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종이에 채색, 32.4×36.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전기(1825-1854), '매화초옥'

서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고람 전기의 그림이다. 오른쪽 아래에 '역매인형(亦梅仁兄) 초옥적중(草屋笛中) 고람사(古藍寫)'라고 화제를 써서 역매 오경석(1831-1879)에게 그려 준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전기가 여섯 살 위였다. 전기는 시서화를 다 잘했는데 서화의 감식에 뛰어나 감정도 하고 거간(居間)도 했다. 작품의 우열을 가리고 진위를 판단하는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오경석은 역관으로 수 십 년 청나라를 드나들며 서화, 금석문, 탁본 등을 대대적으로 모은 수장가이다. 오경석이 수집한 국내외의 풍부한 컬렉션을 물려받은 외아들이 위창 오세창이다. 오세창이 한국미술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은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해 대물림하였기에 맺을 수 있었던 결실이다.오경석은 만년에 회고하기를 "나와 같은 벽(癖)을 갖고 있던 사람이 전기였는데 불행히 일찍 죽어 내가 수장한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죽은 그를 다시 살려내 같이 토론하며 감상할 수 없을까. 이렇게 쓰자니 눈물을 멈추지 못하겠다."라고 했다. 이들이 서화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주고받은 편지들 중 오경석이 받은 편지를 오세창이 정리해 놓았다. 오경석은 김정희에게 '세한도'를 선물 받은 선배 역관 우선(藕船) 이상적에게 글씨와 시문을 배웠고, 같은 중인 출신인 전기와 함께 그림과 글씨를 뜯어보며 실물을 통해 작품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이상적, 전기와의 인연이 오경석을 대수장가의 길로 이끈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전기는 오경석을 '매화초옥(梅花草屋)'의 주인공으로 그렸다. 이 무렵 유행한 매화서옥(梅花書屋)류 그림은 매화그림이자, 설중매를 그린 겨울산수이며, 매화를 사랑한 북송의 임포 이야기인 고사도(故事圖)이기도 하다. 오른쪽 아래 거문고를 어깨에 멘 다리 위 인물은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오경석을 찾아가는 전기 자신일 것이다.전기는 매화서옥도의 '은거하는 한사(寒士)'라는 주제를 '동호(同好)의 우정'으로 살짝 바꾸었다. 호분으로 점찍은 흰 매화, 청록색 굵은 태점, 붉은 옷 등 색채 감각은 전기의 발랄한 감성을 보여준다. 거문고를 멘 인물은 이백의 시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의 마지막 구를 떠올리게 한다.양인대작산화개(兩人對酌山花開)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아취욕면군차거(我醉欲眠君且去) 명조유의포금래(明朝有意抱琴來)두 사람 마주 앉아 술잔 드니 산꽃이 피네한 잔 한 잔 다시 또 한 잔나는 취해 자려하니 그대는 이제 돌아가시게내일 아침 내 생각나거든 거문고 갖고 오게나 미술사 연구자

2020-02-23 06:30:00

박진용 언론인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2)

1987년 6공화국 체제가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험한 말로를 경험했다. 앞선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전전임 이명박, 전임 박근혜 대통령은 소위 뇌물과 국정농단으로 감방 신세를 지고 있다. 왜 이런 불행의 연쇄가 끊어지지 않는 것일까. 일일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자유선진국가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퇴임 이후 철창 신세를 진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통령들의 험한 말로는 대한민국 정치의 낙후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정치 낙후성의 문제는 제도와 이념의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제도는 헌법과 법률을 의미하는데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 관행이다. 헌법과 법률은 대강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일 뿐 복잡한 현실 문제에 대해 일일이 해답을 해주지는 못한다. 문재인 정권의 폭정처럼 헌법과 법률을 피해가거나, 법치주의를 망가트리는 길은 무한정 널려 있다. 그래서 잘 다듬어진 정치 관행을 존중하는 것이 정치 발전의 요체가 된다. 정치 선진국에서 대통령, 총리의 형사소추가 없는 것은 정치를 잘 해서가 아니라 제도와 관행이 보조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사족을 달자면 국가운영이라는 것은 늘 문제의 연속이고, 그 문제를 모두 풀어내는 정권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한두 가지 뛰어난 업적이 있거나 큰 허물이 없었던 것만으로 좋은 정권의 요건을 충족시킨 것으로 평가해 줄만 하다. 이런 현실적 한계를 받아들여야(관행)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마다 포승줄에 묶여가는 비극을 피할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뇌물 몇 푼으로 20년 내외 징역의 죄과를 강요당하는 형편이지만 그 전임자들을 생각해보면 오십보천보(김대중 5억 달러 대북 뇌물 등)의 죄과를 만들기도 했다.6공화국 이후 한국 대통령들의 비극은 제도보다 두 번째 요인 즉 이념에 기인된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알다시피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양립이 불가능한 체제다. 양자 간의 70년 전쟁은 자유와 창의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완벽한 패배로 끝났다. 1991년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를 몰고 온 것이 팬티스타킹 부족(생활물자 결핍) 때문이었다는 에피소드는 공산주의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이런 세계사적 추세를 역행한 것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좌파정권이다. 좌파 1, 2, 3기로 넘어올수록 유사 사회주의 증세가 깊어졌다. 3기 좌파정권에서는 사회주의 선언을 노골화하면서(조국, 이인영) 토지공개념,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대놓고 사회주의 개헌을 들먹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같은 반국가적 이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들은 사회주의의 투쟁도구인 거짓말(문 대통령 취임사 등)과 폭력(적폐청산, 완장부대 등)을 수시로 동원하고 있다. 요즘 보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현실들이다.지금의 좌파 정권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보다 사회주의 체제동란에 골몰하는 세력으로 판단된다. 대통령이 진정어린 마음으로 안보나 경제, 일자리 걱정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감 놔라(최저임금, 주52시간), 배 놔라(원전산업 해체, 부동산 폭등) 하며 시장 원칙을 밥 먹듯 허물고, 나라의 기둥인 대기업들을 정권의 종복으로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추락시키고 있다. 날치기 통과시킨 60조원의 적자국채 발행은 미래세대의 허리를 휘게 하는'진짜'국정농단으로 지목돼야 하지 않을까.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라고 했다. 현 정권이 유사 사회주의 세력이라는 것은 중국, 북한에 대한 맹종으로도 충분히 짐작된다. 사드 사태와 관련한 3불(사드 추가배치 불가 등) 보장과 9.19남북군사합의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충성맹세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뿐 아니다.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혼밥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도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고, 국회의장(문희상)이나 주 중국대사(노영민)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조선시대 사대주의 언사를 스스럼없이 선물로 풀어놓았다. 중국의 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무례한 입놀림에도 꿀 먹은 벙어리다. "중국은 우리의 형제국인 청나라의 300년 속국이었다"며 꽉 막힌 국민 심사를 틔워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중국 폐렴 사태에서 보인 정부의 비루함과 망언(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북한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한 번도 국민의 지지의사를 확인한 바 없는 전제적 세습권력집단이고, 세계 최악의 인권침해국이다. 이런 깡패집단에게 삶은 소대가리 대접밖에 못 받으면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좌파 정부의 바닥을 모르는 자존심이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허접한 중국과 가련한 북한에게 이런 수모를 자초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권의 정당성을 허물기에 충분하다.종북 좌파정권은 한국 현대사를 망치고, 평화적 자유통일을 가로막는 집단이라는 것이 자유 지식인들의 관찰이다. 이런 주사파 돌연변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불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퇴임 후 잊히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소망은 공수처를 염두에 둔 것인지 모르나 이미 달나라 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남은 기간, 괴상한 좌파 시책들을 거둬들여 징역 20년의 고리를 끊어주었으면 한다.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2020-02-22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2·28,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운동'

2·28민주운동(이하 2·28)은 1960년 2월 28일 대구 지역 8개 고교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궐기했던 운동이다. 28일, 갑일(甲日)을 맞아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28의 세계화를 위해 영문판 '2·28,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운동'을 출간한다.책의 1장은 2·28의 배경, 2장은 2·28의 전개, 3장은 4·19혁명으로의 계승, 4장은 2·28의 의의를 다루고 있다. 필자는 책의 제목이 담고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운동'의 뜻을 통해 2·28의 역사적 의의를 조명해 보고 번역 과정과 의의를 설명하고자 한다.2·28은 12년에 걸친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일어난 '민주'운동이다. 그리고 1919년 상해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쓴 이후 일제가 아닌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일어난 '최초'의 운동이다. 그렇다면 2·28을 왜 봉기나 의거가 아닌 '운동'(Movement)으로 보는가?단체 행동을 운동으로 명명하기 위해서는 집회 참여자들이 집회의 동기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집회 주도 세력들이 결속되어 있어야 하며, 목표가 성취될 때까지 계속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2·28은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운동'이다.첫째, 2·28의 직접적 계기는 야당인 장면 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에 학생들의 참여를 막으려고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등교 지시의 이면에 숨어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직시했고 민주라는 가치와 학원의 자유 및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궐기했다. 그들이 외친 "민주주의를 살리고 학원에 미치는 정치권력을 배제하라"와 "학생의 인권을 옹호하자"라는 구호를 보면 그들이 운동의 동기를 숙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둘째, 2·28의 주도 세력은 학생·시민·언론의 연대였다. 도시인구의 급증에 따른 생활 여건의 악화와 높은 실업률은 정부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켰다. 근대교육의 확대는 시민의식을 고취했고 언론 보급의 확대는 정치·경제적 모순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연히 일어선 것은 피 끓는 고등학생들이었으며, 그들의 운동을 시민은 지지했고, 언론은 보도했다.끝으로 2·28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전주, 대전, 수원·충주, 부산·청주에서의 시위로 이어졌으며 3·15마산의거로 귀결되었다. 4월 19일엔 서울·인천·광주에서 시위가 이어졌으며 4월 26일엔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냈다. '4·19혁명'이란 4월 19일 당일의 항거뿐만 아니라 2월 28일에서 4월 26일까지 일어난 일련의 투쟁을 뜻한다. 그러므로 2·28은 세상이 어둠에 떨고 있을 때, 선봉에서 길을 연 횃불이었다.결론적으로 2·28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운동'인데 이 사실을 국내외에 더 알리기 위해 영문판이 마련되었다. 필자와 경북대 박사 과정의 로버트 존스(Robert Jones)가 책임을 맡아 작년 4월부터 6개월 동안 작업하였다. 그 후 2·28기념사업회 우동기 회장의 주선으로 원어민 교수 세 분이 정밀하게 교정을 보았으며, 또다시 필자와 존스가 원문과 수정본을 대조·분석·취합하여 완성하였다.역사적 사실의 정확한 전달과 가독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했다. 영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눈 덮인 들판을 처음 걷는' 심정으로 세상에 내놓는 이 책이 2·28의 국제화에 초석이 되길 빈다.

2020-02-21 14:30:00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 통합 보수 정당이 나아가야 할 길

통합 잉크 마르기도 전에 불협화음 황교안·유승민·김형오 빨리 만나야반대를 위한 반대 국민 지지 못 얻어 인재 충원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 전진당이 합당해서 '미래통합당'(통합당)으로 17일 공식 출범했다. 지난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보수가 뿔뿔이 흩어진 지 3년 만이다.통합당 지도부는 한국당 체제가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고, 기존 한국당의 김형오 공관위원장 체제도 이어받기로 했다.일단 야권 정계 개편의 가장 큰 축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총선을 두 달 정도 남기고 그동안 파편화된 보수 정당들이 하나로 통합된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보수가 힘을 합치라"는 국민의 뜻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다.지난 설 연휴 직전에 KBS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1월 18~21일)에 따르면, "선거 전에 보수 야당 간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필요하다'(50.7%)는 응답이 '필요하지 않다' (37.5%)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서는 통합 필요성에 각각 59.9%와 55.3%가 동의했다. 통합당은 일단 탄핵의 강을 건너 새로운 집을 짓고 개혁 보수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다.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인다. 통합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써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통합의 한 축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통합당 출범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지역구 공천을 둘러싼 통합 세력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김형오 위원장이 "갈수록 이상해진다"며 총선 공천 작업에서 새보수당 인사들이 부당 대우를 받고 있다는 취지의 불만을 표출했다. 여하튼 유승민 의원의 '전략적 두문불출'이 길어지면 그만큼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반감된다. 통합의 화룡정점을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황교안 대표, 유승민 의원, 김형오 위원장 간의 3자 회동이 추진되어야 한다.공천을 포함해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은 정치로 풀어야 통합의 강을 건널 수 있다. 단언컨대, 흩어졌던 보수 세력이 단순히 합치는 것만으로는 보수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확보하고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통합당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정당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표출된 국민들의 이해를 잘 집약해서 좋은 정책을 만들고,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충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정파적 이익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민생을 챙기고, 국익을 위해 봉사하는 국민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진영의 논리에 빠져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과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 정책 정당이 되어야 한다.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미래통합당이 당명과는 달리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얽매이거나, 통합에 앞장서지 않고 분열에만 치중한다면 오히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원내 113석의 통합당 출범으로 이번 총선은 '1여다야' 구도가 아니라 '진보 대 보수' 간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은 본질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통합당이 내세운 정권심판론이 보수 세력 결집과 중도 표심 확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가 최대 관심사다. 한국갤럽의 2월 둘째 주 조사(11~13일)에 따르면,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 지원론'(43%)보다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 견제론'(45%)이 앞섰다. 한 달 전 조사(1월 7~9일)에서는 정부 지원론이 견제론보다 무려 12%포인트 앞섰으나, 이번에 역전됐다. 민주당의 잇단 악재에 불만이 쌓인 중도층에서도 지원론(39%)보다 견제론(50%)이 훨씬 많아졌다.보수 통합으로 지금까지 진보로 기울어졌던 운동장이 이제 겨우 평평해졌다. 선거는 통상 새로움의 경쟁이다. 어느 정당이 더 큰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지가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변화가 최상의 전략이다.

2020-02-20 15:18:15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백지장을 맞드는 것에 대하여

예술인들에게 1월과 2월은 매우 바쁘고 정신없는 시기이다. 마치 취업 준비생처럼 각종 공모나 지원사업에 대한 서류와 포트폴리오(자기소개서)를 보내고 면접을 본다. 그리고 최종 합격이 되는 공모 사업으로 한 해의 계획을 세운다. 반면, 어느 하나 선정되지 않은 예술가들은 나름의 방안을 세우고 활동을 준비한다. 서류 작성과 면접에 익숙하지 않은 신진예술가들이 공모에 떨어지는 것은 예삿일이다.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10번 지원해서 1번 선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으로 통하기도 한다.예술가들이 익숙하지 않은 서류 작성에 목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 이외의 일들을 병행하며 활동을 지속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기관이나 기업에서 주관하는 공모 사업은 예술가들의 활동을 이어감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예술인들의 수에 비해 지원사업의 수가 부족하지만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원사업 중 '융복합'이라는 목적으로 장르 간의 통합을 시도하는 사업이 종종 등장한다.'융복합'의 유행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했는데, 과학기술과 인문학, 예술 등이 융합하며 각 분야의 한계를 극복하는 등의 여러 성공적인 사례를 남겼다. 이에 힘입어 교육 분야에서는 스팀(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 교육이 새 시대에 부합하는 교육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융복합'은 오늘날의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하지만 순수예술 분야에서는 예외 지점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뚜렷한 지향점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융복합 형태의 순수예술은 오히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예술은 각 장르마다 각각의 고유한 특성과 높은 완성도를 가지기에 장르 간 균형을 잡지 못한다면 한 장르가 다른 장르의 서브가 되는 역할에 머물거나,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는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융복합 예술의 지향점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사실은 대중매체, 즉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이러한 융복합 예술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은 문학, 연극, 음악, 미술 등을 포괄하며 여기에 더해 게임 분야는 관객(사용자)의 능동적 역할과 자유도까지 제공한다. 이미 융복합 예술은 20세기부터 새로운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애초에 '융복합'이라는 방식은 '실용성'을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순수예술은(보편적으로) 실용성과는 궤를 달리한다. 때문에 유행에 편승하여 순수예술을 억지로 묶는 방법보다는, 심도 있는 연구와 기획을 통해 사업 공모를 하여 예술 간 융합을 이뤄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지 않을까.

2020-02-20 11:42:24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불가사의 인도] 인도영어 Hinglish가 본토 영어를 위협하다

필자와 만났다 하면 무슨 논쟁거리든지 들고 나와 토론을 즐기는 인도인 친구 토마스 싱에게 필자는 늘 토론에서 밀렸다. 그 이유는 논리 부족 때문이라기보다 두 사람 간의 공용 언어인 영어 구사력에서 필자가 밀렸기 때문이었다. 명색 영어교육이 주전공인 필자가 동북아시아 역사 전공자인 인도인 친구에게 영어 구사력에서 밀리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 원인을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필자는 영미 본토인들의 정확한 발음과 문법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토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취약점이었다.반면에 인도인 친구는 인도식 발음과 인도식 변형 영문법으로 거침없이 지껄이는 배짱 덕분에 늘 토론을 주도했다. 발음을 두고 말하자면, 인도인들은 영어의 'p' 발음을 'ㅃ'로 발음하므로 'pretty pajama'를 '쁘리띠 빠자마'라는 식으로 발음한다. 인도인들이 구사하는 영어 Hinglish에서 한국인들을 당황시키는 더 심각한 요인은 영어 정통문법을 무시하고 인도식 어법을 배짱 좋게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The girl over there is your sister, isn't it?"이라는 표현은 한국에서라면 중학생쯤만 되어도 'isn't she'를 'isn't it'으로 잘못 쓴 문법적 오류를 당장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인들에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힌두 언어에는 남녀 구별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그 인도인 친구는 내가 완벽한 본토 발음과 정확한 문법에 대한 강박감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국어식 발음과 한국 문법과 절충된 영어를 겁 없이 쓰는 배짱이 필요하다는 솔직한 충고를 해주었다. 나는 그 충고가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려 애썼지만 생각만큼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인도식 영어를 Hinglish라 칭하듯이 한국식 영어를 Konglish라 칭한다. 인도인들은 Hinglish 구사를 창피스럽게 여기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는데, 한국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그 이유는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식의 옹고집으로 Konglish 구사를 꺼리기 때문이다. 영어권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쓰는 영어를 'survival English'라 칭한다. 양반도 물에 빠지면 개헤엄이라도 쳐야 살아남듯이 한국인들이 영어를 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환경에 처해서 한국식 발음 티가 묻어 있고 한국어법 냄새가 풍기는 영어라도 거침없이 쓰는 태도로 바꾸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실천이 어려웠다. 물에 빠지면 우선 개헤엄이라도 쳐서 살아남아야 하고, 일단 살아남게 되면 저절로 모양새 있는 표준 수영 스타일로 발전하게 되는데 말이다.Konglish를 비하하는 한국인들은 그 고정관념 때문에 한국이 세계에서 영어교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이 최대인데 능률은 최하라는 오명을 쉽게 벗어 던지지 못한다. 이런 중에 최근 인도 영어 Hinglish에 대한 평가가 크게 높아졌다. 국제통상이 점차 확대되는 글로벌 시대에 국경 개념이 없는 글로벌 기업들은 Hinglish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소위 영어권 6개국 인구를 다 합해도 인도 인구에 못 미친다는 계산 때문이다.인도에서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 30%를 제외한 인도 인구만도 영어권 6개국 인구를 합한 수를 능가한다. 이들을 소위 '수동적 Hinglish 구사 인구'라는 것이다. 국제통상용어인 이 말은 'Hinglish로 상품 광고를 하면 본토 영어로 광고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잘 먹혀드는 현상'에 착안해서 생긴 용어이다. 이 점을 간파한 국제전자상거래기업 Amazon은 인공지능 Alex에게 Hinglish를 가르치고 있고, 이에 질세라 Apple도 인공지능 Siril에게 Hinglish를 더 열심히 가르치고 있단다.영어권 6개국은 인구 감소 현상으로 고민 중인데 꾸준한 인구 증가 현상이 유지되고 있는 인도는 이들 나라의 인구 감소분을 채워주기에 서로 찰떡궁합이다. 언젠가는 Hinglish가 본토 영어보다 위세가 강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싶다.

2020-02-19 18:00:00

김은아 그림책 칼럼니스트

[북돋움] 독서의 겉멋

'세상이 학교이고 만나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라고 했다. 2018년 12월 초, 도서관 수험생 인문학 특강에서 만난 학생이 가끔 생각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어 보라고 했는데 이 학생의 답이 독특했다. '세상의 모든 학문 섭렵하기'. 배우는 게 재미있냐는 물음에 "강사님도 그렇지 않냐?"라며 되물으면서 자기는 공부가 즐겁고 책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책이든 정독하는 편이라 읽는 속도가 느리지만 다 읽고 나면 뿌듯하고 책이 소중하게 여겨진다고 덧붙였다.더 놀라운 건 다른 학생들의 반응이다. 자칫 잘난 척으로 비쳐질 수 있는 친구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쟤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학생은 쉬는 시간 10분을 제외한 두 시간 동안 청강자로서 예의를 갖춰 강의 내용에 집중했고, 옆과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말할 때면 상체를 돌려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진정성과 기품이 웬만한 어른보다 나았다.모 육군부대 특강에 참석한 한 사병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무인도에 유배당한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고 싶습니까? 열 권만 허락한다면 말입니다." 거기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만년샤쓰'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조화로운 삶'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문장 강화' '스무 살 어머니' '체 게바라 평전' '무소유' '그 여름의 끝' '연탄길 1권' 이상 끝."이 열 권은 줄을 긋고 메모하면서 성심성의껏 읽은 책들이다. "역시 강사님은 책을 많이 읽으셨군요"라며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은 실상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장병은 그중에 자기가 읽은 책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밖에 없는데 기회가 되면 다 읽어보겠다고 했다. 제목을 받아 적은 걸로 봐서 빈말 같지 않았다.장병이 한 질문은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지드가 1913년 4월 작성한 목록에 그 연원이 있다. 문예잡지 '누벨르뷔프랑세즈'로부터 당시 좋아하는 소설 10편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지드는 고등학교 시절 새 학기가 되면 무인도에 가져갈 책 목록을 작성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을 비롯해서 10권을 꼽았다. 이는 여름 휴가철에 자주 소환되는 놀이이자 독서 활동으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오래전 미국에서도 유행했는지 모티머 J. 애들러와 찰스 밴 도런이 함께 쓴 '독서의 기술'(범우사)에도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2018년 11월 7일 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옆 라인에 불이 나는 소동이 있었다. '무엇을 챙겨 대피해야 하나.' 그 찰나에도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가방에 쑤셔 넣고는 냅다 달렸다. 불이 난 집에서 폭발음이 울리고 시커먼 연기가 아파트 벽을 타고 올라갈 때의 공포감은 엄청났다. 소방차 호스가 내뿜는 물기둥이 발코니 창문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하지만 한가하게 불구경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신이 들어 필요한 짐을 제대로 챙겨왔는지 확인하려고 가방을 열었더니 차 열쇠, 지갑, 양말 한 켤레, 다이어리가 전부다.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도망갈 때 다 버리고 갈 물건인데 지금껏 왜 그렇게 수집에 집착했을까? 제대로 읽은 책이라면 불에 타 없어져도 머리에 남아 있고 제목을 떠올려 다시 살 수 있지만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은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을 텐데.꽤 오랜 시간 맹목적으로 책을 사 모았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 읽지 못한 책이 수두룩하다. '언젠가는 읽겠지' '제목만 봐도 반은 읽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이렇게 스스로 합리화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얼마 전 이사한 연구소에 지인들이 찾아왔다. 보기 좋게 잘 꽂아 둔 책들을 보면서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하는 틈새로 삐죽이 나온 질문이 한때 유행한 말을 빌리자면 뼈를 때렸다. "그런데요. 책이 왜 이렇게 깨끗해요? 혹시 안 봤어요?"독서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자주 있었지만 반성은 잠깐이고 나쁜 습관이 지속됐다. 언젠가부터 책을 대함에 있어 겉멋이 들어 있던 나를 반성하면서 다시금 '독서의 기술'을 펼쳐 든다.

2020-02-19 18:00:00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새론새평] 허술한 투표가 불러온 혼란

투표율·찬성률 半 합친 이상한 방식 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 잡음 초래군위·의성 여론 고려 요소들 중 하나대구경북 500만 주민 의사 중요하다국방부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하 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과 관련해 군위 우보에 대한 선정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고 의성 비안·군위 소보를 이전지로 선정하는 절차를 4·15 총선 후 진행하겠다고 하였다.(매일신문 2월 10일 자) 국방부가 비안·소보를 이전지로 선정하는 위원회를 열 경우 군위군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한다. 군위군이 투표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으나 군위군도 논리가 있다. 군위 주민들이 소보보다 우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통합신공항 이전 특별법'에는 지자방자치단체장이 주민투표 결과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법제처도 후보지가 두 개 이상의 지자체에 걸쳐 있는 경우 하나의 지자체장이 '단독으로' 유치 신청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을 위한 투표 방식은 시민참여단이 결정하였으나 실제로는 대구시가 의성군과 군위군의 의견을 절충하였다고 한다. 의성 주민들은 비안·소보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고, 군위 주민들은 우보와 비안·소보에 대해 각각 찬반 투표를 했다.투표율과 찬성률은 비안, 우보, 소보를 단위로 계산하였다. 투표율(50%)과 찬성률(50%)을 합하여서 비안이나 소보가 1위이면 비안·소보를, 우보가 1위이면 우보를 이전지로 선정하기로 정하였다. 이러한 투표 방식은 괴이(怪異)하다. 군위 주민들이 두 번 투표한 것,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군위군이 이전지가 된다는 것, 투표율과 찬성률을 반씩 합한 것은 이상하다.투표 결과는 비안이 압도적인 1위이다. 비안의 투표율이 0.887, 찬성률은 0.904로 양자를 반씩 합한 값은 0.8955이다. 2위는 우보로 투표율 0.806, 찬성률 0.763, 양자를 반씩 합한 값은 0.7845이다. 소보는 3위이다. 투표율은 우보와 동일한 0.806이지만 찬성률이 0.258에 불과해서 양자를 반씩 합한 값은 0.5320이다. 이 결과대로라면 비안·소보가 이전지로 선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공동 후보지인 소보가 큰 격차로 3위이다. 소보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통합공항을 원하지 않았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가? 비안과 소보는 공동 후보지이므로 두 지역을 하나로 묶어서 투표율과 찬성률을 계산해야 한다. 비안과 소보의 투표자 수와 유권자 수가 각각 6만828명, 7만614명이므로 '통합' 투표율은 0.861이다.또한 비안과 소보의 찬성자 수는 4만3천421명이므로 통합 찬성률은 0.714이다. 통합 투표율과 통합 찬성률을 반씩 합한 값은 0.7875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비안·소보와 우보의 총점 차이는 0.003에 불과하다. 총점은 비안·소보가 0.003 높지만 이는 투표율이 0.055 높기 때문이다. 찬성률은 오히려 우보가 0.049 높다. 투표율과 찬성률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 찬성률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투표한 주민들 중에는 이전지 선정에 반대한 주민들이 있다. 투표율과 찬성률을 합하면 결과적으로 반대율도 포함된다. 이보다는 투표율과 찬성률을 곱하는 방식이 낫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전체 주민들 중에서 이전지 선정에 찬성하는 주민들의 비율'이 기준이 된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사결정 방식은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 과반수 찬성'이다. 이것 역시 출석률과 찬성률을 곱하는 방식이다. 비안과 소보를 하나로 묶어서 투표율과 찬성률을 계산하고 양자를 곱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가? 비안·소보의 투표율과 찬성률이 각각 0.861, 0.714이므로 둘을 곱한 값은 0.6147이다. 또한 우보의 투표율과 찬성률을 곱한 값은 0.6149이다. 우보의 총점이 오히려 0.0002 높다. 물론, 그 차이는 매우 작다.이전 후보지 주민들에 대한 여론조사는 이전지 선정 시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이다. 그것만으로 이전지를 선정해서는 안 된다.통합신공항을 이용할 500만 대구경북 주민들의 의사가 중요하다. 이전지를 선정하는 투표 방식도 보다 정교(精巧)해야 했었다. 향후 군위군과 국방부의 소송이 발생한다면 투표 방식과 그 결과가 쟁점이 될 것이다. 나로서는 법원이 어떠한 판결을 내릴지 알 수 없다.

2020-02-19 17:00:53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매일춘추]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도전

TV채널을 돌리다가 반가운 노래에 시선이 멈추었다. 화면에는 휠체어에 몸을 태운 한 남자가 'Don't Cry'(돈 크라이)를 열창하고 있었다. 고음역대의 노래를 샤우팅 창법으로 시원하게 뻗어 올리는 그의 목소리가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렇다. 화면속의 주인공은 더 크로스의 보컬리스트 김혁건이었다.과거 교통사고로 인해 사지마비 장애판정을 받았고 어깨 밑으로는 감각이 없어 자력으로 복식 호흡이 불가했지만, 복식 호흡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꾸준히 발성연습을 해왔다고 한다. 오래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그가 초고음 노래를 완창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을까. 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역경을 이겨내고 기적을 만들어낸 그의 무대는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인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절망적인 순간에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음악을 공부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희망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그의 노력과 도전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좌절과 절망이 더 큰 전진을 위한 힘겹지만 소중한 디딤돌이었던 셈이다.장애를 극복하고 가능성과 희망을 몸소 보여주었던 영웅들이 있다. 특히, 기계체조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다 목뼈를 다쳐 사지가 마비되는 중증환자가 되었지만 장애를 딛고 재활의사가 된 이승복 박사,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승마경기 도중 경추손상으로 전신마비가 되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재단을 설립하여 전신마비환자들의 재활에 헌신했던 영화 수퍼맨 시리즈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 소아마비와 반신불수라는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4번이나 대통령 직을 연임한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힘든 역경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헌신했던 이들의 감동실화는 인생이 한편의 연극이라고 한다면 그 어떤 연극보다 위대하고 지혜로운 명작이며, 주옥같은 스토리는 인생의 지침서가 되어주는 걸작이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기적을 만들어낸 슬기로운 인생을 통해 얻는 용기와 자신감은 성장에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된다.긍정의 힘으로 끝없이 도전하며 기적적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의 아이콘이 아닐까.인내심이 고갈되고 끈기가 바닥을 칠 때 서슴없이 늘어놓은 핑계와 푸념으로 인생을 허비했던 시간을 재구성하고 밀도 있는 삶을 위한 비전을 제대로 세워보자.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면 거둬진다고 했던가. 인생에서 가장 젊을 날인 오늘 가슴 떨리는 도전으로 희망을 채워보자. 강렬한 절박감과 절실함으로 끈기 있게. 어쩌면 진정한 아름다운 인생이란 꽃길이 아니라 시련과 도전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2020-02-19 14:38:00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종교칼럼] 7 vs 3

오래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비엔나에 유학을 갔을 때 그곳에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있던 우리 교민들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때 친해진 한 가정의 초등학생이던 꼬마 소녀가 성실하고 예쁘게 자라더니 마침내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그녀는 날마다 해야 하는 수많은 진료들을 큰 탈 없이 잘 수행해 나갔다.그녀를 눈여겨본 같은 병원 비엔나 태생의 한 동료가 사랑을 고백했고 마침내 나에게 혼인 주례를 부탁해 왔다. 혼인 후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앉아 맛있는 식사와 더불어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아이를 둔 부모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솔직하게 평가해 본다면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서 하는 것은 3할 정도에 지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7할이나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지만 달리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계속해서 출근하게 된다고 했다.그가 그런 고백을 하는 동안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지 그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와 그가 하는 의료 업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내가 성직자로서 살아가는 세계에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어린 시절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오자 그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집도 짓고 농사도 지으며 때로는 사냥도 하고 아이도 가르치는 전인적인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원시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나에게 그런 삶은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와 같은 것이었다. 수많은 고려와 고심 끝에 자기희생을 통해 이웃 사랑을 많이 할 수 있는 길로 생각된 것을 선택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그런데 멀리서 바라보고 생각했던 이 길도 막상 들어와 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살던 길이고 사람인 나를 받아들인 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물론 구성원 모두 안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있지만 천사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다른 길과 마찬가지로 안정된 의식주가 필요하고 학비가 필요하며 각종 여비마저 필요한 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고 공부를 마친 후에도 누군가가 생산하고 벌어 놓은 재화를 나누어 주기를 바라야 하는 상태가 지속되어 답답하기까지 했다.성당, 교회, 절 등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일반 신도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단체와 봉사는 분리할 수 없는 이미지로 묶여 있다. 이러한 종교단체의 일에 전적으로 투신한 성직자와 수행자들은 이웃 사랑과 봉사를 일반 신도들보다 훨씬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실천한다. 좀 더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좀 더 많이 봉사하려는 의지로 살아가지만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에 드는 수고와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날마다 경험한다.종교단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종합하여 정리해 본다면 앞에서 언급한 자신을 위한 분량이 7할이고 진정한 봉사가 3할이라는 의사의 삶과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결과가 어떠하든 안정된 의식주가 필요한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서로의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함께 하는 것만이 평화의 길이겠다.

2020-02-19 10:30:15

홍순만(연세대 행정대학원 부원장)

[경제칼럼] 국가의 경제적 번영과 총생산

국가 번영 척도는 재화'용역 생산량 많이 누릴수록 경제적 수준 높아져최근 가속화되는 탈기업 현상 우려 기업 없으면 포용적 복지도 불가능한 개인의 경제적 수준은 그 사람의 소득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연간 소득수준은 우리의 연간 지출 규모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차입을 통해서 소득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입금은 언제가 상환되어야 하며, 그 상환 시점에는 소득보다 더 적은 금액을 지출하게 될 것이다.혹자는 본인이 구입한 주택의 시장가치가 연간 소득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 부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도 사실은 그 주택을 매각해 소득화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한 개인의 경제적 번영은 그 사람의 소득수준을 보면 가늠할 수 있다.그렇다면 한 국가의 경제적 수준은 어떤 지표를 통해서 판단할 수 있을까? 국가의 경제 수준은 궁극적으로 그 국가의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따라서 한 국가의 경제 수준은 그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 및 용역 가치의 총합, 즉 총생산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물론 개인처럼 국가도 총생산을 초과해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해외로부터 제품을 수입하면 된다.그러나 해외 수입을 위해서는 해외로부터 차입을 할 수밖에 없고 언젠가 그 차입금을 상환하는 시점에는 총생산보다 더 적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개인의 경제적 번영은 소득 증대를 통해서 가능하고, 국가의 경제적 번영은 총생산 증대를 통해서 가능하다.여러분 중 누군가는 총생산보다 화폐 보유량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만약 한 국가의 경제적 번영이 화폐 보유량에 의해 결정된다면, 정부는 어마어마한 양의 현금을 찍어 국민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모든 국민이 억만장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 국가의 총생산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화폐가치는 곧 곤두박질칠 것이다.또한 총생산보다 주가지수 등 금융자산의 가치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주식가치라는 것도 그 해당 기업이 생산하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에 대한 기대에 의해 형성된다. 주가도 결국 해당 기업의 생산 역량에 의해 제약받는 것이다.국가 간의 상대적 화폐가치를 의미하는 환율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이 원화를 보유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에 대한 구입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에서 생산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국제적으로 원화 수요는 감소하고, 원화 가치는 하락할 것이다. 물론 수출 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국민들이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하기 어렵게 된다. 국민들의 경제적 수준이 하락하는 것이다.결국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많은 재화와 용역이 생산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기업들의 탈(脫)한국 현상은 크게 우려할 만하다.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직접투자액이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선진국으로 설비를 이전하거나, 원가경쟁력 때문에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고 한국 경제에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다만 정부의 주 52시간 제도,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원가경쟁력 약화와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규제가 기업의 탈한국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정부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을 이끄는 최선의 정책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 땅에서 보다 많은 생산활동이 일어나도록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특히 인구 감소로 인해 국내 수요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수출에 유리한 경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다국적 기업을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다.무엇보다도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에 보다 적극적 관심을 갖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 결국 생산은 기업이 하는 것 아니겠는가? 기업이 없으면 현 정부가 꿈꾸는 포용적 복지국가 건설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2020-02-18 14:38:43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매일춘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The Best We Can)

715 브로드웨이, NYU 2층 공연장. 이 날은 청년의 졸업작품인 뮤지컬 '러브 랭귀지'가 첫 선을 보이는 날이다. 어느새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고 공연 시작이 임박하자 청년도 객석 중앙에 마련해 놓은 창작자 지정석으로 향한다. 담당 교수인 프레드 칼이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화려한 언변으로 창작진들을 소개한다.흑인 대머리 아저씨 프레드 칼. 인자한 얼굴과는 달리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청년에게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경험하게 만든 사람이었다."캐릭터가 어떤 감정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들의 내면을 읽어야 해."며칠 밤을 꼬박 새워 작품을 완성해 가면 대머리 교수는 정답을 알려주기는커녕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창작진의 소개를 마친 프레드가 그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인다. '프레드라면 지금 내 떨리는 마음을 읽을 수 있겠지?' 청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객석의 불이 꺼진다. 그는 두 손을 꼭 모으고 질끈 눈을 감는다. '신이여.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길….' 세상에 태어난 지 딱 30년이 흘렀지만 이렇게 신앙심이 깊었던 날은 없었다.뮤지컬 한편 만드는데 꼬박 365일을 쏟았다. 고작 한편을 만들어 리딩 한번 하는 데 짓고 부수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한 시간 반이 쏜살같이 흐르고 마지막 곡인 'Best We Can(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사가 흘러나온다."우린 사랑을 말해. 최선을 다해서"관객석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훌쩍이는 소리가 잦아들자 해설자가 우렁차게 외친다."End Of The Show.(막이 내린다)"객석에 서서히 불이 들어오자 조용했던 객석에서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모두가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을 함께 해온 창작진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대머리 아저씨 프레드는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가장 먼저 청년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안듯 볼을 맞대곤 포옥 안으며 등을 토닥토닥한다."You made it(해냈구나)."긴 말보다, 어떤 칭찬보다, 지금 이 순간 프레드가 하고 싶었던 말이 왜 이것이었는지 청년은 알 것 같았다. 인물의 감정을 리듬에 담길, 인물의 말을 음표에 담길, 인물의 경험을 화성에 담길 바라며, 프레드는 왜 이 학문이 연극이 아닌 뮤지컬인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 찾아내기를 청년에게 바랬던 것이다. 청년을 따뜻하게 축하해주는 모든 관객들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지금의 작은 성공을 가슴에 새기고 나아가야겠다고. 그리고 늘 최선을 다하겠다고.*이 뮤지컬 수록곡은 뉴욕뮤지컬페스티벌 트레일브레이저(Trailblazer)부문에 선정되었고, 이후 2019년 대구시립극단 제작으로 초연되었다.

2020-02-18 11:22:16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논리성을 회복하여 민주화 다음을 도모할 때

세계는 찰나의 순간에도 가만히 있지 않고 쉼 없이 달라진다. 인간은 세계가 달라지는 속도와 폭에 적응해야 한다. 세계를 자신이 지배한다고 말들은 할 수 있지만, 변화무쌍한 그 세계에 대한 적응의 효과가 크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효과가 작으면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적응의 효과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거의 모든 인간적 활동의 핵심 기반이다. 가장 효과 있게 적응하는 장면에 우리는 '적중'(的中)이라는 팻말을 건다.스콜라 철학자들이 말하는 '관조'나 동양에서 말하는 '중용'이나 다 사실은 이 '적중'을 제대로 완수하기 위한 태도이거나 관점일 뿐이다. '조용히 관찰하기'(靜觀)나 '무심'(無心)이나 '무아'(無我) 혹은 '무위'(無爲)도 모두 그렇게 하면 훨씬 더 잘 '적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이론과 지식도 다 어떤 특별한 변화 상태를 제대로 포착한 지적 체계이다. 역시 '적중'의 결과물들이다.'적중'은 원래 과녁을 제대로 겨누어 맞춘다는 뜻이다.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겨눠야 할 과녁을 정확히 포착한 후 온 신경을 모아 거기에 역량을 제대로 집중시켜야 한다. 근대 초기 일본의 요시다 쇼인은 쇼카숀주쿠라는 조그만 학교를 세워 겨우 2년여 동안 90여 명을 배출한 후, 그들을 앞세워 산업화를 성공시킨다. 같은 시기 조선에는 수백 개의 교육 기관에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밤을 세워가며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그렇게 조그만 하나의 학교 쇼카숀주쿠 출신들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식민지가 되었다.우리가 식민지가 된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일본은 그 시대에 해결해야 할 실질적인 문제에 적중하여 부강할 수 있었고, 우리는 그 시점에서 해결해야 할 실질적인 핵심 문제에 적중하지 못하고 그냥 하던 대로 주자학을 외우는 데에만 온 힘을 기울이면서 헛발질을 했기 때문이다. 부강한 길을 가지 못하고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모두 위정척사만 부르짖었다. 지금도 우리는 사실 위정척사의 시절을 살고 있다. 배척과 반동의 시절이다. '적중'한 후에는 적중의 효과가 일정 기간 유지되는데, 그 효과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큰 원칙이 있지 않은가. 당연히 '적중'이라는 성취도 정점을 찍은 후에는 부패와 부식과 권태라는 생명 활동을 피하지 못하고 점점 효력을 잃는다. 여기서 이 사실을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않는지부터 스스로 물어보자. 그래야 다음 이야기들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논리적으로나 지적으로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국(새정부 수립)이나 산업화는 우리나라의 성공 사례 가운데 민주화만큼이나 빛나는 봉우리들이다.이 두 봉우리 없이 우리 기적의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 건국이나 산업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과는 어떤 대화도 시작하기 어렵다. 건국이 빛나는 성취가 된 이유는 그 시대에 중심 문제였던 건국이라는 시대 의식에 적중하였기 때문이다. 적중하였다고 해서 건국이라는 주제를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적중한 후에는 어떤 것도 바로 과거가 되어간다. 건국은 빛나는 성취를 완수한 후에 바로 부식되기 시작하여 다음 시대로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이행하여 산업화라는 시대 의식에 적중한 후 우리는 또 빛나는 성취를 이룬다.산업화에 적중하여 성취를 완수한 후에는 그것이 아무리 빛나는 성취라고 해도 부식을 피하지 못하고 또 다음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 우리는 또 다음 단계로 과격한 이행을 해서 시대 의식에 적중하였다. 민주화라는 큰 봉우리를 또 쌓은 것이다. 지금의 시대 의식은 민주화 다음으로의 이행이다. 민주화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에 기분이 나쁜지 아닌지를 우선 점검하자. 기분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지적이지 않다. 법과 논리보다 감정을 중시하는 인식의 초보적 단계를 지나지 못했다.산업화를 넘어서기 위해서 조금이나마 산업화를 비판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다음을 말하기 위해서 민주화의 부식 내용을 지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민주화 세력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물론 감정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다음 대화가 가능하다. 봄은 정점을 찍고 나면 바로 봄 자신을 부정하는 준비에 든다. 이것이 봄의 성숙이고, 성숙한 봄의 격조이다. 여름으로의 이행을 받아들인다. 봄이 봄 자신의 성취와 정당성에 취해 여름으로 넘어가기를 거부하면, 봄 자신이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전체 자연의 진화를 망친다. 산업화 세력이 산업화에 취해 산업화의 정당성만 고집하면 산업화 세력 스스로가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진보를 해치게 되는 것과 같다. 여름도 여름으로 완성되고 나면 바로 여름 자신의 정당성을 고집하지 않고 가을에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그리하여 여름 자신의 명예를 지킬 뿐 아니라 종내에는 전체 자연의 완성에 기여한다. 가을은 자신의 정점을 찍은 후 바로 자신의 정당성을 겨울에 양보한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사계절이 다 이렇게 성숙한 협력을 하면서 전체 자연을 항상 완성의 단계로 유지할 수 있다. 겨울이 겨울 자신의 정당성에 취해 봄으로 넘어가기를 거부하면, 겨울 자신이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전체 자연의 진화를 망친다. 민주화 세력이 민주화 시대의 세계관에 취해 민주화의 정당성만 고집하면 민주화 세력 스스로가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종내에는 나라 전체의 진보를 망친다. 지금 우리는 이 단계에 있다. 민주화는 부식하고, 새로운 아젠다는 세우지 못하고... 요즘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를 '자기 확신에 갇힌 몽환적 통치'라 비판하기도 하고, 민주화 세력들이 깃발을 찢어 완장으로 만들어 차고 다니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민주화의 부식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름이 자신의 정당성을 고집하느라 가을로 이행하기를 거부하면서 스스로 반동으로 전락하고, 그 결과로 전체 자연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과 똑같이, 산업화 세력이 산업화의 정당성만을 고집하며 산업화 다음으로의 이행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반동으로 전락하고 역사 발전의 장애물 취급을 받았듯이, 민주화 세력도 과거의 반동 세력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스스로 반동으로 전락하면서 나라의 진보와 진화를 가로막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지금 이 시대에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나 의식에 '적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성공 기억에 갇혀서 자신과 국가의 시제를 미래화하지 못하고 과거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자신의 성숙과 격조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부끄러움과 염치를 상실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 우려의 제일 앞에 대통령이 맹목적 지지자들과 함께 콘크리트처럼 굳건하다. 자신이 자신에게 갇힌 형국이다. 모든 논리와 법은 사회적 활동에 필요해서 나온 생산물들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면 아무 필요 없는 것들이다.자신이 자신에게 갇혀 고립되어 있다면, 논리도 법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자신이 자신에게 갇혀서 유기적 사회성을 잃으면 법과 논리는 필요치 않고 오직 감정이나 감각의 정체 없는 심리에 빠져 논리와 법을 무시하거나 거부한다. '내로남불'을 일상사로 삼거나 논리의 환각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면 국가의 진화나 진보를 가로막게 되고, 결국은 내 삶을 피폐하게 한다. 지도층의 피폐한 삶은 전 사회를 피폐하게 한다. 나는 이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비판자들을 제압하려는 논리의 환각 상태는 이미 만연해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감정적 악다구니이지 전혀 논리가 아니다. '민주화 투쟁기에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라고 묻는 입막음도 있다. 여기에는 그 시기만 우리가 살아야 할 시대라는 자폐적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다. 여름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는 완고한 봄의 기세를 닮았다. 그리고 민주화 시기에 대오를 이루어 힘을 보태던 이름 남기지 못한 대중들을 민주화의 소비재로 격하하고 도외시하는 자폐적 선민의식도 있다. 요즘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글을 쓰고 나면 댓글들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때는 아무 소리도 안 하다가 왜 문대통령만 갖고 그러느냐는 내용도 있다.감정을 벗고 논리에 집중하면 사람은 치우치지 않는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감정은 사적이고, 논리는 공적이다. 그러면, 모두가 '최순실 게이트'라고 말할 때 비교적 빨리 사태를 '박근혜 게이트'로 정리하고 "본질은 '박근혜 국정농단'이다"는 글을 발표할 수 있다. 이렇게 자기가 한 일을 예로 들어가며 글을 써야 하고 자신을 변명해야 하는 공포가 엄습하는 지금은 '문장의 수난 시대'나 '논리의 시궁창' 같은 시대이다. 극복의 대상이었던 '그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왔다.어느 코미디언이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 한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표현은 논리와 법을 무시하고 감정에 휩싸이다가 불편해지면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말이다.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하다가 발각된 학생이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반응했다면, 이는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하여 논점을 흐려버리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추미애 법무부장관이 "단순히 알 권리보다 조금 있다가 알아도 될 권리가 있을 것 같다."는 말로 현 상황을 지배하려 한다. 정말 민주화를 건너온 우리나라의 법무부 장관이 한 말로 상상이 되는가. 이 말이 누가 했는지 모를 때는 화가 났는데, 추미애 장관이 했다는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고 수긍이 된다면, 당신은 아직 논리나 법보다는 감정의 단계에서 살고 있다.'조금 있다가 알아도 될 것'은 우리가 정할 테니 너희들은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독재적 태도이다. "대통령 측근 수사 때 검찰개혁 추진하는 건 수사 방해로 비친다." 이 말은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누가 한 말인지 모를 때는 맞는 말처럼 들리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인 것을 알고 나니 듣기 싫어지거나 틀린 말로 들리면 당신은 아직 논리보다는 감정에 빠져 있다. 임미리 교수를 고발하는 일이 정말 가능한 일로 보이는가? 이 일로 화가 나면 당신은 논리적이며 공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상황 논리로 이해하려고 애쓰고, 얼른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싶어지면 당신은 아직 감정을 극복한 정도는 아니다. 논리의 환각 상태에 빠지거나 감정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왜 문제인가. 그것들에 좌우되는 한 우리는 이 시대에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에 적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 다음의 단계는 선도력을 갖는 단계이다. 과학의 단계이며 인문의 단계이며 논리의 단계이며 법의 단계이다. 종속성을 벗어난 단계이다. 더 독립적이고 더 자유스러운 단계이다. 이 시대의 급소에 적중할 수 있는 능력이 감정인지 아니면 논리나 법인지 잘 살필 일이다. 민주화 다음으로 상승하는 진정한 혁명을 꿈꿔야 한다. 감정을 벗어나 논리력만 회복하면 할 수 있다.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건명원 초대원장) ifston@daum.net

2020-02-17 18:00:00

김태선 경일대 디자인학부 부교수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공공(公空)에서 공공(公共)으로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의사를 만날 일이 잦아지듯, 도시도 시간이 지나면 손볼 곳이 생겨난다. 1960년대 경제 근대화와 함께 탄생한 한국의 근대도시들에선 -사람이라면 40세 즈음이 되던- 2000년대 초 공공디자인 사업이 시작되었고, 60세인 지금은 뉴타운사업, 도시재생사업 등 도시환경 개선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명칭이나 규모, 세부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지역 경제의 회복과 생활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公) 주도의 공(空)간 개발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공공(公共)디자인이라고 불리지만, 생활 인프라를 개선하는 공공(公空)디자인 사업이다.1980년대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한 미국 뉴욕시 지하철 사례를 보면, 공공(公空)디자인의 물리적 환경 개선은 지역의 긍정적 변화 요인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정부 주도의 공간 개발 사업들은 짧은 시간에 반듯한 도로와 쨍쨍한 건물의 별천지를 만들었지만, 변화의 시간을 10분의 1로 단축시킨 한국의 압축성장과 닮았다. 수필집 '삼십 년에 삼백 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에서 시인 김진경은 선진사회를 따라잡기 위해 "한국은 60년대 이래 30년 동안에 서구의 300년을 압축해 따라갔다" 그 맹렬한 속도 속에 스스로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별천지 개발이 반복되는 동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개발의 민낯을 살펴보는 것은 필요치 않았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공공(公共)의 이름으로, 정부 주도의 공공(公空)사업이 진행되어 왔다.공공(公空)사업으로 번듯한 아파트, 잘 가꿔진 공원, 좁은 골목길에 CCTV가 들어섰지만, 우리 주변엔 위험의 징후가 빈번하다. 아파트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 고독사,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 대낮 대로변의 흉기 난투극. 개발을 위해 개인이 감수해야 할 우연적인 위험은 사회구조화되어,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현실화되는 사회적 위험으로 진화했다. 압축성장의 그늘 속에 방치된, 잠재된 위태로움은 새로운 형태의 위험으로, 한국 사회가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한 위험사회와 닮아 있음을 말해준다.이 구조화된 위험의 그림자는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근대적 시스템이, 생활 인프라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은 본질적 가치 상실에 그 원인이 있다. 공공(公共)의 이름으로 공공(公空)을 지향해 왔다면, 이제 진정한 공공(公共)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울리히 벡이 '성찰적 근대화', 시민 참여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듯이 개선된 환경이 공공(公共)을 위한 생활 인프라로 무겁게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선 새로운 설비시설을 넘어 공공(公共)의 가치, '함께'의 가치가 실현되어야 한다.우연일지 필연일지 모르겠으나 최근 시민주도마을만들기, 시민주도디자인, 사회혁신디자인 등의 움직임이 있다. 시민 공조(共助)에 의한 공공(公共)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는 글자 그대로 공공(公共)디자인이다. 산업사회의 불확정된 위험 속에서 옆집 아줌마와 아저씨가 이모와 삼촌이 되는 사회, 우리 지역의 문제에 함께 공감하고 생각하는 '너와 내가 함께하는 연대(連帶)의 시대'이다. 시민이 손을 잡고 함께하는 공공(公共)디자인에 의한 새로운 마을을 기대해 본다.

2020-02-17 18:00:00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역사와의 대화] 조선시대의 전염병 공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문명과 과학, 정보가 발달한 21세기에도 전염병의 공포가 이처럼 심각한데, 이보다 모든 수준이 열악했던 전통시대 사람들에게 전염병은 그야말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전염병 기록은 먼저 실록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조선왕조실록에서 역병이나 역질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면 200여 건 이상 달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최초의 기록은 1393년 3월 태조가 심혈을 기울여 창건한 절인 양주 회암사에서 역질이 유행한 것이다. 회암사의 역질이 수개월 동안 계속돼 스님들이 다수 희생됐고, 왕사(王師) 자초는 급히 거처를 광명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1411년(태종 11) 5월에는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동안 서울과 지방에 역질이 돌아 백성들이 많이 요사(夭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역질의 공포는 조선 후기에도 계속됐다. 현종 때인 1671년 1월 3일에는 '경상도에 굶주리는 백성이 5천100여 명이었는데 역병이 잇달아 번져 죽은 자가 200여 명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소의 역질이 계속 전파돼 같은 해 8월에는 소 779마리가 역질로 죽었음이 나타난다. 당시 사람들에게도 전염병은 전쟁보다 무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현종실록에는 '팔도에 기아와 여역, 마마로 죽은 백성을 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였는데, 삼남이 더욱 심하였다. …늙은이들의 말로는 이런 상황은 태어난 뒤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도 더하다고 하였다'라고 증언하고 있다.1733년(영조 9)에는 전라도에 역질이 유행해 2천81명이 사망했고, 1741년 7월에는 관서지방에 역질이 들어 3천700명이 사망했다. 역질이 계속되자, 영조는 즉시 하교를 내려 "죽은 자는 방법을 다하여 거두어 묻어 주고 산 사람은 특별히 구원하여 살려내게 하라"며 사망자 시신 수습과 생존자의 구휼 정책에 나섰다. 그러나 사망자의 수는 급격히 늘어갔다. 경기에서 3천487명, 강화도에서 349명, 영남에서 1천933명, 황해도에서 46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전염병 폭풍이 조선을 휩쓸었다.조선시대 주된 전염병은 콜레라, 두창, 성홍열,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었다. 이 중에서도 백성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한 것은 콜레라와 마마라고도 불렸던 두창(천연두)이었다. 마마는 인공적인 인두(人痘), 우두(牛痘)가 생긴 후 천연적으로 생기는 병이라 해서 천연두라 불렀다. 마마가 무서웠던 것은 사망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겨우 살아나도 병의 후유증으로 얼굴이 얽어서 곰보 자국이 생겼기 때문이다. 워낙 공포의 대상이다 보니 '마마신'이라며, 엎드려 절하면서 제발 가기를 부탁하는 신이 돼버렸다.역병이 유행하면 기본적으로 환자와 격리 조치했다. 한양에 역병이 발생하면 환자나 시체를 도성 밖으로 추방하는 방식이었다. 성 밖에서 역병에 걸린 환자를 전담하던 곳은 활인서(活人署)로, 이들에게는 의원과 함께 의무(醫巫)를 배치했다. 평소 무의탁 병자를 돌보는 일을 맡다가 역병이 유행하면 따로 여막(廬幕)을 설치하여 환자들을 보살폈다. 굿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도 동원됐다. 무당이 나서서 몸에 악귀가 붙지 않도록 부채와 방울을 흔들고 장구도 쳤는데, '무당내력'이라는 책에는 마마신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역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여제(癘祭)가 상시, 또는 임시로 베풀어졌다.1708년(숙종 44) 3월 숙종은 역질이 치열하게 전파되자, 신하들을 보내 산천과 성황당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굿을 하고 제사를 지내도 역병의 유행을 해결할 수는 없었고, 의학적 방법의 수준이 올라갔다. 허준은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해 명의의 반열에 섰으며, 숙종 때 어의 유상은 왕의 두창을 치료한 공으로 종2품직까지 올랐다. 정약용은 홍역과 천연두 퇴치를 위한 이론을 정리한 책 '마과회통'을 저술했다.근대에 들어와서는 지석영이 우두법을 시행해 천연두의 벽을 무너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종 바이러스가 인류의 의학적 성과와 보건 위생의 철저함으로 인해 완전히 소멸할 것을 기대해 본다.

2020-02-17 18:00:00

우한 화장장의 휴대폰

[일상중국] 우한의 주인 잃은 휴대폰 더미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울림이 더 크다.중국 지인이 보낸 '장례식장 바닥의 휴대폰'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은 주인 잃은 수백여 대의 휴대폰 더미였다. 하루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100여 명이 죽어나가는 우한(武漢) 의 한 장례식장에서 촬영된 사진이었다. '주인 잃은 휴대폰 더미, 휴대폰 주인은 이미 한 줌의 재로 변했다'는 설명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문이 막혔다.휴대폰 주인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도 가족들과 춘절 연휴를 보내며 정을 나누던 우리의 이웃이었다. 그들이 우한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살았더라면, 환자가 집중된 우한시나 후베이(湖北)성이 아닌 곳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더라면, 사진 속 휴대폰으로 여전히 가족들과 안부 전화를 나누면서 다음 춘절을 기약하고 일터로 돌아갔을 것이다.후베이성 작가협회 전 주석인 소설가 팡팡(方方)이 써내려 간 13일 자 우한일기도 이 사진을 언급하고 있다. 팡팡은 의사 친구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내 마음을 부서지게 한 것은 의사 친구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이다. 요 며칠 동안 나를 더욱 비장함에 휩싸이게 했다. 사진은 장례식장 바닥에 쌓인 주인 잃은 휴대폰이다. 주인은 이미 모두 한 줌의 재가 돼 버렸다. 무슨 말을 하리오"(팡팡의 일기 중 발췌)라고 썼다하루에도 수천 명이 확진자로 확인되고 1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스크를 보내고 '우한 힘내라'(武漢加油!)라는 격려 메시지를 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마음이 아팠다.코로나19로 중국 내에서 공식적인 첫 사망자가 발생한 1월 9일부터 2월 16일 오후까지 37일간 6만8천593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1천66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지고 있다. 우한에서만 1천23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많은 사람을 전염병에 노출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람 간에는 전염이 되지 않는다'며 안심하라는 당국의 메시지 탓이라고 하기에는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춘절 연장 연휴가 끝난 10일부터 업무가 재개된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에서는 일상 복귀에 따른 인구 이동이 2차 코로나19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후베이성 내 모든 도시는 업무 복귀는 고사하고 주거지 외 출입을 제한하는 추가 '봉쇄령'이 내려졌다.베이징시 당국은 고향이나 외지 혹은 외국 등 지역을 막론하고 복귀하는 사람들에게 '14일간의 자가격리' 조치를 시행한다고 고시했다. 아파트와 주거지역 관리위가 각 가구마다 1, 2장의 출입증을 배부하고 이틀에 한 번씩의 외출만 허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지하철 출입구에서 체온 측정을 하고 발열자는 격리조치한다.연회와 만찬은 물론이고 3인 이상 식당 회식도 허용되지 않는다. '집밥' 개념이 우리와 다른 중국에서 식당 회식을 금지한다는 것은 지금껏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집보다는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중국에서 회식 금지는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여럿이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대처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게 마련이다. 회식 금지는 이런 민심 이반을 막겠다는 저간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중국의 정보 통제와 은폐는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바이러스는 진화를 거듭해 변종에 변종을 더해가면서 다시 인간을 공격할 것이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 대응하다가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와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이웃 나라 중국이 변종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세상이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 두렵다.

2020-02-17 18:00:00

[세월의 흔적] <61> 부엌과 주방

부엌과 주방은 전혀 다른 공간이다. 주방은 본래 궁중의 수라간을 말하던 소주방(燒廚房)에서 유래되었다. 그것은 음식을 불에 굽거나 조리하는 공간, 즉 취사만을 전담하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부엌은 취사뿐 아니라 실내의 난방도 담당하는 곳이다.20세기에 들어서 이른바 입식부엌이 선을 보이면서 부엌 또한 주방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그로 해서 부엌에서 주방으로의 변화를 여성의 지위 향상과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난방과 취사를 담당하던 부엌이 취사만을 전담하는 주방으로 바뀐 것은 그 기능이 축소되고 위상이 격하된 것이다.구석기시대에는 집 안이 아닌 앞마당에서 불을 피웠다. 그러다가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굴뚝을 설치함으로써 집안에서도 불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피웠던 불은 취사뿐 아니라 실내의 조명과 난방의 역할도 함께 담당하였다. 그런 가운데 고대 크로마뇽인들이 동굴 속 벽화를 그릴 때 동물기름으로 불을 켜는 돌 램프를 사용함으로써 최초로 불에서 조명의 역할이 분리되었다.난방과 취사의 기능은 분리되지 않고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 중세 유럽의 농가주택에는 큰 홀이 하나 있어서 중앙에 난로를 피웠다. 또는 구석에 벽난로를 마련하여 솥을 걸고 수프를 끓이는 것으로 난방과 취사를 함께 해결하였다. 과거에는 불을 그렇게 마음대로 땔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의 불로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일이 많았다.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의 온돌이다. 온돌은 아궁이에 붙인 불로 가마솥의 밥을 짓고, 그 열기가 구들을 통과하면서 방을 데우는 방식이다. 이때 최초의 부뚜막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앉으면 따뜻하였고, 저녁에 불을 때면 다음 날 아침까지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열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인 연도를 길게 만들어 여러 사람이 함께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하였다. 그것을 쪽구들이라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쪽구들의 크기가 넓어지면서 온돌이 되었다.전통부엌은 흙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신을 신고 생활하게 되었다. 옛 고구려시대의 집 내부도 흙바닥으로 마감된 채 방의 일부에 쪽구들이 설치되었다. 그때의 방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대부분 실내에서는 신을 신고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잠을 자거나 누울 때만 신을 벗고 쪽구들 위에 올라가는 방식을 택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온돌과 이러한 생활습관이 한반도 전역에 퍼졌다. 실내에서 신을 벗는 주거문화를 가진 민족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가까운 중국도 실내에서는 신을 신고 생활하고 있다.이 같은 생활문화로 보아 온돌과 신을 벗는 생활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온돌이란 부엌의 부뚜막이 점차 넓어지면서 변화 발달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집의 가장 근본적인 공간은 부엌이며, 안방도 여기서 파생 분화된 것에 불과하다. 서윤영이 쓴 "사람을 닮은 집, 세상을 담은 집"을 참고하였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20-02-17 18:00:00

지난 3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소재지인 용계리 일대에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 공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매일신문 DB

[기고] 달성 가창이 만만합니까?

"제발 남의 동네 넘보지 마시고, 거기 동네나 잘 챙겨 주세요. 아직도 이런 정치가 통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얼마 전 대구 수성구 지역 4·15 총선 예비후보들이 달성군 가창을 가지고 놀았다. 해당 지역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가창의 수성구 편입 공약 타당성을 놓고 설왕설래하며 인지도 높이는 데 혈안이 됐던 것이다. 뜨거운 공방을 먼저 시작한 것은 보수 성향의 한 후보다. 그는 주민들의 삶의 질과 상생 발전을 위해 가창의 수성구 편입을 선거 공약으로 냈다. 이어 또 다른 보수 성향의 한 후보는 긍정보단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극구 반대했다. 이에 뒤질세라 진보 성향의 한 후보는 주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를 명분으로 들며 가창의 수성구 편입을 지지했다. 이 과정에서 각 후보는 앞다퉈 보도 자료를 통해 논박하는 등 힘겨루기를 하며 지역 언론과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일각에선 이들의 막말과 상식을 넘는 발언의 배경이 어떻게든 공천을 받기 위한 수단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즉 지지층을 결집하고 당 지도자의 마음에 들기 위한 얄팍한 상술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그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지역구 기초의원(재선)으로서 이런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아쉽고 씁쓸한 생각뿐이다. 아니 답답함을 넘어 창피할 정도다. 주민을 위한 정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후진국 구태 정치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무능과 무사안일 행태가 바뀌지 않으며 시대에 역행하는 정치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이 돼 주지 못하고, 불신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했다며 개탄하고 있다.사실 행정구역 개편과 통합은 수십 년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검토해 온 해묵은 과제로 심사숙고해야 한다. 물론 시행하면 고비용·저효율의 행정 체계 개선과 지자체 간 불필요한 갈등 감소, 균형발전, 주민 생활 편의 등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반대로 지방분권화 역행과 사회적 비용 발생, 정치권 및 지자체장의 정략적 이용 등 부작용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분석돼 좀처럼 사업 추진에 속도를 못 내고 있다. 그리고 추진 절차와 시간도 만만치 않고 이러한 중요한 결정은 중앙 부처와 일선 지자체, 시민이 협의해 정리해야 할 몫이다. 총선을 코앞에 둔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란 뜻이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으로 예비후보와 유권자들의 접촉이 어려워 노심초사하는 건 이해하지만, 구시대적 정치 방법인 '아니면 말고' 식의 선거용 이벤트를 끄집어내는 건 지역 주민과 지자체 간에 갈등만 야기시킬 뿐 대구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사람은 누구나 막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은 공인이다.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커 그들의 말 한마디가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막말의 원인이 우리 정치구조에 있다 하더라도 더 근본은 정치인들의 인격적 결함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막말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또 공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총선을 앞두고 대구 유권자에게 호소한다. 정치인의 막말이 싫으면 그들을 반드시 심판해 달라. 개헌 또는 통일 등 어려운 해법 말고도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유권자가 총선에서 해야 할 일이다.

2020-02-17 15:54:51

이성환(계명대학교 일본학전공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동물 바이러스와 인류 역사

동물 가축화·조밀한 도시생활 결과 유행성 질병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동물성 세균이 전부 발병 원인 아냐 전염병 발원지 국민 경원하면 안 돼"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린 젊은 부부가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고민에 빠졌다. 남자 환자에게 감염을 의심할 만한 행동이 없었는지 물었다. 낮은 목소리로 최근 목장에서 양들과 수차례 성교를 가졌다고 했다. 옆에 있던 부인은 남편의 머리를 내려치고 병실을 나갔다. 의사는 원인을 알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균·쇠'(GUNS, GERMS, AND STEEL, 1997)에 나오는 동물과 인간 질병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책에서 그는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결정적 요인의 하나로 무기, 철과 함께 병균을 들었다.인플루엔자, 홍역, 페스트 등 전염성 인간 질병의 대부분은 농업을 시작하고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발생했다. 동물이 가지고 있던 세균이 진화(변이)하여 인간에게 옮겨왔고, 밀집 생활을 하면서 집단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최근의 중국발 코로나19도 박쥐에서 옮겨왔고 조밀한 도시생활이 집단감염을 유발했다. 전염성 질병은 동물을 가까이하고 조밀한 집단생활을 하는 인류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동물성 세균이 전부 인간의 질병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극소수만 인간에게 옮겨진다. 이 때문에 동물이 가진 세균의 진화 여하에 따라 인간이 새로운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인간에게 옮겨온 세균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인간에게 기침이나 재채기를 유도하여 새로운 숙주를 찾아가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 인간은 체온을 높여(발열) 세균을 죽이거나, 백혈구 등이 면역체계를 가동해 항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세균에 감염된 인간이 죽으면 숙주가 없어진 세균도 죽게 되는데, 이는 세균이 인간의 몸을 자기 생존에 맞게 개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일 뿐이라고 한다. 세균은 번식을 위해서는 오염된 인간을 더 오래 살려두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최근의 전염병이 독감 치사율보다 낮은 것은 의학의 발달뿐 아니라 번식을 위해 세균들이 진화한 결과인지 모른다.인간에게 진화한 병균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찍이 동물 병원체에 노출되어 항체를 가지게 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갔다. 수렵 채집을 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동물 병원체에 노출된 적이 없어 유럽인들에게 묻어온 세균에 대한 면역이나 유전적 저항력이 부족해 몰살을 면하기 어려웠다.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총보다는 그들이 가져온 세균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숫자가 더 많았다. 유럽인의 '사악한 선물'이었다. 같은 논리로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투보다는 전쟁 중 발생한 세균에 의한 사망자 수가 훨씬 많았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서는 무기 개발이나 전술보다 질병 예방이 먼저였다. 청일전쟁 중 일본군 사망의 90%는 만주에서의 수인성 전염병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일본은 질병 예방이 부국강병의 지름길이라며 위생에 힘썼다. '깨끗한 일본'은 청일전쟁의 산물이다. 전쟁이 끝나고 귀환하는 선박 687척, 전쟁 종사자 23만 명은 지금 세균의 배양접시가 되어 요코하마항에 격리되어 있는 크루즈선처럼 검역을 마친 후에야 본토 상륙을 허가했다. 러일전쟁 때는 모든 병사에게, 우리에게 위장약으로 잘 알려진 정로환(征露丸)을 의무적으로 복용하게 했다.정로환은 장티푸스, 소독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러시아를 정벌한다는 의미의 정로(征露)는 당시 일본의 유행어였다. 그 후 정로환은 러시아를 이긴 만병통치약으로 국민 상비약이 되었다. 2차대전 후 정벌의 의미를 없앤 정(正)로환으로 표기를 바꾸었으나, 지금도 해외 파견 자위대의 상비약으로 사용한다.유행성 질병은 농경생활, 조밀한 도시생활 그리고 세계화의 필연적 결과로 어디서든 발생하고 감염될 수 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는 질병명에 발원지명을 쓰지 않는다. 생쥐의 오줌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공기로 전파되는 유행성출혈열(E.H.F.)은 한국형으로 알려져 있다.이번 코로나19는 중국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필자가 있는 학교도 곧 1천 명 이상의 중국 유학생들이 돌아온다. 그들을 코로나19의 발원지 국민이라고 경원하면 안 된다.

2020-02-17 15:37:06

김득주 대구예술발전소 운영팀장

[매일춘추] 할리우드 길을 비추는 별 '메릴 스트립'

지난주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 수상으로 영화 '기생충'과 함께 오스카상이 화제가 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을 세운 이는 누구일까? 총 21회 노미네이트 기록을 세운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맘마미아', '철의 여인' 등의 작품을 통해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그녀는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된 영화 '더 포스트'에서 메릴 스트립은 당찬 여성 기업인의 모습에 내적 고민과 갈등하는 캐릭터에 인간미를 불어넣는 입체적인 연기력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더 포스트'는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30년간 은폐해 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담긴 정부기밀문서를 세상에 폭로 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보도 실화를 그린 영화다.워싱턴 포스트의 첫 여성 발행인 캐서린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은 경영난에 빠진 회사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미 정부가 금지한 보도를 강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당시 여성 사회진출이 달갑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 투자유치냐, 특종보도냐의 두가지 갈등이 고조에 달하는 순간 캐서린은 저널리즘과 페미니즘의 2가지 모습을 보여준다.법원에서 내린 펜타곤 페이퍼 보도금지를 어기는 특종보도를 하게 되면 회사가 투자유치에 실패하여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걱정하는 법률전문가와, 저널리즘의 자유와 진실을 보도하고자 8시간 동안 모든 것을 걸고 특종자료를 만들어 낸 편집부 사이에서 특종보도를 강행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미국 최초 여성 발행인으로서 저널리즘의 자유와 그녀만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더 포스트'는 특종보도라는 보도 과정보다 발행인 캐서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결단력 있는 여성리더이자 진정한 언론인으로 거듭난 캐서린을 부각시킨 것이다. 영화계의 여성 리더로 빛나는 메릴 스트립은 할리우드 배우답게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분석하여 표현함으로써 그녀의 뛰어난 연기가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소신 있는 소감으로 예술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책임감을 외치는 여성리더로 당당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행복과 성공의 공식은 단순하다. 단지 자기 자신이 될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스스로의 방식을 찾을 것"이라고 메릴 스트립은 말한다. 영화 속 캐서린이 언론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었듯이, 메릴 스트립은 할리우드의 길을 비추는 별이 되었다.

2020-02-17 14:10:50

김종성 한국예술인총연합회 대구지회 회장

[기고] 코로나19로 대구 예술계 휘청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공포에 빠졌다.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가짜 뉴스들이 나돌고 있고, 이 소식들은 국민을 더욱 불안케 하는 요소다. 질병관리본부와 방역 당국의 전달 사항을 믿고 국민들이 따라야 하건만 지역에서는 괴소문들이 많이 떠돌아다닌다. 확진 환자가 판정을 받기 전에 어느 곳을 돌아다녔다는 등 미확인 정보들이 흘러나와 그곳 주민들이 동요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대구시에서는 코로나19로부터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발 빠르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책에 여념이 없던 대구 지역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17번째 확진자가 확진 판정을 받기 전 대구를 다녀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코로나19 청정지역'이 무너질 우려가 생긴 탓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있던 대구 시민들 사이에서도 감염에 대한 공포가 높아졌다.대구시가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여러 가지 방도를 내놓은 가운데 심지어 예술 공연마저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강수를 두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시립교향악단 등에서 계획했던 공연들이 4~11월로 미뤄지고, '대구 시민의 날' 선포 축하 기념음악회도 잠정 연기되는 등 문화예술 공연이 된서리를 맞았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공연장이나 소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지역의 크고 작은 공연들 중 상당수가 연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문화계 종사자들이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겨울철 비수기를 어렵게 견디고 나서 2월부터 본격 활동을 하려던 대구의 문화예술계가 타격을 받아 휘청거리면서 울상을 짓고 있다. 지금까지 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예술공연까지 큰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이 됐으니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필자 입장에서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악재가 찾아올 때마다 문화예술계는 쪼그라들었지만, 피해를 토로하거나 보상받을 길이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코로나19로 국민이 불안한 이때, 당국의 철저한 대책은 당연하지만 전염병에 대한 우려를 과도하게 확산시켜 국민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실제로 확진 환자가 하나둘 완쾌하고 있고, 또 정부 당국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 연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국내 확진자의 임상 면역학적 특성을 연구하고 치료용 항체 개발을 위해 광범위하게 항원과 항체를 발굴하면서, 백신 항원 전달체와 불활성화 백신 등 다양한 형태의 백신을 개발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다행스럽게도 정부는 최근 예정돼 있던 축제나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해야 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며 일상생활로 돌아가 달라고 당부했다.행사 주최 기관이 방역 조치를 충분히 하면서 행사를 진행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노인과 임산부 등 취약계층이 밀폐된 공간에서 집결하는 행사는 대상을 줄이거나 행사를 연기하라고 권고했다. 정부의 이런 결정이 대구 문화예술계에도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2-16 16:27:37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이른 아침에] '많이 본 뉴스'

포털 제공 '연령별 많이 본 뉴스' 1020과 5060 관심 완전히 달라세대 간의 공감은 관심에서 생겨 한 번씩 서로 곁눈질이라도 하길하루 몇 번은 휴대폰으로 뉴스를 본다. 실은 포털 사이트가 차려주는 대로 읽는 거지만 꽤 장점이 있다. 우선, 언제 어디서고 주요 뉴스를 한눈에 훑을 수 있다. 그리고 뉴스 정보를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한 결괏값, 즉 실시간으로 생산되는 부가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뉴스포털 'N'사의 '연령별 많이 본 뉴스'는 그렇게 제공되는 서비스 중 하나다.지난달 24일, 역시나 폰으로 뉴스를 뒤적이다 이곳에 눈길이 꽂혔다. 한 종류의 뉴스가 화면 가득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데 1020세대가 '많이 본 뉴스'의 헤드라인이 모조리 '신종 코로나' 아니면 '우한 폐렴'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도 잘 없을 때였고 첫 번째 환자가 발생했다고는 하나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았다. 그건 바로 옆, '3040세대가 많이 본 뉴스'만 눌러 봐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코로나 관련 뉴스가 단 한 건도 순위에 올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러다 바이러스보다 괴담이 더 빨리 퍼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랬다. 아래 세대의 관심은 여전히 '신종 코로나'에 있었고 위 세대의 관심은 역시 다른 곳에 있었다.그런데 1월 말을 지나며 상황이 급전직하 나빠졌다. 감염 지역과 의심 환자 수가 대폭 증가하고 감염 환자 수도 두 자리로 늘었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찾았다. 수요가 폭증하자 물품은 금세 동나고 화면에 뜨는 '품절' 표시는 다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켰다. 상황을 설명하는 정부 관계자들 얼굴에도 긴장이 묻어 났다. 사태의 추이를 전하는 속보가 이어졌고 확인을 하려면 더 자주 휴대폰을 꺼내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5060세대의 '많이 본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1위에서 5위까지를 남김없이 정치 관련 뉴스가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회 공통의 관심사로 떠올랐음에도 그곳은 그야말로 '코로나 무풍지대'였다.이 '많이 본 뉴스'를 확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슬며시 궁금해졌다. '세상이 온통 난리인데 여긴 언제쯤 순위에 올라올까?' 하지만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5060세대는 끄떡하지 않았다. 그날, 50대가 '많이 본 뉴스' 1위에서 5위까지의 모든 헤드라인은 '추미애 아들 군 휴가 미복귀'였고 60대 이상은 여기에 '조국 아들 인턴 증명서'가 하나 더 있었다. 그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다. 태풍 '링링'이 왔을 때도, 고성에 산불이 났을 때도, 화성연쇄살인의 범인이 잡혔을 때도 이들 세대가 '많이 본 뉴스'는 언제나 '정치'였다. 그리고 지난주,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 꿈같은 일어 벌어졌을 때도 이들 세대가 제일 많이 본 뉴스의 헤드라인은 '사법 농단 폭로자라던 이수진의 두 얼굴'이었다.그런데 같은 맥락에서 보면 아래 세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나라의 중대사보단 언제나 '연예인 스캔들'이 먼저이고 자신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고 모르는 것을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 말하기 일쑤다. 이토록 위 세대와 아래 세대의 관심이 한 번을 겹치지가 않는다. 나라가 휘청거릴 만한 일이 생겨도 그런다. 대신 '꼰대'니 뭐니 하는 부박한 말들은 일상에 잦아들었다. 영국의 BBC는 '본인이 늘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을 '꼰대'라고 소개했지만 그건 나이 어린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들 사이에 공감대란 없다. 심지어 나와 다른 세대의 사람 또한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어쩌면 이게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세대 간의 공감과 연대가 사라지면 사회가 황포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유지 존속하게 하는 힘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연령별 많이 본 뉴스'를 쉽게 보아 넘기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지닌 내력은 이렇지 않다. 국채보상운동 때도, 2·28민주운동 때도 세대와 세대가 공감하고 연대하며 서로를 지켜주려 애썼다. 이해는 관심에서 생기고 공감과 연대는 이해의 바탕에서 자란다.오는 21일은 국채보상운동의 '그날'을 기려 새롭게 제정된 '대구 시민의 날'이다. 그런 만큼 다른 세대가 '많이 본 뉴스'에 한 번씩 곁눈질이라도 해보자.

2020-02-16 15:08:43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매일춘추] 봉준호와 문화콘텐츠

우리는 문화콘텐츠가 세상을 바꾸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화콘텐츠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힘은 점점 커지고 있다.문화콘텐츠산업이 21세기 신 성장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언하면서부터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바로 '연결'이다. 사람과 기계가 연결되고 기계와 기계가 연결되는 초연결의 시대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정보를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 기반의 빅데이터와 플랫폼이다.이러한 연결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환경적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이유도 물질적 경제 성장 기반에서 문화콘텐츠 생산의 필요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가 수반되고 있고 인간 삶과 콘텐츠의 가치를 우리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며칠 전 전 세계 영화인들이 세계 최고의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이 시상식에서의 수상은 최대 영예의 영화상이며 우리들에게는 '오스카상'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총 11개 부문의 시상에서 대한민국 대구 출신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4관왕을 차지하며 전 세계인에게 주목받고 있다.영화산업이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신 성장 산업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상 발표와 함께 수많은 정치권에서 영화산업 관련 공략들을 쏟아 내는 것도 지역혁신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문화콘텐츠산업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기생충의 배경이 되는 '반지하'가 새로운 대한민국 문화로써 외국인들의 관심을 얻고 있고, 영화에서 소개된 '짜파구리'는 우리의 다양한 음식문화 중 하나로 세계인들이 관심 가지고 있지 않는가! 문화콘텐츠가 가지는 힘은 이러한 핵폭탄과도 같은 '창구효과'가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기 때문이며, 빠르게 확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과 함께 대구에 쏟아지는 다양한 정치적 문화공략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협소한 관련 시장 환경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장을 주도할 만한 전문 기획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이 적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가 있다. 하지만 문화콘텐츠의 시장은 우수한 콘텐츠가 생산되는 곳에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확장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이러한 시장을 만들고 이를 통해 다양한 '창구효과'를 이끌어내며 주도권을 잡는 것이 필요한 주요 전략이다.기획과 체계적인 전략수립을 통한 빠른 시장 점유를 위해서는, 결국 문화를 이해하고 콘텐츠 개발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기획 인력양성을 위해 민간과 기관, 대학, 시민들이 지역사회 발전과 혁신을 목표로 함께해야만 할 것이다.

2020-02-16 14:30:00

종이에 담채, 16.6×21.7㎝,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조희룡(1789-1866) '홍매'

아래쪽으로 드리워진 가지를 포착한 도수식(倒垂式) 구도로 홍매를 그렸다. 매화가지는 옅은 먹색의 시원한 단 붓질로 이리저리 뻗어냈고, 매화꽃잎은 크고 작은 붉은 점으로 점점이 찍었다. 윤곽선이나 세부 묘사 없이 형태와 농담, 색과 질감을 단번에 드러낸 몰골법(沒骨法), 무골법(無骨法)으로 그렸다. 필과 묵의 활용에서 필법의 기(氣)보다 묵법의 운(韻)이 장점인 기법이라 조희룡의 '홍매'는 붉은 꽃과 간결한 가지가 어울려 화사하면서도 우아한 그림이 되었다.조희룡은 김정희 문하를 출입하며 영향을 받았다. 화가로서, 이론가로서, 지식인으로서의 역량이나 당시 미술계에서의 영향력 또한 김정희 못지않았지만 김정희파로 묶이며 제자 급에서 벗어나지 못해 조희룡은 좀 억울할 것 같다. 나이도 세 살 차이 날 뿐인 동년배다. 조희룡이라는 이름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림은 매화이다. 조희룡의 매화그림은 지극한 매화 사랑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의 매화 사랑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매화를 몹시 좋아하여 내가 그린 매화대병(梅花大屛)을 침실에 둘러놓았다. 벼 루는 매화시경연(梅花詩境硏)을 쓰고, 먹은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煙)을 쓴다. 앞으로 매 화시 일 백 수를 지으려고 하는데 매화백영(梅花百詠)이 완성되면 매화백영루(梅花百 詠樓)로 편액을 달아 내가 매화를 좋아하는 뜻에 통쾌하게 보답할 것이다. 시가 빨리 지어 지지 않아 괴롭게 읊조리다 갈증이 나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마신다. 매화병풍 아래서 잠들고, 일어나면 매화 먹을 매화 벼루에 갈아 매화그림을 그리고 매화시를 쓰다가 매화차를 마시고 다시 매화병풍 아래에서 잔다. 만약 매화의 정령이 있다면 어떻게 조희룡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정도의 벽(癖)과 몰입이 있었기에 조희룡은 매화그림의 신기원을 이룰 수 있었나 보다. 그가 매화그림에서 이룬 혁신은 당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조희룡은 백매, 홍매, 홍백매, 전수식(全樹式) 홍백매 등 다양한 유형의 매화그림을 남겼다. '매화서옥도'(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는 탐매도(探梅圖), 심매도(尋梅圖)의 전통을 계승하여 산수화와 결합시킨 걸작이다. 조희룡은 김정희풍 묵란으로 그림을 시작했고, 묵죽도 잘 그렸다. 그러나 김정희의 묵란, 신위의 묵죽은 그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청나라 중기 동심(冬心) 금농이 묵죽으로 그림을 시작했으나 판교(板橋) 정섭을 도저히 능가할 수 없게 되자 매화로 방향을 바꾸어 유명해지게 되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매화그림을 이야기할 때 청나라에서는 금농을, 조선에서는 조희룡을 빠트릴 수 없다. 조희룡은 매화에 몰입하여 성공했다. 미술사 연구자

2020-02-16 06:30:00

이미자 '저 강은 알고 있다' 매일신문 DB

[2020 세상읽기] 우리들의 소울 송

지난해부터 가열된 트롯(trot) 가요 열풍이 가히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연히 TV의 트롯 경연 프로를 접한 뒤로 나 또한 속절없이 그 속으로 휘말려드는 참이다. 시도때도 없이 트롯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 CD도 몇 개나 구입했다. 오래간만에 조우했음에도 세월의 간격이 느껴지지 않고 여전히 정겹기만한 옛동무같은 느낌이랄까.선풍적인 트롯 인기는 아스라한 옛 기억들도 불러낸다. 중학 1,2학년때쯤 집에 처음으로 라디오가 생겼다.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던 그 시절, 직육면체의 작은 상자는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열심히 땀 흘리던 서민들에게 살가운 그 무엇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었고,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실감나게 펼쳐지던 연속극은 일상의 즐거움이자 화젯거리였다.유행가에 얽힌 기억의 편린들도 모자이크처럼 떠오른다. 사춘기의 우리 또래들은 이따금 함께 모여 어른들의 노래인 유행가를 몰래 불러보곤 했다. 내 생애 첫 유행가는 이미자의 '저 강은 알고 있다' 였다. 젖살 덜 빠진 단발머리 소녀가 "~한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모질게 살아가는 이 내 심정을 저 강은 알고 있다" 라는 한맺힌 노래를 의미도 모른채 불러댔으니….그러고보니 '노래자랑 대회'도 있었다. 그 무렵 내가 살았던 면(面) 소재지에서는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 노래자랑 경연대회가 열리곤 했다. 장터에 가설무대가 만들어지고 노란 알전구가 불을 밝히면 삼삼오오 초저녁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무대 주변에 모여들었다. 대다수는 한창 가슴 달뜬 청춘남녀들이었고, 여드름쟁이 십대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마을의 양조장집 오빠가 시골서는 보기드문 드럼을 치기 시작하면 우리는 경이에 찬 눈빛을 보냈다. 또 아마추어 기타리스트가 '당당당 당 다앙 다앙~' 하며 신명나게 트위스트 리듬을 연주하면 무대 위아래 관객들은 팔다리를 움찔거리며 흥겨워했다. 훗날 알았지만 1960년대 전세계를 휩쓸었던 미국 벤처스 악단의 빅히트곡 '상하이 트위스트' 였다. 마이크를 잡은 동네 가수들의 노래와 춤이 끝날 때마다 터지는 박수소리와 휘파람 소리…. 밤이 이슥하도록 요란벅적했지만 마을의 그 누구도 시끄럽다며 삿대질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가설무대의 불빛이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도 노랫소리는 여진(餘震)처럼 남아 밤새껏 귓가에 맴돌았다.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한명숙의 '노란샤스 입은 사나이',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오기택의 '고향무정'….그렇게 친숙해진 나와 트롯의 관계는 언제부터인가 사이가 벌어졌다. 노랫말이란게 온통 뻔한 사랑타령에 눈물, 이별, 고향타령 뿐인데다 멜랑콜리한 곡조 또한 사람 마음을 스멀스멀 염세적으로 물들인다고 여긴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트롯은 나의 관심 밖이었다.그런데 요즈음 불꽃 튀는 트롯 경연대회를 다시금 접하면서 트롯의 진화를 느끼게 됐다. 형식만 해도 전통적인 엘레지를 비롯해 발라드풍, 댄스풍, 국악풍, 락(rock)풍에 힙합 스타일까지 스펙트럼이 한결 다채로워졌다. 애조(哀調) 띤 노래 일색이던 과거와 달리 밝고 서정적이고 흥 넘치는 멜로디에 시(詩)적이고 심지어 철학적인 가사들도 적지 않다. 아기같은 얼굴의 초등생부터 20대 전후의 말끔한 청년세대까지 트롯 애호층이 부쩍 확장된 것도 놀랄만하다. 이참에 '슬픈 노래'에 대한 나의 편견도 교정했다. 슬픈 영화를 보고 한바탕 눈물 흘린 뒤의 개운함처럼 애달픈 가사와 곡조의 트롯에도 그런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한국의 트롯처럼 세계 각국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대중음악들이 있다. 프랑스의 샹송이나 이탈리아의 '칸초네', 포르투갈의 '파두(fado)', 그리고 일본의 '엔카'와 중국의 '민꺼(民歌)' 등등. 모두가 제각각 민족 특유의 체취나 서정이 깊숙이 배어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네 트롯이 좀 더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지 않나 싶다. 일본의 '엔카'와는 원조를 따질만큼 비슷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엔카'가 대개 항구, 술, 눈물, 여자, 비, 눈(雪) 등 애상(哀傷)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틀에 박힌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비해 우리 트롯은 훨씬 그 폭이 넓고 활달하고 자유롭다. 게다가 트롯 노래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특유의 꺾기 창법은 그 어떤 나라와도 차별화되는 필살기라 할만하다.한국인의 애창곡 순위에는 예외없이 대중가요가 상위 순번에 오른다. 높은 사회적 지위의 고관들도, 으리으리한 부자들도, 유명짜한 셀럽들도 마음 편한 자리에서는 트롯을 부른다. 확실히 트롯이야말로 우리 한국인의 '소울 송(soul song)'인 것 같다.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변방의 한국영화가 난공불락의 장벽을 시원스레 허무는 쾌거를 이루었다. 세계 팝뮤직계에 돌풍을 몰고 다니는 방탄소년단(BTS)과 K팝, 해외 여성들을 사로잡는 K뷰티, 건강식의 다크호스 K푸드에 이어 바야흐로 K무비가 지구촌을 열광시키고 있다. 한국문화의 파워가 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국산 트롯이 세계인들을 매료시킬 날도 오지 않으려나. 금발의 독일 출신 트롯 가수 로미나가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를 감정에 몰입돼 부르는 모습을 보니 문득 그런 기대감을 갖게 된다. 마침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날로 급증하는 추세 아닌가. 피부색도, 눈동자색도 다른 지구촌 남녀들이 '메이드 바이 코리아(made by Korea)' 트롯을 꺾기 창법을 구사해가며 한국말로 멋들어지게 부르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전경옥 언론인

2020-02-15 15:00:00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광장] 기생충이 풍기는 시대의 불편한 냄새

냄새에도 계급이 있다. 우리 사회 모든 요소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아파트, 자동차, 살고 있는 동네, 지역, 학교, 하물며 가방이나 옷에도 계급이 스며 있다. 아파트 브랜드를 기준으로 생활 수준의 계급을 정하면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휴거'(휴먼시아 거주), '엘사'(엘에이치에 사는 사람)라는 계급으로 비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자동차는 배기량이나 수입 여부에 따라 계급이 매겨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강남과 강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지역 계급도 있다. SKY 대학과 수도권 대학 그리고 지방대의 구분은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취업 상황의 기준 계급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냄새를 풍긴다. 우리가 계급을 느끼는 요소는 수도 없이 많다. 모든 사람을 갑과 을로 교묘하게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모두 알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계급 요소들에 배여 있는 냄새들이다. 냄새에는 계급이 숨어 있다. 이 냄새는 혐오와 차별을 동반하기도 한다.'기생충'이 아카데미까지 휩쓸었다. 기왕이면 영화 '기생충'의 흥행에 숟가락을 하나 얹어보자면 계급이라는 것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모든 시민이 평등을 얻어내게 된 대표적 역사적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1789)이었다. 우리나라는 갑오개혁(1895)이었다. 아래로부터 혁명이든, 위로부터 개혁이든 18세기 이래 신분제는 꾸준히 폐지되어 왔다. 결국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며(1조)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2조) 법 앞에 평등하다(7조)까지 수도 없이 평등함과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우리 헌법 11조를 통하여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고,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역사와 전통에 권위까지 가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바로 평등권인데도 영화는 차별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방증일 것이다.사실 과거에는 적은 자원을 나눠서 비슷하게 살다 보니 서로의 냄새는 비슷했다. 어린 시절에 같은 반 친구 중에 가장 잘사는 친구는 슈퍼집 아이였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외제차를 가진 집도 드물던 시절에는 서로 비슷비슷한 삶을 공유했다. 모두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면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반지하뿐 아니라 넓은 정원을 가진 채광 좋은 집과 반지하 아래 어두운 지하실도 같이 공존하며 계급이 된다.지금 한국 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자원이 늘어난 상황이다. 문제는 이 늘어난 자원이 적당히 분배되어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한곳으로 치중되는 데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계급을 생성한다. 계급제가 폐지된 사회인지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우리 삶을 나누고 있다. 냄새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더라도 희석하거나, 그 냄새가 혐오와 차별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평등권에 기초한 국가의 제도 마련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대구 출신을 이유로 봉준호 감독 생가 복원이나 기생충 조형물 설치를 논하기 전에 영화 '기생충'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인권정책 마련을 지역 정치의 장에서 우선 논의하길 바란다.

2020-02-14 14:30:00

박소득 전 경상북도농업기술원장

[기고] 기후변화와 위기의 한반도 농업

올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다. 예년에 비하면 겨울다운 날씨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인들은 날씨 변화에 다소 둔감하지만 농촌지역, 특히 농민들은 날씨와 기후에 따라 생산 활동 전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최근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이 꾸준히 상승하고 강수량이 증가하는 동시에 집중호우와 가뭄이 심화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지진, 가뭄, 폭우, 폭설 등의 기상이변을 가져오며 세계적으로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기후변화는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어 전통적으로 기후 의존적 산업인 농업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농가가 침수되고 폭염이나 가뭄으로 인한 농산물 생산 저하는 세계적으로 농산물 가격을 상승시킨다.기후변화는 기후 의존도가 높은 농업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쳐 안정적 생산에 위기를 초래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되고 지구 표면 온도가 상승되는 기후변화로 이어져 재배 적지가 변화되거나 병해충 잡초의 확산으로 수량과 품질이 저하되는 등 상당한 변화와 피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정책적·기술적 전략이 필요하다.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가뭄, 토양이 유실되고 물 부족으로 농업 기반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 기온은 작물의 재배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개화, 결실 시기와 재배 지역까지 결정한다. 제주도에서만 생산하던 밀감, 한라봉은 전라도·경상도 내륙 남쪽까지, 녹차와 무화과도 내륙 중앙까지, 포도는 강원도까지 재배 지역이 북상해간다.금후 2090년경에는 대구에서만 생산하던 사과는 재배 적지가 자꾸 북쪽으로 이동하여 급기야는 한반도 1% 지역에서만 생산 가능하다고 한다. 또 의성, 단양 등지에서 추운 겨울을 나는 한지형 마늘은 쭉 밀려 올라가서 백두대간 고산지역 일부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것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 대부분 지역의 따뜻한 곳에서 재배되어 왔던 난지형 마늘로 대체될 전망이다. 온난화로 인하여 여름철 주산지인 고랭지채소의 재배도 면적이 감소되는 추세이고 겨울철 기온 상승 등의 기후변화는 새로운 병해충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피해 지역은 점점 확산하고 있다.최근 여치, 메뚜기, 꽃매미 등의 해충이 확산되고 외국서 유입된 잡초 및 토종 잡초의 이상 발생 확대로 유기농, 친환경농업에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축산물에서도 소, 돼지, 닭 등 가축에서 치사율이 높은 고병원성 병들이 발생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문젯거리인 구제역의 발발 확산과 치사율이 굉장히 높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고병원성 세균, 바이러스가 기류와 공기를 타고 확산한다. 동식물바이러스 모두 기후, 기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식물바이러스의 경우는 기온이 낮은 겨울에 다발하며 동물바이러스는 봄가을에 주로 유행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 산란계의 경우 고온 시 고온 스트레스로 인하여 산란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국가식량안보체제의 확립을 위하여 기후변화 감시 예측, 조기 대응 체제를 구축하고 연구지도기관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농업의 정보화, 자동화 등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국제 협력을 통한 정보 공유, 녹색성장에 대한 국가 전략 수립 등 기후변화에 대한 종합대책을 수립, 적절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20-02-13 15:22:12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시대산책] 북한의 방역 수준

고도로 통제된 사회 인식과 달리 북한의 전염병 감시는 매우 허술코로나19 한번 퍼지면 제어 불능 관광 포기하고 국경 봉쇄를 선택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중국의 양돈산업을 초토화시키고 한국의 양돈농가를 공포에 떨게 했지만 전 세계의 양돈산업 중 돼지 사육 마릿수당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북한이다. 북한의 ASF 피해는 북한 당국이 한 번도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만 북한 내부 소식통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혹한 수준이다.한국과 중국에서 감염된 돼지와 그 주변 돼지를 살처분하는 것과 달리 북한에서는 주변 돼지뿐만 아니라 감염이 확인된 돼지도 먹거나 내다 팔아 문제를 더 크게 키웠다. 중국에서 ASF 여파로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한 것과 반대로 북한에서 ASF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사람들이 워낙 돼지고기를 많이 내다 팔아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했다는 것은 북한의 방역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북한의 돼지 감염이 워낙 광범위해서 야생 멧돼지까지도 널리 감염되었고 이것이 휴전선을 뚫고 남한에까지 내려온 것이다.흔히 북한을 고도로 조직되고 감시되고 통제된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잘못된 인식인지를 강연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 번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북한 사회는 10가지 영역 중 8, 9개 영역에서 조직 수준이나 감시통제 수준이 대단히 낮다. 전염병에 대한 감시통제, 마약에 대한 감시통제, 절도강도강간 등 일반 범죄에 대한 감시통제, 부정부패에 대한 감시통제, 지하시장경제나 시장 교란에 대한 감시통제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감시통제 수준이 매우 떨어진다.한국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으로 감시통제 수준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다른 개도국에 비해 그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에이즈(AIDS)에 대한 북한의 통계는 접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다른 것에 비춰봤을 때 에이즈에 대한 북한의 감시통제도 아주 허술할 것으로 보인다.반체제 세력에 대한 북한의 감시통제는 매우 철저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한국의 경우 반체제 세력의 발언이나 활동이 아주 극단적인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허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안 당국에서는 반체제 세력 내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를 거의 다 알고 있다.그러나 북한에서는 반체제 활동에 대해 워낙 잔인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철저히 자신의 성향을 숨기고 누가 어떤 성향을 갖고 있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알기가 어렵다. 보위원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엉뚱한 사람을 고문하여 간첩으로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고 보위원에게 뇌물을 주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그리고 체제를 지지하건 반대하건 똑같이 김일성 3대에 대한 찬양가를 부르는 일이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 있다 보니 겉모습에서 반체제 성향의 사람을 적발하기는 극히 어렵다. 이런 측면들을 고려해 볼 때 북한에서 아무리 반체제 발언이나 활동에 대한 처벌이 잔혹하다고 하더라도 반체제 세력에 대한 종합적인 감시통제 수준이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최근에 북한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한 우려 때문에 중국과의 국경을 완전 폐쇄해 버렸다. 일반인들의 왕래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대형 국영 무역회사 간부나 외교관들도 국경을 넘는 허가 얻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최근 몇 달간 줄줄이 북한으로 귀환하던 중국 체류 북한 근로자들도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비자 기한이 곧 만료되는 사람들은 영락없이 불법체류자가 될 신세다. 중국에서 잡힌 탈북자들의 북한 송환도 전면 중단시켜 버렸다. 최근 3년 동안 북한에 대한 고강도 제재가 진행 중이고 북한의 무역적자도 매년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그에 대한 돌파구의 하나로 관광산업을 선정하고 금강산-원산 지구와 백두산 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을 진행해왔고 중국 정부로부터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받기도 했다.북한의 현재 처지가 그렇다 보니 북한의 마지막 생명줄인 관광을 포기하고 국경을 완전 봉쇄하는 고강도 조치를 취한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ASF를 처리하는 북한 당국의 능력을 볼 때 일단 코로나19가 북한에 퍼지기 시작하면 통제가 불가능하고 차라리 국경을 전면 봉쇄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20-02-13 15:18:20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대구⋅경북의 목마

얼마 전,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에 대비해 졸업식과 입학식이 취소되었으며 개강도 2주 미룬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언론매체나 SNS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식을 들었지만, 이렇게 학교 측의 직접적인 통보를 받으니 심각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최근 두어 달간은 코로나19가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의심 환자 및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는 추세이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의 공포는 확산 속도만큼 빠르게 퍼져 우리의 생활 방식과 경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람이 많은 곳은 기피하고,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여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다. 이러한 불안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당초 예상했던 범위를 벗어나고 있고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종식될 때까지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짧으면 봄, 최악의 경우에는 내년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2020년 대구⋅경북 문화예술계에 커다란 비상이 걸리고 있다. 대구⋅경북은 '2020 대구⋅경북 관광의 해'로 지정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히려 관람객의 수는 예년보다 70% 이상의 감소를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각종 공연과 전시는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 적신호가 곳곳에서 켜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사업은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물론 최악의 경우까지 갈 확률은 매우 적다고 말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해둬야 하겠다.이러나저러나 해도 결국 문화예술 사업에서는 관람객의 유치가 가장 큰 사안이다. 어떤 장르의 예술이든, 특히 동시대의 예술에서 최종적으로 예술을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다. 다시 말해 동시대 예술에서 관객의 역할은 단순히 '구경꾼'의 수동적 역할을 넘어 '해석가'의 능동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의 작품을 보더라도 관객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이 가지는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다양하게 해석된 이야기는 예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관객들의 관점과 경험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객들에 힘입어 현재 대구⋅경북 문화예술의 발전 양상은 분명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코로나19가 아킬레스건을 노리고 있다.세계 각국의 보건 당국은 코로나19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지만 하루 빨리 현사태가 진정되고 종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시만 목마 속에서 조심하며 웅크리고 있으면 곧 대구⋅경북의 여러 축제와 공연, 전시 등을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다.

2020-02-13 11:36:02

대구 영남중 교사

[대구 옛 이야기] 단종 복위 사육신, 박팽년과 육신사(六臣祠)

문종의 유일한 왕자인 단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등극하자, 종친 세력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부상하면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드러내며 경쟁 관계에 놓였다. 동시에 어린 군주를 보필하던 영의정 황보인과 좌의정 김종서의 대신 세력들도 권세를 강화하였다.수양대군은 권람·한명회·신숙주 등을 심복으로 삼은 뒤에 의정부 대신과 안평대군을 제거하고자 거사 준비를 착실하게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1453년 황보인과 김종서 등이 장차 단종을 폐위하고 안평대군을 추대하려는 반역을 도모했다고 일을 꾸며 계유정난(癸酉靖難)의 명분으로 삼았다. 곧바로 수양대군 일파는 역모의 올가미를 씌워,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척살하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냈다가 교동도에서 사사하였다.단종은 군국사무를 수양대군에게 맡김으로써 수양대군은 정치권력의 실세가 되어 수양의 공신과 다를 바 없는 정난공신을 자신의 일파들로 채웠고, 조정의 요직에 앉혔다. 급기야 수양대군 세력은 1455년 단종을 위협하여 양위를 받아내고 수양대군을 즉위시켰다.세조가 즉위한 지 1년 뒤인 1456년에 집현전 학사 출신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 등과 무관이었던 유응부·성승·박쟁 등이 단종의 복위를 다짐하던 중, 성승과 유응부가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환영하는 연회에 참석할 별운검(別雲劍·임금의 신변을 호위하는 무사)으로 선발되었는데, 이를 기회로 세조와 의경세자를 처단하고 상왕으로 쫓겨난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그러나 거사 당일 별운검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성삼문과 박팽년 등은 후일을 기대하며 거사를 미루었다. 이에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한 김질이 그의 장인 정창손에게 이 거사 계획을 알렸고, 정창손이 이를 다시 세조에게 고변함으로써 사육신을 비롯한 반왕 세력들은 극형에 처해지고, 그들의 가족들은 처형되거나 공신들의 노비로 전락하였다.사육신 중에 한 사람인 박팽년(1417~1456)은 1434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무려 18년 동안 집현전에서 재직하였는데, 경학과 문장 실력은 집현전 학사 중에서 단연코 으뜸이었다. 박팽년은 탁월한 재주를 바탕으로 의방유취(醫方類聚)·동국정운(東國正韻)·고려사(高麗史) 등의 서적을 편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그러다가 박팽년은 단종 복위 운동의 주모자로 국문을 받게 된다. 그때 세조가 그의 능력을 아껴 자신의 편에 설 것을 권유하였으나,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팽년이 세조를 '나으리'라고 부르자, 격분한 세조는 "그대가 이미 나에게 '신'(臣)이라고 칭하였는데, 이제서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비꼬았다. 이에 박팽년은 "내가 상왕의 신하이지 어찌하여 나으리의 신하입니까? 충청도 관찰사로 있던 시절부터 1년간 작성했던 보고서에는 한 번도 '신'(臣)이라고 칭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반박하였다.세조가 울분을 토하며 박팽년이 올렸던 상소문을 살펴보니 '신'(臣)이라는 글자가 단 한 자도 보이지 않았다. 먼 훗날인 1691년 숙종은 사육신의 관직을 회복하였고, 영조는 1758년에 박팽년을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충정(忠正)의 시호를 내렸다. 박팽년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했을 무렵 그의 둘째 아들 '순'(珣)의 아내 이씨가 친정인 묘골에서 마침 아들을 출산하였다.공교롭게도 그 집 여종은 딸을 낳았는데, 여종이 자신의 딸을 이씨 부인의 아들과 맞바꾸는 바람에 그 사내아이는 박팽년의 유일한 손자가 되었다. 그는 성종의 특명으로 사면되어, '일산'(壹珊)이라는 이름을 갖고 1497년에 하빈현 묘골 용산 아래에 사당과 정자를 지어 박팽년의 위패를 모시며 제사를 지냈다. 그의 후손들은 나머지 5인에 대해 추가로 제사를 받들다가 정구(1543~1620)의 건의로 육신사(六臣祠)를 세워 6인의 신위를 모시고 봄·가을로 그들을 기렸다. 현재 육신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에 있는데 사육신의 굽히지 않았던 충절을 느낄 수 있다.

2020-02-12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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