍정적 관계 형성과 유기적 협조를 위한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장애인 취업에 노력하고 있다. 취업 의지가 높은 장애인들의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해 중증장애인 지원 고용 사업 등 지속적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업체 상담 및 취업 후 적응 지도 등 상시 모니터링과 관리로 지역 사업체와 장애인들 간 징검다리 역할도 충실히 해왔다.그 결과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2018년 15명 대비 지난해 160% 증가한 24명의 장애인 취업을 알선했고, 이 중 10명(41.6%)을 취업시켰다.특히나 취업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지원 고용 사업을 통해 지난해 29명의 인원을 수료시키며 전년도 10명 대비 290%의 성과를 거뒀다.이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관장을 비롯해 직원과 담당자들의 장애인 취업에 대한 중요성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주효한 덕분이다. 물론 장애인 취업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사업체의 올바른 장애 인식, 장애 특성에 맞는 직무 개발, 장애인 개인의 특성과 장애인 취업 관련 법령 등 다양한 요인들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하지만 현재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 이행률은 45.5%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일부 사업체는 고용부담금을 내면 그만이란 식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이러한 장애인 고용 실태를 감안할 때 모든 문제 해결의 선결 과제는 장애인 취업과 연계된 지방자치단체, 사업체, 당사자, 복지기관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따라서 많은 장애인 취업 관련 기관과 관계자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사회 전반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장애인들의 취업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게 된다.필자가 근무하는 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 취업에 대한 의지와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면서 장애인 취업에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장애인들의 직업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체계적 직업훈련 및 직업 지원 서비스를 마련하고, 장애인 고용 기업에 대한 최적의 지원을 통해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는 책이 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비장애인들도 장애인들의 자립을,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이 같은 생각이 머리에만 머물고, 가슴으로는 가지 못하면서 장애인 취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제는 '장애인을 위해서'의 시대가 아닌 '장애인과 함께하는' 시대이다. 머리에 머물고 있는 올바른 생각을 가슴으로 옮겨 함께 행동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2020-02-06 15:28:45

나태주 시인

[춘추칼럼]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 벗어나야 반대편 사람 배려하고 함께 나눔을찬조자의 특별한 의도·사심 색안경 자기가 하지 못하면 말이나 말든지내 생애 가운데 좋았던 시절을 꼽는다면 우선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 초등학교 시절과 교장이 되어 8년 동안 시인 교장 소리를 들으며 살던 시절일 것이다. 거기다 더 하나를 보탠다면 교직에서 정년 퇴임을 한 뒤, 8년 동안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며 지내던 시절을 들어야 할 것이다.나는 공주 태생이 아니다. 서천 출신인데 30대 초반부터 공주에 와서 사는 사람이다. 어느 고장이든 문화원장은 그 고장 출신을 앉히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자존심 높은 공주 사람들이 나를 문화원장으로 허락해준 것이다. 두고두고 감사할 노릇이다.만약 나에게 문화원장 경험이 없었다면 나의 생애는 매우 단조롭고 조그마했을 뻔했다. 교직 생활은 어린 학생들과 엇비슷한 성향을 지닌 교직원들과 어울려 약간은 울타리 안에 갇혀진 생활이고 소극적인 생활이다.하지만 문화원장은 어른들을 상대로 하면서 문화 일반에 폭넓게 관여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나의 생애는 비로소 문화원장의 날들을 추가해야만 어렵사리 완성된다고 본다.내가 문화원장이 되어 시도한 일 가운데 하나가 찬조금을 많이 받아 문화원의 재정을 보다 부드럽게 하는 일이었다. 나부터 찬조금을 많이 내도록 노력했다. 그런 다음 그 찬조금 명세를 문화원 소식지에 상세히 밝혔다. 그것이 찬조금을 낸 분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찬조금을 더 많이 받아내는 길이라 여겼던 까닭이다.몇 차례 찬조금 명세를 밝히고 났더니 조금씩 반응이 왔다. 소식지를 받아본 분들 가운데 생각이 깊은 분들이 찬조금을 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찬조금은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많은 찬조금이 들어왔다. 바로 이것이다 싶어 쾌재가 나왔다. 내가 처음 의도했던 것이 들어맞은 것이다.그런데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회원 한 분이 말했다. 왜 찬조금 명세를 자꾸만 밝히느냐고. 그렇게 하면 안 낸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실은 찬조금을 낸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찬조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명세를 밝히는 거라고 대답해 줬다. 그랬더니 그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제 우리는 생각을 많이 바꾸어야만 한다. 모든 일에 있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좀 생각해 주어야 한다.돈이나 학식이나 교양이나 지위나 권력이나 명예나 모든 면에서 많이 가진 사람은 그 반대편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 사람들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나누어 줄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나누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문화원장을 하는 동안 나에게 모범과 교훈을 보여 주신 분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신데 내가 문화원장이 되면서 고문으로 모신 분 가운데 한 분이다. 그분은 내가 문화원장이 된 뒤부터 해마다 상당한 액수의 찬조금을 주셨다. 그것도 당신이 손수 연금 통장에서 돈을 찾아 가지고 문화원장실로 와 살그머니 봉투를 놓고 가시는 것이었다.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여러 가지를 깨치고 결심하는 기회를 가졌다. 가능하면 나도 선생님처럼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자! 여유 있는 돈이 생기면 그 돈을 문화계를 위해서 쓰자! 참 이런 생각은 이전의 나로선 불가능했던 생각이다. 선생님이 몸으로 본을 보여 주셨기에 스스로 배운 결과이다.그 뒤로 나는 해마다 수월찮은 액수를 문화계를 위해서 사용해 오고 있다. 고향 서천의 신석초문학상 제정을 지원하고 미주의 시인들을 위해 해외풀꽃시인상을 제정하여 시상하는 것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하는 일들이다.그런데 가끔 어이없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내가 무슨 특별한 의도나 사심이 있어 그런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자기가 하지 못하면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2020-02-06 15:23:35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기획자가 쏘아올릴 작은 공

오늘날과 같은 큐레이터(기획자)의 역할이 구축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더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큐레이터'라는 단어의 어원은 '돌보다'라는 뜻의 라틴어 'curare(쿠라레)'에서 파생되어 14세기 중반부터 '큐레이터'로 쓰이기 시작했다.최초에는 수집할 물건을 고르고 소장 중인 물건의 목록을 만들며 진열하는 역할 정도였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미술품과는 전혀 무관한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keeper(지킴이)'로서의 역할이 더 주가 되었다. 이후 18~19세기의 열강에서 대규모 컬렉터들이 생겨났고 이와 함께 큐레이터는 작품을 선정하고 해설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20세기 중반부터는 단순히 선정과 해설의 역할을 넘어 새로운 예술의 표현 수단을 실험하는 형태로 확장되었고, 현재에는 연출뿐만이 아닌 글(비평 또는 해설), 행정, 경영 등 전시 전반을 총괄하는 업무를 수행한다.큐레이터의 역할이 늘어남과 동시에 전문적 지식과 업무적 세분화가 요구되다 보니 프리랜서 큐레이터, 즉 독립큐레이터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광주비엔날레 및 대안공간들의 출현과 더불어 독립큐레이터들도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재정적 한계와 더불어 국가의 지원 사업들이 대안공간과 독립큐레이터의 역할을 흡수함으로써 독립큐레이터들의 활동은 위축되었다.작가에게 직접적으로 지원을 함으로써 행정이 독립큐레이터의 역할까지 대신하며 독립큐레이터의 수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후 2010년대부터는 기획이라는 영역의 중요도가 부각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는 각종 공모에 '기획자' 공모의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제도적 지원들이 늘어나면서 독립큐레이터들도 점차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젊은 큐레이터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으나 인적 공백을 메우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전국에 많은 미술대학이 있지만 기획이나 예술경영과 관련한 학과나 관련 교과목의 개설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관에 소속될 수 있는 큐레이터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반대로 독립큐레이터의 경우는 기관에 소속되는 형태가 아니기에 현장 경험의 부족과 선배들의 부재 등의 이유로 큐레이터 자원의 증가는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각자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담론 구축을 시도하려는 큐레이터들의 등장은 무척이나 고무적이다.큐레이터는 항상 사이에 위치한다. 프로젝트를 기획함에 있어 작가(작품), 관객(사회), 기관(제도) 그리고 여타 협력업체 등을 이웃시키고 그 가운데에서 프로젝트 전반을 조율한다. 때문에 큐레이터마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동시대를 다르게 해석하고 창조적 시야와 아이디어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시선일지라도 젊은 큐레이터들의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쏘아올릴 쇠공이 떨어질 것을 알고 있더라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지 않을까.

2020-02-06 11:14:4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배트맨과 박쥐

범죄와 부패에 빠진 도시에는 고통받는 힘 없는 시민들이 있다.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위해 항상 나타나는 한 존재가 있다. 그 영웅은 수백 마리의 박쥐와 함께 박쥐 가면과 복장을 입고 등장한다. 바로 배트맨이다.자신의 캐릭터를 박쥐로 설정한 배트맨에게는 역설적이게도 박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주인공 배트맨은 어린 시절 우물에 빠져 우물 안 동굴 너머에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박쥐를 보고 정신을 잃는다. 박쥐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배트맨은 억만장자 부모님과 오페라를 보러 갔다가 박쥐가 나오는 장면에서 중간에 나오게 된다. 오페라가 상영되는 중이라 하는 수 없이 어두침침한 뒷문으로 나서게 된 세 사람은 예상할 수 없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뒷문으로 나오다 좀도둑에게 습격을 당하고, 부모님은 좀도둑의 총에 죽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배트맨은 고아가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악을 벌하는 박쥐 캐릭터로 고담시민들의 영웅이 된다는 줄거리이다.항상 선과 악의 대립 구도에서 악을 벌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을 막연하지만 믿게 되고, 악을 벌하는 그 누군가도 그렇게 완전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점 때문에 영화 배트맨 시리즈는 빼놓지 않고 보았던 것 같다.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박쥐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해 급속도로 확산 중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근원지는 박쥐이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원인도, 에볼라의 원인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원인도 공교롭게도 모두 박쥐였다.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바이러스의 원 숙주는 박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박쥐가 최다 바이러스 보유 동물이 된 이유로 박쥐의 면역체계와 체온을 과학자들은 제시하고 있다.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돼도 아프거나 죽지 않는 뛰어난 면역체계를 가지는 식으로 진화하면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었다. 또 박쥐의 체온은 38~41℃인데 이러한 높은 체온은 박쥐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그런데 왜 박쥐는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주요 숙주가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산업화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산업화로 인해 서식지를 잃게 된 박쥐들이 과일 농장으로 몰리게 되고 이때 박쥐가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돼지와 같은 다른 동물들을 거쳐 인간에게로 전파되었다고 본다. 또 집단 공장식 사육 시스템으로 인한 바이러스의 변종이 늘어나게 되었고, 세계화로 인해 국경을 넘나드는 인간과 동물의 이동이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을 증폭시킨다고 설명한다.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자연과 환경을 통제하고 개발하면서 경제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최근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선물만을 준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과학기술이 가져온 자연과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불안감은 더 커져간다.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변화라는 점에서 불안감은 공포감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정보통신의 기술 발전은 오히려 왜곡된 정보와 가치관의 유통을 확산시켜 신뢰감은 더 떨어지고 있다.많은 가짜 뉴스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재미 삼아 확진자가 어디에 있고, 어느 경로를 통해 이동했는지를 SNS에 올린 사람도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감염된다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돌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렇게 허망하게도 근거 없는 말들과 판단에 무너져버리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실망을 감출 수 없지만, 그래도 우한의 중국 교민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환영했던 아산과 진천의 국민들이 있기에 위안이 된다. 그런데 돈 받고 교민을 받았다, 아산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가짜 뉴스까지 돌고 있으니 씁쓸하다.인간의 이기심과 과학기술의 발전, 자본의 이익을 위한 비인간적인 행동들, 정치 이념의 투영이 뒤섞여 초래한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으로서의 신뢰와 연대뿐이다. 신뢰와 연대를 깨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들을 처벌하고 안전을 지켜 줄 이 시대의 영웅 배트맨은 어디에 있을까?

2020-02-05 18:00:00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불가사의 인도] 몽골 후손 악바르 대제, 인도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 되다

인도 토착 원주민 드라비다족의 후예인 인도 친구 싱에게 인도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무굴제국 악바르 대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굴제국이라면 몽골족 후손이 세운 나라 아닌가? 강제점령지인 인도에서 어떻게 성군이 되었는지?"궁금했다. 티무르의 5대손이며 몽골의 후손인 바부르는 1526년 파니파트 벌판에서 10배나 많은 인도 군대를 3시간 만에 무찔렀다. 바부르는 이 싸움을 고비로 인도의 새 주인이 되었으며 스스로 '인도 황제'(파드 샤)라고 선언했다.인도 친구 싱은 인도의 외세 침략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불행하게도 온순한 농경민족인 드라비다족은 북방에서 끊임없이 침략해 온 유목민족들에게 영토와 주권을 빼앗겼다. 기원전 15세기경 아리아족 침략,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 지휘하의 동방정벌군 침략, 기원후 10세기 이후부터 끊임없는 몽골족 침략 등 강대국의 침략은 드라비다족에게는 방어하기 힘든 버거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드라비다족인 인도 친구 싱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5천 년 역사에서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온 우리 민족사와 오버랩되면서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다."중세시대부터 동서양에 걸쳐 지배력을 키워온 몽골족의 후손이 인도에서 어떻게 성군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싱은 바로 이렇게 답했다. 무굴제국의 발판을 마련한 사람이 바부르였다면 이 왕조를 명실상부한 대제국으로 끌어 올린 사람은 악바르(1542~1605)이다. 무굴제국 3대 왕인 악바르 대제는 다윗과 솔로몬에 비견될 만큼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성군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무굴제국 왕자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지만 불우한 성장 과정도 겪었다.열두 살 때 부왕의 석연찮은 죽음으로 부왕의 심복인 신하가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를 내세워 유모와 함께 궁중 밀실에 가두어놓고 전혀 교육을 시키지 않고 자라게 했다. 18세가 되었을 때, 그 신하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악바르는 신하를 제거하고 왕권을 장악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왕권 행사를 하기 시작하자마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국가 장악력이 뛰어났으며 나폴레옹에 버금가는 군사전략가의 능력을 발휘했다.악바르 대제는 1천㎞ 바깥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직접 코끼리를 타고 야무나강을 건넌 후, 3천 기마병을 이끌며 몽골족 특유의 질풍노도 같은 기동력으로 6일 만에 반란 지역에 이르러 반란군을 제압했다. 이렇게 군사전략가로서의 위력을 과시한 그는 인도를 강력한 제국으로 키우며 국력을 길렀다. 거대한 인도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델리를 수도로 정하고, 수도 델리를 중심으로 북방 인근 지역에 무굴제국 시대의 위세를 과시하는 많은 문화유적을 남겼다.무굴제국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타지마할궁전 무덤, 인도 라자스탄주(州) 자이푸르에 있는 천문 관측소인 잔타르 만타르, 아그라 붉은 요새 등이 있다. 특히 인도 타지마할궁전은 무굴제국 샤 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 왕궁으로 인도를 대표하는 이슬람 건축물로 세계 3대 조형건축 예술품에 꼽힐 만큼 중요한 인류문화재이다. 이 모든 인도의 빛나는 문화유적은 무굴제국의 기반을 다진 악바르 대제의 초인적 능력 덕분이다.그러나 이런 가시적 문화유산보다 악바르 대제는 다양한 종교가 대국 인도를 분열시키는 주 요인임을 깨닫고 보편적 종교를 희구했다. 그는 철야기도를 드리며 만인이 따를 인류 보편종교를 계시로 알려달라고 신에게 간청했다. 그는 포르투갈 신부, 힌두 브라만, 자이나교 승려, 조로아스터 지도자 등을 궁중에 초대하여 진지한 종교토론회를 열었다. 그는 모든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융화정책을 폈다. 그는 자신의 몽골 조상들이 숭상한 이슬람교의 교도임에도 제국 최대의 반대 세력이자 힌두교인 라지푸트족의 공주와 결혼하여 몸소 화합의 정치를 선보였다. 그의 자손들에게는 다른 종교에 대한 견문을 넓히게 했다. 훗날 두 손자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무굴제국의 황제인 악바르가 아쇼카 황제와 더불어 인도 역사상 '대제'의 칭호를 받는 이유는 '포용정책' 때문일 것이다.

2020-02-05 18:00:00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지혜와 사랑이 필요할 때

나목으로 긴 겨울을 이겨 낸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맺혔다.입춘이 지나자 추위 속에서도 봄을 알리는 자연은 위대하다. 묵언수행하듯 겨우내 정지되어 있던 나무들이 깨어난다. 겨울나무는 운동선수가 동계훈련을 열심히 하듯 내면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땅 속의 자양분을 흡수하고 기운을 모은다. 온몸으로 눈바람에 맞서던 겨울의 초상들이 여린 잎눈을 보듬어 안고 기다림의 미덕을 꽃피우려고 한다. 느티나무는 둥치가 굵어지려는 듯 겉껍질이 일어나고 밖으로 밀어낸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햇살이 따사롭다.찬 서리를 맞고도 동백나무는 꽃을 피우고 차가운 눈바람 속에서도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건 굳은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며칠 전 봄맞이를 위해 차실 내 먼지를 떨어내고 윤길중 씨가 화제를 쓴 죽농의 유작 매화 족자 한 폭을 걸었다. 한쪽 벽에는 일장 스님의 수선화와 차도구 그림이 있는 액자를 옮겨 놓았다.매화도에는梅經寒苦發淸香(매경한고발청향) 매화는 추위를 겪을수록 더욱 맑은 향기를 내고.人逢艱難顯其節(인봉간난현기절) 사람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그 절개가 드러난다.수선화 그림에는"흰 구름은 옛 벗 밝은 달은 생애로세 이곳은 예로부터 물 흐르고 꽃피는 동천 가끔 지나는 사람 만나면 차를 다려 권하네."차실을 정리하고 맑은 한 잔 차를 우려 마신다. 처마 밑 풍경소리는 바람에 일렁이며 청아하다. 자연과 연결되어 소리가 한 없이 맑다. 맑은 환경을 생각하며 감사를 느낀다. 세상은 이제 봄빛으로 깨어나려 하는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흔들린다. 인간이 살생 업으로 야생동물을 잡아먹고 그 과보로 신음한다. 그 살생의 무한한 파장이 모여 바이러스가 호흡 증상을 일으키고 감염시키며 상응한 대가를 치른다.중국 최초의 약물학에 관한 서적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박쥐가 눈을 밝게 해주고 기침, 말라리아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보양식, 중의학적 약선 요리로 섭취한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박쥐를 섭취하는 원인에는 중의학적인 효능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한다. 박쥐의 중국어 표기는 蝙(편) 蝠(복)으로 (비엔푸)다. 여기서 박쥐를 의미하는 蝠(복) 발음(푸)와 복을 의미하는 福(복) 발음(푸)가 동일하다. 발음이 같거나 비슷하지만 다른 글자가 연상되는 해음(諧音) 현상으로 뜻을 풀어내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는 박쥐를 먹는다는 것은 福(복)을 먹는다는 의미로 풀이되어 박쥐를 먹는다고 한다.확산되고 있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이 땅 위에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모두의 공업 때문에 생겨났다. 업이라는 것은 행위에 대한 결과인데 별업이 있고 공업이 있다. 혼자 짓는 행위는 별업(別業)이고 대중이 함께 한 결과는 공업(共業)이다. 공업으로 전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로 두려움을 겪는다. 마음속에 헛된 욕심을 덜어낼 때 재발되지 않는다. 마음은 진심과 망심 사이를 오간다. 선행을 가로막는 장애 가운데 으뜸은 욕심이다. 참회와 발원으로 인간만이 아닌 뭇 생명체를 살려내려는 상생으로 갈 때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불타고, 권력과 부와 명예와 사랑으로 불탄다. 이 불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고 미래에도 지속된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로 불은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건물이나 물건에 불을 붙여 사회적 재앙과 파멸을 가져온다. 이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려면 남과 더불어 내가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에 대한 연기를 자각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진리에 눈뜰 때 마음에 사랑과 자비가 일어난다. 지혜와 사랑이 있는 사회는 아름답다.

2020-02-05 15:18:18

강규형 명지대 교수

[새론새평] 조국 방어하는 폭주 정권, 선거로 심판해야

단군 이래 최대 위선자 조국 패밀리일부 좌파 양심마비 '묻지마 지키기'권력이 조롱받을 때 힘 발휘 어려워유권자의 선택 더욱 중요해진 시점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며칠 전 서울대에서 직위해제됐다.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구속돼 구치소에 있다. 이들의 범죄행위는 현 정권의 필사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드러날 일들은 아마도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내용일 것이다. 입시 부정은 물론이고 금융 부정은 범위나 금액에서 상당히 큰 규모로 밝혀질 것이다.그동안 조국 가족들이 한 변명들 중 상당수는 이미 허위로 밝혀졌고 계속 밝혀질 것이다. 그는 법무장관이 아니라 무법(無法)장관으로 재직했던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조국 교수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많은 사안에 대해 발언한 것이 이제는 자신에 대한 화살로 날아들고 있다. 거의 자기의 미래 행동을 예견하듯 쓴 것들이 많아 항간에는 '조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이 생겼다.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이다) 현상'(조국의 과거 언행이 조국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현상)이란 신조어도 탄생했다.과거 조 씨가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처럼 온갖 '정의'를 부르짖는 언행을 마구잡이로 하면서 인기를 끌 때에도 필자는 몇몇 경로를 통해 조 씨와 그의 집안에 대한 위선의 실체를 들을 기회가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는 면역이 돼 있었다. 그런데도 요번에 나타난 그 집안의 행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필자도 정신적 트라우마에 빠지게 됐다.원래 한국 좌파가 위선과 허위라는 기초 위에 서 있는 집단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는 도가 심하다. 그를 "단군 이래 최대의 위선자"라고 지칭하는 비판이 항간에 도는 이유이다.그리고 상당수 좌파 인사들도 과거 자기가 했던 언행과는 정반대의 "조국(曺國) 무조건 수호"에 들어갔다. 그들 위선의 실체가 밝혀질 기회가 된 것이 이번 조국 사태의 부수적 효과라 할 것이다. 특히 탄핵 정국 당시 온갖 비방성 허위 추측으로 도배를 했던 여러 사람들이 지금 와서 정반대 태도를 취하니, 집단적인 양심 마비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또한 정치권력을 뒤에 업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산하 기자들과 방송인들 다수는 조국 전 장관 가족들을 무작정 옹호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질' 하기에 바빴다. 예를 들어 작년 10월 5일 서울 서초동에서 검찰을 대놓고 협박하는 친조국 시위대 숫자가 무려 300만 명이라고 MBC와 KBS를 위시한 각 방송, 언론들은 창피함도 무릅쓰고 거짓 보도를 해댔다. 이것이 그대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공정보도' '정의보도'인가? 본인들이 진정한 언론인이고 방송인이라면 창피한 줄 알고 언론과 방송계에서 떠나야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최서원 씨 집안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필자는 그들을 사진으로 보거나 이름을 들으면 아직도 구토를 느낀다. 그런데 솔직히 조국과 가족들은 최 씨 집안보다 더 심하고 악질적이지 않나. 이것은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일 뿐이다. 왜 많은 (상식을 가진) 좌파 지식인들도 조국 씨를 맹렬히 비판하는지 생각해보라. 왜 조국을 싸고돌던 정의당이 현재 위기에 빠졌는지도 생각해보라. 조국 집안은 거의 '가족사기단'을 넘어서 무슨 '범죄 패밀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미국에서 가장 큰 '패밀리'는 갬비노(Gambino) 패밀리이다. 조국과 그 가족들을 보면 무슨 끈질긴 좀비들의 행진을 보는 듯해서 '좀비노 패밀리'라 칭하고 싶을 정도다.권력이 무수한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 될 때는 더 이상 권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진다. 현 정권은 조국과 그 가족의 범죄를 감추고 오히려 그를 띄워주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범했고 아직도 범하고 있다. 더 이상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라. 사회의 집단 우울증을 유발하려고 작정한 정권이 아닌가. 그 이외에도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엄청난 권력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할 정도이다.결국 폭주하는 정권에 대한 심판은 국민이 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심판의 도구이다.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더더욱 중요해진 시점이 왔다.

2020-02-05 15:18:08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매일춘추] 최고의 '캐스팅(Casting)'

영화 '내 사랑'은 캐나다 최고의 나이브 화가 '모드 루이스'의 일대기를 그렸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점점 굽어져 가는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열정에 불을 지폈던 모드의 그림은 맑고 순수한 동화 같다. 사랑과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임을 당당하게 그려나가는 예술가로서의 삶은 깊은 여운을 주었고,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모드의 삶을 그려낸 배우의 연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연극배우로 시작했다는 '샐리 호킨스'.에이슬링 월시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종이에 적은 첫 번째 배우 이름이 샐리 호킨스였다고 한다. 감독의 훌륭한 캐스팅과 배우의 완벽한 변신이 이 영화의 성공을 이끌어냈다는 호평에 손색이 없다. 배우로서 누군가의 선택을 통해 기회를 얻는다는 것과 연출가로서 작품에 적격인 배우를 찾아낸다는 것은 큰 행운이며 창작에 빛을 내려주는 고마운 일이다.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고 지금의 샐리 호킨스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몰라도 분명 좌절과 시련은 있지 않았을까. 배우는 언제나 평가받고 때로는 선택받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직업이다.배우로서 첫 오디션을 보던 날 현장에서 느꼈던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기 싸움은 숨 막히는 전쟁터 같았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위해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재능과 매력을 발산한다는 것은 꽤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었다.실제로 오디션을 보던 중 노래를 하다가 쓰러진 후배가 있었다. 눈을 떠보니 심사위원들의 눈빛에는 걱정으로 가득했고, 재빨리 일어나 응급실로 직행했다는 웃기지만 슬픈 일화도 있다.배우라면 꼭 거쳐야 할 관문이라 할지라도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를 불안감과 대처할 만한 순발력에 대한 압박감은 결코 그 순간을 즐길 수만은 없게 만든다. 누군가는 캐스팅이라는 합격의 영예를, 누군가는 탈락의 고배를 맛보면서도 다시 7전 8기의 도전 정신을 반복하기 일쑤다.수년전부터 인재를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진출자들은 그 어떤 무대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으며, 그 무대를 지켜보는 심사위원들 또한 공정하고 평등한 경쟁을 위해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고민과 선택하기를 반복한다.선택하고 선택받는다는 것. 결국 가능성을 전제로 한 소통과 협업의 힘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다. 가끔 오디션만 잘 보는 배우들이 있다. 잘못 뽑으면 팀워크가 산산 조각나고 작품의 방향이 흐려진다.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나의 영혼의 동반자를 찾는 일과도 같은 일이기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4월 15일은 총선이 있는 날이다. 단지 오디션만 잘 치르는 사람 말고 진정으로 소통 할 수 있는 사람을 보는 안목을 발휘해 옥석을 가려내야 할 때다. 샐리 호킨스와 모드 루이스가 건네는 도전과 열정으로 지혜를 모아 '어떤 사람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자. 마음을 맞대고 공정하게 최고의 캐스팅을 해보자.

2020-02-05 11:08:42

권혁성(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경제칼럼]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제학

수익 공유 통한 자본 확산에 기초전체 파이 키우는 방식으로 운영매년 시즌 우승팀 예측 흥미진진가장 인기있는 빅마켓 자리매김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18세기 이후 눈부신 기술 향상이 이루어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술 자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의 태동 또한 괄목할 만하다.신체 활동을 통한 건강 증진이 일차 목적인 운동(스포츠)도 엄연히 하나의 산업군으로 분류된다. 스포츠산업은 스포츠 활동과 관련된 경제활동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그 정점에는 스포츠 활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 구단을 비롯해 스포츠 활동을 직접 생산하는 업체나 단체가 스포츠산업의 핵심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시장규모에 기초한 스포츠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각종 경제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howmuch.net에 의하면 연간 130억달러 매출인 미식축구(NFL)가 가장 큰 시장규모다. 이어서 95억달러 규모의 미국 프로야구리그(MLB), 48억달러의 미국 프로농구리그(NBA)와 37억달러 규모의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있다. 유일하게 영국 프로축구리그(Premier League)가 53억달러 규모로 5위권 내 3위에 위치한다.박지성, 손흥민 선수로 인해 국내에도 익숙한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그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 1888년부터 운영된 세계 최초의 축구리그인 풋볼리그로부터 1992년 독립(?)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독립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프로 구단의 주된 수입원은 예나 지금이나 중계권료이다. 프리미어리그 탄생 이전 중계권료의 배분은 1부 리그와 4부 리그 전체를 대상으로 균등 배분이었다. 그런데 당시 런던위캔드 텔레비전을 운영하던 그렉 다이크가 1부 리그의 상위 5개 팀에 독점 중계권을 전제로 차등적 수익 배분을 제안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22개 팀이 새로운 독립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주목할 사안은 리그 순위와 무관하게 중계권료를 균등 배분하는 제도에 반대하며 창설된 프리미어리그가 여전히 수익의 균등 배분을 근간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위 50/25/25모델로 리그 전체 중계권을 50은 공동 분배, 25는 순위에 따라, 25는 방송 횟수 등에 따라 지급하는 식이다.특히 해외 중계권료는 전액 균등 지급이다. 이는 1위 팀과 최하위 팀의 수입 차이가 크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2018/19 시즌 수입 기준 1위와 20위 팀의 차이는 1.57배에 불과하다. 원년인 1992년의 2.7배 대비 더 균등 배분이 이루어진 셈이다.반면에 유럽 5대 리그를 이루고 있는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A의 우승 팀과 최하위 팀의 연간 수입은 각각 12.5배와 10.0배의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구단별 운영비와 우수 선수 스카우트를 위한 투자액의 큰 차이를 낳게 된다. 상대적 부익부 빈익빈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결국 유럽 축구 빅5 중 프리미어리그를 제외한 4개 리그의 우승팀은 매년 쉽게 예측이 되고 실제 하나 또는 두 팀 정도가 우승을 독점하고 있다. 반면에 프리미어리그는 매 시즌 우승팀의 예측이 어려운 흥미진진한 리그가 진행되어 결과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빅마켓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영국 축구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으로 새롭게 탄생한 프리미어리그. 그러나 그들은 수익의 공유를 통한 자본 확산에 기초해 전체 파이를 키우는 정책으로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를 소유하게 된다.그렉 다이크에게 선택받은 빅5 클럽들이 성적에 따른 중계권의 차등 지급을 고집했다면 지금의 성공한 프리미어리그가 존재했을지 궁금하다. 소위 가진 자인 빅5 클럽들이 규제일 수 있는 차등 지급을 원칙으로 승화시킨 덕분이라 해도 결과적으로 과언이 아니다.만년 우승 후보인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설립 이후 한 번도 우승을 못 했다. 그런 리버풀이 금년 시즌 우승을 향해 순항 중이다.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 구장 내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층마다 한 구절의 글귀가 적혀 있다.붉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새겨진 그 글귀는 그들의 응원가인 'You'll never walk alone'의 가사이다. 비록 먼 나라 프로축구팀의 응원가이지만 한 걸음이어도 함께 나아간다는 그들의 외침이 유난히도 큰 울림으로 다가서는 요즘이다.

2020-02-04 14:19:33

[매일춘추] 번지점프  

극장을 울려 퍼지던 음악이 멈추고 심사위원석의 서늘한 시선을 받으며 청년과 배우들은 극장을 빠져나온다."정말 떨렸어!""어떡하지? 아까 실수했는데…."홀로서기 후 뮤지컬 창작자가 된 청년은 배우들의 들뜬 어깨를 토닥이면서 애써 태연한 척한다."아니야. 너무 잘했어. 좋은 결과 있을 테니 기다려보자."배우들 틈새로 빠져나와 긴 복도 끝에 다다르자 긴장했던 한숨을 내려놓는다. 말을 더듬진 않았나, 원하는 바를 제대로 설명을 했던가, 세 번째 질문이 뭐였지? 최근 연이은 참패를 맛본 26살 청년의 얼굴에는 주눅이 가득 들어있다.몇 개월 전, 처녀작의 DIMF 수상 이후 제작사와 작품의 상업화를 착수했을 때만 해도 자신의 뮤지컬 인생이 활짝 열린 것처럼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저작권 문제로 공연화는 하루아침에 무산되어버렸다. 실망할 겨를도 없이 타 대형 뮤지컬 음악팀으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실력의 한계와 부담감으로 자진 하차해야만 했다. 밤을 새우며 만든 연극 음악은 극단으로부터 말없이 전곡 퇴짜를 맞고 작곡가가 돌연 교체되었다. 그야말로 청년은 그간 실패의 연속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쳐버린 상태였다.지금 청년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뮤지컬 지원사업 창작팩토리'에서 배우들의 시연에 이어 면접까지 끝난 후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다. 영원 같던 몇 시간이 흐른 후 모든 지원자들을 부르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후보자들 사이에서 청년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느라 손톱이 다 하얗게 되는 지도 모를 만큼 손가락을 꽉 쥐고 있다"4작품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단 한 작품만 정식 공연으로 만들어질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럼 2008년 창작팩토리 1등을 발표하겠습니다. 1등은.."긴장과 초조함으로 몇 초가 흐르고 발표자가 마침내 입을 연다."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입니다."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패배감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함께 고생해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눈에 밟혀 울고 싶었지만 울 수도 없다.'정말로 끝인가? 이 길이 아닌 걸까? 왜? 무엇이 문제였지?'1등으로 뽑힌 작품의 팜플렛을 열어보자 안에는 청년이 그토록 동경하던 배우도 있었고 스태프들도 많고 화려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내용과 주제가 굉장히 세련되게 느껴졌다.'그들은 뭐가 다르길래 나보다 한발 앞서 올라가는 걸까?'배우들의 사진 아래로 조그맣게 창작자의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다. '뉴욕대 티쉬스쿨' 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청년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처음부터 배워야겠어. 뮤지컬 본고장에서."어느새 주변의 소음은 사라지고 괴로웠던 마음은 심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뛰어보기 전까지는 그게 어떤 경험일지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지만 새로운 도전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새겨진 순간 청년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뛰어들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절박함 마저 동력이니까.

2020-02-04 11:48:53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전염병을 이기는 법

인간의 역사에서 전염병은 전쟁과 함께 가장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인류를 가장 혹독하게 했던 전염병은 페스트로 불리는 흑사병이다.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다는 흑사병에 대한 공포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회자되고는 한다. 수세기가 지나서도 마치 공포의 DNA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에 심어져 있는 듯하다.역사상 첫 전염병은 기원전 430년경 유행했던 '아테네 역병'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대륙에 일부러 퍼트린 천연두, 50만 나폴레옹 군대를 무력화시킨 발진티푸스, 유럽 인구 4분의 1을 희생시킨 결핵 등등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전염병들은 루이 파스퇴르의 백신 발명이나 알렉산더 플레밍의 항생제 페니실린 발견 이후 더 이상 인류를 괴롭히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가 지속되는 한 전염병과의 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질 듯하다. 20세기 가장 무서운 병이 된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부터 에볼라 바이러스, 사스, 메르스 등 시대가 변하면서 전염병의 양상도 변하고 있고 인류도 이에 대응하는 치료법을 개발했거나 개발 중이다. 이는 의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들의 DNA에 잠재된 전염병의 공포를 일으켜 세웠다. 우한 현지 사망자만 362명을 넘어섰고 우리나라에도 확진자만 15명(3일 기준)이며 격리 조치된 사람이 87명이다. 정부에서도 사태를 주시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를 통해 확산 방지 대책을 세웠다. 개인의 예방 수칙을 위해 꼭 필요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생기고 크고 작은 행사들도 대부분 취소되고 있다. 이런 신속한 대응은 지난 역사 속에서의 경험도 분명 한몫할 것이다.이런 어려움 속에서 늘 빛나는 것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정신이다. 중국 우한의 의사들과 그들을 돕는 많은 사람들의 미담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얼마 전 우한에 있는 우리 교민들이 전세기를 통해 입국했을 당시, 격리 조치될 지역의 몇몇 사람들이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전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이해하지만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을 피해 고국으로 돌아온 동포를 내치는 모습에 꽤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다행히 정부의 철저한 격리 조치를 믿고 지역민들이 받아들이자 많은 국민들이 환호하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끈끈한 민족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유럽에 흑사병이 일어났을 때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사는 희생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불과 23세에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일부 성직자들은 '마녀칙령'이란 걸 만들어 무고한 여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전염병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 위기, 심지어는 가뭄과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나 불임이나 남성들의 발기부전까지도 마녀들의 짓이라고 몰아세웠다. 한 시대 똑같은 전염병에 노출됐을 때 대처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한 21세기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전염병이 돌 것이고 누군가는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자신의 두려움과 공포를 다른 이들의 희생으로 벗어나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는 아직까지는 약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면역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서로 사랑하고 남을 도울 때 사람의 면역력이 가장 강해진다고 한다. 면역력을 키우기에 적당한 날들이다.

2020-02-03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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