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당신 속의 마법

박천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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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시를 위해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연필 잡는 법, 선 긋기, 원근법, 명암조절 등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두 달 뒤 입시 과제인 석고상과 조우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생각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당시 선생님은 "이 부분은 시원하게 그려야 돼!", "여기서는 부드럽게!"라며 조언했다. 하지만 도대체 '시원하게', '부드럽게'가 무슨 말인지 몇 달간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헤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마법처럼 이해하게 되었고, 이후 학원 강사를 하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시원하게!"라고 주문을 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타인에게 나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에서조차 가치관이나 뉘앙스 등의 이유로 오해 혹은 곡해되어 소통에 차질을 겪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는 언어가 가지는 불안정함에 기인한다. '1+1=2'와 같이 명료한 수학적인 기호들로 언어가 구성된다면 특별히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어 하나에도 여러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문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확히 판단해야 정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속성 덕분에 메타포라는 형식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우리는 문학, 공연, 시각예술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사유를 확장시키고 지적 유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각 예술에 있어 메타포는 은유적이기도 하지만 직관적이기도 하다. 대체로 20세기 이전의 예술은 각각이 지니는 의미나 상징은 다를지라도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시기의 조각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20세기 이후의 예술은 은유적 표현을 통해 더 많은 메시지를 담기 시작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작품을 통해 대상과 이미지, 언어와 사고 사이의 관계를 전복시켰고, 마르셀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기존의 제도권 예술계를 은유적으로 비판하였다. 이후 동시대로 이어지는 예술은 다분화되었고, 작가 개인의 표현방식에 따라 각각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대구미술관의 전시 '당신 속의 마법'은 동시대 작가들의 다양한 형식과 메타포를 압축하여 구성되었다. 전시에 참여하는 류현민, 박정기, 배종헌, 안동일, 안유진, 염지혜, 윤동희, 이완, 이혜인, 정재훈, 하지훈, 한무창 작가는 예술, 사회, 일상, 관계 등의 주제로 각자가 응시하는 세계를 직관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스마트폰, SNS 등을 통해 범람하는 기호들은 우리의 바쁨을 방패 삼아 숨 쉴 틈 없이 날아들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작가들은 전시를 통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기호들의 방공호로써 관객들에게 마법 같은 상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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