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설렘과 꿈의 자리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많은 현대인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약간의 틈이라도 생길 때면 여행을 하려고 애를 쓴다. 사실 떠난 순간의 즐거움보다는 출발 전에 미리 계획하고, 일정을 정리하면서의 설렘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이 주는 약간의 긴장감과 루틴에서 벗어나 즐기는 일탈이 아드레날린을 잔뜩 솟구치게 하기에 늘 여행을 동경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 거듭될수록 재미와 휴식을 위한 1차원적 욕구 해소의 여행에서 일과 삶, 꿈이 공존하는 다차원적 쪽으로 여행의 이유가 조금씩 옮겨가는 듯하다. 나는 과연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떠나는 것인가.

처음 런던을 갔을 때, 보통의 여행자들과 같이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여러 상징물들을 실물로 맞닥뜨리면서 흥분으로 가득 찼던 기억이 난다. 과거와 현재,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런던의 곳곳에 숨어있는 문학과 예술의 정취가 또 그것을 대한 영국인들의 태도가 참 좋았다. 그렇게 템스강을 따라 길을 걷던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한 건물이 나타났다. 17세기 셰익스피어 시절의 극장을 그대로 재현한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이었다. 원래의 자리에서 고작 230m 떨어진 곳에 1997년에 개관한 글로브는 연중 셰익스피어의 희•비극들로 공연 라인업이 채워진다. 직접 들어가 본 극장 안은 무대를 중심으로 반원으로 둘러진 객석이 3층으로 감싸고 있었고, 무대 앞에 펼쳐진 마당은 지붕이 없어 뻥 뚫려 비가 내리침에도 불구하고 3시간도 넘는 공연시간 동안 온전히 작품에 집중하는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2016년, 딤프(DIMF)에서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가 중국 하얼빈에 진출하는 성과가 있었다. 순수 국내 창작뮤지컬이 해외 초청을 받아 공연 한다는 것이 이례적이었기에 큰 성과라는 평이 많았고, 특히 하얼빈오페라하우스의 개관작으로 초청을 받은 것이라 더 뜻 깊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여러 풍문을 들은 터라 막연한 두려움이었을까? 배우들과 스태프를 인솔해야 하는 부담감이 더해져 긴장감만 가득했다. 하지만 극장을 처음으로 마주하던 순간, 습지 위에 세워진 모던한 형태의 극장 건물이 자연환경과도 조화를 이뤄 신비로움 자아냈고, 진정한 '대륙'의 스케일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또한 물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이 수려하기까지 했던 극장 내부를 보았을 때의 그 전율을 잊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은 할까?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신천을 따라 가볍게 걸어본다. 오늘은 어디까지 갔다와볼까 생각하며 시선을 멀리 떨어트려 본다. 며칠 전에 비가 온 탓인지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모습을 지나 여러 다리들과 저 멀리에는 반짝반짝 관람차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도 템스강을 걷다 마음을 빼앗겨버렸던 셰익스피어 글로브와 습지 사이로 위용을 드러내던 하얼빈오페라하우스가 마음속에 떠오른다. 만약 '뮤지컬 도시 대구', '아시아의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대구에도 도시를 대표하고 상징과도 같은 근사한 뮤지컬 전용극장이 하나 있다면? 신천을 걷는 시민들, 멀리서 극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여행 이상의 설렘과 꿈을 심어줄 수 있진 않을까.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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