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장학금

박병욱 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박병욱 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박병욱 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김 집사님은 50대 중반이었다. 음식점에서 함께 밥을 먹고 나서 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집사님은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급히 일어나 계산대로 달려가 계산을 하셨다. 그러고는 내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내가 신발을 신는 동안 정중한 자세로 서서 기다리셨다. 이어 출입문을 예의 바르게 열어 주셨다. 영락없는 군주와 신하의 모습이다. 세상에….

당시 나는 유난히 어려 보였고, 김 집사님은 머리가 반백이었다. 음식점의 다른 손님들이 우연히 이 낯선 풍경을 보고는 시선이 고정되어 점점 더 많은 손님들의 시선이 내 등 뒤에 꽂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등에 땀을 흘렸다.

나는 김 집사님의 이런 행동을 만류했지만 허리도 불편하신 분이 동작이 얼마나 민첩했는지 막을 길이 없었다. 내가 만류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 같아 나는 빠르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이런 일은 김 집사님과 여러 가지 일로 동행할 때마다 생겼다. 큰 교회라 부서도 여럿이고 사람도 많은데 인사 이동을 할 때면 그 집사님과 나는 같은 부서가 되었다.

내가 대학원을 입학할 때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 성적 장학생으로 추천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교회로 임지를 옮겨서 시무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나는 이미 작은 교회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며 장학금을 포기했다. 그리고 한마디 조언을 했다. 성적 우수생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소위 우수한 인력을 자기 교회로 초빙하는 것으로 연결하지 말아야 다른 작은 교회도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후 그 교회는 장학금 지급 규정을 바꾸었다. 나는 나대로 조건이 더 좋은 다른 장학금과 연결되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걱정은 덜게 되었다.

몇 년 후 우연히 그 교회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대학원생이었다. 그 교회는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당연히 나에게 장학금이 전달되었다. 나는 장학금을 이중으로 받는 것이 부담되어 동료에게 물었더니 책값 등 공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주는 기관도 다른데 무엇이 문제냐고 했다. 그래도 나는 양심의 소리를 따라 장학금을 이중으로 받을 수 없다고 반납했다.

김 집사님이 나를 과도하게 예우하면 도리어 내가 불편하다고 말하며 몇 번이나 그러지 말라고 부탁을 하다가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김 집사님이 수년간 교회 재정 사무를 보았는데 성적 장학금과 좋은 임지를 거절한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고, 장학금 이중 수령 때문에 반납한 사람도 딱 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나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 마음속에 호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내가 양심을 따라 선택한 작은 일이 김 집사님께는 위대하게 보였나 보다. 김 집사님은 오랜 기간 저명 인사의 개인비서를 해서 몸에 밴 예의라고도 했다.

지난날의 나는 지적인 욕구가 유난히 강했다. 질문이 생기면 답을 꼭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도 학문적인 욕구를 채울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의 희생과 주변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욕심 부리지 않아도 항상 장학금을 받아온 셈이다.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는 지금도 개인비서를 거느릴 생각이 없고, 과장된 예의에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다만 돈에 대한 자세가 사람들의 평판에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는 교훈을 기억하고 있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매일신문은 모든 댓글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다만, 아래의 경우에는 고지없이 삭제하겠습니다.
·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 개인정보 ·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 도배성 댓글 ·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위배되는 댓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