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늑대들과 한 마리 양의 저녁식사



2020년 11월 2일자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 타임 홈페이지 캡처 2020년 11월 2일자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 타임 홈페이지 캡처

 

이상헌 경북부장 이상헌 경북부장

며칠 전 짧은 외신 뉴스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다음 달 2일 자 표지에서 창간 이래 처음으로 'TIME'이라는 제호(題號)를 뺐다는 것이다. 타임은 그 자리에 대신 'VOTE'(투표하라)라는 글자를 넣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권위지가 투표 독려에 나설 만큼 미국 대선 열기는 뜨겁다. 지구촌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4년간 좌충우돌했던 미국이 글로벌 리더로 복귀하느냐, 계속 예측불허 국가로 남느냐가 걸린 선거라서다.

북핵 위협에 직면한 우리 역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특히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다면 북한과의 협상은 '당나귀'(민주당)와 '코끼리'(공화당) 차이만큼 변화가 점쳐진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무조건 트럼프를 찍을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는 진정한 의미에서 미국의 첫 포퓰리즘 대통령이다. 일부에선 그런 그라면 패배 불복을 넘어 승리 가로채기에 나설 수 있다고 본다. 아름다운 패배는커녕 정파별로 갈라진 미국 현실을 활용, 권력을 지키려 할 것이란 얘기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통상 공화당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현장투표에서 앞선다면 선거 당일 승리 선언에 이어 민주당 표가 많으리라 예상되는 사전투표 불신임을 주장한다. 경합 주(州) 결과에 따라선 재검표 소송을 제기한 뒤 여론전을 펼친다는 수순이다.

그는 실제로 유세 현장에서 노골적으로 지지자들을 부추겨왔다. 그래서 선거 뒤 곳곳에서 폭동이 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여서 뉴욕에선 양측 지지자 사이에 집단 난투극까지 벌어졌다.

미국 대선과 우리 대선은 방식에서 차이가 크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 16개월 뒤 한국에서 빚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신뢰는 품위 있는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덕목이지만, 현실 정치에선 이미 사라진 지 오래여서다.

이는 민주사회 의사결정 방식인 다수결 제도의 오랜 병리 현상이기도 하다. 다수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만 한다면 공동체에 대한 반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 '이게 나라냐'고 콧방귀만 뀌게 된다.

상호 불신과 증오만 쌓이면 전체주의 또는 독재의 씨앗이 자라나기 마련이다. 1930년대 독일에서 처음부터 히틀러를 지지한 사람은 10%도 되지 않았다. U보트 함장 출신 반나치 성직자였던 마르틴 니묄러는 "나치가 공산주의자, 노조, 유대인을 탄압할 때 그 구성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내 차례가 됐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 또한 표를 조금 더 받았다는 근거로 집권 세력이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을 휘두르는 데에서 비롯됐다. 모순투성이 부동산 관련 법, 부작용이 더 큰 최저임금 인상, 개혁을 빌미로 삼은 인사권 남용 등은 온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여러 마리 늑대와 한 마리 양이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투표하는 것과 결과가 다르지 않다.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반대파를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될 여지가 있는 다수결 제도를 보완하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가수 나훈아가 느닷없이 소환한 '테스 형' 소크라테스에게 불똥이 튀었던 고대 그리스의 아르기누사이 해전이 그 사례다. 소크라테스의 반대에도, 생존자 구조를 하지 않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여론만으로 개선장군들의 목을 날린 아테네는 결국 패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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