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18대 0’과 의회 민주주의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첫 주말인 지난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21대 국회 개원 축하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첫 주말인 지난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21대 국회 개원 축하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21대 국회 4년 임기가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됐다. 여야는 다음 주초 원 구성을 끝내고 국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법정시한인 5일 국회의장단 선출에 이어 8일까지 상임위원회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21대 국회가 출발부터 삐걱댈 수밖에 없다.

역대 국회가 그러했듯 21대 국회도 조짐이 좋지 않다. 개원에 앞서 상임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 힘겨루기가 만만찮아서다. 177석으로 몸집을 불린 헤비급 여당과 위축될 대로 위축된 제1야당을 보면 국회 풍경은 뻔하다. 범여권(190석)까지 계산에 넣을 경우 보수의 단기필마인 미래통합당(110석)은 사실상 '곤마' 형세다. 이는 여당에 압도적인 힘을 실어준 국민 선택의 결과이지만 야당에는 4년 내내 악몽의 연속일 수 있다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야당 현실은 미래통합당이 자초한 결과다. 영남의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주었으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 보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솔직히 그리 높지 않다. 보수의 신념과 지역색에 따라 선택지를 고정해 놓은 유권자를 빼면 마지못해 뽑아준 유권자가 적지 않다.

특히 그동안 보수 정치 세력이 보여준 국정 운영 능력과 민주주의 인식은 누가 보더라도 낙제점이다. 이런 미래통합당의 위상과 정체성은 '보수=적폐'라는 패러다임으로 굳어졌다. 이런 국민적 시각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래통합당이 하루아침에 집권 세력을 견제하는 대안이자 민생 안정의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총선 투표함이 열리자마자 여당 지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180석의 의미'를 환기시킨 것도 야당에 끌려다니지 말고 엄하게 다루라는 신호탄이다.

그런데 의회 정치의 무대인 국회의 운영 원칙은 '프리 플로우'(Free Flow)가 아니다. 프리 플로우는 교통 밀도가 낮은 도로에서 차량이 합류할 때 서로 별다른 방해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을 일컫는 용어다. 문제는 대부분의 도로 합류 구간은 프리 플로우 상태가 아니라 '멀지'(Merge)나 '일드'(Yield·양보) 규정이 적용될 만큼 복잡하다는 점이다. 멀지 구간의 경우 차량이 본선과 지선에서 서로 합류할 때 어느 차로에도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 지선 차량의 원활한 합류를 위해 본선 차량이 교통 흐름을 보고 차로를 바꾸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 국회에 이를 적용해 보면 한결 이해가 쉽다. 여야의 양상이 완전히 뒤바뀐 18대 국회도 좋은 참고 자료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례대표 22석을 포함해 153석을 얻었다. 반면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은 81석에 그쳤다.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여야가 충돌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18개의 위원장 자리를 한나라당(11)과 통합민주당(6), 자유선진당(1)이 나눠 가졌다. 21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이 '야당 몫'이라고 주장하는 법사·예결위원장 자리도 여야가 나란히 나눴다.

최근 여당 내부에서는 '18대 0'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 물론 정치가 프리 플로우와 같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번거롭게 자리를 나누고 협력이니 견제니 따질 이유가 없다. 각자 제 노선대로 지지 세력의 입맛에 맞춰 파벌 정치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의회 민주주의는 정당이 협력하고 때로 견제하면서 합의를 이뤄가는 게 핵심이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에다 미·중 갈등 등 '전시 상황'과 마찬가지다. 여당은 책임 정당으로서 국정 주도권을 잡고 물샐틈없는 정책 수행에 나서야 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제 고집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협력 정치의 묘수를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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