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39> 필름카메라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다. 이른바 명함판 크기의 흑백사진인데,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을 찍은 것이다. 누가 찍어준 것인지는 기억해 내지 못하였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나도 카메라를 만지게 되었다. 아마도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카메라가 귀중품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교동시장에서 중고품 카메라를 샀다. 요즈음으로 치면 장난감에 가까운 조그만 것이었지만, 그래도 남들에게 자랑하며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학원에 다니며 사진기술도 조금씩 배웠다. 그 당시 한일극장 북쪽 맞은편에 국제사진학원이 있었다.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과 함께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지에 올리는 과정을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그 시절 카메라를 가지고 있으면 필름 값이 만만찮게 들어갔다. 가끔 사진 값이라며 몇 푼씩 받기도 하였으나,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부모님의 꾸중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소풍이나 나들이를 갈 적에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고, 집안 잔치 자리에도 가서 사진을 찍었다. 마냥 즐거웠다. 이런 우화가 있다. "어린왕자"속의 여우가 말하기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그 당시 내 마음도 그랬었다. 필름 속 사진을 금요일에 받는다면 나는 필름을 구입한 월요일부터 행복했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늘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사진을 이렇게 찍었는데 저렇게 나오기도, 저렇게 찍었는데 이렇게 나오기도 하였다.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하게 필름이 감기지 않았을 때가 있었고, 다 찍었다고 판단해서 필름을 꺼내려고 카메라를 열었다가 광선이 들어가서 못 쓰게 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카메라도 고가의 성능 좋은 제품이 잇달아 출시되었고, 다양한 렌즈며 부대장비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은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차츰 사진 찍는 일이 심드렁해지기 시작하였다. 카메라도 컴퓨터의 기억 장치 같은 것이 장착되어, 셔터만 누르면 노출과 초점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것들이 출시되었다. 편리하긴 해도 숨을 꾹 참고 셔터를 누르던 짜릿한 맛을 앗아 가버렸다. 거기다 컬러필름이 나오면서 사진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요즈음엔 디지털카메라가 쏟아져 나오고, 휴대전화기에까지 탑재되면서 사진 찍는 기술이 보편화되었다.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을 되돌아본다.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끼우고 촬영한 다음, 사진관에 맡겨서 인화된 사진을 받아볼 때까지 얼마나 기다렸던가. 또한 받은 사진이 엉망이었을 때 느꼈던 그 좌절감이란…. 바야흐로 쉽게 찍고, 바로 확인하는 디지털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근자에 이르러 흑백사진이며 필름카메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조금 느슨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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