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그 모든 순간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지난 4일 대구 달서구 노인종합복지회관 주차장에 마련된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에서 검체 채취 자원봉사 중인 간호사들이 방문자가 뜸한 틈을 타 피로를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난 4일 대구 달서구 노인종합복지회관 주차장에 마련된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에서 검체 채취 자원봉사 중인 간호사들이 방문자가 뜸한 틈을 타 피로를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1963년 박정희 혁명정부의 '의료보험법' 제정은 우리나라 의료보험(건강보험) 도입의 최초 시도였다. 시범사업이던 의료보험은 박정희 정권이 1977년 공무원과 대기업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강제 가입 방식의 직장의료보험을 실시하면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1986년 전두환 정권이 도입 계획을 발표하였고, 1989년 노태우 정권 때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직장·지역별 조합과 재정 통합으로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을 완성한 것은 2000년 김대중 정권이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게 단기간에 도입됐다고 한다. 독일은 100년, 일본은 36년 걸린 일을 한국은 1977년 기준으로 불과 12년 만에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역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역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본격적인 의료보험 시행을 결정할 당시 각료들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였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무상 의료를 제공받는다는 선전이 박 대통령의 결단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신 말기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유화적 조치이기도 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걸쳐 실시한 전 국민 의료보험도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평가도 그 때문이다. 건강보험 통합 역시 시대적 산물이다. 2000년 통합 전까지 227개 지역의료보험조합, 139개 직장의료보험조합 등이 난립해 있었다. 직장과 지역, 부유한 조합과 가난한 조합 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이들의 통합은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한 김대중 정부의 공이 크지만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상황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전 국민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우리 의료체계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일부의 주장처럼 박정희 대통령만의 공도 아니고 과거 정권의 기여를 무시한 채 문재인 정부의 치적으로만 내세울 일도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과 역대 정권이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한마디로 이른바 보수와 진보 정권을 통해 완성된 대한민국의 총체적 역량이다. 수십 년간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2020년의 우리가 '방역 선진국'을 자랑하며 의료 한류를 외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정치적 약점을 들어 특정 정권 혹은 지도자를 폄하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우리의 방역과 보건의료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했다. 사스와 메르스 때 경험을 살려 대응체계를 발전시켜온 결과다"라고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연설도 그런 맥락이다.

'포용과 협치'를 내세운 문재인 정권이 3년을 넘어섰다. 범여권이 190석을 석권한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21대 국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대만으로 그친 포용과 협치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현충원에 있는 이른바 친일파 묘소 '파묘'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다짐한다. 과거 왕조시대에나 들어온 '부관참시형'의 재연인 듯 섬뜩하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모순과 문제가 '친일파' 때문이라는 단순한 역사 인식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백선엽 장군이 서울 현충원에 안장될 경우 묘소가 뽑혀 나갈지 모른다는 말로 대전 현충원을 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곳곳에서 박정희, 전두환의 이름과 이미지를 없애고 지우는 작업에 분주한 것도 마찬가지다. 극한 가난을 물리치고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어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우리의 목표"라는 대통령의 다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낸 역사를 부정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호승 시인은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알지 못했음을 "가끔 후회한다"고 노래했다. 과거를 부정하고 묘소를 파묘해야 역사가 전진하는 게 아니다. 설사 부끄러운 역사라 해도 관련 유적을 부정적 유산(negative heritage)이란 이름으로 일부러 보존하는 게 선진국이다. 새로 시작하는 정치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순백의 역사에 대한 집착보다 미래를 향한 징검다리 돌 하나 놓는 일에 천착해야 한다. 의료보험의 역사에서 보듯 그때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꽃봉오리였음을 나중에라도 알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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