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목의 아침놀] 철면피(鐵面皮)에서 법면피(法面皮)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매일신문 DB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매일신문 DB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정치는 게임이다. 어쨌든 이겨야 한다. 지고나면, 뭣도 아니다. 과거에 '수신(修身) 다음 평천하(平天下)'라는 말을, '평천하하면 수신 된다'고 바꿔 말한 사람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정치판엔 딱 맞는 말 같다. 천하를 얻으면 게임은 끝이다. 정치판에 자비란 없고, 힘의 게임만 있다. 여기엔 온갖 기법이 동원되나 '법'을 활용하는 것보다 합리적인 명분은 없다.

그러니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거짓이거나 약자들의 순진한 호소이다. 법은 양날의 칼이라 같은 사안이라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마치 '권'(權)이란 것이 권모술수의 '권력, 패권'으로도, 인간을 지키는 '권리, 권익, 권한'으로도 되듯이 말이다.

지금은 법의 시대이다. 법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살아가야 한다. 사회적 에토스, 내면의 덕성에 기초한 윤리・도덕보다도 국민적 합의로 만든 법이 근간이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권리와 자유를 누리며,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 된다. 민주 시민이란 그런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말도 된다.

윤리・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짓을 해도 법에 위반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수치・치욕스럽다', '얼굴에 먹칠을 했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볼 낯이 없다'는 등의 말을 하곤 했다. 윤리・도덕이 지배하던 '얼굴'의 사회에서 '부끄러움'이란 삶의 바닥에 닿는 일이다. 외부의 시선이나 내면적 양심에서, 얼굴과 귀까지 벌겋게 달아오른다는 뜻의 '부끄러울 치(恥)' 자는 '수치, 치욕, 염치'의 에토스를 형성했다.

조선시대의 민화 "문자도"(文字圖)는 '효제충신(孝悌忠信), 예의염치(禮義廉恥)'라는 딱 여덟 글자로만 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의 윤리・도덕을 압축한 것인데, 여기서 '염치'란 실존의 번민을 껴안은 지침이다. '몰염치・파렴치'는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인간을 지칭한다. '청렴할 렴' 자는 '맑을 청(淸), 깨끗할 결・백(潔・白)' 자와, '부끄러울 치' 자는 '욕될 욕(辱), 부끄러울 수(羞)' 자와 잘 어울린다. 모두 양심을 깨워서 나온 글자들이다.

지금은 어떤가. 과거의 '달아오를 얼굴'은 뒤로 숨었다. 대신에 '법'이라는 냉정한 사회적 장치가 얼굴을 대신한다. 따라서 윤리・도덕과 양심을 드러내는 '얼굴・낯부끄러움'은 저절로 면피(免避)되었다. 돈만 지불하면 잘난 소피스트들 즉 변호사가 깔끔하게 자신을 변호해준다. 이처럼 법이 최선이 되자 양심엔 털이 나고, 얼굴엔 철판 대신 '법판'(法板)이 깔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철(鐵)면피가 이제 법(法)면피로 진화한 것이다. 간편해졌다. 마치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일본 측에서 "서로 시끄럽게 싸우지 말고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자! 평화적으로, 조용히 법적으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법정에 섰을 때, 법은 누구의 편일까. 과연 돈・힘・백(배경)을 버리고 정의의 편에 서기나 할까.

염치가 죽은 지 오래다. 뻔뻔한 것이 차라리 멋져 보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양심어린 고뇌와 등져 살아도 태연하다. 아니 세상은 대놓고 "뻔뻔하게 살아라!"고 한다. 잘못을 해도 부디 안색을 바꾸지 말고, 또박또박 말을 둘러대어야 한다고.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는 것이 얼굴이니, 고개를 딱 쳐들고, 불안히 눈알을 굴리지 말라고 한다. 안색의 동요는 어딘지 찔리는 구석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그 풍경을 조용히 해야 함을 강조한다.

법을 어겼더라도 태연히 절대 안 했다고 우선 딱 잡아떼라! 만일 증거가 나오면 별것 아니라고 말하라! 차츰 사실이 밝혀지면, '검찰에 가서 소상히 밝히겠다,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하여, 사안 자체를 개인적 차원에서 '법적' 문제로 시선을 돌려라! 사건이 더 밝혀지면, 당당하게 '당신들은 안 그랬냐?'는 식으로 대들어라! 하다하다 안 되면, 고개를 '조금' 숙이고, 죄송하다는 '척' 말하면 된다. 법면피란 이런 것이다. 자, 이래도 좋은가? 그럼 계속 이대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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