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동훈 연극 배우

[매일춘추]오디션 준비

스스로를 향해 '자기소개'를 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소개를 이름과 나이, 학력 등 흔한 형태로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적 사실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거침없이 설명할 수 있는가?연기자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오디션 현장에서 '자기소개'는 빠지지 않는다. 특히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력과 유사한 외형을 지닌 배우들의 치열한 경쟁은 자연스레 '자기소개'에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배우들이 준비해 온 연기만으로는 그들의 실력이 쉽게 과소평가되거나 과대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소개를 통해 응시자가 지닌 배우로서의 자세와 가치관, 언어적 습관을 포착하여 오디션 합격 당락을 좌우지한다. 이는 비단 오디션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회사 면접에서도 자기소개를 통해 지원자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전달해야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진짜 나'를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을 해봐야 한다. 흔히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가?' 와 같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니체의 사유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현대 철학의 포문을 연 니체는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의 비유를 통해 인간을 조망한다. 낙타는 기존의 관념과 제도에 순응하며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인간이고, 사자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규범과 제도를 벗어나 자유의지를 가지고자 하는 인물을 말한다. 어린아이는 낙타와 사자를 넘어선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삶 자체를 놀이로 받아들이는 절대적인 자유로움을 지닌 인간을 일컫는다. 이렇듯 니체는 세 단계의 변화를 통해 인간이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과 정체성에 대해 서술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느 단계에 존재하고 있는가.오늘날 우리는 사회에 얽힌 많은 규범과 제도 속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 이로 인해 스스로를 탐구하며 고민하던 어린 날의 나를 잃어가고,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사는 껍데기의 '나'만 남아 있다. 예술가가 기존의 관습과 제도에 지나치게 얽매인다면 과연 자유로운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어떤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는가.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을 가지는 것은 결국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길이다.연기 오디션을 준비하거나 시험의 합격을 위한 면접, 단체모임 등 여러 자기소개의 기회에 니체의 사유를 되짚어보며 스스로를 향해 질문해보자. 오늘날 우리를 속박하는 많은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 어린아이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보다 자유로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훈 연극배우

2019-04-23 11:26:19

하이(6·스피츠)의 재활치료 전(좌) 모습과 재활치료 후(우) 모습.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가정에서 하는 반려동물 재활 운동

하이(6·스피츠)가 휠체어를 타고 내원했다. 하이는 3개월 전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MRI 검사 결과 1번 요추부 척수에서 발생한 출혈, 염증으로 인해 척수 신경 손상이 의심되었다. 하이는 수술 대상이 아니었으며 내과적인 약물 치료, 전침 치료, 재활 치료가 병행되었고 두 달 뒤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의학적으로 신경세포는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손상되지 않은 신경세포가 일부라도 남아있는 경우, 남은 신경세포를 활성화해 운동과 감각 기능을 대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재활치료의 기본 원리이다.내과적인 약물치료와 침 치료는 수의사에게 의존하여야 할 부분이지만 재활운동은 보호자의 역할이 크다. 하반신 마비뿐만 아니라 수술 후 재활에도 도움 될 수 있는 가정 재활 운동법을 소개한다.◆1단계: 누운 자세에서의 재활 운동이는 기립이 불가능한 동물환자의 배뇨 유도, 장운동 촉진, 근육과 인대(건)의 위축 방지, 관절의 운동성 유지가 목적이다.1. 손으로 아랫배를 마사지한다. 방광이 확장된 것이 느껴지면 천천히 압박하여 배뇨를 유도한다.2. 허리 근육(췌장근)을 마사지하여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정도까지 허리를 펴준다.3. 엉덩이, 무릎, 발목, 발가락 관절을 굽히고 펴는 굴신운동을 느리게 각 10회씩 반복한다.4. 발바닥을 받쳐주며 다리를 구부렸다 펴는 운동(페달링·pedaling)을 아주 느리게 20회씩 반복한다.◆2단계: 서 있는 자세에서의 재활 운동미끄럽지 않은 바닥에서 발바닥이 지면에 밀착된 상태에서 실시한다. 털과 발톱은 깎아주는 것이 도움 된다.1. 허리 또는 엉덩이를 받쳐주어 앞다리 힘으로 버티고 서있는 자세를 유도한다. 장애가 심한 경우 스탠딩 보조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2. 뒷다리의 보폭은 조금 넓게 벌리고 발바닥을 지면에 밀착시켜 서 있는 자세를 유도한다.3. 서 있는 자세가 익숙해졌다면 엉덩이 윗부분을 가볍게 눌러주어 스쿼트 운동을 반복한다.5. 스쿼트 운동이 익숙해졌다면 손바닥으로 발바닥 패드를 받치고 페달링(standing) 운동을 유도한다. 잘 적응한다면 두 발을 동시에 실시할 수 있다.◆3단계: 걷기(Walking) 유도걷기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걷기를 즐거워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 하는 것이 도움 되며 과체중일 경우 체중감량은 필수다.1. 서 있는 자세에서 엉덩이를 머리 방향으로 살짝 밀어주면 앞발로 체중을 버티려는 반응을 보인다. 보호자는 최소한의 도움만 주면서 동물이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유도한다.2. 걷는 과정에서 넘어짐이 반복되므로 주변에 담요를 배치해 동물이 두려움 없이 넘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도록 유도한다. 보호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간식을 제공하거나 칭찬을 통해 동물이 스스로 걷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3. 걷기가 가능하더라도 굴신 운동, 페달링 운동, 스쿼트 운동은 반복한다.◆4단계: 자발적인 놀이 운동1. 보호자와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나 산책은 재활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2. 짐볼을 이용한 균형잡기, 수영, 장애물 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난이도를 높인다. 재활치료는 동물의 건강 상태가 정확히 진단되어야 하고, 수의사에게 재활의 목적과 방법을 충분히 설명 듣고 숙지하신 후 재활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활 과정에서 통증이 발생할 경우 운동은 즉각 중단하고 수의사의 검진을 받길 바란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4-23 09:52:14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호모 노마드(Homo Nomad)

우리 인간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 많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루덴스, 호모 파베르 등 실로 다양한 정의가 있으나, 지금도 새로운 정의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일찍이 인간의 본질을 '호모 노마드'(Homo Nomad)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호모'는 인간을 나타내는 말이고, '노마드'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호모 노마드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떠도는 사람, 곧 이주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우리 지역 곳곳을 다니다 보면, 외국인 이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재 대구경북의 외국인 이주민 수가 무려 10만 명을 넘어섰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이주민들 중에서 인종차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자의 약 70%정도가 정주민들로부터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우리는 종종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한 예로, 최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가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국내 팬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1966년 3월 21일부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지정하여 계도하고 있으나, 아직도 국제 사회나 우리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철학자 테일러(Paul C. Taylor)에 의하면, 원래 인종(race) 개념은 스페인어 '라자'(raza)에서 유래하며, 백인과 다른 인종을 차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이러한 인종차별은 더욱 심화되어 피부색뿐만 아니라 소득이 낮은 동남아시아 출신자나 중국 동포(조선족) 및 러시아 동포(고려인 3세), 나아가서는 혼혈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사실 대구경북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다 이주민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직장이나 유학 혹은 여타 다양한 사유로 인해 이곳으로 이주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 지역에 오래 살았던 사람도, 처음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고향을 떠나 이 지역에서 30여 년을 살고 있는 이주민이다.이렇게 조금만 넓게 생각해 보면, 국내에서 이주하였건 외국에서 이주하였건 간에 이주민이라는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반 가정이나 다문화가정이나 관계없이, 그들은 모두 이주민이고 유목민이다. 우리 인간은 고향을 떠났다는 점에서 노마드이며,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아간다는 점에서 노마드이다.따라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이란 말도 이러한 이주민들에게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조금 일찍 이 지역에 정주했다는 사실로 그들을 차별하는 행위는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우리는 한데 어울려 사랑으로 살아가야 한다.곳곳에 꽃들이 만개하여, 온갖 향기로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축복받은 계절에, 지역 이주민들을 미소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2019-04-22 18:00:00

[이은주의 잉여현실]공감의 법칙 II

'공감'을 주제로 한 교육 중에 누군가 질문을 해왔다."남편이 어제도 12시가 넘어서 술에 취해 들어왔어요.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고, 자기도 힘들 거라 생각해요. 이해는 되는데 말하기 싫고 화가 나요. 11시 넘지 않기로 지난번에도 약속을 했었는데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어요!""지금 그 말을 하면서 기분이 어떠신가요?""가슴이 쪼그라들고 슬퍼요."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가슴으로 손이 올라갔다. 그분에게 쪼그라든 가슴과 눈물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했고, 내가 들은 말 중에 나에게 울리는 말을 반영해주었다. 그리고 '공감의 길'을 안내했다.공감은 '행위'가 아니라 '심정'에 관한 것이다. 행위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끝없는 도돌이표 위를 걷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공감한다는 것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의 행위가 아니라, 생의 고단함과 실패의 두려움, 그의 꿈과 열망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내려놓고 상대가 있는 그곳으로 가려고 하지만 가지지 않는다. 무언가 가로막혀 있다. 그건 바로 좌절된 욕구들과 얼어붙은 감정들과 관련이 있다.'나는 얼마나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고 싶고, 인생을 예찬하고, 삶을 확장하고, 성장하고 싶었던가! 그 꿈이 깨어지고 나는 또 얼마나 화나고 슬프고 외롭고 무서웠던가!' 이런 나에 대한 이해와 애도의 시간들이 있어야 나답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질문했던 분은 자신은 살아오면서 남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고, 힘들다고 말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렇게 반복되면서 버틴 힘들이 자신의 몸을 긴장과 딴딴한 갑옷으로 가둔 것이다. 긴장과 갑옷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내 속의 초라한 겁쟁이를 만나야 할 용기가.안전한 공간에서 때로 눈물 흘리고 힘겨움을 탄식하면서 뭉쳤던 감정을 풀고, 위로와 지지로 재경험한다면, 당신은 자신 속에 숨은 빛을 발견하고 타인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대한 공감은 먼저 '자기공감'이라는 통로를 거쳐야만 다다르는 곳이다.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2019-04-22 18:00:00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새 말, 새 몸짓

지난 2년여간 매일신문 지면을 통해 < 老莊的 생각>을 연재했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이란 제목으로 필을 다시 들었습니다. 최 교수는 한국의 '인문학 바람'을 이끈 대표적인 철학자로 삶과 세상을 읽는 통찰과 혜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5월7일 2회에 이어 4주에 한 번꼴로 연재되는 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바랍니다.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않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새로움 정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급속하게 더 낡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한 단계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면 지금 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하강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우리는 지금 답답한 처지에 있다. 중진국의 함정이라고도 한다. 말레이시아, 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나 칠레도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우리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말들이 있어 온지 오래다. 2013년 한국 경제를 끓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면서 한국의 침체와 하락 가능성에 경종을 울렸던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2018년에 한국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재차 경고를 했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물이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상태다. 5년 전보다 물 온도는 더 올라갔다." 나는 이 말 속에서 날카로움도 읽지만 조롱도 발견한다.이런 조롱을 받을 나라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세계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박수를 보내주던 일이 그리 오래전도 아니다. 현대사에서 '한강의 기적'을 말할 때, 독일이 이룩한 '라인강의 기적'도 함께 말하지만, '기적'이라면 '한강의 기적'만이 기적이다. 독일의 그것은 있다가 없어진 것을 회복한 것이지만, 우리는 없던 것을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적을 이룬 나라고, 기적을 이룬 국민이다. 이런 기적을 이룬 나라는 사실상 인류 현대사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식민지 시절을 보내다 독립하여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는 없다.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다. 원조 받던 국가에서 원조 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도 우리가 유일하다. 자원과 기초적인 물적 토대 없이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식민지 착취를 통해서 발전의 토대를 갖췄지만, 우리는 외부의 착취 없이 우리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니 발전의 내용 또한 다른 나라와 비교 하자면 더 도덕적이다.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이는 딱 여기까지라는 점이다. 끓는 냄비 속에 있으면서도 뜨거워지는 줄을 모르는 형국이다. 기적을 이룰 정도로 그렇게 근골을 잘 사용하고 영특하던 우리가 끓는 냄비 속에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무지 속으로 빠져버렸다. 우리는 한계에 갇혔다.우리를 한계에 가둘 정도로 몸에 밴 익숙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따라 하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종속성'이다. 해방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룬 발전과 번영은 이 '따라 하기'의 속도와 효율성이 빚어낸 결과다. 우리는 물건을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돈을 벌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것을 들여와 만들어 돈을 벌었다. 우리가 만든 제도로 우리 삶을 제어하고 북돋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제도를 들여와 우리 삶을 거기에 맞췄다. 우리가 독립적으로 한 생각으로 우리의 세계관을 삼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철학을 우리의 비전으로 하며 살았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발전과 번영의 속살이다. 이 일을 세계 유례없이 잘해냈다. 그러나 '따라 하기'로 살 수 있는 높이는 여기까지다.따라 하기에 습관이 되면 삶의 태도와 사유 구조가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종속적인 삶을 살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이익보다는 명분에 집착하고, 지적이기 보다는 감각적이고, 실재보다는 도덕에 빠지며, 본질보다는 기능에 집중한다. 명분과 도덕은 정해진 기준을 수행하는 일이므로 과거의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태도에서는 미래를 여는 도전보다는 과거를 헤집는 일에 빠진다. 당연히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믿고 있는 것만을 수행하려 들지, 그것들을 바꿔 새로움을 기약하는 혁신적 도전에 나서지 못한다. 사회가 멈추고 썩기 시작하는 이유다. 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못하면, 썩는다.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면 하강한다. 우리는 조선 말기에 이미 경험했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우리가 다급한 이유는 조선 말기 다산 선생의 이 절절한 경고가 지금 우리에게 어느 하나 어긋남 없이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가 단계의 높이에서 통치력을 행사했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이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의 통치력은 감성적 민족주의에 매몰되거나 권위주의적 시대가 남긴 탐욕과 특권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과거의 운동권 이념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에서 반대쪽 진영을 부정하려는 기능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정도 이상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이명박과 노무현 사이나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 있는 수평적 차이를 수직적 차이로 착각하지 말자. 높이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같은 높이에서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로 시작한 진영이 이젠 "이건 나라냐"라는 말을 듣는다. "이게 나라냐"라고 주장한 쪽과 "이건 나라냐"라고 주장한 쪽 사이가 얼마나 멀까? 4대강 보를 만든 쪽과 허무는 쪽 사이는 또 얼마나 멀까? 같은 높이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방송 장악은 어느 정권에서나 똑같다. 안하무인의 인사, 어용 기자들의 득세, 표현의 자유 억압, 불통, 협치 실종, 권력의 청와대 집중, 낙하산 인사, 블랙리스트 등은 어느 정권에서나 모두 나타났다. 다름이 없다. 같은 높이에 있으면서는 사실 다르기가 더 어렵다. 다름이 없는 이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아무리 다르다고 각자 주장해도 모든 진영이 실제로는 같은 높이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계를 뚫고 올라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점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즉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는 이미 할 일을 다 해버린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도달할 그 높이에 이르는 도전 이외에는 가져야 할 사명도 달리 없다. 중진국의 한계에 이른 우리는 이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전술적 차원에서의 사고를 전략적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대답에 익숙한 지적 활동성을 질문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건국 세력이 산업화 세력에 의해 도태되고,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 세력에 밀려나는 과격한 운동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가 진보했듯이 이제는 민주화 세력도 도태되어야 한다. 민주화 세력도 이미 구세력이다. 민주화 세력을 도태시킬 새로운 세력의 형성을 도모해야 한다. 당연히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해진 이유다. '따라 하기'로 갈 수 있는 최고점까지 왔으니, '따라 하기'가 아닌 방법으로만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다른 결과는 다른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다. 다른 결과를 기대하며 방법과 태도를 바꾸는 것을 혁신이라고 하지 않은가.그런데 전략적이고 선진국적인 높이로 상승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문명의 파라다임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라면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1820년 대분기 이후에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의 교체는 없었다. 이 말은 한 번 후진국은 계속 후진국에 머물기 쉽고, 한 번 선진국은 계속 선진국이기 쉽다는 말이다. 각 단계를 결정하는 높이의 시선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축복이 왔다. 바로 몇 백 년 계속되던 파라다임이 깨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의 파라다임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생긴 것이다. 후발 주자들이 자신의 단계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상승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파라다임이 깨져야 하는데 우리의 국력이 가장 강해진 지금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문제는 우리가 그 축복을 직시하고 있는가의 여부와 그 축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본질보다는 기능, 실재보다는 도덕, 이익보다는 명분, 질문보다는 대답에 더 비중을 두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시선이 항상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해 있다. 미래를 여는 도전보다는 먼저 과거를 한 점 오차 없이 헤집는 일을 해야 더 진실하게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도록 훈련되었다. '따라 하기'에 익숙해지면 결국 미래보다 과거를 더 중시하게 되는 심리를 갖게 된다. 입으로는 미래를 말하지만 사실은 과거를 산다. 그래서 과거의 규정으로 미래의 전개를 제어한다. 과거에 정해진 규제로 있어본 적이 없던 미래의 변화를 제어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빅데이터의 시대에 데이터를 모으지 못한다. 초 융합 연결의 시대에 원격 의료를 막는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인 공유경제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이것은 과거로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야 진실한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우리가 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어나는 문명적인 혁명의 시기에도 과거로 과거로만 계속 회귀하려 한다. 이 절박한 시점에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인 각성을 통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각성이 없으면 여기까지만 살다 가지 이 이상의 삶을 누리지는 못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후손들에게 영광이 아니라 치욕을 물려줄 수도 있다. 진영 지키기에 빠진 우물안 개구리들은 역사의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낡은 문법을 지키는 투사들은 이제 필요 없다. 차라리 경쾌한 도전에 나서는 젊은 무모함이 더 의미 있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인데, 우리가 어떻게 되찾아 어떻게 발전시킨 나라인데, 여기까지만 살다가도 괜찮겠는가? 낡은 문법과 결별하여 새로운 문법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노래할 수밖에 없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정해진 모든 것.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모든 언어들, 모든 생각들. 백설의 새 바탕에 새 이야기 새로 쓰세. 새 세상 여는 일 말고 그 무엇 무거우랴. 새 말 새 몸짓으로 새 세상 열어보세." 최진석 건명원 원장·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2019-04-22 18:00:00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多多益善(다다익선): 오늘의 선행은 훗날 덕(德)으로 돌아 온다

많으면 많을수록(多多) 더 좋다(益善)는 말은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온다. 회음후(회음 지역의 제후) 한신(韓信)은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한고조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뒤 초왕(楚王)이 된 사람이다.고향에 돌아와 일찍이 밥 한 그릇을 먹여준 은혜를 천금으로 갚았다는 일반천금(一飯千金)의 주인공이다. 유방이 왕실의 안정을 위해 개국 공신들을 숙청할 때, 항우(項羽)의 옛 부하 종리매(鍾離昧)를 거두어 준 탓에 역모로 몰려 회음후로 좌천되었다. 필요할 땐 쓰이고 용도가 없어지면 버려진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을 당하기도 했다.유방과 한신이 장수들의 능력에 대해 나눈 대화다. 유방이 한신에게 "그대는 과인이 얼마나 많은 군사를 거느릴 수 있다고 보는가?" 한신이 "외람되오나 폐하께서는 10만쯤 거느릴 수 있습니다"고 답했다. 유방이 불쾌한 듯 "그러면 그대는 얼마나 거느릴 수 있는가?" "예, 신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흠, 그러면 그대는 어찌하여 과인의 포로가 되었는가?" 한신은 답했다. "폐하,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폐하는 병사를 거느리는 장수가 아니라 장수를 통솔하는 군왕입니다.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장수의 통솔력을 논하면서 만들어진 다다익선은 오늘날 많을수록 좋다는 뜻으로 두루 쓰인다. 다다익판(多多益辦)이라고도 한다.산불로 발생한 이재민들을 위한 기부가 이어지고 있어 마음이 훈훈하다. 세금 공제 혜택을 노리고 하는 일이라고 꼬집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선행은 다다익선이다. 지금의 선행은 일반천금의 덕행(德行)으로 돌아올 것이다.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4-22 18:00:00

[세월의 흔적] 떡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였다. 밋밋한 떡에다 다양한 문양이나 무늬를 찍어 놓으면 때깔이 나고 한층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그 같은 문양이나 무늬를 찍는 도장판을 떡살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떡본' '떡손' '병형(餠型)'이라고도 한다. 우리 겨레의 격조 높은 음식문화이자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술과 음식은 제사나 행사 때 매우 중요한 준비물이다. 그 가운데서도 떡은 명절이나 잔치 때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그 같은 연유로 해서 떡에다 무병장수․다산․부귀와 같은 염원을 담아 문양이나 무늬를 찍었다. 또한 밋밋한 떡에다 다양한 문양을 새김으로서 멋스러움을 더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떡살은 만든 재료에 따라 나무떡살과 자기떡살로 구분한다. 나무떡살은 참나무․밤나무․박달나무 등으로 만든다. 자기떡살은 사기․백자․오지 같은 것으로 만드는데, 주로 백자로 만든 둥근 모양이 많다. 특히 궁중에서 쓰던 것은 매우 고급스러운 것들이 많다. 그리고 문양은 기하학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꽃․새․나비 같은 아름다운 무늬를 음각 또는 양각으로 파서 사용한다. 예컨대 연꽃․국화․매화․석류 같은 꽃무늬가 많고, 더러는 수복(壽福)․원희(圓喜) 같은 글씨 문양도 있다.고증에 따르면, 태초부터 벽에 그리는 행위 또는 그림․문양․무늬는 의사표현 방식이자 언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치를 때 음식에다 메시지를 새겼다. 그 같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문양이나 무늬다. 이를테면 연꽃문양은 군자 또는 선비의 표상으로 사용되었고, 물고기문양은 과거 급제나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로 해서 지체 높은 집안에서는 고유의 문양이 있었으며 대대로 물려받아 사용하였다.떡살의 경우 문양이나 무늬는 가문에 따라 정해졌다. 또한 그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어 왔다. 그렇게 해서 어느 집안에서 통용이 되면 좀처럼 그 문양을 바꾸지 않을 뿐더러 다른 집안에서 빌리려 해도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정해진 떡살을 부득이한 일로 바꾸려고 하면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비로소 가능하였다. 그런가 하면 서민들 가정에서도 문양이나 무늬를 새기는 떡살은 소중한 생활도구 가운데 하나였다. 좋은 운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조선 말기에 이르러 떡집에서는 여러 가지 문양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전통을 지키는 양반 댁에서도 웬만한 것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네 살림살이 가운데 떡살을 갖추고 있는 가정을 별로 보지 못하였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4-22 18:00:00

이상길 대구시 행정부시장

[기고]대구시가 경력단절여성에게 희망을

2019년 우리는 더 이상 저출산·고령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17년 대구시 고령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처음 진입하였고, 2018년 대구시의 합계출산율이 0.99명을 기록해 인구동향조사 시작 이후 처음으로 합계출산율 1명 선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계들은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와 그로 인한 경제 잠재성장률 둔화라는 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 방안들 가운데에서도 지역사회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남성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여성 고용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다.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 고용 구조의 특징으로는 결혼·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특히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가부장적인 가치관과 경직적인 조직 문화가 여성 고용의 양적·질적인 저하를 불러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일본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4년부터 구조적인 개혁을 단행하고자 'Womenomics'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17년까지 보육시설 40만 개 확충, 2020년까지 여성 리더 비율 30% 상향 등의 목표를 세우고 집중 관리해 왔다. 그 결과 최근 일본의 25~34세 여성 고용률이 2006년 65.1%에서 2016년 74%로 빠르게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한편 우리 정부는 경력단절여성의 사회 재진입을 지원하기 위해 2008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을 제정하였으며, '노동시장 재진입 여건 개선'과 '경력단절여성 규모 축소'를 경력단절여성 경제 활동 지원의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대구시 또한 경력단절여성들의 취업 역량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우선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2009년 3곳에서 2018년 5곳으로 확대해 여성 일자리 인프라를 강화하였으며, 찾아가는 취업 지원 서비스인 'Good-Job 버스'를 운영하고, 취업 역량 제고를 위한 무료 직업교육 훈련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24일 개최되는 2019 대구여성행복일자리박람회에서는 대구시 거주 미취업 여성들을 대상으로 채용관, 정보관, 취업컨설팅관 등을 운영하여 직업 정보 제공 등 취업 기회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대구시 경력단절여성 수는 2014년 11만3천 명에서 2018년 9만 명으로 20% 감소한 반면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은 2008년 47.6%에서 2018년 52.9%로 5.3%포인트 증가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더불어 여성가족부의 2018년 새일센터사업 평가에서 3년 연속 전국 1위라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하였다.대구시는 앞으로도 경력단절여성들이 자신감을 회복해 취업 시장에 마음 놓고 진입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은 여성 누구나 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정책적 지원을 아낌없이 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대구시가 전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여성친화도시, 여성들이 마음껏 꿈을 펼쳐 나가는 꿈의 도시, 희망으로 가득 찬 희망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19-04-22 11:14:27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세계의창] 미국과 쿠바의 화해 무드는 끝났는가

미국 정부는 지난 17일 '헬름스-버튼법' 제3조에 대한 효력 발동 유예 조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헬름스-버튼법은 쿠바 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1996년 제정된 법으로 정식 명칭은 '쿠바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법'이다. 그중 제3조는 다른 외국인이 몰수된 재산을 취득하거나 그 재산을 이용해 이득을 얻을 경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환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법의 핵심 조항이다.1959년 쿠바혁명 이후 쿠바 정부가 미국인들을 추방하면서 쿠바 내 재산을 몰수했는데, 내달 2일 이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면 미국인들은 쿠바가 국유화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동안 미국은 이 법을 제정하고도 쿠바 투자가 가장 많은 유럽과 캐나다 등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6개월 단위로 효력 발동을 유예해 왔다.중남미 정책을 총괄하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날 발표에서 미국 내 쿠바인들이 쿠바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송금액을 제한하고, 가족 방문을 제외한 미국인들의 쿠바 여행을 금지한다고도 밝혔다. 이는 여행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쿠바 정부에 미국 달러가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에서다. 해외 거주 쿠바인들의 송금과 관광 수입이 쿠바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이기 때문이다.그뿐만 아니라 "먼로주의는 살아있다"며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3개국을 '폭정의 트로이카'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쏟아냈다. 먼로주의는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이 1823년에 주창한 것으로 미주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거부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실제로 멕시코와의 전쟁, 중남미 공산화를 막기 위한 민주정권 붕괴 공작과 군사독재정부 지원, 파나마 침공 등 오랫동안 미국의 중남미 국가에 대한 개입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었고, 이렇게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 되었다.그러다 9·11 테러 이후 중남미는 미국 대외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고, 트럼프 정부 역시 국내 문제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쿠바의 베네수엘라 지원,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러시아·중국과의 갈등,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과 같은 미국의 중남미 안보 개입을 불러왔다.이날 존 볼턴 보좌관이 발언한 곳은 피그스만 침공 58주년 기념식장에서였다. 피그스만 침공은 쿠바 혁명정부를 전복시켜 다른 중남미 국가로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케네디 정부가 계획한 일이었지만 실패하였고, 후에 쿠바 미사일 위기의 원인이 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쿠바와의 데탕트 종식을 선언하고, 먼로 독트린과 폭정의 트로이카를 언급한 것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는 쿠바에 대한 경고를 넘어 이제 다시 중남미에 개입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주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의도인 것이다.이에 맞서 유럽연합(EU)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미국 소송에 대한 맞소송 등의 방식으로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쿠바 정부도 헬름스-버튼법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의 쿠바 재식민지화 의도가 분명하다는 내용의 강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과거 미국의 금수 조치와 동맹국의 붕괴 등에도 쿠바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먼로주의 이후 미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이 중남미 국가들의 반미주의를 확산시켰다. 미국의 대중남미 압박 전략이 중남미 국가들 간의 혼란만 가중시켜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2019-04-22 11:14:04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매일춘추]왕관을 쓴 자의 고민

어릴 적 미스코리아 왕관은 탐나는 아이템이었다. 종이로 만들어 쓰고 놀았을 만큼.요즘은 반짝이는 왕관을 씌어주는 카메라 어플이 있긴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관을 쓰고 싶어 할 것이다. 화려한 왕관의 자태는 왕권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기똥찬 이 문장을 17세기에 세익스피어가 남겼다. 한때 이 말이 드라마 부제로 쓰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메시지 상태 창에, SNS 프로필 문구로 애용되기도 했다. 왕관을 쓴 왕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도 있고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은 16세기 말 러시아를 지배했던 보리스 고두노프의 일대기를 다룬 희곡을 탄생시켰다. 이 희곡에서 범죄를 짓고 왕위를 빼앗았다는 의혹에 괴로워한 고두노프는 "아 그대는 참으로 무겁구나, 모노마흐의 모자(왕관)여!"라고 탄식했다.'모노마흐의 모자'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모스크바의 군주들이 대관식 때 사용한 왕관으로 왕권의 상징물 중 하나이다.왕관은 리더가 쓴다. 크든 작든 조직이 있으면 왕관을 쓸 수장이 필요하다. 이 리더는 무엇보다도 빠른 결단력과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결정장애 극복중인 필자가 리더가 못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더는 하루에도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 홀로 고민의 순간도 많을 것이다. 이래서 리더의 어원이 '외롭다' '고립되다'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지, 누구에게 득이 가고 누구에게 해가 되지 않는지 고려사항이 많다.오랜 직장생활 덕분에 많은 리더들을 보아 왔다. 카리스마형, 자유주의자형 등 스타일은 다양하지만 성과를 내려는 목표의식은 일맥상통했다. 되기 어려운 것도 리더지만 되고 난 후 책임을 다해내기는 더 어렵다. 자리라는 게 높으면 높을수록 헌신해야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법이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는 속담처럼.리더 못지않게 참모의 중요성도 크다. 왕의 정치를 도왔던 참모들의 이야기는 여러 역사서에도 남아 있다. 훌륭한 참모가 위대한 리더를 만든다는 사실은 진리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항상 문제가 있는 법. 특히나 조직원들 간의 갈등은 성장의 발판도 되지만 대립으로 인해 조직을 무너트리기도 한다. 사공이 많아 산으로 배를 몰기도 하고 싸움닭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간언하는 참모들이 필요하고 조정 능력이 요구된다.정상을 오르려는 사람은 응원도 받지만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한다. 비난이 두려워 왕관을 쓰려고 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왕관의 무게가 천근만근 같아도 이겨내면 얻는 게 있을 것이라 믿는다.그런데 말이다. 지금 혹시 왕관이 아니라 종이 모자를 쓰고도 무겁다고 내던지려 하지는 않는가.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2019-04-22 11:11:00

경북도 김장호 기획조정실장

[기고] 경북도청 현판 '안민관(安民館)' 을 보며

다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지방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농상성(農桑盛)과 호구증(戶口增)을 꼽았다. 즉 무엇보다 백성들이 먹고살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며 백성들이 떠나지 않도록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인구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현재 우리는 의식주 수준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위의 두 임무는 오늘날 공무원들에게도 절실한 과제이다. 경제적 기반과 정주 여건이 잘 갖추어진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여전히 일자리 부족과 열악한 생활 인프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무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 삶을 보듬고 지역을 되살리는 사업을 추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 부처를 상대로 재원을 끌어오는 세련된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올해도 어김없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1년간의 정부 예산 농사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분주하다. 해마다 정부 예산 일정은 각 지자체가 중앙 부처에 국비 예산을 신청하는 4월부터 본격 시작된다. 지자체가 요구한 국비 예산은 5월 말쯤 부처 예산 심의 그리고 6~9월 초 기획재정부의 예산 심의를 거쳐서 국회에 제출되고 12월 본회의 통과 후 최종 확정된다.경상북도도 2020년 국비 확보를 올해 최우선의 도정목표로 삼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메가프로젝트 TF'를 구성해 60여 개의 중대형 미래 먹거리 사업을 발굴하는가 하면, 올 초에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 방향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335개 사업, 5조9천여억원의 1차 국비 건의 사업을 발굴했다. 여기에 운동화와 점퍼 차림으로 한 달에 1만㎞ 이상씩 현장을 누비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민선 7기 실용주의 리더십이 도청 전반에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도 한껏 고조되어 있다. 그럼에도 주변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가적으로는 경기 상황이 불확실한 데다가 올해부터 중앙-지방 간 재정분권 차원에서 국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이양하는 첫 단계로 지방소비세 비중이 높아졌다. 중앙정부 재원이 지방으로 일부 옮겨오는 등 중앙정부의 세입 호주머니가 예년만큼 넉넉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하지만 이런 여건들이 결코 국비 확보의 무조건적인 걸림돌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우선 경북도와 시군은 과연 정부 정책과 산업 변화의 빠른 흐름을 읽고 세련된 프로젝트를 정교하게 개발하여 왔는지, 중앙 부처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치밀하게 고민하여 왔는지를 스스로 채찍질해 볼 필요가 있다.아울러 한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던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프로젝트가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의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연내 입지 결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듯 5월부터 시작되는 험난한 국비 확보 레이스의 성패도 이처럼 우리의 확고한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전방위적 노력에 달려 있다.경북도청 본관에는 '안민관'(安民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우리 공무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뛰어야만 하는 이유인 농상성과 호구증 임무의 근본적인 목적도 결국은 도민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이다. 우리의 이정표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되새기고, 도와 시군이 함께 올해의 국비 확보 레이스를 위하여 힘차게 운동화의 끈을 조여 매어 볼 때다.

2019-04-21 16:46:47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당부하지 마시라

누구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는대한민국 국민의 대표 될 수 없어국민에 '당부하겠다' 말하지 말고'부탁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해야 제국주의가 몰려오던 서세동점의 시대, 고종은 대신(大臣) 수십 명만으로 조선을 지켜내려 했다. 당연히 힘에 부쳤지만 그래도 궁궐 밖의 다른 선비, 다른 백성과는 의논하거나 소통하려 들지 않았다. 대개의 양반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어도 백성의 힘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그들에게 백성은 훈육의 대상이지 자신들처럼 조선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서구 열강과 바로 옆 일본이 제각기 수천만 시민계급의 힘을 바탕으로 강력한 무기와 남아도는 힘을 분출하며 짓쳐들어오던 때였다. 그 어마어마한 힘과 맞서야 함에도 고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매국노 이완용,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우국지사 이범진 등의 근왕주의자들에만 의지해 국체를 보존하려 했다. 양반이라도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빼고 여자는 말할 것도 없이 빼고 대다수 상민(常民)도 빼야 했으니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것밖에 안 된 건 어찌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유림, 즉 선비들에게도 함께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충절의 선비, 매천 황현(黃玹)도 그랬다. 그는 경술년의 국치가 있자 "나라가 500년이나 사대부를 길렀음에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하나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할 노릇이 아니겠는가?"라며 음독 자결했다. '무궁화 이 강산이 속절없이 망하였구나'라는 절명시를 남긴 그가 동학교도들을 동비(東匪) 또는 비적(匪賊)이라 칭하며 비하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니 신분의 벽은 그만큼 두껍고도 높았다.모든 백성의 힘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도 세계사적 격랑 속에 버티고 서 있기조차 힘든 19세기 후반이었다. 이래서 저들과는 함께 못 하고 저래서 이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하니 그렇게 해서 나라를 지켜낸다는 건 기실 가당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 나름 애쓰며 버티던 왕과 그의 신하들은 자신들의 안녕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일제에 나라를 넘겼다.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않았던 그들에게 백성의 존재는 마지막 순간까지 머릿속에 없었다.하지만 그렇게 버려진 백성들은 스스로 일어나 자신들이 주인인 나라, 즉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웠다. 과정은 길고 힘들었지만 그 간난의 세월은 전과 달리 평민과 양반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했다.경북의 혁신 유림들은 솔선해 노비를 해방시키고 가진 재산 모두를 송두리째 독립운동에 바쳤다. 평생 한학을 갈고닦은 유학자였음에도 먼저 나서 수학과 과학 등의 서양 학문을 배웠고 나이 어린 제자에게도 진심으로 존대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는 동지로 대했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양반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되었다.1917년, 예관 신규식(申圭植) 등은 '대동단결선언'에서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바로 민권이 발생한 때임을 밝힘으로써 나라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1919년 3월, 그 나라의 주인들은 선언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사실이었음을 3·1만세운동으로 증명했다. 이어 4월 11일, 이국땅 상하이에서 민주와 공화를 기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임시헌장 제1조로 채택했다.그로부터 지금까지 100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제 누구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는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없고 시민과 함께하지 않고는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을 수 없다. 정치를 하겠다면 그 마음이 참이든 거짓이든 형식과 절차만큼은 따라야 하고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국민이 분명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어느덧 내년이면 총선이다. 미리 말하건대 '소통하겠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라. 나라의 주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부탁처럼 말해야지 시혜처럼 말하면 안 된다.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의 주인인 왕과 소통하려 신문고를 두드리고 격쟁을 해가며 고생고생 애를 태웠다. 그리고 만약 선출되거든 국민에게, 시민에게 '당부한다'는 말하지 마시라. 유권자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나라를 위해, 지역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당부'가 아니라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게 맞다. 100년 전에 이미 결정된 일이다.

2019-04-21 15:46:1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갓바위 불상에 관한 단상(斷想)

팔공산 주 능선 동편 끝자락 관봉(冠峰, 853m) 정상부에는 갓바위 부처로 불리는 보물 제431호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2015년 국립공원연구원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00여 평도 채 되지 않는 관봉 정상부의 갓바위 불상을 보기 위해 연간 약 250만 명(경산 쪽에서 오르는 사람 178만 명, 대구 쪽에서 오르는 사람 72만 명)이 방문한다는 공식 통계가 있다.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의 탐방객 수를 보여주고 있어 세계문화유산급에 해당하는 중요 문화재다.평면적 신체 탄력성이 약해 8세기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게 불교미술사적 해석이다. 본 불상은 7세기 후반과 8세기 중반에 각각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아미타여래좌상)과 국보 제24호이자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석가여래불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선본사 사적기'를 발굴하여 그 내용을 불교신문에 게재한 기사(2013년 5월 15일)를 보면 이러한 추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전략) 이 불상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승려들만 불상을 보고 발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남녀들도 깊은 신심을 일으켰다. 이것은 의현(義玄) 화상의 공(功)이고 불일(佛日)이 멀리 비추어준 덕(德)이라 할 것이다.-도광 원년(1821, 순조 21년) 하안거 해제일에 쓰다. 이때의 주지 범해(梵海)가 분향하고 삼가 쓰다-"의현 대사는 화랑의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 법사의 제자로 전해져 오던 인물이다. '선본사 사적기'에서 의현 대사의 실명이 사실로 밝혀져 갓바위 불상 조성 시기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금까지는 불상이 9세기에 조성되었고 불상 머리 위에 얹혀져 있는 갓 모양의 평평한 돌은 후대인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선본사 사적기'의 기록과 최근에 밝혀진 갓 모양의 바위에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보상화 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기존의 판단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상 머리에 얹혀져 있는 갓모양의 돌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라면, 불상은 통일신라 이전 시기에 조성돼야 논리적으로 맞다. 부연하면, 갓바위 불상은 7세기경에 조성되었고, 갓 모양의 넓적한 돌은 8세기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 불상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의 영향을 받아 갓바위 불상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갓바위 불상의 영향을 받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석굴암 본존불이 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불상의 왼손에 작은 약합이 있어 약사여래불로 인식되어 왔으나 실은 약합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이며, 갓을 쓰고 있어 미륵불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대좌(臺座)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갓바위 불상은 돌 하나조차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불교적 자연 존중 사상이 오롯이 녹아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바라건대,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갓바위 불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이 함께 공유할 날을 기대해 본다.

2019-04-20 03:30:00

영화 '일레인의 영웅적 행위(The exploits of Elaine)'(1914)의 한장면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1920년대 조선과 위기에 빠진 서양 아가씨 이야기

1910년대 미국에서는 위기에 빠진 아가씨 구출기를 다룬 연속무성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와는 달랐다. 전체 내용을 부분 부분 잘라서, 한 부분을 영화관에서 일주일 간 상영하고 나면 다시 그 다음 부분을 일주일간 상영하는 일종의 연속극 형태였다. 상영이 모두 마무리 되고 나면 작가가 내용 전체를 책으로 엮어서 출판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책 역시 영화만큼이나 미국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아서 벤자민 리브의 탐정소설 '일레인의 영웅적 행위(The exploits of Elaine)'(1915)이다. 탐정 소설 '일레인의 영웅적 행위'는 1921년 '엘렌의 공(功)'이라는 제목으로 김동성이 번역하여 조선에 소개한다.번역소설 '엘렌의 공(功)'은 탐정소설이라고 하지만 셜록 홈즈류의 정통추리물과는 달랐다. 총격과 손에 땀을 쥐는 추격, 격투와 같은 액션은 물론, 여기에 탐정 크레이그 케네디와 아름다운 의뢰인 엘렌 간의 달콤한 로맨스까지 더해져서 오히려 로맨스 모험소설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대호평에 이어 일본에서도 영화와 소설 모두 소개되어 큰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조선에서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일단 사건 해결을 위해 제시되는 어려운 화학용어라든가, 복잡한 과학적 설명이 당시 조선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다.이와 더불어 여주인공 엘렌의 행동거지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엘렌은 자산가의 딸로 교양을 익힌 인물이지만 정숙한 양갓집 아가씨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케네디 탐정과 공공연하게 애정을 주고받는가 하면 일촉즉발의 위기도 마다않고 모험에 뛰어드는 등 적극적이고 활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모습이 보수적인 조선사회의 정서에 맞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양에서 불어온 자유연애 바람과, 여성 해방을 다룬 입센의 '인형의 집'이 조선 젊은이들 마음을 휘젓는 통에 조선 어른들의 심사가 불편하던 터였다.번역가 김동성이 수많은 탐정물 중에서 '일레인의 영웅적 행위'를 번역작으로 선택하고, 동아일보가 귀한 지면을 내어 이 소설을 연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동성과 동아일보 모두 조선이 낡은 의식을 벗고, 새로운 근대문물을 받아들여 힘을 지니기를 원했다. 그 힘을 쌓고, 또 쌓아서 조선이 독립국이 되기를 원했다. 그 새로운 문물에는 남녀평등, 여성의 해방이 들어 있었다. 새로운 조선 건설은 미국유학을 통해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 돌아온 식민지 지식인 김동성에게 부과된 소명이었다. 그리고 삼일운동의 열망 속에서 창간된 민족지 동아일보가 담당해야 할 사명이었다.1920년대의 조선은 지식인도, 언론도 새로운 조선 건설을 이루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명감은 이데올로기도, 지방색도 뛰어 넘어 모두를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해주었다. 그렇다면 2010년대 우리의 언론과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 어떤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4-18 14:51:19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매일춘추] 운명이라 하여도 

어떤 개는 집 밖에서 집을 지키는 일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고 여름에는 더위에, 겨울에는 추위에 힘들게 지내야한다. 어떤 개는 재롱만 떨면서도 좋은 밥을 얻어먹고 여름 겨울이 있는 줄도 모르며 호사를 누리며 산다. 어떤 개는 호사를 누리다 주인에게 버려져 골목길 쓰레기통을 뒤지며 산다. 태어날 때는 그냥 어미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살아가는 길은 너무나 다르다. 이런 개팔자를 알 수 없어 그저 그 개의 운명이라고 한다. 운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세상으로 나왔는데 어떤 사람은 부유한 집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뭐든지 해도 잘 되고 어떤 사람은 죽어라 해도 일이 잘 안 풀린다. 운명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운명이라고만 하기도 어렵고 운명이라고 하며 포기하기도 어려운 게 인생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로 이어지면 운명이라고 방관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서글픈 운명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비록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하더라도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이 아닐까 싶다. 운명에 기대거나 굴복하는 것보다는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 더 의미롭다.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이 더욱 힘들게 사는 듯하다. 나라에서는 로켓을 쏘아 올리고 아이들은 값비싼 스마트 폰을 수시로 바꾸는 풍요하기만 한 세상에 힘들다는 말이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들게 사는 듯 보인다. 지독하게 경쟁을 요구하는 시대에서 어른들은 가족을 위해,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무엇인가를 밤늦도록 해가면서 바쁘기만 하다. 그래서 '느리게 사는 법'이라든지, '마음의 치유(힐링)'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는 게 힘이 든다는 말은 지금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통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고,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그렇고, 식물들도 그럴 것이다.무릇 생명 있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외롭고도 처절한 존재방법을 언제나 찾을 것이다. 그래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것이 부처이고, 이들의 삶이 법문이요, 경전이라 나는 믿는다. 고달픈 존재들의 처연한 삶 자체가 종교라 믿는다.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세상의 길을 살아내면서 운명을 이겨내는 존재들을 보아라. 시지프스를 따로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대견하고 위대한 그대들인가. 고통 속을 살아가는 그대가 부처다.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2019-04-18 13:48:08

[기고]4차산업혁명시대의 교육

어느 날 베트남 호찌민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에게 "나도 거기에서 일본어나 가르치면서 한번 살아볼까" 하니 그녀는 "너는 여기 오면 수학 가르쳐야 할걸"이라고 했다. 호찌민의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도 수학이 그렇게 인기라니. 한국 교육의 힘이란 물리적인 장소와 상관없이 이국에서도 꿋꿋이 이어지고 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는 '스카이캐슬'이 너무 재미있다며 이제 시청할 시간이란다.최근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하며 열풍을 일으켰다. 현 교육의 실태를 낱낱이 드러낸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 대부분의 리뷰는 우리 아이가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대한민국 부모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어떠한 자세로 우리 아이를 이끌고 교육해야 하는지 난감해지는 시점이다. 입시 경쟁이라는 교육 구조 속에서 사교육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부모들의 일그러진 욕망으로 지나치게 학벌에 집착하고 나아가 특정 직업을 부추기는 사회, 과연 이대로 교육을 이어가도 좋은 것인가. 부모로서의 입장과 교육자로서의 입장 차이가 내 안에서도 너무나도 큰 괴리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세상은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정부와 교육부는 그 나름 발 빠르게 교육 개정에 반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인 '융합'을 반영한 협동과 협력이라는 형태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5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말도 등장하는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교실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보다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 한다.일본에서는 동아리 활동을 의미하는 '부카츠'(部活動)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독특한 학교 문화가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부카츠가 학교생활의 일부이며 자녀의 참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일본의 학생들은 부카츠라는 단체 활동에서 협력과 융합을 자연스레 몸에 익힌다. 한편으로 일본 교육계에서는 부카츠의 어두운 면, 블랙 부카츠에 대한 지적이 계속돼 개선 보완하자는 분위기이다. 어찌 되었든 이것이 지금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아닌가 한다.그러나 한국 교육 현장에서는 실제로 동아리 활동이 일본만큼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일본 학생의 70%가 중고교 시절을 보내면서 부카츠 활동에 전념하는 데 비해 우리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입시 경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일본의 한 여행사는 나가사키의 하우스텐보스와 지바에서 운영하는 '이상한 호텔'을 소개하고 있다. 로봇이 프런트에서 4개 국어로 대응하며 피곤을 모른 채 24시간 가동된다. 이 로봇들이 호텔 경영을 얼마나 효율화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대응 과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AI)의 진화로 일도 일하는 방법도 급속히 바뀌기 시작했다.2000년대에 PC가 OL(Office Lady) 의 삶을 바꿔 놓았듯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우리 아이들에게 AI 혁명 속의 교육, 즉 지금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변화의 가속도를 생각하면 학교 선택의 기준도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진다. 이미 일본에서는 2년 전부터 AI 시대에 강한 중고교 선택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2019-04-18 13:41:11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손을 씻는 일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우리 훌륭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거예요. 성실한 연구자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해야 하는 걸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사회역학 연구를 통해 탁월한 결과물을 내고 있는 저자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훌륭한 연구자'가 아니라 왜 '성실한 연구자'일까?의사이자 저술가인 아툴 가완디 역시 성실함을 강조한다. 그는 다양한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로서 필요한 덕목을 담은 책 '어떻게 일할 것인가'(곽미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8)에서 우선적으로 '성실함'을 강조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매년 미국인 200만 명이 병원 입원 중에 감염되고 그중 9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감염 예방 측면에서 의사들이 지켜야 할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손을 씻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의사들이 이 단순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 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언제부터인가 성실함의 가치는 폄하되거나 부정되어 왔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성실함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볼 때 긍정적일 수 없었다. 아울러 독재 정권과 같은 비정상의 사회에서 역시 개인의 성실함은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어쩌면 성실함은 본래 갖고 있는 내재적 가치를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국면과 현실에 맞게 그 가치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우리의 삶은 평면적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떠 있는 수많은 추측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실'이 있다는 것마저도 망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증거'와 '증언'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편에서는 비방과 비난, 혐오와 저주의 언어가 난무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기쁨과 행복과 쾌락을 이야기한다. 둘의 공통점은 뿌리가 없다는 것이다.우리는 더 이상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말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왜 구분해야 하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는 혼돈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구분과 갈래가 없는 상태에서 남는 것은 발악 아니면 침묵뿐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고등 교육을 통해 우리가 듣고 배운 지식은 구체적인 현장과 사실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수단이 아니라 타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동안 사회적으로 성실함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데에는 성실함을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나 자질 정도로 폄하한 탓이 크다. 사실 성실함의 가치는 지극히 사회적인 것에 있다. 앞에서 지적한 우리 사회의 한계와 문제점은 성실함의 공백을 보여준다. 성실함은 '사실'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다.1595년(을미년) 4월 29일 이순신은 일기에 '새벽 2시부터 비가 내렸다. …노윤발이 미역 99동을 따왔다'고 썼다. 김훈 작가는 100동이 아니라 '99동'이라는 숫자에 주목한다. 이순신의 정신이 바로 이 사실에 입각해 있으며, 그 사실의 힘으로 전쟁을 치른 것이라고 했다. 고문과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적어도 신에게 아직도 12척이 남아 있다"고 보고한 것도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순신의 언어와 행동은 사실에 기초한 성실함에서 나왔다. 성실함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하지 않은 삶을 잘 살아내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성실함은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사실은 곧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꾸준함을 통해 드러낸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알아가고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일을 잘하는 것이다. 그것은 '손을 씻는 일'과 같다.

2019-04-18 11:54:35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다듬이 방망이 소리

해방 뒤 한동안 야경꾼들이 밤 중에 대구 시내 주택가를 순찰 다녔다. 그러나 야경꾼이 도둑을 잡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나무 막대기 두 개를 딱딱 소리 나게 두드리며 다녔으니 도둑이 잡힐 리가 없다. 도둑 예방이 목적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도둑이 무서운 집들은 밤 중의 딱딱이 소리는 반갑고 정다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에 도둑들이 훔치는 것은 기껏해야 댓돌에 벗어둔 신발이나 줄에 널어 논 빨래. 부엌의 냄비나 식기, 장롱 속의 옷가지나 금반지 등으로 요즘 보면 돈도 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뭘 그렇게까지 방범에 신경 썼는지 모르겠다. 이제 야경꾼들은 없어졌다. 요즘은 고관대작이나 갑부들 집에 가면 물방울 다이어, 금 괘, 달러 등 훔칠 것이야 많겠지만 간 혹은 그들 자신이 도둑인 경우도 있으니 야경꾼이 누굴 지켜야 될 지 모르는 탓에 그런 직업이 없어진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야경꾼 소리는 한밤중 밖에서 들리는 소리였지만 초저녁에 집에서 밖으로 울리는 소리도 있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다. 옛 어른들이 세 가지 기쁜 소리는 '어린애 우는 소리', '책 읽는 소리' 그리고 '다듬이 소리'라고 했다. 요즘은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는 바로 끄집어내어 입는 시대가 되었다. 빨래 기술도 좋아지고 옷감도 좋아지니 풀 먹이고 다듬질할 겨를이 없다. '빙허각 이씨'가 가정 살림에 관한 내용을 쓴 '규합총서(1809년)'에 '도침법'이 나온다. 비단은 대왕 풀을 먹이고 무명과 모시는 오미자 물에 풀을 풀어 섞어 먹어야 되며 명주는 달걀흰자를 녹말풀에 섞어 쓰라고 나온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푸새' 또는 '푸답'이라고 하는데 풀은 주로 쌀풀이나 밀가루 풀을 썼다. 쌀이 귀해 감자 풀이나 피쌀 풀을 쓰기도 했다.다듬잇돌은 화강석, 남석 같은 단단한 돌을 주로 썼고 방망이는 박달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야문 나무로 만들었다. 다듬이질은 옷감의 구김살을 펴고 부드럽게 하기 위한 방법인데 옷이 촉촉할 때 걷어서 손으로 대강 만져 편 다음 우선 발로 밟는 발 다듬이를 한다. 그렇게 한 뒤 옷감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린다. 다듬이질은 한 사람이 양손에 방망이를 잡고 두드리는 솔로와 두 사람이 양손에 방망이를 쥐고 마주 앉아서 맞다듬이질을 하는 듀엣이 있다. 듀엣으로 방망일 질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보노라면 그 유연한 몸짓과 음악적 가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내려치는 속도와 강도의 일정함과 방망이가 서로 부딪치지도 않고 고르게 내려치는 모습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섬세한 연주를 보는 것과 같다.다듬이질은 가을이나 겨울의 겹옷이나 솜옷 등의 옷감과 이불 홑청을 간수 하기 전에 다듬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다듬이질은 주로 늦가을 한철과 겨울철에 하였다. 야문 돌위서 연주되는 빨래 방망이의 연주는 울안에서 골목으로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어린 애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취객들은 그 소리에 귀가를 재촉하였다. 다듬질할 때 부르는 민요는 별로 없다. 거제도 동부면 가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다듬이 소리 정도가 전해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닥또닥 다듬이 소리/그 다듬이 듣고 나나/요내 귀가 짱짱하네. 또닥 닥 다듬이 소리/골골마다 울려 퍼져/ 우리 님 간장을 다 녹인다."대구 북구청에서 금호강 가다 보면 침산(오봉산이라고도 부른다)이 있다. 그 침산의 '침(砧)'자는 다듬잇돌이라는 뜻인데 타지인들 중에 엔간히 한자를 안다는 사람이라도 그 글씨를 잘 읽을 줄 모른다. 오래전 기자들이 써준 육필 원고를 아나운서들이 읽던 시절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침산동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나운서가 "점산동에서…."라고 발음하는 것을 보았다. 한문으로 원고를 휘갈겨 써준 기자나 읽을 줄 모르며 대충 발음하는 아나운서나 둘 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자 쪽이 더 잘못했다는 생각을 했다.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9-04-18 11:40:06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매일춘추]내일로 가는 전통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렇다. 사랑도 변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 그래서 오늘날의 국악도 변하고 있다.변화하는 국악의 모습은 오래된 미래, 젊은 국악이라는 키워드로 기획되는 수많은 컨텐츠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동네에서 활동하는 젊은 연주자들의 시도와 도전, 고군분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혁신, 융합, 창의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단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대로부터 전통을 물려받은 후예들이 그 변화를 만들고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참으로 지루하다' '역시 국악은 고루하다' 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누가 들어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지향했고 충분히 배우고 펼치며 그 시기를 잘 보냈다. 듣기 좋고 누구나 함께 부르고 즐길 수 있는 친근함이 바탕이 되는 작업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그러다 언젠가 공연 속에 갇혀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순간 '아차' 싶었다. 재미를 쫓으며 놓친 것이 있지 않았을까. 다시 고민했다. 내가 선 자리와 앞으로의 방향에 비추어 이제 어떤 작업을 해야 좋을까. 템포가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주제가 무거우면 어때. 알려지지 않은 노래라도 괜찮아. 그렇게 국악밴드에서 6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함께 하며 역시 배우고 깨쳐가며 시기를 잘 보내오고 있다.돌아보며 생각한다. 아차 싶었던 때의 무대도 그 후에 또 다른 무대들도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었고 변화를 고민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충분했었다고.변화를 거쳐 다다른 지금도 고민한다. 하고 싶은 노래와 무대에 대하여, 더불어 즐겁고 재미있는 무대에 대해서도, 창작이라는 압박과 틀을 조금 내려놓고 보다 전통의 재료 고유특성을 살릴 수 있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무대는 어떤 무대일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고민의 결실을 실현시킬 역량과 열정을 가지고 있나.나의 경험이 전체를 대변한다 보긴 어렵겠지만 우리음악을 마주하는 대중들의 시선과 이 시대를 사는 젊은 국악인들이 있는 한 아마도 과거로부터 걸어온 우리음악의 발자취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되돌아가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장르와 동행을 하기도 하며 어찌 하였건 계속 변화에 변화를 거듭 할 것이다.우리의 전통은 과거에 뿌리를 묻고 현재로 자라나와 내일로 꽃을 피우고 있는 듯 하다. 그 꽃이 빨간 꽃이건 노란 꽃이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중과 지금을 함께 살며 시대에 맞추어 생겨나고 사라지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변화에 보다 많은 눈과 귀가 주목해주기를,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길 바라본다.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2019-04-18 11:32:08

계성고가 소장한 정점식의 1956년 작 '상황' 합판에 유채, 98.8x55.4cm

[김영동의 시대와 미술]궁핍한 시대의 모더니스트

풍족한 생활에서 창작된 작품보다 역경에서 빚어낸 작품이 더 감동적일 때가 있다. 더구나 물질의 바탕 위에 이루어지는 미술작품에서 시대와 환경의 악조건을 무릅쓴 놀라운 성취를 거두는 것은 아이러니이자 예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예술작품이 물질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반하여 특히 가난과 곤경이 오히려 예술정신과 감각을 벼려서 빛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우기도 한다.1953년 대구 USIS에서 열린 정점식의 개인전에 당시 지역 인사들이 보인 반응 속에 그런 자각과 찬사가 담겼다. "작품의 예리한 지성! 화가적 소질도 훌륭하지만 위축과 퇴폐와 괴멸의 복판에서 불안과 초조와 절망의 막바지에 서 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그의 성취가 가능했다는 사실에 얼마나 눈물 날 일인가."(유시원) 일제 강점기의 굴욕과 억압 그리고 6.25의 참상을 겪은 뒤라 이런 감격들이 나올 만했다. 당시 30여 점의 출품작들을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토르소'(1952), '계성고 풍경'(1953) 등 그 무렵의 작품들로 독특함과 새로움을 짐작은 해볼 수 있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56년에 만든 이 작품에서는 매우 지적이고 세련된 화풍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선으로 만든 평면적인 추상작품인데 율동적인 리듬감과 간결하고 축약적인 구성이 사뭇 매력적이다. 마치 두 사람이 부둥켜안은 모습 같은데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한 가닥의 선으로 모두 이어진 독특한 창안은 종이 위의 한 점에서 출발하여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는 '그리기 놀이'에서 착안했거나 혹은 유년의 '실뜨기 놀이'를 연상케도 한다.1917년생인 정점식선생은 시대적 환경적 빈곤을 견디고 승리한 대표적인 예술가다. 화가로서의 활동 경력은 스무 살 경 1936년 대구 조선민보사가 주최한 제1회 남조선미술전람회에 '어느 못가(池畔)에서'를 출품한 무렵부터다. 그 후 1937년 자동차 드로잉 한 점과 1939년 8월 토함산과 석굴암 일대를 여행하며 남긴 스케치들이 전한다. 그리고 1941년 겨울 북만주로 가 1946년 5월까지 6년 가까이 하얼빈에 체류했다.미국공보원 전시는 모더니스트로서 귀향해 거둔 첫 번째 개가였다. 이듬해 계성학교 교사가 되어 화단의 관행적인 화풍에 저항하는 참신한 지성은 더욱 예리해졌고 모더니즘 작가로서 한층 촉망받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훗날 "사방의 공격으로부터 추상을 지키며 이해시키는데 진력했다."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추상을 옹호한 것만으로야. 1950년대의 그를 본다면 차라리 '식민주의를 극복할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화가로 평가될 일이다.미술평론가

2019-04-18 10:16:28

[권미강의 생각의 숲]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것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20대를 거쳐 30대가 되고도 그 말의 진심을 파악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거기에 더해 말씀하셨다. 불혹이 되었을 때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알 수 있다고. 그 말을 미국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링컨 대통령이 했다는 것을 아셨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경험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누구의 생각이든 얼굴에는 그 사람의 궤적이 담겨 있고 그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하고 잘 살아내야 한다.잘 산다는 건, 부와 명예, 권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가진 게 없어도, 사회적 지위가 변변치 않아도 존경받는 사람이 있다. 흔히들 그런 사람을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귀천 없이 사랑할 줄 알고, 지위를 떠나 누구든 공경할 줄 알고, 어려운 이를 돌볼 줄 알고, 타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줄 줄 아는 사람. 사람다움을 그대로 품고 있는 사람은 얼굴에서 빛이 난다. 눈은 맑고 선하며 항상 사람 좋은 미소를 입가에 담고 있다.얼굴은 타고났지만 마음은 살면서 만들어 간다. 얼굴이 도화지라면 마음과 행동은 물감과 붓이다. 그게 인상(印象)이다.416이라는 숫자만 봐도 먹먹해지는 날인 4월 16일. 얼굴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분노했다. 소중한 자식과 가족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그들은 총과 칼보다도 더 무서운 무기를 던졌다. 낫지 않은 상처를 도려내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얼굴에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은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다짐을 했다. 덕이 부족한 사람, 부끄러움의 깊이를 모르는 사람은 국민도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겠다. 프리랜서 작가

2019-04-17 18:00:00

이숙현 동화작가구미금오유치원 원장

[책마담] 삶을 돌보는 글, 쓰기

지난달 어느 아침, 유치원 책상 위에 낯선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신문에 실린 글, 잘 읽으셨다며 어떤 분이 다녀가셨어요." 마음에 불이 댕겨졌습니다. 둘레가 환해졌어요. 새봄, 여린 잎 맑은 연둣빛처럼 싱그러운 기운이 솟았습니다. 찰나, 마감 직전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치며 낯빛이 파리한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지요. 웃음이 번졌습니다. 이어 입안에 맴도는 한 문장. "삶은 글을 낳고/ 글은 삶을 돌본다."얼마 전, 지역 내 독립책방 '책봄'에서 만난 은유 작가가 자신의 책, '글쓰기의 최전선'에 선물처럼 적어준 글이었지요. 두 줄짜리 한 문장은 책을 읽는 내내 소리가 되어 가슴에 메아리쳤습니다.여든 앞에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인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오랜 시간 삶으로 품은 말들이, 또박또박한 글씨로 종이에서 걸어 나와 읽는 이의 가슴에 콩콩콩 발자국을 새기는 것 같았어요.-김명남 씀.공부를 하니 젊어졌다고 합니다/ 글을 읽어도 쏙 들어오고 숙제도 재밌습니다/ 문자 못한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합니다// 성격도 활달하게 변하고 말도 잘하고/ 공부가 나를 달라지게 했습니다// 생전 처음 그림을 그렸습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도 글로 썼습니다/ 책이 나오고 서울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갑자기 방송, 신문, 잡지에도 나왔습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자식들한테 보냈습니다/ 자식들은 우리 엄마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식들하고 대화도 많아졌습니다/ 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인 것 같습니다연필과 사인펜, 색연필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그린 할머니들의 그림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색도 힘도 구성도 조화도 남다릅니다. 처음 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겹고 멋진' 그림들. 일주일에 한 번씩, 왕복 여섯 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오가며 그림 수업을 이끈 김중석 그림책 작가는 최근 이 책을 널리 알리려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다녀왔다지요. 이 놀라운 여정이 당신과 닿고 닿아서, 또 어떤 시간들로 이어질지 새삼 궁금해집니다.미지의 시간 헤아리는 마음에 떠오른 책 제목, '나오니까 좋다'. 백 권도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려온 김중석 작가가 쓰고 그린 반가운 그림책, '나오니까 좋다'. 책을 만난 아이들 말이, 책 이름을 잘 지었답니다. 책 보니까 좋다! 노니까 좋다! 먹으니까 좋다! 깔깔거리며 말놀이 즐기는 아이들. 마침, 지역에 처음 생긴 그림책방 '그림책 산책'에서 작가를 초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늦은 오후, 아이들과의 짧은 만남을 부탁드렸어요. 기꺼이 마음 내어 유치원에 와 주신 작가님. 그 덕분에 책 속 매력적인 주인공, 고릴라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릴라는 하루아침에 뚝딱, 태어난 것이 아니었어요. 이제껏 작가가 그려낸 고릴라 그림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대학생 때 그린 첫 번째 고릴라에서 달라지고 달라진 수많은 고릴라 그림들을 마주하며, 은유 작가의 한 문장을 새롭게 떠올렸습니다. "삶은 그림을 낳고, 그림은 삶을 돌본다."'마감은 힘들지만, 당신에게 닿으니까 좋다'라고 써봅니다. '삶을 돌보는 글 쓰니까 좋다'라는 문장을 살아내고 싶다 바라봅니다. 마음 나누는 이들과 함께 쓰고, 쓴 글 자박자박 소리 내어 읽으며, 글이 몸을 거니는 순간들 누리는 분들 많아지면 좋겠습니다.간절한 '글이 삶을 돌보는 시간들' 바라고 꿈꾸며, 진도 팽목항 '기억의 벽' 타일에 여럿이 더불어 쓰고 그린 마음 불러봅니다. 그리고 다시, 힘주어 한 글자 한 글자 씁니다. 잊.지.않.을.게.요. 기.억.할.게.요!

2019-04-17 18:00:00

[전영평의 귀촌한담] 산골 소통의 즐거움

꼭 말을 해야만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전하는 것이 소통이다. 눈빛, 미소, 몸짓, 주고받기 모두가 소통 수단이다. '왜 사냐면 웃지요' 하는 시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마을 어르신들은 산골 사투리로 재미난 말씀을 많이 하신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단축형 사투리다. 그런데 대부분 귀가 약해서 소리 지르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 못하신다. 그래서 억세고 시끄럽게 들린다.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할머니끼리 얘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때가 있다. 알아듣기는 하시는 건지. 옆에 계신 할머니들도 그 광경을 보면서 '저 둘이 뭐 하는 거냐' 하시면서 깔깔대신다. 나도 우습지만 도와 드릴 방법이 없다. 통역 재주가 없어서다.눈빛은 은근한 마음 주기이면서 통제 수단이다. 맛난 것을 권하거나 지나친 언동을 삼가게 한다. 몸짓은 감정의 표현이다. 학계마을이라는 핑계로 나는 마을회관을 드나들 때 날개춤을 출 때가 있다. 서로를 기분 좋게 만드는 몸짓이다. 할머니도 가끔 따라 하신다. 나더러 주책바가지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마을회관에서는 나이 어린 내가 재롱을 떠는 것이 맞다.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체면을 잠시 내려놓고 쉰 소리도 하는 게 좋다. 귀가 잘 안 들려도 한바탕 큰소리로 떠들고 놀면 스트레스가 풀리게 마련이다.검정 비닐 봉다리는 매우 유용한 소통 수단이다. 내용물이 안 보이게 하면서 서로 성의를 표하는 '주고받기 소통'이다. 공장댁이라는 아지매가 있었다. 남편이 도자기 공장을 했기에 공장댁이라 불렀다. 다소 어눌해도 '주고받기 소통'은 매우 확실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솔직히 달라고 했고, 그래서 조금 싸주면 반드시 검정 비닐 봉다리에 뭔가를 싸서 갖다 주었다. 그녀는 늘 주변 사람 눈치를 보며 살았기에 검정 봉다리에 물건을 넣어달라고 했다. 주고받는 소통의 일인자였다. 작년에 진영으로 이사 간 공장댁의 기지에 감탄하는 바이다. 가끔 학계마을에 올 때는 꼭 집에 들러서 인사하고 간다. 이젠 검정 봉다리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지 않다. 도시 사람이 다 돼 가는가 보다. 부디 건강히 잘 지내시길. 대구대 명예교수

2019-04-17 18:00:00

권혁도 산단114 행정사사무소 대표

[기고]서대구산단, 새 디자인이 필요하다

서대구산업단지는 지금 큰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서대구산단에 바로 인접한 서대구 KTX 역사 기공식이 그 신호탄이 될 것이다. 서대구역을 기점으로 흩어진 산업단지와 연결하는 산업선 철도 건설 사업이 얼마 전 정부로부터 예타 면제 결정을 받았으며, 앞으로 서대구~광주 초광역권 철도가 건설되고 향후 K-2 통합 신공항과 연결된다면 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이 크게 높아져 동대구역세권에 버금가는 각광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서대구산단은 필자가 서대구산단협회 재직 당시인 2009년 국토교통부로부터 노후공단 재생사업 시범지구로 선정되어 2016년 재생산업단지로 지정되면서 재도약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컸으나 막상 산업집적법과 산단관리기본계획에 의한 다양한 법적 규제와 행위 제한으로 인해 입주업체들의 불만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현재 입주업체들로부터 자주 듣는 민원 사항이 공장 취득 후 5년간 처분 제한과 나대지 분할 금지, 그리고 입주업종 제한, 양도양수 자격 문제 등이다. 물론 공직자 출신인 필자로서는 대구시의 난개발 방지와 친환경 정책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나 입주업체들이 겪고 있는 현장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밖에 없다.이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조성 원가로 분양받은 땅도 아니고 아무런 혜택을 받은 것도 없는데 업종제한 규정 때문에 사업 확장도 할 수 없고, 분할해 팔려고 해도 맘대로 안 되고, 또 외부에서 신규 입주하려 해도 입주 자격과 양도양수 자격이 문제되어 계약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개발사업자를 원천 봉쇄하다 보니 신규 입주할 작은 필지를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정작 큰 필지를 유지함으로써 입주를 기대했던 대기업들은 땅값이 비싼 도심공단을 외면하고 국가산단 등 외곽지역을 선호한다. 대구시 전체로 보면 공장 부지는 남아도는 데 정작 공장하려는 사람은 산단에 입주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재생산단 지정이 오히려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잘나가던 산단을 슬럼화시키고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또 하나의 큰 변화의 기류는 자영업체는 줄어 임대 비율이 60%에 육박하고 있고, 임가공 중심의 제조업종은 지가 상승으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통과 물류 등 비제조업도 60%를 점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서대구산단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단기적으로는 불필요한 각종 산업 규제를 대폭 완화해서 다양한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환경오염 우려가 있는 제조업과 뿌리 산업들은 단지 내에서 오염의 확산이 덜한 지역을 정해 이전을 유도하면서 점차 도심형 산업으로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중·장기적으로는 현실에 맞도록 도시계획을 재검토하여 일부 지역을 산업단지에서 제외시켜 상업, 유통, 금융, 서비스 등 비즈니스 거점 기능을 부여하고, 도심에 가까운 장점을 살려 전기자동차, 수소차 충전 시설과 튜닝, 정비, 전시 판매시설과 시민 친화적인 엔터테인먼트시설 등 소프트한 4차 산업과 성장유도 산업을 중점 유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국가적 당면 과제인 미세먼지 저감 정책과 일자리 창출에도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19-04-17 17:55:10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새론새평]리셋 필요한 문재인표 대북 정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등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설득하기 위해 백악관을 찾아간 문재인 대통령을 앞에 두고,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할 때까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지속할 것이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현 시점에서는 부적절하다고 잘라 말했다.비슷한 시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압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윽박질렀다.워싱턴과 평양에서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트럼프와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들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진행되어온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려는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확인해준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발언은 두 사람이 모두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거부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려는 문 대통령의 정책이 실패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 실패의 결정적 원인은 대한민국 또는 문 대통령이 미·북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사람들 사이에서나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중재에 나선 주체가 최소한 다음 3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중재 대상들에 대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처지에 있어야 한다. 둘째, 중재 대상들로부터 신뢰 내지 존경을 받아야 한다. 셋째, 현안 문제에 관한 정확한 정보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실상은 어떠한가? 대한민국과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독립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은 대한민국의 적이고 미국은 대한민국의 존립에 필수적인 동맹국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우정이 아무리 돈독해진다 해도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대해 반역을 자행하지 않는 한, 이러한 3국 간의 객관적 관계는 변할 수 없다.대한민국은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존경은 고사하고 신뢰도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 핵무기를 가지고 대한민국과 국민을 납치해 놓은 상태이다. 북한은 납치범이고, 대한민국과 국민은 인질이며, 미국은 대한민국과 국민을 납치 상태로부터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구조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질인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부가 납치범과 구조대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는 일이다.문 대통령은 지금 트럼프와 김정은으로부터 자기의 처지를 깨닫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게 "당신은 나의 인질이니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강요하고, 트럼프는 문 대통령에게 "납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구조대의 구출 노력에 적극 협조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문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그리고 김정은의 의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들에 관한 정보가 빈약한 문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우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북한 및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이 대학생들의 갈등을 중재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은 웃기는 일이다.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뭔가 기여하고 싶으면, 이제부터라도 중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갖추거나 아니면 중재자 역할에 대한 미련을 갖지 말고 자신의 대북한 정책을 원점에서부터 새로이 판을 짜야 할 것이다.

2019-04-17 14:41:15

[종교칼럼] 4월의 신록은 찬란하다

4월의 숲은 점점 신비롭다. 산과 들은 연둣빛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유백색의 산벚꽃과 새로 움트는 연둣빛, 기존의 초록빛 나뭇잎들이 교향곡처럼 연주하며 몽글몽글 하늘로 피어오른다. 평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새로운 풍경에 감탄한다.멀리서 보면 늘 같은 색, 같은 나무로 보였는데 조금씩 다른 나뭇잎들이 생명의 윤기를 머금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렇게 숲길에 초록 향연이 펼쳐지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은 맑아지고 편안해진다.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뜬구름이 그림을 그린다. 풍경화를 보는 듯 맑고 아름답다. 비록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넉넉하다.신록은 우리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준다. 봄비가 그친 청명한 날이면 또 얼마나 신선한 잎들이 솟아날까. 연녹색으로 물든 새싹들은 꽃보다 아름답다. 아기의 웃음처럼 깨끗하고 명랑한 4월은 이렇듯 곱게 채색돼 간다.식물도 동물도 봄에 새싹이 돋고 새끼를 잉태한다. 4월은 한 해를 열고 출발하는 생명력이 가득하다. 자연의 섭리는 인생의 한 해 한 해에 꿈과 활력을 불어넣으며 삶의 출발과 성숙을 돕는다.4월을 맞으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옷깃을 여미고 낙화담 둑길을 걸으며 유익종의 '들꽃'을 듣는다. 피아노곡으로 뉴에이지 '벚꽃엔딩'과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를 듣는다. 이 곡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봄날의 풍경과 사랑만으로 행복했던 어느 날을 떠올리게 한다.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졌고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생기가 느껴진다. 봄바람이 평온하다. 만물이 소생하고 꽃들의 잔치가 시작되면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연다. 4월은 5월보다 겸손하고 부드러워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봉오리를 열며 피는 야생화도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금낭화, 제비꽃, 매발톱, 할미꽃, 냉이꽃, 민들레가, 정원엔 목단, 작약, 라일락, 불두화, 명자나무꽃들이 피어난다. 4월에 핀 고운 꽃처럼 마음속에 자리한 사랑과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꽃과 함께할 때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주변의 연한 빛에 둘러싸인 청산을 보라. 청량한 산들바람을 눈을 감고 느껴보라. 온몸이 열리는 듯하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신선하니 계곡물처럼 맘도 맑아진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질문의 답은 자연에 있다"고 했다.숲에 나뭇잎들이 돌아오니 며칠 전부터 밤이면 뒷산에 소쩍새가 운다.진실이 뭐더라 아픔이 뭐더라 홀로 물으며 솟~쩍 솟~쩍 운다.자연은 이렇게 찬란한데 최저임금제로 자영업자 영세업자 실직자는 아프기만 하다. 그들에게도 꽃이 피고 소쩍새 우는 소리를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한다. 청문회만 보면 이렇다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도덕성 문제가 수준 이하다.한 세상 청렴하게 산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신록의 계절이 일깨워 주지 않는가?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2019-04-17 13:06:55

현동헌 테너

[매일춘추]긴장과 이완의 원리

노자는 도덕경에서 인생의 지혜를 자연의 법칙에서 배워야한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며 인간이 닮아야 할 대상을 물과 갓난아이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유연성이 있는 물과 갓난아이를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없을 무(無)'자와 '할 위(爲)'자는 무엇인가를 억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없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긴장이 없는 이완의 원리만을 강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적당한 긴장감은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함으써 위험을 미리 예방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한다. 이는 모든 만물을 움직이고 지배할 수 있는 영들의 장 어른이란 뜻이다. 이러한 인간이 누리는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는 바로 문화일 것이다. 삶이라는 가치를 향유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노력 속에 우린 살고 있다.그 중에서도 음악은 인간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언어 중 하나이다. 그 언어인 음악의 구성은 바로 긴장과 이완(Tension and Relaxation)의 연속성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건강한 음악적 요소이다. 계속된 잔잔한, 협화음의 코드만 가득한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부터 하여금 따분함과 무료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음악은 이완을 향한 긴장감을 만드는 요소들의 역할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대표적으로 모차르트의 걸작품인 교향곡 40번 g단조 1악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곡은 전체를 누가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멜로디의 주제로 모차르트의 완벽한 긴장과 이완의 컨트롤로 음악적 연속성을 띠도록 작곡된 곡이다.긴장과 이완은 적절한 배치와 타이밍도 중요하다. 노래의 발성에서 성대에는 적당한 긴장(Tension)이 요구되며 다른 근육들은 이완(Relaxation)되어 있어야 좋은 발성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성대는 너무 이완되어 있고 근육은 오히려 긴장되어 있다면 좋은 소리를 내기 힘들다.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쪼잔한 자랑과 과시로 어깨와 목이 뻣뻣한 사람처럼 엉뚱한데 긴장되어 있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이완성보다는 자신에게 관대한 이완성을 가진 사람들은 화를 부를 수 있다. 자신의 지식이나 재능을 함부로 내세우는 자는 도리어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만 옳다고 고집부리면 따르는 자가 없어 나설 수 없고 자기 잘난 맛에 취한 사람은 성공할 수 없고 조금 능력이 있다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외면당하게 된다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이처럼 우리는 적재적소의 긴장과 이완의 원리로 천재 음악가인 모차르트처럼 나만의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현동헌 테너

2019-04-17 11:17:13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진: pixabay 제공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세 가지 방법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당신은 어떻게 기록하는가? 필자는 아이디어를 적어둔 쪽지를 잃어버려 낭패를 경험한 적이 많다. 그럴 때는 마치 적금 통장이 날아간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다양한 방법을 경험했는데 그 노하우를 독자와 공유하려고 한다.첫째, 디지털 기계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용하라. 필자는 학생 시절, 아날로그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기록했다.예를 들어 학교에서 생각난 아이디어라면 노트에 적어두었다가 이면지에 그림을 그려서 보관했다. 하지만 이면지는 묶음이 되지 않아 보관의 어려움이 있었다. 더군다나 언제 낸 아이디어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그때부터 아이디어 노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시간의 흐름이 보였고 2권, 3권 쌓아가는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여 좋았다. 하지만 이 방법도 휴대전화가 나오면서 실효성이 없어졌다. 생각나면 전화기에 바로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여러 앱을 사용해봤다. 그중 최고의 앱은 바로 에버노트다. 에버노트의 장점은 연동 기능에 있다. 휴대전화에서든 회사 PC든 연동되기 때문에 기기에 따라서 데이터를 옮길 필요가 없다. 비밀번호 잠금장치도 있어 아이디어 노출 확률도 낮다.하지만 이렇게 휴대전화 타자기만 치니 쓰는 맛이 없었다. 그때부터 의도적으로 펜이 있는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그리고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로 써 기록했다. 즉, 디지털 기계에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둘째, 미팅 때 수첩보다 노트북을 활용하라. 대개 클라이언트 미팅은 수첩이나 다이어리를 활용한다.하지만 이 경우는 고객의 요구 사항을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노트북은 조금 다르다. 양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고객의 니즈를 기록하는데 더 수월하다.지금 독자는 조금의 의문이 들 것이다.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방법에 얘기하는데 왜 고객과의 대화를 적으라고 하지? 고객과의 대화에 많은 아이디어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렇다. 광고주와 얘기할 때 사실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고객과 대화를 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민하게 기록해라. 의외로 괜찮은 아이디어를 만나게 된다.셋째, 기록할 것이 없을 때는 주변 사물을 활용하라.필자에게 아이디어가 우르르 쏟아지는 시간이 있는데 바로 아침에 샤워 시간이다. 이럴 때는 참 난감하다. 하루 중 인간이 유일하게 휴대전화와 떨어지는 시간이 아닌가. 그럴 때는 주변 사물을 이용해 기록하곤 했었다.필자의 경우 습기가 찬 유리에 아이디어의 키워드를 써서 기억을 도왔다. 예를 들어, 신호등에 아이스크림을 합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신호등 아이스크림'이라고 적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샤워가 끝나면 휴대전화로 달려가 에버노트에 아이디어를 기록한다.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아이디어 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물어 젖지 않는 종이와 펜을 구입해 샤워기 옆에 비치해두었다.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시간에 이것보다 좋은 상품이 없다.아이디어를 잘 내는 재능은 누구에게나 큰 축복이다. 하지만 그런 재능이 없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라. 아이디어를 잘 기록하는 것으로 좋은 아이디어에 근접할 수 있다. 기록하는 것에 부지런하라. 탁월한 아이디어가 아니어도 생각나는 대로 기록하고 표현하라. 좋은 광고가 될 씨앗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4-17 10:32:53

권용덕 경남도의회 전문위원

[기고]농업의 사회적 기능 활성화를 기대하며

최근 사회적 농업이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6일 제361회 경남 도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과소화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사회적 농업 활성화가 제안되었다. 이에 집행부는 주민참여예산과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 등을 통해 사회적 농업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경제영역 관점에서 농업이 가지는 기능을 구분하자면 시장경제에서 작용하는 시장적 기능, 공공경제에서 작동하는 공공기능, 사회적 경제에서 움직이는 사회적 기능, 교환경제에서 적용되는 물물교환을 들 수 있다. 대규모화와 기계화 논리는 농업의 시장적 기능을 강조하는 농정철학이고, 직불제은 농업의 공공적 기능을 대표하는 농정철학이다. 북측에 곡물을 제공하고 광산물을 받아 온다면 그것은 교환경제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사회적 농업은 농업의 사회적 기능을 강화하는 농정철학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농정철학의 흐름을 본다면 유럽의 경우는 시장적 기능에서 공공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국은 시장적 기능이 중시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시장적 기능이 강조되면서 공공적 기능을 중시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사회적 기능은 매우 낮다.사회적 농업은 학자마다 나라마다 부르는 것이 다르다. 이탈리아는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 네덜란드는 돌봄 농업(care farming) 또는 녹색돌봄농업(green care), 일본은 농복연계, 우리나라에서는 치유농업(agro-healing)으로 통칭되고 최근에는 사회적 처방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용도와 활용목적에 따른 구분이겠으나, 일괄하면 지역이 가지고 있는 농업과 자연자원을 활용해 사회적 약자(재난피해자, 장애인, 노숙자, 정신질환자 등)가 지역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데 관련된 활동(교육, 복지, 치유, 일자리 등)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사회적 농업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교육의 경우는 대안교육이나 특수시설, 복지는 치유농장과 의료기관과의 연계, 치유는 사회적·치료적 원예, 일자리는 취약집단 지원이나 직업훈련 등을 예시할 수 있다.경남 지역에도 사회적 농업을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충분하다. 특히 서북부 지역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풍부한 농생명자원을 갖고 있어 잠재력과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그러나 높은 잠재력과 가능성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흩어져 있는 구슬을 꿰어 보물로 만들 수 있는 바늘(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고, 혼자 빨리 가는 것보다는 함께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을 교육하고 조직을 육성하는 일도 놓쳐서도 안 될 부분이다. 필요하다면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완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길게 보고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면서 하나 하나 챙겨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이제 농업이 가지는 정책기능이 경제 4영역(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적경제, 교환경제)과 상호 유기적이고 조화롭게 추진되고 연계를 품어 볼 수 있는 출발선상에 와있음을 느낀다. 사회적 농업이 농업의 사회적 기능을 불러 일으키고 촉발하는 신호탄이 되길 기대해 본다.

2019-04-17 10:14:12

이정호 변호사

[경제 칼럼] 리디노미네이션 논의의 올바른 의미

최근 한국은행 총재가 화폐 액면가를 낮추는 화폐 개혁, 이른바 리디노미네이션 논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새삼 경제계의 관심을 모았다. 자본시장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 관련주'가 벌써부터 언급되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 내지 발권은행이 기점이 되어 화폐 개혁의 본질에 접근한 개혁 시도가 이뤄질 태세다.해방 후 국내의 화폐 개혁은 '원'을 '환'으로, '환'을 다시 '원'으로 바꾸는 화폐단위의 변경을 수반해 2차례 있었다. 1차 화폐 개혁은 1953년 광복과 전쟁을 거치면서 발생한 악성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100대 1의 비율로, 2차 화폐 개혁은 1962년 경제개발계획 실행을 위한 산업자금 조달 목적에서 10대 1의 비율로 시행하게 됐다고 한다.어느 경우에나 통화 발권 기능을 가진 한국은행이 금융정책적 측면에서 관여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경제 사정하에서 정부가 현안을 풀어나가기 위한 특수한 방편으로 시작됐던 것이다.이런 점에서 보자면, 최근의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는 그 세련된 용어만큼이나 한층 발전된 방식이라 하겠다.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에 즉시 국회가 화답하고, 각계각층이 다양한 파생적 논의를 시작하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된 지위와 권한 보장이 절대가치로 인정되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보자면 금융 민주화에 부합하는 당연한 절차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리디노미네이션의 여러 논거들, 통용되는 화폐의 사용 단위가 너무 커지고 환율의 교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적되듯이 화폐단위의 변경에 소요될 사회적 비용과 화폐 개혁 뒤 예상되는 상대적 인플레이션 등이 더 염려된다.원래 작금의 화폐 개혁은 화폐단위의 교환 비율을 대폭 낮추자는 것이므로 고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경기 국면에 더 어울리는 대책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힘겹게 저수준 임금을 올리고, 양극화의 단면에서 저소득 근로자나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수준은 과거 10년 동안 별로 오르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따라서 화폐 개혁 후 따라올 인플레이션까지 고려한다면 자연스레 화폐 개혁 뒤 저소득자들이 맞이할 박탈감이나 상실감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을 많이 가진 계층은 어쩌면 통화당국이 의도한 화폐 개혁의 수혜를 그대로 누릴 공산이 크다.오만원권이라는 고액 단위 화폐가 탄생한 지 10년도 되지 않았다. 고액권이 필요한 만큼 원화 가치가 하락한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이미 고액권으로서의 가치는 나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본다.참고로 '환'으로 벌금 단위가 기재된 형법전에서 '원'으로 벌금형 단위를 개정한 때는 비교적 최근인 1995년이고, 2차 화폐 개혁 후로는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고액권을 발권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리디노미네이션이 논의된다 하니 그 사이 강산이나 경제 지평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새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중앙은행이 발권은행으로서의 독립된 기능을 화폐 개혁을 통해 제대로 행사하려는 노력에는 진정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금번 화폐 개혁 시도는 서방 강국의 경제 사정이나 정책 변동의 추이까지 두루 반영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그러나 화폐 금융에 관한 이론에만 입각하여 경제에 미칠 당장의 파장과 비용, 개혁 뒤 생성될 경제 환경에서 오히려 소외될 경제 주체의 입장을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고는 있지만 적어도 화폐 개혁은 지금보다 진일보한다는 개선의 측면보다 화폐단위의 숫자 조정에 그치는 몰가치적이고 한시적인 대책일 수 있기 때문이다.최고 통화당국으로서의 순수성을 버리고 정부의 실물 경제정책에 훈수를 두려거나 훈수를 두려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화폐 개혁의 목적과 득실에 관하여 발전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또 그 결실이 정책 결정에 잘 반영되길 희망한다.

2019-04-1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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