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특별기고] 코로나 위기 벗어난 대구, 세계 본보기

[특별기고] 코로나 위기 벗어난 대구, 세계 본보기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가 심각하다. 유럽, 미국 등 많은 나라가 여전히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에 비해 대구는 다행스럽게도 점차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축제 관계자 등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기로는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6월 13일~9월 5일)'이 코로나19 여파로 결국 1년 연기를 발표했다고 한다. 여름에 열려온 다수의 공연이나 축제들도 대부분 연기 또는 취소되었다고 한다.이처럼 공연이 없다는 것은 예술가들에게 대규모 실업 사태와 다를 바 없고 이는 소득의 감소로 이어진다. 결국 음악가와 같은 예술가들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더 심각한 경제 문제가 닥쳐올까 봐 한편 두렵기도 하다.미국의 경우도 모든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도 예정된 공연들이 줄줄이 중단을 선언했다고 들었다.코로나19로 모든 분야가 힘들겠지만, 특히 공연예술계는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안전한 대구에 머물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정부도 자치단체도 잘 대처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고, 보안이나 안전 등에서도 안심된다. 무엇보다 한국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방역에 성공적이었다고 꼽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특히 대구는 안정적이고 완벽한 시스템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월, 우리 대구는 한국에서도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이었지 않은가. 그때는 도시 전체가 마비되다시피 하였다. 도로에는 차가 사라지고, 거리에도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도 이내 안정을 되찾아 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위기의 순간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한다는 한국인의 국민성을 다시 보게 되었다.이탈리아나 미국 등에서는 병상을 구하지 못해 입원 대기 중인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도 속출하였다. 그러나 대구에서는 생활치료센터 만들어 중증과 경증 환자를 분류해 관리, 치료하고,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를 시행하면서 빠르고 안전한 검사를 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도 대구가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코로나19에 대처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이 이전에 비하여 많이 좋아졌고, 대구의 일일 신규 확진자 수도 소수이거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은 더 발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증거이다.또한 대구시민들은 마스크 착용,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생활수칙을 잘 준수하는 수준 높은 시민 의식을 보여주었다. 대구 시민 모두가 코로나19의 공격으로부터 대구를 지켜낸 진정한 영웅이었다.대구가 도시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면서,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하여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난 이때, 세계 여러 나라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대구의 명예시민으로서 대구에 산다는 것이 늘 자랑스럽다. 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 온정을 나누는 대구시민들과 의료진, 공무원, 이웃들 등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행복하게 생각한다.앞으로 대구시민들에게 연주로 희망을 싹 틔우는 시간이 빨리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2020-06-06 10:50:22

[광장] 전쟁과 평화

[광장] 전쟁과 평화

전쟁의 상흔은 생각보다 치유되기 힘들다. 부서진 건물과 도로가 복구된다고 전쟁의 상흔이 끝난 것은 아니다. 1차 세계대전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7년간의 전쟁이었지만, 상흔은 7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세계대전 당시 열강의 침략으로 인해 국경이 나누어진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도 종족 갈등과 내전이 진행 중이다. 영국에 할양되었던 홍콩은 반환 이후 현재까지 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이다.미얀마도 그러하다. 미얀마 접경 지역 로힝야족 난민촌은 말 그대로 인종 청소가 진행 중이다. 아웅산 수치는 이 비극을 외면하고 있다. 그녀의 노벨평화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 정도로 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버마(지금의 미얀마) 독립군을 탄압하기 위해 로힝야족을 용병으로 활용한다. 로힝야와 일부 소수민족은 버마 독립군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탄압한다. 수치의 아버지이자 버마 독립군의 대장이 아웅산 장군이다. 아웅산 수치는 평화의 상징이었지만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은 묵인하고 있다. 민족과 역사적 트라우마 앞에 인권이 멈춰 섰다.한국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일제의 식민지 처지에서 의도치 않게 태평양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독립을 맞이했지만 사회는 세계사적 흐름에 따라 사상이 나뉘어지고, 사회는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제대로 꾸려지기도 전에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 처했다. 남북 분단이라는 결과 아래 안보는 제1의 가치가 된다. 혼란한 사회를 규합하고,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군사정권이 집권하게 되고 군사 문화는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된다.대한민국 스포츠는 폭력과 얼차려의 문화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강하다. 전체주의 독일이나 이탈리아보다 더 엄격한 학교 문화가 한국의 학교 문화이다. 군대 제복 같은 교복과 짧은 단발, 학교에서 실시된 전쟁 대비 수업이 있었다. 회사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1970, 80년대 제조업 현장은 군대식 기숙사와 아침 조회, 단체 체조 같은 것이 존재했다. 이제는 추억의 한 페이지처럼 남아 있는 기록이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군사문화가 스며 있었다.안보라는 가치를 바탕에 두고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전쟁을 대비해 오고 있었다. 아직 종전도 아니고 휴전 상태인 분단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테지만, 군사문화라는 것이 제한하는 인간의 권리 상황은 생각보다 넓었다. 아이들의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추고, 운동선수의 인권은 합숙소 앞에서 멈춘다고 했다. 이 전쟁의 상흔이 아직 우리 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아직도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면, 누군가는 "전쟁을 안 겪어봐서 철없는 소리를 해댄다"며, 당장 전쟁을 일으켜야 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증오와 낙인찍기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서북청년단을 단체 이름으로 내세워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전쟁의 상흔은 이렇게도 진행 중이다. 치유하지는 못할망정 다시 분열과 대립으로 상처를 파내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인간의 존엄이 철저하게 말살된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것은 인류의 과제였다. 전쟁의 종료가 곧 평화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이후 인권의 최대한 보장을 위한 '세계인권선언'이 유엔에 의해 채택되고 각국 헌법에 반영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6월이다. 아픈 전쟁의 기억을 되새겨야만 하는 이유는 대립과 복수가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위함이 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는 전쟁의 종료가 아니라 전쟁의 상흔이 모두 치유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다.

2020-06-05 16:30:00

[기고] ‘푸른 차 연구원 건물’ 문화재 지정되기를

[기고] ‘푸른 차 연구원 건물’ 문화재 지정되기를

문화재 지정 제도는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엄격한 규제를 통하여 항구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제도로,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로 나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 및 명승, 천연기념물 및 중요민속자료 등 8개 유형으로 구분된다.국가지정문화재는 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하며, 시·도지정문화재는 시·도지사가 그 관할 구역에 있는 문화재로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시·도지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도지사가 지정한 문화재로서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및 민속자료 등 4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시·도지정문화재와 문화재자료의 보호·관리는 각 시·도지사가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세부적인 내용을 조례로 정하여 관리한다.상기에서 언급한 문화재 지정 방법론에서 시·도지정문화재 등록이 꼭 필요한 건축물을 알리고 필요성을 확인하고자 한다.문화재란 꼭 오래된 것만 등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보존 가치, 희귀성, 희소성에 의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대구 수성구 연호동 지역 내 '연호공공주택지구' 건립 사업이 진행되는 마을이 있다. 이 개발사업 부지 내에 (사)푸른차문화연구원이 있다. 근린생활시설로 차(茶)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수성구뿐만 아니라 대구 지역의 차 문화 발전을 위한 명소로 사용되고 있다.2016년 12월 차 산업 진흥법에 의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지정 차 전문인력 양성기관이 되었고, 동년 1월 차문화 교육강사, 제조교육강사 등 차 전문인력 양성기관 2개 과정과 차 전문인력 훈련기관 3개 교육과정을 지정받아 차 문화 보급 확대를 위한 평생교육원을 설립해 교육 중에 있다. 2013년 5월 1일 행정안전부 '마을기업'으로 지정되어 다도 체험 교육과 차 제조원으로 대구 지역에서 차를 통해 초·중·고·대학생들에게 예절과 인성 교육에 힘쓰고 있으며, 현재까지 유치원 어린이 등을 포함한 10만 명에게 교육을 하였다.또한, 대구시 외국인 관광 투어 코스로 한국 전통 다도 문화 체험 교육을 담당하여 전 세계에서 5천여 명이 다도 체험을 하고 갔다. 상기 건물에는 2017년 작고한 김구한(서울대 미대 출신) 선생의 작품으로 타일 한 장에 그림을 그려 구운 예술 작품 벽화와, 수작업으로 구운 '세라믹 카본' 도자 벽돌, 도판으로 전서체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상감기법으로 작업한 '노안도' '추풍' '풍죽' 작품 등 문화재급 이상의 자산으로 구성된 건축물이다. '푸른차연구원' 건물은 21세기 한국 다실에 새로운 지표를 제공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며, 새것과 옛것의 조화, 친환경 소재, 공간의 구성 등 기존에 우리에게 인식되어진 다실을 몇 단계 진보시킨 기록될 만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도예가 고 김구한 선생의 작품인 수제 벽돌은 흙으로 구웠지만, 숯의 효능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연호공공주택지구'에 편입된 동 건물을 철거하게 되면 세계에서 유일한 작품의 건물이 사라지거나 훼손될 수 있다. 건물의 철거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시·도지정문화재로 등재되어 꼭 존치 보존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소망이다.

2020-06-04 15:38:42

[시대산책] 대북 전단

[시대산책] 대북 전단

4일 새벽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국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남북 군사 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판문점 선언과 군사 합의서를 거론하며 "이런 행위가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군사 합의 파기 등을 '최악의 국면'의 예로 들었다.김여정은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며 외교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전단 살포를 한 탈북자들을 똥개, 쓰레기, 인간 추물, 바보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해 가면서 비난했다. 북한 당국이 비외교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늘 있는 일이지만 이런 담화가 로열패밀리이자 북한의 실질적 2인자로 볼 수 있는 김여정의 명의로 발표되었다는 것이 좀 의외다. 북한과 같은 절대적 독재국가에서는 보통 로열패밀리는 우아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주로 집중하고 악역은 보통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여정이 너무 젊어 악역을 아랫사람들에게 미루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전략 전술 개념이 없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특이한 일이긴 하다.이번에 김여정이 문제 삼은 전단 살포는 지난 5월 31일 자유북한운동연합(주로 탈북민으로 구성)이 김포에서 한 것이다. 대북 전단 50만 장과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천 장, 메모리카드 1천 개를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대북 전단에는 '7기 4차 당 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 등의 문구가 쓰였다고 한다.대북 전단이 북한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밀리에 전단 살포를 해온 몇 개 단체들에서 풍선 속에 GPS 신호 발신기를 넣어 올려 보낸 결과 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계절도 다르고 풍향, 풍속도 다른 30차례의 결과 중 20차례는 휴전선 이남 지역에 떨어졌고 3차례는 비무장지대 내에, 5차례는 북한의 산악 지역에, 2차례는 북한군 주둔 지역에 떨어졌다. 한반도 상공에는 늘 편서풍이 강하게 불고 따라서 지표면의 풍향과 상관없이 풍선은 일정 고도 이상 올라가면 아주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휴전선이 동쪽으로 갈수록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휴전선 이남 지역에 떨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드론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드론의 이용에는 수없이 많은 규제가 있지만 특히 이런 목적으로 드론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적 불법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때와 박근혜 정부 때 관련 법과 규정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국방부를 비롯한 유관 부처들에서 그때마다 강력하게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은 없지만 시도해 보나 마나다.북한에 별로 위협이 되지도 않는 풍선을 이용한 전단 살포에 대해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첫째, 전단의 내용에는 북한이 '최고 존엄'이라고 부르는 북한 지도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북한이 그런 전단의 존재 자체를 못 견뎌하는 것이다. 둘째, 핵,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도발을 하거나 아니면 기타 적대적 행동을 해야 할 때를 대비하여 명분을 축적하려는 면이 있다. 셋째, 전단을 그냥 방치한다면 나중에 정권교체가 되었을 때 드론 등 신기술을 이용한 전단 살포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아예 싹을 잘라 버리려는 것이다.김여정이 "광대놀음을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한 지 불과 4시간 만에 통일부 대변인은 대북 전단 살포의 중단을 요구하는 브리핑을 했다. 대북 전단 살포를 불법화하는 법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이 여러 차례 남북 군사 합의를 위반했을 때는 일언반구도 없다가 김여정이 한마디 하니 신속하게 반응하는 통일부가 과연 대한민국의 통일부가 맞는지 의문이 생긴다.

2020-06-04 15:25:10

[최재목의 아침놀] 거대한 ‘허위의 자격’이 두렵다

[최재목의 아침놀] 거대한 ‘허위의 자격’이 두렵다

살아갈수록 인간이 무섭고 두렵다.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렇다. 코로나 탓으로 밤낮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마스크는 나와 남 사이에 차단막을 만든다. 무의식중에, 서로 불안하니 경계-의심하라고 알린다.물론 꼭 집 밖으로 나서야만 낯선 타자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나는 평소 바깥의 이질적인 타자와 교류하고 있다. 흔히 '호흡지간'(呼吸之間) 즉 '날숨(呼)과 들숨(吸) 사이'에 생사(生死)가 있다고들 한다. 호흡이 멈추면 죽으니 인간은 날숨-들숨 '사이'에서 살아 있다. 숨을 들이켜며 내뱉을 때를 생각해보면,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날숨(호)-들숨(흡)의 '사이'는 기계적으로 연결돼 있질 않다.고요와 간극의 '텅 빈' 자리를 매개로 숨을 떠나보내고(=날숨) 또 맞이한다(=들숨). 이곳에서 삶의 희망이 생겨난다. 하지만 그곳은 찰나생, 찰나멸…그 무수한 낱낱의 점들로 이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다. 나는 이처럼 호흡하는 삶에서 바깥 세계를 만나며, 경합(競合)한다. 날숨-들숨에 빌붙어 이어지는 '의식'은 등불과도 같다. 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는 숨결의 불꽃이 '의식'이다.경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첫 야간 비행을 하던 생텍쥐페리는 신기했던 그날 밤의 인상을 토로한 바 있다. "들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등불만이 별 모양 깜박이던 캄캄한 밤. 그 하나하나가, 이 어둠의 대양 속에도 인간의 의식이라는 기적이 깃들이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고. 깜깜한 밤, 지상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생각을 품고서 부끄럽고 나약한 듯 은총으로 반짝이던 인간의 '의식'임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의식'은 인간을 창출해가는 '지성'의 밑천이다. 고종의 진료를 맡아보던 독일인 의사 분쉬는 1901년 서울에 와서 4년 남짓 고종과 민간인들에게 의료봉사를 하였다. 그가 쓴 일기 1903년 9월 26일 자에는 '수치스러운 마음을 포기한다면 이상(理想)을 악마에게 던져주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 '악령'을 읽고 난 뒤의 소감인 듯하다. 여기서 '수치스러운 마음'이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맹자'에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라 보았다.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수오지심은 '정의의 단서[義之端]'이다. 수치심이 없는 철면피의 인간은 정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부끄러울 '치'(恥) 자는 낯부끄러움이 귀까지 벌겋게 번진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이런 마음씨의 인간이 있기는 할까.카프카는 글을 쓸 수 없는 이유가 자신의 착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10년경의 일기에서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은 나의 근원에서 떠오르지 않고 내 마음의 중간쯤 어디선가에서 비로소 떠오른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삶의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글을 쓰고파 '어중간'을 싫어했다. 반면에 니체는 '처세의 지혜'를 말하면서, "평지에 머물지 말라! 너무 높이 오르지도 말라!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중간 높이에서니까"라고 하였다.삶의 지혜는 '어중간'이 좋다는 뜻이다. 맞다. 너무 높이 오르면 '농단'(壟斷)하게 된다. 농단은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斷] 언덕[壟]을 말한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하고 싶어진다. 그곳에는 반드시 '꾼'(전문가)들이 있다. 근대철학의 출발이 된 데카르트는 각 영역의 '전문가'를 타인의 정신적인 불행으로 벌어먹고 살아가는 '허위의 자격'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여러 영역의 이론과 전문연구에 대해 "사기당하지 않기 위하여, 그것이 어떤 점에서 타당한가를 인식하고 검토하려 하였다"며 경계했다.권력은 결국 모든 정보와 기술을 장악하기에, 거대한 '허위' 즉 '주작=사기의 자격'을 손에 쥐고 만다. 이때 찰나생멸의 호흡, 그 무상함을 쳐다보며, 어중간의 지혜를 살피는 여유를 권해본다.

2020-06-03 16:30:00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부인사와 초조대장경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부인사와 초조대장경

대구 부인사는 팔공산 남쪽 중턱에 위치한 사찰로서 '符仁寺' 또는 '夫人寺'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부인사의 창건 시기는 성덕왕 재위 기간으로 추정된다. 성덕왕이 712년에 김유신의 업적을 기리며 지소(김춘추의 셋째 딸이자 김유신의 아내)를 '부인'으로 책봉하고 해마다 벼 1천 석을 하사하였는데, 나중에 지소부인이 비구니가 되자, 성덕왕이 지소부인을 위해 팔공산 자락에 부인사를 건립했다는 주장이 최근에 제기되었다. 한편, 현재까지 '부인사'라고 적힌 문헌 자료 중에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옥룡사동진대사보운탑비"의 내용을 보면, 도선국사의 제자인 동진대사 경보(慶甫, 868~947)가 부인사에 출가하여 불경을 깨우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부인사는 초조대장경을 봉안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현재까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대장경'(大藏經)은 부처님이 제자와 중생들을 교화시켰던 설법 등을 집대성한 불교 경전이다. 초조대장경은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의 전신으로, 팔만대장경(제작 기간 1236~1251)이 호국 불교의 마음을 담아 몽골군이 퇴각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던 것처럼, 거란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써 극복하고자 1011년경에 현화사에서 조판하기 시작하여 1087년에 마무리되었다.여기서 잠시 고려와 거란과의 전쟁을 살펴보면, 993년에 소손녕의 거란군 80만 명이 고려를 침략하였을 때, 서희가 서경 이북의 땅을 할양하자는 주장에 반발하여 소손녕과 외교 담판으로 거란에 조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강동 6주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이후 강조의 정변으로 대량원군(大良元君)이 8대 현종으로 즉위하자, 1010년에 거란 성종은 이를 구실로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서경을 무너뜨리지 못한 채 진군하여 개경을 함락하였다. 이에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로 거란에게 항복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나주로 피신하였다. 현종이 몽진하는 과정에서 하공진(河拱辰)을 강화협상 대표로 파견하자, 하공진은 현종의 친조(親朝)를 조건으로 거란군을 철병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1018년에 소배압의 10만 거란군이 고려를 재차 침입하자, 강감찬과 강민첨은 흥화진 동쪽에서 가둔 물을 터뜨려 매복기습으로 적을 궤멸시켰고, 끝내 성과 없이 철군하는 소배압의 거란군마저 귀주대첩에서 크게 격파하였다.이후 1216년에 거란족의 일부가 몽골군과 금군에 밀려 고려 영토를 침범하자, 고려 정부는 고려군을 파병하여 거란군을 패퇴시키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몽골군이 거란족을 평정한다는 명분으로 고려 영내로 넘어와 고려군과 함께 강동성 전투에서 거란족을 진압하였다(1219). 곧바로 몽골의 합진·찰라와 고려의 조충·김취려 사이에서 형제 맹약이 체결되었다. 그 기간 동안 거란족은 고려 중부 지역까지 휩쓸면서 묘향산의 보현사를 불지르고 순릉(혜종왕릉)을 도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거란족이 개경까지 위협하던 상황에서 고려 정부는 현화사에 보관 중이던 초조대장경을 부인사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부인사가 속해 있는 팔공산은 '중악'(中嶽) 또는 '부악'(父嶽)으로 일컬어진 영험한 지역으로 인식되었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용이한 요새였다.그러나 1232년 최우가 강화도로 천도하자, 살례탑의 몽골군이 고려를 거듭 쳐들어와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촉구하였다. 살례탑의 몽골군이 북계에 머무는 동안, 그 일부는 내륙 깊숙이 침투하여 노략질을 서슴지 않았다. "고려사"(고종세가)에 '현종 때의 판본이 임진 몽병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라는 기사와 "동국이상국집"(대장각판군신기고문)에 '부인사 소장의 대장경 판목도 또한 불태워져 남아 나지 못했던 것이다'라는 기록을 종합하면, 몽골의 2차 침입 당시 부인사의 초조대장경이 살례탑의 몽골군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할 것이다.현재까지 3차례에 걸쳐 진행된 부인사 발굴조사를 토대로, 앞으로 부인사의 원형을 회복하고 현존하는 유물을 보존함과 동시에 '대장경'이라는 우수한 문화재를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2020-06-03 16:30:00

[신세돈의 새론새평] 거위 털 뽑히듯 늘어날 세금 부담

[신세돈의 새론새평] 거위 털 뽑히듯 늘어날 세금 부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시작부터 일자리 정부라고 요란했지만 60세 이하 취업자 수는 지난 3년 사이에 2천245만3천 명에서 2천162만3천 명으로 83만 명 줄었다. 주 36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도 712만7천 명 줄었고 한 주 35시간 이하 일하는 사람만 574만8천 명 늘었다. 주당 근로시간도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43시간 20분에서 지난 4월 36시간 6분으로 7시간 14분, 17%가량 줄었다. 근로시간이 줄면 곧바로 소득이 줄어든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가장 못사는 최하위 20% 국민의 근로소득은 12.4%나 줄었고 차하위 20% 국민의 근로소득도 2.9%밖에 늘지 못했다. 반면에 세금이나 각종 연금, 사회보험료는 급격히 늘었다. 국민이 쓸 수 있는 소득, 즉 가처분소득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문재인 정부는 쪼그라드는 소득을 만회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초기 3년 동안 정부가 주로 지급하는 돈(이를 이전소득이라 함)은 가계당 5만원 정도 증가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3년 동안에는 그 네 배에 가까운 21만원이 늘었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의 재정지출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2017년 400조5천억원이던 예산지출이 2020년에 512조3천억원으로 불었다. 3년 동안 연평균 8%, 금액으로 111조8천억원 불어났다. 금년에는 코로나라는 복병까지 덮쳐서 1차 추경으로 11조7천억원, 2차 추경으로 9조1천억원, 그리고 3차 추경에서 최소한 30조원이 늘어난다고 봤을 때 금년에만 50조원 이상 새로운 재정 부담이 생겼다. 재정지출이 1조원 늘어나는 동안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정도를 보면 이명박 정부가 7천482원, 박근혜 정부가 8천176원인 데 반해 문재인 정부는 3천784원밖에 되지 않는다. 재정지출의 소득 증대 효과가 지난 정부의 절반도 되지 못한다. 최저임금이네 52시간이네 하면서 경제와 일자리와 근로시간을 다 줄여 놓고서 쪼그라드는 소득을 만회하기 위해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재정을 투입해서 메우는 꼴이 된 것이다.세금이라도 빵빵하게 들어온다면야 이런 졸속을 몇 년 더 끌고 갈 수 있겠지만 당장 금년부터 세수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금년 1~3월 국세 수입은 작년에 비해 8조5천억원이나 감소했다. 반면에 총지출은 1~3월 동안 26조5천억원이나 증가하였다. 세수는 줄고 지출은 늘어나 관리재정수지는 55조1천억원 적자를 냈다. 수출·내수가 모두 부진하니 세수가 더 나빠질 것이고 지출 또한 1분기보다 훨씬 확대될 것이 분명하니 관리재정적자 규모는 100조원 혹은 그 이상으로 팽창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재정적자를 메우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올리거나. 그런데 국채는 2019년에만 102조원 발행했고 금년 들어서도 4월까지 이미 24조원 가까이 발행했다. 금년 관리재정적자 100조원만큼 새로운 국채 발행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만기가 돌아온 기존 채권의 상환용 채권, 즉 차환용 발행 규모도 50조원이 넘는다. 코로나 3차 추경이 30조원보다 더 커진다면 금년 국채 발행 규모는 200조원이 넘어설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국채 발행 시장에 과잉 공급으로 심각한 불안정이 발생한다. 신규 발행은 물론 기존에 발행된 국채의 유통 시장 가격도 덩달아 떨어질 것이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다른 채권의 가격도 덩달아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국채나 공채의 발행 비용이 커지고 국공채 판매도 곤란하게 된다. 정부도 이미 3월에 이런 불안 요인을 지적했었다. 결국 남는 것은 증세다. 법인세나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경기에 역작용을 할 것이므로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올리기 쉽지 않다. 결국 남는 것은 근로소득세밖에 없다. 현재 약 절반가량인 면세자 범위를 줄이면 된다. 그렇지만 내년부터 적용하면 2022년 대선에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므로 그리 못 할 것이다. 결국 소리 없이 여기저기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범위를 줄일 것이다. 큰 고통 없이 거위 털 뽑듯이 세금이 늘어날 것이다.

2020-06-03 15:02:40

[매일춘추] 검은 꽃

[매일춘추] 검은 꽃

국어사전에서 인종(人種)을 검색해보면 '사람의 씨'라는 뜻과 함께 지역과 신체적 특성에 따라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이 대표적이라고 나온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 경우도 있다. 백인과 유색인종이 그것이다. 이 또한 뭔가 석연치 않다. 인종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누가, 언제부터 이렇게 구분해놓았을까?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가치 없는 일에 유례를 찾아볼 생각도 없지만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인종을 저리 교육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유색인종의 나라들조차 이렇게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람을 피부색으로 구분 짓다니 어이없는 일 아닌가. 인종을 사전에서 지우고 인류만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5월 26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강압 체포 행위로 흑인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위조 수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비무장의 그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만류했지만 경찰이 이를 듣지 않자,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SNS에 공개했다. 영상에는 경찰에게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고통스럽게 호소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그의 목을 무릎으로 찍어 누른 채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다른 경찰은 가해 경찰의 진압과정을 방치한 채 오히려 행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소름끼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은 당시 모두 백인이었다.5월 30일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공군기지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곤'을 국제우주정거장을 향해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미국은 다시 세계의 리더가 되었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연일 우주여행의 시대가 열렸다고 격앙된 앵커의 목소리가 방송되는 걸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첨단 과학의 발달이 현실이라면 인종 차별도 현실이다. 이에 대한 반성이 먼저다. 미국 내 인종 차별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아직도 남북전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 남성 사망 사건으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 참여자들을 '폭도와 약탈자'로 규정하고 강경하게 진압할 것임을 시사했다. 우리의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는 반성 대신 더욱 강한 폭력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져갈 가능성도 있는 데다 이미 한인 점포들의 피해도 발생한 상황이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으려면 강경진압에 대한 대국민 사과가 먼저다. 피부색이 어둡건 밝건, 우리의 피는 모두 붉다. 설사 흑인 남성이 범인이었을지라도 비무장 상태의 시민을 진압과정에서 사망케 한 사건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 사망한 그는 검은 '꽃'으로도 다시 피고 싶지 않을 것이다.김사윤 시인

2020-06-03 14:50:51

[기고]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할 때다

[기고]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할 때다

"앞으로 세상은 B.C.(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런 말이 나올 만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참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올해 초 중국에만 국한되었던 코로나19가 한국을 넘어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 그 결과 문턱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던 지구촌이 국가마다 출입국을 제한해 인적·물적 교류가 멈춰버린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지난해 다보스포럼 주제가 '세계화 4.0'이고, '공유경제'가 세계적인 화두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에어비엔비와 우버 등 공유경제의 대표적 기업들이 줄줄이 존폐 기로에 내몰린 것을 우리는 현재 지켜보고 있다.세계가 멈춰 서면서 해외 진출 및 수출 기업이 타격을 입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내수기업들마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초유의 경제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정부와 정책 금융기관에서 소상공인과 기업을 위한 정책자금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대구시 역시 '코로나19 극복 범시민 대책위원회'와 '비상경제 대책회의'를 개최하며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방역 수칙을 마련하고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했다.그 결과 대구시 경영안정자금 1조원과 1천억원의 기업보증 지원, 제조업체 수도요금 전액 감면 등이 결정됐고, 상대적으로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중견 기업을 위한 금융지원 협의체도 구성을 앞두고 있다.정부·지자체, 금융기관, 기업 등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역할을 다 하고 있기에 대구는 코로나 극복에 한층 더 다가서고 있다.그런데 기업에는 생존 후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코로나 이후, 우리 기업이 겪게 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다.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세계화의 취약성이 드러난 만큼 생산기지의 '리쇼어링' 등 기업이 원가보다는 리스크나 회복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또한,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을 모색하면서 정치·경제적 보호주의가 심화되고,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등 전 세계적인 재구조화가 중장기에 걸쳐 다방면에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국제 정세가 종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앞을 내다보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 같다.하지만 대한민국은 '드라이빙 스루 선별진료소'라는 기발한 생각을 제시하고, 뛰어난 기술력으로 '진단키트'를 수출하며, 사재기와 같은 큰 국가적 혼란 없이 '성공적인 방역'을 이뤄 전 세계의 극찬을 받고 있는 '일류국가'다.대한민국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안정된 기초 산업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생각과 뛰어난 기술, 올바른 방향만 제시할 수 있다면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지금 우리 모두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서 있다. 두렵지만 우리 지역은 국채보상운동과 2·28 민주운동을 이끌었던 위기 극복의 DNA가 있는 만큼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다면 충분히 잘 이겨낼 것으로 생각한다.부디 서로를 배려하는 가운데 허리띠를 졸라매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창의적 사고와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시기에 대비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하는 주역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2020-06-03 14:11:35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스티브 잡스는 왜 문법을 틀렸을까?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스티브 잡스는 왜 문법을 틀렸을까?

'Think different'.역사상 가장 성공한 브랜드 슬로건 중의 하나이다. '다르게 생각하라!'라는 애플의 기업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카피이다. 사실 이 카피의 문법은 잘 못 되었다. Think는 '생각하다'라는 뜻의 동사이다. 동사가 문장 맨 앞에 오면 '생각하라'라는 명령문이 된다. 그럼 이 동사를 꾸밀 수 있는 단어는 부사가 된다. different라는 형용사로 think라는 동사를 꾸밀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이 문장을 수정하면 think differently가 된다.왜 애플은 문법이 틀린 슬로건을 썼을까? 잡스는 슬로건까지도 다르게 생각했다. 꼭 '문법을 지켜야 한다'라는 생각조차 다르게 생각했다. 애플의 기업 정신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사람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에 반응한다. 우리는 늘 틀린 것을 바로잡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수능에는 항상 문법에 틀린 문장을 찾는 문제가 나온다. 토익에도 빈칸에 알맞은 품사를 찾는 문제가 나온다. 정답 찾기가 중요한 교육을 받아왔다. 그런데 문법에 틀린 문장을 보면 우리는 반응한다. 무언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 문법적인 노이즈가 기억시키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이런 기법을 도시 브랜드 광고를 만들 때 적용한 적이 있다. 당시 대구는 전기차 지원 사업을 통해 거리에서 전기차를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매연을 뿜지 않는 전기차로 인해 자연스럽게 대구의 공기는 좋아졌다. 대구시에서는 그런 점을 광고해주길 바랬다.사람들은 어떤 글을 볼 때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 모호한 단어보다는 숫자나 색깔 같은 구체적인 것을 선호한다.예를 들어, 푸르스름한 색 (X) 녹색 (O)상상하기 힘든 푸르스름한 색보다는 상상할 수 있는 녹색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또한, 친환경을 대표하는 명백한 색감이어서 녹색을 가져왔다. 전기차로 인해 공기가 좋아졌다는 것을 녹색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한 것이다. 그리고 녹색이라는 단어에 '숨쉬다'라는 단어를 가져왔다.'녹색을 숨쉬다. 대구광역시'사실 '색깔을 숨쉬다'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맑은 공기를 숨쉬다'가 맞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문장은 전혀 주지 못한다. '대구는 공기가 맑아요!'라는 카피는 전혀 심장을 뛰게 만들지 못한다.대신 '녹색을 숨쉬다'라고 쓰면 무언가 이상하다. '녹색을'이라는 단어와 '숨쉬다'라는 단어가 노이즈를 일으킨 것이다.기억에 남는 카피를 쓰고 싶다면 이렇게 노이즈를 일으켜라.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써라. 편안한 카피는 편안하게 기억에서 사라진다.당연히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드라마가 새드 엔딩으로 끝나면 기억에 남는다.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뇌와 결말이 노이즈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광고 카피를 쓸 때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노이즈를 줘라. 소비자의 머릿속에 스티커처럼 붙어 기억될 것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6-03 13:02:10

[종교칼럼]민들레와 나

[종교칼럼]민들레와 나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를 발견한 이후 자연스럽게 그것이 자라는 모습을 날마다 관찰하게 되었다. 어떤 녀석은 잎을 여러 장 밀어 올려놓았고, 다른 녀석은 꽃대부터 위로 올려놓고는 그 곁에 가느다란 잎 두 장을 겨우 밀어 올리는 중에 있다. 어떤 녀석은 잎과 꽃대를 동시에 올려놓고는 한숨 쉬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지난날 경험한 민들레의 모습은 대단히 다양하다. 보통의 땅에서 보통으로 자라서 꽃을 피운 녀석들을 본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주변 환경이 좋지 않은 탓으로 땅에 딱 붙은 모습이지만 기어코 살아내서 꽃을 피우고는 이내 씨앗들을 바람 따라 멀리 날려 보내고 주저앉은 녀석들도 많이 보았다. 오스트리아 알프스산 중턱 넓은 목장에서 엄청난 길이와 부피로 자란 녀석들을 보고는 "민들레가 이렇게 클 수도 있구나!"라며 놀란 적도 있다.하지만 그 안에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올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을 짐작하게 한 민들레를 본 적이 없었기에 요즘 관찰하고 있는 이 녀석들은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철없던 청소년기와 젊었던 날에는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큰 의욕을 내며 열심히 달려온 과정에서 성취한 것은 별로 없고 쓰라린 실패와 상처들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남아 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종합하여 갖게 되는 결론은 인간은 피조물이지 결코 창조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없는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있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응용하여 삶을 오감에 와 닿은 수준을 넘어서 좀 더 깊고 좀 더 편리하게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존재인 것이다.민들레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조물이라는 것은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색할 만큼 확실한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유약한 이 민들레가 우리가 곡괭이로도 파내기 힘든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가 그것을 뚫겠다는 의지로 한다면 해내지 못할 것이다. 하여간 민들레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서 지금 자라고 있고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무렵에는 꽃을 피운 상태일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씨앗을 바람결에 온 사방으로 날려 보내는 중일 수도 있다.그렇다면 민들레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우리 안에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것보다 훨씬 더 알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들어 있을 것이 틀림없겠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조작하여 성취해내려 한다면 아무것도 옳게 해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민들레처럼 순리에 따른다면 분명히 우리 안에 든 그 엄청나고 신비한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우리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받은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이 명백한 차이를 설명할 길이 없다.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육체적 죽음을 뚫고 나아가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어떤 것이 틀림없을 거야. 민들레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 살아낸다면 우리는 죽음을 뚫고 올라가 살아낼 거야. 하느님께서 민들레에게 그 능력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는 이 능력을 주셨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희망을 가져본다. 이 희망은 오늘도 창조주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분이 주신 나와 이웃의 생명, 지구 표면의 모든 생명들을 사랑할 이유를 갖게 하고 사랑할 힘을 내게 한다.나아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삶을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도 살아가게 한다.

2020-06-03 09:30:03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잘 먹어서 위험한 질병. 담낭질환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잘 먹어서 위험한 질병. 담낭질환

또야(포메라니언·10살)가 애잔한 눈빛으로 힘없이 내원했다. 평상시 활달하고 항상 웃는 표정의 또야였는데 병원에 온 당일은 한 없이 슬퍼보였다. "10년 평생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예요."보호자는 또야가 잘못먹어 탈이 났나 의심했지만 검사 결과는 의외로 심각했다. 담즙성 복막염이었다. 담낭점액종(Gallblader mucocele)이 만성화되면서 담낭벽이 두터워지고 변성돼 담즙이 누출되면서 주변 간조직을 손상시키며 담즙성 복막염이 진행되고 있었다.또야는 수술 후 입원기간 동안 저혈압관리, 집중 산소공급, 항생제 처방, 전해질 교정, 통증관리가 이루어졌다. 8일 간의 집중 입원 치료를 받은 후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 당일 보호자 품에 안기며 해맑게 웃는 또야를 잠시 떼어두고, 보호자분들에게 가정관리와 앞으로의 예후에 대하여 진지하게 설명을 드려야했다.또야는 앞으로 많이 먹어선 곤란하다. 탄수화물, 당도가 있는 과일, 지방이 많은 음식, 개껌과 간식은 피하여야 한다. 배변의 상태를 매일 관찰하셔서 소화상태를 체크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소화제를 처방받아야 한다. 체중을 줄여야 하고 수분섭취를 늘려 맑은 소변을 보게해야 한다.담낭은 간에 위치하며 지방을 소화시키는 소화액(담즙)을 저장했다가 필요시 십이지장으로 담즙 분비를 조절하며 지방 소화를 도와주는 기능을 맡고 있다. 담즙은 소량이라도 복강으로 누출되면 주변 장기를 녹이고 심각한 담즙성 복막염을 유발하기 때문에 담낭 벽은 매우 치밀하고 탄력있는 조직으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고콜레스테롤혈증, 고지혈증, 과영양화 등으로 답즙이 농축되고 침전화되어 담낭슬러지(찌거기)가 형성되면 이것이 굳어져 담석으로 발전하거나, 일부가 십이지장으로 나가는 도관을 막거나, 담낭벽이 변성되고 두터위지는 담낭점액종으로 악화될 수 있다. 초기 증상으로는 소화불량, 구토, 복통, 설사 등이 자주 관찰된다. 보호자가 구토와 설사 증상을 문의하며 내원하지만 이미 담낭질환이 악화되어 췌장염과 복막염이 진행된 경우가 자주 있다.동물병원에서는 혈액검사, Xray, 초음파,CT 검사 등을 통해 감별 진단이 이루어지며 담낭파열, 담낭점액종, 담즙 누출로 인한 복막염이 확인될 경우 담낭적출과 복강 세척을 위한 응급수술이 필요하다. 담즙이 지방을 소화시키는 소화액이기 때문에 복강으로 누출될 경우 단시간에 광범위한 복강내 조직들을 괴사시키기 때문에 수술 후에도 회복이 힘든 경우들이 많다.사람의 경우는 담석증이나 담즙성 복막염으로 인한 통증을 출산의 고통에 비유한다. 그 만큼 통증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들은 통증을 호소하기 보다는 위축되어 몸을 웅크리며 숨으려는 경향이 많다. 보호자가 조기에 그 심각성을 인지 못하는 이유다.담낭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식이에 대한 전문가의 상담이 중요하다.간식과 개껌, 과일, 탄수화물(고구마, 밥, 빵)을 자주 주는 것은 반려견의 영양과잉을 초래하는 주 원인이다.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만 활동량이 줄어드는 2살 부터 담낭슬러지 형성이 시작될 수 있다. 사람의 40대에 해당되는 6살 정도의 반려견에서도 건강검진을 통해 담낭슬러지가 발견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활동에너지가 줄어든 만큼 사료만 먹어도 체증이 증가하는 경향과 비례한다.이미 형성된 담낭슬러지를 약으로 배출시키기는 쉽지 않다. 검진을 통해 담낭슬러지, 담낭확장, 단도관염, 담낭점액종이 진단되었다면 식사는 감량시키고 물섭취는 증가시키는 것이 가장 유효한 관리법이다. 사람의 혈전 환자나 고지혈증 환자들이 식이관리를 중요 시 여기는 이유와 같다.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마음을 가지고 3~6개월 간격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하지만 언제라도 담낭 내 슬러지가 담도관을 막거나, 담낭파열과 담즙누출로 인한 담즙성 복막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의를 받은 반려견은 식욕부진, 구토, 소화불량 증상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한 또야의 경우 처럼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살찐 반려견, 고기나 간식을 편식하는 반려견, 구토가 자주 관찰되는 반려견, 헛배가 부르고 방귀를 자주 끼는 반려견일 수록 주의를 요한다. 또 6세 이상의 반려견은 1년마다 정기검진을 통해 담낭질환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사람이나 동물이나 많이 먹어서 생기는 질병이 많아졌다. 식사는 가난하게 물은 충분히 섭취시키는 식단이 반려견 건강에 도움되는 시대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6-02 18:30:00

[취재현장]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푸른 산과 들을 지키자

[취재현장]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푸른 산과 들을 지키자

대한민국 푸른 산, 푸른 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푸른 산 푸른 들'이라는 동요가 전래(傳來) 동요가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 년간 태양광 발전시설이 무서운 속도로 이 땅의 산과 들을 초잠식지(稍蠶食之·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점차 조금씩 침략하여 먹어 들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초잠식지란 사자성어 그대로다. 태양광 발전시설이 지역의 산과 들을 조금씩 침략하고 있다. 기자가 나고 자란 경북 예천 고평들에도 태양광 발전시설 축사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매일신문 5월 26일 자 8면)는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신재생에너지라는 명분을 방패 삼은 태양광 발전시설은 먼저 산을 잠식했었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에 따른 산지 훼손 면적은 2016년 528㏊에서 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1천434㏊, 2018년 2천443㏊로 크게 늘었다. 축구장 6천40여 개 규모다.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로 인한 산지 훼손 규모가 수치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 허가 기준을 강화했다. 경사도는 당초 25도 이하에서 15도 이하로, 산지 전용 영구허가는 일시허가로 변경됐다. 최대 20년이 지나면 산지를 원상복구하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정부가 태양광 난개발 우려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내놓은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사업자들은 비상하게도 대안을 찾아냈다. 산지 개발에 제동이 걸리자 태양광 발전시설의 인기는 건축물로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기존 건축물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갖출 경우 전력 거래 시 가중치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사업자들의 관심은 더욱 집중됐다.그 결과 수십 수백 년간 농지로 이용되던 들(野)까지 태양광 발전시설이 침식하기 시작했다. 절대농지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설 수 없지만 농지 내 준공된 건축물만 있다면 그 위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산지보다 사고에 안전하면서 대규모로 개발이 가능하고 전력 거래 가중치까지 적용되다 보니 농지에 축사, 재배사 등 영농을 목적으로 한 건축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건축물 지붕 위에는 어김없이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고 있다.단순히 보면 농업용 건축물 지붕 위에 조성되는 태양광 발전시설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농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듯도 싶다.그러나 이 단순한 생각은 태양광 발전시설 축사가 들어선 농지를 직접 둘러본 뒤 바뀌었다. 지난달 찾은 예천 고평들 축사 대부분은 태양광 시설을 갖춰 완공됐거나 건립 중이었으나 소를 사육할 만한 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육시설이 갖춰진 축사도 있었지만 큰 규모가 민망할 정도로 소의 수가 적었다. 소를 사육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를 위해 마련된 뼈대 같았다.마을 주민들은 "고평들에 축사 허가를 낸 사람들은 모두 외지인이고 태양광을 목적으로 왔다"면서 "정작 자신들은 소도 직접 키울 생각이 없는지 축사를 임차할 사람만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속을 들여다보면 이 사업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영농을 목적으로 건축 허가를 받지만 실제 목적은 태양광 개발에 있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을 방패 삼은 태양광 발전시설이 영농 발전이라는 위장막까지 덮어쓰고 산지에서 농지까지 넘어와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탈원전 정책이 빛을 보기 위해선 태양광 난개발 방지책도 내놔야 한다. 이대로는 푸른 산과 들의 훼손을 막을 수 없다.

2020-06-02 15:03:31

[매일춘추] 1974-1979 대구현대미술제

[매일춘추] 1974-1979 대구현대미술제

대구현대미술제는 1974년을 시작으로 1979년까지 총 5번을 개최하였다. 첫번째와 두번째에는 각 7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였는데, 1977년 3회에 들어 196명의 전국 각지의 작가들이 참가하면서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3회 이후 각 회별 특징을 보여주는데, 1978년 3회에서는 강정 낙동강변에서 행위예술을 보여주었고, 1979년 4회 전시에서는 비디오, 필름 등 영상매체 부문을 만들었고, 마지막 전시인 1979년 제5회 현대미술제는 한국 50명, 일본의 작가 15명이 참여하여 이후 대구와 일본 예술가들의 교류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활동의 의의에 대해 '한국미술이 한국인 특유의 체질로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주목받았고, 대구의 현주소와 '경향 각지의 여러 참신한 작가가 참여해 기량 있는 작가의 발굴'에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였다. 특히 현대미술제는 대구 외에도 1975년 서울과 1976년 광주, 부산, 1977년 강원(춘천), 청주, 1978년 전북(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어 1970년대 지방 현대미술의 확산과 문화지형 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이러한 대구현대미술제는 기획 단계에서 새로운 예술언어를 수용하고 확장하기 위해 일정 부분 매체를 제시하고 작가들을 이끄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미술제에서 형식 또는 매체를 소개하는 데는 집단으로 출현하는 양상을 띤다. 그 예로 야외에서 펼쳐진 행위예술과 비디오 아트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행위예술은 1960년대 해프닝이나 이벤트와도 형식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자연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 자연을 하나의 재료로 장소성과 시간성을 담았다는 점이다. 행위예술은 1975년에 이미 대구의 미술가들 사이에서 '해프닝=야외전'이라는 이름으로 낙동강변에서 시도된 적이 있었고, 1970년대 초 이강소는 자신의 개인전에 낙동강변의 갈대를 가져다 전시장에 설치하기도 하는 등 낙동강변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장소이다. 1977년 대구현대미술제에 진행된 행위예술 역시 강정 일대 낙동강 백사장에서 진행되었다. 박현기는 횟가루로 포플러 나무의 그림자를 만들었고, 이강소는 모래바닥에 구두와 넥타이, 옷 등을 차례로 벗어놓고 모래 무덤을 만들어 올라앉아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연출했다. 행위예술은 대구현대미술제의 특징적인 행사로 1978년에는 가창 냉천 계곡에서, 1979년에는 다시 강정에서 열렸다.작가들은 야외에서 펼친 행위에 대해 구체적인 의도나 배경을 설명하기보다는 상황을 노출하고 그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관람자에게 남겼다. 당황해하는 관람자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등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선문답과 같은 이러한 행위는 자연에서 이루어짐으로써 그 의미를 선명하게 남길 수 있었다. 물과 숲을 찾아 풍류를 즐기던 선인들이 자연을 통해 얻었던 자유와 치유, 예술적 감흥의 순간들처럼 그들은 인간이 속한 세계의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 드러나는 자연 속에서 예술적인 생각들을 자유롭게 노출시켰다. 그들은 자연을 통해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한 선명한 인식과 해석을 제시하였다.

2020-06-02 14:22:13

[경제칼럼] 꿈은 이루어진다.

[경제칼럼] 꿈은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 꿈꾸는 것을 좋아했다. 동도초등학교 1학년으로 기억되는 시절, 지금은 없어진 수성극장에서 학교 동급생 전체가 주제가를 부르며 본 '로보트 태권 V'를 잊지 못한다. 현재 아이들은 어떤 영화를 보며 꿈을 꾸고 있을지 궁금하다.미국의 괴짜이고 엉뚱한 혁신가이자 천재라는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선 '크루 드래건' 발사에 성공했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킹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과거 꿈꾸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우주 개발과 도전을 국가가 아닌 민간 기업 주도로 이루어 낸 것이기에 더욱 놀랍다.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 낸 성공일까. 그렇지 않다. 아무런 기반 없이 이루어 낸 성공이 아닐 것이다. 엘론 머스크는 이메일을 활용한 전자결제 시스템 페이팔(PayPal)로 청년 시절에 이미 크게 성공한 사업가다. 전기자동차 테슬라 모터스 CEO, 태양광 발전 회사 솔라시티를 설립했고, 영화 '아이언 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무엇보다 그는 인류의 대규모 화성 이주를 계획하고 있으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화성에서 인류가 사용할 태양 에너지 연구와 이동 수단으로 전기자동차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그가 태양, 전기 관련 회사를 설립하고 연구하는 목적이 인류의 화성 이주에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예상하기도 한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고단함으로 심신이 약해지고 있는 시기에 그의 미래와 우주를 향한 꿈과 결실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이제 우리 현실을 보자. 우리는 어떠한가. 코로나19 위기로 우리나라 5월 수출은 23.7% 감소했고 잠재적 실업자까지 고려한 4월 청년 실제 실업률은 약 26%를 기록하고 있다.위기 속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어떤 비전과 영감을 가지고 있는가. 국가와 구성원들에게, 후손들에게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미래 청사진을 위해 실제로 행하고 있는 구상과 영감이 있는가 되물어 봐야 한다.지난달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한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3대 프로젝트로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를 제안하며 향후 10대 중점 과제를 추진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한국판 뉴딜의 궁극적 목적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일 것이다.하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위기 극복에 집중돼 국가 주도적이라는 부분이다. 구체적 내용인 데이터 활용, 5G 네트워크, AI 서비스, 블록체인, SOC 디지털화 등 각론이 구체적이지 않고, 원론처럼 추상적이고 망라적이다. 결국 정부의 역할과 간섭이 강조될 가능성이 높은 정책 구조이다.경영의 달인으로 불린 미국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생전에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권한을 배분하라'고 제안했다. 어떤 조직에 꿈과 비전을 주지 않고서는 전체가 공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리더는 과감하게 권한을 넘기고 현장과 공감하고 힘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현재 위기를 이겨 낼 역량은 과거와 비교해 정부보다는 기업과 민간에 있다. 정부는 민간과 기업에 권한을 배분하고 이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민간이 스스로 위기를 이겨 내고 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감하게 권한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민간 기업 주도로 우주선을 발사하고 대규모 화성 이주를 꿈꾸는 시기이다.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우주 개발도 가능한 시기가 됐다. 우주 개발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개발과 발전을 이제는 민간이 주도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한국판 뉴딜이지만 명칭에서부터 과거 국가 주도 뉴딜과 연결돼 있어 보인다.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미래를 향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뒤돌아보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앞을 바라봐야 한다. 새로운 신산업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국가가 아닌 민간이 위기 속 변화를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들의 꿈이 이루어진다.

2020-06-02 12:35:19

[박창원의 기록여행]대구역 클라쓰

[박창원의 기록여행]대구역 클라쓰

'조선의 상도 대구를 중심으로 매일 오르고 내리는 승객의 인수는 아직 완전한 통계는 얻기 어려운 형편이나 매일과 같이 대기실은 물론이고 승객의 홍수가 주야 없이 넓은 대구역 광장으로 장사진이 넘치고 있는 것을 미루어~ 5월 31일 현재로 지난 5월 1개월 총수입고는 412만9천600원이었는데 매일 평균 수입액은 12만원 정도라고 하며~.'(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6월 4일 자)대구역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대구역전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람들이 모여드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부영버스의 출발지이자 종점이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버스는 역전을 중심으로 대봉정이나 동성정, 대구부청,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을 오갔다. 해방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역전에 시장이 서는 데다 전재동포, 노숙인 등이 몰려 해가 뜨자마자 시끌벅적했다. 게다가 광복절 기념식, 노동 집회 같은 야외 행사도 자주 열렸다.무엇보다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늘면서 대구역은 갈수록 활기를 띠었다. 해방 이듬해 5월에는 하루 동안 대구역을 이용한 승객의 차푯값 수입이 15만원을 넘나들었다. 평균으로 따져도 매일 12만원의 수입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서울을 오가는 승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전라도 방면으로 오가는 승객도 늘었다. 쌀이나 식료품 같은 생활필수품의 물자 교류가 증가한 때문이었다. 또 해산물을 받아 파는 소상인들이 늘면서 동해안 차표도 많이 판매되었다.당시 열차는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속도도 빨랐지만 버스와는 승차 환경이 달랐던 것이다. '안에서 대소변을 볼 수 있으며 의자에 앉아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는 기차의 신문 광고는 경인선이 개통될 때의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유효했다. 그때는 승객의 칸을 나누어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와 여자도 구분해서 태웠다. 객차의 등급도 나눴다. 이 같은 등급은 해방 이후에도 쭉 이어졌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요금이 가장 싼 3등 칸 열차를 이용했다. 승객이 많은 3등 칸 열차가 자주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해마다 오르는 기차 요금은 3등 칸 열차를 이용하더라도 시민들에게는 부담이었다. 1946년 하반기 대구에서 서울까지의 3등 칸 열차 운임은 1년 만에 두 배가 오른 132원이었다. 부산에서 서울은 182원이 되었다. 해방 직후 40원 하던 남자 고무신 한 켤레가 이듬해 200원을 넘어설 정도로 자고 나면 물가가 치솟는 상황이었다. 열차 운임도 예외는 아니었다.인파로 북적이던 대구역은 1946년 6월 중순에 호열자로 인해 문을 닫기도 했다. 호열자 환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대합실이 폐쇄됐다. 또 열차 운행이 중지되어 아예 승객 이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역의 위상은 곧바로 회복되어 활기를 띠었다. 지금이야 동대구역에 배턴을 넘겼지만 말이다.그 예전에는 대구역을 보면 대구가 잘나가는지 그렇지 않은지 가늠할 수 있었다. '대구역 클라쓰'는 대구의 활력으로 비쳤다. 그런 날이 다시 올 수도 있으려나.

2020-06-01 17:30:00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서부전선의 참호예술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서부전선의 참호예술

서양 중세의 전투가 공고한 성벽을 뚫는 공성전(攻城戰)이었다면 18세기 이후에는 넓게 펼쳐진 평원에서 양 진영의 대규모 병력이 마주하는 총력전이었다. 포격으로 기선을 제압한 후, 장총과 칼로 무장한 보병이 돌격하여 적진을 점령하는 방식이다. 칼을 든 지휘관이 앞장서서 돌격을 외치는 이러한 나폴레옹식 전투 장면은 기관총의 도입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 발 발사하고 재장전하던 장총들의 전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 살상력을 보여준 기관총의 등장은 엄청난 공포였다.19세기 후반 미국의 개틀링이 고안하고, 맥심이 개량한 기관총은 분당 600발을 발사할 수 있었기에 전장에서 병사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적의 사기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1893년 기관총을 도입한 영국군 700명은 남아프리카 마타벨레족 전사 10만 명을 몰살시켰다. 우금치전투에서 화승총과 창으로 무장한 2만 명의 동학군은 조일(朝日)연합군의 개틀링 기관총 몇 정에 의해 순식간에 1만5천 명이 희생되었으나, 관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기관총은 20세기 유럽 전장의 표준 무기 체계로 편입되었다. 1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은 전광석화처럼 서부로 진격했으나, 파리 근처 마른에서 영-프 연합군에 패배하며 4년에 걸친 악몽 같은 '서부전선의 참호전'이 이어지게 된다. 양측은 기관총을 피하기 위해 깊은 참호 속에서 대치 상태를 지속하며 의미 없는 총격전과 엄청난 포격전을 반복하여 매일 수천 명의 전사자를 발생시켰다.전투 때마다 겨우 몇백m를 번갈아 점령할 뿐인 소모적인 참호전으로 전쟁은 교착 상태가 되었다. 참호는 철조망과 콘크리트로 점점 강화되었고, 승패도 없는 가운데 사상자만 계속 늘었다. 1916년 여름 프랑스 솜강 전투에서 연합군은 150만 발의 포격을 가한 뒤에 돌격을 개시했으나, 깊은 참호 속에 숨었던 독일군의 기관총 반격으로 단 하루 만에 영국군 2만 명이 전사하고 4만 명이 부상당했다.이후 폭설로 전투가 중단될 때까지 4개월 반 동안 연합군이 겨우 10㎞를 전진하는 동안 프랑스, 영국, 독일군 144만 명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야산 하나를 두고 10개월간 싸웠던 베르됭 계곡의 전투에서도 양측 합하여 1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저지대 참호에 물이 차고 비가 내리자 젖은 발과 다리가 썩어가는 참호족(塹壕足)이 발생하여 10만 명의 병사가 사망하기도 했다.전쟁은 역사를 바꾸고, 예술과 유행을 창조한다. 참호 주위에 널린 엄청난 양의 포탄과 총알, 그리고 물품들은 수거되어 생활용품, 장식품, 탁상종으로 재탄생되었다. 이것을 '참호예술'(trench art)이라 한다. 전선의 병사와 이송된 부상병, 포로와 점령지 주민들이 만들었다.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이것들은 일상에 매우 유용하였다.참호예술품은 전쟁을 증언하고 어렵던 시절을 살던 인류의 처연한 감회를 담고 있다. 곤궁한 생활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절대자에게 구원을 청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한국전쟁 후 궁핍하던 시절, 우리도 탄피를 주워 소에게 워낭 종을 만들어 주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면 생각나는 우리의 참호예술품이다.

2020-06-01 17:30:00

공녀, 환향녀, 위안부…누가 할머니를 세 번째 죽이나

공녀, 환향녀, 위안부…누가 할머니를 세 번째 죽이나

◇미셸 폴나레프와 올리비아 뉴튼존'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maman)라는 샹송을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적 명소, 파리 센강변 콩코르드 광장에서 들으면 감회가 남다르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5월의 노래'(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의 원곡이기 때문이다. 이 곡은 '홀리데이'(Holiday)라는 감미로운 곡으로 더 잘 알려진 미셸 폴나레프가 1971년에 불렀다.이 무렵 한국 팬을 사로잡던 호주 출신 올리비아 뉴튼존을 추억의 곳간에서 호출해 보자. 1980년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제목이자 히트 팝송 '자나두'(Xanadu)는 이상향을 가리킨다. 기원은 영국 낭만파 시인 쿨리지다. 그리스 마니아로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가했다 숨진 바이런의 권유로 1816년 출간한(1797년 탈고한) 시 '쿠블라 칸'(Kubla Khan)에서 쿨리지는 '자나두'를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영국 성직자 푸르카스의 1613년 작 '푸르카스 순례기: 창조부터 현재까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목격된 종교와 세계'를 참고한 결과였다. 푸르카스 역시 다른 책을 인용한 것이니 '자나두'를 처음 찾아 기록에 남긴 이는 누구일까?◇자나두, 몽골과 고려 공녀'자나두' 가는 길은 멀다. 2017년 6월 북경 류리치아오(六里桥) 버스정류장에서 7시간 30분을 달리니 초원 한가운데 '원상도유지'(元上都遗址)에 이른다. 원나라(몽골) 유적지 상도(上都)의 몽골 발음이 '자나두'다. 필자에 740여 년 앞서 1275년경 이곳을 찾은 이가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다. '동방견문록'으로 알려진 원제 '세계의 기적에 관한 책'을 1300년경 출간하는데, 여기에 '자나두'를 화려하게 묘사한다.쿨리지의 시 제목 '쿠블라 칸'은 당시 원나라 대칸 쿠빌라이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수도로 삼고, 한족 유병충을 시켜 1256년 건설한 자나두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지금은 채색 기와 몇 점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마르코 폴로가 오기 16년 전 고려 원종이 1259년 몽골에 항복하기 위해 자나두를 찾아 1260년 쿠빌라이 대관식에 참석했다. 강력한 고구려 후예가 항복한 데 만족한 쿠빌라이는 딸을 원종의 아들 충렬왕에게 시집보낸다.고려왕이 몽골에 충성하는 '충' 자를 붙인 건 이때부터다. 세계 제국 몽골의 사위 나라, 부마국이 된 대가는 처절했다. 몽골에 고려 여인을 보낸 것. 1275년 충렬왕 때 10명을 시작으로 '고려사' 기록에만 50차례나 공녀(貢女)를 보냈다. 13~16세 꽃다운 처녀를 뽑으니 10세가 넘으면 결혼하고, 스님이 되고, 자살까지…. '자나두'는 이상향이 아니라 '아수라'였다.◇심양, 청나라와 조선 환향녀무대를 중국 심양으로 옮기기 전 잠실 석촌호수 앞에 4m 높이로 우뚝 솟은 거대한 비석부터 보자. '대청황제공덕비'. 1637년 1월 조선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여진족 청나라 황제 태종을 기리는 비석이다. 참전했던 여진족과 몽골족 군사들은 수많은 조선 사람을 끌고 갔다. 당시 이조판서 최명길은 '지천집'(遲川集)에 무려 50만 명이라고 적는다. 그때 끌려간 여인들이 노예로 팔리던 시장이 심양시 남탑 사거리다.한적한 공원으로 바뀐 그곳에 서면 절규하던 조선 여인들 모습에 시야가 흐려진다. 가족들이 돈(속환금·贖還金)을 내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은 정조를 잃었다는 이유로 '화냥년' 소리를 들으며 극심한 천대를 받았다. 오죽하면 환향녀들이 다시 청나라로 돌아갔을까. 무기력한 국가와 기득권 남성들 책임인데, 여인들이 그 질곡을 고스란히 떠안는 비극은 일제 식민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진다.◇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KBS가 미국 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아 지난달 29일 최초로 공개한 동영상 속 위안부 여인의 피맺힌 절규는 이용수 할머니의 한(恨)과 맥이 닿는다.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다. 오마이뉴스의 지난달 27일 '국민 70% 윤미향 의원 사퇴 원해' 여론조사 결과 발표 이틀 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잘못도 사퇴도 없다"고 손사래친다. 낯 두껍다.공정성과 담 쌓은 지 오래인 데마고그 김어준은 '냄새' 운운하며 특유의 음모론을 지핀다. "그런 말 하지 말라"는 이용수 할머니의 꾸지람은 소 귀에 경 읽기다. 윤 의원이 이사장이던 단체 사무총장은 전 청와대 비서관의 아내다. 이런 특수 관계의 청와대는 자기 편에 "마음의 빚이 있다"면서도 할머니 문제 제기에는 소 닭 보듯, 강 건너 불구경 모르쇠다. 윤 의원 소속당 이해찬 대표는 "굴복하면 안 된다"고 고개를 빳빳이 세운다.이 대표는 5·18 광주민주항쟁 유공자다. '5월의 노래' 원곡을 알 거다. 그에게 묻는다. 일본군이 할머니에게 천인공노할 만행의 첫 인격 살인, 파렴치한 일당이 앵벌이로 두 번째 인격 살인, 그럼 지금 사태 해결에 눈감으며 세 번째 인격 살인의 비수를 할머니에게 꽂는 기득권은 누구인가. 미셸 폴나레프가 읊조리며 거든다.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

2020-06-01 17:30:00

[기고] '덕분에 챌린지'를 전국민 '감사운동'으로

[기고] '덕분에 챌린지'를 전국민 '감사운동'으로

연초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등 강력한 방역 활동에 힘입어 최근에는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되는 등 일상으로의 복귀 준비에 한창이다.이에 반해 아직 유럽과 아시아, 중남미 등에서는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급증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초창기의 여러 우려와는 달리 정부의 투명하고 민주적 대처로 전 세계가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호평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진단검사뿐 아니라 선진 의료인력 그리고 묵묵히 자신들의 소임을 다한 각 부처 공무원들도 큰 몫을 차지했다.이 중에서도 약 15만 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인 경찰의 코로나19 대응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코로나19 발생 초기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확진자 급증으로 의료시스템 붕괴 직전까지 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 경찰은 일부 종교단체 교인 및 확진자 소재 파악에서부터 전국 30여 곳에 달하는 생활치료센터와 공적마스크 판매처 등에 대한 질서유지에 힘을 보탰다.여기다 자가격리자에 대한 행정 지원, 클럽과 노래방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현장점검 등을 벌이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경찰 본연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경찰관의 확진은 곧 치안력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 하에 현장 최일선인 파출소에서부터 기동부대, 경찰관서에 이르기까지 시설과 장비, 인력에 대한 철저한 방역 활동을 펼친 점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큰 밑바탕이 됐다.이번 코로나19와의 지루한 전쟁은 아마도 백신 등 치료제 개발로 완전히 끝이 날 테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 시기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이미 미국과 중국, 유럽 등에서는 벌써부터 백신전쟁이 한창이다. 우리도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만, 백신 개발은 우수한 과학자들에게 맡기고 일반 국민들의 힘을 한데 모으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그런 차원에서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는 어려운 환경에서 '다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덕분에 챌린지는 존경과 자부심 등을 뜻하는 수어 동작인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드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 SNS에 올리고 이후 참여할 3명을 지목하는 릴레이 캠페인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코로나19 환자 진료와 치료에 힘쓰는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처음 시작했다.현재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각 부처 장관과 일반 국민까지 대거 참여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찰 조직은 물론 각계각층이 이 캠페인에 동참하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일상에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다.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다. 덕분에 챌린지를 너와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국민 '감사운동'으로 승화시켰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우리 모두를 서로 보듬고 응원하면서 산재한 여러 어려움을 뚫고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나아가 이 감사운동이 갈등의 사회를 넘어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도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회문화적 다양성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사회 갈등을 줄이고 상생하는 포용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위대한 국민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파이팅!

2020-06-01 16:16:28

[세계의 창] 지역의 인구감소, 면·군단위 명문고 육성으로 막아보자

[세계의 창] 지역의 인구감소, 면·군단위 명문고 육성으로 막아보자

대구경북의 최대 현안은 인구 감소로 인한 면군 단위 소멸 위기이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고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다. 출향인들은 고향의 모교가 폐교되었다는 소식에 놀라게 된다. 필자의 모교인 영해고의 경우 1970년대에는 영해여상과 영해고를 합쳐서 모두 5반 300명의 학생들이 다녔다. 지금은 양 학교가 통합되었고 입학생은 60명이다. 5분의 1 규모로 줄었다. 초등학교는 폐교가 된 곳도 많다.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행정단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지역민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해왔고 생활권의 기초단위로서 기능해 왔다. 면·군 등과 같은 지역 기초 행정단위가 없어지지 않고 지속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조선시대 부사(府使)가 있었던 영해 지역은 1914년 면 단위로 전락하였다. 주민들은 지금도 이를 아쉽게 생각한다.지역 내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뿐만 아니라, 도시로의 전출 억제 등 인구 감소 비율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 세대들이 고향을 기반으로 교육 및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지인들이 우리 지역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유인책도 필요하다.필자는 면·군 단위의 고등학교를 명문으로 만드는 것이 인구 감소를 막는 타개책의 하나라고 본다. 영덕군의 인구가 1970년대 8만 명에서 현재 4만 명으로 줄었다면 고등학생의 수도 2분의 1로 줄었어야 한다. 그런데 5분의 1로 줄었다. 이는 저출산의 영향에 자녀들을 외지에서 교육시키는 경향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각 면·군 단위에 있는 고등학교가 명문이 되어 지역민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지역의 고등학교로 학생들이 진학을 한다면, 지역 내 인구 감소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진학과 사회 진출에 대한 선배들의 멘토링도 요긴하다. 멘토링이란 앞서간 선배들이 재학생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제도이다. 선배들이 모교를 방문, 강연을 통하여 후배들에게 정신적인 훈시를 주거나 일대일로 소식을 주고받는 방법으로 멘토링이 진행된다. 면 단위로 갈수록 학생들의 진학을 위한 멘토가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사회 진출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렇지만, 사회 진출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도나 군에서 그러한 롤 모델이 되는 사람들을 찾아서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종합 관리, 이들을 각 학교 학생들을 위한 멘토로 활용하고, 면·군 단위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우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널리 인식시키는 홍보 작업도 병행하여야 한다.최근 비대면 방식이 보편화됨에 따라 줌(Zoom) 등을 이용한 실시간 화상회의를 통하여 선배들은 지역 후배들에게 공간적인 격차를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든 조언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점도 충분히 활용하자.명문 고등학교의 지표는 대학 진학률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미국으로 나가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을 국내로 다시 돌아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경북 지역 고등학교도 시야를 넓혀서 국내 대학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해외 대학 진학도 목표로 삼고 시도해 보자.경북 지역의 고등학교 동창회 연합과 같은 조직도 결성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인근 지역에 속하는 포항, 영덕, 울진, 영양, 청송의 고등학교는 연합동창회를 개최하면서 힘을 합쳐가는 것이다. 동창회의 체육대회, 송년회를 연합 개최하여 인근 동문들이 힘을 합치고 이것이 재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울진의 고등학교 재학생들의 A대학 탐방 시 그 대학에 울진 출신 교수가 없을 때에는 인근 영덕 출신의 교수가 그 학생들의 방문 절차 등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지역의 고등학교는 명문이 되어가고 학부모와 학생들은 지역의 고등학교를 선호, 여기로 진학하면서 인구 감소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인구의 증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하나씩 모이면 결국 경북 지방은 지속 가능하게 될 것이고 이를 넘어 발전하게 될 것이다.

2020-06-01 16:14:22

[매일춘추] 현진건에서 월탄, 그리고 간송까지

[매일춘추] 현진건에서 월탄, 그리고 간송까지

대구문학관의 근대문학자료들은 선정위원회에서 정한 대구의 근대문인 47인에 대해 개개인의 단행본과 작품이 실린 문학잡지 및 동인지들을 오롯이 구축하는 것이었다. 아카이빙 과정에서 수집된 자료와 그들의 행적을 살피면서 그들 내의 교류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근대문화예술인들과의 접점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 단적인 예로 현진건과 전형필을 들 수 있다. 이들을 통해 많이 동떨어져 보이는 인물들이 공통의 사교적 접점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이어지는 근대문화예술사의 한 흐름을 접할 수 있었다.현진건은 1900년 대구 태생으로 아호는 빙허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수난에 처한 민족의 현실과 운명을 탁월하게 묘사한 리얼리즘의 선구자이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날' 등 20여 편의 단편 소설과 7편의 중·장편 소설을 남겼다. 대구전보사장을 역임한 현경운의 막내아들이었으며, 그의 가족으로는 백형 현홍건, 중형 현석건, 의열단과 독립당 상해 촉성위원을 지닌 막내형 현정건 등이 있다. 대구에서 아버지가 개설한 대구노동학교를 잠시 다녔으며, 이상화, 백기만, 이상백 등과 교우하여 '거화'라는 프린트판 습작동인지를 발간하였다. 이상화를 '백조' 동인으로 참여시킴으로서 지역문단과의 교류를 주선하였고, 그를 비롯한 박종화, 나도향, 안석영, 이광수, 김기진, 박영희 등이 주축인 된 '백조'를 통해 1920년대 조선 문단의 동인지 시대를 이끌었다.전형필은 1906년 서울 태생으로 아호는 간송이며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약탈, 수탈된 문화재를 자비를 들여 지켜낸 문화재 수집가이다. 일본인 수집가를 찾아 되사거나 경매를 통해 극적으로 지킨 문화재들을 보존하기 위해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현재 간송미술관)'을 설립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전형필은 휘문고보에서 이마동과 친우로 지내며 그의 스승이었던 현대미술의 선구자 고희동을 만났다. 고희동의 주선으로 그의 영원한 스승인 위창 오세창을 만났으며, 이때 아호를 사사받았다. 33인 민족대표이면서 우리나라 서화가의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을 편찬한 오세창은 간송에게 문화재를 바라보는 혜안을 알려줬다. 간송의 이종사촌 형은 박종화로 현진건과는 문학적 동인이자 사돈지간이도 하다. 박종화와 현진건을 사돈관계로 맺어준 것은 그들과 지음(知音)으로 있었던 이상화였다.문학자료를 아카이빙하며 작가들의 이와 같은 생활사 혹은 관계사를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드러난 인물간의 접점을 매개로 '근현대 문화예술인 교류도'를 작성하여 지역의 근현대 문화예술가들의 관계를 조망하였으며, 전시에 활용한 적이 있었다. 문화예술 아카이브도 작품과 유품 등의 자료 구축의 중심에서 벗어나 인물의 가계와 행적 등의 생활사를 통해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관계로까지 확장되는 연구를 함께 진행한다면 아카이브 자료의 미래가치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주임

2020-06-01 13:54:59

[기고] 코로나를 극복하는 든든한 보훈

[기고] 코로나를 극복하는 든든한 보훈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지 벌써 100여 일이 지났다. 하루에도 평균 500여 명의 확진자가 속출하는 등 위기의 상황도 있었지만, 그동안 정부와 대구시의 적극적이고 투명한 대처와 함께 의료진의 헌신적 봉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자발적 예방 노력 덕분에 아직은 방심할 수 없지만 그래도 통제 가능한 안정기에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3개월 동안 우리는 이전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언제 호전될지 모를 경제적 어려움, 언제 다시 되찾을지 모를 생활의 불편함 등 모두가 적지 않은 고통이 따르는 것들이다.하지만 놀랍게도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의 중요성, 오염된 환경의 회복 가능성 등 얻은 것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이른바 선진국들의 코로나 대처의 무기력함을 보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우리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이 속한 국가 공동체를 스스로 기꺼이 목숨 바쳐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로 여기게 하는 것이 보훈의 가치이자 역할이라는 점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는 국가보훈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이제 코로나로 시작한 2월에 이어 봄도 지나고 벌써 6월이 시작됐다.6월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리고 감사하는 달이다. 특히 올해 6월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서 더욱 뜻깊고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모든 기념행사가 축소되고 온라인 형식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보훈처는 '함께 이겨낸 역사, 오늘 이어갑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그동안 우리 역사 속에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국민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역경을 헤쳐온 사실을 상기하고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코로나의 위협과 경제적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국민들에게 적극 알리고 있다. 특히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등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희생적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제복 입은 분들에 대한 국민적 감사와 위로를 적극 전달하고 있다.코로나와 관련된 또 다른 보훈의 의미는 6·25전쟁 70주년을 계기로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보은의 마스크'를 전달함으로써 22개국의 참전 노병은 물론 그 나라 국민들을 감동케 하여 국제사회에서 고마움에 보답하는 나라로서 국격을 한층 높이고 국제 보훈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다.나라를 생각하고 애국을 생각하는 달, 6월의 시작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보훈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그 기틀이 새롭게 다져진다.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위한 국민적 믿음, 즉 국가에 헌신하면 어떠한 일이 생겨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에 대한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보훈처가 새로운 보훈의 브랜드 '든든한 보훈'으로 거듭나고 있다.흔히들 진정한 보훈은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이 명예와 긍지를 느끼고 그 모습에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때 완성된다고 한다. 현장과 정책의 균형으로 다져진 든든한 보훈을 통해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보훈의 완성을 기대해 본다.

2020-05-31 17:45:08

[이른 아침에] 그 모든 순간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른 아침에] 그 모든 순간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1963년 박정희 혁명정부의 '의료보험법' 제정은 우리나라 의료보험(건강보험) 도입의 최초 시도였다. 시범사업이던 의료보험은 박정희 정권이 1977년 공무원과 대기업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강제 가입 방식의 직장의료보험을 실시하면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1986년 전두환 정권이 도입 계획을 발표하였고, 1989년 노태우 정권 때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직장·지역별 조합과 재정 통합으로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을 완성한 것은 2000년 김대중 정권이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게 단기간에 도입됐다고 한다. 독일은 100년, 일본은 36년 걸린 일을 한국은 1977년 기준으로 불과 12년 만에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기 때문이다.건강보험의 역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역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본격적인 의료보험 시행을 결정할 당시 각료들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였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무상 의료를 제공받는다는 선전이 박 대통령의 결단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신 말기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유화적 조치이기도 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걸쳐 실시한 전 국민 의료보험도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평가도 그 때문이다. 건강보험 통합 역시 시대적 산물이다. 2000년 통합 전까지 227개 지역의료보험조합, 139개 직장의료보험조합 등이 난립해 있었다. 직장과 지역, 부유한 조합과 가난한 조합 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이들의 통합은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한 김대중 정부의 공이 크지만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상황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전 국민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우리 의료체계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일부의 주장처럼 박정희 대통령만의 공도 아니고 과거 정권의 기여를 무시한 채 문재인 정부의 치적으로만 내세울 일도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과 역대 정권이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한마디로 이른바 보수와 진보 정권을 통해 완성된 대한민국의 총체적 역량이다. 수십 년간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2020년의 우리가 '방역 선진국'을 자랑하며 의료 한류를 외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정치적 약점을 들어 특정 정권 혹은 지도자를 폄하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우리의 방역과 보건의료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했다. 사스와 메르스 때 경험을 살려 대응체계를 발전시켜온 결과다"라고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연설도 그런 맥락이다.'포용과 협치'를 내세운 문재인 정권이 3년을 넘어섰다. 범여권이 190석을 석권한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21대 국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대만으로 그친 포용과 협치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현충원에 있는 이른바 친일파 묘소 '파묘'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다짐한다. 과거 왕조시대에나 들어온 '부관참시형'의 재연인 듯 섬뜩하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모순과 문제가 '친일파' 때문이라는 단순한 역사 인식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백선엽 장군이 서울 현충원에 안장될 경우 묘소가 뽑혀 나갈지 모른다는 말로 대전 현충원을 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곳곳에서 박정희, 전두환의 이름과 이미지를 없애고 지우는 작업에 분주한 것도 마찬가지다. 극한 가난을 물리치고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어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우리의 목표"라는 대통령의 다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낸 역사를 부정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호승 시인은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알지 못했음을 "가끔 후회한다"고 노래했다. 과거를 부정하고 묘소를 파묘해야 역사가 전진하는 게 아니다. 설사 부끄러운 역사라 해도 관련 유적을 부정적 유산(negative heritage)이란 이름으로 일부러 보존하는 게 선진국이다. 새로 시작하는 정치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순백의 역사에 대한 집착보다 미래를 향한 징검다리 돌 하나 놓는 일에 천착해야 한다. 의료보험의 역사에서 보듯 그때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꽃봉오리였음을 나중에라도 알 수 있게 말이다.

2020-05-31 16:02:34

[2020 세상 읽기] 질경이처럼

[2020 세상 읽기] 질경이처럼

중국 역사 속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여럿 있다. 진(秦) 시황을 비롯하여 천하를 두고 맞붙었던 항우와 유방, 삼국시대의 조조, 유비, 제갈량도 만나고 싶고, 쭉 내려가 당나라의 이백과 두보에게서 시 한 수 듣고, 경국지색 양귀비도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북송의 풍류황제 휘종과 청나라 전성기의 강희제, 청말의 절대권력자 서태후…. 열손가락으로는 모자라겠다.시절이 하수상해서일까, 사마천(司馬遷)이 자주 생각난다. 앤서니 파우치 미(美)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이 대통령 6명과 일한 비결로 대통령 비위를 안 맞춘다고 밝힌 기사를 보면서 더욱 그러하다. 쓴소리를 싫어하는 트럼프에게 언제 트위터 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마찰을 빚으면서도 설득해 내는 '미스터 쓴소리'의 소신 행보가 남달라서다.전한(前漢) 시대 사마천(B.C.145?~B.C.86?)은 황제의 노여움을 산 죄로 큰 곤욕을 치른 사람이다. 사관 가문에서 자란 사마천은 태사령(太史令)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무살무렵 부터 천하를 주유하며 역사적 소양을 키웠다. 조정의 말단 관리로 일하다 아버지 사후 태사령이 됐다. 선친의 유지를 따라 역사서 편찬 작업을 하던 중 난데없이 '이릉(李陵)의 화(禍)'에 휘말렸다. 이릉은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운 명장 이광의 손자로 그 역시 뛰어난 무장. 무제(武帝)의 명에 따라 5천 병사로 흉노와의 전투에서 전과를 올리던 이릉부대는 8만 군사로 재공격해온 흉노군에 포위됐다. 10여일간 사투끝에 화살은 떨어지고, 지원군도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결국 이릉은 투항했다. 격노한 무제 앞에서 눈치빠른 중신들은 앞다퉈 이릉을 비난했다. 오로지 사마천만 겁도 없이(?) 이릉을 변호했다. 5천 병사로 8만 흉노군에 맞서 많은 전과를 올렸고, 중과부적으로 포로가 됐지만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옹호했다. 이릉과 교유가 없었지만 그의 됨됨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격노한 무제는 사마천을 감옥에 가뒀고, 군주 기만죄로 사형이 언도됐다. 죽음 앞에서 사마천은 선친의 유언을 떠올렸다. 사형을 피할 방법은 거액의 속죄금을 내거나 치욕적인 궁형을 받는 것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마천은 결국 궁형을 택했다. 감옥에서도 저술을 계속했고, 대사면령으로 출옥한 후 환관직인 중서령으로 일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는 심신의 고통에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발분(發憤)한 결과 마침내 16년만에 상고시대부터 무제때까지 3천여 년 역사를 독창적인 기전체로 담아낸 대역사서 『사기(史記)』를 완성했다. 박경리 선생의 시 '사마천'을 통해 그의 아픔과 고독, 열정을 상상해 본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天刑)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사마천의 결기를 읽을 수 있는 일화가 또 있다. 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무제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자신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자신을 폭군으로 비판한 내용이 있었다. 불사르지 않겠노라 했지만 화를 억누르지 못해 불태우라 고함쳤다가 다시 명을 거두는 소동을 벌였다. "너 때문에 내 수명이 줄어든 것 같다" 고 하면서도 사마천을 죽이지는 않았다. 보통 그릇은 아닌 것 같다.얼마전, 소담한 계곡을 끼고 짧은 산행을 했다. 절집까지는 한줄기 외길, 녹음 우거지고 산새 지저귀는 한갓진 길이었다. 올라갈 때는 못 봤는데 내려올 때 보니 길가 곳곳에 질경이가 무리지어 있었다. 대부분 길옆이다. 하필이면 사람들 발에 짓밟히고 차바퀴에도 깔리는 험지에서 살까. 예로부터 우마차가 오가는 길에서 산다하여 '차전초(車前草)'라는 한자 이름이 있는걸 보면 거친 환경에서 사는 게 질경이의 숙명인 모양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라는 시를 떠올려보지만 질경이는 아무리 봐도 예쁘진 않다. 오히려 길가의 천덕꾸러기 같다. 하지만 밟혀도 짓눌려도 살아나는 생명력이 은근히 감동을 준다. '소신' 때문에 평생을 죽음 못지 않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역사를 만든 사마천의 모습을 질경이에게서 찾아본다. 역저 『사기(史記)』는 중국 정통 역사서인 24사(또는 25사)의 첫머리에 위치해 있다. '사마천' 이름 석자 앞엔 '사성(史聖)',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접두어가 붙는다.'윤미향 사태'와 또다시 등장한 집권당의 과거사 뒤집기 행보로 민심이 어수선하다. 나라의 중심축을 잡아줘야 할 위치의 사람들은 눈치만 보거나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자리보전과 영달만 꾀하는 것 같아 비겁해 보인다.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히 쓴소리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왜 이리 힘들까. 좁은 길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소신파 리더들이 이다지도 없을까.전경옥 언론인

2020-05-31 06: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정선(1676-1759), ‘도산서원’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정선(1676-1759), ‘도산서원’

연두빛, 초록빛이 눈에 가득 들어오는 계절이다. 이 그림도 푸르름이 화면에 가득해 정선은 녹음이 무성한 여름 도산서원을 찾아갔던 것 같다. 퇴계 선생을 사모한 누군가가 그림으로 그려 주기를 요청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도산서원은 이황이 살았던 곳이고, 그의 학문과 인격을 상징하는 곳이어서 많은 후학들이 찾아갔고 그림으로 그려져 간직되기도 했다. 성호 이익의 부탁으로 강세황이 베껴 그린 '도산서원도'도 남아 있다.지금도 이 그림과 비슷한 모습인 산기슭에 높이 자리 잡은 도산서원의 기와집 여러 채가 담장과 외삼문에 둘러싸여 화면 한 가운데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뒤로는 도산(陶山) 봉우리가 우뚝하고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이황의 고향은 도산 뒤쪽을 감싸고 흘러 낙동강으로 합수되는 토계천(兎溪川)이 있는 온계리이다. 이황은 46세가 되는 1546년(명종 1년) 장인의 장례를 치르러 돌아왔다가 조정으로 복귀하지 않고 토계를 '물러날 퇴'의 퇴계(退溪)로 바꾸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이황이 살았던 곳은 도산서원의 외삼문 아래 왼쪽에 바자울로 둘러싸인 도산서당이다. 서당 옆에는 농기구인 듯 한 물건을 어깨에 멘 한 인물이 작게 그려져 있다. 이황이 이곳으로 삶의 터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은 57세 때다. 집터를 물색하고 새로 집을 짓기에 젊은 나이는 아니었다. 오년이 걸려 환갑이 되어서야 도산서당과 농운정사(隴雲精舍)가 다 지어졌다. 이황의 거처이자 학교인 도산서당의 방은 완락재(玩樂齋), 마루는 암서헌(巖栖軒), 연꽃을 심은 작은 못은 정우당(淨友塘)이라 이름 지었고, 기숙사인 농운정사의 서재는 시습재(時習齋), 방은 지숙료(止宿寮), 마루는 관란헌(觀瀾軒)이라고 했다. 이황은 도산서당에 살며 자신을 닦아 기르고, 공부하며 가르치다 70세로 세상을 떠났다.보잘 것 없는 작은 산이었던 이곳에 살면서 이황은 도수(陶叟), 도옹(陶翁), 도산진일(陶山眞逸), 도산병일수(陶山病逸叟), 도산노인(陶山老人) 등 도산을 호로 삼았다. 선생의 육신이 생전에 거주한 도산이라는 장소는 도산서당을 완공한 환갑 때 지은 '도산잡영(陶山雜詠)', 65세 때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등으로도 남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 준(寯)을 불러 자신의 묘비에 '퇴도만은(退陶晩隱)'으로 새기라는 유언을 남겼다. 실록의 졸기에 나오는 이황의 품계와 관직인 '숭정대부 판중추부사' 대신.도산서당 위쪽에 도산서원이 지어지고 석봉 한호가 쓴 '도산서원' 편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된 것은 선생이 돌아가신 5년 후인 1575년(선조 8년) 여름이다. 당나라 시인 유종원은 「옹주마퇴산모정기(邕州馬退山茅亭記)」에서 "아름다움은 저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해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된다.", "미불자미(美不自美) 인인이창(因人而彰)"이라고 했다. 도산과 퇴계는 이황으로 인해 불멸의 장소, 불후의 이름이 되었다. 나를 길러준 여기에 모두 빚이 있다. 다시 스승의 날을 생각하며.

2020-05-31 06:30:00

[2020 세상 읽기] 이젠 공화의 시대! 보수와 진보는 없다

[2020 세상 읽기] 이젠 공화의 시대! 보수와 진보는 없다

"'나'는 엄석대의 비행을 담임선생에게 고발하지만 무사안일이 타성이 된 담임은 오히려 석대가 학급 운영을 잘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온 '나'가 시기심이 나서 그런 것이라고 하며 도리어 '나'를 탓한다. 그래서 '나'는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엄석대에게 굴복하게 된다. 그러한 대가로 엄석대가 베푸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내용이다. 이 소설은 소도시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엄석대'라는 절대 권력의 형성과 붕괴의 모습을 그렸다. 회유와 협박, 거짓말로 끝까지 권력을 유지하려는 엄석대를 보면 권력의 중독성은 무서울 정도다. 사실 권력의 속성상 독점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역사 속에서 권력의 주체는 늘 바뀌었지만 나만이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권력욕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혁명 이전에 혁명을 말하고, 개혁 이전에 개혁을 부르짖지만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일수록 혁명이 성공한 바로 다음날부터 보수파가 된다. 혁명 이후 마오쩌둥이 황제 내궁에 자신의 거처를 잡은 것과 레닌이 차르의 궁전인 크렘린에 입주한 것, 인민공화국을 건설한 나폴레옹이 결국 황제 자리에 오른 것을 보면 혁명이나 개혁의 이름들은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rhetoric)에 불과했다.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왕조 개국 공신세력인 훈구파의 권력독점과 세습을 비판한 사림(士林)들은 그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는 보수화되었다. 심지어 패거리 정치로 분열하여 반대파를 소인으로 치부했고 훈구파들이 그들에게 자행했던 그 이상의 정치보복을 서로에게 가했다. 그 후 극단적 패거리 정치는 안동 김씨 한 가문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만들었으며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인 흥선군과 민비는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권력을 잡겠다는 패륜적 역사를 만들어냈다. 조선의 패망은 너무나 당연했다.이제 우리는 더 이상 왕을 가질 필요도, 가질 수도 없다. 1948년 8월 15일, 국민이 주인이고 세습에 의한 군주제를 부정하는 민주공화국은 탄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숨 가팠으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동족상잔, 개발독재, 민주항쟁과 이념대결 그리고 위헌정당해산심판과 대통령탄핵심판까지 경험하였다. 한강의 기적과 10대 무역강국,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연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 가까이 성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념과 파벌의 잔재는 국민을 양쪽으로 분열시켰고 일부 정치세력들은 '진영논리'라는 무소불위의 사상검증으로 극단의 갈등을 부추겨 양극화의 팬덤은 두터워지고 있다. 그 결과 정치권은 사회 갈등의 조절과 통합의 역량을 상실하였고, 공정성과 투명성이 왜곡된 것들에 대한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비판은 진영논리와 확증편향 앞에서 무기력해져 이념이 만든 선악의 프레임은 견고해졌다.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영어로 'Republic of Korea'이다. '민주'와 '공화'는 우리나라의 국시(國是)로 볼 수 있는데 '국민에 의한' 정치적 이념인 '민주'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데 반해, '국민을 위한' 정치적 이념인 '공화'는 다소 더디게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제는 정치적 과정에 있어 평등을 뜻하는 '민주'를 넘어 정치적 결과에 있어 평등을 뜻하는 '공화'를 제대로 실천해야 하는 정치적인 시간들이 왔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공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국어사전은 두 사람 이상이 공동 화합하여 정무(政務)를 시행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으며 최장집 교수는 공화주의를 공공선에 대한 헌신, 공적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모든 시민이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시민권의 원리, 시민적 덕에 대한 강조를 핵심 내용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화주의의 선결조건은 '공공선'의 확립이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싸우는 현실정치에서 '공공선'의 합의와 실천은 말처럼 쉽지 않으며 공화의 미덕인 공동의 화합보다는 힘의 논리에 의한 승자독식주의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사실 시기별로 '공공선'의 개념은 불명확하게나마 존재했었다. 1940~50년대는 조국의 독립과 통일이었고, 1960~70년대는 경제성장, 1980~90년대는 민주화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성장이냐 분배냐, 보수냐 진보냐의 이분법적 논쟁은 이념이나 진영논리를 벗어나 '공공선'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보수나 진보를 표방한 유력정당들의 공약은 중위투표자(median voter)의 선호를 무시할 수 없기에 큰 차이는 없었다.바야흐로 통합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왔다. 국민 통합의 사상적 기반인 공화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법치주의 안에서 국민적 동의와 이익의 공유에 결속된 공동체가 주류가 되어야 한다. 늘 '공공선'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정권을 꾸준히 발휘하는 '깨어있는 국민'만이 진정한 민주와 공화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사상의 시대는 끝났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암세포처럼 자란 기득권화된 카르텔을 혁파하고 공정한 사회 시스템을 확립하여 궁극적으로 국가 공동의 이익을 국민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실천적 과제만이 남았다.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치세력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따라서 실제로 '성장'시킬 능력이 없는 보수와 실제로 '분배'할 생각이 없는 진보라는 이념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세력들에게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본다.결국 공정에 기반을 둔 공공선을 구축하고 국민의 이익에 기반을 둔 공화주의를 실천하는 세력만이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똑똑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렇기에 정치의 역할은 국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과 상생의 메커니즘을 찾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민심이라는 큰 바람을 읽고 민생이라는 큰 파도를 볼 수 알아야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이 주인이고 정치인은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고려 왕건을 승리로 이끈 주역의 13번괘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이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인 보수와 진보라는 큰 강을 건너자!두려워하지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낡은 이념의 강을 함께 넘고, 흑백논리의 진영을 벗어나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공화의 시대로 건너가자.자유기고가 이상철

2020-05-30 06:30:00

[광장] 927년 공산전투와 대구 지명

[광장] 927년 공산전투와 대구 지명 <하>

'공산전투와 대구 지명'〈상〉 마지막 부분에서 살내 유래를 설명했다. 즉,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동화천을 사이에 두고 양 진영에서 쏜 화살로 하천이 화살로 가득했다 하여 유래된 살내(전탄)에서 왕건 군대는 승기를 잡고 견훤 군대를 추격하게 된다. 전황(戰況)이 반전된 것이다. 추격을 하면서 왕건은 병사들로 하여금 주변 지역 경계에 태만함이 없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유래된 지명이 '무태'(無怠)다. 임진왜란 당시 대구 지역 의병장이었던 태암 이주(李輈)의 충절을 기릴 목적으로 인천 이씨 후손들이 세운 환성정의 '환성정기'(喚惺亭記)에 무태 지명 유래와 관련한 문구가 있어 흥미롭다. '동즉려조지토견훤시경군왈무태자야'(洞卽麗祖之討甄萱時警軍曰無怠者也)가 바로 그것이다.무태를 지나 연경동을 통과할 때, 경전을 읽는 선비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여 이곳 지명이 '연경'(硏經)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연경동은 대구 최초의 사립학교인 연경서원이 1563년 건립된 곳으로 교육도시 대구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이후 왕건 군사와 견훤 군사는 일진일퇴를 벌이다가 파군(破軍)재로 유인한 견훤 군사에 의해 왕건과 그의 군사는 괴멸된다. 그래서 파군재 지명이 유래하게 된다. 파군재 전투에서 위기감을 느낀 신숭겸, 김락 두 장군은 왕건을 살려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여기서 생겨난 지명들이 왕산(王山)과 지묘(智妙)동이다. 신숭겸, 김락 두 장군의 기묘한 지략으로 왕건을 살린 곳이라는 의미다.이제 왕건으로서는 사지를 빠져나가 후일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이때부터 왕건은 혼신의 힘을 다해 탈출하기 시작한다. 홀로 앉아 퇴로를 궁리했던 바위로 동화사 부속 암자 염불암 뒤편에 위치한 일인석(一人席), 홀로 앉아 쉬어 갔다는 봉무동의 독좌암(獨坐岩), 전쟁 통에 노인과 부녀자는 숨어 버려 노인을 볼 수 없는 곳이라 해서 유래된 불로(不老)동을 거쳐, 평광동에 이른다. 여기서 나무꾼으로부터 얻어먹은 주먹밥의 힘으로 간신히 초례봉(醮禮峯)을 넘는다. 나중에 나무꾼이 그때 자신이 준 주먹밥을 얻어먹은 사람이 왕건임을 알고 이곳에서 왕을 잃어 버렸다고 하여 실왕리(失王里)가 되었고, 지금의 평광동 시랑이다. 물론 견훤 군사 입장에서 보면 여기서 왕건을 놓쳤으니 그 또한 실왕리가 된다고 하겠다. 초례봉은 왕건이 천지신명님께 기도를 드린 곳이라는 기록이 고문헌에 남아 있다. '초례'는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다.초례봉을 넘어 견훤 군사의 추격으로부터 멀어지자 마음이 안정되어 길을 걸었던 곳이 지금의 안심(安心)이다. 마음이 진정된 상태에서 비로소 하늘을 바라보니 반달이 떠 있어 반야월(半夜月) 지명이 유래된다. 율하천을 따라 내려오던 왕건은 금호강 팔현습지에서 강을 건너 앞산으로 숨어들었다. 앞산 큰골의 은적굴(은적사)은 왕건이 앞산에서 처음으로 몸을 숨긴 곳이라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그 후 안지랑골로 이동하여 안일암에서 잠시 쉬게 된다. 그때 견훤은 왕건을 찾아 이곳 안지랑골까지 오게 되니, 왕건은 다시 안일암 위쪽으로 피신하여 왕굴에 숨는다. 그때 거미들이 떼를 지어 와 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 견훤 군사가 굴 내부를 들여다볼 생각조차 못 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왕굴 역시 왕건이 잠시 피했던 곳에서 유래된다. 잠시 후 산을 넘어 앞산 달비골에 위치한 사찰에서 며칠을 피신하여 편안히 지내니 그 절 이름이 임휴사다. 이처럼 지역에는 공산전투와 관련한 많은 흥미로운 지명들이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그때의 처절했던 얘기를 전해준다.

2020-05-29 17:30:00

[춘추칼럼] 하얀 제비꽃

[춘추칼럼] 하얀 제비꽃

모처럼 데레사 수녀님이 공주에 왔다는 전갈에 서둘러 외부 일정을 마치고 루치아의 뜰로 갔다. 루치아의 뜰은 공주의 옛 거리에 있는 찻집으로 오래된 한옥 하나를 고쳐서 만든 찻집이다. 공주 바닥 사람들에게보다는 외부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잘 알려진 찻집이다.왜 루치아의 집인가 하면 찻집 주인의 세례명이 루치아이기 때문이다. 짐작하시겠지만 루치아는 천주교 신자. 그래서 찻집 이름도 '루치아의 뜰'인데 이 집에는 그런 연고로 바깥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자주 찾아오신다.내가 찻집에 들어섰을 때 수녀님 세 분과 운전을 맡은 남자 한 분이 루치아 내외와 함께 있었다. 데레사 수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안의 수녀님이다. 마치 동화 나라에서 등불 하나를 들고 이 세상으로 나왔다가 다시 이 세상의 등불로 바꿔 들고 동화 나라로 돌아가는 아이와 같다.그렇구나. 데레사 수녀님에게는 우리 공주가 동화 나라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세상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기에 그렇게 수녀님은 수녀원에서 짬만 생기면 공주를 찾는 것이고 또 루치아의 뜰과 우리 풀꽃문학관을 방문하는 것이겠구나.들어 보니 수녀님 일행은 이미 풀꽃문학관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마침 월요일이라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으므로 문학관 안은 들어가 보지 못하고 집 둘레와 꽃밭만 보았노라 한다. 그런데 일행 가운데 나이가 좀 드신 수녀님이 문학관의 꽃밭에서 제비꽃 사진을 여러 장 찍었노란다.알고 보니 그 수녀님이 데레사 수녀님이 머물고 있는 수녀원의 원장 수녀님. "수녀님, 왜 제비꽃 사진을 찍으셨어요? 다른 꽃들도 많은데." "네, 보통 제비꽃은 보랏빛인데 문학관의 제비꽃은 하얀 색깔이더라구요. 그래서 찍었어요."그러하다. 우리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있다. 있더라도 아주 많이 있다. 본래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없었는데 문학관 관장 일을 보는 조동수 선생이 다른 데서 캐다가 심어서 하얀 제비꽃이 살고 있다. 심더라도 아주 많이 심었다. 문학관 둘레 마당과 담장 아래에 촘촘히 가득 심었다.그걸 또 야생화 연구가인 백승숙 여사가 와서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원장님, 이 제비꽃 이렇게 많이 심으면 안 돼요. 이 녀석들 번식력이 강해서 나중에는 아예 제비꽃 밭이 됩니다." 그래서 꽃을 심어 준 조동수 선생의 눈치를 살피며 제비꽃들을 대충 뽑아냈다.결국은 지금 문학관 뜨락에 피어 있는 모든 하얀 제비꽃들은 그때 조동수 선생이 심었는데 뽑지 않은 몇 그루 제비꽃들의 후손이다. 말하자면 조동수 선생의 제비꽃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더러는 그 꽃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둔다.그러면 왜 조동수 선생은 그렇게도 많은 제비꽃을 캐다가 문학관 뜰에 심었을까?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조동수 선생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한 분밖에 남아 있지 않던 육친마저 돌아가신 것이다.젊은 나이이고 집안 대소가도 많지 않아 두서없이 간소하게 어머님 상을 치렀다 한다. 적적하게 어머니 상여 뒤를 따라가면서 둘러보니 자기의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더란다. 그때 문득 눈에 들어온 꽃이 길가에 피어 있는 하얀 제비꽃이었다는 것이다. '그래, 내 슬픔을 알아주는 것은 너뿐이구나.' 그런 뒤로 조동수 선생에게 하얀 제비꽃은 어머님의 꽃이 되었고 어머님을 생각하는 꽃이 되었단다. 그러니 어찌 내가 문학관 뜰에 심은 하얀 제비꽃을 깡그리 뽑아낼 수 있었겠나. 몇 그루라도 하얀 제비꽃을 그냥 놔두기를 잘했다 싶다.이런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 해마다 하얀 제비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하얀 제비꽃이 조동수 선생의 어머니이고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다. 이것을 원장 수녀님이 느끼시고 영혼의 손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래서 수녀님은 다른 예쁜 꽃들, 화려하고 큰 꽃들을 제치고 초라하고도 작은 하얀 제비꽃을 사진기에 담으신 것이리라.그러고 보면 또 수녀님 마음이 하얀 제비꽃의 마음이고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고 또 조동수 선생 모친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세상의 일들은 참으로 깊고도 멀고도 아득하다. 유정하다. 서럽도록 아름답다. 노을 속으로 꽃잎을 싣고 가는 저녁 강물 하나를 본다.

2020-05-28 16:30:00

[기고] 공공배달앱 지역 소상공인들 의견 반영해야

[기고] 공공배달앱 지역 소상공인들 의견 반영해야

지난달 1일 배달 애플리케이션 1위 기업인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를 인상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독과점 기업의 영리 활동은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공배달앱'을 통한 소상공인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현재 배달앱 시장은 이미 5조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으며, 10년 후에는 20조원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통계청은 예상하고 있다. 배달시장의 급성장은 소상공인들과 서로 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왔다. 하지만 배달앱 시장의 성장 이면에는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특히 배달앱은 한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 독일 회사 딜리버리히어로(DH)는 지난 2012년 '요기요'를 론칭하고 '배달통'과 '푸드플라이'를 인수한 데 이어 2019년 '배달의 민족'까지 인수하면서 국내 배달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독과점으로 인한 소상공인 피해 우려는 배달의 민족 수수료 인상 개편안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수면 위로 등장하면서 현실화됐다. 비록 비판적인 여론과 정치권의 공공배달앱 개발 방침, 공정위 압박 등 이유로 철회되긴 했지만 앞으로도 비슷한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데 큰 문제점이 있다.소상공인들의 고통을 대구시가 공감하고 공공배달앱 구축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추후 대구시가 공공배달앱을 개발할 때 고려하여야 할 사항 3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첫째, 공공배달앱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공공 인프라로 사회간접자본(SOC)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드웨어 세상에서 도로를 만드는 것처럼, 이제는 디지털 세상에서도 공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관련 플랫폼 시장이 독과점 상태이니 이를 해소하는 역할 역시 대구시에서 해결해야 하는 업무라 생각하고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 실효성 있고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수립・시행하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둘째, 공공배달앱이 외식산업뿐 아니라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타 시도의 공공배달앱은 외식산업에 국한되어 있지만 우리 대구시의 공공배달앱은 전통시장과 지역 소상공인들의 가게와도 연동하여 서민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고 대구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셋째, 배달공공앱 개발의 중심이 지역 소상공인들의 필요에 맞춰져야 한다. 공공배달앱 개발 시, 배달 주문-배달 중개의 분리, 라이더의 안전과 운송 수단 문제, 독점으로 인한 배달시장 재편 등 배달앱과 관련한 무궁무진한 논의가 필요하고 이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지역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한다면 대구만의 특색을 갖춘 경쟁력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앱이 단순히 민간앱을 모방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좋은 추진 배경과 의도만으로는 대규모의 인력과 자본, 경험을 갖춘 민간과 경쟁을 할 수 없다. 대구시가 공공만이 할 수 있는 특색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외식산업 외 여타 분야의 소상공인과도 상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0-05-28 15:30:00

[매일춘추] 엄마의 주름살

[매일춘추] 엄마의 주름살

시간이 지나는 모든 것들은 1분, 1초를 지나 세월을 쌓아간다.손끝을 스친 작은 인연도, 나의 인생에 크게 자리잡은 나의 많은 사람들과 지나가며 흘렸던 웃음과 눈물 모두 한 페이지의 역사를 채우며 넘어간다.마냥 어리기만 한 나의 역사가 제법 두터워지려할 때쯤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엄마의 메시지였다. '저녁은?', '운전조심'. 이라는 짧은 두 문장에 나의 대답 또한 특별하지 않다. 그저 매일 지나다니는 길처럼, 이 순간도 특별할 것 없는 그저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었다. 근데 오늘따라 그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침에 불현듯 마주한 엄마의 손, 수십 년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엄마의 주름진 손 때문이었다.참 이쁘고 고운 손을 가졌었던 엄마의 주름진 손은 아침에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웃을 일이 많아야 하는데 점점 더 바빠지는 난 나의 역사만을 부지런히 채우고 있었고, 그 역사의 책장을 넘기며 가끔, 어쩌면 자주 엄마의 역사를 잊곤 했다.가끔 대화에서 "너 가졌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경기를 자주해서 늘 응급실로 널 업고 뛰었었지" 등…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나의 역사를 엄마는 책을 읽듯이 술술 말씀하실 때면 엄마의 역사에 내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오늘 아침 내가 바라본 엄마의 손, 그리고 얼굴은 어쩌면 나의 역사를 채워주느라, 닦아주느라 생긴게 아닐까라는 확신과 함께 울컥하는 감정이 가득 올라왔다. 내가 어른이 되어 그 역사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공허했을까.내 역사의 페이지마다 엄마가 함께하고 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엄마 자신의 역사보다 나의 역사를 만들어주려 노력한 엄마에게 되레 미안해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내가 받았던 사랑과 헌신이, 나를 이만큼 키워낸 노력과 세월이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크기라는 걸 알아버린 나이가 되니 그 속상함은 가늠할 수조차 없이 커져버렸다. 속상한 만큼 큰소리를 치던 내가 오늘은 "엄마, 나 키우느라고 손에 주름이 너무 많이 생긴 것 같네" 라고 쭈뼛쭈뼛 말을 건네 보았다. 엄마가 말씀하신다. "엄마는 그래도 너 덕분에 지금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데" 라고. 부끄러웠다. 엄마가 정성껏 가꾸어낸 나라는 역사가 아직은 엄마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없는 것 같아서, 지금 내 나이 때 그 젊었던 엄마의 역사를 온통 빌려 써놓고 나의 역사를 쓰느라 무관심 했던 것 같아서 말이다.내가 힘이 들어 무너지는 것은 내가 살아온 역사가 무너지는 것이자, 엄마의 역사도 무너지는 것이고, 엄마의 세월을 찢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앞으로의 난 더욱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내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더욱더 많은 엄마와의 역사도 함께 만들어가야겠다. 나의 인생은 나만의 역사가 아니니까.엄마의 주름살은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낸 너무도 아름다운 훈장임을 꾸준히 알려드려야겠다.박성미 작곡가

2020-05-28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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