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호반의 도시, 대구

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아득한 옛날 대구는 내륙지역이 아니라 거대한 호수였다. 지각변동과 퇴적작용에 의해서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북쪽으로는 안동, 남쪽으로는 광양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단다. 지금도 한반도 호수의 35%가 경상북도에 치중하고 있다고 하니 거대했던 옛 호수의 흔적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가 매립한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의 천왕당못, 복현오거리 일대의 배자못, 대명동 영선시장 자리의 영선못, 달성고등학교 일원의 감삼못, 비산동 날뫼못, 수성구청 주변의 범어못, 소래못, 사리못, 한골못, 들마못, 소못 등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호수들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태반이 사라졌다. 성당못도 30%가량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구도심 중간에 수성못과 성당못이 남아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수성못은 조선시대 문헌에도 '둔동제'라고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때 부족했던 농업용수와 홍수범람을 막기 위하여 '미즈사키 린타로'라는 일본인이 증축한 호수가 지금의 수성못이다. 약 다섯 배 정도가 커졌단다. '미즈사키 린타로'에 대해서는 분분한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일본인으로서 조선에 도움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의 묘도 수성못이 잘 보이는 근처 산언저리에 있다.

수성못은 필자에게도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어릴 적 추억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유아 때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억새풀 같이 바람에 흔들리는 축 처진 수양버들 밑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용지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지금의 거북이상 있는 곳으로 물이 흘러 들 때면 수많은 물고기들이 앞 다투어 물을 거슬러 올라갈려는 모습들이 장관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낚시를 다녔으며 대학시절과 군 제대 이후에는 포장마차 촌에서 밤이 새도록 골뱅이 안주에 술잔을 기울이던 추억들이 아롱거린다. 지금은 잘 얼진 않지만 예전에는 물이 꽁꽁 얼어 대구시민들의 겨울 스포츠 센터 역할을 했었던 수성못.

한 때는 수성못도 오염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하지만 2011년에 시작한 수성구 범어천 생태하천 복원사업과 수성못 환경개선 사업을 묶어 이 일대를 자연친화적인 명소로 개발하였다. 수생식물 군락과 생태탐방로, 산책로와 공연장,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을 확충하였고 수성유원지 옆 수성랜드도 대구시민들에게 소소한 위안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수생식물 군락은 수질 개선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수성못 둑에 앉아서 그 옛날 나라 잃은 서러움을 토하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을 생각한다. 나라를 생각하던 시인의 마음처럼 수성못을 우리가 잘 보존하고 깨끗하게만 관리한다면 수성유원지 만으로도 대구는 이미 호반의 도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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