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 성당의 종소리

서울 신촌서 하숙할 때 일요일 아침, 할 공부는 밀려 있는데 시동은 잘 걸리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갈 때도 없다. 돈마저 없으니 아침 먹고 방바닥에 뒹굴며 시간을 죽인다. 신앙심이 두터운 주인 가족들은 식모까지 꽃단장을 시켜 모두 교회로 간다. 이 무렵이면 교회의 차임 벨 찬송가 소리가 요란하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 가장 많이 들려왔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태산을 넘어 험 곡에 가도."도 자주 연주되었다. 교회가 가까이 있는 탓도 있었지만 소리 자체가 너무 컸다. 그러나 성스러운 소리라고 참고 들었다. 어릴 때는 교회에서 종을 쳤는데 세월이 가며 차임벨로 변했다. 인간은 왜 종소리를 의식에 쓰는 걸까? 무당이 굿하며 칼춤을 출 때도 요령을 흔든다. 교회에서는 종각을 만들어 놓고 종지기가 새벽마다 종을 쳤다. 성당도 큰 종을 쳤지만. 미사(Mass) 때, 축성(祝聖)할 때 작은 종을 흔든다. 절에서도 예불하기 전에 사물(四物)을 울리는데 가장 먼저 종을 친다. 신앙인들은 교주의 취향이 쇠 소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선지 아니면 타도 대상인 악마가 종소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선지 종교의식에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종을 쓴다. 요즘도 동화사에서는 새벽 예불 때 범종(梵鐘)을 친다. 종소리는 팔공산에서 시내로 내려와 지상과 지옥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濟度)한다. 그러나 대다수 도심의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종소리가 차임벨로 변한 뒤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소음이라고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성직자들은 소리를 낮추기보다 아예 종각을 없애 버린 것이다.시골 작은 교회에 남아 있는 조그마한 종각을 보면 가슴이 시리다. 어릴 때 만들어진 기억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남는다. 가정불화의 집안에서 자란 사람은 어릴 때 만들어진 분노와 적개심이 어른이 되어도 그 부정적인 에너지는 남아있다. 그 감정이 평생 무의식 속에 숨어서 요동을 치며 사회의 제도나 인간에게 독기를 뿜어댄다. 나는 교회에는 다니지 않지만 어릴 때 각인(刻印)된 종소리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아직도 변치 않고 내 가슴에 남아 그 종교의 신자는 아니라도 우호적인 감정이 지속되고 있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 성공회(聖公會) 성당이 있었는데 새벽이면 종을 쳤다. 어쩌다 악몽에 시달리다 깬 날이나 낮에는 들리지 않던 벽상의 괘종(掛鐘)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두렵던 그런 새벽 성당의 종소리가 때 맞춰 울리면 하느님의 다정한 위안의 목소리가 되고 따뜻한 손길이 되었다. 동문시장 옆에 있던 성공회 성당은 그 자리에 남아 있지만 어색한 모습으로 변해 내 생가 그 동네는 동문시장도 없어지고 성당의 종각마저도 없어진 타향이 되었다.옛 종소리가 그리울 때면 가끔 왜관 가실성당을 찾는다. 그 곳에서 "빌딩의그림자 황혼이 짙어갈 때, 성스럽게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 걸어온 발자욱마다 눈물 고인 내 청춘, 죄많은 과거사를 뉘우쳐 울적에, 아! 산타마리아의 종이 울린다."(미사의 종, 전오승 작사, 작곡, 나애심 노래)을 흥얼거리며 없어져 버린 고향의 한 조각 퍼즐을 찾아본다. 외로운 대학생에게 은총(恩寵)이 종소리 되어 다가온 하느님의 목소리, 새벽 두려움에 떨던 소년을 감싸주던 그 임의 따사로운 손길은 다시 들을 수 없는 흘러간 꿈 의 메아리인가!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9-02-22 03:30:00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 무엇을 할 것인가

20, 30대 청년들 붙잡고 있는 단어'잔고' '인싸' 답변에 울컥하는 마음위대한 일들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주변 사람과 일상 나눔부터 시작을얼마 전 20, 30대 청년들에게 요즘 자신을 붙잡고 있는 단어를 물어본 적이 있다. 꿈, 미래, 생명 등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잔고'였다. 이 시대 청년들의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다.이제 청년들의 힘든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수많은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청년수당과 청년창업, 청년임대주택 등 정책적으로도 청년 세대와 관련된 지원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청년들의 삶을 잘 모른다. 어쩌면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 세대를 지나왔고, 내 아이는 아직 그 세대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당사자'가 아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만다.2018년 가장 핫한 유행어 중에 '인싸'가 있다. '인사이더'(insider)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인싸템, 인싸음식, 인싸춤, 핵인싸 등의 용어들과 함께 특정 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최근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2018 문화 향수 실태조사'를 보자. 일상에서 문화행사 관람률은 81.5%로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분야별 관람률에서는 영화 관람이 75.8%로 압도적이다. 대중음악이나 미술 전시, 연극, 뮤지컬 등은 20% 이하로 큰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 역시 '인싸'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장르 격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 장르 내에서도 '인싸' 현상은 강화된다. 1천만 명이 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전국의 약 3천 개에 이르는 스크린에서도 상영 기회를 확보하지 못하는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존재한다. 이것을 단순히 시장이나 자본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인싸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욕망의 집합체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뒤처지지 않겠다는 경쟁 의식, 조직이건 또래이건 일종의 내부자 심리 등 두려움과 욕망이 뒤범벅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국민과 외국인 혹은 난민 등을 구분한다거나 장애인과 성소수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집단과 계급의 구별에 따른 욕망을 담을 수밖에 없다. 결국 스스로 '인싸'를 선언하거나 혹은 '인싸'가 되고 싶은 것은 같은 맥락이다. 일터에서 수많은 갑질에도 저항할 수 없고 보호받을 수 없는 처지에서 '인싸'는 설령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심리적 안정제 역할을 한다.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방향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개인의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혹은 공동체의 변화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별개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어느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거나 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정말 그런 걸까? 사실 그 두 가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데 공동체가 건강할 수 없으며, 사회가 바뀌지 않는데 개인이 행복할 수는 없다. 동시대 빈곤과 불평등 문화에 대해 평생을 연구한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77)는 최근 인터뷰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우리는 가능한 한 모두와 함께하고자 둘러봐야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옆에 사는 사람들, 일하는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는 거예요.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고, 듣고, 영향을 주고받는 겁니다."(경향신문, 2019.1.31.)세계적인 석학은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어느 시기 어떤 곳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비판하고 단죄하고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가 발 딛고 있는 삶터와 일터에서, 즉 자신의 일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다. 혼자만이 아니라 나의 언어와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 누구나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실제로 자신의 손과 입으로 수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와 사회를 위한 출발점이다. 모든 위대한 일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

2019-02-21 13:23:26

천영애 시인

[매일춘추]패거리 문화

패거리 문화라는 말이 있다. 패거리 문화는 네 편 내 편으로 나누어 내 편에 속한 사람은 잘 챙기고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은 배척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판단의 기준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누구 편에 속해 있는가이다.'형제는 용감했다'라는 말이 있다. 어릴 적에 형이나 아우가 이웃의 누구와 싸우면 덮어놓고 형제 편을 들어 편싸움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형제가 없는 쪽이 무조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형제는 용감했다'의 어른 버전이 '형님'문화이다. 외지에서 대구로 살러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구에서는 이 '형님'이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게 끝나더라고 한다. 형님, 아우 하면서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 세력을 형성하고 외부 세력을 배척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대구가 유독 보수적이고 외지인을 배척한다고 오해받는 이유가 바로 이 패거리 문화 탓이다.대구에 산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형님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지인은 대구에서는 영원히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은퇴하면 과연 대구에서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로 떠나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만큼이나 살았으면서 왜 대구에 적응하지 못했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에게 과연 마음의 문을 모두 열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어떤 사안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비판적인 사유 없이 무조건 편드는 문화는 아주 위험하다. 그들은 그들만의 집단 안에서는 생존할지 모르나 더 큰 집단에서는 생존의 동력을 상실한다. 그들은 사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분석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내 편을 들어주는 누군가만 찾고, 문제 해결 또한 그런 식으로 한다.살면서 내 편은 필요한데 그것은 삶에 지치고 위로받고 싶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나에게 공감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이다. 그렇다고 내 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내가 잘못했을 때 무조건 편을 들어주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나를 편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편 나누기를 하는 사람의 특징은 비판적 사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맹목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태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통해서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려내는 것은 인간이 처한 실존적 조건이 될 것이다. 천영애 시인

2019-02-21 11:59:18

이광수 재생 1회(동아일보, 1924. 11. 9.)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이광수 '재생'과 삼일운동

1919년 3월 1일 조선의 수도 경성은 맑고 바람이 불었다. 이날 시작된 독립운동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여러 달 동안 지속되었다. 전 인구의 10프로에 달하는 20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고, 그해 십이월까지 시위로 인해 80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일운동은 실패한 혁명이었을까. 이광수는 삼일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 '재생'(1924)에서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재생'의 신봉구는 삼일운동에 참여한 죄로 2년 6개월 형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막 출옥한 인물이다. 막상 출옥해서 나와 보니 세상은 그의 생각과 다르게 변해있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한 독립의 이상은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성 거리는 1919년의 일을 모두 잊은 듯 유쾌하고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불확실한 이상에 희망을 거는 대신 '돈'의 분명한 힘을 믿고, 돈을 향해 쫓아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2년 6개월 수감 기간 동안 삶의 모든 희망이 되었던 아름다운 김순영은 이미 그를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2년 6개월 동안 세상은 급변했지만 신봉구는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수감직전의 시간대에 기억이 정지된 채 2년 6개월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삼, 사일 정도 함께 검거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잠시 애틋한 눈길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인 김순영을 두고,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동키호테같은 환상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며 현실 감별력을 잃고 있기는 신봉구의 삼일운동 동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삼일 운동 이후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주재소에 폭탄투척을 하지만 독립을 보기는커녕 허망하게 삶을 마감한다.'재생'에서 삼일운동에 관여했던 인물들은 자살하거나, 살인누명을 쓰거나, 삶의 기반을 잃는 등 비극적 삶의 경로를 밟는다. 이들의 삶의 이력을 보고 있자면 삼일운동은 분명히 실패한 혁명이다. 적어도 이광수는 삼일운동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변혁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으니 그에게 남은 선택은 친일이외에는 없었다. 삼일운동에서 절망을 본 이광수와 달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제가 삼일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삼엄한 상황 속에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으면서 스스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이광수가 삼일운동을 야만이라고 폄하하며 삼일운동에 참여했던 자신의 신념을 부인해간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삼일운동의 경험에서 조선 독립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삼일운동을 경험하면서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 순정한 인간 정신의 힘을 느꼈고, 그 힘에서 새로운 세상의 실현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순정한 인간 정신의 힘을 믿었던 그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역사는 그래도 더디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2019-02-21 11:50:59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매일춘추]모리화(茉莉花)를 아시나요?

오페라, 참으로 어려운 예술 장르이다.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소설이나 그것을 각색한 대본에 작곡가의 음악을 더하여 만들어지는 장르이다.오페라 작곡가의 입장에서도 음악적 완성 못지않게, 곡을 쓰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장면과 내용을 표현하고 또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숙제였을 것이다.그러한 여러 노력 중, 내용이나 인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암시하는 방식을 위해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기법이 라이트모티브(Litemotiv)하는 기법이라 할 수 있다.라이트모티브(유도동기)란 극 중의 특정한 등장인물이나 특정한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짧은 주제선율로, 특정된 등장인물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주제선율을 반복함으로써 극의 진행 중 등장인물 성격의 제시와 상황의 암시를 하는 방식이다. 어떤 주제음악이 먼저 제시되면 그 주제음악을 사용하는 등장인물이 등장할 것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 어떠한 장면에서 어떠한 주제음악이 제시되면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한 음악적 암시와 복선의 역할을 하도록 음악으로 묘사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면,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에서 탄호이저를 유혹하는 베누스베르크의 등장에 '유혹의 동기'가 음악에 제시되며, 환락의 유혹에 탄호이저가 갈등하는 부분에는 '고뇌의 동기'를 음악에 제시하는 식이다.오늘날 가장 사랑을 받는 오페라 작곡가인 푸치니의 작품 중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오페라 투란도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19, 20세기의 전환기에서 당시 음악적 기법을 극적인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오페라 투란도트에서는 그만의 독특하고 탁월한 그러한 표현방식의 요소를 찾을 수 있다.여주인공 투란도트 공주의 주제음악이 그 대표적 부분이라 하겠다. 흔히 우리나라 국민들도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의 민요 모리화(茉莉花) 노래를 바로 그 주제음악으로 사용한 것이다.극의 1막에서 어린이들의 합창에 이 멜로디가 도입되는데, 동쪽 산에서 4월이 와도 꽃이 피지 않고 얼음이 녹지 않으니 공주여 나와서 꽃을 피우시고 모든 것을 빛나게 하라는 내용으로 공포정치를 그만하라는 뜻이 담겨있는 가사의 음악이다. 그 후 투란도트 공주가 등장할 때마다 이 주제음악을 제시하고 있다. 원래 중국민요 모리화의 가사 내용도 이와 유사한 것을 볼 때 이탈리아 사람인 푸치니가 중국민요의 내용을 잘 알고,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부분에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이러한 작곡가들의 숨은 노력을 조금씩 살펴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도 오페라감상의 또 다른 재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이현석

2019-02-21 11:01:34

정재완 작.

[갤러리 탐방]대구미술관 정재완 '1919년 3월 1일 날씨 맑음'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에서 처음 나왔던 흑역사라는 말을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쓰고 있다. 이 말을 쓰는 게 옳은지 그른지는 미뤄두고, 일단 나에게 흑역사는 책 한 권을 쓸 만큼 많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도 내 어두운 역사는 갱신 중이다. 되돌아보면, 풋내기 비평가 시절에 내가 말머리에 인용구를 달았던 것 또한 흑역사의 한 부분이다. 평론이나 소논문 맨 앞에 단테, 니체, 로브그리예가 쓴 글을 한 줄 슬쩍 받아쓰기하는 일.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지적 공동체에 그 대가들과 함께 속한 것처럼 잘난 척한 거다. 본문은 또 얼마나 장황했나.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도 아니고, 한 말을 살 붙여서 또 하는 논리는 엉망이었다. 시간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그때 내 책상머리에 글 하나를 써서 붙여놓고 돌아오고 싶다. "1절만 해라."작가 정재완도 원본이 있는 글을 곧잘 인용한다. 하지만 애당초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걸 찍어내고 쓰고 붙인다. 그렇게 끌어들여 펼쳐 보이는 레터링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각각의 작품은 그것이 품은 내용과는 일대일로 상응하고, 형식은 도안의 디자인 그 자체다. 내용과 형식은 서로를 떠받치며 새로운 맥락을 만든다.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대구미술관 특별전에서도 그런 콘텍스트를 새롭게 발견한다. 그가 가지고 온 출처는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육사의 시구다. 내가 미술관에서 작가와 마주쳤을 때 글자의 출처가 뭔지 물어봤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게 이육사의 시로부터 따온 문장인지 몰랐다. 이 글이 리뷰 형식을 품어야 한다면 난 자격이 충분치 않다.다행스럽게도 정재완은 탁월한 작가인 동시에, 훌륭한 이론가며 교육자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쉽게 설명해주었다. 고로 이 글은 작가노트에 대한 인용문으로 봐도 된다. 이 작품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의 레터링은 한 눈에 봐도 강철과 무지개라는 두 낱말이 좌우로 무게와 힘의 균형을 이룬다. 그가 이런 한글 작업을 벌인 건 오래 됐다. 정재완의 서체는 감각이 남다르다. 그는 한글의 시각적인 조형인 원 사각 선 점을 어떤 부분은 대담하게, 또 어떤 부분은 다소곳이 뜯어 맞춘다. 작가는 이육사의 시 구절 아홉 개를 골라서 설치하려했는데, 딱 하나를 눈에 띠게 강조하는 쪽으로 수정했다고 한다. 나머지 작품도 보고 싶은데, 대구 중구 북성로에 있는 264작은문학관에 가면 그 원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2019-02-21 10:02:47

김상동 경북대 총장

[기고]연구 분권으로 국가균형발전 이루자

국가균형발전이 국정 운영의 주요 과제가 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속도의 완급 조절은 있었을지라도, 어느 정부도 국가균형발전의 명분과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한 흐름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을 국가균형발전의 비전으로, '지역주도 자립적 성장 기반 마련'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정부는 비전과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3대 전략과 9대 핵심 과제를 선정하였고, 실행력을 제고하기 위해 예산 확보와 법령 및 조직의 정비에 나서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미루어 보건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더 큰 성과를 단기간에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인재·일자리 선순환 교육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설정한 '질 높은 지방대학 육성' 방안이 구체적이지 못한 점이 크게 아쉽다.명분이나 추상적 처방으로 지방대학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잡으려는 어리석음(緣木求魚·연목구어)과 다를 바 없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노무현 정부에서 실시한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국가균형발전의 가장 빛나는 성취였다. 그 무렵의 지방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수도권 중심 정책으로 인하여 자립 역량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 있었다. 지방이 공공기관 이전을 계기로 자기 주도적 혁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적절한 정책적 결단이었다. 대구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5대 신성장 산업의 육성 계획은 공공기관의 기능과 연계하여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지역 특성화를 이루어낸 후속 작업의 모범적 사례에 해당한다.질 높은 지방대학의 육성으로 국토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지방대학과 연계시켜 이전하는 '연구 분권'에 정부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서 국가균형발전의 기본 계획과 배치되고 있으며, 지역 편중은 산학연관의 협력 체계 구축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지방분산 이전은 그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며, 지방대학의 질적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이전 대상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위치 선정은 지방대학의 특성화된 연구 능력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당 지방대학이 가진 특성화된 연구력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실행력이 결합되면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방대학은 지속가능한 발전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협력으로 얻어진 연구 성과는 그 지역 산업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될 것이며, 연구 성과와 연계성이 높은 민간 기업이 해당 지역으로 이전하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효율적인 산·학·연 협동의 '지역인재일자리 선순환 교육체계'의 구축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지방대학은 자기 혁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교육 정책으로 인해 누적된 어려움과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서 오는 위기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정부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지방대학의 노력에 화답하여야 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지방 이전은 지방대학의 자기 혁신을 돕고,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을 효율적으로 건설하는 획기적 전략이다. 연구 분권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한다.

2019-02-21 04:30:00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새론새평] 5.18 논란, 이성적으로 풀어라

5·18에 대한 북한군 개입 주장은진상을 진실하게 밝히려는 목적개입 여부 정밀한 조사는 않은 채망언 규정·처벌한다면 반민주적지난 8일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거나 그 토론회 개최를 지원한 3명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정계와 언론계의 히스테리컬한 공격이 2주째 계속되고 있다. 공격자들은 그러한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고, 그런 망언을 하는 것은 5·18을 폄훼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범죄적 언동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들을 정치·사회적으로 생매장하려 하고 있다.필자가 그러한 공격을 히스테리컬한 공격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현시점에서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는 것이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발언이 망언이 되려면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진지하게 조사하여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음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 확인 작업 없이 5·18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말하는 것을 망언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5·18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일에 앞장서 온 지만원 씨가 제시하는 논거들 가운데 설득력이 없는 사항도 있지만 진지하게 검토, 확인해 봐야 할 사항들도 많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은 5·18을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5·18 때 광주에 침투했었다고 자처하는 남한 거주 탈북민이 2명이나 있다.둘째, 5·18에 대한 북한군 개입 주장은 5·18의 진상을 왜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5·18의 진상을 진실하게 밝히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5·18에 북한 사람들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편견을 가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정밀 조사한 결과 5·18에 북한 사람들이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5·18의 진상은 더욱 진실되게 정리될 것이다.5·18에 대한 북한군 개입 여부를 진지하게 조사해 보지도 않은 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역사 왜곡자로 매도하고 처벌하려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행태이다. 이런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5·18에 대한 북한군 개입을 주장하는 남한 주민은 역사 왜곡자로 격렬하게 비판하고 적대시하면서, 동일한 주장을 하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역사 왜곡자라고 비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원을 해주려고 안달한다. 자가당착적이다.셋째,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무시하기 힘든 논거들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이것을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범죄로 규정하여 봉쇄하는 것이야말로 반민주적이다. 민주주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며, 다수가 지지하는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다수파의 독재이다.우리나라 정계와 언론계에는 5·18은 숭고한 광주 시민의 민주화운동이며,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다수파임을 이용하여 5·18에 대한 자기들의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봉쇄하려 한다. 그러한 발언 봉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다수파의 독재인데 그 다수파의 독재를 민주주의라고 강변하고 있다.국가의 중요한 쟁점을 히스테리컬한 심리 상태로 결정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잘못된 결정이 이루어지고 국가에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5·18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쪽이나 그것을 부정하는 쪽 모두 히스테리컬한 심리 상태로 서로를 대하게 되면 그 문제로 인해 나라가 큰 혼란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양측 모두 히스테리를 진정시키고, 객관적이며 열린 마음으로 5·18의 진상을 규명한다는 자세로 그 문제를 조사·해결해 주기 바란다.

2019-02-21 03:30:00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저항과 변절의 도구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조국 독립을 위해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던 3·1운동이 우리 역사에서 소중한 이유는 누군가의 주도가 아닌, 온 국민이 함께한 시민혁명이었기 때문이다.'서시' '별 헤는 밤' 등 주옥같은 시를 쓴 윤동주 시인은 3·1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17년 12월 30일 태어나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한 번도 해방공간에서 살아보지 못한 시인은 그러나 누구보다도 깊은 민족애와 독립에 대한 여망을 가지고 짧은 생을 살았다.그가 스물아홉의 생에서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했던 일은 '창씨개명'이었다. 일본 유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이름 '히라누마 도오쥬.' 그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시 '참회록'에 담아냈다.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잡혀 형무소에서 실험용 주사를 맞고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의 시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윤동주를 사랑하는 모임'까지 생겨났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시로써 억겁의 생명을 얻은 것이다.윤동주 시인과 같이 일제강점기를 지내온 작가 중에는 일본을 찬양하고 황국국민으로서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작가들이 있다.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서정주, 노천명, 모윤숙 등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 문인만 42명이다. 그들이 썼던 글을 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천황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내놓으라거나, 일본 군인들을 위해 몸을 바치라며 일제에 대한 복종을 강요했다. 그들에게 조국은 일본이었던 것이다.작가에게 저항과 변절의 도구는 글이다. 민족을 배반하고 젊은이들에게 끔찍한 전장에 나가 목숨을 바치도록 글을 쓴 친일 문인들. 철저한 변절자인 그들은 일본 패망 후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작가로서 많은 걸 누리며 살았다. 창씨개명으로 부끄러워하며 참회했던 윤동주 시인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2019-02-20 19:30:00

이숙현 동화작가·구미금오유치원 원장

[책마담]'덩어리 시간'을 오롯이

아노…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촌장님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미야자키현에 자리한 목성(木城) 그림책마을 북카페는 천장이 꽤 높았습니다. 함박눈 내린 듯 백발 촌장님의 새하얀 콧수염이 옴짝, 얇은 입술이 달싹, 말들이 펼쳐졌습니다. 23년 전 아름다운 이곳에 그림책마을 시공간을 꾸리면서 품은 첫 마음이 「강아지똥」(길벗어린이) 「넉 점 반」(창비) 그림책 세계와 맞닿아 있더란 이야기였지요. 일본어를 모르는 까닭에 들리는 말이라고는 '아노'와 '이영경 상' '정승각 상'뿐. 그러나 일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황진희 번역가와 함께한 자리였어요. 덕분에 '아노'와 '아노' 사이, 모스 부호 같은 무수한 말들의 뜻을, 고운 목소리의 우리말로 생생히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가슴 뛰게 아름다운 우리말어떻게 그 말들을 여기 다 옮길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가슴 뛰게 했던 낱말들을 불러봅니다. 생명, 존중, 사랑, 그림책, 감정, 자연, 살아있는 이미지, 정신, 고향, 울림, 힘, 어린이의 세상, 지그시 우려낼 수 있는 시간, 몰입, 덩어리 시간. 아이들과 더불어 여러 해 살면서 꿈꾸고 바라왔던 마음들을 꿈틀거리게 하는, 살아있는 말들이라니!놀라운 말들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아기의 보들보들한 살결' 같은 한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린 작품으로 「강아지똥」을 꼽고, 따듯한 울림이 한지를 통해 번져 나오는, 정말 멋진 그림책으로 「넉 점 반」을 부를 때, 바다 건너 산속 조용한 그곳에 감탄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출렁였습니다. 한국 작가 그림책 원화 전시회와 작가와의 만남 자리를 하루 앞둔 밤이었습니다.깊은 밤, 달빛 따라 길 건너 전시장에서 만난 그림책 원화는 깜짝 놀랄 만큼 새로웠습니다. 빛깔과 기운이 펄펄 살아 있었습니다. '생명의 끝이 다른 생명의 시작'이 되고,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촌장님 말씀 때문인지, '덩어리 시간'을 누린 덕분인지, 눈앞의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이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에서 여럿이 함께, 꼭 다시 마주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새 봄 만나게 될 소중한 인연한 해 중 가장 짧은 달이자, '수료'와 '졸업'으로 '시작'과 '마무리'가 맞물려 있는 2월. 새 봄 만나게 될 소중한 인연들, 유치원 졸업하고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될 여덟 살 아이들의 얼굴을 헤아려봅니다. 응원의 마음 담뿍 보내면서요. 언제 이렇게 자란 건지, 중학교 입학을 앞둔 큰아이의 새로운 날들 가늠해보며, 새삼 목성 그림책마을에서 살뜰히 누린 덩어리 시간과 함께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나는 이제 정말로 공부가 하고 싶다/ 나는 나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내가 뭘 할 때 행복한 아이인지/ 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뭘 하면서 살면 나도 내 주변도/ 함께 즐겁게 살 수 있을지/ 내 속에 어떤 꿈들이 있는지/ 학교 공부는 나에 대해 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에 대해 내가 아는 게 이렇게도 없다니!/ 나는 나에 대해 알고 싶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알고 싶다// 나는 지금 진짜 공부에 대해 묻고 있는 중이다(김선우 시집 「아무것도 안 하는 날」 가운데 '나는 이제 정말로 공부가 하고 싶다' 시 전문. 그림책산책(책방)에서 이 시를 낭독해주신 이화정 작가님, 고맙습니다;)다가올 새 봄 앞두고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으실까요? 지금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든 덩어리 시간을 오롯이 누려보세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도 선물처럼 덩어리 시간 안겨주시고요. 내가 '나'로 스미는, 아름다운 덩어리 시간들이 새싹처럼 여기저기 솟아나는 봄! 꿈꾸며 마음 보탭니다.

2019-02-20 19:30:00

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

[귀촌한담]학계마을 할머니

마을회관은 할머니 놀이터다. 할아버지는 아랫마을 경로당에 가신다. 남녀 구분이 분명히 느껴지는 산골이다. 내 여친은 할머니들이다. 덕분에 마을회관 단골손님이 됐다. 10여 분 되는 할머니 그룹엔 군대 내무반 같은 서열이 있다. 80세 되신 화산댁은 내무반장이고, 88세 되신 사천댁은 최고참 병장이시다. 마을회관 운영은 지도자급 할머니의 권위와 상호 합의에 따른다. 할머니의 체면과 권위는 자녀, 재산, 열성에 달려있다. 자손들이 드리는 금일봉과 음식은 할머니 체통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경로잔치를 해마다 열고 돼지나 염소를 잡는다. 자연 촌락의 전통이 남아 있는 좋은 마을이다.할머니들에겐 남성 존중 습관이 살아 있다.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뒷말이 무성하다. 남자가 왜 부엌에 드나드냐고. 식사를 같이할 경우 남자는 윗자리에 앉으라신다. 처음엔 참 불편했었다. 변변한 농사터가 없었던 할머니들은 삯일을 해서 자식을 교육시키셨단다. 억세고 희생적인 할머니의 기품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억센 기풍은 밭두렁은 물론 도로 옆 잡초밭까지 그냥 두지 않는다. 덕분에 산속에도 노는 밭이 없다. 강인한 정신력이야말로 나이를 잊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보약임을 실감한다.아무래도 할머니들은 병원에 자주 가신다. 하지만 결코 농사일을 놓지 않으신다. 호미 하나로 한두 마지기 농사는 거뜬하다. 88세 사천댁도 300평 남짓 밭을 지으시고 무거운 농약통을 거뜬히 짊어지신다.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다. 제주 해녀 할머니의 산골 버전인가 싶다. 할머니는 밭농사가 힘에 부치지만 그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고 하신다. 농사는 신진대사를 돕고, 정신 집중, 재배와 수확의 기쁨, 용돈 창출에 기여하는 즐거운 사업이 아닐 수 없다."농사가 즐겁지 않으면 우째 농사를 짓겠노." 할머니 말씀이다. "씻고 누우면 임금도 부럽지 않다." 할아버지 말씀이다. 나는 궁금하다. 할아버지는 씻고 누우면 되지만, 할머니는 씻도 못하고 저녁밥해야 되는 거 아이가? 할머니는 신랑 밥해준다시며 회관을 나선다. 사뭇 뿌듯한 얼굴이시다.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

2019-02-20 19:30:00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매일춘추]부모의 사랑이 아이의 스펙

'다둥이 아빠'라는 수식어가 붙은 한 가수가 얼마 전 TV에서 '다둥이 자녀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이 크지 않는가?'란 질문에 '부모의 사랑이 아이의 스펙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뿐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감탄을 자아내어 방송이 나간 후 여러 기사들로 회자되었다. 사실 그 한 문장은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이 고민하는 양육신념의 진정한 방향성이자, 자녀에게 물질적인 것들을 물려주는데 집중하는 현 시대에, '진정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경종을 울릴만한 메시지였다.랜드리스는 아동은 그 누구보다 애정, 소속감, 존중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여러 정서적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이 부모와 상담실에 올 때, 아동 상담가들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도 '질적인 시간'이다. '질적인 시간'은 부모와 아이가 규칙적으로 함께 나누는 특별한 시간으로 매우 집중적이고 효과적으로 자녀를 격려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서로에 대해 많이 알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가족으로서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대개 이 시간의 가치를 축소하고, 물질적으로 채워줄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높고, 더 좋은 학교와 학원을 찾고 더 좋은 먹을 것, 입을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기 때문에 질적인 시간은 충분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아이들의 방학과 같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긴 시기에 부모-자녀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경우도 빈번히 본다. 중요한 것은 단 1시간, 10분을 같이 있더라도 질적으로 서로에게 집중하는 진정한 교감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부모와 규칙적으로 질적인 시간을 갖는 아이는 사랑과 관심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고, 특별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실제 보고되는 연구들에 따르면 '질적인 시간'을 잘 갖는 아이는 자존감과 IQ, 집중력에서도 더 긍정적인 결과를 보인다. 나아가 이것은 많이 가지지 못한 부모들도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언젠가 한 아나운서가 매스컴에서 한 고백이 생각난다. "부모님은 가난과 무지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노동하고 열심히 삶을 일궈낸 그 분들을 보며 체득된 삶에 대한 경이와, 물질적 지원보다 그 분들의 심적인 사랑과 응원이 나의 인생에 큰 뒷받침이 되었고, 그것을 나의 삶을 통해 증명해내고 싶다." 그녀의 고백은 갈수록 성취위주의 비인간화되는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큰 울림이 되는 고백이었다.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2019-02-20 11:27:32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종교칼럼]우리 삶의 3·1독립선언

인디언 추장이 이런 말을 했다. "내 안에는 늑대 두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고약하고 못된 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녀석이다. 못된 놈은 착한 녀석에게 늘 싸움을 건다." 듣고 있던 사람이 물었다.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늑대가 이깁니까?" 그러자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먹이를 더 많이 준 늑대가 이긴다."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3·1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었다. 선조들은 일제의 침략주의에 독립 정신으로 맞서고, 강권주의에 자유평등 정신으로 맞섰다. 민족의 존엄함을 내세우며 인도적 정신으로 시위를 하였다.역사 속의 3·1운동은 선언문 그대로의 실천이었다. 일제의 야만적 폭력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평화로울 수 있었는가? 어떻게 그렇게 성숙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그 잔혹함을 인내할 수 있었는가? 진정한 믿음은 이렇게 어리석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3·1독립선언서 작성은 최남선이 했고,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발표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울릴 만큼 거룩하고, 가치 지향적이고, 이상주의적이고, 신념을 담은 선언이었다.나는 헌법 전문도 읽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리의 현실적 삶은 31운동 정신 위에 세워져 있다. 3·1운동 정신이 참이다. 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이라 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라면 3·1운동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날에 읽는 31독립선언서는 일본에만 요구할 내용이 아니고, 우리가 실현하며 살아가야 할 선포이다. 우리 국민이 국제사회 앞에서 모범적으로 살아가야 할 목적이요,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이고, 각자가 추구해야 할 가치다.우리 사회의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소름이 끼친다. 갑질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소위 땅콩 회항 사건, 기업인 양모 씨의 잔혹한 폭행이 보도되었다. 우리 사회에 숨겨진 폭력이 얼마나 많을까? 심석희 선수는 조재범 코치의 폭행을 폭로했다. 코치가 여자 제자에게 뇌진탕을 일으킬 정도로 폭력을 썼다면, 심지어 미성년을 성폭행했다면 인간에 대한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심 선수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한 것이다. 오직 메달 때문에 참았다고 한다. 원래 제국주의가 그렇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무슨 희생이라도 강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목적이 신이 되는 것이다. 메달이라는 목표가 이데올로기가 되어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고 묵인하고 감추어 버리는 수단이었다. 심 선수의 폭로는 자기 존엄의 선언이다. 심석희의 3·1독립선언서다.앞으로는 판사가 모든 유죄 판결문에 '31독립선언서 100번 읽기'를 넣으면 어떨까? 제국주의와 평화주의, 폭력과 정의, 착취와 사랑. 우리 속에 있는 두 세력이다. 인디언 추장의 말대로 우리 마음속의 제국주의자와 평화주의자 중 평화주의자에게 힘을 더 실어주어야겠다. 역사의 교훈은 실천하라고 주어지는 것 아닌가?나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폭력적인 나, 폭력에 순응하는 나'보다 '정의를 갈망하는 나'를 응원한다. 2)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유'를 누리며 '평등'한 관계에서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3)평화를 훼방하는 자기중심적 존재 방식과 탐욕적 생활 방식을 회개한다. 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2019-02-20 11:05:19

종이도 돈입니다 라는 카피의 공익 광고. 빅아이디어연구소 제공

[김종섭의 광고이야기] 세상이 정해 놓은 가치를 뒤집어라

당신의 가치는 얼마인가?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니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 당신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그것의 가치는 얼마일까? 당신이 소속되어 있는 기관, 병원, 회사의 가치는 얼마일까?우리의 하루는 가치를 좇는 일고 가득 차 있다. 조금이라도 좋은 차, 좋은 집을 장만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얼마 전 종영한 JTBC의 'SKY 캐슬' 역시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대학에 자녀를 보내기 위한 이야기였다. 한국의 대학교는 수천 개지만 그들에겐 절대 비슷한 대학이 아니다. 대학 이름에 담겨 있는 브랜드 가치를 따지는 것이다.필자는 궁금했다. 도대체 가치라는 것을 누가 정하는 것인지. 서문에서 사람의 가치를 묻는 말이 잘못되었다 했지만, 실제로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사회적 기준으로 분류한다. 심지어 대놓고 따지는 곳도 있다. 바로 결혼정보업체이다. 그곳에서 사람은 10~15등급까지 나뉘는데 주로 학력과 경제력이 그 기준이 된다.필자의 백수 시절,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테이블 위의 티슈를 뽑아 코를 팽하고 풀어 버리는 게 아닌가. 순간 휴지가 너무 안타깝게 여겨졌다. '하필 티슈로 태어나서 사람의 콧물받이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반면 어떤 종이는 몸에 위인을 그려 사람에게 사랑받는 돈이 되기도 한다. 너무 억울해 보였다. 같은 종이인데 누구는 콧물 받이, 누구는 사람들이 절대 버리지 않는 돈이 되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그런 역설을 꼬집는 광고를 만들고 싶었다. 각 티슈에 지갑 스티커를 붙여두고, 티슈를 쓰는 게 마치 돈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카피를 썼다. '종이도 돈입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말고 아껴 쓰자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티슈 입장에서는 내가 한없이 고마웠을 것이다. 가장 낮은 가치의 종이를 가장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돈과 똑같다고 했으니 말이다.카페를 운영하는 친구에게도 이 광고는 큰 도움을 주었다. 손님들의 휴지 사용량이 많다고 투덜댔지만, 이 스티커로 사용량이 반 이상 줄었다. 스티커 한장의 광고였지만 콘텐츠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티슈와 지폐의 본질은 같다고 말했다.세상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다. 그리고 당신의 브랜드는 그중 하나다. 당신은 오늘도 어떻게 하면 나의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을지 고민 중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는 누가 매기는 것일까? 다시 묻고 싶다.필자는 여름 군번이다. 여름에 입대해 40도가 가까운 날씨가 훈련을 받곤 했다.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땀이 배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산에서 훈련을 받고 내려올 때 늘 똑같은 구멍가게를 지나쳐야 했다. 너무 목이 마르니 가게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 스포츠음료를 다 마시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작은 가게가 나에겐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그 순간 그 구멍가게는 내게 애플, 삼성보다 가치 있는 브랜드였다.기억하라. 당신이 매출 1억이 안 되는 스타트업 대표이든 200억이 넘는 기업의 사장이든 쫄 필요가 없다. 세상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듯 당신의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논산의 구멍가게가 내게 오아시스 같았듯, 당신의 고객에게 오아시스 같은 브랜드가 되면 된다.그러기 위해서는 늘 세상이 정해 놓은 가치를 의심해봐야 한다. 작은 차보다는 큰 차가 가치 있고 지방대보다는 서울대가 가치 있다는 건 세상이 규정해놓은 가치다. 하지만 당신의 브랜드를 감히 누가 함부로 평가하겠는가. 대전역 성심당에서 소보루 빵을 먹는 고객에게는 그곳이 뉴욕의 대형 프렌차이즈 빵집보다 가치 있는 브랜드이다.남들이 기준을 만들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라. 그렇게 세상이 정해 놓은 가치를 뒤집어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2-20 09:28:20

후구마비 재활 치료 과정 (이미지출처: 탑스동물메디컬센터)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하반신 마비된 봉이의 재활 스토리

뒷다리가 마비된 봉이(2)가 내원하였다. 봉이는 두달전 갑작스레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경남 사천의 시골 마을에서 원인도 모른채 봉구를 지켜봐야 했던 할머니의 애틋한 사연이 알려지며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진료가 의뢰되었다.개에서 하반신 마비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병은 디스크(추간판) 탈출증이다. 디스크가 빠져나와 척수신경을 압박하는 정도에 따라 통증과 마비증상이 나타나며. 디스크의 탈출 정도가 심할 경우 수술이 필요하다.봉이는 MRI검사 결과 척수에 염증이 발생하여 주변 신경이 손상되는 척수염이었다. 척수에 발생하는 염증이 광범위해질 경우 생명을 잃을 수 도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봉이는 다행히 국소적인 척수 손상에 의해 하반신 마비가 발생한 상황이었다.봉이는 입원하여 척수염과 관련한 집중적인 약물치료를 받았고, 후지 보행을 위한 전침치료와 재활 치료가 병행되었다.지루하고 아픔이 따르는 입원 과정이었지만 봉이가 잘 견뎌준 덕분에 퇴원할 때는 혼자서 서 있거나 비틀거리며 짧은 거리를 걸을 정도로 회복되었다.퇴원 후에도 이웃분들의 지극한 도움으로 재활 과정은 잘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한달여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봉이는 할머니와 산책도 다니고, 빠르게 달릴수 도 있게 되었다.봉이의 회복으로 할머니가 웃음을 찾으시고 마을 전체가 경사스러워 한다는 소식에 참 보람을 느낀다.봉이의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해주신 이웃분들과 할머님께 오히려 감사드리며, 봉이처럼 하반신마비 증상을 보이는 동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되고자 봉이에게 적용되었던 재활 치료 과정을 소개한다.◆뒷다리 마비증상을 보이는 동물환자를 위한 재활 프로그램▷1단계: 누운 상태에서의 재활(관절과 인대, 근육의 위축을 방지하고 혈액순환을 개선한다.)1. 손으로 배를 깊게 마사지하면서 방광을 부드럽게 압박하여 배뇨 유도하기2. 허리, 골반,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목, 발가락을 섬세하게 마사지 하기3. 고관절,무릎관절, 발목관절, 발가락 관절을 크게 굽히고 펴는 운동(ROM)을 반복하기4. 엄지 손가락으로 발바닥을 압박해가며 다리를 강하게 구부렸다 펴기 운동 반복하기▷2단계: 서 있기(standing)(미끄럽지 않은 쿠션감있는 바닥재에서 시행하고, 발바닥 털과 발톱은 잛게 깍아준다.)1. 허리 뒷부분을 손으로 받쳐 중심을 잡아주며 앞다리로 버티고 서있는 자세 유지하기.2. 가슴 부위에 손을 받쳐서 허리가 편 상태에서 서 있는 자세 유지하기3. 뒷다리의 보폭을 조금 벌리고 혼자서 서 있는 자세( STANDING) 유지하기4. 스탠딩 상태에서 뒷다리를 앉혔다 일으키는 스쿼트(squrts)운동 반복하기5. 발바닥을 손으로 받치고 자전거 페달 운동 (standing bicycle) 반복하기▷3단계: 걷기(WALKING)1. 스탠딩 자세에서 손으로 엉덩이를 살짝 받치고 밀쳐주며 걷기를 유도하기2. 짐볼 위에 뒷발을 올리고 균형잡기, 체중 옮기기 운동 반복하기▷도움말1. 걸을 때 뒷발목이 껶여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발목이 겪여지면 찰과상이 잘 생기며 통증으로 재활을 기피하는 이유가 된다.2. 각 단계는 지속적으로 반복하여야 하며 간식이나 칭찬을 통해 재활 과정을 즐거운 놀이과정으로 인식시킨다.3. 허리에 통증을 호소할 경우 재활을 중단하고 수의사의 처방을 따른다.허리 통증, 뒷다리 걸음거리 이상, 배뇨 이상 , 후지 마비 등의 증상이 발견된다면 척추질환을 의심하고 빠른 시간 내 수의사의 검진을 받으셔야 한다. 척추질환은 정확한 초기 진단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2-19 12:16:44

작곡가 서영완

[매일춘추]현대음악의 신선함

음악역사에서 '클래식(Classic-고전시대)'은 18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음악들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이 활동했던 시대로, 완벽한 형식·음악자체 구조적인 미를 추구하는 것이 이 시대 작곡가들의 주된 고민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타(Sonata)'가 바로 이 시대에 발전하고 완성된 완벽한 음악구조·형식으로 받아들여졌다.클래식은 또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는 악기를 연주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음악들을 통칭하기도 한다. 우리가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나 현악4중주와 같은 음악을 감상한다면 그 음악이 바로크시대의 것인지 낭만시대의 것인지 아니면 고전시대의 것인지에 상관없이 그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한다'라고 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클래식은 '일류의, 혹은 최고 수준의 어떤 것'이라는 뜻으로 유행을 거스르는, 즉 모든 시대를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인정받아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작품들을 말한다. 클래식은 이렇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공통점을 들자면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이라는 점이다.우리는 자주, 듣기에 불편함이 없는 익숙한 음악을 '클래식'으로, 익숙하지 않은 표현기법으로 무섭고 파격적인 음악을 '현대음악'으로 크게 구분한다. 20세기 이후로부터 만들어진, 그리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음악을 '현대음악(Contemporary Music)'라고 하는데 클래식이 듣기 편안한 이유는 '공통관습시대'라 일컫는 일종의 약속된 음악적 언어를 사용하던 시대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음악은 공통관습을 거부하고 작곡가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법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모던시대' 이후의 음악, 즉 음악에서 통용되던 음악적 약속이 깨어지기 시작했던 시기 이후의 음악들을 말한다. 마치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각각 자신만의 언어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비교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시도들은 현대음악을 하나의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감상에서의 불편함을 초래했고 이는 '현대음악은 난해해', 혹은 '어려워'라는 선입견을 만들어 냈다.사실 현대음악은 전혀 어렵지 않다. 현대음악은 새롭고 신선하고 흥미롭고 자유롭다. 오히려 모든 음악적 제약을 걷어낸 음악이기 때문에 더욱 직관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어떠한 의미에 끼워 맞추려고 노력하는 순간, 마음은 답을 찾은 듯 편안해지지만 창작음악으로 다가서려는 스텝은 꼬이게 된다. 음악에서 정답은 없고 그냥 소리를 듣고 느끼고 솔직하게 반응하면 된다. 그것이 생소하고 어색하다면 생소하고 어색함을 작곡가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음악은 작곡가의 '의도'대로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작곡가 서영완

2019-02-19 11:28:53

노동일 2·28민주운동 기념사업회 회장

[기고] 2·28민주운동과 대구 시민정신

대구의 양대 정신인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2017년 제정된 대구 시민주간이 올해로 세 번째 주간을 맞았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중 '시민주간'을 정해 자기 지역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는 활동을 하는 곳은 대구가 유일하다. 그만큼 대구의 정신적 자산이 풍부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대구시민들이 지역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역사적 가치관마저 서울 중심적인 시대에 대구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고양하는 시민주간은 시민들에게 매우 뜻깊은 이벤트로 다가온다. 대구경북은 오랜 사상적 전통을 가진 곳이다. 삼국통일과 한민족 형성의 토대가 된 원효의 화쟁 사상을 비롯해 퇴계와 영남 유림의 주리 철학, 최제우의 동학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고비마다 대구경북의 사상가들은 우리 민족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왔다. 그것은 대구경북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민족사의 큰 물줄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역시 당시 선각자들의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이며 근현대사에서 민족과 민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위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2·28민주운동은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주도해 일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다.당시 자유당 정권은 2월 28일 예정된 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대구 수성천변 유세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대구의 8개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렸고 이것이 시위의 발단이 되었다. 1960년 2월 28일 오후 1시 학생들은 정권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며 일제히 궐기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횃불이 타올랐고 3'15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이 혁명으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붕괴하였다.2·28민주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큰 이정표를 세웠고 대한민국 민주운동의 출발점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발생 58년 만인 작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대구시민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이 228민주운동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성원해 주었고 국회에서도 '2·28민주운동국가기념일지정촉구결의안'을 가결해 2·28민주운동이 대구만이 아니라 온 국민 모두가 기려야 할 역사임을 확인해 주었다.다시 한 번 2·28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노력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2·2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금, 우리는 이 시대에 왜 2·28을 되새기는가? 2·28의 정신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 간, 지역 간, 세대 간 대립과 갈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제 민주화 운동은 그 동안의 저항적 민주운동에서 포용적·통합적 민주운동으로 그 방향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2·28민주운동의 역할은 민주주의의 기능을 확장하고 그것을 통해 국가의 통합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제 228민주운동의 정신은 우리 사회의 시대적 요청인 상생통합의 선진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정신적 자산으로 계승·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2019-02-19 03:30:00

[김현남의 행복한 풍속인테리어]아이들 재능을 위한 인테리어

집의 내부와 자신만의 공간인 서재나 공부방을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로 인테리어를 한다든지, 깨끗하게 정돈을 하여 항상 즐겁고 좋은 기분이 들도록 하면 뇌가 활성화 되어 '드파민'이라는 뇌내(脳内)물질이 분비된다. 드파민이 분비되면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생활과 의지력의 향상으로 인해 학습효과를 높인다고 한다.신학기를 맞이하여 아이들 방과 주방(식당)을 중심으로 환경에 바꾸어 보자. 요즘은 공부보다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능을 길러 주고 싶다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의 재능을 기르기 위해서는 식당의 위치와 수납이 포인트이다. 아이들의 재능은 가족의 대화와 화목한 가정환경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후원을 하거나 지원을 해 주려면 식당에서 자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식탁은 가능하면 식당의 한가운데에 두고, 아이는 '성장'의 운기를 담당하는 동쪽에, 부모는 서쪽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거나 지켜본다. 북쪽에는 가족이나 부모님의 사진을 걸고, 그 반대쪽(남쪽)의 벽에는 아이가 동경하는 인물의 사진을 장식한다. 특히 남쪽은 '재능'의 기운을 담당하기 때문에 동경하는 직업에 관련된 상품이나 동경하는 사람의 책을 둔다. 만약 아이의 재능이 스포츠계통인 경우는 스포츠 용품을 북동쪽에 놓아두고, 예술·기술계통인 경우에는 동남쪽이 수납 장소가 된다. 음악에 관련된 경우는 동쪽으로 악기나 CD등을 장식하여 두면 좋을 것이다. 남서~서쪽~북서의 공간에 장식장을 두고 빛이 반사되지 않는 것을 장식하면 된다.아이들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재능이 있어도 주거 환경이 나쁘면 의욕을 상실하여 좌절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인생의 목표나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지 못하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소극적인 아이로 자라는 것은 방이나 가정환경이 정리가 안 되어 있거나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방이 어질러져 있으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의욕을 상실하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그런 상태로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독립심과 자립심이 결여되어 부모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하지만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하여 가정의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사무실 같은 분위기의 방은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나치게 사무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으면 아이들의 정서 교육에는 마이너스, 풍부한 감수성이나 상상력이 길러지지 않는다. 딱딱한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타인에 대해 배려를 잘 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곧바로 이성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다. 아이들의 공간에는 직선이나 사각형 형태의 가구만 두지 말고 곡선으로 된 가구도 배치를 한다. 모퉁이에 둥근 가구나 프릴이 붙은 커튼이나 쿠션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로 만들어 준다. 김현남 철학박사

2019-02-18 19:30:00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이 대표

[뷰티 라이프]거울 앞에 앉아 가다듬어야 할 것들

1990년대 말, 일본인 에모토 마사루는 사람의 말이나 글이 물에 전달되면 물 결정의 모양이 아름다워지거나 추해진다는 주장을 펼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그는 물에 기도하거나 따뜻한 마음을 담은 글을 종이에 적어 그 종이로 물이 담긴 그릇을 감싸도 그렇게 된다고 주장했다. 몇 년 전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직접 실험해 보여주기도 했다.세 그릇에 밥을 나누어 담고 첫 번째 그릇에는 좋은 말을, 두 번째 그릇에는 나쁜 말을, 세 번째 그릇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2주가 지난 후 나쁜 말을 한 그릇에 담긴 밥에서는 부패가 심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밥에서는 조금의 부패가, 좋은 말을 한 밥에서는 발효가 이루어져 좋은 냄새가 났다고 한다. 포도주와 양파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이처럼 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말은 생명을 주기도 하고 생기를 빼앗을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하다. 특히 깊은 내면에서 끌어 올린 말은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말이 쌓여 한 사람의 품격 완성 우리는 사람과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깝게는 가족과 친구, 또는 직장 동료와 어울려 살아간다.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힘이 들기도 하고 화가 나도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워 말을 참기도 한다. 오히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내 입장에서 말을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무심히 말해버린다. 때로는 상대의 말에 상처를 입고도 문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기를 바라며 침묵한 채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입은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고, 내면에 가라앉아 안으로 곪는다.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현대 한국은 우리 민족 역사 이래 가장 학력이 높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천박한 언어가 난무하고, SNS에서는 서로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가득하다. 그런 언어들은 듣는 이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만든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만 갚는 수준을 넘어 사람의 목숨 또는 공동체의 운명을 흔들기도 하는 것이다.말 잘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회적 풍토가 확산될수록 누군가는 날카로운 혀로 사람들을 자극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다.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돌고 돌아 내뱉은 사람의 귀와 가슴으로 다시 스며드는 귀소본능이 있다. 상대를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을 다치게 하는 것이다.말은 마음의 소리다. 무심코 뱉어내는 말에서 그 사람의 품성이 나타난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은 입 구(口)자가 세 개 모여 이루어져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격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할지 우리는 매사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몸맵시처럼 말도 갈고 다듬자 나무나 풀이 온 힘을 다해 피워내는 꽃은 저마다 모양과 향기가 있다. 꽃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저마다 모양과 향기가 있다. 아름다운 외모가 한 개인의 모습이라면, 말은 그 사람의 향기이다. 아침에 뿌린 향수의 향기는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지만, 말의 향기는 시간이 갈수록 진해진다.원석도 갈고 닦아야 보석이 되듯 말도 갈고닦으며 다듬어 나간다면 보석처럼 빛나는 자신만의 향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매일 아침, 거울 앞에 앉아 얼굴과 몸맵시를 가다듬듯 말을 가다듬어 보자. 따뜻한 말, 사랑이 담긴 언어는 바람이 없어도 천 리를 가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행복을 내 앞으로 초대할 것이다.

2019-02-18 19:30:00

김차진 수성고등학교 교장

[김차진의 분필과 지우개]직업진로와 학업진로

한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약 12년간의 학령기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고등학교를 중학교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하느냐, 아니면 대학에 진학하는 준비 단계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교육적 처방이 달라질 수 있다. 즉, 보통교육, 평등교육으로서의 완성이라는 관점과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교로서의 관점으로 대립된다.중학교 시기는 보통 직업진로를 강조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각종 직업진로 체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학생 본인의 꿈이 어느 방향인지를 파악하고, 조금 빠른 학생이라면 '나는 이런 직업이 좋다' '이런 직업이면 잘할 수 있겠다' 정도를 파악할 뿐 구체적으로 당장 직업을 결정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다.그에 비해 고등학교는 학업진로 시기에 해당한다. 학생 본인의 꿈이 어떤 방향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 시기이다. 가장 좋은 접근법은 중학교 3학년 시기에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어떤 진로진학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를 정해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유학기제를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고등학교 1학년 단계에서는 주로 공통과목을 많이 처방한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 본인의 꿈과 진로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예전에 기성세대가 밟아온 문과, 이과 방식의 2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인문사회계열에서는 인문과정, 사회과정, 경상과정, 국제과정으로 세분화하여 과목을 선택한다. 과학기술계열에서도 정보(IT)과정, 공학과정, 보건의료과정, 기초과학(이학)과정 등으로 구분된다. 예술계열은 미술/디자인과정, 음악과정, 문화콘텐츠과정, 연극영화과정으로 구분되며, 체육계열은 스포츠산업과정, 체조와 육상, 구기운동 등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같은 과학기술계열이지만 공대를 지망하는 학생과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학생은 일반선택과목 외에도 진로선택과목과 전문과목을 택할 수 있는데 2019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진로선택과목은 대학에 등급을 제공하지 않도록 되어 있어서 내신 등급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수할 수 있는 기반이 제공된다. 따라서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가,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분야는 무엇인가를 미리 결정해두면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만약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가 어떤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급한 학생은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교실에 앉아 있는 격이 되기 때문에 심각한 학습 결손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내 학업진로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중학교 3학년까지 직업진로 단계를 거치면서 직업 체험, 전문가 특강 등을 통해 앞으로 학생 본인이 어떤 전공을 택할 것인지 대강이나마 결정하고, 고등학교에서는 그 전공에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서 배우는 선순환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2019-02-18 19:30:00

김구철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숫자에 불과하다'와 '나비효과'

1961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4달러이던 시절, 미국의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에드워드 로렌츠 교수는 당시에는 최첨단 컴퓨터를 이용해 기후와 날씨를 시계처럼 정확하게 예언하고자 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반복하고 시각화한 그래픽도 만들었다. 날씨는 패턴이 있는가?로렌츠는 시뮬레이션 하나가 의미 있다고 보고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당시의 한심한 컴퓨터 성능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가동하면 너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똑같은 수치를 입력해 중간 과정에서 시작했다. 결과는, 유사하기는커녕 장소도 일시도 전혀 관련 없는 두 날씨가 나왔다. 왜 이렇게 달라졌지?로렌츠 교수가 꼼꼼하게 시뮬레이션 전 과정을 복기한 결과 컴퓨터도 정상이고, 버그도 없었다. 0.506127과 0.506, 입력 수치가 극히 미세하게 달랐을 뿐이었다.처음엔 소수점 아래 여섯 자리로 입력했고, 다음에는 세 자리까지 입력한 것이다. 0.000127 차이. 로렌츠 교수는 11년 후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다.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의 회오리바람을 촉발하는가?' 20세기 말 학문과 현실 세계를 뒤흔든 복잡성 이론의 단초가 된 '나비효과'다.우리는 자주 '숫자에 불과하다' '대세에 지장 없다'고 말한다.그러나 학문과 문화, 경제와 군사 모든 면에서 서양을 압도하던 동양이 역전당한 것은 18세기 말부터다. 산업혁명 이후 뉴턴 이후, 정확히 말하면 숫자와 수학을 등한시해서다. 앞으로도 작은 숫자를 무시하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을 흉내만 낼 뿐, 따라가기 급급할 것이다.학문과 문화, 부국강병이 모두 숫자에 있다. 대세는 작은 숫자가 결정한다. 설도 쇴으니 올해는 숫자를 잘 챙기자. 작은 숫자에 신경 쓰자. 그리하여 한국이 21세기 세계사의 중심에 서자.

2019-02-18 19:3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指鹿爲馬(지록위마)-정치가 사슴을 말이라 해서야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다는 뜻이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趙高)는 황제의 조서를 위조하여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앉혔다. 21살에 황제가 된 호해는 글을 가르친 스승이자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준 조고에게 국정을 맡겼다. 조고는 이른바 국정농단을 하고, 급기야 모반을 일으켜 황제가 될 생각을 했다. 문제는 대신들이 자신을 따라줄 것인가였다.대신들을 시험하기 위해 조고는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황제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좌우를 둘러보며 대신들에게 물었다. 그가 한 말을 따라 말이라고 아부하는 자, 침묵하는 자, 정직하게 사슴이라고 하는 자로 갈렸다. 사슴이라고 한 자들은 나중에 조고에게 암해를 당했다. 대신들은 더욱 그를 두려워하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사슴은 권좌를 상징한다. 황제 자리를 뜻하는 사슴을 누구나 탈 수 있는 말이라고 했으니 이런 대역무도도 없을 것이다.이 황당한 이야기는 다른 버전도 있다. 조고와 만난 적이 있는 육가(陸賈)가 후일 한 고조 유방(劉邦)에게 올린 '신어'(新語) 이야기이다. 조고가 사슴을 타고 황제를 따라나섰다가 황제로부터 왜 사슴을 타고 있느냐고 문책을 당하자, 조고는 자기가 타고 있는 것은 말이라고 우겼다. 신하들도 눈치를 보며 조고는 사슴이 아니라 말을 타고 있다고 했다. 황제는 사슴을 말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지록위마는 특히 힘이 있는 자가 고의로 흑백을 전도하고 시비를 흐리는 행위를 가리킬 때 자주 쓰인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518 망언까지 쏟아내는 특정 정치집단을 보며, 지록위마를 떠올리는 사람은 나 혼자뿐일까. 후에 조고는 모반을 꾀하다 결국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2019-02-18 19:30:00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세계의창] 결혼은 미친 짓인가

연애 결혼 포기하는 청춘남녀 늘며출생률도 덩달아 떨어져 위기 상황법률혼 중심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佛 계약결혼 가족형태 도입 고민을2002년 유하 감독이 만든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준영(감우성 분)과 연희(엄정화 분)는 처음 만나 스스럼없이 성관계를 한다. 얼마 후 그들은 결혼한 척 가족을 속이고 신혼여행을 가고 부부처럼 행동한다. 이 영화는 속칭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이성교제란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어야 한다는 도덕적 엄숙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여전히 서로 사귀면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앞다투어 결혼하지는 않을 것 같다. 기성세대의 바람과는 달리 청년들은 아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통계청이 발표하고 있는 최근 혼인 통계를 보면, 청년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과 세태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2017년 기준 혼인 건수는 26만4천500건으로 1974년(25만9천600건) 이후 가장 낮다. 20대 10명 중 6명은 결혼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니 앞으로도 혼인 건수는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적정 인구 규모를 국가경쟁력의 근간으로 보고 있는 시각에서 보더라도 청년들의 혼인율 감소는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우리 민법은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부부관계를 인정하는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제812조 1항) 사실혼 부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으니 서로 아무리 사랑하고 오래도록 살아도 법률상 인정되는 부부가 아니다. 형식적 절차 요건인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사실혼 부부와 법률혼 부부를 이렇게 차별해도 좋을까? 또한 법적 문제를 떠나 사실혼 부부는 '불륜관계'라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평생 심적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인구절벽으로 국가경쟁력 저하 운운하면서도 구태의연한 결혼제도만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의 태도는 바람직할까? 사회가 발전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걸맞은 합리적이고 새로운 가족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족 형태로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프랑스에서 부부가 함께 사는 방식에는 동거, PACS, 법적 결혼 등 3가지가 있다.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전통적인 결혼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PACS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2년의 통계에 의하면, 이성 남녀 가운데 94%가 PACS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혼인에서 결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6%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적잖은 충격이다.PACS로 대표되는 다양한 가족정책의 실시는 곧바로 출생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1970년 2.64명이던 프랑스의 출생률은 2000년 1.97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적극적인 출생장려정책으로 2010년 1.97명으로 높아졌고, 2015년에는 2.1명으로 유럽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우리나라에서도 PACS와 같은 제도 도입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4년 당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약칭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준비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혈연과 혼인관계로 이뤄지지 않은 동거 가구도 가족으로 보고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었더라면, 애인'친구와도 법적 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이다.이제 우리 사회도 법률혼 중심의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 PACS와 같은 새로운 가족제도를 도입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동반자로 살고 있다면, 그들의 권리를 법'제도적으로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청년들이 결혼은 더 이상 미친 짓이 아니라 축복임을 아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2019-02-18 11:14:56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매일춘추]양심(良心)과 양심(兩心), 그리고 양심(養心)

흔히들 '양심(良心)'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걸핏하면 양심이 있다, 없다를 가리고 양심에 호소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거나 양심에 맡긴다는 말을 별 깊은 생각 없이 남발하기 일쑤다.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깨달아 바르게 행하려는 의식(意識)이다. 하지만 세상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두 가지의 양심(兩心)이 판을 치고 있다. 도덕적 가치 기준인 순수한 양심이 실종된 탓이다.정의와 선을 가장한 정치권력은 순수한 양심을 '역사악(歷史惡)'으로 남용해 윤리적, 도덕적 규범까지 무너뜨리고 국민 위에 군림하며 파시즘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군사독재 시절 유행했던 '양심선언'과 '양심수'가 재등장해 내부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한 여성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이 나라에서 새삼 '양심'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아직도 한가닥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일까.양심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비양심 세력에 맞서 옥중투쟁 중인 전직 여성 대통령을 안타까워하며 비슷한 생애를 살아온 남의 나라 여성 지도자가 생각난다. 한때 살아 있는 '세계의 양심'으로 불렸던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미얀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나 15년 간의 가택연금과 탄압을 받으며 군사독재권력에 꿋꿋이 맞서 마침내 민주화 혁명을 이끌어내고 국가최고지도자가 되었다.그러나 여전히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군부는 소수민족 로힝야족(族) 70여만 명을 국경밖으로 쫓아내고 학살, 방화, 집단강간 등 조직적인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잔혹한 범죄에 대해 처벌은커녕 "달콤한 행동"이라며 치켜세웠다고 한다. 자비를 구하며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바친 그가 놀랄 정도로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굳이 군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했다.유엔은 즉각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예"라고 규탄했고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그에게 수여했던 인권분야 최고상인 '양심의 대사' 상을 철회했다. 자신의 '양심'을 팔고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집단과 타협한 것은 천사에서 악마로 변해버린 그의 가장 큰 죄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살아남아 권력을 누리고 싶은 욕망 탓인지도 모른다. 그에겐 '양심(兩心)'이 아닌 본래의 심성을 되찾아 수양하는 양심(養心)이 필요할 때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2019-02-18 11:10:57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홀로코스트 부인론과 5·18 왜곡론

5·18 운동을 폭동으로 단정짓거나북한군 600명 개입설 어이없지만아직 실체적 진실 규명 덜 된 상태형사처벌 움직임 동의하기 어려워홀로코스트 부인론(Holocaust denial)은 홀로코스트, 즉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집단 살해를 부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독일오스트리아 등 많은 유럽 국가와 이스라엘에서 홀로코스트 부인론을 처벌한다. 홀로코스트 부인론이라지만 한마디로 포괄하기 어려운 다양한 견해가 있다. 홀로코스트는 조작이라는 말 그대로의 부인론은 드물고 설득력도 그다지 없는 경우다. 증거가 잘못되었다거나 살해된 유대인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수정론이다.홀로코스트 부인론을 처벌하는 국가에서는 이런 것도 금지 대상이다. 2006년 오스트리아 법원에서 징역형에 처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나치 정권에 의한 유대인 학살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죽은 유대인 수가 과장됐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사망자 대부분이 독가스가 아닌 전염병 등으로 죽었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처럼 단순한 의사 표현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례적이다. 유럽을 폐허로 만든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트라우마가 우선 작용할 것이다.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는 고심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세계를 흔드는 유대인 파워와 미국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홀로코스트는 말 그대로 천인공노할 범죄행위이다. 형사처벌의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이를 완전히 부인하는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다.문제는 홀로코스트 '성역화'의 부작용이다. 1950년대에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로 죽은 유대인이 약 200만 명 정도라고 했다. 이후 희생자 수가 늘었다면서 독일에 더 많은 보상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인 미국 학자 노암 촘스키도 나중에는 알고 보니 1천만 명이 죽었다고 주장하며 돈을 더 달라고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600만 명 학살' 주장도 당시 유대인 인구로 볼 때 불가능한 숫자라고 한다. 가스실 학살에 필요한 가스나 엄청난 사망자의 화장에 들었을 에너지도 당시 독일이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고 한다. 이미 종교처럼 되어 버린 홀로코스트는 이런 검증조차 불경죄로 취급해서 아예 입을 막아버린다.스위스은행 휴면계좌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예금 3천만달러에 대한 보상으로 1998년에 12억달러를 받아낸 유대인 단체도 있다. 희생자에게는 그 돈의 5%도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유대인 노먼 핀켈슈타인이 '홀로코스트 산업'(Holocaust Industry)에서 폭로한 내용이다.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의미와 보상금 등이 엉뚱하게 이용되는 데 대한 유대인들 스스로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이 5·18 민주화운동 왜곡 행위를 처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홀로코스트 부인론 처벌법이 모델이라고 한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나 그들이 벌여놓은 판에서 나온 얘기들은 너무도 상식과 부합하지 않는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단정하거나 북한군 600명 개입설 등의 주장은 어이없다. 그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하지만 합리적 비판과 별개로 지금 벌어지는 소동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형사처벌 운운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특히 그렇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들먹이기도 면구하다. 법적 평가와는 달리 5·18 민주화운동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완결되지 않았다. 진상규명 특별법에 민주당도 동의한 것은 아직 밝혀야 할 진실이 남아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책임자로 지목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무엇을 '왜곡'이라고 규정할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홀로코스트 부인론 처벌 역시 앞서 설명한 대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성스러운 모델이 아니다. 징역형에 처해진 어빙과 달리 핀켈슈타인은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다. 대신 재직하던 대학에서 졸지에 쫓겨나고 온갖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거나 사실을 밝힌 대가였다.5·18을 성역화하여 우리도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홀로코스트 부인론과 5·18 왜곡론을 같이 취급하려거든 제대로 된 공부부터 먼저 하기를 권한다.

2019-02-18 05:30:00

이상현 변호사

[기고] 어느 소설가의 재판 비판

한 공직자가 실형 선고를 받았다.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 억울하게 유죄 판단을 받았다는 여론과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 팽팽하게 대치한다. 한 소설가가 신문 지면을 빌려 재판을 비판한다. '재판관들의 상관은 선언으로써 재판관들에게 암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에 따라 재판관들은 불을 향해 가는 나방처럼 아무런 추론 없이 판결을 했습니다. 그들을 그 선입견에서 빠져나오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사법적 오판을 조목조목 비판한 소설가는 프랑스의 문호 에밀 졸라이고, 위 내용은 그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1898년 1월 13일 신문에 실은 글의 일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유대인 출신 프랑스 육군 대위 드레퓌스에게 1895년 1월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한 재판을 비판한다.이른바 '드루킹'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30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여권은 재판장인 성창호 부장판사를 겨냥해 "사법농단 실체가 드러나자, 여전히 사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양승태 적폐 사단이 조직적인 저항을 벌이고 있다"며 "법과 양심에 따라야 할 판결이 보신과 보복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원색적인 용어로 비난했다.재판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관계를 재판부 배당 시점부터 알고 있었을 터인데 지금에 와서 이를 비판의 카드로 꺼내 든 여당도 아쉽고, 침소봉대하여 이번 판결을 정치적 호재로 이용하려는 일부 야당도 못마땅하다. 특히 여당의 재판 비판은 에밀 졸라의 그것과 아래와 같이 비교된다.첫째, 비판의 시점이다. 에밀 졸라는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 재판을 비판하고 재심 요구에 힘을 보탠다. 김 지사의 경우는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과도하게 재판 비판을 한다면 재판을 앞둔 2심 재판부에 대한 외압이 될 수 있다.둘째, 비판의 내용이다. 드레퓌스는 유대인이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반유대주의가 만연했고 재판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밀 졸라는 출신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선입견을 비판했다. 반면 이번 재판 비판은 '그 사람은 누구의 사람' 곧 특수관계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특수관계가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하는 것은 또 다른 선입견이 될 수 있다. 선입견을 비판하는 것과 선입견에서 비롯된 비판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마지막으로, 비판의 주체이다. 에밀 졸라는 유대인이 아니고 드레퓌스와 애초 일면식도 없었다. 에밀 졸라가 죽은 지 4년 만인 1906년, 재심 재판부는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하지만, 실형 선고와 망명 등 에밀 졸라가 인류의 이름으로 진실을 외친 대가는 혹독했다. 이번 경우는 어떠한가? 김 지사의 사활은 여당의 정치적 입지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재판 비판의 순수성이 아쉬운 대목이다."증오심을 유발하는 데 애국주의를 이용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나는 고발한다'에 나오는 말이다. 에밀 졸라는 애국주의를 말했지만, 그 자리에 헌법, 개혁, 국민, 다른 어떤 말을 넣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법농단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법원의 공정한 판결과, 화합을 도모하는 국회의 성숙한 정치를 기대해 본다.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재판, 정치 영역에서 말이다.

2019-02-17 14:43:26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기고] 대구시 신청사 지금 자리가 가장 좋다

대구광역시에서는 신청사 건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 공포하였다. 그에 따라 2019년 1월 신청사건립추진단을 설치하였다. 앞으로 3월까지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7월까지 후보지 신청을 받은 다음, 시민평가단의 평가를 거쳐 12월까지 신청사 예정지를 확정 짓는다는 기본 계획을 밝혔다.대구시청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러하다. 대구시청이 동인동 지금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1909년이었다.경상감영 안에 있던 대구군과 일제 통치기구인 이사청이 통합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처음 들어선 자리는 현재의 시의회 자리였고, 지금의 자리에는 무덕전이 있었는데 유도와 검도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하던 곳이었다. 맞은편 주차장 동쪽에는 대구부윤의 관사가 있었으며, 서쪽에는 경상관찰사를 지낸 이숙·유척기 두 분의 덕을 기리는 상덕사가 있었다.오래전부터 새로운 청사 건립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동안 사무 공간이 부족하여 시청사 외에 여러 곳의 건물을 임차하여 사용하였다.근자에는 경북도청이 이전하고 난 뒤 비어 있는 건물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건물이 노후해서 새로운 청사 건립이 시급하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시대적인 상황과 날로 늘어나는 행정 수요를 감안한다면 신청사를 건립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신청사의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검토할 것이다. 여러 가지 도시공학적 요인들을 놓고 비교 분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역사성이다. 서울특별시의 신청사 건립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터이다. 그 자리에는 조선시대 한성부가 있었다. 한동안 여의도로 이전을 검토하다가 옛터에 새로 지었는데, 역사와 전통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아주 원만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이란 살다가 협소하고 노후하면 허물고 그 자리에 다시 짓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면 부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가족들 사이에 뜻이 맞지 않으면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자금이 부족하면 대출이라도 받아야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지금의 대구시청은 110년이란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시민들과 함께 부대끼며 견디어 왔다. 현재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장소들을 살펴보면 마치 절집처럼 외딴곳에 위치하고 있다. 시청은 독야청청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시청은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다.신청사의 위치는 지금의 자리가 가장 좋다. 현재의 노후한 건물을 허물고, 맞은편 주차장 자리까지 합하여 쌍둥이 건물을 지으면 될 것이다. 그리하면 부지 매입비 부담이 없어지고, 부족하다면 주변의 부지를 일부 매입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유치 경쟁을 펼침으로써 시민들 사이에 일어날 대립과 갈등도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19-02-15 04:30:00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 대구에는 왜 아레나급 공연장이 없나

재작년 12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뮤지컬 '오! 캐롤'을 관람했다. 팝의 거장 닐 세다카(Neil Sedaka)의 주옥같은 명곡을 주크박스 뮤지컬로 감상하면서 문득 닐 세다카의 근황이 궁금했다. 올해 팔순의 고령이지만 공연을 활발히 펼치고 있었다. 지난 설 연휴 기간에 닐 세다카의 공연이 열린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다녀왔다.영국 BBC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위로 선정한 그랜드캐니언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라스베이거스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경비행기를 타고 지구의 20억 년 역사가 담겨 있는 그랜드캐니언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라스베이거스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매년 개최되는 비즈니스 컨벤션의 메카이다. 연중 매일 수십 편의 쇼와 뮤지컬, 팝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아무 때나 방문해도 실내 공연장에서 다양한 장르의 볼거리가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공연문화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닐 세다카의 콘서트는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아담한 공연장에서 열렸다. 닐 세다카가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오 캐롤'을 부르고 때로는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여독이 확 풀렸다.당대 최고의 팝 아티스트 레이디 가가의 재즈&피아노 콘서트도 관람했다. 공연이 열린 MGM 파크 시어터는 5천2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실내 공연장이지만 무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좌석까지의 거리가 44m에 불과하다. 7년 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을 관람했을 때와는 달리 무대가 잘 보였고 차분하게 음악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파크 시어터 옆에는 다목적 실내 경기장인 T-모바일 아레나가 눈에 띄었다. 2017년 5월 이곳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BTS)은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최대 2만 명의 관객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아레나가 라스베이거스에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대구는 왜 아레나급 공연장을 꿈꾸지 않는 것일까? 이미 고척스카이돔과 올림픽공원의 여러 공연장에서 케이팝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서울에서 창동역 인근에 '서울아레나'를 건립하려는 것은 아레나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1950년대, 60, 70년대는 물론이고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대구에는 수많은 음악적 스토리가 있다. 그럼에도 대구는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 대구에도 아레나급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이 들어선다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단순히 음악 공연 산업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당장 어렵다면 실내 공연장이 아니지만 새로 개장하는 '포레스트 아레나'를 케이팝 공연장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 밤 MGM 그랜드 호텔에서 데이비드 카퍼필드 쇼를 관람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매직쇼였다. 카퍼필드가 오래전 세상을 뜬 부친과 극적으로 재회하는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봤다.부모님을 떠나보낸 뒤 삶의 유한함을 절감하고 여행을 통해 힐링하는 삶을 지향하고자 했다. 정신과 진료와 여행을 병행하면서 칼럼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부족한 글을 읽고 성원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9-02-14 13:50:38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야 경제가 산다

文정부 경제 정책 실패 비난 피하려사실 왜곡·유리한 통계만 선별 홍보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고집하면온갖 갈등과 논쟁'불통만 야기할 뿐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으로 '잘못된 확신'이다. 크게 '통계학적 확증편향'과 '심리학적 확증편향'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통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확증하는 쪽으로 치우치는 인지적 편향이다. 가령, 현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재인 케어 등을 통해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도 늘어나면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생산투자 부진, 자영업 몰락, 고용 참사, 소득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여러 통계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 정책 실패를 피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유리한 통계 결과만을 선별해 홍보하려는 경향이 있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민간 소비 증가율(2.8%)이 경제성장률(2.7%)을 웃돌았다"면서 "소비 심리가 하락했으나 실제로는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간 소비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1.4%로, 약 52%를 민간 소비가 주도했다"는 통계까지 인용했다. 민간 소비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것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 때문이므로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 같다.그런데 현 정부 들어와서 민간 소비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정부 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인 소득 중에서 건강보험료, 대출 이자 등과 같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빼고 남는 돈이 소비가 가능한 '가처분소득'이다. 현 정부에서 가계소득은 늘었지만 가처분소득은 줄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진짜 더 심각한 문제는 못사는 사람들(소득 1, 2분위)의 가처분소득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반대로 잘사는 사람들(소득 4, 5분위)은 더 빨리 늘어난다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인데 정반대로 '소득 양극화 심화'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생 경제 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올해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고 공언했다. 아마도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평화가 경제다"라는 심리적 확증편향이 강하게 작동된 건 아닌지 싶다.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남북 관계를 한 차원 더 높게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평화가 경제가 되는 우리의 미래를 키우는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처럼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더구나, 평화가 경제가 되려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 경제 상황은 너무 절박하다. 경제의 두 축인 생산과 투자가 모두 침체하고 있고,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전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미중 통상 마찰 등 대내외 불확실성도 확대되는 추세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평화가 경제가 되기 위해서라도 당장 성과 없는 경제 정책의 수정 보완이 시급하고 절실하다.여하튼 경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지면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반대로 온갖 갈등과 논쟁과 불통을 불러올 뿐이다. 닉커슨(Nickerson) 미국 터프츠대학 교수는 "확증편향은 상당히 강력하고 침투력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편향이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마찰과 논쟁과 오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단언컨대 현 정부가 확증편향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경제가 무너지면 민심이 급격하게 이반되어 아무리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진보 정부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앞엔 장사가 없다. 이 대목에서 "진보의 미래는 국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갑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깊이 와 닿는다.

2019-02-14 13:50:05

천영애 시인

[매일춘추]나는 오직 족함을 아노라

인간의 불행은 만족을 모르는데서 온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상대적으로 비교하기가 쉽기 때문에 만족하기가 더 어렵다.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가 경제 여건에 비해 낮은 이유 중의 하나가 비교하고 비교당하기 좋은 환경이 아닐까 싶다.일본 교토의 용안사에 가면 백사정원인 석정이 있다. 백사정원은 물과 나무가 없이 하얀 모래가 깔려 있는 마른 정원인데 이 용안사 석정에는 열다섯 개의 돌이 놓여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어느 위치에 서도 열다섯 개의 돌이 한꺼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탐욕을 경계하는 의미로 자주 해석된다. 또한 있으되 없고, 없으되 있는 묘한 삶의 진리를 보여 주기도 한다. 여기서 보면 있었던 돌이 저기서는 안보이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던 돌이 저기서는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그리고 정원을 뒤로 돌아가면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거나 입을 축이는 용도로 쓰이는 물확이 있는데 영락통보처럼 생긴 물확에 '오유지족(吾唯知足)'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해석하자면 '나는 오직 족함을 아노라'라는 뜻이다. 석정의 담도 그렇지만 이끼가 가득 낀 뒤뜰 모서리에서 발견한 이 물확은 석정의 하얀 모래의 고요함과 어울려 순식간에 선정에 들게 했다.있다 한들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삶의 진리는 석정의 작은 돌에서 드러난다. 보이지 않으니 가질 수 없고, 없다고 하려니 없는 것이 아니다. 결국 마음을 비우는 도리밖에 별 수가 없다. 그리고 손을 씻기 위해 허리를 숙이면 보이는 이 '吾唯知足'네 글자가 만족할 줄 모르던 마음에 채찍을 가한다.인간의 불행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하는데서 시작된다. 상상하는 능력을 타고 난 인간은 현실의 한계를 가볍게 넘어 상상의 세계에서 탐욕을 부풀린다. 밤새 기와집을 몇 채나 짓는다는 말은 바로 이 상상과 탐욕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밤새 지었던 기와집은 아침이 되면 허무하게 허물어진다. 우리에게 보이는 현실은 밤새 지었던 기와집이 아니라 내가 거처하는 좁은 집이기 때문이다.나는 이 '吾唯知足'네 글자를 서재 방문에 걸어두고 드나들며 본다. 더 큰 탐욕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현실에 족함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불행하지 않게 사는 방법이다. 천영애 시인

2019-02-14 12: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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