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공수처, 적폐 이처럼!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세상 여론이 모두 통쾌하게 생각했다.'(輿情咸快'여정함쾌)

조선 때 안동 사람 배삼익 묘지에 적힌 글로, 새긴 까닭이 있다. 그가 네 임금(중종~선조) 65년에 걸쳐 난마처럼 얽힌 한 집안의 억울함을 오로지 '법과 정의'의 잣대로, 앞선 어떤 조정과 관리도 손 대지 못한 난제를 푼 업적을 뒷사람들이 기려서다. 대(代)를 이은 적폐(積弊)를 권력 눈치 보지 않고 줏대 있게 풀었으니 당시 사람들로선 그럴 만했으리라.

그가 1586년(선조 19년) 장례원 판결사(判決事)에 앉을 당시 누명으로 망한 집안을 바로 세워 달라는 송사가 있었다. 1521년(중종 16년)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안씨(安氏) 집안 사람은 역모로 여럿 목숨을 잃었지만 무고한 송씨(宋氏) 집안 사람은 공신으로 영달을 누렸다. 안씨 집안 몰락에 송씨 집안은 관계·학계에 탄탄한 터를 다졌고 세상은 어쩌지 못했다.

이미 60년 세월이 흘렀고, 풍비박산의 안씨 집안 사람 말을 들을 사람보다 네 임금 거치며 쌓은 인맥과 집안 아들 5형제 출세로 송씨 집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 아들은 학문으로 뛰어난 제자도 기르고 이이·성혼 같은 당대 서인 인물과 두터운 우의를 다졌다. 이들 송·이·성 세 사람 이야기와 주고받은 편지 즉 삼현수간(三賢手簡)은 뒷날 사람들 관심을 끌 정도였다.

이런 세월에 묻힌 두 집안 사연과 무고에 따른 한 집안의 억울함은 결국 판결사에 오른 배삼익이 풀었다. 왕을 설득해 무고한 5형제 아버지 위훈(偉勳)을 없애고 노비 신세의 안씨 집안은 옛 신분을 되찾았다. 송씨 형제는 천민 신분이 됐다. 뒷날 안씨 집안에 대해 "세력이 약하여 이길 수 없었고, 법관들이 모두 피해 판결하지 못했다"며 "배삼익이 판결하니 여론이 모두 통쾌하게 여겼다"는 평가는 수긍할 만하다.

지난 21일 정부·여당이 목을 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했다. 초대 해결사로 대구 출신 김진욱 처장이 나섰다. 그러나 공수처를 두고 정부·여당의 환호와 야당의 '정권 수호처' 걱정이 확실히 엇갈린다. 지금 정부 관련 숱한 의혹의 느슨한 수사나 정부·여당 사람의 이런 뭇 의혹 뭉개기 같은 발언과 행동을 보면 공수처 앞날도 알 수 없다. 김 처장이 과연 '산' 권력을 감쌀지, 배삼익처럼 판결사로 역사에 남을 길을 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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