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자낳괴'를 향한 위로

지하철에서 여대생 두 명의 대화를 의지와 상관없이 듣게 된 것은 목소리가 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특한 웃음소리와 자극적인 단어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대화내용은 최근에 소개받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너 정도 만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조건은 나쁘지 않다", "차는 뭐야?" 돈과 조건을 따지며 부러워하는 한 여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수단이 되어 자신을 상품화하는 또 다른 여자에게 책 한권을 소개 시켜주고 싶다.'위대한 개츠비'(저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준수한 연기력이 돋보였던 영화도 좋았지만 나는 소설이 더 재미있었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은 닉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주변 환경과 인물에 대한 은유와 묘사는 독자가 상상할 필요도 없이 단번에 눈앞에 펼쳐진다. 특히 처음으로 톰의 집에 방문하여 데이지와 베이커를 만날 때 방안의 몽환적인 분위기 묘사는 나를 그곳의 커튼처럼 펄럭이게 만들었다. 간략한 줄거리는 개츠비의 옛사랑 데이지를 향한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미 지역의 재력가와 결혼한 데이지를 되찾으려 노력하는 개츠비의 사랑이 어리석고 답답하게 보이는 것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개츠비는 밤마다 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데이지의 집을 향해 선다. 부두의 경계를 알리는 초록불빛을 향해 뻗은 두 팔은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암시한다. 그 초록불빛은 개츠비의 저택에서 밤마다 열리는 파티의 형형색색의 조명과 닮아있다. 재력을 과시하는 화려한 조명을 따라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의 말로와 재력으로 사랑을 되찾으려는 개츠비의 말로는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대륙을 향한 콜럼버스의 열망과도 닿아있을지도 모른다. 그 물길은 아메리칸드림의 지도를 그려줬을 테니까.이 이야기를 흔한 러브스토리라고만 보고 싶지 않다. 물질주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발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숨 쉬고 있다. 저자 피츠제럴드는 실제 자신의 재력 때문에 파혼을 겪기도 했다. 롤리(John Henry Raleigh)는 "피츠제럴드의 개츠비가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와 '미국이 꿈'의 타락을 나타낸다" 라고 했다. 비단 미국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형형색색의 자동차들이 도로를 누빌 것이다. 도대체 남녀가 사랑하는데 차종이 무슨 연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만이 위대한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직은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한'이 비아냥이나 반어적 표현이 아니기에, 아직은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에서 괴물이 부정적인 의미라면 말이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0-21 11:14:41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

[세계의 창] 천황과 한일관계

오늘은 일본의 새 천황(일왕의 일본 호칭)의 즉위식 날이다. 190개 이상의 국가와 기관을 초청한 일본 최고의 축제일이다. 한국에서는 이낙연 총리가 사절로 참석한다. 즉위식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개선될 지에 관심이 크다.한일관계의 결정적 변곡점은 2012년이다. 일본 내각부가 매년 가을 쯤 일본 국민을 상대로 실시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11년까지는 '한일관계가 양호하다'는 평가가 약 60%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2년에는 '양호하다'가 18.5%, '양호하지 않다'가 78.8%로 급변하고 우익들 혐한활동도 본격화했다.그 후 계속해서 '양호하다' 30% 대 '양호하지 않다' 70% 정도가 유지되면서 한일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도 이러한 상황에서 나왔다. 때문에 일본 정부의 조치는 돌발적이 아니라 누적된 불만의 폭발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면 2012년의 무엇이 한일관계를 파국으로 몰았을까.그 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표시로 독도를 방문했다. 며칠 후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천황의 사죄를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일본 국민들은 격앙했고 "한국을 적국으로 보자" "천황 폐하에 대한 모욕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등 우익 성향 정치인의 발언과 기사가 일본 언론을 장식했다. 일본 국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천황의 사죄 요구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독도방문과 천황의 사죄 요구 중 어느 쪽이 한일관계에 더 크게 영향을 미쳤을까. 둘 다 민감한 문제이나 후자가 일본 국민의 감성을 더 자극했다는 평가가 많다. 외국에서도 천황의 전쟁 책임을 추궁하는 경우가 있으나, 국가 원수가 직접 천황을 겨냥한 적은 없다. 한국을 비롯해 외국에서 볼 때 천황은 여느 나라의 왕에 지나지 않으나, 우익 성향의 일본 국민들은 천황에 대한 비난을 일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인 것이다.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으로부터의 비난은 그들에게 더욱 충격이었다.천황을 빼고 일본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번에 즉위하는 나루히토(徳仁)는 126대 천황이다(25대까지는 신화의 영역). 일본은 그동안 천황가의 대가 끊기지 않은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한 번도 왕조교체가 없었다는 의미에서 안정의 표상으로 해석을 하나, 반대로 변화의 동력이 없는 정체(停滯)로 보는 시각도 있다.그렇다고 천황이 늘 일본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794년부터 시작되는 헤이안(平安) 시대에 들어오면 천황을 대신해 귀족이 실권을 장악했다. 뒤이은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 등은 장군 중심의 무가(武家) 지배체제였다. 지배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천황은 있어도 없는 듯 명맥을 이어갔는데, 수수께끼이다.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굳이 그 존재를 없애거나 바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천황이 정치의 중심에 복귀한 것은 메이지유신을 전후해서다. 하급무사들이 중심이 된 유신세력은 천황을 막부타도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들은 메이지헌법에서 천황을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주권과 대권을 부여했다. 이로써 천황은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現人神)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일본 역사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지금과 같은 상징 천황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메이지유신 이후의 근대 천황제는 오히려 예외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 일본 국민들에게는 근대 천황제가 각인되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천황의 권력과 권한은 사라졌으나, 그는 여전히 일본국민의 심저(心底)에 절대적 존재로 남아 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이 항복방송을 할 때 일본 국민들은 황궁을 향해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절대적 존재에게 굴욕적인 항복 방송을 하게 한 죄스러움 때문이었다.천황이 한일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 적은 없으나, 뇌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국이 이를 신성시할 필요는 없으나 국가 간 절제는 필요하다. 양국 관계를 위해서도.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

2019-10-21 10:28:00

이점찬 대구미술협회 회장

[기고]도시 브랜드 가치, 100년 앞 내다 봐야

대구시의 도시 브랜드 개선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다. 대구시가 도시 브랜드 슬로건인 '컬러풀 대구'의 로고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예산대비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다.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집행부가 교체될 때마다 새로 선출된 자치단체장들이 경쟁적으로 슬로건이나 로고를 새 것으로 바꿔왔다. 관습처럼 그래왔던 것 같다. 도시도 그대로 시민도 그대로인데 도시브랜드만 교체되는 현재 이 상황이 바람직한 현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여기에다 많은 예산을 들여 지역의 모든 슬로건이나 싸인(Sign)물을 교체하며 지자체 브랜드 리뉴얼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지금까지 문제 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유독 대구시의 '컬러풀 대구' 로고만이 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걸까? 앞서 언급한바 기존의 동일한 로고에 동그라미 색상만 바뀌었기 때문에 예산 낭비라는 말이 나오고 비난 여론이 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디자인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1988년에 탄생한 서울올림픽 엠블럼과 로고는 고대 단군조선의 설화에서 전해진 '삼태극'의 형상에 대한민국 전통미를 입힌 브랜드로 찬사를 받았다. 미국 디자인계의 거장 밀턴 글레이저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 올림픽 중 한국의 삼태극 엠블럼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가 고안해 유명세를 탄 '아이러브뉴욕(I♥NY)'도 단순히 하트 기호(♥) 하나만 따와 미국 시민들의 선풍적인 호응을 받았다.한 번 정해진 이후 굳어진 이미지의 전체적인 변경이란 자칫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위험이 따른다. 특히 자주 바뀌는 브랜드는 그만큼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나이키, 코카-콜라, 스타 벅스 등 세계적인 브랜드는 수십년 내지 100년 이상 지나도 오리지널리티를 버리지 않는다. 코카-콜라는 1888년 양산에 들어갔지만 곧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독보적인 음료수의 자리를 굳혔다. 어떤 마케팅을 했기에 그런 걸까?빨간 배경색 위에 하얀 필기체의 'Coca-cola' 글씨는 코카-콜라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다. 정교한 스펜서체로 만들어진 로고는 코카-콜라가 만들어질 때부터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온 건 아니지만 계속 비슷하게 부분적으로 고치고 발전해오면서 소비자들에게 코카-콜라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 주효했다. 코카-콜라의 병 모양 역시 브랜드 가치 상승에 큰 힘이 되었다. 허리가 좁고 밑이 퍼진 코카-콜라 병은 1915년 최초의 특허를 받은 다소 통통한 모양새에서 오늘날의 한 손에 꽉 잡히는 슬림한 디자인으로 정착하기까지 여러 차례 리뉴얼을 거쳤지만 1955년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가 리뉴얼한 것이 소비자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받으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코카-콜라는 이처럼 애초부터 꾸준히 일관된 디자인과 메시지를 유지하며 그 어떤 브랜드보다 자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 세계에 글로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으로 거듭 나게 했던 것이다. 전통과 고객의 로열티를 누릴 자격은 코카-콜라처럼 오래 유지되는 브랜드에게만 주어진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구시의 대표 브랜드인 '컬러풀 대구' 로고도 타도시와는 달리 차별적 가치를 구축하고 다양한 활용 방법과 산업화 모델 방안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100년 후의 대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2019-10-21 10:20:42

곽병진 전 한국산업단지공단 감사. 전 대구도시공사 감사

[기고] 정의와 공정이 의사결정 잣대다

'지금이 임진왜란 때와 뭐가 다른가'라고 필자는 묻고 싶다. 임진왜란은 총칼전쟁이고 지금은 경제전쟁 중이다. 거기다 군사안보 측면에서 독도 도발 등 북'중'러'일 주변국들에 사면초가적인 군사안보 위협이 위험수위까지 도달하여 2중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무감각 패닉 상태로 안중에도 없다.눈에 보이는 총칼전쟁만 전쟁이고 눈에 덜 보이는 경제전쟁은 무감각 도외시하고 당권 당파전쟁에만 혈안이다.불붙은 당파싸움도 임란 중에는 애국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지금은 어떤가? 수출은 10개월째 뒷걸음질 지속 중에, 친노조, 기업 소외정책으로 국내외 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급감하고 우리 기업들의 자본은 해외 이탈이 사상 최대치로 가속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좌우이념 설전, 시위군중 세대결 양상과 당권, 정권 쟁취 전쟁 양상을 방불케 한다.지금이 임란 때보다 더 위중한 2중적 전쟁을 맞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문제 인식이 있어야 실마리가 보이는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 몇 달간 진영논리로 논쟁에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심각한 상황이 날로 가속됐는데도 결국 뒤늦은 처방만 나왔다. 불의와 불공정이 정의와 공정으로 바뀔 수도 없고 오로지 정의와 공정만이 의사결정 잣대다.양극화가 심각한 이 시대 경쟁대열에서 탈락해 허탈감에 휩싸인 수많은 청소년, 학생들, 극빈소외자들은 공직자의 불공정에 기가 막혔다.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 비공개 소환도, 건강 등 온정적 수사 부탁도 수많은 의혹에 대한 수사 방식도, 만인 앞에 평등 공정해야 특혜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다.검찰개혁이 국민의 뜻이란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사람들이 검찰개혁 때문에 거리에 뛰쳐나왔었다고는 볼 수 없다.검찰개혁과 조국 사퇴는 별개 문제였다.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앵무새 노래하듯 반복하여 '검찰개혁' 만 외친다. 강조하고 연계할수록 개혁을 지연 희석시킬 뿐이다.이미 국회에 상정돼 있는 안을 주무 부처와 검찰이 보다 구체화된 안을 입법기관인 국회와 협의 추진토록 하면 될 사항이다. 전혀 무관한 개혁과 사퇴를 연계해 추진해야만 하는 뉘앙스를 풍겨서, 국민들은 혼돈스러웠다. 국민적 손실이 도대체 얼마였나? 하루에 몇 조원이 달아난 것으로 보인다.앞으로 수신제가 없는 공직 후보는 공직을 꿈도 꾸지 말아야한다. 장관, 법무장관이 아니라도 모든 공직 후보자는 법보다 사회규범, 규례, 상식과 도덕성이 더 중시되고 있음은 이 사회의 합의된 공감대가 형성된지 이미 오래다.기초의원, 이장의 덕목 잣대도 보편화된 상식이다. 그보다 더 지극히 기초적 필연적 덕목이 수신제가다. 일반 공직 사회부터 내로남불, 조령모개, 오비이락, 이율배반 행위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명제다. 임란 중에 의병을 일으켜 나라 수호에 몸 바친 이 지역 출신 홍의장군의 생즉사사즉생, 구국 정신을 이 시대에 재조명해 계승하길 바란다.문제 해결은 심각한 문제 인식을 성찰할 때만이 해결 실마리가 보이며 의사 결정 잣대는 정의와 합리형평, 공평, 공정의 잣대가 명확한 해결책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향후 모든 공직 후보는 반드시 이 정신을 깊이 새기고 국민 앞에 엄숙히 다짐하길 간청한다.

2019-10-20 15:49:16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시월단상

예전엔 상대의 행위를 욕했지만지금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대의민주주의 보완 기능 있다며대통령 권한을 광장에 던져버려우린 그렇게 컸다. '어떤 사람이 될까?'는 상상했어도 '어떤 나라를 만들까?'는 꿈꿔 보지 않았다. 그런 건 대통령의 일이었고 국민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1차부터 2차, 3차까지 연이어 성공시킨 나라, 10월 유신으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은 나라, 어디에도 우리처럼 승승장구하는 나라는 없었다. 우린 위대한 나라에 살고 있었고 그건 오로지 뛰어난 대통령의 특출한 영도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만에 하나, 그것이 우리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이거나 이웃집 누나가 공장에서 쏟은 땀과 눈물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꿈에도 하지 않았다. 아무쪼록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게 국민이 할 일이었다.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주어진 삶의 지표는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가 부르면 언제든 나아가 싸우고, 싸우면 이기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학교에선 그런 각오를 담아 시시로 노래도 불렀다. "우리들은 대한 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중략)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대통령의 말과 나라의 정책은 언제나 옳기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이기자 대한 건아'를 목청껏 부르게 한 힘도, 길고 어려웠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만든 열의도 그런 믿음에서 나왔다.그러던 어느 날, 지금 같은 가을 이달에 그토록 믿고 따랐던 대통령이 갑자기 떠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둑길 위에서 아이들은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이대로만 가면 곧 우린 최고(선진국)가 되는데, 애타는 마음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백억불 아니라 천억불 수출을 달성한다 해도, 암만 고속도로를 닦고 국산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런 것만으론 선진국 되기가 어렵다는 건 알 길이 없었다.민주주의가 없으면 다양성이 없고 다양성이 없으면 문화가 쇠락한다는 것, 그러므로 선진국이 되려면 민주주의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것, 그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찍이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역설했음에도 말이다.내 삶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주인은 그 나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권리는 어디서 나오고 또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둑길 위의 아이들 누구도 배워보지 못했다.차차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의 꿈도 조금씩 변해 갔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될 것인가'에서 '나라에서 무엇이 될 것인가'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름과 공존의 가치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어른, 더 나은 내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은 꿈 꿔본 적 없는 어른들이 자꾸자꾸 생겨났다.저 '높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세상은커녕 타인의 삶에는 아무 관심조차 없던 자들이 그 자리를 발판 삼아 국민을 위한다며 금배지를 달았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건지 고민해본 적이 없으니 국민에게 내놓을 철학도 비전도 딱히 없다. 잘하는 거라곤 싸움질하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것뿐이다. 그 옛날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로 기초를 닦아서 그런지 대체로 그건 잘한다.한동안 3김 시대가 끝나야 우리 정치가, 역사가,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거라고들 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YS도 가고 대통령 각하를 대통령님으로 바꾼 DJ도 가고 기자들에게 '몽니'란 단어를 선사한 JP도 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대통령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며 자신이 위임받은 권한을 증오와 혐오로 가득한 광장에 던져버렸다. 권력의 언저리엔 얄팍한 자들이 자기들 먹을 것만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시절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던 이들은 이제 서로 자기가 대장이 되겠다며 저열하게 다툰다.예전엔 그래도 상대의 행위를 비난하고 욕했지 지금처럼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저주하고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래도 서로가 그리는 나라, 꿈꾸던 세상이 달라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나라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끄떡없는 철옹성이 아니다. 대통령은 책임져야 하고 주권자인 국민은 더 늦기 전에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2019-10-20 15:48:07

김현정 NH농협은행 대구영업본부 WM 차장

[금융칼럼] '정답'을 찾을수는 없지만 '최선책'은 찾아야 한다

투자해서 손해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버티겠다며 장기투자를 하겠다고 한다. 반면 일부 전문가나 은행 PB( Private Banker·자산운용사)는 손절매하고 상승이 예상되는 새 상품으로 갈아탈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손해가 이익이 될 때까지 버틸 것인가? 손해를 받아들이고 상승이 예상되는 자산으로 갈아탈 것인가?참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머리로는 갈아타야 할 것 같고, 가슴으로는 버티고 싶다. 갈아탄다면 갈아탄 자산은 상승할까? 기다리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투자상품이 대세인 요즘 모두 한 번쯤은 이런 경험과 생각을 가져봤으리라 생각한다.결론은 '정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최선책'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와 물가를 보면 시장이 보인다. 시장에서는 경기와 물가가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경기 자료와 물가 자료를 제대로 읽는다면 앞서 걱정했던 부분을 아마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우리는 어지러울 정도로 숫자와 정보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숫자나 정보에 대한 해석이 개인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차이가 나지만, 결국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해야 한다.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이 있듯이 경기에도 경기순환주기라는 패턴이 있다. 겨울에 봄 상품을 준비하고 봄에 여름 상품을 준비하듯이 한 발 두 발 앞서서 계절을 준비하는 것처럼 경기 사이클을 분석한다면 적어도 어디가 '무릎'이고 어디가 '어깨'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고, 패턴도 발견할 수 있다.경기와 물가를 어떻게 읽고 어디서 정보를 찾고 또 그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분석하면 되는지 스스로 학습이 필요하다. 덧붙여 말하자면 최초의 학습은 원시 데이터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정보를 지식에 따라 결합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지식에 경험이 더해지면 세상을 보는, 즉 시장을 보는 지혜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찾은 정보와 함께 생각하고 실행해본다면 가장 좋은 투자방법이 될 것이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변화무쌍한 시장 속에서 남과 같은 생각으로 투자한다면 남들 만큼만의 수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많은 정보를 가공해서 남들과 다르게 보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기술을 길러보자. 앎의 수준이 깊어질수록 손실은 감소하고 수익은 증가한다. 또 투기횟수는 줄고 투자횟수는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9-10-20 14:53:16

종이에 담채, 각 127×2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정종여(1914~1984) '가야산 10폭 병풍 중 2폭'

청계(靑谿) 정종여가 1941년 그린 '가야산 10폭 병풍' 중 마지막 두 폭이다. 20대의 나이에 가야산이라는 큰 주제와 대결한 기개와 이만한 대작으로 그려낸 실력이 놀랍다. 가야산 곳곳의 풍광을 한 폭 한 폭 짜임새 있게 완성하면서도 마치 10폭이 연결된 연병(連屛)처럼 각 폭을 배열해 필력 뿐 아니라 구성력도 대단하다는 감탄이 나온다.오른쪽의 제9폭에는 해인사를 그렸다. 화면 중간쯤 삐죽 솟은 고목(枯木) 두 그루 사이로 해인사 당우를 그려 넣었고 일주문 아래에는 소매 넓은 장삼과 적갈색 가사를 '수'한 스님 두 분도 보인다. 제10폭은 해인사 산내 암자 중 한 곳일 산등성이 암자와 밭에서 일하는 사람, 그 옆 둔덕에 스님과 갓 쓴 양반 등 세 명이 그려져 있다. 화제는 "신사하일(辛巳夏日) 가야산하(伽倻山下) 청계도인 사(靑谿道人寫)"이다.가야산 봉우리 아래 큰 나무들이 우뚝 우뚝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집과 절을 그린 실경산수이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점경인물로 그려 넣어 산수와 풍속을 결합했다. 나머지 8폭에도 산촌의 남녀노소와 승속(僧俗)의 인물이 각자의 일을 하고, 볼 일을 보는 모습으로 그려져 주변에 대한 화가의 관심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한 때 해인사에 살았던 정종여에게 익숙한 가야산이고 안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산수와 인물, 국토와 현실이 함께 화폭에 담겨있어 삶의 배경이자 터전으로서 가야산이 생생하다.정종여는 가야산에서 멀지 않은 거창 읍내에서 태어나 16살에 거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어떤 이유인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살았는데 그림 재주가 뛰어나 해인사 주지스님의 후원으로 일본으로 그림 유학을 갈 수 있었다. 25살 때 6미터가 넘는 진주 의곡사 괘불 '석가여래좌상'(652×355㎝)을 그렸고, 이 '가야산 10폭 병풍'을 그린 28살 때 팔공산 부인사에 3칸 규모 벽화를 그렸던 것이 '선덕부인 존영 봉안식' 기념사진 속에 남아 있다. 화가로서 금어(金魚) 역할을 하며 대구에도 필적을 남겼던 것이다.1942년(29세)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두 차례 개인전을 여는 등 왕성하게 활동 했지만 육이오동란 중인 1950년 북쪽으로 납치되어 한 때는 남한에서 지워진 인물이었다. 동란 중에는 해인사가 없어질 뻔 했던 일도 있었다. 1951년 8월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중 해인사 폭격 명령을 받았지만 김영환(1921-1954) 준장이 끝내 폭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문화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부는 2010년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킨 그의 공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김영환 준장은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최초로 착용해 이를 제도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쟁기념관이 선정한 2019년 '10월의 호국인물'이다. 미술사 연구자

2019-10-20 06:30:00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소통으로 다가서는 춤의 힘

요즘 공연예술은 고유한 자기 영역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더욱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관객과의 소통에 좀 더 관심을 갖는 공연자의 경우, 특히 춤의 도움을 받으려는 노력이 적극적이다. 그렇게 춤은 타 예술장르에서 인기가 있지만, 정작 춤 자체 공연은 대중으로부터 크게 환영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타 장르 퍼포먼스에서 춤이 본연의 주된 장르만큼 중요하게 인식 되는 경우도 많다. 가수인 아이돌들은 춤을 추지 못하면 큰 결격사유이고, 보컬 연습만큼 춤 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뮤지컬 배우들은 노래만큼 춤에도 능력이 있어야 뮤지컬 배우의 길을 갈 수가 있다. 연극과 오페라 등에서도 점점 춤의 역할이 커져 간다. 대사와 노래로 그들의 주제를 전하기보다 몸짓과 춤을 사용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노래만으로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세계적 열풍으로 많은 패러디가 만들어질 만큼, '말춤'은 유래 없는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쉽고 중독성 있는 노래의 멜로디와 더불어, 누구나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재미있는 춤으로 인해, 이 노래는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요즘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는 케이팝 가수들의 노래는 춤과 하나가 되어, 노래에 따른 그들의 고유한 춤이 곧바로 연상이 된다. 언어적 장벽을 받지 않는 춤은 세계적 소통이 더욱 용이하고, 한류열풍의 중심에는 한국가수들의 환상적인 춤이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춤을 보라! 그들의 자유로운 춤을 따라 추는 외국인들에게는 노래는 따라 부르기 힘들지만, 춤은 쉽게 그들에게 다가감을 알 수 있다. 주객전도로 노래가 오히려 춤의 백 뮤직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이러한 춤을 보고 관객들은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리듬에 따라 즐기는 춤이거나 적재적소의 재미를 위해서, 또는 길지 않게 그들의 의도가 분명히 감지되게 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그런데 한 시간 이상의 긴 공연을 춤으로만 안무자들이 주제를 표현하려는 무용공연을 관객들은 대체로 어려워한다. 관객들은 춤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춤 내면의 깊은 뜻을 찾고자 골몰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용공연도 가볍게 다가가 관람하면 어느새 나만의 감상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춤 한 장면의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한 것이다.그리고 안무자들은 춤 공연의 소통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그들의 리그에서 진일보 할 수 있다. 관객에게 다가가는 춤이야말로 더 큰 호소력으로 관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0-20 06:30:00

'바스커빌 가의 개' 원작 삽화 (1901년)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마견(魔犬)의 전설과 '백백교 사건'

'셜록 홈즈' 시리즈의 탐정 셜록 홈즈는 인간적 매력이라고는 손톱 끝만치도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오만하고, 자아도취적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다. 쉽게 말해서 그는 일반인들이 중요시하는 인간적 품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과학과 이성만을 신뢰하며,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초자연적 세계란 존재할 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셜록 홈즈 시리즈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바스커빌 가의 개'(1901)는 셜록 홈즈의 이런 기질을 충분히 활용한 소설이다. 마견(魔犬)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바스커빌 가문의 주인 찰스 바스커빌 경이 어느 날 시체로 발견되고, 전설 속 '개'의 저주, 즉 초자연적 세계가 범죄의 주범으로 제시된다.이 사건이 합리주의자 홈즈의 전투 의지를 들쑤신 것은 당연한 일. 홈즈는 치밀한 추론과 조사를 통해서 초자연적 존재가 일으킨 듯한 이 사건이 실제로는 돈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기획이었음을 밝혀낸다. 마침내 범죄가 해결되어 세계는 평온을 되찾고, 홈즈는 합리적 세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한다.초자연적 세계의 허구성을 과학과 이성으로 폭로해낸 셜록 홈즈의 모험담, '바스커빌 가의 개'는 1941년 조선에서 '바스커빌의 괴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된다. 원작이 발표된 지 40년이나 지난 때였다. 이 무렵 조선사회는 '백백교 사건'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합리적 세계에 대한 믿음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었다.'백백교 사건'은 사이비 종교 교주 전용해가 300명이 넘는 신도를 무차별적으로 살해, 암매장한 사건이다. 1937년 조사가 시작되고, 4년 후인 1940년 법원이 12명 모두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며 사건은 일단락된다.그러나 법적 정리와는 별개로 이 사건이 조선 사회에 남긴 상처는 컸다. 미신에 빠진 수 백 명이 살육당한 야만적 사건은 조선사회의 근대성을 단숨에 허물어뜨릴 만한 것이었다. 미신이 쉽게 파고들 만큼 사회, 문화적 기반이 취약한 조선 사회에 대한 한탄과 자조가 도처에서 흘러나왔다. 심지어는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조선인에게 심어준 자부심을 백백교 사건이 한순간에 없애버렸다는 절망적인 말까지 나왔다.여기에 교주 전용해의 머리를 '범죄형 두뇌 표본'으로서 포르말린에 보관한다는 일제의 엽기적 결정까지 더해지면서 조선사회의 야만성은 극화됐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조선사회를 덮쳤다.'바스커빌 가의 개'가 조선어로 번역, 출판된 것은 이 시기였다. 몇 글자 간단한 주문만으로 천국이 문이 열리는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가르쳐줄 만한 무언가가 필요한 때였다. '바스커빌 가의 개'의 조선어 번역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서양 소설 한 권이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작은 빛이라도 모아서 희망을 만들고자 했던 조선 사회의 열망이 이 책 한권에는 들어있었던 것이다.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10-19 06:30:00

최지혜 작 '낙조'

[내가 읽은 책]나를 키우는 말/이해인/시인생각/2013년

갈림길에서 멈추었다. 산허리를 휘감는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린다. 어디로 가야하나? 두리번두리번 표지판을 찾았다. 소나무 앞에서 나를 보고 있던 표지판과의 대화로 답을 얻었다. 파삭파삭 마른 잎 밟히는 소리에 생각이 열린다. 내 인생길의 길잡이는 무엇이었나? 문득, 돌이켜 보았다.스무 살, 돌도 씹어 먹을 것 같은 그 나이에 나는 이빨 다 빠진 사람처럼 우물우물 희망을 못 찾고 체념이라는 옷을 입고 살았다. 가을 깊은 어느 날,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간 서점에서 '민들레의 영토'를 만났다. 술술 읽히는 시어, 진실로 위로하는 시들에 사로잡혔다. 표현 기교가 뛰어난 어떤 글보다 시인의 단순하고 순수한 시들에 감동 받았다. 그리고 나는 희망의 옷을 입었다. 예방접종하듯 다시, 시인의 책을 읽었다이해인은 수녀이며 시인이다. 1964년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해 1976년에 종신서원 하였다. 1970년 '소년'지에 동시 '하늘은', '아침' 등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와 '내 혼에 불을 놓아''시간의 얼굴'등 시집들 외에 산문집 '꽃삽' 등과 옮긴 책으로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마더 테레사의 아름다운 선물' 등이 있다. 시인은 30여 년 동안 따뜻한 서정의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나를 키우는 말' 은 시인이 그동안 발표한 시들 중 60편을 골라 실었다. 시집의 첫 장에 "나에게 있어 시는 삶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을 기도로 피워낸 꽃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말하고 있다.내가 돌보지 못해/묘비처럼 잊혀진/너의 얼굴. /미안하다 악수 나눌 때/나는 떳떳하고/햇살은 눈부시다//슬픔에 수척해진/숱한 기억들을 지워 보내며/내일을 향해 그네 뛰는/ 오늘의 행복//문을 열어라//나는 너를 위해/한 점 바람에도/흔들리는 풀잎//새 옷을 차려입고/떠날 채비를 하는/나의 오늘이여//착한 누이의 사랑으로 너를 보듬으면/올올이 쏟아지는 빛의 향기//어김없는 약속의/내일로 가라//-p28 '오늘의 얼굴' 전문운명론자처럼 주어진 대로 흘러갔던 어제를 지우니, 내일을 향해 뛰는 오늘은, 행복이었다.우산도 받지 않은/쓸쓸한 사랑이/문밖에 울고 있다//누구의 설움이 비 되어 오나/피해도 젖어오는/무수한 빗방울//땅 위에 떨어지는 /구름의 선물로 죄를 씻고 싶은/비 오는 날은 젖은 사랑//수많은 나의 너와/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한없이 쏘다니리//우산을 펴주고 싶어/누구에게나/우산이 되리/모두를 위해//-p31 '우산이 되어'전문이토록 진실하고 따뜻한 위로를 받은 적 있었던가? 나도 누군가에게 우산을 펴 주는 사람이 되리라. 시인의 시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가을이 깊다. 책들이 좋아하는 계절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 책들이 신났다. 그중에 눈에 띄는 책을 읽어보자! 당신이 찾는 길잡이일지 모르니.최지혜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0-19 06:30:00

이상일 시인, 수필가

[광장]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다. 이미 유치원에서 배운, 정직하라, 성실하라, 사랑하라 이 세 마디다. 뜻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개인적으로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다시 뽑으라면 誠(정성 성)이라고 말한다. 誠을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言+成으로 즉 말대로 행동한다는 언행일치를 뜻한다. 이것은 또한 우주철학과 관련된 덕목이다.동양철학을 명쾌하게 정리한 中庸(중용) 20장에서도 誠者(성자)는 天之道也(천지도야)요 誠之者(성지자)는 人之道也(인지도야)라 하고(정성이란 하늘의 도요,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다), 誠者(성자)는 物之終始(물지종시)니 不誠(부성)이면 無物(무물)이라(誠이라는 것은 만물의 마침과 시작이니, 진실이 없으면 어떠한 사물도 없다) 했다. 이 세상의 처음과 끝도 결국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성도 멸함도 없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부지런해야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곧 至誠感天(지성감천)과 至誠無息(지성무식)과 연결되어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감동시키고, 誠(성)은 결코 쉼이 없다고 했다.생활에서 가장 기초적인 민법에서도 권리의 행사나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는 기본 원리로 성실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를 자연의 이치에 적용시켜 보면, 천지는 이때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지런히 돌아가기 때문에 밤낮과 계절이 생기어 모든 만물들은 이 환경에 맞추어 살 수 있다. 만약에 천지가 한 번이라도 멈추거나 계절의 순서가 바뀌면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어 모든 생물들이 멸할 것이다. 이것은 오직 변하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쉼 없이 돌아가는 우주의 자연법칙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사랑도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아니, 백 번이라도 찍으면 안 넘어가는 사랑이 없듯이, 지극한 성의에는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사랑이 이루어진다. '근면과 성실로 재산을 모은 것은 신의 섭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종교개혁자 캘빈이 말하여 자본주의 탄생에 기여했고, '성실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이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예는 이제까지 하나도 없고, 성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남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예도 이제까지 하나도 없다'며 맹자도 성실에 대해 언급했다. 나의 평소 철학은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길만이 인생의 의미를 알고 허무를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삶에서 경험하듯 生于憂患 死于安樂(생우우환 사우안락:어려운 상황은 사람을 분발하게 하지만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과 같이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으면 공부도 하고 무엇이든 잘할 것 같지만, 막상 시간과 여유가 많으면 오히려 더 나태해져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는 이치다. 진정한 행복은 꾸준한 일이나 행동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고 편리한 것에만 올인하는 가치와 논리 속에 때론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몸과 생각의 기본 바탕은 늘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삶이란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이 세상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의미를 남길 수 있기에, 3대 액체(피, 땀, 눈물)를 흘리지 않는 사람은 결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없다. 그러기에 그 어떤 가치보다 숭고한 誠을 바탕으로 노력하다 보면 사랑도 사람도 재물도 다 이룰 수 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사람도 미물도 감동시키며 존재 가치를 부여하기에 끊임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2019-10-18 19:15:21

장세용 구미시장

[기고] 'TK패싱'이란 용어를 경계한다

'TK 패싱'이라는 말이 아무런 근거 없이 나돌고 있다. TK에 속한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용어가 거론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자극하려는 의도의 표현이나 다름없다.필자는 TK 패싱이라는 용어, 그 이면에 깔린 지역 홀대론 혹은 소외론을 경계한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관철하겠다는 뜻으로 읽혀 지역민을 허탈하게 만든다. 또한, 그에 대한 진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구미시는 올해 상생형 구미일자리에 이어 2020년 스마트산업단지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며 든든한 성장기반을 다졌다. 올 상반기에만 국비와 도비 공모사업에 1천억원을 돌파했고, 생활 SOC 복합화 공모에 국비 149억원을 확보하는 쾌거도 이뤘다. 주요 사업 추진을 위한 든든한 재정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야 국회의원과 모든 공직자가 한마음으로 전방위 노력을 펼쳤기 때문이다. 인구 43만 명의 지방 중소도시 구미가 굵직한 국책사업을 유치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첨단 신산업을 모색하는 대전, 인천 등 쟁쟁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경쟁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다.산업통상자원부가 공모한 스마트산업단지만 놓고 보더라도 막판까지 구미와 경쟁을 벌인 도시는 인구 200만 명을 훌쩍 넘는 광역시였다. 경상북도의 전폭적인 지원과 구미공단의 긴밀한 협조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TK에 속한 다른 지자체는 어떨까. 대구시는 10년 연속 3조원 이상의 국비를 확보했고, 권영진 대구시장은 여야 지역 국회의원들이 한뜻으로 노력한 결과라며 감사를 표했다. 경상북도 역시 다르지 않다. 특히 이철우 도지사는 더 이상 TK 패싱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고 선언했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자는 이 지사의 발언에 필자 역시 전적으로 공감한다.이제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패권정치는 끝났다. 급변하는 시대는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새로운 산업 지형을 파악하고 내부 역량을 키워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민생의 절박한 과제다.구미시는 노사민정의 산고 끝에 상생형 구미일자리를 성사시켰다. 스마트 산단에 최종 선정된 구미국가산업단지는 재생을 통해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구미와 경북의 발전, 나아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 여야의 구분,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갈등과 반목을 부채질하며 편을 가르는 TK 패싱이란 말 놀음은 고질적인 병폐다. 무능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직무유기를 호도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자 기득권을 지키려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챙겨야 할 현안이 얼마나 많은가. 적어도 우리 구미는 그렇다. 상생형 구미일자리는 이제 첫발을 뗐고, 위축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 외에도 2020년 제101회 전국체전의 성공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도 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없다.국내외 정세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지역 홀대론을 부추기는 이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외면하고 무능력을 자인한 게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보기 바란다.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대구경북의 시도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무능하고 오만한 권력은 결국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허투루 듣지 말기 바란다. 바라건대, 각자의 역할과 책무를 다할 때다.

2019-10-17 11:06:51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진솔하지 않은 책들

필수 스펙 쌓고 자금 걷고 '일석이조'정치인들 너도나도 출판기념회 극성대필자가 썼는데 자신이 한 듯 '위선'그 책이 부메랑 돼서 날아올 것인데… 대개의 작가는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에 시큰둥하다. 행사를 준비해본 분은 알 테다. 바쁜 사람 모시는 게 얼마나 힘든지. 또 작가는 부조(책값)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차비를 드려도 시원치 않다. 뷔페 정도는 불러야 한다. 가난한 이로 소문난 작가는 출판기념회를 누가 열어준다고 해도 기피할 수밖에 없다.무슨 선거가 되었든, 선거를 앞두고 4~6개월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줄기차게 열리는 행사가 있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으면 정치인이 아닌 것처럼 출판기념회가 극성을 부린다. 정치인은 왜 그렇게 출판기념회에 열성적일까?여러분이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첫 번째 이유. 정치자금을 걷기 위해서.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 제한을 받지 않는다. 금액 한도, 모금 액수, 횟수에 제한이 없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안 갈 분도 있겠지만, 돈 내러 가야 할 분도 많은가 보다.돈 때문이 아닌 정치인도 있을 테다. 아무리 모금 액수에 제한이 없다지만, 출판기념회로 거둬들일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돈밖에 없는 정치인에게는 돈은 별로 상관없는 문제일 것이다. 책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다.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책이 어마어마하게 나오지만 책 읽는 사람은 드물다. 독자는 거의 없지만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 책을 내야 인격을 갖춘, 지식을 겸비한, 소양이 높은, 한마디로 훌륭한 정치인 같다. 즉 책은 정치인의 필수 스펙 혹은 아이템 혹은 보증수표로 자리 잡았다. 책도 안 낸 자는 정치인 자격 자체가 없어 보인다. 정치인이 책 내는 것을 꼴 같지 않게 보는 유권자도, 정작 책이 없으면 책도 못 내는 무식쟁이 후보라고 깔볼 테다. 그래서 정치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혹은 꿩 먹고 알 먹기로 책을 내게 된다. 안 낼 수가 없으니 내고, 필수 스펙 쌓고 정치자금도 얻는 것이다.그런데 책은 정치인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대개의 정치인은 책을 낼 때 당당히 밝힌다. 내가 썼다고. 그 책이 자서전이든 회고록이든 대담록이든 정치활동 자랑담이든 대중 교양서든 수필집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쓴 척 한다. 진실로 자기가 다 쓴 분도 있다. 심지어 지난한 수정 작업도 스스로 하신 분도 있다. 그런 분은 '저자' 맞다.이런 경우는 어떤가. 정치인은 인터뷰만 했다.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어떤 작가가 원고를 써주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셨다시피 말 되게 말하는 정치인이 드물다. 그 말 되지 않는 말을 읽을 수 있는 글로 변환하는 것은 청계천 복원사업 못지않다. 정치인이 자료(메모, 회의록, 신문기사 등등)만 주고 대필자가 다 썼다. 정치인이 A4 용지 10장의 원고를 주었는데 대필자는 100장 분량으로 늘려 썼다. 이렇게 정치인이 말이나 자료, 일부 원고를 제공했지만 대필자가 거의 다 쓴 책이 숱하다.하나같이 '정치인 아무개 지음'으로 출간된다. 제1저자는 분명 대필자다. 정당한 책이라면 '아무개 작가가 쓴 정치인 아무개 이야기'라는 식으로 나와야 한다. 정치인은 말할 테다. 내 이야기인데 뭐가 문제야! 그게 더 문제일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이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내세울 만한 것은 엄청 자랑하고, 꺼림칙한 것은 전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위 기억'과 '자기모순'과 '위증'이 난무하는 것이다. 대필자의 교언영색을 '진짜'로 착각해버리면 더욱 답이 없다.저자 표기 문제와 책에 담긴 의심스러운 문장들만으로도, 검찰과 언론이 누구네 파듯이 하면 도무지 안 걸릴 재간이 없을 테다. 정치인에게는 책이 계륵이 돼버린 셈이다. 정치인의 절대 스펙인 책을 안 낼 수는 없다. 책을 내니 뿌듯하고 돈도 생기고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그 책이 언제 부메랑이 돼서 날아올지 모른다. 작가로서 조언을 드리자면, 가장 후환이 두렵지 않은 방법은 진솔하게 자료를 제공하고, 진솔하게 저자 표시를 하라는 것이다.선거일 90일 이전에 무수히 쏟아지는 정치인의 책 중에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책은 진솔하려고 노력한 책뿐이다.

2019-10-17 10:20:09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감정 스포일러, 라이트모티브

어떤 음악은 매우 상징적이라 그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극 전체나 캐릭터를 떠오르게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특정한 멜로디를 들으면 해리포터나 인터스텔라 혹은 죠스 등의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죠스 OST는 영화는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음악이다. 드라마나 광고 등 무수한 매체에서 사용 되어져 대중들의 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빠밤- 빠밤- 빠바빠바빠바빠바빠-'로 기억되는 이 음악은 원래의 영화를 넘어 많은 작품에서 긴장되는 상황이나 무섭고 두려운 캐릭터의 등장에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역으로 이 음악을 사용하여 긴장감을 유발시킨 뒤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주며 반전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내용과 분위기, 감정을 미리 알려주는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영화나 드라마 등 음악이 들어간 극을 보다보면 들려오는 음악만으로 다음 장면이나 캐릭터의 등장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또한 자막 없이 외국어로 된 극을 보거나 전체가 아닌 특정 장면만 본 경우에도 음악을 통해 장면의 내용이나 감정, 분위기 등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특정 작곡 기법에 의한 효과이며 이러한 음악 기법을 '라이트모티브(LeitMotiv)라고 한다.라이트모티브는 독일어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Leiten은 이끌다, motiv는 동기를 뜻한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유도동기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작곡기법은 낭만파 작곡가인 바그너를 통해 그 정의가 확립됐다.인물이나 특정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날 때 그 인물 혹은 장면을 상징하는 선율이나 화성을 재현함으로써 청중이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환기하는 기법으로 음악적 기능과 극적 기능을 동시에 지닌다. 이 기법은 현대의 극음악에서는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를 잡았고, 오페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음악이 들어간 거의 모든 극장르에서 활용되고 있다. 필자 역시 극음악을 작곡할 때 이 기법을 사용한다. 등장인물이나 시대 상황에 어울리는 특별한 테마를 사용하기도 하고, 인물의 관계나 특정 장소에 대한 감정 등을 반복되는 선율이나 화성 혹은 특정한 악기로 표현하고자 했다. 창작 뮤지컬의 경우 관객은 공연 내내 새로운 음악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긴 시간동안 관극을 하는 것에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라이트모티브를 활용해 관객들이 극의 내용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조금 더 쉽고 효과적으로 장면의 감정이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가 있다. 감정을 미리 알려주는 스포일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다가오는 주말에 영화나 뮤지컬 등의 문화를 즐기며 숨어 있는 라이트모티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문화예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면 더 많은 재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0-17 10:14:06

작가 권미강

[권미강의 생각의 숲] 도시재생의 길을 묻다

'낡거나 버리게 된 물건을 가공해 다시 쓸 수 있게 만든다'는 뜻의 '재생'(再生)이 도시와 나란히 붙어 회자된 지도 꽤 됐다.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는 '도시'와 '재생'은 이제 한 단어처럼 익숙해졌다. 도시도 사람과 같아서 세월이 갈수록 늙어가기 때문이다. 처음엔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생기고 자동차와 다양한 가게들이 생겼던 도시가 어느새 세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민들을 중심에 두고 문화예술의 옷을 입혀야 도시를 살릴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며 예술가를 입주시키고 마을 벽화를 그리고 다양한 행사와 마을 축제를 열며 낡은 도시를 심폐소생하려고 시도했다. 어느 정도 주목을 받고 도시가 활기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발목이 잡혔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그 아픈 예가 김광석거리다. 몇몇 예술가들의 열정으로 시작된 방천시장 김광석거리가 이제는 자본의 냄새만 풍기는 골목으로 변했다. 김광석의 가치는 낡은 벽화와 카페, 고깃집 연기 아래에서 겨우 허우적댄다. 김광석의 노래와 추억은 낭만이라는 포장에 싸여 이곳을 찾는 연인원 방문객 수를 부풀리는 데 이용될 뿐이다.독일의 베를린은 분단에서 통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 받은 도시다. 통일 후 충분히 빌딩 숲의 화려한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은 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건물은 고도를 제한하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시민들이 활용하고 싶은 공간이 곳곳에 있다. 전쟁 당시 나치에 의해 끌려간 사람들의 이름과 날짜를 적어 놓은 동판이 있고,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반성하고 추모한다. 어떤 형용사도 없이 담백하게 쓰인 기록 앞에서 사람들은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공동체적 삶을 체득한다. 베를린에서 도시재생의 중심은 '인간 존엄'이다. 도시재생이 필연이 된 지금, 깊이 고민할 부분이다.

2019-10-16 18:0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독자 전상서(前上書)

독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러나 요즘은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좀 무색합니다. 일본의 무역 보복에 이어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까지 지난여름부터 대한민국의 정국은 그야말로 총칼 없는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혼돈스럽고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여길 가도, 저길 가도 다들 현 정국을 둘러싸고 정치 논쟁이 벌어집니다. 술집에서도 커피숍에서도 동네 목욕탕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이어집니다. 각자의 프레임을 지지하는 유튜브 방송으로 열심히 학습하신 양쪽의 논객들은 사실과 논리로 무장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치열하게 논쟁을 벌입니다. 논쟁이 절정에 다다르면 목소리는 커지고, 얼굴은 달아오르고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서로에 대한 불신만 남습니다. 혹자는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좌우익 분열만큼이나 현재의 상황이 심각한 정도라고까지 말하더군요.그도 그럴 것이 동일한 사안을 두고 같은 날 서울 광화문에서, 서초동에서 서로의 주장과 프레임을 광장과 거리에서 표현하는 특이한 현상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광장의 정치가 의회 정치를 대체하고, 광장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특이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독재와 부패와 싸웠던 여당과 야당의 단일한 대결구도가 아닌 국민들 간의 대결 구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1987년은 우리 사회가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시대정신이 변화한 중요한 변곡점의 시기였습니다. 과거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했던 시대를 지나 산업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룬 만큼 새로운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의 정착이었습니다. 직선제를 통해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의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대통령의 자살, 대통령 탄핵과 투옥까지 우리의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업은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모든 이슈는 대통령에 의해 빨려 들어가다 보니, 정권이 바뀌면 전직 대통령은 모두 비참한 말로를 걷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은 아직 요원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을 이끈 지도자였던 그 유명한 정치인 처칠의 이름을 한두 번은 들어보셨겠지요? 아시다시피 2차 세계대전의 말기까지도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독일군에 무력하게 패배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처칠 정부는 하나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그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겠다는 베버리지 보고서는 전쟁이 한참 진행되던 와중인 1942년에 발표된 정부의 보고서입니다.전쟁 와중에, 그것도 유가지로 판매했던 정부의 보고서가 당시에 60만 부 가까이 팔렸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60만 부가 유료로 판매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한국전 와중에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보건복지백서를 국민들이 유료로 구매해서 읽었다는 것이지요. 베버리지 보고서는 각종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사회복지학에서는 현대 복지국가의 출발점으로 평가합니다. 이 보고서를 가지고 군대 내무반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차치하고 전쟁 이후 영국의 국가재건에 대한 청사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저는 평가하고 싶습니다.정치는 이런 것이 아닐까요?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주는 것, 대의민주주의를 통해서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 그런 것이 정치의 본질이 아닐까요? 안타깝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그런 정치는 실종된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에는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요.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각자 생업에서의 안정을 기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2019-10-16 18:00:00

김경덕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진흥단 단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테크 셀레스터

20년 전만 해도 음악 마니아들의 관심은 음반 수집에 집중되어 있었다. LP, LD, CD 등을 구입해 고가의 오디오로 감상하는 것이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듣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월 CD 한 장 가격의 사용료만 결제하면 스트리밍 앱을 통해 수천만 곡에 달하는 방대한 음원을 무손실로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특히, '타이달'(tidal)은 CD 음원 이상의 음질을 제공하며 국내외 음악 마니아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북유럽 합작회사로 출발한 스타트업 '타이달'을 2015년 인수한 이는 미국 최고 힙합 가수인 '제이지'다.팝 스타 저스틴 비버는 세계 최대 음악 앱 '스포티파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천재 래퍼 닥터 드레는 헤드폰 업체 비츠를 천문학적 금액으로 애플에 매각한 것으로 유명하다.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유명인들을 '테크 셀레스터'라고 지칭한다. 테크 셀레스터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제시카 알바일 것이다. 친환경 생활용품을 제조하는 '어니스트 컴퍼니'를 창업한 그녀는 뛰어난 경영 활동으로 17억달러(한화 약 2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대기업인 유니레버와 매각 협상까지 벌였다.그 밖에도 리어나도 디케프리오, 비욘세, 레이디 가가 등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테크 셀레스터로 알려져 있으며,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유명 연예인들이 출자한 벤처캐피털 '스타VC'가 활발한 투자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도 배우 배용준이 유명 액셀러레이터 주주로, 전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박찬호, 배우 이제훈과 최시원, 축구 선수 이동국 등이 활발한 스타트업 투자를 진행하며 테크 셀레스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한 유명인들이 부동산 투자에서 벗어나 유망 스타트업에 모험심 가득한 초기 투자를 진행하는 트렌드는 간접적인 홍보 효과 말고도 스타트업 생태계의 건강한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진흥단 단장=

2019-10-16 17:57:01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문화부

[종교칼럼] '산은 산이고 …'와 '색즉시공 …'

작고하신 지 제법 됐으나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큰스님으로 남아 있는 성철 스님께서 오랜 기간 수행하신 후 도달하신 큰 깨달음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정리하여 말씀하셨다. 당시 '그게 무슨 큰 깨달음이야?'라는 의문과 빈정거림의 경박한 말을 했던 사람도 다소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이 말씀은 큰 공감과 더불어 필요할 때마다 회자되고 있다.지금도 창밖에 보이는 산은 산이고, 학교 옆 조산천을 흐르는 물은 물이다. 그런데 마음이 혼란하여 산을 산으로 못 보는 사람이 있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면목은 아니기에 성철 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말의 핵심은 '보이는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형성된 모습이다. 따라서 늘 생성 소멸되는 임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니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누구나 맑고 순수한 어린 시절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또렷하고 정확하게 보다가, 나이 들면서 육체적 정신적 욕망과 사회적 의무와 성취 욕구 때문에 점점 왜곡하여 보면서 혼란한 시기로 접어드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다가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의 원인을 찾는 노력을 하여 그 고통으로부터 차츰 벗어나면서 산과 물을 포함한 주변 모든 사물과 사람 그리고 사건을 다시 깊고 또렷하게 보게 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또한 산과 물의 표면만 보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단계를 거치면서 사물들과 사건들이 대단히 복잡한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성숙한 생각과 몸동작으로 매사를 신중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성공시켜 자신과 타인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도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이런 문제는 결국 내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와 일치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각 종교의 경전에는 이런 인식의 문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원조로 삼아 오늘날까지 이어온 서양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서양철학의 두 큰 산맥인 관념론과 경험론을 종합한 것으로서,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외부 세계에 관한 감각 정보들이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 종합되어 인식되는 과정과 한계를 알려준다.서양에서 발달시킨 자연과학이 우리의 인지 세계에 기여한 공로도 대단히 크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실제로는 둥글고,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며 해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인식의 대단한 전환이었다.뉴튼의 만유인력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오감에 와 닿는 세계 안에 든, 오감을 초월한 원리에 대한 설명으로서 우리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누릴 수 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서는 인류가 아직 제대로 소화하지도 활용하지도 못 하고 있다.오늘날 발달된 천체물리학과 관측 기구 덕분에 가시광선으로는 존재 사물의 4%밖에 볼 수 없고, 적외선이나 자외선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거나 이들로도 관측할 수 없는 암흑물질이 22%나 되며, 나머지 74%는 에너지 상태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오감으로 통교하면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참으로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란 말 그대로인 것 같다.하지만 우리의 삶은 보이는 사물 이면의 복잡성을 감안하면서도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인지하는 것을 존중해야 맑고 청아하게 진행될 것이다. 이래저래 정신을 차리고 겸손하게 살아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살이다.

2019-10-16 13:30:00

이삼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고]회룡포에서 농촌의 새 희망을 꿈꾼다

내성천 회룡포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힌다. 휘감는 물길 따라 고운 모래톱 모습이 시시각각 바뀐다. 아침 녘 은빛이던 게 해 질 녘에는 금빛이다. 이곳 야트막한 절벽 아래 확 트인 들판, 정감 어린 시골집, 병풍처럼 두른 구릉지 산들도 조화롭다. 최근 유역 개발로 강 본래 모습이 점차 훼손되면서 관광객이 줄까 우려하는 소리가 들린다. 모래톱을 잘 보전하고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들판을 가꾸는 일을 모색해 회룡포의 새 희망을 꿈꾼다.회룡포에서 첫 번째 자랑은 물길과 모래톱이다. 이는 지역의 독특한 지질구조와 공급 토사 특성의 산물이다. 여기에 역사적 배경도 있다. 퇴계 선생이 주로 밭농사에만 의존하던 영남 내륙 백성의 가난에 가슴 아파하면서 당시 밭보다 4배의 소출을 거둘 논을 조성할 곳을 찾아 나섰다. 이로써 영주, 예천을 중심으로 다랑논이 태어났다. 영주, 예천 지역에는 중생대의 지하 풍화된 화강풍화암이 넓게 분포한다. 이 암질은 연약해 쉽게 부서져, 속칭 마사토라고 하는 균질의 모래질이어서 복류수가 되는 지하수를 많이 품는다. 다랑논으로서 최적지인 셈이다. 필자는 이런 지질구조가 내성천 모래톱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조사를 통해 밝혀냈다.유역의 토사가 한천이나 서천과 같은 지류를 통해서도 내성천으로 다량 흘러든다. 과거에는 강바닥이 높아지는 천정천이 되어 범람하기 일쑤였다. 근래 우거진 산림과 수자원 시설 축조로 토사가 줄거나 강가에서 그대로 흘러들던 토사도 제방으로 차단되었다. 강바닥이 오히려 조금씩 내려가는 양상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토사가 지류를 통해서 여전히 충분히 공급되고, 공급 토사 입자 크기가 비슷한 모래층이 강바닥에 폭넓게 일정한 깊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래가 흐름에 여전히 반응하고 있어 모래톱 움직임이 아직은 예전과 확연히 다르지 않다.유역의 오염원이 아직 줄지 않고 최근 상류 쪽에 대형 댐 축조가 마무리됨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 초목으로 덮이는 등 모래톱 모습과 강 형태가 변할 개연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모래톱을 유지할 과학적인 방법이 있다. 이 지역의 화강풍화토가 지류를 통해서 꾸준히 자연 공급이 허용되는 유역 관리, 댐 내 퇴적 모래의 재공급, 강폭 자연화 등이다. 이는 힘겨울 수 있으나 의지와 지속적인 관심이 관건이다.두 번째 자랑은 수변 경관이다. 예전과는 다르다. 들판 가운데 농로가 하천 지형학적으로 가치 높은 자연제방 흔적이다. 이 안쪽은 과거 강의 일부로서 자연계 허파인 습지 형태였다. 강물 세기와 모래 양을 적절히 조절하던 곳이었다. 강물을 정화하고 새와 물고기의 서식처가 되기도 했다. 이후 강폭을 줄여 인공제방을 쌓아 논으로 조성했다. 당시에는 이보다 우선할 국토 가치가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요즘 쌀 소비 감소와 농민들의 고령화로 앞으로 벼농사만으로는 비효율적이다. 이곳을 세계적 명소인 네덜란드 크헤이의 튤립 농장, 홋카이도 후라노의 라벤더 농장과 같이 자본집약형 경관 화훼 특종작물 재배에 나서면 회룡포는 농촌 경제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이는 관광객을 유인할 수변경관을 향상시키는 일 이상으로 농촌에 새 희망을 심어 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자연교란에 의존하는 하천습지로 복원한다면 당연히 대홍수 시 큰물을 가둘 수 있어 기후변화에 따른 하천 재해에도 대비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창포, 연꽃, 수선화 등 들꽃은 강물을 자연의 힘으로 정화하는 능력이 탁월해 하천의 녹조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회룡포에서 수채화 같은 풍경을 이끌어 내는 것은 지속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인 동시에 안전하게 국토 가치를 재창출하는 일이다. 창의적 하천 관리와 수변 관리로 새로운 국토 가치를 재창출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농촌 인구 감소와 노령화에 대응하고 농촌형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경제 살리기의 귀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국 농촌에서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강변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때이다.

2019-10-16 11:29:29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사람의 향기(상)

그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은 꽤나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거니와 아직은 나이가 환갑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그 여자는 ○○ 씨의 아내였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좀 어수룩한 ○○ 씨는 결혼 초부터 아내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채 고양이 앞의 쥐처럼 지냈다고 한다. 주로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시골소문이라는 게 워낙 과장과 왜곡이 심해 그다지 믿을 바는 못 되지만, 남편을 올라타고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는 보통이고 그 여자가 술이 취해 마을의 가장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아저씨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그러던 그녀가 남편과 함께 1톤 트럭으로 친정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급커브 길에서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낭떠러지 아래에 굴렀는데 남편은 죽고 여자는 중상을 입고 겨우 살아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흉을 보면서도 여자 혼자서 아이 둘을 어떻게 키우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혀를 차며 걱정을 하였다. 아무리 여자가 마을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였던 것이다.혼자서 어렵사리 살아가더니 어느 날 부터인가 낯선 남자와 손을 맞춰 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놉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집에 살면서 계속 농사일을 같이 하는 걸 보고 그런 사이인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혼기를 놓친 총각이었으며 어려서부터 남의 집 꼴머슴부터 시작해 비록 공부는 못했지만 농사일에는 거의 달인 경지에 올라 있었다고 했다.여자 입장에서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자는 남자 앞에서는 나긋나긋 순한 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 난폭(?)한 여자를 휘어잡아 꼼짝도 못하게 하는 그를 보고 "역시 꿩 잡는 게 매!" 라며 천적은 따로 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어쨌든 의기투합한 그들은 남의 땅을 얻어 부치면서 많은 토지를 경작하게 되었다. 고소득 작물인 마늘과 고추의 주산지여서 힘은 들지만 부지런히 농사만 지으면 소득이 높았다. 돈이 모여졌고 아이들도 남부럽잖게 키울 수 있었다.그런 그들에게도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무슨 갈등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여자가 남자를 내치려고 했던 것이다. 자기 통장도 없이 오직 일만 열심히 했던 남자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 아들들이 나서서 "아버지에게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 라며 제 어머니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미 사내아이로 장성한 아들들이 자기들을 키워준 의붓아버지에게서 강한 부정(父情)을 느꼈음에 틀림이 없다.(하편에 계속)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0-16 11:21:40

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교수(KAIST 공학박사)

[경제칼럼] 숫자로 보는 전기차 시대의 도래와 지역 경제의 미래

세계 전기차 배터리 수요 年 35% 성장한중일 3국 업체 출하량의 99% 차지대기업 포항·구미 양극재 공장 투자대구경북 전기차 산업 '허브'로 부상 2018년 전 세계에서 판매된 자동차 9천244만 대 중 204만 대가 전기차였다. 점유율은 2.2%에 불과하지만 미래에셋대우증권 예측에 따르면 2025년에는 12.2%인 1천602만 대로 약 8배 증가한다.지난해 중국에서 팔린 전기차는 전 세계 판매 전기차의 56%를 차지했으며 유럽 23%, 미국·캐나다가 17%로 뒤를 이었다. 중국에서 압도적으로 전기차가 많이 판매되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대기질 개선 및 친환경차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해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 제도 완전 폐지가 전기차 판매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2019년 '신에너지차량'(NEV) 정책이 도입되면서 전기차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NEV 정책은 연간 승용차를 3만 대 이상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자동차 제조사가 판매 대수 중 전기차, 수소차 등 NEV를 10% 이상 포함시켜야 하는 정책이다. 내년에는 그 비율이 12%로 증가하게 된다.올 상반기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4%로 한국 2.1%, 미국 0.8%, 일본 0.6%에 비해 훨씬 높았다. 판매 차량 중 전기차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2019년 상반기 기준 37%를 차지했다. 노르웨이는 네덜란드와 함께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했으며, 프랑스와 영국은 203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시점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전기차의 가장 핵심 부품은 배터리이다. 아이오닉 전기차 가격 4천200만원 중 배터리는 30%인 1천300만원이다. 지엠 볼트 전기차 중량 1천600㎏ 중 배터리는 27%인 435㎏을 차지한다.2019년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을 보면 10위 이내에 중국 기업 5개, 한국 기업 3개, 일본 기업 2개가 포진하고 있다. 중국 CATL이 26.4%로 1위,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일본 파나소닉이 23.7%로 2위, 중국 BYD가 14.5%로 3위이다. LG화학은 12.8%로 4위, 삼성SDI는 4.4%로 5위, SK이노베이션은 2.4%로 8위다.자국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원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 덕분에 중국 배터리 업체는 기술 수준과 출하량 모두 엄청난 성장을 해서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국가 정책이 자국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좋은 사례이다.일본의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93GWh였으나 수요는 매년 35%씩 성장해 2025년에는 941GWh에 이를 전망이다. 2021년이 되면 세계 전기차 배터리 공급은 343GWh까지 증가하지만 수요 예상량 356GWh보다 적어 배터리 공급 부족이 시작된다고 예측하고 있다. 배터리 공급 부족을 고려해서 LG화학은 한국·미국·중국·폴란드에서, 삼성SDI는 한국·중국·헝가리에서, SK이노베이션은 한국·미국·중국·헝가리에서 공장을 가동하거나 증설하고 있다.한·중·일 3국 업체들이 전 세계 출하량의 99%를 차지하는 현재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지각변동도 시작되고 있다. 폭스바겐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를 공개하고 앞으로 3세대 전기차 배터리는 자국 제품을 사용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가 신에너지산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으로 보고 공동 개발을 시작하고 배터리 탈아시아를 선언했다.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으로 구성된다. 포스코그룹은 2차전지 중심의 신성장산업 매출을 현재 1%에서 2030년 20%까지 키운다고 발표했다. 포스코는 구미에 양극재 공장이 있으며, LG화학이 투자하는 구미형 일자리도 양극재 공장이다. 본사가 청주인 에코프로비엠은 포항에 건설 중인 양극재 공장을 곧 가동하고 추가 공장도 건설할 예정이다. 포항은 올해 7월 25일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우리 지역이 전기차 시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2019-10-15 16:42:59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걱정 말아요 그대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벳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지요. 걱정 없이 살 수 없어서인지 걱정에 관한 명언들이 참 많더군요.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는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걱정 한다'고 했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영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남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들은 그렇게 그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데이모스는 '걱정의 신'입니다. 공포의 신, 불화의 신, 싸움의 신과 늘 함께 다녔지요. 이런 데이모스 포로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심각하고, 엄숙하고, 폭발직전이어서 '되는 일은 없고, 꼬인 일은 자꾸 꼬인다'고 하죠. 그런데 '신'을 얼마만큼 믿나요? 신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버나드 쇼의 말에 빗대자면, 결국 신은 우리가 만드는 거니까 우리가 부모인 거죠. 걱정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걱정의 신을 창조하고 있어요. 상징이나 비유 없이도 '신'이라는 단어를 시에 사용하는 것처럼. 신과 가까운 걱정이 '생활'에게 자꾸 묻습니다. 가령, 집을 나선 후 "가스 불을 껐나?"에서 시작하여 "불이 나면 어쩌지?"란 걱정을 낳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 가스를 확인하게 되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면 "약속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미리 연락해야 되겠지?"하는 식으로 순환되는 걱정의 굴레를 살아갑니다. 어떤 불확실이 불행의 결말로 끝날 것이라는 막연함은 해롭지만, 생각 자체가 1도 없는, 긍정의 긍정은 오히려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무력화시키기도 합니다. 행복한 삶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걱정의 대부분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요.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퍼센트는 절대 일어나지 않고, 나머지 걱정의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하지요. 22퍼센트는 사실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고민이고, 4퍼센트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랍니다. 시대의 '질병'이 되어가는 '걱정에 대하여'의 저자는 걱정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떨림'의 일종으로 정의합니다. 아직 오지 않거나 올 리 없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절망이 '걱정할 권리'를 포기한 채 정답만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하늘에서 정답이 뚝, 떨어져도 그 정답대로 살아가지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만약 정답대로 산다면, 살아진다면, 걱정이 사라질 수는 있겠지만 내가 '선택할 권리'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걱정이란 놈과 한 몸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걱정과의 '밀당'으로 거리두기가 필요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삽입곡 한 소절을 덧붙여 봅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0-15 10:55:42

가벼운 상처라 하더라도 광견병 접종이 안 돼있으면 심각한 책임이 주어질 수 있다. (사진출처:healthline)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가 퍼뜨린다고요?" 광견병에 대한 오해

동물병원 대기실이 소란스러워 나와 보니 두 가족이 다투고 계셨다. 몽이(1·말티즈)와 짱이(12)가 공원에서 산책 중에 마주쳤는데 어리고 쾌활한 몽이가 다가서자 짱이가 거슬렸는지 몽이를 물려고 달려들자 이를 막으려던 몽이 언니가 손등을 물려버렸다.몽이가 다친 데가 없어 다행스러워 하던 차에 물린 손등을 치료하러 병원에 다녀온 몽이네 가족들은 심각해졌다. 짱이가 최근 몇 년간 광견병 예방접종을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의사는 개에게 물린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고 항생제와 파상풍 주사를 처방한다. 하지만 광견병에 대한 치료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한다. 광견병 항혈청 치료가 오히려 환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광견병에 대한 걱정이 깊어진 몽이네 가족들은 짱이에 대한 광견병 진단검사를 요청했고, 짱이네 가족들은 국내 발병 사례들도 희박한데 왜 그렇게 유난스럽게 구느냐며 반발했다.세계보건복지기구(WHO)는 사람이 개에게 물렸을 때 개가 광견병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하여 개에 대한 광견병 임상진단 검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10일간 동물병원에 입원하여 수의사가 다양한 항목의 임상증상을 매일 평가한다. 10일이라는 기간을 지정한 이유는 개의 타액에서 광견병 바이러스가 배출되는 시기는 광견병의 말기 단계이며 10일 이내에 광조 증상이나 유연 증상 등의 현저한 임상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10일 동안 광견병 주 증상이 발현되지 않는다면 개는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10일 이내라 하더라도 광견병으로 의심되는 임상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물린 사람에게 사실을 전달하여 광견병 항혈청 치료가 지체되지 않도록 전달해야 한다.우여곡절 끝에 짱이는 10일 간의 광견병 임상진단 검사가 이루어졌고 이상이 없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몽이네 가족들은 무척이나 안도했지만, 짱이네 가족들은 불필요하게 고생하고 비용만 썼다며 여전히 불평했다.만약 짱이를 집에 가둬두는 동안 짱이가 사라지거나 갑작스러운 질병이 발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짱이에게 물린 피해자는 위험한 광견병 항혈청 치료를 고민하여야 했고 어느 경우든 책임을 짱이 보호자에게 물었을 것이다.WHO가 수의사에게 광견병 임상진단 검사를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수행하도록 명시하는 이유는 사람의 목숨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며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광견병은 너무나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기 때문에 봄 가을로 반려견에 대한 광견병접종 기간을 정하여 반려인들이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며 접종을 받을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그럼에도 서울시 반려동물의 광견병 항체양성율을 조사해보면 해마다 항체형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국가와 반려인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짱이의 사례처럼 광견병 접종이 안되어 있을 경우 작은 해프닝이라 하더라도 물린 사람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명심하자. 광견병 예방은 내 반려견을 위한 배려이자 이웃과 공익을 위한 펫티켓이다.한편, 2006년 이후 국내에서 사람이 개에 물려 광견병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매년 야생동물들의 광견병 확산을 줄이기 위해 광견병 예방약을 공중 살포하고 있다. 광견병을 옮기는 주 원인체는 개가 아니라 너구리, 박쥐 등의 야생동물이기 때문이다. 광견병의 명칭도 래비스(Rabies)로 바꿔 불러야 할 필요가 있다. 광견병은 모든 온혈동물 간에 전파될 수 있는 바이러스 질환으로 야생동물이 병을 옮기지만 광견병이라는 명칭 탓에 개가 바이러스의 원인인양 오해받고 있다. 그러므로 국제적인 관례를 고려해 이제는 광견병 대신 래비스(Rabies)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행정 기관의 현명한 판단과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부분이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0-15 10:10:56

김재광 경북도 복지건강국장

[기고] 100세 시대, 경로당 행복도우미로!

"너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게다."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황혼의 반란'에 실린 대사다. 명심보감에도 '소년은 노인을 보고 웃지만 노인도 처음부터 노인은 아니었네. 내일이면 그대도 노인이 될 테니까'라는 말이 있듯이 노년은 인생의 한 시기다.우리나라 노인 세대는 급속한 시대 변화를 겪어 왔다. 20세기 우리나라에서 전개된 해방,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숱한 어려움과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헌신과 희생으로 오늘날을 있게 했다.하지만 고령화에 동반한 노인 빈곤, 노인 의료비 부담 가중, 노인 자살률 및 고독사 증가 등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노인 한 사람이 지출하는 진료비가 매월 37만8천원을 돌파하고 인구 10만 명당 58.6명에 이르는 노인 자살률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숙제다.노인복지법 제2조는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여 온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북도는 이분들의 노후를 편히 잘 모시는 것이 후손의 책무라고 생각하고 노인 복지 시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경북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인구는 54만3천 명이다. 도내에는 경로당이 8천67개가 있다. 도내 노인 인구의 58%인 31만5천 명이 경로당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경로당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형태의 노인 여가시설로 마을 단위별로 1곳 이상이 있어 노인들이 자주 이용하고 있다. 마을마다 하나 또는 둘씩 있는 경로당은 오랫동안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로 마을 노인들이 편하게 여가를 보내는 공간이다.2019년 8월 말 기준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15.2%이고 경북의 노인인구 비율은 20.4%이다.넓은 지역을 가진 경북은 농산어촌과 도시가 다양하게 분포돼 있어 노인을 위한 복지 정책도 그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 실시해야 한다. 이에 경북도는 마을마다 있는 경로당을 주목하고 노인 복지 서비스를 되돌아보게 됐다.그동안 노인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경로당에 활기를 불어넣어 그들도 활기차고 밝게 생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하에 과감히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을 시작했다.민선 7기 경북도 핵심 시책의 하나인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은 경로당에 행복도우미를 배치해 치매 예방 등 건강관리와 유익한 여가 활동을 지원하여 경로당이 마을공동체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생활복지형 일자리 사업이다.시군의 노인복지기관·단체가 지역의 청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사회복지 전문 인력, 여가 프로그램 운영자, 교육 프로그램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 경험자를 채용해 경로당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써 노인이 건강하고 즐겁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게 된다.경북도는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지난 3~5월 문경시와 예천군에서 시범사업을 했다. 이를 통해 농촌과 도시 지역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한 모델을 제시하고 23개 전 시·군이 지역 실정에 맞는 모델을 선택해 하도록 했다.아프리카 속담에 '한 명의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한 채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경로당 행복도우미 사업으로 경로당이 더 즐겁고 많은 주민이 이용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어르신들이 활기찬 노후를 영위하고 나아가 재능 기부를 통해 선대의 지식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후대로 전수하는 건강한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2019-10-15 06:30:00

김구철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늘어나는 불신의 숫자들, 민주주의 파괴

언론이라면 사실 보도와 주장 보도를 엄밀히 구별한다. 사실과 수사도 구별한다. 구별 않는다면 사이비 언론이다. 최근 사이비 언론이 부쩍 늘었다.사실과 주장을 교묘히 뒤섞어 국민을 현혹하고, 사실과 수사를 뒤죽박죽해 혹세무민하는 무리가 늘었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언론계 후배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숫자를 제시하고 통계를 인용하라'고 말해 왔다.요즘 고민이 생겼다. 집회에 모인 사람 숫자 때문이다. 필자의 현장 경험으로 한국에서 백만 단위의 인파는 1987년 1노 3김의 대결 당시 서울 여의도 광장의 대규모 유세, 2002년 월드컵 4강 당시 서울 광화문 거리 응원 정도 아닌가 싶다.45인승 버스로 1만 대를 동원해야 45만 명이다. 버스 1만 대면 100㎞ 구간에 늘어서게 된다. 지하철 한 칸에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타면 300명쯤일 것이다. 8량 편성의 지하철이면 모두 2천400명, 지하철이 6분 간격으로 운행하니, 1시간이면 10편, 1시간 동안 승객 전원이 그 역에서 내린다고 가정해도 2만4천 명이다.10시간 내내 내려야 24만 명이다. 지하철이 통째 비워지지도 않고, 10시간 내내 모든 승객이 그 역에서 내리지도 않겠지만. 그러니 잘돼야 서초동 군중은 5만~6만, 광화문은 10여만 명쯤 될 것이다. 불신의 숫자는 군중 집회의 군중 수만이 아니다.현안에 대한 클릭 건수, 댓글 건수, 여론 조사 지지율 등도 못 믿을 숫자들이다. 예산 결산, 사회 통계, 경제 통계도 못 믿고, 투표 결과 집계도 못 믿는다. 통계 불신은 국정을 혼란케 할 것이다.선거 결과 불신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파괴할 것이다. 숫자를 수십 배씩 뻥튀기하고 멋대로 속이는 자들이, 뭔들 못 조작하고 뭔들 못 속이겠는가? 숫자만큼은 제발 속이지 말자.

2019-10-14 18:00:00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대구부민의 유령생활

'대구부의 인구통계에 나타난 대구부민의 직별을 보면 총인구 33만6천524명 중 유직자가 10만9천676명이고 무직이 총인구의 약 7할인 22만6천848명이라는 놀라운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 숫자로 미루어 보아 대구부민은 거의 전부가 유령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9월 25일 자)대구부에 사는 사람 10명 중 7명은 무직자였다.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는 것은 유령생활에 빗대졌다. 일자리 없이 굶주리며 거리를 헤매는 부민들이 넘쳐났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걸까. 해방 이후의 극심한 경제'사회적 혼란의 영향이 첫 번째 원인이었다. 식량난과 물가 폭등은 허약한 경제적 기반을 급속히 붕괴시켰다. 콜레라 같은 전염병의 후유증도 컸다.이렇듯 무직자 숫자가 많은 것을 두고 실제로는 부풀려진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겉으로는 무직자지만 부정 사업 등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부패가 만연한 사회 현실을 꼬집은 것이었다. 모리배들이 물자를 빼돌려 물가 폭등을 부추기며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긴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심지어 부민들에게 나눠줄 사탕마저 가로채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국의 발표조차 불신했다.대구는 조선의 도시 중에서는 비교적 안정된 도시였다. 해방 직후 한때는 전재 동포들의 인기 도시이기도 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며 서울이나 부산 같은 항구도시에 비해 전재 동포의 정착 숫자가 줄었다. 대구는 귀환 동포 등의 외부 유입이 적어 해방 직전에 비해 7만여 명의 인구가 불어나는 데 그쳤다. 그런 점에서 대구의 높은 실업문제는 타 도시와 비교됐다.경북도 전체로 보면 45만 명의 실업자 중에 10만 명은 토착 극빈자였다. 이 같은 극빈자를 빼더라도 무직자는 넘쳤다.토착민이 이럴진대 귀환 동포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토착민보다 실업 비율이 높은 건 당연했다. 애초 대구에는 칠성동과 원대동 등 8곳에 전재 동포 수용소가 있었다. 영주, 김천 등에도 수용소가 만들어졌다. 어디든 가릴 것 없이 수용소의 동포들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 허덕였다.실업문제가 이렇듯 심각해도 당장의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돌아가던 공장은 전력과 원료품 부족으로 상당수 문을 닫았다. 경북도는 실업자 구제용으로 광산 개발을 추진했다. 또 1948년 봄에는 경북후생회가 나서 공장에 600여 명을 취업시켰다. 그때도 건설 현장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유효했다. 대구종합운동장 건설공사에 2천 명의 노동자를 알선했다. 또 대구천 제방공사를 시작해 수천 명의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하지만 이 같은 대구부와 경북도의 노력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중앙정부가 200만이 넘는 전국 실업자의 구호 대책으로 190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데 목을 맨 이유였다. 대구부민은 유령생활을 벗어났다. 그래도 걱정은 남았다. 그 허깨비가 행여나 다시 돌아올까 봐 말이다.

2019-10-14 18:00:00

김문환 세명대 교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양피지…기술개발로 경제전쟁 극복

LG디스플레이가 지난 9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생산에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완전 국산화에 성공했음을 알렸다. 일본이 정치논리 아래 경제전쟁을 걸어온 지 세 달 만의 성과다.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지난 11일로 100일을 넘겼다. 기술 개발이 곧 살 길이라는 교훈은 터키의 서부 해안, 이오니아 지방 페르가몬 유적지에서도 나타난 동서고금의 진리다.페르가몬은 한국인 여행객도 많이 찾는 유적지 트로이와 에페소스 중간에 있다. 현지 이름은 베르가마(Bergama). 작은 시골 도시인 베르가마 신시가지에서 페르가몬 유적지로 올라간다. 길이 가파르다. 그리스인들의 도시는 산꼭대기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형성됐기에 고지대다.헬레니즘시대(B.C 331년~B.C 30년) 문명을 꽃피우던 유적지로 들어가기에 앞서 2천3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B.C 332년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더가 B.C 323년 33세의 나이로 급사한다.알렉산더의 부하 장군들은 치열한 제위 계승 전쟁을 통해 알렉산더 시대에 일군 제국을 나눠 갖는다. 알렉산더 사후 46년 만에 최종 4강 구도가 형성된다.이집트, 파피루스 수출 금지령①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②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③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 ④페르가몬이다.알렉산더 사후 실력자이던 트라키아 리시마코스의 재무 담당 필레타에로스는 주군 리시마코스가 죽자 페르가몬의 통치자임을 선언한다. 그의 아들 에우메네스 1세를 이어 그의 사촌이자 양아들 아탈로스 1세가 B.C 238년 왕위에 올랐음을 선포하면서 페르가몬 왕조로 발전시킨다. B.C 197년 아탈로스 1세가 죽고 왕위를 계승한 큰아들 에우메네스 2세(재위 B.C 197년~B.C 159년)는 아버지가 일군 업적을 토대로 최고 전성기를 일군다.아버지가 전쟁에서 얻은 각종 전리품은 페르가몬을 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에우메네스 2세는 이를 기반으로 학문예술 진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당대 최고의 부국이자 학문을 발전시키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국립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 무세이온(Museion)을 본떠 도서관도 세웠다.에우메네스 2세가 만든 페르가몬 도서관은 20만 권의 책을 소장할 정도로 컸다. 50만 권의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에 이어 헬레니즘시대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었다.에우메네스 2세는 페르가몬 도서관을 발전시키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의 도서관장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스카우트 손길을 내민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당대 헬레니즘 문명권의 최고 인문학자로 칭송받고 있었다. 고전기 그리스 시문학이나 희곡에 정통했고, 그리스어 문법을 정비한 학자였다.B.C 5세기 아테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와는 동명이인이다. 페르가몬 도서관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는 크게 노해 아리스토파네스를 가둔다. 페르가몬이 감히 학문의 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도전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페르가몬에는 파피루스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령도 내린다. 정치적 이유로 무역규제를 가한 것이다.하지만 세상은 늘 반전으로 변화를 일구는 법. 파피루스 수출 금지령은 페르가몬에 전화위복의 계기를 안긴다. 에우메네스 2세는 페르가몬 도서관 학자들에게 파피루스 대체품 발명을 명한다. B.C 190년경 양가죽을 부드럽게 펴 만든 양피지(羊皮紙)다. 물론 이전에도 양피지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페르가몬의 기술 혁신으로 우수한 양피지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페르가몬 기술 혁신 전화위복후한시대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품질을 개량한 것과 같다. 종이는 전한시대부터 제작됐고 채륜의 업적은 공정 단순화와 품질개량대량생산이었다. 기술개발로 경제전쟁을 극복한 페르가몬은 이후 양피지 생산지로 명성과 부를 얻었다. 영어로 양피지(parchment)는 로마시대 라틴어로 페르가몬(pergamenum)을 가리키는 말이 프랑스어 페르가몬(par chemin)을 거쳐 나온 말이다. 양피지 이전 필기도구의 대명사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종이(Paper)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2019-10-14 18:0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兎死狗烹(토사구팽)-쓸모가 다하면 버려진다

인간은 요사한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필요하면 애지중지하다가 쓸모가 다하면 매정하게 버린다. 토사구팽(兎死狗烹)도 같은 말이다. 춘추 시대 말기 월왕(越王) 구천(勾踐)에게는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라는 두 공신이 있었다. 그들은 구천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업을 이루어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어느 날 범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제(齊)나라에 은둔한 범려는 인편으로 문종에게 "새가 없어지면 활은 창고에 처박히고(蜚鳥盡, 良弓藏),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기게 되오(狡兎死, 走狗烹). 그대는 왜 월왕의 곁을 떠나지 않소"라는 편지를 보냈다. 명예와 지위에 연연했던 문종은 범려의 권고를 듣지 않았고 결국 월왕에게 자살을 강요받았다. 문종이 죽고 월나라도 기울기 시작했다.송나라 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은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으나, 그는 늘 자신을 추대했던 공신들에게 불안을 느꼈다. 어느 날 그는 술상을 차리고 그들을 불렀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송태조가 말했다. "그대들이 없었으면 나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오. 그런데 지금 불안하기만 하오." 공신들이 이유를 물었다. "그대들이라고 왜 내 자리가 탐나지 않겠소"라고 했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驚惶罔措) 공신들에게 "그대들의 공은 영원히 잊지 않겠소. 후손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겠으니 이제는 병권을 내려놓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했다. 이튿날 공신들은 병을 핑계로 앞다투어 사직했다. 술상에서 병권을 뺏는다는 배주석병권(盃酒釋兵權)의 이야기다. 송태조는 약속을 지켜 공신들을 원로로 대접했고 300년간 지속되는 송나라의 기틀을 잡았다.조국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매우 시끄럽다. 그들이 검찰개혁의 희생자가 되어 토사구팽될지, 공을 세운 뒤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공성신퇴(功成身退)할지 궁금하다. 월나라는 기울었고 송나라는 흥했다.

2019-10-14 16:48:56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나는 프로아마추어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셀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카메라를 메고 오롯이 홀로 시간을 소비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아무 곳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기도하고 오래된 전봇대 사이를 비집고 싹을 낸 잡초에 나만의 이름을 하사하기도 한다. 무엇을 하기 위해 쫓기던 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즐겁다. 또 사진작가라도 되는 양 바닥에 누워가며 똑같은 대상을 이리저리 구도를 바꿔가며 찍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것들을 사진으로 담기도 한다. 또 다른 사진의 매력은 촬영이 끝나고 찍은 사진을 확인할 때이다. 분명 잘 찍었다고 생각했던 사진도 기대이하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날의 베스트는 항상 예상을 빗겨 간다. 그래서 사진은 찍을 때와 확인할 때, 두 가지 즐거움을 준다. 한참을 멋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에 표시된 여러 기능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마침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그룹레슨에 함께 하게 되었고, 화이트밸런스, 조리개, 셔터스피드 등 이것저것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되자 더욱 흥미가 생겼다. 마치 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종종 듣게 된 '사진 잘 찍는다' 라는 칭찬은 고래만큼은 아니지만 나를 춤추게 했다. 타인에게 받는 인정은 또 다른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만들었고 나를 기준으로 수직으로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의 늪에 빠져 즐거움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마치 어떤 기준을 넘는 수준에 달해야하는 프로사진작가가 된 것 같았다. "왜이래? 아마추어 같이. 프로답게 해!" 공연을 준비하며 실수하거나 긴장하고 있을 때 흔히 듣던 말이다. 도대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뭘까? 아마추어(amateur)는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r)에서 유래했다. 어떤 일을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프로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의 준말로 라틴어로 '고백하다', '공표하다', '선언하다'를 뜻하는 프로페시오(professio)에서 유래했다. 그래. 프로연극인이라면 실수하거나 긴장해선 안 될 것이다. 프로라고 고백한 만큼 수준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단어는 수준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비교를 통한 수준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못된 착각일 수도 있다. 사진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순수한 눈빛으로 열렬히 사랑했던 그때가 그립다. "나는 연극을 사랑합니다" 라고 선언하여 '프로아마추어'가 되어야겠다. 원하지도 않던 프로라는 족쇄에 매여 즐거움을 잃을 순 없으니까.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0-14 11:32:08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북핵 플랜 B를 준비할 때다

합의·파기 거듭하며 핵 발전시킨 北美 압박에 포기? 섣부른 기대 금물동맹 우습게 아는 트럼프 믿기 곤란우리도 자체 핵무장 방안 검토 필요지난 5일(현지시간) 열린 스톡홀름 미·북 실무회담이 별 성과없이 끝났다. 북한 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이날 오후 실무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미국이 빈손으로 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미국이 스웨덴 측의 2주 내 실무협상 재개 초청을 수락한 데 반해, 김명길은 "미국이 판문점 회동 이후 아무런 셈법을 만들지 못했는데 2주 안에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협상장에서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중단으로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취했다며, 미 측의 상응조치가 없으면 실험 재개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다.앞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금년 말까지 시한을 정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이쯤 되면 미·북 회담의 목적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무엇이 북한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자신감과 고압적 자세를 갖게 했는가?첫째는 북한이 핵 무력 완성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간 6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소형화까지 거의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핵탄두도 30개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난 2일에는 동해상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성공, SLBM 실용화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SLBM은 오키나와는 물론 괌, 하와이 그리고 미 본토도 사정권에 둘 수 있다.북한 내 지상 핵무기가 다 파괴된다 해도 SLBM은 북한이 2차 반격을 할 수 있게끔 해 준다. 즉, 상대방이 함부로 공격할 수 없도록 북한에 최소 억제전략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둘째는 안보리 제재의 무력화다. 2017년 말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로 러시아와 중국까지 제재에 적극 가담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향해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 이후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과 2차에 걸친 미·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절차를 밟았다.아울러 지난 6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북 이후 중국 당국은 대규모 식량 원조에 더해 북한 방문 관광객을 대대적으로 늘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다. 이는 결국 외환 고갈 위기에 처한 북한에 안보리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숨통을 터준 셈이다.셋째는 미국 국내정치 상황에 대한 고려다. 김정은은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탄핵까지 거론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에 조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김정은이 금년 말까지 시한을 못박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정치 스케줄을 감안한 것으로 추정된다.결국 2년에 가까운 지난 시간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협상력 강화에 기여한 것으로 판명났다. 지난 20년간 합의와 합의 파기를 번갈아가며 핵 능력을 발전시켜 온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는 북핵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 대비한 플랜 B를 준비할 때다.핵은 절대무기다.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해서는 핵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미국의 핵우산 강화나 자체 핵무장뿐이다.그러나 "동맹은 매우 쉽다"(Alliances are very easy)며 동맹을 언제나 파기 가능한 계약 정도로 여기는 트럼프에 마냥 의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북한 핵이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까지 갖췄을 때, 미국이 과연 희생을 감수하며 우리에게 핵우산을 제공해 줄지 의문이다.그렇다면 우리도 자체 핵무장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같은 동맹국에게 우호적 핵 확산을 허용하는 것이 동북아 핵 세력균형을 이루고, 더욱 효과적으로 북핵에 대응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동맹국 스스로 방위능력을 갖출 것을 주문하는 트럼프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회는 스스로 찾는 자에게 찾아온다.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대사·국제법 법학박사)

2019-10-14 10: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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