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기고]김치가 억울해서야

[기고]김치가 억울해서야

상고시대부터 우리 조상은 소금절이와 술, 술지게미를 만들어 먹었다. 고구려에서는 술 빚기, 장 담그기 등의 발효성 가공식품을 잘한다고 했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장(醬)과 함께 김치는 무·오이·박·가지 등을 소금에 절여 양념과 젓갈에 버무려 먹는 한국의 원초 음식이다. 신라, 고려 때까지 소금절이·동치미·나박김치 같은 무 김장이 숙달되어 오다가 배추김치는 비교적 후기에 와서 개발되었다고 전한다.(한국민속대사전)15·16세기에 우리 조상들은 절인 남새인 김치를 菹(채소절임 저, 훈몽자회) 또는 葅(저, 구황벽곡방·언해벽온방·구급방·구황촬요·벽온신방 등)라 썼다. 구황(救荒) 또는 구급(救急)은 흉년을 대비하는 비상조치 방법을 뜻했다. 벽온(辟瘟)은 오늘날의 코로나19 같은 급성 유행성 질환을 물리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 선조들은 절인 남새인 김치를 한자로 菹라 썼다. 오늘날의 한한사전(漢韓辭典)에서도 '菹' 자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김치의 한자어 이름은 침채(沈菜)다.(역어유해·동문유해·역어유해보 등) 소금에 절어 갈앉은 채소란 의미다. 소금물에 절어 가라앉은 채소로, 짭조름한 맛과 촉촉한 질감, 시큼한 맛까지 더해질 수 있는 야채 식품이 김치 아닌가. 어감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 선조들은 한자어로 김치를 '沈菜'라 썼다. 17세기부터의 여러 문헌에 나온다.沈菜에서 김치란 말이 생겨났다. 沈菜를 순우리말로는 '팀ㅊ.ㅣ'(소학언해), '딤ㅊ.ㅣ'(훈몽자회·신증유합 등)라 했다. '훈몽자회'(1527년)와 '신증유합'(1576년)은 우리의 한자 입문서로 '천자문'과 함께 한자 학습에 널리 이용하던 책. '딤ㅊ.ㅣ'란 말이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딤ㅊ.ㅣ' 가 '짐ㅊ.ㅣ' '짐츼' '짐치'로 쓰이다가 '김치'가 됐다. 평안도 방언에는 '딤치'가 남아 있으며, 지금도 국내의 여러 방언에서는 '짐치'라 쓰고 있다. '짠지'라고도 한다. '딤채'는 '딤ㅊ.ㅣ'를 현대어화한 말이다. 한국 김치냉장고 중 딤채라는 브랜드도 있다.'김치녀'란 파생어도 우리 사회에 나돌고 있다.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오직 남자에게만 의존하며, 남자를 하대하고 도구처럼 생각하는 여자라는 뜻이란다. 왜 '김치'에 '녀'(女) 자를 합성해 한국의 일부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삼았는지 이유는 모르겠다.8년 전에 중국의 쓰찬성에서 '파오차이'(泡菜)를 먹어봤다. 한국의 김치와는 엄연히 달랐다. 피클 같았다. '쇤차이'(酸菜)도 김치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한국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보단 중국에서 유통, 판매되는 한국의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 또는 '파오차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기무치'도 우릴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이름이다. 근래 국내에서 김치 소비량이 줄곧 감소하는 것은 우리네 식생활 스타일이 변하는 탓, 김치 수입이 많이 증가하는 것은 노동력과 가격에 대한 부담 탓이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수입 김치가 싸니 우선 사서 쓰고 보는 탓이다.김치의 '菹' '沈菜'와 '딤채'란 이름을 우리의 식생활과 산업 현장에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국외에서도 널리 사용, 세계화해야 한국 김치의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김치가 억울해서야.

2021-03-07 16:06:54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맹견에게 공격당한 개(맹견책임배상보험)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맹견에게 공격당한 개(맹견책임배상보험)

착한 진주(진도·17kg)가 심하게 다쳐서 내원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도착한 진주는 출혈 과다로 혈압이 떨어져 있었고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앞다리 양쪽이 너덜거릴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으며 개의 송곳니 자국들이 여러 군데 뚫려있었다. 이런 상처는 맹견에 의해 집요하게 물린 상처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응급 처치가 진행되었고 진주가 안정을 찾고서야 보호자로부터 사고 당시 상황들을 들을 수 있었다.사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마리 반려견, 진주와 보리(잉글리쉬 쉽독·10살·35kg)를 데리고 산책하는 와중에 발생했다. 어디선가 맹견(핏불테리어 교잡종)이 달려와 진주를 먼저 공격했다. 맹견은 말리려는 할아버지에게도 달려들려 했지만 다행히 보리 뒤에 숨으셨다고 하셨다. 보리도 맹견에게 여기저기 물렸지만 큰 덩치 덕분에 다행히 심각한 상처는 입지 않았다.핏불테리어처럼 강한 턱 힘을 가진 맹견에 의한 교상은 근육과 인대가 거의 파열 되다시피 한다. 강한 턱 힘으로 물고는 세차게 흔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맹수가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본능이다.얼마 뒤 가족분들이 내원하셨고,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신하여 큰 화를 당한 진주를 무척이나 대견스러워하시면서도 안타까워하셨다. 모두의 바람 덕분인지 며칠 뒤 진주는 걷기 시작했다.사고를 낸 맹견은 사고 현장 인근 주택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철망 펜스가 처져 있었지만 목줄은 착용하지 않고 있었으며, 당시 현장에는 펜스 아래로 흙구덩이가 깊게 파여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맹견의 견주는 며칠 동안 개를 살펴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맹견이 자유롭게 동네를 배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맹견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견주는 고발 조치되었다.맹견에 대한 위험성은 이미 수없이 경고되었다. 맹견에게 사람이 물려 사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맹견에 의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맹견을 키우는 견주들의 경각심 부족에 있다.진주를 공격한 맹견은 핏불테리어보다는 체형이 작은 교잡종이었지만 교상으로 인한 상처는 여전히 치명적이었다. 체형이 왜소한 진돗개 수준의 진주를 쉽게 죽일 수 있는 살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사고 견의 견주는 자신이 없는 동안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라고 항변하겠지만, 맹견을 입양한 순간부터 맹견으로 인한 사고의 모든 책임은 견주에게 있음을 명심했어야 했다. 특히 법으로 명시한 의무 사항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도 감내해야 한다. 민사상의 보상 책임도 개인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2021년 2월 12일부터 맹견 소유자는 맹견으로 인한 물림 사고가 발생 시 원활한 배상을 위해 '맹견 소유자 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하도록 의무화되었다.동물보호법상에 명시된 맹견은 1.도사견 2.아메리카 핏불테리어 3.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 4.롯드와일러 5.스태퍼드셔 불테리어와 그 교잡종으로 규정되어 있다.우직하고 용맹스러운 개를 키우겠다는 견주들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그에 수반되는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입양 전에 충분히 고민해야 하며, 입양했다면 사고 예방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동물보호법상에 규정된 맹견이 아니더라도 공격 성향이 강하거나, 사냥 본능이 뛰어나거나, 낯선 사람들을 위협하는 경향이 있는 대형견을 돌보는 견주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펫티켓을 소개한다.1. 반려견 동물 등록을 한다.2. 맹견 소유자 배상책임보험(보험료 년 15,000원 정도)에 가입한다.3. 산책 시 짧고 튼튼한 목줄과 마스크를 착용한다.4. 산책 시 통제가 가능한 건강한 성인이 동행한다.5. 산책 시 소형 반려견 또는 길고양이와의 접촉을 피해준다.6. 실외 견사는 이중 잠금문 장치가 필요하며 견사 내에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보장되어야 한다.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2021-03-06 06:30:00

[광장]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중요하다

[광장]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중요하다

마당 구석의 조그만 땅은 음식 쓰레기를 처치하는 공간이다. 따뜻한 날씨에는 1주일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흙으로 변한다. 하지만 겨울은 땅이 딱딱하게 얼기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 언 땅은 곡괭이로 파도 쉽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다. 겨울 땅은 어떤 생명체도 허용하지 않는 죽음의 흙 같다. 그런데 겨울 끝자락이 되면 흙에 변화가 생긴다. 춥고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면 흙도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흙은 부드러워지고 부피도 부풀어 오른다.곡괭이의 강한 힘조차도 허용하지 않던 얼었던 흙이 부풀어 오르면 그 사이를 뚫고 연약한 식물의 새싹이 모습을 비춘다. 봄의 새싹은 아주 여리다. 너무나 신기해서 새싹을 관찰하려고 흙을 팠더니 그냥 부러질 정도로 약하다. 그런 연약한 새싹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비결은 강한 힘이 아니다. 그냥 힘으로 뚫고 올라오려고 한다면 새싹은 부러질 것이다. 연약한 새싹은 부드러워진 흙을 밀고 밖으로 나온다.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는 겨울이 지나면 점차 따뜻한 날과 추위가 반복된다. 시샘 추위라고도 하고 봄이 눈앞인데 웬 강추위가 몰아치느냐고 하지만 사실 땅속 생명체를 위한 흙의 준비 작업이다. 봄을 준비 중인 흙을 밟으면 새싹이 올라오는 데 방해를 줄까 봐서 조심스럽지만, 봄 흙을 밟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푹신한 카펫을 밟는 기분이다.나는 유도 유단자였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이 유도의 핵심이다.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과 같이 쉽지 않다. 항상 힘이 들어간다. 이건 유도뿐만이 아니다. 모든 운동에서 귀가 따갑도록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끊임없는 반복 연습으로 동작의 패턴을 익혀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유도를 오래전에 해서 잊고 있었던 사실을 흙을 만지면서 매일 다시 명심하고 있다. 힘을 빼자. 부드러움을 유지하자.이것은 몸과 마음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건강을 얘기할 때 항상 강함을 권유한다. 정신력을 강화해야 하고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중년이 넘으면 근육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물론 근육 강화가 중요하지만 50대가 넘으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이를 유지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이 근육을 만들어 방송에 나오는 특수 상황에 속지 말자. 일반인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력도 군대의 유격훈련같이 한다고 단련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 가진 정신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어려운 일을 따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사실 건강 유지에는 정신력, 근육 강화보다 균형 유지가 더 중요하다. 현대에 중요한 정신 건강은 느긋한 여유로움에서 온다. 긴장과 느긋함이 반복되는 삶에서 현대인은 긴장이 과도하게 많다.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 배워야 한다고 핸드폰을 켜고 남 이야기를 듣지 말자. 새로 배운다고 성공한 사람들을 전부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쉬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그리고 몸 건강에서 중요한 것은 울퉁불퉁한 큰 근육이 아니라 평소 사용하지 않던 작은 근육들이다. 몸의 균형을 잡아 준다. 꾸준하게 작은 노력만 해도 발달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음식을 먹을 때 천천히 씹고, 앉을 때 똑바로 앉고 걸을 때 바른 자세로 한발 한발 내딛는 연습만으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들이다.이제 봄이다. 밖으로 나가 흙을 밟자. 신발을 벗고 맨발이면 더 좋다. 흙에서 올라오는 푹신한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자.

2021-03-06 06:30:00

[책CHECK]영문도 모르고 영어를 해?

[책CHECK]영문도 모르고 영어를 해?

'한국어에선 동, 서, 남, 북의 순으로 4방위를 말하는데, 영어에서는 왜 북(North), 남(South), 동(East), 서(West) 순일까'영어는 세계 공용어로 자리매김한 가장 강력한 소통 도구다. 영어학을 통해 영어가 가진 특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어떤 소리를 만들 수 있는지, 영어 단어나 문장들은 어떻게 형성돼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등을 공부함으로써 영어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영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 영어가 거쳐온 변화의 과정을 알고, 현재 세계 각지에서 사용되고 있는 영어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영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영어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264쪽. 1만8천원

2021-03-06 06:30:00

[이종문의 한시산책] 붕새도 안 부럽소 - 장유(張維)

[이종문의 한시산책] 붕새도 안 부럽소 - 장유(張維)

백로는 원래 희고 까마귀는 원래 검고 白鷺自白烏自黑(백로자백오자흑)반 희고 반 검은 건 가지 끝의 까치라오 半白半黑枝頭鵲(반백반흑지두작)하늘이 만물 낳아 그 모습을 부여한 걸 天生萬物賦形色(천생만물부형색)희고 검은 빛깔로써 선악이라 할 순 없소 白黑未可分美惡(백흑미가분미악)비단보다 더 찬란한 제 무늬에 반한 꿩이 山鷄文采錦不如(산계문채금불여)맑은 못에 비춰보다 물에 빠져 죽잖아요 照影淸潭或自溺(조영청담혹자익)가지 하나 위에 사는 뱁새가 불쌍타고? 獨憐鷦鷯占一枝(독련초료점일지)천만에! 저 하늘 나는 붕새도 안 부럽소 逍遙不羨垂天翼(소요불선수천익)* 원제: 古意 다 알다시피 백로는 희고 까마귀는 검다. 그것은 스스로의 자율적인 의지에 따른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타고난 색깔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백로는 선(善), 까마귀는 악(惡)이라며 제 마음대로 규정하곤 한다. "가마귀 디디난 곧애 백로야 가디 말아/ 희고 흰 긷헤 거믄 때 무칠셰라/ 딘실로 거믄 때 무티면 씨을 낄히(씻을 길이) 업사리라" 선오당(善迃堂) 이시(李蒔: 1569-1636)의 '오로가烏鷺歌'라는 작품인데, 이 시조도 그와 같은 인식의 소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태어나 보니 백로는 이미 백로였고, 까마귀는 이미 까마귀였다. 그런데도 날개의 빛깔을 유일한 기준으로 하여 선악을 함부로 규정하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물론 말이 될 리가 없다. 따라서 백로와 까마귀에 대한 이와 같은 일방적 인식은 피부색의 흑백을 유일한 기준으로 한 인종차별과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까 사물의 색깔은 애초부터 선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게다가 아름다운 피부색이 오히려 난데없는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장끼의 털은 아름답지만,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스스로 도취되어 물에 빠져 죽는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에 익사한 여자들도 한둘이 아니다.뭐라고, 뱁새가 붕새를 따라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수가 있다고? 정말 터무니가 없는 흑색선전이고 유언비어다.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꿀밤을 몇 개씩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변소 청소를 시킨 뒤에 이런 시를 들려주고 싶다."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느냐고?/ 그럼 수박에다 줄 지우면 호박 되나?/ 웃기네, 호박이 언제 수박 될라 카더나?"(졸시, '천만에')이종문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1-03-06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23. 안동의 맛, 고향묵집

[안동을 걷다, 먹다] 23. 안동의 맛, 고향묵집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3번째 이야기 안동의 맛. 고향묵집맛있다, 딱 맞다, 됐다, 괜찮다. 경상도식으로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말은 간단해보이지만 오묘하다. 맛있다는 것인지 그만하면 그냥 대충 먹을만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맛이 없다는 뜻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됐다'는 정도의 표현은 '맛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안동에서는 '쓰다 달다 짜다 싱겁다 혹은 간이 어떻다'는 식으로 음식에 대해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어머니의 손에서 나온 음식처럼 맛있게 받아들인다. 달착지근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다는 식의 시시껄렁한 수식이나 허세도 부리지 않는 게 이 동네의 법도다.'안동국시'의 슴슴한 맛이나 '안동간고등어' 구이나 찜의 담백함에 굳이 '자질부레한'(군더더기같은) 수식어가 붙을 계제는 아예 없는 셈이다. 있다면 북어를 다듬어서 보푸라기처럼 긁어내는 정성 가득한 '북어보푸라기'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지르는 '아'하는 탄성뿐이다.외지인들이 안동에 와서 즐겨먹는 음식 중에 '헛제사밥'이 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서 제사때 음복으로 먹던 음식을 흉내낸, 즉 '가짜 제사밥'이라는 뜻이다. 제사를 지낸 후 먹는 음식은 양념간을 하지 않아서 경상도식 표현을 빌자면 '밍밍하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랐던 음식들을 챙겨서 탕국을 끓여 함께 먹는 것이 제삿밥인데, 제사음식이 푸짐하니까 남들 보기 민망해서 헛제사를 지내고 몰래 먹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헛제사밥이라고 부르지만 한상가득 올라오는 반찬들은 여느 대갓집 주안상 부럽지 않을 정도다. 안동소주나 안동막걸리 한 잔 하기에 좋다.그렇다고 이처럼 '슴슴하고 밍밍한 그야말로 담백한' 맛을 경상도 특히 안동의 맛이라고 특징 짓거나 대표한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안동은 맛있다.'안동시내에는 도처에 웬만한 도시처럼 온갖 종류의 식당이 즐비하고 안동한우로 만든 안동갈비골목이 있고, 당면을 넣어 조리한 독특한 안동찜닭 골목도 사람들의 발길을 당긴다. 고춧가루를 넣은 물김치같은 비주얼의 '안동식혜'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권철(1503~1578)이 어느 날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 안동으로 내려와 지내는 퇴계 이황을 찾았다. 퇴계는 끼니때가 되자 손님상을 내오도록 했다. 세계 10위안에 드는 잘사는 요즘에는 종가집의 '접빈'(接賓) 음식은 정갈하면서도 품위있는 '7첩 반상'을 내놓겠지만, 퇴계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퇴계는 평소는 물론 손님이 와도 한결 같았다.말이 손님상이지, 보리밥에 산나물과 가지무침과 미역 등 반찬 세 가지가 전부였다. 퇴계는 마치 기름진 고기를 먹는 듯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반면 따로 상을 받은 권철은 한양 입맛에 맞지 않는 밥상에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퇴계의 집에서는 정승의 밥상이라고 해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선비길이 시작되는 선성현 객사에 퇴계의 밥상이 재현돼있다.이처럼 내륙 깊숙한 안동의 밥상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해산물과 젓갈류가 풍부한 전라도의 여염집 밥상에 비한다면, 퇴계의 밥상은 머슴의 밥상보다 나은 게 없었다.안동 등 경북 북부에는 종가집이 유달리 많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종가만 120여 곳에 이른다. 종가집 마다 나름의 문중음식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주조법도 남달랐다. 반가(班家)마다 손님 접대가 달랐고 제례법도 달랐다. 손님을 대접하는 '접빈'(接賓)과 조상을 모시는 제례(祭禮)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과 술이었다.이 지역에서 전해내려 온 대표적인 고(古)조리서는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 온주법 그리고 시의전서다.지금의 안동음식은 종가음식이 대중화된 측면이 강하다. '간고등어'와 '문어'가 제수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고조리서 중에서 수운잡방은 안동 군자마을의 광산 김씨 예안파의 시조 김효로의 둘째 아들인 탁청정 김유와 그의 손자 김령이 공동저술한 한문본 음식 조리서로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다. '온주법'은 내앞마을 의성 김씨 낙봉파 김시우 씨가 소장하고 있던, 1700년대 후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 한글 조리서다. 이런 종가음식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대중화된 것이 지금의 안동음식이다.그 식당, '고향묵집'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골목 안 깊숙이 숨어있는 보석같은 오래된 식당이 있다.봄비 내리는 고즈넉한 봄날에는 '배추전'이나 '부추전' 한 장 부쳐놓고 막걸리 한 잔 편안하게 마시고 싶은 그런 고향집 같은 식당 말이다.안동 신시장에서 한 블록 너머 역시 안동우체국과 안동교육청이 자리한 오래된 구도심에 속한다. 우체국 건너 그 골목 살짝 들어간 동네가 '당북동'이다. 그 골목 눈에 띄는 입구 쪽에 자리잡은 '고향묵집'이 있고 더 들어가면 돼지국밥 식당과 안동칼국수 식당 순대국밥집도 보인다.그 자리에서만 13년이나 됐다. 1997년 고향묵집이라는 상호의 식당을 열 때는 지금의 안동세무서 앞에 있었다. 고향묵집은 애초 '묵' 잘하는 식당으로 이름이 났다. '손맛' 좋은 사장님이 묵을 쑤어서 차린 식당이었는데 내 입맛에는 그것이 안동의 맛이라 느껴진다. 여기선 안동국시와 메밀묵을 주재료로 한 '태평초'가 가장 인기를 끄는 메뉴다.종편의 유명 먹방 프로그램였던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식당의 명성은 자자하다. 북어찜과 오징어와 낙지 명란젓갈 등 입맛을 돋우는 철마다 다른 젓갈과 나물무침 등 어느 것 하나 정갈하지 않은 찬은 없다.이 식당 음식의 압권은 안동이 자랑하는 적당히 삶아야 탄력 있는 문어숙회나 수육이 아니다. 겨우내 잘 저장한 제주무를 얇게 저미듯 썰어 부쳐내는 '무전'이 가장 맛있을 때가 지금이다. 경상도식 배추전과 파전은 '장물'이 아니라 초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여기 와서야 확인할 수 있다. 장물은 헛제사밥에 넣어 비빈다면 심심한 안동국시에 간을 할 때는 장물이 아니라 간장에 파 송송, 고춧가루 한 숫갈 투하한 빨간 '장물'을 넣어야 제대로 국시 맛이 난다는 것도 배운다.고향묵집에서는 특별히 메뉴를 시키지 않더라도 사장님이 알아서 주는 대로 먹는 방법도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봄비는 내리지 않더라도 오늘 같이 봄볕 좋은 저녁 무렵, 퇴근 후 낙동강을 가로질러 구도심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다가 그 식당에 들어서면 간혹 지인 한 둘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로 안동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식당이다.물오른 '무'를 적당한 두께로 잘라 전을 부치면 무가 익으면서 내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배가된다. 고향묵집에서 처음으로 '무전'을 만나는 날에는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무전 맛이 떠올랐다. 입맛은 혀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되살려낼 때 더 감동을 받는다. 아마도 경상도 지방 이외에서도 군것질거리로 무전을 해먹었을 텐데 그 기억이 생생한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순이 가까워진 어머니는 고향집에 다니러 갈 때마다 어린시절에 내가 맛있게 먹던 음식들을 기억해내서 당신이 꼬부랑 할머니가 됐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부엌에 서곤 한다.고향묵집에선 후식까지도 호사스럽다. 마지막엔 늘 안동식혜를 먹는다. 시중에 파는 '비락식혜'는 안동에선 식혜가 아니라 '감주'다. 술이 아니지만 달콤한 맛에 '단술'이라고도 불렀다. 안동식혜는 아무리 포식을 해도 소화를 도와주는 그런 엄마의 '약손'같은 후식이었다.아니면 저녁 든든히 먹고 가라며 슬쩍 내어주시는 '시레기무 비빔밥'도 고향묵집의 별미중의 별미로 꼽힌다.'고향묵집'(054-855-3077)은 간혹 예약하지 않고 갔다가 자리가 없어 낭패보기 십상이다. 안동여행을 계획한다면 2~3일 전에 미리 전화를 해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안동에는 고향묵집 외에도 유명한 먹방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있는 식당들이 꽤나 많다. 그러나 진짜 안동의 맛은 종가음식보다는 그저 시장통 한 귀퉁이에 있는 낡고 오래된 식당에서 오히려 더 제대로 느끼기도 한다.시내를 다니다보면 '간고등어구이'를 맛있게 하는 식당도 많고 안동갈비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많이 먹으면 지갑이 가벼워지는 단점이 있지만) 갈비골목도 있고, 헛제사밥이나 찜닭 혹은 안동 권씨 종가음식을 정성껏 내놓는 대감댁 같은 '예미정' 도 있다. 오래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중화반점도 안동세무서 앞의 서울식당 등 여럿 눈에 띈다. 그런 맛이 모두 안동을 맛있게 하는 다양한 맛이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3-06 06:0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이삭토스트가 대체 어떤 마케팅을 했길래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이삭토스트가 대체 어떤 마케팅을 했길래

나는 지금 글을 파는 중이다. 신문사에 팔고 독자들에게 판다. 열심히 팔아서 원고료를 벌고 싶고 나의 광고도 팔고 싶다. 그렇게 가계에 도움을 주고 싶다. 올해 유치원에 간 아들의 학비를 벌어 당연한 아빠가 되고 싶다. 생활비를 넉넉히 주는 꽤 괜찮은 남편도 포기 못한다. 아마 이 칼럼을 읽는 독자 역시 나처럼 무언가를 파는 중일 것이다.직업상 팔고 싶어 하시는 분들을 만난다. "우리 가게 빵 정말 맛있어요. 팔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 브랜드 속옷이 끝내줍니다. 근데 생각만큼 팔리지 않네요" 미팅의 내용은 주로 이러하다. 그분들이 파는 상품엔 그들의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 미팅을 진행하면 그 분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펼쳐진다. 거의 인간극장 한 편을 시청한 후 미팅은 종료된다. 미팅이 끝날 쯤 테이블 위의 스타벅스 커피를 바라봤다. 스타벅스는 어떻게 팔았을까? 어떤 광고를 만들었기에 시가총액 140조 이상의 가치를 이루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스타벅스 광고가 기억나지 않는다.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눈에 띄는 마케팅 전략이 없이도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두었을까 궁금했다.자연스럽게 마케팅의 목적에 대해 고민해봤다. '왜 마케팅을 해야할까?' '왜 이 브랜드는 마케팅에 목숨을 걸까?'하고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즉, 마케팅의 목적은 마케팅을 안 해도 되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함이다.마케팅을 안 해도 되는 브랜드가 있다.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브랜드가 있다. 우리 동네에 있는 뭉티기 집인데 간판도 작고 복잡한 골목 안에 있다. 마치 미로 찾기 하는 식으로 찾아야 된다. 그럼에도 늘 만석이다.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안 보인다. 이 뭉티기 집의 성공이유는 비단 맛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맛, 사람, 풍경, 공기, 숟가락, 젓가락, 테이블, 티슈 등 이 브랜드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의 결과이다. 맛은 기본이요, 그 외에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경험하는 모든 것의 결과물이 사람들을 열광케 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브랜딩이라 부른다.하지만 많은 창업가들이 브랜딩을 포기한다. 마케팅에는 목숨을 걸면서 브랜딩의 중요성은 외면한다. 마케팅은 매출이라는 지표로 보이지만 브랜딩은 숫자로만 평가하기엔 너무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브랜딩은 고객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일이다. 그것을 정량화하는 작업은 무척 힘들다. (이것 역시 정량화하려는 노력이 계속 시도되고 있다.)이삭토스트의 사례가 매우 흥미롭다. 솔직히 이삭토스트의 광고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퀴즈에서 나온 얘기가 무척 감동이었다. 가맹비를 받지 않는다는 점, 인테리어를 강요해 중간에서 수수료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 이런 것들이 이삭토스트의 브랜딩이 되어 버렸다. 어떠한 마케팅 전략도 이길 수 없는 최고의 브랜딩이 되어버렸다.이삭토스트 사장님은 재무제표상의 숫자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더 멀리보고 더 올바른 브랜드가 되는 노력을 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럽게 브랜딩이 되어 버렸다. 광고 회사는 이런 브랜드가 가장 두렵고 무섭다. 아무리 기획서에 컨셉, 경쟁자 분석, 마케팅 전략을 써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이 글을 보고 계신 창업가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브랜딩을 이어가라. 물론 안다. 그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렇게 해봤자 누가 알아주나 고민일 것이다. 브랜딩은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 포기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기억하라. 좋은 브랜드는 한 순간에 탄생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리더의 눈을 통해 비로소 탄생한다. 인내심이 가득한 눈으로 브랜드를 바라보라.

2021-03-05 12:00:00

[기고]한국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고]한국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끔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구시립 중앙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간다. 그날도 예전처럼 동성로를 지나는데 대구 3·1독립운동기념비가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양이 사람이 만세를 부르는 조각품 같아 신기했다. 잠시 서 있다가 손을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쳐 봤다. 그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길, 2·28민주운동 집결지라고 쓰인 표지석이 보였다. 이어지는 길목에는 동학 교조 최제우 선생 순도비도 서 있었다. 1919년 3·1독립운동, 1960년 대구 2·28민주운동, 1894년 동학농민혁명…. 농민이, 청년이 그리고 온 민족 공동체가 함께 일어나 반봉건 반외세, 자주 독립, 민주주의를 위해 소리 높여 함께한 순간들이 대구 도심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최근 100여 년의 우리 역사는 그야말로 투쟁과 전쟁의 역사였다.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김동일 교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시장과 국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장을 통해 생산과 성장을 이루고 국가를 통해서는 복지와 분배를 잘함으로써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미래를 위한 평화 통일을 꿈꾸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그럼, 새로운 세상에 희망을 거는 보통 사람들이 꿈꾼 이상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거로 돌아가 살펴보자. 먼저, 1919년 3·1만세운동, 1948년 제주 4·3항쟁, 1960년 2·28민주운동과 4·19의거,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까지…. 수많은 침략에 맞서 일어난 의병 활동과 식민지 시대 무장 독립 투쟁도 포함해 생각해 본다면 우리 민족은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민족 해방을 위해, 사회 혁신과 변화를 위해,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늘 도전해 왔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천해 온 것이다.하지만 현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났다. 여전히 남과 북은 갈라져 서로 으르렁거리고, 작년에는 남북 경협을 위해 개성에 세운 건물까지 북한이 폭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지구 곳곳에서는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고,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그러는 가운데 지구 온난화의 병폐가 세계 여러 곳에서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있다. 일본과 한국 사이 긴장도 풀릴 조짐이 없는 데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 속에서 과연 한국이 설자리는 어디일지 가늠을 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그 비전을 시민과 공동체가 만나고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도 정이 싹트고 미래 산업도 나누는 '마을'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3·1만세운동으로부터 촛불혁명까지 늘 꿈을 꾼 그 변화의 중심에는 사람과 지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도 마을 만들기를 지원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기에 마을은 숨 쉬고 있음을 다시 느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혹은 마을 방송국을 통해 음악회를 열고 전시회와 바자회 등 성금이 나오면 이웃과 함께 나누는 마을 공동체, 그리고 아이들을 살고 있는 동네에서 서로 보살피는 우리 마을 교육 나눔 사업, 주민 참여 예산 제도 등을 통해서도 지역 공동체는 늘 새로운 피를 수혈하듯 활기를 나누고 있다.이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서로 만나 소통과 대화를 나누는 마을살이야말로 지역과 사람이 중심 되는 그런 대안이 아닐까. 변화무쌍한 미래를 시민 의식과 마을 공동체의 공공성에서 그 해답을 찾는 하루다.

2021-03-04 12:01:14

[춘추칼럼] 누가 먼저

[춘추칼럼] 누가 먼저

대학 시절 어느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배가 난파되었는데 하나뿐인 구명보트에는 2명만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배우자, 아들, 나 이렇게 네 명이 남았습니다. 누구를 구명보트에 태우겠습니까?" 많은 의견이 다양한 이유와 함께 나왔다. 심지어 "아무도 타지 말고 온 가족이 같이 죽자"라는 주장까지.10여 년 전 의료 수준과 장비가 극도로 열악한 나라에 국내 모 투석회사가 혈액투석기 2대와 관련 물품을 무상으로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혈액투석이 낯선 그 나라 의사들에게 의료 기술 전수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투석기가 2대밖에 없는 그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평생 투석을 해야 하는 말기 신장병 환자 대신 1, 2주 정도만 투석으로 버텨 주면 콩팥 기능이 회복되어 살아날 수 있는 급성 신손상 환자에게만 투석 치료를 하고 있었다. 제한된 의료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전방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대량 전상자 분류는 의무부대의 가장 중요한 훈련 중 하나였다. 전쟁으로 많은 병사가 다치거나 죽은 상황에서 군의관과 위생병은 전장을 누비며 환자들에게 빨강, 노랑, 초록, 검정 표식을 달아줬다. 빨간색은 빨리 치료하면 살 수 있지만 위중한 환자, 노란색은 위독하진 않으나 조기 치료가 필요한 상태, 초록색은 가벼운 부상, 그리고 검은색은 적극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어렵거나 이미 사망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우선순위 표식을 보고 환자를 후방으로 옮겨서 치료하는데, 이 중증도에 따른 치료 우선순위 분류법을 '선별'을 의미하는 트리아지(Triage)라고 부른다.트리아지는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 군의관이던 도미니크 장 라레가 전쟁터 부상병을 치료 가능한 곳으로 빨리 수송하기 위해 '날으는 앰뷸런스'(Ambulance volante)라는 이름을 가진-비록 날 수는 없었지만 날 듯이 빨리 후방으로 환자를 옮기는-마차 형태의 운송 수단과 함께 처음 도입하여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현재 많은 응급실과 재난 현장에서 이 분류법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의료 장비와 침상, 인력이 바닥난 나라의 의사들은 끔찍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누구에게 인공호흡기와 중환자실을 우선 배분할 것인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환자로 넘쳐나던 일부 병원에서는 실제로 나이가 많거나 아주 위중한 환자는 인공호흡기 대신 산소만 공급받기도 하였다. 인력과 장비가 충분하다면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중환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자원과 인력 한계로 모든 환자에게 같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돼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에게 치료를 집중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선택적 의료 배급'(rationing care)을 선택한 것이다.하지만 어느 생명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평소 생명 존중을 최상의 가치로 삼던 의사들이다 보니 살릴 자와 죽을 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기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의 결과를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회생 가망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쏟을 시간과 인력, 장비를 살릴 수 있는 환자에게 더 집중하여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려는 '최대 다수의 최대 구명',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라는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의 재난 버전이라고나 할까.지난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맞을 것인가, 어떤 백신이 내게 돌아올까 관심도 많고 말이 무성하다. 백신 접종 순서는 희생자를 최소화하면서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코로나19를 물리치는 방향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백신 접종 순위에 빨강, 노랑, 초록 표식은 있어도 검은 표식은 없다. 전 국민에게 돌아갈 충분한 양이 확보되었다고 한다. 내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빠짐없이 맞는 일만 남았다.

2021-03-04 12:00:56

[매일춘추]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의 고찰

[매일춘추]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의 고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가 지난 3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하였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전시나 아트페어들이 무기한 연기되고 축소되어 미술시장이 상당히 위축되었다. 아트프라이스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의 연 매출 규모가 지난 5년간 최저수준으로 집계되었다. 이에 따라 2021년 첫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는 올해 미술시장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시작이라는 점에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온라인 뷰잉룸(Viewing Room), 신인 작가등용문인 줌인(Zoom-in), 아트 토크와 아티스트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이번 행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해부터 운영된 한국화랑협회의 미술품 감정위원회 안내 부스이다.한국화랑협회의 미술품 감정위원회 안내 부스는 미술품 물납제를 위해 작품 가치 산출의 신뢰도를 높여 대중들의 인식을 개선하고자 마련되었다. 미술품 물납제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상속세·재산세 등의 세금을 현금 대신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영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지난해 5월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던 국가 보물(제284호, 제285호) 2점이 상속세 납부와 미술관 운영 비용 마련을 위해 경매시장에 나온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4천900여 건(국보, 보물 포함)의 국가지정문화재 50% 이상이 개인 소유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비슷한 사유로 문화재급 유물들이 경매 시장에 나오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대목이었다.상속세 마련을 위한 문화재 거래, 미술품 물납제를 포함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1월 이광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강원 원주갑)에 의해 발의되고 최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미술소장품 가격 감정이 진행됨에 따라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재점화되었다.지난 3일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들과 여러 문화예술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대국민 건의문에는 뛰어난 미술품의 해외 반출을 막고, 예술의 대중화·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과 정부의 적극적 참여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각에서는 특혜 논란과 각종 탈세·범법행위 악용, 현금 납부액 감소로 인한 재정적 손실 등의 우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세법 개정에 앞서 물납제 대상 선정과 가치 평가의 공정성 등 제도의 취지에 맞는 객관적인 방안 연구가 구체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3-04 12:00:17

[황환수 프로의 골프 오디세이] 이른 봄 라운드의 어려움

[황환수 프로의 골프 오디세이] <48>이른 봄 라운드의 어려움

겨우내 추위에 움츠려 필드 나가기를 주저했던 골퍼들에게 본격 시즌이 눈앞에 다가왔다.춥다는 핑계로 필드를 대신해 연습장에서 부족한 기량을 연마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쉽지만은 않았다.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기온을 피부로 느끼며 지난 가을 방 한구석에 모셔뒀던(?) 골프백에 손이 자주 가는 요즘이다.불안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연습장을 찾았으나 묵은 근육의 풀림은 엉뚱한 샷으로 연이어 터져 나와 은근히 짜증과 한숨이 반복되곤 한다.해마다 이맘 때쯤 되풀이되는 이런 현상은 자칫 봄철 필드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가지면서도 조심스레 필드에 발을 내디뎌보지만 뾰쪽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게다가 올해는 '전지훈련' 삼아 겨울철 친구들이나 골프모임을 통해 동남아로 날아가 부족했던 필드 감각을 유지했던 비책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지지 못했을 터.그나마 국내 골프장들이 전통적 비수기에 코로나19 상황으로 몰려든 골퍼들을 받느라 휴장 없이 가동한 건 어쨌든 다소나마 갈증을 없애준 통로가 됐다.그럼에도, 겨울철 골프는 추위와 바람, 그리고 정상적인 컨디션의 잔디에서 경기가 불가능한 탓에 봄을 기다리는 긴 시간을 애태워야만 했다.이제 그 빗장을 풀만큼 바람이 따뜻해졌다. 오랜 숙면 같은 추위를 견디고 나선 골퍼들이 찾은 필드는 그러나 실망과 좌절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기 일쑤다.작년 가을의 샷 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진 사실을 발견하고 안절부절하기 십상이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은 일시적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느닷없이 몇 개월 만에 불쑥 필드에 나선 골퍼들은 봄철 골프 트라우마에 시달릴 공산이 매우 높다.아직 움트지 못한 잔디는 겨울철 마른 풀잎으로 건재하고 볼이 놓인 라이에서 정확한 임팩트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만약 연습 없는 몸 상태로 연이어 골프장을 찾을 경우 분명 몸이 만든 종전의 스윙에 최악의 영향을 미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탈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가장 현명한 방식은 프로와 함께 자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필드레슨이나 훈련법을 꼽을 수 있다.차선으로 필드를 다녀온 뒤 평소 골퍼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 연습장에서 자신이 파악한 스윙과 임팩트의 제반 사항을 프로와 면밀하게 상담, 재발하지 않는 방책을 고민하는 것이다.좋은 스윙과 로우 핸디를 갈망하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봄철의 라운딩은 많은 연습과 노력으로만 극복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사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골프칼럼니스트

2021-03-04 11:44:26

[기고]경북의 사회적경제, 新새마을운동 되길

[기고]경북의 사회적경제, 新새마을운동 되길

2020년 2월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한민국은 경제 불황을 겪고 있다. 기업 매출이 줄고 지속적인 고용 유지가 어려워지면서 소비가 침체됐다. 시장은 위축됐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영세한 사회적경제도 경기침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공공의 지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각 산업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회적경제의 공동체 정신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유럽에서 산업혁명 등을 거치면서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람보다 자본을 더 중시하게 됐고 괄목상대한 경제성장의 어두운 부산물로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 환경 파괴, 공동체의 해체 등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지닌 사회적경제가 유럽에서 태동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경제의 가치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과거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공동노동체 조직인 두레와 품앗이 정신이 있었다. 300년 전 "주변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면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경주 최부자 댁의 육훈(六訓)이 바로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 뜻을 같이한다. 1927년 전준한 선생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민간 최초로 설립한 상주 '함창협동조합'은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적경제 발상지로 평가된다.사회적경제가 이루고자 하는 자율적인 협력과 민주적인 자립은 경북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 아래 주민 모두가 하나로 뭉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공동체의 정신과 물질의 모든 면을 변화시키려 했던 운동이다.이와 같은 협력과 자립의 정신을 계승해 코로나를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경북 사회적경제인들은 힘을 모아 희망꾸러미 상품을 개발했다.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금해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기업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가치 실천에 솔선수범했다.경북의 사회적경제는 기업과 종사자 수 등 양적 성장뿐 아니라 민간 주도의 연대와 협력을 기반으로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덕분에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경북도는 지난해 5월 사회적기업 성장지원센터를 조성해 초기 사회적경제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를 위해 상생 거점 공간인 유통지원센터를 안동에 유치하는 등 성장 단계별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지역 기업이 다양하고 차별화된 사회적 가치 실현과 능동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20년도 사회적경제 지방자치단체 정책평가'에서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회적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 전국의 탁월 등급 21개 기업 중 경북의 6개 기업이 선정됐다."모든 기업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전환돼야 한다."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철학과 함께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마음가짐으로 이어 나가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연대와 나눔, 그리고 배려의 정신을 토대로 만들어 가는 경북형 사회적경제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21세기형 새마을운동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해 본다.

2021-03-03 11:14:46

[홍성걸의 새론새평] 무엇을 위한 검찰 퇴출인가

[홍성걸의 새론새평] 무엇을 위한 검찰 퇴출인가

검찰 개혁이란 퍼즐 게임의 마지막 조각은 이른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설치다.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일사천리로 완성한 여당은 내친김에 중수청도 밀어붙일 태세다. 검찰 개혁의 주된 이유인 검찰의 기소권 독점과 수사지휘권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검찰 중심의 형사법체계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것은 그만큼 장점이 단점보다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형사법체계는 국민 편익에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정부 여당은 검찰 개혁의 이유로 수사지휘권과 기소권 독점으로 인권을 무시한 강압 수사나 자의적 사건 조작 가능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검찰이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검찰 개혁에 따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고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진행되는 검찰 개혁은 전혀 그렇지 않다.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제한적 수사종결권이 인정되고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폐지되었다. 검찰은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을 가지며, 경찰 수사 과정의 위법 사항이나 고소인의 수사 종결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있으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 검찰은 일정 규모 이상의 뇌물죄와 횡령죄 등 6개 유형의 특수 범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사권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권 행사에 우려가 크다 보니 수사국, 형사국, 보안국, 과학수사대, 대공수사 업무 등을 포괄하는 국가수사본부를 경찰청 내에 신설하여 보완토록 했다.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병립의 결과는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검찰 개혁의 또 다른 퍼즐 조각인 공수처에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가 설치되고 처장과 차장이 임명되어 조직 구성이 진행 중인데, 문제는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민주적 통제 가능성은 완전히 정치권력의 선의에 맡겨졌다는 점이다. 설치 과정에서 야당의 거부권 행사로 처장 추천이 어려워지자 여당은 일방적 법 개정을 통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유일한 조항이었던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켰다. 최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성윤 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가 자신들이 연루된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는 것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에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다.검찰 개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중수청은 더욱 심각하다. 검찰에 남겨진 6대 중대 범죄의 수사권을 아예 없애 검찰은 기소만 담당하라는 것이다. 많은 법조인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중수청이 과연 6대 중대 범죄를 충분히 수사할 능력과 전문성을 단기간에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사권 없이 기소만 담당할 검찰이 공소 유지에 충분한 자료와 정보를 가질 수 있을까. 그 결과 범죄인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늘어나 죄인들만 유리해지고 오히려 일반 국민들의 권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뿐만 아니라 형사사법체계가 복잡해지면서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이번 검찰 개혁은 공수처와 중수청이라는 두 개의 수사 관련 기관의 신설과 경찰청 내 국가수사본부의 신설이라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곧 최소 2개의 기관 신설과 1개 본부가 새로 만들어지고 이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의 증가가 불가피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보다 나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 형사법 관련 서비스를 받는데 많은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개혁의 이름으로 검찰을 형사법체계에서 퇴출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석열 검찰의 정권에 대한 수사가 멈추지 않으니 아예 수사권을 없애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공수처와 중수청, 국가수사본부가 언제까지 집권 세력의 충견으로 남을 것으로 보는가. 그들이 행사하는 수사권이 검찰과는 달리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호랑이가 없는 산에는 늑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검찰을 퇴출시킨다고 자신이 안전해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착각이요 오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1-03-03 11:14:29

[매일춘추]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3)-나비무사 전우치

[매일춘추]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3)-나비무사 전우치

전우치는 조선 중종 때 송도에 산 기인이자 도술가다. 밥풀을 내뿜어 흰 나비를 만들고, 산수간에 노닐며 둔갑술과 몰귀술을 얻었다. 옥에 갇혀 죽은 후 이장하려 무덤을 파니 시체는 없고 빈 관만 남아 있었다. 지봉유설, 어우야담, 그리고 이덕무의 한죽당필기 등에 기인술사 전우치의 행적이 전한다. 흰여우를 잡아 비급을 얻고, 천도복숭아를 따고, 장살된 후에도 빌린 두보집을 돌려주곤 홀연히 숲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전우치는 어디로 갔을까?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혹시 전우치는 안견이나 겸재의 산수그림 속에서 벽곡하며 유유자적 살고 있진 않을까? 나는 그림 속으로 찾아가 그에게 세상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전우치는 읽던 책을 덮고 흰 구름을 한 번 쳐다 본 다음 이렇게 대답한다."이보시오. 대저 도술이라 하는 것이 기이한 현상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인데, 이제 그런 도술이 하나도 신묘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소. 생각해보시오. 축지는 땅을 접어 수백 리를 뛰는 것인데, 자기부상열차니, 날틀이니 하는 것들이 대신하고 있지 않소. 전음은 또 무슨 소용이겠소. 스마트폰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마당에. 유체이탈? 인터넷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세상이오. 둔갑술? 아바타가 처처에 출몰하는 세상에? 뿐이겠소, 평생 피나는 수련으로 분신술을 익히고, 단전호흡으로 원신을 키워낸들 D.N.A 복제와 유전자 가위를 이겨낼 수 있겠소? 나도 한때 천상계의 천도복숭아를 따고, 옥황상제의 칙사인양 왕을 속여 얻은 황금들보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였소. 허나 이제 그런 도술이 가당키나 한 세상이오? 곧 달나라 월석 수집이 사람들의 취미가 될 거외다. 하하하"나는 자세를 고쳐 앉은 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전우치에게 말한다."소인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선가에 좌도방과 우도방이 있다 합니다. 좌도는 무공이나 기 능력으로 방술, 선술과 같은 실제적 효과를 추구하며, 우도는 이(理)에 관심을 두고 사물의 본질과 근원을 이해하려 애쓴다지요. 그렇게 영화선이니, 기화선이니 나누어 부른다지만 말로 나누어 오르는 길이 다를 뿐, 어찌 그 뜻을 얻어 깨닫는 경지가 다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서쪽 무리들의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남북동서간 인간 세상에 편리함과 양생의 도를 터득하여 사이보그와 인공지능(A.I)으로 무색계 사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합니다. 허나 그들의 저 테크놀로지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비술로만 치달아 천지간의 조화와 만물의 균형이 깨어진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비록 옛 사람들의 도술을 현실에 구체화한 신묘한 과학의 힘을 모르는 바 아니나, 연단술 너머 자연과 합일하는 무한한 기쁨을 저들이 알겠습니까? 우화등선 옛 그림에 들어 상사천, 무량수를 누리시는 지극한 경지를 소인이 다 알순 없으나, 바라건대 그림 밖으로 날아올라 세상을 가로지르며 홍익인간의 뜻을 펼쳐주소서. 이제 때가 되니, 부디 동국 나비무사 전우치의 기개와 뜻을 세상에 드러내소서."의아한 눈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난 전우치의 도포자락이 나비의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3-03 11:13:56

[뷰티클리닉] 얼굴이 울긋불긋해지는 안면홍조 고민이라면

[뷰티클리닉] 얼굴이 울긋불긋해지는 안면홍조 고민이라면

걸핏하면 얼굴이 붉어져 일상생활이 불편해지는 이들이 많다. 붉어지는 얼굴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도 꺼려지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업무 수행에도 지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안면홍조'라 불리는 이런 증상들은 피부 속의 혈관이 확장되면서 피부 겉면이 붉어보이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은 어느 정도 붉어질 수 있지만 대부분 금방 색이 돌아온다. 그에 비해서 어떤 사람들은 붉어진 상태가 오래 지속되며, 이런 경우에는 치료가 필요하다.안면홍조로 불편함을 느낄 때는 먼저 혈관이 확장되는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피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외선, 심한 온도차 등의 외부요인에 의해서도 안면홍조가 잘 생기기 때문에 항상 자외선차단제와 보습제를 사용해 외부 자극인자가 피부 속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커피, 초콜렛, 술, 뜨거운 음식, 유제품, 당지수가 높은 음식, 식초, 히스타민이 많이 함유된 음식 등에 의해서도 혈관이 확장되기 쉬어 식이습관 교정도 필요하다. 감정변화나 스트레스와 같은 내부요인에 의해서도 안면홍조가 생길수 있어 마음가짐을 편히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안면홍조와 염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항생제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갑자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증상이 심한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에는 혈관수축에 도움이 되는 약물, 혹은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이미 외부자극에 의해서 피부가 손상이 되어있는 경우에는 '소노스타일러'와 같은 특수초음파장비를 사용하여서 피부보호막을 복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이미 혈관들이 확장이 많이 진행되 지속적으로 피부가 붉어 보일 때는 혈관레이저가 도움이 된다. 혈관레이저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미국 큐테라사의 '엑셀브이 플러스'레이저가 효과적이다. 기존 레이저 제품보다 큰 빔 사이즈를 사용해 레이저가 보다 깊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어 확장된 혈관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깊은 곳까지 침투하는 레이저의 특성상 붉은색뿐만 아니라 검은색도 치료가 가능해 피부톤이 한층 밝아지는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다. 레이저는 일반적으로 3-4주 간격으로 평균 5회 정도의 치료가 필요하다.물론 레이저 시술 등을 받게 되면 확장된 혈관들이 개선할 수 있지만, 안면홍조가 심한 이들의 경우 혈관이 타인에 비해 잘 확장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원인인자들을 최대한 피하고, 유지 치료를 위해 혈관레이저 치료를 6개월 정도 간격으로 한번씩 반복적으로 지속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이광준 클린업피부과의원 대구범어점 원장

2021-03-02 14:10:36

[의창] 엄마 때문이잖아!

[의창] 엄마 때문이잖아!

소아재활분야가 전공이다 보니 한 환자를 10년 넘게 보기도 하고, 갓난아기일 때 만나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될 때까지 만나는 환자도 있다. 그러다 보면 학교에서 상받은 얘기, 부부싸움한 얘기 등 그 가족의 속내까지 나누게 되기도 한다.현수 씨는 뇌병변을 가지고 태어난 경직성 뇌성마비 환자였다. 하지만 걸음걸이말고는 인지기능도 좋아서 좋은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였다.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분이었고,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현수 씨를 뺀 다른 자식들은 다 좋은 직업을 가진 것 같았다. 현수 씨는 성인 환자인데도 늘 어머니와 동행했었다. 현수 씨의 어머니에게 그 아들은 아픈 손가락 중의 아픈 손가락인 듯 했고, 엄마로써 그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훤히 눈에 다 보이는 그런 분이었다.하루는 내가 지시한 운동을 게을리하고 보행이 불편해져 내원했었다. 어머니가 진료중에 "너 앞으론 꼭 운동해라"고 한마디를 거드시는데, 현수 씨가 갑자기 벌컥하며 "다 엄마 때문이잖아! 엄마가 나를 병신으로 낳아서 이렇게 고생하는 거쟎아!"라고 말했다.순간 나도, 현수 씨의 어머니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 앉아 우시는 거였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게 마음졸이며 나이 서른 되도록 키운 엄마가 들을 얘기인가.내 환자 중에는 부모가 게임중독에 빠져서 7살짜리 누나가 1살짜리 동생의 분유를 태웠다는 얘기도 들었고, 친아빠가 딸을 성폭행해 신고당한 환자도 있었다. 그 뿐인가. 부유하고 배운 집안인데도 아이가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니 신생아실에서 바로 입양보내는 부모도 봤다. 물론 각자의 사정이 있고 힘듬이 있겠지만 적어도 현수 씨는 어머니에게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현수 씨가 장애가 있고 불편해서 힘든 거 나는 다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해요. 하지만 현수 씨 어머니는 당신을 낳아줬고,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성인이 되었는데도 비싼 대학병원까지 찾아와서 진료받게 하고, 뭐라도 해달라고 하시죠. 이 세상에서 그게 당연한 권리는 아니예요. 자기 잘못도 아닌데 아프게 태어났다고 버림받고, 빵셔틀하고, 놀림받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도 정말 많거든요. 게다가 어머니는 현수씨를 똑똑하게 낳아줬어요. 현수 씨가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제 환자중에는 뇌손상이 심해서 엄마 소리 한번 못하고 죽는 애들도 있어요. 현수 씨가 대학까지 간 게 100% 현수 씨의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내 친구중에는 5등하는데도 가정형편 때문에 자퇴한 친구도 있어요. 현수 씨는 이제껏 끼니걱정하며 산 적 있어요? 그게 현수 씨 노력때문인가요?"세상에는 본인의 힘듦에 늘 남탓을 하는 사는 사람이 있다. 누가 날 힘들게 하고, 그래서 나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힘든 사람을 주위에서 돕는 게 마땅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좌절보다는 손톱만큼일지언정 긍정을 선택하는 것, 어차피 똑같은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하는 것이 본인 마음도 더 편하고 어두운 동굴을 걸어나갈 힘도 생길 것이다.이 세상의 모든 현수 씨가 어둠을 걷고 긍정을 택하길, 그리고 희망을 선택해 이룬 성공의 기억으로 이 험한 세상에 단단히 자리매김하길 기도한다.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2021-03-02 14:10:12

[경제칼럼]성공할 수 있는 부동산 대책은 없나?

[경제칼럼]성공할 수 있는 부동산 대책은 없나?

정부가 발표한 스물다섯 번째 부동산 대책이 성공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번 대책이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 측면은 '엄청난 공급 물량'이다. 계획한 대로 분양만 한다면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오히려 공급과잉을 염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또 다른 측면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도심 역세권 공급의 경우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데다 상당수 사업지가 지정도 되지 않아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공 주도 사업이 과연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는 주장이다.두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먼저 주택 공급부터 살펴보자. 2018~2020년 지난 3년간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서를 발행한 신규 아파트 공급은 서울 3만7천 가구, 부산 3만4천 가구, 대구 5만7천 가구 수준이다. 대구의 경우 재건축 및 LH 사업까지 더하면 실질적으로 3년간 8만5천 가구를 공급하고도 주택가격 상승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서울 지역에 공급을 증대하면 반드시 집값이 안정될까? 대구를 보면서 의문이 든다.두 번째 무주택 가구수를 보자. 주택 소유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무주택 가구는 전국에 888만 가구가 있으며 서울에는 200만이 무주택 가구다. 서울의 일반 가구 중 자가 보유 비율은 49%, 무주택 가구는 51%이다. 이번 2·4 대책에서 서울에 32만 가구를 공급한다는데 과연 이번 대책으로 서울의 주택난이 얼마나 해소될까?세 번째 공급 시기를 짚어 보자. 정부는 대도시권 공공택지 조성을 통해 공급 가구수를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첫 분양을 2025년으로 밝혔다. 입주는 빨라야 2028년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당장 서울의 공급 부족이 심각한데 7년 이후의 공급으로 주택가격이 안정될까? 오히려 분양이 진행되면 토지 보상이 진행될 것이고, 이는 단기적으로 인근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는 역효과가 나타날 것이다.안타깝지만, 이번 공급 확대 정책으로도 주택가격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심리적인 안정은 일시적이고, 집값은 공급 부족으로 언제라도 급등하게 될 개연성은 충분하다.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다주택자의 출구전략이 동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2019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천145만 가구이다. 이 중 1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828만 가구(72.3%), 2주택 이상 소유한 가구는 316만 가구(27.7%)다. 이 가운데 서울은 2주택 이상 보유자가 52만 가구이다.정부 의도와는 반대로 다주택자들의 보유 주택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또한 다주택자들의 증가를 막고자 취득세를 중과하고, 팔지 않고 보유할 경우를 대비해 재산세와 종부세도 대폭 인상했지만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정권 초기 수요 억제와 더불어 공급을 확대했다면 부동산시장은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가격이 급등했다.다주택자들의 시세차익이 수억원에 이르면서 납부해야 할 양도소득세도 50%에 이르다 보니, 오히려 매도하기보다는 버텨 보겠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증여 거래가 급증하며 부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말한다. 집값을 자기들이 올린 게 아니라고, 또한 투자해서 손해를 봤다면 정부에서 지원해 주느냐고.현 법제도에서 다주택 보유자들은 매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매매를 유도해 2·4 부동산 정책의 입주 공백기에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이번 대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주택자들이 매매를 할 수 있게 출구전략을 열어 주어야 한다.첫째 부동산 중과세를 폐지하거나 한시적으로 완화해 일반적인 거래가 이루어지게 하자. 둘째 다주택자가 무주택자(조건 부합)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양도할 경우 누진세를 완화해 가격 안정을 도모하자. 셋째 정부에서 추천하는 취약계층에 저가로 장기 임대하는 다주택자에게는 보유세를 낮춰 주자.정부는 더 이상 전국 316만 다주택 가구들을 사회적 부도덕자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이들이 지금 보유하지 않고 매도할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 주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게 했을 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1-03-02 14:07:27

[매일춘추] 대구 그리고 로컬시네마

[매일춘추] 대구 그리고 로컬시네마

지난주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가 주최한 '대구, 영화 만들어-보다'라는 상영회에 온라인 중계 지원을 다녀왔다. 워낙 온라인 중계 지원을 많이 다니다 보니, '아, 또 일거리' 하는 지친 마음으로 관객과의 대화 행사장을 찾았다.그 지친 마음은 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누그러들었다. 중계 오퍼레이터로서의 본분을 잠시 잊고 진솔하고 울림이 있는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당시 오갔던 이야기 중 극히 일부를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워 이곳 지면을 통해 옮겨본다.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꿈, 열정'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섹션이었다. '그들 각자의 영화판'이라는 작품으로 초청된 김홍완 감독에게 한 관객이 "대구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어려움과 불편함"에 대해 물었다. 김 감독은 그 질문을 50번쯤 받았다며, "옛날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김 감독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대구에서 만든 독립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한국 최초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제주도에서 만든 독립영화 '지슬'이 한국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지역의 한계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었다.음악을 전공했다는 김원진 감독이 마이크를 건네받아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음악을 하면서 항상 세뇌되다시피 들었던 얘기가 '대구는 힘들다. 서울로 가야한다'였죠. 서울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야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막상 그곳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제 뿌리였어요. 그 전까지 저는 제 뿌리를 너무 등한시했고 열등감만 키워왔었던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말았으면 합니다."타자, 변방, 소수, 촌스러움… 로컬 혹은 로컬리티가 내재한 관념에 나도 모르게 함몰되었던 것은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창작의 최전선에서, 그 어떤 피해의식도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녹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대구의 감독들을 보며 안도감과 함께 경외감이 일었다.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개념 중 하나가 로컬(리티)시네마이다. 지역을 공간적 소재로만 등장시켜 단순 소비하는 영화와 달리, 로컬시네마는 공간에 대한 이해, 역사적 맥락, 지역의 정서, 개인의 기억 그리고 이를 조화시키는 작가의 고민이 녹아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진정한 의미의 로컬시네마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이들을 중계카메라로 담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좋은 행사를 기획해준 대구시민주간, 대구문화재단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3-02 11:32:48

[종교칼럼]봄, 움직임과 멈춤을 향하여

[종교칼럼]봄, 움직임과 멈춤을 향하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봄이 와 겨우내 얼어붙었던 우리네 마음에도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우리네 봄은 입춘과 함께 시작해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 경첩을 거쳐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서양의 봄은 사순절과 함께 시작된다. 그래서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사순절을 이렇게 알렸다. "여기저기 숲과 들판의 새순에 입김 불어넣고, 젊은 태양은 (봄을 알리는) 백양 자리를 지나가고, 밤새 뜬 눈으로 잠들었던 새들도 일어나 저마다 노래를 하네."사순절은 기독교 최대의 절기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 전날까지 일요일을 뺀 사십일 동안 진행된다. 올해 사순절 시작은 지난 2월 17일이었다. 지금은 사순절의 중심에 있다. 성탄절이 그렇듯이 사순절은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를 포함해 모든 기독교회가 함께 지키는 절기다. 심지어 개신교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재세례파도 함께 한다. 그만큼 사순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니는 절기다.사순절을 뜻하는 영어는 렌트(Lent)다. 렌트는 고대 영어 lencten에서 왔는데, 그 뜻이 봄철(spring season)이란 의미다. 이 단어가 고대 독일어 langiton과 연결되는데 영어로 long이란 뜻이다. 렌트는 '봄이 되어 낮의 길이가 길어지다'는 의미가 있다. 사순절은 어원적으로 '봄'이라는 좋은 날을 기다리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기독교인들은 사순절을 기도와 회개, 단순한 생활과 금식, 이웃 구제와 봉사의 생활을 하면서 기다린다. 오랜 시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사순절은 금식과 절제,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날이었다.이때가 되면 성당이든 교회든, 강단에서 들려오는 많은 당부의 말씀이 있다. 사순절 이 기간만이라도 '절제하고, 단순하게 생활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라'는 말이다. 오래전 유럽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사순절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국의 부모들은 사순절이 시작되면 그 기간 동안에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먹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당시 나는 왜 하필 초콜릿인가 했다. 요즘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영국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초콜릿이었다. 아이들은 유치가 다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초콜릿을 먹을 정도였다. 이런 어린아이들에게 영국 부모들은 사순절 이 시간만이라도 초콜릿을 절제하라고 했던 것이다.그렇게 보면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순절이 아닌가 한다. 미디어와 정부에서 쏟아내는 소리의 중심은 '소비'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수요 없는 공급이 없듯이 소비 없는 생산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소비지상주의'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는 단 한 번이라는 짧은 생이 주어져 있다. 그마저도 순식간에, 어쩌면 덧없이 지나갈 수 있다. 그 짧은 생이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데 쓰라고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동양의 고전 『대학』에 "멈춤을 안 이후에 정함이 있다(知止以後有定)"고 했다. 오늘 우리의 큰 문제는 마음의 소욕을 멈추지 못하는데 있다. 욕망을 멈추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결국에 불행해진다. 마음의 부담과 압박도 채워지지 않는 그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행복은 끝없는 욕망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제된 습관과 소박한 생활에 달려 있다.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2021-03-02 11:31:17

[세계의 창] 실질임금 높이고, 노동환경 개선 위한 최선의 방법

[세계의 창] 실질임금 높이고, 노동환경 개선 위한 최선의 방법

표준적인 경제학 교과서는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노동시간당 부가가치액) 사이에는 비례관계가 있다고 가르친다. 1995년 이전에는 노동생산성 상승이 실질임금에 잘 반영되어,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사이의 비례관계가 분명하게 관찰되었다. 그런데 1995년 이후에 많은 나라에서 노동생산성은 상승하는데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실질임금이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는 노동분배율(새롭게 창출된 부가가치 중에서 노동자에게 배분되는 몫)의 저하와 교역조건(수출하는 재화'서비스와 수입하는 재화'서비스의 상대가격)의 악화로 설명할 수 있다.저명한 경제학자인 칼도어가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 중 하나로 노동분배율이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많은 선진국에서 노동분배율의 저하가 관찰되면서 그 원인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들이 밝힌 노동분배율 저하 원인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①값싼 수입품과 생산활동의 해외 아웃소싱 영향 ②인공지능, 로봇 등과 같은 자본이 노동을 대체한 영향 ③노동절약적인 거대 IT 기업이 급속히 규모를 확대해 시장집중도 상승 영향 ④주식 배당을 중시하는 외국인 투자가와 기관투자가의 비중 증가 영향 ⑤비정규 노동자 증가로 인한 영향이다. 이와 같은 노동분배율 저하 현상과 연구 결과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필자가 히토쯔바시대학의 후카오 교수, 서강대 경제학부의 박정수전현배 교수와 공동으로 행한 연구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보이는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 사이의 괴리가 노동분배율 저하보다는 교역조건의 악화에 있음을 밝혔다. 가격하락이 크지 않은 석유, 농산물 등과 같은 1차 산품을 주로 수입하고 기술 진보가 빠른 전자제품, 자동차, 기계 등을 수출하는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빠른 기술 진보에 따른 수출품의 상대가격 하락이 교역조건을 어느 정도 악화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그런데 노동생산성 상승분만큼 실질임금이 오르지 못하는 부분의 차이를 100%로 할 경우 한국은 80%, 일본은 70%로 설명할 정도로 교역조건이 악화되었다. 이는 한일 양국의 기업이 해외직접투자로 생산의 해외 이전을 통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같은 품질의 제품을 해외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 기업의 생산활동의 해외 이전은 앞에서 노동분배율 저하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들었듯이 노동분배율의 저하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교역조건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크게 하락시킨다.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경영자에 묻는 중대재해 처벌법을 제정하는 등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줄 수 있고 노동환경도 괜찮은 기업들은 기업활동에 대한 우대가 큰 나라에 생산 거점을 이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교역조건은 오히려 악화되고, 국내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생산활동을 계속하는 한계기업만 존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길 것이다. 한국과 일본처럼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는 정보통신 제품을 많이 생산, 수출하는 나라가 실질임금과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업활동을 규제하기보다는 생산 거점으로서의 매력을 높여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게 하지 않고, 해외의 대기업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이러한 상황임에도 한국은 법인세 인상, 노동시간 규제, 최저임금 인상, 에너지 가격 인상, 산업재해에 대한 경영자 책임 강화 등으로 생산 거점으로서의 한국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몫을 높여주기 위한 정책과 제도들이 오히려 노동자의 몫을 낮추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에는 한 나라 안에서 자본과 노동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았지만, 더 높은 이익과 임금을 좇아 자본과 노동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재에는 자본과 노동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면 곤란하다. 국내에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고용, 생산, 판매하도록 하고, 기업 간에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하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환경은 크게 개선되고, 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2021-03-01 14:54:14

[기고]구 안동역과 철로에 묻힌 신라 되찾아야

[기고]구 안동역과 철로에 묻힌 신라 되찾아야

안동역사 이전으로 생겨난 철도 역사 부지와 안동 36사단 부지 이전 및 활용과 관련한 뉴스를 얼마 전 접하고, 급히 안동읍지 '영가지'(永嘉誌)를 찾아봤다. 이는 1602년에 시작, 1608년에 완성된 안동의 역사지리지로, 권기(權紀)가 찬술했다. 서애 류성룡의 권유와 안동부사 한강 정구에 힘입었다. 그는 만년에 조정에서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부모상으로 취임하지 않았다.이러한 '영가지'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담았다. 고적 조에 법흥사와 법림사를 기록하면서 모두 '지금 세 칸만 남아 있다'고 했다. '법림사에는 흙으로 만든 부처 셋과 흙으로 만든 코끼리와 사자 각 한 개씩 있다' '지당은 길이 36척 너비 10척이다. 못 가운데 돌로 만든 코끼리와 용이 있다. 청련(靑蓮)이 한 그루 있는데 30년 만에 한 번 꽃이 핀다'고 기록됐다. 고탑 조에서 '법흥사 전탑(甎塔)은 부성의 동쪽 5리에 있다. 7층이며, 본부의 대비보이다. 성화 정미년(1487)에 고쳐 쌓았는데 위에는 금동 장식이 있었다. 이고(李股)가 철거하여 관청에 냈는데, 녹여서 객사에 사용하는 집기로 만들었다. 또 법림사 전탑은 부성의 남문 밖에 있으며 7층이다. 본부의 대비보이다. (탑) 위에는 법흥사 탑과 같은 장식이 있다. 만력 무술년(1598) 명나라 장군 양등산의 군인들이 철거했다'고 기록했다.이런 법흥사 절터에는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과 중앙선 철도가 놓여 있다. 종택은 탑동파 분파조 증손 후식공이 1708년에 지은 것으로, 2004년 발행 '고성 이씨 안동 전거 연원과 문화유산' 책자 중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신라시대 거찰인 법흥사 구지를 개기하여 수많은 동자 부처와 16척의 금불상을 낙동강에 버리고 기공함에 노승이 견몽하여 '이 터는 내 터이니 아무도 집을 지을 수 없다' 하여 '기어이 집을 지으면 큰 앙화를 당할 것이다' 하고 위험함이 수차였다. 그 후 어린 두 아들이 요사함에 일시 주저하였으나 망언에 굴함이 없어 사불범정(邪不犯正)의 굳은 신념으로 공사를 강행하여 완성하였다"고 기록됐다.그렇다면 일대 어딘가 동자 부처와 금불상이 묻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7층 전탑은 기단부 팔부중상 등 면석 위에서 감실 사이에 시멘트 발린 모습이 안타깝다. 석물이 있었을 것이다. 사찰의 석물과 계단석의 일부 행방을 나 나름 추정한다. 법림사 절터는 역사 부지로 쓰였다. 전탑과 2.6m 높이 당간지주 남쪽은 시멘트 옹벽이고 그 서쪽도 둑이다. 게다가 전탑은 주변 지표보다 40㎝쯤 더 푹 꺼진 자리다. 절터와 전탑 주변을 성토했다는 의미다.필자는 '영가지' 찬술자 권기의 후손이다. 안동 읍내에서 태어나 향리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는 낡고 부족한 교실을 버드나무가 대신한 그늘에서 오전 오후 부제 수업을 받았다. 4학년 때는 두 학반 교실이 임청각 군자정이기도 했다. 중학교 땐 식목일이면 안동 주산 영남산과 벌건 황토가 드러난 36사단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었다. 가물 때는 수업을 제친 학교 측의 동원으로 지금의 안동역이 옮겨간 송야천에 하천 굴착으로 물길을 찾아야 했다.앞으로 중앙선 철도와 역사 부지 용역 과정에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리라 여긴다. 중앙선은 지표조사(매일신문 3월 1일 자)와 달리 사역과 사세를 확인하는 등 발굴조사를 실시해 혹시 모를 동자 부처와 금불상을 찾아내고, 법림사에는 연당지라도 만들어 돌 코끼리·석용·토제 부처·토제 코끼리 및 사자를 세워 묻힌 통일신라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찾는 데 시계를 되돌렸으면 한다.

2021-03-01 14:53:59

[매일춘추] 들풀처럼 일어난 대구‧경북 3‧1독립만세운동

[매일춘추] 들풀처럼 일어난 대구‧경북 3‧1독립만세운동

어제는 102년 전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통치를 극복하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펼쳤던 3‧1절이다. 3월 1일 서울과 평양 등지에서 시작된 독립 만세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나갔고 대구에서는 3월 8일에 일어났다. 3·1운동 직전 1월 21일 고종황제의 승하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유포되어 온 백성이 격앙했고 어느 지역보다 선비와 충절의 고장인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마지막 황제에 대한 애도와 망국의 비애가 크게 끓어올랐다.가장 규모가 컸던 3월 8일 대구 봉기는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이 2월 24일 대구에 파견되어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이만집 목사와 협의하여 시작되었다. 이만집 목사는 남산교회 조사 김대련, 계성학교 교사 김영서, 백남채와 상의하고 큰장(서문시장)날을 거사일로 정해 학생과 민중 동원에 착수했다. 거사에 참가한 학교는 대구고보(현 경북고등학교),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대구성경학교가 중심이 되었다. 여기에 학생과 종교인, 그리고 수많은 시민이 참석했다.조선헌병대는 이 기간 대구경북 지역에서 90회 집회가 있었고 집회로 인한 사망자 25명, 부상자 69명, 수감자가 700명이었다고 축소 발표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의 집계에 따르면 대구 사망자 212명, 부상자 870명, 수감자 349명이며 경북 의성에서 사망자 230명, 부상자 295명, 수감자 250명으로 두 곳만 합쳐도 사망자가 442명이나 되었다.거사일이 늦었음에도 그 기세가 격렬했고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는 서구자본주의 침투에 반대하여 반제국주의 기치를 든 위정척사운동이나 의병운동 이후 확산된 민중운동의 계승이었다. 대구경북지역은 임진왜란뿐 아니라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부산으로 들어온 일제의 세력이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 경제적‧군사적 요충지로 우선 공략, 잠식되어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5월부터 독립만세운동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미리 합세하지 못했던 경북 유림은 경남·북 유림을 결집하여 파리장서운동을 펼쳤다. 주축이 된 138명 유림 중 60여 명이 경북 출신이다. 한국독립청원서가 김창숙 등에 의해 파리강화회의에 비밀리에 보내어졌는데 이 사건으로 곽종석을 비롯한 수많은 유림이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3·1독립운동에 놀란 일제를 재차 강타한 사건이 파리장서운동이었다.이처럼 대구경북 3·1만세운동은 그 규모와 내용면에 있어서도 타 지역에 비할 바 못 되었다. 또 3·1만세운동 전 1907년부터 1908년 대한민국을 일본 경제에 예속시키려는 저의로 일제가 제공한 차관을 갚기 위해 범국민적 국채보상운동을 펼쳤던 곳도 이곳이다.일제에 일시적으로 나라가 빼앗겼다 해도 민족혼이 담긴 봄마저 저들이 빼앗아 갈 수 없었다. 기다리던 봄이 왔다. 대구 근대화 골목 3·1만세 운동길을 따라 그때의 함성을 들어보자.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 서상돈 고택을 둘러보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구가 새겨진 보도를 걸으며 이상화의 마음과 동화되어 보자.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3-01 14:05:43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공항"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공항"

대한민국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을까. 대통령과 여당이 사활을 건 역점 사업에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반대하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관련 부처 모두가 우려를 표한 걸 두고 하는 말이다.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부터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사업비가 부산시 주장처럼 7조5천억원이 아닌 28조6천억원에 이른다는 추산을 비롯해 안전성과 경제성, 접근성 등 7가지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신공항 추진을 위한 주무 부처의 사전타당성 검토를 거친 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해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사전타당성 조사를 간소화하고 필요하면 예타도 면제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에 반대 입장을 보인 것이다. 법무부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적법절차와 평등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다른 국책사업과의 형평성 문제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일부의 지적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일 수도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애먼 공무원들만 책임을 떠안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의 여파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문제점을 알고도 이를 지적하지 않으면 '성실의무 위반'과 '직무 유기'로 처벌될 수도 있어 알리바이를 만들어 둔 것일 수도 있다.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공무원들의 일관된 반대 의견 표명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특별법을 만들어 일사천리로 추진하는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그만큼 후폭풍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공직자들이 인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 설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졸속으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처리하고 말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경실련의 지적처럼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공항"이 될 게 뻔하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표 외에는 보이는 게 없는 법이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질주하는 그들에게 역사와 국민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2016년 영남권 5개 시도는 '동남권 신공항' 논란을 김해공항 확장으로 귀결 지은 용역 결과에 승복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이 수행한 용역 결과 가덕도 공항 건설안은 가장 낮은 점수로 백지화된 바 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세계적 전문가 집단이 내린 결론과 대국민 승복 다짐을 뒤집은 결과이다. 가덕도 신공항이 선거용으로만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4월 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대선용으로도 가덕도 신공항은 살아 있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여당이 공항 건설에 속도를 낸다면 반대할 수 없는 야당은 다시 곤궁한 처지에 몰리게 된다. 국가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최선의 방안은 내년 대선까지 가덕도 신공항 논란만 벌이다 흐지부지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공허한 약속인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정치권이 선거에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 무승부로 끝낼 수 있는 방안이다. 차선책은 지금부터라도 사전타당성 검토와 예비타당성 조사를 꼼꼼히 진행하는 것이다. 가덕도 공항을 건설하려면 전체의 80%를 인공 매립해야 한다. 바다 수심이 깊고 가파른 산을 깎아야 한다. 건설 과정의 어려움과 비용이 40조원 가까이 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이다. 환경 파괴는 물론 지반 침하를 방지하기 위한 유지 비용으로만 매년 10조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한다.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되면 바다 위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항공기 이착륙 시 위험이 가중된다는 문제부터 부각될 것이라고 한다. 2030년 항공 수요 역시 희망 사항일 뿐이다.선거 국면이 지나면 결국 국토부의 지적과 같이 안전성과 경제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올 게 분명하다. 차악은 건설을 시작하더라도 중단 시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희망 고문을 당하는 부산 시민에게는 미안한 꼼수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 차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서 그나마 정상 참작이라도 받으려면 말이다.

2021-03-01 06:30:00

[매일춘추] 낭독 독서의 매력

[매일춘추] 낭독 독서의 매력

"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요망스럽게 되지 않고, 늙은이가 글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박지원의 '연암집'에 실린 글이다. 우리 선조들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며 서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공부했다. 낭독(朗讀) 학습법이다. 근대에 이르러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대량으로 출판되면서 소리를 내지 않고 읽는 묵독(默讀)이 보편화되었다. 즉 눈으로 책을 읽으며 의미를 음미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것이다.그런데 최근 낭독 독서법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필자도 낭독을 독서모임에 활용한 경험이 있다. 독서모임에 참석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책을 미리 읽어 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책을 읽지 못한 회원들이 모임에 오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모임 방식을 변경했다. 미리 읽고 오는 게 아니라 모임에 와서 회원들이 돌아가며 책을 한 장씩 낭독하는 방식으로 했다. 낭독 독서 토론으로 바꾼 후에는 책을 미처 못 읽었다는 죄책감으로 모임에 빠지는 회원이 거의 없었다.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에서 낭독의 힘과 매력을 설파한다. 사람들은 흔히 '독서'라고 하면 '고적한 곳에서 눈으로만 읽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독서(讀書)의 원래 의미는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은 간서(看書)였다. 소리 내어 읽으면 우울한 이들은 명랑해지고, 기분이 들뜬 이들은 오히려 차분해진다고 한다. 고미숙은 낭독이 삶을 바꾸는 독서법이라고 강조한다.작년 4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도서관에서 초등학생 대상 온라인 낭독 독서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첫 시간에 아이들은 책을 읽는 목소리에 힘이 없고 숨도 가빠했다. 중간중간 끊어 읽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런데 몇 번 수업에 참여한 후에는 아이들이 변화되었다. 책을 읽을 때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낭독했고 목소리도 또랑또랑해졌고 숨도 편안해졌다.낭독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연구사례도 있다. 20대 대학생 60명을 낭독과 묵독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했다. 20분간 시집을 읽게 한 다음 10분 동안 기억력을 테스트했다. 낭독을 한 팀이 묵독을 한 팀보다 결과가 높게 나왔다. 낭독은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노년층의 치매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혀졌다. 소리를 내어 책을 읽으면 뇌의 창의적 기능과 인식 기능도 발달한다고 한다.살랑살랑 봄 바람이 부는 3월, 낭독 독서의 매력에 빠져 보면 어떨까. 산책하기에도 좋은 계절이지만 책 읽기에도 좋은 때다.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어떤 책이라도 상관없지만 고전 낭독 독서를 추천한다. 혼자 읽기에는 부담되는 책이지만 함께 소리 내어 읽는다면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2021-03-01 06: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출궁도’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출궁도’

새내기들이 새 배움터로 향하는 3월이라 '왕세자입학도첩'을 골라 보았다. 조선 23대 왕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이 204년 전인 1817년 3월에 있었다. 이를 기념하는 그림이 행사의 과정에 따라 총 6점으로 그려졌다. 첫 번째 '출궁도'는 궁을 나서는 왕세자의 행렬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성균관에 도착해 먼저 공자와 제자들의 신위를 모신 대성전에 술잔 올리는 '작헌도', 참배를 마치고 명륜당으로 가서 박사(博士)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왕복도', 배움을 허락받고 폐백을 드리는 '수폐도', 입학했으므로 수업을 받는 '입학도', 절차를 마치고 동궁으로 돌아와 조정 관료와 종친들에게 입학을 축하 받는 '수하도' 등이다. 효명세자가 9살 때였다.사실 이 입학례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왕세자 교육은 별도의 관청인 세자시강원에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효명세자는 좀 이른 나이인 4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5세 때부터 '천자문', '효경' 등을 배우고 있었다. 세자시강원에는 20여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우두머리인 사(師)는 영의정이 겸직하고, 부(傅)는 좌의정과 우의정이, 이부(貳傅)는 찬성이 겸직하는 명예직이다. 차기 왕이 될 왕세자의 스승 직함은 조정의 고위직 뿐 아니라 산림직(山林職)에도 찬선(贊善), 진선(進善) 등으로 배분되어 있다. 실제 교육은 정2품부터 정7품까지 좌우의 빈객(賓客)과 부빈객(副賓客), 보덕(輔德), 겸보덕(兼輔德) 등이 맡는다. 입학례는 성균관에서 공부하지는 않지만 왕업을 닦고 있는 왕세자가 문묘를 배향하며 유학을 존중하고, 스승을 존엄하게 생각하는 학생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는 의례이다. 대개 8세 전후에 이루어졌는데 태종 때 시작해 고종 때까지 계속되었다.긴 행렬을 화첩에 그려 넣기 위해 'ㄷ'자 형태로 궁문을 통과하는 구성으로 그렸다. 제일 위쪽에 10명의 붉은 옷을 입은 가마꾼이 효명세자가 타고 있는 여(輿)를 메고 있는데, 관례에 따라 왕세자의 모습은 그리지 않고 앉은 자리만 그렸다. 그 앞으로 시강원의 문신관료들과 호위무사들이 있고, 그 앞으로 활, 조총, 창 등으로 무장한 세자익위사 무관들이 시위하고 있다. 제일 앞은 왕세자의 위엄을 나타내는 깃발과 부채 등 의장물을 든 좌우의 행렬과 세 마리 백마, 북과 꽹과리, 산개(傘蓋) 등이다. 세 무리 130여명이 왕세자의 행렬을 구성하고 있다.이 행렬의 목적지 성균관은 조선이 1398년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시작된 교육기관이다. 인재를 길러 완성시킨다는 '성(成)', 그 인재를 통해 사회를 골고루 조화롭게 한다는 '균(均)'에 관(館)은 국가의 공관(公館)이라는 뜻이다. 왕의 공부를 경연(經筵)이라고 했고, 왕세자의 공부를 서연(書筵)이라고 했다. 공부의 유전자야말로 한국을 이룬 힘이다.미술사 연구자

2021-03-01 06:30:00

[기고]이상정 장군의 독립운동 활동과 명예 선양

[기고]이상정 장군의 독립운동 활동과 명예 선양

오늘은 102주년 삼일절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국내외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독립유공자 중 대구 출신으로 대표적인 인물 이상정 장군은 1896년 6월 10일 대구 중구 서문로 2가 12번지에서 출생했고, 호는 청남이다.국가보훈처 공훈록에 의해 독립운동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1921년부터 1923년까지 평안북도 정주(定州)에 있는 오산학교(五山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 조직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만주로 망명했다.1926년부터 1927년까지는 동만주(東滿洲)에서 중국 풍옥상(馮玉祥)의 서북국민부대(西北國民部隊)에서 준장급 참모(准將級參謀)로 활약했고, 장개석의 부대와 통합 후엔 국민정부(國民政府) 정규군 소장(少將)으로 항일전선에서 활동했다.1936년에 중일전쟁(中日戰爭)이 발발하자 중경(重慶)에 있는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원에 선출됐으나 중국 육군 참모학교의 교관으로 계속 활동하였고 1940년 9월에 광복군(光復軍) 창설을 적극 지원했다.1941년 10월에는 임시의정원 경상도의원에 다시 선출되었으며, 1942년 제34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최동오(崔東旿) 등 27명과 함께 연서로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최단기간 내에 중, 미, 영, 소 등 연합 각국 정부에 정식으로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할 것"이라는 임시정부 승인에 관한 안을 제안하였다.1942년 8월 시정부에서는 외무부 내에 외교연구위원회를 설치하고 외교 전반에 관한 문제를 연구·제공하도록 하였다. 이에 그는 신익희(申翼熙), 장건상(張建相), 이현수(李顯洙) 등과 함께 연구위원으로 선임되어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1944년에는 강창제(姜昌濟), 홍진(洪震) 등과 함께 신한민주당(新韓民主黨)을 창당하였으며, 1945년 2월에는 동당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했다.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중경(重慶)에서 중국 육군 유격대훈련학교 교관에 취임하여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으며, 중국군 중장(中將)으로 진급하여 광복 후에는 북지방면(北支方面)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도왔다.이상정 장군은 보훈학적 관점에서 보면 독립운동 명문가 집안으로 국내 최초 여성 전투기 조종사 권기옥 애국지사가 아내이고, 민족저항시인 이상화의 친형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구 출신의 영웅이다. 1947년 10월 27일 뇌일혈로 갑자기 별세하여 10월 29일 계성학교에서 가족사회장으로 하였고, 장지는 대구 달서구 대곡동 소재 상화기념관·이장가 문화관 뒤 선영 가족묘지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이상정 장군 등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시민·학생들에게 널리 알리는 명예 선양 방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세부적인 강구 방안을 제시하면 첫째, 대구 출신 독립유공자를 한곳에 모아 전시 홍보 및 학생들의 보훈 교육 장소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이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대구시가 주축이 되어 학계, 경제계, 언론계, 시민 등을 중심으로 30인 이내 TF 추진위를 구성해 적극적인 대시민 홍보와 매칭펀드 형태의 예산 지원 등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접근성이 용이한 곳에 기념관을 짓되, 기념관 내 호국보훈인물 전시관, 학생체험장, 보훈교육 학습장, 보훈영화 상영, 보훈학술 세미나 등 맞춤형 보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국적인 보훈 테마 관광파크 형태의 기념관으로 설립해야 한다.

2021-02-28 15:59:43

[안동을 걷다, 먹다] 22. 따끈한 봄 냄새 나는 '신세동 벽화마을'

[안동을 걷다, 먹다] 22. 따끈한 봄 냄새 나는 '신세동 벽화마을'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2번째 이야기. 신세동 벽화마을 이야기지금은 기차가 오가지 않는 폐쇄된 안동역. 그 안동역 건너편 영남산 아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산동네. 신세동이다.그곳에도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선가 더 짙은 쉰내나는 삶의 냄새가 배어있는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이 정겹다.아버지의 시대, 할아버지의 시대가 오롯이 남아있는 우리 시대의 박물관처럼 집들마다 보물을 가득 담고 있는 보물창고 같은 마을이다.이곳에는 조선시대부터 인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새 절이 있었다고 하여 '새절골'로 불리다가 일제식민시대에는 신세정(新世町)이 되었고 해방 후 신세동이 으로 일제잔재를 털어냈다.마을 앞에 안동역이 생긴 것은 일제치하인 1931년 10월이었다. 고즈넉한 내륙 선비마을에 검은 화통을 달고 칙칙폭폭 거리는 기적소리를 내면서 검은 열차가 들어서면서 안동역 주변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업중심지로 변했다.안동역 근처에 공설시장 신시장이 생겼고 안동역에서 신시장을 잇는 거리는 안동의 중심상업지가 됐다. 안동역 인근 평화동에는 200여채의 철도관사가 생기면서 일본인들이 몰려 사는 '1등 거주지'가 됐고 신시장을 중심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조선인들은 신세동 등 산비탈 마을에 주로 모여 살았다.지금은 산동네 달동네처럼 한적한 마을이 된 처지지만 이 마을은 안동의 역사를 지켜봤다. 마을 앞으로 '신작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신세동도 한 때 도심의 일부가 된 적도 있다.해방후 안동사범학교가 들어섰다가 그 자리는 안동시청으로 바뀌었고, 안동세무서와 경북도콘텐츠진흥원 등이 속속 들어섰다. 안동의 도심 지역은 안동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의 남쪽인 정하동과 정상동에 법원과 검찰청 등 '신행정타운'을 조성하고 옥동신도시 개발에 나서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벽화는 인류가 남긴 최고(最古)의 예술품이다. 구석기시대 최고의 벽화인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그 시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동굴벽화와 암각화에서 시작된 인간의 벽화는 구석기시대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고분벽화에 이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냥 등 수렵문화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한편 풍요와 자연에 대한 숭배 등 종교적인 벽화는 물론이고 한 시대의 삶과 사랑을 온전하게 보여주기도 한다.벽화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도심 산비탈에 위치한 오래된 동네를 되살리기 위한 '구도심재생 공공프로젝트'로 벽화로 퀘퀘한 곰팡내나던 마을에 사람들의 숨결을 불어넣으면서였다.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문현동안동네 벽화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죽어가던 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활력을 되찾자 전국에서 벽화마을 조성이 공공프로젝트로 추진됐다.동피랑마을과 감천마을 등의 벽화들이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위적인 냄새를 지우지 못했다면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은 삶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자연스러운 벽화들이 두드러진다.신세동 벽화마을 역시 2009년 공공프로젝트의 일환인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조성됐다. 소외된 도심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공미술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도록 한 것이다.동부초등학교 옆길로 들어서면 '신세동 그림에 문화마을'이라고 적힌 노란 입간판과 함께 할매점빵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벽화마을이 시작된다. '할매점빵'에서는 기념품과 간단한 생필품 등을 판다. 이 마을에는 흔하디 흔한 '동네슈퍼마켓'이 없다. '슈퍼'대신 '점빵'이 있는 마을이다.'꽃보다 우리 할매'라는 점빵 오른쪽으로 난 황토색 골목길을 따라가면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는 '그림애'가 나온다. 좁은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아이고 아지매, 어디가니껴? 무슨 좋은 일이니껴?'라고 묻는 구수한 안동 사투리를 만나게 된다. '벽화마을 구경하러 왔니더..'라고 대답해주자.지붕위로 집집마다 이어져있는 전선들이 무질서하게 뒤엉켜있는 모습도 여기서는 묘하게 사랑스러워진다. 담장들은 어른정도면 폴짝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낮아서 그저 집과 집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일 뿐이다.하늘을 향해 소리쳐주고 싶은 단어였다. '사랑해 오늘도'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던, 입속에서만 웅얼대기만 하던 사랑이 아니었던가. 오늘 여기서는 마음껏 소리질러보자. 사랑해 오늘도! 그대와 가족 그리고 세상을.그네를 타고 있는 소녀의 머리 위 지붕 위로 살찐 동네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녀석은 한 동안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제 갈 길을 갔다. 지붕사이를 훌쩍 뛰어서 말이다.벽화 하나하나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벽화마을 속 삶들이 궁금해질 때쯤 할아버지 할머니가 불쑥 그림 속에서 튀어나오곤 한다. 그 길 끝에서 동부초등학교 교사에 새겨진 할머니와 손녀손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2009년의 일상이었다. 그 왼쪽 교사에는 그 후 7년이 지나 부쩍 큰 소녀와 소년이 그려져 있다. 7년이 지난 후 할머니의 부재가 두드러져, 마음이 아팠다.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탈길이지만 마을 언덕길 중턱에는 공용주차장이 조성돼있어 혹시라도 자동차로 오는 사람들도 편하게 주차한 후에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전봇대에는 타고 오르는 나팔꽃이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뒷다리를 번쩍 든 동네 검둥개가 진짜인 듯 눈에 들어왔다. 예전 '동네개'들은 검둥이와 흰둥이 혹은 메리와 쫑이라고 부르면 한 번씩 뒤돌아봤다. 자전거를 배경으로 한 중년의 아저씨의 얼굴이 평온하게 다가왔다. 혹시 이장님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이 동네에 있었을 법한 점박이 포인터개가 묶여있는 벽화도 있었고 스파이더맨이 처마에 매달려 익살스럽게 'kiss me'라고 하는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한참 벽화를 따라 오르다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오르면 안동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발 아래 집안 풍경을 나도 모르게 훔쳐보게 된다. 저 건너집 할머니는 빨래를 널고 계시고 길 건너 정자아래에서는 봄바람 살랑살랑 불면서 마실 나온 아지매 두서너 명이 앉아서 이웃집 아저씨 험담을 하는 모양이다. 삿대질까지 해댄다.멀리서 볼 때는 때이른 소매없는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인줄 알았다. 전망대를 지키는 '하늘을 향해 망원경을 치켜 든 아가씨'였다.볕좋은 골목길에 매어놓은 빨랫줄에는 갓 빨아서 널어놓은 듯한 파란 이불과 내복에 줄무늬가 들어간 양말까지 가지런하다. 식구 구성까지도 짐작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시멘트블럭 담장을 타고 넘으려는 개구리 세 마리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궁금하고 옹벽에 다닥다닥 붙어서 벽을 타는 고양이 군상들의 모습도 눈에 확 들어온다.다시 내려오는 길에 만난 해바라기 벽화는 벌써 초여름인 듯 활짝 폈다. 난간에 앞다리를 짚고 고개를 쭉 빼고 올라선 '백구'는 마실 나간 할머니를 기다리는 모양이다.봄이 온 모양이다. 벽화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늘어나고 있다. 조금 있으면 따뜻한 봄볕 아래 마을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뒷산에서 캐내온 냉이를 다듬으며 서울로 간 큰 아들네, 부산에 시집간 딸 소식을 자랑하는 모습도 볼 수 있겠다.신세동의 봄은 그 어느 곳의 봄보다 더 반갑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2-27 06:00:00

[광장] 정원이 있는 병원을 꿈꾼다

[광장] 정원이 있는 병원을 꿈꾼다

최근 정부는 요양병원에서 수천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이들 중 70세 이상의 노인 환자들이 많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요양병원은 의학적 치료뿐 아니라 환자들이 앓고 있는 만성질환과 일상생활의 수행능력 저하 등 취약한 여건을 장기적으로 보살펴서 초기 환자의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시켜 주는 곳이다. 즉 요양병원은 질병 치료와 거주라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시설이다.일반적으로 '치유정원'이 정원을 통해 병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정원'의 개념으로 잘못 인식되는 바람에 우리나라의 병원들은 정원 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정원 자체가 암 환자를 치료하거나 부러진 다리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에게 호스피스 정원은 다시없이 소중한 명상의 장소이며, 병원 방문자와 직원들에게 정원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휴식의 장소다.이와 같은 치유 효과에 주목하여 치유정원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로저 울리히(Roger Ulrich) 교수는 병실 창으로 자연 풍경이 내다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건강을 회복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측정을 통해 입증했다. 또한 그는 환자가 나무, 꽃 또는 물과 같은 자연의 대상을 3~5분만 보아도 분노, 불안 및 고통을 줄이고 뇌의 활동을 좋게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실물이 아닐지라도 물과 나무가 있는 자연 풍경 사진을 본 환자는 추상미술을 보거나 그림을 전혀 보지 않는 환자보다 불안감이 적고 진통제가 덜 필요하다고 했다.조경가와 의료 분야 종사자들은 이처럼 의학적으로 규명된 정원의 치유 효과를 실천할 수 있는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경가 쿠퍼 마르쿠스(Cooper Marcus)는 잘 설계된 정원에서 자연과 교류하는 것이 암을 치료하거나 심하게 화상을 입은 다리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환자의 고통과 스트레스 수준은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환자는 심각한 스트레스로부터 마음을 쉬게 하고, 정서적 회복을 위해 정원을 방문하는데 그들은 나무와 꽃이 많으며 물이 있는 정원을 선호한다.그래서 마르쿠스는 병원 정원 조성의 경우 식물이 있는 녹지 공간이 최소 7대 3의 비율로, 많은 것을 권고한다. 서구의 병원은 치유정원의 존재 여부에 따라 환자들이 병원을 결정할 정도로 치유정원은 그들의 중요 관심의 대상이다. 이는 건강관리 환경을 위해 좋은 정원설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과학에 기반을 둔 정원설계가 자연적 치유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인식이 높음을 의미한다.한국의 경우, 잘 꾸며진 정원을 가진 병원이 거의 없다. 간혹 옥상정원을 갖추고 있는 대형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우리 사회도 이제 병원의 형태가 종합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간에 병원 내부에 치유를 목적으로 한 정원이 반드시 조성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환자들이 막힌 병실을 벗어나서 숲길을 걷거나, 휠체어에 앉아 휴식을 하는가 하면 방문객과 담소하기도 하고, 작은 폭포가 있는 물 공간 가장자리에 눕거나 기대어 햇살을 쪼이는 등 치유의 과정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특히 요양병원은 치료와 거주가 함께 이루어지는 시설이다. 법적 규제를 통해서라도 환자에게 자연 사용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21-02-27 05:00:00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포도나무는 인생과 닮았다!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포도나무는 인생과 닮았다!

참혹한 현실은 우리를 좌절시키지만, 역풍을 이겨낸 사람들은 세월 속에서 강하다. 부족해야 지혜가 눈을 뜨고 마음이 진실해지듯이 진정한 결핍이 곧 삶의 원동력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들이 더 깊숙이 뿌리를 내리면서 철분, 미네랄 등의 양분을 흡수해 풍부한 열매를 맺고 더 우수한 포도주를 만든다. 포도나무는 인생과 많이 닮았다.오늘날 우리는 의학 기술 등의 발달로 100세 장수가 보편화 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적으로 10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는 매우 드문 편이지만, 포도나무는 최대 약 120년까지 자랄 수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식견이 넓어지고 이를 통해 젊은 사람보다는 더 지혜로운 결정과 행동을 하게 되듯이, 오래된 포도나무는 어린 포도나무보다 뿌리를 뻗을수록 다양한 토양층의 양분을 흡수함으로써 더 복합적인 포도주의 풍미를 제공한다.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3가지 요소로 포도품종, 떼루아, 양조기법을 들 수 있다. 이 중 와인의 기본적인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포도품종이다. 유럽종 포도나무(비티스 비니페라: V.vinifera)는 세계 와인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가장 경제성 있는 포도나무 수령에 대한 정의는 불분명하다.품종에 따라서는 포도나무 수령이 너무 오래될 경우 충분한 정도의 포도를 생산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을 30년~40년 수준으로 유지하고 관리한다. 보통 수요가 꾸준히 높은 유명한 와인산지의 포도나무는 80~100년이 되기 전에 포도밭에서 사라진다. 사람이 세 살쯤 되면 제대로 걷기 시작하는 것처럼 포도나무도 3년쯤 되면 포도를 수확할 수 있다.사람도 나이가 들면 에너지가 떨어지듯 포도나무가 20년 이상이 되면, 점차 작은 알갱이의 포도가 열리기 시작하며 생산량은 감소하지만, 포도 한 알갱이 알갱이의 당도가 더 높아져 보다 밀도감 있는 포도주를 생산할 수 있다. 오래된 포도나무(프랑스어: vieilles vignes, 독일어: alte Reben)는 포도주 라벨에 종종 표기되는데 보통은 라벨에 V.V 라고 표시되며, 이 와인은 고령의 포도나무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뜻이다.인생이란, 정해진 시간 동안 많은 고난을 극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행운과 고난의 연속 드라마처럼 간절함과 희망을 향해 참고 인내하며 달려가는 마라톤과 같다. 정해진 규칙도 없고 목적지도 다르지만 저마다의 길에서 자신만의 경주를 하고 있다.포도나무도 사람과 같다. 포도나무는 긴 모래땅에서 진흙땅까지, 비옥도가 낮은 토양에서 높은 토양까지 다양한 토양에 적응하여 자란다. 포도나무의 특성은 다른 나무보다도 그 가지가 가늘고 약하지만 자기 몸을 지탱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열매를 맺는다. 포도나무는 어떤 방향으로도 가지를 뻗을 수가 있으며, 포도주의 색깔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유동적이다. 1년, 2년 해가 더할수록 그 색채도 다채롭게 변한다.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진해지는 화이트 와인과 달리, 레드 와인은 산화되면 색이 점점 옅어진다. 매혹적인 색을 띠는 레드 와인은 흔치 않지만 생기발랄한 와인부터 모든 것을 품어주는 듯 부드럽고 우아하며, 복합적인 긴 여운을 남기는 와인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찾아볼 수 있다.우리의 인생도 나만의 색깔과 향기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노력하다 보면 반전의 기회는 언제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존재하며,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그 위에는 얼마든지 많은 길이 만들어질 수 있다. 희망은 언제나 고통의 언덕 너머에서 기다리고, 현명한 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글 :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2021-02-26 14:39:00

[박창원의 기록여행] 만세 행진에 ‘까꾸리로 찍고 철봉으로 쑤시고’

[박창원의 기록여행] 만세 행진에 ‘까꾸리로 찍고 철봉으로 쑤시고’

'~새장(현 덕산염매시장 부근)날을 기해 군중의 집단적 제2차 만세 소동이 있었을 때는 일본소방서원까지 출동해서 소방용 까꾸리로 무참하게 허리를 찍는다. 철봉으로 넘어진 자의 안면을 쑤신다 해서 오히려 큰장보다 제2차 새장 만세 소동에는 상당한 희생자가 난 것이다.'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9년 3월 1일 자)사람들을 해칠 듯 앞발굽을 들 때마다 버적버적 소름이 끼쳤다. 말 등에는 무장 군인이 타고 있었다. 서문시장에서 종로를 돌아 나오는 길에서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바로 일제의 기마 헌병대였다. 헌병들은 사람들을 흩어지게 할 목적으로 말발굽을 치켜들며 위협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때마다 태극기를 들고 목이 터지라 독립 만세를 외쳤다.만세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일제는 대구에 주둔 중인 군대와 경찰을 투입해 폭력으로 진압했다. 새장날 만세 시위 때는 소방서 직원까지 동원했다. 소방용 까꾸리(갈퀴)로 시위대를 찌르며 무참하게 폭력을 자행했다. 게다가 철봉(쇠몽둥이)까지 진압 무기로 활용했다. 넘어진 시위 참가자의 안면을 쇠몽둥이로 때리고 쑤시는 등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새장은 덕산정 시장의 다른 이름으로 예전의 남문시장이었다.1919년 3월 8일은 맑고 따듯한 봄 날씨였다. 이날 대구의 큰 시장인 서문시장은 장날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중에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자주독립의 만세 운동을 벌이려 모여든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3월 첫날에 시작된 독립운동의 불꽃이 대구로 전해진 터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를 주도한 종교단체와 남녀학생들은 비밀리에 소통하며 준비를 해왔다.점심시간이 지나자 서문시장에는 사람들이 더욱 불어났다. 신명학교, 계성중에 다니는 학생 100여 명도 두루마기를 입고 모여들었다. 품속에는 고이 접은 태극기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이미 도착해있어야 할 대구고보(경북중)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도착하는 대로 선언문 낭독과 시가행진을 벌일 계획이었다.그렇다고 학생들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 있던 누군가(이만집 목사 등)가 차체 위에 올라가 선언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절반이나 읽어 내려갔을까. 일제 경찰이 들이닥쳤다. 선언문 낭독자를 무지막지하게 끌어내렸다. 돌발적인 상황에 잠시 움찔했던 만세 운동 시위자들은 곧바로 흥분했다. 치솟는 혈기를 감당치 못한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경찰에 달려들었다. 이들의 예상치 못한 저항에 놀라 일본 경찰은 뒷걸음질 쳤다.그때였다.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늦게 도착한 고보생들이 합류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전단을 뿌리고 행진을 시작했다. 어느새 만세 소리는 온 거리를 뒤덮었다. 이 광경에 놀란 것은 일제 경찰만이 아니었다. 부근 건물에서 광목을 파는 중국 상인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급히 점포 문을 닫고 몸을 피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이렇듯 만세운동의 열기는 순식간에 대구를 달구기 시작했다.첫머리에 인용한 남선경제신문 기사는 당시 학생으로 대구 만세 운동에 참가했던 독자의 회상기다. 그때는 덮어놓고 목이 메도록 만세만 부르면 독립이 되는 줄 알았단다. 독립만 되면 누구나 배부른 세상이 되는 줄 알았다는 해방 직후 민초들 이야기와 오버랩 된다. 올해는 3‧1운동 102주년이다.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2021-02-26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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