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정선(1676-1759), '시화환상간'

미술사 연구자

비단에 담채, 29.5×26.4㎝, 간송미술관 소장 비단에 담채, 29.5×26.4㎝, 간송미술관 소장

9월의 주제는 그림을 중심에 놓은 동호(同好)의 우정이었다. '기명절지' 부채의 이도영과 고희동 그리고 스승 안중식, 심사정의 그림과 강세황의 글이 나란히 표구된 '경구팔경첩'의 '산수', 강세황의 '월매도'에 써 넣은 친구 허필의 비평 등은 그림을 매개로 한 한국문화사의 의미 깊은 장면들이다. 겸재 정선의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또한 사천(槎川) 이병연(1671-1751)과의 우정과 고전 회화의 인문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맨 머리를 드러낸 소탈한 차림의 두 노인이 두루마리를 펴 놓고 냇가 소나무 아래 풀밭에 마주 앉아 있다. 한 사람은 화가 정선이고 한사람은 다섯 살 위인 시인 이병연이다. 두 분은 한 동네에 살았는데 정선이 경기도 양천 현령으로 떠나게 되자 두 노대가는 서로의 소식을 시와 그림으로 전하기로 한다. 30대부터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정선이 66세, 이병연이 71세 때인 1741년(영조 17년)이었다. 정선은 한강 주변의 명승지를 화폭에 담아 이병연에게 보냈고, 이병연은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보냈다. 두 분은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이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실력을 겨루었다. 그림이 가면 시가 오고, 시가 가면 그림이 오는 '시거화래'(詩去畵來)의 왕복에서 탄생한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첫 머리에 이병연이 아래의 시를 써서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아시군화환상간(我詩君畵換相看) 경중하언논가간(輕重何言論價間)

시출간장화휘수(詩出肝腸畵揮手) 부지수이갱수난(不知雖易更雖難)

내 시와 그대 그림을 서로 바꿔보는데

경중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으며 값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

시는 마음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데

어느 것이 쉽고 어느 것이 어려운지 알 수 없다네

 

정선이 '시화환상간'에 써 넣은 화제는 위의 이병연 시 중 앞 두 구절이다. 정선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을 나타내는 중국풍 관념산수가 주류를 이루며 실제의 경치인 실경(實景), 진경(眞景) 그리기가 약했던 조선 산수화에서 우리 산천을 그림으로 옮긴 '진경산수'로 한국회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정선이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모델을 창안할 수 있었던 것은 "공력의 지극함은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던 평생의 노력과 이병연을 비롯한 문인, 사대부 지식층과 교류하며 당대의 문예흐름과 시대정신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선이 부임했던 양천현은 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인데 2009년 '겸재정선미술관'이 강서구 궁산 자락에 개관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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