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연구실 안전과 사고 예방

최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안타까운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인근 주민들도 불안해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연구소 측의 설명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할 수 없는 조건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사고 가능성이 낮은 실험이라는 주장이다. 연구소에서는 10년 전에도 사망사고가 있었고 지난해에도 두 차례나 화재가 발생했다. 올해 2월에는 연구소 인근 한화 대전공장에서 유도무기 개발 작업 도중 발생한 폭발 사고로 3명이 사망했다. 같은 공장에서 작년에도 5명이나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지난 5월 강릉 과학산업단지의 수소 탱크 폭발 사고로 정부는 관련 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도 있다. 안전을 담보로 작업해야 하는 전문 연구시설에서 계속 대형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을 둘러싼 패권 다툼과 경제보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사고 원인조차 불분명하다는 보도에 국민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연구원 양성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5년간 발생한 1천89건의 안전사고 중에서 83%인 907건이 대학교 연구실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국정감사에 제출한 '대학별 연구실 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대학 내 연구실 안전사고는 최근 4년간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5년 170건에서 2019년 266건으로 4년간 1.6배나 증가했다. 이 중 자창(베이거나 찔린) 사고가 329건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화상 사고가 296건(29%)으로 그 뒤를 이었다.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연구실 안전사고가 발생한 학교는 고려대학교(49건), 서울과학기술대학교(48건), 서울대학교(46건), 경북대학교(36건) 순으로 조사되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최근 4년 새 안전사고가 8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연구소나 대학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은 없는 것일까. 미래의 연구자인 학생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나 교육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들이 학위를 마치고 취업 후 연구 현장에서 노출될 수 있는 사고의 수위가 높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 필자도 국내외 연구실에서 크고 작은 다수의 사고를 경험했다. 대개의 경우는 실험자 개인의 부주의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실 안전 교육과 대응 방식은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선진국에서는 예방 교육 이후 실천 여부를 중요하게 점검한다. 특히 동료 연구자들끼리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눈치를 주는 자연스러운 문화가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 같다. 오히려 '너도 안 지키니 나도 안 지킨다'는 안전불감증과 무사안일주의가 사고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고의 원인은 다양하다. 누적된 피로, 열악한 작업환경, 관리감독의 소홀, 성과주의에 내몰리는 연구문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안전에 유난히 둔감하고 사고에 관대하다는 점 역시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인 풍요보다 안전사고 횟수를 줄여나가는 문화가 빨리 자리 잡기를 바라며 이번 사고로 희생된 분의 명복과 부상당한 분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

2019-11-18 18:00:00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말의 힘 I -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

말을 참으면 답답해 죽는다. 말을 참으면 참을수록 부정적인 에너지가 커져서 몇 배로 복수하게 된다. '의사소통과 공감' 훈련을 하는데 한 부부가 왔다. 남편은 신혼부터 2차, 3차 술을 마시고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남편은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나도 힘들다"고 했지만 아내는 인정하기 어려웠다. 들어와서는 토하고,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댔다. 지난 10년 동안 많이 싸웠고 지금은 좀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 남편에 대한 야속함과 원망이 있다. 남편은 명령하고 비난하는 아내의 말이 싫어 12시 전에 집 앞에 도착해서 담배를 피우며 12시를 넘기고 들어가기도 한다고 했다.상대를 변화시키는 말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고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상대가 그런 행동을 할 때 나는 어떻게 느끼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긍정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남편도 밖에서 거절 잘 못해서 힘들고 술까지 마셔 몸이 괴로울 텐데 집에 와서 아내에게 잔소리와 타박을 듣고 아이들도 싫다고 하니, 그 순간 느꼈을 남편의 외로움과 허무를 아내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내가 말했다. "열두시는 넘지 마!"가 아니라 "당신이 12시가 넘게 안 들어오면 불안해서 잠을 잘 못 자. 난 당신이 12시 전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당신과 평안하게 같이 잠들고 싶어."말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이자 사람들 사이를 잇는 소통의 도구이다. 하루하루 생활에서 말을 하지 못하고 참기만 할 때,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사방이 벽 같은 답답함 속에 갇히게 된다. 말은 힘이 있다. 나를 열게도 하고 상대와 연결하게도 하고. 답답하고 외롭고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 편에 서서 나의 말을 하시라. 그리고 상대의 편에 서서 마음을 인정하시라. 그러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019-11-18 18:00:00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왕의 호칭-조(祖), 종(宗), 군(君)에 담긴 뜻은?

조선시대 역사를 주제로 한 강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왕의 호칭에 관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조', '종', '군'을 쓰느냐는 것이다. '군'에 대해서는 그래도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반정으로 폐위된 왕들은 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왕자 시절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조'와 '종'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의 왕 중 '조'의 칭호를 쓰는 왕 대부분은 후대에 추숭되는 과정에서 '조'를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기본적으로 왕의 호칭은 사후에 종묘를 신주에 모시는 과정에서 왕의 업적을 한 글자로 표현하고, '조'와 '종'을 붙이고 묘호(廟號)라 하였다. 예를 들어 학문에 뛰어났다는 뜻의 문종(文宗), 어질었다는 뜻의 인종(仁宗), 효성이 지극했다는 뜻의 효종(孝宗)을 꼽을 수 있다.원칙적으로 '조'는 창업한 왕에 대해서만 쓰는 호칭이었다. "왕업(王業)을 창시한 임금을 '조'라 일컫고 계통(系統)을 이은 왕을 '종'이라 일컬었음은 고금(古今)의 떳떳한 법식이었다"는 실록의 기록은 이러한 원칙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려의 경우 첫 왕인 태조 왕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종의 호칭이 부여되었다. 몽골 간섭 시기에는 왕의 호칭이 강등되어 '충'(忠)을 앞에 붙이고, '종' 대신에 '왕'의 호칭을 사용했다. 태조 이후 '조'를 붙인 왕은 없었다.조선이 건국된 후 창업 군주 이성계에게도 '태조'의 호칭이 부여되었다. 그런데 조선의 왕은 이후에도 '조'를 붙인 사례가 많다.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까? '종'보다는 창업한 왕에 부여하는 '조'의 호칭을 쓰는 것이 왕을 보다 높이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태조 이후 '조'의 호칭을 처음 받은 왕은 세조다. 왕의 호칭은 사후에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물론 세조는 자신의 호칭을 알지 못한 채 승하했다. 세조의 다음 왕인 예종과 신하들은 세조의 묘호를 정하는 과정에서 '조'를 쓰기로 정했다.세조가 창업한 왕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한 까닭에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목적도 담겨 있었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역시 반정 주체 세력들이 인조의 위상을 높여야 자신들의 입지도 커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선조의 처음 묘호는 '선종'(宣宗)이었다. 그러다가 광해군은 1616년 선조가 임진왜란을 극복하여 나라를 재건한 공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묘호를 선조로 바꾸었다. 영조, 정조, 순조 또한 승하 직후의 묘호는 영종, 정종, 순종이었으나 후대의 왕들이 추숭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묘호가 바뀐 사례다.세 명의 왕 중에서는 순조가 가장 먼저 '조'의 호칭을 받았다. 철종 때인 1857년 순종에서 순조로 묘호가 바뀌게 되는데, 순종이 순조로 될 수 있었던 데는 철종을 왕으로 만들어 준 순조의 부인 순원왕후의 영향력이 컸다. 대비로 있으면서 철종을 움직여 남편의 위상을 높인 것이다.고종 대에 들어와서는 1890년 영종(英宗)이 영조로, 1899년 정종(正宗)이 정조로 묘호가 바뀌었다. 순조도 '조'가 된 마당에 영종, 정종처럼 훌륭한 군주에게 '조'의 호칭을 부여하는 것이 왕의 도리라고 고종은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조'의 호칭은 정변에 대한 합리화 작업이나 후대의 추숭 작업 과정에서 부여한 것이었다.그러나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조'의 호칭을 받은 선조나 인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왕으로 전혀 높은 평가를 할 수 없는 왕들이다. 역사 속에서도 세종과 정조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과 자부심의 대상이 되는 왕들이 있다. 현재의 정치 지도자들도 훗날 그 이름을 떠올릴 때 늘 닮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2019-11-18 17:26:24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胸有成竹(흉유성죽): 준비한 자는 이룬다

가슴(胸) 속에 완성된 대나무(成竹)가 있다(有)는 말이다. 대나무를 그리기 전에 마음속으로 먼저 대나무를 그린다는 것인데,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북송(北宋) 때 수묵(水墨) 대나무를 그리는 묵죽(墨竹)으로 유명한 문동(文同)의 이야기에서 나왔다.문동은 신종(神宗) 연간에 양주(洋州)에서 지주(知州: 주의 장관)를 지냈다. 양주 서북쪽에는 크지는 않지만 굵고 마디 사이가 넓은 운당(篔簹)이라는 대나무가 많이 나는 운당골이 있다. 그는 시간만 나면 그곳에 갔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대나무와 죽순이 움트는 모습, 잎이 돋는 모양, 안개나 눈비가 내릴 때의 풍경을 살폈다. 시간이 흘러 눈을 감아도 대나무의 모든 것이 눈앞에 훤하게 비칠 정도가 되었다. 붓을 한 번 휘두르면 마디와 잎사귀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묵죽이 그려졌다. 문동의 묵죽은 천하일품(天下一品)으로 알려지고, 사람들이 비단을 들고 그림을 받으러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문동은 북송의 문장가 소식(蘇軾, 호 동파)의 이종형이다. 문동은 그에게 운당언죽(篔簹偃竹: 운당골의 휘어진 대나무)이라 이름 붙인 그림을 선물했다. 문동이 죽고 난후 소식이 서책을 말리다가 그 그림을 발견하고 "(문동의) 마음속에 완성된 대나무가 있었다(先得成竹於胸中)"며 그를 추모하는 글을 지었다. 후에 문동에서 소식으로 이어지는 문인화(文人畵)의 호주화파(湖州畫派)가 형성되었다.소식의 제자로 학자이며 시인인 조보지(晁補之)는 문동의 그림을 논하면서 "여가(문동)가 대나무 그림을 그릴 때(與可畵竹時)는 가슴 속에 대나무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胸中有成竹)"고 했다. 좋은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잘 준비해야 한다는 뜻의 흉유성죽은 여기에서 나왔다. 지난주에 수능이 끝났다. 흉유성죽한 학생들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2019-11-18 17:25:05

전영순 대구시 생태해설사

[기고] 달성습지 흑두루미의 꿈

맑고 깨끗한 바람에 하얀 털꽃이 날린다. 그 털꽃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자꾸만 안으로 걸어가게 만든다. 홀린 듯 걷다 보면 깊숙한 꽃눈의 한가운데까지 와 있는 걸 알게 된다. 바로 물억새가 춤추는 금빛 바다 '달성습지'다.많은 사람들은 갈대와 억새를 떠올리면 순천만과 화왕산을 생각한다. 그만큼 지명도가 높고 규모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두 곳의 규모와 특징에 버금가는 달성습지는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뿐,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갖춘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도심의 4차로 외곽도로가 감싸 안고 있어 대구의 특징 분지를 연상케 한다. 움푹한 것 같으면서도 살짝 돋아난 지형에 대구 달성군, 달서구, 경북 고령의 경계까지 포함하고 있는 달성습지는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지금 계절에 그 절정을 치닫고 있다. 이미 그 청초함과 수줍음을 다한 코스모스 둑길에서 내려다보는 물억새의 장관은 수천 명의 무희가 일사불란하게 군무를 추듯이 바람의 힘에 한쪽으로 휩쓸렸다가 얼른 반대 방향으로 가냘프게 몸을 떤다.1990년대 초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열 마리 미만으로 월동했을 당시 이곳 달성습지에는 흑두루미의 울음소리로 시끄러워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고 당시 이 주변 사람들은 증언해 준다. 하지만 인간의 풍요를 추구한 가치기준에 세상의 빠른 변화는 평안했던 생태계를 흔들고 그 속에 살고 있던 많은 생물을 밖으로 내몰아 많은 자연 생물의 개체수가 줄고, 변화된 환경에 종을 잇기 어려운 위기상황이 되어 버렸다. 달성습지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을 때, 순천만은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 순천만에서 월동하는 흑두루미의 개체수는 2018년 기준으로 2천500마리가 넘어 적정한 환경을 고려해 오히려 그 개체수를 줄이는 계획을 세워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자연환경을 인간의 기준에 맞춘 결과 인간의 편리와 반대로 자연은 크나큰 손실을 감당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지금 달성습지는 30년 전의 두루미 서식지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습지의 걷기 좋은 숲길은 무관심의 세월과 무관하게 많은 생물자원이 살아 숨 쉬고 있고, 하늘이 보이지 않게 쭉쭉 뻗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느티나무의 생동감은 '자연은 참 정직하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다.달성습지의 모든 걸 한눈에 볼 수 있는 '생태학습관'이 문을 열었다. 달성습지의 깃대종인 흑두루미가 날개를 펼친 형상인 생태학습관은 머지않아 습지의 옛명성을 찾겠다는 희망의 날갯짓으로 보인다.생태학습관 3층에서 바라보는 달성습지는 단연코 압권으로 멀리 낙동강의 랜드마크인 디아크가 보이고 초록의 넉넉함과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의 흔들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감싼다. 달성습지에서 낙동강과 금호강의 물결을 따라 이어지는 걷기 좋은 수변데크를 가다 보면 퇴적암이 연출해 놓은 '하식애'란 작품을 볼 수 있다.깨지지 않을 단단한 바위가 세차고도 가냘픈 물살에 깎이고 깎여 시루떡처럼 층을 이뤄 '하식애'란 자연의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주듯 맹꽁이와 수리부엉이의 세찬 울음소리를 우리가 찾아줘야 할 것이다. 달성습지의 금빛 물결 억새밭을 휘돌아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아올 날갯짓을 기대하며 습지의 깊은 숨소리를 가슴에 담아 보면 어떨까 싶다.

2019-11-18 14:25:15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안녕하세요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으레 그렇듯이 버스 안은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진다. 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 다행히 빈자리는 많았다. 나의 운동신경을 너무 믿다가 빗물을 엉덩이로 방아 찧었던 기억이 있어 조심스럽게 손잡이에 의지해 빈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근데 왜 항상 버스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마냥 빨리 출발할까? 비틀거리며 용케 자리에 앉아 내 종아리 근육을 긴장하게 만든 버스기사님 뒤통수를 향해 레이저를 쐈다. '그래, 배차시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으시겠지' 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한 어르신이 버스에 올랐다. 그 어르신은 조금 낡아 보이지만 주름이 잘 잡혀있는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계셨다. 버스 요금을 내시더니 중절모를 살짝 들어 올리시며 버스기사님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셨다. 순간 버스 안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어르신께 집중되었고 다음은 당황하시는 버스기사님으로 옮겨갔다. 버스를 타며 기사님께 인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기사님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그 인사덕분인지 당황하느라 배차시간을 잊으신 건지 그 어르신이 느린 걸음으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버스의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셨다.우리는 인사에 야박하다.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라고 상대방의 안녕을 문안하는 것이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먼저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후배가 선배에게,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하지만 문법상 문장 종류를 따지자면 '~하세요' 라고 끝나는 문장은 명령형이다. 어쩌면 인사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재미있는 억측을 해본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은 '걱정과 아무 탈 없이 몸과 마음이 편안하시라' 는 뜻이다. 우리가 무심코 건네던 인사말이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니 이보다 좋은 명령이 있을까?대학생 시절 며칠 밤을 새우고 피곤의 극치에서 신발을 끌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과에 여자 친구가 우연히 나를 발견하고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빠' 라고 꽤 길고 큰소리로 불렀는데, 글자로 표현하자면 '빠' 자가 50자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순간 우리가 이렇게 친한 사이였나?' 의심이 들다가 그 친구의 밝은 표정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그 인사 한 번에 사라졌다.반갑게 건네는 인사 한마디는 힘을 가지고 있다. 웃음을 전염시키고 버스 출발을 늦추고 깊은 유대관계가 아니었단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유경아, 잘 지내고 있니?) 대우받기 위해 인사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눈을 마주하고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당신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1-18 11:41:51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

[세계의 창] 독도 후일담

동해'일본해 병기 2012년 UN 회의독도 문제로 갑자기 영토 논쟁 비화확실한 영토주권을 행사하는 독도분쟁없이 영유권 기간 길수록 유리2012년 8월 10일은 필자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필자는 당시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제10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에 수석대표로 참석 중이었다. 유엔지명표준화회의는 각국의 지명 표준화 정책 및 지명 표기법 등을 논의하기 위하여 5년마다 개최되는 국제회의다. 우리 정부의 최대 관심사는 '일본해'로 표기된 '동해' 이름을 최소한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되도록 하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였다.그러나 회의 이틀째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 국토지리원이 제작, 배포한 '지명의 국제적 표기 지침서'에 표기된 'Dokdo'에 대하여 일본 대표가 회의 석상에서 공식 항의를 했다. "일본의 고유 영토인 '다케시마'를 한국 정부 기관이 발행한 책자에 마치 한국 영토인 것처럼 'Dokdo'로 표기한 데 대하여 강한 유감을 표하며, 시정을 요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에 대한 터무니없는 주장을 삼가줄 것을 요청한다고 강력히 반박했다. 지명을 다루는 회의가 영토 논쟁으로 비화했던 것이다.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국제회의를 마치고 나면 회의 석상에서 오간 발언을 요약, 정리한 최종보고서(Final Report)를 채택한다. 일본 대표가 독도 영유권 관련 자신의 발언을 최종보고서에 넣어 달라는 것이다. 일본 측은 한국 측의 반박 요지도 같이 넣어도 좋다면서, 독도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fact)로서 당연히 최종보고서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그러나 독도의 분쟁지역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리 정부 입장을 감안할 때, 독도 분쟁 사실을 입증하는 영유권 논쟁을 최초로 유엔문서에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필자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한일 간 이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8월 9일 종료키로 되어 있던 회의 일정이 8월 10일까지 하루 더 연장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일본 대표단과의 비공식 회담이 열리기로 돼 있던 8월 10일 아침(뉴욕 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소식이 들려왔다.일본 측 입장은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었고, 양측 간 타협의 여지는 사라졌다. 의장은 한일 양측이 합의를 보지 못하면 표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지금까지 컨센서스로 채택하던 관례를 깨게 돼 몹시 유감스럽다는 말과 함께.필자는 표결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입장을 표명하긴 했지만, 내적으로는 엄청난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원수가 독도를 방문한 바로 다음 날, 유엔에서 독도 관련 표결을 해서 패배하였다는 언론 보도가 신문 1면을 뒤덮을 경우는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치열한 협상 끝에 독도 관련 문안은 최종 보고서에서 삭제하고, 대신 빈 괄호만 남겨두기로 합의하였다. 의장은 총회 석상에서 "관계 당사국이 합의된 문안을 가져오면 그 문안으로 빈 괄호를 채워 넣기로 하고 최종보고서를 잠정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함께 고생했던 모든 대표 단원들과 함께 목청껏 만세를 외쳐 부르고 싶은 순간이었다. 군인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공으로 알려지지만, 외교가 성공해서 전쟁을 방지하면 이 성공한 외교는 아무도 모른다.이 사건을 겪으면서 재확인한 교훈이 있다. 국토지리원의 지명 표기 지침서 발간은 큰 성과지만, 이 지침서를 굳이 회의 석상에서 배포해 일본의 도발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직후 일본이 그동안 자제해 오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주장까지 하며 격렬히 반응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독도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확실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시간은 우리 편이다. 평온 무사한 상태에서 우리가 영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우리에게 유리하다.일본 측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여야 하겠지만, 우리가 일본 측을 자극할 행동을 먼저 할 필요는 없다. 독도 대응의 기본 전략이다.

2019-11-18 10:01:41

김종수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

[기고] 경북 농업, 또 한번의 갈림길에!

2019년 낙엽이 익어가는 만추(晩秋)의 계절, 농도(農道) 경북이 또 한 번의 갈림길에 들어섰다.지난 10월 25일 정부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미래 WTO 협상 때부터는 농업 부문에 있어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특혜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기로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대외적인 위상과 향후 개발도상국으로 인정해 줄 가능성, 당장에 미치는 영향, 미래 협상에 대응할 시간과 여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당장 농민단체와 농업인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즉시 개발도상국 지위를 회복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1993년 12월, 국내 농업에 쓰나미 같은 후폭풍을 남긴 '농산물 시장 개방'을 주요 의제로 한 UR협상(우루과이라운드)이 타결되었다. 그 결실로 1995년 1월, UR협상의 이행과 분쟁·조정, 감시 기능을 위한 WTO(세계무역기구) 체제가 공식 출범했다.하지만 우리나라는 취약한 국내 농업의 보호라는 명분하에 농업 부문만큼은 개발도상국 지위를 고수, 수입 농산물에 대한 고관세 부과, 관세 인하 폭과 시기, 국내 생산 농산물에 대한 총보조금 등의 특혜를 받아왔다.개발도상국 특혜 상실에 따른 정부 대책도 나왔다. 농업인 소득 안정 및 경영 안정 적극 지원, 국내 농산물 수요 기반 확충 및 수급 조절 기능 강화, 청년·후계농 육성 지속 추진, 재정 지원 등을 골자로 농업인들의 이해를 구하는 모습이다.그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고, 향후 농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는 것은 공익형 직불제에 대한 것이다.현행 직불제는 쌀직불, 밭고정, 조건불리, 경관, 친환경직불 등 총 9종에 걸쳐 운영되고 있다. 이 중 80% 이상이 쌀에 편중되어 있으며, 상위 7%의 대농이 38.4%, 하위 72%의 소농이 29%를 수령하는 대농 편중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공익형 직불제는 모든 작물을 대상으로 동일 금액을 지급함으로써 논·밭 농가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소규모 농가는 면적과 관계없이 일정 금액을 지급하여 소득 안정 기능을 강화한다.공익형 직불제 도입에 대해서는 농업인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이다.정부도 내년 예산안에 공익형 직불제 전환을 전제로 직불금 예산을 1조4천억원에서 2조2천억원으로 증액했다경북도 또한 중앙정부 대책 발표에 따라 공익형 직불제와 같이 건의할 것은 강력히 주장하는 등 자체 대책안을 마련하고 있다.우선 체감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기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이달 중순 토론회를 시작으로 농민단체와의 간담회 등을 수시로 개최하여 현안을 수렴, 경북도의 입장을 중앙정부에 전달하고 정책에 반영토록 할 계획이다. 또한 소득 안정 장치 강화를 위해 피해 보전 대책과 지역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민 중이다.지역 농업에 미치는 중장기 영향을 분석한 후 쌀, 고추 등 상대적으로 피해가 큰 품목별로 그 대책을 마련하고, 수급 불안정 시 시장가격 지지를 위한 농어촌진흥기금 투입을 계획하고 있다.특히 로컬푸드, 공공 급식, 직거래 활성화 등을 통해 수입산 농산물과 차별 시책을 강화해 지역 농산물 소비 확충에 전력을 쏟아붓는다. 농업 부문 무역협상 최대 피해 지역인 만큼, 중앙사업비도 최대로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또 한 번의 갈림길에 들어선 경북 농업과 농업인들의 따스한 봄길을 생각하며, 정호승 시인의 시(詩) 한 구절을 되뇌어 본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2019-11-17 15:35:47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신청사 유치경쟁이 달라졌다

주장만 앞세운 전투적 구호 대신간결하고 공손한 현수막에 미소지자체 장점과 매력 앞세운 경쟁시민의 관심과 참여 긍정적 효과대구시 신청사 유치 경쟁이 달라졌다. 신문이나 TV광고를 보면 한번씩 빙긋이 웃음이 난다. 거리의 현수막을 볼 때도 그렇다. 그동안 대구시의 이런저런 광고를 볼 때마다 고구마 100개쯤 먹은 듯했던 답답함이 한번에 사라지는 기분이다.이렇게 청량할 수가 없다. 달서구, 달성군, 북구, 중구(가나다순) 모두 그렇다. '우리 지역에 신청사를 지으면 뭐가 좋은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난잡한 레이아웃도 없고 '캘리그래피'의 남용도 없으며 뜬금없는 사투리, 유치한 말장난도 없다. 그리고 빽빽하게 제 할 말만 때려 넣어 코앞으로 들이미는 위압도 없다. 간결하고 산뜻하며 공손하다. 눈길을 끌고 마음을 붙잡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그런데 이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봄만 해도 구호로만 채워진 전투적인 현수막들이 즐비했다.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가 홍보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거꾸로 '공론화위원회'가 '공론'을 막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고, 심지어 이미 정해 놓고 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 저러다 말겠지' 하는 시선들이 많았다.2004년 이래 두 번의 시도와 크고 작은 논의들이 모두 흐지부지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장소와 비용이 걸림돌인 터라 필요성 같은 걸 강조해봤자 달라질 게 없었다. '있던 자리에 다시 지어야 한다'와 '옮겨서 새로 지어야 한다'로 공방만 계속 오갔다.단체장이라면 누구라도 부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의 시청이 좁고 대구시의 격에도 안 맞는 건 알지만 잘못 나섰다간 돈 많이 쓴다고 괜한 욕만 먹을 수 있는 데다 자칫하면 청사 건립을 둘러싼 분란의 책임마저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권영진 시장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1년이 안 된 지금, 놀랍게도 신청사 건립 예정지 선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장장 15년을 끌어온 일인데 말이다. 4월에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으니 7개월 남짓 만에 여기까지 온 셈이다.출발부터 이번엔 좀 달랐다. '공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김태일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장은 '오직 시민의 뜻대로'를 대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새로운 시청이 어디에 어떻게 지어질 것인가는 모두 시민의 뜻과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예상과 달리 북구와 중구에 더해 달서구와 달성군이 경쟁에 참여했다. 대구의 미래를 짓는 일, 신청사 건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그만큼 더 커졌다.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에서 시민을 향해 호소하고 설득하는 것으로 신청사 유치 활동의 흐름도 바뀌었다.당연히 광고도 달라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대로 된 광고들이 등장했다. 사실, 대구의 홍보는 진작부터 이래야 했다. 시민에게 가 닿으려는 절실한 마음, 그게 보였어야 했다. 광고의 본질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진심이고 광고의 힘도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의 '광고 횟수 제한'이 그런 절실함을 더욱 증폭시켰다.제대로 된 광고들은 신청사 유치 경쟁에 참여한 지역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주었다. 그래서 달서구가 대구의 요충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달성군이 대구의 절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북구가 지닌 잠재력과 장점도 알게 되었으며, 중구가 대구의 중심이라는 것도 새로운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이렇듯 스스로의 장점과 매력을 앞세운 경쟁은 각각의 '다름'이 브랜드로 이어지고 그것이 강화되고 확산되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이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각 지역의 차별화된 유치활동, 대구시와 공론화위원회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이기도 하다.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대구시의 CI(Corporate Identity)와 BI(Brand Identity)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건 새로운 청사 건립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도가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구다운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혀 서성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만간 겪게 될 경쟁의 후유증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 선정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대구시가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다함께 이기는 신청사 유치 경쟁이 되도록 해야 한다.

2019-11-17 15:35:24

종이에 담채, 27.9×37㎝,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홍도(1745~1806?) '포의풍류도'

김홍도가 자신의 모습을 그렸음직한 자화상적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 그림이다. 자신을 그렸을 수도, 혹은 주문에 따라 의뢰인이 요청한 모습을 그려준 그림일 수도 있다(혹시 석농 김광국?). 어느 경우든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는 물질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고 절제와 검소를 생활 수칙으로 여겼던 조선의 유교 이념과 동떨어진 세계를 보여준다. 주류 이념과 무관한 세계에 살며 자신의 정서적 행복을 추구하는 애호가, 수집가의 취향을 소유물, 또는 상상의 소유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주인공은 편안한 차림으로 버선도 신지 않은 맨발을 드러낸 채 비파를 연주 중이다. 비파는 목의 위쪽 부분이 꺾여 있고 줄이 4개인 당비파인데, 지금 제일 바깥쪽 줄을 왼손으로 누르고 오른손으로 뜯고 있다. 눈이 비파의 현을 향해 있어 소리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무릎 앞에 놓여 있는 생황은 주인공이 악기를 두 가지나 연주할 줄 아는 음악 애호가임을 알려준다.그림 속 물건들은 고급 악기인 비파와 생황처럼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오른쪽의 휴대용 끈이 달린 호로병은 김홍도의 신선그림에 자주 나오는데 신선들이 어깨에 메거나, 허리에 차거나, 지팡이나 나귀 귀에 매달아 가지고 다니는 술병이다. 주인공은 근심을 잊게 하는 망우물(忘憂物)인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칼은 일도양단의 단호한 결단력을 상징한다. 높이 쌓인 책이 있는 독서인이고, 책 무더기에 기대놓은 두루마리 묶음은 주인공이 때로 이를 펼쳐 그림과 글씨를 감상하는 서화 애호가임을 알려준다. 향로가 있고, 긴 목의 양쪽에 손잡이가 달리고 빙렬이 있는 병은 중국 송나라 때의 유명한 가마인 가요(哥窯) 스타일 도자기이다. 그 옆의 중국 고동기(古銅器) 고(觚)에는 간찰 묶음, 여의(如意), 산호가 꽂혀 있다. 모두 값비싼 수입 골동품이다. 주인공은 돈을 이런데 쓰는 사람이다. 둥근 벼루에 조각 먹이 걸쳐져 있고 파초 잎 옆에 붓이 있다. 종이가 아니라 파초 잎에 시를 쓰는 것은 시가 떠오르면 써 볼 뿐이지 남겨 놓거나 자랑하려고 시를 짓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화제는 "지창토벽(紙窓土壁) 종신포의(終身布衣) 소영기중(嘯咏其中) 단원(檀園)"이다. "종이 창 흙벽 집에서 평생 벼슬 없는 포의로 시 읊으며 살리라"는 이 말은 명나라 문인 진계유의 시 '암서유사(岩栖幽事)'에 나오는 구절이다. 머리도장은 주문호로인 '빙심(冰心)'으로 '얼음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인데 인장의 형태가 병 모양이어서 '옥호빙심(玉壺冰心)'으로 읽는다. 옥호빙심은 당나라 시인 왕창령의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에 나온다. 말미의 주문방인은 '김홍도'이다. 미술사 연구자

2019-11-17 06:30:00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우리가 노래하는 이유

'우리가 노래하는 이유'는 한 방송국 주최로 최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열렸던 합창페스티벌의 공연명이다. 이틀간의 출연자 수가 600명이 훌쩍 넘는 큰 규모의 축제였다.피날레에 300여 명의 출연진들이 한 무대에 서는 것도 보기 쉽잖은 풍경일 것이다. 관객들의 함성이 곳곳에서 울려나왔다. 각 팀의 의상도 각양각색이라 무대는 형형색색 꽃밭이었다. 참여단체 중에는 어린이 합창단, 여성합창단, 남성합창단, 혼성합창단으로 음악 전공자, 예비 음악 전공자, 또는 오랜 시간 노래실력을 키워온 아마추어 등 단원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단원들만의 축제로도 훌륭한 잔치였다. 피날레의 합창 제목이 'Why we sing' 이었다.우리가 노래하는 이유는 희망, 평화, 축복, 사랑의 소리로 노래할 때, 영혼을 달래주고, 다친 마음을 치유시켜주고, 기쁨을 발견하고, 친구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아름다운 소리를 더 크게 울리고 있다. 뮤직은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는 언어이고, 가로막고 있는 담을 허물고 연결해주는 다리라고 노래 불렀다. 아이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남성의 저음, 여성의 청아한 고음들이 하나가 되어 하모니를 만들었던 무대였다. 관객들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겠지만, 출연진들의 감동도 적지 않았다. 한 목소리를 내면 하모니가 이뤄져가는 합창의 묘미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이러한 음악계의 저변확대가 필자에게는 부러운 일이었다. 전공자들이 비전공자들의 실력을 키워가고, 그 공동체들을 공동의 장으로 묶어내는 기회를 확대하면, 일자리 창출도 되고, 그 예술분야의 힘도 당연히 강해진다.음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에서 생활예술의 확장은 그 규모가 점점 확대되어 간다. 문화선진국일수록 스포츠와 예술분야에 관람자로서 보다는 직접 참여하는 자의 수가 점점 더 커져간다. 대리만족이 아니라 직접 즐길 때, 그 효과와 파장은 훨씬 긍정적이라고 본다. 좋아하면 관심을 갖기 마련이므로 해당 분야 전문 공연에 대한 관객의 수도 더불어 많아진다. 단언컨대 예술분야에 관심을 두고 정진하는 사회분위기가 된다면, 세상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었다. 자신에게 맞는 장르를 골라 누구는 노래를, 연주를, 춤을, 연극을, 그림을 매개로 삶을 표현하고 즐기는 예술세상이 우리사회에 더욱 만연해지길 기대해본다. 대구문화재단의 예술지원예산에서 생활예술 분야를 위한 것은 현재 5% 미만이라고 하니, 조화로운 예술세상을 위하여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1-17 05:30:00

염상섭 '해바라기'(1924, 박문서관) 표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소설가 염상섭이 바라본 나혜석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이자, 최초의 여류소설가이며, 세계일주여행을 한 최초의 여성이다.이 빛나는 업적과 달리 그녀 삶은 고통스러웠다.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오십 삼 세 나이로 시립요양원에서 행려병자로 죽음에 이른 삶의 여정은 몰락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하기가 어렵다.명민하고 열정적이었으며,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지녔던 나혜석이 왜 이런 몰락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나혜석을 소재로 한 염상섭의 소설 '해바라기'(1924)에서 그 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해바라기'는 나혜석, 김우영 부부의 신혼여행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해낸 소설이다.나혜석이 변호사 김우영을 처음 만난 것은 1917년, 스물한 살 때였다. 이 무렵 나혜석은 연인 최승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혼란에 빠져있었다. 김우영은 수년간에 걸쳐 헌신적 애정을 퍼부었고, 그 애정에 감동한 나혜석은 마침내 마음의 상처를 딛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결혼에 앞서 나혜석은 김우영에게 네 가지의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요절한 연인 최승구의 묘지 참배였다. 김우영은 약속대로 최승구 묘지가 있는 전남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참배 후 비석까지 세운다. '해바라기'는 나혜석, 김우영 부부의 이와 같은 기묘한 신혼여행을 다루고 있다.이제 막 남편이 된 사람을 끌고 옛 연인의 묘소로 신혼여행을 떠난 나혜석의 행동은 당시에는 물론 후대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는 지극한 완고함. 소설가 염상섭은 신혼여행 사건을 테마로 한 소설 '해바라기'를 통해서 나혜석을 이렇게 규정하였다. 아울러 김우영과의 결혼 역시 첫 사랑에 실패한 후, 영양가 없는 사랑보다는 능력 있는 '후견인'을 원한 나혜석의 이해타산의 결과로서 단정 짓고 있다.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신혼여행 사건을 바라보면 순수하고 솔직하며 융통성 없는 나혜석의 모습이 느껴진다. 혼자 살아남아 새로운 사랑을 찾은 자가 죽은 연인에 대해 느끼게 되는 속죄의 마음. 그리고 부부의 인연을 맺는 상대에게 한 치의 어두운 비밀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정직함과 솔직함이 거기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나 투박했을 뿐, 나혜석은 최승구도 김우영도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안타깝게도 나혜석이 살았던 시대는 이와 같은 여성의 솔직한 자기표현은 사회의 평온을 깨는 불순한 자질로 인식되던 때였다. 여전히 인내와 순종이 여성의 미덕이 되던 때였다.이 완고한 인식의 가장 앞자리에 서있었던 것이 바로 염상섭이나, 이광수, 김동인과 같은 근대적 교육을 받은 엘리트 남성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남녀평등을 외치면서도 나혜석을 비롯한 신여성들의 애절한 자기목소리를 방종한 성품이라며 매도해댔다. 그 점에서 나혜석의 몰락은 지나치게 솔직했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도 있을 듯하다.

2019-11-16 06:30:00

배태만 작 '돈의 얼굴'

[내가 읽은 책]돈/에밀 졸라/ 문학동네/2018

돈은 자본주의 시대의 신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지 아니면 인간이 신을 창작했는지 의문인 것처럼, 사람이 돈을 소유하는지 오히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지 헷갈린다. 돈에 얽매여 한 인간의 삶이 극단적으로 좌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 '돈'이다. 은행원 생활 27년째로 늘 돈의 민낯을 대하면서도 과연 돈이 무엇인지 의문이던 나에게 이 책은 돈의 내밀한 속살을 보여주었다. '돈'은 19세기 프랑스 문학계를 대표하는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20권 중 18번째 책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투기적 금융을 소재로 한다.저자인 에밀 졸라는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자라났다. 일반적으로 그는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모랄리스트이며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말년에 드레퓌스 사건에서 용감히 진실을 옹호한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는 같은 시기 유럽에서 살았던 찰스 다윈과 카를 마르크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직한 작품을 남겼다. 인간은 유전자에 새겨진 운명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자연주의와 자본에 의해 고통 받은 노동자의 해방에 몰두한 과학적 사회주의. 그러한 논지들이 곳곳에 보인다. 문학작품은 그 시대와 동떨어져 섬처럼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부동산 투기 실패로 처참하게 몰락한 주인공 사카르가 '기어코 성공해서 내게 등을 돌린 그자들 위에 보란 듯이 다시 군림해야지'라며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카르는 유대인 은행가인 군데르만에게 시기심과 적개심을 느끼며 그를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무모한 열정으로 새로운 은행을 설립하고 투기적 행태로 주가를 조작하여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보인다."투기와 작전은 우리 사업과 같은 거대 사업에서는 핵심 바퀴요, 심장 그 자체입니다." (157쪽)사카르가 은행을 설립하고 주가를 부양시키는 과정에서 돈에 대한 욕망을 가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합류한다. 이들의 욕망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한 몸부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강조한대로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고 인간의 본질 그 자체이므로 그 수단인 돈도 죄악시될 수 없다. 다만, 그 욕망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생명의 존속에는 이런 과도한 열정, 이처럼 천박하게 소진되는 욕망이 반드시 필요했다." (314쪽) 이상주의자로 그려지는 시지스몽이 사카르에게 '타자를 위한 사랑이 사회조직 속에서 이기주의를 대체하고, 우리의 내면에서 활기를 띠는 날이 언제나 올는지'라고 했지만, 그로부터 약 1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말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위 이웃에 따뜻한 눈길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눈이 먼 결과이다. 더구나, 돈이 금융거래의 수단을 넘어 숭배의 대상이 된 이후, 돈을 가지면 타자로부터 암묵적 복종까지 덤으로 가지게 되었다. 수단과 목적이 지나치게 전도된 셈이다. 이제 돈의 이면에 감춰진 욕망을 직시하고 돈을 숭배의 대상에서 화폐측정이라는 도구적 단계로 끌어 내리자. 이 책을 통해 돈에 투영된 나의 욕망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소설적 재미뿐만 아니라 인생의 의미도 찾게 될 것이다.배태만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1-16 06:30:00

이상일 시인, 수필가

[광장]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보자

몇 년 전 공익광고에 "어린 시절에 보았던 공연의 감동은 집으로 오는 길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리고 지금까지 제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작은 문화체험들이 더 큰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문구와 같이 대구의 문화정책에 대한 하나의 제언으로 대구 대공원 개발에 가칭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보자고 제안해 본다.세계는 지금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제조업 및 서비스업까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어,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관광이나 문화 콘텐츠 분야가 각광을 받고 있다. 국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글로벌 한류로 지속 가능한 콘텐츠와 정책 개발에 힘써오고 있다.인구 240만 명이 넘는 대도시답게 대구도 다양한 공연장과 전시실이 많다. 특히 국내 최초 단독 오페라 전용 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콘서트하우스를 비롯한 음악공연장과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미술관 등 전시실은 물론 각 구청마다 복합문화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문화를 총괄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국과 공연문화도시 조성사업과 문화예술인 가치 확산 사업을 주도하는 대구문화재단 등도 대구예술문화계를 이끌어 가고 있어, 문화 예술 인프라 측면에서는 크게 뒤처질 것이 없다.문화는 다양한 장르로 시민의 삶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구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볼 때 통합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점에서 아쉽다. 시민이 먼저 대구지역에서 성장하고 활동했던 미술·음악·문학 등 예술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 고장 사람들부터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작품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대구가 문화예술의 도시임을 부각시키고 홍보할 콘텐츠 개발 차원에서 가칭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만들어 우리 고장 사람부터 친숙하도록 해보자.내가 근무하고 있는 창원시(구 마산시)만 해도 지방 소도시이지만, 이미 2008년 시(詩)의 도시로 선포하고 임항선 그린웨이와 산호공원, 돝섬 등 7곳을 '시인의 길'이라 명명하고 이 지역 출신 문학가를 중심으로 시비나 팻말 100여 개를 세워 시민들에게 잔잔한 문화체험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구도 전문가의 공연과 전시도 좋지만, 누구나 쉽게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작은 문화공간이 많아져야 하는 차원에서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자연스럽게 건강과 레저와 문화가 함께하는 복합시민문화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일환으로 대구미술관을 중심으로 새로 조성 예정인 대구대공원, 이미 조성되어 있는 대구스타디움과 연계해 명품 산책길을 조성해 대구 출신 미술, 문인,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테마길(미술길, 문학길, 음악길 등)을 조성해 작품을 감상토록 하고 음악도 들려준다면 좋은 문화공간이 될 것으로 본다.산책하면서 대구 문화도 알고 긍지를 갖도록 인프라를 갖춘다면, 도심과 가깝고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부모님과 아이들이 교육 차원에서 많이 찾으리라 본다. 먼 훗날 이런 작은 체험들이 모여 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 구축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더 큰 세계 속의 문화계를 빛낼 사람으로 키우는 공간과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2019-11-15 19:37:48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기억하는 법

기억을 스마트폰이 담아내는 세상기억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조작'삭제 바로잡는 기능 무궁무진특권층'연예인 모르쇠 전략 안 통해스무 살 때 강원도의 어느 호수 안에 있는 무슨 섬으로 엠티를 갔었다. '바퀴벌레 한 쌍'이라고 불리던 두 친구의 언약식을 치러주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추억이었다. 어이없게도 나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동기들에 의하면, 우리는 그곳에 엠티를 간 적이 없었다. 대학 다니는 내내 '언약식' 따위를 치러준 커플이 전혀 없었단다. 순전히 나만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 기억을 믿고 있다.그런데 만약 그것이 정말 없었던 일의 기억이라면? 아마도 공상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기억으로 자리 잡은 것일 테다. 꿈이었을 수도, 상상한 스토리일 수도, 망상일 수도 있다. 엠티 가서 언약식하는 이야기, 얼마든지 공상할 수 있다. 내 바람의 변형이었을 수도 있다. 언약식 같은 특별한 체험을 해보고 싶었던 어쭙잖은 청춘의 간절한 몽상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실제 기억처럼 대뇌피질 어딘가에 박힌 것이다.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내가 들었던, 보았던, 읽었던 장면들이 한 줄기로 꿰어져 내가 겪은 일로 둔갑한 것. 누군가에게 '바퀴벌레 한 쌍'으로 불리는 커플 얘기를 들었고, 어느 드라마에서 대학생들이 언약식 치르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것을 조합하여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일로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나만 이렇게 이상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확신하지만, 어쩌면 실제로는 없었던 일일 수도 있는 기억. 나처럼 극단적인 기억의 모순은 드문 일일지라도,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흔한 일일 테다.남자들의 군대 얘기가 그토록 길고 격렬한 것은 기억의 불일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수십 년 만에 만난 동창들 모임이 학교 때 얘기만으로 밤을 새울 수 있는 것은 기억들의 중구난방 때문이다. 분명히 같은 사람들이 같은 일들을 겪었는데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흥미로운 것은 기억을 대하는 태도다. 나처럼 내 기억이든 타인의 기억이든 모조리 의심하는 이도 있다. 대개는 내 기억도 타인의 기억도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는 식의 열린 자세를 유지한다. 그래야 그 판이 유지되니까. 물론 판이 깨지든 말든 자신의 기억을 맹신하는 이들이 있다. 내 기억은 무조건 틀림없고, 타인의 기억은 무조건 틀렸다는 거다. 이런 사람이 둘 이상이면 필시 고성이 오가게 된다.왜 기억을 나누다가 싸우지는 않더라도 마음이 상하게 되는 걸까. 나는 타인에게 잘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 테다. 이를테면 일관되게 괜찮은 언행을 한 사람으로. 내 기억으로 나는 일관되게 점잖게 말하고 행동했는데, 타인이 몹쓸 언행불일치자로 기억하고 있으니 언짢아질 수밖에 없다.어쨌든 오래도록 다채로운 기억은 사람의 것이었다. 실제기억이든, 공상기억이든, 표절기억이든 내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스마트폰이 하는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에 담아버리면 끝인 거다.물론 제일 고통받게 될 사람들은 특권층이나 연예인처럼 온 국민이 다 아는 분들, 이른바 '공인'일 테다. 공인의 말과 행동은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기억된다. 하기는 연예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권층은 별로 문제될 게 없을 수도 있겠다. 그분들의 주특기가 '모르쇠'와 '아니라고 딱 잡아떼기'와 '내로남불'이니까. 그래도 과거처럼 대놓고 적폐를 저지를 수는 없겠다. 딱 잡아떼고 말면 되는 언행도 있겠지만, 감옥에 가야 할 언행도 있으니까.법으로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왜곡하거나 조작하거나 삭제한 기억을 바로잡아주거나 복원해주는 등 스마트폰의 순기능은 상당하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서글픈 일이다. 반주 없이도 외워 부르는 노래가 수두룩하던 사람이 노래방 기계 없이는 노래를 못 부르듯, 그렇게 길을 잘 찾던 사람이 내비게이션 없으면 길치가 돼버리듯, 스마트폰이 없으면, 그때 내 마음을, 내 생각을, 풍경을, 타인의 언행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기억일지라도, 기억 행위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도록 했다. 기억하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억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2019-11-14 11:33:56

신호종 전 대구고검 사무국장

[기고] 야구감독의 선택

창단 50년 만에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첫 진출한 워싱턴 내셔널스가 2019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정규리그 승률 2위 LA 다저스(106승)와 1위 휴스턴 애스트로스(107승)를 차례로 물리친 9위(93승) 워싱턴의 우승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이게 바로 야구다. 역전패당한 휴스턴과 다저스는 경기가 끝났음에도 '패장의 선택'에 대하여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잘 던지고 있는 A투수를 왜 교체했느냐? B투수를 잘못 투입한 것이 패인이다. C타자를 왜 선발에서 제외했느냐? 성적이 신통치 않은 D타자를 출전시킨 이유가 뭐냐?' 등등.힌치 감독은 2년 전 휴스턴에 창단 55년 만에 첫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겼던 명장이다. 로버츠 감독도 부임 후 4년 연속 다저스를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시켰다. 하지만 올해는 두 감독 모두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정규시즌 승률보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더 갈망하는 게 팬들의 요구다. 워싱턴과의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7이닝 초반까지 잘 던진 선발투수 그레인키를 교체한 힌치 감독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팬들은 믿는다. 로버츠 감독도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7회까지 3대 1로 앞선 상황에서 선발투수 커쇼를 구원투수로 깜짝 등판시켜 홈런을 맞아 패하게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반면에 워싱턴의 마르티네스 감독은 전력이 열세임에도 선발투수 2명을 적시에 등판시켜 우승을 이끌었다고 칭송받는다. 야구의 묘미는 공 한 개로 승패가 갈리는 데 있다. 투수는 공 하나로 타자를 아웃시킬 수도 있지만 홈런을 얻어맞을 수도 있다. 타자는 똬리 튼 독사가 먹잇감을 노리듯 공을 때려 홈런을 쳐낸다. 감독은 매 순간 공 한 개에 대한 선택으로 피를 말리는 고민을 해야 하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혹독한 직업이다.물론 수시로 코치의 조언과 데이터를 제공받지만 선택은 오롯이 감독의 몫이다. 다저스와 휴스턴은 슈퍼컴퓨터와 분석관까지 둬 감독이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팀으로 유명하다. 반면에 마르티네스 감독은 경험과 소통을 중시하는 다소 올드한 직감 야구를 선호한다. 부상 중이던 선발투수 슈어저의 몸 상태를 직접 점검한 후 그의 투지를 믿고 등판시켜 승리를 이끈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그는 5차전에서 심판의 볼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했다. 선수 사기를 높이고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그만의 선택이었다. 소통이냐, 불통이냐. 선수에 대한 믿음이냐, 데이터 중시냐. 이런 차이다.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은 투수 34명, 워싱턴은 28명을 등판시켰다. 디비전시리즈에서도 다저스는 투수 26명, 워싱턴은 22명을 등판시켰다는 데이터는 마르티네스 감독의 투수에 대한 믿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통과 믿음의 직감 야구가 데이터 야구를 이긴 셈이다.힌치와 로버츠 감독은 자신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선택이었다고 정당함을 강변한다. 구단도 두 감독을 신뢰하여 내년 시즌을 보장했다. 이런 엇박자가 팬들을 더 화나게 하는 이유다. 응원 함성이 한순간에 비난의 폭풍으로 뒤바뀔 수 있고 팬들이 조용히 야구장을 떠날 것이다. 자신이 한 선택을 팬들의 입장에서 되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공감, 진정성, 용기야말로 이 시대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임을 곱씹어 볼 기회였다.

2019-11-14 11:10:01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가을에 이별 노래가 많은 이유

가을날, 길을 걷다 들려오는 슬픈 발라드 음악이 마치 나를 위한 노래 같아 가던 길을 멈춰 선 적이 있는가? 혹은 무심코 흥얼거리거나 문득 생각나는 음악이 날씨별로, 시간대 별로 다르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우리가 봄에 듣게 되는 노래들에는 설렘, 사랑, 꽃에 관한 가사가 많다. 특히 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벚꽃에 관한 노래가 많은데, 한 예로 '버스커 버스커'라는 가수의 '벚꽃엔딩' 이라는 곡은 봄만 되면 음원차트의 상위권에 자리한다. 그 해의 인기곡들과 나란히 경쟁하다가 봄이 가고 여름이 와서야 차트의 상위권 자리를 내어준다. 매년 봄마다 이 노래가 차트에 오르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사람들은 '벚꽃엔딩'의 음악차트 진입으로 봄이 왔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봄이 가고 여름이 되면, 설렘 등의 조심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 아주 경쾌하고 활기찬 감정을 느끼게 하는 빠른 비트의 음악이 주류를 이룬다. 노래의 내용은 그에 어울리는 여행이야기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차분하고 슬픈 이별내용의 발라드가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장식한다.가을만 되면 모든 커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별을 다룬 발라드 음악이 인기를 누리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환경에 의한 호르몬의 변화가 바로 그 원인이었다.인간은 여러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환경은 바로 자연환경이다. 우리는 자연 없이는 생존이 불가하다. 자연은 우리에게 낮과 밤을 선사하고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4계절도 만들어 준다. 그러면서 따뜻하거나 추운 기온의 변화가 생기며 이 계절과 기온의 변화는 인간의 심리상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여러 가지 자연의 변화 중 햇볕의 양을 뜻하는 일조량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드러났다.일조량이 많을수록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하는데 이는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뇌를 자극해 사람을 들뜨게 하며 긍정적이고 충동적으로도 만든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일조량이 점점 늘어나 '세로토닌'이 증가한다. 그것이 극대화 된 여름은 당연히 봄 보다 더욱 더 활기찬 나날을 보낼 것이며, 다시금 해가 짧아져 일조량이 적어지는 가을에는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 우울감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가을이 되면 우울해지는 것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겪게 되는 당연한 변화이다. 날씨가 바뀔 때마다 나오는 노래들이 다 비슷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가을 내내 우울한 이별 발라드 곡만 듣고 있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주말엔 밖으로 나와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며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쬐는 건 어떨까?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1-14 11:09:26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ICT산업진흥단/문화콘텐츠진흥단 단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봉주르 스타트업

최근 프랑스 출장 중에 현지 스타트업 현황이 궁금하여 대표적 생태계 랜드마크인 '스타시옹 에프'(Station-F)를 방문하였다. 파리 도심의 철도 차량기지를 개조하여 탄생시킨 '스타시옹 에프'는 3만4천㎡가 넘는 규모로 스타트업 단일 보육공간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프랑스 이동통신사 '프리모바일' 회장 자비에르 니엘이 사비를 털어 구축한 '스타시옹 에프'에는 3천 명이 넘는 창업자뿐 만 아니라 구글, 애플, 아마존 등 유수의 기업들이 입주하여 각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기업과 투자사들이 창업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며 유니콘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창업자들을 24시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과 해외 스타트업에도 모든 것을 개방하여 프로그램에 선정만 된다면 비자 발급 등 다양한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다.이렇게 '스타시옹 에프'는 유럽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캠퍼스'를 넘어 전 세계 스타트업들을 파리로 끌어들여 지속 가능한 프랑스 경제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지인의 소개로 '스타시옹 에프'에서 유망 스타트업들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인 직원은 씁쓸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창업자 중 외국인 비중이 25% 정도인데 한국인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프로그램에 참여하더라도 모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이유는 단순했다. 현지 투자를 받아 유럽 진출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정부 지원을 손쉽게 받을 수 있는 한국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또한 길드 형태의 멘토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시옹 에프'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최고의 공간과 편의를 제공해줄 수 있지만 시장에서의 성공은 스타트업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스타시옹 에프'의 운영 철학을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9-11-13 18:00:00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말의 온도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뜨거운 언어는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출간된 지 3년 만에 150만 부를 돌파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마디 말이 주는 소중함과 절실함이 담긴 이 책은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요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대면할 때마다 그들에게 이 작가가 펴낸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을 필독하라고 권한다. 그들의 대상은 반대 진영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기 때문이다.이미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으니 품격 떨어지는 말들을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국민을 위한 입법기관, 그것도 국민의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이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말들을 쏟아낼 때, 그 말들이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흘러나올 때 국민들은 마음을 데인다. 그걸 막말 정치인들은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국가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정치인들의 막말정치에 국민들은 지친 지 오래됐고 일말의 기대감마저 사라졌다.정치인이란 국민들을 대신해서 정책을 세우고 제도를 만들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국민은 힘들게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그 돈의 일부가 정치인들의 월급이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인이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을 무시하며 정치를 권력으로 생각할까.이제 곧 선거철이다. 정치인들은 자기가 속한 선거구를 돌며 90도로 인사하고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부탁할 것이다. 올바른 정치인으로 국민을 대변하겠다고 온갖 말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이미 그들이 한 말을 기억한다. 그들이 뱉어낸 낯 뜨거운 말들이 국민들을 얼음장처럼 차갑게 만들고 마음의 문도 닫게 했다는 걸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2019-11-13 18:00:00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자율과 여유

Q. 다음에 설명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2019년 UN 발표 행복지수 세계 1위(참고로 한국은 조사대상 156개국 중 54위). 2018년 1인당 국민소득 6만1천227달러(세계 9위), 인구 약 575만 명, 면적 약 4만3천㎢ (남한 면적의 약 40%), EU 가입 국가이지만 자국 화폐 사용. 천연자원은 부족하지만 서비스업과 제조업 발달, 2016년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부패지수 1위(혹 부패지수 1위라 해서 부패한 나라가 아니라 부패 정도가 가장 낮은 국가를 의미함)인 국가는? 잘 모르시겠다면 세계적인 맥주 칼스버그의 산지라는 힌트! A. 답은 덴마크이다.한 달 전,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해외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출장국은 바로 덴마크였다. 학기 중이라 부담은 컸지만, 유럽 국가 중에서 관광으로 다녀오기는 쉽지 않은 나라라 많은 것을 배우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장을 떠났다.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대표적 복지국가인 덴마크는 매력적인 나라로 생각되었다. 종종 우리 사회의 복지나 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방송에서도 덴마크라는 나라는 우리와 많이 비교되곤 한다. 필자도 수업시간에 사회복지와 사회 전반의 의식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덴마크의 사례를 인용하곤 했다. 필자는 요즘 보건복지부에서 강조하는 '탈시설화'를 살펴보기 위해 주로 노인복지시설을 중심으로 방문하였다.10월 중순의 북유럽을 가기 때문에 가을임에도 상당히 추울 듯 생각되었지만, 생각보다는 기후도 따뜻했고 덴마크 사람들도 친절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필자가 받은 덴마크의 느낌을 SNS 식으로 표현하면 '#자율 #여유'였다. 복지국가라는 생각 때문에 복지현장 곳곳에 규율과 지침이 상당히 촘촘히 작동할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개인들은 최대한 자율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국가와 사회는 개인들의 자율적인 삶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유와 배려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우리의 경우, 노인복지시설에 노인들의 보행을 돕기 위한 핸드레일이 복도를 비롯해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노인과 관련된 시설의 모든 공간에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시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심지어 핸드레일의 규격까지 제시되어 3년 주기로 시행되는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규격에 미달되면 평가에서 점수를 받지 못한다.그러나 필자가 방문한 덴마크의 노인시설은 아주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필자를 포함해 동행한 사회복지사들은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덴마크 시설관계인의 대답은 이동이 불편한 노인이라면 보행보조기구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실용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가급적이면 노인들이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노인들에게도 좋으니까.더 흥미로운 것은 요양원의 화재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었다. 작년에 덴마크의 요양시설에서 거주 노인이 피우던 담배로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80명 넘게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었다. 우리는 당연히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지침과 규정을 만들고, 이를 행정기관이 감독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또 그렇게 대응해왔다. 그런데 덴마크 정부의 대응은 다시 한 번 연수팀을 당황시켰다. 담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가 발생하도록 시트나 이불을 방염 소재로 바꾸고, 담배를 피울 때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기구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우리의 사고와는 너무 다른 접근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만들고, 규제를 지키도록 하기 위한 각종 감독과 평가, 그리고 규제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제재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사회복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시스템이었다. 시설관계인도, 공무원도, 시설 노인들도 모두 미소가 항상 떠나질 않았다. 그들의 삶 속에는 '여유'가 있었다. 자율은 혼란이 아니라 또 다른 질서인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필요한 도움을 주되 최대한 복지서비스 대상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나라. 국토도 작고 자원은 많지 않지만 국민이 부유하고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모습이었다.

2019-11-13 18:00:00

쓰기의 두려움을 당신도 갖고 계시는가요? 사진: PIXABAY 제공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글쓰기가 번지점프만큼 두려운 이에게

글쓰기 전쟁이다. 아침에 눈 떠서 저녁에 눈감을 때까지 인간은 쓰기를 반복한다. 소통을 위해 쓰고 업무 보고를 위해 쓴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쓰고 SNS를 하기 위해 쓴다. 이토록 글쓰기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당연히 글쓰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글을 쓰고자 앉으면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진다. 이런 스트레스는 돈이 오고 가는 순간 더 심해진다. 광고에 쓰이는 카피, 홈쇼핑에서 쇼핑호스트의 한 마디, 쇼핑몰의 상품 소개 문구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일이다. 광고 카피의 차이가 상품의 매출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광고 카피라이터로 일을 시작한 필자 역시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 시작은 카피라이팅에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였다. 남들은 쉽게 척척 써내는 것 같은 카피가 필자에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수학, 영어 문제처럼 정답이라도 있으면 공식을 외어서라도 풀겠는데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 모래사장에서 동전을 찾는 것처럼 광활한 대지에서 보석을 찾아야 하는 느낌이었다.하지만 밥벌이를 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재능이 없다고 해서 손가락 빨고 있을 수는 없다. 그때 '재능 없음'을 이길만한 엄청난 해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조금씩 계속'이라는 법칙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이 없으니 남들이 안 쓸 때 더 쓰고 남들이 쓸 때 '나는 더 쓰자'라는 생각이었다. 이 칼럼에서 몇 가지 팁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첫째, 하루에 카피 10개를 무조건 썼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잠들기 전에는 무조건 카피를 열 줄을 써야 잠이 들었다. 카테고리는 카페, 병원, 가구, 가전, 의류 등 다양하게 나누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써나갔다. 물론 세상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카피도 많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쓰다 보니 카피의 질도 올라갔고 관련 브랜드에서 의뢰가 올 때 바로 꺼낼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올라갔다.둘째, 의도적으로 글을 많이 쓰는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이 칼럼 역시 그런 의도적인 환경 중 하나이다. 처음 매일신문에서 칼럼 제안이 왔을 때도 망설이지 않았다. 무조건 쓰겠다고 했다. 사실 광고인이 칼럼을 쓴다는 건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일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하나의 글이 너무 빨리 그리고 멀리 퍼지기 때문이다. 무슨 광고인이 저렇게 글을 못 쓰냐는 비아냥거림도 겁났다.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의무적으로 칼럼을 쓰면 글쓰기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런 극한의(?) 환경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니 서점에 갔었을 때 반드시 글쓰기 책 하나는 들고 나왔다.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팁이지만 그 힘듦 속에 분명 성장이 있다.셋째, 실패작을 많이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에 대한 스트레스는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강박관념에서 시작된다. 반드시 좋은 글, 뛰어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글쓰기를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글을 못 쓴다고 해서 우리가 우려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경찰이 와서 우리를 잡아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든지 이성 친구가 이별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실패한 글을 많이 써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마음이 너무 편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봤다. 두려움 없이 여러 시도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 실력이 올라갔다.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법칙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실 누구나 지금부터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처음부터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처음부터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조금씩, 계속'이라는 법칙으로 글을 써왔던 작가들이다. 그렇게 시작하자. 조금씩, 계속 말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11-13 17:50:41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삶을 가볍게 낙엽이 떨어진다

천하에 가을이 가득하다. 바람 따라 사라져 버린 황금 들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가슴에 남는다. 본체를 떠난 낙엽이 허공을 맴돌다가 대지 위로 떨어진다. 하나둘씩 제 몸을 버리고 모든 것이 텅 비어져 간다. 날마다 힘에 겨워 떨어지는 낙엽이 쌓여만 간다. 노란 은행잎도 붉은 단풍잎도 넓은 보리수잎도 바람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쌓인다. 밭에 호박은 누렇게 잘 익어 마른 풀숲에 숨어 있고 채소들은 씨앗을 땅에 떨군다.추수를 마친 들녘은 빈 공간이다. 생명을 키우고 결실을 맺고 빈자리로 돌아와 회복을 위해 휴식에 든다. 사람에게도 밤낮이 주어져서 소진한 기운을 회복하듯 계절의 순환으로 자연계는 비우고 채우며 생명력을 얻고 전한다. 낙엽 위를 산책하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자아를 느끼며 생각에 잠긴다. 밤은 길어지고 새벽 기운은 차다. 이렇게 한 해의 시간이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로 저문다. 사람도 자연도 인연에 의해 오고 감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 윤회의 진리가 가을에 있다.자연과 같이 인생도 때를 알아 소유하고 떠나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가벼워진다.그렇다고 현실적인 무소유의 삶을 살란 뜻이 아니다. '무소유'(無所有)란 내가 가진 걸 모두 내려놓고 물질적으로 가난해지는 삶이 아니다. 예수님도 '무소유'를 설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복음 19장 24절 참조) 모두 들어본 유명한 구절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이런 것이다.삶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두 경쟁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달려야 하는데 소유욕이 없다면 험난한 경쟁사회를 어떻게 헤쳐갈 수 있겠나?"스포츠 감독이나 코치는 '몸에 힘을 빼라, 긴장을 풀라'고 한다. 왜 그럴까. 몸에 힘이 들어가면 어깨와 근육이 경직되고 결국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마음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승리에 집착하기 때문에 결국 내 안의 에너지를 다 뽑아 쓸 수 없다. 우리의 삶도 무언가를 '꽈∼악' 붙들고 있으면 긴장하게 된다. 힘이 들어가면 삶이 경직되고 유연해지지 않는다. 물질적 재산뿐만 아니라 과거의 상처나 현재의 욕망, 미래의 불안 등으로 마음이 뭔가를 틀어쥐고 있다면 그게 바로 '소유의 삶'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집착에 대한 무소유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의 기준도 '부와 소유의 총액'이 아니라 '집착의 총액'이다. 집착이 클수록 바늘구멍은 좁아지고, 집착이 작을수록 바늘구멍은 넓어진다. 집착이 많을수록 천국의 문이 좁아지고, 집착이 적을수록 천국의 문이 넓어진다"라 고 백성호의 현문우답은 말한다.무소유는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집착을 좀 내려놓고 경쾌하게 삶을 스윙하는 일이다. 그러니 '무소유'는 산속에 사는 수도자에게도 필요하지만 복잡한 일상을 헤쳐 가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다.문재인 정부도 힘을 좀 빼야 한다. 재임 반환점을 돌면서 일자리 외에는 잘못한 점이 없다고 한다. 정의, 공정을 외치며 다 같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제껏 시행한 정책이 앞으로 꽃을 피울 것이라고 한다. 경제는 하락하고 외교, 안보도 불안하다. 불통 국정운영에 이제 힘을 좀 빼고 사회와 기업과 야당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오동나뭇잎 하나 떨어져 온 누리가 가을임을 안다"는 시의 한 구절처럼 망월사 누각 앞의 황갈색 단풍이 곱다. 단풍과 잔디밭에 떨어진 낙엽이 한옥과 탑과 산천의 선을 따라 가을이 환상적으로 깊어간다. 가을은 말없이 사라지기에 더욱 연민을 느끼게 한다.낙엽과 무소유를 생각하며 이미경의 '고향의 노래'와 차이콥스키의 '가을의 노래'를 듣는다. 이맘때쯤이면 '가곡의 밤'이 그리워진다.

2019-11-13 13:27:52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도박

나는 화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스톱을 안 한지는 아마 1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이유는 칠 때마다 돈을 잃어서이고, 또 동료에게 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잘 치는 사람은 몇 판만 돌아가면 상대방의 패를 읽는다던데 난 늘 어리벙벙하다. 되는대로 마구 치다가 민폐를 끼친다며 욕을 먹기 일쑤다. 점수 계산도 서툴러, 떠듬떠듬 세고 있을 때면 늘 상대방이 먼저 몇 점이라며 기를 죽인다. 돈 잃고, 욕먹고, 아둔한 머리까지 들통이 나니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복권은 당첨될까봐 안 산다" 라는 말을 해서 친구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다. 이 말은 농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복권은 거의 사 본 기억이 없다. 그 아득한 확률을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당첨이 된다고 해도 적잖이 난감해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반칙으로 이긴 경기처럼, 컨닝을 해서 붙은 시험처럼 찜찜할 것만 같다. 사내답게 정정당당한 승부로 살아온 내게는 맞지를 않는다.남의 돈을 따겠다는 노름이나 혹시나 하는 요행을 바라는 복권은 사지 않았지만 인생 도박판은 크게 벌인 적이 있다. 운수업에 뛰어든 지 2년쯤 지났을 때였다. 당시에는 수원 영통 소재의 의약품 택배회사에서 수원~창원 간 편도 지입을 하고 있었다. 길이 멀기 때문에 하루는 상행, 하루는 하행으로 교행(交行)을 하고 있었는데,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대구 코스를 교행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가면 당일치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 자리 값을 주고 두 자리를 합쳐 차 한 대로 '당일바리'에 도전을 하게 된다. 두 대 분을 혼자서 하니 돈은 되었지만 문제는 잠자는 시간이 4시간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목숨을 건 도박이 시작되었다.어떤 계기를 만들지 않고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시작은 했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죽을 지경이었다. 쏟아지는 잠을 깨우기 위해 벼라 별 짓을 다했다. 고행(苦行)도 그런 고행이 없었다. 살면서 그때만큼의 절체절명이 있었을까 싶었다. 정말이지 죽음의 밑바닥까지 보았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석 달 가까이 하니까 어느 정도 적응을 해 갔다. 토, 일요일은 무한리필로 잠과 타협하면서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둔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명언은 그때 제대로 실감을 했다.운에 좌우되는 사업은 노름이나 복권처럼 그야말로 도박이니 신중하게 선택할 일이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다소 무리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한 번은 크게 승부를 걸어볼 일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만 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다. 사업적 성공은 물론이고, 승리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무엇보다도 남자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짜릿한 성취감을 한 번 정도는 맛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1-13 11:14:57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특별기고] 개도국 특권 포기를 보며

한국 경제 위상에 어쩔 수 없다지만 농민과 소통 없이 일방적 결정 곤란침체 빠져 있는 농촌 경제에 희망을 문재인 정부 농업 정책 대전환 필요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특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발표에 농촌이 들끓고 있다. 개도국 특혜의 포기는 농업 포기로 생각한다. 농민 단체의 비판 성명이 이어지고 전국적인 항의가 지속된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등 가축질병 발생으로 농촌 경제가 매우 침체돼 있다.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결정 과정에 농민과 소통이나 설득 부족도 지적받는다. 개도국은 경제 규모나 사회제도, 국가 역량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기 때문에 국제협상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특별 대우 중 중요한 것은 관세와 보조금 감축에서의 우대다. 개도국은 선진국 의무의 3분의 2만 이행하면 된다. 1995년 출범한 WTO 체제에서 선진국은 관세를 6년간 36%를 감축한다. 개도국은 10년에 걸쳐 24%를 감축한다. 국내 보조금의 경우 선진국은 6년간 20%를 감축하나 개도국은 10년간 13.3%를 감축한다. 개도국은 선진국에 비해 감축률은 적게 하고 감축 기간은 길게 잡아주는 것이다.'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결정도 일리가 있다. 우리 경제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우리 경제는 GDP 규모 세계 12위, 수출 세계 6위,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은 국가로 국제 위상이 높아졌다. 우리는 OECD 가입국이고 G20 회원국이다. 세계은행이 분류한 1인당 국민 총소득이 1만2천56달러가 넘는 고소득 국가이며 지난해 우리는 3만달러를 넘었다. 무역 규모도 2018년 기준으로 수출이 3%, 수입이 2.8%로 세계 상품무역이 0.5%를 훌쩍 넘는 국가다.WTO에서 우리의 개도국 특혜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고, 우리보다 못한 국가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가 개도국 특혜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현재의 관세나 보조금 감축에 영향이 없다.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이는 미래의 협상부터 적용된다. 당장에는 대비할 시간이 많고 그 기간 안에 근본적인 농업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는 것이다언젠가는 포기해야 할 개도국 지위이다. 국제적 위상, 국내 경제 상황, 차기 협상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우리 주장을 관철하기가 어렵다.OECD 가입을 준비하기 위해 필자가 OECD에 근무할 때이다.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는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OECD는 '선진국이 가입하는 클럽'인데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면 되느냐? 특정 산업(농업)을 개도국으로 취급하면서 OECD에 가입하기는 어렵다는 사무국 관계자들과 많은 논쟁을 하면서 어렵게 관철시켰다.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한 이후 25년이 지나 우리 경제의 국내외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브라질, 싱가포르 등도 개도국 지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다.다만, 개도국 특혜 주장이 당장에는 득(得)이 없고 실(失)은 클 수 있다는 판단은 위험하다. 차기 협상에 변수가 많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대결 구도로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개도국 지위 포기의 시기나 방법도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 경쟁력 제고 대책의 실효성도 의심된다. 국회에 제출한 2020년 농업 부문 예산은 15조3천억원 수준이다. 전체 예산(513조5천억원)의 2.9% 수준으로 지난해 3.1%에 비해 줄었다. 최근 6년 내의 최저 수준이다. 농업경쟁력 제고 대책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정부 대책이 공허하게 들린다.당장 시급한 '공익형 직불제'라도 조기 시행해야 한다. 차기 협상에서 감축될 가능성이 없고 WTO가 허용하는 제도이다. 지급상한도 없고 가격에 관계없이 일정 면적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중 직불금 예산도 2조2천억원 수준이다. 지난해의 1조4천억원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났다. 농업 직불금의 81%가 쌀에 집중되어 쌀 공급 과잉을 야기한다. 타 작물과의 균형을 취하고 농가별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공익형 직불제' 시행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개도국 지위 포기와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침체에 빠져 있는 농촌 경제에 희망을 주자. 문재인 정부 농업 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2019-11-13 11:05:55

김영국계명대 벤처창업학과 교수

[기고] 한일, 미중 무역 갈등의 해법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한국을 대상으로 3대 핵심 반도체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 및 고순도 불화수소의 수출을 제한하였다. 8월에는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의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였다.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지속되고 있는 한일 갈등 고조의 결과로 글로벌 스마트폰의 가격 상승을 불러왔고, 양국의 경제적 피해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도 빨간 신호가 켜지고 있다.한일 분쟁의 여파는 기존의 미중 무역 갈등과 더불어 글로벌 경제에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처럼 큰 피해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현재 무역 구조는 향후 무역 교역국의 다변화라는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다.이 시대적 과제의 해결책 중 하나가 지난 2017년 11월, '한국-인도네시아 비즈니스포럼'에서 제의된 3P를 핵심으로 하는 아세안 10개국 대상의 문재인 정부의 신(新)남방 정책이 아닐까 싶다.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진행 과정이 무척 궁금하다.3P는 사람공동체와 평화공동체, 상생번영공동체를 일컫는다. 핵심은 우리 주변의 신흥 아세안 국가들과의 상생 협력 수준을 한층 더 높여 4대 강국(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올린다는 전략이다. 곧 글로벌 시장의 다변화를 통하여 기존의 상품 중심 교역뿐만 아니라, 관광과 문화예술 교류, 무역과 투자 증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 확충, 신남방 지역 내 연계성 증진을 위한 인프라 개발, 중소 및 중견기업의 시장 진출과 상호 교류 활동의 지원 확대, 신산업 및 스마트 협력 등이다.또한 기술 분야를 포함하여 인적 교류, 한반도의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교역의 범위도 더욱 크게 넓힘으로써 우리의 대내외 글로벌 경제 영역을 한층 더 확장해 나가자는 전략이다. 아울러 국방과 안보 차원에서 보면, 현재 북한과 외교 채널을 갖고 있는 동남아국가연합과의 북핵 대응을 위한 공동 노력과 다각적인 협력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연일 서민경제와 가계경제를 포함하여 국가경제의 빨간 신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엄청나게 크게 들린다.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국가경제의 선택과 집중만이 지금의 살길이다.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중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가?4차 산업혁명과 6차 산업이 광속으로 급변하는 글로벌 무역시장의 경쟁 속에서 자국(自國)의 이익을 우선하는 통상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미국에 의존적인 우리의 안보와 중국에 크게 기대고 있는 경제 구조는 우리가 안고 있는 양 날개 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다.지금의 우리 경제는 추풍(秋風)낙엽과 다름없지 않은가? 올해는 태풍도 잦았다. 지겹고 보기 싫은 정쟁(政爭)의 언행들을 중단하라. 낙과(落果)와 쓰러진 벼를 보는 농부의 마음처럼 참으로 우울하다. 이토록 지쳐가는 민심(民心)을 달래줄 기분 좋은 신남방 정책 실현의 좋은 소식이 언제쯤 올까 한없이 기다려지는 때이다.

2019-11-13 11:04:07

정우창 대가대 교수

[경제 칼럼] 일본의 샐러리맨 노벨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실패 거듭해도 연구 매진 환경 조성한국도 그런 기업 있는지 돌아볼 때1973년 설립 KAIST 올해로 46살우리에게도 노벨상 소식 머잖은 듯리튬이온 배터리는 휴대전화, 노트북, 전기차의 필수 부품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1970년대 석유위기 때 화석연료 없이 에너지 생산 방법을 연구하던 스탠리 휘팅엄(77) 뉴욕주립대 교수가 처음으로 제안했다. 휘팅엄 교수가 개발한 배터리 용량은 2볼트에 불과했다.그러나 1980년 존 구디너프(97) 텍사스대 교수에 의해 2배로 증가했다. 1985년 아사히카세이(旭化成) 연구원이던 아키라 요시노(71)는 폭발 위험을 줄이고 안전성을 높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 소니(Sony)는 요시노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1991년 상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린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93GWh였으나 매년 35%씩 크게 성장해 2025년에는 941GWh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10월 9일 발표된 노벨 화학상의 영예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휘팅엄 교수, 배터리 용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구디너프 교수, 리튬이온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여 상용화에 기여한 요시노 박사 등 3명에게 돌아갔다.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대학교수라는 공식을 종종 깨트리는 나라가 일본이다. 반세기 전인 1973년 소니 연구원이던 에사키 레오나는 반도체 연구로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정밀기계업체 시마즈제작소의 주임연구원인 학사 출신 다나카 고이치가 고분자 재료의 질량측정법 개발로 화학상을, 2014년에는 니치아화학공업의 나카무라 슈지가가 청색 LED 개발로 물리학상을 받았다.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아키라 요시노 역시 기업 연구원 출신이다. 그는 교토대학에서 학사·석사를 마치고 1972년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했으며, 처음 10년 동안 수행한 연구는 모두 실패했다.34세가 되던 1982년 구디너프 교수의 논문을 읽고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을 시작했으며, 2015년 고문으로 물러나기까지 34년간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에 매진했다. 아사히카세이 재직 기간도 43년이나 됐다.샐러리맨으로서 석사학위 소지자인 아키라 요시노의 노벨상 수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기업 연구소나 국책연구기관 모두 박사학위자 중심이다. 박사에 대한 인식은 우리와 일본이 많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박사의 의미가 과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기업의 연구원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연구 환경이 구축되어 있는지, 실패를 거듭하면서 43년간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기업이 우리에게도 있는지 돌아볼 때다.일본에는 논문박사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기업에 근무하면서 한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후 그 분야 연구 결과로 박사학위를 받는 제도이다. 논문박사는 실무 경험과 이론이 겸비된 진짜 전문가에게 주어진다.아키라 요시노도 입사 33년 차인 2005년 57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요시노 박사는 2017년부터 메이조(Meijo)대학 교수 겸 아사히카세이의 명예 펠로우로 재직 중이며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제조업 강국 일본에는 진짜 전문가인 수많은 '요시노'가 있다. 기업은 50세, 국책연구기관은 60세, 대학은 65세를 갓 넘긴 나이에 퇴직해서 전문성을 포맷(format)한 뒤 비전문가로 살고 있는 우리의 과학기술자 활용을 위한 대책 마련도 절실해 보인다.2019년 노벨 화학상은 1975~85년에 수행된 연구의 결과물이다. 1975년, 1980년, 1985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각각 608달러, 1천711달러, 2천458달러에 불과하였다. 노벨상의 씨앗이 뿌려질 토양은 존재하지도 않았다.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원 발전에 큰 기여를 한 KAIST가 1973년에 설립되었으니 올해로 46세 중년이 되었다. 톰슨로이터가 논문의 피인용 횟수를 조사해서 매년 선정하는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선정되는 국내 연구자의 숫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노벨상 소식이 머지않았다.

2019-11-12 16:53:52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멍때리기 대회

'왜 영혼 없는 말을 하느냐'는 말을 듣고 졸지에 영혼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혼 없는 눈으로 영혼 없는 밥을 먹고, 영혼 없는 커피를 마시고, 영혼 없는 책을 덮을 때까지도 집 나간 영혼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혼이라고 집 나가고 싶은 적 없었을까요? 영혼이라고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고 싶었을까요? 영혼도 누군가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겠지요. 붉은 가을의 스위치를 끄고 골방에 처박히고 싶은 날도 있었겠지요. 부끄러움에, 안타까움에 말 보다 먼저 눈물 보일 때도 있었겠지요. 얼마 전, 영혼도 없이 영혼을 위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영혼 없는 절을 하고, 영혼 없는 제삿밥을 먹었습니다.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영혼을 소유한다고 쉼보르스카는 말합니다. 끊임없이, 영원히 그것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따금씩 '공포나 환희의 순간'에 영혼은 우리 몸속에 둥지를 틀고 오랫동안 깃든다고 합니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가구 배치를 다시 할 때, 운동화 끈을 조이고 둘레길을 걸을 때도 영혼은 우리에게 손 내밀지 않습니다. 늦은 밤까지 숙제를 하거나 김치를 담을 때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화에 겨우 '한 번쯤 참견할까 말까' 그나마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워낙 과묵하고 점잖으니까요. 그러나 삭신이 쑤시고 아프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교대 근무를 자청하기도 한답니다.'기쁨과 슬픔'이 온전히 하나가 될 때, 말없이 우리 곁에 머무는 영혼,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는, 영혼이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영혼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영혼은 어린이와 노인에게 가장 오래 깃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이 청춘을 바쳐야 하는 시기에는 영혼을 반쯤 빼놓고 사는 게 정상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영혼을 챙기는 것이 영혼을 귀찮게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영혼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함일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니, 삶은 얼마나 고달파야 하는지요. 영혼 없이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습니다.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서는 '멍때리기 대회'를 올해로 4회째 개최했다고 합니다. 대회의 목적은 새로운 경험과 더불어,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고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거나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멍때리기 대회는 이러한 통념을 꼬집고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가치 있는 행위라는 것이지요.그렇다고 영혼이 자발적으로 육체에서 나갈리 있겠습니까마는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주자는 의도겠지요. 하여 '영혼'이라는 말이 발화되기 전, 우리도 가끔씩 영혼의 외출을 적극적으로 도우는 건 어떨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1-12 11:10:39

소망이 복강 CT상에 맹장부의 부종과 주변 장기의 복막염 소견이 관찰된다. (사진출처: 탑스동물메디컬센터)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는 맹장이 없다? 맹장염 걸린 소망이

소망이(6·몰티즈)가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 소망이는 평소에 매우 활발하고 식탐이 왕성한 반려견이었다. 2개월 전부터 설사와 식욕부진이 반복되며 복통까지 앓았다. 소망이는 이미 여러 동물병원을 다니며 췌장염과 장염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도 받았으며 당시에도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그러나 치료를 받으면 며칠 동안 증상이 호전되었다가도 복통이 재발한다고 보호자는 하소연했다. 혈액검사에서는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음파 소견과 실험실 검사에서 IGF-I(Insunlin-like Growth Factor-1) 수치가 매우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아 복강 종양 또는 복막염이 의심되었다.복강 CT 검사 결과 맹장을 중심으로 소장과 장간막의 광범위한 부종과 복막염 소견이 발견되었으며 서둘러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복강을 절개하자 맹장은 염증으로 인해 단단하게 뭉쳐 있었고, 맹장에는 3mm정도의 천공 흔적이 발견됐다. 장이 천공되면서 장내 오물이 복강으로 누출되어 복막염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망이는 맹장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으며 입원기간 동안 복막염에 대한 집중적인 약물 치료가 이루어졌다. 퇴원 후에도 2주간 식이 처방이 이루어졌으며 이제는 원래의 활달한 모습으로 회복하였다. 소망이의 맹장염과 맹장이 적출되어야 하는 상황을 보호자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개의 맹장의 해부학적인 차이점을 설명해야 했다. 구글 등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개는 맹장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사람에게 발생하는 맹장염은 맹장 끝에 달려있는 충수돌기(appendix)에 발생하는 염증을 의미하며 정확하게는 충수염(appendicitis)이라 부른다. 우측 아랫배가 찌르듯이 아프면 충수염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서는 초음파 진단으로 충수돌기가 8mm 이상 부어 있는지, 통증과 염증이 있는지를 확인하여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사람의 충수돌기는 장 미생물의 저장고 역할을 하며 굳은 변, 기생충, 이물질 등에 의하여 충수염이 발생하면 극심한 통증이 유발된다.반면 개와 고양이는 소장과 대장이 연결되는 결합부에 맹장이 돌출되어 존재하며 충수돌기가 없다. 이렇듯 각 동물의 해부학적인 구조는 오랜 기간 각 동물이 살아왔던 생활 섭식 형태에 따라 다르다. 의학과 수의학이 유사하면서도 분야가 나뉘어지는 이유이다.사람에게 맹장염은 일생에 누구나 경험할 수있는 다발하는 질병인 반면 개와 고양이에게는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사람의 경우 충수염을 통상적으로 맹장염이라 부르지만 개는 맹장에 염증이 직접적으로 발생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맹장수술은 맹장말단부에 달려있는 충수돌기는 제거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지만, 소망이에게 시술된 맹장 적출 수술은 맹장 자체를 적출하는 매우 큰 수술이다.매우 드문 개의 맹장염을 경험한 수의사가 "개의 질병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라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이렇듯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수술과 치료법이 매년 소개되고 있으며 더 정밀한 검사들이 활용되고 있다.반려인의 동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 수록 수의학은 점점 더 깊어지고 정밀해지고 있다. 생명을 책임지는 수의사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1-12 11:04:09

함무라비 법전. 1조 무고, 5조 공정한 판결 조항이다. B.C18세기. 루브르 박물관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조국 파동과 함무라비 법전

"만약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을 해치면 그의 눈도 해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다. 함무라비 법전. 복수법(復讐法)의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탈리오 법칙)을 보여준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 그대로 갚아준다는 의미다. 함무라비 법전에 실제 이런 조항이 있었을까?함무라비 법전 282개 조항 4천 년 전 법전이란의 역사 고대도시인 수사에서 1901년 12월~1902년 1월 프랑스 고고학 발굴팀이 길이 225㎝짜리 검은색 섬록암 비석을 땅에서 파냈다.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이다. 발굴팀은 무려 38만 점의 유물을 소장한 파리 루브르박물관으로 법전을 가져갔다. 루브르에 전시 중인 함무라비 법전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바빌로니아 함무라비(재위 BC 1790~1750년) 치세 때다. 서문과 282개 법조항을 수메르 쐐기문자로 적었다. 언어는 셈족 아카드인의 말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일부 마모된 부분을 빼고 246개 조항이 완벽하게 판독됐다.'눈에는 눈'의 복수법? 현대 자본주의 법전과 닮아시카고 대학 하퍼(R. F. HARPER) 박사가 1904년 펴낸 '바빌론왕 함무라비 법전'(1904년)을 펼치자. 앞서 소개한 '눈에는 눈' 조항은 이 책의 73쪽에 나오는 196조다. 197조 내용도 비슷하다. '남의 뼈를 부러트리면 그 사람의 뼈를 부러트린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렇게 흉측한 보복, 복수법인가? 법전의 13%가 사형 조항이다. 잔인한 법으로 비칠 만하다. 하지만, 법전 조항의 50%가 계약 문제를 다룬다. 예를 들면 황소 한 마리 끄는 일꾼의 임금이나 집 지을 때 계약조건 등을 소상히 담는다. 법전의 3분의 1은 상속과 이혼, 친권의 가사 문제다. 현대 자본주의 법전과 다르지 않다.함무라비 법전 1조, 무고죄 엄중 처벌한국 사회 최대 이슈로 떠오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함무라비 법전을 비춰본다. 하퍼 박사의 책 11쪽 함무라비 법전 1조는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범죄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고발했는데, 그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고발한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즉 무고죄를 사형으로 다룬다. 모든 법의 1조는 그 법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을 반영한다. 4천 년 전 함무라비 법전은 죄 없는 사람을 고발하는 무고 방지였다.함무라비 법전 5조, 판결 실수 판사 영구 추방또 하나의 조항을 보자. 역시 하퍼 박사의 책 11쪽을 펼쳐 5조를 읽는다. "만약 판사가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고, 이를 서명해 판결했는데 나중에 그 판결을 바꾸는 경우에는 판사가 자신이 내렸던 판결을 책임진다. 판결했던 벌금보다 12배로 물어낸다. 그리고 그 판사를 판사석에서 내쫓고, 다시는 판사석에 앉히지 않는다." 판검사가 정의나 원칙,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수사하거나 판결하는 악행을 막는 조항이다.국민 분열 부추기는 여야의 고발 경쟁2018년 12월 20일 자유한국당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흘러 2019년 10월 2일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사와 검찰 관계자를 '피의사실 공표 및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다. 한국 사회를 집권 통치하는 여당과 국정 운영 동반자인 제1야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발에 나서는 모습은 단순한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양당을 지지하는 세력 간 진영 다툼으로 번진다.함무라비 법전 교훈, 엄정한 사법 판결시민단체나 국민이 내 편 네 편 나눠 고발이나 비난 대열에 합류한다. 증거나 합리적 추론조차 없다. 공지영 작가, 유시민 작가, 광화문 조국 구속 촉구 집회,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 조국 전 장관 동생 영장 기각 판사와 발부 판사. 우리 사회 원칙과 이성이 작동하는지 묻는다.그리스 최고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2천500년 전 말이 새삼스럽다. "이성은 신이 준 최고의 선물. 하지만, 증오나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성은 어이없이 무너진다." 진영에 갇혀 혼란스러운 현실에도 합리적인 국민은 바란다. 분열보다 통합에 우선 가치를 두는 정치를. 진영을 떠나 특권, 기득권, 반칙 없는 공정한 사회를. 무고, 자의적 수사나 판결이 없는 원칙과 정의의 사법부를…. 4천 년 전 함무라비 법전이 주는 교훈과도 일치한다.

2019-11-11 18:00:00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입시 지옥

'그동안 개교 준비를 하여오던 대구야간대학은 지난 28일 오후 2시 그 학교의 임시교사인 대구농과대학에서 개교식과 겸하여 제2회 신입학생 입학식을 거행하였는데 식은 장인환 씨의 개식사와 학장 대리 최해청 씨의 인사말씀이 있은 뒤 성황리에 폐식하였다 한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11월 30일 자)해방이 되자 교육 균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나 구분 없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교육 기회의 균등을 의미했다. 일부 특권계층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교육 불평등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학교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 시급했다. 1948년의 경우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 졸업자는 19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중학교 수용 인원은 고작 7만 명에 불과했다. 진학 희망자를 60%로 잡아도 4만여 명은 학교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학교 진학의 좁은 문은 대학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학교의 수용 인원을 늘릴 수 없었다. 교육 당국은 고육지책으로 야간학교 설치를 추진했다. 수만 명의 학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대구야간대학이 문을 열었다. 비록 야간이었지만 학교 수용 인원의 확대는 교육 기회의 균등과 맞아떨어졌다.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컸다. 첫머리에 인용한 기사 속의 대구야간대학은 훗날 대구대와 합쳐 영남대가 된 청구대의 전신이다.상급학교 진학의 좁은 문은 입시 지옥과 맞닿아 있었다. 말하자면 수요와 공급의 격차였다. 해방 직후에는 지금과 달리 가을학기였다. 그러다 보니 7, 8월에 입학시험이 집중되었다. 중등학교 시험을 치르고 나면 대학시험이 이어졌다. 전문학교들은 대부분 대학으로 승격되었다.대구에서는 대구농대와 대구의대, 대구사대 등이 해당되었다. 대학에서는 국어와 수학, 외국어에다 상식시험을 치렀다. 신체검사 또한 빠지지 않았다.우리 손으로 치르는 입학시험은 일제강점기 때와는 크게 달랐다. '태극기를 그려 보라'거나 '훈민정음은 누가 언제 만들었느냐'는 중등학교의 문제는 이를 말해준다. 또 대학 입학시험에는 우리말 테스트와 고전문학, 시조와 속담 등이 출제되었다. 학생부 종합의 시초라고 할까. 대학에서는 학업성적이 적힌 출신교장의 내신서를 요구하기도 했다.그 시절 최고의 인기학과는 법 관련 전공이었다. 의학계통이 뒤를 따랐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일부 학부모의 입시 과열은 이미 중학교 시험부터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정도였다. 1950년에 대구에서는 입학시험지를 돈으로 사고파는 사건이 일어났다. 입학시험지 인쇄를 위탁받은 기관의 직원이 문제를 훔쳐 초등학교 교원에게 수십만원을 받고 팔았다. 또 그 교원은 2만원씩을 받고 학부모들에게 되팔았던 것이다.입시 거래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드러난 입시 지옥의 민낯이었다.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4일로 코앞에 다가왔다. 속은 그대로인데 포장을 달리한 입시를 해마다 치르고 있다. 올해도 다들 고생하셨다.

2019-11-11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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