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태우의 새론새평] 중공과 중국

도태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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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미국 워싱턴이 2만5천 명의 군인들로 얼어붙었다. 1월 6일 선거인단 표결 당시 있었던 의사당 난입 사건이 그 이유라지만 시민들을 분노케 한 부정선거와 중공에 의한 선거 개입 정황은 국가정보국(DNI)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대중(對中) 정책에 대한 맞불이었을까? 여하튼 키신저 회담 이래 미·중 관계 50년이 근본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일찍이 소설가 이문열은 두 개의 중국을 구분한 바 있다. 하나는 '힘의 제국'으로 군림한 중국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문화'의 빛을 발산한 중국이다. 오늘날 두 측면은 중공(중국공산당)과 중국으로 구별된다. 힘의 제국을 계승한 중공 노선의 특징은 최근 홍콩 민주 인사 50명을 무더기로 체포한 데서 잘 드러나며, 미·중 갈등의 심화는 바로 이런 측면의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다.

지난 7일 미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 존 랫클리프는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 출처에 근거할 때 중화인민공화국은 2020년 미 연방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고 밝혔다. 랫클리프 국장은 또한 미 중앙정보국(CIA) 지도부가 중공의 선거 개입 분석 결과를 철회하도록 정보분석가들에게 압력을 넣었다며 미 상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인용했다. 자기 나라에는 선거도 실시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선거에 개입하는 중공의 행태는 자유 체제를 위협하는 전체주의 세력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사실 차이나(China)의 어원인 진(秦)나라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체주의 국가의 모델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혹한 통제 위에 강력한 국가를 세운 진은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했지만 15년 만에 멸망한다. 그러나 뒤를 이은 한 제국도 기본 틀은 진을 본뜬 것이며, 이후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에 이르기까지 중국 왕조의 기본 원리는 통치수단적 법치(rule by law)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실상은 권력적인 명령에 의한 지배였다.

이런 중공과 대립되는 인문적 중국은 공자와 소동파의 나라이다. 그들은 시문을 숭상하며, 예치와 덕치를 추구한다. 진시황적 제국에 대한 영원한 대척점을 이루었지만 '적법절차에 바탕한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이상에 이르지 못했다. 중국의 두 얼굴인 진시황의 힘과 공자의 정신은 여전히 법 속에서 종합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편 우리 역사 속에는 이 두 측면의 중국과 대결하여 부분적인 극복을 경험한 빛나는 사례들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멸망 후 귀환한 소정방에게 당 고종은 '왜 연해 신라를 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소정방은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신하는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과 같이 하니, 비록 나라는 작지만 함부로 도모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힘의 제국에 맞서 독립을 지켜낸 예다.

또, 정조 대에 진나라 이전 원시 유학의 뿌리를 탐구한 정약용은 천주교를 통해 서양 문명을 접한 뒤 '천자란 추대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다섯 집이 인장을 추대하고, 다섯 인이 이장을 추대하며 이런 단계를 밟아 마침내 여러 제후가 공동으로 추대한 사람이 천자가 된다는 것이다. 다산은 상향식 민주정이 동양 역사의 시원에 존재함을 알렸다.

이렇게 우리 역사 속에 신라처럼 힘의 제국(중공)에 맞서고 다산처럼 중국과 서양을 종합하여 신문명의 지평을 펼쳐간 전통이 존재함에도 오늘 우리는 힘의 제국으로서 중공에 굴종하고, 중국과 서양의 깊은 뿌리를 배워 종합할 기상은 다 팽개친 듯하다.

거대한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치러질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을 맞아 자유민주주의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대양 건너 세계 최강국도 뒤흔들어 놓은 중공의 권력술에 경악하며 최인접국으로서 고도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중공과 중국을 구분하고 힘과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 극복을 추구하는 것은 수천 년 우리 역사의 운명적 과업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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